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인리히 오트의 대화적 신학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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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의 글은 하인리히 오트가 다종교 상황에 직면한 기독교 신학을 위해 제안한 내용을 요약한 것입니다.
다종교 상황이라는 말은 언어적 가상이 아니라, 우리사회의 현상을 그대로 보여주는 말임을 우리는 이미 피부로 절감하고 있습니다.
우리 주위에 다양한 종교들에 대해 기독교 신학은 무엇을 말해야 하며,
또 어떻게 자신을 변화시켜야 할 것인가? 하는 물음이 우선적이겠지요.
오트는 포괄주의적 시도과 성취론적 접근을 비판합니다.
이들에게는 기독교적 진리가 타종교를 위한 중립적인, 철학적인, 때로는
추상적이며, 관념적인 잣대로 서 있게 되지요.
그리고 타종교에 대해 깊이 알지도 못하면서, 성급하게 타종교를 판단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예컨대,구약과 신약, 울법과 복음의 관계를 성취론적으로 이해하는 신학은
타종교에 대해서도 성취론적으로 이해한다는 것입니다.
타종교가 미치지 못한 진리의 중심이 바로 기독교에 있다고 보는 것이지요.
오트는 타종교와의 만남에서 중요한 것은 대화라고 말합니다.
이 때, 대화라고 하는 것은
결코 서로간의 교리에 대해 비교하는
비교종교론적, 종교철학적 접근방식이 아니라,
제 종교의 확신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또한 동시에 강요하지 않으면서,
상대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태도를 의미합니다.
☞ 야들은 꼭 이런 소리를 해요~
대화는 타종교의 목소리를 통해,
나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려고 하는
신학적인 노력으로 이해되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바르트가 기독교와 타종교의 관계에 대해서는
깊은 성찰에 도달하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그의 신학적 주제로서의 하나님에 대한 집요함은
그대로 전수되고 있는 셈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신학은 하나님에 대한 질문입니다.
신학은 피상적으로 타종교와 기독교의 관계를
사회학적으로, 또는 값싼 관용주의적 접근으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타종교 안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깊은 성찰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고 해야 하겠지요.
☞ 갈수록 가관이지요~
오트는 이 점에서 파니카의 종교신학에 어느정도 동의를 표합니다.
파니카는 알려지지 않은 그리스도에 대해 말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라는 기독신앙의 중심적 상징은 타종교 안에도 현현합니다.
그러나 그 현현은 진정 우리에게는 알려지지 않은 방식이지요.
그러나 이러한 그리스도론은 단순한 명제적 진술이 아닙니다.
예컨대, 타종교인에게, 너희가 믿는 이는 다른 것이 아니라, 바로 그리스도다.라고 말할 수 있는 그런 종류의 일대일 대응의 참과 거짓을 판명하려고 하는 명제적 진술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타종교 안에 있는 그리스도, 하나님의 구원행위는 신앙의 언어로서만 기술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점에서 신앙의 언어가 무엇인지를 다시 성찰해야 합니다.
신앙의 언어는 이성적 언어만이 아니며, 정보를 전달하는 기호적 언어도 아닙니다.
수학적인 공식과는 전혀 무관한 언어입니다.
신앙의 언어는 상징과 신화를 통해서 표현될 수 밖에 없는,
그러나 이를 통해서 진정으로 현실에 대해 말하는 언어입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연애편지를 쓰다고 할 때,
우리의 언어는 수학적인 언어와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언어가 됩니다.
단순히 내가 사랑한다는 정보만을 제공하려고 하는
그런 사무적인 언어와도 다릅니다.
때로는 사랑이 글과 말과는 무관하게 표정으로 전달될 때가 있지 않습니다.
때로는 시적인 언어로, 두리뭉실하지만, 진실하고 소박하고 투박한 형태로
전달되기도 하지요.
진정으로 마음과 마음을 잇는 사랑의 사건은
마음과 마음을 잇는 언어로써만 가능합니다.
신앙의 언어가 다른 종교 안에서 그리스도를 발견할 때,
이는 다른 종교에 대한 중립적인 판단이 아니라,
다른 종교를 통해 나에게 비추시는 그리스도의 빛에 대한 응답이지요.
신앙의 언어는 언제나 응답입니다.
그런 면에서 신앙의 언어는 나의 주체적 언어행위와는 상관없는
수동적인, 반응적인 언어행위입니다.
오트가 생각하는 대화 신학적 접근은 이런 면에서
타종교에 대한 기독교적 판단의 주체적 행동과는 거리가 멀다고 하겠습니다.
타종교가 이렇다 저렇다 판단할 것이 아니라,
타종교를 통해 새로운 경험의 차원이 열림에 대해
기독교인으로 응답하는, 반응하는 행위입니다.
저는 인도여행을 하고 온
그리스도인들이 기도생활을 더 깊이 해야 하겠다고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들은 인도의 수도자들을 통해,
종교적 경험의 깊이를 보았으며,
종교적 경험의 깊이에 비추어서 자신의 종교성의 얕음을
반성한 것이지요.
이처럼 우리는 타종교의 거울을 통해 우리 자신을 수정해 나갈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대화는 말싸움이 아니라,
정신의 교감이며, 서로를 더 풍요로운 경험으로 이끌며,
각각 자신의 방식으로, 자신의 하나님과 만나게 하는 하나의 여정입니다.
☞ "종교적체험" 이래서 같은 길로 종교다원주의로 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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