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그러나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
멀리 그러나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
멀리 그러나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개혁신학자 박봉랑 교수의 생애와 신학 3오영석 명예교수(한신대) | 승인 2018.11.11. 21:48http://www.ecumenian.com/news/articleView.html?idxno=18157칼 바르트의 코페르니크적인 전환은 그가 1916년에 저술한 “성서안의 놀라운 세계”라는 논문과 1919년에 출간된 로마서 1판과 1922년에 새롭게 출판된 로마서 2판에서 전적으로 관철시켰다. 그는 여기서 인간과 질적으로 다른 하나님, 인간은 땅에 있고 하나님은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라고 표명한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는 질적인 차이가 있다.복음은 철저한 새로운 진리이다하나님에 대한 신앙, 바울이 전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복음, 철저한 새로운 진리다. 사람이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기쁘고 좋은 진리 곧 하나님의 진리다. 전적인 타자 하나님의 메시지이다. 복음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창조하고 불러내고 일으키는 소식이다.(미주 1) 우리가 모르는 그리스도는 우리가 모르는 위에서부터 수직적으로 가르고 들어온다. 그의 말씀을 듣고 믿는 자에게 삶의 전환이 일어난다. 측량할 수 없이 높은 곳에 계신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바울에게 나타났고 인식되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명을 받아서 하나님을 알리는 심부름꾼으로 나서게 되었다.▲ 스위스 바젤대학교에서 강의하고 있는 칼 바르트 ⓒhttp://barth.ptsem.edu/하나님은 누구도 다가갈 수 없는 빛에 사신다. 그는 알려지지 않는 분이다. 하나님이 거룩한 분, 창조자와 구원자로서 그 자신을 알리는 것은 기적이다. 바울이 전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복음, 철저한 새로운 진리다. 사람이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기쁘고 좋은 진리 곧 하나님의 진리다. 전적인 타자 하나님의 메시지이다. 복음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창조하고 불러내고 일으키는 소식이다.(미주 2) 우리가 모르는 그리스도는 우리가 모르는 위에서부터 수직적으로 가르고 들어온다. 그의 말씀을 듣고 믿는 자에게 삶의 전환이 일어난다. 측량할 수 없이 높은 곳에 계신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바울에게 나타났고 인식되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이 명을 받아서 하나님을 알리는 심부름꾼으로 나서게 되었다.하나님과 인간 사이에는 결코 넘을 수 없는 선이 있다, 양자 사이에 극지대가 있다. 하나님의 계시는 번개처럼 인간의 삶과 역사에 돌입한다. 죽음의 선을 넘지 못하는 신은 하나님이 아니다. 죽음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일으킨 부활의 하나님은 모두에게 생명을 주시고 모든 것을 주신다. 하나님의 능력은 자연의 능력이 아니고, 우리가 아는 고차원적인 능력도 아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모든 능력의 위기이다. 그는 전적인 타자이다. 모든 능력은 하나님의 능력에 대하여 아무것도 아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성령을 통하여 나타나고 성령 안에서 인식된다. 믿는 사람은 복음 안에서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을 인식한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그가 누구인지를 말씀하시고 이 세상의 모든 거짓 신들을 심판한다.신앙은 미리 인간이 가진 종교적인 감정이나 생래적인 인간의 내재적인 신의식을 강화하고 심화하는 것과 전적으로 다르다, 신앙은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이 임하는 텅 빈 그릇이다. 인간의 어떤 종교체험이나 인간의 이성의 깊이는 신적인 계시와 연결된다는 주장에 대하여 바르트는 하나님의 계시는 인간의 모든 것을 심판하고 새롭게 한다고 로마서에서 말한다.바르트는 그의 교의학 개요(Dogmatik im Grundriss, 1947)에서 그가 로마서에서 천명한 하나님을 높은 계신 하나님이라고 표명한다.“내가 하나님은 하나님 자신을 ‘통해서만 믿을 수 있다는 것을 내가 안다면, 나는 그 것 자체가 신앙의 고백임을 믿는다. 나는 독자적인 이성과 독자적인 힘으로부터 나의 주 예수를 믿고 그에게 갈 수 없다. 내가 믿는다는 것은 전적으로 인간이 아니라, 아버지 하나님, 아들과 성령 한분과의 만남에서 성취된다. 내가 믿으면서 나는 전적으로 나의 신앙의 대상에 의하여 채워지고 규정되는 것을 본다.”(미주 3)“내가 믿는다는 것은 내가 홀로 있지 않고 우리가 영광과 비참 속에서 홀로 있지 않는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다가 오시고 우리의 주와 스승으로서 전적으로 우리를 도우시려고 오신다. 나는 홀로 있지 않고 하나님이 나를 만나신다. 기독교 신앙은 임마누엘, 예수 그리스도와의 만남이다. 그 안에서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과 만난다. 우리가 성서를 하나님이 말씀이라고 부른다면, 우리는 성서를 하나님의 한 말씀에 대한, 하나님의 그리스도 인간 예수, 영원히 우리의 주와 왕인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자들과 사도들의 증언을 의미한다. 우리는 그 안에서 하나님을 만난다 . 이것은 선물이다. 그것이 선물인 것은 우리의 능력과 준비로 받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파악하고 알 수 없고 접근할 수 없는 존재와 그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위대한 자유의 선물이다.”(미주 4)바르트에 의하면 사도신경은 높은 곳에 계신 하나님, 삼위일체 하나님을 신뢰한다.“그리스도교 신앙 밖에서 하나님이라 말할 때, 신적인 본질이나 본성을 말할 때. 일반적으로 존재하고 작용하는 동경, 인간적인 향수의 대상, 하나에 대한 인간적인 희망의 대상, 하나의 근거와 인간 존재와 세계의 의미에 대한 희망의 대상을 생각한다. 인간과 구별되는 이런 저런 것과의 관계에서 최상적인 존재, 모든 존재하는 것을 규정하고 지배하는 존재로서 이해될 수 있을 것을 생각한다.”(미주 5)그리스도교에서 하나님을 말할 때, 종교적 사고가 하나님에 대하여 만들어내곤 하는 개념들과 이념들의 계속이거나 그것들을 풍성하게 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없다. 기독교적인 하나님은 신들의 계열에서 존재하지 않는다. 그는 인간의 경건과 종교적인 창작기술에서 존재하지 않는다.멀리 그러나 말씀하시는 하나님우리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에 관하여 말할 때, 분명히 할 것은 이 말은 처음부터 근본적으로 타자이고, 인간의 동경, 상상, 환상, 사변의 모든 세계에서 전적으로 벗어난 해방이다. 그는 모든 신들처럼 발견되고 탐구되어 맨 나중에 사람이 발견한 신이 아니다. 그리스교적인 하나님은 그밖에 신으로 불리는 모든 것 대신에 모든 것을 추방하고 배제하고 홀로 진리라고 주장하는 하나님이다.(미주 6)여기서 인간이 스스로 찾고 발견하는 실재와의 인간의 만남이 아니다. 인간의 눈으로 보지 못했고 귀로 듣지 못했고 마음에서 생각하지 않는 것을 하나님은 그를 사랑하는 자에게 주었다고 바울은 말한다. 그의 본질과 본성은 이른바 모든 신들의 그것들과 전적으로 다르다. 그리스도교적인 고백의 의미에서 하나님을 말할 수 있는 것을 요약하면 “높은데 계신 하나님이다.” 바르트가 하나님을 높은데 계신다고 말한 것의 근거는 눅 2:14절이다.(미주 7)하나님은 우리 위와 우리의 최고의 감정과 가장 깊은 감정과 노력과 직관을 초월한다. 인간정신의 가장 숭고한 산물도 초월한다. 그는 전적으로 그 자신 안에서 기초된 분이고, 그래서 현실적으로 존재한다. 그는 우리의 감정, 발견, 동경, 감정을 기반으로 하여 인간에게 그 자신을 계시하고 계시되지 않는다. 바로 높은데 계신 하나님은 그 자신이 인간에게 향하시고 인간에게 그 자신을 주시고, 그에게 그 자신을 인식하게 했다. 높은데 계신 하나님은 우리와 관계하지 않고 상관하지 않고 영원히 낯선 하나님이 아니라, 그는 높은 데서 우리에게 그 자신을 낮추셨고 우리에게 오셨고 우리의 하나님이 되었다.높은 데 계신 하나님은 바로 신약과 구약에서 말한 하나님이다. 성서에서 하나님의 이름은 철학자들이 말하듯이 무시간적인 존재의 이름이나 세계에 낯선 최고 존재의 이름이 아니다. 그의 이름은 행동하고 자신을 알리고 살아계신 주체자의 이름이다. 성경은 하나님에 과하여 말하고, 그의 행동에 관하여 보도하고 여기 인간의 영역에서 일어난 높은데 계신 하나님의 역사에 대하여 말한다. 그래서 성서는 철학책이 아니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인식될 수 있게 되는 하나님의 위대한 행동에 관한 책이다.(미주 8)이 높은 데 계신 하나님은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적인 하나님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은 그가 인간과 어떤 관계를 맺는지를 아는 것과 분리될 수 없다. 하나님은 전능하시고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다스린다. 그는 시공 안에서 가능한 모든 것에 대한 힘을 갖는다. 그는 다른 힘들을 초월한다. 그는 시공간의 근거이고 척도이다, 그에게 한계는 없다. 그의 능력은 정당함의 능력이다. 그의 능력은 거룩하고 올바르고 자비하고, 인내하고 선한 능력이다. 그 하나님의 능력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로운 사랑이다. 그의 능력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러한 사랑으로 확증되었다.가톨릭 신학자 칼 아담(Karl Adam)에 의하면 바르트의 로마서 2판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초월성을 간과하고 하나님의 계시와 이성의 깊이를 동일시하면서 하나님의 존재를 가지고 놀이하던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운동장에 떨어진 폭탄이었다.(미주 9) 사익스(S. W. Sykes)에 의하면 자유주의신학자들은 바르트의 신학의 출발점과 그 내용을 반대하였지만, 바르트의 로마서 주석은 어두운 하늘을 뚫고 나타난 혜성과 같았다.(미주 10) 로마서 2판은 1989년까지 14판이 출판되었으니, 아마 지금까지는 20판 이상이 출판되었을 것이다.바르트는 자유주의 문화개신교 신학에서 이성과 계시, 종교적인 감정의 느낌과 신앙, 역사의 발전과 하나님의 나라. 인간의 존재와 하나님의 존재의 내재적인 상관관계(analogia entis)가 서로 화해되고 내재적으로 일치된 것을 보고 그것을 철저지 거부하고 하나님의 절대타자성을 강조하였다.▲ 20세기 신학을 열었다고 평가되는 칼 바르트의 로마서 주석 수기본 ⓒhttp://barth.ptsem.edu/미주(미주 1) K. Barth, Römerbrief, 1922, 142.(미주 2) A.a.O., 156.(미주 3) K. Barth, Dogmatik im Grundriss, 17.(미주 4) A.a.O., 19.(미주 5) A.a.O., 39.(미주 6) A.a.O., 40.(미주 7) A.a.O., 41.(미주 8) A.a.O., 42-43.(미주 9) S. W. Sykss, Karl Barth, Study of his Theological Method, 이형기 역, 모양출판사, 1986, 8.(미주 10) 위의 책, 13.오영석 명예교수(한신대)http://www.ecumenian.com/news/articleView.html?idxno=18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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