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바르트와 타자의 해석학 정승훈 / 센프란 시스코 신학대학원, 영성연구소 2007-08-14
1. 시작하는 글
기독교의 '타자'를 인정하고 그 성숙성에 관한 다원주의적 논쟁들은 특히 북미의 신학계에서 영성, 해석학, 포스트 모던주의 이론과 엮어져 복잡하게 나타나고 있다. 논쟁들을 주의 깊게 살펴볼 때, 흔히 언급되는 것처럼 배타주의적 주장이나 포용주의적 입장 또는 다원주의적 입장으로 명쾌하게 갈려나가지 않는다. 이러한 이론적 상황 때문에 '혼란'으로 또는 '절충'으로 그런가하면 '반격'으로 신학의 입장들이 드러난다. 그런가하면 종래의 신중심(Theocentric)신학을 근거로 타종교의 차별성을 보편성으로 묶었던- 예를 들어 '통전자로서의 하나님'- 그룹들은 뒤늦게 세계의 고난의 현실에 눈을 돌리기 시작하고 종교간의 대화의 문제에 이데올로기 비판적인 해석학을 보충하기 시작한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어째든 포스트모던 사유가 근대성에 관한 '계몽의 기획'에 대해 일사불란하게 해체적인 태도를 공유한다는 점에서, 그 동안 에큐메니칼 대화들을 통해 북미의 신학계에 나름대로의 영향을 미쳐왔던 유럽의 신학들, 예를 들어 칼 라너나 몰트만의 신학은 급진적인 종교다원주의들이 벌이는 논쟁에서 뒷전으로 밀리는 추세를 보이기도 한다. 종교신학자들이 주장하는 급진적인 기독교의 상대화(Relativization of Christianity)- 대표적으로 쟌 힉(John Hick)이나 폴 니터(Paul Knitter)- 시도들은 아시아 신학자들에 의해 새롭게 비판적으로 조명된다.
하버마스는 프랑스의 포스트모던 철학을 요약하면서 니체 철학을 근대성의 품질상표인 이성의 껍데기를 분쇄하고 "이성의 타자인 신화" 속에 안주하는데 있다고 진단한다. 여기서 주체 중심적 이성은 이성의 타자인 신화의 세계와 부딪치게되고, 주체중심의 이성과 권력의지와의 연계가 폭로된다. 니체의 길을 통해 회의와 해체의 대가로 변신한 일군의 프랑스철학자들은 근대성의 기획인 '주체=이성'의 허위에 찬 등식을 공격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포스트모던 상황에서 이성은 절대적이거나 선험적이라기보다는 상황적이며 상대적이다. 지식과 권력은 서로 연계되어 있으며 이제 계보학(Geneology)이 비판을 대체한다. 정치적 실천은 쉽게 정당화되지 않고, "일상생활의 마크로 파시즘"에 대항하는 게릴라전의 성격이 포스트모던주의의 실천으로 드러난다.
그런가하면 쟈크 데리다에 의해 붙여진 '현존의 형이상학'(A Methaphysics of Presence)은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칸트와 헤겔 그리고 하이데거에 이르기까지 서구사상이란 은폐된 진리를 명증한 언어로 재현하는 것을 목표로 해왔고, 여기서 이성중심적(logocentric)추구가 결정적인 역할을 해왔음을 파헤친다. 결국 이성 중심주의는 항상 '불확실한 것', '적합하지 않은 것', 이성과는 '다른 것'을 배제한다. 다시 말해 이성은 '다름'에 대해 무차별하며 결국 자유와 해방이라는 '거대담론'아래 근대성은 축소되고 왜곡된 자유와 해방을 부여해왔을 뿐이다. 그런가하면 주체의 종언을 부르짖는 포스트모던주의의 반격에 대해 해석학적 사유는 포스트모던주의의 '의심과 해체전략'을 '해석들의 갈등'(Conflict of Interpretations)으로 수용하면서 타자의 문제를 새롭게 독해해나간다. 가다머의 영향사적 개념에 근거된 지평융합론은 료타르(Lyotard)의 불가공약성(Incommensurability)에 병행하는 해석학적 제한성을 말한다. 다시 말해 각각의 다른 역사와 문화적 지평에 서있는 해석자들은 같은 텍스트를 해석하더라도 다른 해석에 도달할 수밖에 없다 즉, 다른 것은 다른 것으로 그 고유성이 인정되어야 한다.
철학과 사회과학에서 벌어지는 해석학과 포스트모던주의의 논쟁들이 신학의 영역으로 들어올 때, 그것은 종교다원주의 상황과 맞물려 한층 더 복잡하고 급진적으로 전개된다. 거대담론에 속하는 '하나님', '세계사적 구원', '그리스도의 중심성'은 해체되든 재해석되든지 간에, 지금까지 투명한 것으로 제시되어왔던 모든 교리적 진술들은 포스트모던 주의자들의 총공격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런가하면 종교신학자들의 근대적 기획- 예를 들어 통전자(Integrator)로서의 하나님 또는 신중심적(Theocentric)인 시도들을 통해 종교간의 차별성을 급진적으로 상대주의화하고, 이러한 상대화를 보편적으로 넘어서려는 시도들- 에 대한 포스트모던 신학자들의 날카로운 공격과 이에 대한 종교신학자들의 반격 역시 21세기 문화와 종교의 이론적 다원성을 풍부하게 한다.
이 글에서 시도하는 것은 칼 바르트에 대한 하나의 해석이다. 바르트를 해석학이나 종교다원주의와 연관시켜 다룬다는 것은 시대착오적이고, 별 다른 의미가 없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바르트의 초기저작들이나 교회 교의학의 문제를 검토해볼 때 바르트 신학은 하나님, 인간, 세계의 문제들을 해석학적으로 깊게 연관시킨다. 초기 바르트의 로마서 주석과 후기의 교회 교의학의 이론적인 연계는 이미 유럽의 신학계에서 바르트 신학을 좌파적으로 해석하는데 수장의 역할을 해온 헬무트 골비처(Helmut Gollwitzer)나 마르크바르트(F.W Marquardt) 또는 그의 동료들에 의해서, 그런가하면 종교사회주의적인 입장을 견지하는 단네만(U. Dannemann)에 의해 주목되고 해명되었다. 이들의 주된 관심은 바르트 신학의 중심문제로 등장하는 신학과 정치 사회적 연관성의 문제에 있는데, 특히 '하나님 나라의 현실성'이라는 전망을 통해 초기 로마서 주석과 교회 교의학과의 이론적 연속성을 정치 사회적 성격에서 해명하려고 한다. 그러나 이들은 바르트가 '하나님의 인간성'과 '사회적 존재로의 인간의 인간성'의 문제를 어떻게 해석학적으로 반성하는가 하는 문제에는 별다른 진전을 보지 못했다. 그러나 이 지점은 사실 바르트가 문화와 타 종교들의 성숙성에 대해 어떤 해석학적 반성을 했는지 알게 하는 중요한 영역에 속한다. 이 분야가 명쾌하게 해명될 때- 물론 바르트는 이 영역을 하나의 숙제로 남겨놓았고, 해석을 필요로 한다- 포스트모던주의 길목에 서 있는 바르트의 신학은 종교다원주의 신학에 건설적인 비판의 파트너가 될 수 있다.
2. 바르트의 해석학
해석학은 인간을 의미부여하는 주체로 파악함으로써 사회적 실제와 문학적 텍스트에 주체로서의 인간을 위치시키며, 의미를 보존하려고 한다. 하이데거의 과제는 존재의 물음을 복권하고, 보편 해석학의 신 칸트적 틀인 주객도식의 이원론을 무너뜨리는데 있었다. 칸트의 선험적 구상력의 철학에 대한 창조적 수용을 통해 하이데거는 이해를 존재방식으로 재 정의한다. 그래서 하이데거는 주체성과 객관성에 앞서 '세계-내-존재'의 우위성을 확보한다. 이러한 존재론적 해석학은 슐라이에르마허나 딜타이의 해석에 깔려있는 심리적인 한계를 극복한다. 그러나 하이데거는 딜타이에 의해 규정된 생의 표현으로서 비판과 방법에 대한 해석학적 정당성의 문제를 무시해버렸다. 하이데거가 무전제적 출발점을 전이해적인 상황으로 대체할 때, 니체, 프로이드, 마르크스는 '전이해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비판적인 물음을 제시하고 있었다. 이들은 '의심의 대가들'이었고, 권력의 왜곡에 대한 분석들을 통해 세계와 인간의 사회적 조건에 대한 의심의 해석학적 지평을 열고 있었다.
신학적 해석학의 영역에서 에벨링은 해석의 중심문제가 말씀사건을 동반하는 이해론(Lehre vom Verstehen mit dem Wortgeschehen)에 있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말씀사건의 이해는 언어자체에 관한 이해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언어를 통한 이해'가 중요하게 부각된다. 말씀은 이해의 대상이라기보다는 인간의 이해를 열어주고 매개시킨다. 그러므로 말씀이 사건화 되는 곳에서 이해가 가능해진다. 해석학은 말씀과 관계함으로써 사회적 현실에 관계된다. 그리고 이 현실은 말씀을 통해서 이해된다. 여기서 우리는 슐라이에르마허 이후 신학적 해석학에서 잊혀져 온 해석학의 '사회적 기반'(Soziale Basis der Hermeneutik)을 에벨링의 시도를 통해 얻게된다.
해석학이 하이데거에 의해 칸트 이후 주객도식의 형이상학적 이원론의 극복이라는 과제를 가지고 시작되었을 때, 불트만은 특히 이 개념을 자신의 실존주의 신학에 유용화 하면서 핵심적인 의미를 갖게 했다. 또한 하이데거의 인간 현존재 분석은 성서가 말하는 죄와 죽음아래 서 있는 인간에 대한 기술과 상응한다. '나의 실존의 비본래성에서 어떻게 본래성으로 결단' 하는가 하는 불트만의 물음은 하이데거의 현존재 해석에 대한 신학의 반향이다. 하이데거의 철학은 인간 실존이해에 가장 적합한 개념을 불트만에게 제공한다. 실존철학은 자기자신을 잃어버린 인간의 비본래성(Uneigentlichkeit)을 깨우치게 하며 여기서부터 자기실존을 책임 있게 결단함으로서 그의 본래성(Eigentlichkeit)에 이르도록 요구한다. 불트만은 해석학의 문제(Das Probelm der Hermeneutik)에서 인간실존의 전이해는 해석학의 필수 불가결한 요소임을 밝힌다. 본문에 대한 질문은 인간존재의 잠정적인 이해 다시 말해 실존이해에 의해 유도되며 이러한 전이해와 여기에 동반되는 질문 없이 본문은 침묵할 수밖에 없다. 실증주의 역사주의와는 달리 실존론적 해석학은 역사를 실존의 역사성에서 파악하는 점에서 주객도식관계의 이원론적 세계관을 극복한다. 역사의 원천 속에는 인간실존의 결단과 자유로운 가능성들이 표현되어있다. 결국 역사의 중심테마는 인간실존의 가능성으로 파악되며 여기서 우리는 포이에르바하의 종교비판- '신학의 비밀은 인간학'- 이나 인간의 전이해에 이미 정치 사회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이데올로기(종교)에 대한 마르크스의 비판을 쉽게 떠올릴 수 있다.
'하나님의 인간성'이나 또는 '인간의 인간성'이 아니라 불트만에게는 인간의 '실존론적 역사성'이 그의 해석학의 중심으로 등장한다. 바르트는 불트만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인간의 문제가 함께 설정되어 있음을 본다. 그러나 그의 관심은 '하나님의 인간성'과 '인간의 인간성'의 문제를 사회적으로 연관지음으로써 그의 신학의 성격을 사회 해석학 적으로 전개해간다.
지금까지 해석학이 내용적 사실(Sache)에 관한 '이해방식'을 중요과제로 삼았다면, 바르트의 관심은 자유주의 신학과 문화 개신교와는 달리 '신학의 내용적 사실'(Sache)로 되돌아가길 원했다. 다시 말해 역사나 심리학과는 구분되는 신학의 특수한 것-이것이 바르트가 말하려고 한 것이다. 그러나 신학의 사실적 내용 내지 사실성(Sachlichkeit)에 관한 논쟁은 역시 해석학적 프로그램을 전제할 수밖에 없다. 칼 바르트는 '오늘의 신학적 실존'(1933)에서 '(사회적) 상황을 향한 말씀'(Zur Lage)과 '내용을 향한 말씀'(Zur Sache)을 구분 짖고 신학의 실존은 모든 정치 사회적 상황에 필연적으로 연관되어 있으며, 이 연관성을 신학의 사실적 내용에 해석학적으로 매개하려고 했다. 다시 말해 성서적 진술은 일차적으로 성서적인 상황과 연관시켜 주석적으로 취급되지만, 그러나 그것은 동시에 '성서와 우리의 시간적 간격을 뛰어넘는' 해석학적 매개(Hermeneutische Vermittlung)와 실천을 통해 시대적 상황을 위한 말씀으로 파악되어야 한다. 여기서 바르트는 신학의 사실적 내용, 예를 들어 계시와 같은 개념은 단순히 객관적이며 무시간적으로 주어진 형이상학과는 상관없는 것임을 밝힌다. 신학의 사회사적인 실존 속에서 바르트는 모든 교의학적 진술들- 예컨대 신론, 그리스도론, 교회론 등- 을 역사, 사회적인 것으로 파악했고, 동시에 교회에 위임된 실천적인 과제로 이해했다. 이런 관점에서 바르트는 해석학적 신학에 필수 불가결한 실존개념을 포기하지 않는다. 신학의 정치사회적 실존을 통해 바르트는 하이데거- 불트만의 개인주의적 실존론적 신학과는 다른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의 인간성문제'를 해석학적으로 해명함으로써 그의 교의학적 진술들을 히틀러에 대한 저항과 정치해방의 운동에 연관지을 수 있었다.
그러므로 바르트의 해석학적 관심은 불트만과는 달리 그의 초점을 인간의 정치 사회적 조건에 맞춘다. 이 조건은 사회적, 역사적, 문화적, 종교적인 총체적 인간의 삶의 자리를 의미한다. 인간의 본성에는 거룩한 것을 단순한 객체로 고정시키고 우상으로 변조해버리는 악의 경향 즉 신화론적인 경향(Mytholoische Tendenz)이 있다. 틸리히의 언어로 언급한다면 이러한 경향은 종교의 성례전적 차원의 타락을 말하는데, 이 차원이 마술적인 것으로 전락해버릴 때 이에 대한 비판으로 신비주의적 운동과 윤리- 예언자적 운동이 발생하게 된다. 틸리히가 종교의 세 가지 차원 즉 성례전적 기반, 신비적 및 예언자적 차원을 통합하는 "구체적인 정신의 종교"- 이 차원에서 신율적 요소가 발생한다- 를 그의 문화 해석학의 중요한 방법으로 고려한다면, 바르트는 초기에 신화와 우상을 만들어 가는 인간의 사회 문화적 이데올로기에 대한 비판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바르트에게 의미 있는 것은 살아있는 것을 죽어버린 객체로 만들어버리는 악마적인 경향을 폭로하고, 그 비판을 통해 새로운 의미로 회복시키는데 있다. 이 과제를 위해 의심의 대가들이었던 니체, 포이에르바하, 마르크스의 해석방식이 바르트에게 중요한 이론의 도구로 등장한다. 의심의 대가들의 해체와 기존질서에 대한 파괴는 현실성의 새로운 구축을 향한 지평을 개방한다. 이런 점에서 니체, 포이에르바하, 마르크스는 바르트에게 해석학의 사회적 차원과, 이미 실존의 전이해에 영향을 주는 신화론적인 이데올로기에 주목하게 한다.
불트만의 실존론적 해석학은 바르트에 의해서 사회, 역사적 지평으로 수정되고 확대된다. 하나님은 만유 안에 계시며(Alles in Allem), 인간존재의 총체성에 관심 하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존재는 현실을 새롭게 조명할 뿐만 아니라 실제로 세계에 속한 모든 것들을 변혁하신다(CDII/1, 258). 하나님의 존재는 개인의 내적 종교성에 대한 단순한 갱신이 아니라 현실세계의 변혁을 의미한다. 정치, 문화, 자연은 실제적으로 하나님의 변혁의 대상이 되며, 동시에 화해의 대상이 된다. 이것은 바르트가 표현하려는 사회에 대한 신율성의 차원이다. 적어도 인간은 하나님을 떠날 수 있지만, 하나님은 인간을 버리지 않는다. 이른바 바르트에게서 본래적 사실로서 임마누엘의 현실(Urfaktum Immanuel)은- 일본의 뛰어난 바르트 학자인 다키자와(K. Takizawa)는 이 내용을 근거로 바르트 신학과 선불교의 대화의 출발로 삼은 적이 있다- 타종교와의 만남에서 중요한 출발점을 제공한다. 마르크스의 포이에르바하의 11테제가 바르트의 하나님의 이해에 수용되며, 마르크스의 유물론 안에 육체의 부활의 메시지가 숨겨져 있다고 마르크바르트가 진단할 때, 그것은 본래적 사실인 임마누엘이 바르트에게서 '하나님의 혁명'과의 연관시켜 이해되고 있음을 말한다. 바르트의 전적타자는 몰트만이나 융엘이 오해하는 것처럼 인간의 경험적 현실과 무관한 형이상학적 은유가 아니라 실제적으로 인간의 모든 불의한 상황을 변혁하시는 하나님의 이름이며, 동시에 역사의 악과 사회의 불의에 전적인 타자로 존재하시는 분임을 말한다. 그리고 이 타자인 하나님은 만유 안에 계시며 만유 안에서 일하시는 분이다. 이 하나님에 대한 사회적 실존경험과 해석학적 이해는 바르트 신학의 특징에 속한다.
3. '하나님의 혁명론': 해석학과 사회분석의 통합개념
바르트의 가난한 자의 해석학은 로마서주석을 쓰던 정치 사회적 상황과 밀접한 연관을 갖는다. 바르트의 종교사회주의 비판은 그가 노동자의 상황을 종교적으로 해석하지 않은데서 나타난다. 그것은 해석의 문제가 아니라 변혁의 문제였고, 노동자의 사회적 상황을 성서해석의 중요한 대상으로 파악한다. 불트만과 바르트는 자유주의 신학의 배경에서 출발했지만, 불트만이 성서를 개인의 실존과 그 존재론적 구조(존재와 시간)에서 해석했다면, 바르트는 역사적 실존과 그 사회적 구조(인류의 사회사의 관점에서)에서 해석한다. 여기서 바르트 사고의 이해는 마크부르트학파에서 포이에르바하로 그리고 마르크스로 이어지는 헤겔 좌파적 선회를 그린다. 바르트와 불트만이 갈라서는 것은 이들이 역사와 사회적 현실성에 대한 서로 다른 해석학적 관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1919년 탐바하 강연(Tambach Vortrag)에서 종교사회주의자들과의 결별이 예고된다. 여기서 바르트는 사회안에 있는 기독교인들의 과제를 정치사회적으로 어떻게 사회현실과 중재할 것인가 대해 관심 한다. 하나님이라는 단어는 인류를 포함하며 세계와 사회 속에 있는 인간의 존재를 포함한다. 불름하르트와 더불어 바르트는 하나님을 믿는 것은 인간성을 믿는 것이며, 그리고 인간성을 믿는다는 것은 세계의 실제적 변혁과 갱신으로 인도한다는 사실에 동의한다. 사회는 자체의 중심을 가지고 있으며, 이러한 규칙이 하나님의 빛 안에서 상대화된다고 할지라도 사회적 삶을 지배하고 규제한다. 그러나 인간의 업적과 인간의 사회는 바르트가 부른 "운동"내지 "근원" 즉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서 하나님의 역사를 만난다. 이 하나님의 역사가 인간의 역사로 개입해 들어오며, 세계와 사회를 변혁한다. 사회 속의 기독교인은 하나님 나라의 빛 속에서 사회의 비영속성(Impermanence)을 인식해야하며, 동시에 하나님의 개입은 인간의 전체적인 삶에 대한 비판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기독교인의 사회적 항거와 비판은 하나님 나라운동을 향해 통전적인 부분이 되어야한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는 인간의 저항과 비판을 넘어서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모든 인간의 혁명을 넘어서 있는 진정한 혁명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하나님 나라의 종말론적 성격이 강하게 부각된다. 사회는 이제 미래의 희망의 삶의 전망가운데 서 있게 되며 전적인 타자(totaliter aliter)로서의 하나님의 현실은 교회와 사회와 문화에 대한 변혁의 근거가 된다. 하나님나라의 운동의 근원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불트만 처럼 실존론적 이해를 위해 비신화화 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 변혁적으로 비신화화된다. 이 '전적 타자'는 하나님의 현실성과 세속화된 사회현실을 매개하며, 기존의 부르주아 사회와 문화의 전복을 의도하는 인간의 새로운 세계로 이해된다. 바르트의 해석학적 전이해는 개인주의적 실존론적 전이해가 아니라 변혁의 시기에 사회적 존재로서 인간이 갖는 급진적인 '하나님의 혁명'에 대한 전이해를 말한다.
로마서 1판에서 수행되는 레닌 혁명과의 비판적 대결은 그리스도안에서 열려지는 '자유의 저항운동'(Gegenbewegung der Freiheit)을 통해 일체의 인간적 실존의 소외와 물화에 대항하는 하나님의 혁명으로 독해된다. 그리스도안에서 제기되는 것은 도덕적 윤리의식이 아니라 사회적 토대에 대한 인식과 거기서 산출되는 실천에 상응하는 '하나님의 운동'이다. 여기서 바르트는 이론과 실천의 통합을 하나님의 운동의 관점에서 파악한다(롬1.392). 특히 골비처는 이것을 이후 바르트신학의 정치신학적 전개를 해명하는 중요한 해석학적 전제로 파악하며, 존재와 당위, 사회적 현실성과 인간의 실천의 모든 이분법이 바르트에게서 지양되고 있음을 밝힌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행동은 '은총의 고유한 능력'을 근거로 하나님의 행동과 함께 고려된다. 은총의 고유한 능력은 자유롭고 선하며 하나님으로부터 흘러나오며, 하나님을 향해 지향된 인간의 의지이다.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행동과 우리의 하나님을 향한 행동사이에는 어떠한 동요가 있을 수가 없다. "은총아래 서있는 인간은 스스로 만들어 가는 존재와 같다"(롬1.169). 여기서 마르크스주의에 의해 비판적으로 제기되어온 '은총과 인간의 자기창조의 반립'은 바르트에 의해 신학적으로 극복된다. '인간은 자신이 스스로 실천을 통해 창조해나가는 존재'라는 마르크스의 인간의 자기창조의 테제는 바르트에게 은총의 근본적 사유로 수용된다. 그리고 이 은총은 타종교와 문화 속에 여전히 그 영향력을 행사한다. 적어도 바르트의 은총신학은 보편적인 문화구조를 갖는다.
'하나님의 혁명 운동'은 사회 문화적 대립들 속에서 근본적으로 '밑으로부터의 운동'(eine Bewegung von unten her)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일방적으로 열악한 자, 비천한 자의 하나님이지 부유한 자들의 하나님이 아니기 때문이다(롬1.367). 가난한 자를 위한 하나님의 당파성에 대한 해석학적 이해를 통해 바르트는 급진적인 사회민주당과의 협력을 중요하게 여긴다. 그리고 이러한 사고는 레닌의 혁명론에 접근해간다. 일차적으로 바르트는 부르주아 사회에 대한 레닌의 급진적 비판과 자신의 비판사이에 일정한 친화력이 있음을 본다. 그러나 바르트는 레닌의 프롤레타리아 독재개념을 거절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국가를 또 다른 국가기구로, 그런가하면 '프롤레타리아에 대한 독재'로 대체하기 때문에 보수적일 수가 있다. '레닌주의 이상으로'(Mehr als Leninismus),(롬1.379)- 이것은 바르트가 견지하고 있던 정치적 이해이며, 하나님의 혁명은 기존의 국가를 개선하는 것이 아니라 대체하는 것이며, 정의의 힘을 통해 부정의 폭력을 위에서부터 밑에까지 해체하는 것을 말한다(롬I.377).
마르크바르트 해석에서 바르트의 신론이 레닌의 혁명개념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는 것은 무리가 있다. 그리고 바르트의 정치적 입장을 레닌의 관점에서 '무정부주의적'으로 규정하는 것은 마르크바르트가 바르트의 정치적 입장을 2차 인터내셔날과 3차 인터내셔널의 이론적, 실천적 방황의 기로에 서 있었던 스위스 사회민주당에 자리 매김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로마서 주석 1판에서 바르트는 오히려 레닌을 무정부주의자로 역 규정하고 있으며, 바르트의 개혁과 혁명의 변증법적 역동성을 고려해볼 때 바르트는 로자 룩셈부르크의 급진적 사회주의와 흐름을 같이한다. 특히 클라라 제트킨의 불름하르트에 대한 존경, 불름하르트의 급진적 사회주의적 입장 그런가하면 로버트 그림(Robert Grimm)이 이끌던 스위스 사회민주당의 급진적 강령들은 무정부주의적으로 이해되기는 무리다.
로마서 주석 2판에서 바르트는 하나님의 혁명을 '비판적 초월'(Kritische Transcendenz)로 자리 매김 한다. 로마서1판 주석에서 하나님의 혁명과 연관되는 인간의 해방실천은 '은총의 고유한 능력'을 통해 서로 불가분의 관계를 갖지만, 이제 그는 하나님과 인간사이의 "파렴치한 동일성"(Unverschamte Indenfikation)을 경고하기 시작한다. '하나님과 인간사이의 무한한 질적 차이'(키엘케고르)는 러시아의 혁명에서 벌어지는 백군파와 적군파들 간의 참상, 혁명가들의 보수화, 여전히 가난한 자들과 소외된 자들의 억압의 현실을 보면서 정치적으로 수행된다. 여기서 바르트는 그의 유명한 위기신학(Theologie der Krisis)의 길로 들어선다. 하나님은 모든 인간을 위기로 몰아넣으시는 분이다. 전적타자(동시에 모든 것을 전적으로 새롭게 변혁시키시는 분)인 하나님은 인간에 대해 긍정과 부정의 양 계기를 갖는다. 바르트는 위기를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부정에서 하나님의 긍정으로 해석한다. 그러나 여전히 로마서주석 2판에서 바르트는 그리스도안에 존재하는 혁명(롬2.180)을 포기하지 않는다. 이 혁명은 도처에서 사슬에 매여있는 모든 존재들을 해방하는 자유의 회복을 의미한다. 로마서 주석2판에서 바르트의 정치해석학은 1)이데올로기비판 2)개혁정치 3)저항윤리로 요약된다. 심판자(II.1-3)의 항목에서 바르트는 주장하길, 인간은 중심의 자리에 서기 위해 하나님을 이데올로기로 만들어버린다고 분석한다(롬2.73-74). 하나님과 인간을 혼동하는 이데올로기에 대한 비판은 인간의 허위의식에 대한 공격으로 드러난다. 물신숭배를 통한(롬2. 50) 우상작업은 인간을 진리가 아니라 거짓으로 이끌어간다. 여기서 역사는 권력과 지성을 소유한 자들이 연약한 자들을 지배하고 억압하는 각축장이요, 생존투쟁(Kampf ums Dasein)의 장이 되어버린다. 비록 혁명가들은 정의와 자유를 실현한다고 했지만 정반대의 결과를 가져왔다. 여기서 기독교인의 정치윤리는 현존하는 모든 것에 대한 의심과 부정의 시선에서 움직인다.
비판적 초월로서 '하나님의 혁명'은 여타의 혁명적인 이데올로기뿐만 아니라 체제 옹호적인 보수적인 견해를 단죄한다. 바르트의 견해에 따르면 교회와 국가, 법과 사회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유하는 자들은 부르주아들이다(롬2.477). 이들은 자신들의 권력, 소유, 출세를 향유하기 위해 생존투쟁을 전개한다. 이것은 적어도 "위로부터 시작되는 계급투쟁"의 측면을 말한다(롬2.433). 위로부터 행해지는 계급투쟁의 상황에서 동료인간들은 적이 돼버린다. 이것은 계급의 적대감을 유발하며, 권력과 지성의 이익을 얻어내기 위한 부르주아들의 투쟁이다(롬2. 77). 계급사회는 가난한자들을 위한 인권과 자유와 평화를 창출할 수 없다. 이것이 바로 혁명을 낳게 하는 사회적 원인이다. 혁명의 탄생은 모든 기존의 질서 속에서 악이 있음을 간파하는 데서부터 시작된다(롬2.480). 혁명가들은 적어도 이러한 악을 근절하기 위한 하나님의 사람들이며, 새로운 질서와 권리를 수립하려고 한다(480). 그러나 혁명의 결과들을 분석해볼 때 혁명가들은 오히려 보수적인 부르주아들보다 더 위험한 경향을 보인다.
러시아에서 벌어지는 계급사회의 혁명적 전복은 반혁명의 길이 아니라 개혁정치의 길을 고려해야한다. 적어도 바르트에게서 혁명과 개혁은 로자 룩셈부르크처럼 대립적인 관계가 아니라 서로 보완적이다(롬2 .455-475). 혁명과 개혁은 변증법적인 관계에 있다. 아무리 급진적인 혁명일지라도 기존체제를 승인하고 정당화해주는 우를 범할 수 있다. 혁명과 개혁은 하나님의 혁명의 빛에서 조명될 때 그 보수성이나 또는 절대화의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다. 혁명가들은 이제 러시아에서 새로운 권력 엘리트들로 변신해버렸고, 인권과 자유라는 허울좋은 이데올로기로 사회의 독재를 강화한다. 러시아의 혁명에서 여전히 가난한자와 비특권층들은 새로운 권력 엘리트들에게 억압당한다. 여기서 바르트는 러시아혁명을 사회적으로 분석하고 해석하면서, 하나님의 혁명과 종교개혁의 은총론을 결합한다. 하나님의 은총은 혁명적이다. 로마서 1판 주석과는 달리 하나님의 혁명은 우리의 외부에서(extra nos) 그러나 우리에게 저항해서(contra nos) 일어난다. 로마서 주석 1판과는 달리 인간들은 더 이상 하나님의 혁명의 동역자들이 아니다(롬1. 145,151,286). 바르트는 혁명비판을 통해 볼셰비키스트들을 자기반성과 자기비판으로 안내한다. 그들은 보다 많은 사회정의와 민주주의적 평등함을 위해 개혁정치를 진지하게 고려해야한다.
결론적으로 바르트의 로마서주석 1판과 2판에서 드러나는 가난한 자의 해석학은 이후 바르트 전체신학의 중심에 자리하게된다. 하나님문제와 변혁과 사회적 빈곤의 문제는 사회 분석적으로 그리고 동시에 해석학적으로 통합되어 나타난다. 바르트의 로마서주석 2판은 일약 바르트를 유명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문제는 로마서 주석1판과의 관련에서 읽혀지지 않았다. 하나님의 절대성, 위기, 개인의 실존등의 개념들이 바르트의 신학을 19세기 신학으로부터 갈라놓는 소위 변증법적 신학으로 파악하게 했다. 바르트는 자펜빌에서 여전히 정치 사회적 투쟁에 관여하고 있었고, 러시아의 혁명상황에 주목하고 있었다. 신학적으로 바르트는 가난한 자를 위한 정치실천과 그 해석학적 토대를 위해 씨름하고 있었다. 이것이 바르트를 괴팅엔의 대학교수의 길로 가게 한다. 그는 신학의 해방적 실천과 교의학적 진술에 대한 사회 해석학적 접근을 통해 교회 교의학의 정치적 길을 예비하고 있었다.
3.1. 바르트의 비신화화론
주지하는 대로 불트만의 실존론적 해석학은 특히 성서의 신화적 세계상을 어떻게 현대의 사고에 이해시킬 것인가 하는 데로 초점이 맞춰진다. 모든 성서는 신화적 세계상에 기초되어 있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십자가 사건, 부활, 심판, 새 하늘과 새 땅의 모티브들은 영지주의적 구속신화와 후기 유대교적 묵시문학의 동시대적 신화론에 연관되어 있다. 더 이상 현대인은 신, 천사, 사탄이라는 삼층적 세계관을 가지고 있지도 않고, 종말 때의 재난, 죽은 자의 부활 등과 같은 영지주의적 구속신화나 후기 유대교적 묵시문학을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는다.
불트만에 의하면 신화의 본래적 의미란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세계상을 제시한다기보다는 세계에 대한 인간의 자기이해 다시 말해 신화는 우주론적이 아니라 실존론적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신화 안에 어떤 실존이해가 표현되어있는가를 묻는 것이 중요하다. 이미 신약성서 안에 우주론적 표상과 실존론적 표상들이 혼합되어 있다. 그러므로 비신화화론에서 중요한 것은 신화의 제거가 아니라 신화에 대한 실존론적 이해이다. 이 실존론적 해석을 위해 불트만은 사실적인 것(Historisch)과 역사적인 것(Geschichtlich)을 구별한다. 불트만은 예수의 구속사건이 지니는 사실성을 신화론적 표상으로, 역사성을 실존론적 의미성으로 파악한다. 신이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역사하셨다는 구속사건은 사실적인 의미에서 객관적으로 확정될 수 있는 그런 역사적 사실이 아니다. 이것은 신화론적으로 기술되어 있기 때문에 신의 종말론적 사건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불트만의 실존론적 해석에서 십자가와 부활사건은 그 객관적인 역사적 사건이 아니라 실존의 의미를 개방하는 종말론적 사건이다. 이 종말은 역사의 종말이 아니라 매순간 결단하는 실존의 종말성을 말한다.
불트만의 비신화이론은 리케르나 엘리아데(M. Eliade)또는 융(K. Jung)등의 신화연구와 비교해볼 때 정반대의 방향이 드러난다. 신화란 헤겔적인 의미에서 개념으로부터 표상을 해체하는 것이 아니라, 표상과 실재의 일치를 고대적 존재론 자체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결국 불트만의 비신화작업은 신화의 해석이라기보다는 신화론적 사고에 대한 비판으로 환원되며, 그 비판기준은 합리주의적 실존론적 개념이다. 비신화화의 문제로서 신화와 문화, 말씀과 예배의 관련성은 불트만에게서 결코 통전적인 부분으로 취급되지 않는다.
불트만의 비신화화 프로그램을 주목하면서 바르트는 불트만과는 다른 비신화화의 작업을 수행한다. 불트만이 신화의 문제를 실존론적 해석학으로 이끌어가지만, 바르트는 신화의 문제가 신학적으로 특수한 영역에 속하는 것이며 단순히 실존론적인 방법으로 다룰 수 없음을 본다. 불트만은 종교사적인 연구에 의거해 비 세상적인것, 신적인 것이 세상적인 것으로, 또는 인간적인 것으로 그런가하면 저 세상적인 것이 이 세상적인 것으로 나타내는 표상방식(Vorstellungsweise)을 신화론적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현대적인 의미에서 신화를 이데올로기의 관점에서 고려하지는 않는다.
칼 바르트의 로마서주석(1판/2판)은 종래의 자유주의 신학의 방향과는 전혀 다른 해석학적 문제를 보여준다. 물론 바르트는 역사비판적 방법자체를 포기하지는 않지만, 이 해석의 방법을 상대화시키고 성서본문의 고유한 이해를 위한 예비단계로 파악한다. 바르트 자신은 비록 해석학적 문제를 본격적으로 취급하지는 않지만, 교의학의 내용적 전개를 통해 실존론적 해석학의 문제가 해결된 것으로 본다. 바르트는 신학이 일반 이해론에 의존되는 것을 비판적으로 다루었고, 오히려 해석학 일반은 계시의 증언으로서 성서를 통해 배울 수 있어야함을 역설한다(KDI/2, 515). 로마서주석 2판이 실존론적인 경향을 가지고 있다면, 1판은 사회 문화적 의미를 갖는다. 불트만은 바르트의 로마서주석 2판을 중요하게 취급했지만, 그러나 실존주의를 넘어서는 로마서주석 1판의 사회집단적 개념들은 불트만에게는 낯 설은 것이었으며, 그의 실존론적 해석학에는 수용될 수 없는 것이었다. 로마서주석 1판의 사회적 개념들과 언어들은 이미 바르트의 사회적 실존의 전이해 속에 자리잡고 있었으며, 교의학적 차원으로 전개된다. 두 개의 로마서 주석은 이러한 신화적 현상들에 대한 신학적 분석으로 볼 수 있다.
앞서 살펴본 대로 로마서주석 1판에서 바르트는 사회 정치적 실천에 접근하는 신학적 해석학을 '하나님의 혁명'의 개념으로 독해한다. 자유주의 신학의 실패는 역사적 우연이라기보다는 그 신학의 본질 때문이다. 자유주의신학의 인간학적 의도를 바르트는 인간의 우상을 만들어내는 신화론적 사고에서(롬1.18) 그리고 하나님을 인간의 이해관계에 묶어버리는 시도에서 본다. 자유주의에 대한 신학적 비판을 통해 바르트가 의도하는 것은 동시에 자유주의가 근거하고 있는 부르주아와 정치와 이데올로기비판을 포함한다. 이 비판은 특히 자본주의, 국가, 군국주의에 대한 비판에서 분명해진다. 자본주의, 국가, 군국주의비판은 우상을 만들어 내는 인간의 신화론적 사고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비판의 계기를 포함한다. 더욱이 자본주의 비판은 후기 바르트에게서 특히 중요한 지점을 갖는데, 교회 교의학 III/4에서 자본주의 경제질서에 대한 분석과 비판에서 잘 볼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바르트의 역사-비판방법에 대한 비판을 이해 할 수 있다. 여기서 로마서주석 1판의 유명한 선언, "내가 보기에 역사- 비판방법은 보다 더 비판적이라야 한다"는 의미를 이해하게 된다. 바르트의 역사개념은 관념론적이거나 개인주의에 함몰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 경제적 영역을 통해 드러나는 역동적인 유물론적인 역사개념을 견지한다.
우리는 항상 하나님을 갖는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을 원하기 때문에 갖는다(롬1, 11). 종교적 인간은 신과의 관계를 성취하며 산다기보다는 '신적인 것에 대한 영원한 동경'(롬I, 12)속에서 살아간다. 왜냐하면 신을 추구하는 인간은 신의 저 세상성, 처분할 수 없음에 부딪치기 때문이다. 트렐취(E. Troeltsch)의 종교적 아프리오리(reigiose Apriori)는 바르트에 의해 부인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종교분석의 출발로 인정된다. 신에 대한 인간의 종교적 관계에서 종교가 생겨난다. 인간은 신과 진리를 알지만 그것이 현실적으로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인간은 신을 자신의 인격으로 연관시키며, 신에 관한 생각은 자신에 관한 생각으로 대체해버린다. 이러한 불의한 행동에서 인간의 교만이 생겨나며 여기서 인간은 스스로 신으로 고양된다. 인간 스스로가 신이 됨으로써 그의 주인 없는 세계는 우상들로 가득 차게 된다. 이러한 과정에서 신과 실존적 관계를 맺는 종교적 과정이 발생한다. 이것이 신으로부터 도피에 대한 실존적 이해이며 그 자체상 모든 신화론의 원천이 된다. 바르트의 비신화론은 이러한 우상의 폭로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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