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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신학자료1

현대 신학의 동향1

현대 신학의 동향1
http://cafe.naver.com/modernth/220   심상태

우리는 오늘날 국가적으로나 세계적으로 광범하고도 급격한 변화를 전 생활 영역에서 체험하고 있다.1) 불과 수년 전까지 예측할 수 없었던 사건들이 연이어 발생하면서 결과를 미처 정확히 예측할 수 없는 엄청난 파장을 우리 개인과 민족 공동체에까지 미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반세기 가까이 세계를 양분했던 소비에트 연방 공화국을 주축으로 한 동구 공산권의 몰락, 독일의 평화적 통일, 걸프 전쟁, 우르과이 라운드 협정 타결에 따르는 쌀을 위시한 농산물 개방 문제, 국제적 냉전기류의 소멸에 부응한 러시아와 중국과의 수교, 북한의 김일성 사망과 북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북-미 회담의 성공과 양국 대표부 설치 등등 민족과 인류의 장래 운명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엄청난 사태진전이 급속도로 이루어지는 실정이다.
우리는 2000년대의 전야(前夜)이자 여명기(黎明期)에 해당하는 현 시점이 역사상 미증유의 획기적 전환기임을 느끼고 있다. 오늘날까지 개인과 민족사회를 오랜 세월 지배해 온 사고(思考)와 행동양식들이 새롭게 형성된 상황 속에서 대두되는 문제들을 해결하거나 홀연 등장한 도전들에 대해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하는 것으로 체험되고 있다. 예컨대, 우르과이 협정에서의 농산물 개방에 수반되는 문제나, 올해 현실적 가능성으로 급부상한 민족통일문제에 대한 저간의 대응책들이 졸속적이고 효과적이지 못한 것으로 많은 국민들이 감지하고 있다. 그래서 새로운 대안적 입장에 대한 염원이 절박하게 발해지면서도 국민 대다수가 공감하는 거시적이고도 포괄적인 새로운 비전과 방향제시는 아직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그래서 우리는 민족과 인류 공동체와 전 우주 안에서 일고 있는 현 역사적 변화의 조류가 어떠한 방향으로 흐르고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가를 희망과 불안이 교차하는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 실정이다.
차제에 인류와 세계 구원을 원하시고 이끄시는 하느님의 구원행업에 관한 학문으로서의 신학의 동향을 일별하는 것은 매우 시의적절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나의 세계적 종교로서의 그리스도교가 서구사회에서 정착되면서 신학 역시 금세기까지 서구인들에 의해 정립되고 주도되어 왔다. 그런데 교회와 신학계 안에도 과도기적인 6,70년대를 거치고 2000년대를 마지막 앞둔 90년대를 맞이하여 전환기에 접어들고 있다는 징후들이 도처에서 감지되고 있다. 오늘날까지 우리 한국 교회와 신학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현대 서구신학의 동향을 소개하고 이어서 탈서구적 성향을 드러내기 시작하는 라틴 아메리카, 아프리카, 그리고 아시아 신학계의 동향과 함께 90년대에 들어서 신학계 안에서 범세계적 차원에서 요청되고 있는 ‘생태학적 신학’을 간략히라도 소개하고자 한다. 그리하여 우리 한국 교회가 2000년대를 맞이하여 택해야 할 바람직한 진로를 모색하는데 자그마하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I. 현대 서구신학의 동향
 

오늘날까지 한국 신학계에 영향을 미치는 서구 신학계의 동향을 1980년대 이전과 이후로 나누어 파악하고자 한다.
 

1. 6,70년대 인간중심적 ‘역사의 신학’ 정립
 

제 2차 바티칸 공의회의 소집을 계기로 하여 신학계도 전환기를 맞이하였다. 전통적 스콜라 신학(theologia scholastica)이 퇴조를 보이고, 그 대신에 기본 취지와 방법원리 면에서 결코 동일시될 수 없는 다양한 신학사조들이 활발하게 전개되기 시작하였다.2) 스콜라 신학은 고대 내지 중세의 정적(靜的) 우주론적 세계관에 입각하여 형성된 ‘구원철학’(久遠哲學, philosophia perennis)이라고 일컬어지는 토미즘(Thomismus) 내지 신 토미즘(Neo-thomismus)의 기본통찰에 의거하여 역사적 그리스도 신앙의 절대적 진리를 해설하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그런데 6,70년대에 꽃피기 시작한 현대 신학사조들은 소위 ‘인간학적 전환’(人間學的 轉換)을 이룩한 서구의 인간중심적인 철학사조의 기본취지와 방법원리를 원용하여 그리스도교 신앙의 진리성을 파악하고 제시하려는 경향을 드러내고 있다.
1. 금세기 최대의 가톨릭 신학자로 간주되는 칼 라너(Karl Rahner, 1904-1984)는 칸트-마레샬 노선의 인간중심적 ‘초월철학’(超越哲學)의 취지와 방법원리를 원용하여 그리스도교 신앙의 기본진리를 초월-인간학적(超越-人間學的)으로 새롭게 파악하는 ‘초월신학’을 전개하고 있다.3) 라너와 그의 신하에 동조하는 제자들의 사상 이면에는 헤겔(G. W. F. Hegel)에게서 절정에 이른 ‘독일 관념주의’의 기본통찰이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포이에르바하(L. Feuerbach)의 감각론적인 대화철학적 통찰, 독일-유다계 사상가들인 부버(M. Buber), 에브너(F. Ebner) 그리고 로센즈바익(F. Rosenzweig) 등에게서 이론화된 인격주의(人格主義) 사상의 기본취지와 방법원리에 입각하여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교리를 성서-인격주의적으로 파악하는 발타사르(H.U.v. Balthasar, 1905-1985)나 오트(H. Ott, 1929- ) 등의 신학 입장이 1960년대 이래 전 세계 신학계로 확산되었으며, 70년대 중반이래 한국 신학계에도 소개되어 왔다.4)
이러한 서구 신학사조들이 현대 세속사회나 비그리스도교 세계에 대해 취하는 입장이 동일하지는 않다. 실존론적이거나 인격주의적 성향을 드러내면서 성서에 입각한 ‘하느님 말씀’ 위주의 신학을 전개하는 신학자들은 이 현대철학사조의 기본통찰을 그들의 신학사상 정립에 원용은 하면서도 탈(脫)그리스도교적이거나 비(非)그리스도교적 세계에 대해 여전히 비판적이고 대결적인 자세를 드러내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다(K. Barth; R. Bultmann; H. U. v. Balthasar). 이들은 특히 비성서적, 비그리스도교적 문화와 종교의 가치를 부정하거나 경시하는 경향을 노출시키고 있다. 그런데 라너가 주도하는 초월신학은 탈그리스도교적 서구 세속문화와 비그리스도교적 종교세계에 대해 긍정적이며 개방적인 성향을 명백히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이 신학에서도 비그리스도교에 대한 그리스도교의 절대성(絶對性) 내지 우월성이 선험적으로 고수되고 있다. 그래서 교회 밖에서 발견되는 참되고 선하며 아름다운 가치들은 복음을 준비하는 사전 단계로 규정된다.
 

2. 1970년대 중반부터 한국 신학계에도 실존주의적, 초월주의적, 인격주의적 신학사조들의 비역사성과 비사회성을 비판하는 ‘희망신학’(希望神學)과 ‘정치신학’(政治神學)과 같은 ‘역사의 신학’ 범주에 속하는 사조들이 폭넓게 소개되기에 이르렀다.5) 이 신학사조들은 역사(歷史)를 개인과 사회, 그리고 자연세계 사이의 관계가 아직 채 종결되지 않은 개방된 과정으로 파악하면서, 이를 보편적으로 포괄적 실재로서 이해하고 그리스도교 신앙진리의 보편성을 역사의 지평(地平)하에서 신빙성있게 제시하려는 취지를 거의 공동으로 드러내고 있다.
그런데 떼이야르 드 샤르댕(P. Teilhard de Chardin, 1881-1955), 라너, 판넨베르그(W. Pannenberg, 1928-), 큉(H. Küng, 1928-), 카스퍼(W. Kasper, 1933-) 등과 같은 신학자들은 근본적으로 낙관적 성격을 띤 진화론적 역사관을 보편역사의 주(主)로서의 그리스도관에 매개시킴으로써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진리를 현대의 서구중심적 세계관에 적응시키려는 기본취지를 드러낸다. 이 신학노선들이 인류의 역사를 하느님의 현현(顯現)이자 역사의 장(場)으로 파악하는 한에서 모든 문화와 종교적 가치를 포함하는 역사현상 일반에 대해 긍정적이고 개방적인 자세를 지니게 마련이다. 그러면서도 이러한 신학사조들은 그리스도 신앙의 절대성 내지 우월성을 고수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편 ‘희망의 신학’이나 ‘정치신학’을 전개하는 몰트만(J. Moltmann, 1926-)이나 멧츠(J.B. Metz, 1928-)와 이들의 동조자들에게서는 역사관 및 진리관의 변모를 지각할 수 있다. 이들은 역사일반을 다분히 헤겔 우파적인 역사관에 입각하여 그리스도 중심적 완성을 지향하는 과정으로서 낙관적으로 해석하면서 그리스도의 신앙진리를 현실에 적응하는 입장의 신학사조들을 비판하였다. 이들은 그리스도교로부터 이탈해 나간 현대 세속사회나 그리스도교에 흡수되지 않은 비그리스도교적 세계를 그리스도교적 실재로 해석하려고 노력할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역사 속에서 발견되는 ‘소외’(疏外)현상에 더 많은 시선을 돌리고, 현실세계 속에서 실질적으로 영향력을 상실해 가고 있는 그리스도 신앙의 적절성(適切性)을 새롭게 활성화시키기 위해서는 복음의 요청에 부응하여 현실을 변혁시키는 데 주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입장을 피력하였다.
‘역사의 신학’의 유형 중에서 ‘과정신학’(過程神學)이나 ‘보편사 신학’(普遍史神學) 등이 현대의 새로운 역사의식과의 대화를 통하여 그리스도 신앙의 정론(正論)을 정립하려는 현실적응의 성향을 다분히 드러내는 데 비해, ‘희망의 신학’이나 ‘정치신학’은 네오마르크스적인 블로흐(E. Bloch, 1885-1978)나 프랑크 푸르트 학파의 ‘비판이론’의 현대 문명사회에 대한 비판적 기본통찰의 취지를 원용하여, 고난과 갈등으로 점철된 소외현실을 변혁시키려는 정행(正行) 위주의 성격을 드러내고 있다.6) 이 신학들은 소외된 현실을 구원된 실재로 해석하면서, 이렇게 이해된 세계 안에서 국교화되었거나 시민종교화된 기성종교로서의 그리스도교를 예언자적으로 비판하고 현실의 소외성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서 복음의 힘으로 이 소외상황을 변혁시키려고 노력한다. 그런데 이러한 현실변혁을 위한 실천위주신학들의 주된 관심은 정치, 사회, 경제 차원에서의 소외현실을 변혁시키려는 데에 있기 때문에 세계의 각 문화권에서 역사 초기부터 발견되는 문화와 종교적 가치에 대한 평가작업이 심도 깊게 또한 체계적으로 전개되지 못한 실정이다.
 

3. 6,70년대의 서구 신학은 서구 그리스도교 중심적 세계관에 입각해서 주위의 탈그리스도교적 세속세계나 주변의 비그리스도교적 세계를 향해 일반적으로 개방적 대화의 자세를 보이면서 그리스도 신앙의 현실적응화(現實適應化) 내지 현실변혁화(現實變革化)를 기도하고 있다. 이들은 그리스도 신앙의 복음적 진리를 서구의 특정사조의 기본통찰과 연계시켜 현대에 적합한 언어로 신학화하려 시도한다. 그런데 이 신학사조들은 비서구적 정신문화나 종교에 대하여  개방된 대화의 자세를 보여주면서도 역사적 그리스도교의 진리에 불가침적 우위성과 절대성을 부여하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2. 80년대 여성신학의 등장
 

70년대 이래 서구 신학계에서 그릇된 남녀 관계의 역사적 현실 안에서 여성들의 숙고와 체험을 바탕으로 싹트게 된 여성신학이 80년대에 접어들면서부터 전 세계 신학계에로 확산되고 있다.7) 메리 데일리(Mary Daly)와 엘리사벳 슈쓸러-피오렌자(E. Schüssler-Fiorenza), 그리고 로즈마리 류터(Rosemary R. Ruether) 같은 신학자들에 의해 주도되는 여성신학은 재래의 신학이 모두 가부장제적 사고와 남성중심의 언어로 이룩된 남성신학임을 비판하면서 그동안 일반 사회와 교회 안에서 차별받고 소외되어온 여성의 관점에서 신학의 주제를 전반적으로 다루면서 탈가부장제를 통한 전인적 구원관을 이룩해내고자 한다.
 

1. 여성신학은 오늘날까지 서구세계에서의 지배적인 남성중심적 가부장제 문화, 사회구조, 역사인식에 대한 근원적 회의와 이의제기로부터 출발한다. 이 신학은 남성을 인간의 전형적 모델로 제시하면서 여성을 남성에 의해 규정시킴으로써 본래의 상태로부터 소외시켜 온 교회와 기존 신학 입장을 비판한다. “교회는 자유와 충만한 인간성을 갈구하는 인류 절반의 깊은 염원을 거절 내지는 무시하는 듯한 인상을 주는 한편, 교회의 구조를 현대의 여성조건에 알맞게 고치기를 거부하며 아직까지도 여성들에게 순명, 복종, 양순 등의 수동적인 덕행을 가르침으로써 많은 사람들에게 시대착오와 편견의 마지막 요새로 나타나고 있다.”8) 로즈마리 류터는 교회가 성차별 제도의 정착에 기여했다고 지적한다. “고대문명이 영혼-육체의 이원론과 남성-여성의 이원론을 동일시하고 따라서 여성의 예속을 새로운 형태로 재규정함으로써 여성해방의가능성을 진압했으며 그리스도교는 이 점에서 볼때 고대 사회문화의 상속자이자 담지자로서 가부장제적 체제의 확립과 유지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9) 그래서 여성 신학은 여성의 관점에서 역사와 종교, 세계가 신학적으로 파악되어야 하며, 하느님께 대한 여성체험과 그 이야기가 권위있게 공개되고 선포됨으로써 남성문화를 상대화시켜 남성적 문화와 신학을 보완함으로써 전 인간 해방과 온 우주의 구원을 이룩해야한다는 기본 취지를 드러낸다.
여성신학자들은 성서가 고대에 여성해방을 위해 비록 일익을 담당하고 기여한 면이 있지만, 성서자체가 바로 가부장제적 남성문화의 산물이라는 사실을 지적하면서 성서가 지닌 한계성을 예리하게 비판한다. 여성신학은 교회 안에 정착되어 있는  가부장 제도가 여성을 인간이 아닌 전혀 별개의 것 또는 비존재로 보아왔다고 비난한다. 그래서 여성이기에 억압과 예속을 인내하며 참아야 한다는 식의 가부장제적 설교는 반인간적 발상이라고 비판한다. 그러나 여성신학은 여성전체를 남성전체의 대립적 존재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가부장제적 권위를 고발한다. 여성신학은 종교적 억압체제로서의 가부장 제도를 극복하고 여성교회가 출현함으로써 기존교회와 문화전통이 정화되고 보완되고 완성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여성교회는 결코 분리주의적 발상에 의한 것이 아니고 여성들의 품위를 기존 종교 문화권 속에서 강조하여 여성들을 남성들의 영적지배로부터 해방시켜 여성을 보호하고 완성시키기 위한 하나의 대응적 방법의 모색이라는 주장이다.
 

2. 성서에 대해 근원적 물음을 제기하는 여성신학자들의 주장은 두 부류로 나뉜다. 첫째는, 성서전승 안에 머물러 있으면서 전승의 진위를 가리어 여성해방을 위한 근거를 나름대로 성서에서 찾고자 하는 부류이며, 둘째는, 가부장제의 산물인 성서는 그 자체로 여성억압적 전승의 원천이기에 여성해방을 위해서 도움이 되지 않을 뿐더러 오히려 장애가 된다는 주장과 함께 성서를 송두리째 거부하는 부류이다.  어쨌든  양편 모두 성서를 나름대로 논증적 자료로 인용하고 성서의 권위에 호소하고 있다.
여성신학의 입장과 상반되는 기존의 성서해석의 입장을 보면, 첫째는 교리적 성서해석 유형으로 전통적 해석방법인데 성서는 하느님의 말씀이자 계시의 완성이기에 진리의 무류성으로 어떤 이론(異論)의 여지가 없는 절대적 규범으로 파악된다. 둘째 유형은 역사적-사실적 해석으로 실증주의적 해석방법을 따른다. 이 해석 유형은 성서적 기록과 신학적 진리를 역사적 사실과 동일시하고자 한다. 셋째 유형은 양식사적-편집사적 비평을 통해 이루어진 대화적-다원적 유형이다. 즉 성서는 당대의 공동체의 다양한 삶과 상황, 그리고 체험을 통해 이루어진 것이기에 그 상황과 과정을 생각하며 재 해독되어야 한다는 해석이다.
여성신학자들도 성서해석의 여러 유형을 따라 나름대로 성서의 본래 메시지를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으며 어떤 불변의 규범을 찾고 있다. 그러나 왜곡된 요소들이 성서 안에 잔존해 있다는 사실을 간파하면서 과감하게 새로운 해석 유형을 찾고 있다. 그것이 바로 여성해방론적 성서해석이다.
여성해방 해석학은 성서를 낱낱이 분석하여 비판한다. 이제 성서는 여성해방의 관점에서 그 참 가치가 확인되고 구원적 기능이 확인된다는 것이다. 여성해방 해석학은 성서를 영구적 원형으로 보지 않고 역사적 모범 또는 신앙의 참 삶을 이룩하는 뿌리와 같은 것으로 보고 있다. 성서 본문은 본시 역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제약을 받고 있는 데 이를 모든 시대와 문화에 보편적으로 적용시킴으로써 언제 어디서나 불변하는 규범으로 파악되어 왔다. 여성해방 해석학자들은 성서의 본문을 여성의 현실 상황, 여성의 해방체험이라는 권위 다음에 둔다. 여성들은 성서적 유산을 기억하며 그 변혁을 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슈쓸러 피오렌자는 성서는 불변적 권위의 원천(source)이 아니고 여성해방을 위한 풍요로운 자료(resource)라고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남성 지배적 성서 해석학을 통한 성서이해를 영구적 원형으로 보는 입장이 배격된 것이다.
여성신학은 성서를 남성중심적 해석에 의해 규정된 영구적 원형(perduring archetype)으로서가 아니라 역사적 원형(historical prototype)으로 이해하여 다음의 네가지 입장에서 새로운 해석방법을 전개한다.
첫째, 의심의 해석학(hermeneutics of suspicion) 입장이다. 여기서는 성서 본문의 기록자들과 그 해석자들이 남성들이었기 때문에 성서 본문과 해석들이 남성중심적으로 이루어졌으리라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의심의 해석학은 성서와 그 본문의 내용들이 가부장제적 남성위주의 산물이기에 여기서 은폐되었거나 무시된 과정들을 재조명하면서여 남성위주의 해석에 의문을 제기한다. 의심의 해석학은 성서의 원문 내용 뿐 아니라 번역된 현대어 성서에 대해서도 같은 의심과 이의를 제기한다.
둘째, 역사적 사실성의 해석이 아닌 선포의 해석학(hermeneutics of proclamation)을 전개한다. 선포의 해석학은 성서가 지닌 해방적 메시지, 특히 여성을 위한 해방의 메시지를 끊임없이 선포할 것을 요구한다. 그래서 여기서 모든 성차별적 진술들은 신적 계시의 권위를 주장할 수 없다는 평가와 선언이 이루어진다. 남성만을 표준적 인간으로 취급하고 남성위주의 문화를 보편타당한 표본으로 여기는 관점에 비판을 제기하는 것이다.
셋째, 회상의 해석학(hermeneutics of rememberance)이다. 성서 공동체에서 또는 신학에서 잊고 있었던 초대 교회 여성들의 남성들과 동등했던 참여와 지도력을 상기하고 되찾는 일이다. 말하자면, 이것은 여성들에 관한 성서내용에서 출발하여 그것을 여성의 관점에서 성서의 모든 내용을 역사적으로 재구성한다. 회상의 해석학은 가부장제적 전승이라 하여 그것을 모조리 제거하지 않고, 그것을 넘어 역사-비판적 방법을 통해 여성의 역사와 문화를 찾아낸다. 은폐되고 망각된 여성해방적 전승을 기억의 해석학은 생생히 되살려내어 시공을 초월하여 오늘날 다시 살아 숨쉬는 초월적 힘을 작용케 한다. 기억을 통하여 그동안 망각되었던 억압과 불평등을 재발견하여 참 된 해방으로 나아가는 길을 모색하게 된다는 것이다.
넷째, 그것은 또한 중립주의의 방관적 해석학이 아닌 창조적 실현의 해석학(hermeneutics of creative actualization)을 지향한다. 성서의 남성중심적 전승과 해석을 가려내어 비판하는 근본 이유는 새로운 미래를 창조하기 위해서이다. 창조적 능력을 지닌 인간은 기억의 상상력을 통해 성서적 과거의 현장에로 되돌아가 선조들의 삶, 특히 여성들의 고통의 삶을 실감한다. 창조적 해석학은 여성경시의 가부장제적이고 권위적이며 부정적인 전승들 안에서 오히려 미래를 위한 창조적 가치와 건설적 가능성을 발견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성서의 메시지는 여성해방, 나아가 전인적 해방이라는 척도를 통해서만 그 참 뜻과 진가가 확인된다는 입장이 피력된다.
 

3. 여성신학은 교회와 신학, 종교와 사회문화의 가부장제적 질서 안에서 종속되고 억압되어 온 여성존재에 대한 깊은 사색, 성서 전승에 대한 창조적 재발견, 기존문화 질서에 대한 근원적 회의를 전개하였다. 여성 신학은 여성 억압적 상황으로부터의 해방을 지향하여 새로운 인간성의 실현을 추구한다. 남성과 여성의 평등과 자유로 이룩될 새로운 인간성은 모든 유형의 차별을 극복하는 평동한 세계건설을 지향하리라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여성신학이 지닌 창조적 가치로서 탈가부장제를 통한 전인적 구원관을 이룩해내고자 한다. 따라서 여성신학이 시대의 표징 속에서 이루어진 다양한 현대 신학 사조 중에서도 모든 유형의 기존신학에 대비되는 새로운 신학이란 점에서 획기적인 특성을 지닌다. 이런 의미에서 여성신학이 기존 남성중심적 신학을 보완시킬 수 있다고 간주되어도 무방할 것이다.
 

II. ‘제3세계’의 현대 신학동향
 

70년대 이래 제3세계 신학계는 신학을 주체성 확립 운동의 일환으로서 전개하면서 독자적인 길을 나름대로 모색하고 있다. 소위 제 3세계에 속하는 라틴 아메리카, 아프리카, 그리고 아시아에서 일고 있는 신학사조의 특징을 파악하고자 한다.
 

1. 라틴 아메리카 신학의 동향
 

라틴 아메리카는 제3세계의 일부이면서도 서구인들처럼 주민 대다수가 그리스도인들인 그리스도교적 대륙이다. 그런데 이 대륙은 16세기 이래 서구 및 북미 제국에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줄곧 예속되어 왔다.10)
 

1. 라틴 아메리카가 처한 저개발 상태가 바로 식민지적 상황의 결과라는 것이 1950년대 이래 라틴 아메리카의 사회과학자 및 신학자들에게서 의식되기 시작하였다. 라틴 아메리카를 비롯한 제3세계 제국들이 서구 및 북미 제국이 중심부를 형성하고 있는 현대 세계의 주변부로 밀려나 정치-경제적으로 종속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그로 인해 주체적인 발전도 이룩하지 못하고 있음이 이들 학자들에 의해 간파되기에 이른 것이다. 한 인간이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한 정상적 성장을 이룩하지 못하듯이, 한 민족 내지 국가 역시 결정의 중심을 자체 안에 갖지 못하고 외부의 세력에 의해 간접적으로 갖게 될 때에, 그래서 외부로부터 추진되는 개발 사업의 계획에 피동적으로만 참여해야 할 때에, 자체 내의 진정한 개발이란 사실상 이루어질 수 없는 법이다. 이 점을 간파한 라틴 아메리카의 일부 지성인들이 제3세계의 저개발의 상태를 종속관계와 노예관계로 이해하기 시작하면서 서구 자본주의 국가들에 대한 격렬한 반감을 표명하게 되고, 따라서 서구 세계로부터의 정치,문화,사회-경제적 ‘해방’을 거론하기에 이른 것이다.
반서구적 성격을 띤 라틴아메리카 신학은 1968년을 기점으로 표면화되기 시작하였다. 바로 이 해에 콜럼비아의 메델린(Medellin)에서 개최된 제2차 라틴 아메리카 주교 총회는 라틴 아메리카의 ‘해방 신학’을 새롭게 태동케 한 결정적인 계기라고 할 수 있겠다. 이 회의에서 라틴 아메리카의 주교들은 빈곤과 억압으로 충만한 불의한 사회구조 안에서 ‘참된 죄악의 결정(結晶)’을 보고, 이 죄악의 상태로부터 아메리카인을 해방시키려는 강력한 원의를 표명하였다. 여기서 이미 해방신학 사상이 표출되고 있는 셈이다. 이 주교 총회에서 서구 선진국의 식민주의 내지 신식민주의가 탄핵되고 있었던 것이다.
라틴 아메리카의 해방 신학자들은 교회 안에서 부단하게 종주권(宗主權)을 행사해 온 서구 신학에 불신뿐만 아니라 반감을 표명한다. 이 신학자들은 서구 세계에 의한 사회-경제적, 문화적 종속(從屬)에 대한 혐오감과 함께 서구 교회에 의한 종속에 대한 혐오감도 함께 느끼게 된 것이다. 사실상 서구 신학은 서구 문화와 사회 체제의 영향하에서 형성 발전 되었다. 서구 신학이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지배적인 서구의 정신사조, 정치, 문화, 경제 구조와 맥을 같이 하고 있음은 주지된 사실이다.
라틴 아메리카의 신학자들은 식민 체제가 내포하는 문화적 자기 소외는 신학적 자기 소외를 내포하고 있음을 지각하며, 식민주의가 교회마저 식민사회의 통합된 부분으로 전락시켰음을 인지한 것이다. 라틴 아메리카의 교회는 4, 5백년의 역사를 지니면서도 독창적인 사상을 형성하지 못하고 서구 신학에 전적으로 의존하여 신앙 문제를 해결해 왔다. 그러나 서구 사회의 토양 위에서 형성된 서구 신학은 결코 라틴 아메리카의 현실을 근본적으로 조명하여 신앙의 활성화에 기여할 수 없다는 점이 인지되기 시작한 것이다. 신학자들은 라틴 아메리카 세계의 문제에 대해 진정으로 개방된 자세를 취하기 위해서, 이 세계의 현실에 부응하는 독창적인 신학 사상이 절실하게 요청됨을 파악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들은 자기 세계의 문제 해결을 서방 신학으로부터 수입하기를 중단한 것이다.
 

2. 라틴 아메리카의 신학자들은 독자적인 결정권을 박탈당한 소외 상황을 극복하려는 취지에서 구체적인 실천 행위의 규정에 결정적인 비중을 부여한다. 서구 신학은 전통적으로 신앙의 자기 이해로서 인식론적 성격을 강렬하게 지녀왔다. 말하자면 신학은 ‘신앙의 지성’(intellectus fidei)으로 파악되어 오면서, 소여된 계시진리에 대한 교리체계의 형식으로 발전해 온 것이다. 구체적인 상황에서 요청되는 실천행위 자체는 신학적 사유(思惟)의 직접적인 대상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제 라틴 아메리카의 신학자들은 구체적 상황하에서 요청되는 실천 행위를 구명하는 작업을 신학 사유의 주된 관심사로 삼는다. 이들에게서 신학은 신앙 실천 행위의 사유로서 신앙인이 구체적 상황하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규명하는 것이다.
라틴 아메리카 신학자들은 교회가, 정착된 불의한 사회 체제와 긴밀한 유대 관계를 맺고 있음을 보고 있다. 그런데 이 세계에서 일고 있는 정치적 긴장 상태에 대해 비정치적으로 처신하기를 종용하는 서구 신학의 입장은 불의한 사회 체제에 대한 지지 표현으로 나타난다. 그래서 초월적이고, 실존론적이며 인격주의적 경향을 지닌 현대의 서구 신학이 비판되고 있는 것이다. 서구 신학이 불의한 세계 구조의 기반과 이 사회로부터 추출되는 전제들을 비판적으로 분석하지 않는 한, 서구 세계의 지배권 내지 종주권을 옹호하는 이데올로기로 머문다는 것이다. 그래서 라틴 아메리카의 신학자들은 불의한 사회 체제의 존속에 기여하는 이데올로기로서의 서구 신학을 배격한다.
라틴 아메리카의 신학자들은 교회가 사회 안에서 자신의 원의와 상관없이 정치적 역할을 담당한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이 신학자들은 교회와 신학 활동의 정치적 차원과 정치 행동의 구원적 차원을 함께 보고 있다. 이들은 신앙과 신학의 사사화(私事化) 경향을 탈피하고 구체적 실천 행위를 통하여 신앙을 활성화 시키려고 진력하는 것이다. 라틴 아메리카의 신학은 신앙을 불의한 사회 체제의 포로로 만드는 모든 요소로부터 정화시키려 한다. 그래서 이 신학은 실천 행위와의 직접적인 접촉하에 철저한 사회분석 내용과 관련을 맺기 때문에, 신학과 정치적 윤리와의 구별을 배격한다. 여기서는 멧츠나 몰트만 등이 전개하는 서구의 정치신학에서 보다 더 직접적으로 정치적 차원이 신학적 사유의 중심으로 세워진다. 이 신학은 불의한 사회 현실에 직면해서 중립적으로 처신하는 것이 적절치 않다고 보고, 억압받는 민중을 위한 해방 운동의 길을 기꺼이 택한다. 이 신학은 전체 교회로 하여금 불의한 사회 체제를 극복하고 자신의 독립성과 예언자적 자유를 되찾도록 기여하려고 하는 것이다.
라틴 아메리카의 신학자들은 그동안 구원개념, 교회의 본질과 기능, 하느님과 그리스도, 은총과 죄악 등의 여러 신학 주제를 해방신학의 관점에서 새로 조명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재조명 속에서 서구 신학의 서술 양식과 개념의 문제성을 지적하였다. 교회가 라틴 아메리카인들의 해방을 위해 투신하려면 서구 신학에 포함된 서구 세계의 지배권 및 종주권을 옹호하는 이데올로기적 요소의 폭로는 불가피하다고 간주된 때문이다.
라틴 아메리카 신학은 예수와 그의 구원 행위의 역사적 의미를 참으로 진지하게 해석하고자 한다. 서구 신학은 대개는 비신앙인으로부터 도전받는 신앙의 처지에서 출발하여 오늘을 위한 복음의 메시지를 정식화(定式化)하려고 추구한다. 그런데 라틴 아메리카의 신학은 비신앙인으로부터가 아니라 비인간, 즉 인간다운 인간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빈곤하고 억압받는 인간의 처지에서 출발하면서, 이들을 위한 복음의 의미를 천착하려는 것이다.
 

3. 서구 신학자들은 라틴 아메리카의 새로운 신학이 오랜 전통을 지닌 서구 신학에 비해 이론적인 치밀성을 지니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전통적인 서구 신학의 문제성은 라틴 아메리카 신학에 의해 간과할 수 없이 명백히 지적되었다. 이 라틴 아메리카 신학이 다른 제3세계 교회로 하여금 주체적 입장을 정립하도록 기여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2. 아프리카 신학의 동향
 

아프리카는 수세기 동안 지속된 서구 세계의 식민통치로부터 금세기 중엽 이래 해방된 대륙이다.11) 그러나 정치적 독립을 쟁취한 아프리카 신생국들은 도처에서 학살과 폭동, 내전에 시달리고 있고, 여전히 기아와 질병의 늪으로부터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70% 이상의 문맹자를 가지고 있어 기술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가장 낙후된 상태에 처해 있기에, 일부 학자들은 이 대륙을 ‘제4세계’라고 부르기도 한다.
 

1. 아프리카의 그리스도 교회와 신학은 서구인의 지배로부터 아프리카 대륙이 해방된 이후에도 난국은 계속되고 있으나, 자신의 주체성을 점차 강력하게 의식하고 있다. 아프리카 교회는 서구 선교사들의 섭정으로부터 벗어나 신앙의 문제를 새롭게 이해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1977년 가나의 악크라(Accra)에서 개최되었던 제3세계 신학자들의 범아프리카 회의는 아프리카 교회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세계 교회에 기여할 수 있는 고유 아프리카 신학을 정립하려고 시도한 단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아프리카 신학이 완성된 면모를 드러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실재(實在)의 이해와 신학 주제에의 접근 양식에서 탈서구식 경향을 분명히 보여 주고 있다고 하겠다.
서구 신학은 전통적으로 종교와 세상사를 구분 내지는 분리하는 경향을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아프리카 신학자들은 인간의 삶 자체는 종교적이고 세상적인 2개의 범주로 분리시킬 수 없는 단일성을 이룬다고 주장한다. 이들에게서의 인간의 역사(歷史)는 종교적이면서 동시에 세상적이다. 대부분의 아프리카 언어에는 ‘종교’(宗敎, Religion)라는 고유한 말이 없다고 한다. 예컨대 동아프리카에서 종교를 뜻하는 말로 쓰이는 ‘dim’이라는 단어는 아랍 세계로부터 유입된 말이라는 것이다. 아프리카에서 종교는 모든 삶의 영역에 깊이 스며들어 있어서, 종교적 삶을 전통적인 아프리카 유산의 개별 요소로서 따로 분리시키기가 불가능한 것이다. 전통 사회에서 아프리카인이란 삶을 종교적으로 이해하고 해석하는 종교적 인간임을 의미할 정도이다. 삶을 종교적인 것과 세상적인 범주로 분리시키기를 거부하는 아프리카 신학자들은 전통적인 아프리카의 종교자산과 복음을 조화시킬 수 있으므로 아프리카 세계권 밖에서도 그리스도의 복음을 새롭게 이해토록 하는 데 기여하리라고 본다.
 

2. 현대의 아프리카 신학자들은 아프리카의 전통 유산과의 지속성을 강조한다. 이들이 과거에로의 회귀를 주장하지는 않으나, 오늘날 아프리카의 현실 속에서 대하게 되는 전통적 유산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기를 촉구한다. 선교 교회들은 서구 신학의 문제들에 관심을 집중하고 아프리카 현지에서 관심사가 되는 문제들을 거의 외면하다시피 하였다. 아프리카 신학자들은 아프리카의 전통적인 종교 문제들에 대해 만족할만한 해결을 찾으려 노력한다. 이 물음들은 주로 전통적인 아프리카 종교들로부터 제기되지만, 이 아프리카 전통으로부터 주어지는 해답들이 모든 인간을 풍요케 하는 영적인 가치를 지닌다고 그들은 믿는다. 이 아프리카 신학은 아프리카라는 맥락 안에서 전개되는 생생한 그리스도교 신학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전통적인 아프리카 종교들이 지니는 가치들을 ‘복음을 위한 준비’라고 보지만 이 종교들의 신앙 내용과 실천들이 그리스도교 신학과 영성을 풍요케 하는 데 기여할 것을 확신하고 있다.
아프리카 신학자들도 ‘해방’에 대한 깊은 관심을 표명하고 있다. 이들은 라틴 아메리카의 ‘해방신학’과 북미의 ‘흑인신학’의 취지를 알고 있다. 하지만 아프리카인들은 식민주의하에서 억압과 착취 등 온갖 수모를 체험하였다. 아프리카인들은 현재에 와서도 신식민주의가 작용하고 있음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아프리카 신학에서 말하는 해방은 정치적, 사회-경제적 차원에 국한되어 있지 않고, 그 이상의 실재를 내포하고 있다.
전통적 아프리카 종교들은 악의 문제를 깊게 취급한다. 마법(魔法)에 대한 공포, 조상(祖上)의 영(靈)들과의 바른 관계, 한발(旱魃), 불행, 일상적 비극 등의 문제는 전통적 아프리카 종교의 주요 주제들이다. 종교의 주요 목표 중의 하나는 악의 방향을 역전시켜 불행을 행복으로, 실패를 성공으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아프리카 신학은 앞에서 열거한 갖가지 악의 세력들로부터 아프리카인들을 해방시키는 것을 구원으로 보고 있다. 이에 억압적인 정치와 사회-경제적 체제로부터의 해방이 첨가된다. 서구 신학에서 강조된 죄, 다분히 내적이고 개인적인 차원에서 거론되는 죄로부터의 해방이 무시된 것은 아니나 절대적 의미를 더 이상 지니지 못하고 있다.
 

3. 오늘날 아프리카 신학자들은 이 대륙이 당면하고 있는 모든 문제들에 대한 깊은 관심을 표명하고, 나름대로 보편적인 그리스도 신학을 정립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이들이 전통적인 서구 신학의 일방성을 의식하고 독자적인 신학 사상을 정립코자 하면서도, 자세면에서 경직성보다 유연성을 보다 더 느끼게 한다는 점에서 오늘날 바람직한 신학 사상 형성에 기여한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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