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통주의의 성경관 비판
신정통주의의 성경관 비판 (장수민의 '기독교 강요 분석'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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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통주의 신학의 성경관:
칼 바르트와 에밀 부룬너같은 신정통주의 신학자들은 성경은 부분적으로만 하나님의 말씀이 된다고 주장한다. 즉 성경의 각 부분이 각 사람에게 각각의 상황에 따라 하나님의 말씀이 딘다. 따라서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다. 이들에 의하면 논리적인 의도를 통해 초월적인 그리스도와 교통이 이루어지는 것은 '전적 타자이신'(wholly other) 하나님 아래서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성경에 있는 사건들의의미가 아니라, 사거들 그 자체를 계시하셨다. 이때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신 참된 계시는 성육신하신 하나님의 말슴으로서의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따라서 성경이 각 사람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계시하고 있을 때'에, 바로 '그 때에만'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 된다. 그러므로 말씀의 의미를 이해하는 것은 주관적인 영역의 일이다. 뿐만 아니라 신정통주의 신학자들은 성경의 무오성을 믿지 않는다. 왜냐하면 성경은 타락한 사람들에 의해서 기록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경에는 논리적 모순과 역설들이 널려 있다. 그렇지만 이러한 모순들이 종교적 진리가 된다. 이들의 이 같은 주장때문에 신정통주의 신학은 '역설의 신학'이라고도 불리운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의 성경관: 성경의 권위(1장 4절):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의 성경관은 칼빈이 놓은 기초를 계승하였다. 성경은 권위가 있다. 그 권위 때문에 우리는 성경을 믿고 순종해야 한다. 성경의 권위는 어떤 사람이나 굫회의 증거에 의해서 좌우되는 것이 아니고, 그것의 저자이시요, 진리 자체이신 하나님께 전적으로 달려 있다. 우리가 성경의 권위를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이다(벧후 1:19-21; 딤후 3:16; 요일 5:9; 살전 2:13).
성경에 대한 믿음의 근거(1장 5절):
우리는 교회의 증거에 의하여 감동과 권유를 받아 성경을 대단히 고상하고 존귀하게 여기는 데가지 이를 수 있다(딤전 3:15). 그리고 성경 자체가 가지고 있는 내용의 신령함, 교훈의 효험, 문체의 웅장함, 모든 부분의 내용상의 일치성,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려드리는) 내용 전체의 목표, 인간의 구원을 위한 유일한 길을 밝혀 주는 충분한 내용 전개, 이 외에도 많은 비교할 수 없이 좋은 점들과 성경의 전체적인 완전성 등등은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입증해 주는 충분한 논증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성경이 오류가 없는 진리요, 신적 권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충분히 납득하고 확신하게 되는 것은, 우리의 심령 속에서 말씀에 의하여 말슴을 가지고 증거하시는 성령의 내적 사역으로 말미암는다(요일 2:20, 27; 요 16:13-14; 고전 2:10-12; 사 59:21).
칼빈의 성경관:
칼빈의 입장에서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 마치 그것의 저자이신 하나님의 입술로부터 나오는 말슴을 듣는 것만큼이나 거룩한 것이었다. 그는 훗날 신정통주의 신학자들이 잘못 빠져든 것과는 달리, 처음부터 성경은 '의도된 진리'(propositional truth)를 각르친다고 역설했다. 이 의도 때문에 성경의 진리는 이해가 가능하도록 각 단덩들이 논리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러므로 문장에 대한 문법적이고 논리적인 규칙에 따라 그 명제를 이해함으로써 하나님의 진리는 드러난다. 마찬가지로 성경의 역사적 사건들도 그것 자체를 통하여, 자신의 말씀을 읽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진리를 계시해주신다. 또한 성경에는 절대적으로 오류가 없다. 칼빈은 성경의 영감으 가르치면서 '받아쓰기'(dictated)라는 말까지 사용한다. 이 말의 의미가 일견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하지만, 워필드(B. B. Warfield)가 잘 해명했듯이 이것은 '영감의 결과'가 그렇다는 의미이지, '영감의 방법'을 의미하지 않는다. 영(E. J. Young) 역시 같은 의미로, "... 그것은 성경 말씀이 신적인 기원을 가지고 있음을 강력하게 나타내려고 한 것이다"라고 말한다. 이렇게 볼 때 현대의 신정통주의자들은 칼빈의 사상에서 빗나가도 한참 빗나가버렸다. 뿐만 아니라 칼빈은 현대 신비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이적주의에 대해서도 처음부터 분명한 입장을 표명했다. 이적을 추구하고 경험하는 행동은, 엄밀히 말하여 하나님의 직접적인 계시를 듣겠다고 하는 태도와 다를 바 없다. 하지만 사실상 특별계시가 끝났을 때, 이적의 시대도 끝났다. 그러므로 워필드는 지금은 '특별계시가 정경화되었다'(special revelation has been canonized)면서, 그러므로 지금도 하나님께서 계속적으로 이적을 행하신다고 믿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경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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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통주의 신학의 성경관:
칼 바르트와 에밀 부룬너같은 신정통주의 신학자들은 성경은 부분적으로만 하나님의 말씀이 된다고 주장한다. 즉 성경의 각 부분이 각 사람에게 각각의 상황에 따라 하나님의 말씀이 딘다. 따라서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다. 이들에 의하면 논리적인 의도를 통해 초월적인 그리스도와 교통이 이루어지는 것은 '전적 타자이신'(wholly other) 하나님 아래서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성경에 있는 사건들의의미가 아니라, 사거들 그 자체를 계시하셨다. 이때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신 참된 계시는 성육신하신 하나님의 말슴으로서의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따라서 성경이 각 사람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계시하고 있을 때'에, 바로 '그 때에만'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 된다. 그러므로 말씀의 의미를 이해하는 것은 주관적인 영역의 일이다. 뿐만 아니라 신정통주의 신학자들은 성경의 무오성을 믿지 않는다. 왜냐하면 성경은 타락한 사람들에 의해서 기록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경에는 논리적 모순과 역설들이 널려 있다. 그렇지만 이러한 모순들이 종교적 진리가 된다. 이들의 이 같은 주장때문에 신정통주의 신학은 '역설의 신학'이라고도 불리운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의 성경관: 성경의 권위(1장 4절):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의 성경관은 칼빈이 놓은 기초를 계승하였다. 성경은 권위가 있다. 그 권위 때문에 우리는 성경을 믿고 순종해야 한다. 성경의 권위는 어떤 사람이나 굫회의 증거에 의해서 좌우되는 것이 아니고, 그것의 저자이시요, 진리 자체이신 하나님께 전적으로 달려 있다. 우리가 성경의 권위를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이다(벧후 1:19-21; 딤후 3:16; 요일 5:9; 살전 2:13).
성경에 대한 믿음의 근거(1장 5절):
우리는 교회의 증거에 의하여 감동과 권유를 받아 성경을 대단히 고상하고 존귀하게 여기는 데가지 이를 수 있다(딤전 3:15). 그리고 성경 자체가 가지고 있는 내용의 신령함, 교훈의 효험, 문체의 웅장함, 모든 부분의 내용상의 일치성,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려드리는) 내용 전체의 목표, 인간의 구원을 위한 유일한 길을 밝혀 주는 충분한 내용 전개, 이 외에도 많은 비교할 수 없이 좋은 점들과 성경의 전체적인 완전성 등등은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입증해 주는 충분한 논증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성경이 오류가 없는 진리요, 신적 권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충분히 납득하고 확신하게 되는 것은, 우리의 심령 속에서 말씀에 의하여 말슴을 가지고 증거하시는 성령의 내적 사역으로 말미암는다(요일 2:20, 27; 요 16:13-14; 고전 2:10-12; 사 59:21).
칼빈의 성경관:
칼빈의 입장에서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 마치 그것의 저자이신 하나님의 입술로부터 나오는 말슴을 듣는 것만큼이나 거룩한 것이었다. 그는 훗날 신정통주의 신학자들이 잘못 빠져든 것과는 달리, 처음부터 성경은 '의도된 진리'(propositional truth)를 각르친다고 역설했다. 이 의도 때문에 성경의 진리는 이해가 가능하도록 각 단덩들이 논리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러므로 문장에 대한 문법적이고 논리적인 규칙에 따라 그 명제를 이해함으로써 하나님의 진리는 드러난다. 마찬가지로 성경의 역사적 사건들도 그것 자체를 통하여, 자신의 말씀을 읽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진리를 계시해주신다. 또한 성경에는 절대적으로 오류가 없다. 칼빈은 성경의 영감으 가르치면서 '받아쓰기'(dictated)라는 말까지 사용한다. 이 말의 의미가 일견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하지만, 워필드(B. B. Warfield)가 잘 해명했듯이 이것은 '영감의 결과'가 그렇다는 의미이지, '영감의 방법'을 의미하지 않는다. 영(E. J. Young) 역시 같은 의미로, "... 그것은 성경 말씀이 신적인 기원을 가지고 있음을 강력하게 나타내려고 한 것이다"라고 말한다. 이렇게 볼 때 현대의 신정통주의자들은 칼빈의 사상에서 빗나가도 한참 빗나가버렸다. 뿐만 아니라 칼빈은 현대 신비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이적주의에 대해서도 처음부터 분명한 입장을 표명했다. 이적을 추구하고 경험하는 행동은, 엄밀히 말하여 하나님의 직접적인 계시를 듣겠다고 하는 태도와 다를 바 없다. 하지만 사실상 특별계시가 끝났을 때, 이적의 시대도 끝났다. 그러므로 워필드는 지금은 '특별계시가 정경화되었다'(special revelation has been canonized)면서, 그러므로 지금도 하나님께서 계속적으로 이적을 행하신다고 믿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경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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