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 Heidegger의 실존론적 인간학에 관한 연구
M. Heidegger의 실존론적 인간학에 관한 연구
http://cafe.naver.com/modernth/697 양 갑현 (전남대학교 대학원 철학과 )
하이데거의 철학을 인간학적인 관점에서 보게될 때, 우리의 논의가 갖는 이점은, 하이데거의 철학을 현실 속으로 끌어 내린다는 것 말고도, 현실 속에 어떠한 방식으로든 접목되어 있는 다양한 인간현상들을 역사적인 테두리 내에서 밝혀 볼 수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본 논문의 의도는 하이데거의 기초존재론에 나타난 인간학적 측면을 탐색하고, 아울러 그러한 측면이 철학적 인간학에 대해 갖는 기여의 일면을 실존론적 인간학으로 정리해 보는 데 있다. 기초존재론이 물론 인간학을 주요 과제로 설정하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존재와 시간』에서 수행된 현존재 분석론은 철학적 인간학의 근본주제들과 관련되고 있음을 본다. 예컨대, 인간의 본질이나 인간의 전체성에 대한 물음, 그리고 인간의 사회적 본질 등이 존재론적인 차원에서 검토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하이데거의 사상에서 철학적 인간학이 문제될 수 있으며, 이 점에서 현존재 분석론의 인간학적 측면은 실존론적 인간학으로 정리될 수 있을 것이다.
2장에서는 철학적 인간학이나 종래의 인간관에 대해 하이데거가 취하고 있는 기본적 입장을 검토하여, 이러한 하이데거의 입장이 인간학에 대한 전면적인 부정일 수 없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런 의도에서 먼저, 실존철학과 철학적 인간학의 관계를 살펴 본다. 다음으로 존재물음을 등한히 하였다 하여 철학적 인간학의 미확정성을 지적하는 하이데거의 입장을 검토한다. 끝으로 인간물음은 존재물음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음을 보임으로써, 인간물음은 결국 기초존재론으로 대체되고 있음을 지적한다.
3장에서는 존재물음의 지평에서 규정된 인간적 현존재를 실마리로 하여 기초존재론의 인간관을 검토한다. 그래서 먼저, 존재적-존재론적으로 탁월한 지위가 주어짐으로 인해, 현존재가 물음의 순서상 선차적 관심의 대상이 된 현존재 개념의 인간학적 측면을 지적해 본다. 여기서 실존, 세계내존재, 죽음에로의 존재 등의 개념을 통해 인간적 현존재의 의미를 해명한다. 그리고 기초존재론에 대해 나름의 인간학적 해석을 시도한 여러 저자들의 입장을 검토한다. 기초존재론을 인간학주의나 인간학으로 본 후설(E. Husserl)과 부버(M. Buber), 생산적인 방식으로 인간학에 기여한다고 보는 쿤즈(H. Kunz), 실존론적 인간학의 기획이나 출발점으로 본 푀겔러(O. Pöggeler), 이그나토프(A. Ignatow) 그리고 파렌바하(H. Fahrenbach)의 입장을 각각 살펴 본다.
4장에서는 실존론적 인간학은 어떻게 정초될 수 있는가를 논의한다. 우선, 실존론적 인간학이 정초되기 위해서는 어떠한 조건들이 충족시켜져야 하는 지를 검토한다. 다음으로, 가능성(실존)개념을 근거로 하여 인간의 본질이나 인간의 전체성이 문제삼아질 수 있음을 밝혀 보인다. 그리고 실존 개념이 정신이나 심적인 것의 통일로서 기능할 수 있음을 검토해 보고, 끝으로 실존의 비본래적 양상인 공존재 개념이 세계, 공동체, 개인과 갖는 관계에 주목하여 상호주관성 문제로 나아갈 수 있음을 밝힌다.
5장에서는 실존론적 인간학을 정초하려 할 때 우선적으로 부딪히는 어려움이나, 또 실존론적 인간학 자체가 갖는 나름의 한계를 지적해 본다. 실존론적 인간학의 한계란 결국 기초존재론 자체의 구조적인 제약 때문임을 해명한다.
현존재 분석론에 뿌리를 둔 실존론적 인간학이 물론 오늘날의 철학적 인간학이 일궈놓은 풍부한 성과들과 경쟁할 수는 없겠지만, 현대의 철학적 인간학은 어쨌든 하이데거가 마련해 놓은 실존론적-존재론적 토대와 더불어 풍요로워질 수 있다는 측면 또한 간과되어서는 안된다. 따라서 실존론적 인간학의 정초작업은 하이데거의 마련한 과제를 계승한다는 측면과 아울러, 하이데거를 생산적인 방향에서 평가해 본다는 양 과제를 떠안고 있는 것이다.
1장. 서 론
하이데거(M. Heidegger)의 필생의 철학적 주제는 존재(Sein)의 문제이다. 그의 미완의 주저 『존재와 시간』은 존재일반의 의미를 묻고, 특히 유한한 현존재(Dasein)의 근본구조를 열어 보임으로써 존재의 의미를 시간이란 지평에서 해명하고 있다. "모든 존재이해 일반이 가능하게 되는 지평으로써 시간을 해명함"1)이 일단 그 저서의 의도인 셈이다. 이처럼 하이데거의 사상은 존재문제를 우선적 과제로 삼는 까닭에, 더욱이 당대의 인간학에 대한 강도높은 비판을 제기함으로써 자신의 사상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려 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는 자신의 철학이 오히려 실존주의나 인간학이 아닌 존재의 철학으로 일컬어지기를 더 선호한 것이다. 이렇게 하이데거는 자신의 철학을 인간학이 아니라 존재론임을 주장하고, 또 철학을 본래부터 존재론으로 전개시키고 있다. 그래서 인간학에 대해 한계를 설정하고 자신의 기초존재론(Fundamentalontologie)을 독자적으로 전개하기에 이른다. 기초존재론은 철학적 인간학을 포함한 모든 학문들의 기초적인 토대를 마련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철학적 인간학을 포함한 모든 학문들은 "인간존재의 여러 가지 방식들"2)을 의미하기 때문에, 실존(Existenz)의 구조를 분석하는 기초존재론이야말로 그것들의 기초적인 토대를 마련하는 것이라고 그는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존재물음을 위해 우선적으로 요구되는 과제는 인간 현존재에 대한 분석이며, 인간에 대한 물음은 결국 전통적인 인간학의 방식이 아니라 기초존재론적으로 물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전통적인 인간관이나 철학적 인간학이 사실상 인간물음을 존재물음과의 관련성에서 묻지 않았기 때문에, 이제 기초존재론의 관점에서 새롭게 문제삼아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하이데거의 철학도 그 시대의 정신사적 전개에 있어 필연적으로 나타난 시대적 산물인 것만은 분명하다. 그래서 우리는 그의 철학에서 당대의 조류인 실존철학적, 인간학적 경향이 반영되고 있음을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비록 하이데거가 인간학이나 혹은 실존철학이라는 표현을 그의 철학적 사색의 내용과 형식에 부합되는 것으로서 한번도 인정한 적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철학에 있어서 실존이 중요한 주제로서 부각되어 있고, 이로 인해 어떤 측면에서 인간 존재의 해명에 기여하고 있음을 보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현존재 분석론은 권태와 우울과 불안과 정조를 통해서 체험되는 인간의 실존을 그리고 있고, 또 주관과 객관을 초월한 포괄존재 곧 세계내존재(In-der-Welt-sein)로서, 그리고 철저하게 자유를 그 본질로 하는 개방태로서 이해되어 있는 인간을 존재론적인 차원에서 검토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현존재 분석론을 철학적 인간학과의 관련 속에서 보려고 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우선, 하이데거가 존재의 의미에 대한 물음을 설정하는 과정에서 인간적 현존재에 그 물음의 근거를 마련하고 있다는 점이다. 도구분석에 있어서 현존재는 여타의 다른 도구존재자나 사물존재자가 아닌, 어떠한 형태로든 간에 그 존재의미를 이해하고 있는 인간이라는 점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 비록 현존재 분석론이 인간학이나 심리학, 윤리학이나 신학 등을 문제 삼지 않는다고 하지만, 그것은 한편으로 존재물음에 한정된 의미에서나마 인간에 관한 학설일 수 있는 것이다.
더욱이, 우리는 하이데거의 저서 속에서 기초존재론과 인간학의 밀접한 연관성을 지적한 대목을 찾아 볼 수 있다. 쉘러(M. Scheler)에 대한 추억을 위하여 바쳐진 『칸트와 형이상학의 문제』(Kant und das Problem der Metaphysik, 1929)에서, "형이상학의 정초를 위하여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필연적인 물음은 현존재의 형이상학[기초존재론 -- 필자]이 넘겨 받는다"3)는 그의 언명을 통해서 우리는 기초존재론과 인간학간에 모종의 상호연관성이 존재할 수 있다는 관점을 읽어낼 수 있는 것이다. 그의 현존재 분석론은 기초존재론과 인간학의 연관가능성을 다음과 같이 암시하고 있다.
"현존재의 실존론적 분석론에서는 존재물음 자체의 긴급성에 못지 않는 하나의 과제가 함께 촉진된다. 곧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이 철학적으로 해명되려면 분명해져야 할 아프리오리(Apriori)의 파헤침 그것이다."4)
이와 같은 하이데거의 말은 물론 제한된 논의의 형태를 띠긴 하지만, 어쨌든 현존재의 실존론적 분석론이 인간학의 가능성을 어느 정도 열어 놓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기초존재론이 인간학과 무관하게 방치되어 있지 않다는 말이다. 비록 현존재 분석론이 존재이해의 내적 가능성을 드러내고자 하는 기초존재론의 관점에서 진행되고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이그나토프(A. Ignatow)의 지적처럼, "인간학과 존재론의 종합"5)이나, 쾨힐러(H. Köchler)의 말대로 "인간학과 존재론의 초월론적 통일"6)로 간주될 수 있는 것이다.
나아가, 우리는 기초존재론이 철학적 인간학을 존재론적으로 정초할 수 있다는 측면을 아울러 찾아볼 수 있다. 하이데거는 기초존재론이 인간학의 존재론적 정초를 위한 실존론적 아프리오리를 제공할 수 있다고 다음과 같이 암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능한 인간학 내지 그 존재론적 기초설정을 의도로 해서 다음의 해석은…몇개의 '단편'(Stücke)을 제공해 준다."7)
더구나 하이데거는 현존재 분석론에서 그 단초를 얻는 인간학을 "실존론적 인간학"(existantiale Anthropologie)8)이라고까지 규정하고 있다. 물론 하이데거는 기초존재론을 통해 실존론적 인간학을 직접적으로 의도한 것은 아니며, 어디까지나 부차적인 관심 속에서 그것을 언급하고 있을 뿐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기초존재론 속에서 인간학을 정초할 수 있는 요소가 분명히 내재해 있음을 보게 된다. 따라서 그것을 들추어 내는 것이 우리의 과제일 것이다.
이 글은, 기초존재론에서 철학적 인간학이 논의될 수 있다는 점에서, 현존재 분석론의 인간학적 측면을 실존론적 인간학으로 정리해 보려는 데 그 의도가 있다. 물론 여기서 하이데거가 언급한 소극적인 의미에서의 실존론적 인간학은 지양되며, 오히려 현존재 분석론의 제개념을 분석하고 거기에서 시사받은 인간학이라는 보다 적극적이고 확대된 의미로서 재구성된 실존론적 인간학을 만회해 보려는 것이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라는 물음에 대해 철학적인 해답을 구하려는 오늘날의 철학적 인간학에서, 우선 인간을 철학적으로 해명한다는 것은 무엇이며, 또 철학적 인간학이 다른 종류의 인간이해 즉 종교적, 과학적 인간이해 등과는 어떻게 구별되며, 나아가 그것이 학문으로 가능하기 위한 이념적 논거와 방법론적 정당성은 어떻게 확보될 수 있는가라는 근본과제들에 맞서, 과연 실존론적 인간학은 이러한 물음들에 어떠한 답변을 준비하고 있는가를 살피는 것도 이 작업이 갖는 하나의 의의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하이데거의 사상 안에서 인간학의 정초가능성을 모색해 보는 것은 결코 무의미한 작업만은 아닐 것이다. 그렇지만 이 글의 의도는 오늘날의 철학적 인간학이 떠맡고 있는 인간에 대한 총체적인 본질규명을 노리는 것이 아니라, 현존재 분석론에 뿌리박은 실존론적 인간학이 다만 철학적 인간학에 대하여 갖는 기여의 일면을 밝혀 보이는데 있다.
그래서 본 논문은 현존재의 존재성격들 중에서 일단 가능성(실존)개념을 실존론적 인간학의 가능한 근거로 취해 본 것이다. 우선, 존재가능이나 가능존재, 아직 아님, 무규정성, 개방성 등으로 열거되는 이 가능성 개념은, "인간 그 자체를 전체 안에서 파악해야 한다"9)는 전체적 인간의 본질규정 문제에로까지 확장될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그리고 인간 현존재의 본질인 실존은 전통적 인간관에서 다뤄진 의식이나 정신과 견주어서 그것들의 통일로서 기능할 수 있다는 측면을 갖는다. 그밖에도, 실존의 연장 선상에서 공존재 개념은 인간의 사회적 본질과 더불어 문제삼아 질 수 있다고 보여진다. 즉, 실존의 비본래적 양상인 공존재 및 타자에 대한 분석을 통해, 우리는 그것들이 개인에서 공동체로까지 나아갈 수 있는 기반을 존재론적으로 정비하고 있음을 보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이하의 본문에서 이러한 궁극적 문제들을 다루어 볼 것이다. 이러한 논의에 다다르기 위해서는 우선, 하이데거와 철학적 인간학의 관계, 그리고 기초존재론의 인간관을 살펴보는 것이 선행적인 과제로서 요청된다.
[주]
1) M.Heidegger, Sein und Zeit, Tübingen 1972, S.1 이하 이 저서에 대한 인용은 SZ으로 약칭함.
2) SZ, S.11.
3) M. Heidegger, Kant und das Problem der Metaphysik (KPM), Bonn 1929, S.221.
4) SZ, S.45. 칸트에 있어 아 프리오리(a priori)는 모든 본래적인 인식을 뜻한다. 곧 경험인식에 필연적이고 보편타당한 성격을 부여한다는 인식론적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하이데거에 있어 그것은 존재론적 의미를 갖는다. 여기서 쓰인 명사형 아프리오리(Apriori)는 현상적인 것의 선행적인 지반이나 근거로서 기능한다. "아프리오리를 개시(開示)하는 일은 아프리오리주의적(aprioristisch)으로 구성하는 일은 아니다."(SZ, S.50) 따라서 이 아프리오리는 어떤 무세계적인 주관에 선행적으로 제한되어 있는 규정성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 그는 아프리오리를 연구하기 위해서는 현상적인 지반의 올바른 준비가 필요하다고 보고, 현존재 분석론을 위해 준비되지 않으면 안되는 가장 가까운 지평을 현존재의 평균적인 일상성 속에서 찾는다. 예컨대, 현존재 해석을 위한 아프리오리는 세계내존재가 된다. 따라서 실존범주인 관심이나 이해 등은 모두 아프리오리한(apriorisch) 성격을 갖는다(SZ, 194,199,206,228 참조).
5) A.Ignatow, Heidegger und die philosophische Anthropologie, Meisenheim a/Glan 1979, S.103 이하.
6) H.Köchler, Der inner Bezug von Anthropologie und Ontologie. Das Problem der Anthropologie im Denken Martin Heideggers, Meisemheim a/Glan 1974, S.78-79.
7) SZ, S.17.
8) SZ, S.183,301.
9) K.Löwith, "Zur Frage einer philosophischen Anthropologie", in: Neue Anthropologie, Bd,7.(Hrsg.) H.G.Gadamer & P.Vogler,Stuttgart 1975, S.330.
http://cafe.naver.com/modernth/697 양 갑현 (전남대학교 대학원 철학과 )
하이데거의 철학을 인간학적인 관점에서 보게될 때, 우리의 논의가 갖는 이점은, 하이데거의 철학을 현실 속으로 끌어 내린다는 것 말고도, 현실 속에 어떠한 방식으로든 접목되어 있는 다양한 인간현상들을 역사적인 테두리 내에서 밝혀 볼 수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본 논문의 의도는 하이데거의 기초존재론에 나타난 인간학적 측면을 탐색하고, 아울러 그러한 측면이 철학적 인간학에 대해 갖는 기여의 일면을 실존론적 인간학으로 정리해 보는 데 있다. 기초존재론이 물론 인간학을 주요 과제로 설정하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존재와 시간』에서 수행된 현존재 분석론은 철학적 인간학의 근본주제들과 관련되고 있음을 본다. 예컨대, 인간의 본질이나 인간의 전체성에 대한 물음, 그리고 인간의 사회적 본질 등이 존재론적인 차원에서 검토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하이데거의 사상에서 철학적 인간학이 문제될 수 있으며, 이 점에서 현존재 분석론의 인간학적 측면은 실존론적 인간학으로 정리될 수 있을 것이다.
2장에서는 철학적 인간학이나 종래의 인간관에 대해 하이데거가 취하고 있는 기본적 입장을 검토하여, 이러한 하이데거의 입장이 인간학에 대한 전면적인 부정일 수 없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런 의도에서 먼저, 실존철학과 철학적 인간학의 관계를 살펴 본다. 다음으로 존재물음을 등한히 하였다 하여 철학적 인간학의 미확정성을 지적하는 하이데거의 입장을 검토한다. 끝으로 인간물음은 존재물음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음을 보임으로써, 인간물음은 결국 기초존재론으로 대체되고 있음을 지적한다.
3장에서는 존재물음의 지평에서 규정된 인간적 현존재를 실마리로 하여 기초존재론의 인간관을 검토한다. 그래서 먼저, 존재적-존재론적으로 탁월한 지위가 주어짐으로 인해, 현존재가 물음의 순서상 선차적 관심의 대상이 된 현존재 개념의 인간학적 측면을 지적해 본다. 여기서 실존, 세계내존재, 죽음에로의 존재 등의 개념을 통해 인간적 현존재의 의미를 해명한다. 그리고 기초존재론에 대해 나름의 인간학적 해석을 시도한 여러 저자들의 입장을 검토한다. 기초존재론을 인간학주의나 인간학으로 본 후설(E. Husserl)과 부버(M. Buber), 생산적인 방식으로 인간학에 기여한다고 보는 쿤즈(H. Kunz), 실존론적 인간학의 기획이나 출발점으로 본 푀겔러(O. Pöggeler), 이그나토프(A. Ignatow) 그리고 파렌바하(H. Fahrenbach)의 입장을 각각 살펴 본다.
4장에서는 실존론적 인간학은 어떻게 정초될 수 있는가를 논의한다. 우선, 실존론적 인간학이 정초되기 위해서는 어떠한 조건들이 충족시켜져야 하는 지를 검토한다. 다음으로, 가능성(실존)개념을 근거로 하여 인간의 본질이나 인간의 전체성이 문제삼아질 수 있음을 밝혀 보인다. 그리고 실존 개념이 정신이나 심적인 것의 통일로서 기능할 수 있음을 검토해 보고, 끝으로 실존의 비본래적 양상인 공존재 개념이 세계, 공동체, 개인과 갖는 관계에 주목하여 상호주관성 문제로 나아갈 수 있음을 밝힌다.
5장에서는 실존론적 인간학을 정초하려 할 때 우선적으로 부딪히는 어려움이나, 또 실존론적 인간학 자체가 갖는 나름의 한계를 지적해 본다. 실존론적 인간학의 한계란 결국 기초존재론 자체의 구조적인 제약 때문임을 해명한다.
현존재 분석론에 뿌리를 둔 실존론적 인간학이 물론 오늘날의 철학적 인간학이 일궈놓은 풍부한 성과들과 경쟁할 수는 없겠지만, 현대의 철학적 인간학은 어쨌든 하이데거가 마련해 놓은 실존론적-존재론적 토대와 더불어 풍요로워질 수 있다는 측면 또한 간과되어서는 안된다. 따라서 실존론적 인간학의 정초작업은 하이데거의 마련한 과제를 계승한다는 측면과 아울러, 하이데거를 생산적인 방향에서 평가해 본다는 양 과제를 떠안고 있는 것이다.
1장. 서 론
하이데거(M. Heidegger)의 필생의 철학적 주제는 존재(Sein)의 문제이다. 그의 미완의 주저 『존재와 시간』은 존재일반의 의미를 묻고, 특히 유한한 현존재(Dasein)의 근본구조를 열어 보임으로써 존재의 의미를 시간이란 지평에서 해명하고 있다. "모든 존재이해 일반이 가능하게 되는 지평으로써 시간을 해명함"1)이 일단 그 저서의 의도인 셈이다. 이처럼 하이데거의 사상은 존재문제를 우선적 과제로 삼는 까닭에, 더욱이 당대의 인간학에 대한 강도높은 비판을 제기함으로써 자신의 사상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려 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는 자신의 철학이 오히려 실존주의나 인간학이 아닌 존재의 철학으로 일컬어지기를 더 선호한 것이다. 이렇게 하이데거는 자신의 철학을 인간학이 아니라 존재론임을 주장하고, 또 철학을 본래부터 존재론으로 전개시키고 있다. 그래서 인간학에 대해 한계를 설정하고 자신의 기초존재론(Fundamentalontologie)을 독자적으로 전개하기에 이른다. 기초존재론은 철학적 인간학을 포함한 모든 학문들의 기초적인 토대를 마련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철학적 인간학을 포함한 모든 학문들은 "인간존재의 여러 가지 방식들"2)을 의미하기 때문에, 실존(Existenz)의 구조를 분석하는 기초존재론이야말로 그것들의 기초적인 토대를 마련하는 것이라고 그는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존재물음을 위해 우선적으로 요구되는 과제는 인간 현존재에 대한 분석이며, 인간에 대한 물음은 결국 전통적인 인간학의 방식이 아니라 기초존재론적으로 물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전통적인 인간관이나 철학적 인간학이 사실상 인간물음을 존재물음과의 관련성에서 묻지 않았기 때문에, 이제 기초존재론의 관점에서 새롭게 문제삼아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하이데거의 철학도 그 시대의 정신사적 전개에 있어 필연적으로 나타난 시대적 산물인 것만은 분명하다. 그래서 우리는 그의 철학에서 당대의 조류인 실존철학적, 인간학적 경향이 반영되고 있음을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비록 하이데거가 인간학이나 혹은 실존철학이라는 표현을 그의 철학적 사색의 내용과 형식에 부합되는 것으로서 한번도 인정한 적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철학에 있어서 실존이 중요한 주제로서 부각되어 있고, 이로 인해 어떤 측면에서 인간 존재의 해명에 기여하고 있음을 보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현존재 분석론은 권태와 우울과 불안과 정조를 통해서 체험되는 인간의 실존을 그리고 있고, 또 주관과 객관을 초월한 포괄존재 곧 세계내존재(In-der-Welt-sein)로서, 그리고 철저하게 자유를 그 본질로 하는 개방태로서 이해되어 있는 인간을 존재론적인 차원에서 검토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현존재 분석론을 철학적 인간학과의 관련 속에서 보려고 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우선, 하이데거가 존재의 의미에 대한 물음을 설정하는 과정에서 인간적 현존재에 그 물음의 근거를 마련하고 있다는 점이다. 도구분석에 있어서 현존재는 여타의 다른 도구존재자나 사물존재자가 아닌, 어떠한 형태로든 간에 그 존재의미를 이해하고 있는 인간이라는 점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 비록 현존재 분석론이 인간학이나 심리학, 윤리학이나 신학 등을 문제 삼지 않는다고 하지만, 그것은 한편으로 존재물음에 한정된 의미에서나마 인간에 관한 학설일 수 있는 것이다.
더욱이, 우리는 하이데거의 저서 속에서 기초존재론과 인간학의 밀접한 연관성을 지적한 대목을 찾아 볼 수 있다. 쉘러(M. Scheler)에 대한 추억을 위하여 바쳐진 『칸트와 형이상학의 문제』(Kant und das Problem der Metaphysik, 1929)에서, "형이상학의 정초를 위하여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필연적인 물음은 현존재의 형이상학[기초존재론 -- 필자]이 넘겨 받는다"3)는 그의 언명을 통해서 우리는 기초존재론과 인간학간에 모종의 상호연관성이 존재할 수 있다는 관점을 읽어낼 수 있는 것이다. 그의 현존재 분석론은 기초존재론과 인간학의 연관가능성을 다음과 같이 암시하고 있다.
"현존재의 실존론적 분석론에서는 존재물음 자체의 긴급성에 못지 않는 하나의 과제가 함께 촉진된다. 곧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이 철학적으로 해명되려면 분명해져야 할 아프리오리(Apriori)의 파헤침 그것이다."4)
이와 같은 하이데거의 말은 물론 제한된 논의의 형태를 띠긴 하지만, 어쨌든 현존재의 실존론적 분석론이 인간학의 가능성을 어느 정도 열어 놓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기초존재론이 인간학과 무관하게 방치되어 있지 않다는 말이다. 비록 현존재 분석론이 존재이해의 내적 가능성을 드러내고자 하는 기초존재론의 관점에서 진행되고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이그나토프(A. Ignatow)의 지적처럼, "인간학과 존재론의 종합"5)이나, 쾨힐러(H. Köchler)의 말대로 "인간학과 존재론의 초월론적 통일"6)로 간주될 수 있는 것이다.
나아가, 우리는 기초존재론이 철학적 인간학을 존재론적으로 정초할 수 있다는 측면을 아울러 찾아볼 수 있다. 하이데거는 기초존재론이 인간학의 존재론적 정초를 위한 실존론적 아프리오리를 제공할 수 있다고 다음과 같이 암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능한 인간학 내지 그 존재론적 기초설정을 의도로 해서 다음의 해석은…몇개의 '단편'(Stücke)을 제공해 준다."7)
더구나 하이데거는 현존재 분석론에서 그 단초를 얻는 인간학을 "실존론적 인간학"(existantiale Anthropologie)8)이라고까지 규정하고 있다. 물론 하이데거는 기초존재론을 통해 실존론적 인간학을 직접적으로 의도한 것은 아니며, 어디까지나 부차적인 관심 속에서 그것을 언급하고 있을 뿐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기초존재론 속에서 인간학을 정초할 수 있는 요소가 분명히 내재해 있음을 보게 된다. 따라서 그것을 들추어 내는 것이 우리의 과제일 것이다.
이 글은, 기초존재론에서 철학적 인간학이 논의될 수 있다는 점에서, 현존재 분석론의 인간학적 측면을 실존론적 인간학으로 정리해 보려는 데 그 의도가 있다. 물론 여기서 하이데거가 언급한 소극적인 의미에서의 실존론적 인간학은 지양되며, 오히려 현존재 분석론의 제개념을 분석하고 거기에서 시사받은 인간학이라는 보다 적극적이고 확대된 의미로서 재구성된 실존론적 인간학을 만회해 보려는 것이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라는 물음에 대해 철학적인 해답을 구하려는 오늘날의 철학적 인간학에서, 우선 인간을 철학적으로 해명한다는 것은 무엇이며, 또 철학적 인간학이 다른 종류의 인간이해 즉 종교적, 과학적 인간이해 등과는 어떻게 구별되며, 나아가 그것이 학문으로 가능하기 위한 이념적 논거와 방법론적 정당성은 어떻게 확보될 수 있는가라는 근본과제들에 맞서, 과연 실존론적 인간학은 이러한 물음들에 어떠한 답변을 준비하고 있는가를 살피는 것도 이 작업이 갖는 하나의 의의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하이데거의 사상 안에서 인간학의 정초가능성을 모색해 보는 것은 결코 무의미한 작업만은 아닐 것이다. 그렇지만 이 글의 의도는 오늘날의 철학적 인간학이 떠맡고 있는 인간에 대한 총체적인 본질규명을 노리는 것이 아니라, 현존재 분석론에 뿌리박은 실존론적 인간학이 다만 철학적 인간학에 대하여 갖는 기여의 일면을 밝혀 보이는데 있다.
그래서 본 논문은 현존재의 존재성격들 중에서 일단 가능성(실존)개념을 실존론적 인간학의 가능한 근거로 취해 본 것이다. 우선, 존재가능이나 가능존재, 아직 아님, 무규정성, 개방성 등으로 열거되는 이 가능성 개념은, "인간 그 자체를 전체 안에서 파악해야 한다"9)는 전체적 인간의 본질규정 문제에로까지 확장될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그리고 인간 현존재의 본질인 실존은 전통적 인간관에서 다뤄진 의식이나 정신과 견주어서 그것들의 통일로서 기능할 수 있다는 측면을 갖는다. 그밖에도, 실존의 연장 선상에서 공존재 개념은 인간의 사회적 본질과 더불어 문제삼아 질 수 있다고 보여진다. 즉, 실존의 비본래적 양상인 공존재 및 타자에 대한 분석을 통해, 우리는 그것들이 개인에서 공동체로까지 나아갈 수 있는 기반을 존재론적으로 정비하고 있음을 보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이하의 본문에서 이러한 궁극적 문제들을 다루어 볼 것이다. 이러한 논의에 다다르기 위해서는 우선, 하이데거와 철학적 인간학의 관계, 그리고 기초존재론의 인간관을 살펴보는 것이 선행적인 과제로서 요청된다.
[주]
1) M.Heidegger, Sein und Zeit, Tübingen 1972, S.1 이하 이 저서에 대한 인용은 SZ으로 약칭함.
2) SZ, S.11.
3) M. Heidegger, Kant und das Problem der Metaphysik (KPM), Bonn 1929, S.221.
4) SZ, S.45. 칸트에 있어 아 프리오리(a priori)는 모든 본래적인 인식을 뜻한다. 곧 경험인식에 필연적이고 보편타당한 성격을 부여한다는 인식론적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하이데거에 있어 그것은 존재론적 의미를 갖는다. 여기서 쓰인 명사형 아프리오리(Apriori)는 현상적인 것의 선행적인 지반이나 근거로서 기능한다. "아프리오리를 개시(開示)하는 일은 아프리오리주의적(aprioristisch)으로 구성하는 일은 아니다."(SZ, S.50) 따라서 이 아프리오리는 어떤 무세계적인 주관에 선행적으로 제한되어 있는 규정성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 그는 아프리오리를 연구하기 위해서는 현상적인 지반의 올바른 준비가 필요하다고 보고, 현존재 분석론을 위해 준비되지 않으면 안되는 가장 가까운 지평을 현존재의 평균적인 일상성 속에서 찾는다. 예컨대, 현존재 해석을 위한 아프리오리는 세계내존재가 된다. 따라서 실존범주인 관심이나 이해 등은 모두 아프리오리한(apriorisch) 성격을 갖는다(SZ, 194,199,206,228 참조).
5) A.Ignatow, Heidegger und die philosophische Anthropologie, Meisenheim a/Glan 1979, S.103 이하.
6) H.Köchler, Der inner Bezug von Anthropologie und Ontologie. Das Problem der Anthropologie im Denken Martin Heideggers, Meisemheim a/Glan 1974, S.78-79.
7) SZ, S.17.
8) SZ, S.183,301.
9) K.Löwith, "Zur Frage einer philosophischen Anthropologie", in: Neue Anthropologie, Bd,7.(Hrsg.) H.G.Gadamer & P.Vogler,Stuttgart 1975, S.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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