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양 종교의 합일의 가능성 (종교 다원주의)
동서양 종교의 합일의 가능성 (종교 다원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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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차
I. 서론 ......................... ... ........................... 1
II. 길을 잃은 현대 사상 ....................................... 3
1. 아퀴나스적 기원 ............................................. 3
2. 키에르케고르적 기원 ...................................... 8
(1) 실존주의와 그 흐름 .................................... 10
(2) 현대과학의 위기와 윤리 ................................ 11
(3) 전통적 기독교의 위기 .................................. 12
III. 새로운 길의 모색 - H.Hesse의 생애와 작품세계 ........... 14
1. 동양에서부터 온 선교사 헷세 ............................... 14
2. 히피의 사도 헷세 .......................................... 18
3. 경건적 구도자 헷세 ........................................ 19
VI. 열리는 새로운 세계 - 동양의 종교와 사상 ................. 21
1. 인도종교와 철학 .......................................... 22
2. 불교 ..................................................... 23
3. 중국의 사상 ............................................... 25
(1) 도(도) ................................................ 25
(2) 역(역) ................................................ 26
4. 양극적 전일사상 ........................................... 27
V. 동서양 합일의 가능성 ....................................... 31
1. 과정철학과 과정신학 ...................................... 31
2. 종교다원주의 .............................................. 34
3. 새로운 모델과 그동향 ...................................... 37
(1) 대전제로의 회귀 ....................................... 37
(2) 교회에 대한 침묵과 세상에 대한 NETI ................... 40
VI.결론 ........................................................ 42
<참고도서>
I . 서론
서양정신사의 흐름은 결국 그 한계에 다다르고 말았다. 자연주의는 허무주의에
귀결되었고, 허무주의는 자연주의에 서있는 현대 서양인들의 전제(전제)를 극복하
기엔 벅차다. 무신론적 실존주의도, 유신론도 그 세력을 잃은 지 오래다. 결국
서양은 모순 덩어리의 미로(미로), 지적자살(지적자살), 그리고 현대의 모든 사상
의 근저(근저)를 장악한 허무주의 등으로 끝나고 말았다. '이론과 사상의 지체
현상' 으로 특징되는 오늘날, 무한한 인격이시며 초월자이신 하나님의 존재를 인
간은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는가? 한세기 이상 이 질문은 심각하게 되물어져 왔
고, 현대 지성과 종교는 동양에서 그 방향성을 찾고 있다. 그러므로 동양사상에로
의 전환-비약-은 우선적으로 서양사상으로부터의 후퇴를 의미한다.
동양에는 새로운 길이 오래전부터 놓여 있었다. 반합리주의, 혼합주의, 철저히
다른 종교구조, 화해불이론(화해불이론) 등의 특징을 지닌 동양은 상당히 매력적
이다. 서양보다 깊은 전통을 지니고 있는, 소박하고 조용한 동양은 의미와 가치를
갈구하는 서양에게 새로운 해체의 경험이다. 합리주의와 합리성으로 일관해 온 서
양의 사유는, 사물의 다름과 변화를 긍정하고 논리의 무모순성을 거부하는 동양
앞에서 그들 진리관의 전환이란 불가피한 것이었다. 서구확장의 지배적 이행이,
동양을 해제시키고 자신마저 해체되어 버린 현대적 경험으로부터 얻은 유익이란,
존재를 이해하는 새로운 축(축)의 획득이었다. 그러므로 현대인은 서구를 그 지배
적 확장으로 내몰았던 종전의 수평적 사유의 축과, 그들을 가로지르며 비약하는
수직적 사유의 축을 함께 소유함으로써, 분열되고 입체적인 진리관을 가진다. 그
들은 더이상 이성의 절대성을 주장하지 않으며, 또한 그 상대성 역시 주장하지 않
는다. 그들은 그 두개의 축이 교차하는 어디쯤엔가에 참존재의 모습이 있을 것이
라는 것을 안다. 그 어디쯤엔가에 동서양 합일의 새로운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현대인이 입을 여는 순간 그들이 말하려 했던 모든 것은 급속히 상대화
되고 만다. 그것은 어떤 종류의 절대성과 고유성도 상대화시켜 버리고, 그 주체로
서의 자신마저 상대화시켜 버리는 절대적 상대주의이다. 현대인은 세계를 비추는
두개 사유의 축을 통해 그들의 마음이 바라보는 것을 말하려 하지만, 사고의 전달
이라 하는 것이 보편개념으로서의 언어를 사용하는 이상, 우리는 이내 두 축 사이
를 방황하는 우리 자신의 실존과 만날 수 밖에 없다. 우린 때론 법칙성의 논리 속
에, 때론 무모순의 모순 속에 우리의 마음을 내맡긴채, 단절과 단절의 순간으로
우리 삶을 영위하는 것이다. 여기에 현대문명의 전환과 그 위기가 있다.
그렇다면 과연, 과거 서구정신을 주도해 왔던 전통적 기독교는, 서구 정신사의
한계와 함께, 몰락하여 가는 구문명(구문명)의 유물로 묻혀 버리고 말 것인가? 선
교 공동체로서의 기독교회는 지식의 전달을 거부하고, 모든 절대성을 상대화시키
는 현대적 상황 속에서, 그들의 '전함'과 '선포'없이 존속할 수 있는가? 한분 하
나님, 절대적 참존재를 신앙하는 전통적 기독교는 다원화된 사회 속에서 획일화된
현대인들에게 어떻게 그들의 '기독교 유일의 복음'을 변증할 것인가? 이것이 이시
대 기독교 선교의 방법론적 위기이며, 그 시대적 전환이 요구된다 하겠다.
그러므로 본고(본고)는 현대 문명전환의 위기에 처한 기독교적 입장에서, 동양
과 서양의 사유를 검토, 비교함으로써 동서양 합일의 가능성을 타진해 보고 그 바
람직한 모델을 모색하고자 한다. 즉 현대의 문명전환의 정체는 '해체'와 '말할 수
없는 전일(전일)'이며, 이에 대하여 현시대 기독교회는 교회에 대한 '침묵'과 세
상에 대한 'NETI'로 도전 받는 기독교 유일의 복음을 수호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본고는 II장에서 현대 서양사상의 위기를 두가지 기원-아퀴나스적
기원과 키에르케고르적 기원-으로 나누어 살펴보고, III장에서는 동양의 사상의
탐구를 위하여 Hermann Hesse라는 인물이 우리의 논의에 사용되어야 하는 이유와
그 가치를 설명한다. IV장에서는 Hermann Hesse라는 틈을 통하여 동양의 사유를
고찰, 서양 사유와의 비교를 검토하고, V장에서는 지금까지 이루어져 온 동서양
합일의 모델을 검토,비판하여 이 시대에 적합한 기독교적 모델을 모색한다. 논의
의 특성상 본고가 많은 사변적이고 개념적인 용어로 일관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감수해야 할 과제였다. 그것은 이 세계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 우리 자신의 모든
행동방식을 결정짓는다는 신념때문이었고, 그러므로 기독교는 전환하는 현대의
상황 속에 가장 먼저 하나님의 절대성을 선포해야 한다는 신앙때문이었다 하겠다.
II. 길을 잃은 현대사상
현대의 위기와 현대사상의 한계를 규정하기 위해서 우리는 두가지의 현대적 기
원을 살펴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하나는 현대성립의 전제가 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현대의 내재적 위기와 한계를 연원(연원)짓게한 것으로써, 아퀴나스적 기
원과 키에르케고르적 기원이 바로 그것이다. 아퀴나스로부터 시작하는 이성에 대
한 자율성의 개방은 헤겔의 절대정신의 추구에 이르기까지, 과학과 합리주의라 하
는 현대서구의 거대한 횡적 질서를 수립하였으며, 키에르케고르로부터 시작하는
보편의 좌절과 비합리적 비약은 전통적 기독교와 더불어 이전의 모든 체제를 무너
뜨리고, 소외와 불안이라하는 서구적 종적질서를 구축하기에 이르렀다. 이 두개의
축 사이의 긴장 가운데에서 정확한 좌표를 찾지 못하는 현대인의 불명확한 실존이
현대적 의미의 한계이며 위기라 할 것이다.
1. 아퀴나스적 기원
어거스틴(Augustine : 354-430)과 함께 중세철학을 대표하는 토마스 아퀴나스
(Tomas Aquinas : 1225-74)의 위대함은 '독창성'보다는 그의 '종합의 능력'에 있
었다. 그의 사상은 성경의 가르침과 교회의 전통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종합한 것으로서 그 핵심은 '철학과 신앙에 대한 2층 구조적 견해(two-store view
of philosophy and faith)'라 할 수 있다. 그는 이성과 신앙을 예리하게 구별했
다. 신학은 계시에 의존하며 철학은 이성에 속한다. 신은 계시에 의해서 알 수 있
는 것처럼 또한 이성에 의해서도 알 수 있다. 계시가 위에서 주어지는 진리라면
이성은 아래로부터 상승하여 얻어지는 진리이다. 그는 모든 기독교의 진리는 철학
적으로 증명할 수 있다는 안셀름과는 멀었다. 그는 양자가 다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기 때문에 철학과 신학-이성과 계시-사이에는 모순이 없다고 보았다. 이것
은 결과적으로 자연이 인간 사고에 중요성을 띠게 된 것이었다. 이전 시대의 비
잔틴 세계는 자연이나 특수한 것들에 대하여 진정한 관심을 가지지 않았기 때문이
다. 그러나 이제 실재는 자연 즉, 사물들의 본성-보편-가운데서도 발견되었으며
이전의 세계 이해는 그 하부에 새로운 실재와의 경계선과 만나게 되었다. 프란시
스 쉐퍼(Francis A. Saeffer)는 이를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은총 : 상층부 - 창조주 하나님, 천국, 천상의 사물,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과 땅에 미치는 그 영향, 인간의 영혼 ; unity(통일)
--------------------------------------------------------------------
자연 : 하층부 - 피조물, 땅과 땅의 것들, 가시적인 것과 인간과 자연이
하는 일, 인간의 육체 ; diversity(다양성)
이성과 계시의 조화 라는 아퀴나스의 공헌은 그의 후세에 의해서 '자연에의
추구'로 변질되고 만다. 사실 아퀴나스는 불완전한 타락론을 가지고 있었다. 그에
따르면 인간의 의지는 타락하였으나 지성은 타락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이성은 자연의 목적적인 질서계의 본원적(본원적)인 존재 원인을 파악할
수 있으며, 성육신이나 삼위일체와 같은 신앙의 비의(비의)를 해명할 수는 없지
만, 사물의 본원적인 존재 원인으로서의 신의 존재는 계시에 의하지 않고서도 확
인시켜 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신)존재를 도출케하는 자연은 신의 완
전의 반영이며 완전의 구성체라는 것이다. 이로써 자연은 이성을 통해 자율성을
획득하게 되었다. 인간은 이제 이 한 영역에서만은 독립적이고 자율적이었다. 철
학도 역시 이 자율적 영역을 근거로 계시와 신학과의 결별을 선언하게 되었고, 신
의 권위로부터 탈출한 인간은 자율적 세계 속의 자아를 발견하게 되었다. 이것이
인본주의(인본주의, 또는 인문주의: humanism)라 불리우는 르네상스(Renaissance)
의 도래이다.
이러한 변화는 중세의 종결을 의미하는 것이었고, 르네상스는 본질적으로 인간
을 인간으로서 그 현재 생활과 아름다움과 만족을 강조하는 새로운 세계관을 감싸
안았다. 자연의 강조와 더불어 은총의 영역이 감소되었고, 은총과 자연의 분리
는 무섭게 파급되었다. 플라톤적 전통을 지닌 인문주의자들은 '은총'을 대신할 새
로운 '보편'을 추구하였지만 구체적이며 특수한 자연은 절대적인 보편으로부터 급
속히 멀어져 갔다.
문예부흥 이후, 근세사상은 자연을 인간의 지배 대상으로 보고 인간을 철학적
사색의 궁극적 기준으로 삼았다. 그러나 Bacon을 위시한 영국의 경험론은 그의
'회의'때문에, Descartes의 대륙합리론은 그의 '독단'때문에 진리인식에 실패하고
말았다. 이들 실패를 떠맡아 비판과 종합의 길을 연 것은 칸트의 'Kopernikus적
전환'이다. 그는 이성의 비판을 통해 인간의 외부 세계에 대한 인식이 오성(오
성)의 순수개념 즉, 범주들(categories)과 직관의 형식이라는 '선천적' 인간정신
을 통하여 바라봄으로 사물 그 자체로서의 지각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밝혀 내었
다. 결국 사물 자체에 대한 인식은 회의되었고, 더욱 소위 질료를 초월하는 실재
에 대한 인식은 포기되었다. 결과적으로 칸트는 "형이상학을 포기하라"고 외친다.
왜냐하면 형이상학은 인간정신의 이해를 완전히 넘어서기 때문인 것이다. 그는
계속해서 인간은 자신의 이성이 옳다고 말하는 것을 행하여야 하며, 하늘의 조언
자(Heavenly advisor)나 동기부여자로서의 신은 불필요하다는 것이다. 이것이 "오
직 이성의 한계 내에서의 종교(Religion Within the Limits of Reason alon)"이
다. 칸트의 사상은 자연의 현상세계가 보편적인 본체의 세계와 관계를 맺는 길
을 어떻게든 발견하려는 것이었지만, 그 결과는 그 사이의 간격을 완전히 단절시
켜 버린 것이라 하겠다.
헤겔은 마지막까지 합리주의(rationalism)를 고수하기 위하여 과감히 합리성
(rationality)을 희생시켜야만 했다. 다시 말해 그는 Logos(혹은 Geist, 정신)을
붙잡기 위해 이전의 직선적인 반정립을 포기해야 했다. 그것은 인식론과 진리에
접근하는 방법론의 변혁을 통한 논리적 종합이었다. 즉 세계와 역사는 절대정신
(Absoluter Geist)의 발전이며, 그것은 정(These)-반(Antithese)-합(Synthese)의
변증법적 과정을 통해 무한히 발전을 거듭한다는 것이다. 절대정신, 또는 세계이
성(Weltvernuft)으로 표현된 신은 더이상 초월적 존재가 아니었다. 역사와 세계
속에 내재하여 갇혀 버린, 비초월의 종합은 증명할 수 없는 관념론에 불과한 것이
었다. 헤겔은 그리스로부터 내려오는 서구적 전통의 위대한 보편적 종합을 수립했
지만, 그의 체계의 개방성은 그의 시대의 마감과 더불어 새로운 시대로의 전환을
가져오게 하였던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헤겔까지 이르는 서구적 사유의 역사가 갖는 의미를 보다 명확
히 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후에 입체적 불연속성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우
리는 서양적 사유의 두가지 공통적 원리를 찾아봄으로써 그 의미를 정리할 수 있
을 것이다. 첫째, 합리주의적(rationalistic)이라는 것이다. '합리주의적'이란
말은 프란시스 쉐퍼가 그의 저서들 속에서 사용하고 있는 용어로서, 절대적으로
그리고 전적으로 자기 자신에게서 출발한 인간이 특수적인 것에 관한 지식을 종합
(gathering)하여 보편적인 것(unversal)을 형성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여
러 면에서 절대주의와도 통하는데, 절대주의란 어떤 의미에서든지 절대자를 승인
하고 그의 추구를 철학의 근본으로 삼는 입장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절대자를 관
념적인 것, 즉 신(신), 절대적 정신, 절대아(절대아)로 보는 절대적 관념론이나,
절대자의 존재를 불가지(불가지)하다고 거부하고 절대자의 존재를 인식이나 실천
의 가능성에 대한 선천적 조건으로 인정한다는 것도 역시 절대주의의 한 변형이라
하겠다.
다른 하나는, 서양의 언어와 논리의 기본적 형태가 고대 그리스 철학의 '로고
스( )'에 연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서 '로고스'란 다의적이고 함축적인
용어로서 철학자의 사색적인 생명의 유기적 기관이라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따라서 서양의 사유형태를 이성의 주체가 되어 언어를 매개로 해서, 논리에 따라
서 추리를 하여 명제를 세우고, 만유의 원리인 이법(리법)을 통하여 진리를 획득
하는 사고방식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반정립(terms of antithesis)'이라
는 용어로 집중되는데 [A=~A] 즉 A는 비(비) A가 아니며, 전제와 결론 사이의 무
모순성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서양사가 합리주의와 반정립을 통하여 구축하고자 했던 것은 하나의 통일된 지
식의 영역이었다. 이 희망은 그리스로부터 시작하여 헤겔에 이르기까지 서양 정신
사를 주도해 온 것이다. 여기서 통일성의 추구는 이후의 불연속성에 주안하여 보
다 넓게 '같음의 운동'이라고 풀 수 있다. '같음의 운동'이란 논리적 사유뿐 아
니라 모든 개별화된 생명의 자기 통일성의 지탱의 추구로부터 일어나는 것이다.
서양의 논리학의 전통에 나타난 형식들은 모두 '같음으로 돌아감'이라는 존재와
의식의 집요한 동기와 전략으로 이루어졌다. 사실 '로고스'라는 것도 자신의 같
음을 지탱하기 위한 파생 질서이다. 이러한 같음으로의 이행은 반드시 지배적인
경향을 가진다. 사실 인간이 추상적 사유를 시작하게 된 '도구적 인간' 으로부터
와 단지 논쟁에서 이기기 위한 논리의 기술을 가르쳤던 소피스트들의 전통 속에
서, 우리의 과거 원시인류의 먹이 정복과 영토 확장의 추구를 보며, 더욱이 이성
을 계시와 신앙의 영역에서 탈출시켜 독립적 영역과 자유성을 부여한 아퀴나스로
부터 헤겔에 이르기까지의 전통 속에서 인간의 자아개념이 횡적으로 계속 확대되
어 나가고 있는 세계대전으로의 이행을 예감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서구의 전
통, 특히 아퀴나스로 시작하는 서구 정신사는 합리주의와 합리성-반정립-을 통한
'같음으로서의 운동'이며, 개인적 자아 개념의 계속적인 확장으로서의 수평축을
구축한 것으로 규정될 수 있다 하겠다.
2. 키에르케고르적 기원
죄렌 키에르케고르(Soren Kierkegoard : 1813-1855)는 실존철학의 시조이며 현
대사상의 아버지이다. 그의 '실존' 속엔 모든 현대적 사유의 중심이 놓여 있고,
그의 '비약' 속에는 모든 현대적 사유의 위기가 놓여 있다. 그는 그의 이전 시대
로부터 물려받은 모든 종류의 보편적 종합을 무너뜨리는데 공헌한 사람이다. 그
는 헤겔을 비판함으로써 그렇게 했다. 반정립의 부정성을 세계 과정 속에서 극복
해 가는 연속적인 종합의 계열에 대한 헤겔의 구상은 사실 본질의 영역에서만 타
당성을 갖는 것이었다. 본질의 영역은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이 아니다. 우리는
선악을 결단해야 하는 비극적 실존의 영역에서 살고 있다. 실존의 영역에서 화해-
보편적 종합-이란 불가능한 것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비판은 헤겔에 있어서 본질
주의적 성취와 실존주의적 비성취, 또는 소외가 구별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
한다. 키에르케고르는 본질과 실존의 영역을 구분함으로써 보편적 종합을 포기했
을 뿐아니라 '합리성' 즉 논리적 과정 역시 거부했다. 논리적 과정이란 현실의 과
정이 아니다. 그것은 시간 안의 과정이 아니라, 논리적 관계에 대한 기술에 불과
한 것이 있다. 헤겔은 논리적 관점에서 본질과 실존을 혼동함으로써 논리의 변증
법적 과정과 역사의 현실적 운동을 혼동하고 만 것이다. 보편적 종합과 논리적 사
유를 포기한 키에르케고르는 외로운 존재였다. 그것은 소외이고 불안이었다.
'죽음에 이르는 병'을 피하기 위해서는 인간 내부로부터가 아닌 인간의 위에서,
또는 밖에서부터 찾아오는 새로운 것이 필요했다. 그것이 키에르케고르의 '비약'
이었다. 신은 인간 내부로부터 끌어내어지는 것이 아니라, 신이 인간 밖에서 그의
아들을 통해 시간 안으로 뚫고 들어오는 것이었다. 우리는 여기서 바르트와 신정
통주의를 통한 전통적 기독교의 위기를 볼 수 있다. 이성을 통해 신의 존재를 확
인시킬 수 있다는 아퀴나스의 신념은, 키에르케고르에겐 치기어린 호언에 불과했
다. 그는 모든 종류의 객관적 확실성을 거부했다. 객관적 확실성이란 본질에 사는
신과 실존에 사는 인간의 상황을 설명해 줄 수 없는 것이다. 객관적, 과학적 연구
영역의 진리는 실존적 진리가 아니다. 실존적 진리는 객관적인 불확실성이며, 개
인적, 정열적 체험 그리고 주관적 확실성이지 객관화할 수 있는 진리는 아니라는
것이다. 이는 객관성에 대한 주체성(주체성)이며 외면성에 대한(against) 내면성
이고, 보편자에 대한 단독자이며, 영원한 필연성에 대한 시간적 우연성을 의미하
는 것이었다. 이것은 반철학(anti-philosophy) 이며 이것이 비약의 확실성이
다. 우리는 여기서 현대 실존주의의 흐름과 전통적 과학의 붕괴를 본다 하겠다.
(1) 실존주의와 그 흐름
전술한 바와 같이 실존이란 현실의 본래적 존재(존재, existentia)이며 본질
(본질, essentia)에 대응하는 말이다. 라틴어원의 의미로는 '밖에(ex) 나타난다
(sistere)'는 뜻으로서 이는 관념적 본질규정, 혹은 합리주의적 체계의 밖으로
나온 구체적, 개별적 존재를 의미하는 동시에 자기 자신에서 밖으로 초월하는 존
재임을 의미하기도 한다. 결국 실존철학이란 이러한 인간의 존재방식(existentia)
을 묻고 그것을 개명(개명)하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인간의 실존, 즉
존재방식은 무엇이고 그것은 어떻게 해결되는가? 야스퍼스에 의하면 실존은 자기
가 짊어진 운명이며, 오히려 이율배반의 절대적, 운명적인 극한상황(극한상황,
Gren zsituation)에 직면함으로써 자각의 계기를 갖는다고 지적한다. 극한상황에
직면한 인간은 사랑(Lieve), 신앙(Glaube), 환상(Phantasie)을 통하여 '신에의 초
월'을 할 수 있다. 신에의 초월은 암호해독(Chiffrelesen)이며, 암호는 곧 상징이
라는 것이다. 이와 반대로 니체는 '신에의 초월'을 거부하고 "신은 죽었다 (Gott
ist tot)"고 외친다. 그가 보는 인간의 실존은 신 때문에 초월을 상실한 공백상
태(Nihilismus)이다. 그는 신(신)대신에 인간의 실존을 견디어 내는 '초인
(Uberermensch)'을 제시한다. 그러나 모든 신을 부정해 버린 니체는 내재(내재)의
입장에 설 수 밖에 없을 뿐 아니라, 신을 상실한 실존은 초월마저 상실하게 된 것
이었다. 사르트르와 까뮈는 인간의 실존을 부조리와 근원적인 우연에 둔다. 그에
게 있어서 인간이 자신을 확증하는 길은 선택과 결단에 의한 '의지에의 행위'를
통해서이다. 그러나 그것은 아무런 내용을 가지지 않는다. 인간의 행위가 발로(발
로)되는 모든 방향은 동등한 것이기 때문이다. Marx에게 있어서 인간의 실존은
노동으로부터 소외된 불평등한 유물론적 인간이다. 그에게도 비약은 있다. 양적팽
창의 질적 변화와도 같은,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통한 유토피아 건설이 그것이라
하겠다. 그의 체계는 현대적 사건으로 붕괴되고 말지만, 그것 역시 그 상대적
진영인 자본주의 체제의 분열에 상당히 크게 작용한 것도 사실이라 하겠다. 결국
실존주의로부터 흘러나오는 서구정신의 흐름은 합리주의에 대한 불신을 구체화시
킨 것이었다. 그들의 실존은 보편적 종합을 거부하며, 그들의 비약은 논리적 접근
을 불허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그들은 합리주의자들이 제시한 형이상학적
개념에 대한 그들의 항의가 근본적 개혁에 이르지 못했다는 것으로 비판되고 있
다. 그들이 항의하였던 종류의 체제를 다시 구성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현
대 서구정신은 절대를 내어 준 결과로 상대를, 필연을 내어 준 결과로 우연을, 무
한한 신을 내어 준 결과로 유한한 인간을 얻는데 그치고 말았다 하겠다.
(2) 현대과학의 위기와 윤리
전통적 기독교에게 심각한 위기를 안겨 주었던 근대과학이 종교개혁의 전통 속
에서 싹트기 시작했다는 사실은 역사의 아이러니이다. 기독교의 과학에의 공헌은
우주의 형상(형상)을 탐구하도록 자극하는 사상적 분위기를 조성하였다는 단순한
이유뿐 아니라, 과학의 성립을 위한 객관적인 실재와, 원인과 결과에 대한 근거를
제시한 것이었다. 그것은 신앙에 대한 이성의 길을 터놓은 아퀴나스적 기원과도
일치했다. 그들 과학자들은 합리적인 우주를 창조하신 합리적인 하나님이 계시고,
따라서 인간이 이성으로써 우주의 형상을 발견해 낼 수 있다고 믿는데서 기독교의
견해와 공통된 견해를 소유하였다. 성경의 가르침의 기반 위에서 과학은 보호되었
고 가치를 인정받았다. 천문학적 편견을 뒤엎은 케플러(Kepler)나 갈릴레오와 쿠
페르니쿠스의 연구는 이러한 배경 속에 있었고, 고전역학의 이론을 확립한 아이작
뉴튼 역시 그와 같았다. 그러나 과학혁명과 더불어 자연의 영역 확대가 은총의 영
역을 축소시키고 멀어지자, 과학의 중심은 자연원인의 일률성으로 옮겨져 결정론
과 기계론적 사고를 파생시켰다. 과학은 법칙성과 인간을 포함한 자연에 대한 인
간의 지배를 추구하였고, 자연계는 법칙으로 통일되어 이성은 절대시되었다. 법칙
성의 필연성은 인간 및 사회에 적용되어 학문의 새로운 방법론으로 파급되었고,
과학의 진보는 유토피아를 약속하는 듯했다. 이러한 것들은 현대과학을 규정하는
절반의 전제이며, 이성의 수평적 발전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아인쉬타인의 '상대성 이론'과 세계대전은 법칙성과 과학의 진보에 대한 신뢰에 결정
적 타격을 안겨주었다. 법칙의 절대성은 상대적이고 개별적인 것으로 판명되고 그들은 더이상 확실한 진리를 소유할 수없게 되었을 뿐 아니라, 과학의 진보는 인류 미래에 도리어 큰 장애가 될지도 모른다고 우려를 낳게 하였다. 윤리를 떨쳐 버린 기계론적 사고는 인간을 중시하지 않고 비인간화와 비도덕적 사회를 만들어 내었고 과학적 진보가 가능케한 자본주의는 '노동으로부터의 소외'라는 Marx의 비판을 면하기 어려웠다. 이러한 단절은 서양정신의 핵인 이성적 몰락과 더불어 과학을 기술로 전락시켜 버렸고, 자연에 대한 인간의 지배는 생태학적 위기로 전환되어, 오히려 자연은 주인으로서 위치되고 만 것이었다. 이상의또다른 단절은 불확실성과 상대성의 현대를 규정하는 나머지 절반의 전제라 할 것이다.
(3) 전통적 기독교의 위기
이제 현대사회와 현대 서구사상의 위기를 언급하는데 있어 또하나의 중요한 요인을 언
급해야 할 필요가있다. 한 운명의 위기와 전환에 대한 종교의 역할을 강조한 스펭글러나 소로킨, 그리고 토인비 등의 연구과업을 빌리지 않더라도 서양은 너무도 기독교적이다. 서양사가 기독교와 분리되어 언급될 수 없다는것은 주지의 사실이고, 서구를 주도해 온 그 결정적 역할은 결코 간과될 수 없다 하겠다. 전통적 기독교의 분열은 사실 서양의 분열이며, 기독교의 위기는 서양의 위기이다. 여기서 우리는 전통적 기독교의위기를 논하는데 있어 긴 언급을 피할 수 있는 여지를 갖고 있다. 그것은 기독교 분열의 위기가 전술(전술)한 서구 정신사와 과학의 분열에 그 궤(궤)를 같이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전술한 서구정신사의 흐름과 용어를 다시 기독교적으로 환원해야 한다. 이를 정리하면 기독교 위기의 정체성은 '신앙과 이성'이며, '내재와 초월'이다. 우리는 그것을 20세기초 이성을 중시하는 자유주의에 대한 근본주의의'신앙수호'에서 볼 수 있으며, 계시의 말씀으로서 성경을 거부하고 계시의 수직적 초월을 말하는 바르트와 내재 속의 접촉점을 묻는 부룬너의 논쟁 속에서 찾을 수 있다. 결국 전통적 기독교의 위기는 그들 진리관의 분열이며, 현대 기독교 역시 또하나의 단절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현대의 키에르케고르적 기원이 이전 시대와의 '단절'을 선언하고, '비약'하였다는 것
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현대과학이 그렇게도 막강한 영향력을 떨치던 '법칙성'을 포기한 이유는 무엇인가? 자유주의에대해 종교개혁의 전통을 수호하고자 했던 바르트가 성경의 권위를 포기하고 계시의 초월을 주장한 것과, 현대의 윤리학이 상황윤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과연 어디서부터 오는 것인가? 그것은 합리주의가, 보편이, 종합이, 절대가, 논리로서는 진정한 존재를 설명해 낼 수 없었기 때문인 것이다. 이는전장(전장)과의 대비를 위해서 '다름'의 발견이라 풀 수 있다. 합리주의와 논리를 통한 존재의 같음을같음으로 증명해 낼 때, 바로 그곳에서 침묵하고 있는 반쪽 존재의 잉여의 발견이며 모순의 인식이다.
보편은 개체 위에 근거하지만 동시에 개체는 보편으로부터 근거한다. 사실 사람이 개
인으로서 인간의상황 안에 있고, 헤겔처럼 신의 자리에 앉지 않는다면 순수한 본질은 불가능하다. 그것은 본질주의의형이상학적 자만이다. 반대로 순수한 실존주의도 불가능하다. 실존을 기술키 위해 언어라는 보편개념을다루지 않는한 그것은 역시 불가능한 것이다. 이 같음으로의 역동적 이행을 잠재우고 존재의 참 면모를 바라보게 하는 것이 바로 그 '다름'이다.
서양의 역사는 언제나 통일을 추구하며 같음으로 이행했지만, 현대의 서양은 미결정과
모순의 잉여지대를 방황한다. 다름의 발견은 같음의 수평적 질서에 반한 수직적 질서에 대한 자각이다. 거침없이 발전하던 횡적인 자기 동일성은 더이상 자기 동일화 할 수 없는 자신의 종적 초월에 부딪혔을 때 비약할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들의 발견은 저항에 불과했다. 서양의 역사는 다름을 설명해 낼 언어를 갖고있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서양인들은 그들을 가로지르는 새로운 축을 발견했지만, 그들 자신의 축과의접촉점을 찾지 못했다. 이 두개의 축 사이에서 어디에 자신의 좌표를 두어야 할지 몰라 불안해 하는 자아가 현대 서양인의 실존이다. 여기에 서구 해체의 원인이 있었고, 동양 발견의 길이 있었다. 서양은그들이 같음으로 해체시켜 버린 동양의 '다름' 속에서 그들이 직면한 위기를 설명해 낼 언어를 찾기위해 이행하여 갈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II. 새로운 길의 모색 - H. Hesse의 생애와 작품세계
우리는 이제 동양적 사유를 살펴보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 이전에 숙고되어야 할 것
이 있다. 우선 동양적이란 말자체가 상대적이다. 즉 그것이 서양적이란 말에 대해서 상대적으로 생겨난 말이고 보면, 원융적(원융적), 포괄적(포괄적), 화해적(화해적)인 동양사유의 진수를 막바로 '동양은 이러하다'라고 꼬집어 말하기가 쉽지 않을뿐 아니라 그 진가를 잃어버린 위험성마저 있다. 그래서 우리는 동양의 마음을통해 서양정신의 위기를 구원코자 했던, 가장 동양적인 한 서양인의 눈에 비친 동양의 모습을 동양에대해 묻는 우리의 물음으로 삼기로 하겠다. 서양의 위기 속에 그 해답을 동양에서 추구한 서양인은사실 H. Hesse만이 아니었다. 야스퍼스가 그러하고, 토인비가 또한 그러하다. 그러나 그 적지 않은 사람들 속에 H. Hesse의 눈을 빌려야 할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그는 얼마나 절박하게 서양의 위기를 인식하고 있었으며, 얼마나 깊이 동양의 지혜를 이해하였는가? 이것이 여기서 다루어야 할 논제들이다.
1. 동양으로부터 온 선교사 헷세
헤르만 헷세는 1877년 남부독일 뷔르텐베르크주의 나골드 강변에 있는 슈바트츠봤트
의 소도시 칼브(Calw)에서 태어났다. 선교사인 그의 아버지 요한네스 헷세(Johannes Hesse)는 1847년 에스트란트에서러시아 추밀원 고문관이자 의사의 아들로 태어났고, 어머니 마리군데르트(Marie Gundert)는 선교사이며저명한 인도학자였던 헤르만 군데르트(Herman Gundert)박사의 딸로 인도에서 출생했다. 그녀의 할아버지 헤르만 군데르트는 경건주의 선교사의 선구로 인도에서 선교활동을 하였고 선교서적을 편찬했을 뿐아니라, 그가 만든 [말람야람어 사전]은 오늘날까지 인도어 연구에 가장 중요한 책으로 뽑히고 있다.
Hesse는 Hermann이란 이름을 물려받은 두 할아버지를 통해 그에게 전해 내려오는 거대
한 유럽의 전통을만날 수 있었던 것이다. 헷세는 [마술사의 어린시절]에서 그의 외할아버지를 다음과 같이 회상하고 있다.
"외할아버지를 통해서 나는 인간에 대한 훌륭한 이해심을 가진 노인의
슬기를 보았을 뿐 아니라, 신앙심이나 신의 나라에 대한 봉사심 또한 슈
바벤 지방의 특색인 물질적인 검약과 정신적인 화려함의 멋진 조화도 보
았는데, 그것은 슈바벤의 라틴어 학교, 신학교 또는 유명한 튀빙겐의 수
도원을 통해서 거의 2백년 이상 유지되고 고귀한 전통으로 물려 내려온
것이었다."
결국 두 가문이 만나게 된 것은 바젤에서였고, 선교사업 때문이었다. 헷세의
선조는 모두 경건주의자들이었고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는데, 그는 그의 가족을 가
리켜 '성자의 공동체'라고 말할 정도였다. 이로써 헷세는 서구정신의 중심인 기
독교의 전통을 그의 가족을 통해 흡수할 수 있었던 것이다.
1891년 헷세가 마올브론(Maulbronner) 신학교에 입학하면서 그의 방황은 시작
되었다. 7개월만에 학교를 탈출한 헷세는 그후 기계공원, 서점원 등으로 일하면
서 작가의 세계에 입문하기 시작하였고 서서히 과거와의 단절을 굳혀 나갔다. 이
때 그의 정신에 거대한 영향을 미친 사람은 야콥 부르크하르트(Jacob
Burclchardt), 프리드리히 니이체, 그리고 오스왈드 스펭글러 등을 들 수 있는데,
이들은 모두 유럽문화의 회의론자들이었다. 당시의 독일은 세기말적, 정신적 혼
돈과 무질서, 정치,경제적인 융성 속에서 과거와의 부조리에서 오는 불안감이 교
차되던 때였으며, 사회 전반에 걸쳐서 안정이나 사고의 깊이가 결여되어 있었다.
이러한 좌절과 갈등 속에서 독일이 추구한 것은 무분별한 세계 지배욕과 물질문명
의 추구였다. 헷세는 이 시대의 피폐한 정신 상황을 "문예란 시대(das
feuilletonische zeitalter)"라고 일컫고 있는데, 이는 당시의 정신 상황이 정신
이 공허하여 중심을 잃었기 때문이었다.
"우리의 이성은 망상이 되어 버렸고, 우리의 지폐는 종이에 불과하고,
우리의 기계는 단지 총을 쏘며 폭발하는데 쓰일 수 있을 뿐이며, 우리의
예술은 자살에 불과하다"
이로부터 형성된 헷세의 서양관은 철저히 부정적인 단절로 시작한다. 그는 서
양이 과도한 지식을 추구하고, 물질문명에 대한 광신적인 태도를 취하며, 근거 없
는 우월주의에 빠져 있다는 반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급기야 유럽이 더 이상
그의 이상(리상)이 아님을 자각하고 유럽으로부터의 도주를 꾀했다. 그는 유럽의
멸망을 믿었고 더욱 유럽이 새로 태어나기 위해서라도 멸망해야 한다고 보았다.
"나는 단지 한가지만 믿는다. 그것은 멸망에 대한 믿음이다. 우리
모두는 죽어야만 한다... 우리는 다시 태어나야 한다... 즉 거대한 전
쟁, 예술로서의 크나큰 변전, 유럽국가들의 크나큰 파괴가 그것이다. 옛
유럽에 있던 우리에게 좋았고 우리들의 것이었던 모든 것이 죽었다."
이와같이 헷세의 동양으로의 접근은 반(반)서구를 의미한다. 그가 서구를 반
대하며 증오한 만큼 동양은 살아 있는 진리체였으며, 떠오르는 빛의 고향이었다.
헷세로 하여금 직접적으로 동양 연구에 심혈을 기울이도록 한 것은 그의 아버
지 요한네스와 일본의 외사촌 군데르트, 그리고 유명한 중국어문학자 R.빌헬름의
영향에 힘입은 것이었다. 인도의 선교사였던 아버지 요한네스는 일생 동안 동양
정신과 지혜를 이해하려 노력하였으며, 그의 [도덕경]에 대한 사랑과, 공자와
노자에 대한 경외심은 아들인 헤르만에게 지속적인 인상을 남겨 주었다. [일본 문
학사] [일본 종교사] [동양의 시] 등 동양정신사에 대한 저술과 [벽암록] 등의 역
서를 남긴 군데르트는 헷세와의 서신 교환을 통해 주로 선불교에 대한 의견을 교
환하였고 동양의 정신도 전해주었다. 당대에 가장 저명했던 중국어문학자 빌헬
름은 중국의 고전-[논어] [도덕경] [장자] [예기]를 대다수 번역하였고, [노자와
도교] [중국 문학사] [중국의 혼] 등을 저술함으로써, 헷세에게 동양사상과 정신
을 불어넣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던 것이다. 결국 헷세는 세상을 떠나는 그날
까지 동양정신의 세계를 그의 문학 속에 시적(시적)으로 표현하고자 끊임없이 시
도하였고, 동양세계와 떼어놓을 수 없는 완전한 하나가 되었다.
"서양의 평균적 인간은 동양의 이상스럽고도 정신적이며, 우리가 이해
할 수 없을 정도로 문명화된 세계를 꿰뚫고 들어갈 수가 없다. 그러나 한
번 이 세계를 알게 되고 그 마력을 맛본자, 그 사람에게는 이 세계란 신
성한 것이다."
그가 유럽의 몰락을 선고하고 동양으로 귀의한 것은 오직 하나의 목적밖에 없
었다. 그것은 동양의 지혜를 통한 서양정신의 구제였다. [싣달타]는 헷세의 동서
양의 이상적 합일의 추구이며 그 표현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이 시대의 "동양에서
온 선교사"라 불리는 것이다.
2. 히피의 사도 헷세
세계문학사에 있어 헷세는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기록된다. 전쟁의 포화 속에서
발표된 [유리알 유희]는 그에게 1946년 노벨문학상을 안겨주었다. 이로부터 일기
시작한 헷세붐은 한국동란과 베트남전쟁, 그리고 1968년 전후의 유럽 및 미국의
'학생운동'을 치르는 동안 전세계 청소년층을 중심으로 확산되었고, 이런 갑작
스런 헷세붐은 헷세를 '히피의 사도'로 만드는 일종의 '미국적 현상'을 낳기까지
했다. 50년대 헷세의 추종자들은 비트세대(Beat Generation)로 유명해 졌는데,
그 미국의 젊은이들은 헷세를 자기들만의 작가로 발견하고 썩지않은 작가로 체험
하려고 했다. 1975년까지 미국에서만도 1천만부 이상의 헷세의 작품이 팔렸으며,
1986년 현재, 동서양 각나라를 막론하고 3천만권 이상 팔려나갔다. 이러한 상황
은 Hesse-Renaissance라는 신조어로 대변되고, 헷세는 학교수업에까지 수용되었
다.
무엇이 헷세붐을 가능케 했는가? Siegfried Unseld는 헷세붐의 요인을 4가지로
나누어 분석하고 있다. 첫째, 그의 작품에서의 극동적 인류적 요소이고, 둘째
는, 그의 언어이며, 셋째, 억압에 대한 반항이며, 넷째, 작품에 서술된 개인화 과
정이라는 것이다. Volker Michels는 그밖에도 '경제 기적'을 이유로 들었고,
Stefan Zweig는 그의 언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찬사한다.
"그의 산문만이 갖는 특이한 순수함, 말로 표현하기 힘든 상황의 표현
에 대한 대가다운 솜씨는, 헷세를 독일문학에서 특별한 위치에 올려놓게
만든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헷세를 세계적인 작가의 위치에 올려놓은 요인은 첫째, 서
구정신의 붕괴 속에 좌표를 잃은 현대인들에게 강력히 어필한 그의 동양에 대한
새로운 이해에 있으며, 둘째, 헷세가 그의 작품세계 속에 그려내는 위기의식이 현
대인의 실존을 밝혀주며 그 해방을 제시하였기 때문이다. 서구문명의 위기는 비인
간화와 자아상실을 가져왔고 그러한 사회 속에 헷세는 진정한 아웃사이더였다. 그
의 작품 속에는 모든 종류의 대립과 위기를 통일시키는 강력한 매력이 있었다. 그
것이 헷세 작품의 중심인 '양극적 전일사상'이다. 모든 대립과 극한 뒤에 존재하
는 '전일성'은 모든 것을 긍정해 주었고, 전쟁과 위기에 지친 현대인에게 이상적
세계에 대한 희망을 선사해 주었다. 이것이 헤르만 헷세를 '히피의 사도'로 올려
세우게 하였던 것이다.
3. 경건적 구도자 헷세
헤르만 헷세에 있어서 그의 작품 양식은 한 개인의 영적인 성장과정을 묘사하
는 자서전적인 성장소설(또는 발전소설)의 성격을 지닌다. 헷세의 각각의 작품은
헷세 그 자신 자체의 각각이며, 주인공의 자기실현 과정은 헷세 자신의 자기표현
이다. 헷세의 작품 속에 투영된 작가의 모습과 극중인물과의 직접적 관련성은 그
어떤 작가보다도 강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의 작품으로부터 고뇌에 찬 경건적
구도자 헷세를 발견해 낼 수 있는 것이다. 작품 [싣달타]는 작가 헤르만 헷세의
자기 완성을 향한 구도(구도)의 내면적 과정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그는
[신학단상(단상, Ein Stucken Theologie)]에서 인간을 두가지 기본유형으로 나누
고 있는데, '이성적 인간'과 '경건한 인간'이 그것이다. 작품 [싣달타]에서의
Govinda는 '이성적 인간'이며, Siddhartha는 경건한 인간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헷세가 말하는 이성적 인간이란 '인간의 이성'만을 생활방식의 지침으로 삼아 계
율을 지키며, 육적 욕망을 극복하려고 애쓰는 고빈다의 인간상이다. 이에 대조되
는 '경건한 사람'의 경건성이란 종교적 성스러움이나 경건함과는 다른 외경(외경)
즉, 세상 전체와 자연과 같은 인간에 대해서 갖는 개개인에 대한 존경이며, 동참
과 책임감정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종류의 경건성은 종교의식이나 계
율, 금욕을 통행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많은 오해, 오류(오류)와 고뇌, 많은 자기
학대와 크나큰 어리석음을 통해서 도달되어지는 것이다. 싣달타는 온갖 체험을 통
해 그 경건성에 도달한다. 그의 경건성은 고빈다와 같이 현실 부정적이고 염세적
인 인생관이 아니라, 다양한 삶 속에서 형성된 건강함과 명랑성을 뜻하는 것이라
하겠다. 이를 위해 싣달타-헤르만 헷세-는 첫째, 자기 자신의 길을 간다. [데미
안]에서 Sinclair가 양친의 '밝은 세계'를 떠나듯이 싣달타도 그의 부모를 떠나
자기 자신의 길을 걷는다. 이는 전통-서구-와의 단절을 의미한다. 전통과 타인의
가치관, 도덕과 타인의 자기에 대한 기대마저도 부정해야 하는 것이다. 둘째, 교
의(교의)를 배척한다. 헷세는 [유리알 유희]에서 '진리는 체험하는 것이지 결코
가르쳐질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싣달타]는 2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제 1부는
고빈다의 장(장)이며, 이성 또는 정신의 세계를 그 대상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이성을 대변하는 고빈다가 2부 마지막 장에서 완성자 싣달타에게 그가 얻지 못한
진리에의 가르침을 묻는 구성은 정신 일변도의 사변적인 삶의 거부이며, 현실과
사물을 떠난 자기실현은 진정한 인간의 길이 아님과 동시에, 특히 전쟁을 경험한
현대인들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음을 암시해주는 것이라 하겠다. 셋째, 싣달타-헷
세-는 모든 삶의 체험을 긍정한다. [데미안]에서, 밝은 세계 속의 Sinclair가 어
두운 세계에 사는 Kromer에 의해 거짓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은 그의 완성을 위한
필연적 과정이다. 싣달타 역시 그가 최후에 깨달은 것은 현실을 긍정하고 세계의
모든 것을 외경하며 사랑하는 것이었다. 이것이 헷세의 전일(전일)적 세계의 추구
이다. 싣달타의 자기실현은 정신과 자연을 같은 비중으로 체험하고, 이 둘을 하나
로 조화시킴으로써 이루어졌다. 고빈다가 완성에 이룰 수 없었던 가장 큰 이유는
그가 전일의 세계를 멀리하고 정신의 세계만을 추구하였기 때문이며, [싣달타]의
강은 이 전일성의 극대화된 상징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싣달타-헷세-는 사회적
완성을 지향한다. 그는 개인적 완성을 넘어서 정신과 자연의 두세계를 건네주는
뱃사공으로 여생을 마치게 되는 것이다. 그의 삶의 최대 목표는 '자기완성'이었
으며 그의 생애는 이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경건적 구도자의 모습이었던 것이
다.
우리는 여기까지 헷세의 생애와 작품세계를 살펴보았다. 그의 작품이 그의 생
애와 분리되어 생각될 수 없음은 이미 전술한 바 있다. 헷세가 그의 작품 속에 보
여준 그의 생애는 한마디로 서구의 '같음의 한계'를 지적하고, 동양의 '다름'을
통해 동,서양 합일의 완성을 추구하는 것이었다. 그가 의미하는 서구의 같음이란
절대화된 이성이며, 합리주의와 과학은 서구 몰락의 주요인이었다. 그러나 서구정
신과 그 궤를 같이해 온 기독교는 이 비판을 면할 길이 없었다. 헷세 뿐 아니라
당시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기독교는 서구를 대표하는 것이었고, 그 동일성 속에
서 기독교를 분리시킬 어떤 기준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논의를
전개시켜 나가기 위해 동양을 알아야 할 것이다.
IV. 열리는 새로운 세계- 동양의 종교와 사상
동양은 스스로 자신을 밝혀내어 본적이 없다. 그것은 동양적이 아니다. 서양
의 같음이 그 지배적 속성을 발휘하여 침묵하는 동양을 해체시켰을 때, 그때 동양
은 현대사의 무대에 나타났다. 그러나 동시에 침묵하는 동양의 다름은 서양의 같
음을 해체시키고 그 중심에 커다란 구멍을 뚫어 놓았다. 침묵하는 동양의 다름은
서양의 같음에 뚫려진 그 구멍을 통해서만 볼 수 있을 따름이라 하겠다. 이는 여
기서 이루어질 우리의 논의가 동양철학의 정체를 규명하고자 함이 아니라는 것을
전제한다. 우리는 단지 헤르만 헷세라는 한 구멍을 통해 동양의 다름을 살펴보고
자 하는 것이다.
1. 인도 종교와 철학
헷세의 동양에 대한 사고(사고)는 다분히 관념적이며 이상적인 것이었다. 그러
나 그러한 관념적 사고는 그의 지속적인 동양연구와 추구로 인하여 구체적이며 본
원적(본원적)인 데에까지 다달았다. 그가 최초로 받은 동양사상은 인도의 종교
와 철학이었다. 인도는 그가 서양세계로부터 도주할 수 있는 통로를 제공해 주었
을 뿐만 아니라 인도의 통일관(Einheitsgedanken)은 그의 작품의 핵심적 모티브가
되었던 것이다. 인도는 확실히 그가 안주할 새로운 '정신풍토(geistige
landschaft)'였으며 정신사의 새로운 영역이었다. 인도철학은 인도의 종교와 함
께 그 기원과 양상을 측정할 수 없을 만큼이나 오랜 세월에 걸쳐 발전해 왔다. 이
러한 인도의 종교 및 철학은 다음과 같이 특징되어 질 수 있다. 첫째, 인도의 종
교와 철학은 이상적으로 해탈(해탈 moksa, 또는 열반 nirvana)과 법(법 dharma)을
신앙함이고, 둘째, 현실적으로 실생활에서의 이(artha 또는 원)와 락(kama,
ananda)을 추구함이고 셋째, 륜회전생(samsara)속에서 무상(무상)한 가아(aham)와
거기서 벗어나는 영원불변하는 진아(atman)의 자각과 실현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다. 인도철학의 시기 구분은 크게 넷으로 나뉘는데, 헷세에게 가장 큰 영향
을 준 것은 제1기 베다 시대의 우파니샤드(upanidad)였다. 우파니샤드의 중심사상
은 범아일여(범아일여)의 사상으로써 우주의 본체인 Brahman(범)과 개인의 본질인
Atman(아)의 요소를 동일한 선상에 놓고, Joga나 참선(참선)을 통한 신비적 합일
을 꾀하는 것이다. 무한한 우주의 본체와 작용을 유한하고 왜소한 인간이 감지
한다는 것은 인간 본래의 능력으로 불가능하므로, 우주를 한 인간 속에 끌어들여
인간의 불가사의를 해결함으로써 우주의 불가사의를 해결하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주의 본질에 대한 탐구는 자연히 자아의 탐구로 귀결되며, 우주가 관찰의 촛점
이 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그 대상이 된다. 그러므로 인도철학에서는 우주의 본
질이 무엇인가하는 외계(외계)의 탐구보다는 인간의 본질이 무엇인가하는 내면의
탐구에 더 비중을 두는 것이다. [싣달타]에 인용된 활과 화살의 비유는 자아가 어
떻게 우주의 본질인 범(범)과 합일(합일)될 수 있는가 하는 것을 설명해 주는 것
이다. 싣달타가 나중에 도달하게 되는 '옴(Om)'의 경지는 브라만교적인 것으로
서 자아가 범과 신비적 합일을 이루게 되는, 대립이 소멸된 상태를 가리키는 것이
라 하겠다. 이는 헷세에게 '통일'에 대한 의식을 전해준 것이라 볼 수 있다.
2. 불교
헷세는 사변적이고 철학적인 인도의 철학과 종교로부터 점차 불교의 영역으로 넘어오
게 되었다. 그는마치 개신교가 구교에서 개혁하여 나오듯이 불교도 인도교로부터의 개혁으로 보았다.
불교는 인도의종교와는 달리 창시자가 분명한 종교중의 하나이다. 16세기 불교가 서구에 소개되었을 당시, 불교는 단지 우상으로 취급되었지만, 20세기에 들어서 석가모니는 성자로 찬양되기 시작했고, 칼 야스퍼스는 그를 패러다임을 수립한 위대한 4명의 철학자중 한 사람으로 평가하였다. 불교의 핵심은 최고의 궁극적존재로 생각되는 열반(Nirvana)에 도달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를 위한 방법이 '4성체(성체)'와 '8정도(정도)'이다. 열반이란 욕망의 불길을 꺼버리고 난 다음의 고통으로부터의 최종적 해방이다. 그것은 끊임없는 업(Karma)으로부터 벗어나는 마음의 상태로서 육체적 구속에서의 해방, 평화와 안식의 최상 의식, 그리고 완전하고 평온한 행복이라고 정의될 수 있다. 오늘날 불교는 같은 뿌리에서 자라온두가지의 형태를 가지는데, 소승불교와 대승불교가 그것이다. 소승불교는 불교의 최초 형태로서, 정신적 깨달음에 이르는 좁고도 준엄한 길을 포함하는 가르침, 즉 보수적이며 법률을 존중하는 가르침으로특징된다. 반대로 대승불교는 깨달음에 이르는 넓고 관대한 길을 가진, 좀더 자유로운 학파이다. 이러한 불교에 대한 헷세의 이해와 관심은 [싣달타]에 압축되어 나타난다. 고빈다와 싣달타는 소승과 대승을 상징한다. 전술한 바와 같이 고빈다는 소극적이며 논리적이고, 학파적이며, 자기해탈(자기해탈)에힘쓰지만, 싣달타는 적극적이고 체험적이며 이타(리타)적 해탈에 힘쓴다. 두인물 가운데 싣달타가 완성에 이르고 자연과 이성 사이를 건네주는 뱃사공으로 정착되는 것은 헷세가 받아들인 불교가 대승적 성격이었음을 암시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것은 이타적, 사회적 자각을 뜻하며 이는
곧 대승의 핵심사상인 구세(구세)사상으로 이해되는 것이다. 싣달타의 사명감은 헷세 자신의 것이기도 하다. 그는 뱃사공으로서, 완성자로서, 차안(차안)과 피안(피안), 이상과 현실, 체험과 인식, 동양과 서양을 연결해 주는 중개자로서 그의 의무감과 사명을 자각한 것이다. 또한 헷세의 작품들 속에서 불교가 말하는 우주론적(공간적, 시간적) 동일성과 인간 본질로서의 동일성을 발견할 수 있다. 불교에서는 자연과 인간 사이에 있어서 동일성의 원리가 작용하며, 주객(주객)의 동일성이 용납(용납)된다. 자연과 인간이 이야기를 나누고 자연을 통하여 인간을 발견한다. 또한 자연은 인간의 마음을 비추는 거울이며, 가장 깊은 내면에서의 동일체이다. 그러므로 자연과 일치했을 때 인간은 완성되며 구제되는 것이다. 인간과 자연의관계는 지배나 종속의 관계가 아니라 동일한 횡적 관계이며, 신과 인간 사이에도 이 관계가 성립한다.
불교적 신이란 동일성이 지배하는 자아의 모습인 것인다. 헷세의 작품에 나타난
불교의 동시성(Gleichzeitigkeit)은 무시간성이며 초시간성이다. 불교에서의 명상(명상)이나 금욕,
고행은 모두 현상계를 지배하는 시간성과 공간성을 초월하려는 의도이며, 이런 상태에서만 본체계(본체계)를 알 수 있다고 가르친다. 그러므로 세계는 현존하는 한 순간 순간이 완전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인간본질의 동일성이란, 범부(범부)와 각자(각자)와의 차이는 전무(전무)하며 십방삼세(십방삼세)를 통하여중생의 수만큼 부처나 보살(보살)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행동이 전적으로 선하거나 전적으로 악하다고는 말할 수 없고, 인간은 순간적으로 선하기도 하고 악하기도 하다는 것이다. 여기서부터 헷세의 전일성은 그 모습을 구체화시켜 나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3. 중국의 사상
(1) 도
중국의 도가사상은 동양 사유의 가장 중요한 뿌리 중의 하나이며, 노자의 [도덕경]과
도교는 헷세에게가장 큰 영향을 주었다. 헷세는 노자가 당시에 끼친 영향을 도스토예프스키
(Dostojewski) 이래로 가장큰 것이라고 찬사하고, [역경]과 더불어 [도덕경]을 논리적 체계가 무시된, 언어를 초월한 성경과 같은책이라고 말하였다. 그는 "우리에게 필요한 지혜가 노자에게 있으며, 이런 지혜를 유럽 언어로 번역하는 것이 우리가 현재 해야 할 유일한 정신적 과제"라고 보았다. 작품 [싣달타]에서 바스데바(vasudeva)는 도사상의 핵심적 인물이며, 그는 무위(무위), 무작위(무작위)와 무학(무학)과 무의도(무의도)의 모습을 상징하는 것이다. 도가의 도는 정의 될 수 없다.(도가도 비상도) 그것은 구태여 글자로 이름한다면 도라 하겠다.<[노자] 제25장> 도는 형상과 감각의 영역을 초월한 것이며,<제14장> 천지가 생기기 전부터 존재하는 것으로 시간을 초월한다. 그것은 자체로 존재하고, 아무것에도 의존치 않으며, 어떤 것에 의해서도 바꾸어 질 수 없다. 도는 천하만물의 근원적 존재이며, 만물을 만들어 내는 근원인 것이다.<제25장> 도가의 핵심사상은 '무위자연'(무위자연)이다. 여기서 무위란 자연과 같은 말로써 "항상 하는 것이 없으면서, 하지 않는 것이 없다"고 하는 것이다. 이는 작위 즉 자연에 대한 모든인위적인 것을 거부하는 것이다. 작품 [싣달타]에서 고빈다가 완성에 이를 수 없었던
가장 큰 이유가바로 지나치게 작위하였기 때문이며, 어떤 목표와 의도를 지니고 이에 도달키 위해 노력하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싣달타] 속에 나타난 고빈다와 싣달타의 대화를 들여다보도록 하자.
"누구든 무엇인가를 구하고자 할 때는 구하는 것에만 눈을 팔다가 아
무것도 발견하지 못하는 수가 있지요. 구하고자 하는 것만 생각하기 때문
에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하고, 아무것도 마음속에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이지요... '발견한다는 것'은 어떤 것에 사로잡혀 있지 않는 자유로운 상
태이지요. 말하자면 목표를 갖지 않는 것입니다."
결국 도의 경지는 무지무욕(무지무욕)의 경지이며, 운명을 사랑하고 의지를 버
리고 자연의 순리대로 행하는 것이라 하겠다.
(2) 역(역)
'역(역)'이 중국 사상의 중심이라는 것을 아는 것은 중요하다. [역경]은 모
든 중국사상의 근원이 되며, 또한 유교의 대표적 경전이다. 그것은 서로 반대되는
음(음)과 양(양)이라는 양극 사이의 주기적인 순환의 논리를 통하여, 자연과 인간
을 관찰하고 있다. 즉 우주는 하늘과 땅, 낮과 밤, 남자와 여자, 암술과 수술등
수많은 반대의 성질을 갖는 한쌍으로 형성되어 있다. 그러나 이 반대되는 모든 각
조의 한쪽 계열은 각각의 다른쪽 계열에 대하여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조화
를 이루며, 각각의 생성변화를 연속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주의 모든 만물은 이
음양에 의하여 생성되는 것이고, 이 음양의 근원적 자리가 태극(태극)이며, 생성
변화에 작용하는 것이 바로 도라는 것이다. 즉 역의 근본원리는 '변화'이며, 이
를 통한 전일적 조화를 꾀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 [역경]은 헷세의 작품 [유리알
유리]에 가장 중요하고 효과적인 작용을 남겼을 뿐 아니라 헷세에 있어 '생각되고
생존될 수 있는 모든 것이 씌어진 책'으로 이해되었다. 헤르만 헷세를 강하게
이끌었던 [역경]의 배경이란 서양의 사유와는 달리 합리적 및 비합리적 힘을 모두
이끌어 들이는 전일적인 특성과, 시간을 배제하고 초월하는 조직, 그리고 하늘,
땅, 인간의 우주적인 단일성으로 조화적인 질서에 대한 기본적 요구라 할 수 있
다. 이러한 [역경]의 변화와 이에 대한 전위적 조화는 헷세의 중심사상 '양극적
전일성'으로 강력히 흡수되었던 것이다.
4. 양극적 전일사상
헷세가 이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의 종합이 그의 근본사상인 '양극적 전일사상
(량극적 전일사상)'이다. 그 안에는 그가 서구의 위기를 이해하는 방식과 그로부
터 동양의 발견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가 담겨 있다. 헷세는 이를 통해 서구를 구
원코자 했던 것이다. 먼저 헷세는 이 세계를 양극의 대립으로 보며, 그것을 필연
적인 것으로 본다. 그의 작품 속에 나타난 대표적인 양극성은 정신과 자연, 선과
악, 죽음과 삶, 고뇌와 행복 등이다. 그의 작품 [황야의 늑대]에서는 양극성을 다
음과 같이 정의 내리고 있다.
"인간의 가장 내면적인 결정은 한편으론 그를 '정신'으로,신(신)에게
로 몰고가지만, 또다른 한편으로 내면적 동경이 그를 '자연'으로, 어머니
에게로 이끈다. 그의 삶은 두 거대한 힘 사이에서 공포에 가득차 이리저
리 떠돌면서 흔들거린다."
이 양극에 대하여 헷세는 '두영혼', '두개의 극', '두세계' 등으로 표현하였
고, 특히 그의 초기 작품에는 '아폴론적 -디오니소스적'이라는 말이 쓰였다. 여기
서 표현되는 두개의 양극이 헷세가 이해하는 서구와 동양이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
이다. 그것이 그가 이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헷세는 이 양극성을
대립으로 파악하지 않고 초시간적 통일로 이해한다. 즉 이 양극은 통일을 전제하
며, 양극의 대립은 '통일의 양극'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대립적인 두개의 사물
또는 두개의 개념은 동등한 가치와 중요성을 갖는다. 또한 대립은 취사 선택의 대
상이 아니며, 오히려 인생을 풍요롭게 하는 요소이다. 그것은 양자택일이 아닌 양
자겸유(량자겸유)이며, 각각 다른 삶의 방식은 곧 삶의 한 조각이기 때문인 것이
다. 우리는 대립에 대하여 말하는 고빈다와 싣달타의 대화 속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겠다.
"어떤 사상으로 사고되고 언어로 표현되어질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단면적일세. 모두가 단면적이며, 반쪽이며, 모두가 그 전체성이나 완결이
나 단일이 결여되어 있는 것일세... 그러나 세계 그 자체, 우리들 주위와
우리들 내부에 있는 존재는 결코 단면적인 것이 아닐세. 어떠한 인간이나
어떠한 행위라도 완벽하게 윤회라든지 열반이라고 할 수는 없네. 또한 인
간이 완벽하게 성스럽다거나 죄 속에 있는 것도 아닐세...그것이 그렇게
보이는 까닭은 우리가 시간이라는 것을 절대적인 것으로 착각하고 있기
때문이네... 그리고 시간이라는 것은 실재하지 않는다면, 세계와 영원,
번뇌와 해탈, 선과 악 사이에 존재하는 듯이 보이는 틈도 역시 착각에 지
나치지 않는 것일세."
이제 우리는 헤르만 헷세라는 한 틈을 통해 들여다본 동양의 '다름'이 서양의
그것과 어떻게 다른지 가름해 보아야 한다. 동시에 헷세의 이해와 그의 삶이 현대
의 삶과 기독교에 무엇을 가져다 주었는지를 살펴볼 것이다. 일반적으로 서양의
사유는 주관과 객관의 분리를 전제하고, 주관이 요청하는 개념에 의해서 대상을
분석적으로 연역해 가는 방식을 취하는 것이 상례로 되어 있다. 즉 사물들 사이에
각각의 같음을 자기 동일화하여 이를 무모순(무모순)의 개념, 또는 명제로 통합하
고, 이를 보편개념을 통해 이 세계의 존재와 현상을 연역추론해 가는 것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 예로 데모크리토스의 '원자론'을 들 수 있다. 여기서 '원자
'란 결코 감각적 성질을 갖는 것이 아니며, 또한 감각적 술어로 설명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보편적인 수학의 여러 법칙을 만족시킬 수 있는 실체로서,
일종의 과학을 정의하기 위해서 도입된 보편적 법칙의 한 예라고 볼 수 있겠다.
말하자면 만물의 근원으로서의 원자의 가정은 만물의 통일적인 인식을 가능케 하
기 위한 보편적 명제를 구성하기 위한 요청인 것이다. 그러므로 서양의 사유는 법
칙과 보편개념을 추구하며, 이는 다시 무모순의 연역추리를 요구한다고 하겠다.
이에 반해 동양의 사유는 일반적으로 자연과 인간에 관한 지식을 실존적으로
직접 이해하고 체험할 수 있는 것에 국한하고 있는 것과 연관성을 갖고 있으며,
현실적으로 보편적인 것, 즉 전(전)존재 내지 전환경에 있어서 동일한 것은 한가
지도 없다고 하는 것과 연관되어 있다. 그러므로 동양사상의 목표는 모든 사물
을 설명하는 종합적 지식에 있는 것이 아니라, 브라만(Brahman)이라 하든, 아트만
(Atman)이라 하든, 니르바나(Nirvana)라고 하든, 혹은 도라고 하든 결국 직접적인
절대적 직관에 도달하는데 있는 것이라 하겠다. 여기서 직관(직관)이란 서양의
'논리'와 대립되는 말로써, 서양이 추구하는 지식이란 결코 불가능하며, 그것은
다른 이에게 전달될 수 없음을 의미한다. 헷세는 서양의 이성으로 대표되는 '고빈
다'에게 다음과 같이 충고한다.
"나는 가끔 한시간 동안이나 때로는 하루종일, 마치 사람이 가슴속에
서 생을 느끼듯 마음속에서 지혜를 느낀 적도 있네. 그것은 실로 여러 가
지 사상이었기 때문에 그것들을 자네에게 전달한다는 것은 나로서는 심히
어려운 일일세... 지혜라는 것은 전달할 수 없는 것이어서 현자(현자)가
그것을 전달하고자 해도 그 말은 어리석게 들린다는 사실일세... 그 때문
에 나는 어떤 스승도 따르지 못했다네. 나는 하나의 사상을 찾아냈네...
그것은 내가 찾아낸 최고의 사상일세. '모든 진리는 그 역도 역시 진리이
다'라고 하는 사상일세."
우리는 여기에서 서양의 사유가 볼 수 없었던 세계의 절반의 부분을 동양의 사
상이 훌륭히 설명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즉 서양의 사유와 동양의 사유는
참 존재를 비추는 두개의 빛이며, 그 두개의 빛이 만나는 접촉점을 우리가 지향해
야 한다는 것이다. 헷세가 이 세계를 서양과 동양이란 두개의 양극으로 이해하고,
그 통일을 꾀하고자 한점에서 그는 옳았다. 그러나 그의 전일(전일)로 가는 방법
론은 고빈다보다는 싣달타에 가까왔으며, 고뇌보다는 낙관에 가까왔고, 서양보다
는 동양에 가까왔음을 우리는 간과할 수 없다. 즉, 그는 서양과 동양의 합일을 추
구하였지만, 그의 생애와 그의 작품은 너무도 동양적인 것이다. 그의 동양으로의
도주는 사실 반(반)서구를 의미하였다 하겠다. 그러므로 서구적인 모든 것을 포
기하는 그에게서 윤리관이란 착각이며 불필요한 것이었다. 그는 모든 행위를 긍정
하며 낙관한다. [데미안]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 세상의 존재하는 전부를 인정하고 신성시하지 않
으면 안된다고 생각해. 공식적으로 분리된채 공식적으로 인정받는 절반만
이 아니라 온전한 전체를 말야. 우리는 신께 예배드리는 동시에 악마에게
도 예배를 드리지 않으면 안돼. 그래야만 정당하다고 할 수 있어. 그렇지
않다면 자신의 내부에 악마까지도 내재시키고 있는 신, 즉 이 세상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일 앞에서도 사람들이 그 앞에서 의례적으로 눈감을 필
요가 없는 그러한 신을!"
결국 그에게 선한 행위란 악한 행위와 본질적으로 하나이며, 기독교의 교리는
독단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그를 '히피의 사도'로 만들었다. 찢어지는 메탈음악,
마약 등으로 특징지워지는 미국의 한시대 젊은이들과 헷세 자신은 떨어져 생각될
수 없는 것이었다. 그에게 기독교는 그의 자신의 종교라는 증언과는 반대로, 독단
이며 불충분하고 그 체계와 교리는 전해질 수 없으며, 모든 이를 구원할 수 없는
반쪽 자리 종교에 불과한 종교라는 것이다. 결국 그의 정신은 서구와 동양의 통일
보다는 동양을 선택함으로써 기독교로부터 멀리 떠난 것이었으며, 헷세는 허무주
의자란 소리를 면하기 어렵다 하겠다.
V. 동서양 합일의 가능성
우리는 전장(전장)에서 서양의 '같음'과 동양의 '다름'이 이 세계를 이해하는
축(축)이라는 사실을 더듬어 왔다. 과연 보편과 개체는, 본질과 실존은, 절대와
상대는, 이성과 계시는 어느 한쪽이 절대화되어 편향적으로 이해될 수 없으며, 한
걸음 뒤에서 이들 모두를 동시적으로 보는 안목이 필요하다 하겠다. 그것이 진정
한 하나님과 인간을 이해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절대화
로부터 벗어날 수 있으며, 상대화를 극복할 수 있는가? 여기서 우리는 우리의 입
장을 분명히 해야 할 필요가 있다. 우리의 논의가 마치 너무나 사변적이고 기독교
인의 진리와 무관한 것처럼 보여질 수 있기 때문이다. 동서양 합일의 모델은 현대
의 위기에 처한 기독교가 이를 극복하기 위한 모색이다. 서구와 함께 문명화된 기
독교가 동서양 합일의 시대 속에서 어떻게 선포되어야 하는가? 우리는 이제 그러
한 모델들을 찾아 그것들을 살펴보고자 할 것이다. 동서양을 합일하는 모델이 기
독교의 전통 가운데서 발생하고 있다는 것은 상당히 고무적인 일이다. 그러나 화
이트헤드(Whitehead)의 '과정 철학'의 영향을 받아 형성된 '과정 신학'이나, 종교
에 통일을 꾀하는 '종교다원주의' 등은 비록 기독교적 전통에서 제기되어진 시도
이기는 하나, 그 내용을 전개해 나가는 데 있어 진정한 기독교 진리에서 치우침이
없는지 보다 신중하고 세밀한 접근이 필요하다 하겠다.
1. 과정철학과 과정신학
현대 서양신학의 흐름에 있어서 최근까지, '신론(신론)'의 문제는 가장 활발히
논의되어진 논제 중의 하나이다. 현대 서양철학과 그 궤를 같이하는 서구신학은
하나님에 대한 전통적 개념을 상실하고 말았고, 신(신)은 이 회의적인 시대 속에
어떻게 이해되며 무엇을 의미하는 지를 물었다. 이러한 가운데 신에 대한 교리를
재수립하려고 일어선 한 부류의 흐름이 있었는데, 그것이 과정신학(process
theology)이다. 이는 어떤 특수한 철학적 전제와 강하게 유대를 맺고 있었는데,
그것이 화이트헤르(Alfred North Whitehead)의 '과정철학'이다. 화이트헤드는 '모
든 사물은 서로서로 연결되어 끊임없이 영향을 미치며, 이 영향 때문에 있게 된
다'고 주장한다. 곧 '있음(being/존재)'이 아닌 '생겨남(becoming/형성)'이라는
주장이다. 그런데 이 생겨남(생성)이라는 개념은 각각의 사물이 별개의 것으로 나
누어져 있지 않으며, 오히려 이들 사이에 맺게되는 관계와 상호영향이 모든 사물
이나 사건을 구성하는 요인이 됨을 강조하는 것이다. 결국 만물을 '유기체'로서
이해하는 특징을 띠게 된다. 다시 말해 이전에는 유기체적인 과정이라는 가장 '구
체적'인 것 대신에, 독립적 존재라는 '추상적'인 것을 실체(실체)로 혼동하여 왔
다는 것이다. 이 오류를 피할 수 있는 방법으로 화이트헤드는 서구 철학이 만들어
놓는 이분법적 이해를 극복하고, 만물 사이의 단절이나 독립보다는 관계성을 고려
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즉 첫째, '한순간의 있음'을 강조하여 만물을 존재
(being)라 하지 않고 현실체라 한다. 둘째, 개현실체 안에 전단계의 모든 현실 계
기들이 '함께함'을 강조한다. 셋째, 개현실체는 정신적인 축과 물질적인 축을 동
시에 갖고 있다. 넷째, 이 두 축을 중심으로 시간적으로 앞선 모든 계기들을 자신
안에 받아들이거나 걸러내고, 또 다가올 모든 계기들을 예상함으로써 '한 순간의
있음(현실체)'을 결정하는 완성에 이르게 된다. 다섯째, 이 완성의 순간에 객체적
으로는 불멸하게 되고 능동적으로 그 다음 단계의 현실체에 참여하게 된다는 것이
다.
이상에서 본대로 화이트헤드는 서로서로 영향을 끼치며 맺게되는 관계성, 모든
현실체의 특성인 양극성, 그리고 전체적인 생성과정의 흐름을 강조하는 하나의 철
학체계를 구축하려고 시도하였음을 알 수 있다. '과정신학'은 이 '유기체철학'
을 받아들여 그들의 신론을 발전시킨다. 그들은 전통신학(traditional theology)
이 신을 절대, 필연, 불변적 존재로 규정한 것에 반하여, 어떤 궁극적 존재가 바
깥의 세계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으면서, 자기는 세계에 영향을 주는 관계를 '외인
적 관계(external relation),라 하며 이러한 관계를 전면 거부한다. 어떤 궁극적
존재도 자기 충족의 이유로 독립해 있을 수 없고, 모든 경험되는 구체적인 존재들
과 유기적 관계 속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 초월과 내재 사이의 구분도 있을 수 없
고, 그 사이의 '위계적 계급(gierarchical gradation)'도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이 모든 것은 '경험사례(actual occasion)'에 불과하며 신(신)마저도 사실체에 지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화이트헤드의 세계관은 서양과 전통신학에게는 여
간 충격적인 것이 아니었으나, 동양에게는 매우 익숙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즉 역
(역)의 '무실체' , 도교나 불교의 이러한 과정 철학적 우주관은 과정신학에 가까
이 가있으며, 실제로 과정신학자들은 그들의 신학과 불교, 도교, 유교, 힌두교 등
과 같은 동양 종교들과의 대화를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신학의 신론에 대하여 사실 복음주의 교회가 받아들일 수
없는 비성서적 요소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들은 첫째, 과정신학자들은
그들의 종말을 가져올 출발점을 택한다. 현대인의 존재들, 곧 자율적이며 독립적
인 자연과 그 세상을 자신의 범주에 예속시키는 인간의 자유의 종합, 자멸적인 이
종합이 그들의 출발점인 것이다. 거기서부터 과정신학자들은 우주 위에 초월하신
존재라는 성경적인 신관을 거부한다. 그대신 그들은 만사가 '하나님 안에서' 일어
나는 것이며 그 하나님은 존재라기 보다는 진화의 배후에 있는 동력으로서 항상
역사와 자연의 모든 것 가운데 나타난다는 것이다. 바로 이 기본적인 개념에서 이
새 경향에 대한 이름, 즉 '과정'이라 하는 용어가 기원하는 것이다. 둘째, 과정신
학자들은 하나님의 주권을 약화시킨다. 하나님은 '우주의 공동 창조자'라고 화이
트헤드는 말한다. 하나님의 창조는 계속적인 진화 과정이요, 질서와 인간이 그 미
래를 결정하는 자유의 공존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의 신학에는 '종말론'이
부재하며, 역사와 인간을 배정하고 형성하는 주권적인 하나님이란 없다. 셋째, 과
정신학은 인격존재로서의 하나님이란 생각을 말소(말소)시키려 한다. 성경의 인격
적인 하나님은 자신을 계시하시고, 자신의 능력으로 말씀하시고 행하시며, 자기
목적들을 조리있게 선포하신다. 그러나 과정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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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차
I. 서론 ......................... ... ........................... 1
II. 길을 잃은 현대 사상 ....................................... 3
1. 아퀴나스적 기원 ............................................. 3
2. 키에르케고르적 기원 ...................................... 8
(1) 실존주의와 그 흐름 .................................... 10
(2) 현대과학의 위기와 윤리 ................................ 11
(3) 전통적 기독교의 위기 .................................. 12
III. 새로운 길의 모색 - H.Hesse의 생애와 작품세계 ........... 14
1. 동양에서부터 온 선교사 헷세 ............................... 14
2. 히피의 사도 헷세 .......................................... 18
3. 경건적 구도자 헷세 ........................................ 19
VI. 열리는 새로운 세계 - 동양의 종교와 사상 ................. 21
1. 인도종교와 철학 .......................................... 22
2. 불교 ..................................................... 23
3. 중국의 사상 ............................................... 25
(1) 도(도) ................................................ 25
(2) 역(역) ................................................ 26
4. 양극적 전일사상 ........................................... 27
V. 동서양 합일의 가능성 ....................................... 31
1. 과정철학과 과정신학 ...................................... 31
2. 종교다원주의 .............................................. 34
3. 새로운 모델과 그동향 ...................................... 37
(1) 대전제로의 회귀 ....................................... 37
(2) 교회에 대한 침묵과 세상에 대한 NETI ................... 40
VI.결론 ........................................................ 42
<참고도서>
I . 서론
서양정신사의 흐름은 결국 그 한계에 다다르고 말았다. 자연주의는 허무주의에
귀결되었고, 허무주의는 자연주의에 서있는 현대 서양인들의 전제(전제)를 극복하
기엔 벅차다. 무신론적 실존주의도, 유신론도 그 세력을 잃은 지 오래다. 결국
서양은 모순 덩어리의 미로(미로), 지적자살(지적자살), 그리고 현대의 모든 사상
의 근저(근저)를 장악한 허무주의 등으로 끝나고 말았다. '이론과 사상의 지체
현상' 으로 특징되는 오늘날, 무한한 인격이시며 초월자이신 하나님의 존재를 인
간은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는가? 한세기 이상 이 질문은 심각하게 되물어져 왔
고, 현대 지성과 종교는 동양에서 그 방향성을 찾고 있다. 그러므로 동양사상에로
의 전환-비약-은 우선적으로 서양사상으로부터의 후퇴를 의미한다.
동양에는 새로운 길이 오래전부터 놓여 있었다. 반합리주의, 혼합주의, 철저히
다른 종교구조, 화해불이론(화해불이론) 등의 특징을 지닌 동양은 상당히 매력적
이다. 서양보다 깊은 전통을 지니고 있는, 소박하고 조용한 동양은 의미와 가치를
갈구하는 서양에게 새로운 해체의 경험이다. 합리주의와 합리성으로 일관해 온 서
양의 사유는, 사물의 다름과 변화를 긍정하고 논리의 무모순성을 거부하는 동양
앞에서 그들 진리관의 전환이란 불가피한 것이었다. 서구확장의 지배적 이행이,
동양을 해제시키고 자신마저 해체되어 버린 현대적 경험으로부터 얻은 유익이란,
존재를 이해하는 새로운 축(축)의 획득이었다. 그러므로 현대인은 서구를 그 지배
적 확장으로 내몰았던 종전의 수평적 사유의 축과, 그들을 가로지르며 비약하는
수직적 사유의 축을 함께 소유함으로써, 분열되고 입체적인 진리관을 가진다. 그
들은 더이상 이성의 절대성을 주장하지 않으며, 또한 그 상대성 역시 주장하지 않
는다. 그들은 그 두개의 축이 교차하는 어디쯤엔가에 참존재의 모습이 있을 것이
라는 것을 안다. 그 어디쯤엔가에 동서양 합일의 새로운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현대인이 입을 여는 순간 그들이 말하려 했던 모든 것은 급속히 상대화
되고 만다. 그것은 어떤 종류의 절대성과 고유성도 상대화시켜 버리고, 그 주체로
서의 자신마저 상대화시켜 버리는 절대적 상대주의이다. 현대인은 세계를 비추는
두개 사유의 축을 통해 그들의 마음이 바라보는 것을 말하려 하지만, 사고의 전달
이라 하는 것이 보편개념으로서의 언어를 사용하는 이상, 우리는 이내 두 축 사이
를 방황하는 우리 자신의 실존과 만날 수 밖에 없다. 우린 때론 법칙성의 논리 속
에, 때론 무모순의 모순 속에 우리의 마음을 내맡긴채, 단절과 단절의 순간으로
우리 삶을 영위하는 것이다. 여기에 현대문명의 전환과 그 위기가 있다.
그렇다면 과연, 과거 서구정신을 주도해 왔던 전통적 기독교는, 서구 정신사의
한계와 함께, 몰락하여 가는 구문명(구문명)의 유물로 묻혀 버리고 말 것인가? 선
교 공동체로서의 기독교회는 지식의 전달을 거부하고, 모든 절대성을 상대화시키
는 현대적 상황 속에서, 그들의 '전함'과 '선포'없이 존속할 수 있는가? 한분 하
나님, 절대적 참존재를 신앙하는 전통적 기독교는 다원화된 사회 속에서 획일화된
현대인들에게 어떻게 그들의 '기독교 유일의 복음'을 변증할 것인가? 이것이 이시
대 기독교 선교의 방법론적 위기이며, 그 시대적 전환이 요구된다 하겠다.
그러므로 본고(본고)는 현대 문명전환의 위기에 처한 기독교적 입장에서, 동양
과 서양의 사유를 검토, 비교함으로써 동서양 합일의 가능성을 타진해 보고 그 바
람직한 모델을 모색하고자 한다. 즉 현대의 문명전환의 정체는 '해체'와 '말할 수
없는 전일(전일)'이며, 이에 대하여 현시대 기독교회는 교회에 대한 '침묵'과 세
상에 대한 'NETI'로 도전 받는 기독교 유일의 복음을 수호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본고는 II장에서 현대 서양사상의 위기를 두가지 기원-아퀴나스적
기원과 키에르케고르적 기원-으로 나누어 살펴보고, III장에서는 동양의 사상의
탐구를 위하여 Hermann Hesse라는 인물이 우리의 논의에 사용되어야 하는 이유와
그 가치를 설명한다. IV장에서는 Hermann Hesse라는 틈을 통하여 동양의 사유를
고찰, 서양 사유와의 비교를 검토하고, V장에서는 지금까지 이루어져 온 동서양
합일의 모델을 검토,비판하여 이 시대에 적합한 기독교적 모델을 모색한다. 논의
의 특성상 본고가 많은 사변적이고 개념적인 용어로 일관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감수해야 할 과제였다. 그것은 이 세계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 우리 자신의 모든
행동방식을 결정짓는다는 신념때문이었고, 그러므로 기독교는 전환하는 현대의
상황 속에 가장 먼저 하나님의 절대성을 선포해야 한다는 신앙때문이었다 하겠다.
II. 길을 잃은 현대사상
현대의 위기와 현대사상의 한계를 규정하기 위해서 우리는 두가지의 현대적 기
원을 살펴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하나는 현대성립의 전제가 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현대의 내재적 위기와 한계를 연원(연원)짓게한 것으로써, 아퀴나스적 기
원과 키에르케고르적 기원이 바로 그것이다. 아퀴나스로부터 시작하는 이성에 대
한 자율성의 개방은 헤겔의 절대정신의 추구에 이르기까지, 과학과 합리주의라 하
는 현대서구의 거대한 횡적 질서를 수립하였으며, 키에르케고르로부터 시작하는
보편의 좌절과 비합리적 비약은 전통적 기독교와 더불어 이전의 모든 체제를 무너
뜨리고, 소외와 불안이라하는 서구적 종적질서를 구축하기에 이르렀다. 이 두개의
축 사이의 긴장 가운데에서 정확한 좌표를 찾지 못하는 현대인의 불명확한 실존이
현대적 의미의 한계이며 위기라 할 것이다.
1. 아퀴나스적 기원
어거스틴(Augustine : 354-430)과 함께 중세철학을 대표하는 토마스 아퀴나스
(Tomas Aquinas : 1225-74)의 위대함은 '독창성'보다는 그의 '종합의 능력'에 있
었다. 그의 사상은 성경의 가르침과 교회의 전통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종합한 것으로서 그 핵심은 '철학과 신앙에 대한 2층 구조적 견해(two-store view
of philosophy and faith)'라 할 수 있다. 그는 이성과 신앙을 예리하게 구별했
다. 신학은 계시에 의존하며 철학은 이성에 속한다. 신은 계시에 의해서 알 수 있
는 것처럼 또한 이성에 의해서도 알 수 있다. 계시가 위에서 주어지는 진리라면
이성은 아래로부터 상승하여 얻어지는 진리이다. 그는 모든 기독교의 진리는 철학
적으로 증명할 수 있다는 안셀름과는 멀었다. 그는 양자가 다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기 때문에 철학과 신학-이성과 계시-사이에는 모순이 없다고 보았다. 이것
은 결과적으로 자연이 인간 사고에 중요성을 띠게 된 것이었다. 이전 시대의 비
잔틴 세계는 자연이나 특수한 것들에 대하여 진정한 관심을 가지지 않았기 때문이
다. 그러나 이제 실재는 자연 즉, 사물들의 본성-보편-가운데서도 발견되었으며
이전의 세계 이해는 그 하부에 새로운 실재와의 경계선과 만나게 되었다. 프란시
스 쉐퍼(Francis A. Saeffer)는 이를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은총 : 상층부 - 창조주 하나님, 천국, 천상의 사물,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과 땅에 미치는 그 영향, 인간의 영혼 ; unity(통일)
--------------------------------------------------------------------
자연 : 하층부 - 피조물, 땅과 땅의 것들, 가시적인 것과 인간과 자연이
하는 일, 인간의 육체 ; diversity(다양성)
이성과 계시의 조화 라는 아퀴나스의 공헌은 그의 후세에 의해서 '자연에의
추구'로 변질되고 만다. 사실 아퀴나스는 불완전한 타락론을 가지고 있었다. 그에
따르면 인간의 의지는 타락하였으나 지성은 타락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이성은 자연의 목적적인 질서계의 본원적(본원적)인 존재 원인을 파악할
수 있으며, 성육신이나 삼위일체와 같은 신앙의 비의(비의)를 해명할 수는 없지
만, 사물의 본원적인 존재 원인으로서의 신의 존재는 계시에 의하지 않고서도 확
인시켜 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신)존재를 도출케하는 자연은 신의 완
전의 반영이며 완전의 구성체라는 것이다. 이로써 자연은 이성을 통해 자율성을
획득하게 되었다. 인간은 이제 이 한 영역에서만은 독립적이고 자율적이었다. 철
학도 역시 이 자율적 영역을 근거로 계시와 신학과의 결별을 선언하게 되었고, 신
의 권위로부터 탈출한 인간은 자율적 세계 속의 자아를 발견하게 되었다. 이것이
인본주의(인본주의, 또는 인문주의: humanism)라 불리우는 르네상스(Renaissance)
의 도래이다.
이러한 변화는 중세의 종결을 의미하는 것이었고, 르네상스는 본질적으로 인간
을 인간으로서 그 현재 생활과 아름다움과 만족을 강조하는 새로운 세계관을 감싸
안았다. 자연의 강조와 더불어 은총의 영역이 감소되었고, 은총과 자연의 분리
는 무섭게 파급되었다. 플라톤적 전통을 지닌 인문주의자들은 '은총'을 대신할 새
로운 '보편'을 추구하였지만 구체적이며 특수한 자연은 절대적인 보편으로부터 급
속히 멀어져 갔다.
문예부흥 이후, 근세사상은 자연을 인간의 지배 대상으로 보고 인간을 철학적
사색의 궁극적 기준으로 삼았다. 그러나 Bacon을 위시한 영국의 경험론은 그의
'회의'때문에, Descartes의 대륙합리론은 그의 '독단'때문에 진리인식에 실패하고
말았다. 이들 실패를 떠맡아 비판과 종합의 길을 연 것은 칸트의 'Kopernikus적
전환'이다. 그는 이성의 비판을 통해 인간의 외부 세계에 대한 인식이 오성(오
성)의 순수개념 즉, 범주들(categories)과 직관의 형식이라는 '선천적' 인간정신
을 통하여 바라봄으로 사물 그 자체로서의 지각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밝혀 내었
다. 결국 사물 자체에 대한 인식은 회의되었고, 더욱 소위 질료를 초월하는 실재
에 대한 인식은 포기되었다. 결과적으로 칸트는 "형이상학을 포기하라"고 외친다.
왜냐하면 형이상학은 인간정신의 이해를 완전히 넘어서기 때문인 것이다. 그는
계속해서 인간은 자신의 이성이 옳다고 말하는 것을 행하여야 하며, 하늘의 조언
자(Heavenly advisor)나 동기부여자로서의 신은 불필요하다는 것이다. 이것이 "오
직 이성의 한계 내에서의 종교(Religion Within the Limits of Reason alon)"이
다. 칸트의 사상은 자연의 현상세계가 보편적인 본체의 세계와 관계를 맺는 길
을 어떻게든 발견하려는 것이었지만, 그 결과는 그 사이의 간격을 완전히 단절시
켜 버린 것이라 하겠다.
헤겔은 마지막까지 합리주의(rationalism)를 고수하기 위하여 과감히 합리성
(rationality)을 희생시켜야만 했다. 다시 말해 그는 Logos(혹은 Geist, 정신)을
붙잡기 위해 이전의 직선적인 반정립을 포기해야 했다. 그것은 인식론과 진리에
접근하는 방법론의 변혁을 통한 논리적 종합이었다. 즉 세계와 역사는 절대정신
(Absoluter Geist)의 발전이며, 그것은 정(These)-반(Antithese)-합(Synthese)의
변증법적 과정을 통해 무한히 발전을 거듭한다는 것이다. 절대정신, 또는 세계이
성(Weltvernuft)으로 표현된 신은 더이상 초월적 존재가 아니었다. 역사와 세계
속에 내재하여 갇혀 버린, 비초월의 종합은 증명할 수 없는 관념론에 불과한 것이
었다. 헤겔은 그리스로부터 내려오는 서구적 전통의 위대한 보편적 종합을 수립했
지만, 그의 체계의 개방성은 그의 시대의 마감과 더불어 새로운 시대로의 전환을
가져오게 하였던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헤겔까지 이르는 서구적 사유의 역사가 갖는 의미를 보다 명확
히 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후에 입체적 불연속성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우
리는 서양적 사유의 두가지 공통적 원리를 찾아봄으로써 그 의미를 정리할 수 있
을 것이다. 첫째, 합리주의적(rationalistic)이라는 것이다. '합리주의적'이란
말은 프란시스 쉐퍼가 그의 저서들 속에서 사용하고 있는 용어로서, 절대적으로
그리고 전적으로 자기 자신에게서 출발한 인간이 특수적인 것에 관한 지식을 종합
(gathering)하여 보편적인 것(unversal)을 형성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여
러 면에서 절대주의와도 통하는데, 절대주의란 어떤 의미에서든지 절대자를 승인
하고 그의 추구를 철학의 근본으로 삼는 입장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절대자를 관
념적인 것, 즉 신(신), 절대적 정신, 절대아(절대아)로 보는 절대적 관념론이나,
절대자의 존재를 불가지(불가지)하다고 거부하고 절대자의 존재를 인식이나 실천
의 가능성에 대한 선천적 조건으로 인정한다는 것도 역시 절대주의의 한 변형이라
하겠다.
다른 하나는, 서양의 언어와 논리의 기본적 형태가 고대 그리스 철학의 '로고
스( )'에 연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서 '로고스'란 다의적이고 함축적인
용어로서 철학자의 사색적인 생명의 유기적 기관이라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따라서 서양의 사유형태를 이성의 주체가 되어 언어를 매개로 해서, 논리에 따라
서 추리를 하여 명제를 세우고, 만유의 원리인 이법(리법)을 통하여 진리를 획득
하는 사고방식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반정립(terms of antithesis)'이라
는 용어로 집중되는데 [A=~A] 즉 A는 비(비) A가 아니며, 전제와 결론 사이의 무
모순성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서양사가 합리주의와 반정립을 통하여 구축하고자 했던 것은 하나의 통일된 지
식의 영역이었다. 이 희망은 그리스로부터 시작하여 헤겔에 이르기까지 서양 정신
사를 주도해 온 것이다. 여기서 통일성의 추구는 이후의 불연속성에 주안하여 보
다 넓게 '같음의 운동'이라고 풀 수 있다. '같음의 운동'이란 논리적 사유뿐 아
니라 모든 개별화된 생명의 자기 통일성의 지탱의 추구로부터 일어나는 것이다.
서양의 논리학의 전통에 나타난 형식들은 모두 '같음으로 돌아감'이라는 존재와
의식의 집요한 동기와 전략으로 이루어졌다. 사실 '로고스'라는 것도 자신의 같
음을 지탱하기 위한 파생 질서이다. 이러한 같음으로의 이행은 반드시 지배적인
경향을 가진다. 사실 인간이 추상적 사유를 시작하게 된 '도구적 인간' 으로부터
와 단지 논쟁에서 이기기 위한 논리의 기술을 가르쳤던 소피스트들의 전통 속에
서, 우리의 과거 원시인류의 먹이 정복과 영토 확장의 추구를 보며, 더욱이 이성
을 계시와 신앙의 영역에서 탈출시켜 독립적 영역과 자유성을 부여한 아퀴나스로
부터 헤겔에 이르기까지의 전통 속에서 인간의 자아개념이 횡적으로 계속 확대되
어 나가고 있는 세계대전으로의 이행을 예감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서구의 전
통, 특히 아퀴나스로 시작하는 서구 정신사는 합리주의와 합리성-반정립-을 통한
'같음으로서의 운동'이며, 개인적 자아 개념의 계속적인 확장으로서의 수평축을
구축한 것으로 규정될 수 있다 하겠다.
2. 키에르케고르적 기원
죄렌 키에르케고르(Soren Kierkegoard : 1813-1855)는 실존철학의 시조이며 현
대사상의 아버지이다. 그의 '실존' 속엔 모든 현대적 사유의 중심이 놓여 있고,
그의 '비약' 속에는 모든 현대적 사유의 위기가 놓여 있다. 그는 그의 이전 시대
로부터 물려받은 모든 종류의 보편적 종합을 무너뜨리는데 공헌한 사람이다. 그
는 헤겔을 비판함으로써 그렇게 했다. 반정립의 부정성을 세계 과정 속에서 극복
해 가는 연속적인 종합의 계열에 대한 헤겔의 구상은 사실 본질의 영역에서만 타
당성을 갖는 것이었다. 본질의 영역은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이 아니다. 우리는
선악을 결단해야 하는 비극적 실존의 영역에서 살고 있다. 실존의 영역에서 화해-
보편적 종합-이란 불가능한 것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비판은 헤겔에 있어서 본질
주의적 성취와 실존주의적 비성취, 또는 소외가 구별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
한다. 키에르케고르는 본질과 실존의 영역을 구분함으로써 보편적 종합을 포기했
을 뿐아니라 '합리성' 즉 논리적 과정 역시 거부했다. 논리적 과정이란 현실의 과
정이 아니다. 그것은 시간 안의 과정이 아니라, 논리적 관계에 대한 기술에 불과
한 것이 있다. 헤겔은 논리적 관점에서 본질과 실존을 혼동함으로써 논리의 변증
법적 과정과 역사의 현실적 운동을 혼동하고 만 것이다. 보편적 종합과 논리적 사
유를 포기한 키에르케고르는 외로운 존재였다. 그것은 소외이고 불안이었다.
'죽음에 이르는 병'을 피하기 위해서는 인간 내부로부터가 아닌 인간의 위에서,
또는 밖에서부터 찾아오는 새로운 것이 필요했다. 그것이 키에르케고르의 '비약'
이었다. 신은 인간 내부로부터 끌어내어지는 것이 아니라, 신이 인간 밖에서 그의
아들을 통해 시간 안으로 뚫고 들어오는 것이었다. 우리는 여기서 바르트와 신정
통주의를 통한 전통적 기독교의 위기를 볼 수 있다. 이성을 통해 신의 존재를 확
인시킬 수 있다는 아퀴나스의 신념은, 키에르케고르에겐 치기어린 호언에 불과했
다. 그는 모든 종류의 객관적 확실성을 거부했다. 객관적 확실성이란 본질에 사는
신과 실존에 사는 인간의 상황을 설명해 줄 수 없는 것이다. 객관적, 과학적 연구
영역의 진리는 실존적 진리가 아니다. 실존적 진리는 객관적인 불확실성이며, 개
인적, 정열적 체험 그리고 주관적 확실성이지 객관화할 수 있는 진리는 아니라는
것이다. 이는 객관성에 대한 주체성(주체성)이며 외면성에 대한(against) 내면성
이고, 보편자에 대한 단독자이며, 영원한 필연성에 대한 시간적 우연성을 의미하
는 것이었다. 이것은 반철학(anti-philosophy) 이며 이것이 비약의 확실성이
다. 우리는 여기서 현대 실존주의의 흐름과 전통적 과학의 붕괴를 본다 하겠다.
(1) 실존주의와 그 흐름
전술한 바와 같이 실존이란 현실의 본래적 존재(존재, existentia)이며 본질
(본질, essentia)에 대응하는 말이다. 라틴어원의 의미로는 '밖에(ex) 나타난다
(sistere)'는 뜻으로서 이는 관념적 본질규정, 혹은 합리주의적 체계의 밖으로
나온 구체적, 개별적 존재를 의미하는 동시에 자기 자신에서 밖으로 초월하는 존
재임을 의미하기도 한다. 결국 실존철학이란 이러한 인간의 존재방식(existentia)
을 묻고 그것을 개명(개명)하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인간의 실존, 즉
존재방식은 무엇이고 그것은 어떻게 해결되는가? 야스퍼스에 의하면 실존은 자기
가 짊어진 운명이며, 오히려 이율배반의 절대적, 운명적인 극한상황(극한상황,
Gren zsituation)에 직면함으로써 자각의 계기를 갖는다고 지적한다. 극한상황에
직면한 인간은 사랑(Lieve), 신앙(Glaube), 환상(Phantasie)을 통하여 '신에의 초
월'을 할 수 있다. 신에의 초월은 암호해독(Chiffrelesen)이며, 암호는 곧 상징이
라는 것이다. 이와 반대로 니체는 '신에의 초월'을 거부하고 "신은 죽었다 (Gott
ist tot)"고 외친다. 그가 보는 인간의 실존은 신 때문에 초월을 상실한 공백상
태(Nihilismus)이다. 그는 신(신)대신에 인간의 실존을 견디어 내는 '초인
(Uberermensch)'을 제시한다. 그러나 모든 신을 부정해 버린 니체는 내재(내재)의
입장에 설 수 밖에 없을 뿐 아니라, 신을 상실한 실존은 초월마저 상실하게 된 것
이었다. 사르트르와 까뮈는 인간의 실존을 부조리와 근원적인 우연에 둔다. 그에
게 있어서 인간이 자신을 확증하는 길은 선택과 결단에 의한 '의지에의 행위'를
통해서이다. 그러나 그것은 아무런 내용을 가지지 않는다. 인간의 행위가 발로(발
로)되는 모든 방향은 동등한 것이기 때문이다. Marx에게 있어서 인간의 실존은
노동으로부터 소외된 불평등한 유물론적 인간이다. 그에게도 비약은 있다. 양적팽
창의 질적 변화와도 같은,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통한 유토피아 건설이 그것이라
하겠다. 그의 체계는 현대적 사건으로 붕괴되고 말지만, 그것 역시 그 상대적
진영인 자본주의 체제의 분열에 상당히 크게 작용한 것도 사실이라 하겠다. 결국
실존주의로부터 흘러나오는 서구정신의 흐름은 합리주의에 대한 불신을 구체화시
킨 것이었다. 그들의 실존은 보편적 종합을 거부하며, 그들의 비약은 논리적 접근
을 불허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그들은 합리주의자들이 제시한 형이상학적
개념에 대한 그들의 항의가 근본적 개혁에 이르지 못했다는 것으로 비판되고 있
다. 그들이 항의하였던 종류의 체제를 다시 구성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현
대 서구정신은 절대를 내어 준 결과로 상대를, 필연을 내어 준 결과로 우연을, 무
한한 신을 내어 준 결과로 유한한 인간을 얻는데 그치고 말았다 하겠다.
(2) 현대과학의 위기와 윤리
전통적 기독교에게 심각한 위기를 안겨 주었던 근대과학이 종교개혁의 전통 속
에서 싹트기 시작했다는 사실은 역사의 아이러니이다. 기독교의 과학에의 공헌은
우주의 형상(형상)을 탐구하도록 자극하는 사상적 분위기를 조성하였다는 단순한
이유뿐 아니라, 과학의 성립을 위한 객관적인 실재와, 원인과 결과에 대한 근거를
제시한 것이었다. 그것은 신앙에 대한 이성의 길을 터놓은 아퀴나스적 기원과도
일치했다. 그들 과학자들은 합리적인 우주를 창조하신 합리적인 하나님이 계시고,
따라서 인간이 이성으로써 우주의 형상을 발견해 낼 수 있다고 믿는데서 기독교의
견해와 공통된 견해를 소유하였다. 성경의 가르침의 기반 위에서 과학은 보호되었
고 가치를 인정받았다. 천문학적 편견을 뒤엎은 케플러(Kepler)나 갈릴레오와 쿠
페르니쿠스의 연구는 이러한 배경 속에 있었고, 고전역학의 이론을 확립한 아이작
뉴튼 역시 그와 같았다. 그러나 과학혁명과 더불어 자연의 영역 확대가 은총의 영
역을 축소시키고 멀어지자, 과학의 중심은 자연원인의 일률성으로 옮겨져 결정론
과 기계론적 사고를 파생시켰다. 과학은 법칙성과 인간을 포함한 자연에 대한 인
간의 지배를 추구하였고, 자연계는 법칙으로 통일되어 이성은 절대시되었다. 법칙
성의 필연성은 인간 및 사회에 적용되어 학문의 새로운 방법론으로 파급되었고,
과학의 진보는 유토피아를 약속하는 듯했다. 이러한 것들은 현대과학을 규정하는
절반의 전제이며, 이성의 수평적 발전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아인쉬타인의 '상대성 이론'과 세계대전은 법칙성과 과학의 진보에 대한 신뢰에 결정
적 타격을 안겨주었다. 법칙의 절대성은 상대적이고 개별적인 것으로 판명되고 그들은 더이상 확실한 진리를 소유할 수없게 되었을 뿐 아니라, 과학의 진보는 인류 미래에 도리어 큰 장애가 될지도 모른다고 우려를 낳게 하였다. 윤리를 떨쳐 버린 기계론적 사고는 인간을 중시하지 않고 비인간화와 비도덕적 사회를 만들어 내었고 과학적 진보가 가능케한 자본주의는 '노동으로부터의 소외'라는 Marx의 비판을 면하기 어려웠다. 이러한 단절은 서양정신의 핵인 이성적 몰락과 더불어 과학을 기술로 전락시켜 버렸고, 자연에 대한 인간의 지배는 생태학적 위기로 전환되어, 오히려 자연은 주인으로서 위치되고 만 것이었다. 이상의또다른 단절은 불확실성과 상대성의 현대를 규정하는 나머지 절반의 전제라 할 것이다.
(3) 전통적 기독교의 위기
이제 현대사회와 현대 서구사상의 위기를 언급하는데 있어 또하나의 중요한 요인을 언
급해야 할 필요가있다. 한 운명의 위기와 전환에 대한 종교의 역할을 강조한 스펭글러나 소로킨, 그리고 토인비 등의 연구과업을 빌리지 않더라도 서양은 너무도 기독교적이다. 서양사가 기독교와 분리되어 언급될 수 없다는것은 주지의 사실이고, 서구를 주도해 온 그 결정적 역할은 결코 간과될 수 없다 하겠다. 전통적 기독교의 분열은 사실 서양의 분열이며, 기독교의 위기는 서양의 위기이다. 여기서 우리는 전통적 기독교의위기를 논하는데 있어 긴 언급을 피할 수 있는 여지를 갖고 있다. 그것은 기독교 분열의 위기가 전술(전술)한 서구 정신사와 과학의 분열에 그 궤(궤)를 같이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전술한 서구정신사의 흐름과 용어를 다시 기독교적으로 환원해야 한다. 이를 정리하면 기독교 위기의 정체성은 '신앙과 이성'이며, '내재와 초월'이다. 우리는 그것을 20세기초 이성을 중시하는 자유주의에 대한 근본주의의'신앙수호'에서 볼 수 있으며, 계시의 말씀으로서 성경을 거부하고 계시의 수직적 초월을 말하는 바르트와 내재 속의 접촉점을 묻는 부룬너의 논쟁 속에서 찾을 수 있다. 결국 전통적 기독교의 위기는 그들 진리관의 분열이며, 현대 기독교 역시 또하나의 단절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현대의 키에르케고르적 기원이 이전 시대와의 '단절'을 선언하고, '비약'하였다는 것
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현대과학이 그렇게도 막강한 영향력을 떨치던 '법칙성'을 포기한 이유는 무엇인가? 자유주의에대해 종교개혁의 전통을 수호하고자 했던 바르트가 성경의 권위를 포기하고 계시의 초월을 주장한 것과, 현대의 윤리학이 상황윤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과연 어디서부터 오는 것인가? 그것은 합리주의가, 보편이, 종합이, 절대가, 논리로서는 진정한 존재를 설명해 낼 수 없었기 때문인 것이다. 이는전장(전장)과의 대비를 위해서 '다름'의 발견이라 풀 수 있다. 합리주의와 논리를 통한 존재의 같음을같음으로 증명해 낼 때, 바로 그곳에서 침묵하고 있는 반쪽 존재의 잉여의 발견이며 모순의 인식이다.
보편은 개체 위에 근거하지만 동시에 개체는 보편으로부터 근거한다. 사실 사람이 개
인으로서 인간의상황 안에 있고, 헤겔처럼 신의 자리에 앉지 않는다면 순수한 본질은 불가능하다. 그것은 본질주의의형이상학적 자만이다. 반대로 순수한 실존주의도 불가능하다. 실존을 기술키 위해 언어라는 보편개념을다루지 않는한 그것은 역시 불가능한 것이다. 이 같음으로의 역동적 이행을 잠재우고 존재의 참 면모를 바라보게 하는 것이 바로 그 '다름'이다.
서양의 역사는 언제나 통일을 추구하며 같음으로 이행했지만, 현대의 서양은 미결정과
모순의 잉여지대를 방황한다. 다름의 발견은 같음의 수평적 질서에 반한 수직적 질서에 대한 자각이다. 거침없이 발전하던 횡적인 자기 동일성은 더이상 자기 동일화 할 수 없는 자신의 종적 초월에 부딪혔을 때 비약할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들의 발견은 저항에 불과했다. 서양의 역사는 다름을 설명해 낼 언어를 갖고있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서양인들은 그들을 가로지르는 새로운 축을 발견했지만, 그들 자신의 축과의접촉점을 찾지 못했다. 이 두개의 축 사이에서 어디에 자신의 좌표를 두어야 할지 몰라 불안해 하는 자아가 현대 서양인의 실존이다. 여기에 서구 해체의 원인이 있었고, 동양 발견의 길이 있었다. 서양은그들이 같음으로 해체시켜 버린 동양의 '다름' 속에서 그들이 직면한 위기를 설명해 낼 언어를 찾기위해 이행하여 갈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II. 새로운 길의 모색 - H. Hesse의 생애와 작품세계
우리는 이제 동양적 사유를 살펴보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 이전에 숙고되어야 할 것
이 있다. 우선 동양적이란 말자체가 상대적이다. 즉 그것이 서양적이란 말에 대해서 상대적으로 생겨난 말이고 보면, 원융적(원융적), 포괄적(포괄적), 화해적(화해적)인 동양사유의 진수를 막바로 '동양은 이러하다'라고 꼬집어 말하기가 쉽지 않을뿐 아니라 그 진가를 잃어버린 위험성마저 있다. 그래서 우리는 동양의 마음을통해 서양정신의 위기를 구원코자 했던, 가장 동양적인 한 서양인의 눈에 비친 동양의 모습을 동양에대해 묻는 우리의 물음으로 삼기로 하겠다. 서양의 위기 속에 그 해답을 동양에서 추구한 서양인은사실 H. Hesse만이 아니었다. 야스퍼스가 그러하고, 토인비가 또한 그러하다. 그러나 그 적지 않은 사람들 속에 H. Hesse의 눈을 빌려야 할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그는 얼마나 절박하게 서양의 위기를 인식하고 있었으며, 얼마나 깊이 동양의 지혜를 이해하였는가? 이것이 여기서 다루어야 할 논제들이다.
1. 동양으로부터 온 선교사 헷세
헤르만 헷세는 1877년 남부독일 뷔르텐베르크주의 나골드 강변에 있는 슈바트츠봤트
의 소도시 칼브(Calw)에서 태어났다. 선교사인 그의 아버지 요한네스 헷세(Johannes Hesse)는 1847년 에스트란트에서러시아 추밀원 고문관이자 의사의 아들로 태어났고, 어머니 마리군데르트(Marie Gundert)는 선교사이며저명한 인도학자였던 헤르만 군데르트(Herman Gundert)박사의 딸로 인도에서 출생했다. 그녀의 할아버지 헤르만 군데르트는 경건주의 선교사의 선구로 인도에서 선교활동을 하였고 선교서적을 편찬했을 뿐아니라, 그가 만든 [말람야람어 사전]은 오늘날까지 인도어 연구에 가장 중요한 책으로 뽑히고 있다.
Hesse는 Hermann이란 이름을 물려받은 두 할아버지를 통해 그에게 전해 내려오는 거대
한 유럽의 전통을만날 수 있었던 것이다. 헷세는 [마술사의 어린시절]에서 그의 외할아버지를 다음과 같이 회상하고 있다.
"외할아버지를 통해서 나는 인간에 대한 훌륭한 이해심을 가진 노인의
슬기를 보았을 뿐 아니라, 신앙심이나 신의 나라에 대한 봉사심 또한 슈
바벤 지방의 특색인 물질적인 검약과 정신적인 화려함의 멋진 조화도 보
았는데, 그것은 슈바벤의 라틴어 학교, 신학교 또는 유명한 튀빙겐의 수
도원을 통해서 거의 2백년 이상 유지되고 고귀한 전통으로 물려 내려온
것이었다."
결국 두 가문이 만나게 된 것은 바젤에서였고, 선교사업 때문이었다. 헷세의
선조는 모두 경건주의자들이었고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는데, 그는 그의 가족을 가
리켜 '성자의 공동체'라고 말할 정도였다. 이로써 헷세는 서구정신의 중심인 기
독교의 전통을 그의 가족을 통해 흡수할 수 있었던 것이다.
1891년 헷세가 마올브론(Maulbronner) 신학교에 입학하면서 그의 방황은 시작
되었다. 7개월만에 학교를 탈출한 헷세는 그후 기계공원, 서점원 등으로 일하면
서 작가의 세계에 입문하기 시작하였고 서서히 과거와의 단절을 굳혀 나갔다. 이
때 그의 정신에 거대한 영향을 미친 사람은 야콥 부르크하르트(Jacob
Burclchardt), 프리드리히 니이체, 그리고 오스왈드 스펭글러 등을 들 수 있는데,
이들은 모두 유럽문화의 회의론자들이었다. 당시의 독일은 세기말적, 정신적 혼
돈과 무질서, 정치,경제적인 융성 속에서 과거와의 부조리에서 오는 불안감이 교
차되던 때였으며, 사회 전반에 걸쳐서 안정이나 사고의 깊이가 결여되어 있었다.
이러한 좌절과 갈등 속에서 독일이 추구한 것은 무분별한 세계 지배욕과 물질문명
의 추구였다. 헷세는 이 시대의 피폐한 정신 상황을 "문예란 시대(das
feuilletonische zeitalter)"라고 일컫고 있는데, 이는 당시의 정신 상황이 정신
이 공허하여 중심을 잃었기 때문이었다.
"우리의 이성은 망상이 되어 버렸고, 우리의 지폐는 종이에 불과하고,
우리의 기계는 단지 총을 쏘며 폭발하는데 쓰일 수 있을 뿐이며, 우리의
예술은 자살에 불과하다"
이로부터 형성된 헷세의 서양관은 철저히 부정적인 단절로 시작한다. 그는 서
양이 과도한 지식을 추구하고, 물질문명에 대한 광신적인 태도를 취하며, 근거 없
는 우월주의에 빠져 있다는 반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급기야 유럽이 더 이상
그의 이상(리상)이 아님을 자각하고 유럽으로부터의 도주를 꾀했다. 그는 유럽의
멸망을 믿었고 더욱 유럽이 새로 태어나기 위해서라도 멸망해야 한다고 보았다.
"나는 단지 한가지만 믿는다. 그것은 멸망에 대한 믿음이다. 우리
모두는 죽어야만 한다... 우리는 다시 태어나야 한다... 즉 거대한 전
쟁, 예술로서의 크나큰 변전, 유럽국가들의 크나큰 파괴가 그것이다. 옛
유럽에 있던 우리에게 좋았고 우리들의 것이었던 모든 것이 죽었다."
이와같이 헷세의 동양으로의 접근은 반(반)서구를 의미한다. 그가 서구를 반
대하며 증오한 만큼 동양은 살아 있는 진리체였으며, 떠오르는 빛의 고향이었다.
헷세로 하여금 직접적으로 동양 연구에 심혈을 기울이도록 한 것은 그의 아버
지 요한네스와 일본의 외사촌 군데르트, 그리고 유명한 중국어문학자 R.빌헬름의
영향에 힘입은 것이었다. 인도의 선교사였던 아버지 요한네스는 일생 동안 동양
정신과 지혜를 이해하려 노력하였으며, 그의 [도덕경]에 대한 사랑과, 공자와
노자에 대한 경외심은 아들인 헤르만에게 지속적인 인상을 남겨 주었다. [일본 문
학사] [일본 종교사] [동양의 시] 등 동양정신사에 대한 저술과 [벽암록] 등의 역
서를 남긴 군데르트는 헷세와의 서신 교환을 통해 주로 선불교에 대한 의견을 교
환하였고 동양의 정신도 전해주었다. 당대에 가장 저명했던 중국어문학자 빌헬
름은 중국의 고전-[논어] [도덕경] [장자] [예기]를 대다수 번역하였고, [노자와
도교] [중국 문학사] [중국의 혼] 등을 저술함으로써, 헷세에게 동양사상과 정신
을 불어넣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던 것이다. 결국 헷세는 세상을 떠나는 그날
까지 동양정신의 세계를 그의 문학 속에 시적(시적)으로 표현하고자 끊임없이 시
도하였고, 동양세계와 떼어놓을 수 없는 완전한 하나가 되었다.
"서양의 평균적 인간은 동양의 이상스럽고도 정신적이며, 우리가 이해
할 수 없을 정도로 문명화된 세계를 꿰뚫고 들어갈 수가 없다. 그러나 한
번 이 세계를 알게 되고 그 마력을 맛본자, 그 사람에게는 이 세계란 신
성한 것이다."
그가 유럽의 몰락을 선고하고 동양으로 귀의한 것은 오직 하나의 목적밖에 없
었다. 그것은 동양의 지혜를 통한 서양정신의 구제였다. [싣달타]는 헷세의 동서
양의 이상적 합일의 추구이며 그 표현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이 시대의 "동양에서
온 선교사"라 불리는 것이다.
2. 히피의 사도 헷세
세계문학사에 있어 헷세는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기록된다. 전쟁의 포화 속에서
발표된 [유리알 유희]는 그에게 1946년 노벨문학상을 안겨주었다. 이로부터 일기
시작한 헷세붐은 한국동란과 베트남전쟁, 그리고 1968년 전후의 유럽 및 미국의
'학생운동'을 치르는 동안 전세계 청소년층을 중심으로 확산되었고, 이런 갑작
스런 헷세붐은 헷세를 '히피의 사도'로 만드는 일종의 '미국적 현상'을 낳기까지
했다. 50년대 헷세의 추종자들은 비트세대(Beat Generation)로 유명해 졌는데,
그 미국의 젊은이들은 헷세를 자기들만의 작가로 발견하고 썩지않은 작가로 체험
하려고 했다. 1975년까지 미국에서만도 1천만부 이상의 헷세의 작품이 팔렸으며,
1986년 현재, 동서양 각나라를 막론하고 3천만권 이상 팔려나갔다. 이러한 상황
은 Hesse-Renaissance라는 신조어로 대변되고, 헷세는 학교수업에까지 수용되었
다.
무엇이 헷세붐을 가능케 했는가? Siegfried Unseld는 헷세붐의 요인을 4가지로
나누어 분석하고 있다. 첫째, 그의 작품에서의 극동적 인류적 요소이고, 둘째
는, 그의 언어이며, 셋째, 억압에 대한 반항이며, 넷째, 작품에 서술된 개인화 과
정이라는 것이다. Volker Michels는 그밖에도 '경제 기적'을 이유로 들었고,
Stefan Zweig는 그의 언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찬사한다.
"그의 산문만이 갖는 특이한 순수함, 말로 표현하기 힘든 상황의 표현
에 대한 대가다운 솜씨는, 헷세를 독일문학에서 특별한 위치에 올려놓게
만든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헷세를 세계적인 작가의 위치에 올려놓은 요인은 첫째, 서
구정신의 붕괴 속에 좌표를 잃은 현대인들에게 강력히 어필한 그의 동양에 대한
새로운 이해에 있으며, 둘째, 헷세가 그의 작품세계 속에 그려내는 위기의식이 현
대인의 실존을 밝혀주며 그 해방을 제시하였기 때문이다. 서구문명의 위기는 비인
간화와 자아상실을 가져왔고 그러한 사회 속에 헷세는 진정한 아웃사이더였다. 그
의 작품 속에는 모든 종류의 대립과 위기를 통일시키는 강력한 매력이 있었다. 그
것이 헷세 작품의 중심인 '양극적 전일사상'이다. 모든 대립과 극한 뒤에 존재하
는 '전일성'은 모든 것을 긍정해 주었고, 전쟁과 위기에 지친 현대인에게 이상적
세계에 대한 희망을 선사해 주었다. 이것이 헤르만 헷세를 '히피의 사도'로 올려
세우게 하였던 것이다.
3. 경건적 구도자 헷세
헤르만 헷세에 있어서 그의 작품 양식은 한 개인의 영적인 성장과정을 묘사하
는 자서전적인 성장소설(또는 발전소설)의 성격을 지닌다. 헷세의 각각의 작품은
헷세 그 자신 자체의 각각이며, 주인공의 자기실현 과정은 헷세 자신의 자기표현
이다. 헷세의 작품 속에 투영된 작가의 모습과 극중인물과의 직접적 관련성은 그
어떤 작가보다도 강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의 작품으로부터 고뇌에 찬 경건적
구도자 헷세를 발견해 낼 수 있는 것이다. 작품 [싣달타]는 작가 헤르만 헷세의
자기 완성을 향한 구도(구도)의 내면적 과정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그는
[신학단상(단상, Ein Stucken Theologie)]에서 인간을 두가지 기본유형으로 나누
고 있는데, '이성적 인간'과 '경건한 인간'이 그것이다. 작품 [싣달타]에서의
Govinda는 '이성적 인간'이며, Siddhartha는 경건한 인간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헷세가 말하는 이성적 인간이란 '인간의 이성'만을 생활방식의 지침으로 삼아 계
율을 지키며, 육적 욕망을 극복하려고 애쓰는 고빈다의 인간상이다. 이에 대조되
는 '경건한 사람'의 경건성이란 종교적 성스러움이나 경건함과는 다른 외경(외경)
즉, 세상 전체와 자연과 같은 인간에 대해서 갖는 개개인에 대한 존경이며, 동참
과 책임감정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종류의 경건성은 종교의식이나 계
율, 금욕을 통행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많은 오해, 오류(오류)와 고뇌, 많은 자기
학대와 크나큰 어리석음을 통해서 도달되어지는 것이다. 싣달타는 온갖 체험을 통
해 그 경건성에 도달한다. 그의 경건성은 고빈다와 같이 현실 부정적이고 염세적
인 인생관이 아니라, 다양한 삶 속에서 형성된 건강함과 명랑성을 뜻하는 것이라
하겠다. 이를 위해 싣달타-헤르만 헷세-는 첫째, 자기 자신의 길을 간다. [데미
안]에서 Sinclair가 양친의 '밝은 세계'를 떠나듯이 싣달타도 그의 부모를 떠나
자기 자신의 길을 걷는다. 이는 전통-서구-와의 단절을 의미한다. 전통과 타인의
가치관, 도덕과 타인의 자기에 대한 기대마저도 부정해야 하는 것이다. 둘째, 교
의(교의)를 배척한다. 헷세는 [유리알 유희]에서 '진리는 체험하는 것이지 결코
가르쳐질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싣달타]는 2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제 1부는
고빈다의 장(장)이며, 이성 또는 정신의 세계를 그 대상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이성을 대변하는 고빈다가 2부 마지막 장에서 완성자 싣달타에게 그가 얻지 못한
진리에의 가르침을 묻는 구성은 정신 일변도의 사변적인 삶의 거부이며, 현실과
사물을 떠난 자기실현은 진정한 인간의 길이 아님과 동시에, 특히 전쟁을 경험한
현대인들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음을 암시해주는 것이라 하겠다. 셋째, 싣달타-헷
세-는 모든 삶의 체험을 긍정한다. [데미안]에서, 밝은 세계 속의 Sinclair가 어
두운 세계에 사는 Kromer에 의해 거짓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은 그의 완성을 위한
필연적 과정이다. 싣달타 역시 그가 최후에 깨달은 것은 현실을 긍정하고 세계의
모든 것을 외경하며 사랑하는 것이었다. 이것이 헷세의 전일(전일)적 세계의 추구
이다. 싣달타의 자기실현은 정신과 자연을 같은 비중으로 체험하고, 이 둘을 하나
로 조화시킴으로써 이루어졌다. 고빈다가 완성에 이룰 수 없었던 가장 큰 이유는
그가 전일의 세계를 멀리하고 정신의 세계만을 추구하였기 때문이며, [싣달타]의
강은 이 전일성의 극대화된 상징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싣달타-헷세-는 사회적
완성을 지향한다. 그는 개인적 완성을 넘어서 정신과 자연의 두세계를 건네주는
뱃사공으로 여생을 마치게 되는 것이다. 그의 삶의 최대 목표는 '자기완성'이었
으며 그의 생애는 이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경건적 구도자의 모습이었던 것이
다.
우리는 여기까지 헷세의 생애와 작품세계를 살펴보았다. 그의 작품이 그의 생
애와 분리되어 생각될 수 없음은 이미 전술한 바 있다. 헷세가 그의 작품 속에 보
여준 그의 생애는 한마디로 서구의 '같음의 한계'를 지적하고, 동양의 '다름'을
통해 동,서양 합일의 완성을 추구하는 것이었다. 그가 의미하는 서구의 같음이란
절대화된 이성이며, 합리주의와 과학은 서구 몰락의 주요인이었다. 그러나 서구정
신과 그 궤를 같이해 온 기독교는 이 비판을 면할 길이 없었다. 헷세 뿐 아니라
당시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기독교는 서구를 대표하는 것이었고, 그 동일성 속에
서 기독교를 분리시킬 어떤 기준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논의를
전개시켜 나가기 위해 동양을 알아야 할 것이다.
IV. 열리는 새로운 세계- 동양의 종교와 사상
동양은 스스로 자신을 밝혀내어 본적이 없다. 그것은 동양적이 아니다. 서양
의 같음이 그 지배적 속성을 발휘하여 침묵하는 동양을 해체시켰을 때, 그때 동양
은 현대사의 무대에 나타났다. 그러나 동시에 침묵하는 동양의 다름은 서양의 같
음을 해체시키고 그 중심에 커다란 구멍을 뚫어 놓았다. 침묵하는 동양의 다름은
서양의 같음에 뚫려진 그 구멍을 통해서만 볼 수 있을 따름이라 하겠다. 이는 여
기서 이루어질 우리의 논의가 동양철학의 정체를 규명하고자 함이 아니라는 것을
전제한다. 우리는 단지 헤르만 헷세라는 한 구멍을 통해 동양의 다름을 살펴보고
자 하는 것이다.
1. 인도 종교와 철학
헷세의 동양에 대한 사고(사고)는 다분히 관념적이며 이상적인 것이었다. 그러
나 그러한 관념적 사고는 그의 지속적인 동양연구와 추구로 인하여 구체적이며 본
원적(본원적)인 데에까지 다달았다. 그가 최초로 받은 동양사상은 인도의 종교
와 철학이었다. 인도는 그가 서양세계로부터 도주할 수 있는 통로를 제공해 주었
을 뿐만 아니라 인도의 통일관(Einheitsgedanken)은 그의 작품의 핵심적 모티브가
되었던 것이다. 인도는 확실히 그가 안주할 새로운 '정신풍토(geistige
landschaft)'였으며 정신사의 새로운 영역이었다. 인도철학은 인도의 종교와 함
께 그 기원과 양상을 측정할 수 없을 만큼이나 오랜 세월에 걸쳐 발전해 왔다. 이
러한 인도의 종교 및 철학은 다음과 같이 특징되어 질 수 있다. 첫째, 인도의 종
교와 철학은 이상적으로 해탈(해탈 moksa, 또는 열반 nirvana)과 법(법 dharma)을
신앙함이고, 둘째, 현실적으로 실생활에서의 이(artha 또는 원)와 락(kama,
ananda)을 추구함이고 셋째, 륜회전생(samsara)속에서 무상(무상)한 가아(aham)와
거기서 벗어나는 영원불변하는 진아(atman)의 자각과 실현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다. 인도철학의 시기 구분은 크게 넷으로 나뉘는데, 헷세에게 가장 큰 영향
을 준 것은 제1기 베다 시대의 우파니샤드(upanidad)였다. 우파니샤드의 중심사상
은 범아일여(범아일여)의 사상으로써 우주의 본체인 Brahman(범)과 개인의 본질인
Atman(아)의 요소를 동일한 선상에 놓고, Joga나 참선(참선)을 통한 신비적 합일
을 꾀하는 것이다. 무한한 우주의 본체와 작용을 유한하고 왜소한 인간이 감지
한다는 것은 인간 본래의 능력으로 불가능하므로, 우주를 한 인간 속에 끌어들여
인간의 불가사의를 해결함으로써 우주의 불가사의를 해결하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주의 본질에 대한 탐구는 자연히 자아의 탐구로 귀결되며, 우주가 관찰의 촛점
이 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그 대상이 된다. 그러므로 인도철학에서는 우주의 본
질이 무엇인가하는 외계(외계)의 탐구보다는 인간의 본질이 무엇인가하는 내면의
탐구에 더 비중을 두는 것이다. [싣달타]에 인용된 활과 화살의 비유는 자아가 어
떻게 우주의 본질인 범(범)과 합일(합일)될 수 있는가 하는 것을 설명해 주는 것
이다. 싣달타가 나중에 도달하게 되는 '옴(Om)'의 경지는 브라만교적인 것으로
서 자아가 범과 신비적 합일을 이루게 되는, 대립이 소멸된 상태를 가리키는 것이
라 하겠다. 이는 헷세에게 '통일'에 대한 의식을 전해준 것이라 볼 수 있다.
2. 불교
헷세는 사변적이고 철학적인 인도의 철학과 종교로부터 점차 불교의 영역으로 넘어오
게 되었다. 그는마치 개신교가 구교에서 개혁하여 나오듯이 불교도 인도교로부터의 개혁으로 보았다.
불교는 인도의종교와는 달리 창시자가 분명한 종교중의 하나이다. 16세기 불교가 서구에 소개되었을 당시, 불교는 단지 우상으로 취급되었지만, 20세기에 들어서 석가모니는 성자로 찬양되기 시작했고, 칼 야스퍼스는 그를 패러다임을 수립한 위대한 4명의 철학자중 한 사람으로 평가하였다. 불교의 핵심은 최고의 궁극적존재로 생각되는 열반(Nirvana)에 도달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를 위한 방법이 '4성체(성체)'와 '8정도(정도)'이다. 열반이란 욕망의 불길을 꺼버리고 난 다음의 고통으로부터의 최종적 해방이다. 그것은 끊임없는 업(Karma)으로부터 벗어나는 마음의 상태로서 육체적 구속에서의 해방, 평화와 안식의 최상 의식, 그리고 완전하고 평온한 행복이라고 정의될 수 있다. 오늘날 불교는 같은 뿌리에서 자라온두가지의 형태를 가지는데, 소승불교와 대승불교가 그것이다. 소승불교는 불교의 최초 형태로서, 정신적 깨달음에 이르는 좁고도 준엄한 길을 포함하는 가르침, 즉 보수적이며 법률을 존중하는 가르침으로특징된다. 반대로 대승불교는 깨달음에 이르는 넓고 관대한 길을 가진, 좀더 자유로운 학파이다. 이러한 불교에 대한 헷세의 이해와 관심은 [싣달타]에 압축되어 나타난다. 고빈다와 싣달타는 소승과 대승을 상징한다. 전술한 바와 같이 고빈다는 소극적이며 논리적이고, 학파적이며, 자기해탈(자기해탈)에힘쓰지만, 싣달타는 적극적이고 체험적이며 이타(리타)적 해탈에 힘쓴다. 두인물 가운데 싣달타가 완성에 이르고 자연과 이성 사이를 건네주는 뱃사공으로 정착되는 것은 헷세가 받아들인 불교가 대승적 성격이었음을 암시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것은 이타적, 사회적 자각을 뜻하며 이는
곧 대승의 핵심사상인 구세(구세)사상으로 이해되는 것이다. 싣달타의 사명감은 헷세 자신의 것이기도 하다. 그는 뱃사공으로서, 완성자로서, 차안(차안)과 피안(피안), 이상과 현실, 체험과 인식, 동양과 서양을 연결해 주는 중개자로서 그의 의무감과 사명을 자각한 것이다. 또한 헷세의 작품들 속에서 불교가 말하는 우주론적(공간적, 시간적) 동일성과 인간 본질로서의 동일성을 발견할 수 있다. 불교에서는 자연과 인간 사이에 있어서 동일성의 원리가 작용하며, 주객(주객)의 동일성이 용납(용납)된다. 자연과 인간이 이야기를 나누고 자연을 통하여 인간을 발견한다. 또한 자연은 인간의 마음을 비추는 거울이며, 가장 깊은 내면에서의 동일체이다. 그러므로 자연과 일치했을 때 인간은 완성되며 구제되는 것이다. 인간과 자연의관계는 지배나 종속의 관계가 아니라 동일한 횡적 관계이며, 신과 인간 사이에도 이 관계가 성립한다.
불교적 신이란 동일성이 지배하는 자아의 모습인 것인다. 헷세의 작품에 나타난
불교의 동시성(Gleichzeitigkeit)은 무시간성이며 초시간성이다. 불교에서의 명상(명상)이나 금욕,
고행은 모두 현상계를 지배하는 시간성과 공간성을 초월하려는 의도이며, 이런 상태에서만 본체계(본체계)를 알 수 있다고 가르친다. 그러므로 세계는 현존하는 한 순간 순간이 완전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인간본질의 동일성이란, 범부(범부)와 각자(각자)와의 차이는 전무(전무)하며 십방삼세(십방삼세)를 통하여중생의 수만큼 부처나 보살(보살)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행동이 전적으로 선하거나 전적으로 악하다고는 말할 수 없고, 인간은 순간적으로 선하기도 하고 악하기도 하다는 것이다. 여기서부터 헷세의 전일성은 그 모습을 구체화시켜 나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3. 중국의 사상
(1) 도
중국의 도가사상은 동양 사유의 가장 중요한 뿌리 중의 하나이며, 노자의 [도덕경]과
도교는 헷세에게가장 큰 영향을 주었다. 헷세는 노자가 당시에 끼친 영향을 도스토예프스키
(Dostojewski) 이래로 가장큰 것이라고 찬사하고, [역경]과 더불어 [도덕경]을 논리적 체계가 무시된, 언어를 초월한 성경과 같은책이라고 말하였다. 그는 "우리에게 필요한 지혜가 노자에게 있으며, 이런 지혜를 유럽 언어로 번역하는 것이 우리가 현재 해야 할 유일한 정신적 과제"라고 보았다. 작품 [싣달타]에서 바스데바(vasudeva)는 도사상의 핵심적 인물이며, 그는 무위(무위), 무작위(무작위)와 무학(무학)과 무의도(무의도)의 모습을 상징하는 것이다. 도가의 도는 정의 될 수 없다.(도가도 비상도) 그것은 구태여 글자로 이름한다면 도라 하겠다.<[노자] 제25장> 도는 형상과 감각의 영역을 초월한 것이며,<제14장> 천지가 생기기 전부터 존재하는 것으로 시간을 초월한다. 그것은 자체로 존재하고, 아무것에도 의존치 않으며, 어떤 것에 의해서도 바꾸어 질 수 없다. 도는 천하만물의 근원적 존재이며, 만물을 만들어 내는 근원인 것이다.<제25장> 도가의 핵심사상은 '무위자연'(무위자연)이다. 여기서 무위란 자연과 같은 말로써 "항상 하는 것이 없으면서, 하지 않는 것이 없다"고 하는 것이다. 이는 작위 즉 자연에 대한 모든인위적인 것을 거부하는 것이다. 작품 [싣달타]에서 고빈다가 완성에 이를 수 없었던
가장 큰 이유가바로 지나치게 작위하였기 때문이며, 어떤 목표와 의도를 지니고 이에 도달키 위해 노력하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싣달타] 속에 나타난 고빈다와 싣달타의 대화를 들여다보도록 하자.
"누구든 무엇인가를 구하고자 할 때는 구하는 것에만 눈을 팔다가 아
무것도 발견하지 못하는 수가 있지요. 구하고자 하는 것만 생각하기 때문
에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하고, 아무것도 마음속에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이지요... '발견한다는 것'은 어떤 것에 사로잡혀 있지 않는 자유로운 상
태이지요. 말하자면 목표를 갖지 않는 것입니다."
결국 도의 경지는 무지무욕(무지무욕)의 경지이며, 운명을 사랑하고 의지를 버
리고 자연의 순리대로 행하는 것이라 하겠다.
(2) 역(역)
'역(역)'이 중국 사상의 중심이라는 것을 아는 것은 중요하다. [역경]은 모
든 중국사상의 근원이 되며, 또한 유교의 대표적 경전이다. 그것은 서로 반대되는
음(음)과 양(양)이라는 양극 사이의 주기적인 순환의 논리를 통하여, 자연과 인간
을 관찰하고 있다. 즉 우주는 하늘과 땅, 낮과 밤, 남자와 여자, 암술과 수술등
수많은 반대의 성질을 갖는 한쌍으로 형성되어 있다. 그러나 이 반대되는 모든 각
조의 한쪽 계열은 각각의 다른쪽 계열에 대하여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조화
를 이루며, 각각의 생성변화를 연속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주의 모든 만물은 이
음양에 의하여 생성되는 것이고, 이 음양의 근원적 자리가 태극(태극)이며, 생성
변화에 작용하는 것이 바로 도라는 것이다. 즉 역의 근본원리는 '변화'이며, 이
를 통한 전일적 조화를 꾀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 [역경]은 헷세의 작품 [유리알
유리]에 가장 중요하고 효과적인 작용을 남겼을 뿐 아니라 헷세에 있어 '생각되고
생존될 수 있는 모든 것이 씌어진 책'으로 이해되었다. 헤르만 헷세를 강하게
이끌었던 [역경]의 배경이란 서양의 사유와는 달리 합리적 및 비합리적 힘을 모두
이끌어 들이는 전일적인 특성과, 시간을 배제하고 초월하는 조직, 그리고 하늘,
땅, 인간의 우주적인 단일성으로 조화적인 질서에 대한 기본적 요구라 할 수 있
다. 이러한 [역경]의 변화와 이에 대한 전위적 조화는 헷세의 중심사상 '양극적
전일성'으로 강력히 흡수되었던 것이다.
4. 양극적 전일사상
헷세가 이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의 종합이 그의 근본사상인 '양극적 전일사상
(량극적 전일사상)'이다. 그 안에는 그가 서구의 위기를 이해하는 방식과 그로부
터 동양의 발견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가 담겨 있다. 헷세는 이를 통해 서구를 구
원코자 했던 것이다. 먼저 헷세는 이 세계를 양극의 대립으로 보며, 그것을 필연
적인 것으로 본다. 그의 작품 속에 나타난 대표적인 양극성은 정신과 자연, 선과
악, 죽음과 삶, 고뇌와 행복 등이다. 그의 작품 [황야의 늑대]에서는 양극성을 다
음과 같이 정의 내리고 있다.
"인간의 가장 내면적인 결정은 한편으론 그를 '정신'으로,신(신)에게
로 몰고가지만, 또다른 한편으로 내면적 동경이 그를 '자연'으로, 어머니
에게로 이끈다. 그의 삶은 두 거대한 힘 사이에서 공포에 가득차 이리저
리 떠돌면서 흔들거린다."
이 양극에 대하여 헷세는 '두영혼', '두개의 극', '두세계' 등으로 표현하였
고, 특히 그의 초기 작품에는 '아폴론적 -디오니소스적'이라는 말이 쓰였다. 여기
서 표현되는 두개의 양극이 헷세가 이해하는 서구와 동양이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
이다. 그것이 그가 이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헷세는 이 양극성을
대립으로 파악하지 않고 초시간적 통일로 이해한다. 즉 이 양극은 통일을 전제하
며, 양극의 대립은 '통일의 양극'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대립적인 두개의 사물
또는 두개의 개념은 동등한 가치와 중요성을 갖는다. 또한 대립은 취사 선택의 대
상이 아니며, 오히려 인생을 풍요롭게 하는 요소이다. 그것은 양자택일이 아닌 양
자겸유(량자겸유)이며, 각각 다른 삶의 방식은 곧 삶의 한 조각이기 때문인 것이
다. 우리는 대립에 대하여 말하는 고빈다와 싣달타의 대화 속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겠다.
"어떤 사상으로 사고되고 언어로 표현되어질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단면적일세. 모두가 단면적이며, 반쪽이며, 모두가 그 전체성이나 완결이
나 단일이 결여되어 있는 것일세... 그러나 세계 그 자체, 우리들 주위와
우리들 내부에 있는 존재는 결코 단면적인 것이 아닐세. 어떠한 인간이나
어떠한 행위라도 완벽하게 윤회라든지 열반이라고 할 수는 없네. 또한 인
간이 완벽하게 성스럽다거나 죄 속에 있는 것도 아닐세...그것이 그렇게
보이는 까닭은 우리가 시간이라는 것을 절대적인 것으로 착각하고 있기
때문이네... 그리고 시간이라는 것은 실재하지 않는다면, 세계와 영원,
번뇌와 해탈, 선과 악 사이에 존재하는 듯이 보이는 틈도 역시 착각에 지
나치지 않는 것일세."
이제 우리는 헤르만 헷세라는 한 틈을 통해 들여다본 동양의 '다름'이 서양의
그것과 어떻게 다른지 가름해 보아야 한다. 동시에 헷세의 이해와 그의 삶이 현대
의 삶과 기독교에 무엇을 가져다 주었는지를 살펴볼 것이다. 일반적으로 서양의
사유는 주관과 객관의 분리를 전제하고, 주관이 요청하는 개념에 의해서 대상을
분석적으로 연역해 가는 방식을 취하는 것이 상례로 되어 있다. 즉 사물들 사이에
각각의 같음을 자기 동일화하여 이를 무모순(무모순)의 개념, 또는 명제로 통합하
고, 이를 보편개념을 통해 이 세계의 존재와 현상을 연역추론해 가는 것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 예로 데모크리토스의 '원자론'을 들 수 있다. 여기서 '원자
'란 결코 감각적 성질을 갖는 것이 아니며, 또한 감각적 술어로 설명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보편적인 수학의 여러 법칙을 만족시킬 수 있는 실체로서,
일종의 과학을 정의하기 위해서 도입된 보편적 법칙의 한 예라고 볼 수 있겠다.
말하자면 만물의 근원으로서의 원자의 가정은 만물의 통일적인 인식을 가능케 하
기 위한 보편적 명제를 구성하기 위한 요청인 것이다. 그러므로 서양의 사유는 법
칙과 보편개념을 추구하며, 이는 다시 무모순의 연역추리를 요구한다고 하겠다.
이에 반해 동양의 사유는 일반적으로 자연과 인간에 관한 지식을 실존적으로
직접 이해하고 체험할 수 있는 것에 국한하고 있는 것과 연관성을 갖고 있으며,
현실적으로 보편적인 것, 즉 전(전)존재 내지 전환경에 있어서 동일한 것은 한가
지도 없다고 하는 것과 연관되어 있다. 그러므로 동양사상의 목표는 모든 사물
을 설명하는 종합적 지식에 있는 것이 아니라, 브라만(Brahman)이라 하든, 아트만
(Atman)이라 하든, 니르바나(Nirvana)라고 하든, 혹은 도라고 하든 결국 직접적인
절대적 직관에 도달하는데 있는 것이라 하겠다. 여기서 직관(직관)이란 서양의
'논리'와 대립되는 말로써, 서양이 추구하는 지식이란 결코 불가능하며, 그것은
다른 이에게 전달될 수 없음을 의미한다. 헷세는 서양의 이성으로 대표되는 '고빈
다'에게 다음과 같이 충고한다.
"나는 가끔 한시간 동안이나 때로는 하루종일, 마치 사람이 가슴속에
서 생을 느끼듯 마음속에서 지혜를 느낀 적도 있네. 그것은 실로 여러 가
지 사상이었기 때문에 그것들을 자네에게 전달한다는 것은 나로서는 심히
어려운 일일세... 지혜라는 것은 전달할 수 없는 것이어서 현자(현자)가
그것을 전달하고자 해도 그 말은 어리석게 들린다는 사실일세... 그 때문
에 나는 어떤 스승도 따르지 못했다네. 나는 하나의 사상을 찾아냈네...
그것은 내가 찾아낸 최고의 사상일세. '모든 진리는 그 역도 역시 진리이
다'라고 하는 사상일세."
우리는 여기에서 서양의 사유가 볼 수 없었던 세계의 절반의 부분을 동양의 사
상이 훌륭히 설명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즉 서양의 사유와 동양의 사유는
참 존재를 비추는 두개의 빛이며, 그 두개의 빛이 만나는 접촉점을 우리가 지향해
야 한다는 것이다. 헷세가 이 세계를 서양과 동양이란 두개의 양극으로 이해하고,
그 통일을 꾀하고자 한점에서 그는 옳았다. 그러나 그의 전일(전일)로 가는 방법
론은 고빈다보다는 싣달타에 가까왔으며, 고뇌보다는 낙관에 가까왔고, 서양보다
는 동양에 가까왔음을 우리는 간과할 수 없다. 즉, 그는 서양과 동양의 합일을 추
구하였지만, 그의 생애와 그의 작품은 너무도 동양적인 것이다. 그의 동양으로의
도주는 사실 반(반)서구를 의미하였다 하겠다. 그러므로 서구적인 모든 것을 포
기하는 그에게서 윤리관이란 착각이며 불필요한 것이었다. 그는 모든 행위를 긍정
하며 낙관한다. [데미안]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 세상의 존재하는 전부를 인정하고 신성시하지 않
으면 안된다고 생각해. 공식적으로 분리된채 공식적으로 인정받는 절반만
이 아니라 온전한 전체를 말야. 우리는 신께 예배드리는 동시에 악마에게
도 예배를 드리지 않으면 안돼. 그래야만 정당하다고 할 수 있어. 그렇지
않다면 자신의 내부에 악마까지도 내재시키고 있는 신, 즉 이 세상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일 앞에서도 사람들이 그 앞에서 의례적으로 눈감을 필
요가 없는 그러한 신을!"
결국 그에게 선한 행위란 악한 행위와 본질적으로 하나이며, 기독교의 교리는
독단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그를 '히피의 사도'로 만들었다. 찢어지는 메탈음악,
마약 등으로 특징지워지는 미국의 한시대 젊은이들과 헷세 자신은 떨어져 생각될
수 없는 것이었다. 그에게 기독교는 그의 자신의 종교라는 증언과는 반대로, 독단
이며 불충분하고 그 체계와 교리는 전해질 수 없으며, 모든 이를 구원할 수 없는
반쪽 자리 종교에 불과한 종교라는 것이다. 결국 그의 정신은 서구와 동양의 통일
보다는 동양을 선택함으로써 기독교로부터 멀리 떠난 것이었으며, 헷세는 허무주
의자란 소리를 면하기 어렵다 하겠다.
V. 동서양 합일의 가능성
우리는 전장(전장)에서 서양의 '같음'과 동양의 '다름'이 이 세계를 이해하는
축(축)이라는 사실을 더듬어 왔다. 과연 보편과 개체는, 본질과 실존은, 절대와
상대는, 이성과 계시는 어느 한쪽이 절대화되어 편향적으로 이해될 수 없으며, 한
걸음 뒤에서 이들 모두를 동시적으로 보는 안목이 필요하다 하겠다. 그것이 진정
한 하나님과 인간을 이해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절대화
로부터 벗어날 수 있으며, 상대화를 극복할 수 있는가? 여기서 우리는 우리의 입
장을 분명히 해야 할 필요가 있다. 우리의 논의가 마치 너무나 사변적이고 기독교
인의 진리와 무관한 것처럼 보여질 수 있기 때문이다. 동서양 합일의 모델은 현대
의 위기에 처한 기독교가 이를 극복하기 위한 모색이다. 서구와 함께 문명화된 기
독교가 동서양 합일의 시대 속에서 어떻게 선포되어야 하는가? 우리는 이제 그러
한 모델들을 찾아 그것들을 살펴보고자 할 것이다. 동서양을 합일하는 모델이 기
독교의 전통 가운데서 발생하고 있다는 것은 상당히 고무적인 일이다. 그러나 화
이트헤드(Whitehead)의 '과정 철학'의 영향을 받아 형성된 '과정 신학'이나, 종교
에 통일을 꾀하는 '종교다원주의' 등은 비록 기독교적 전통에서 제기되어진 시도
이기는 하나, 그 내용을 전개해 나가는 데 있어 진정한 기독교 진리에서 치우침이
없는지 보다 신중하고 세밀한 접근이 필요하다 하겠다.
1. 과정철학과 과정신학
현대 서양신학의 흐름에 있어서 최근까지, '신론(신론)'의 문제는 가장 활발히
논의되어진 논제 중의 하나이다. 현대 서양철학과 그 궤를 같이하는 서구신학은
하나님에 대한 전통적 개념을 상실하고 말았고, 신(신)은 이 회의적인 시대 속에
어떻게 이해되며 무엇을 의미하는 지를 물었다. 이러한 가운데 신에 대한 교리를
재수립하려고 일어선 한 부류의 흐름이 있었는데, 그것이 과정신학(process
theology)이다. 이는 어떤 특수한 철학적 전제와 강하게 유대를 맺고 있었는데,
그것이 화이트헤르(Alfred North Whitehead)의 '과정철학'이다. 화이트헤드는 '모
든 사물은 서로서로 연결되어 끊임없이 영향을 미치며, 이 영향 때문에 있게 된
다'고 주장한다. 곧 '있음(being/존재)'이 아닌 '생겨남(becoming/형성)'이라는
주장이다. 그런데 이 생겨남(생성)이라는 개념은 각각의 사물이 별개의 것으로 나
누어져 있지 않으며, 오히려 이들 사이에 맺게되는 관계와 상호영향이 모든 사물
이나 사건을 구성하는 요인이 됨을 강조하는 것이다. 결국 만물을 '유기체'로서
이해하는 특징을 띠게 된다. 다시 말해 이전에는 유기체적인 과정이라는 가장 '구
체적'인 것 대신에, 독립적 존재라는 '추상적'인 것을 실체(실체)로 혼동하여 왔
다는 것이다. 이 오류를 피할 수 있는 방법으로 화이트헤드는 서구 철학이 만들어
놓는 이분법적 이해를 극복하고, 만물 사이의 단절이나 독립보다는 관계성을 고려
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즉 첫째, '한순간의 있음'을 강조하여 만물을 존재
(being)라 하지 않고 현실체라 한다. 둘째, 개현실체 안에 전단계의 모든 현실 계
기들이 '함께함'을 강조한다. 셋째, 개현실체는 정신적인 축과 물질적인 축을 동
시에 갖고 있다. 넷째, 이 두 축을 중심으로 시간적으로 앞선 모든 계기들을 자신
안에 받아들이거나 걸러내고, 또 다가올 모든 계기들을 예상함으로써 '한 순간의
있음(현실체)'을 결정하는 완성에 이르게 된다. 다섯째, 이 완성의 순간에 객체적
으로는 불멸하게 되고 능동적으로 그 다음 단계의 현실체에 참여하게 된다는 것이
다.
이상에서 본대로 화이트헤드는 서로서로 영향을 끼치며 맺게되는 관계성, 모든
현실체의 특성인 양극성, 그리고 전체적인 생성과정의 흐름을 강조하는 하나의 철
학체계를 구축하려고 시도하였음을 알 수 있다. '과정신학'은 이 '유기체철학'
을 받아들여 그들의 신론을 발전시킨다. 그들은 전통신학(traditional theology)
이 신을 절대, 필연, 불변적 존재로 규정한 것에 반하여, 어떤 궁극적 존재가 바
깥의 세계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으면서, 자기는 세계에 영향을 주는 관계를 '외인
적 관계(external relation),라 하며 이러한 관계를 전면 거부한다. 어떤 궁극적
존재도 자기 충족의 이유로 독립해 있을 수 없고, 모든 경험되는 구체적인 존재들
과 유기적 관계 속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 초월과 내재 사이의 구분도 있을 수 없
고, 그 사이의 '위계적 계급(gierarchical gradation)'도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이 모든 것은 '경험사례(actual occasion)'에 불과하며 신(신)마저도 사실체에 지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화이트헤드의 세계관은 서양과 전통신학에게는 여
간 충격적인 것이 아니었으나, 동양에게는 매우 익숙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즉 역
(역)의 '무실체' , 도교나 불교의 이러한 과정 철학적 우주관은 과정신학에 가까
이 가있으며, 실제로 과정신학자들은 그들의 신학과 불교, 도교, 유교, 힌두교 등
과 같은 동양 종교들과의 대화를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신학의 신론에 대하여 사실 복음주의 교회가 받아들일 수
없는 비성서적 요소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들은 첫째, 과정신학자들은
그들의 종말을 가져올 출발점을 택한다. 현대인의 존재들, 곧 자율적이며 독립적
인 자연과 그 세상을 자신의 범주에 예속시키는 인간의 자유의 종합, 자멸적인 이
종합이 그들의 출발점인 것이다. 거기서부터 과정신학자들은 우주 위에 초월하신
존재라는 성경적인 신관을 거부한다. 그대신 그들은 만사가 '하나님 안에서' 일어
나는 것이며 그 하나님은 존재라기 보다는 진화의 배후에 있는 동력으로서 항상
역사와 자연의 모든 것 가운데 나타난다는 것이다. 바로 이 기본적인 개념에서 이
새 경향에 대한 이름, 즉 '과정'이라 하는 용어가 기원하는 것이다. 둘째, 과정신
학자들은 하나님의 주권을 약화시킨다. 하나님은 '우주의 공동 창조자'라고 화이
트헤드는 말한다. 하나님의 창조는 계속적인 진화 과정이요, 질서와 인간이 그 미
래를 결정하는 자유의 공존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의 신학에는 '종말론'이
부재하며, 역사와 인간을 배정하고 형성하는 주권적인 하나님이란 없다. 셋째, 과
정신학은 인격존재로서의 하나님이란 생각을 말소(말소)시키려 한다. 성경의 인격
적인 하나님은 자신을 계시하시고, 자신의 능력으로 말씀하시고 행하시며, 자기
목적들을 조리있게 선포하신다. 그러나 과정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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