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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신학자료2

종교다원주의와 기독교 신학

종교다원주의와 기독교 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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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교다원주의와 기독교>
- 종교학적 접근: 야웨와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을 상대화 시킴. 즉, 다양한 신명 중의 하나로, 그리고 역사적으로 위대했던 신앙인의 하나로 취급. 여기서는 종교경험이 우위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으며, 신학적인 내용은 문화적인 배경에서 영향을 받아 다양화되었다고 봄(존 힉).
 

- 포괄적인 접근: 여러 문화와 종교를 성서 안에 나타난 계시의 빛에서 상대화. 즉 야웨와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를 절대적인 위치에 놓고, 문화적 상대성 속에 자리하고 있는 다양한 신성의 빛들을 야웨의 계시와 연관시켜 이해하려고 한다. 즉, 제문화 안에 내재하고 있는 신성의 빛들은 야웨의 선재적 은총으로써, 궁극적으로 아직 알려지지 않은 야웨 안에서 통합됨 (트뢸치를 비롯하여 칼라너와 판넨베르그)
 

- 종교해방신학적 접근.

이름이 아니라, 사건과 역사로써 하나님의 계시를 이해.

즉, 이름은 단순히 신적인 사건에 대해 인간이 붙이는 기호에 불과하다고 봄.

하나님 나라를 향한 사건 속에서 제문화를 이해, 그들의 신성의 빛을 다시 한번 더 상대화 시킴
 

- 배타적 신학: 신 이름의 실재성을 강조하면서, 제문화권의 신성의 빛을 전적인 인간의 산물로 이해하고, 성서에 계시된 이름을 중시.
 

- 미래성의 신학

제문화가 지니고 있는 신성의 빛을 인정하지만, 추상적인 포괄론이나 철학적인 원리에 의한 통합론을 반대하고, 개별 신성의 빛의 가치를 무시함 없이 하나님의 궁극적 계시의 미래성을 중시함으로써 타종교와의 대화를 시도.

그러나 타종교에 구원이 있다든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여전히 침묵함.

모든 판단은 미래의 주인되시는 하나님께 있음. 따라서 기독교도 구원을 이루어야 가야 할, 하나님의 심판과 사랑의 미래를 갈망해야 할 길로 봄.

실재로 기독교나 불교 등의 이름이 문제시되기 보다는 기독교나 불교 등의 제도적 종교를 상대화함.

그리스도는 구원자이나, 우리에 의해 신앙되고 있는 그리스도와 구원자 그리스도 사이의 간격을 늘 염두에 두며, 야웨 하나님의 유일성을 인정하나 신앙인의 의식 속에 자리하고 있는 하나님 상과의 간격을 폐기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아직 진정한 의미에서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다만 그리스도의 길을 어렴풋이 뒤따라 가고 있을 뿐이다.

구원은 기독교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으며, 성서의 하나님께 있다고 믿는다. 성서의 하나님과 타종교의 하나님 사이의 관계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그리스도인으로서 성서의 하나님은 자신을 아들 안에서 내어주신 하나님이며, 아들의 희생 안에서 세상을 향한 당신의 끊임없는 사랑을 확증하신 하나님이다.

하나님은 아직 인간의 의식으로 완전히 포착되지 않고 있으며, 오히려 하나님의 의식 안에 인간이, 세상이 포착되어 있음을 믿는다.

기독교는 역사적 종교이다.

그러나 제도적 종교로서의 기독교 이전에 하나님의 계시가 이스라엘의 역사와 나사렛 예수에게서 그리고 사도들에게 나타났다. 그 계시는 다시 성서를 통해 우리에게 비쳐지고 있다.

<종교다원론과 관련된 질문들>

**문화적 아프리오리는 '실재'인지, 아니면, 단지 언어적 '가상'인지에 대한 의문...
 

** 문화적 아프리오리가 "어떻게 형성"되었는가 하는 문제.

서구적 사유와 대조를 이루는 우리의 사유의 길이 어떻게 본질적으로, 원초적으로,

저 과거에 형성되었으며, 또 지금도 형성되고 있는지.
 

**또 어떻게 오늘날의 시공간 안으로 "전승"되었는지, 어떻게 "연속성"이 확보될 수 있는지 에 대한 질문이다. 특히 오늘날과 같이 쉽게 문화적 교류가 가능한 때에는 더욱이 이러한 질문을 회피할 수 없다.
 

**선교이전에 피선교지에는 하나님의 역사가 없었을까.

만약 선교이전에 피선교지에 하나님의 역사가 있었다면, 이미 신학도 어떤 형태로든

존재하고 있지 않았을까?

이 질문은 서구의 기독교라는 이름을 갖지 않은 하나님 신앙에 대한 기독교적 시각에서 제기될 수도 있고, 또 다른 면에서는 선교이전의 하나님 신앙을 불신앙적으로, 타종교적으로 이해하려는 배타적 이해를 지양하고, 신앙의 본질에 대한 추구를 통해 기독교와 타종교라는 제도적인 구별을 넘어선 포괄적인 신앙이해로 들어가고자 하는 시도이다.
 

**위의 질문은 신학, 서구신학의 신학방법론과 신학함에 대한 의문을 동시에 제기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미 서구신학의 도입이전에 우리식의 신학적 사유와 언설들이 존재하지 않았을까 하는 가설에서 이 논의는 출발된다.

그렇다면, 서구신학, 예수 그리스도라는 역사적 인물과 이스라엘의 야웨 하나님에 근거한 선교가 한국 땅에 들어오기 이전에, 한국은 어떤 이름으로, 어떤 형식으로, 도대체 어떻게 신학을 했다는 말인가?
 

*** 신학과 기독교 신학의 구별.

일반신학은 넓은 의미에서 신적 존재에 대한 인간의 질문과 그에 대한 인간의 언설이라고 한다면, 기독교 신학은 신학적 질문과 답변을 성서적 증언(기독교 전통)과 관계하면서 시도한다. 따라서 일반신학은 철학의 영역과 타종교의 신학 모두를 포괄한다

.

** 기독교 신학과 일반신학의 관계.

기독교 신학은 먼저 일반신학과 넓은 의미에서 동일한 질문을 던진다. 신은 누구인가? 신과 세계와 인간의 관계는 어떠한가?

그러나 기독교 신학은 이 질문의 대답을 추상적 사변에서가 아니라, 먼저 성서적 증언에서 찾으며, 이 증언을 해석학적으로 수용하고 현대세계의 신질문에 적용한다. 기독교 신학은 자신의 해석학적 자료로서 성서를, 그리고 해석학적 적용점으로서 현대세계를 수용한다. 그러므로 신학은 성서와 세계 사이에 다리를 놓는 작업이다.
 

자료와 적용점의 위치는 영구불변하는가? 즉 해석학적 방향은 언제나 성서에서 세계로 가는가 아니면, 세계에서 성서로의 방향설정도 가능한가?

이론적으로는 자료로서의 성서에서 출발하여 세계에로의 적용이라는 해석학적 방향이 가능하나, 인간의 경험영역에서 성서이해는 이미 세계라는 지평과 분리되어 수행될 수 없다. 기독교 신학에서 성서는 자료로서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나, 자료에 대한 해석은 이미 세계라는 지평과의 만남없이는 불가능하게 되기 때문에, 실제로 성서와 세계의 양축 사이의 방향은 언제나 쌍방으로 작용한다. 성서이해를 통해 세계를 질문하고, 세계이해를 통해 성서를 질문하다. 성서이해를 통해 세계이해의 질문에 대답하고, 세계이해를 통해 성서이해 가능성의 질문에 대답한다. 성서와 세계이해는 서로를 비쳐주는 거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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