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홍 목사의 성경적 상담 연구소 RBD COUNSELING INSTITUTE
멘탈리티의 핵심 키워드 : 신성한 내면아이, 구상화, 의미와 통일성, 도약~
목록
현대신학자료1

자유주의 신학의 이단성4_김효성

자유주의신학의 이단성 4 김효성

미 연합감리교회(UMC)

1979년도의 한 책에서, (미 연합감리교회 소속) 남부 감리교 대학교의 빅터 폴 퍼니쉬(Victor Paul Furnish)는 바울이 신약성경에서 정말 동성애를 정죄했는지 의문(疑問)하였다.337)

1982년, 미 연합감리교회에서 출판된 ‘인간의 성에 대한 기독교적 이해’라는 제목의 보고서는 동성애적 남자들과 여자들이 교회 목회나 지도적 직분에서 제외되어서는 안 된다고 진술하였다. 그 보고서는 주장하기를, “많은 사람이 천성적으로 동성애적이며 그들은 다른 사람들처럼 완전한 그리스도인 제자의 생활을 하고 상호간의 깊은 사랑과 신뢰의 관계를 가질 수 있다”고 하였다.338)

1995년 11월, 워싱턴 D.C.에 있는 미 연합감리교단 소속 파운드리 감리교회에서 열린 한 공개토론회에서 연사들은 사도 바울을 “자신을 미워하는 동성애자”로 묘사하였고, 동성애 결혼을 칭찬하였고, 또 다윗 왕이 양성애자(兩性愛者)이었을지 모르며 예수 그리스도가 동성애자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추측하였다. 그 대회에서는 동성애적 무지개 상징을 보이는 깃발을 앞세운 ‘성직자 행렬’이 있었다.339)

1997년 9월 네브라스카주 오마하의 제일 연합감리교회의 지미 크리치(Jimmy Creech) 목사는 그의 교인 중 두 명의 여자 동성애자들을 위해 결혼식을 거행했다.340)

1998년 1월, 미국 연합감리교회 소속 목회자들 일부가 동성애를 옹호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6개항으로 된 이 선언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첫째로, 그들은 성경, 전통, 이성 및 경험에 의지하여 ‘동성애라는 관행’ 자체가 기독교의 교훈과 일치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고 확신한다. 또 그들은 동성 커플 계약을 위해 예전적(예를 들어, 결혼식 거행 등) 도움을 적절히 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안수받을 자격이 충분한 남녀 동성애자들에게 안수가 주어질 수 있도록 기도하고 활동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성명서에 서명한 자들 가운데는 남감리대 빅터 폴 휘니쉬 교수, 사회행동을 위한 감리교 연합 총무 조지 맥클레인 등이 있다.341)

1998년, 미국 연합감리교회 재판국은 동성애 결혼식을 집례한 일로 고소된 지미 크리치 목사의 재판에서 13명 배심원 중 8명은 크리치 목사의 유죄를 인정했으나 최소한 9명이 유죄를 인정해야 유죄평결을 내릴 수 있는 교회법에 따라 크리치 목사의 장정위반 혐의에 대해 무죄평결을 내렸다. 보수적 목사들의 심한 반발이 있었지만, 크리치 목사를 지지하는 ‘비전을 선포하는 모임’이라는 단체의 목회자 92명은 동성애자 결혼식 집례를 계속할 것이라고 선언했고, 또 ‘화해하는 교회’라는 단체는 3월 16일 ‘지미 크리치 목사 재판의 평결은 하나님의 은총’이라며 환영 성명을 발표했다.342)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글라이드 기념 연합감리교회의 목사 시실 윌리암즈(Cecil Williams)는 30년 이상 동성연애자들을 위한 결합 언약 의식을 집행해 왔다고 말했다.343)

1998년 미 연합감리교회의 최고 법정에 의한 한 구속력 있는 판결은 동성(同性)의 결합들이 연합감리교회 목사들에 의해 연합감리교회들 안에서 행해질 수 없다고 진술하였다. 그러나 1998년 초 240명의 연합감리교회 목사들이 그들이 요청을 받는다면 동성의 결합들을 집례하겠다고 말하는 성명서들에 서명하였다고 알려졌다.344)

1999년 1월 16일, 한 여성 동성애 부부가 미국 캘리포니아주 새크라멘토에서 1500명의 사람들 앞에서 95명의 연합감리교단 목사들에 의해서 ‘축복’을 받았다.345) 그들은 그 의식을 동성애자들의 권리를 옹호하고, 동성애자들의 결합에 대한 그들 교단의 금지 조치에 항의하기 위해 사용하였다.346)

2000년, 클리브랜드에서 모인 총회의 총대들은 동성애가 “기독교 교훈과 조화될 수 없다”는 것을 628 대 337의 표결로 재확인하였다. 또 ‘현행적 동성애자들’이 목사가 되는 것을 금지하는 방침을 유지하기 위한 640 대 317의 표결이 있었고, 또 성직자가 동성 결혼 예식들을 집례하지 못하도록 금지하는 표결도 하였다.347) 그러나 슬프게도 아직도 많은 감리교회 목사들이 동성애를 찬성하고 심지어 동성애 목사를 용납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네브라스카 주의 마크 케믈링은 2000년 6월 3일 오마하 교회에서 두 남성을 위한 결합식을 집례하였고, 메인주 클린톤에 있는 브라운 기념 연합감리교회 목사 수전 데븐포트는 1999년에 동성애자 결합식을 집례하였다.348)

 

 미 감독교회(ECA)=성공회

1987년, 미국 감독교회의 뉴저지 주 뉴워크 시 감독 교구는 동성애적 결혼들의 인정을 요청하였다.349) 같은 해 11월, 매사추세츠 감독 교구의 ‘성직자’ 대표들은 결혼식과 비슷한 동성연애자들을 위한 축복 의식을 개발하기로 한 결의안을 승인하였다.350)

1988년, 미 감독교회 감독 죤 쉘비 스퐁은 죄 가운데 삶: 한 감독이 인간의 성(性)을 다시 생각함(Living in Sin: A Bishop Rethinks Human Sexuality)이라는 책 198쪽에서 ‘나는 남녀 동성연애자들의 짝들에 대한 교회의 축복은 불가피하고 옳으며 분명한 선(善)이라고 간주한다’고 썼다.351)

1993년 국내 및 국제 종교 보도(NIRR)에 의한 설문조사에 의하면, 미국의 감독교인들의 75퍼센트는 현행적 동성애자들이 여전히 충실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352)

1997년 7월 미국 감독교회 대회는 동성애자들에게 사죄하였다. 그들은 동성 결합들의 축복을 연구하고, 가사의 일에 관여하는 배우자들에게도 의료보험 혜택을 확장하기로 가결했고, 동성애 성직자를 금지하려는 시도들을 부결시켰고, 동성애에 동정적인 자유주의적 새 감독회장을 선출하였다. 그들은 7명의 여성 감독들과 약 1,500명의 여성 신부들을 가지고 있다.353)

미국 감독교회의 에드먼드 브라우닝은 감독회장으로서의 마지막 연설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영국 국교회 [전통을 받은] 교인으로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성경과 전통과 이성을 통하여 분별한다. 그렇지만, 어떤 이들은 우리의 영국 국교회 전통 대신에 성경 문자주의를 받아들이기를 택하였다. 역사는, 성경 문자주의가 노예 제도의 실천 뿐만 아니라 또한 여성의 인격 훼손을 지지하는데 사용되었음을 우리에게 말한다. 우리는 노예 제도를 지나서 움직여 왔고 여성 압박을 지나서 움직이고 있다. 지금은, 우리의 남녀 동성애적 형제들과 자매들에 대한 선입견들을 창조하는 성경의 문자주의적 해석의 사용을 지나서 움직일 때이다.354)

새 감독회장 프랭크 그리스월드는 오래 전부터 남녀 동성애자들의 교회 생활에서의 완전한 참여에 대한 지지자이었다고 한다.355)

죤 스퐁 감독은 1990년 미국에서 최초로 공공연한 ‘남자 동성애자’ 신부의 임직식을 거행하였다. 그는 ‘동성애자’를 벽에 가두고 여자들을 신부직에서 제외하는 교회에 있기를 원치 않는다고 했다.356) 그는 바울이 “심히 억제된, 자기 부정적 동성애자”이었고, 동정녀 탄생이 예수가 사생아임을 은닉하기 위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추측하였었다.357)

2000년 2월 12일 미국 감독교회의 올림피아 교구의 세인트 마크 대성당에서는 공공연한 동성애자 로버트 테일러 주교를 수석주교로 임명하는 의식이 거행되었다. 그 의식에는 200명에 달하는 교구 대표들과 세계 각지에서 온 수백 명의 성직자, 교회 대표들이 참석했고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투투 대주교도 참석했다.358)

2003년 6월 7일, 미국 뉴햄프셔주 관구는 미국의 감독교회 역사상 최초로 공공연한 동성연애자 브이 진 로빈손(V. Gene Robinson)을 주교로 선출하였다. 진 로빈손은 13년 전, 그의 엄숙한 결혼 서약을 깨뜨리고 그의 아내와 두 어린 딸들을 버리고 그의 남자 파트너와 함께 이사했다. 2000년 4월 29일 워싱턴 D.C.에서의 동성애자 행진 전날에 한 연설에서 로빈손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남자 동성애 무리로서 머리를 높이 들 가치가 있는데, 그것은 우리가 단지 우리 자신이 가치 있다고 결정했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것이 그렇다고 선포하셨기 때문이다. 즉 우리는 우리를 이런 식으로 만드셨고 그것을 선하다고 선포하신 하나님에 의해 우리의 가장 무모한 상상을 넘어서 사랑을 받는다. 우리는 오늘날 우리도 우리의 성경책을 읽는다고 선포한다. 그리고 그것의 많은 증인들의 목소리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 그것은 ‘너희는 가증한 자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너희는 나의 사랑을 입은 자들이다’라고 말씀하시는 음성이다. 우리는 우리의 모습 그대로 우리를 사랑하시며 우리의 ‘여러 가지 죄와 악’으로부터--그것은 우리가 동성연애자라는 것을 포함하지 않는다--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죽으신 구주에 대해 동등한 권리 주장을 한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에 완전한 지체--‘완전한’ 지체!--라는 것을 주장하면서 오늘 여기에 온다.359)

미국 감독교회는, 동성애자인 진 로빈슨의 뉴햄프셔 보좌주교 서품식을 2003년 11월 2일 미국 더햄 뉴햄프셔 대학교 휘트모어 센터에서 거행하였다. 서품식은 54명의 주교를 포함한 3천여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거행되었다. 로빈슨은 공개적인 동성애자이다.360)

 

 미 연합그리스도교회(UCC)

1972년, 미 연합그리스도교회는 윌리암 존슨(William Johnson)의 안수를 허락했는데, 그는 대교단에 의해 안수받은 첫 번째의 공공연한 동성연애자이다.361)

1980년 미 연합그리스도교회는 현행적 남녀 동성애자들이 목사로 사역하도록 공식적으로 허용한 최초의 그리고 유일한 대교단이 되었다.362) 또 1985년, 2년마다 모이는 미 연합그리스도교회 총회는 동성애자들을 목사로 허락하는 것을 압도적 표수로 결정하였다.363)

1994년 미 연합그리스도교회 총회장 폴 쉐리(Paul Sherry)와 지도자들은 ‘남녀 동성애자들과 양성애(兩性愛, Bisexual)자들의 동등권과 해방을 위한 워싱턴 행진’에 참가하였다.364)

1998년 미 연합그리스도교회 총회장 폴 쉐리는 동성애의 용납을 지지하면서 쓴 목회서신이 6천 개의 모든 연합그리스도교회 강단들에서 읽혀지기를 원하였다.365)

 

 미 복음주의 루터교회(ELCA)

최근에 만든 인간의 성적 성격에 대한 사회적 진술의 한 초안은 동성애적 결합을 지지하고 미국 복음주의 루터교회의 최고 감독인 허버트 킬스트롬의 찬사를 받았다. 킬스트롬은 현행적 남녀 동성애자를 목사직에 안수하고 임직하기를 소원한다고 알려졌다.366)

미국 복음주의 루터교회 소속 미네소타주 미네아폴리스의 소망 루터교회의 톰 브록 목사는 여름 청년집회와 교단 총회에 대해 슬픔과 탄식의 심정으로 몇 가지 사실을 증거하였다. 그 중에, 그는 교단의 청년집회에 관해, ‘관심 있는 루터교인들’(Lutherans Concerned)이라는 단체가 거기에 한 홍보 책상을 두었음을 증거하였다. ‘관심 있는 루터교인들’은 동성애를 조장하는 단체다. 그는 한 방에서 그들의 전시물을 발견하였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의 질문은 이것이다. 왜 이런가? 우리의 젊은이들을 교단 집회에 보내서 실제 동성애자들에 의해 선전을 듣게 하는 것이 정당한가?”367)

2003년 5월 4일, 미국 미네소타주 성 바울시의 글로리아 데이 루터교회는 그 교회 목사들이 ‘동성 결합식’을 축복하는 것을 허용하도록 표결하였다.368) 미네아폴리스시의 구속자 그리스도 루터교회는 2003년 5월 18일 여자 동성애자 메리 알빙을 목사로 임명하였다. 알빙은 그의 남편과 함께 다른 한 루터교회의 동사목사이었으나 5년 전 남편과 이혼했고 자신의 동성애를 공포했다. 그는 미네아폴리스시의 중앙 루터교회 교회음악인 제인 리엔과 동거하고 있다.369)

 

 미국침례교회(ABC)

1993년 미네아폴리스에서 열린 리-이메이징 대회에서 연사들 중 다수는 여성 동성애를 조장했는데, 미국침례교회의 첫 번째 ‘드러난’ 여성 동성애 목사인 내디안 비숍(Nadean Bishop)은 성경에서 마리아와 마르다는 여성 동성애자이었다고 주장하였다.370)

미국침례교회의 1999년 대회는 캘리포니아주의 네 교회들을 친(親)동성애적 경향들 때문에 출교하기로 한 결정으로 야기된 심각한 내적 분열을 드러낸 가운데 마쳤다.371)

미국침례교회에는 동성애자들의 참여를 격려하는 ‘환영하고 찬성하는 침례교인 협회’에 속하는 37개 교회들이 있다.372) 최근에 제명된 네 교회 중의 하나의 목사인 에스더 하기스 목사는 몇 번의 항의 때문에 제명이 일시 유예상태가 되었다는 통보를 받았다.373)

 

 미국의 기타 교회들 및 인물들

1968년, 메트로폴리탄 공동체교회 세계협회라고 불리는 한 교단이 활동적 동성애자들을 위한 피난처를 제공하기 위해 조직되었다. 오늘날 그 교단은 330교회들에 30,000명 이상의 교인들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1997년 2월, 주로 동성애자들로 구성된 이 협회는 남캘리포니아 에큐메니칼 협의회에 가입되었다.374)

1980년 유니테리안 보편구원교회(UUC)는 공공연히 동성애적이고 양성애적인 인물들을 지도적 지위들에 채용하기로 결의했다. 또 1984년 유니테리안 보편구원교단(UUF)은 동성애자들 간의 결혼을 인정한 최초의 주요 교단이 되었다. 또 1996년 7월, 유니테리안 및 보편구원 회중협회(UUAC)는 동성 결혼의 합법적 인정을 공식적으로 요구하였다.375)

1993년, 그리스도의 제자들 교회(The Disciples of Christ) 총회는 동성애자들의 목사 안수를 지지하는 목사를 대표자로 선출했다.376)

미국 남침례교 머서대학교 신약과 설교학 교수 폴 듀크는 1994년 협동침례교협의회(자유파)의 총회전 학교에서, “성경은 우리의 최종적 권위가 아니다. 왜냐하면 어느 날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천국에 그것을 가지고 가지 않을 것이다. . . . 동성애는 성경의 주된 관심이 아니다. . . . 나는 성경이 모든 형태의 동성애 행위를 정죄한다고 확신 있게 말할 수 없다”고 말했다.377)

형제들 교단(the Church of the Brethren)의 매튜 제이 스머커는 그의 안수가 지방 교직자들에 의해 처음 연기된 후 2002년 6월 9일 안수를 받았다. 그가 공공연하게 남자동성애자이기 때문에, 6월 1일 미시간 교구 교회지도자들은 그 안수식을 진행하기 전에 교단으로부터의 추가적 지도를 원한다고 말하면서 안수를 연기하는 표결을 하였다. 그러나 스머커의 지지자들은 그 표결은 교회 규칙 아래서 필요로 하는 3분의 2의 찬성을 얻지 못했으므로 부적절하다고 말했다. 임원회는 그 결정을 재고하였고 그 안수가 계속되기를 허용하도록 동의하였다. 스머커는 한 교회회보에서 “오늘은 매우 기쁘고 축하할 만한 놀라운 날이었다”고 말했다.378)

하버드 대학교 기념교회 동성애 목사 피터 고움즈는, 그 교회는 동성 결혼을 허용하기로 결정하였다고 말하였다.379) 또 그는 레위기에서의 동성애 금지가 동성애자가 “본래 악하기” 때문이 아니고, “이방인들이 그것을 행하므로 그것이 의식적(儀式的)으로 불결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한 로마서 1:27에서 동성애 행위에 대한 바울의 비평이 “본성적으로” 동성애자인 사람들을 가리키지 않고 이성애자(異性愛者)들에 의한 동성애 행위를 가리킨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바울이 동성애에 대해 알고 있었던 것은 모두 그것의 타락한 이방적 표현이었다. 그는 그러한 무지 때문에 정죄될 수 없지만, 그의 무지가 우리 자신의 무지를 위한 변명이 되어서도 안 된다”고 말했다.380)

하버드 대학교의 비교 종교 및 인디안학 교수 다이아나 에크는 1998년 7월 그의 동료 교수 도로시 어스틴과 함께 하버드의 로웰 기숙사 사감의 임무를 맡았다. 이 여성 동성애자 커플은 20년간 파트너이었다.381) 크리스챤 비이컨지 1988년 12월 1일자에 의하면, 에크는 1988년 이방 종교들과의 대화를 취급하는 세계교회협의회의 한 위원회의 위원장이었다.382)

 

 캐나다의 교회들

1988년, 캐나다 연합교회는 캐나다에서 동성애자의 목사 안수를 합법화한 최초의 교단이 되었다. 그 후, ‘남녀 동성애자들’을 교회 생활의 모든 방면에 환영하는 연합교회의 수가 꾸준히 늘고 있다.383)

1992년 5월, 캐나다 연합교회의 브리티쉬 컬럼비아 대회는 공공연한 동성애자 팀 스티븐슨을 목사로 안수하였고, “그리스도인의 상호간의 위탁의 진정한 표현들로서 동성간의 언약들의 타당성을 선언한”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종교뉴스서비스(RNS)는 캐나다 연합교회의 어떤 목사들은 동성애자들의 짝들을 위한 ‘언약’ 의식들을 집행하고 있다고 보도하였다.384)

1992년, 캐나다 연합교회의 마니토바와 노스웨스턴 온타리오 대회는 동성애자들의 짝들을 교회들 내에서 결혼시키는 것을 허락하도록 표결하였다. 사스카치완 대회도 앞으로 삼 년 동안 적어도 10개의 강단을 동성애자들에게 개방하기로 표결하였다.385)

2001년 1월, 캐나다의 토론토 메트로폴리탄 커뮤니티 교회에서 두 쌍의 동성 짝이 1,000명의 사람들 앞에서 합법적으로 결합식을 올렸다.386) 합법적 동성 ‘결혼식’이 행해진 것은 세계에서 처음이라고 한다.387)

캐나다 성공회 뉴웨스트민스터 관구는 2001년 6월 1일 캐나다 밴쿠버 카플리아노 대학에서 열린 대회에서 2,226명의 총대들 중 56.5퍼센트의 찬성으로 교회 안에서 동성애 결합을 축복할 것을 결의했다. 이 관구는 동성애 결합을 인정하는 캐나다의 첫 번째 관구가 되었다. 이 관구의 마이클 잉햄 주교는 동성애가 비성경적이거나 비도덕적이지 않다고 주장해왔었다.388)

뱅쿠버의 성공회 주교 마이클 잉햄은 그의 교구들 중 여섯 개에게 동성 관계를 축복하는 의식을 행하도록 힘을 실어주었다. 그 결정의 선언은 세계의 성공회 지도자들이 그런 축복에 대해 반대한 그 다음날인 2003년 5월 28일에 나왔다. 잉햄은 “이것은 결혼식이 아니고, 동성(同性)의 인물들 간의 영속적이고 성실한 공약에 대한 축복이다”라고 말했다.389)

 

영국의 교회들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데스몬드 투투 대주교는 현행적 동성애자들의 안수를 요청한 최고위급 성공회 교인이며 동성애자를 거절하는 것이 “거의 근본적 신성모독”이라고 경고했다.390) 투투는 말하기를, 세계교회협의회가 계속 신뢰할 만한 단체가 되기 원한다면, 짐바붸 총회에서 동성애에 대해 긍정적 입장을 취해야 한다고 한다.391)

1997년 7월, 영국의 연합개혁교회(United Reformed Church)는 ‘실제적 동성애자들’을 그들이 청빙된 교회들의 목사로 받아들이기로 동의하였다.392)

1998년 8월, 램버스 회의에 참석한 전 세계 성공회 주교 대표들은 ‘동성애는 비성경적’이라는 내용을 담은 결의안을 526 대 70이라는 압도적인 표차로 가결했다. 아프리카 출신 주교들이 발의한 이 결의안은 “한 남자와 한 여자로 맺어진 결혼관계 외의 성생활을 성경이 금지하고 있으며, 동성애자가 사제서품을 받을 수 없으며, 동성애 결합을 결혼으로 축복할 수 없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393) 이 문제에 대해 아직도 보수적 주교들이 다수라는 사실은 감사하다. 그러나 세계 성공회 대표회의에 70명의 가증한 지도자들이 포용되어 있다!

영국의 캔터베리 대주교 로원 윌리암즈는 한 때 드러나게 현재의 동성애자를 안수하였고 심지어 동성애 신부들이 “모든 상상할 수 있는 상황에서” 독신일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394) 영국 성공회 내의 한 복음주의 그룹은 최근에 윌리암즈에게 “교회의 모든 교인이 거룩한 결혼관계 밖의 성 관계를 금해야 한다는 교회의 공인된 교훈”을 확언하고 불순종하는 자들에 대한 “적절한 권징의 필요성”을 긍정하든지 아니면 캔터베리 대주교로서의 직책을 사퇴하라고 촉구했다.395) 윌리암즈는 거기에 대해 성 도덕은 “명확히 규정짓는 문제이어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또 그는 “교회의 다수파의 가르치는 바를 진술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윌리암즈는 동성애와 여성 안수 같은 논쟁적 문제들로 교회 내에서 투표하게 되면, 그는 그의 결정들을, 하나님의 말씀의 분명한 가르침이나 성공회의 역사적 신앙고백서들과 신경들보다 교회의 다수파가 믿는 바에 근거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해 초에, 윌리암즈는 세계의 7천만 성공회 교인들의 영적, 도덕적 지도자의 역할을 시작할 것이다.396)

새로 취임한 캔터베리 대주교 로완 윌리암스(Rowan Williams)에 대항하는 성직자들의 소요가 영국교회 내에서 일어났다. 보수주의자들은 그가 동성애에 대한 그의 자유주의적 견해들을 철회하든지 아니면 사임하라고 요청한다. 그는 동성애자간의 “공언된” 성 관계에 대해 동정적이다. 500명의 영국교회 성직자들의 설문조사에 의하면, 54퍼센트는 모든 현행적 동성애자의 안수를 인정치 않는다. 영국교회 성직자의 3분의 1은 예수님의 육체적 부활을 의심하고 2분의 1은 그의 동정녀탄생을 의심하거나 불신한다.397)

2003년 5월, 동성애자인 제프리 죤은 영국 런던에서 서쪽으로 약 40마일 떨어진 리딩이라는 도시의 주교로 임직되었다. 죤은 자신이 지금 ‘독신’이라고 주장하지만, 다른 남자와 20년간 관계를 가졌다고 인정한다. 자유주의 신학 사상을 가지고 있는 그는 옥스포드의 주교 ‘은퇴한’ 리차드 해리스에게 임직을 받았다. 해리스는 하나님을 ‘어머니’ 같은 여성적 용어로 불러야 한다고 주장하는 극단적 자유주의자이다. 그는 진화론을 믿고 창조론을 비난했다. 2003년 6월 17일, 16명의 성공회 주교들이 죤의 임직을 비난하는 서신을 발표했지만 아무런 변화가 없다.398)

 

 호주의 교회들

1996년, 남호주연합교회(Uniting Church in South Australia) 대회는 동성애자들을 지도적 직위들에 임명하는 것에 대한 연기 제안을 부결시켰다.399)

2003년 4월 호주의 더 웨스트 오스트랄리안지의 글에서, 존 셰퍼드 목사는 예수의 동정녀 탄생, 부활, 승천, 재림 등의 교리가 역사적 내용이 아니고 하나님의 월등한 권위를 나타내기 위해 쓰여진 상징적 이야기이며 동성애를 죄로 여겨서는 안 된다고 썼다.400)

2003년 7월 호주연합교회 총회401)는 이틀 동안의 격렬한 토론 후 총대 265명의 약 80퍼센트의 찬성으로 동성애자를 목사로 임직할 수 있다고 결의했다.402)


 

 6. 성경적 반박

그러면 이제 자유주의 신학이 이단이라는 것을 성경에 근거하여 확인해보자. 먼저 자유주의 신학의 요점들을 하나씩 열거하고 그 예들을 대표적 신학자들의 글들에서 들고 성경적으로 간략히 반박하는 순서로 정리해보자. 

 

    1. 성경의 신빙성(信憑性)을 부정한다.

첫째로, 자유주의 신학은 성경의 신빙성(信憑性)을 부정한다. 예를 들어, 칼 바르트(Karl Barth)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는 아담 안에 있는 전체 진리가 위치한 앞뒤 문맥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그 자체로는 거짓이며, 그것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진리에 관계된다는 사실에서만 어떤 타당성을 가진다.403)

아브라함과 모세와 같은 인물들이 후대의 신화 제작의 산물들이든지 아니든지 무슨 문제가 되는가[!]404)

구약과 신약의 성경 역사는 실상 전혀 역사가 아니고, 위에서 보면 일련의 자유로운 신적 행위이며 아래서 보면 본질상 불가능한 어떤 것을 이루려는 일련의 결실 없는 시도이다.405)

진정한 역사 속에 ‘역사적인’ 것과 ‘비역사적인’ 것이 공존(共存)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필요하고 의무적이다.406)

또한, 씨 에취 다드(C. H. Dodd)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요한은 예수의 생애에 관한 한 추가적 기록보다 하나의 해석, 즉 새로운 대중을 위한 하나의 해석을 의도하였다.407)

[가나의 기적 설화는] 액면 그대로 해석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의 참된 의미는 더 깊은 데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더 깊은 의미에 대한 아무런 직접적 단서를 갖고 있지 못하다.408)

바울이 했다는 설교들과 마찬가지로 베드로나 다른 이들이 했다는 설교들은 사도행전 저자의 자유로운 작품일지 모른다는 것은 가능한 생각이다.409)

비록 우리는 아마 디모데전서를 진짜 바울의 편지로 받아들여서는 안될 것이지만.410)

또한, 오스카 쿨만(Oscar Cullmann)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 동일한 구속(救贖)의 선(line)은 역사적으로 확증할 수 있는 사건뿐 아니라 또한 역사적 시험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 예를 들면 역사적 구조 안에 있는 전설(saga)이나, 창조와 자연 과정을 취급하는 신화도 포함한다. 우선, 원시 기독교는 이러한 다양한 내용을 구별하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해 두어야 한다.411)

 

 <성경적 반박>

그러나 성경의 신빙성을 믿는 것은 기독교 신앙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이다. 성경이 우리의 신앙과 생활의 정확무오한 유일의 법칙이라고 믿는 것은 기독교 신앙의 기초이며, 이 신앙 속에는 성경의 신빙성에 대한 믿음이 들어 있다. 다음의 몇 성경구절들은 이 사실을 분명하게 증거한다.

누가복음 1:1-4, "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혹은 '확실하게 믿어진 일들,' 페플레로포레메논)에 대하여 처음부터 말씀의 목격자 되고 일꾼된 자들의 전하여 준 그대로 내력을 저술하려고 붓을 든 사람이 많은지라. 그 모든 일을 근원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핀 나도 데오빌로 각하에게 차례대로 써 보내는 것이 좋은 줄 알았노니, 이는 각하로 그 배운 바의 확실함(certainty)을 알게 하려 함이로라."

요한복음 20:30-31,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표적'(세메이온)이라는 말은 확증하는 표(sign, mark)라는 뜻이다. 제자들이 전했고 지금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내용들은 기적들로 확증되었다.

요한복음 21:24, "이 일을 증거하고 이 일을 기록한 제자가 이 사람이라. 우리는 그의 증거가 참인 줄 아노라." 진실은 하나님의 속성이요 천국의 속성이며, 예수의 제자들은 진실한 증인들이었다. 

 

    2. 성경의 신적 권위를 부정한다.

둘째로, 자유주의 신학은 성경의 신적 권위를 부정한다. 예를 들어, 씨 에취 다드(C. H. Dodd)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성경의] 외적인 권위는 엄밀한 의미에서 더 이상 절대적이지 않다.412)

우리가 계시에 관하여 말할 수 있는 어느 것도 그것을 받는 사람에게 상대적이다. 진리는 아무 곳에서도 자존적(自存的), 외적 권위를 찾을 수 있는 순수하게 ‘객관적인’ 형태로 주어지지 않는다.413)

또한, 폴 틸리히(Paul Tillich)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성경은, 하나님의 ‘행위’에 대해 율법적으로 생각되고 작성되고 인봉된 기록, 그래서 그것에 근거해 우리가 어떤 주장들을 결정할 수 있는 그런 기록이 아니다.414)

 

 <성경적 반박>

그러나 성경을 신앙생활의 표준인 신적 권위의 말씀으로 믿는 것은 모든 개신교회들, 개혁교회와 루터교회와 영국교회가 공통적으로 믿는 기본적 신념이다. 심지어 천주교회도 그런 믿음을 가지고 있다. 다음 몇 개의 성경구절들은 이 신념을 뒷받침한다.

요한복음 10:35, "성경은 폐할 수 없나니." 예수께서는 친히 성경의 신적, 절대적 권위를 이 한마디 말씀으로 분명히 선언하셨다.

마태복음 5:18,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예수께서 친히 성경의 축자적(逐字的, 글자의) 영감을 증거하셨는데, 성경의 축자적 영감은 성경의 신적 권위성을 증거한다.

디모데후서 3: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하나님의 감동으로'라는 원어(데오프뉴스토스)는 '하나님께서 숨을 내쉼으로'라는 뜻이다. 이 말은 성경의 영감 뿐만 아니라, 또한 성경의 신적 기원과 신적 권위를 증거한다.

데살로니가후서 2:15, "이러므로 형제들아 굳게 서서 말로나 우리 편지로 가르침을 받은 유전(遺傳)[전해 들은 바]을 지키라." 이 말씀은 사도들의 권위 즉 신약성경의 신적 권위를 증거한다.

요한계시록 22:18-19,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주께서는 신약 계시를 가감할 수 없는 신적 권위로 인치셨다. 

 

      3. 성경의 무오성(無誤性)을 부정한다.

셋째로, 자유주의 신학은 성경의 무오성(無誤性)을 부정한다. 예를 들어, 칼 바르트(Karl Barth)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선지자들과 사도들 자신은 그들의 직분에 있어서도, 증인으로서의 역할에 있어서도, 또 그들의 증거를 기록하는 행위에 있어서도, 우리와 같이 실제 역사적 인간이었고 따라서 그들의 행동에 죄가 있고 그들의 말이나 글에서 실수할 수 있었고 실제로 그러했다.415)

또한, 씨 에취 다드(C. H. Dodd)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성경 무오(無誤)에 대한 옛날 견해가 과학적 발견과 역사비평학의 연속적 공격으로 파괴되었던 과정에 대해 상술할 필요는 없다. 과학과 역사의 문제에서 성경의 정확성을 주장함에 있어서 성경 무오의 변호자들이 희망 없는 입장을 택했다는 것은 오래 전에 벌써 분명하였다. . . . 성경의 그 옛 교리적 견해는 과학과 역사비평학의 입장에서 공격을 받을 뿐 아니라, 신중히 생각한다면 그것은 종교와 공중 도덕에 위험물이 된다.416)

나는 바울이 잘못이라고 때때로 생각하고 감히 그렇게 말해왔다, 비록 그가 말하는 바가 전체적으로는 나의 보기에 충분히 참된 것 같지만.417)

 

 <성경적 반박>

그러나 성경의 신적 권위성은 성경의 무오성(無誤性)을 포함한다. 또 성경의 완전한 영감성이나 목적도 그것의 무오성을 포함한다. 몇 개의 중요한 성경구절들을 열거해보자.

요한복음 10:35, "성경은 폐할 수 없나니." 이 말씀은 주 예수께서 친히 성경의 신적 권위성을 선언하신 것이다. 성경의 오류를 말하는 것은 성경의 일부분을 폐하는 것이며 그것은 주의 말씀과 반대된다.

마태복음 5:18,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예수께서는 성경의 축자적(逐字的, 글자적), 아니, 축획적(逐劃的) 영감을 증거하셨다. 성경의 오류를 주장하는 것은 성경의 축자적 영감을 부정하는 것이다.

시편 19:7-8,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 하고,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하며,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도다." 성경의 완전성과 그 고결한 목적은 성경이 오류 있는 책이라는 생각에 맞지 않고 오직 성경의 무오성(無誤性)에만 맞다.

요한복음 20:30-31,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성경의 목적은 영혼을 구원하는 것이다. 성경이 불확실하고 오류투성이의 책이라면 이 고결하고 중대한 목적은 실패하고 말 것이다. 

 

      4. 창조의 역사성을 부정한다.

넷째로, 자유주의 신학은 창조의 역사성을 부정한다. 예를 들면, 칼 바르트(Karl Barth)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창조는 그 자체 안에 시간의 시작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그것의 역사적 실상은 모든 역사적 관찰과 진술을 피하며 성경 이야기들에서 순수한 전설(saga)의 형태로만 표현될 수 있다.418)

[바르트는 사가(saga)에 대해 설명하기를, “역사의 선(先)역사적 실상에 대한 직관적, 시적 묘사”라고 하였다.419) 그것은 신화 혹은 전설과 같은 개념이다.]

또한, 씨 에취 다드(C. H. Dodd)는 “비록 바울에게는 그가 실제적 인물로 생각되었을지 모르지만, 아담은 하나의 신화이다”라고 말한다.420)

라인홀드 니이버(Reinhold Niebuhr)도 “창조는 충분히 합리적으로 표현될 수 없는 하나의 신화적 개념이다”라고 말한다.421)

폴 틸리히(Paul Tillich)는 “창조의 교리는 ‘옛날에’ 일어난 사건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과 세상의 관계의 기본적 묘사이다”라고 말한다.422)

본훼퍼(Dietrich Bonhoeffer)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 앞에 과학적으로 매우 천진난만하게 표현된 고대의 세계 묘사를 가지고 있다. 물론 자연에 대한 우리 자신의 지식이 급속히 변화되는 것을 볼 때, 너무 조소하거나 자만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겠지만, 의심할 것 없이 이 구절에서 성경 저자는 그가 살았던 시대에 기인하는 모든 제한성들을 노출하고 있다. 하늘과 바다는 그가 말하는 식으로 형성되지 않았다. 만일 우리가 그러한 진술을 믿는다면, 우리는 매우 나쁜 양심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축자영감(逐字靈感)의 관념이 그것을 피하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창세기 1장의 저자는 매우 인간적인 방식으로 처신하고 있다.423)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에 대해 우리가 흙과 진흙으로 그의 그릇을 만드는 사람에 대해 말하는 방식으로 말할 수 있는가? 신인동형적(神人同形的) 표현들은 더욱 용납할 수 없게 된다. 즉 하나님이 진흙으로 모양을 만드시고 사람이 흙 한줌으로 빚어지는 그릇같이 빚어진다는 표현들말이다. 이것은 확실히 사람의 기원에 관한 아무런 지식도 줄 수 없다. 확실히, 하나의 설화로서 이것은 다른 어떤 창조 신화처럼 부적절하거나 의미 있을 뿐이다.424)

또한, 판넨베르크(Wolfhart Pannenberg)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만일 모든 피조물의 미래가 보편적이라면, 즉 존재하는 모든 것이 같은 미래를 가지고 있다면, 내가 오늘 바라보는 미래는 이전의 각각의 현재가 직면했던 것과 동일한 미래일 것이다. 현재의 나의 미래는 또한 쥴리어스 시저의 미래이었고 선사(先史)시대의 도마뱀의 미래이었고 약 10조년 전 최초의 물질과정의 미래이었다.425)

 

 <성경적 반박>

그러나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셨다는 것은 기독교 신앙의 기본적 내용이 아닌가. 창조를 부정하면 더 이상 무엇을 말할 수 있겠는가. 다음 몇 개의 기본적 성경구절을 인용하는 것으로 만족하자.

창세기 1: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골로새서 1:16,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천지 창조는 기독교 신앙의 기초이며 교리의 첫 번째 지식이다. 천지 창조를 믿지 못한다면 성경의 나머지 중 어느 것도 믿을 수 없을 것이다.

히브리서 11:3,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5. 하나님의 진노의 속성을 부정한다.

다섯째로, 자유주의 신학은 하나님의 진노의 속성을 부정한다. 예를 들어, 씨 에취 다드(C. H. Dodd)는, “하나님을 가장 높은 이상적(理想的) 인격으로 생각하면서 비(非)이성적 진노의 격정을 그에게 돌리는 것은 전혀 논리 일관하지 않다”고 말한다.426)

폴 틸리히(Paul Tillich)도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하나님의 진노는 그의 사랑과 병행하는 하나님의 어떤 감정이나 섭리와 병행하는 어떤 행동 동기가 아니다. 그것은, 그것을 저항하는 것을 거절하고 스스로 멸망하도록 내버려두는 사랑의 활동의 정서적 상징이다.427)

정죄란 피조물이 자기가 택한 비존재(非存在)에로 내버려지는 것을 의미할 수 있을 뿐이다.428)

[하나님의 진노라는 개념은] 하나님의 신성과 그 무조건적 성격과 명백히 모순된다. 그러므로 그 개념은 재해석되든지 혹은 기독교 사상에서 완전히 포기되어야 한다.429)

 

 <성경적 반박>

그러나 하나님의 진노의 속성은 성경의 매우 기본적인 내용이다. 노아 시대의 하나님의 홍수 심판(창 6-8장)이나 소돔과 고모라 성의 유황불비 심판(창 19장)은 하나님의 진노의 속성의 충분한 증거다.

다섯 장으로 된 예레미야 애가서에는 '진노'라는 말이 14회나 나온다. 예레미야 애가 2:1-4, "슬프다 주께서 어찌 그리 진노하사 처녀 시온을 구름으로 덮으셨는고 . . . 진노하신 날에 . . . 노하사 . . . 맹렬한 진노로 . . . 처녀 시온의 장막에 노를 불처럼 쏟으셨도다."

나훔은 하나님의 진노에 대해 밝히 말한다: "여호와는 투기하시며 보복하시는 하나님이시니라. 여호와는 보복하시며 진노하시되 자기를 거스르는 자에게 보복하시며 자기를 대적하는 자에게 진노를 품으시며 . . . 죄인을 결코 사하지 아니하시느니라. . . . 누가 능히 그 분노하신 앞에 서며 누가 능히 그 진노를 감당하랴! 그 진노를 불처럼 쏟으시니 그를 인하여 바위들이 깨어지는도다"(나 1:2-3, 6).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복음의 기본적인 내용으로 하나님의 진노에 대해 분명하게 가르쳤다. 로마서 1:18,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나나니." 로마서 2:5, "다만 네 고집과 회개치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 데살로니가후서 1:7-9, "주 예수께서 저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 중에 나타나실 때에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을 복종치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주시리니 이런 자들이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 사도신경의 고백대로, 예수께서는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기 위해 다시 오실 것이다. 

 

      6.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成肉身)을 부정한다.

여섯째로, 자유주의 신학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이 육신이 되신 것’ 곧 성육신(成肉身)을 부정한다. 예를 들어, 라인홀드 니이버(Reinhold Niebuhr)는, “영원이 시간 속에 들어온다는 개념은 지적으로 불합리하다. . . . 말씀이 육신이 되셨다는 진리는 진리가 보통 판단되는 모든 규범들을 어긴다”고 말한다.430)

또, 불트만(Rudolf Bultmann)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가 성령으로 잉태하여 동정녀에게서 탄생하셨다고 할 때 그의 인격은 신화의 빛으로 관찰되며, 이것은 그가 형이상학적 의미에서 하나님의 아들, 즉 우리의 구속을 위해 사람이 되셨고 스스로 고난을, 그것도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신 한 위대한, 선재(先在)하신 천적(天的) 존재로 이해되는 헬라주의적 기독교 공동체들에서는 한층 더 분명하게 된다. 그러한 개념들은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의 신화들에서 널리 퍼져 있었고, 그 후 역사적인 인물 예수에게 이전되었기 때문에, 그것들이 신화적이라는 것은 명백하다. 특히 인류를 구속(救贖)하기 위해 인간의 모습으로 세상에 내려온 선재하신 하나님의 아들의 개념은 영지주의적(Gnostic, 靈知主義的) 구속 교리의 일부분이며, 아무도 이 교리를 신화적이라고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431)

폴 틸리히(Paul Tillich)는,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셨다는 주장은 역설적(逆說的)이 아니라 부조리한(non- sensical) 말이다”라고 말한다.432)

 

 <성경적 반박>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成肉身)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기본적 사실이다. 요한복음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부정함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부정하는 것이다. 성육신하지 않은 예수는 동명이인(同名異人)인 다른 예수에 불과하다.

실상,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부정하는 것은 적그리스도의 영의 활동이다. 요한일서 4:2-3, "하나님의 영은 이것으로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고백]하는 영마다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고백]하지 않는 영마다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요한이서 7, "이는 미혹하는[속이는] 자들이 많이 세상에 나왔음이니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임하심을 부인하는 자들이라. 이것이 미혹하는[속이는] 자요 적그리스도니라." 

 

      7. 예수 그리스도의 처녀 탄생을 부정한다.

일곱째로, 자유주의 신학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처녀 마리아에게서 나셨음을 부정한다. 예를 들어, 칼 바르트(Karl Barth)는, “그의 어머니가 젊은 부인으로 불리는가 아니면 처녀로 불리는가 하는 옛 논쟁은 그 진정한 의미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말한다.433)

라인홀드 니이버(Reinhold Niebuhr)도 말하기를, “사람들은 처녀 탄생의 원시적 신화에 의해 속임을 당하고, 바로 역사 너머를 가리키기 때문에 의미 있는 그것을 하나의 순수한 역사적 사실로 이해하려고 할 것이다”라고 하고,434) 또 그의 다른 책에서도 “‘처녀 탄생’과 같은 기적들은 후대에 삽입된 생각이다”라고 말한다.435)

불트만(Rudolf Bultmann)도, “후대의 헬라주의적 교회와는 달리 그들은[아주 초기 교회는] 지상의 예수를 (신화적) 하나님의 아들로 간주하지 않았고, 예수의 처녀 탄생의 전설은, 바울에게 그러했듯이, 그들에게도 알려져 있지 않았다”고 말한다.436)

판넨베르크(Wolfhart Pannenberg)도, “기독론적으로, 처녀 탄생의 전설은 그 계시적 사건의 근본적 요소, 즉 예수께서 최초부터 ‘하나님의 아들’이셨다는 것에 대한 한 예비적 표현이라는 의의를 가질 뿐이다”라고 말하며,437) 또 “신학은 예수의 처녀 탄생을, 그의 지상 생애의 기원에 요구되는 기적적 사실로서 주장할 수 없다. 그러한 만큼, 처녀 탄생이 사도신경 안에 들어왔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말한다.438)

 

 <성경적 반박>

그러나 마태복음은 예수께서 처녀 마리아에게서 나셨음을 자세하고 확실하게 증거한다(마 1:18-25). 18절,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 모친 마리아가 요셉과 정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20절, "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25절,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치 아니하더니 낳으매 이름을 예수라 하니라." 성경을 믿는 자는 이 증언들을 부정할 수 없다.

누가복음도 예수께서 처녀 마리아에게서 나셨음을 밝히 증거한다(눅 1:26-38). 34절, "마리아가 천사에게 말하되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37절, "이는 하나님께 불가능한 일은 아무것도 없음이니라"(원문직역).

예수 그리스도의 처녀 탄생의 사실이 그렇게 중요한가? 예수님의 처녀 탄생은 초자연적 사건에 대한 믿음을 판별하는 시금석이 되기 때문에 중요하다. 또 예수께서 성령의 능력으로 처녀 마리아에게서 나셨다는 사실은 그의 신성(神性)과 연관된다. 누가복음 1:35,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으리라." 오늘날 자유주의 신학은 한마디로 하나님의 초자연적 능력을 믿지 못하는 불신앙적 사상이다. 예수께서는 당시 부활이나 천사나 영의 존재를 믿지 않았던 사두개인들에게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한다고 책망하셨다(마 22:29). 

 

    8. 예수 그리스도의 기적들을 부정한다.

여덟째로, 자유주의 신학은 예수 그리스도의 기적들을 부정한다. 자유주의 신학은 처음에 하나님의 초자연적 계시나 초자연적 기적들을 의심하는 성경의 비평적 연구에서 시작되었다.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성경의 초자연적 사건들에 대해 대체로 회의적이다. 몇 가지 예들만 들어보자.

불트만(Rudolf Bultmann)은 말하기를, “[예수께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셨다는] 그 이야기가 이방의 전설에서 취해져 예수께 돌려졌다는 것은 의심할 수 없다. 사실, 그 이야기의 주제(motif), 즉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키는 것은 디오니서스 전설의 전형적 주제이다”라고 한다.439)

요아킴 예레미아스(Joachim Jeremias)도 다음과 같이 말한다.

비평적인 문학적, 언어적 분석을 따를 때, 기적 이야기들의 내용은 매우 상당히 감소된다.440)

예수께서 물 위로 걸으신 이야기(막 6:45-52; 요 6:16-21)도 풍랑을 잔잔케 하신 이야기(막 4:35-41)로부터 언어적 오해의 결과로 발생했을 것이다.441)

우리는 또한 특히 헬라주의적 환경으로부터 당시 유행하는 작품에서, 귀신의 추방, 병 고침, 죽은 자들을 일으킴, 풍랑을 잔잔케 함, 포도주 기적들의 이야기들을 발견한다. 이 기적 이야기들의 어떤 것들은 복음서들의 그것들과 매우 밀접한 접촉을 보이기 때문에, 우리는 기독교적 전통이 그것의 주위 환경에서 빌려왔으며 적어도 그것에서 어떤 개별적 주제들을 이어받았다는 결론을 거의 피할 수 없다.442)

폴 틸리히(Paul Tillich)도 예수 그리스도의 행적 전반에 대해 말하기를, “모든 역사적 지식과 같이, 이 사람[예수님]에 대한 우리의 지식은 단편적이고 가설적이다. 역사적 연구는 이 지식을 방법론적 회의주의에 굴복시키고 본질적인 부분들 뿐만 아니라 각개의 부분들에서도 계속적인 변화에 굴복시킨다”고 한다.443) 

 

 <성경적 반박>

그러나 자유주의자들은 사두개인들처럼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므로 오해한 자들이다. 예수께서는 사두개인들에게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고로 오해하였도다"라고 지적하셨다(마 22:29).

주 예수의 기적들은 은밀하게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모든 사람들 앞에 드러나게 이루어진 것이었다. 사도행전 2:22,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말을 들으라. 너희도 아는 바에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로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너희 가운데서 베푸사 너희 앞에서 그를 증거하셨느니라." 이 구절에서 '너희도 아는 바에,' '너희 가운데서,' '너희 앞에서'라는 말씀들은 예수님의 기적들이 어떻게 공개적으로 이루어졌는지를 잘 증거한다.

제자들은 주 예수께서 행하신 기적들에 대한 목격자요 증인이었다. 사도행전 10:38-39,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붓듯 하셨으매 저가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하셨음이라. 우리는 유대인의 땅과 예루살렘에서 그의 행하신 모든 일에 증인이라."

우리가 성경의 신빙성과 신적 권위를 믿는다면(요 20:30-31; 21: 24), 우리는 성경에 증거되고 기록된 모든 내용을 다 믿을 수 있다. 성경에 기록된 사건들은 진실한 증인들에 의해 증거된 내용들이다. 

 

      9. 예수 그리스도의 형벌적 대속(代贖)을 부정한다.

아홉째로, 자유주의 신학은 예수 그리스도의 형벌적 대속(代贖)을 부정한다. ‘형벌적 대속’이라는 표현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사역이 우리의 죄의 형벌을 대신한 것이라는 뜻을 나타낸다. 이것은 복음의 핵심적 내용이다. 그러나 자유주의 신학은 이 진리를 부정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씨 에취 다드(C. H. Dodd)는, “그러므로 유화(宥和, propitiation)라는 번역은, 진노하신 하나님을 가라앉힘을 암시하기 때문에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으며, 비록 이것이 이교적(異敎的) 용법에는 맞을지라도 성경적 용법에는 생소하다”고 말한다.444)

라인홀드 니이버(Reinhold Niebuhr)는 더욱 사악하게 말하기를,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 위에서 속죄의 죽음을 죽으셨다는 교리는 많은 신학적 오류들로 인도하는데, 그 중에는 인간의 도덕 의식을 모욕하는 대리적 속죄의 이론들이 포함된다”고 한다.445)

불트만(Rudolf Bultmann)도 분명하게 그러나 불신앙적이게 대속의 진리를 다음과 같이 부정한다.

그가 성령으로 잉태하여 동정녀에게서 탄생하셨다고 할 때 그의 인격은 신화의 빛으로 관찰되며, 이것은 그가 형이상학적 의미에서 하나님의 아들, 즉 우리의 구속(救贖)을 위해 사람이 되셨고 스스로 고난, 그것도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신 위대한 선재(先在)하신 천적(天的) 존재로 이해되는 헬라주의 기독교 공동체들에서는 한층 더 분명하게 된다. . . . 특히 인류를 구속하기 위해 인간의 모습으로 세상에 내려오신 선재하신 하나님의 아들의 개념은 영지주의적 구속 교리의 일부분이며, 아무도 이 교리를 신화적이라고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446)

 

 <성경적 반박>

그러나 성경이 증거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의미는 ① 속상 (贖償; expiation), ② 구속(救贖, redemption), ③ 유화(宥和, 진노를 가라앉힘; propitiation), ④ 화목(reconciliation) 등의 용어에서 나타나며, 그 요점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속죄제물이 되셔서 택함받은 자들의 죄책과 형벌을 담당함으로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겼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진리를 증거하는 성경의 많은 구절들 중에 다음 몇 구절들은 아마 대표적인 것들일 것이다.

마태복음 20: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로마서 3:24,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속(救贖)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고린도후서 5:14, 21,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義)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갈라디아서 3: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히브리서 9:12,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 가셨느니라."

히브리서 10:10, 12, 14, "이 뜻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저가 한 제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느니라."

베드로전서 1:18-19,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들에게서 유전된 헛된 행실로부터 구속(救贖)된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

요한계시록 5:9, "일찍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서 우리를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10.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역사성을 부정한다.

열째로, 자유주의 신학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역사성을 부정한다. 우리가 ‘부활의 역사성’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은 자유주의자들도 부활을 믿는다고 언어적 유희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이 말하는 부활은 역사적으로 ‘빈 무덤’을 만든 육체적 부활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적, 육체적 부활을 부정한다. 예를 들어, 칼 바르트(Karl Barth)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리스도의 부활이나 그의 재림은 동일한 것인데 역사적 사건이 아니다.447)

부활은 역사 안에서 일어난 사건(an occurrence)이다. . . . [그러나] 부활은 도무지 역사상의 사건(an event in history)은 아니다.448)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이 역사적으로 발생하였다는 사실에 대해서 아무런 증거도 없고 어떤 증거가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된다는 것이 명백하다.449)

실제로 성경 역사에 결정적 요소들인 창조 이야기와 및 다른 많은 이야기들과 공통적으로, 부활의 역사는 현대 학자들의 사고형식들과 용어로 신화(saga) 혹은 전설로 간주되고 묘사되어야 한다는 것을 대항할 아무런 이유도 없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은 확실히 현대적 의미에서 역사로 생각될 수 있지만, 부활은 그렇지 않다.450)

또, 불트만(Rudolf Bultmann)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바울이 여전히 그것에 관해 아무것도 알고 있지 못한 빈 무덤의 이야기들은 전설들이다.451)

만일 부활절 사건이 어떤 의미로든 십자가 사건에 첨가된 역사적 사건이라면, 그것은 부활하신 주님에 대한 믿음의 발생 이외의 다른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사도들의 설교를 이끌어낸 것은 바로 이 믿음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활 자체는 지나간 역사의 사건이 아니다.452)

폴 틸리히(Paul Tillich)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실존적 소외의 죽음을 극복한 자의 십자가이다. . . . 그리고 그리스도의 부활은, 그리스도로서 자신을 실존적 소외의 죽음에 복종시켰던 자의 부활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단지 하나의 추가적인, 의문의 기적 이야기에 불과할 것이다. . . . 십자가의 이야기들은 아마 역사적 관찰의 충분한 빛 안에서 발생했던 한 사건을 가리킬 것이지만, 부활의 이야기들은 그 사건 위에 깊은 신비의 베일을 덮는다.453)

신들과 반신(半神)들의 부활은 익히 아는 신화적 상징이다. . . . 예수가 그리스도라고 불리는 순간에 . . . 부활 개념이 그리스도에게 적용됨은 거의 불가피하다. 그 상징이 사건이 되었다는 제자들의 주장은 부분적으로, 그리스도로서 메시야가 된 예수에 대한 그들의 믿음에 의존하였다.454)

역사적 연구는, [부활 상징에서] 그것의 주위에 있는 전설적이며 신화적인 자료에 근거하여 이러한 사실적 요소를 찾아내려고 함에 있어서 정당하다. 그러나 역사적 연구는 결코 개연적 대답 이상의 것을 줄 수 없다.455)

판넨베르크(Wolfhart Pannenberg)도 다음과 같이 말한다.

복음서들에 보도된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나타나심들은 바울에 의해 언급되지 않았는데, 그것들은 강하게 전설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 속에서 그 자체의 역사적 알맹이를 거의 찾을 수 없다.456)

그러므로 예수의 제자들의 환상들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부활하신 예수의 나타나심들에 대해서 말하는 사건들의 과정을 재구성하는데 있어서도 가능성이 존재한다. 그렇게 함에 있어서, 우리는 그 제자들 자신과 똑같이 비유적 언어로 말한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그들이 방해를 받지 않았듯이, 우리도  다른 설명의 가능성이 만족스럽지 않을 때 그러한 언어에 의해 표시된 것의 도움으로 사건들의 과정을 이해하는 데 방해를 받을 필요는 없는 것이다.457)

요아킴 예레미야스(Joachim Jeremias)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수난은 며칠의 과정을 거쳐서 예루살렘에서 발생한 관찰할 수 있는 사건이었던 반면에, 그리스도의 [부활] 현현들은 오랜 기간에 걸쳐서, 아마 여러 해들에 걸쳐서 계속된 다른 종류의 다양한 사건들이었다. 전통은 오직 비교적 후대에만 그리스도의 현현들의 기간을 40일에 한정하였다(행 1:3).458)

처음 보기에는, 부활하신 주의 나타나심들이 그 처음 증인들에게 직접적 경험이라는 점에서 무엇을 의미했는지를 찾아내려는 시도는, 우리의 자료들이 그 사건들로부터 수십 년 동안 떨어져 있고 부활에 대한 기사들이 그 동안 정교화되고 여러 점들에서 재구성되었기 때문에, 아주 절망적인 것 같다. 그렇지만, 우리가 그 시대의 사고로부터 시작한다면, 하나의 가설이 시도될 수 있을 것이다.459)

 

 <성경적 반박>

그러나 신약성경의 사복음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육체적 부활에 대해 자세하고 충분한 증거들을 제공한다. 또 사도행전은 부활하신 예수님이 확실한 많은 증거들로 보이셨다고 말한다. "해 받으신 후에 또한 저희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사심을 나타내사 40일 동안 저희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행 1:3). 그런데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증거가 없고 있을 수도 없다고 말하다니 성경을 거꾸로 읽는 자들이다!

또 그 외에도 성경에서 몇 개의 중요한 구절들을 들어보자. 로마서 1:4,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로마서 10:9,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 것은 매우 기본적 신앙이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지 않는 자가 구원받는 것을 상상할 수 없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지 않는 자를 그리스도인이라고 인정할 수 없다.

특히, 사도 바울이 쓴 고린도전서 15장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하나님의 복음의 핵심적 내용임을 증거한다: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15:3-4). 또 그는 죽은 자의 부활의 근거로서 그리스도의 부활을 든다: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이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15:12). 또 그는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今生)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고 말한다(15:19).

덧붙여,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그의 승천과 재림의 진리와 관련된다. 만일 우리가 그의 부활의 역사성, 사실성을 부정한다면, 우리는 그의 승천의 역사성과 사실성도 부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며, 또 그의 재림도 부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11. 보편구원론적 경향을 가진다.

열한째로, 자유주의 신학은 보편구원론적 경향을 띤다. 보편구원론이란 신자나 불신자나 결국 모든 사람이 다 구원받는다는 이단적 사상이다. 예를 들어, 칼 바르트(Karl Barth)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버려두지 않으실 것이기 때문에, 인간은 버림을 당하거나 최종적으로 타락하도록 허용되지 않는다. . . . 하나님의 은혜는 반드시 죄인에게 심판의 형태를 취하지만 그를 포기하지는 않는다. 심지어 심판의 형태 속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는 은혜이기를 중단치 않는다.460)

우리는 하나님의 영원한 뜻에 근거해 모든 인간이, 심지어 가장 쓸데없는 자들, 가장 악하고 불쌍한 자들까지도 예수 그리스도가 그의 형제이며 하나님이 그의 아버지이심을 생각해야 하며, 우리는 이런 생각 위에서 그를 취급해야 한다.461)

씨 에취 다드(C. H. Dodd)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가 참으로 한 하나님을 믿는다면, 또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의 인격과 행위에서 하나님의 인격과 사람들에 대한 그의 태도가 무엇과 같음을 참으로 우리에게 보인다고 믿는다면, 우리는 어떻게든 그의 사랑이 모든 사람을 그와의 연합으로 이끄는 길을 찾을 것이라는 믿음을 떠나 생각하기가 매우 어렵다.462)

후기 서신들에서 교회는 참으로 보편적이다. 왜냐면 내적 필요에 의해 그것은 궁극적으로 모든 인류를 포함해야 하며 화목된 우주의 중심을 형성해야 하기 때문이다.463)

오스카 쿨만(Oscar Cullmann)도 비슷한 사상을 보인다.

신약성경에 의하면 기독교 보편주의가 있다. . . . 그것은 창조에서 그러하다: 모든 것이 그리스도를 통해 창조되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서 그러하다: 모든 것이 그를 통해 화목된다. 그것은 종말론적 완성에서 그러하다: 모든 것이, 모든 것에서 모든 것이신 하나님께 복종된다.464)

하나님의 선택은 모든 인류의 구원이라는 목표를 향한다.465)

우리는 모든 구원역사가 처음부터 보편주의적 방향을 띤다는 것을 보았다. ‘돌아가는 노선’은 유대인과 이방인으로 구성된 교회에 이르며, 그 다음에는 전 세계에 이른다. 비록 그리스도의 부활 후에도, 구원 역사는 여전히 선택 원리에 따르지만, 이제 선택은 이전보다 더, 단순히 구원을 선택된 자들에게 제한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고, 구원을 세계에 선포하는 특수 사명을 위한 선택을 의미한다. 그것이 모든 구원 역사의 길이다. 즉 보편주의는 그것의 목표이며 집중(concentration, 선택)은 그것의 실현의 수단이다. 여기에서 그 길은 심지어 비기독교 종교들, 더 잘 표현하면, 성경 밖의(extra-biblical) 종교들에게도 열려 있다. 왜냐한면 유대교는 물론 좁은 의미에서 구원 역사에 속하기 때문이다.466)

판넨베르크(Wolfhart Pannenberg)도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의 죽음에서, 예수는 하나님과의 분리의 결과, 즉 죄에 대한 형벌을 단지 그의 백성을 대신해서가 아니라 모든 인류를 대신해서 짊어지셨다. 그러나 그를 통해 하나님이 버리신 죽음은 모든 사람을 위해 극복되었다. 더 이상 아무도 홀로 그리고 소망 없이 죽을 필요가 없다. 왜냐면 하나님과의 교통이 그 내용인 새 생명은 이미 예수 안에서 나타났고 그 자신이 그 새 생명에 장차 참여할 것이라는 소망은 확립되었기 때문이다.467)

창조적 사랑은 자유에서 나오며 세상에서의 자유의 긍정과 창조로 향한다. 만일 인류의 통일이--그것이 역사의 목적인데--어느 날 실상이 된다면, 그것은 이 사랑에 의해 성취될 것이다.468)

물론 예수의 죽음의 대리적 효과는 이제 그가 우리를 위해 죽으셨으므로 아무도  죽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단지 이제부터는 아무도 더 이상 홀로 죽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왜냐하면 그는 특히 죽음에서 예수의 죽음과 교통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인간적 죽음과 예수의 죽음 간의 이 교통은 예수의 죽음의 대리적 의미의 본질적 내용이다.469)

 

 <성경적 반박>

그러나 보편구원론은 명백히 비성경적 이단 사상이다. 신구약성경은 우리의 신앙과 생활의 유일한 규범이다. 우리는 성경을 넘어서서는 안 된다. 성경에는 서로 전혀 다른 두 개의 궁극적 상태와 처소가 언급되어 있다. 주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시기를,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고 하셨다(마 7:13-14). 또 어떤 이가 "주여 구원을 얻는 자가 적으니이까?"라고 물었을 때, 그는 말씀하시기를,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고 하셨다(눅 13:23-24). 최종적으로 멸망할 자들이 있을 것인가? 예수께서는 그렇다고 대답하셨다.

또 요한계시록은 회개치 않은 악인들은 장차 지옥 불못에 던지울 것을 밝히 증거한다: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20:15),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여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21:8). 

자료출처 http://www.oldfaith.net/03modern/01자유주의신학.htm

이 글 공유하기

독자 의견

댓글이 없습니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