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적이 이끄는 삶이 전부가 아니다
under the title more than purpose
Marshall Davis 지음 (2006)
부흥과 개혁사
서점에 앉아 와닿는 내용은 노트하며 읽었습니다.
미국의 학계와 교계에서는 릭워렌 목사, 새들백교회에 대한 비판이 적지 않더군요
대부분 그 비판은 일리가 있는 것들이기도 합니다.
이 책은 "뭔가 부족해(something more!)"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목적이 이끄는 삶을 읽고 소화불량에 걸렸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목적이 이끄는 삶은 예배, 교제, 제자도, 사역, 전도의 다섯단계를 신입생 교양필수처럼 과목처럼 담고있다고 비판합니다.
그리고 탄광속의 카나리아(광부가 탄광에 유독가스의 유무를 확인하기 위해 카나리아를 먼저 들여보냄)같은 책이라 비판합니다.
그러면서 지금 당장 교정을 취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복음주의에 암울한 미래가 불 보듯 뻔할 것이라고 합니다.
읽으면서 노트한 내용을 적어봅니다. 비판과 대안(본질)을 따로 구별하지 않고 적습니다. 글의 뉘앙스로 아실 수 있으리라 봅니다
p12 베드로가 "복음의 진리를 따라 바르게 행하지 않을 때 안디옥에서 베드로를 책망"(갈2:14,11)했던 바울처럼 복음주의자들은 "그를 책망할 필요가 있다. 당연히 "그"는 릭 워렌 목사겠지요..
p13 복음의 진리를 변질시키는 복음에 대한 재해석이다.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것이 교회이다. 진리를 말해야 한다
p18 워렌의 교회목적은 당신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것이다. 하나님은 당신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을 주고 당신의 믿음을 강화하며 당신 재능을 발견케하여 삶 속에서 당신의 사명을 발견하기 위해 교회가 세워진 것이다.
p19 자기계발서는 아니나 자기성취와 관련된 책은 분명하다
p21 패스터닷컴에 릭워렌은 목회자들을 훈련시키고 준비시키는 일도 한다
p22 더 많은 사람들을 더 빨리 모으려는 욕구: 철학과 방법론이 잘못될 가능성이 다분하다.
p24 동질성의 원리: 백인여성과 결혼하고 슬하에 두 자녀를 둔 교양있는 백인남성을 교회의 주된 전도대상으로 삼았다
p28 로버트 슐러: 사람들의 기운을 복돋아 줄 목적의 "긍정적인 설교"
저자는 릭 워렌이 도널드 맥가브란 - 피터 와그너 - 로버트 슐러의 교회성장에 지대한 영향을 받은 교회성장주의자라고 많은 양을 할애하여 비판한다
p31 '목적이 이끄는' 교회의 핵심에는 '절실한 필요'의 충족이 자리잡고 있다. 대중적인 심리학에 뿌리를 둔 치유적 복음이다
심리적 질병과 회복의 언어로 버무려져 있고, 예수의 팔복에 바탕을 둔 복음주의적 8단계 회복프로그램에 불과하다고 비판한다.
p33 무엇을 해야한다 식의 설교가 아니라 이렇게 하면된다 식의 설교이다
p35 절실한 필요가 아닌 인간의 참된 필요가 중요할 텐데,,,
p34 롬 8:29 하나님은 우리의 감정을 달래시는 일을 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이 하나님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는 일을 하신다
p38 인간의 가장 깊은 필요는 하나님에 대한 필요이다. 인간의 본질ㅈ거인 문제는 하나님과 관계없이 자신의 필요를 충족시키려는 시도이다.
p39 사도바울은 딤후 4:2-4에서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설교는 하지 말라고 한다. 육신의 병을 고치는 것이 아니라, 영혼의 병을 고쳐야만 한다.
p40 새들백처럼 교회성장을 한다면 세상의 박수갈채를 얻는 대신 당신의 영혼은 잃을 것이다.
p41 신자석이 텅비는 문제를 헌신의 부족으로 본다. 따라서 릭 워렌의 목표는 사람들로 하여금 성실하게 온 마음을 다해 주님을 섬기는 일에 자신을 드리게 하는 것이다(이것이 구원과 영적성장의 모든 것이다)
p45 "몰다(drive)"라는 단어는 강제적이고 격렬한 행동을 내포한다. 모든 것은 이끄는 것과 정반대이다. 이는 구도자 사용자 친화적인 것이다.
p49 회교의 5대의무: 신앙고백, 기도, 자선, 금식, 예배와 너무나 흡사하지 않은가
p51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도 항복(예배의 초점)- 순종, 복종에 물러날 수 밖에 없다
p52 우리의 목적을 위해 하나님을 이용하기 보다 하나님이 그의 목적을 위해 우리를 사용하시도록 해야한다고 저자는 역설한다.
p54 신적인 목적의 다섯 부분으로 된 프로그램에 대한 복종으로 당신의 삶은 40일 후 다시 정의 된다는 것이다.
p104 미국인들에게는 더 큰 것이 언제나 좋은 것이며, 성장은 언제나 좋은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제 아무리 영적인 사람으로 간주하더라도 교회회의실에서는 결코 도전받지 않는 전제조건이다.
목회자 평신도를 막론하고 교회에서 일어날 수 있는 가장 좋은 일은 더 많은 사람들이 예배에 나오고, 더 많은 돈이 헌금함에 모이는 일이라는 기본 가정이 있다
p105 그러나 새들백교회와 릭 워렌에게는 신학적인 정체성이 없고, 종교적 역사도 없다. 이는 신흥대형교회에 잘 나타나는 현상이다. 신학이 중요하지 않고 신학이 없어 매력적이다
p114 기독교 상징이 있어야 할 자리에 생명력과 성장의 상징인 식물이 있다. 성장만을 위해 상징의 장애물을 부순다.
p110 공동체는 어떤 것도 의미하고 있지 않지만 긍정적인 느낌을 주는 단어이기에 신흥대형교회들에게서 막무가내로 쓰인다.
p111 뿌리없는 공동체는 뿌리없는 교회에서 자기도취를 하며 만족감을 갖는다. 대형교회가 건물지으면, 그 건물은 교인처럼 전통적이지 않다. 마치 테마공원처럼 보인다. 고객을 주차장으로 안내하는 도우미들이 있고, 복합건물이다.
p112 건물은 전문대 교정 같고 쇼핑몰 같다. 그리고 건물이 위로 올라가기 보다는, 수평적으로 밖으로 벌어지고 있다.
극장용 좌석과 팔걸이는 개인적인 안락함을 상징한다. 강단에 티셔츠를 입고 올라선 이는 한담을 나누려고 잠깐 들른 릭 아저씨이다
p115-116 대형교회의 최후의 결론은 손익계산이다. 이익이 선지자를 대체한다
p241 엔터테인먼트 형식의 주일 오전 찬양을 버리라. 예배는 행복보다 훨씬 더 넓은 범위의 감정이 있다
p231 목사는 교회의 일차적인 신학선생이다.
신학적 설교는 사람들에게 신학적으로 사고하는 법을 가르쳐 준다. 그러면 인생을 하나님의 눈으로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출처:협성대학교 신학동문회
Marshall Davis 지음 (2006)
부흥과 개혁사
서점에 앉아 와닿는 내용은 노트하며 읽었습니다.
미국의 학계와 교계에서는 릭워렌 목사, 새들백교회에 대한 비판이 적지 않더군요
대부분 그 비판은 일리가 있는 것들이기도 합니다.
이 책은 "뭔가 부족해(something more!)"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목적이 이끄는 삶을 읽고 소화불량에 걸렸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목적이 이끄는 삶은 예배, 교제, 제자도, 사역, 전도의 다섯단계를 신입생 교양필수처럼 과목처럼 담고있다고 비판합니다.
그리고 탄광속의 카나리아(광부가 탄광에 유독가스의 유무를 확인하기 위해 카나리아를 먼저 들여보냄)같은 책이라 비판합니다.
그러면서 지금 당장 교정을 취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복음주의에 암울한 미래가 불 보듯 뻔할 것이라고 합니다.
읽으면서 노트한 내용을 적어봅니다. 비판과 대안(본질)을 따로 구별하지 않고 적습니다. 글의 뉘앙스로 아실 수 있으리라 봅니다
p12 베드로가 "복음의 진리를 따라 바르게 행하지 않을 때 안디옥에서 베드로를 책망"(갈2:14,11)했던 바울처럼 복음주의자들은 "그를 책망할 필요가 있다. 당연히 "그"는 릭 워렌 목사겠지요..
p13 복음의 진리를 변질시키는 복음에 대한 재해석이다.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것이 교회이다. 진리를 말해야 한다
p18 워렌의 교회목적은 당신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것이다. 하나님은 당신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을 주고 당신의 믿음을 강화하며 당신 재능을 발견케하여 삶 속에서 당신의 사명을 발견하기 위해 교회가 세워진 것이다.
p19 자기계발서는 아니나 자기성취와 관련된 책은 분명하다
p21 패스터닷컴에 릭워렌은 목회자들을 훈련시키고 준비시키는 일도 한다
p22 더 많은 사람들을 더 빨리 모으려는 욕구: 철학과 방법론이 잘못될 가능성이 다분하다.
p24 동질성의 원리: 백인여성과 결혼하고 슬하에 두 자녀를 둔 교양있는 백인남성을 교회의 주된 전도대상으로 삼았다
p28 로버트 슐러: 사람들의 기운을 복돋아 줄 목적의 "긍정적인 설교"
저자는 릭 워렌이 도널드 맥가브란 - 피터 와그너 - 로버트 슐러의 교회성장에 지대한 영향을 받은 교회성장주의자라고 많은 양을 할애하여 비판한다
p31 '목적이 이끄는' 교회의 핵심에는 '절실한 필요'의 충족이 자리잡고 있다. 대중적인 심리학에 뿌리를 둔 치유적 복음이다
심리적 질병과 회복의 언어로 버무려져 있고, 예수의 팔복에 바탕을 둔 복음주의적 8단계 회복프로그램에 불과하다고 비판한다.
p33 무엇을 해야한다 식의 설교가 아니라 이렇게 하면된다 식의 설교이다
p35 절실한 필요가 아닌 인간의 참된 필요가 중요할 텐데,,,
p34 롬 8:29 하나님은 우리의 감정을 달래시는 일을 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이 하나님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는 일을 하신다
p38 인간의 가장 깊은 필요는 하나님에 대한 필요이다. 인간의 본질ㅈ거인 문제는 하나님과 관계없이 자신의 필요를 충족시키려는 시도이다.
p39 사도바울은 딤후 4:2-4에서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설교는 하지 말라고 한다. 육신의 병을 고치는 것이 아니라, 영혼의 병을 고쳐야만 한다.
p40 새들백처럼 교회성장을 한다면 세상의 박수갈채를 얻는 대신 당신의 영혼은 잃을 것이다.
p41 신자석이 텅비는 문제를 헌신의 부족으로 본다. 따라서 릭 워렌의 목표는 사람들로 하여금 성실하게 온 마음을 다해 주님을 섬기는 일에 자신을 드리게 하는 것이다(이것이 구원과 영적성장의 모든 것이다)
p45 "몰다(drive)"라는 단어는 강제적이고 격렬한 행동을 내포한다. 모든 것은 이끄는 것과 정반대이다. 이는 구도자 사용자 친화적인 것이다.
p49 회교의 5대의무: 신앙고백, 기도, 자선, 금식, 예배와 너무나 흡사하지 않은가
p51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도 항복(예배의 초점)- 순종, 복종에 물러날 수 밖에 없다
p52 우리의 목적을 위해 하나님을 이용하기 보다 하나님이 그의 목적을 위해 우리를 사용하시도록 해야한다고 저자는 역설한다.
p54 신적인 목적의 다섯 부분으로 된 프로그램에 대한 복종으로 당신의 삶은 40일 후 다시 정의 된다는 것이다.
p104 미국인들에게는 더 큰 것이 언제나 좋은 것이며, 성장은 언제나 좋은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제 아무리 영적인 사람으로 간주하더라도 교회회의실에서는 결코 도전받지 않는 전제조건이다.
목회자 평신도를 막론하고 교회에서 일어날 수 있는 가장 좋은 일은 더 많은 사람들이 예배에 나오고, 더 많은 돈이 헌금함에 모이는 일이라는 기본 가정이 있다
p105 그러나 새들백교회와 릭 워렌에게는 신학적인 정체성이 없고, 종교적 역사도 없다. 이는 신흥대형교회에 잘 나타나는 현상이다. 신학이 중요하지 않고 신학이 없어 매력적이다
p114 기독교 상징이 있어야 할 자리에 생명력과 성장의 상징인 식물이 있다. 성장만을 위해 상징의 장애물을 부순다.
p110 공동체는 어떤 것도 의미하고 있지 않지만 긍정적인 느낌을 주는 단어이기에 신흥대형교회들에게서 막무가내로 쓰인다.
p111 뿌리없는 공동체는 뿌리없는 교회에서 자기도취를 하며 만족감을 갖는다. 대형교회가 건물지으면, 그 건물은 교인처럼 전통적이지 않다. 마치 테마공원처럼 보인다. 고객을 주차장으로 안내하는 도우미들이 있고, 복합건물이다.
p112 건물은 전문대 교정 같고 쇼핑몰 같다. 그리고 건물이 위로 올라가기 보다는, 수평적으로 밖으로 벌어지고 있다.
극장용 좌석과 팔걸이는 개인적인 안락함을 상징한다. 강단에 티셔츠를 입고 올라선 이는 한담을 나누려고 잠깐 들른 릭 아저씨이다
p115-116 대형교회의 최후의 결론은 손익계산이다. 이익이 선지자를 대체한다
p241 엔터테인먼트 형식의 주일 오전 찬양을 버리라. 예배는 행복보다 훨씬 더 넓은 범위의 감정이 있다
p231 목사는 교회의 일차적인 신학선생이다.
신학적 설교는 사람들에게 신학적으로 사고하는 법을 가르쳐 준다. 그러면 인생을 하나님의 눈으로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출처:협성대학교 신학동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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