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홍 목사의 성경적 상담 연구소 RBD COUNSELING INSTITU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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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다원주의 2

종교다원주의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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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종교다원주의자들의 성경해석 비판
다원주의자들의공통적 구원관은 인간성의 회복이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의 새로운 피조물은 구원의 목표라고하며 변선환 교수는 이 "새인간성"회복은 불교에서도 가능한 것으로 보고 있다. 유동식 교수도 역시 종교의 목적을 "인간화" 내지 "인간성의 회복"이라고 하고, 구원은 서로 의존하고 서로의 괴로움을 없이하며 기쁨을 나누는 인간 사회를 형성하는 것이라고 한다.이상과 같이 종교다원주의에서는 성경에서 말하는 구원의 유일한 길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벗어나서 보편주의라는 개념에 입각해서 구원에 이르는 또 다른 길을 제시하고 있다. 이제 이러한 보편주의, 그리고 세상과 그리스도의 관계라는 주제로 글을  쓸 때에 많이 사용되는 성경 본문을 살펴보고자 한다.
1. 요1:1,로고스이신 그리스도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요1:1).초기의 변증가인 순교자 저스틴(Justin Martyr)로부터 칼 라너, 한스 큉, 그리고 존 힉등  현대 신학자에 이르기 까지 로고스(logos)라는 용어는 어느정도 감추어진 모습으로 이긴 하나, 모든 종교와 철학에 그리스도가 존재한다는 견해를 정당화하는데 사용되어왔다. 존힉은 "만약 우리가 인간을 향해 일하시는 로고스를 하나님이라고 부른다면, 우리는 모든 종교내의 모든 구원은 그 로고스의 사역이라고 말해야 한다"고 기술함으로서 로고스를 보편화 시키는 것을 알수 있다.헬라어 로고스를 번역하기란 쉬운 일은 아니다. 헬라어에서 로고스라는 명사는 원래 '말하다'(legein)라는 의미에서 비롯 됐는데, 이것은 일상적인 담화와 대화(lalein)와 대조되는 중요한 진술이 발언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발언을 계시하고 완성하는 말씀의 구약적인 배경에 반하여, 요한은 서론에 하나님과 로고스(따라서  하나님을 세상에 계시할 자격을 가진)이신 그리스도의 영광을 과시한다. 나아가 요한은 1장 18절에서 하나님에 대한 계시자로서 로고스를 말한다.   요한이 서론에서 그리스도를 로고스로 묘사하는 목적은 무엇인가? 그것은 나사렛 예수에 대하여 신화적인 혹은 철학적인 구상을 덧 붙이려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요한은 더 나아가 이 복음서에서 로고스이신 나사렛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묘사하고 있는데 이것은 20장 31절에 확언 되어 있다.힉은 요한복은 1장1절을 석의 함에 있어서 '인간과 관계하시는 하나님'이라고 모호하게 묘사함으로서 로고스를 비인격화하고 있음을 볼 수 있는데 이 구절은 주 예수 그리스도는 삼중 관계로 묘사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첫째, 아버지와 관계하여 그리스도는 이렇게 소개된다.선존재이심 : 태초에 계시니라(en arche).인격을 가지고 있으며 아버지와 밀접한 교제를 가짐:하나님과 함께(pros ton Theon).하나님이심 :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라(Theos en ho logos).미완료 직설법 '있었다'가 세 구절 모두에서 사용되고 있음을 주목하여야 한다. 이는 게속적이고 영원한 존재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2절은 아버지와의 이 관계가 영원하고 밀접한 것임을 강조한다.둘째, 세상과의 관계는 3절 이하에 나타난다. 그리스도는 모든 사물과 모든 사람의 창조주시다. 3절에서 헬라적, 영지주의적 개념들(즉 물질은 영원하며, 세상을 창조하는데 천사가 사용되었다는 생각)은 반대를 받는다.그리스도께서 친히, 그리고 오직 그리스도 만이 창조에 책임이 있다. 그러나 피조물과 동일시 되어서는 안된다. 피조물과 로고스에 대하여서는 두개의 다른 동사가 사용 되었는데 로고스에 대하여서는 "계셨고"(to be), 피조물에 대하여는 "지은바 되었다"(to become)라는 말이 사용되어 둘을 구별하고 있다.계속해서 4절은 중요한 진술을 담고 있다. 먼저 "그 안에 생명이 있었다"라는 진술이다. 여기에서 사용된 전치사는 "통하여"가 아니라 "안에"이다. 따라서 생명이 항상 말씀 안에 거하고 있음을 강조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생명'은 육체적인 생명을 의미 할 수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이신 그 말씀이 바로 성령이시기 때문이다. 4절 후반부에서 '생명'은 '사람들의 빛'으로 묘사되고 있다. 5절에서 이 빛은 어두움에 의하여 정복당하지 않고 어두움 속에 비친다. 7-9절에서 요한은 이 빛에 대해 증거하러 왔다. 그러므로 이 빛은 물리적인 것이 아니고 영적인 것이며, 불가불 그리스도와 관련되며, 심지어는 동일시되는 것이다. 요한의 글에서 생명과 빛은 관련이 있으며, 강한 영적인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핸드릭슨은 '생명'이 '하나님의 실체의 충만'을 가리키며, 모든 육체적 영적 삶의 원인이자 보존자라고 주장한다.   또 다른 진술은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라는 진술이다. 3절에서 언급된 창조의 사실, 4절에서 포괄적으로 언급된 사람, 그리고 5절에 최소한도 암시되어 있는 타락을 근거로 할 때, '사람들의 빛'은 피조물에 나타난 하나님의 일반계시를 가리킨다. 로고스가 이 세상 속에 충만한 빛으로 오셨지만 그가 오신 근본 목적은 구속이다. 라너, 큉, 힉 등이 가르친바와는 반대로 일반계시에는 구속적이고 구원적인 기능이 전혀 없다. 인류의 통일성, 일반계시의 사실은 물론, 사랑이라는 신적인 속성도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구속 사역을 불필요하거나 '상징적'인 것이 되지 못하게 한다. 요한복음의 서론은 이것을 분명히 밝히고 있는 것이다. 세째, 세상과의 관계이다. 요한복음의 서론은 14절에 이르러 절정에 다다른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안에 거하신다"라는 말은 말씀이 우리들 가운데 거처를 정하신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것은 곧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하셨던 것과 마찬가지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요한복음에 있어서의 로고스는 보편적이며 우주적인 그리스도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성육신한 로고스는 빛이며 모든 사람들은 다 어둠에 있지만 바로 빛인 로고스에로 오도록 초청 받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2. 행 17:22, 바울의 진술
"바울이 아레오바고 가운데 서서 말하되 아덴 사람들아 저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성이 많도다"(행17:22).
사도행전 17장 22절에 나오는 '종교성'은 헬라어로 데이시다이모네스테루스(deisidaimonesterous)로서 에보트-스미스사전(Abbot-Smith Lexicon)은 '신을 공경하는, 종교적인'이라는 의미로 규정하고 있다.아덴 사람들은 매우 종교적이며 많은 신들을 섬겼다. 도시 전체에, 공적인 장소이건 사적인 장소이건 신전들과 신들이 가득했다. 그러므로 바울이 그들에 대해 매우 종교적이라거나 혹은 신들에 열심이 있다고 말할 때, 그는 이 사실을 진술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종교와 그렇게 많은 위하는 것들(23절,sebasmata)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덴 사람들은 참되신 하나님을 알지 못했다. 그래서 바울은 '알지 못하는 신(Unknown God)'이라고 새겨진 단을 발견하였음을 언급한다.다원주의자들은 이 구절을 가지고 모든 사람들에게 보편적으로 들어 있는 종교성을 인정하고 또한 성경에서도 그것을 인정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그런데 23절의 진술은 현대의 보편주의를 바로 잡는 매우 중요한 진술이다. 아덴 사람들이 새겨 놓은 글은 그들이 하나님의 성품과 메세지에 대해 무지했다는 사실(agnoountes-무지하다, 알지 못하다, 여기에서는 현재분사형)을 확언해 준다. 여기에서 강조되고 있는 것은 참되신 하나님에 대한 그들의 무지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오늘날의 보편주의자들은 모든 종교를 성실히 숭배하는 것은 사람들이 그것을 통해 한 분의 초월적인 하나님을 숭배함을 나타낸다고 결론 짓는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그러한 믿음을 가르치지도, 암시하고 있지도 않음을 명백하게 알 수 있다.
3. 엡1:10과 골1:15절, 우주적인 그리스도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 게하려 하심이라"(엡1:10)."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창조물보다 먼 저 나신 자니"(골1:15).
종교다원주의자들은 만물이 완전히 주님의 권세 아래 있게 될 때 마침내 모든 사람들이 구원을 얻을 것이라는 사실이 이곳에 함축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성경을 문맥에 따라 해석하지 아니하고 어느 한 구절 만의 의미를 가지고 교리를 주장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에베소서 1:3-14에서 사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목적과 풍성한 복을 찬송하고 있다. 여기서는 오직 신자들만이 관심의 대상이다. 특히 '그리스도 안의'(1절)이라는 말과 크리스찬들이 선택 받고(4절), 예정 되었으며(5절), 구속과 죄 사함을 받았고(7절), 특별계시를 전달 받았고(8-9절), 영광을 기대하며 즐거워한다(13-14절).10절에서 '통일되게하다'는 헬라어 아나케팔라이오사타이(anakephalaiosathai)를 번역한 것으로'종합하다','통합하다'등으로 다양하게 번역되고 있는데, 로바서 13장 9절에서 모든 계명을 사랑의 계명이라는 하나의 계명으로 종합한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 구절에서는 또한 그리스도가 만물의 머리가되신다(kephalaion)는 사상이 두드러지는데, 이러한 교훈은 1장 20절부터 22절에서 강조되고 있다. 기본적으로 우리는 '모든 것'이 그리스도의 통치하에 들어갈 것이며, 그리스도께 대한 만물의 복종은 세상 끝날에 성취되고 실현될 것임을 알게 된다.골로새서 1장 15절에서 그리스도으 인격과 사역은 서로 나뉠 수 없는 연관을 지닌 것으로 묘사 된다. 15-20절에서는 성자의 선재적 탁월성이 강조되고 있다. 그리스도는 단순한 인간이 아니며 그 분의 유일한 인격이 의문되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그 분은 피조물 보다 지고하신 분이며(15절), 창조의 행위자 이시며(16절), 만물이 그를 위해 창조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는 또한 영원하시며 그 분에 의해 모든 피조물이 유지된다. 그런데 이 창조의 주님은 또한 교회의 머리가 되신다. 하나님의 목적은 주 예수께서 모든 만물 중에 뛰어나게 되시는 것이다.
4. 고전 15:24-28, 보편주의
"만물을 저에게 복종하게 하신 때에는 아들 자신도 그때에 만물 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신 이에게 복종케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만유의 주로서 만유 안에 계시려 하심이라"(고전 15:28).
종교다원주의자들은 고린도전서 15장 28절에 나와 있는 "아들 자신도 그때에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신 이에게 복종케 되리니"라는 구절을 들어서 구원의 유일한 길로서의 그리스도와 성육신한 하나님으로서의 그리스도를 부인하고 보편적 존재로서의 예수를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을 문맥을 들어서 살펴 보면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아버지께 대한 그리스도의 복종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하여야 하는가?  여기서 그리스도를 성육하신 성자, 그리서 신인(God-man), 그리고 우리의 중보자로 생각하지 않을 경우 잘못된 길에 빠지게 된다.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시기 전에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으로서 친히 우리를 다스렸지만, 승천 이후에는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중보자에게 주사(마28:18) 그를 통해 다스리신다. 이 우주적인 권세는 중보자로서 직책을 지닌 그리스도께 주어졌다. 그는 이 중보적 왕권으로 모든 원수를 멸할 뿐 아니라 교회를 세우고, 북돋으며, 다스리시고, 보호 하시고, 영화롭게 하신다. 일단 사역을 완수하면, "아들 자신도...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신 이에게 복종케" 될 것이다.  이제 모든 것이 완성 되었으므로 삼위 하나님 내에 기능적인 경륜이 필요 없게 되었으며, 이제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궁극적으로 다스리신다. 그리스도께서 여전히 다스리시지만 삼위일체 하나님의 연합 안에서 그렇게 하시는 것이다.결론적으로 정리하면 성경을 해석함에 있어서 하나의 구절만을 가지고서 해석을 가하는 것은 오류를 낳게 됨을 알 수 있다. 다른 종교에 대한 기독교의 태도는 성경적이어야할 것이다. 이 원칙을 벗어나면 기독교가 아닌 것이다. 따라서 다른 종교에 대한 태도는 성경관에 따라 달라진다. 성경을 하나님의 영감된 무오의 말씀으로 믿는다면 선택의 폭은 매우 좁다. 이러한 원칙에 비추어 볼 때 종교 다원주의는 성경의 진리와 일치하지 않은 것이 가장 큰 문제점이며 따라서 원칙으로 부터 완전히 벗어나 있음을 알 수 있다.그 밖에도 종교 다원주의자들은 로마서 5장 19절의 "한 사람의 순종치 않음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이 된 것 같이 한 사람의 순종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는 말씀을 즐겨 인용한다. 이것을 통해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말하지만 동시에 만인 구원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한다. 또한 디모데전서 2장 5절의 "하나님은 한 분 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고린도후서 5:14절에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골로새서1장20절의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케 되기를 기뻐하심이라"는 성경의 본문을 가지고 보편적 구원을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성경 해석에 대하여 복음주의에서는 만인 구원을 주장하는 종교다원주의자들의 성경해석이 균형을 상실하였다고 본다.사도행전 4장 12절은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게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고 기록 되어 있다. 예수 외에는 구원을 성취시켜줄 이름이 없다는 것이며, 예수가 우리를 구원해 줄 뿐만 아니라 예수에게서만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구원을 얻게 하는 복음은 모든 사람에게 개방적이나 구원의 길은 오직 예수 만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하고 있는 것이다.성경은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모든 인간과 화해 하셨으나(롬5:10-11), 모든 인간을  즉시 자동적으로  구원하셨다고는 결코 말하지 않는다(롬 10:9). 성경은 오히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하심이니라"(요3:16)고 말하고 있다. 성경의 구원의 계시는 이러한 맥락에 있어서 타종교인을 포함한 모든 사람에게 있어서 개방적이다(창12:3, 사56:6-7, 말1:11, 마8:11). 이것은 구원을 문제 삼는 기독교의 타종교에 대한 관계에 있어서 배타성과 포용성을 넘어서는 "초청의 파라다임"(paradigm of invitation)을 보여 주는 것이다.
 
 
 
 
 
              제  Ⅴ  장.  결        론
우리는 앞에서 종교 다원주의에 대하여  살펴보면서 그들의 주장하는 바와 배경을 살펴 보았다. 종교 다원주의란 문화적 상황의 다양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종교는 여러 상이한 구원의 종교적 체계가 있다는 다원적 구원의 가능성을 개방하는 것을 의미한다. 종교 다원주의는 특히 기독교적 신학의 독선적 배타성을 거절하며 등장하고 있기 때문에 1)전통적인 의미에서 그리스도론 중심 신학을 신 중심적 사고로 대치할 것을 주장하며, 2)그리스도교적 신론의 독특성인 인격적 신론의 개념보다는 초월적 절대적 '궁극적 실재'로서의 신의 개념을 우선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3)기독교 신의 자기계시 차원보다는 신을 경험하는 인간의 종교적 문화적 다양성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 따라서 구원의 길의 다원성을 개방시켜 놓고 있는 것은 당연한 결과라 하겠다. '궁극적 실재'인 신이 인간의 문화적 존교적 환경과 맥락에 따라 상이한 종교 경험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을 상정하기 때문이다.종교 다원주의에 대한 반응으로는 첫째 배타주의를 말할 수 있다. 이것은 오직 하나의 참 종교가 있을 뿐이라는 입장이다.  진리는 오직 한 종교 안에만 있을 수 있다는 입장이므로 타 종교에는 진리의 가능성이 철저히 배제 된다. 그리고 그리스도교 전통을 종교적 진리의 유일한 혹은 최종적인 기준으로 삼고 있는데 대표적인 학자로 칼 바르트와 에밀 브루너, 헨드릭 크뢰머가 있다. 둘째는 개방적 포용적 입장으로 모든 종교는 궁극적 실재의 계시 체험을 동반하나 구원계시의 규범은 예수 그리스도라고하는 입장이다. 타종교도 하나님이 현존하는 장이 될 수 있다고 보지만 그것으로 구원에 이르기는 충분하지 못하다는 입장이다. 세번째 다원주의의 압장은 구원에 이르는 길은 여러개가 있을 수 있다는 입장이다. 여기서는 모든 고등종교는 다 신으로 부터 너온 것이요 각기 진리의 일면을 지니고 있으며 고등종교를 통해 주어진 계시의 내용과 정도는 다를지라도 그 원천은 같은 것이라고 본다.종교다원주의의 그리스도론을 보면 그 주된 내용이 존 힉이 주장 하였던 바처럼 그리스도 중심적인 신학에서 벗어나서 신 중심적인 신학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그리스도론에 대하여 전통적 입장은 그리스도는 신성과 인성을 공유하였다고보며 이것은 초대교회로 부터 체험과 고백을 통하여 이루어진 것이라고 주장함을 알 수 있었다.종교 다원주의는 19세기 성경 비평주의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함으로 성경을 인간의 이성에 의하여 심판 받아야할 역사적 문서로 본다.여기서 본문(text)보다는 상황(context)이 우선하기 때문에 시대와 상황에 따라 신앙과 신학의 수정이 불가피하고 기독교의 절대성은 존립의 여지가 불가능하다.복음주의는 기독교가 성경을 낳은 것이 아니라 성경이 기독교를 탄생 시켰다고 믿는다. 물론 '역사적 기독교'는 오류와 허물이 있으나 진리를 보존하고 전달하는 신적인 기구이다.종교 다원주의의 기독론은 성경적으로 말하면 예수가 하나님과 구주되심을 부인하는 기독론 부재의 신학이다. 19세기 서구의 자유주의는 역사적 예수에 대하여 심각한 의문점을 제기 하였는데 20세기의 다원주의는 너무 많은 그리스도와 로고스의 존재를 인정하여 신앙의 혼란과 상대주의를 초래한다(요일4:1-6). 그리스도의 유일성과 절대성을 인정되지 않은 그리스도교는 철학이며, 권위가 인정되지 않은 성경은 위인전이나 다름 없다고 할 것이다. 다원주의 상황 아래서 가장 효과적인 대화를 하기 위하여서는 오히려 그리스도교의 정체성이 확립되어야 할 것이다. 아울러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포기하게 된다면 그리스도교는 영적 다이나믹을 상실하며 나아가 자신의 종교를 스스로 소멸하는 결과를 초래하게될 것이다.선교 2세기의 발걸음을 내딛는 한국교회의 입장에서 볼 때 가장 경계해야하며 잘 준비해야 할 것은 다원주의의 도전이라고 할 것이다. 다양화된 세계는 오히려 더 많은 대화와 상호간의 협력을 요구하는 이 때에 종교간의 대화 역시도 이에 못지않게 요청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이제까지 기독교가 싸워 왔던 것이 그릇된 교리의 해석으로 무장한 이단의 세력이었다고 한다면 앞으로의 기독교의 가장 큰 상대는 기독교와 그리스도를 보편화 하려는 보편주의라고 할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다원화 사회를 살아 가면서 성경을 통하여 흔들리지 않는 기독교의 정체성을 회복하고 대화에 나서는 것이 바람직한 자세라고 할 것이다.
                       참      고       문      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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