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신학의 발전과정
현대신학의 발전과정
http://cafe.naver.com/modernth/1209
20세기는 숫자상으로 1901년부터이다. 허지만 정치적으로는 제1차세계대전이 나던 1914년 이고, 경제적으로는 미국이 대공항을 겪던 1929년이요, 신학적으로는 칼 빨트의 로마주석이 나오던 1918년 이라고 봄이 좋겠다.
19세기는 과학의 발달로 구라파의 산업혁명이 거의 완결된 때이다. 그후 새로운 무기들을 생산해서 세계곳곳에 많은 식민지를 정복했고 시야가 넓어져 그들의 통치영역은 전세계적으로 확대되었다. 이와때를 같이하여 사상적으로는 "무한한 진보가능성을"을 믿는 학설들이 난무하기 시작했다. 특히 1859년 다윈의 진화론에서 "종의 기원"은 서구인들에게 결정적 영향을 미치게 했다. 그러므로 19세기 사람들은 "무한한 진보 가능성"을 믿었고 이성을 지도자로 나가는한 모든 것이 분명히 실현될줄 믿었다. 그래서 세계제1차 대전이 나기전 1899엔 하르낙[칼 빨트의 스승]은 백림학교 강의 중에서 아직은 만족할수 없지만 이대로 나가면 우리의 생활영역이 사랑의 정신으로 완전히 변화될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미국의 사회복음주의자 라우센부시도 기독교 사랑의 정신이 온 미국생활을 침투했는데 정치와 경제 영역만 이뤄지면 이 땅이 하나님 나라로 된다고 믿었다.그러니까 미국이 기독교 정신에 의해서 점점 선해지고 잘되어 가는 것으로 확신했다. 그런데 이 라우센 주장은 뉴욕 유니온 신학교 교수였던 라인홀드 니이버(1892-1971)에 의해 부숴지기 시작했는데 그것은 인간이 개인적으로는 도덕과 윤리적이지만 어떤사회단체에선 조합의 지도자들을 위해서 일하기 때문에 이상세계건설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이같이 19세기 사상들은 20세기에 와서 무너지기 시작했다. 기독교 정신으로 자연과학으로 통치영역을 넓혀 식민지에서 대량의 싼물자들이 구라파와 미국으로 쏟아져들어왔던 것이다.그래서 서구인들은 자기이상으로 또 기독교 정신에 의하여 "무한 가능성"을 개발하여 진보발전하면 결국엔 이상세계 유토피아를 이룬다고 믿었는데 1914년 세계제1차 대전으로 자기들의 손으로 건축한 그 찬란한 서구문명을 헐었던 것이다. 그떼 특히 군목이었던 폴 틸리히(1886-1965)는 시체들속에서 잠을자면서 자기과거의 헤겔의 관념철학에서 실천철학으로 옮기는 공헌도 했다.
아리스토 텔레스는(BC384-322)인간본질의 정의를 합리성에 두었다. 그래서 18세기는 이성이 종교를 생산해내는 해이기도 했다. 그렇게 이성으로만이 모든 것을 이룰줄 알았는데 세계1차 전쟁을 만나 외부세력이 아닌 자기손으로 자기들이 만든 문명을 다 부숴버린 것이다. 이것이 서구인의 충격이었다. 18세기에 낭만주의가 한창팽배하고 있을 때 포루투칼 리스본에 지진이 일어나 4.000명이나 죽었다. 이때 하나님이 이세계를 합리적으로 지으셨고 다스리는데 왜 이런 불합리한 천재지변으로 사람이 죽느냐고 반문했다. 그런데 그렇게 이성을 신뢰하고 확신에 차있던 서구지성인들이 자기들의 손으로 전쟁을 일으켜 문명을 헐어버림으로서 그들의 절대이성사고도 깨어지기 시작해 인간은 합리적 존재가 아니라 불합리한 존재란 것을 깨닫게 되면서 항상 외부로만 지향하던데서 내부로 돌아와 인간실존의 연구가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 그래서 실존에대한 책들이 나오면서 인간의 기본이 무었인가?인간의 지성은 실용적이 아니고 진리자체를 탐구하는것이라고 했다. 인간은 불합리하고 유한하며 그 유한이 죽음을 만들어 내므로 실존주의에서는 남의 일처럼 여겼던 죽음을 자기문제로 심각하게 받아들였던 것이다.
칼 빨트(1886-1968)는 회상했읍니다.그렇게 사랑의 종교를 외치던 자기선생 하르낙을 위시해 89명의 신학자들이 1차대전 수행에 가표를 던져 수행했고 서명했던 것을 회상하면서 죄의 심각성을 의식해서 다시 칼빈의 글로 되돌아간 것이다. 칼빈의 인간 전적부패-예리한 통찰이었다. 칼빈은 우리타락한 본성은 죄를 필연적으로 짓는다고 했다. 우리가 죄지으면 죄과에대한 용서에 끝나지않고 또하나의 메카니즘을 형성해서 제2천성으로 역사하여 죄를 더 짓게끔 죄를 끊을수 없도록한다. 영의 법으로 복음의 권세가 아니면 도저희 끊을수 없도록 행사한다. 빨트는 이렇게 인간의 죄과를 말하는 종교개혁 글들로 소위 키엘케고올의 변증법.즉 실존주의 사상으로 되돌아간다.
그러므로 20세기 실존주의는 빨트에서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 물론 하이덱거가 발트이후에 "존재와시간"이란 책을 써서 20세기 최대의 형이상학자로 인정을 받지만 그러니까 발트이전까지 종교는 저 하나님에 대하여 연구한것이 아니고 인간이 왜 종교적인가를 연구하여 특히 종교의식을 분석과 해명으로 여겼다.
그러니까 슈라이 막헤르 이후의 내재신학은 하나님 말씀을 연구하여 하나님께로 되돌아간 것이 아니라 인간과 인간의 종교감정을 연구하여 인간으로 끝난다. 물론 발트가 완전개혁신학으로 되돌아왔다고는 할수없으나 최소한 신학의 흐름의 판도는 바꾸는데 공헌을 한 것이다. 그래서 신학의 문제가 무엇인가를 묻고 이제까지 내적인 종교체험과 종교의식만 생각한
데서 돌이켜 전통적인 종교개혁이 출발한 하나님 말씀에로 되돌아가는일이 시작되었는데 그런면에서 발트가 로마서 강해를 냈던 1919년이 신학적으로 큰의미를 갖는다고 할 것이다.
19세기 내재신학이 서양의 사고에 있어서 이성의 능력과 그 범위가 무한데까지 미칠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칸트(1724-1804)는 순수한 이성자체만을 연구하여 그 이성의 능력과 권리가 어쩐지 밝히기 시작했다.칸트이전엔 합리론이었다.이제까지 이성이 영원한세계 무한의 세계까지 확장하고 침투못할부분이 없지마는 칸트에게는 그 범위를 현상계의 영역으로 좁히고 감각기관을 통해서 들어온 경험의 내용이 더 중요했던 것이다. 보편한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것, 그리고 영원한 것이 아니라 시간적인것,그리고 이성의 진리가 아니라 감각기관을 통해서 들어온 사물의 이해가 중요했고 그것이 진리의 표준이고 진리를 결정하는 기준으로 삼았다. 영원한 진리같은 것이 아니라 개별적인 사물의 경험,구체적인 내용의 이해가 결정적이고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것은 영국의 데이빗 흄(1711-1776)의 영향이 칸트에게 크게 작용했다.이제까지 칸트도 합리론을 생각했으나 감각기관을 통해서 구체적인 외계상을 받아들인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데이빗 흄에 있어서 지식은 감각기관을 통해서 들어온 그런 인상이 연상작용,즉 습관에 의해서 이뤄진 결합의 경험으로 생각했다. 칸트는 감각기관을 접촉하여 경험이 가능한 영역
까지만 이성이 알 수 있는 영역이며 그것이 현상계라고 한다. 그것이 곧 경험세계 즉 시간과 공간세계 물질의 세계뿐이다. 그래서 근세인은 칸트의 사고를 따라 한동안 영혼이 없다고 했다.그것은 두뇌사고에 의해 활동할뿐 영이 보이지 않아 증명할길이 없기 빼문이라고 한다. 그러면 어떻게 내세를 말하고 영혼을 증명할것인가 성경으로 증명한다는데성경은 어데서 왔는가? 종교사학적으로 그 출처를 파해쳐도 그런증거가 없는데 영감되었다는 것은 어떻게 믿을수 있나?
루돌프 뿔트만 (1884- )같은 사람은 궁켈의 제자로서 양식사학파를 완성한 사람인데 복음이 순수한 계시의 전개가 아니라 초대교회가 예수에 대한 신앙을 고백한 것이 복음서로 나타났을뿐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을수 없다고 했다. 칸트이후 슈라이막헤르(1768-1834)에 의하면 종교는 증명이 불가능하므로 지식의 일로가 아니라 감정의일로 다루기 시작했다. 신의 세계는 느낌으로 온다는것이다.절대의존감정이라고 한다. 그는 개혁파교회 목사아들로서 감정의 일로 정함은 그는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에 서있기 때문이다. 또한 칸트 배후엔 흄이 있기 때문이다. 예를들면 건축가가 집을지으면 다음에도 그 경험을 되살려서 그와같은 집을 지을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주는 단 한번이므로 증명할길이 없다는 것이다. 칸트는 하나님에 관한 것은 알수가없고 드러나지 않는 감각할수 없는 것은 예지계, 드러난 것은 현상계라 하여 흄의 도식을 받은 칸트는 신은 현상계에 속하지 않고 예지계에 속한다고 하여 인간의 감각 영역밖으로 쫒고 지식영역만 현상계에 국한했다.그의 실천이성비판에서 하나님을 우리가 알수 없으니 지식의 대상에서 제외시켜버렸다.슈라이막헤르가 내재신학을 인간의 감정에서 출발한 것은 그가 진센돌프에서 나온 경건주의 운동에 가담하여 모라비안파와 접촉을 했고 소위 느낌을 강조하는 낭만주의 시인들,문인들,그리고 철학자들과 많이 어울렸기 때문이다. 루터교도 중생체험을 많이 강조한다. 슈라이 막헤르가 전통적인 신학을 180도로 전한시켜 놓았다. 예수가 하나님 아들-예수에겐 신의식 종교적 체험,또한 그 의식도가 무한하다.그런의미에서 하나님의 아들이다.
이렇게 헤겔의 영향으로 다윈의 진화론을 힘힙어 무한한 진보가능성을 내다보고 기독교 사랑정신으로 잘되어가는 것으로 철저히 믿었던 서양인들에게 1차세계대전으로 문명이 파괴되자 합리론적으로 설명할 수가 없었다.키엘케골도 변증법적으로 전개하여 하나님을 우리와 전적으로 다른존재로서 하나님과 우리사이에 무한한 거리가 있다고 했다. 인간의 이성만 취택케되면 자연은 필요없게 되고 은혜를 취택하면 이성의 길이 배척되게 된다. 그래서 중세가 끝날 때 이성과 자연을 많이 택하여 근세계몽주의가 되고 은혜만을 택하는 종교개혁이 나왔다. 자연의 개념으로 기독교를 배척하기 위하여 최초로 나온 것이 영국이신론 자연신론이다. 여기 이신론이 무신론의 원조이다.
키엘케고올은 무한이 질적으로 다른 영원하신이가 시간속으로 들어오셨다. 즉 무한하시이가 유한세계로 들어오셨다는 것이다. 그러면 유한속에 무한이 담겨질수 있겠는가? 작은그릇에 큰그릇을 담는 것이 불가능하듯 그럴수 없다는 것이다. 루터 는 종교개혁때 중생의 체험을 했다.그것이 합리주의 교의학인데 그 반박으로 모라비안파의 경건주의가 나오게 되었는데 결국 루터에 의해서 겨속되고 그것이 다시 웨슬레에게 넘어갔다. 메소디스트 웨슬레가 갔던 그 신앙의 길로 가고 있는데 그것이 알미니안 신학과 합세를 해서 미국의 부흥운동이 되고 성결운동이 되고 오순절 운동이 되었다.
칼 빨트는 슈라이막헤르를 저지시키기위해서 하나님을 전적인 타자로 해야했다. 그분은 그냥 우리속에서 말씀하시는분이 아니라 밖으로부터 말씀으로 오셔야 한다. 와서 우리의 소유가 되면 또 내재가 되어버리기 때문에 말씀이 내안에 들어와 일을 이루는 것을 부인하고 다만 밖에서 위기의식만 일깨우고 떠난다고 한다. 빨트는 우리처럼 선택유기가 없다. 단지 선택뿐 만인 구원설이다.그에겐 성경자체가 계시자체가 아니고 단지 계시사건을 지시하는 지시물에 불과하는 기록뿐으로서 다만 계시사건,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사건과 일치할 때 비로서 성경이 하나님 말씀이라고 한다.
그러나 성경은 말씀자체로서 하나님 말씀의 기능을 다한다. 말씀의 영원한 가치가 시간적 현상가운데 비추이고 말씀의 신적인 광채가 인간적 본질에 비추이는 세계가 되기 때문이다.
http://cafe.naver.com/modernth/1209
20세기는 숫자상으로 1901년부터이다. 허지만 정치적으로는 제1차세계대전이 나던 1914년 이고, 경제적으로는 미국이 대공항을 겪던 1929년이요, 신학적으로는 칼 빨트의 로마주석이 나오던 1918년 이라고 봄이 좋겠다.
19세기는 과학의 발달로 구라파의 산업혁명이 거의 완결된 때이다. 그후 새로운 무기들을 생산해서 세계곳곳에 많은 식민지를 정복했고 시야가 넓어져 그들의 통치영역은 전세계적으로 확대되었다. 이와때를 같이하여 사상적으로는 "무한한 진보가능성을"을 믿는 학설들이 난무하기 시작했다. 특히 1859년 다윈의 진화론에서 "종의 기원"은 서구인들에게 결정적 영향을 미치게 했다. 그러므로 19세기 사람들은 "무한한 진보 가능성"을 믿었고 이성을 지도자로 나가는한 모든 것이 분명히 실현될줄 믿었다. 그래서 세계제1차 대전이 나기전 1899엔 하르낙[칼 빨트의 스승]은 백림학교 강의 중에서 아직은 만족할수 없지만 이대로 나가면 우리의 생활영역이 사랑의 정신으로 완전히 변화될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미국의 사회복음주의자 라우센부시도 기독교 사랑의 정신이 온 미국생활을 침투했는데 정치와 경제 영역만 이뤄지면 이 땅이 하나님 나라로 된다고 믿었다.그러니까 미국이 기독교 정신에 의해서 점점 선해지고 잘되어 가는 것으로 확신했다. 그런데 이 라우센 주장은 뉴욕 유니온 신학교 교수였던 라인홀드 니이버(1892-1971)에 의해 부숴지기 시작했는데 그것은 인간이 개인적으로는 도덕과 윤리적이지만 어떤사회단체에선 조합의 지도자들을 위해서 일하기 때문에 이상세계건설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이같이 19세기 사상들은 20세기에 와서 무너지기 시작했다. 기독교 정신으로 자연과학으로 통치영역을 넓혀 식민지에서 대량의 싼물자들이 구라파와 미국으로 쏟아져들어왔던 것이다.그래서 서구인들은 자기이상으로 또 기독교 정신에 의하여 "무한 가능성"을 개발하여 진보발전하면 결국엔 이상세계 유토피아를 이룬다고 믿었는데 1914년 세계제1차 대전으로 자기들의 손으로 건축한 그 찬란한 서구문명을 헐었던 것이다. 그떼 특히 군목이었던 폴 틸리히(1886-1965)는 시체들속에서 잠을자면서 자기과거의 헤겔의 관념철학에서 실천철학으로 옮기는 공헌도 했다.
아리스토 텔레스는(BC384-322)인간본질의 정의를 합리성에 두었다. 그래서 18세기는 이성이 종교를 생산해내는 해이기도 했다. 그렇게 이성으로만이 모든 것을 이룰줄 알았는데 세계1차 전쟁을 만나 외부세력이 아닌 자기손으로 자기들이 만든 문명을 다 부숴버린 것이다. 이것이 서구인의 충격이었다. 18세기에 낭만주의가 한창팽배하고 있을 때 포루투칼 리스본에 지진이 일어나 4.000명이나 죽었다. 이때 하나님이 이세계를 합리적으로 지으셨고 다스리는데 왜 이런 불합리한 천재지변으로 사람이 죽느냐고 반문했다. 그런데 그렇게 이성을 신뢰하고 확신에 차있던 서구지성인들이 자기들의 손으로 전쟁을 일으켜 문명을 헐어버림으로서 그들의 절대이성사고도 깨어지기 시작해 인간은 합리적 존재가 아니라 불합리한 존재란 것을 깨닫게 되면서 항상 외부로만 지향하던데서 내부로 돌아와 인간실존의 연구가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 그래서 실존에대한 책들이 나오면서 인간의 기본이 무었인가?인간의 지성은 실용적이 아니고 진리자체를 탐구하는것이라고 했다. 인간은 불합리하고 유한하며 그 유한이 죽음을 만들어 내므로 실존주의에서는 남의 일처럼 여겼던 죽음을 자기문제로 심각하게 받아들였던 것이다.
칼 빨트(1886-1968)는 회상했읍니다.그렇게 사랑의 종교를 외치던 자기선생 하르낙을 위시해 89명의 신학자들이 1차대전 수행에 가표를 던져 수행했고 서명했던 것을 회상하면서 죄의 심각성을 의식해서 다시 칼빈의 글로 되돌아간 것이다. 칼빈의 인간 전적부패-예리한 통찰이었다. 칼빈은 우리타락한 본성은 죄를 필연적으로 짓는다고 했다. 우리가 죄지으면 죄과에대한 용서에 끝나지않고 또하나의 메카니즘을 형성해서 제2천성으로 역사하여 죄를 더 짓게끔 죄를 끊을수 없도록한다. 영의 법으로 복음의 권세가 아니면 도저희 끊을수 없도록 행사한다. 빨트는 이렇게 인간의 죄과를 말하는 종교개혁 글들로 소위 키엘케고올의 변증법.즉 실존주의 사상으로 되돌아간다.
그러므로 20세기 실존주의는 빨트에서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 물론 하이덱거가 발트이후에 "존재와시간"이란 책을 써서 20세기 최대의 형이상학자로 인정을 받지만 그러니까 발트이전까지 종교는 저 하나님에 대하여 연구한것이 아니고 인간이 왜 종교적인가를 연구하여 특히 종교의식을 분석과 해명으로 여겼다.
그러니까 슈라이 막헤르 이후의 내재신학은 하나님 말씀을 연구하여 하나님께로 되돌아간 것이 아니라 인간과 인간의 종교감정을 연구하여 인간으로 끝난다. 물론 발트가 완전개혁신학으로 되돌아왔다고는 할수없으나 최소한 신학의 흐름의 판도는 바꾸는데 공헌을 한 것이다. 그래서 신학의 문제가 무엇인가를 묻고 이제까지 내적인 종교체험과 종교의식만 생각한
데서 돌이켜 전통적인 종교개혁이 출발한 하나님 말씀에로 되돌아가는일이 시작되었는데 그런면에서 발트가 로마서 강해를 냈던 1919년이 신학적으로 큰의미를 갖는다고 할 것이다.
19세기 내재신학이 서양의 사고에 있어서 이성의 능력과 그 범위가 무한데까지 미칠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칸트(1724-1804)는 순수한 이성자체만을 연구하여 그 이성의 능력과 권리가 어쩐지 밝히기 시작했다.칸트이전엔 합리론이었다.이제까지 이성이 영원한세계 무한의 세계까지 확장하고 침투못할부분이 없지마는 칸트에게는 그 범위를 현상계의 영역으로 좁히고 감각기관을 통해서 들어온 경험의 내용이 더 중요했던 것이다. 보편한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것, 그리고 영원한 것이 아니라 시간적인것,그리고 이성의 진리가 아니라 감각기관을 통해서 들어온 사물의 이해가 중요했고 그것이 진리의 표준이고 진리를 결정하는 기준으로 삼았다. 영원한 진리같은 것이 아니라 개별적인 사물의 경험,구체적인 내용의 이해가 결정적이고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것은 영국의 데이빗 흄(1711-1776)의 영향이 칸트에게 크게 작용했다.이제까지 칸트도 합리론을 생각했으나 감각기관을 통해서 구체적인 외계상을 받아들인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데이빗 흄에 있어서 지식은 감각기관을 통해서 들어온 그런 인상이 연상작용,즉 습관에 의해서 이뤄진 결합의 경험으로 생각했다. 칸트는 감각기관을 접촉하여 경험이 가능한 영역
까지만 이성이 알 수 있는 영역이며 그것이 현상계라고 한다. 그것이 곧 경험세계 즉 시간과 공간세계 물질의 세계뿐이다. 그래서 근세인은 칸트의 사고를 따라 한동안 영혼이 없다고 했다.그것은 두뇌사고에 의해 활동할뿐 영이 보이지 않아 증명할길이 없기 빼문이라고 한다. 그러면 어떻게 내세를 말하고 영혼을 증명할것인가 성경으로 증명한다는데성경은 어데서 왔는가? 종교사학적으로 그 출처를 파해쳐도 그런증거가 없는데 영감되었다는 것은 어떻게 믿을수 있나?
루돌프 뿔트만 (1884- )같은 사람은 궁켈의 제자로서 양식사학파를 완성한 사람인데 복음이 순수한 계시의 전개가 아니라 초대교회가 예수에 대한 신앙을 고백한 것이 복음서로 나타났을뿐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을수 없다고 했다. 칸트이후 슈라이막헤르(1768-1834)에 의하면 종교는 증명이 불가능하므로 지식의 일로가 아니라 감정의일로 다루기 시작했다. 신의 세계는 느낌으로 온다는것이다.절대의존감정이라고 한다. 그는 개혁파교회 목사아들로서 감정의 일로 정함은 그는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에 서있기 때문이다. 또한 칸트 배후엔 흄이 있기 때문이다. 예를들면 건축가가 집을지으면 다음에도 그 경험을 되살려서 그와같은 집을 지을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주는 단 한번이므로 증명할길이 없다는 것이다. 칸트는 하나님에 관한 것은 알수가없고 드러나지 않는 감각할수 없는 것은 예지계, 드러난 것은 현상계라 하여 흄의 도식을 받은 칸트는 신은 현상계에 속하지 않고 예지계에 속한다고 하여 인간의 감각 영역밖으로 쫒고 지식영역만 현상계에 국한했다.그의 실천이성비판에서 하나님을 우리가 알수 없으니 지식의 대상에서 제외시켜버렸다.슈라이막헤르가 내재신학을 인간의 감정에서 출발한 것은 그가 진센돌프에서 나온 경건주의 운동에 가담하여 모라비안파와 접촉을 했고 소위 느낌을 강조하는 낭만주의 시인들,문인들,그리고 철학자들과 많이 어울렸기 때문이다. 루터교도 중생체험을 많이 강조한다. 슈라이 막헤르가 전통적인 신학을 180도로 전한시켜 놓았다. 예수가 하나님 아들-예수에겐 신의식 종교적 체험,또한 그 의식도가 무한하다.그런의미에서 하나님의 아들이다.
이렇게 헤겔의 영향으로 다윈의 진화론을 힘힙어 무한한 진보가능성을 내다보고 기독교 사랑정신으로 잘되어가는 것으로 철저히 믿었던 서양인들에게 1차세계대전으로 문명이 파괴되자 합리론적으로 설명할 수가 없었다.키엘케골도 변증법적으로 전개하여 하나님을 우리와 전적으로 다른존재로서 하나님과 우리사이에 무한한 거리가 있다고 했다. 인간의 이성만 취택케되면 자연은 필요없게 되고 은혜를 취택하면 이성의 길이 배척되게 된다. 그래서 중세가 끝날 때 이성과 자연을 많이 택하여 근세계몽주의가 되고 은혜만을 택하는 종교개혁이 나왔다. 자연의 개념으로 기독교를 배척하기 위하여 최초로 나온 것이 영국이신론 자연신론이다. 여기 이신론이 무신론의 원조이다.
키엘케고올은 무한이 질적으로 다른 영원하신이가 시간속으로 들어오셨다. 즉 무한하시이가 유한세계로 들어오셨다는 것이다. 그러면 유한속에 무한이 담겨질수 있겠는가? 작은그릇에 큰그릇을 담는 것이 불가능하듯 그럴수 없다는 것이다. 루터 는 종교개혁때 중생의 체험을 했다.그것이 합리주의 교의학인데 그 반박으로 모라비안파의 경건주의가 나오게 되었는데 결국 루터에 의해서 겨속되고 그것이 다시 웨슬레에게 넘어갔다. 메소디스트 웨슬레가 갔던 그 신앙의 길로 가고 있는데 그것이 알미니안 신학과 합세를 해서 미국의 부흥운동이 되고 성결운동이 되고 오순절 운동이 되었다.
칼 빨트는 슈라이막헤르를 저지시키기위해서 하나님을 전적인 타자로 해야했다. 그분은 그냥 우리속에서 말씀하시는분이 아니라 밖으로부터 말씀으로 오셔야 한다. 와서 우리의 소유가 되면 또 내재가 되어버리기 때문에 말씀이 내안에 들어와 일을 이루는 것을 부인하고 다만 밖에서 위기의식만 일깨우고 떠난다고 한다. 빨트는 우리처럼 선택유기가 없다. 단지 선택뿐 만인 구원설이다.그에겐 성경자체가 계시자체가 아니고 단지 계시사건을 지시하는 지시물에 불과하는 기록뿐으로서 다만 계시사건,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사건과 일치할 때 비로서 성경이 하나님 말씀이라고 한다.
그러나 성경은 말씀자체로서 하나님 말씀의 기능을 다한다. 말씀의 영원한 가치가 시간적 현상가운데 비추이고 말씀의 신적인 광채가 인간적 본질에 비추이는 세계가 되기 때문이다.
독자 의견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