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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의 신학을 어떻게 볼 것인가?1

20세기의 신학을 어떻게 볼 것인가?1
http://cafe.naver.com/modernth/1323  
20세기의 신학을 어떻게 볼 것인가?
- 현대신학을 중심으로 -
강의 : 이승구 교수 / 정리 : 권우강 목사

    목 차
Ⅰ. 강의 정리자의 변
Ⅱ. 몇 가지 안내 서적
Ⅲ. 20세기 신학의 동향들
1. 20세기 신학의 배경으로서의 19세기 신학의 특성: 내재주의
2. 20세기 신학의 출발점 : Barth, Romans (1919, 1922)
3. 50년대 말까지의 신학의 거장들
4. 좌파 바르트주의자들의 신학 (Left- wing Barthian Theology)
5. 우파 바르트주의자들의 신학 (Right-wing Barthian Theology)
6. 새로운 십자가의 신학 (New "Theology of the Cross")
7. 다양한 해방신학들
8. 새로운 형태를 추구하는 1990년대 신학들의 다양성
Ⅳ. 20세기 후반의 개혁신학의 동향
1. 20세기 초반의 개혁신학
2. 20세기 후반 개혁신학의 동향

 
 
Ⅰ. 강의 정리자의 변
 
신학교 시절 현대신학에 대해서 매우 관심있게 들은 적이 있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잊어버린 것도 있고, 또 한쪽 면에서만 비판적인 시각으로 보았기 때문에 그들을 제대로 이해했는가가 궁금하기도 하였다. 그러던 중 로고스신학연구원에서 비교적 객관적인 입장에서 그들의 입장을 이해하며 전달해 줄수 있는 강의가 있게 되었음을 기쁘게 생각하며 진지한 자세로 강의에 임하게 되었다.
강의의 내용은 감히 수강자가 평가할 문제는 아니지만 대체로 좋았다는 중론이 있었다. 특히 어렵고 복잡해서 실타래처럼 얽혀있는 현대신학자들의 사상을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잘 정리해서 쉽게 들려 준 데 대하여 고마움을 느낀다. 그래서 이 강의의 내용이 시간과 함께 그냥 흘러가는 것이 아까운 마음이 들어서 로고스신학연구원의 공간 속에 묶어 두려고 글로 옮기는 작업을 시도하였다. 생각 같아서는 순식간에 해 낼 것 같았으나 막상 글로 옮기다 보니 문장의 흐름이 잘 연결되지 않았고, 나중에 독자가 스스로 읽고 이해하는데 너무 어려울 것 같아서 몇 번이고 그만 둘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그러나 일종의 사명감(?)을 느끼면서 몇 번이고 다시 글을 읽고 다듬고 제 위치에 재정리하다 보니 그런대로 괜찮은 내용으로 만들어졌다. 그래서 남의 강의이지만 내 글처럼 써서 보고서로 작성하였는 바, 한 가지 두려운 것은 혹시 내가 잘못 이해하고 잘못 옮긴 내용은 없는가 하는 점이다. 그래서 가능하면 실수를 줄여보려고 사전을 찾아가며 스펠링도 고치고, 관련된 다른 참고서적도 찾아보았다. 최선을 다한 만큼 잘못된 것은 넓은 아량으로 보아주기 바란다.
주의할 것은, 이 글은 어디까지나 강의자의 신앙과 사상에 입각해서 쓰여진 것이며, 강의정리자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정리자의 사견이나 해석이 전혀 덧붙여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글을 읽고 정리자의 사상을 오해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리고 강의 중에 많은 문제점이 도출된 것을 독자와 함께 공감하기 위해서 질문과 답변의 내용을 그대로 실었다. 그러므로 객관적인 자료를 얻는다는 차원에서 이 글을 읽고 함께 경각심을 가지며, 오늘날 한국교회 아니 세계교회의 신학사조가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정확히 파악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더할 나위 없이 보람으로 느끼겠다.
 
 
Ⅱ. 몇 가지 서적 안내
 
20세기 현대신학을 좀더 깊이있게 이해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은 몇 권의 책을 소개하고자 한다.
 
1. David F. Ford, ed., The Modern Theologians: An Introduction to Christian Theology in the Twentieth Century, 2vols (Oxford: Basil Blackwell, 1989).
David F. Ford는 캠브리지 대학교 조직신학 교수이다. 이 책은 각 현대신학자들에 대하여 전문적으로 공부하신 분들이 각자에 대해서 논문으로 발표한 책이다. 아직 한국에는 번역 소개되지 않았지만 아래 4~5번에 소개된 {현대신학개관}과 {최근신학개관}이 비슷한 유형을 띠고 있어서 참고할 수 있다. 이 책의 유익은 한 사람이 모든 것을 깊이 있게 분석하지 못하는 어려움을 해소하였다는 것이고, 난점은 우리와 같은 개혁신학자들이 아닌 경우가 많다는 사실이다.  
2. {20세기 신학』신재구 옮김, (한국기독교학생회 출판부, 1997). Stanley J. Grentz and Roger E. Olson, 20th Century Theology: God & the World in a Transitional Age (Downers Grove, Ⅲ: InterVarsity Press, 1994),
이 책은 이번 특강의 교재로 소개한 책으로서, 두 사람이 썼기 때문에 깊이는 부족할 수 있지만 일관성이 있고, 비교적 복음주의 입장에서 현대신학자들을 잘 이해하고 비판하였다는 점이 큰 장점이다. 하지만 이들은 침례교 소속으로서 침례교 우호적이다. 그들은 복잡다난한 <20세기 신학체계>를 아주 단순하게 정리하고 있다. 하나님을 이해하기 위하여 전통신학에서는 하나님의 초월성과 내재성을 강조하였다.  즉 하나님은 이 세상 역사 가운데 들어오셔서 일하시는 내재성을 가지고 있지만, 동시에 역사 속에 갇혀 계시는 것이 아니라 초월해 계시는 초월성도 인정한 것이다. 이 책은 대부분의 현대신학자들이 범하기 쉬운 "초월성을 배제하고 내재성만 강조하는 것"을 잘 지적하고, 하나님을 이해하기 위한 초월성과 내재성의 두 축을 어떻게 잘 유지하고 있는가를 살펴보고 있다. 그러나 이 도식 자체도 검토의 대상이 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기 위해서 초월성만 주장하다가 내재성은 간과하지나 않는지 살펴봐야 할 것이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우를 범하고 있기 때문이다.
3. 이승구 저,『현대 영국신학자들과의 대담』(서울: 엠마오, 1992).
오늘날 영국 신학자들의 견해를 솔직하게 읽을 수 있는 책으로서 현재 영국 신학계를 이해할 수 있다.
4. 조성노 편,『현대신학개관』(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94).
5. 조성노 편,『최근신학개관』(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93).

 
Ⅲ. 20세기 신학의 동향들
 
1999년 4월 12일 연세대학교에서는 기독교학문연구회 주최로 {20세기를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주제의 세미나가 있었다. 그 커리큘럼 중에서 제가 첫 번째 주제로 강의했던 {20세기 신학을 어떻게 볼 것인가?}의 내용을 다시 소개함으로서, 20세기 신학을 전반적으로 한 번 훑어보고, "우리는 개혁주의 입장에서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하는 자세를 가다듬고자 한다. 우리는 현재 20세기를 살고 있는데, 동시대에 살면서도 우리와는 전혀 다른 신학적 견해들을 가진 자들이 매우 많다. 그들을 그냥 방임할 수도 있고 적극적으로 반응할 수도 있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그들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 오늘 강의할 뒷부분은 우리가 믿고 따라가야 할 일이지만 앞부분은 그냥 믿고 따라가기에는 매우 위험한 일이다.
저는 처음 신학을 시작했던 70년대 후반에, 이제 언급할 현대신학자들과 같은 신학적 견해를 가진 교수들로부터 현대신학의 내용을 배운바 있다. 그 때에 느낀 감정은, 저런 이야기를 순수한 대학생들에게 전해주면 그냥 따라가게 될텐데..., 저런 자를 따라가지 않도록 개혁주의 입장에서 잘 비판하고 대안을 제시해 줄 그런 신학자는 없을까? 하고 생각했었다. 물론 어떤 부류의 사람들은 그들을 비판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그들을 잘 이해하지 못했거나 천박한 경우가 많았던 것이다. 이 강의도 그들의 입장에 서서 하지 않고 비판적 시각에서 하기 때문에 자칫하면 후자처럼 느껴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가능한 그 두 입장을 지양하면서 철저히 현대신학을 이해하면서도 성경적인 입장에서 비판할수 있는 방법으로 강의하려고 한다. 이런 강의를 그런 방향으로 지성인들을 이끌어갔던 장소(연세대학교)에서 강의할 수 있었다는 사실 자체만도 매우 의미있은 일이었다. 그러면 이제부터 20세기 현대신학을 좀더 깊이있게 이해해 보기로 하겠다. 
1. 20세기 신학의 배경으로서의 19세기 신학의 특성: 내재주의(Immanentism)
우리는 복음이 들어온지 100여년 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19세기 신학은 미처 접해보지도 못한 신학이다. 초창기 우리나라에 들어온 신학은 통일성있고 체계화된 신학이 아니라 조금은 답답하게 느껴질 정도로 지엽적이고 부분적인 신학이 많았다. 세대주의를 비롯해서 부족함이 많았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순수함은 있었다. 그래서 단순하고 소박하면서도 아름다운 신앙을 유지할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알고 있는 100년의 신학은 신학의 전부가 아니라 2000년 교회사에서 지극히 작은 일부분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구약까지 따지면 간격이 더 벌어질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아는 것으로 다 알았다고 해서는 안된다. 그리고 저들을 무시해서도 절대로 안된다. 우리가 받은 것 중에는 왜곡된 것도 많은데 그런 것들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1) Immanuel Kant (1724 1804)
19세기까지는 이 세상 안에서만 역사하시는 하나님, 즉 <내재주의 신학>이 주류를 이루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초월성을 인정하지 않거나 인정하더라도 왜곡된 상태로 인정하였던 것이다. 이 때에는 세 부류의 사람들이 있어서 그 당시 신학의 중요한 틀을 제공하였는데, 첫 번째 사람은 임마뉴엘 칸트이다. 그는 이층 세계관을 피력하면서 눈에 보이는 현상계, 곧 "의식 속에 들어온 것만을 우리가 알 수 있다"고 말하고, 이것을 넘어선 것, 곧 "사물의 본질 자체는 무엇인지 알 수 없다"고 하였다. 그래서 늘 "물(物) 자체는 무엇인가?"하는 물음을 곧잘 묻곤 하였다. 그리고 시간과 공간이 있는 이 현상계는 이성으로 이해할 수 있지만 이성으로 이해할 수 없는 영역, 즉 현상계를 초월한 영역이 또 있다고 말하였다.
19세기 이전 18세기까지는 신학자나 자연주의 과학자들까지도 이성이 모든 것에 대해서 다 알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이에 칸트는 이성이 너무 교만하기 때문에 이성을 비판하여야 한다고 생각하면서({순수이성비판}, {실천이성비판}을 씀), 이성이 어느 정도까지는 알 수 있지만 그 영역을 벗어나면 알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면 그 넘어서는 영역은 무엇으로 알 수 있는가? 그것은 신앙으로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신앙을 위해서 이성을 비판한다고 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이것이 옳은줄 알았지만 거기에는 함정이 있었다. 보편적으로는 이성으로 하는 것을 '학문'이라고 말하는데, 그들은 학문을 넘어서는 것을 '신앙'이라고 부르며 학문과 신앙을 분리시킨 것이다. 그러나 신앙과 학문이 분리될 수 있는가? 요즈음 보수주의자들 중에도 가끔 신앙과 지식을 분리시키는 자들이 있다. 그래서 심지어는 어떤 물리학자도 과학으로 풀리지 않는 것은 신앙으로 이해한다고 생각하고 목사님도 그것을 격려하는 것을 보았다. 이런 것은 칸트적인 이원론의 발상인 것이다.
신앙을 논하는 학문, 즉 신학도 학문인가? 칸트는 '아니라'고 말한다. 그래서 학문을 연구하는 대학으로부터 신학은 퇴출당한다. "너희들은 너희 영역에서 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본래 대학이 무엇을 하는 곳인가? 신학을 돕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대학인데, 이제는 이런 사상의 결과로 주객이 전도되어 신학은 대학에서 떨어져 나가거나 아니면 겨우 한 분과에 속하고 말았다. 따라서 오늘날 신학교가 대학과 떨어져서 따로 명맥을 유지하며 존재하게 된 것은 이런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또 "하나님은 신앙의 영역에서만 존재하고 이성의 영역은 벗어났다" 고 말한다. 칸트가 "이성으로는 하나님을 찾을 수 없고 신앙으로만 찾을 수 있다"고 말하니까 성경적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그가 말하는 신앙의 기준은 도덕에 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신가? 우리의 도덕적 교사이다." 라고 말하는데, 오늘날 신앙의 윤리적인 모습이 이런 유형에 속하는 것이다. 

(2) Georg Wilhelm Friedrich Hegel (1770 1831)
또한 부류는 헤겔이다. 칸트는 "하나님이 현상계 밖에 있다"고 하였으나 헤겔은 "역사는 계시의 과정, 즉 하나님이 자기 스스로를 드러내시는 과정이다. 이 역사에서 하나님 스스로가 자기를 전개해 가신다"라고 보았다. 그는 또 "온전하신 하나님이 완전히 드러나시려면 이 역사가 마감되기 전에는 알 수 없다." 고 말하였다. 그러므로 궁극적으로 하나님을 알려면 역사가 끝나야 되고, 하나님이 완성되는 것도 역사가 끝나야 된다. 그러면 하나님은 이 역사 가운데서 어떤 존재인가? 시사점만 줄 뿐이라는 것이다. 심지어는 삼위일체도 "하나님의 일부분이 완성으로 되어져가는 과정"으로 이해하였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역사 안에서만 이해하였고, 기독교를 역사철학으로 세속화시키고 그 세속화된 역사 안에서 모든 것을 다 설명하려고 하였다. 이런 식으로 가는 기독교가 참된 기독교인가? 그가 기독교를 강조하고 참 인간답게 만드는 것이 기독교라고 말하고 또 누구든지 기독교를 믿고 살아야 한다고 말하였지만 그것은 전부 올바른 기독교를 증거한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헤겔이 칸트와 공통점이 있다면 하나님의 개념에 충실하지 않도록 이 세상의 어떤 개념으로 설명하려고 시도하였다는 것이다.
(3) Friedrich Daniel Ernst Schleiermacher (1786 1834)
슐라이어마허는 19세기 현대신학의 아버지로 불리어질 정도로 많은 영향력을 끼친 인물이다. 칸트는 하나님을 도덕에서 찾고, 헤겔은 역사 가운데서 찾았지만 마허는 "마음의 노력이나 이성의 영역을 벗어난 감성의 영역에서 찾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의 이러한 사상은 그의 조상들인 경건주의자의 영향도 받았다. 그는 "절대의존의 감정, 곧 하나님을 절대 의존했다는 마음" 그 자체를 '신앙'이라고 규정하였다. 우리도 하나님을 절대의존하지만 문제는 그 하나님이 우리의 감성에만 속해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이성과 의지에도 관련되어 있다고 생각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저들은 설령 성경 속에서 하나님을 찾지 못해도 절대의존만 하면 된다고 굳게 믿었던 것이다.
그밖에 많은 신학자들이 등장했지만 모두 위의 세가지 유형 속에 다 포함된다고 볼 수 있다.
     
2. 20세기 신학의 출발점 : Barth, Romans (1919, 1922)
20세기 신학의 출발점을 어디로 잡아야 하는가? 많은 견해가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바르트의 로마서 주석이 나온 때로부터 본다. 바르트는 로마서 주석을 두 번 썼는데, 한 번은 1919년 한국의 3.1운동이 있었던 해에, 그리고 두 번째는 1921년에 쓰고 1922년에 출간하였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두 번째 출간은 돌 위에 돌 하나도 남김없이 다 무너뜨리우리라는 말씀처럼 첫 번째 쓴 것을 완전히 다 고쳐서 새롭게 하였다. 그래서 20세기의 신학의 출발점을 1919년이나 또는 1921년으로 보는 것이다. 그러면 왜 역사적 분기점을 1901년으로 보지 않고 1919년으로 보는가? 그것은 바르트 이전 19세기 신학과의 극명한 차이점 때문일 것이다.
3. 50년대 말까지의 신학의 거장들
   (1) Karl Barth (1886 1968)
19세기의 분위기가 다 이러했다. 하르낙의 제자로서 이런 광경을 보던 스위스의 젊은 목회자 바르트는 "성경 안에는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는 것과는 전혀 다른 세계가 있다고 말하며 {성경의 놀라운 세계} 라는 논문을 발표하였고, 또 {로마서 주석}을 발표하였는데, 이에 대하여 로마 천주교의 칼 아남은 "신학자들이 놀고 있는 유원지에 떨어진 폭탄과 같다"고 평가하였고, 그의 스승인 하르낙은 비신학적이고 설교적이라는 이유로 평가절하 하기도 하였다.
바르트는 모든 인간적인 것에 대해 비판하면서 19세기 신학 전체를 비판하였다. 심지어 1921년에는 자기가 먼저 발표했던 것까지 비판하였다. 그는 로마서 주석에 대해서 1세기의 사도 바울이 속달우편으로 보내온 것과 같은 심정으로 읽고 썼다고 회고한다. 그의 글은 처음에는 팔리지 않았으나 뮌헨에서 발행하자 금방 몇백만부가 팔려나갔고, 이를 계기로 뵈팅겐 대학교의 신학교수로 강의하게 되었다. 
여기서 우리가 질문하고 싶은 것은, 바르트가 과연 잘못된 19세기 신학을 벗어나고 있는가? 그리고 성경에서 가장 위대한 것을 발견했는가? 하는 점이다. 그는 당시에 가장 두각을 나타낸 것은 사실이고, 친구인 불트만과 폴틸리히와 비교해 봐도 당시에 가장 보수적인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는 칸트의 사상을 그대로 받았다. 그래서 그도 학문으로 알 수 있는 것과 신앙은 떨어져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역사적인 예수(Historical Jesus)를 신앙의 그리스도"라고 믿었다. 즉 성경 속의 예수는 제자들이 신앙으로 바라 본 예수이지 진짜 역사 속의 예수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말하기를
"우리는 그 예수라고 하는 인물이 이 역사 가운데서 살다가 제자들을 가르치고 죽었다 라고 하는 사실만 알고 나머지는 모른다. 나머지는 신앙의 그리스도일 뿐이다. 비록 모를지라도 우리는 그분이 그리스도라고 믿는다. 성경의 저자들은 그렇게 표현할 수밖에 없었지만(1세기의 우매한 백성들에게는 그러한 신화적인 것이 먹혀들어갔기 때문에 오병이어나 물 위에 걸으시는 예수를 믿도록 표현하였지만) 과학이 발전한 이 시대에는 전혀 먹혀들어가지 않는다. 따라서 그때에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를 오늘 우리 시대에 알맞는 방법으로 전달해 주어야 한다"
고 말하였던 것이다. 이것이 유명한 '비신화화'이다. '비신화화'란 신화적인 용어로 표현된 것을 현대적인 것으로 쉽게 재해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바르트는 어떤 면에서 우리에게 가까이 오고 있다. 그는 모든 인간적인 것을 비판하였다. 너무나 비판하다 보니 인간적인 것이 하나도 남지 않았다. 그래서 하나님은 역사의 저편에 계시고 이 세상 역사의 과정은 심판의 대상이 될 뿐이라고 말한다. 그는 전5:2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유한과 무한 사이에 질적 차이와 영원과 시간 사이의 질적 차이를 주장하고 {전적타자}라는 책을 쓰게 된다. 그는 하나님을 인간의 모든 것에서부터 따로 떨어져 계신 전적 타자(全的他者)로 본 것이다. 이것의 문제점은 하나님을 20세기의 상황과는 전혀 다른 분으로 이해하고 역사와의 관련성을 끊어버렸다는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내재성을 인정하지 않고 초월성만 인정하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혹자는 그를 <초절주의> 라고 하였는데, 이는 너무나 초월해서 하나님을 역사 가운데서 끊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는 나중에 이렇게 해서는 안되겠다 싶어서인지 전 13권의 {기독교교의학}을 쓸 때에 그 중간에 있는 안셂연구 편에서 "신앙은 이해를 추구한다. 믿으면 알게 된다. 일단 믿어야 한다. 믿은 후에는 잘 알아가도록 노력해야 한다." 라고 하였다. 그리고 "하나님을 증명할 때 누구라도 하나님을 알 수 있도록, 심지어 바보라도 알 수 있도록 증명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하였고, 나중에는 "그렇게 다 알수 있게 해 주셨다"고 감사의 기도를 하였다.
그는 "어느 것으로도 더 완벽할수 없는 가장 온전한 존재 a를 내 머리에 상상하고 있더라도 그보다 더 완벽한 존재 a'가 내 머리 밖에서 실제로 존재한다면 그가 더 큰 것이다." 라고 하였는데, 이는 하나님은 개념상, 관념으로만 있은 것이 아니라 필연적으로 존재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그는 {교회교의학}에서 하나님은 천지를 피조하셨고, 피조물에 독자성을 부여하셨으며, 하나님에게는 인간성의 고려가 처음부터 있었다고 말한다. 거기서는 예수의 신성은 많이 나오지 않고, 삼위일체 중심으로 전개해 가면서 계시를 신학의 출발점으로 보았다.
바르트는 "예수의 십자가가 역사 안에 속한 것이고, 역사는 심판을 받아야 하므로 결국 십자가에서 모든 인간적인 것에 대한 부정이 있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예수의 부활은 모든 인간적인 것에 대한 긍정이 된다"고 생각하여 결국 하나님은 모든 것을 부정하신 후 곧바로 이 세상 전체를 긍정하였다고 말한다. 그것은 이 세상 모든 것이 예수 안에서 긍정되어졌다는 뜻이다. 그래서 그리스도는 "버림받으신 인간이고 선택받은 그리스도"라고 말한다. 이것이 '보편구원론'의 기초가 되기도 하는데, 역사적인 측면에서는 알미니안의 이론과 다를 것이 없다. 하지만 저들은 "알미니안이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를 긍정하는지 모르겠군요?" 하면서 전적인 은혜를 긍정하지 않는 알미니안과 차별화를 꾀하고, 예수가 우리 모두의 진노(전 인류의 죄를 위해)를 다 받아 주셨지만 어떤 인간 스스로가 그 은혜를 차단하게 되면 그에게는 어쩔수 없이 어린양의 진노가 임한다고 말하여, 결국은 그러한 논리가 숨어있는 것이다.
그는 또 역동성을 강조하여, "사람이 붙잡으려는 순간 이미 그것은 하나님의 계시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즉 계시는 하나님 스스로가 일으키는 것인데, 이 역사 가운데 들어오는 순간 상대적인 것이 되므로 심판의 대상이 되고 부정이 되어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그 이론으로는 하나님의 계시가 이 세상 역사 가운데 들어올 수 없다. 그러므로 2000년 전에 기록된 성경의 내용은 계시가 아니라 그 말씀이 오늘 내게 역사될 때에 계시가 된다고 말한다. 그래서 바르트는 하나님이 역사 가운데로 들어오는 것을 막는다. 그리고 '계시'와 '계시의 흔적'을 구분한다. 즉 2000년 전 예수의 삶은 계시가 아니라 계시의 흔적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역사 바깥에 계셔야 하고 이 시공형의 세계에 들어와서는 안된다. 그런 면에서 바르트는 철저히 헤겔을 반대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계시가 나타나는 영역과 인간의 영역을 구분하고, 역사의 영역과 자유주의 사상을 비판하면서도 역사를 넘어선 영역에서 설명하기 위해 신앙을 끌어들여 그것을 신앙하여야 한다고 말한다. 따라서 그에게는 신앙의 순간과 계시의 순간이 같다.
그리고 성경에 대해서는, "기록되어 역사 안에 있으므로 계시가 아니다. 성경은 모세와 바울 및 사도들이 기록한 인간의 말이며, 계시의 흔적일 뿐이다" 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역동성을 강조하면서 성령께서 역사를 하시면 그 흔적(기록된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 되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되는 것은 성령의 역사하시는 그 순간 뿐이요,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다 하면 이미 그 순간을 벗어난 것"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그는 명제적인 계시를 인정하지 않는다. 다만 성경의 사실을 듣고 내가 그 사실과 관련해서 어떤 존재가 되어야 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이 중요하며, 그 내용을 가지고 사실이냐 아니냐를 따지는 것은 중요치 않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그에게 있어서의 성경은 프로포지셔널(propositional - 명제적) 하지 않고 퍼스날(personal - 개인적 - 주관적임) 하다.
칸트는 "하나님이 현상계인 여기에는 없다"라고 보았는데, 그런 이원론이 바르트의 사상체계에 영향을 미쳤다. 그런 의미에서 바르트는 가장 위험하다. 차라리 다른 사람들처럼 아주 다르면 유혹도 받지 않을 것인데, 우리와 비슷한 면이 있으면서도 전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아무런 선지식이 없이 그의 글을 읽으면 감동하는 자가 많다.
        (2) Adolf von Harnack (1851 1930)
앞 장에서 말한 세 사람 중 19세기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람은 역시 슐라이어 마허이다. 그 다음으로는 헤겔이다. 그는 모든 것을 역사화 하였고, 그 결과 19세기 말에는 종교사학파가 유행하였다. 이런 접근에 가장 가까운 자가 아돌프 하르낙(Adolf von Harnack)이다. 그는 역사를 가르친 자로서, "성경의 핵심(중심, 본질)이 무엇이냐?"를 살폈다. 그는 방송연설에서도 "기독교의 본질, 기독교란 무엇인가?"를 강의하였다. 그가 항상 성경의 본질을 찾으니까 근본적인 것에 접근하려는 좋은 자세인줄 알고 우리와 유사한 것 같이 여기는 자들도 있지만 실제로는 본질이 아닌 것은 모조리 배격하려는 자세이기 때문에 매우 위험하다.
그의 사상은 크게 세 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는 "하나님의 보편적인 아버지 되심"을 강조하고, 둘째는 "인류의 영혼의 무한한 가치"를 강조했으며, 셋째는 "하나님 나라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언뜻 말로 들어봐서는 잘못된 것이 없는 것 같다. 그러나 그가 강조하는 그 이면의 내용을 살펴보면 그가 얼마나 인본주의에 투철한가를 알 수 있다.
그의 보편적 아버지 되심은 창조주의 관점에서는 가능할지 몰라도 성경에서는 모든 자의 아버지가 아니라 "믿는 자의 아버지"이기 때문에 배격되어야 하고, 두 번째는 "이 무한한 가치를 지닌 인간을 하나님이 어떻게 구원하지 않으랴" 하였는데, 인간이 위대해서 구원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배격해야 하고, 세 번째는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지는 것처럼 말해서 결국은 인간이 중심되는 <하나님의 나라>를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목적은 인간 유토피아 건설이 아니겠는가?  
      (3) Ernst Troeltsch (1865 1923)
트뢸치는 기독교를 절대종교로 보았다. '절대종교'라고 말하니까 마치 우리와 유사한 것 같지만 그가 말한 뜻은 하등종교에서 점점 발전되어 고등종교로 되었다는 뜻으로 이해한 것이다. 이것은 헤겔이 말하는 역사철학에 바탕을 둔 것으로서, 이 역사를 하나님이 온전케 되어지시는 계시과정으로 본 것이다. 
         (4) Dietrich Bonhoeffer (1906 1945)
신학계에서 그리 크게 알려지지 않았던 본회퍼는 히틀러를 암살하려다가 감옥생활을 하였고, 30대 초반의 어린 나이로 전쟁이 끝나기도 전에 감옥에서 죽게 된다. 그는 크게 활동하지 않아서 뭐라고 말하기 어렵지만 그가 만약 살았더라면 어떤 신학을 펼쳤겠는가를 짐작할 수 있다. 그는 짧은 저서를 통해 시사한 바에 의하면, 기독교를 세속적으로 이해하였다. 그가 남겨놓은 결과는 좌파 바르트주의의 선구적 역할을 하며 신 죽음의 신학과 세속신학을 이끌어내게 된 것이다.
< 질문과 답변 >
문 : 하나님은 초월하시면서도 내재하실수 있다고 말한 것을 좀더 구체적으로 말해 달라.
답 : 현대인들은 "초월은 위에 있고 내재는 아래 있어서 동시에 있는 것이 부조리하다" 라고 생각한다. 네모와 원형이 동시에 존재할 수 없듯이 어떻게 하나님이 동시에 두가지를 소유할수 있겠는가? 그래서 19~20세기에는 내재성을 선택하고 초월성을 버리거나 아니면 내재적인 초월로 보았던 것이다. 이에 반동해서 바르트는 내재를 다 부정하고 초월로 간 것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인성을 가지셨으면서도 동시에 신성을 가지셨다. 인성은 유한하고 신성은 무한하다. 하나님은 역사 이전 영원한 상태에 계셨고, 또 시간과 함께 인간을 창조하셨기 때문에 이 순간에도 계실수 있다. 이것이 개혁주의적인 입장이다. 그래서 칼케돈 신조(The Definition chalcedon)에서는 신성과 인성을 같이 인정한 것이다. 성경은 인간의 특성을 사용해서 기록하였으나 바르트는 기계적으로 생각해서 여기에 나타나면 다른 데는 없어지는 것으로 단순하게 보았던 것이다. 
문 : 칼세톤 신조를 개혁주의 입장으로 보았는데, 영원한 것이 어떻게 시간화될 수 있는가?
답 : 신앙이 없으면 이것을 "부조리(absurdity)하다" 라고 본다. 이것이 기독교 최대의 스칸달론(scandal), 즉 걸려 넘어지게 만드는 장애물이 된다. 
문 : 이원론적으로 나누어 놓고 설명하려니까 이래도 안 맞고 저래도 안 맞는다. 그 자체가 넘어지게 하는 스칸달론이 되는 것 같다. 결국 개혁주의자들의 설명방법이 문제가 되지 않는가? 
문 : 그것을 이해하지 못해서 바르트는 고민했는데, 결국 개혁주의자들은 믿음으로 수용하라고 맹신을 요구한 것이 아닌가? 
답 : 아니다! 어느 쪽으로 이해하느냐가 중요한데, 합리적인게 무엇인가? 일반적으로는 이성에 맞는 것을 합리적이라고 말하지만 신앙을 가진 자들은 하나님이 옳다고 하는 것을 합리적이라고 한다. 합리성의 개념을 바꾸라!
문 : 그것이 믿어야 하는 내용인가?
답 : 그렇다!
문 : 내재신을 설명하는데, 한 인격 안에 신성과 인성으로 자리매김 하려다가 내재신을 인성으로 대입하여 모순을 일으킨 것은 아닌가?
답 : 하나님이 내재신이라는 말은 아니다. 하나님이 초월하시면서 동시에 내재하시기도 한다는 말이다. 그 전형적인 모습이 성육신 사건에서 나타났다. 이것을 믿는 것이 칼케돈 신조를 따르는 것이고, 칼케돈 신조를 따르지 않는다면 그는 개혁주의자가 아니다. 
문 : 학문적인 체계를 세워나가고 이해를 하도록 설득해야 할텐데, 설득이 안되니까 결국에는 믿음을 강요하는 경우가 아닌가?
답 : 그렇지 않다! 칼케돈 신조는 성경이 계시해준 내용을 선배들이 잘 정리해 놓은 것으로서, 무오하지는 않으므로 고쳐질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이단이 된다. 기독교사에서도 이 신조를 따르지 않았다가 이단으로 정죄된 적이 있다. 그것이 성경계시를 잘 반영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것이 내 이성에 맞지 않는다고 거부하면 20세기 신학자들의 꼴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한가지 유의할 것은 사람이 표현해 낸 이론 중에 무오한 것은 없다. 그러므로 성경 계시에 의해서 우리의 이론이 언제나 고쳐질 수는 있다. 그러므로 어느 것이 가장 잘 표현한 것인가를 선정한 다음 그것을 따르는 것은 바람직하다. 그런 면에서 칼케돈 신조가 가장 신임하고 기준이 될만한 것이기 때문이다. 
문 : 바르트의 영원개념은?
답 : 플라톤주의적이다. 하나님은 시간 이전부터 계시고 시간이 시작된 다음에는 '영원함'에서 '무시간적'이 아니라 '끝 없음' 쪽으로 이해하였다. 그러나 바르트는 시간과 영원이 너무 대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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