정태홍 목사의 성경적 상담 연구소 RBD COUNSELING INSTITUTE
멘탈리티의 핵심 키워드 : 신성한 내면아이, 구상화, 의미와 통일성, 도약~
목록
주의인물

교회의 실용주의(實用主義)

교회의 실용주의(實用主義)

릭 워런의 장사광(狂)

1998년 8월 미국 오하이오 바이블 펠로우쉽 발행 비지터지의 "영적이지 않고도 성공적인 방법"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팀 포터 목사는 릭 워런의 방법들과 그의 책 목적에 이끌린 교회의 가르침들을 검토한다. 워런의 책은 W. A. 크리스웰의 서문과 더불어 로버트 슐러, 빌 브라잇, 풀러신학교 교수 아치볼드 하트, 또 연합감리교회의 에스라 얼 죤스의 추천을 얻었다. 포터는 몇 가지 철학적 및 신학적 결점들과 기타 문제점들을 열거한다. 그는 말하기를, "장사술에 이끌린 목회 사역은 불신자의 요구에 응하므로 결국 불신앙에 이르게 될 암(癌)이다"라고 하였다.

현대 교인들은 오락을 구함

오늘날 교회 다니는 사람들은 시설들, 가족들을 위한 프로그램들, 그리고 오락을 위해 교회들을 찾고 신학이나 신앙 사상을 위해 교회를 찾지 않는다. 그들은 기독청년연합회(YMCA)와 종교적 록 콘서트의 혼합물 같은 것을 찾고 있다. 슬프게도, 대형 교회를 추구하는 많은 목사들은 바른 교리와 거룩한 생활에 우선순위를 낮게 둔다. 성경은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으리라"고 말씀했다(딤후 4:3-4).

교회의 상업적 경영 방식(Marketing)

1999년 7월 세계 근본주의자 대회의 한 결의문은, 교회에 다니지 않는 사람들을 접촉하고 '구도자들'의 관심을 끌기 위하여 세속적인 상업적 경영 전략들(예를 들어 헐리우드 영화들, 록 음악)을 사용하는 일부 목사들에 대해 경고하였다. 그 결의문에 의하면, "바로 이 사람들, 특히 에드 답슨은 근본주의자들과 성경적 분리주의자들을 율법주의자라고 지칭한다"고 말했다. 그 결의문에 의하면, "이 상업적 경영 방법론은 미국에서 빌 하이벨즈와 릭 워런 같은 사람들의 영향을 통해 시작되었으나, 온 세계의 복음주의를 통하여 급속히 퍼져 나가고 있다"고 했다. 그 세계 근본주의자 대회 결의문은 선언하기를, "근본주의자들은 사도행전 2:41-47의 교회 예배 형태를 따르고, 요한1서 2:15-17의 경고에 주의해야 한다"고 했다. 묽어진 기분좋은 '복음'은 사람을 구원하기에 무력하다.

교회의 실용주의(實用主義)적 풍조

보이스(Voice)지 1999년 12월호의 한 글은 다음과 같이 썼다:

많은 교회들이 기도를 프로그램으로, 능력을 사람들로, 참된 예배를 오락으로, 순수성을 번영으로, 더럽혀지지 않은 복음에 대한 충성을 조직체적 일치로 대치하였다. . . . 실용주의(實用主義, pragmatism)가 하나님의 백성의 생각을 엄습하여 교회에서 교인수가 느는 것이 복의 기준으로 간주되고 교회가 이 목적을 이루기 위해 어떤 일을 취하든지 정당화된다. 이와 같이 우리는 하나님의 가족에 사람들을 포함시키려는 이 과정을 방해할 모든 것을 제거하는데 큰 강조점을 둔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을 믿는 모든 사람'으로 재정의된다. 칭의(稱義)가 매우 교묘하게 정의됨으로써 천주교인들은 교회를 연합시키려는 노력에서 제외되지 않는다. 거룩에 대한 이해는 생활 방식 때문에 사람이, 용납할 만한 그리스도인의 생활과 조화되지 않는 것으로 비난받지 않도록 조정된다. '그리스도를 위해 세상과 접촉함'이라는 공통적 목표가 본질적 신학 영역에서의 교리적 차이점들에도 불구하고 교회일치의 기초가 된다.

릭 워런의 실용주의

릭 워런의 목적에 이끌린 교회라는 책과 그의 주장은 미국과 온 세계에 많은 영향을 끼치는 것 같다. 그것은 단순히 교회가 하나님의 뜻하신 목적이 있다는 정도가 아니다. 그것의 근본적 문제는 교회성장이라는 목적을 위해 세상적 수단 방법의 사용을 정당화하려는 데 있다. 그것이 과연 바르고 건전하고 성경적인 생각인가? 우리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교회는 교회답게 성장해야 한다. 교회가 세상적 방법을 사용해 성장하려 한다면 그것은 교회이기를 포기하는 것과 같다.

극장 교회들

오늘날 너무 흔히 하나님의 집은 연주회장으로 변했고 찬송 사역은 의자들을 채우는 방책으로 변했다. 세상과 육신과 마귀가 곁에서 일들을 그들의 좋아하는 방향으로 만든 후에 목사는 강단에서 그의 의무들을 수행한다. 그러한 상황에서의 설교가 영혼들을 거의 구원하지 못한다는 것은 별로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것은, 원수를 초청해서 추수꾼 앞에 가며 가라지를 뿌리고 그의 뒤에 가며 씨를 빼앗아 버리게 하면서 추수를 기대하는 것과 같다. 예전의 한 목사는 그것을 이런 식으로 표현했다. "하나님의 집의 찬송과 예배를 보이게 만들거나 흥미 있게 만드는 것은 하나님 앞에 가증한 것이었다."


 

자료출처: 옛신앙

 

이 글 공유하기

독자 의견

댓글이 없습니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