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신학의 동향
현대신학의 동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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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아론 박사 (총신대 교수)
1. 자유주의 삼총사의 몰락과 칼바르트의 등장
20세기가 시작될 무렵 유럽신학은 리츨과 하르낙 헤르만 등 자유주의
신학의 삼총사의 지배하에 놓여 있었다. 이들의 아버지와 같은 존재는
쉴라이에르 마허였다. 이들의 신학은 한마디로 倫理主義 神學(ethical
theology)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윤리주의 신학의 특징은 예수
그리스도를 초자연적인 하나님의 아들로 보지 않고 인류의 도덕적 선생
으로 생각했으며 성경은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다만 인류
를 위한 [위대한 도덕 교과서]로 여기면서 진리의 척도로서의 종교적이
며 윤리적인 경험을 내세우는 데 있었다.
칼 바르트는 1919년 그의 저서 {로마서 강해}를 통해 고전적 자유주의
를 공격하고 이 저서를 통해 유럽의 신학계는 새로운 물결이 밀려 왔던
것이다.
2. 칼바르트의 실각
1920년대로부터 50년대까지 유럽 신학계에서 바르트는 他의 추종을 불
허하는 유럽의 대표적 신학자로 인정받고 알려지게 되었고 영미 신학계
와 심지어 피 선교지 신학에 까지 깊이 파고 들어 그 영향력을 행사하였
다. 이 신학은 新正統主義라는 이름의로 알려지게 되었으며 그와 입장을
같이 하는 신학자 에밀 부룬너와 신학적 동반자로서 노고를 나누기도 하
였다.
칼 바르트의 신학은 금세기 중엽에 이르러서 루돌프 불트만의 {말씀과
신화}가 1948년 출간됨으로 실각하게 되었다.
3. 불트만의 붕괴
불트만은 그의 저서 말씀과 신화의 출판을 계기로 갑작스러운 신학적
인기의 상승을 누리면서 바르트의 과학적 세계관과 실존주의 철학을 무
시하는 듯한 시대와 뒤떨어진 {교회 교의학}을 그의 [양식비평학]과 [실
존주의 신학]으로 제압해 버렸다. 그러나 그도 역시 그의 제자들에 의하
여 비판을 받게 되었다.
4. 어지러운 신학의 판도
불트만의 신학이 붕괴함으로써 유럽신학계는 큰 혼란이 일어났다. 불
트만 후의 신학자들은 [후기 불트만 신학자]들과 반 불트만 신학자들이
라고 볼 수 있는 [보수파 신학자들]과 [구원사학파 신학자들]과 [판넨베
르그 몰트만파 신학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후기 불트만파 중에는 괴팅겐의 한스 콘젤만과 하이델베르그의 에리히
딩켈, 훅스, 에벨링, 케제만, 큠멜 등이 있다.
반 불트만파에 속하는 학자들은 보수파로 괴팅겐 대학의 예레미야스,
마인즈의 스타린, 함베르크, 고펠트, 엘랑겐의 프리드리히 등 이고, 구
원사학파 신학자들은 바젤의 오스카 쿨만, 말베르그의 큠멜, 베르린의
로제 등이 있다.
또한 판넨베르그 몰트만파가 있는데 이들은 마인즈의 판넨베르그, 튀
빙겐의 몰트만이 그 대표적 신학자들이다.
이 세 부류에 속하기를 거부하는 신학자는 함버르그의 틸리케가 있다.
5. 유럽신학의 새 주역들
몰트만과 판넨베르그, 에벨링, 옷트는 새롭게 유럽신학계에 등장한 새
로운 주역들이다. 몰트만과 판넨베르그는 앞서 살펴 보았다.
게르하르트 에벨링은 불트만으로 부터 실존주의 해석을 배워가지고 그
것을 새 해석학이라고 일컷는 국면으로 이끌어간 신학자이다.
하인리히 옷토는 칼 바르트의 제자이면서도 칼 바르트와 루돌프 불트
만의 중간에 위치하여 두 신학자들 사이의 신학적 조화를 모색하는 중재
적 신학자이다. 옷트는 후기 하이덱거 사상에서 바르트와 불트만을 조화
시킬 수 있는 方法論을 발견한다.
6. 신학적 축의 변동
칼 바르트가 실각하고 루돌프 불트만이 무너져버린 뒤의 유럽신학계는
후기 불트만파와 구원사학파와 중간 보수파로 불리우는 신진 신학자들의
난립으로 신학적인 춘추전국 시대를 방불케하는 [혼란기]를 맞이하였으
나 1970년이 지나자 서서히 혼란기의 베일이 벗겨지기 시작하면서 유럽
신학을 이끌어나갈 신학의 새로운 주역들이 나타나기에 이르렀다. 환언
하여, 그동안 거성신학자들의 사망에 뒤따르는 많은 소장급의 신학자들
의 신학적인 불협화음으로 빚어진 유럽신학의 어지러운 파도가 1970년대
를 거쳐 1980년대로 돌입하면서 몇몇 사상적인 독창성과 추진력을 가진
신학자들로 말미암아 질서와 안녕을 되찾아가고 있다는 느낌이다. 즉 이
몇몇 신학자란 앞에서 지적하고 거론한 바있는 판넨베르그, 몰트만, 에
벨링, 옷트와 같은 신학자들이다. 그리고 한가지 부기해야 할 것은 이들
신학자외에 1980년대에 그 신학적 리더쉽과 영향력을 크게 기대해볼 만
한 신학자로서 헬무트 골비쳐(Helmut Gollwiter;1908-)와 에벨하르트 용
겔(Eberhard Jungel)을 들 수 있다는 것이다. 골비쳐는 성경과 기독교를
한 두가지 진리로 축소시키려고 하는 [축소주의 신학자들](실존주의 해
석학파와 구원학파 등)을 비판하면서 성경적인 하나님 사사잉 보존되어
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또 용겔은 하나님의 삼위일체적 존재로서의
삶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에 대한 더욱 동력적이며 활동주의적 사고를
하도록 만든다고 주장한다.
골비쳐와 용겔은 둘 다 칼 바르트의 감화를 받았다고 봄이 타당하다.
다만 용겔은 칼 바르트와는 달리 하나님은 인간들이 가지는 진정한 사랑
과 신뢰의 관계들 속에 남 몰래 존재하고 있다고 말함으로써 일종의 [자
연신학]을 인정한다는 것이 그의 신학적으로 특이한 점이다. 그리고 특
히 용겔은 현재 튜빙겐 대학에서 교수하면서 많은 신학도들의 인기를 독
차지하고 있는데 앞으로 판넨베르그와 몰트만과 같은 선배 신학자들을
물리치고 유럽신학을 리드할 수 있는 유망주로 평가되고 있는 것도 사실
이다.
그러면, 유럽신학은 지금 어디까지 와있는가? 20세기 후반기로 접어
들면서 바르트와 부룬너, 불트만과 같은 거성 신학자들이 모두 자취를
감추게 되면서부터 유럽신학계에서는 사상적으로 근본적인 변화가 일기
시작하였다. 이 [근본적인 변화]를 가리켜서 저자는 맥퀘리 교수
(Dr.John Macquarrie)와 함께 [사상적인 축의 변동]이라고 부르고 싶다.
1950년대와 1960년대에 있어서 유럽의 사상계를 지배한 것은 키엘케골-
니체-하이덱거 노선이었다. 그러나 이와같은 신의 사망을 전제로 하는
인간의 정신적인 고뇌와 자아와 세계를 초극하고자하는, 실존성의 추구
를 강조하는 키엘케골-니체-하이덱거 노선이 1970년대로부터 서서히 헤
겔-마르크스-불로흐 노선으로 바뀌기 시작하였다. 이것은 마르크스주의
철학자 에르스트 불로흐(Ernst Bloch, 1885-1977)의 대작 {희망의 원리}
(Das Prinzip Hoffnung:1954-1977)이 유럽사상계에 알려지면서부터 막대
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었고, 특히 1970년에는 헤겔의 탄생 이백 주년
을 맞이하여 대대적인 학계의 행사와 더불어 헤겔주의의 回春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다.
전시대의 유럽사상계를 지배하던 [키엘케골-니체-하이덱거 노선]의 신
학자들이 세계 제 2차 대전 이후의 유럽의 평화와 경제적 번영에 힘입어
내면적인 사색의 세계로 몰입하여 [주관의 우물]을 너무 깊이 파고 있었
다. 그러나 60년대 말부터 유럽의 인민들은 서구 민주주의에 대하여 비
록 그것이 그 둘에게 미증유의 {경제적 번영]와 [사회발전]을 가져 왔다
고 할지라도 그것에 대한 일변도적인 변증을 수정하고 공산주의와 마르
크스주의에 대한 호기심에찬 접근을 시도하기에 이르렀다.
이와 같은 유럽사람들의 사고의 보편적인 변화에 자극되어 유럽의 학
계는 [주관의 우물]을 너무 깊이 파면서 20세기 후반기의 급변하는 유럽
의 정치적이며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현실에 대한 감각을 상실해 버리고
[구 사상 노선]의 학자들과 사상가들에 대하여 반기를 든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이제 유럽학계의 [사상적 진자]는 실존주
의에서 신마르크스주의(neo-Marxism)로 하이덱거의 사색으로 부터 불로
흐의 행동성으로, 주관적 사색의 우물을 파는 일로부터 정치참여를 통한
사상의 가두 시위로 크게 흔들리며 이동해가고 있다.
따라서 유럽의 신학계 역시 이러한 유럽학계와 문화계의 동향에 민감
한 영향을 받아서 소위 [사상적 축의 변동]을 자체 내에 초래케 되었으
니 [바르트-불트만-본훼퍼 축]이 [판넨베르그-몰트만-에벨랑-옷트 축]으
로 바뀌었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겠다. 특히, 유럽신학의 축의 변동
과 관련하여 주목할 만한 것은 소위 [신마르크스주의]가 차지하는 사상
적 비중이다. [신마르크스주의]는 칼 마르크스로부터의 영향은 시인하나
정치적인 마르크스-레닌주의와는 간격을 유지하면서 미래학적인 인생관
과 기술사회에 대한 비판(자본주의 사회든지 공산주의 사회를 불문하고)
과 인간의 사회적 본성과 능력, 그리고 혁명적 사회개조의 필요성 등을
강조하는 것을 그 특징으로 삼고 있다.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유럽신학
계에서 일기 시작한 기독교와 공산주의 또는 마르크스주의의 "대화와 일
치의 운동"은 현금 1980년에 와서도 꾸준히 계속되고 있는데 이것은 유
럽신학의 축의 변동에 기인한 것이며, 1980년대를 걸머지고 나아가는 유
럽신학의 새로운 주역들에게 신마르크스주의가 사상적으로크게 작용하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좋은 실례이기도 한 것이다.
앞으로 유럽신학의 새로운 주역들이 기독교 신학에 대하여 과다한 [미
래학적 의식구조]와 [종말론적 사회의 실현]을 위한 [혁명적 행동성]을
부여함으로써 결과하는 [기독교 신학]의 "마르크스주의화"를 어떻게 미
연에 방지하면서 그들이 말하는대로 [무신론이 그 인생관이 되어버린 오
늘의 서구사회]속에서 그나마 기독교의 명맥을 유지할 수 있는가가 큰
문제거리가 아닐 수 없다.
7. 유럽신학은 산간벽지 신학인가?
[유럽신학은 어디까지 왔는가]라는 물음에 대하여 [하이덱거와 불트만
으로부터 떠나서 지금은 신마르크스주의에 와 있다. 또는 접근하고 있
다]고 우리는 대답을 해야겠다는 것이 지금까지 본 논문에서 진술한 바
내용의 결론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급진주의적으로 흐르고 있는 현금의 유럽신학계에는
성경 66권을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된 정확무오한 말씀으로 믿는 보수
신앙과 그것에 입각한 보수주의 신학이 어떤 형태로든 존재하는지 또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지에 대하여 알고자 하는 마음이 우리에게 생기는 것
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이같은 질문에 대한 답변은 [절망에 가까운
것]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오늘날 유럽에서 복음주의적이며, 보수
주의적이라고 하는 신학자들의 모두가 성경에 대한 비평학적 연구를 찬
동하고 있으며 특히 어떤 인사의 말과 같이 그들의 혈관 속에 칼 바르트
(Karl Bart)가 주사바늘로 주입한 변증법적 사상 요소들이 계속 순환하
고 있는 것 같다. 앞서 언급한 바 있는 구원사학파에 속한 신학자들이
가장 보수적인 것으로 생각되나 그들도 [역사적 비평학]을 수용하고 있
으며 마르틴 카렐(Martin Kahler)과 헬무트 틸리케(Helmut Thielike)등
서독 신학자들 중에서 경건주의 경향을 보이는 신학자들도 마찬가지이
다.
다만 유럽에 아직도 [보수신앙]이 존재하고 보수주의 신학의 잔재가
있다면 그것은 [성서학교](Bible missions school)운동을 통하여 유럽에
생겨난 성경학교와 선교학원들 가운데서 미약하나마 보존되고 있다고 하
겠다. 그런데 이와 같은 학교들이 세워질 때 미국 교회의 세대주의 영향
을 적지않게 받는 경우도 있고, 또 부흥사 빌리 그레함(Billy Geaham)의
대부흥집회의 결과로서 전도와 선교적 관심을 갖게 되었다는 설명도 있
다.
그러나 이 유럽의 Biebelmissionsschule 운동의 결과로서 존재하는 성
경학교와 선교학원들이 유럽교회를 위하여 열심있는 목회자를 양성하고
헌신적인 기독교 교육자와 해외로 갈 선교사들을 훈련시키고 있다는 것
은 치하하여 마지 않을 일이지만 이들 학교에서 교수들이 가르치는 신학
의 수준은 높은 편이 못되며, 따라서 현금의 유럽신학계에서 진행중인
신학적 토론과 논쟁 그리고 연구모임에서 전혀 소외당하고 있는 것도 사
실이다.
그런데 유럽신학, 특히 현금의 [서독신학]은 폐쇄된 [저명 인사들의
회합] 같아서 매우 국제성을 상실한 "산골신학의 냄새"를 풍기고 있다는
것도 아울러 우리가 알아두어야 할 사실이다. 이것은 사실은 오늘날의
[서독신학]이 보수주의 신학자들과 그들의 발언에 대하여 별로 흥미없는
일로 묵살해 버린다는 것과 똑 같은 자유주의적이며 진보주의적인 사상
을 가진 신학자들이라고 할지라도 독일인이 아닌 외국인일 경우에 신학
적으로 [無味하다]고 하여 무관심한 경우가 많다는 것 등에서 나타나며
증명되고 있다. 예외가 있다면 외국신학자들이지만 라인흘드 니버나 폴
틸리히와 같은 독일 이름을 가진 신학자들에 대하여서는 관심을 보인다
고 하는 "재미있는 면"도 엿보인다는 것이다.
그러나 유럽신학이 언제까지나 그와 같은 [신학적 폐쇄성]을 즐기며
저명인사들의 모임으로 유지되어 나갈 것인가에 대하여 우리는 크나큰
의문을 가져야 할 줄로 안다. 첫째로 유럽신학이 보수주의 신학자들을
경시한다는 것은 곧[기독교 신학]의 역사적 전통을 소홀히 여긴다는 뜻
이 되므로, 시간과 역사의 연속성이 없는, 인기와 여론에 편승하여 조석
으로 변하는 [유럽신학]으로 화해가고 있다는 데 대한 좋은 원인 설명이
된다고 본다. 둘째로 유럽신학이 유럽인과 독일인 외의 신학자들에게 그
들의 [신학적 회합]에 참여할 수 있는 회원으로서의 자격을 주지 않는다
는 사실은 공간적으로 너무 협소한 신학, 그러니까 정말로 국제성이 없
는 "산골신학"을 운영하고 있다는 비평적인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고 본
다. 오늘날 세계는 일찌기 독일의 신학자 루돌프 불트만이 [신약성경의
비신화화]와 관련하여 말한 바대로 과학의 발달과 교통방편의 혁신으로
말미암아 [일일 생활권]에 살게 되었다. 따라서 오늘날의 신학자들은 신
학을 [세계]라고 하는 [일일 생활권적 공간]에서 펼쳐나가야 하지 않겠
는가? 이 지상에서 서독만이 존재하는 것도 아니요, 유럽이 세계의 전부
도 아닐 것이다.
유럽의 신학자들은 오늘날 세계라고 하는 "일일 생활권적 공간"에서
공존하고 있는 타국과 타대륙의 신학과 신학자들과 사귐을 가지면서 빈
번한 정보교환과 신학적 토론 및 공동적 학문 연구의 기회들을 마련하는
일을 힘씀으로써만 과거와 같이 [유럽신학]의 우위성을 계속 세계적으로
지켜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보수주의를 도외시함으로 기독교
신학의 역사적 전통을 상실하여 유럽신학이 [뿌리없는 나무]와 같이 되
었다고 한다면 유럽 외의 타국과 타대륙의 신학자들을 업신여김으로써
유럽신학은 [공간적 연속성]을 상실하여 협소한 지역사회의 신학, "산골
신학"으로 떨어져 버릴 날도 멀지 않는 것 같다.
지금, 미국에서는 제임스 로버츠(James D.Roberts;1927-)와 제임콘
(James H.Cone;1938-)과 같은 흑인신학자들이 나타나, [흑인 신학]이라
는 것을 만들고 있고, 남아메리카 대륙에서는 [해방신학](Theology of
Liberation)이 한창이다. {인간적 희망의 신학}을 써낸 브라질의 신학자
루벰 알베스(Rubem Alves; 1933-)는 "세계를 해석하는 일로 끊나는 신
학"은 더이상 필요가 없고 "세계의 혁명사적 과정의 한 부분이 될 수 있
는 신학"을 하자고 절규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시선을 아시아로
돌릴 경우에, 일본의 신학자 기다모리 가즈오가 우리가 {하나님의 고통
의 신학}이라는 책을 저술하여, 영어로 번역되어(1951년) 널리 국제적으
로 읽히기까지 하였고, 또한 몇년전에 선교 백주년을 경축하게 된 피선
교국교회인 한국교회에서도 신학적 성숙도를 보여 윤성범 교수의 {한국
적 신학}(1972년)이 한국 사상의 특징을 담고서 나왔으며 보수주의측에
서는 한국교회의 경건한 신앙을 소재로하는 저자의 {새벽기도의 신학}
(1974년)이 나오기도 하였다.
이와같은 타국, 타대륙의 신학자들과 신학의 동향에 대하여 현금의 유
럽신학자들이 얼마나 알고 있는가가 의심스럽다. 결론은 이것이다. 만일
[유럽신학]이 1980년대에도 1960년대와 1970년대와 마찬가지로 [기독교
신학]의 전통성을 무시하고 시간과 역사의 연속성이 없는 신학을 한다
면, 그리고 타국과 타대륙의 신학과 신학자들을 세계라고 하는 [일일 생
활권적 공간]속에서 공존하는 신학의 동료들로 생각하지 않고 그들을 교
육과 계몽적 지도의 대상인양 착각하는 공간적 연속성이 없는 [산간벽지
신학]을 계속하여 한다면 그것은[유럽신학] 자체를 위하여 매우 불행스
러운 일일 것이라는 것이다. [유럽신학]은 협소한 공간에 존재하는 [역
사와 시간의 뿌리]가 없는 나무 같아서 곧 고갈하며 몰락할 위험성이 커
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로서는 칼 헨리 박사의 말과 같이 차라리 성
경을 읽으면서 본국에 머물러 있는 편이 수년동안 여비와 학비를 들여가
면서 서독에 신학을 배우려고 유학하는 것보다 나을 것이라는 말을 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우리 한국교회는 보편적으로 말해서 성경 66권을 하나님의 정확
무오한 말씀으로 믿고 그 가르침대로 살기를 힘쓰는 [경건주의 신앙]을
그 체질로 하고 있는 교회이기 때문에 서독 유학을 하고 돌아오는 신학
인들이 "발 붙일 곳"이 그리많지 않다는 것도 한번쯤 고려할만하다.
* 總結論 - 終末이 가까운 現代神學
우리는 현대신학이 칼 바르트로부터 시작하여 [解放神學]과 [民衆神
學]에 이르기까지 역사적 基督敎神學 즉 [正統神學]으로부터 너무나 먼
거리에 와 있음을 느끼게 된다.
현대신학을 대표하고 있는 [歐美神學]은 본훼퍼(Dietrich Bonhoffer)
의 "신의 세속속에서의 존재"의 상념에 크게 영향을 받아 [기독교 무신
론](Von Gott ohne Gott)을 부르짖는데 거의 일치를 보고 있다.
하비콕스(Harvy Cox)는 [死神神學]을 가리켜서 현대신학의 "하설작용"
이라고 비꼬았으나 그 자신도 신에 대한 "침묵"을 주장하기에 이르렀음
으로 "무신론적 복통"을 강하게 느끼고 있는 줄 안다.
이렇게 무신론의 "음침한 골짜기"(시23:4)를 헤메고 있는 구미신학은
이미 [신학](Theology)이 아니라 "新學"의 지경에 도달했다. 오늘날 구
미신학은 그 "무신론적 전락"의 결과로서 신학의 殘骸를 여기저기 남기
고 있다.
그것은 에스겔이 본 [마른뼈의 골짜기](겔37:1,2)의 광경과 흡사하다.
오늘날 현대신학을 대표하는 [구미신학]은 무신론의 지경에 도달했을
뿐 아니라 [脫基督敎]의 방향으로 질주하고 있다.
일찌기 신학자 폴 틸리히(Paul Tillich)는 말하기를 "기독교의 위대
함"은 "기독교가 유일종교가 아님을 과감하게 시인"하는데 있다고 하였
다. 아놀드 토인비(Anold Toynbee)도 합세하여 부르짖기를 기독교는 절
대적 진리성을 포기하고 "세계적 종교화합의 시대"의 장을열어야 한다고
하였다.
그리하여 현대신학의 영향을 받은 [현대기독교]는 기독교의 옷을 벗기
에 바쁘다. 예수 그리스도의 옷을 벗어 버리기에 바쁘다. [그리스도의
선교]가 아니라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라는 이름 아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는 일 대신에 교회의 "사회적 혁명적 행동성"을 강조한다.
오늘날 [구미신학]으로 대표되는 현대신학은 분명히 "탈기독교의 활주
로"에 와 있다. 이제 남은 것은 역사적 기독교신학 또는 [정통 신학]의
[유일종교 사상]을 그 잔재도 남지 않도록 완전히 불태워 버리고 (요
14:6, 롬1:16,행4:12) "무신론적 인본주의" 또는 "에큐메니칼 종교혼합
주의"의 "허무한 공간"으로 영구히 사라져 버리는 순간이 도래하는 것
뿐이다.
끝으로 오늘날 [현대신학]을 대표하는 [구미신학]은 그 "사회주의적
급진성"의 발휘로 인하여[공산주의]또는 [미르크스주의]와의 "대화를 통
한 일치 내지는 화합"을 모색하기에 이르렀다. 특히 정치와 혁명을 통한
[정의사회구현]에 신학이 앞장 설 것을 부르짖고 있는 위르겐 몰트만
(Jugen Moltmann)과 하비 콕스(Harvy Cox)와 같은 신학자들은 [공산주
의]또는 [마르크스주의]와의 대화를 강조하면서 기독교와 공산주의의 공
존보다는 한걸음 나아가서 "상부상조적인 협력관계의 수립"을 제의한다.
공산주의 측에서도 기독교에 대하여 대화를 통한 "일치"를 모색하자고
추파를 던져보내고 있다.
다년간 공산국 체코의 푸라하 신학교에서 신학을 가르치다가 스위스에
있는 바젤대학으로 옮겨와서 신학을 가르치면서 WCC 중앙위원이 되었던
쟉 록흐만(Jan M.Lochmann)은 기독교와 마르크스주의와의 대화가 양자의
사상적 혼합과 절충보다는 [세계사회의 인간화]을 위하여 함께 일하는
협력적 관계를 가져올 것이라고 내다 보았다.
그러나 [해방신학]의 출현은 이와같은 록흐만의 "예언"을 "휴지화"하
고 말았다.
위르겐 몰트만과 요하네스 멧즈의 [희망의 신학]의 연장선상에 있으면
서 최근 유럽신학계를 휩쓸고 있는 [신마르크스주의]의 영향을 크게 받
은 라틴아메리카의 해방신학자들은 칼 마르크스의 [정치혁명 사상]과
[경제이론]을 신학적 해석학의 내용으로 삼아 세계의 가난하고 억눌림을
받는 인민들의 해방을 쟁취하는 신학을 구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구티에레즈(Gustavo Gutiemez)와 같은 해방신학자는 공공연하게 성경
을 가난한 자의 편에 서서 칼, 마르크스의 시각을 갖고서 읽고 해석할
것을 부르짖고 있는데 이는 기독교와 마르크스즈의의 대화나 [인간화]의
목적을 위한 협력관계 운운이 아니라 "기독교의 마르크스주의화"요 "유
물론적 사회주의 혁명의 신학"(Materialistis Socialist Theology of
Revolution)의 출범을 의미한다.
역사적 기독교신학 즉 [개혁주의 정통신학]의 입장에서 볼때에 이 얼
마나 어처구니 없고 한심스러운 [현대신학]의 "추태"또는 "탈선행각"인
가(눅12:16-21,롬1:25,시1:1,2,고후6:14-16).
1960년대에 헤르만 도이빌드교수(Herman Dooyeweerd)의 저술 {서구 사
상의 황혼}(In the Twilight of Western Thought)이 출간되어 서구사상
의 반기독교적 급진성을 지적하고 경고한 적이 있다.
그리고 1971년에는 죤 몽고메리(John Warwick Montgomery)교수가 {기
독교신학의 자살}이라는 제목의 저술을 펴냈는데 [현대신학]은 그"급진
적 사상성" 때문에 자살적인 총격을 여러번에 걸쳐서 받은 결과로서 지
금은 그 운명의 순간이 시시 각각으로 다가오고 있다고 하는 풍자적이면
서 매우 심각한 표현을 하였다.
저자는 두 학자의 서구사상과 현대신학 전반에 걸친 비관적인 평가와
"종말적인 표현"에 대하여 아낌없는 찬동과 지지를 보내는 바이다.
앞서 묘사하고 설명한 바와 같은 [현대신학]의 급진주의 일변도의 진
행 때문에 [현대신학]은 현재 "종말의 시기"를 맞이하고 있음이 분명하
다. 아니, "종말의 시기"라는 표현보다도 "종말의 순간을 맞이하고 있
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는지 모른다.
이와 같이 [기독교 무신론]과 [마르크스주의]로 뒤범벅이 된 현대신학
의 [종말적인 모습]을 지켜보면서 우리 한국의 [개혁주의 정통신학]은
"기독교신앙과 신학의 보존"이라는 지상 명령적인 목적론을 재확인하고
그것을 수행하는 일에 전력을 기울이려 할 것이다.
[현대신학]의 "불신앙의 결론들"때문에 기독교의 존속이 "일대위기"를
맞이하고 있는 오늘날 우리에게는 오직 기독교를 보존해야 한다는 [절대
명제]가 있을 뿐이다. 한국과 세계에서 기독교를 보존하고 보존한 기독
교를 전파하는 이 큰 목적을 위하여 우리 교회는 분발하여 노도와 같이
밀려오는 현대신학의 급진적 사조에 대항하여 '일사각오의 믿음'을 갖고
서 용감하게 싸워야 할 것이다(사40:8, 딤전6:12, 딤후3:14-17, 사
6:13).
http://cafe.naver.com/modernth/25
박아론 박사 (총신대 교수)
1. 자유주의 삼총사의 몰락과 칼바르트의 등장
20세기가 시작될 무렵 유럽신학은 리츨과 하르낙 헤르만 등 자유주의
신학의 삼총사의 지배하에 놓여 있었다. 이들의 아버지와 같은 존재는
쉴라이에르 마허였다. 이들의 신학은 한마디로 倫理主義 神學(ethical
theology)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윤리주의 신학의 특징은 예수
그리스도를 초자연적인 하나님의 아들로 보지 않고 인류의 도덕적 선생
으로 생각했으며 성경은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다만 인류
를 위한 [위대한 도덕 교과서]로 여기면서 진리의 척도로서의 종교적이
며 윤리적인 경험을 내세우는 데 있었다.
칼 바르트는 1919년 그의 저서 {로마서 강해}를 통해 고전적 자유주의
를 공격하고 이 저서를 통해 유럽의 신학계는 새로운 물결이 밀려 왔던
것이다.
2. 칼바르트의 실각
1920년대로부터 50년대까지 유럽 신학계에서 바르트는 他의 추종을 불
허하는 유럽의 대표적 신학자로 인정받고 알려지게 되었고 영미 신학계
와 심지어 피 선교지 신학에 까지 깊이 파고 들어 그 영향력을 행사하였
다. 이 신학은 新正統主義라는 이름의로 알려지게 되었으며 그와 입장을
같이 하는 신학자 에밀 부룬너와 신학적 동반자로서 노고를 나누기도 하
였다.
칼 바르트의 신학은 금세기 중엽에 이르러서 루돌프 불트만의 {말씀과
신화}가 1948년 출간됨으로 실각하게 되었다.
3. 불트만의 붕괴
불트만은 그의 저서 말씀과 신화의 출판을 계기로 갑작스러운 신학적
인기의 상승을 누리면서 바르트의 과학적 세계관과 실존주의 철학을 무
시하는 듯한 시대와 뒤떨어진 {교회 교의학}을 그의 [양식비평학]과 [실
존주의 신학]으로 제압해 버렸다. 그러나 그도 역시 그의 제자들에 의하
여 비판을 받게 되었다.
4. 어지러운 신학의 판도
불트만의 신학이 붕괴함으로써 유럽신학계는 큰 혼란이 일어났다. 불
트만 후의 신학자들은 [후기 불트만 신학자]들과 반 불트만 신학자들이
라고 볼 수 있는 [보수파 신학자들]과 [구원사학파 신학자들]과 [판넨베
르그 몰트만파 신학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후기 불트만파 중에는 괴팅겐의 한스 콘젤만과 하이델베르그의 에리히
딩켈, 훅스, 에벨링, 케제만, 큠멜 등이 있다.
반 불트만파에 속하는 학자들은 보수파로 괴팅겐 대학의 예레미야스,
마인즈의 스타린, 함베르크, 고펠트, 엘랑겐의 프리드리히 등 이고, 구
원사학파 신학자들은 바젤의 오스카 쿨만, 말베르그의 큠멜, 베르린의
로제 등이 있다.
또한 판넨베르그 몰트만파가 있는데 이들은 마인즈의 판넨베르그, 튀
빙겐의 몰트만이 그 대표적 신학자들이다.
이 세 부류에 속하기를 거부하는 신학자는 함버르그의 틸리케가 있다.
5. 유럽신학의 새 주역들
몰트만과 판넨베르그, 에벨링, 옷트는 새롭게 유럽신학계에 등장한 새
로운 주역들이다. 몰트만과 판넨베르그는 앞서 살펴 보았다.
게르하르트 에벨링은 불트만으로 부터 실존주의 해석을 배워가지고 그
것을 새 해석학이라고 일컷는 국면으로 이끌어간 신학자이다.
하인리히 옷토는 칼 바르트의 제자이면서도 칼 바르트와 루돌프 불트
만의 중간에 위치하여 두 신학자들 사이의 신학적 조화를 모색하는 중재
적 신학자이다. 옷트는 후기 하이덱거 사상에서 바르트와 불트만을 조화
시킬 수 있는 方法論을 발견한다.
6. 신학적 축의 변동
칼 바르트가 실각하고 루돌프 불트만이 무너져버린 뒤의 유럽신학계는
후기 불트만파와 구원사학파와 중간 보수파로 불리우는 신진 신학자들의
난립으로 신학적인 춘추전국 시대를 방불케하는 [혼란기]를 맞이하였으
나 1970년이 지나자 서서히 혼란기의 베일이 벗겨지기 시작하면서 유럽
신학을 이끌어나갈 신학의 새로운 주역들이 나타나기에 이르렀다. 환언
하여, 그동안 거성신학자들의 사망에 뒤따르는 많은 소장급의 신학자들
의 신학적인 불협화음으로 빚어진 유럽신학의 어지러운 파도가 1970년대
를 거쳐 1980년대로 돌입하면서 몇몇 사상적인 독창성과 추진력을 가진
신학자들로 말미암아 질서와 안녕을 되찾아가고 있다는 느낌이다. 즉 이
몇몇 신학자란 앞에서 지적하고 거론한 바있는 판넨베르그, 몰트만, 에
벨링, 옷트와 같은 신학자들이다. 그리고 한가지 부기해야 할 것은 이들
신학자외에 1980년대에 그 신학적 리더쉽과 영향력을 크게 기대해볼 만
한 신학자로서 헬무트 골비쳐(Helmut Gollwiter;1908-)와 에벨하르트 용
겔(Eberhard Jungel)을 들 수 있다는 것이다. 골비쳐는 성경과 기독교를
한 두가지 진리로 축소시키려고 하는 [축소주의 신학자들](실존주의 해
석학파와 구원학파 등)을 비판하면서 성경적인 하나님 사사잉 보존되어
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또 용겔은 하나님의 삼위일체적 존재로서의
삶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에 대한 더욱 동력적이며 활동주의적 사고를
하도록 만든다고 주장한다.
골비쳐와 용겔은 둘 다 칼 바르트의 감화를 받았다고 봄이 타당하다.
다만 용겔은 칼 바르트와는 달리 하나님은 인간들이 가지는 진정한 사랑
과 신뢰의 관계들 속에 남 몰래 존재하고 있다고 말함으로써 일종의 [자
연신학]을 인정한다는 것이 그의 신학적으로 특이한 점이다. 그리고 특
히 용겔은 현재 튜빙겐 대학에서 교수하면서 많은 신학도들의 인기를 독
차지하고 있는데 앞으로 판넨베르그와 몰트만과 같은 선배 신학자들을
물리치고 유럽신학을 리드할 수 있는 유망주로 평가되고 있는 것도 사실
이다.
그러면, 유럽신학은 지금 어디까지 와있는가? 20세기 후반기로 접어
들면서 바르트와 부룬너, 불트만과 같은 거성 신학자들이 모두 자취를
감추게 되면서부터 유럽신학계에서는 사상적으로 근본적인 변화가 일기
시작하였다. 이 [근본적인 변화]를 가리켜서 저자는 맥퀘리 교수
(Dr.John Macquarrie)와 함께 [사상적인 축의 변동]이라고 부르고 싶다.
1950년대와 1960년대에 있어서 유럽의 사상계를 지배한 것은 키엘케골-
니체-하이덱거 노선이었다. 그러나 이와같은 신의 사망을 전제로 하는
인간의 정신적인 고뇌와 자아와 세계를 초극하고자하는, 실존성의 추구
를 강조하는 키엘케골-니체-하이덱거 노선이 1970년대로부터 서서히 헤
겔-마르크스-불로흐 노선으로 바뀌기 시작하였다. 이것은 마르크스주의
철학자 에르스트 불로흐(Ernst Bloch, 1885-1977)의 대작 {희망의 원리}
(Das Prinzip Hoffnung:1954-1977)이 유럽사상계에 알려지면서부터 막대
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었고, 특히 1970년에는 헤겔의 탄생 이백 주년
을 맞이하여 대대적인 학계의 행사와 더불어 헤겔주의의 回春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다.
전시대의 유럽사상계를 지배하던 [키엘케골-니체-하이덱거 노선]의 신
학자들이 세계 제 2차 대전 이후의 유럽의 평화와 경제적 번영에 힘입어
내면적인 사색의 세계로 몰입하여 [주관의 우물]을 너무 깊이 파고 있었
다. 그러나 60년대 말부터 유럽의 인민들은 서구 민주주의에 대하여 비
록 그것이 그 둘에게 미증유의 {경제적 번영]와 [사회발전]을 가져 왔다
고 할지라도 그것에 대한 일변도적인 변증을 수정하고 공산주의와 마르
크스주의에 대한 호기심에찬 접근을 시도하기에 이르렀다.
이와 같은 유럽사람들의 사고의 보편적인 변화에 자극되어 유럽의 학
계는 [주관의 우물]을 너무 깊이 파면서 20세기 후반기의 급변하는 유럽
의 정치적이며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현실에 대한 감각을 상실해 버리고
[구 사상 노선]의 학자들과 사상가들에 대하여 반기를 든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이제 유럽학계의 [사상적 진자]는 실존주
의에서 신마르크스주의(neo-Marxism)로 하이덱거의 사색으로 부터 불로
흐의 행동성으로, 주관적 사색의 우물을 파는 일로부터 정치참여를 통한
사상의 가두 시위로 크게 흔들리며 이동해가고 있다.
따라서 유럽의 신학계 역시 이러한 유럽학계와 문화계의 동향에 민감
한 영향을 받아서 소위 [사상적 축의 변동]을 자체 내에 초래케 되었으
니 [바르트-불트만-본훼퍼 축]이 [판넨베르그-몰트만-에벨랑-옷트 축]으
로 바뀌었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겠다. 특히, 유럽신학의 축의 변동
과 관련하여 주목할 만한 것은 소위 [신마르크스주의]가 차지하는 사상
적 비중이다. [신마르크스주의]는 칼 마르크스로부터의 영향은 시인하나
정치적인 마르크스-레닌주의와는 간격을 유지하면서 미래학적인 인생관
과 기술사회에 대한 비판(자본주의 사회든지 공산주의 사회를 불문하고)
과 인간의 사회적 본성과 능력, 그리고 혁명적 사회개조의 필요성 등을
강조하는 것을 그 특징으로 삼고 있다.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유럽신학
계에서 일기 시작한 기독교와 공산주의 또는 마르크스주의의 "대화와 일
치의 운동"은 현금 1980년에 와서도 꾸준히 계속되고 있는데 이것은 유
럽신학의 축의 변동에 기인한 것이며, 1980년대를 걸머지고 나아가는 유
럽신학의 새로운 주역들에게 신마르크스주의가 사상적으로크게 작용하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좋은 실례이기도 한 것이다.
앞으로 유럽신학의 새로운 주역들이 기독교 신학에 대하여 과다한 [미
래학적 의식구조]와 [종말론적 사회의 실현]을 위한 [혁명적 행동성]을
부여함으로써 결과하는 [기독교 신학]의 "마르크스주의화"를 어떻게 미
연에 방지하면서 그들이 말하는대로 [무신론이 그 인생관이 되어버린 오
늘의 서구사회]속에서 그나마 기독교의 명맥을 유지할 수 있는가가 큰
문제거리가 아닐 수 없다.
7. 유럽신학은 산간벽지 신학인가?
[유럽신학은 어디까지 왔는가]라는 물음에 대하여 [하이덱거와 불트만
으로부터 떠나서 지금은 신마르크스주의에 와 있다. 또는 접근하고 있
다]고 우리는 대답을 해야겠다는 것이 지금까지 본 논문에서 진술한 바
내용의 결론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급진주의적으로 흐르고 있는 현금의 유럽신학계에는
성경 66권을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된 정확무오한 말씀으로 믿는 보수
신앙과 그것에 입각한 보수주의 신학이 어떤 형태로든 존재하는지 또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지에 대하여 알고자 하는 마음이 우리에게 생기는 것
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이같은 질문에 대한 답변은 [절망에 가까운
것]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오늘날 유럽에서 복음주의적이며, 보수
주의적이라고 하는 신학자들의 모두가 성경에 대한 비평학적 연구를 찬
동하고 있으며 특히 어떤 인사의 말과 같이 그들의 혈관 속에 칼 바르트
(Karl Bart)가 주사바늘로 주입한 변증법적 사상 요소들이 계속 순환하
고 있는 것 같다. 앞서 언급한 바 있는 구원사학파에 속한 신학자들이
가장 보수적인 것으로 생각되나 그들도 [역사적 비평학]을 수용하고 있
으며 마르틴 카렐(Martin Kahler)과 헬무트 틸리케(Helmut Thielike)등
서독 신학자들 중에서 경건주의 경향을 보이는 신학자들도 마찬가지이
다.
다만 유럽에 아직도 [보수신앙]이 존재하고 보수주의 신학의 잔재가
있다면 그것은 [성서학교](Bible missions school)운동을 통하여 유럽에
생겨난 성경학교와 선교학원들 가운데서 미약하나마 보존되고 있다고 하
겠다. 그런데 이와 같은 학교들이 세워질 때 미국 교회의 세대주의 영향
을 적지않게 받는 경우도 있고, 또 부흥사 빌리 그레함(Billy Geaham)의
대부흥집회의 결과로서 전도와 선교적 관심을 갖게 되었다는 설명도 있
다.
그러나 이 유럽의 Biebelmissionsschule 운동의 결과로서 존재하는 성
경학교와 선교학원들이 유럽교회를 위하여 열심있는 목회자를 양성하고
헌신적인 기독교 교육자와 해외로 갈 선교사들을 훈련시키고 있다는 것
은 치하하여 마지 않을 일이지만 이들 학교에서 교수들이 가르치는 신학
의 수준은 높은 편이 못되며, 따라서 현금의 유럽신학계에서 진행중인
신학적 토론과 논쟁 그리고 연구모임에서 전혀 소외당하고 있는 것도 사
실이다.
그런데 유럽신학, 특히 현금의 [서독신학]은 폐쇄된 [저명 인사들의
회합] 같아서 매우 국제성을 상실한 "산골신학의 냄새"를 풍기고 있다는
것도 아울러 우리가 알아두어야 할 사실이다. 이것은 사실은 오늘날의
[서독신학]이 보수주의 신학자들과 그들의 발언에 대하여 별로 흥미없는
일로 묵살해 버린다는 것과 똑 같은 자유주의적이며 진보주의적인 사상
을 가진 신학자들이라고 할지라도 독일인이 아닌 외국인일 경우에 신학
적으로 [無味하다]고 하여 무관심한 경우가 많다는 것 등에서 나타나며
증명되고 있다. 예외가 있다면 외국신학자들이지만 라인흘드 니버나 폴
틸리히와 같은 독일 이름을 가진 신학자들에 대하여서는 관심을 보인다
고 하는 "재미있는 면"도 엿보인다는 것이다.
그러나 유럽신학이 언제까지나 그와 같은 [신학적 폐쇄성]을 즐기며
저명인사들의 모임으로 유지되어 나갈 것인가에 대하여 우리는 크나큰
의문을 가져야 할 줄로 안다. 첫째로 유럽신학이 보수주의 신학자들을
경시한다는 것은 곧[기독교 신학]의 역사적 전통을 소홀히 여긴다는 뜻
이 되므로, 시간과 역사의 연속성이 없는, 인기와 여론에 편승하여 조석
으로 변하는 [유럽신학]으로 화해가고 있다는 데 대한 좋은 원인 설명이
된다고 본다. 둘째로 유럽신학이 유럽인과 독일인 외의 신학자들에게 그
들의 [신학적 회합]에 참여할 수 있는 회원으로서의 자격을 주지 않는다
는 사실은 공간적으로 너무 협소한 신학, 그러니까 정말로 국제성이 없
는 "산골신학"을 운영하고 있다는 비평적인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고 본
다. 오늘날 세계는 일찌기 독일의 신학자 루돌프 불트만이 [신약성경의
비신화화]와 관련하여 말한 바대로 과학의 발달과 교통방편의 혁신으로
말미암아 [일일 생활권]에 살게 되었다. 따라서 오늘날의 신학자들은 신
학을 [세계]라고 하는 [일일 생활권적 공간]에서 펼쳐나가야 하지 않겠
는가? 이 지상에서 서독만이 존재하는 것도 아니요, 유럽이 세계의 전부
도 아닐 것이다.
유럽의 신학자들은 오늘날 세계라고 하는 "일일 생활권적 공간"에서
공존하고 있는 타국과 타대륙의 신학과 신학자들과 사귐을 가지면서 빈
번한 정보교환과 신학적 토론 및 공동적 학문 연구의 기회들을 마련하는
일을 힘씀으로써만 과거와 같이 [유럽신학]의 우위성을 계속 세계적으로
지켜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보수주의를 도외시함으로 기독교
신학의 역사적 전통을 상실하여 유럽신학이 [뿌리없는 나무]와 같이 되
었다고 한다면 유럽 외의 타국과 타대륙의 신학자들을 업신여김으로써
유럽신학은 [공간적 연속성]을 상실하여 협소한 지역사회의 신학, "산골
신학"으로 떨어져 버릴 날도 멀지 않는 것 같다.
지금, 미국에서는 제임스 로버츠(James D.Roberts;1927-)와 제임콘
(James H.Cone;1938-)과 같은 흑인신학자들이 나타나, [흑인 신학]이라
는 것을 만들고 있고, 남아메리카 대륙에서는 [해방신학](Theology of
Liberation)이 한창이다. {인간적 희망의 신학}을 써낸 브라질의 신학자
루벰 알베스(Rubem Alves; 1933-)는 "세계를 해석하는 일로 끊나는 신
학"은 더이상 필요가 없고 "세계의 혁명사적 과정의 한 부분이 될 수 있
는 신학"을 하자고 절규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시선을 아시아로
돌릴 경우에, 일본의 신학자 기다모리 가즈오가 우리가 {하나님의 고통
의 신학}이라는 책을 저술하여, 영어로 번역되어(1951년) 널리 국제적으
로 읽히기까지 하였고, 또한 몇년전에 선교 백주년을 경축하게 된 피선
교국교회인 한국교회에서도 신학적 성숙도를 보여 윤성범 교수의 {한국
적 신학}(1972년)이 한국 사상의 특징을 담고서 나왔으며 보수주의측에
서는 한국교회의 경건한 신앙을 소재로하는 저자의 {새벽기도의 신학}
(1974년)이 나오기도 하였다.
이와같은 타국, 타대륙의 신학자들과 신학의 동향에 대하여 현금의 유
럽신학자들이 얼마나 알고 있는가가 의심스럽다. 결론은 이것이다. 만일
[유럽신학]이 1980년대에도 1960년대와 1970년대와 마찬가지로 [기독교
신학]의 전통성을 무시하고 시간과 역사의 연속성이 없는 신학을 한다
면, 그리고 타국과 타대륙의 신학과 신학자들을 세계라고 하는 [일일 생
활권적 공간]속에서 공존하는 신학의 동료들로 생각하지 않고 그들을 교
육과 계몽적 지도의 대상인양 착각하는 공간적 연속성이 없는 [산간벽지
신학]을 계속하여 한다면 그것은[유럽신학] 자체를 위하여 매우 불행스
러운 일일 것이라는 것이다. [유럽신학]은 협소한 공간에 존재하는 [역
사와 시간의 뿌리]가 없는 나무 같아서 곧 고갈하며 몰락할 위험성이 커
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로서는 칼 헨리 박사의 말과 같이 차라리 성
경을 읽으면서 본국에 머물러 있는 편이 수년동안 여비와 학비를 들여가
면서 서독에 신학을 배우려고 유학하는 것보다 나을 것이라는 말을 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우리 한국교회는 보편적으로 말해서 성경 66권을 하나님의 정확
무오한 말씀으로 믿고 그 가르침대로 살기를 힘쓰는 [경건주의 신앙]을
그 체질로 하고 있는 교회이기 때문에 서독 유학을 하고 돌아오는 신학
인들이 "발 붙일 곳"이 그리많지 않다는 것도 한번쯤 고려할만하다.
* 總結論 - 終末이 가까운 現代神學
우리는 현대신학이 칼 바르트로부터 시작하여 [解放神學]과 [民衆神
學]에 이르기까지 역사적 基督敎神學 즉 [正統神學]으로부터 너무나 먼
거리에 와 있음을 느끼게 된다.
현대신학을 대표하고 있는 [歐美神學]은 본훼퍼(Dietrich Bonhoffer)
의 "신의 세속속에서의 존재"의 상념에 크게 영향을 받아 [기독교 무신
론](Von Gott ohne Gott)을 부르짖는데 거의 일치를 보고 있다.
하비콕스(Harvy Cox)는 [死神神學]을 가리켜서 현대신학의 "하설작용"
이라고 비꼬았으나 그 자신도 신에 대한 "침묵"을 주장하기에 이르렀음
으로 "무신론적 복통"을 강하게 느끼고 있는 줄 안다.
이렇게 무신론의 "음침한 골짜기"(시23:4)를 헤메고 있는 구미신학은
이미 [신학](Theology)이 아니라 "新學"의 지경에 도달했다. 오늘날 구
미신학은 그 "무신론적 전락"의 결과로서 신학의 殘骸를 여기저기 남기
고 있다.
그것은 에스겔이 본 [마른뼈의 골짜기](겔37:1,2)의 광경과 흡사하다.
오늘날 현대신학을 대표하는 [구미신학]은 무신론의 지경에 도달했을
뿐 아니라 [脫基督敎]의 방향으로 질주하고 있다.
일찌기 신학자 폴 틸리히(Paul Tillich)는 말하기를 "기독교의 위대
함"은 "기독교가 유일종교가 아님을 과감하게 시인"하는데 있다고 하였
다. 아놀드 토인비(Anold Toynbee)도 합세하여 부르짖기를 기독교는 절
대적 진리성을 포기하고 "세계적 종교화합의 시대"의 장을열어야 한다고
하였다.
그리하여 현대신학의 영향을 받은 [현대기독교]는 기독교의 옷을 벗기
에 바쁘다. 예수 그리스도의 옷을 벗어 버리기에 바쁘다. [그리스도의
선교]가 아니라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라는 이름 아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는 일 대신에 교회의 "사회적 혁명적 행동성"을 강조한다.
오늘날 [구미신학]으로 대표되는 현대신학은 분명히 "탈기독교의 활주
로"에 와 있다. 이제 남은 것은 역사적 기독교신학 또는 [정통 신학]의
[유일종교 사상]을 그 잔재도 남지 않도록 완전히 불태워 버리고 (요
14:6, 롬1:16,행4:12) "무신론적 인본주의" 또는 "에큐메니칼 종교혼합
주의"의 "허무한 공간"으로 영구히 사라져 버리는 순간이 도래하는 것
뿐이다.
끝으로 오늘날 [현대신학]을 대표하는 [구미신학]은 그 "사회주의적
급진성"의 발휘로 인하여[공산주의]또는 [미르크스주의]와의 "대화를 통
한 일치 내지는 화합"을 모색하기에 이르렀다. 특히 정치와 혁명을 통한
[정의사회구현]에 신학이 앞장 설 것을 부르짖고 있는 위르겐 몰트만
(Jugen Moltmann)과 하비 콕스(Harvy Cox)와 같은 신학자들은 [공산주
의]또는 [마르크스주의]와의 대화를 강조하면서 기독교와 공산주의의 공
존보다는 한걸음 나아가서 "상부상조적인 협력관계의 수립"을 제의한다.
공산주의 측에서도 기독교에 대하여 대화를 통한 "일치"를 모색하자고
추파를 던져보내고 있다.
다년간 공산국 체코의 푸라하 신학교에서 신학을 가르치다가 스위스에
있는 바젤대학으로 옮겨와서 신학을 가르치면서 WCC 중앙위원이 되었던
쟉 록흐만(Jan M.Lochmann)은 기독교와 마르크스주의와의 대화가 양자의
사상적 혼합과 절충보다는 [세계사회의 인간화]을 위하여 함께 일하는
협력적 관계를 가져올 것이라고 내다 보았다.
그러나 [해방신학]의 출현은 이와같은 록흐만의 "예언"을 "휴지화"하
고 말았다.
위르겐 몰트만과 요하네스 멧즈의 [희망의 신학]의 연장선상에 있으면
서 최근 유럽신학계를 휩쓸고 있는 [신마르크스주의]의 영향을 크게 받
은 라틴아메리카의 해방신학자들은 칼 마르크스의 [정치혁명 사상]과
[경제이론]을 신학적 해석학의 내용으로 삼아 세계의 가난하고 억눌림을
받는 인민들의 해방을 쟁취하는 신학을 구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구티에레즈(Gustavo Gutiemez)와 같은 해방신학자는 공공연하게 성경
을 가난한 자의 편에 서서 칼, 마르크스의 시각을 갖고서 읽고 해석할
것을 부르짖고 있는데 이는 기독교와 마르크스즈의의 대화나 [인간화]의
목적을 위한 협력관계 운운이 아니라 "기독교의 마르크스주의화"요 "유
물론적 사회주의 혁명의 신학"(Materialistis Socialist Theology of
Revolution)의 출범을 의미한다.
역사적 기독교신학 즉 [개혁주의 정통신학]의 입장에서 볼때에 이 얼
마나 어처구니 없고 한심스러운 [현대신학]의 "추태"또는 "탈선행각"인
가(눅12:16-21,롬1:25,시1:1,2,고후6:14-16).
1960년대에 헤르만 도이빌드교수(Herman Dooyeweerd)의 저술 {서구 사
상의 황혼}(In the Twilight of Western Thought)이 출간되어 서구사상
의 반기독교적 급진성을 지적하고 경고한 적이 있다.
그리고 1971년에는 죤 몽고메리(John Warwick Montgomery)교수가 {기
독교신학의 자살}이라는 제목의 저술을 펴냈는데 [현대신학]은 그"급진
적 사상성" 때문에 자살적인 총격을 여러번에 걸쳐서 받은 결과로서 지
금은 그 운명의 순간이 시시 각각으로 다가오고 있다고 하는 풍자적이면
서 매우 심각한 표현을 하였다.
저자는 두 학자의 서구사상과 현대신학 전반에 걸친 비관적인 평가와
"종말적인 표현"에 대하여 아낌없는 찬동과 지지를 보내는 바이다.
앞서 묘사하고 설명한 바와 같은 [현대신학]의 급진주의 일변도의 진
행 때문에 [현대신학]은 현재 "종말의 시기"를 맞이하고 있음이 분명하
다. 아니, "종말의 시기"라는 표현보다도 "종말의 순간을 맞이하고 있
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는지 모른다.
이와 같이 [기독교 무신론]과 [마르크스주의]로 뒤범벅이 된 현대신학
의 [종말적인 모습]을 지켜보면서 우리 한국의 [개혁주의 정통신학]은
"기독교신앙과 신학의 보존"이라는 지상 명령적인 목적론을 재확인하고
그것을 수행하는 일에 전력을 기울이려 할 것이다.
[현대신학]의 "불신앙의 결론들"때문에 기독교의 존속이 "일대위기"를
맞이하고 있는 오늘날 우리에게는 오직 기독교를 보존해야 한다는 [절대
명제]가 있을 뿐이다. 한국과 세계에서 기독교를 보존하고 보존한 기독
교를 전파하는 이 큰 목적을 위하여 우리 교회는 분발하여 노도와 같이
밀려오는 현대신학의 급진적 사조에 대항하여 '일사각오의 믿음'을 갖고
서 용감하게 싸워야 할 것이다(사40:8, 딤전6:12, 딤후3:14-17, 사
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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