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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신학자료1

현대신학사 1

현대신학사 1 -이병일(한신대학교 신학대학원)
http://cafe.naver.com/modernth/221
 
19세기 신학
 19세기는 선교 확장의 위대한 시기요, 에큐메니칼 운동과 사회복음이 강조되기 시작한 시대이다.
19세기에 영향을 준 18세기의 두 사상 : 경건주의와 합리주의인데, 경건주의는 화석화되고 경직화된 교리에 대한 반항으로 회개와 기도가 중심이 된 헌신적 생활을 강조하고, 열광적이고 인격적인 종교 체험과 엄격한 도덕적 통합성에 큰비중을 두었다. 그러나 개인적인 관심을 지나치게 배타적으로 강조하여 사회적 관심이 약화되었다. 합리주의는 희랍사상과 르네상스 사상의 재현으로써, 이신론으로 기울어졌고, 인간의 이성이 진리의 원천이므로 죄와 구원의 교리는 불필요하게 되었다(계몽주의).
 
19세기의 사상가 :
 
칸트(1724-1804)는 19세기 신학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사람으로서, 이성을 강조하면서도 인간 이성의 유한성을 인정하였고, 도덕법을 강조하여 양심의 직관적 통찰인 지상 명령을 통해서만 하나님에게 이를 수 있다고 말한다. 칸트는 “신앙의 여지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지식을 부정하는 것이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말한다(순수이성비판 서문). 칸트는 신앙과 이성이 아니라 신앙과 경험 지식을 서로 대비시키고, 합리적 인간이 경험적 분석에 함축된 적을 인식하게 되는 합리적 신앙의 형식이 있다고 확신하였다. 근대 신학에서 차지하는 칸트의 중심 역할은 그가 종교적 신앙의 합리성을 주장하면서도 신학을 고전적 경험론의 침식으로부터 구했다는 데 있다. 칸트는 “도덕성이 불가피하게 종교로 인도되고, 종교는 인간의 도덕적 신앙에 기초하기 때문에” 도덕적 필연성이 주관적인 것 곧 ‘요청’이지 객관적인 것 곧 ‘의무’가 아니라고 말한다. 따라서 참된 신앙은 “우리의 모든 의무를 신적 명령으로 인식하는 것”과 동일하다.
   
슐라이에르마허(1768-1834)는 종교를 ‘절대 의존의 감정’이라고 하면서, 종교 경험을 강조하고 신학의 중심이 하나님이 아니라 인간에게 있다고 하였기 때문에, 현대 프로테스탄트 신학의 아버지, 낭만주의의 창시자, 자유주의 신학의 효시라고 불린다. 그는 칸트의 합리주의와 도덕주의에 반대하여 반이성주의와 반도덕주의를 말한다. 그의 종교적 주관주의는 신이 단지 감정으로만 이해되기 때문에, 우리는 결코 본질 그대로의 신을 알 수가 없고 신은 단지 우리와의 관계 속에서만 알려진다는 것이다.
 
슐라이에르마허의 종교론은 “종교를 멸시하는 교육받은 자들”에게 한 연설이다. 형식상으로는 낭만주의 시대의 정신 속에서 쓰여진 전형적인 작품이지만, 문학적으로 쓰여지고 철학적으로사회 일부 계층을 향한 “고백”이며, 따라서 전문적인 신학 용어가 아닌 낭만주의 문학의 용어를 사용한다. “종교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듯이 지식이나 행위가 아니며, 형이상학이나 도덕도 아니고, 또 양자의 합성물도 아니다.”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슐라이에르마허 자신의 사상적 편력이나 경험에서 나온 개념(개념이라는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지만)을 가지고 있다. 그는 모라비안의 경건주의와 계몽주의, 그리고 낭만주의의 사상조류를 모두 경험한 후에 ‘종교론’을 썼다. 따라서 그는 심하게 이성에 치우쳐 있거나 종교를 도덕적으로만 이해하려는 데에 반대하고 “종교는 감정이므로 아는 것과 행동하는 것으로부터 구별된다. 그것은 우주에 대한 직관이며 감정, 즉 무한에 대한 지각과 경험이다.”라고 말한다. 그에게 있어서 우주는 자연과 인간의 사건의 다양성과 대조ㅚ는 불변성과 전체성을 말하는 것이고, “모든 특수한 것을 전체의 일부분이며, 한정되 모든 것을 무한한 것의 표시로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바로 종교이다.” 그의 종교론에 있어서 ‘초자연주의, 자연주의적 범신론, 자아철학’이라는 말로 평가, 혹은 비판되어 왔다. 그러나 지금의 나에게는 그의 종교론이 나의 종교에 대한 한편의 개념, 혹은 감정에 일치하는 것이다. “인간은 무한한 하느님의 형상에 대한 감정만을 갈취해 왔다. 그러나 인간이 자신의 한계, 자신의 온 형태의 우연성, 그리고 자신의 온 존재가 무한 속으로 소리없이 소실되어가는 것을 의식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부적당한 선과 마찬가지로 그에게는 원하는 역할을 할 수가 없다”라는 말에서처럼 인간은 유한함이 분명한데, 자기 스스로는 하느님에게 절대적으로 복종한다고 하면서도 다른 한 편으로는 자기 스스로 하느님이 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겸손하게 무한과 전체에 자신의 감정을 일치시키기 위해 내어 맡기는 것이 종교이다. 슐라이에르마허에게 있어서 ‘직관’은 유한에 작용하기 위하여 그 속에서 나타나는 무한의 행동을 인정하는 것을 의미하고, ‘감정’은 인간 정신 자체의 본래적인 행위로서, 한 인간이 우주와의 조우 속에서 구체적으로 이루어지는 개인 실존의 경험이다. 그러므로 그라스도교 신앙은 정확한 신학적인 이해나 형식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라 구원의 확실성과 신앙의 확실성이 계시에 대한 실존적인 경험에 근거하는 거이다. 즉 그 신앙은 정확한 교리와 죽은 문자 속에 있는 것은 결코 아니고,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현존하는 관계에 있다.
 
종교 강화론을 통하여 슐라이에르마허는 스피노자와 같이 이단이라는 격렬한 비난과 혐의를 받았다고 한다. ‘신비주의자, 범신론 옹호, 그리고 예술과 종교,신앙과 심미적인 영상이나 예술적인 직관을 혼동’한다는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그의 신비주의는 하느님에 대한 경험의 직접성(실존성)이라는 측면에서 받아들일 수 있다. “하느님은 모든 특수한 것들을 받치고 있는 단일체이며, 세계는 이 단일체에 의존된 양심이다”라는 말은 하느님에 대한 이신론적이며 초자연주의적인 계몽주의의 관념을 부정하는 면에서 받아들여져야 한다. 그는 칸트가 이미 매장시켜 버린 전통적인 초자연주의적 형이상학을 거부하고, 새로운 초월적-철학적인 형이상학을 받아들였으며, 넓은 의미의 낭만주의적 입장에서 하느님과 세계, 무한과 유한 사이의 관계를 단일성과 전체성으로 해석한 데서 기인한 것이었다. 또한 그는 “예술은 종교의 표현 양식에 불과히지 종교의 근원은 아니며, 예술과 종교의 관계는 사상과 언어가 가지고 있는 관계와 같다”고 말한다.
   
헤겔(1770-1831)은 철학적인 종합을 시도한 합리주의자로서 변증법을 주장하고, 절대정신으로서의 신은 세계 속에서 변증법적으로 자신을 실현시킨다. 이 과정이 역사이며, 역사는 한 목표를 향해 필연적으로 진행한다.
 
Hegel의 철학체계와 역사관 -- ① 精神辨證法的 歷史觀 : 활동성을 그의 본질로 갖고 있는 정신은 먼저 자기를 대상으로 外化시킨다. 그 과정에서 순수한 자아가 자기 외부에 있는 시간으로 外化된 정신을 역사라 부르며 공간으로 外化된 정신을 자연이라 한다. 자연은 그의 생동적이고 직접적인 형성임에 반하여 역사는 알면서(wissende) 자신을 중재하는 형상이다. 역사는 그 자신에 의하여 정립된 대상에 대하여 자기를 하나의 대상으로 外化시키고 더 높은 것, 미래의 것으로 이 대상자체 속에 존재하면서 이 대상의 특수성과 제한성을 부정하고, 이를 더 높은 단계에로 지양시키며 자신의 완전한 자기 인식에 도달하는 정신의 변증법적 운동이다. ② 理性的인 것은 現實的이요, 現實的인 것은 理性的이다 : 모든 정신적인 것은 정신에 의하여 정립된 것으로, 우연적인 것이 아니라 논리적 필연성을 가지며 보편적인 것, 완전한 것으로 고양되는 한에서만이 이성적이다. 물론 불완전한 것은 그 자신 속에 있는 그의 반대(Gegenteil)로서 실존하지만 그러나 止揚되고 해소될 수 밖에 없는 모순이며 自然性과 感性과 자기 자신의 異質性(Fremdgert)을 깨트리고 자기 자신으로 돌아가고자 한다. 모든 현실적인 것은 이성적이며 그 논리적인 필연성으로 하나의 궁극적인 목적, 하나의 보편적인 목적을 가지게 된다.
 
精神의 自己現象으로서의 歷史 -- 정신의 卽者(An-sich)가 外化되어 정립되는 가장 보편적인 대상세계는 인간의 의식이다. (정신은 그 자신을 사고함으로써 그 자신을 규정하고 (bestimnen), 그 자신을 자기에 대한 대상으로 정립시킨다. 이 대상이 인간의 의식이다. 여기에서 인간의식의 본질은 사고에 있다. 보편적 정신은 사고하는 존재로서의 인간의 정신 속에 존재한다. 이 정신 곧 보편적 정신이 그 자신을 外化시켜서 형성되는 결정적인 대상세계는 개인의 정신을 그의 전체성에 속한 유기체적 계기로 포함하는 民族精神이다. 보편적인 정신의 여러 상이한 규정들은 역사에 있어서 특수한 민족정신으로 나타난다. 이 민족정신이 하나의 정치적 행태로 구체화된 것이 국가이다. 국가는 곧 개인의 정신적 삶의 총체, 윤리적인 전체(das sittliche Ganze), 현존하는 신적의지이며 세계의 현실적인 형태와 조직으로 전개되는 정신이다. 모든 영역들은 한 공통된 정신의 顯現體로서 한 공통된 원리를 가지고 있다. 종교, 예술, 철학 등 모든 분야는 그들이 속한 국가와 동일한 원리, 공통된 근거를 가지고서 서로 화해하게 된다. 이들은 국가가 지닌 보편적 이념을 실현시키는 구체적 형태들이며, 국가의 현실이다. 더 나아가 Hegel의 역사철학에서 말하는 절대적 화해의 원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의 사건에서 계시된 것으로 하나님과 인간, 하나님과 세계는 한 구체적 인격, 구체적인 시간과 공간속에서 서로 화해된 것이다. 이 화해를 세계사적 차원에서 실현시키는 구체적인 수단과 형태가 곧 국가이다. 그러나 국가는 보편적 정신 앞에서 제한된 것에 불과하여 그의 현재 상태에 있어서 하나님의 의지와 동일시 될 수 없다. 그리하여 새로운 민족정신을 통하여 새로운 것을 향한 발전, 즉 역사의 질적 변화를 이루어야 한다. 역사의 목표인 절대정신으로의 도달은 정신이 그 자신을 정신으로 완전히 인식하는 세계, 정신의 절대자의 의식에 도달한 세계, 그리하여 모든 것이 절대자의 의식에 따라 갖추어져 있으며 이 의식이 세계사를 지배하며 또 지배하였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다. 이로써 역사에 있어서 그 하나님의 통치가 실현된다.
 
 
19세기신학의 인간이해 -- Hegel과 Schleiermacher의 인간이해와 그 문제성
 
문제성과 범위 : 신학사에서 자유주의 신학은 슐라이에르마허(1768 - 1834)로부터 시작하여 칼 바르트를 중심한 변증법적 신학 이전까지를 지배해 온 일련의 신학사조, 곧 19세기의 리츨, 하르낙 등의 신학자들이 대변하는 신학사조를 말한다. 이 시대의 사조를 지배한 헤겔과 슐라이에르마허는 베를린 대학에서 철학과 신학을 강의하고 있으면서, 학문의 방법적인 면에서, 즉 사고의 틀에 있어서 서로 일치하고 있다. 그러나 19세기의 신학사조 및 철학사조를 지배해 온 것은 헤겔이었으며, “헤겔주의”가 19세기 사조의 분수령을 이루었다. 따라서 19세기의 사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헤겔과 슐라이에르마허의 인간이해를 파악해야하며 그것이 자유주의 신학의 인간이해를 파악하는 것이다.
 
헤겔과 슐라이에르마허의 인간이해 : 헤겔과 슐라이에르마허의 사고의 틀은 “화해의 원리”에 입각하여 있다. 이 원리는 하나님과 인간, 하나님과 세계, 유한과 무한, 신앙과 이성의 이원론, 철학적 개념으로써 종합적으로 표현한다면 주체와 객체의 이원론적 분리와 대립을 극복하고 양자를 화해시키고자 함에 있다. 칸트에 의하면 하나님의 존재는 인간의 인식 영역 밖에 있는 것으로 단지 신앙의 대상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역과 인간의 영역, 이성과 신앙은 서로 분리되며 하나의 신학적 이원론을 형성하게 된다.
 
이러한 이원론을 극복하여, 하나님을 인간과 그의 세계 안에서, 인간과 그의 세계를 하나님 안에서 인식하며, 유한을 무한 안에서, 무한을 유한 속에서 인식함으로써 양자의 이원론적 분리와 대립을 극복하고, “하나님 없는 세게”와 “세게 없는 하나님”의 상태를 상호 화해 시키려 하는 것이 19세기 사조 일반의 공통적인 관심사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하여 이 세계 안에 있는 모든 것 안에서 하나님을 인식하고, 모든 것 안에서 그에게 영광을 돌리는 것이 그들이 가진 화해의 원리의 목적이었다.
 
헤겔의 인간이해 : 헤겔의 철학체계 전체를 지배하고 있는 화해의 원리를 구체적으로 적용하고 실현시켜 나가는 변증법적 방법은 하나님과 세계, 하나님과 인간, 보편자와 특수자, 주체와 객체를 화해시키는 원리를 형성한다. 헤겔에게서 인간의 중심은 정신이며, 이 정신은 신적 정신으로서 하나님의 정신의 실현체이다. 즉 하나님의 정신이 그 자신을 사유함으로써 자기 자신을 규정하며, 자기를 자기 자신에 대한 대상으로 정립시키는데, 이 대상이 인간의 의식 내지 사유이다. 따라서 인간의 사유는 하나님의 정신이 그 속에 현존하는 하나님의 현실, 하나님의 존제양식이다. 사유는 보편자의 활동성이며, 보편자 일반을 의미한다. 정신과 사유는 부정의 방법으로 발전하는데, 대상 속에서 자기 자신에 대하여 의식함으로써 정신과 그의 대상은 괴리되며, 이 괴리를 통하여 정신은 이 대상의 특수성과 제한성을 의식하게 된다. 그러나 참된 자기 자신, 즉 “자기를 정신으로 아는 정신”에 이르기까지 대상의 특수성과 제한성을 언제나 다시금 부정하고 이 대상을 고양시켜 나간다. 그러므로 인간의 사유는 이미 주어진 것, 유한한 것을 넘어서서 무한한 것에로의 나아감을 의미한다.
 
따라서 헤겔에게 있어서 인간은 그의 주어진 현실 속에 안일하게 안주하여 있지 않고 언제나 새로운 현실과 미래를 개척하고 창조하여 나가는 인간을 말한다. 즉 인간은 이러한 변증법적 운동이고, 이 변증법적 운동으로서의 사유가 하나님의 존재양식이다. 하나님과 인간, 하나님과 세계는 이러한 사유의 변증법적 사유를 통하여 서로 화해되어 있다. 즉 인간의 본질인 사유는 변증법적 운동 내지 활동으로서의 하나님의 존재양식을 의미하며, 하나님은 이 사유 안에 이 사유의 변증법적 운동으로서 현존한다.
 
슐라이에르마허의 인간이해 : 하나님과 인간, 무한과 유한의 화해를 헤겔은 사유에서 찾았다면, 슐라이에르마허는 인간의 경건한 의식, 절대의존의 감정에서 찾았다. 그는 하나님의 현실을 이 세계의 구체적인 현실에서 인식하려는 문제의 해결을 인간의 종교적 절대의존의 감정에서 찾고자 하였다. 그에 의하면 종교의 본질은 직관과 감정에 있다. “모든 개체적인 것을 전체의 한 부분으로서, 모든 제한된 것을 무한한 것의 표현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우주적 직관을 통하여 인간은 종교적 감정을 얻게 된다. 이 감정은 “지식도 행동도 아니요, 오히려 감정이나 혹은 직접적 자기의식의 특수성”인 종교적 경건성을 의미한다. 그것은 곧, 인간은 그 속에 그가 속한 우주, 곧 신의 존재에 절대적으로 의존하여 있다는 절대의존의 감정을 의미한다.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는 인간의 직관으로부터 시작되는 절대의존의 감정을 의미한다. 인간의 자기의식이 “가장 높은 본질의 의식”과 결합된 것이 종교적인 감정의 상태인 경건성을 의미하며, 이 경건성의 감정의 상태를 “하나님과 인간의 사귐”이라고 그는 정의한다. 여기서 하나님은 인간의 경건한 절대의존의 감정 속에 이미 주어져 있으며, “이 감정 속에 있는 공동결정자”를 의미한다. 하나님의 의식은 인간의 자기의식 속에 있으며, 인간의 자기의식은 하나님 의식의 현실화이다. 절대의존의 감정은 인간의 자기의식의 보편적 구성요소이므로, 인간은 자기의식 속에 하나님이 주어져 있다는 것을 의식할 수 있다. 헤겔에 있어서 사유가 하나님의 존재양식이라면, 슐라이에르마허에 있어서는 인간의 절대의존의 감정이 하나님의 존재 현실을 의미한다고 말할 수 있다.
 
자유주의신학의 인간이해에 있는 문제성 : 19세기의 자유주의 신학의 인간이해는 데카르트 이후 스피노자, 라이프니츠를 중심한 근대 합리주의와 독일 관념주의의 인간이해에서도 나타난다. 칼 바르트가 “동일성의 철학자”라고 말한 헤겔과 슐라이에르마허에게서 하나님의 존재가 인간의 사고 혹은 감정 안에 주어져 있다는 사실은, 자유주의 신학의 인간이해에 내재하고 있는 전반적인 문제성이라고 할 수 있다.
 
① 성서적 사고에 의하면 하나님은 창조자요 인간은 하나님의 피조물이며, 하나님은 거룩한 분이요 인간은 그 거룩한 분 앞에 설 수 없는 죄인이다. 하나님은 인간에 대하여 절대적 타자이며, 인간의 힘으로 도달될 수 없는 초월자이다. 성육신의 사건도 하나님의 인간화나 인간의 하나님화를 의미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이 되신 하나님, 곧 아들 안에 계신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하나님으로 머물러 계신다. 그러나 헤겔과 슐라이에르마허에게서 인간과 하나님은 본질적으로 구분되고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동일한 본질을 가지고 있으며 하나의 전체성에 속한다.
 
② 하나님은 인간에 대하여 하나의 인격적인 대상이고, 하나님은 말씀하시는 분이요 인간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해야 할 존재이다. 그러나 자유주의 신학적 인간이해에 의하면 하나님의 대상성 내지 객체성은 사라지고 인간의 주체성만이 남을 위험성이 있으므로, 인간은 단순히 인간이 아니라 그 본질에 있어서 신적 존재 내지 신적 본질을 그 속에 가진 자로서 신의 자리를 대신하고 신격화 될 위험성이 있다.
 
③ 만일 인간의 정신이 신적인 절대정신의 존재양식이라든지, 혹은 인간의 자기 의식은 더 완전한 하나님의 의식으로 형성되어 가는 과정에 있는 것이라면, 인간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중보자 없이도 하나님을 어느 정도 직접 알 수 있다. 브루너도 하나님의 형상이 내용적으로는 완전히 파괴되었으나 형식적으로는 파괴되지 않고 남아 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는 자연인도 형식적으로 남아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통하여 하나님을 어느 정도 알 수 있다고 하고, 틸리히도 하나님의 존재는 인간의 존재 근거 헉은 인간의 존재의 깊이를 의미한다고 하였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의 절대적 필요성은 부인될 수 있고, 인간의 자기 자신과의 만남은 하나님과의 만남일 수 있고, 인간의 자기인식은 하나님 인식일 수 있다.
 
그러나 성서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존재론적인 본질의 연관성을 말하지 않으며, 형식적인 하나님의 형상이나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상관관계를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하나님에 대한 참된 앎과 구원은 인간과 하나님의 어떤 존재론적인 상관관계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만이 가능하다는 것이 성서적인 사고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존재와 인간의 존재, 계시와 이성, 나아가서 기독교와 일반종교 혹은 문화 사이에 존재론적 연관성 내지 상관관계를 인정함으로써, 기독교의 본질을 상실할 수 있는 모든 시도에 대하여 기독교의 참된 중심점과 규범이 어디에 있는가를 상기해야 한다.
 
  키에르케고르(1813-1855)는 바르트의 신정통주의에 강한 영향을 주었으며(변증신학의 영적 창시자), 합리주의의 객관성에 반대하여 실존적 주관성을 강조했다(기독교 실존주의의 아버지). 그의 저작은 칸트주의자들의 도덕적 관념론이든 헤겔주의자들의 절대적 관념론이든 막론하고, 모든 형태의 합리적 신학에 대한 끊임없는 공격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는 또한 개인적이며 실존적인 인격적 헌신을 통한 그리스도의 경험을 주장하기 때문에 지식의 객관적인 측면을 무시하였다. 즉 신앙의 실존적 영역과 실존적 선택을 위한 이성의 부재나 불확실성을 강조하였다. 신학에 있어서 그는 신정통주의의 아버지로 간주될 수 있다. 그와 신정통주의자들은 기독교룰 스스로 만족하고 있는 부르조아 문화로부터 분리시키고, 사람들로 하여금 초월적이고 불가지한 신과 유한하고 죄악된 인간 사이의 무한한 질적 차이에 주목했다. 그들은 신의 내재성과 계시의 직접성을 강조하는 자유주의로부터 돌아서서 신앙의 위기와 믿음의 역설성과 부조리성을 강조했다. 그들은 신앙은 “객관적 불확실성”이라는 것, 기독교에 대한 역사적, 자연적 “증명”은 없다는 것을 주장했다. 그들은 역사적 예수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고, 역사적 예수 연구를 용어적으로도 모순인 “객관적 계시”에 대한 무익하고 불신앙적인 탐구로 간주했다. 그들에게는 성령의 은혜로운 선물로써 각 신자들에게 임하는 계시를 벗어나서는 기독교에 관한 합리적인 변증은 없었다. 유한하고 죄 속에 있는 인간은 자신의 곤경을 타개할 자격이 조금도 없었다. 구원은 오직 전적 타자인 신으로부터만 올 수 있기 때문이다.
 
자유주의 신학 : 슐라이에르마허, 리츨
 
리츨 학파의 특징 -- 신학에서 형이상학을 배제, 사변적 유신론을 거부, 교회의 교의를 신학과 형이상학의 불합리한 혼합으로 여겨 정죄함, 종교적 신비주의를 형이상학적인 경건의 형태로 여겨 반대함, 종교의 실천적 관념을 중시함, 종교적 지식과 이론적 지식을 구분함, 자연 계시의 반대로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역사적 계시를 강조함, 고독교 교의학의 합법적 원리로서 천국이라는 개념을 사용함, 신학적 탐구를 종교 의식의 내용으로 제한하는 경향이 있음. -- 형이상학에 관한 회의론, 교회 교리와 자연 신학의 거부, 역사적 예수와 그의 도덕적 가르침에의 집중, 그리고 영적으로 자유한 사람들의 친교로서의 천국의 개념을 강조 -- 개신교 자유주의 신학의 완전한 표상.
 
개신교 자유주의 신학은 19세기 말의 문화적 환경을 상당히 반영하였다(문화적 개신교주의). 당시 전통적 형이상학은 비난을 받고 있었으며, 성경과 교회 교리는 엄격한 역사적 재검사를 받고 있었다. 기독교를 가장 단순한 형식으로 환원시키려는 관심이 일어났는데, 대부분의 자유주의 신학자들에게 있어서 그것은 예수의 윤리적 메시지의 부활을 의미하였다. 종교적 권위는 성경 정경이나 교회 교리보다는 예수를 통한 개인적 칭의와 화해의경험에 두어졌다. 구원은 도덕적, 사회적, 그리고 진보적 관점에서 해석되었다. 진정한 신학은 문화적 상황과 기독교 메시지 사이의 “상관의 신학”이라고 한 틸리히의 말이 옳다면, 리츨의 자유주의는 그 시대를 위한 아주 완전한 신학이었을 것이다. 그것은 기독교 메시지를 형이상학적 불가지론, 역사주의, 그리고 제1차 대전 이전 시대의 도덕적 낙관론에 맞추었다. 그러나 자유주의자들이 문화적 상황을 충족시키려는 관심 속에서, 기독교 메시지를 왜곡시키면서 그들의 “해답들”을 이끌어낸 오류는 존재한다.
 
인간의 종교적 경험에 의해서 하나님 지식에 접근을 시도. 인간 본성에 낙관적 견해(성선설 입장)를 가짐으로써 인간의 죄성이 약화됨. 과학적 방법을 받아들여서 현대 문명에 적응하려 했지만 신앙의 혼란과 신앙의 화석화를 조장함. 하나님의 초월성과 내재성을 결합하려고 했으나 결과적으로 초월성을 소홀히 하게 됨 -> 바르트가 이에 반발하여 하나님의 초월성을 강조함.
 
 
20세기 후반의 신학의 동향
  
## 20세기 후반에 신학계는 큰 변혁을 경험하였다. 그 것은 새롭게 형성되는 세속문화와 기술과 과학의 급성장에 따르는 신학적 유산의 정리요 새로운 해석․적용․강조점들의 발견이라고 할 수 있다. 1960년대 신학적 특징은 “이 세상성”에 대한 강조일 수 있다. 신학적 관심이 하늘로부터 땅으로, 저세상에서 이세상으로, 개인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전인류와 역사, 사회로 옯겨진 것이다. 신학적 사고는 실존적 언어가 아니고 역사적, 정치적이고 수직선적이 아니라 지평선적이고 현대적이 아니라 미래적이다. 더우기 그리스도교의 본질적인 생명을 단순히 설교와 말에서 보려고 하지 않고 그리스도인들의 날마다의 삶 속에서 그 확증을 보려고 한다. 그리스도교의 선교는 단순히 말씀의 전파만이 아니라 인간의 인간화와 해방을 위해서 행동으로 참여하는 증거의 삶을 포함하려고 한다. 경제적 영역, 정치적 영역, 산업화에 따르는 모든 생태학적 인간 소외와 양심의 영역 등 모든 삶의 영역을 그리스도교의 선교의 장으로 삼으려 한다. 1960년대 이후의 신학은 이러한 공통성 위에서 해석학적 신학, 세속화 신학, 신 죽음의 신학, 희망의 신학, 역사의 신학, 정치 신학, 해방의 신학 등으로 움직여 나간다.
 
# 해석학적 신학 : 이는 불트만의 신약성서에 대한 ‘비신화화’로부터 영향을 받았지만, 가다머나 리꾀르와 같은 철학자들에 의해 당시의 상황에 대한 분명한 인식이 주어졌다. 특히 가다머는 삶의 자리에서 다양한 이해지평과 해석지평이 지평융합되었다는 사실을 밝혀내고 있다. 그래서 이 해석학은 성서에 대한 정치, 경제, 사회적 해석을 가능하게 하고 기존의 서구 정통신학이 전해준 교리서로서의 성서가 아닌 해방과 혁명의 책으로서 오늘 우리들에게 들려주는 하나님의 음성으로 직접 다가오도록 만들었다.
 
# 세속화 신학 : ‘세속화’라는 말은 ‘세속주의’와는 구별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세속화 신학은 교회가 세상 일에 대해 무관심하지 않고, 하나님의 선교 영역을 세상 속에서 하나님 나라를 성취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을 따라 세상을 변혁해 가는 원동력으로서의 신학이다. 이는 ‘비종교화론’을 제창한 본훼퍼에 의해서 강력히 제창되었는데 그는 ‘성육신’ 사건 속에서 이루신 하나님의 사역을 그리스도인들이 세상 가운데서 일할 것을 말한다. 이러한 세속화신학은 고가르텐과하비 콕스에 의해서 더욱 신학화 되었다. 이러한 세속화 신학은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 신학을 창출하였다.
 
# 신 죽음의 신학 : 이는 본훼퍼의 영향을 받아서 1960년대 초에 미국과 유럽에서 일어나 세계적 관심 속에서 찬반의 열띤 논쟁을 일으켰다. 신죽음의 신학자들은 한결같이 초월적 하나님의 개념, 따라서 초월적 인격이신 하나님에 대한 신학의 유신론적 논의가 무의미하게 된 무신론의 시대에 초월적인 방식으로 하나님의 개념의 죽음을 묘사하고 그리스도교를 유신론적이나 존재론적으로 해명하려 하지 않고 철저하게 그리스도론적으로 해명하려 하였다. 인간을 위해 낮아지고 고난받는 하나님, 비종교적 하나님.
 
# 희망의 신학 : 이는 신죽음의 논의가 계속되는 동안에 일어난 새로운 신학이며 신학의 관심과 언어를 미래와 희망에로 돌렸다. 희망의 신학에 있어서는 역사의 미래와 희망의 근거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에 그리고 부활한 자의 오심에 있다. 그리스도교의 신앙, 십자가와 부활에 대한 희망은 단순한 꿈이 아니고 이 땅의 혁신을 위한 하나님 자신의 투쟁으로 이해되었다. 이 희망 속에서 사는 그리스도인에게는 이 희망 때문에 이 땅에서 혁신을 위한 자기희생의 책임적인 삶이 주어지고 있는 것이다.
 
# 정치 신학 : 1970년대의 신학의 기류는 정치신학이라고 표현될 수 있다. 이는 몰트만과 카톨릭 신학자 J.Metz 등에 의해서 강조되었다. 정치신학은 그리스도교 신학의 정치 의식을 각성시키려 한다. 그것은 신앙 자체가 메시아적 관련을 가지고 있으며 신학 자체가 정치작 차원 속에 있다는 것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이다. 정치신학을 십자가에 죽은 그리스도의 부활과 그의 다시 오심의 희망의 근거 위에서 이 세상 현실에서 가난한 자, 눌린자 그리고 인류의 고통 속에 들어가 그들의 고통을 덜어주고 삶의 조건을 개선하고 하나님의 정의로운 나라를 선포해야 하는 그리스도교의 책임성을 강조하려 한다. 정치신학은 복음의 정치적 해석을 지향한다.
 
# 해방의 신학 : 해방의 신학은 1970년대의 정치신학의 한 양태의 발전이며, 지역적 문화적 상황에 따라 다양하다(흑인 해방신학, 남미의 해방신학, 아프리카 해방신학, 아시아 해방신학 등). 해방의 신학이 강조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일어난 것은 단순한 영의 해방만이 아니라 죄와 양심의 고통, 죽음의 저주로부터 해방만이 아니라 경제적, 정치적, 문화적 비인간화로부터 인간의 해방을 위해서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인간의 영적 해방과 인간적 해방을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의 죽음을 당하게 만든 것이다. 기독교 인간 해방운동은 교회로서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 선교에 대한 고난받는 그리고 구체적인 참여를 의미하는 것이다.
 
  신정통주의 신학 :
 
1920년 이래 신정통주의, 하나님 말씀의 신학의 광범한 호소력과 커다란 영향력은 주고 그것이 모든 다른 신앙들과 세속 이데올로기들을 초월하는 기독교의 독특한 진리 주장들의 재발견과 재확인을 나타내는 사실에 기인한다. 그것은 시대정신에 순응하기 위해 기독교의 메시지를 희석시키고 왜곡하고 조작해버린 데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는 단순한 이유만으로 모든 철학과 과학과 문화들과의 제휴를 파괴할 것을 요청했다. 신정통주의는 본질적으로 신학을 위기 속에 있는 문화와의 결탁의 파기를 추구하는 “교정”신학으로 조명되어야 한다. 그 파긴ㄴ 신의은혜의주권과 성경 권위의 유일성을 인간들의 사역들과 전통들과의 불연속선상에 두는 ‘오직 은혜’와 ‘오직 성서’와 같은 믿음의 재확임 속에 반영되고 있다.
 
신정통주의는 자연과 인간 역사 속의 신의 내재성에 관한 자유주의적 강조를 신의 초월성으로 대체한다. 바울과 어거스틴을 따르는 이 신학자들은 자유주의자들처럼 인간적 노력에 의해 개선될 수 있는 자연적 충동들과 인간적 무지 속에서가 아니라 인간의 자유의 타락 속에서 죄의 소재지를 발견했다. 인간은 단지 신앙 안에서만 역사의 의미를 분별할 수 있고, 그 의미는 역사 자체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역사를 초월하는 계시 속에 있다. 역사는 일시적인 것과 영원한 것 사이의 투쟁의 드라마가 벌어지고, 인간이 영원히 현존하는 신앙의 종말론적 “위기”에 직면하는 무대이다.
 
이처럼 고전적 기독교에로의 복귀의 성격에서 신정통주의라고 불린다. 그러나 신정통주의는 단지 고전적 개신교 정통주의의 재현은 아니다. 신정통주의는, 신학은 모든 형이상학을 포기해야 한다는 리츨학파의 교리를 수용했다. 자연신학에 대한 칸트의 비판을 수용한 신정통주의는, 기독교 신학은 역사적 계시에의 추구에서부터 시작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성경 속에서 증거된 역사적 계시는 정통주의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무오한 것은 아니다. 신정통주의는 과학적 진리와 종교적 진리를 날카롭게 구분하기 때문에, 성경 기사들은 문자적이고 과학적 사실이 아니라 상징적, 신화적, 비유적 진리를 포함하는 사건들로 묘사한다.
 
신정통주의는 고전적 개혁 기독교와 19세기 자유주의 간의 창조적 종합으로 이해하는 것이 좋다. 그러나 이렇게 상이한 두 전통의 연합은 창조적이면서도 동시에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그 문제점은 신정통주의의 근본 목적, 즉 기독교와 인간의 세속적 경험 및 판단규범과의 불연속성에 집중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것은 신학과 철학의 관계 및 계시적 역사와 세속사와의 관계를 포함한다. / 급진적 신적 현실주의라고 불리는 바르티안들은 인간의 신지식에 있어서, 인간은 신적 계시의 수동적 수용자로 머문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현실주의ㅇ에 의해 야기된 문제는, 계시는 항상 유한한 인간적 수단에 의해 인간에게 전달된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에 근본적으로 계시에 대한 피동적 견해가 가능한지 여부를 묻는다. 계시가 지식의 한 양식이라면, 그 계시에 대한 차별적인 판단을 해야하고, 그 판단과정에는 이성이 포함되고, 그럼으로써 어떤 일반적인 철학적 전제가 있어야 하므로, 인간 과학으로서의 신학과 철학 사이의 관계는 반드시 있어야 하며, 신정통주의가 인정한 것 이상으로 복잡하지 않은가? / 신정통주의자들은 “역사 속에서 활동하는 신”에 관해 말하지만, 그들이 의미하는 역사는 과학적 역사가에게 감추어져 있는 신성한 역사이다. 계시적 역사는 역사 편찬의 범주 내에 포함될 수 없는 초월적 영역을 함축하기 때문에 초역사적이다. 이 두 역사는 통상적인 경험의 역사(통상적인 관찰에 개방되어 있는 것)와 구속사(오직 신앙에 의해 파악되는 것)로 구성된다. 그러나 이 두 역사 사이의 관계는 무엇이고, 전자가 후자에 얼마나 필수적인 것인지는 전혀 명확하지 않다. 계시사는 전적으로 하늘에서나 땅 위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고, 둘 사이에 있는 어떤 신비한 중간 영역에서 나타나기 때문이다.
 
 
칼 바르트(1886-1968)는 자유주의 신학에 반대하여 하나님의 초월성을 강조하였으나, 후기(1950년대 이후)에는 하나님의 인간성을 강조하여 초월성과 내재성을 구별하여 동시에 강조하였다. 그는 성서 교의학을 제창하면서 예수 그리스도 중신의 신학, 교회론,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서의 인간성을 강조하였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의 신학은, 하느님과 그의 계시보다는 인간과 그의 종교적 경험을 기독교 사상의 출발점으로하는 종교적 인간학과, 인간의 타고난 선성과 완전 가능성에 대하여 무비판적으로 낙관하면서 세계의 보다 나은 미래를 건설할 수 있는 인간의 능력을 신뢰하는 자유주의가 지배적이었다. 바르트는 하르낙으로부터 하느님에 대한 최고의 교사요 하느님의 계시자이긴 하나 한 사람의 인간인 예수를 중심으로하는 기독교 이해를, 헤르만으로부터 기독교 신앙과 도덕은 예수의 인격과 개인의 인격적인 관계에서 나온다는 것을, 궁켈과 슐레터로부터 역사적 성서비평(양식사학)을 배웠다. 그러나 바르트는 당시에 일어났던 세계적 사건들의 영향과 성서연구로 자유주의 신학을 거부하였다. 이는 그 당시의 공식적인 기독교에 대한 항의였다. 자유주의 신학은 일어나고 있는 사건들이 점점 더 명백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을, 인간에게는 어두운 측면이 있다는 것을, 죄가 인간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현실적으로 파악할 능력이 없는 것으로 바르트에게는 보였다. 또한 그는 성서가 하느님과 그의 초월성과 주권적 자유,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심판, 이 심판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이 인간을 너그럽게 용서하심에 대하여 말하고 있음을 발견하였다. 따라서 그의 사고는 자유주의 신학의 인간 중심주의로부터 철저한 신중심주의로 옮아갔다.
 
‘a theology of crisis’은 당시에 성서의 중심적인 메시지를 서술하기 위하여 사용한 방법을 말해준다. “a sinner through and through”인 인간은 하느님에 대한 올바른 사고도 할 수 없으며, 하느님과 관계를 가질 “point of contact”을 전혀 가지지 못한다. 하느님은 “totally other”이며 “absolutely Transcendent”이다. 따라서 하느님과 인간 사이에는 “an infinite qualitative distinction”가 있고, 다만 인간은 “man's position vis-à-vis God”에 있다. 하느님이 JX, 그의 말씀 안에서 자신을 계시하고, 인간에게 하느님의 메시지가 말해지고 들리어지는 때에, 인간의 삶에 ‘a crisis situation’이 초래한다. 인간은 자신이 존재의 기초 전체가 위협받는 선택에 직면해 있음을 발견한다.
 
‘a dialectical theology’은 하느님의 말씀을 하느님이 인간에게 ‘a divine no’와 ‘a divine yes’를 말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계시를 서로 상반된 것의 집합으로 해석한다. 하느님은 인간의 죄됨에 대하여, 인간이 자신의 분수를 넘는 주장에 대하여 언제나 “부정”하고, (therefore가 아니라) “nevertheless” 인간을 죄에서 구출하려 받아들임으로 “긍정”을 말한다. 이러한 긍정과 부정은 십자가에서 만나고, 이 십자가에는 거룩하신 하느님과 죄된 인간의 모든 대조점들이 존재한다. 여기에서 하느님과 인간의 존재에 대하여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인 신앙인은 JX를 하느님의 성육신으로, 스스로를 계시한 하느님의 계시로 이해한다.
 
‘a theology of the Word’은 “하느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에게 말씀하셨다”는 것을 전제로하고, 오로지 ‘faith-Knowledge’만으로 시작된다. 하느님의 계시는 그가 인간의 역사에 개입한 사건으로 시작되며, 역사 안에서 구체적인 사건으로서 하느님의 말씀을 드러낸 JX 자체가 바로 계시이다. 이 하느님의 자기계시가 신앙과 순종 가운데 응답을 받게 되는 때에, 이런 사람에게 하느님의 행동은 스스로를 계시하는 것이다. 자신을 스스로 나타내는 하느님은 계시의 대상이 아니라 주체이며, “하느님의 인간성” 즉 인간을 향하시는 하느님, JX 안에서 인간과 함께 계시는 하느님이다. 따라서 JX는 하느님의 말씀이며 계시이다. 하느님의 말씀은 JX를 통하여 하느님이 인간과 관계를 맺게 되는 일련의 행동들이다. 하느님의 계시인 JX를 통하여 인간은 죄인에서 은총으로 구원받은 존재가 됨을 보여준다. 즉 JX는 하느님이 누구인지를 계시하면서 동시에 인간이 어떤 존재가 되어야 하는지를 결정한다.
 
1934년 히틀러의 교회정책에 반대한 바르멘 선언 : ① 성서에 증언되어 있는 JX만이 하느님의 말씀이다. 우리는 이것을 들어야 하고 살아있을 때나 죽을 때나 이것을 신뢰해야 하며 이것에 복종해야 한다. 하느님의 이 말씀 외에 다른 사건들이나 세력들이나 진리들이 하나님의 계시이며 교회의 선포의 원천이 될 수 있다는 잘못된 생각을 우리는 배격한다. ② JX께서 우리의 모든 죄의 용서를 선언하는 것처럼, 이제 그는 우리의 삶의 전체를 요구한다. JX에게 속하지 않고 다른 주에게 속해야 할 삶의 영역, JX를 통한 칭의와 성화를 필요로 하지않는 삶의 영역이 있다는 잘못된 생각을 우리는 배격한다. ③교회는 오직 JX의 소유이며, 오직 그의 위로와 가르침을 받으면서 그의 나타남을 기다리면서 산다. 교회는 그의 메시지와 질서의 형태를 자기 뜻에따라 결정하거나 이 시대를 지배하는 세계관적,정치적 확신의 변천에 내어맡겨도 좋다는 잘못된 생각을 우리는 배격한다. ④ 교회의 직분은 지배체제가 아니라 공동체 전체에게 맡겨진 사명을 완수하는 데에 있다. 이 사명을 떠나서 교회가 지배권을 부여받은 영도자를 가질 수 있다는 잘못된 생각을 우리는 배격한다. ⑤ 성서에 의하면 국가의 사명은 통치권력을 행사함으로써 법과 평화를 세우는 데에 있다. 교회는 하느님의 이 제도에 감사드리고 하느님 나라, 하느님의 계명과 정의를 상기시키며 통치자와 피통치자의 책임을 상기시킨다. 국가가 그의 특수한 사명을 넘어서서 인간의 삶을 유일하고 전체적 질서가 될 수 있고 교회의 규정을 성취할 수 있다는 잘못된 생각을 우리는 배격한다. 그 반면 교회가 국가의 과제와 가치를 소유하고 국가의 한 기관이 될 수 있다는 잘못된 생각을 우리는 배격한다. ⑥ 교회의 사명은 설교와 성례전을 통하여 하느님의 은혜에 대한 메시지를 모든 민족에게 전하는 데에 있다. 교회가 주님의 말씀과 하신 일을 어떤 다른 목적이나 계획과 결합시킬 수 있다는 잘못된 생각을 우리는 배격한다.
   
에밀 부르너는 변증론을 사용하여 ‘선교의 신학’을 전개하고, 선교신학의 필요성을 주장하였다. 바르트와 브루너의 공통적 관심은 “sola fidei,sola gratia,sola scriptura,solus Christus"라고 할 수 있다.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만이 이 세계의 구원자시며, 오직 신앙을 통하여만이 하나님의 의롭다 하심을 얻을 수 있고, 인간의 구원은 하나님의 주권적이고 자유롭게 선택하시는 은혜에 있을 뿐이다. 따라서 인간의 구원은 하나님의 자유로운 자비로부터 오는 것이며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있고, 십자가의 말씀을 깨닫도록하는 성령의 사역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또한 교회가 외치는 모든 선포에 있어서 오직 성서만이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규범이다. 교회는 그의 근거와 의인과 법과 가능성을 “오직 계시의 사건 안에” 가지고 있으므로 모든 제약을 초월하여 자유롭다. 교회의 사신은 계시와 이성, 혹은 하나님의 말씀과 역사라는 두 가지 규범과 근원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계시와 말씀만을 그의 근원으로 가지고 있다.
 
  라인홀드 니이버(1892-)는 인간의 집단의 악에 대항하여 정의를 도덕적 이상으로 주장하고, 인간은 하나님의 은혜를 믿는 신앙으로써 의로워지고 소망과 힘을 갖게 되다고 하였다. 자유주의에는 인간의 본래적 선성과 인간의 선성의 무한한 가능성에 대한 지나친 낙관주의가 자리 잡고 있었다. 인간이 되어야 할 모습(당위적 존재)이 되기 위하여 해야 할 필요 있는 행동은 세계의 진보를 위해 자신을 남김없이 헌신하는 일뿐이었다. 하느님의 은총의 도움을 위한 여지는 거의 없는 것으로 여겨졌다. 따라서 ‘the doctrine of man's sinfulness’는 별 관심을 끌지 못했다. / 그러나 1차 세계 대전은 인간 속에 언제나 현존하고 있는 악의 잠재력을 드러내고, 인간에게 하느님의 필요성을 보여주었다. 니버의 사상은 이러한 신정통주의를 전제로 하고 있다.
 
니버의 사상은 “Christian Realism”이라고 불리는데, ‘기독교적’이라 함은 기독교의 자원 안에서만 개인과 사회의 양 본성을 지닌 인간의 완전한 차원을 탐구하고 설명하는 데 필요한 통찰들을 발견할 수 있다는 확신을 말하고, ‘현실주의’라 함은 오늘날의 인간과 사회의 문제들의 모든 복잡다단한 면을 세밀하게 탐구하려고 하는 자세를 말한다. / 그에게서 인간은 애매성과 더불어 살고 있으며, 이 애매성을 지닌 문제를 다루기 위한 기술은 변증법적 사고(긍정과 그에 대응하는 부정)와 역설적 진술(한 진리와 다른 진리의 균형), 그리고 잠정적인 대답(현재를 위한 결정들과 더불어 사는 법)이었다. / 그의 과제는 인간을 개인과 사회의 차원에서 온전하게 인식하고 그런 후 기독교 신앙이 인간의 세계내적 삶에 던져주는 빛을 찾는 데 있었다.
 
니버의 기독교 현실주의의 기원 : 예일신학교의 자유주의적 풍토에서 교육 받음 - 디트로이트의 한 교구에서 미국 산업주의의 성장을 13년 동안 관찰 - 낙관주의의 상실, 도덕적 이상주의의 설교에 대한 회의, 인간 본성의 현실적인 모습에 대한 직접적 지식(경험적 지식)을 획득, 자기의 이익을 보호하고 발전시키는 인간의 주요 수단은 ‘the will to power’임을 인식 - 1928년부터 유니온 신학교에서 강의, 인간과 인간사회의 병폐들을 냉소적으로 폭로, 인간 자체와 사회와의 관계 속의 인간에 대한 연구
 
사회 속의 인간 (Moral Man and Immoral Society) : 인간(개인)은 신앙을 통하여 한 기독교인으로서 사랑이 그의 삶에 있어 주된 요인이 되어야 함을 깨닫는 것이 가능하고, 개인적인 관계에서 사랑을 표현할 수도 있으므로, 개인은 도덕적일 수 있다. / 그러나 대 사회(intersocietal) 관계에 있어서는 최고의 도덕적인 가치인 사랑이 그 기본적인 운영(operation)의 법이 될 수 없다는 의미에서 사회는 비도덕적일 수밖에 없다. / 개인의 경우 교만과 다른 사람들을 지배하려는 권력의지는 제어될 수 있지만, 사회의 경우는 누적적(cumulative)인 교만이 있어 통제하기가 어렵고 “이성이나 양심의 지배 아래” 들기가 훨씬 어렵다. / 그러므로 사회개혁이나 집단간의 분쟁을 해결하기에는 사랑의 윤리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한 권력에 대한 다른 권력의 도전을 균형있게 하는 정의가 다양한 집단으로 이루어진 사회의 규범이 될 수밖에 없다. / 미래의 목표는 “강제가 없고 완전한 정의와 평화가 이룩될 이상적인 사회의 건설이 아니라, 충분한 정의가 존재하고 공동의 과제가 완전한 파산에 이르는 것을 막을 만큼 강제가 비폭력적인 방식이 될 사회의 건설이다.” / 현명한 사람은 삶에서 사랑의 윤리를 실천하고, 그 정신을 집단에 실현되게 하려고 노력하며, 갈등하는 집단들에게는 정의의 근사적 실현을 위한 합리적 타협의 길을 모색하는 사람이다. 또한 사회 속의 삶의 상황들을 “불가능한 가능성들”의 연속으로 보려고 하고, 사랑을 실천하는 것은 사회에서 사랑을 실현할 수 있는 가능성이 어떻게든 존재한다는 신뢰감을 전제로 한다. / 인간은 그가 살고 있는 사회의 종이면서 동시에 역설적으로 그 주인이다.
 
인간의 본성 (The Nature and Destiny of Man) : 기독교의 인간관은 “하느님의 형상”의 교리 속에서 인간의 정신적 성장면에서의 자기 초월의 높이를 강조하고, 또한 인간의 약함과 의존성과 유한성, 그리고 인간이 자연적인 세계의 필연과 우연에 영향을 받음을 주장한다(하느님의 형상과 피조성의 통일체로서의 인간, 자연과 정신의 합성물로서의 인간, 인간 실존의 애매성, 제약과 자유, 자연 속에 있으면서 자연을 초월하는 인간). / 인간 속의 악은 인간이 자신의 의존성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자신의 유한성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불안전성(insecurity)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필연적이지는 않으나 불가피한 자세의 결과이다. / 이런 애매성(ambiguity)을 해결하고, 불안을 진정시키고, 인간이 추구하는 안전을 제공해 주는 것은 자유이다. 이 자유의 능력은 바른 선택과 그른 선택을 포괄한다. / 바른 선택은 인간이 그의 피조성과 하느님에 대한 의존성을 받아들이는 것으로서, “그 이상적인 가능성은 하느님의 사랑의 궁극적인 안전을 신뢰하는 것이 자연과 역사의 모든 직접적인 불안전성을 극복케 해 주리라는 것이다.” / 그러나 인간은 자신의 피조성을 부인하여 자신의 신이 되고, 자신의 자유를 과대 평가하여 자신의 자유가 무한정한 것으로 자처하는 것이 죄이다. 인간이 자신의 유한성을 초월하려는 시도로써 교만의 죄를 저지른다. ①권력의 교만은 다른 사람이나 사물을 지배하는 권력을 추구함으로써 불안감을 극복하려는 것이다. ②지적인 교만은 실재(현실)의 의미에 대한 자신의 설명이 최종적인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상가의 죄로서 권력의 교만을 지지하기 위하여 사용되기도 한다. ③자기義의 교만은 자신의 도덕적인 가치를 객관적인 것으로 만들려는 유한한 피조물의 오만(pretentiousness)이다. 이러한 교만은 상대적인 자유를 절대적인 자유로 바꿈으로써, 자유의 짐을 거부함으로써 불안정감이나 불안전의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따라서 이러한 교만, 죄 속에는 과도한 자기애와 동시에 자기로부터 도피하려는 노력이 결합되어 있다.
 
인간과 역사의 의미인 그리스도 : 니버의 인간관의 강조점은 인간의 선의 가능성보다 죄의 잠재력에 두고 있다. 그러나 그의 그리스도론은 그의 사고의 균형을 회복시켜 주고 기독교적 희망의 낙관성을 부여해 준다. / 신앙이 중심적으로 이해하는 역사적 사실, 인간의 죄성과 역사의 애매성에 빛을 던져주기 위하여 신앙이 이용하는 역사적 사실은 그리스도, 특히 그의 십자가의 사실이다. 그 사실에는 구속적 은총과 절망의 교훈을 포함한다. / 십자가에서 하느님의 능력의 두 구성 요소인 정의와 자비, 진노와 용서는 화해된다. 하느님의 법의 엄격성에서 요구되는 진노와 심판의 결과를 십자가에서 감당함으로써, 인간의 역사에서 악은 충분한 벌을 받아야 한다는 요구가 충족될 때에만 악의 상황은 바로잡아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절망 후의 희망). / 인간이 하느님의 능력의 필요를 인식하는 것은 동시에 하느님의 지혜를 깨닫는 것이다. 인간이 하느님의 능력을 이용하는 것은 인간은 자신의 죄성을 받아들인 후에 그리스도의 능력적 현존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이중적 의미를 지닌다. 따라서 우리 안에 있는 하느님의 능력은 우리 위에 있는 하느님의 능력과 대립한다. / 이 두 측면은 인간의 삶 속에서 계속적 긴장을 유지하독록 해야 한다. 은총은 인간을 새로운 삶으로 인도할 수 있으나 이 삶의 어느 단계에서나 인간 악의 새로운 가능성들이 현존한다. 따라서 인생의 종말, 역사의 완성 때에야 하는미은 궁극적으로 발견되며, 그때까지는 인간의 상황은 언제나 애매한 성격으로 남는다. //
 
자유주의적 기독교는 십자가의 의미르 본질적으로 낙관적 측면에서 이해하는 데, 이는 십자가 사건 속에서 “점진적으로 악에 대해 승리를 거두어 가는 역사 안의 한 힘으로서의” 대리적(vicarious) 사랑이 들어온 것을 본다. 그러나 인간이 진보하는 동안 선과 더불어 악도 역시 발전한다. “역사의 모순들은 역사 안에서 해결되는 것이 아니고 궁극적으로 영원하고 신적인 차원에서만 해결된다.” / 비극적인 관점에서는 그리스도가 역사에 도입했던 대리적 사랑은 인간의 죄에 패배를 당하면서 종말에 이르고, 여기에서 삶의 의미는 대리적 사랑의 의롭고 진실됨에 있다. 그러나 인간은 선한 측면도 있으며, 그리스도의 행동의 결과도 세계에 현존하고 있다. “하느님은 역사에 개입하고 관여하는 분이지, 영원한 태평 속에 거하는 어떤 부동의 원동자 같은 존재는 아니다.”/ 신앙인에 의하면 역사 안에는 선이 존재하고, 하느님의 능력은 신앙인 자신의 삶과 역사 속에서 보다 나은 방향으로 변화를 가져오게 한다. 그러므로 신앙인은 이 세계 안에서 책임적 행동을 취할 것을 요구받고 있다. 그러나 그의 행동은 언제나 선을 가져 오는 것이 아니다. / 인간의 행동은 종말에 이를 때까지 선과 악의 혼합물로 존재할 것이다. 인간의 과제는 가능하고 보다 나은 것을 위해 노력하면서도 자신이 성취한 것을 하느님의 나라의 최종적 도래로 자처하지 않는 것이다.
 
결론 (니버에 대한 두 가지 비판과 대답) : 니버는 역사 안에서의 ‘교회’의 감상성, 독재성, 몽매성, 위선성(자기義)은 바로 비판하고 있지만, 교회는 하느님의 계시를 보존하였고, 이 계시는 교회를 악을 고발하는 증인의 위치에 서게 하고, 하느님은 교회 공동체에서 인간과 관계한다는 것을 충분히 강조하지 못했다. 교회는 그 모든 실패에도 불구하고 신적인 계시와 신과 인간과의 관계의 구현체이다. --> “하느님의 신탁들”을 지닌 은총의 공동체인 교회는 인간의 교만을 깨뜨리는 하느님의 심판의 최종적인 말씀과 상한 심령을 살려내는 하느님의 자비의 말씀에로 인생을 개방시키는 역사 안의 유일한 장소이다. 그러나 얼마나 많은 악이 종교적 공동체의 자만을 통하여, 그 인습적이고 율법을 무시한 율법주의를 통하여, 종고적 열광주의를 통하여 되살아나는 것은 자만심에로 빠지는 것을 경계하게 한다. // 니버의 인간의 죄성에 대한 개념은 너무 비관적이어서 인간의 노력을 마비시키는 경향이 있고, 하느님조차도 구원할 수 없는 것 같다. 또는 니버가 모든 죄를 교만이나 육욕으로 환원시키는 것은 삶의 상태 묘사에 너무 극단적인 경향이 있다. --> 인간의 죄는 이기심(self-regard)인 자아에 대한 집착이다. 모든 사람은 교만하거나 그 교만을 허락하고 있으므로 죄에 대한 책임이 있다. 하느님의 능력과 지혜만이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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