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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신학의 동향 - 보편역사 신학을 중심으로

현대 신학의 동향 - 보편역사 신학을 중심으로
http://cafe.naver.com/modernth/89  
 
                        현대 신학의 동향
                       - 보편역사 신학을 중심으로 -
 
                         조성노 박사 (현대신학연구소)
   1. 변증법적 신학의 지향
   1,2차  세계대전 어간의  독일 신학은  소위 [신정통주의]라  불리우는
   [변증법적 신학(dialektische  Theologie)]에 의해 지배되었다.  칼 바
   르트를 중심으로 해서 처음 거기에는  틸리히라든지 부룬너, 고가르텐,
   투르나이젠, 볼트만 등의 유수한 신학자들이  대거 참여하여 함께 활동
   하지만 크게 바르트의 입장과 불트만의 입장으로 양분된다.
   우리는 그들 신학의  성격에 따라 통상 바르트의 노선을  [하나님 말씀
   의 신학(Theologie  des Wortes Gottes)]이라 명명하고  불트만의 노선
   을 [케리그마 신학] 혹은  [실존론적 신학(Existentiale Theologie)]이
   라 명명하고  불트만의 노선을 [케리그마  신학] 혹은 [실존론적  신학
   (existentiale Theologie)]이라 명명한다.
   물론 이 양자의  신학적 입장은 여러 면에서 서로 판이하게  다른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단  하나 일치되는 점이 있다면 그것은  이들 모두
   의 신학적 관심이 [말씀으로서의 계시]에  집중되고 있다는 점이다. 따
   라서 이 양자는  모두 '말씀 지향적'이라는 신학적 특색을  갖는다. 그
   런데 결코 간파될  수 없는 변증법적 신학이 범한 치명적인  신학적 과
   오가 있다. 그것은  곧 그리스도교 신앙으로부터 그 역사적  기반을 폐
   기해 버렸다는 사실, 바로 그것이다.
   이를테면 불트만, 고가르텐,  브라운 등을 중심으로 한  실존론적 신학
   에서는 역사적인  그리스도 사건을 인간실존의  [역사성]이니 [의미성]
   이니 하는 극히  추상적인 비역사적 개념으로 내면화 시켜  버렸고, 바
   르트를 중심으로 한  말씀의 신학에서는 날카로운 역사  비판주의에 맞
   서서 그리스도교 신앙을  지성적으로 해명하지 못하고 아예  논란과 비
   판의 여지가 봉쇄된 [원역사]니, 혹은  [초역사]니 하는 비역사적 개념
   에로 도피함으로써  그리스도교 신앙으로  하여금 그 본래적인  역사적
   지반을 스스로 포기하겠금 오도한 것이다.
   사실상 1920년 이후의  독일 신학은 무려 한 세대 이상이나  이러한 신
   학적 오리엔테이션에서 벗어나지를 못했다.  그러나 판넨베르그가 등장
   한 60년대 초반에  와서는 그 사정이 매우 달라진다.  판넨베르그를 일
   약  세계적인  대학자로 만들어  놓은  [역사로서의  계시(Offenharung
   Geschichte)]라는 저작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여기에 시도된 계시
   개념에 대한 새로운 이해와 함께, 무려 한세대  이상이나 이런 저런 양
   태로 우리의 신학적 사유를 지배해 온  [말씀의 신학]은 이제 지양되었
   다." 이 대담한  선언이 의미하는 바, 즉 그가 의도한  바는 대체 무엇
   이었던가 그것은 종래의  계시 이해인 [말씀으로서의 계시]  개념을 단
   순히 수정.보완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하나의 전혀  새로운 개념,
   즉 [사실의 언어(die  Sprache der Tatsachen)]라고 할 수  있는 [역사
   적 사건]들을  그리스도교의 새로운 계시개념으로 대체하려는  데 있었
   다.
   이러한 야심하에서  그는 [역사로서의 계시]라는 명제를  내걸고, 개혁
   주의와 근대적 자유이념을  적절히 조화시켜 가며, 독특한  [역사 해석
   학적 신학]을 전개해  가고 있어서 독일에서 분 아니라  미국의 신학계
   에서도 바르트와 볼트만에  이어 가장 주목받는 신학자로  평가되고 있
   다. 특히 그의 역사 신학적인 보편성의 요구는  최근 들어 로마 카톨릭
   신학자들에게서 조차 각별한 주목의 대상이 되고 있다.
   2. 판넨베르그 신학사상의 형성 배경
   ⑴ 바르트의 영향
   판넨베르그는 1,2차 세계대전의 중간 시기인  1928년 독일 사회의 전형
   적인 중산층이라 볼 수 있는 한 공무원의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의 가
   정은 그저 평범했을 뿐 특별히 경건한  그리스도교 가정이었던 것 같지
   는 않다. 어쨌든 그는 독일의  대불황기에 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때
   그때 필요한 교육을  비교적 순조롭게 받을 수 있었던  행운아였다. 그
   러나 그 역시도 가장 예민한 청소년  시기를 단말마적인 나치즘의 횡포
   와 패망 독일의 어두운 역사적 소용돌이  속에서 인간의 죄악성과 고뇌
   를 몸소 체험하며 보낼 수 밖에 없었다.
   1950년 그는 스위스 바젤 대학으로 가서  바르트에게 신학을 배우며 그
   로부터 인상깊은 감화를 받는다.(당시 바르트는  1934년 5월 31일에 성
   명된 [바르멘 신학적 선언] 사건으로 히틀러에  의해 독일 본 대학으로
   부터 추방당해 바젤 대학에 재직중이었다).  여러 면에서 판넨베르그는
   바르트에게 저항하고,  그의 사상을 반박하고 나서지만  그럼에도 그는
   바르트의 위대성을 결코 과소평가하지 않는다.  특히 다음 몇가지 점에
   있어서는 바르트에게  큰 빚을 지고  있다는 사리도 부인하지  않는다.
   ① 오랜 전통의 그리스도교 사상율에 대한  바르트의 존경과 헌신 그리
   고 신학자로서의 투철한 책임의식등에서 큰  감동을 받았고, ② 바르트
   의 계시에 관한  통찰 가운데서 또한 배운바가 적지  않았다. 바르트는
   누구보다도  가장  확실하게 계시란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자기계시
   (Selbstoffenbarung)]이라는 바로 그 이유로서만 계시가  될 수 있음을
   분명히 한  사람이다. 판넨베르그도 바르트의 이  [하나님의 자기계시]
   라는 계시 개념의  본질이해를 그의 신학의 출발점으로 삼는다.  ③ 그
   리고 또 한가지는 이러한 계시 개념과  함께 거기에 필연적으로 수반되
   는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이 신학에서 차지하는 비중에  대해서도 바르
   트로부터 배운바가 컸다. "계시가 [하나님의  자기계시]라고 한다면 예
   수 그리스도는 참으로  독특한 의미에서의 하나님의 자기계시  일수 밖
   에 없다. 따라서 일체의 신학적 작업에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가 그 중
   심이 돼야한다"는 대원칙을 그는 바르트에게서 배웠던 것이다.
   그럼에도 바르트와는 달리  그는 신학이 현대사회 안에서  동요되는 합
   리성이라는 기초에 순응해야 할 것을  강조한다. 만약 바르트가 주장하
   는 바처럼 신학이 일방적으로 계시라는  폐쇄적이고도 권위주의적인 개
   념에만 매달리게 되면  한갓 보편성이 결여된 초라하고  왜소한 학문으
   로 전략되고  만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판넨베르그는 그  다음해인
   1951년에 바젤로부터 돌아와 학생으로서는 가장  중요한 시기를 하이델
   베르그에서 보내게 된다.
   ⑵ 폰 라트의 영향
   당시 하이델베르그  대학에는 그야말로  기라성 같은 저명한  학자들이
   여럿 포진하고 있었는데  우선 그는 정통 루터주의  신학자인 에드문트
   쉴링크 교수의 지도로  박사학위 논문을 준비하는 한편  게르하르트 폰
   라트, 한스  폰 캄펜하우젠, 하인리히  포젤, 페터 부룬너등의  강의를
   통해 신학적인 기량을 닦으면서 칼 뢰비트,  니콜라이 하르트만, 칼 야
   스퍼스 등으로부터 철학적인 훈련도 쌓는다.
   판넨베르그 자신의 고백에 의하면 위에  열거한 신학자, 철학자 가운데
   서 특히  세 사람, 즉 폰  라트와 존 캄펜하우젠  그리고 뢰비트로부터
   가장 큰 영향을 받는다. 이 저명한 세  학자들은 모두 판넨베르그로 하
   여금 신학에서의 역사의  중요성과 역사의 본질에 대한  새로운 인식에
   눈을 뜨게 한  사람들이었다. 그 중에서도 특별히 저명한  구약 학자인
   폰 라트로부터는 바젤로가서  바르트에게 배운 것들 못지  않은 중요한
   몇가지 인식을 체득한다. ① 신학이라는  것은 궁극적으로 하나의 역사
   해석에 집중된다는 점, ② 폰 라트가 말하는  그 역사라는 것은 특별히
   이스라엘 역사를 통해 행동하시는 야훼의  역사라는 점에서 구약성서는
   모든 신학적 사고에 있어 필요불가결의 것이 라는  확신, ③ 성서적 하
   나님이 인간 역사와  관계하시는 그 양상에 관한 부분인데,  폰 라트는
   야훼 하나님의 계시란 "시대와 시간에  매어있다"고 한다. 즉 구약성서
   에서는 야훼에 대하여  무엇이 계시되던지 간에 그것은  반드시 이스라
   엘의 신앙고백이 형식으로 보도된, 이스라엘  역사의 온갖 사건들과 관
   계하시는 야훼라는  형태로서 알려진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해는 훗날
   판넨베르그로 하여금  항상 [시대와 시간]속에 나타나는  [구체적인 사
   건들로서의 하나님의 계시]에 집착하도록 영향을 끼쳤다.
   판넨베르그는 이처럼 그의  신학적 사고에 있어서 폰  라트로부터 몇가
   지 결정적인 영향을 받지만 결국 바르트와의  관계에서 처럼 아주 중요
   한 부분에서 역시 결별하고 만다.  그것은 하나님이 관계하시는 역사의
   지평에 관한 결례인데,  폰 라트는 우선적으로 신앙 고백의  형태로 보
   도된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행동하시는 하나님께 관심하는  반면 판넨
   베르그는 실제의 총체라고 할 수 있는  [전체로서의 역사] 속에서 자기
   를 계시하시는  하나님께 관심을 쏟는다는 점이다.  판넨베르그는 신학
   을 이스라엘 역사에만  제한 시켜서 그것의 신앙고백의  성격에만 관심
   하는 것은 그 고백들이 정초하고 있는 사건  자체들, 즉 역사의 실제적
   인 질료들을  간파하는 처사라고  못마땅해 하며 하나님이  관계하시는
   역사의 폼을 전우주사로 확장시켜 실제의 총체라  할 수 있는 보편사(U
   niversalgeschic-hte)를 다른  때 만이  비로소 신학이 제구실을  하게
   된다고 보았다.
   3. 보편학문으로서의 신학
   우리가 판넨베르그의 신학사상  형성에 영향을 끼친 계기들을  논할 때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것은 후에 소위 [판넨베르그  써클]이라고 알
   려지게된 연구팀이다. 그들은 판넨베르그가  하이델베르그 대학에서 만
   난 신학동료들로서 각각 전공이 다양하여 신학  전반을 포괄할 만큼 그
   분야가 광범했음에도 하나의  팀을 이루어 공동으로 연구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모두 [역사는 그리스도교  신학의 가장 포괄적인  지평이
   다]는 판넨베르그  신학의 기본명제에  원칙적으로 공감했기  때문이었
   다. 그리고 이  연구팀에서 1961년 공동저작으로 내놓은 책이  바로 판
   넨베르그를 대학자로  만들어 놓은 [역사로서의 계시]이다.  오늘날 학
   문이 보도로 전문화  되어가고 있어서 자기 전공분야외  타분야에 대해
   서는 거의 문외한이 되어 가는 상황  속에서 [판넨베르그 써클] 이야말
   로 각기 자기 전문분야의 연구를  공동관심사에 집중시킴으로써 학문의
   고립성을 극복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좋은 귀감이된 시도였다고 본다.
   실제 [신학은 철저히  하나의 보편적 학문]이 되어야  한다고 역설하는
   판넨베르그 주장의 일면에는 바로 이와같은  연구팀의 영향이 있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그냥 지나쳐서 안될 것이다.
   ⑴ [이성의 신학]
   판넨베르그는 철두철미 이성의 사람이다. 이성에  대한 그의 신뢰는 실
   로 대단한 것이어서 그 방면에 대한  충분한 이해없이 판넨베르그 신학
   을 이해하기란  극히 어렵다. 철저한  이성의 신학자인 그는  계몽주의
   사조가 세계를 휩쓴  이래 점차 그 학문의 영토를 상실하여  이제는 겨
   우 명백만을 유지해가기에  급급한 신학으로 하여금 이성의  지평 위에
   서 타학문과 떳떳이  대결하고 나아가서는 모든 학문을  포괄하는 하나
   의 보편적 학문이  되게 하고자 결사적인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그러
   므로 신학에 대한 그의 궁극적인  목표는 보편학문으로서의 [이성의 신
   학(Theologie der Vernunft)]을 수립하는데 있다.  따라서 그의 신학은
   몰트만의 신학과는 대조적으로 극히 이론적이고도  논중적인 요소가 강
   하다. 그에 의하면 신학을 하나의  보편적 학문의 기능에로 복귀시켜야
   할 과제란  어떤 인위적 야심에서가  아니라 신학의 주제 그  본질에서
   비롯된 점이다.  신학이란 것이 정말  [신에 관해 말하는  학문]이라고
   한다면 신학에 대한 보편성의 요구란  불가피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
   는 [신]이라는 말이 그 어휘나  뜻하는 의미대로 사용되려면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결정하는 힘]이라는 뜻으로서  이해될 때만 가능하다고 본
   다. 그렇다면 이는  하나님 없이는 그 무엇도 이해  불가능하다는 것이
   고 따라서 신학은 [모든 존재자들]을  하나님과의 관련하에서 이해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는데 이같은  사실이 바로 신학의 보
   편성을 구성하는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그는 과거 개신교  신학의 잘
   못을 이 보편적 학문성의 포기에서 보았다.
   종교개혁 이래 개신교  신학은 소위 편협한 성서원리라는  것에 붙잡혀
   서 성서해석이라는 특수 분야만이 자기의  고유한 영역이라고 생각하고
   그것만 고수하려한 나머지  이성에 입각한 다른 일반적  학문과는 점점
   유리되어 급기야는 타학문으로 부터 완전히  소외당하는 위기에 봉착하
   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신학의 가장 시급한 현실적  과제는 그
   주제의 내적 요구에  따라서 다시금 신학본연의 학문적  보편성을 회복
   하는 일이다. 바로  이것이 왜 그가 바르트의 추월주의나  볼트만의 지
   엽주의.주관주의를 그토록 거부하고 나서는가에  대한 단단한 이유이기
   도 한 것이다.
   ⑵ 보편성 회복을 위한 조건
   그렇다면 신학이 그  학문의 보편적 성격을 되찾으려면  어떻게 해야하
   는가. 거기에는 최소한  두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①  신학이 대상으로
   삼는 주제가  보편적이어야 한다. 그런데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모든
   존재자들을 결정하는  능력]으로서의 신이  바로 신학의 대상이며,  그
   신은 세계의 모든 것을 포섭하기에 충분한 보편적  주제가 될 수 있다.
   그런데 한가지 문제가  되는 것은 전통 신학에 의하면 신  자신이 스스
   로를 계시 하는 만큼만 인간이 그를 알  수 있다고 주장한다는 점이다.
   바로 여기에서 신학이  학문의 보편적 성격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하나
   님의 자기계시 자체가 보편적이어야 한다는  문제에 부딪치게 된다. 과
   연 계시가 보편적일 수 있겠는가.
   이러한 문제에  봉착한 판넨베르그는  마침내 계시개념에 대한  혁명적
   이해의 시도로써 가장 우주적이고도 가장  보편적인 [역사로서의 계시]
   라는 명제를  제시하게된 것이다. 여기에서 판넨베르그가  말하는 역사
   란 그야말로  창조에서 종말까지의  [전체로서의 역사]이지,  세속사나
   구속사라하는 이원론적  역사개념이 아니라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
   다. ② 신학이  그 학문적 보편성을 되찾기 위해서는  신학적 인식론도
   역시 보편적이어야 한다. 만약 신학적  인식론이 보편적인 성격을 띠지
   못하고 특수한 기반위에  있다면 그러한 계시인식의 매개를  통한 신학
   은 결코 보편적 이라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판넨베르
   그는 이성을 통한 신학 방법론을  주장하기에 이른다. 그렇다면 판넨베
   르그에게서의 신학이란 결국 이성을 통하여  하나님의 자기계시인 보편
   역사를 올바로 이해하는 작업이라고 정의될 수 있을 것이다.
   4. 역사로서의 계시
   ⑴ 독일 관념론 전통
   앞서 살펴 본  바대로 신학이 보편학문일 수 있기 위해서는  계시에 대
   한 새로운 보편적 이해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판넨베르그는 소위 [역사
   로서의 계시]라는  명제를 주창함으로써 그의 신학적  프로그램을 전개
   해 가고 있는데, 아닌게 아니라 이것은 전통신학적에  비추어 볼 때 하
   나의 대담한  시도라 아니 할 수  없다. 그럼에도 이것은  결코 새로운
   개념이거나 그만의  독창적인 개념은 아니다. 판넨베르그  자신이 밝히
   고 있듯이 레싱, 헤르더, 쉘링, 헤겔에 이르는  독일 관념론에 그 뿌리
   를 두고  있다. 다만 판넨베르그는  그 개념을 신학적으로  철저화하여
   자기 신학의 기본개념이 되도록 고양시켰다고 볼 수 있다.
   18세기 계몽주의 시대가  이르기 전, 특히 17세기 신교  정통주의 시대
   에 있어서는 계시의  언어적.명제적인 면을 지나치게 강조  하였다. 그
   들은 성서의 영감과  하나님의 계시를 동일시 했고,  계시를 [초자연적
   인 숨겨진 진리들의 전달]로 이해했다. 그러나  이러한 계시 이해는 성
   서에 대한 역사  비판적 연구의 대두와 함께 크게  흔들리기 시작한다.
   성서의 역사  비판적 연구의 결과로  나타난 문제는 크게  두가지인데,
   그 중 하나는  더이상 성서의 문자적 의미와 그것의 실제  역사적 내용
   을 무조건 동일시  할 수 없다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현대의 신학
   과 원시  그리스도교 사이에 가로놓인  역사적 괴리를 쉽게 극복할  수
   없다는 점을 자인하기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사실 오늘날 모든 신학자
   들이 가장  골치를 않는 문제도 바로  이 점일 것이다.  또한 하나님이
   계시의 양면을 새롭게  이해해 보려는 판넨베르그의 야심  배후에도 바
   로 이런 문제 즉, 본문과 그 본문 뒤에  있는 실제 사건 사이에 가로놓
   인 간격 그리고  해석자(현재)와 그 본문(과거) 사이에  놓여있는 거리
   를 합리적으로 메꾸어 보려는 의도가 없지 않다고 본다.
   ⑵ 계시에 관한 명제
   1961년 출판된  [판넨베르그 써클]의 [역사로서의  계시]라는 연구논문
   집은 판넨베르그 자신의  논문인 일곱 항목으로 된 '계시의  교리에 관
   한 교의학적 병폐'라는  글이 핵심을 이루고 있는데, 그 중  몇가지 중
   요한 명제만 요약한다면 ① 계시란 어떤  숨겨진 진리의 계시가 아니라
   하나님 자신의 [자기계시]  혹은 [자기 드러냄]이다. ② 신의  자기 계
   시란 신의  출현과 같은 직접적인  형태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역사적  행위를 통해 이루어지는 [간접적]인  형태의 것이다.
   ③ 계시는 역사의 종국에 가서야 비로소  완전히 드러나게 된다는 점을
   특히 강조한다. 이것은  위에서 말한 다른 명제들의 당연한  논리적 귀
   결이다. 계시가 역사적 사건들을 통행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모든 역사
   적 사건들이 마감되는 역사의 종국에 가서야  비로소 그 완전한 자태를
   드러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④  그런데 이러한 역사적 계시란  [볼
   수 있는  눈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누구에게나 공개되어 있다]는  것이
   다. 이것은 바로 그리스도교 계시의  보편성을 나타내려는 바로서 대단
   히 중요한 명제로 취급된다.
   종교개혁가들이나 오스카 쿨  만의 경우 하나의 사건을  신적인 구속사
   건으로 규정하는 데는 성령의 보충하는 해석을  필요로 하는데 반해 보
   편역사 신학에서는 신을 계시하는 사건들이란 보는  눈을 가진 모든 사
   람들에게 명확히 드러나  있으므로 그것을 인식하기 위해  성령의 조명
   과 같은 특별한  보충적 해석은 필요치 않다고 말한다.  물론 판넨베르
   그도 신의 계시가 아직도 많은 사람들에게  은폐되어 있다는 소위 정통
   신학이 말하는 [계시의 은폐성]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사실은
   계시가 인간의 이성에  비해 너무 높아서 신앙 또는 성령의  조명과 같
   은 다른 인식의 매개가 요구된다는 뜻이  아니라 오히려 그와는 반대로
   역사적 사건들 속에 은폐된 신의 계시성을  제대로 깨닫기 위해서는 투
   명한 이성의 조명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이
   스라엘과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 속에서 신의 게시를  발견하기 위해서
   는 미리 신앙을 지참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진정한 신앙이란 이 사건
   들의 자유로운 이성적 지각을 통해  비로소 각성된다. 그러므로 신앙은
   계시인지의 전제 조건이 아니라 오히려 계시인식의 결과다.]
   자, 이상과 같은  판넨베르그의 계시에 관한 몇몇 명제들을  우리가 그
   대로 받아들이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무엇 보다도 먼저  발생할 중대
   한 문제는 지금까지  그리스도교가 주장해 온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서 궁극적,  절대성이 위기에  봉착한다는 것이, 다시말하면  하나님의
   계시가 역사의 종당에  가서야 완전히 드러나고 역사의  과정에서는 아
   직 잠정적인 것에 불과하다면 어떻게 수많은  역사적 사건들 가운데 하
   나인, 그리고 역사의  한 과정에서 발발한 예수 그리스도  사건이 하나
   님의 궁극적이고도 종말론적인 계시의 의미를 지닐  수 있는가 하는 것
   이다. 오늘은 일단  문제 계시로 그치고 뒤에 가서 이에  관해 다시 한
   번 논하기로 하자.
   5. 신앙과 이성
   에어링겐 대학의 루터주의자  알트하우스(P.Althaus)는 1962년 [역사와
   신앙으로서의 계시(Offenbarung  als Geschichte und  Glaube)]라는 논
   문을 통해  1년전에 나온 판넨베르그의 [역사로서의  계시]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알트하우스의  비판의 요지는 계시란 합리적  이성으로 파악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어디까지나 성령의  도우심을 통한 신앙의 모
   험으로써 이해 가능한 것이 라는 주장이었다.
   ⑴ 이성의 논리적 선행성
   이상과 같은 알트하우스의 비판에 대해  판넨베르그는 그 다음해에 [통
   찰과 신앙(Einsicht und Glaube)]이라는 논문을  통해 다시금 알트하우
   스의 입장을 반박하고  나섰다. 판넨베르그는 그 논문  첫머리에서 "오
   늘날 많은 사람들이  주장하기를 신앙의 근거와 내용은  합리적 통찰로
   는 파악할 수 없고 오직 모험이 동반되는  신앙을 극히 위태롭게 하고,
   해롭게 하는 것"이라고 통박하면서 바로  이러한 태도에서 "그리스도교
   신앙이 맹신이나  미신 혹은 고달픈  행위, 혹은 자기기만과  위선으로
   추락된다."고 지적한다. 그러므로 신앙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신앙의 근거에 대한  합리적인 지식의 중요성이 강조되어야  한다는 것
   이다.
   물론 판넨베르그도 계시를 파악함에 있어서  신앙의 중요성을 무시하지
   는 않는다. 그리스도교 인식론에 있어서  신앙과 이성의 밀접성을 인정
   함에는 판넨베르그도  여타의 신학자들과 별다른 차이가  없으나, 문제
   는 어느 것이 선행하는냐 하는 것인데 그  점에 관한한 그는 분명 이성
   의 논리적인 선행성을 강조한다. 판넨베르그는  1972년에 출판한 [신앙
   고백(Das  Glaubensbekenntnis)] 초반부에서  신앙의 성격을  예리하게
   분석하고  있는데,   거기서  그는   신앙이란  본질적으로   신뢰(Das
   Vertrauen)와 같은 것이  라고 말한다. 그런데 신뢰라는 것은  그 대상
   의 신뢰 가치성에  대한 지각을 전제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
   가 어떤 대상을  신뢰한다고 했을 때 이미 그것은 이성적  지식을 통한
   상대의 진실성  혹은 성실성등의  신빙성을 확인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다. 따라서  신앙의 진실성은 신앙하는  사람이 대상으로 하는  상대의
   진실성과 결코 분리될  수 없다고 본다. 그러므로 그는  진실한 신앙을
   가지고자 할 수록 겸손하게 실례에  정초해서는 안된다고 경고한다. 먼
   저 신앙 내용에  대한 신중한 성찰을 통해 신뢰할 만한  이성적인 지식
   이 확보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여 결코 그는  키엘케고르나 바르트처
   럼 "사실이  의심스러우니 확신을 얻기  위해 너는 신앙에로의  도약을
   감행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신앙이란  의심스러운 사실
   에 대해 '믿습니다.'하는  행위가 아니라 의심할 수 없는  확실한 역사
   적.이성적 사실에  대해 신뢰하고  생명과 미래를 거는  행위이다"라고
   말한다.
   ⑵ 상향식 인식론
   이러한 그의 이성적 논리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에 있어서도 물
   론 예외가 아니다. 그의 주장에 의하면 과거에  일어나 사건을 아는 데
   는 역사적 탐구를 통한 역사적  지식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하다. 따라서
   그는 과거 사건에 대한 지식에 있어서  [자연적 지식]과는 구분되는 어
   떤 특수한 [신앙적  지식] 같은 것은 있을 수 없다고  잘라 말한다. 그
   러므로 하나님의 계시로서의  예수 그리스도 사건 역시  지나간 과거의
   역사적 사건임이 분명하고,  또 과거의 사건에 대한 지식은  역사적 탐
   구를 통하는 길  이외에 다른 도리가 없다고 한다면 결국  하나님이 예
   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을 계시하셨다는  사실은 역사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니고 무엇이겠느냐는 것이다.
   이같은 그의 주장은 신앙이란 역사가의 노력으로  증명될 수 있는 문제
   가 아니라 하나의  인격적 결단의 문제임을 강조하는  불트만의 입장과
   정면으로 대립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물론 판넨베르그도  역사적 탐
   구의 결과가 결코  이론의 여지가 없는 안전한 지식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라고는 보지 않는다.  그 지식이 가장 올바르다고 해봐야  기껏 개
   연성을 능가할  수 없다는 사실을 그  역사도 모르는 바  아니다. 단지
   과거 사건에  대한 지식에 이르는  길이 역사적 탐구의 길밖에  없다고
   했을 때, 그리스도교 신학은 피할 수 없이  비판적 역사학과 손잡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제 그리스도교의  진리를 이해하는 길이란 먼저
   결단적 맹목적 신앙에서 출발할게 아니라 우선은  과거 사실에 대한 올
   바른 지식이 앞서야 하고, 그 지식에 근거하여서  서 비로소 눈에 보이
   지 않는 신앙의  실재를 파악하게 돼야 한다고 말한다.  바로 이와같은
   이성적 방법론이 예수의 부활사건, 빈무덤의  사실에 대한 역사적 논구
   에서 출발하여 예수의 신성, 메시야 되심 그리고  주되심 등의 신앙 내
   용들을 하나하나 이성적으로 확립해 가는  판넨베르그 기독론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결국 그의 이러한 방법론은 바르트와  에밀 브룬너, 파울 알트하우스와
   는 대조적으로 우선  역사적 사실에서 출발하여 종교적인  실재로 올라
   가는 상향식 방법이며, 빈무덤 사건에서  화육의 사실로 거슬러 올라가
   는 소급식 방법을  취하고 있다. 이것은 모두가 이성을  신앙에 앞세우
   는 그의 인식론에  근거한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그의 신
   학의 방법론적  구도가 [컨텍스트부터 텍스트로]라는 제  3세계 신학의
   정치신학적 원리가 된 점 또한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6. 선취(Prolepse). 예기(Antizipation)
   이미 앞서  언급한 바와같이  판넨베르그의 [역사로서의 계시]  개념은
   예수를 하나님의 궁극적 계시로 보는 종래의  견해에 큰 문제를 던지고
   있다. 즉 그의 주장대로 하나님의  계시가 [전체로서의 역사]에서만 완
   전히 드러난다면 결국  계시란 역사의 종말에 가서야  완성된다는 것인
   데, 그렇다면 역사의  중간에 나타난 예수 사건이 어떻게  하나님이 최
   후적 계시, 완전한  계시, 종말론적인 계시가 될 수 있는가  하는 것이
   다.
   ⑴ 예수 숙명의 종말론적 성격
   결국 이 문제의 해결은 비록 역사가 아직  그 종말에 이르지 못했다 할
   지라도 종국적인 진리와  현실이 얼마만큼 그리스도 사건과  함께 이미
   실현 되었는가 하는  점이 명쾌해지지 않으면 안된다. 즉  예수 사건의
   종말론적 성격이  분명하게 규명되어져야 한다는 말이다.  아닌게 아니
   라 판넨베르그는 이 안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렇게 말한다. "예
   수의 운명 속에서 역사의 종말은  예기적으로 미리 경험되었다." "예수
   의 운명 속에서 역사의 종말은  예기적으로 미리 경험되었다." "예수의
   지상적 선포는 다가오는  하나님 나라의 예기였고, 그의 죽은  자 가운
   데서의 부활은 세계 종말에 있을 죽은 자들의 부활의 선취 행위였다."
   우리들에게는 아직도 소망해야할 미래의 종말적  사건들이 예수에게 있
   어서는 이미  죽은 자 가운데서의  부활을 통해 선취되었다는  것이다.
   이렇듯 판넨베르그로  하여금 역사를 그  총체성에서 볼 수 있게  하는
   [아르키메뎃의 점]은  다름 아닌 바로  예수의 부활 사건이다.  그러나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다시말하면 예수의 부활사건을  역사의 종말이
   되게하는 해석학적 지평은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그는 대체  어떤 논
   거로써 그같은 주장을 펴는가하는 것이다.
   ⑵ 해석학적 열쇠로서의 후기 유대교 묵시문학
   판넨베르그에 의하면 예수 숙명의 진정한  이해는 구약성성, 특히 보편
   역사를 표상하는 묵시문학의 사관 속에서만  가능하다. 사실 후기 유대
   교적 묵시문학은 그저  혼잡하고 황당한 환상적 이야기로  이해되어 신
   학자들로 부터 이렇다할 주목을 받지  못해왔으나 판넨베르그에 이르러
   서는 그의 보편역사  기획에 의해 예수사건 이해에  직접적으로 기여하
   는 해석학적 열쇠가  되고있다. 후기 유대교 묵시문학에  의하면 "하나
   님은 우선 역사적  행위를 통하여 직접적으로 자기를  계시하시다가 역
   사의 종말에  가서야 비로소 완전한  자기의 영광을 계시하실  터인데,
   바로 그 때 역사를 마무리 짓기 위해  죽은 자들을 일으켜 심판대 앞에
   세우는 사건이 있게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바로 예수에게서  그같은 죽은 자의 부활  사건이 발생했으므로
   아직은 하나이 전초적이고도 예기적인 성격을  띠고있는 것은 사실이나
   어쨋든 종말적  사건이 예수에게서  선취적으로 야기됐는 점에서  예수
   사건은 종말직 사건이며  또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의 궁극적  계시, 최
   후적 계시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예수의  역사의 중
   간이 아니라 예기된 종말이다"라고 한다.  이처럼 판넨베르그에게 있어
   서의 예기란 종말을  향해 유보된 신이 결정적 계시에 대한  선취를 뜻
   하고, 그리스도의 숙명은  바로 그 선취적인 구조 속에서  하나님의 최
   후적 계시, 절대적 계시가 되고 있다.
   
   닫 는 말
   금세기에 들어서면서 날카로운 역사적 비판에  직면하게 된 그리스도교
   신학이 정면에서  그리고 진지하게  비판적 역사학에 내용하지  못하고
   초역사(바르트)니, 실존적  역사성(볼트만)이니 하는 도피처로  피신하
   는가 하면, 역사에  그 근거를 둔 엄연한 역사적  종교로서의 그리스도
   교가 그 지반을 스스로 포기한채 실존적  결단 혹은 신앙적 결단이라는
   주관적인 측면에만 매달릴 때 역사적 사건들의  일반적 구조 속에서 사
   실의 언어를 통해  하나님의 계시를 읽으려는 판넨베르그의  출현은 참
   으로 신선한 새바람을  일으키기에 족했다고 본다. 신앙에  앞서 이성,
   언어적 계시보다  역사적 사건으로서의 계시관을  들고나온 판넨베르그
   의 시도는 바르트, 볼트만의 변증법적  신학이래 부재된 역사의 개념을
   신학의 중요한 테마로  새롭게 제시하면서 신의 계시를  역사와의 관련
   속에서 파악하였다는데  신학사적 의의가 크다 하겠다.  또한 지금까지
   교회가 유보해온 세속세계, 세속역사에 대한  책임과 관심을 환기 시켰
   다는 점에서도 각별한 평가가 있어 마땅할 것이다.
   그러나 이 싯점에서  더욱 우리의 관심을 끄는 문제는 역시  그의 보편
   역사적 계시구조에  대한 이해다. 즉  그에게 있어서는 아브라함의  선
   택, 모세의 소명, 출애굽과 같은 성서적  사건들이 1,2차 대전, 히틀러
   의 출현 혹은  동학혁명, 3.1운동, 4.19,광주민중항쟁 등과  같은 세속
   사적, 민족사적 사건들과 동일한 계시적 의미를  가진다. 이 점이 바로
   우리를 당황하게  하면서도 다른  한편 보다 통전적인  민족신학에로의
   지평을 열어놓고 있다고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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