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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상담의 정체성?

목회상담의 정체성?

 칼 융의 분석심리학과 신성한 내면아이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면

현대종교와 영성을 결코 알 수가 없습니다.
심리학과 내적치유가 얼마나 반기독교적이고 뉴에이지적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아까운 시간과 돈을 허비하고 인생을 허비하지 마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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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목회상담협회 주제강연초록

05-27-00

장소: 감리교신학대학 강당

주제: 목회상담의 정체성

발표자: 이관직 교수, Ph.D., 총신대 신대원

KwanLee@hitel.net or kwanlee@sarang.org

 


내가 94년도 가을학기에 총신대 신대원에 전임대우교수로 강의를 하게 되었을 때 커리큘럼에 “상담학”이라는 제목의 필수과목이 개설되어 있었다. 그래서 나는 교무처에 건의를 하여 그 과목을 “목회 상담학”이라는 명칭으로 바꾸도록 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명칭은 과목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는데 매우 중요하다. 내가 소장으로 섬기고 있는 한국목회상담연구소를 개소했을 때 의도적으로 한국“목회”상담연구소라는 이름을 넣도록 했다. 물론 내담자들을 폭넓게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불신자들에게는 오해를 줄 수 있는 “목회”라는 형용사를 넣지 않는 것이 나을 수도 있을 것이다. 현재 한국목회상담협회의 기관으로 가입되어 있으면서 감독회원 및 전문회원이 책임자로 있는 상담기관들 중에서 “목회”라는 형용사를 갖고 있는 기관은 둘 뿐이라는 점(감리교목회상담센터, 한국목회상담연구소)은 우리의 정체성을 확인하는데 질문을 던져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비교: 김영애가족치료연구소, 성장상담연구소, 세브란스상담실, 장신대학생활상담소, 호신기독교상담연구원, 한국기독교상담문화연구원, 한국기독교상담심리치료연구원, 한국심리치료연구소). 본인은 어느 목회상담자가 책임자로 있는 상담기관에서 감수성훈련을 한학기 동안 진행한 적이 있었는데 그 때 참여했던 멤버들 중에는 불신자들도 있었으며 소위 신자라고 하는 한 멤버는 첫 시간에 그 그룹에서는 신앙적인 이야기를 한다거나 시작할 때 기도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리더인 나에게 요구하였다. 다른 멤버들도 동의하는 바람에 그렇게 하기로 했는데, 내가 하고 있는 사역에 대해서도 혼란스러웠고 그렇다면 구태어 목회상담자를 리더로 두어야 할 필요성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회의를 가졌던 경험이 기억난다. 교회의 후원을 받기도 하고 목회상담자라는 타이틀은 갖고 있으면서도 “목회적인” 혹은 “기독교적인” 색채를 드러내는데 매우 소극적인 모습을 보고 일반상담과의 차이점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책임자에게 묻고 싶었으나 그러지 못한 채 학기를 끝내고 말았다.

 

목회상담에 대한 이해가 없는 교인들 중에는 목회상담이 “목회자들을 상담하는 것”이냐고 물어오는 이들도 종종 있다. 또한 일반 상담자들 중에는 목회상담은 기본적인 상담의 수준에서 목회자들이 하는 “질적으로 좀 떨어지는 어떤 상담”을 목회상담이라고 오해하는 사람들도 있는 듯하다. 물론 이름만 “목회”를 넣는다고 해서 목회상담의 독특한 정체성을 확보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한국“목회”상담협회라는 이름을 갖고 지내온 역사성 속에서 다시 한번 목회상담의 정체성 문제를 언급하게 되는 것은 앞으로의 협회의 방향성과 목회상담자의 교육과 목회상담의 사역의 방향성을 설정하는데 중요한 작업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한국목회상담협회는 기독 상담자들까지 포함하는 큰 우산을 형성하고 있는 조직을 취하고 있다.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을 중심으로 한 한국기독상담심리치료학회는 목회상담자들과 기독상담자들을 “기독교”라는 형용사의 틀 속에서 포괄적으로 수용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에는 AAPC와 AACC가 독립된 형태로 유지되고 있으며 목회상담과 기독교상담의 정체성을 보다 분명하게 드러내고 활동하고 있는 상태에 있다. 장기적으로 한국상황에서 목회상담의 독특성을 유지해가는 작업을 하기 위해서는 목회상담협회와 기독교상담협회가 독립적으로 운영되도록 하되 상호적인 협력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으로 생각한다.

 


1. 목회적 돌봄, 목회상담, 혹은 목회심리치료?


일반상담과 기독교상담과 구별되어지는 목회상담의 독특한 영역이 있는가? 있다면 어떤 특성들이 목회상담을 목회적으로 만드는 것일까? 목회자가 상담하는 것이면 모두가 목회상담인가? 아니면 평신도라고 할지라도 상담의 과정에서 목회적인 관점에서 사람들을 돕는 것이 목회상담인가? 아니면 둘 다일까? 목회적 돌봄(pastoral care)과 목회상담(pastoral counseling)은 어떤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는가? 목회상담과 목회심리치료(pastoral psychotherapy)는 구별해야만 하는 영역인가?

 

먼저 상담 혹은 심리치료는 “상담자와 내담자(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치료적인 관계의 컨텍스트 속에서 내담자(들)의 삶의 전반에 대해서 돕고자하는 행동과 과정”이라고 정의할 수 있겠다. 물론 심리치료라는 의미를 강조해서 쓸 때에는 “보다 장기적이며 인격의 구조와 기능이 변화, 성장, 발달하도록 돕는 치료과정”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미국정신의학협회(American Psychiatric Association)는 심리치료를 ”환자와의 언어적이며 비언어적인 의사소통에 일차적으로 기반을 두어 정신적이며 감정적인 장애를 치료하는 것“이라고 정의하였다(Dictionary of Pastoral Care & Counseling, p.860). 그러나 보통은 ”상담“과 ”심리치료“는 같은 의미로 사용된다. 상담과 심리치료는 상담의 이론과 실제를 바탕으로 개인과 가족, 사회를 병리성에서 건강성으로 옮겨갈 수 있도록 돕는 예방적이며 치료적인 예술이다.

 

목회상담은 일반상담 혹은 세속상담 그리고 기독교상담과도 구별되어지는 독특한 영역을 갖고 있으며 아울러 공통적인 영역을 갖고 있다. 목회상담은 인간을 이해함에 있어서, 상담자의 기본적인 자질에 있어서, 치료방법에 있어서, 치료의 목표에 있어서 일반상담과 공통분모를 갖고 있으며 기독교 상담과도 공통분모를 갖고 있다. 기독교 상담 역시 일반상담과 구별할 수 있는 독특성을 지닌다. 기독교 상담을 나는 “기독교적인 신관과 기독교적인 인간관과 기독교적인 세계관을 가진 상담자가 도움을 필요로 하는 개인들 혹은 시스템들에게 치료적인 맥락 속에서 도움을 주는 활동과 과정”으로 정의하고 싶다. 풀러신학교 은퇴교수인 새뮤얼 사다드(Samuel Southard)는 신학과 심리치료의 상호관계성에 대해서 논하는 그의 책에서 목회상담과 기독교상담을 구별하지 않으면서 “기독교상담이란 친구관계의 맥락 속에서 제시되는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the wisdom of God in the context of friendship)이라고 정의하였다

 

(Southard, p.xiii). 그는 “신적인 상담은 인간의 통찰과 신적인 통찰이 복합된 것으로서 한 사람에게서 관찰할 수 있을 만큼의 변화를 일으키는 하나님의 능력에 궁극적으로 의존되는 것”이라고 보았다(Ibid.). 기독교상담과 목회상담의 관계는 목회상담은 기독교 상담의 요소를 모두 갖고 있지만 기독교상담은 목회상담의 요소를 다 갖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관계로 설명할 수 있다.

 

게리 콜린스는 목회적 돌봄, 목회상담, 목회심리치료 사이의 용어를 구별하는 이들이 있음을 지적하면서 목회적 돌봄이 가장 포괄적인 개념이라고 지적하였다. 그는 목회적 돌봄(pastoral care)을 “사람들을 하나님에게 그리고 서로서로 치유하며, 지탱하며, 안내하며, 화해시키는 교회의 전체적인 교역”이라고 클렙쉬와 재클의 정의(Clebsh and Jaekle, p.4)를 그대로 수용하여 정의하였다. 클랩쉬와 재클은 목회적 돌봄의 특성에 “위탁을 받은 크리스챤”(by representative Christian persons)이 “궁극적인 의미와 관심사의 맥락 속에서 발생하는 문제점들을 안고 있는” 사람들에게 제공되는 네가지 기능을 가진 돕는 행위라고 그 의미를 분명하게 드러내었다. 콜린스는 또한 목회상담(pastoral counseling)을 삶의 압박감과 위기에 직면할 수 있도록 개인이나 가족 혹은 집단을 돕는 보다 전문화된 목회적 돌봄으로 보았다. 목회상담의 궁극적인 목표로는 내담자가 치유와 학습 그리고 인격적-영적 성장을 경험하도록 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그는 목회상담을 전통적으로 정의할 때에는 안수받은 목사의 사역이지만 모든 신자는 서로서로 짐을 나누어지라는 성경말씀에 비추어볼 때 목회상담은 안수의 여부에 관계없이 민감하고 관심을 갖는 크리스챤의 사역으로서 볼 수 있고 또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평신도사역까지 포함시켰다(Collins, pp.16-17). 그는 목회심리치료를 내담자의 인격과 영적인 가치 그리고 사고 방식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오도록 돕는 장기적, 심층적 돕는 과정이라고 정의하였다(p.17).

 

나는 “목회적 돌봄”이란 용어가 전인격적인 영역에서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인간을 돕는 교회의 사역으로서 역사성과 정체성을 아울러 유지하며 현대에 발달된 목회상담까지도 포함하는 포괄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고 이해하고 있다. 따라서 때로는 목회상담과 동일한 의미로 사용될 수도 있지만 목회상담의 영역을 넘어서는 보다 범위가 넓은 돌봄과 관심의 사역이라고 볼 수 있다. 목회상담과 목회심리치료의 관계 역시 굳이 그 의미를 구별하자면 목회상담은 목회심리치료 영역을 포함하는 영역이라고 볼 수 있다. 캐롤 와이즈(Carroll Wise)는 목회상담이란 용어보다는 목회심리치료라는 용어를 선호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목회심리치료사는 목회상담사보다 더 전문화된 사람이라고 항상 구별하는 것은 용어상의 공통점을 무시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AAPC의 규정집에서는 목회상담을 “목회상담이란 목회상담자가 신학과 행동과학으로부터 얻어진 통찰들과 원리들을 활용하여 전인성과 건강을 지향하여 개인과 부부 가족, 그룹 그리고 사회시스템과 더불어 노력하는 과정”이라고 정의하였다(1999 Membership Directory, 71)

 

“목회적”이라고 하는 형용사는 “목사”(pastor)라는 단어에서 파생된 것인데 “pastor"는 ”목자(shepherd, poimen)“에 대한 라틴어 단어에서 유래된 것으로서 신약에서는 에베소서 4:11에 한번 등장하는 단어이다(Dictionary, p.860). 일반적으로 ”목회적“이라는 용어를 쓸 때에는 교회의 공식적인 직분을 가진 자로서 그가 활동하는 영역 전반을 의미할 때 사용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으며 미국의 American Association of Pastoral Counselors(AAPC)나 Association for Clinical Pastoral Education(ACPE)은 이같은 전통적인 개념을 받아들여 회원 자격심사 과정에서 교단이나 신앙공동체가 안수나 파송을 통해 보증하는 자와 최소한 3년 이상의 신학교육을 받은 자로 제한하고 있다. 존 패톤(John Patton)은 ”목회상담은 안수를 받은 사역을 위해 신학적으로 교육을 받았으며 목회자의 정체성과 책임성을 갖고 있는 사람이 행하는 일종의 목회적 돌봄“이라고 목회상담을 정의하면서 목회상담자의 자격을 신학교육을 받고 안수를 받은 목회자로서 제한적인 입장을 취하였다(Patton, p.16) 그러나 다른 부분에서는 안수의 형태가 아닌 파송에 대해서도 수용적인 입장을 취하였다(Ibid., p.40) 토마스 오든(Thomas Oden)은 목회적 정체성을 중요시하면서 특히 역사적인 뿌리를 주요시한다. 특히 그는 목회자의 정체성의 혼돈을 목회상담자들에게서 찾으면서 지나친 전문주의를 경계하였다(Oden, Pastoral Theology, 4). 그는 안수의 의미를 중요시하였으며 예수그리스도의 특별한 부름과 보냄을 받은 자로서의 정체성을 중요시하였다.

 


2. 무엇이 목회상담을 목회적으로 만드는가?


2.1 역사적 뿌리와 정체성.

한때 그 역시 심리학의 이론에 많이 심취했던 조직신학자 토마스 오든은 20세기의 목회상담운동이 초대교회로부터 중세교회, 종교개혁시대의 교회 그리고 근세 교회로 이어졌던 역사적인 전통에 거의 관심을 기울이지 않음으로써 역사적인 뿌리의식을 잃어버리고 현대의 심리치료 이론으로 많이 기울어졌다고 강하게 비판하면서 목회상담의 정체성을 역사성에서 찾아야 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는 사이프리안(Cyprian), 터툴리안, 크리소스톰, 어거스틴, 대 그레고리(Gregory the Great), 루터, 칼빈, 죠지 허버트, 리챠드 백스터, 제리미 테일러(Jeremie Taylor) 열명의 인물들이 지난 50년간 쓰여진 목회상담학 관련 서적에서 얼마나 인용이 되고 있는지를 찾아내는 방법을 택하였다. 19세기의 목회신학자들의 대표적인 서적들과 (7명의) 20세기 목회신학자들의 책에서의 인용횟수를 비교하였다. 결과 19세기의 목회신학자들의 책에서는 위의 열명의 인물들이 상당히 많은 횟수로 등장하는데 반해서 20세기의 시워드 힐트너, 하워드 클라인벨, 웨인 오우츠, 캐롤 와이즈, 유럽에서 루터교의 디트리히 스톨베르크(Dietrich Stollberg), 개혁파의 폴 투르니에, 로마카톨릭의 루베인의 조셉 누틴(Joseph Nuttin of Louvain) 그 어느 누구도 열 명의 대표적인 신학자들의 이름을 그들의 책에서 언급하고 있지 않음을 밝혀내었다(Oden, in The Church and Pastoral Care, p.22). 오든은 특히 목회상담의 과정에서 방향의 전환을 요청하면서 다음의 방법들의 회복에 대해서 제안하였다: 중보기도의 중요성, 과장된 자기표현과 강박적인 감정 표현과 나르시시즘과 대조적으로 자기훈련, 자기부인이 균형있게 발달될 것, 복음의 선포와 전도, 금식과 묵상의 중요성, 그리고 목회사역의 통합적인 부분으로서 목회상담 사역(Oden, pp.28-29). 나는 오든의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하는데 그 이유는 정체성은 과거의 토대 위에서 현재의 자신을 바라보며 미래를 지향할 때 선명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목회상담이 2000년의 기독교의 역사에서 주어진 풍부한 토양에 뿌리를 내리지 않고 현대에 개발된 심리학 및 심리치료이론의 토양에 뿌리를 내리게 된다면 그 줄기와 나뭇잎이 일반 심리치료 분야에서 주로 영양분을 섭취하여 나타나는 열매가 “목회적인” 색깔이 분명하지 못하고 다른 과일들의 “아류”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참조 Roger Hurding, Roots and Shoots).

 

목회상담은 20세기에 와서 나타난 완전히 새로운 분야라고 하기보다는 약 2000년이라는 장구한 교회의 역사 속에서 행해져온 목회적 돌봄이 20세기에 와서 심리학의 발달과 더불어 더 풍성해지고 더 전문화되어진 목회사역인 것이다. 특히 오든은 현대 심리학과 상담학의 이론과도 공통적인 요소가 이미 교부들의 글들 속에 많이 나타나며 이후에 나타난 신학자들의 글 속에서도 발견되어진다고 주장하면서 객관적으로 그같은 자료들을 제시하려고 애썼다[예: Classical Pastoral Care시리즈물 네권, I. On Becoming a Minister(1987); II. Ministry through Word and Sacrament(1989); III. Pastoral Counsel (1989); IV. Crisis Ministries(1986)]. 이같은 역사의 뿌리는 일반상담과 기독교상담과 구별되는 첫 번째 특성이라고 말할 수 있다.

 

목회상담은 역사적인 뿌리에 대한 인식과 과거 기독교 역사와 교회역사의 유산들을 잘 유지하며 사용하는 동시에 현재 속에서 새로운 변화에 적절하게 반응하며 미래을 조망하며 창의성있는 상담이론과 상담방법들을 계발해나갈 책임이 있다. 미국의 목회상담운동이 개인주의적인 모델에 머물렀음을 비판하면서 심리체계적인 접근(a psychosystemic approach)을 대안으로 제안했던 목회상담학자 래리 그래함(Larry Graham)은 맥락적 조직(contextual organization)과 맥락적 창의성(contextual creativity)이 균형을 이루게 될 때 아름다움(beauty)과 조화(harmony)를 드러내는 목회상담이 될 수 있다고 보았다. 맥락적 창의성이 약해지면 목회상담은 개방성이 줄어들며 유연성보다는 경직성이 자리잡으며 변화를 두려워하며 게으름의 형태를 드러내게 될 것이다. 반면에 맥락적 조직이 약해지고 맥락적 창의성이 지나치게 되면 과거의 유산들의 장점들을 망각하게 되고 정체성이 불분명해지며 오리무중에 빠질 수 있을 것이다. 이같은 시행착오들은 이미 20세기에 미국의 목회상담운동의 역사에서 일어났던 것이다. 신학교의 울타리를 벗어나 임상적인 환경 속에서 신학교육의 한 일환으로서 임상목회교육을 받았을 때 적지 않은 신학생들과 목회자들이 심리학이라는 새로운 분야가 제공하는 새로움과 창의성에 매혹된 나머지 그들의 뿌리를 잃어버리고 정신과의사 혹은 심리사의 길로 진로를 바꾸는 일들도 일어났다. 그래서 크리스챤 심리학자인 폴 프라이저(Paul Pruyser)는 오히려 일반목회자들과 목회상담자들에게 다른 정신건강 전문인들이 갖고 있지 않은 신학적인 전통과 전문성을 자신있게 드러내며 활용하라고 도전하였다. 그리고 그는 그의 책 The Minister as Diagnostician을 통하여 신학적인 개념으로도 내담자들의 문제점들을 진단해낼 수 있음을 지적하였다.

 


2.2 교회의 사역으로서 목회상담

기독교상담과 목회상담을 구별짓는 특징의 하나는 기독교 상담은 개인의 사역(ministry)가 될 수 있지만 반드시 교회공동체의 사역일 필요는 없다. 기독교적인 신관과 인간관 그리고 세계관을 가지고 활동하는 정신과의사, 임상심리사, 상담사, 사회복지사는 자신의 일터에서 개인적으로 상담을 함으로써 내담자들에게 도움을 주기도 하고 상담료를 받기도 한다. 그러나 목회상담은 교회가 감당하는 여러 형태의 사역 중의 하나로서 이해되어질 필요가 있다. 예배와 교육, 봉사, 교제, 전도, 양육, 선교 등과 같은 여러 중요한 교회공동체의 사역들 중의 하나로서(a ministry) 행해지고 또한 행해져야 하는 중요한 사역이다. 물론 목회상담이 유일한 사역(the ministry)은 아니지만 교회가 존재하는 한 반드시 행해져야 할 사역이란 점에 있어서 일반상담이나 기독교상담과 구별되는 독특성을 지닌다.

 

교회공동체의 사역이라고 할 때 그것이 목회자와 평신도 모두가 참여하는 것인가 아니면 교회공동체의 대표성을 띠며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서의 위임과 보냄을 받은 자가 하는 것인가 라는 문제는 목회상담의 경계선(boundary)을 형성하는데 중요한 질문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교회역사를 볼 때 목회적 돌봄은 공적인 권위를 부여받고 목회를 하는 목회자가 중심이 되어 행해져왔다. 카톨릭교회에 보면 임종시에 신부가 올 수 없는 특수한 상황이 되면 일반성도라 할지라도 임종예배를 집례할 수 있는 문을 열어놓았다. 그러나 신교나 구교 모두 목회의 삶으로 구별된 목회자들의 중요성을 항상 강조해왔다. 특히 목회상담의 과정과 유사한 양상을 띠는 고해성사의 경우에 주로 신부가 그 역할을 담당해왔다. 그래서 대부분의 경우에 목회상담은 교회공동체가 공적으로 인정하는 목회자가 그 정체성을 띠고 상담의 과정에 임한다는 점에서 일반상담과 기독교상담과 구별되는 특성을 지닌다.

 

살바도르 미누친(Salvador Minuchin)의 경계선(boundary) 개념을 이용하여 목회상담자의 정체성을 설명한다면 목회상담자는 일반상담자나 기독상담자와는 구별되는 분명한 경계선을 갖고 있어야 한다. 그 경계선이 너무 경직되어 폐쇄적인 시스템이 되거나 경계선이 흐려져 있어서 목회자와 평신도와의 차이점이 별로 없어진다고 할 때에는 굳이 목회상담이라는 용어를 사용할 필요가 없어질 것이다. 오성춘은 목회상담의 경계선을 긋는 과정에서 분명치 않음을 보여준다: “...목회상담이 반드시 목사나 전도사의 독특한 봉사영역에 속한다고 말할 수 없다. 목회보다도 목회상담은 봉사자의 범위로 보면 더 포괄적이다. 목회는 그 의미하는 바대로 목사나 전도사에게 국한되는 감이 있으니 목회상담은 목사나 전도사뿐 아니라 모든 성도들에게 열려진 교역의 분야이다. 목회상담은 훈련받은 사람이면 교역자이든 평신도이든 누구든지 할 수 있는 봉사이다”(오성춘, 364). 그러나 “훈련받은 사람”이 상담훈련만을 의미하는 것인지 아니면 소정의 신학교육까지 포함하는 것인지가 분명치 않게 표현되어 있다.

 

종교개혁자들은 만인제사장설에 기초하여 평신도의 위상을 상당히 높였고 또한 그렇게 높여져야 할 것이다. 그래서 요즘 한국교회 내에서 설득력을 얻고 있는 평신도 운동은 그런 점에 있어서 매우 긍정적인 요소를 많이 갖고 있다. 그러나 극단적인 평신도 운동은 전문적인 교육을 받고 사역을 위해서 교회공동체의 공적인 채널을 통하여 인정을 받은 목회자들의 독특한 역할과 기여점을 무너뜨리고 목회자의 무용론으로 몰아갈 수 있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이미 일부의 교회들에게서는 설교사역까지 일반평신도들이 맡아서 하고 있으며 목회자는 청중석에 앉아서 설교를 듣고 있고 평신도 지도자가 예배 중에 설교하는 진풍경이 일어나고 있기도 하다. 이렇게 되면 장기적으로 볼 때 교회는 힘을 잃게 될 수 있고 적절하고 건강한 권위조차 무시되며 형식과 틀이 없어지며 역사성이 사라져버림으로 인해서 결국은 하나님의 나라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반면에 안수나 다른 형태의 파송을 받은 목회자들만이 목회상담을 할 수 있다고 할 때에는 그 경계선이 경직된 경계선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어지는 단락에서 목회상담의 독특성으로서 신학교육을 언급하게 되겠지만 목회상담의 경계선은 신학교육과 더불어 목사안수를 반드시 받아야 한다는 것보다는 비록 평신도이지만 신학교육을 받은 자이고 상담 교육과 훈련을 거친 자라면 교회공동체 앞에서 파송하는 형식을 취해서 목회상담자로서 활동할 수 있도록 유연성을 발휘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평신도운동이 활발한 사랑의 교회의 경우를 보면 평신도들을 순장교육을 시켜서 교회공동체 앞에서 순장으로 파송함으로써 순원들의 전반적인 삶에 목회적인 돌봄까지도 할 수 있도록 하여 목회자들과 함께 성도들을 돌아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목회상담의 경우에도 일정기간의 신학교육과 상담교육을 거쳐 능력을 갖춘 자들은 파송의 형태를 취하여 교회공동체를 대표하여 목회상담자로서 사역할 수 있도록 해야할 것이다.

 

목회상담은 교회의(of the church), 교회에 의한(by the church), 그리고 교회를 위한(for the church) 사역이란 점에 있어서 독특성을 갖고 있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목회상담은 교회공동체가 위임한 사역자들이 하는 활동이며 따라서 그들의 활동은 교회공동체에게 책임성(accountability)을 지고 있는 것이다. 패톤은 목회상담자의 공동체적 관계를 중요시하였으며 교회공동체나 목회상담자들의 공동체와 분리되어 혼자 활동함으로써 책임성과 감독이 없이 진행되는 상담사역은 목회적이 아니라고 보았다(Patton, p.20). 목회상담은 개인이 아닌 교회 공동체의 적극적인 사역의 표현이며 따라서 교회공동체는 목회상담의 과정에 있어서 관심과 지원 그리고 감독을 해야할 책임을 지고 있다는 점에서 독특성을 띤다. 오성춘은 기독교 신앙 전통을 자원으로 한다는 점이 목회상담의 독특성이라는 힐트너와 오우츠의 생각에 동의한다. 또한 교회공동체라는 집단적인 자원도 지적한다. 그는 “교회공동체는 목회상담의 실질적인 주체이며, 감독자이며, 주관자이다. 이 공동체는 내담자에게 필요한 것을 보완하며, 총체적인 인간완성에 필요한 일들을 목회상담자를 도와 수행한다”고 말하며 목회상담의 교회공동체적 컨텍스트의 중요성을 언급하였다(오성춘, 목회상담, p.283). 그는 또 다른 곳에서 목회상담자와 교회공동체의 관계와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목회상담자를 선택하고 훈련시켜, 목회상담을 위임하고, 그 과정을 지도 감독하며, 그 결과를 평가하는 자는 바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이다. 즉 목회상담자는 공동체 안에서 공동체를 위하여, 공동체의 지도하에 상담한다. 그러므로 목회상담자는 교회라는 맥락에서 상담하는 자이다. 교회의 맥락을 떠나서 목회상담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교회는 목회상담을 지원하며, 격려하며, 지도하며, 필요한 자원들을 공급하며, 돕는 목회상담의 진정한 자원이 된다(오성춘, p.379).

 


여기서 목회상담이 행해지는 장소의 문제와 목회상담자의 처우문제 그리고 상담료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교회에 의한 사역이라고 할 때 목회상담이 행해지는 장소가 교회당 안에 위치할 것인가 아니면 교회당 밖에 위치할 것인가 하는 부분도 고려되어야 할 부분이다. 왜냐하면 각각은 장단점을 아울러 갖고 있기 때문이다. 교회당 안에 위치할 경우에는 상담실을 이용하는 성도들의 비밀보장 문제가 확실하게 보장되지 않을 수 있다는 약점을 지니고 있으며 접근성(accessibility)에 있어서 쉽게 용기를 내기가 힘들 수 있다. 그러나 교회안에 상담실이 있을 때 그 장소는 이미 내담자들에게 특히 불신 내담자들에게 목회상담이 다른 상담과 다를 것이라는 것을 기대하는 상징성을 띠며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더 느낄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장점을 갖고 있다. 교회당 밖에 상담실이 위치할 경우에는 교회당 안에 상담실이 있을 때의 장점이 단점이 되며 단점이 장점으로 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중소 교회들이 많은 한국교회 상황에 있어서 교회밖에 적합한 상담실 공간을 마련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을 수 있다는 단점을 갖고 있다. 대안적인 안을 제안해본다면 여러 지역교회가 연합하여 교회당 밖에 독립된 상담실을 마련하여 목회상담사를 사역자로 고용하여 담임목사가 목회상담을 하게 될 때 나타날 수 있는 여러 가지 한계들을 극복하게 할 수 있다. 또한 이 부분은 목회상담사의 처우문제와 상담료와 연관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만약 여러 교회가 연합하여 상담센터를 재정적으로 후원할 수 있다면 상담료를 받지 않고서도 양질의 목회상담 서비스를 성도들과 불신자들에게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사랑의 교회 상담실의 경우에는 기독상담사들이 네명 풀타임 및 파트타임으로 상담사역을 하고 있는데 성도들에게 한정해서 무료로 단기상담 및 장기상담을 제공하고 있고 교회는 상담사들에게 교회직원으로 대우하여 월급을 주고 있다. 이같은 부분은 목회상담을 둘러싼 상담료의 이슈들을 불식시킬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무료로 상담을 제공하는 경우에 나타날 수 있는 내담자들의 상담에 대한 책임성과 의욕이 유료상담의 경우보다는 훨씬 떨어질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단점이 되기도 한다. 실제 사랑의 교회 상담실에서 몇 달간 접해본 경험상 치료적인 목적을 위해서는 작은 금액이라도 상담실 후원금 형식으로 내도록 하는 것도 필요하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현실적으로 교회공동체가 전문적인 목회상담사들을 사역자로 고용하는 경우가 아직은 드물고 따라서 후원해주는 교회들을 중심으로 해서 목회상담센터를 독립적으로 운영하는 경우에 목회상담사의 생활비와 상담센터 운영비등의 실존적인 이슈들에 직면하게 될 때 상담료 문제가 제기되지 않을 수 없다. 발표자의 현재의 생각으로는 목회상담은 상담료를 원칙으로 하는 서비스는 아니지만 특수한 경우에(교회들이 재정적으로 센터의 운영비와 상담자의 봉급을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후원하지 못하는 경우와 치료적인 목적을 위해 소정의 상담료를 설정하는 경우) 전문적인 목회상담에 대해서 상담료를 부과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역이니까 무조건 무료로 해야 한다고 하는 것은 극단적인 견해일 수 있다.

 

목회상담은 궁극적으로는 내담자(들)를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회복하게 하는데 초점을 맞춤으로써 교회공동체에 소속된 내담자들이 보다 유기적으로 교회 속에서 다른 지체들과 관계할 수 있는 능력을 회복시켜주며 의미있는 봉사의 사역을 감당할 수 있는 회복시켜준다는 점에서 “교회를 위한” 사역이 될 수 있으며 되어야 할 것이다. 한 개인이나 가정이 병리성으로부터 건강성으로 변화되어 가게 된다면 교회공동체의 일부인 개인이나 가정이 교회공동체에 상호교류적으로(transactionally) 건강하게 영향을 끼치기도 하고 영향을 받기도 하면서 유기적으로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뜻을 보다 더 잘 구현할 수 있을 것이다.

 


2.3 신학적 반추능력과 심리학적 인간이해

목회상담을 일반상담과 기독상담과 두드러지게 구별짓는 정체성의 하나는 목회상담의 과정에 있어서 내담자의 삶의 문제들을 신학적인 관점에서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이다. 폴 프라이저도 지적하였듯이 목회상담자는 다른 전문인들이 받지 않은 신학교육을 최소한 3년 이상 거친 사람들이다. 물론 신학교육을 받았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상담과정에서 내담자들의 삶을 신학적인 통찰력을 갖고 해석해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목회상담자는 그들이 이미 배운 전문교육인 신학교육의 내용을 스스로의 삶에서 신앙고백적으로 소화하며 삶을 영위하는 동시에 내담자의 삶을 하나님의 시각 속에서 해석할 수 있는 렌즈를 갖고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또한 일차적으로는 신학의 분야에 우선순위를 두어 내담자를 이해하고 해석하는 동시에 심리학으로 대표되는 행동과학이 제공하는 통찰을 통하여 내담자를 아울러 이해하고 해석함으로써 보다 깊이있고 폭넓은 접근을 할 수 있게 된다. 특히 내담자의 삶의 의미와 하나님과의 궁극적인 관계의 회복과 이웃과 사회 그리고 환경과의 관계에서의 사랑과 정의를 실천하도록 돕는 면에 있어서 신학과 심리학을 통하여 다른 상담자들이 다루기 힘든 영역까지 다룰 수 있는 독특성을 갖고 있다. 오성춘은 이 독특성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였다:

 


목회상담자는 일반상담자들과 같이 인간의 정서장애, 성격장애, 인간완성, 행동수정 등을 통하여 인간의 정신적인 결함을 도우려고 하지만 여기에 머물지 않는다. 목회상담자는 더 나아가서 능력과 생명과 사랑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만나고 그분과의 교제를 통해 그분의 생명과 능력과 사랑을 공급받는 삶을 회복시키려한다. 폴 틸리히의 용어를 사용하여 말한다면, 목회상담자는 궁극적인 질문에 대답하고자 노력하는 자요, 궁극적인 관심을 가지고 인간을 돌보는 자이다(오성춘, 374).

 


크리스챤 내담자로서 목회상담자에게 찾아올 때에 그들은 일반상담자나 기독상담자가 제공할 수 없는 어떤 영역들을 목회상담자가 다루어주기를 바라고 또한 그같은 능력과 기술을 갖추고 있기를 기대한다. 발표자의 경우에도 일반 정신과의사나 일반 심리사와 상담하다가 자신의 영적인 영역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어하지만 그들이 자신없어 하는 영역이거나 아니면 영적인 이야기를 병리적으로 해석하는 태도 때문에 한계를 느끼고 찾아오는 내담자들을 가끔씩 만나게 된다. 웨인 오우츠가 지적한 목회상담의 독특성의 영역 중에서 상담관계성 속에서 삼자대화의 대상으로서 상담의 현장에 임재하는 하나님에 대한 인식과 하나님에 관련된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점이 상담을 목회적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데니얼 윌리엄스(Daniel Day Williams)나 브리스터(C.W. Brister), 웨인 오우츠 그리고 오성춘도 지적하였듯이 목회상담은 상담자와 내담자의 양자대화(dialogue)가 아니라 삼자대화(trialogue)란 점에서 일반상담과 구별되는 독특성을 지닌다. 특히 오성춘은 “하나님 만이 궁극적으로 대답할 수 있는 소망, 생명, 사죄, 믿음, 축복 등을 대화의 주제로 삼을 때 그들은 이미 보이지 않는 참여적 제 3자로서 하나님을 그 대화에 초청하고 있는 셈이다”(목회상담학, p.281)라고 말하며 또한 하나님과의 궁극적인 관계의 회복이 있을 때 진정한 인간회복이 있다고 믿고 상담할 때 그것이 목회적일 수 있다고 보았다(Ibid., 282). 물론 삼자대화의 인식은 기독상담에서도 발견되어지는 특성이기도 하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마 18:20)는 말씀 속에서도 목회상담이 이루어지는 환경 속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발견할 수 있다.

 

상담의 과정중에 강박적으로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하고 성경이야기를 해야 하고 기도를 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자유롭게 하나님의 성품에 대한 이야기와 구약과 신약을 통해 나타난 하나님과 인간의 상호적인 관계에 대한 말씀에 대한 통찰, 그리고 예수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 성령의 역사하심에 대한 이야기들을 일방적인 설교형식이 아닌 경청과 나눔의 방법을 통하여 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영적인 문제점들과 악한 마귀의 역사에 대한 인식, 영적인 싸움에 대한 이해 등에 대해서도 내담자가 고민하게 되고 이야기를 하게 될 때 공감적인 이해를 하며 통찰을 제공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어야 할 것이다. 아울러 신앙적인 이야기로 자신의 삶을 이해하는데 방어기제로 사용하는 것과 병리적인 신앙의 양상이 어떻게 나타나는지에 대해서도 민감하고 올바르게 진단하며 치료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을 때 상담은 목회적이 될 수 있다.

 

프린스턴 신학교의 목회신학 교수인 드보라 헌싱거(Devorah van Deusen Hunsinger)는 신학과 심리학의 관계를 칼세돈신경에서 보여지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과의 관계에 대한 바르트의 관점을 수용하여 그 사이의 유비(analogy)로 설명하려고 시도하였다. 즉, 구별(differentiation)과 통일성(unity) 그리고 순서(order)의 틀로 신학과 심리학의 관계를 설명하였다. 즉 신학과 심리학은 하나의 체계로 완전히 통합(integration)될 수 없는 각각의 독특한 체계를 갖고 있음으로 인하여 구별(differentiation)되어져야 하지만 분리(separation or division)되어서는 곤란하다는 것이다. 신학과 심리학은 또한 특별계시와 일반계시의 관계 속에서 계시라는 통일성과 단일성을 이루면서도 혼동하거나 변화시키지 않고(without confusion or change) 관계를 맺는다고 보았다. 그리고 신학이 심리학에 선행하며 우위를 점하는(with the conceptual priority of theology over theolgy) 비대칭성(asymmetry)의 순서를 갖고 있다고 설명하였다(p.10, pp.62-63). 그녀는 목회상담의 정체성을 신학과 심리학의 학제간의 접근에 있어서 유창하게 “이중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 능력(bilingual competencies)”으로 보았다. 발표자가 판단하기에 헌싱거가 사용한 바르트의 칼세돈 신경에 대한 이해의 틀이 신학과 심리학 사이의 관계를 이해하며 사용할 때 비교적 선명한 견해를 제공한다고 본다. 그러나 두 번째 개념인 통일성의 개념에 있어서는 유비의 한계이기는 하겠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참 하나님 되심과 참 사람되심은 둘 다 100% 완전한 상태인 반면에 신학과 심리학은 둘 다 해석학적인 틀을 전제하기 때문에 오류가 있을 수 있고 특히 심리학에는 기독교적인 관점에서 볼 때 잘못된 철학적 전제들과 오류들도 있기 때문에 통일성 혹은 단일성 개념으로 설명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여겨진다. 오히려 특별계시와 일반계시라는 틀 속에서 설명한다면 신학과 심리학은 각각의 구별되는 체계를 갖고 있으면서도 분리되지 않고 혼동되지 않으며 또한 신학의 심리학에 대한 우위성을 설명하는데 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목회상담자 자신도 다른 정신건강 전문인들과의 학제간의 접근에 있어서 구별되면서도 완전히 분리되지 않고 혼동되지 않으면서도 공통분모를 갖고 있으며 목회상담자의 정체성에 우선순위를 두어 타전문가들과 관계하여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고 정신건강전문인 혹은 심리치료사로서의 정체성에 자신을 더 비중있게 동일시하게 될 때 목회상담자의 정체성은 약화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또한 이것은 목회자로서의 정체성과 상담자로서의 정체성에 있어서도 적용될 수 있는 틀이 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목회상담자는 상담자이기 이전에 목회자로서 소명을 받은 자임을 잊지 않게 될 때 목회상담자의 정체성을 유지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2.4 심리체계적 접근과 선지자적 기능


래리 그래함은 목회적 돌봄의 사역을 “신앙공동체와 그 개인 구성원들이 자기에 대한 사랑, 하나님에 대한 사랑, 그리고 이웃에 대한 사랑을 증진시키며 의로운 사회질서와 살기에 적합한 환경을 증진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전략적으로 참여하는 전체적인 활동”이라고 정의하였다(Graham, 43). 이 정의는 목회상담의 영역을 개인적인 차원에서 보다 큰 시스템들까지 포괄하도록 하는 것이어서 사역의 지평을 훨씬 넓혀주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특히 그는 Care of Persons, Care of Worlds를 통해서 현대의 목회상담운동이 한 개인의 심리내면적인 문제와 대인관계적 문제에 초점을 맞추는 바람에 보다 큰 시스템들을 치유하는 것에는 관심을 갖지 못했다고 비평하면서 “심리체계적 접근”(psychosystemic approach)을 제안하였다. 그는 1960년대부터 개인주의적인 목회상담 모델에 대해서 비평적인 입장을 취하면서 나름대로 대안책을 제시하려고 시도했던 여러 학자들을 언급하면서 그들의 시도가 갖고 있었던 장점들과 한계점들을 지적하고, 자신의 심리체계적 접근을 보완적인 대안책으로 제시하였다. 그 학자들 가운데는 돈 브라우닝(Don Browning), 게일로드 노이스(Gaylord Noyce), 고든 잭슨(Gordon Jackson), 제임스 렙슬리(James Lapsley), 존 패톤(John Patton), 챨스 걸킨(Charles Gerkin), 그리고 하워드 클라인벨(Howard Clinebell)이 포함되어 있다(pp.35-38).

 

그래함이 지적하고 비판하는 목회상담의 개인주의적인 접근의 한계는 개인을 둘러싸고 있는 시스템의 변화없이 개인을 단지 현실과 시스템에 적응(adaptation)시키는 정도의 도움을 줄 수 밖에 없다는 점이다. 즉 가족시스템이나 사회시스템이 역기능적이며 악의 특성을 많이 지니고 있으며 그 영향을 개인이 지속적으로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단지 버텨가며 적응하는 정도로 치료하려고 할 때에는 개인이나 치료자 모두가 탈진될 가능성이 높아지며 장기적인 변화와 치료가 일어나기 힘들 수 있다. 물론 개인주의적 접근에서 많은 도움과 통찰을 얻는 내담자나 환자들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대안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래함은 심리체계적 돌봄의 중요한 요소로서 사랑과 정의 그리고 생태학적 파트너쉽(ecological partnership)을 지적하였다. 하나님의 사랑을 수혜받은 인간이 하나님에게 상호교류적으로 사랑으로 응답하며, 하나님의 사랑의 수납자(receiver)로서 그 사랑을 이웃에게 베푸는 호혜자(agent)로서 기능하며, 또한 하나님의 사랑을 자신에게 내면화(internalization)함으로써 자신에 대한 긍정적인 시각과 이미지를 형성함으로써 건강한 자존감을 갖고 살아갈 수 있는 자기에 대한 사랑은 회복되어가는 인격의 모습일 것이다. 이 사랑의 속성이 개인과 개인, 개인과 사회, 개인과 환경 사이에서 적절한 관계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균형을 잡아주는 것이 정의(justice)이다. 그래함은 사랑과 정의가 균형을 이룰 때 각각의 장점이 최대한 구현되어진다고 본다. 정의가 없는 사랑은 값싼 은혜로 오용될 수 있고, 사랑이 없는 정의는 개인과 사회를 경직화시킬 수 있는 위험성을 갖게 될 것이다. 더 나아가 인간과 다른 피조물들과의 관계를 착취적이며 개발적인 입장에서 바라보기 보다는 인간과 환경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상호적으로 베풀며 살아가야 공존할 수 있음을 인정하며 인간과 다른 피조물 역시 하나님으로부터 지음받은 피조물임을 겸손하게 인정하며 하나님이 창조하신 피조세계를 잘 관리하며 유지해가는 삶이 필요하다고 지적하였다.

 

그래함의 심리체계적 접근의 원리들 중 두 가지는 목회상담의 선지자적인 기능을 이해하는데 통찰을 제공한다. 첫째, 의식화(conscientization)의 원리이다. 개인상담의 경우에 상담자는 내담자에게 필요한 경우 통찰(insight)을 갖게 함으로써 치유될 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 또한 인격장애자나 알콜중독자에게는 자신이 갖고 있는 병에 대한 인식을 갖게 하는 소위 ‘병식(病識)’을 갖게 함으로써 치유과정에서 치료에 대한 동기를 부여하기도 한다. 심리체계적 접근을 시도하는 목회상담자는 내담자에게 자신에 대한 보다 정확한 인식을 갖게 하며 자신이 처해 있는 시스템들과의 상호적인 관계성에 대하여 인식을 갖게 함으로써, 특히 무정함과 불의, 그리고 생태학적 무질서의 상태에 대해서 자각(self-awareness)하게 함으로써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고자 하는 욕구를 촉진시킬 수 있다. 또한 성차별, 가정폭력, 집단이기주의, 직장제일주의, 탈세와 탈법 등과 같은 다양한 형태로 개인에게 악영향을 끼치는 무정하고 불의하며 파괴적인 시스템에게도 여러 방법들을 동원하여 병식을 갖게 함으로써 시스템이 사랑과 정의를 구현하는 방향으로 변화되도록 도전을 주어야 할 것이다. 이 의식화의 작업을 위해서는 다양한 채널을 동원할 수 있고 앞에서도 잠시 언급하였지만 목회자 한 개인의 노력보다는 연대적인 네트워킹을 통하여 변화를 시도하는 것이 보다 바람직하며 효과적이다. 작년에 작고한 미국 남침례교단의 대표적인 목회상담학자 웨인 오우츠(Wayne Oates)는 목회상담의 독특한 정체성의 하나로 “선지자적인 컨텍스트”를 지적한 바가 있다(Oates, pp. 299-300). 그 역시 목회상담은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서서 불의한 시스템들에 대하여 선지자적인 목소리를 내며 구체적인 노력을 강구함으로써 시스템이 불의에서 정의로 변화되어 가도록 할 때 상담이 목회적이 될 수 있다고 보았다.

 

둘째, 옹호 혹은 변호(advocacy)의 원리이다. 이 원리는 돌봄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보다 긍정적인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서는 공적인 규정이나 법을 제정할 필요성에 대해서 선지자적인 목소리를 발하는 것을 의미한다. 시스템 속에서 혹은 사회구조 속에서 힘이 거의 없거나 무력화된 개인을 돕기 위해서는 신앙공동체나 사회공동체에게 도전을 주어 그 개인을 보호하며 지지하기 위한 사랑과 정의 그리고 생태학적 파트너쉽을 구현할 수 있는 법제정의 필요성을 제기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아동학대방지법이나 가정폭력방지법, 성희롱방지법과 같은 것을 제정함으로써 희생자를 보호하며 지지하며 새로운 희생자가 나타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는 보호책을 법적으로 마련하는 것도 목회상담의 한 사역으로서 보는 것이다. 남편에게 지속적으로 폭행을 당하는 아내를 위로하고 인내하도록 하는 것은 개인치료적인 모델이 갖는 한계일 수 밖에 없다. 상처입은 신체와 마음을 치료하는 작업도 매우 필요하지만 또한 계속적으로 상처입는 환경에 방치하지 않고 상처주지 못하도록 하는 환경을 조성하는 작업도 매우 필요한 부분일 것이다.

 


2.5 목회상담자의 아이덴티티

목회상담의 정체성은 목회상담자의 정체성과 분리될 수 없다. 신학교육이나 안수 혹은 파송, 임상훈련과 같은 외적인 자질 뿐만 아니라 상담자 자신의 내적인 자질 또한 상담이 목회적이 되는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영향을 끼친다. 그래서 임상목회교육에서는 피감독자의 개인적인 정체성과 목회적인 정체성 발달 그리고 목회적인 기술 배양을 교육의 양대 목표로 삼고 있다. 크리스챤으로서의 정체성과 사역자로서의 소명의식과 남성 혹은 여성으로서의 성적 정체성과 개인의 심리역동적인 삶의 역사에 대한 이해과 자기치료과정은 상담을 목회적으로 만드는데 선결되어야 할 기본적인 조건이 된다. 자신의 삶에 대해서 소경인 자가 소경을 인도할 수 없으며 인도하려고 할지라도 함께 구덩이에 빠져 실족할 위험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목회상담자의 인격과 신앙이 균형있게 지속적으로 발달하게 될 때 하나님과 이웃과 그리고 자신과의 관계에서 깊은 영성의 삶을 전인적으로 살아가게 될 수 있으며 내담자에게 하나님의 임재를 표상하는 대리자로서 진정한 돕는 관계를 형성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내담자를 진단하며 사역을 반추할 수 있는 능력 뿐만 아니라 성경읽기와 기도, 묵상과 반추의 작업을 통하여 영적인 능력이 재충전될 필요가 있다. 안수나 파송으로 주어진 신적인 권위를 도움이 필요한 개인과 시스템을 위하여 적절하게 사용할 수 있는 자신감과 능력을 갖고 있어야 하며 목회적 권위는 섬김으로부터 오는 것임을 인식하고 겸손하게 사역하게 될 때 상담은 목회적이 될 수 있다.

 


나가면서


기독교 신앙은 성경말씀과 역사적인 전통에 기반을 두고 유지되어야 하나 그 신앙을 담는 그릇은 그 시대와 문화에 따라 적절하게 바뀌어질 수 있어야 한다. 목회상담도 그 시대의 사람들의 문화와 학문과 교류하며 도전을 받을 필요가 있고 또한 영향을 끼쳐야 할 책임성이 있다. 심리학으로 대표되는 행동과학으로부터 비판적으로 걸러낼 것은 걸러내는 동시에 필요한 통찰과 기술은 적절하게 수용할 수 있는 수용력(receptive power)과 또한 심리학계에나 타학문영역에도 건강하게 영향을 줄 수 있는 행사력(agential power)이 균형있게 발달되며 사용될 필요가 있다. 또한 신학적 전통에 따라서 각각 조금씩 다른 목회적 돌봄과 목회상담이 나타나게 될 때 서로가 인정해주며 격려하게될 때 좀더 폭넓고 다양한 목회상담이 이루어질 것이다. 반면에 목회상담도 통일화되거나 획일화 될 때에는 아름다움(beauty)과 조화(harmony)는 줄어든다. 신학적인 적합성(theological appropriateness)과 심리학적인 효과성과 효율성(psychological effectiveness and efficiency)이 어우러질 때 목회상담은 교회의 사역으로서 지속될 수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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