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포스터, 달라스 윌라드, 헨리 나웬와 내적치유
리처드 포스터, 달라스 윌라드, 헨리 나웬와 내적치유
아래 글은 김병준님이 쓰신 글입니다.
칼 융 (Carl Jung)
기독교에 심리학적 신비주의 출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침
칼융은 우리의 집단무의식(collective unconsciousness)안에는 종교적인 그리고 신비한 요소를 품고있다고했습니다 그래서 뉴에이지 나 사도교의 신비주의적인 가르침에 어느정도 과학적으로 설명할수있게한 요소를 가미시켜 사람들을 현혹시키는데 칼융의 집단무의식 이론이 일조를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외에 원형 (Archetype), 그림자 (Shadow), 아니마 (Anima), 아니무스 (Animus) 등 반기독교적인 개념들을 세상에 소개하고 또 카톨릭의 신비주의에도 흥미를 느껴서 이그나셔스 로욜라에 대한 세미나도 주관하는등 우리의 포커스를 주님에게서 우리자신에게 돌리게했습니다.
융의 제자들을 제일 큰 융의 업적중에 하나가 비쥬얼라이제이션 (visualization, active imagination) 이라고 합니다. 이후부터는 짧게 비쥬얼이라고 하겠습니다. 비쥬얼을 하면 집단무의식안에 있는 내용을 알수있다고 하네요 --;; 융자신이 프로이드와 결별후 7년동안 비쥬얼로 자기자신의 무의식을 여행했다고 하며 그래서 Red Book 이란 책도 출판했다고하는데 혹자는 그가 7년동안 정신병을 앓았을수도 있다고했습니다. 그는 무의식안에 있는 이미지는 생명을 갔고 있고 그 이미지를 “가이드” 라고 명명하고 그자신도 “빌레몬 (Philemon)” 이란 영적가이드가 자기자신에게 더한 지혜를 주었다고합니다.
내적치유를 주장하는 사역자들은 예수님을 과거의 죄, 고통, 실망등에 비주얼로 오시게해서 실제로 치유가 가능하다고 주장합니다 --;; 유명한 내적치유자 Rita Bennett 은 실제로 한 여자가 비주얼로 통해서 죄로부터 사함 (구원) 받았다고 합니다 . 그럼 복음말씀은 어떻게 되는지….
융의 비쥬얼라이제이션은 교회에 심리학적 신비주의가 “내적치유”라는 이름으로 교회에 침투할수있는 도구가 되었습니다. 현재 많은 목사, 평신도 사역자등이 비쥬얼을 끌어드리고있는것은 누구나 아는 사항일것입니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사역자들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도 모르는 분들이 많고 또 안다해도 그 시초를 감추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지금 한인교회에서 이름을 날리는 리처드 포스터, 달라스 윌라드, 헨리 나웬
우리가 즐겨부르는 복음성가를 많이 만든 빈야드 (Vineyard church)의 존 윔버 등이 다 이부류에 속하는 사람들입니다. 포스터는 비주얼을 통해서 실체 주님을 직접 만날수있다고 가르칩니다.
오순절 성경 대학의 마크 벌클러 교수는 몰튼 켈시이 자신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는 향심기도를 통한 비쥬얼에서 주님과 대화하고 말씀을 듣고 주님에게서 지혜를 얻을수있다고 가르칩니다.
그리고 또 내적치유의 관한 많은 저서를 낸 몰튼 켈시, 쟌 샌포드 등이 융사상에 숭배자였던 사실도 기억하셔야합니다.
로마서 6장에 6절에서 8절 말씀에 보면 주님은 비주얼이 아닌 향심/관상 기도가 아닌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다가오십니다.
"마틴루터는 말씀을 통해서 오지않는 영은 사탄"이라고 했습니다.
하물며 말씀을 통하지 않고 직접 예수님을 만났다고 하는 형제자매들의 “예수” 를 어떻게 생각해야할까요?
비쥬얼 수호자들은 뉴에이지의 비쥬얼을 사탄의 것이라고하지만 사탄은 교활하여 우리가 말씀으로 무장하고있지않으면 믿는자라도 진부를 가리기 어렵게 할수있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내적치유” 또는 심리학적 신비주의는 현재 모든 교단에 침투했고 왕성한 활동을 벌이고있습니다. 그리고 근래 기름에 불붓듯이 퍼지는 목적의 삶, 긍정의 힘 같은 운동의 기본이 되고있습니다.
칼융은 연금술, 점성술, 심령술에 심취했던 사람이고 그의 하나님은 말씀의 하나님이 아닌 세상적인 조물주였던겄입니다. 그리고 불교처럼 하나님과 천국은 우리의 마음에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신영지주의자였으면 뉴에이지의 아버지라고도 불렸습니다.
위에 글들은 옛날에 제가 대학에서 택했던 심리학, 인터넷 상에 글들을 짜깁기 ^^;; 해서 썼습니다.
저는 지금 기도하는 마음으로 여기 아멘넷에서 열심히 “영성”을 가르치시는 목사님들 그리고 뭐 좀 더 획기적인 것을 도입해서 성도들을 모으실려고하는 사역자 여러분들께서 하루속히 진실을 파악하시고 주님께 돌아와 오직 주님말씀만을 가르치셨으면 하는 마음에서 이글을 씁니다.
우리는 말씀에 순종하며 고난이던 복이던 매사에 주님에 은혜에 감사하며 살려고하는 성향이 진짜 "영성" 이 아닐까요?
출처:제3시
아래 글은 김병준님이 쓰신 글입니다.
칼 융 (Carl Jung)
기독교에 심리학적 신비주의 출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침
칼융은 우리의 집단무의식(collective unconsciousness)안에는 종교적인 그리고 신비한 요소를 품고있다고했습니다 그래서 뉴에이지 나 사도교의 신비주의적인 가르침에 어느정도 과학적으로 설명할수있게한 요소를 가미시켜 사람들을 현혹시키는데 칼융의 집단무의식 이론이 일조를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외에 원형 (Archetype), 그림자 (Shadow), 아니마 (Anima), 아니무스 (Animus) 등 반기독교적인 개념들을 세상에 소개하고 또 카톨릭의 신비주의에도 흥미를 느껴서 이그나셔스 로욜라에 대한 세미나도 주관하는등 우리의 포커스를 주님에게서 우리자신에게 돌리게했습니다.
융의 제자들을 제일 큰 융의 업적중에 하나가 비쥬얼라이제이션 (visualization, active imagination) 이라고 합니다. 이후부터는 짧게 비쥬얼이라고 하겠습니다. 비쥬얼을 하면 집단무의식안에 있는 내용을 알수있다고 하네요 --;; 융자신이 프로이드와 결별후 7년동안 비쥬얼로 자기자신의 무의식을 여행했다고 하며 그래서 Red Book 이란 책도 출판했다고하는데 혹자는 그가 7년동안 정신병을 앓았을수도 있다고했습니다. 그는 무의식안에 있는 이미지는 생명을 갔고 있고 그 이미지를 “가이드” 라고 명명하고 그자신도 “빌레몬 (Philemon)” 이란 영적가이드가 자기자신에게 더한 지혜를 주었다고합니다.
내적치유를 주장하는 사역자들은 예수님을 과거의 죄, 고통, 실망등에 비주얼로 오시게해서 실제로 치유가 가능하다고 주장합니다 --;; 유명한 내적치유자 Rita Bennett 은 실제로 한 여자가 비주얼로 통해서 죄로부터 사함 (구원) 받았다고 합니다 . 그럼 복음말씀은 어떻게 되는지….
융의 비쥬얼라이제이션은 교회에 심리학적 신비주의가 “내적치유”라는 이름으로 교회에 침투할수있는 도구가 되었습니다. 현재 많은 목사, 평신도 사역자등이 비쥬얼을 끌어드리고있는것은 누구나 아는 사항일것입니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사역자들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도 모르는 분들이 많고 또 안다해도 그 시초를 감추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지금 한인교회에서 이름을 날리는 리처드 포스터, 달라스 윌라드, 헨리 나웬
우리가 즐겨부르는 복음성가를 많이 만든 빈야드 (Vineyard church)의 존 윔버 등이 다 이부류에 속하는 사람들입니다. 포스터는 비주얼을 통해서 실체 주님을 직접 만날수있다고 가르칩니다.
오순절 성경 대학의 마크 벌클러 교수는 몰튼 켈시이 자신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는 향심기도를 통한 비쥬얼에서 주님과 대화하고 말씀을 듣고 주님에게서 지혜를 얻을수있다고 가르칩니다.
그리고 또 내적치유의 관한 많은 저서를 낸 몰튼 켈시, 쟌 샌포드 등이 융사상에 숭배자였던 사실도 기억하셔야합니다.
로마서 6장에 6절에서 8절 말씀에 보면 주님은 비주얼이 아닌 향심/관상 기도가 아닌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다가오십니다.
"마틴루터는 말씀을 통해서 오지않는 영은 사탄"이라고 했습니다.
하물며 말씀을 통하지 않고 직접 예수님을 만났다고 하는 형제자매들의 “예수” 를 어떻게 생각해야할까요?
비쥬얼 수호자들은 뉴에이지의 비쥬얼을 사탄의 것이라고하지만 사탄은 교활하여 우리가 말씀으로 무장하고있지않으면 믿는자라도 진부를 가리기 어렵게 할수있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내적치유” 또는 심리학적 신비주의는 현재 모든 교단에 침투했고 왕성한 활동을 벌이고있습니다. 그리고 근래 기름에 불붓듯이 퍼지는 목적의 삶, 긍정의 힘 같은 운동의 기본이 되고있습니다.
칼융은 연금술, 점성술, 심령술에 심취했던 사람이고 그의 하나님은 말씀의 하나님이 아닌 세상적인 조물주였던겄입니다. 그리고 불교처럼 하나님과 천국은 우리의 마음에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신영지주의자였으면 뉴에이지의 아버지라고도 불렸습니다.
위에 글들은 옛날에 제가 대학에서 택했던 심리학, 인터넷 상에 글들을 짜깁기 ^^;; 해서 썼습니다.
저는 지금 기도하는 마음으로 여기 아멘넷에서 열심히 “영성”을 가르치시는 목사님들 그리고 뭐 좀 더 획기적인 것을 도입해서 성도들을 모으실려고하는 사역자 여러분들께서 하루속히 진실을 파악하시고 주님께 돌아와 오직 주님말씀만을 가르치셨으면 하는 마음에서 이글을 씁니다.
우리는 말씀에 순종하며 고난이던 복이던 매사에 주님에 은혜에 감사하며 살려고하는 성향이 진짜 "영성" 이 아닐까요?
출처:제3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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