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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슬리와 칼빈의 성서해석 방법론의 연속성 문제

웨슬리와 칼빈의 성서해석 방법론의 연속성 문제
http://cafe.naver.com/modernth/1467   
 윤철원(서울신대, 신약학 교수)
 
1. 성서해석은 카멜레온인가, 저자/본문의 의도를 찾는 여정인가?
        본 연구자는 한국개혁신학회의 위촉으로 웨슬리안의 입장에서 신약성서를 가르치는 교사로서 웨슬리와 칼빈의 성서신학적이고 해석학적 연속성을 검토하려고 한다. 물론 칼빈과 웨슬리를 전문적인 성서학 분야에서 연구하는 것이 생소하기도 하고, 당연히 본 연구자에게도 서투른 작업임이 분명하지만, 필자가 재직하고 있는 신학대학교에서 개최되는 한국개혁신학회에 참여하는 의미와 더불어, 차제에 칼빈(1509-1564)과 웨슬리(1703-1791)의 관련성을 성서신학적인 관점에서 연구해보겠다는 만용이 그만 본 과제를 해결해야 할 위기를 초래하고 말았다. 아무튼 귀중한 학습과 더불어 뜻밖의 결론이 도출되기를 희망하면서 본 연구에 들어가려고 한다.
        우리는 아주 개략적이지만, 우리가 왜 칼빈과 웨슬리와 같은 현재 시간으로부터 많은 간격을 지닌 성서해석과 기독교 신학의 중대한 인물들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지 해석학적물음을 던지게 된다. 이와 함께, 해석은 그것이 어떠한 해석이든지 간에 카멜레온 같기도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으로서의 정경인 성서를 읽는 행위는 신학적이며 텍스트 안에서 살아 역사하는 하나님의 구원 의지에 대한 파악과 맞닿아 있기에 해석의 과정에서 유의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칼빈과 웨슬리의 성서해석의 방법론에서 나타나는 전통적이고 복음을 살려내는 성서해석의 특징과 그 맥락을 찾아내려고 한다. 특히 칼빈은 그의 저서 기독교강요를 통해서 기독교 신학에 중대한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종교개혁 시기 성서해석의 특징은 본 연구에서 우리가 함께 공유할 그러한 관점을 담지하고 있다. 종교개혁의 신학은 철저히 주석적이며 개혁자들이 쓴 저서들은 매우 철저하게 성서주석의 형식을 가지고 있다. 교리적인 차원에서 종교개혁은 이신칭의(以信稱義) 혹은 신앙인의(信仰認義) 등과 같은 중요한 신학적 주제들을 창출시켰지만, 해석학적 차원에서 보면, 성서의 전체 본문에 대한 관심을 새롭게 하여 성서의 모든 문서들에 대한 풍부한 주석과 주석의 결과를 통해서 신학 전반의 수정을 가능하게 만들었는데, 우리는 아래에서 칼빈의 성서해석의 방법적 특징을 먼저 살펴보고, 웨슬리의 성서해석의 원리와 방법론의 특색을 검토하면서 두 인물이 갖는 성서해석 방법론 사이의 연속성을 확인해보려고 한다.
 

2. 개혁자 칼빈과 그의 배경2)
        칼빈은 16세기 최초의 개신교 성서해석자였다. 그의 삶은 성서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해하고 그것을 해석하는데 바쳐졌다. 칼빈은 제네바에서 대부분의 신약성서와 구약성서의 여러 문서들을 주석했고, 강의했으며, 설교했다. 주석 작업과 더불어, 그는 자신의 다른 저서들을 통하여 성서해석에 대한 각별한 관심을 보였다. 특히 이러한 열정은 그의 「기독교강요」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칼빈은 하나님이 교회에게 “말씀을 명백하게 해주는 해석의 은사”3)(고전 12:10)를 참되고 신실한 교사들의 설교와 사역에 제공했다고 믿었다.
        올레앙(Orléans), 부르쥐(Bourges) 그리고 빠리대학에서 기독교 인문주의자로서 칼빈이 받은 교육은 그의 성서해석을 완성하는데 기여했다. 이처럼 종교개혁은 르네상스 인문주의와 분리시키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그는 그러한 교육을 통하여 자신의 주석방법론을 완성하고 성서를 역사적 자료로 이해하는데 유익을 얻게 되었다.4) 개신교 신앙으로의 회심 이후, 그는 자신의 고전어에 대한 지식을 성서를 이해하는데 사용한 반면, 성서는 칼빈이 자신의 학문적 배경에서 끌어온 통찰들을 보증해주었다.5)
        기독교 인문주의자들은 기독교 신앙의 근본을 강조하면서, 특히 성서와 초기 기독교 신학자들에 초점을 맞추었다. 이들은 그리스도가 구상하였던 기독교가 무엇인지를 발견하고자 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성을 존중했지만, 이것이 성서보다 우위를 차지하는 데는 반대했다. 기독교 인문주의의 수사학적 전통에 뿌리를 두면서,6) 칼빈은 “지혜”와 “웅변”을 조합하고자했던 키케로의 이상적 모델을 높게 평가했고,7)  이것은 결국 칼빈이 진리의 단순성(simplicity), 진리의 “실천적” 차원, 그리고 인간의 삶에 그 진리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능력을 발휘하는 문제를 강조8)하도록 만들었다.
        아버지에 의해 강요된 법학을 공부하던 칼빈은 법을 역사, 철학, 수사학 그리고 제도를 통하여 이해해야 한다고 역설한 인문주의자들의 연구에 깊은 영향을 받았다. 이러한 “현대적” 법학 연구는 고대 법전들의 의도를 그것들의 역사적 배경에서 찾도록 유도했다. 이것은 당시까지 유행하던 법전들의 의도를 전통적인 해석을 통해 발굴하고자 했던 관행과는 사뭇 대조적이었다. 칼빈은 이러한 새로운 강조점을 성서 주석에 적용했다. 이러한 모든 영향들은 칼빈으로 하여 성서에 대한 단편적(atomistic) 연구보다는 컨텍스트의(contextual) 연구를 하도록 만들었다. 칼빈은 “성서에 있는 많은 언급들을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상황을 반드시 숙고하고 있어야 한다”고 강조해주고 있다.9) 성서 본문을 연구하면서 그는 성서의 배경, 문화, 지리, 제도 그리고 언어에 대한 포괄적인 이해를 찾고자 했다.10) 이러한 이해는 칼빈을 성서의 본문을 중세 주석가들이나 신학자들의 해설에 의존하지 않고 직접 주석하게 재촉했다.11)
        
3. 칼빈의 성서해석의 원리12)
        칼빈이 전통적인 성서해석을 반박했다고 평가하는 입장은 현대의 성서주석가들이 그를 향해 느끼는 호감을 충분히 설명해준다. 그는 성서를 그 자체로 해명하고자 했다는 점에서 특히 칭송을 받는다. 차일즈는 구약성서를 연구하는 모든 신학도는 폰 라트의 창세기 주석과 더불어 “창세기의 문자적 의미를 전해주는 완벽한 시도인 칼빈의 위대한 창세기 주석”을 함께 읽어야 한다고 주장했다.13) 비록 현대의 독자들은 본문에 대해 상이한 질문들을 가지고 있지만, 차일즈는 “칼빈이 어떠한 궁금증들을 가졌는지에 대해 파악할만한 신학적 성숙함을 가진 사람은 이 주석서의 훌륭함에 매료될 것”이라고 그의 시편 주석서를 추천하였다.14)
        또한 바울의 로마서에 관한 자신의 주석에서 크랜필드는 로마서에 대한 칼빈의 탄탄한 주해를 칭찬하였다. “칼빈은 자신의 주석서가 본문과 독자 사이에 끼어드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또한 그는 신실하고, 단순하고 간결하게 기록된 단어들 속에서 표현된 바울의 정신세계를 설명하고자 노력한다.” 칼빈의 주석서는 “본문 앞에서의 매우 뛰어난 겸손함으로 두드러지는데, 이것은 어떤 면에서 가치 있는 역사적 문서를 주석하는 모든 사람들에 의해 공유되는 자질이다. 완성시키거나 조작하고자 하는 입장이 아닌 이해하고 밝혀내고자 하는 겸손함이다.”15)
        이러한 찬사와 더불어 칼빈에 대한 비판도 눈에 띤다. 크렐링은 성서주석가로서의 칼빈의 기여에 대해 덜 호의적인 입장을 피력하면서, 자신의 시대에 칼빈이 성서의 역사적 배경에 대해 매우 뛰어난 통찰력을 보여준 것은 사실이지만, 그의 전체적인 방법론은 수용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칼빈이 실수로 구약성서를 “히브리서 저자의 색안경을 통하여” 읽어내기 때문이다. 오직 단 하나의 하나님의 백성 그리고 하나의 계약만이 존재한다는 칼빈의 견해는 그가 구약성서와 신약성서의 불연속성을 감지하는데 실패하였음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공격한다. 크렐링의 결론은 “명백한 사실은 칼빈이 구약성서를 기독교화시켰고, 신약성서를 유대화시켰다”는 것이다.16) 이러한 비판적인 견해는 다른 학자들에게서도 발견된다.17)  
        종합해보면, 칼빈은 위대한 성서해석자이고 신학자이지만, 학문적인 차원에서는 그도 여전히 비판을 피할 수는 없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기독교 신학사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을 만큼 대단하다. 그렇다면 칼빈은 어떤 해석학적 관점을 가지고 성서의 텍스트를 읽고 분석했는지 알아보는 것은 필수적인 과제일 것이다. 이러한 요소들을 세분해서 살펴보는 것이 본 연구에 유익할 것 같다.
 

3-1. 컨텍스트의 중요성
        컨텍스트에 대한 관심은 칼빈이 성서의 텍스트 안에서 하나님의 의도를 찾고자 노력하였다는 점을 의미한다. 그의 법학적 배경은 저자의 의도가 어원학적 연구보다 더 중요한 것임을 깨닫게 해주었다. 칼빈은 후자의 연구방식을 “음절 날치기”(syllable snatching)로 비하했다.18) 우리에게 본문이 주어진 이유와 본문의 의도 혹은 목적은 해석의 열쇠에 해당한다. 수사학 학습을 통하여 칼빈은 올바른 성서해석을 위해서는 환유, 제유, 그리고 비유적 표현들과 같은 장치들을 명백하게 인식하고 설명해야 한다고 확신했다.19) 그렇지만 호스트맨은 칼빈이 제유(synecdoche: 일부로써 전체를 나타내는 표현법), 전후도치(hysteron proteron: 첫째를 마지막으로 배치하고 마지막을 첫째로 배치하는 기법) 그리고 다른 문학적 장치들을 자주 사용하는 이유는 본문 속에 오류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기 위해서라고 주장한다. 호스트맨이 지적했듯이 칼빈의 방법론에 있어 가장 큰 문제점은 그것의 주관성이다. 상징적 표현이 언제 사용되었고, “그것이 어떤 특정한 자리에 사용될 때 갖게 되는 의미”에 대한 해법이 완전히 결여되어있다고 말한다.20)  
        그럼에도 불구하고, 칼빈이 학습한 법학에서 채용한 컨텍스트에 대한 인식은 성서해석에서 중요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주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법전이 생성된 상황을 고려할 때 반드시 법전을 창조한 사람들의 의도와 그것이 그렇게 만들어 졌는지에 대한 역사적 검토가 필수적이다. 이러한 관심은 칼빈으로 하여금 성서해석에서도 저자의 의도를 탐색하도록 자극했을 법하고, 그것을 통해서 본문이 생성된 상황을 재점검할 수 있어서 본문의 의도를 파악하는데 최대의 유익을 제공해 줄 수 있었다.
        이러한 컨텍스트에 대한 관심은 역사적인 사실만을 찾아내서 사실에 위배되는 것을 검색하여 탐탁하게 간주되지 않으면 버려버리는 현대적인 역사 분석과는 거리가 있는 것이다.21) 칼빈에게 이러한 후한 점수를 줄 수 있는 이유 역시 그의 개혁자로서의 삶에 대한 검토와 무관하지 않음은 당연하다고 하겠다. 그러므로 칼빈이 컨텍스트를 중시한 것은 사실에 대한 무미건조한 탐구가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이라는 원대한 비전을 중심에 놓는 성서해석으로 보인다. 이러한 컨텍스트에 대한 강조는 성서의 파편적인 분석을 극복하여 통전적이고 전체적인 읽기를 가능하게 만들었고, 신학은 입술로 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말하게 만들었을 것이다.22)
 

3-2. 기독론 중심의 성서해석
        칼빈이 발전시키고 강조한 또 하나의 통찰은 “적응이론”(accommodation)이었다.23) 이 기술은 설득의 과정에 사용되었던 하나의 방법이었다. 적응이론은 수사학적 훈련을 받은 오리겐, 크리소스톰, 어거스틴과 같은 신학자들에 의해서 이미 사용되었다. 이들은 기독교의 배경에서 적응이론을 성서를 통하여 기독교 복음의 진리를 설명하고자 했던 하나님의 전략으로 간주했다.24) 칼빈에게 있어 성서는 하나님의 말씀이자, 인간 저자와 인간의 언어를 통하여 교회에 주어진 하나님의 계시 혹은 하나님의 지혜였다. 따라서 하나님은 구원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하여 인간의 언어를 사용하였고, 그 결과 하나님 스스로를 인간의 기량에 “맞추었다.” 성서의 언어가 비록 유창하지는 않고, 단순하고 교육 받지 못한 저자들에 의해 기록되었을지라도, 이러한 사실은 하나님의 계시에는 절대로 걸림돌이 될 수 없는 노릇이다. 실제로, 성서는 그 계시의 분명한 수단이다. 칼빈은 성서의 형식적 한계보다는 성서의 내용과 기능을 강조했다.
        성서 속에서 하나님은 인간의 기량의 한계와 약점에 스스로 적응하였고,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을 적응하였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적응은 완전해졌지만, 오직 성서를 통해서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알 수 있다. 하나님에 대한 적응된 지식으로서의 성서는 마치 사랑하는 부모와 같은 하나님이 인간을 구하여 인간의 방식대로 자신을 낮추신 그리스도에 관한 지식을 전달하기 위해 주어졌다. 칼빈은 어거스틴이 사용한 이미지에 동의한다. “우리는 안심하고 성서를 따를 수 있다. 이것은 마치 아기를 돌보기 위해 자신을 웅크리는 엄마와 같이 순서대로 진행하면서 우리가 연약함에 빠지지 않도록 도움을 준다.”25) 그러므로 칼빈은 성서가 그것의 목적에 비추어서 가장 잘 이해된다고 믿었다. 그 목적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와 그리스도 안에서 얻게 되는 구원이다. 칼빈은 모든 성서의 본문에 기독론적 해석을 강요하지는 않았지만, 그는 다음과 같은 말을 통하여 모든 성서해석의 목적을 정리하였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모든 성서 본문에서 추구해야 할 목적이다: 참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26)
        
3-3. 고전어와 수사학의 활용
        인문주의자들에게 있어서 고전어 연구는 필수적인 과제였다. ‘그 시대의 아들’이었던 칼빈의 고전어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초대교회의 문서에 대한 정통함은 성서 주석에 있어 매우 큰 도움을 주었다. 그는 부데(G. Budé)와 에라스무스 같은 인문주의자들과 초대교회의 교부들로부터 성서본문, 문헌학과 해석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을 받았다. 특히 대부분의 경우에 있어, 신학적 해석에 관하여 어거스틴을 따랐고, 주석적 통찰에 있어서는 크리소스톰의 도움을 받았다. 교회사를 돌이켜 본다면, 칼빈이 익숙했던 성서적 언어를 사용했던 주석적 방법은 바로 안디옥 학파의 방식이었고 특히 크리소스톰은 그 대표자였다. 칼빈은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알레고리 해석 보다는 안디옥 학파의 유형론적 해석을 선호하였는데, 그 이유는 후자가 본문의 직설적인 의미에 무게를 두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칼빈의 해석학적 신중함은 유형론적 해석을 안디옥 학파와 같이 남발해서 사용하지 않도록 만들었다. 후자에 있어 유형론은 하나의 일차적인 주석 방법이었다면, 칼빈에게 있어 그것은 잘해야 이차적인 방법이었다. 수사학자의 눈을 통하여 성서를 보면서, 칼빈은 성령이 사용했던 다양한 문학적 장치들을 놓칠 수 없었고, 그것들 중에 유형론은 오직 한 가지였을 뿐이다. 하지만 유형론은 하나의 특별한 가치를 가질 수 있었는데, 그것은 불가피하게 그리스도의 본질과 그의 사역에 대해 무엇인가를 말해주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역사하심에 관한 본문들에 수사학적 분석을 적용하였을 때, 칼빈은 성서에서 자주 발견되는 의인(擬人)화의 사례들을 발견했다. 문자적으로 볼 때 그것들의 투박함은 구약성서의 율법과 신약성서의 복음의 대조적인 투박함과 평행을 이루었다. 칼빈은 당연히 그러한 눈에 띄는 대조들을 처음으로 발견한 것은 아니다. 주후 2세기부터 기독교 변증가들은 이러한 대조에 대해 다양한 견해들을 내놓았다. 그러나 칼빈은 그것들을 모두 설득력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특히 그 중에서 모세의 미숙함을 단순히 알레고리적 해석으로 극복하기 위해 내놓았던 견해들을 수용할 수 없었다.
        칼빈은 완전히 새로운 해법을 제시했다. 그것은 바로 구속사에 발전이라는 개념을 추가한 것이었다. 이 구상에 따르면, 구약성서는 교회가 자라나게 되는 과정이었고, 신약성서는 성장기에 도달한 사람을 보여주는 것이다. 구약성서에 나오는 의인화와 원시적 종교제의들은 “어린이”와 같은 교회에 필수적인 낮춤의 과정이었다. 인간과 확실하게 의사소통하기 위해 하나님은 인간의 기량에 스스로를 맞추기/적응하기 위하여 말을 걸어오셨다. 오직 인간이 자신의 신학적 이해에 있어 충분히 성장하였을 때, 하나님은 구약성서의 초보적 이미지를 버리고 신약성서에서의 더 세련된 자기 계시를 택하였다.27)
        
3-4. 칼빈의 주석의 원리28)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칼빈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강력한 주장과 여러 요소들을 통해서 그의 성서해석을 수행하였다. 크라우스는 칼빈의 주석에서 주된 원리가 되는 몇 가지의 원칙을 제시하였는데, 우리가 위에서 살핀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주고 있다. 다음의 여덟 가지 원리는 칼빈을 위대한 개혁자요 신학자로 우뚝 서게 한 근거로 작용하였을 법하다.
        1) Claritas와 Brevitas의 원리.29) 칼빈은 성서의 의미를 지나치게 간소화시키는 것은 아니다. 한편으로 명백함과 간결성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단순하고 간단한 가르침은 명확한 이해를 추구하는 동일한 원칙의 동일한 표현들일 뿐이다. 성서의 명백함에 해당하는 설명의 간결성이 있어야한다는 것이다. 
        2) 저자의 의도를 파악하고자 하는 원리. 베드로후서에 대한 연구를 통하여 칼빈은 베드로후서가 베드로전서의 저자에 의해 기록된 것이 아니라고 결론 내린다. 그는 종종 이와 같은 문제들에 대해 비평적인 견해들을 내비췄다.
        3) 저자의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하고자 한다면, 저자가 처한 상황을 설명해주는 역사적, 지리적, 그리고 제도적 정황들을 포착해야 한다.
        4) 배경이 분명해졌다면, 저자의 의도를 설명하기 위해서 구절이나 본문의 참된 의미(real meaning)를 설명해야 한다. 이것은 곧 단순한 의미, 또는 문법적 의미로 불리기도 한다. 이 작업은 오직 고전어에 대한 탄탄한 지식이 있어야 가능하다.
        5) 많은 주석적 문제점들은 해석자가 본문의 컨텍스트를 연구할 때 비로소 설명되고 올바르게 다루어질 수 있다.30) 본문의 전체적인 면과 그 문맥이 심도 있게 연구되어야 한다.
        6) 방법론적인 연구에 있어, 칼빈은 십계명의 단어들을 뛰어 넘는 의미의 범위를 설정하는데 노력을 기울였다. 이것은 곧 “모든 계명들 속에는 그 단어들의 범위를 뛰어넘는 훨씬 더 넓은 범위를 가리키는 표현들이 존재한다. 따라서 율법의 의미를 단순히 십계명의 단어들이 가리키는 범위에 한정하는 것은 미련한 것이다.”
        7) 주석가는 비유적 표현들을 설명하고자 할 때 어려움을 겪게 된다. 은유는 알레고리가 아니다. 또한 과장법(hyperbole)도 아니다. 은유는 시적 영역에 포함된다. “이것은 나의 살이다”라는 표현에서 그 상징은 그것이 나타내고자 하는 참된 것 즉, 빵과 결합되어 있기 때문에 오해의 소지가 없다.
        8) 마지막으로 칼빈의 주석적 연구에 있어 “그리스도의 목적”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이런 측면에서 토렌스가 지적하는 칼빈의 사상이 형성되는데 중요하게 작용한 요소는 칼빈의 해석학적 방법론을 파악하는데 도움을 제공한다.31) 그에 따르면, 신학의 주된 목적은 성서 해석에 유익을 주는 것이다. 성서에서 발견되는 중요한 사상들과 교리들을 연구하는 것이 신학자의 과제이고, 그것들의 상호 관계성을 신앙유비(analogia fidei)를 통해서 설명하고, 그것들의 고유의 관계성들에 의해 요구되는 순서로 그 교리들을 정리하는 것이지, 논리적인 순서대로 정리하는 것은 아니다. 의도를 분명하게 하기 위한 것, 바로 이것은 성서 계시의 최종적인 목적이자 방향이라는 것이다.
        또한 신학이 필요한 이유는 성서가 사적인 해석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구약성서와 신약성서를 통해서 우리에게 전달된 하나님의 말씀은 그 자체로는 불분명하지 않지만, 우리가 불분명한 의미를 가질 수 있는데, 그것은 우리가 말씀을 해석하는데 삽입하는 사상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성서에서 발견되는 하나님의 말씀으로의 신학의 참조는 권위의 중심이 해석자로부터 하나님의 말씀으로 옮겨졌다는 의미이다. 하나님의 말씀, 즉 신학적 연구의 목적(object)에 진리가 존재하는 것이지, 해석자의 대상(subject) 속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4. 복음전도자 웨슬리와 그의 배경
        칼빈보다 194년 이후에 잉글랜드 링컨셔(Lincolnshire)의 엡워쓰(Epworth)에서 국교회 목사의 열다섯 번째 아들로 태어난 웨슬리는 영국 복음주의 부흥운동의 지도자로 활약하였으며, 감리교회를 창설한 인물이다. 그는 옥스퍼드대학교의 링컨 컬리지에서 교수로 있으면서 신성클럽(Holy Club)을 만들어서 옥스퍼드대학생들의 영적인 생활을 돌보는 사역을 수행하였다. 광범위하게 인식되듯이, 웨슬리가 제시하는 신학의 과제는 성서, 전통, 이성과 경험이다.32) 이 가운데서 웨슬리가 성서 연구에 정열을 쏟았다는 사실이 마땅히 강조되어야 한다.33) 웨슬리는 성서에 대한 불타는 애정을 가지고 있었고, 또한 성서는 하나님의 영감에 의한 것임을 확신했다.34) 웨슬리는 개혁신학을 지탱하는 대들보인 성서의 권위에 자신의 신학 형성에 우선권을 둠으로써 개신교의 신학 사상과 일치하는 입장에 서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웨슬리를 떠올릴 때 선명하게 드러나는 모습은 성서에 대한 그의 열망을 표현한 ‘한 책의 사람’(homo unius libri)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하는 모습이다. 그의 이러한 태도는 자신이 쓴 편지에서 나타나고 있다.35)       
        그러나 이렇게 초자연적이고 신비로운 하나님의 말씀을 위해서 웨슬리가 활동한 시대는 19세기 역사 비평학의 총아를 자처한 18세기 이신론자들이 초자연적인 해석을 거부하던 때였다. 물론 웨슬리는 이신론을 거부했지만, 역사적 물음에 대해서는 전향적인 자세를 가지고 개방성을 유지했다. 웨슬리는 믿음과 이성 사이에서 어떠한 불일치도 발견하지 못했다.36) 물론 웨슬리가 이성을 하나의 도구로 간주한 것은 그 당시 영국의 경험론의 영향이었다.37) 그렇다고 해서 이성이 세 가지의 기본적인 기독교의 덕인 믿음, 소망, 그리고 사랑을 생산하지는 못한다. 믿음이 이성과 모순되지는 않지만, 이성이 믿음을 만들지는 못한다.38) 또한 웨슬리가 역사적인 질문을 한다고 해서 성서의 신빙성에 대해서 의문을 가졌다는 것은 물론 아니다. 웨슬리가 종교의 권위를 명백히 할 때, 그는 흔히 성서를 언급한다.39) 즉 그에게는 다른 규칙은 없었다. 다만 성서가 그의 권위였다. 그러므로 웨슬리에게 성서에 대한 역사적인 질문은 성서에 근거한 것으로서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웨슬리의 최종 권위는 오직 성서였다. 웨슬리의 신학 전통이 성서해석의 현장에서 지속적으로 공헌하려면, 해석학에 대한 웨슬리의 관점을 발전시키는 것이야말로 필수적인 과제이기 때문이다.40)
        
5. 웨슬리와 현대 성서해석학의 상관성
        우리가 칼빈과 웨슬리를 동시에 살펴보는 이유는 단 하나의 목적을 갖는다. 성서가 오늘의 현실에서도 여전히 하나님의 구원과 성령이 허락하시는 자유의 기치를 선포할 수 있는 능력의 원천이 되기 때문이다. 즉 성서를 통해서 하나님만이 베풀 수 있는 영원무궁한 구원의 진리를 찾아서 인류와 세계에 선포하고 그들을 궁극적으로 자유롭게 하려는 노력이 우리가 과거로 돌아가 그들과 대화하는 이유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칼빈에 이어 웨슬리의 성서해석의 원리를 현대적 관점에서 평가하는 것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을 것이다.
        텍스트에 대한 역사적인 관심은 성서해석의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기능을 수행했다.41) 그러나 19세기 이래로 성서학은 소위 ‘역사 비평적 방법론’이라는 소위 고등비평으로 불리는 방법론으로 성서를 하나님의 영감을 받아 기록된 책이 아니라 역사적인 문서들 가운데 하나로 취급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웨슬리의 신학 전통은 성서해석을 그 자체로 그리스도인의 실천적 행동으로 간주하기 때문에 토론의 주제가 된다. 그러므로 종교개혁의 해석 원리와 신앙 전통을 계승하는 성서 해석학이라면 당연히 이성을 하나의 도구로 이해한 웨슬리의 해석 방법을 다각적으로 검토하는 노력을 동반해야 한다. 그렇지만, 해석의 측면에서의 문제는 역사 비평학 자체라기보다는 해석학의 기초가 되는 전제들이다.42) 예를 들면, 성서를 인간의 작품으로 간주하는 하나의 선입견이 문제이다. 그래서 복음주의와 개혁신학의 성서해석은 학문적인 연구 방법 자체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현대 성서해석학의 주된 이슈들의 조명 아래 계승할 전통을 보다 학문적인 입장에서 심화시키므로 보편성과 통전성을 강조하려고 한다.43)
        그렇지만 비평학을 어느 정도로 적용할 것인가는 여전히 문제로 남는다. 예를 들어, 해체(Deconstruction) 비평은 저자가 전제하는 의도보다는 저자가 선택한 언어가 저자가 말하려는 실체이기보다는 실존, 철학, 정치, 사회적 관심을 밝히는 것임을 전제하므로,44) 이런 전제와 선입견이 바로 성서의 본래적 의도와 무관한 것이다.45) 성서의 본래적 의미가, 저자가 의도한 것인지, 아니면 다른 것을 의미하는지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여기서 저자의 의도는 저자의 주도권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소유인 하나님의 말씀을 강조하는 것이다.46)
        이것은 성서 해석학에서 논의되는 본문(text)의 의미에 대한 것으로, 의미의 세계로서 본문은 세 가지 차원에서 의미를 갖는다. 첫째, 본래 저자가 의도했던 의미를 찾기 위한 저자 중심의 읽기(author-oriented reading)로, 고전적인 입장인 허쉬(E.D. Hirsh)의 주장이 이에 해당된다.47) 둘째, 본문의 모든 의미는 본문에 대한 독자의 읽기에 달려 있다는 독자 중심의 읽기(reader-oriented reading)로, 본문에 대한 독자 인식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피쉬(S.E. Fish)의 경우가 여기에 해당한다.48) 셋째, 본문 그 자체 속에 이미 의미는 독립적으로 내재해 있다고 보는 본문 중심의 읽기(text-oriented reading)로 요약된다.49) 칼빈과 웨슬리가 공유하는 성서 해석학의 입장은 본문을 해석하는데 저자의 의도와 거리가 있는 이해를 배격하고, 그런 입장은 성령의 감동을 받은 저자들의 의도와 기독교의 역사적 교훈과 어긋나는 것이라고 이해한다. 그러므로 본문에 내재한 하나님의 구원 의지를 통한 성서 읽기를 강조하는 것은 본문의 독립된 의미를 고려하는 입장을 대변한다.
        이런 측면에서 역사 비평을 성서 해석에 무제한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성서의 본질을 보존하기 위해서 거부되어야 하지만, 성서 연구에 미친 역사적이고 학문적인 연구의 공헌을 인정하고, 성서 연구를 위한 지식 확장에 영향을 주었음은 인정되어야 한다.50) 그래서 성서학자들이 교회가 지금까지 가르쳐 온 내용들을 주의 깊게 주목하고, 역사 비평학을 비판적으로 사용한다면, 성서의 진리에서 이탈하는 오류를 범하지 않을 것이다.51) 웨슬리가 이성을 중시하면서도 신앙의 증진을 위해서 이성을 활용한 점은 반드시 기억되어야 할 것이다.
 

6. 웨슬리의 성서해석의 원리
        웨슬리의 성서해석의 원리를 분석하기 위한 출발점은 아넷(William Arnett)이 제공하는데,52) 그가 제시한 웨슬리의 성서해석의 몇 가지 원칙은 본 논의를 위해서 매우 적절하다. 그가 정리한 웨슬리의 성서해석의 주된 원리는 문자적인 의미의 강조와 더불어 성서를 해석하는데 있어서 문맥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며, 또한 성서를 통해서 성서를 해석하는 동시에 성서 해석에서 독자의 경험이 강조되면서, 이성은 믿음을 돕는 한에서 허용되어야 하며, 마지막으로 성서해석은 실용성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제시된 특징들이 갖는 심층적인 의미를 살펴보면 웨슬리가 성서해석을 하면서 활용한 원리를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6-1. 문자적 의미에 대한 강조
        문자적 의미에 대한 강조는 성서 해석의 긴 역사적 흐름 속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종교개혁 이전 시기까지 교회의 성서 해석을 지배한 것은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전통을 계승한 ‘알레고리 해석’(allegorical interpretation)이었다. 그러나 이 방식은 수많은 오해와 잘못된 해석을 만들어냈다. 루터가 알레고리를 속빈 사색이라고 비판한 것처럼, 종교개혁의 전통은 알레고리를 성서를 조작하는 행위로 규정했다. 그러므로 웨슬리가 문자적 의미를 성서해석에서 중요한 하나의 요소를 생각했다면, 그것은 다름 아닌 성서를 적절히 해석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해석 작용이 요구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성서의 권위가 인간에게 있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즉 성서는 하나님의 영감이 작용한 거룩한 문서라는 인식이 전제되어 있는 것이다.
        따라서 종교개혁의 중요한 공헌 중 하나는 ‘문자적 의미’에 대한 강조였는데, 문자적 해석은 “웨슬리 시대의 대표적인 해석 원리”였다.53) 웨슬리가 문자적 의미의 우선성을 강조한 배후에는 이와 같은 역사가 있다. 이렇게 함으로 그는 비유적 해석을 통한 성서의 자의적(恣意的) 해석을 거부하면서, 다른 성서와 상충되거나 말도 안 되는 결론에 이르도록 하는 게 아니면 문자적인 의미를 사용하라고 권한다.54) 이러한 웨슬리의 입장은 칼빈과 성서해석학적 연속성을 갖는데, 칼빈 역시 예표와 예언을 사용하면서, 알레고리를 거부했다고 푸케트는 정확하게 지적한다.55)
 

6-2. 문맥의 중요성 인식
     웨슬리의 성서 해석에 있어서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본문의 문학적, 역사적 맥락(literary-historical context)을 강조한다는 점이다. 그는 학문적인 비평학이 고도로 발달하기 이전의 사유체계를 가지고 살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기계적인 문자주의자는 아니었다. 웨슬리가 문자적 의미를 주요하게 고려했다는 것은 성서를 문자주의나 기계적인 이해로 이끄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성서 해석에 있어서 놀라울 정도의 창조성을 보여준다. 본문을 그것 자체로서 완전한 통일체로 보고, 그 본문 내면의 역동성을 고려하여 의미를 찾아내려는 태도는, 편집비평의 뒤를 이어서 성서학계를 지배하고 있는 현재의 ‘신문학비평’(New literary criticism)의 관점에 접근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56)
        즉, 웨슬리에 따르면, 성서는 그 문서가 기록된 역사적이고 문학적인 배경을 고려하여 해석되어야 한다.57) 문맥에 대한 정확한 이해는 적절한 성서해석으로 이끈다. 텍스트의 주요 사상은 밀접한 논리적 결합이나 중심 주제가 반복해서 발전하는 것으로 전개되는데, 여기서 간과할 수 없는 것은 어떤 특별한 주제의 의미는 항상 앞선 것과 뒤따르는 것에 좌우된다. 이러한 웨슬리의 문맥에 대한 고려는 컨텍스트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칼빈을 상기시킨다. 이러한 관심은 현대의 내러티브 연구와 수사학적 비평에서도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과제로 중시되고 있다.
 

6-3. 성서를 통한 성서 해석
        성서를 통해서 성서를 해석한다는 것은 종교개혁자들의 해석 전통이다. 개혁자들은 그들의 성서해석을 기독교 신앙과 교리의 더 광범위한 체계에 비교하면서, 신앙유비(analogia fidei)라는 원리를 제기했다. 웨슬리는 이 원리를 적용함으로써58) 당대 개신교 해석자들의 주류에 속해 있었음을 볼 수 있다. 외부적인 그 어떤 권위도 성서를 수정할 수 없다. 전체적인 문맥의 일반적인 의미를 강조함으로써 사람들은 이 원칙을 고수했다. 웨슬리는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이 일반적인 의미를 신앙유비라고 불렀는데, 이 용어는 16-17세기의 개신교 해석자들의 글에서 사용되는 전문용어이다.
        인지하는 대로, 로마 카톨릭 교회가 성서에 대한 적절한 해석을 결정하거나 선언하는데 교회의 주도권을 강조하는 대신 개혁자들은 “오직 성서만이 성서의 해석자”라는 입장을 견지했다. 이러한 종교개혁자들의 성서해석의 원리에 일치하는 웨슬리는 성서에 대한 최선의 해설자는 성서 자체라고 믿었고, 그 당시에 성행하던 성서를 통해 성서를 해석한다는 전통을 따르고 있다.59)
 

6-4. 경험과 이성에 대한 고려
        이와 함께, 웨슬리는 성서의 문자적 해석은 신자의 경험에 비추어서 해석해야 한다고 믿었다. 웨슬리는 삶에서 직접적인 목적으로서 실제적인 결과를 얻지 못하는 성서해석의 어떤 형태도 그 자체로 의심스럽다고 말했다.60) 이는 웨슬리가 성서를 영감으로 기록하게 이끈 하나님이, 또한 기도하는 마음으로 성서를 읽는 독자들에게 초자연적으로 영감하여 바로 깨닫도록 도와준다고 믿었기 때문이다.61) 이처럼 웨슬리에게 있어서 성서연구는 학문적인 절차 이상으로 헌신에 이르는 연습이었음이 분명하다.
        그렇다고 해서 웨슬리가 경건훈련만을 고수한 것은 아니다. 텍스트를 읽고 분석하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웨슬리가 현대의 학문적인 비평학에 대한 철저한 학습자는 아니지만, 당대 최고의 본문비평의 대가였던 벵겔(J.A. Bengel, 1687-1752)의 영향을 받았다는 점만 봐도, 성서의 바른 해석과 믿음을 돕는 한에서 이성이 허용되어야 하는 점을 수용하였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러한 특징은 칼빈이 당시의 인문주의와 법학 학습의 영향이라는 개인의 배경과 밀접하듯이, 웨슬리 역시 당시의 시대적인 흐름과 교류하는 입장을 취하였음을 반증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웨슬리에게는 이성의 기능보다는 그것이 성서의 진리를 깨닫도록 도울 수 있는 한에서 이성의 필요성을 수용한다는 단서가 붙어 있다는 것이 강조되어야 할 것이다. 이와 더불어서, 웨슬리가 옥스퍼드에서 고전어를 비롯한 고전학을 학습했다는 것은 그의 성서해석과 신학함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영향을 제공했을 법하다.62) 이 점은 고전어에 대한 지식을 성서연구에 중시한 칼빈의 입장에 비견되는 것으로 의미가 있다.
 

6-5. 성서해석의 실용성 
        마지막으로, 웨슬리는 성서 읽기에 있어서 실천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웨슬리는 성서연구를 위한 몇 가지의 지침을 제공하는데,63) 실용성이 강조되고 있음이 매우 흥미로우며 실제적인 지침임에 분명하다.
        그에 따르면, 1) 가능하면 성서를 읽기 위하여 매일 아침과 저녁의 시간을 따로 정하라고 조언하고, 2) 가능하면 구약성서에서 한 장을, 신약성서에서 한 장을 읽으라고 구체적인 제안을 내놓았다.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한 장 혹은 한 장의 일부분을 읽으라고도 조언한다. 3) 성서를 읽을 때는 하나의 목적, 즉 하나님의 모든 뜻을 알고자 하는 목적과 그 뜻을 행하겠다는 굳은 결의를 가지고 읽으라고 권한다. 4)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서는, 신앙 유비에 눈을 고정해야 한다. 중요하고 근본적인 교리들-원죄, 이신칭의, 신생, 내적 외적 성결-사이에는 관련성과 조화가 있다. 5) 하나님의 계시에 나아가기 전에 “성서는 성서를 준 성령을 통해서만 이해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신중하고 간결하게 기도해야 한다. 읽은 것들이 우리 마음에 기록되도록 하기 위해서 다 읽고 난 후에도 기도해야 한다. 6) 성서를 읽는 동안에 마음과 삶을 검토하기 위해, 자신을 성찰하는 시간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무슨 빛이 주어지든, 최선을 다해 즉시 활용해야 한다. 결코 지체하지 말라. 무엇인가 결심한 것이 있으면, 될 수 있는 대로 첫 순간부터 실행에 옮기라. 그러면 당신은 이 말씀이 현재와 영원한 구원에 이르게 하는 하나님의 힘임을 발견할 것이다.
        위에서 웨슬리가 구체적으로 제안한 요소들은 그 자신의 사역과 밀접하다. 그는 일평생을 설교와 복음전도로 헌신한 전도자였다. 그의 일생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성서읽기에 대한 전적인 헌신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한 책의 사람”이 되고자 한 것은 웨슬리 자신이 성서해석 뿐이 아니라 그것의 실천을 중시했음을 의미한다. 
 

7. 웨슬리와 칼빈, 그리고 포스트모던 시대
        신학은 성서에 대한 해석을 추구할 뿐 아니라 그것으로부터 출발한다는 점에서 해석학적이다. 그렇지만 해석에는 항상 전제(presupposition)와 함께 선이해(Vorverständnis)의 문제가 뒤따르게 마련이다. 무엇이 사실인지 그리고 그 사실이 사실이라는 것이 어떻게 인식되는지 그리고 그 둘 사이의 관계를 판정하는 것은 전제와 관련하여 오늘날 성서해석에서 가장 중요하게 취급되는 주제다. 전제와 선이해의 중요성에 대한 자각은 불트만의 언급으로 이미 상식화된 바이다.64) 그래서 해석은 해석을 감행하는 순간부터 위험한 과제가 된다. 결과적으로 해석자에게 남겨진 과제는 “무엇이 본문에 대한 가장 적절한 읽기”냐는 것이다. 성서해석에 있어서 불트만이 지적한 선이해와 전제는 고려할 가치가 있고,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그렇다고 해서 성서가 기록되어 원래의 독자들에게 전달된 역사적 상황을 참작하지 않고 현재 독자의 위치만을 고려한다면 해석상의 오류를 발생시키는 것은 불을 보듯 확실하다. 그러므로 독자/해석자의 실증적이거나 현상학적 판단만으로 성서가 담고 있는 세계를 철저하게 밝혀낼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지극히 위험한 발상이다. 이러한 비판적 입장은 라이트가 대변하는데,65) 그에 의하면, 성서에 기록된 이야기는 오히려 인간의 삶의 기본적인 구성요소이고, 세계관이라는 전체 구조물 내에서 핵심적인 요소가 된다는 것이다. 즉, 성서의 이야기 속에는 실증적이고 현상학적인 탐색만으로는 획득할 수 없는 다양한 층위가 내재되어 있어서 해석자가 지닌 하나의 관점으로 그것을 찾아내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여기서 다시 우리는 또 다른 물음 앞에 서게 된다. 그러한 다양한 세계를 읽어내는 것이 난해한 것이라면, 어떻게 그 목표점에 도달할 수 있냐는 것이다. 그 누가 이렇게 위험하고 복잡한 난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더구나 텍스트에 대한 해석의 가능성이 다양하고, 본문의 의미 해석에 대한 주장들이 여럿이라면, “왜 여전히 개혁신학이고, 칼빈이고, 어째서 웨슬리에게서 개혁신학이 계승되고 있는지”를 검토해야 하느냐는 문제가 제기된다. 우리가 칼빈과 웨슬리에 관심을 갖는 전제에는 개혁신학의 전통적 읽기가 성서의 텍스트를 적절하게 읽어왔다는 것이 암시되어 있다. 해석의 여정이 험난하고, 그 해석은 언제나 상황에 따라서 달라질 수밖에 없다면, 어째서 웨슬리와 칼빈을 21세기의 시점에서 굳이 언급해야 하는가? 그들은 그들의 시대에 효용성과 가치를 다 한 게 아닌가? 솔직히 말해서, 해석의 다양성이 용인되고,66) 또한 해석의 여정이 카멜레온과 같다면 종교개혁 이후 줄곧 프로테스탄트 교회가 주창해온 성서적 진리를 함축하는 전통적인 해석을 고수할 이유를 찾을 수 있는가?
        환언하여, 다양한 해석이 옹호되고 다양한 해석 모델과 관련된 담론의 방식들이 나열되면서 독자/해석자의 특권이 전능자와 같은 자리로 확보되는 현실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저자의 의도를 전혀 상관하지 않으면서 성서의 텍스트에 관하여 우리가 무엇을 말할 수 있을 것인가? 하나님의 구원이라는 의미의 세계를 성서의 본문을 통하여 해석하고, 그것으로부터 저자가 의도한 의미를 찾으려고 하는 입장은 해석자가 의미를 찾고자 할 때, 의미는 특정한 상징과 절차를 통해서 저자가 함축한 것으로 동일하게 존재한다고 말하는 허쉬의 입장에 밀접해 있다.67) 그렇지만 여기서 저자와 본문의 차이를 지적해야 할 것이다. 텍스트를 해석할 때, 해석자는 텍스트의 읽기를 통해서 적어도 세 가지 차원, 저자(author), 독자(reader) 그리고 본문(text)의 의미를 탐구한다. 어느 경우에는, 허쉬가 주장하는 것처럼, 저자가 의도한 의미를 찾아내려고 할 것이며, 다른 경우에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총아인 독자의 전권을 자랑하는 상황인 독자가 생산해내는 의미가 있을 수 있고, 또한 양자(兩者)가 아니라 본문 자체 속에 내재된 독립된 의미를 추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정경(Canon)인 성서를 읽는 해석학적 상황에서는 저자와 본문의 차이를 선명하게 구별한다는 것 자체가 난제다. 왜냐하면 정경인 이상 그것은 이미 성서의 권위와 교회의 결정이라는 신학적 차원이 암묵적으로 내재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한계는 해석의 목적을 저자의 의미를 찾아내는 것으로 정리하는 허쉬에게서도 발견된다.68) 즉, 의미를 결정하는 것은 독자의 역사적인 실존으로부터 분리되어 저자의 의지에 달려있다는 해석학적 제안은 본문에 의미가 내재해 있다고 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이와 같이 저자와 본문의 일치는 칼빈과 웨슬리의 전통적인 해석에 친화하도록 우리의 시선을 고정시킨다. 그러므로 성서를 적절하게 해석하기 위해서는 현대 해석학의 특징 가운데 하나인 독자가 만들어내는 의미의 생산적 차원이 아니라 본문에 대한 정당한 이해가 필수적이다.69) 즉, 씨슬턴이 제안하는 것처럼, 해석자와 텍스트 사이의 상호적이고 능동적인 관련성을 중시하는 것이야말로 성서해석의 궁극적 지향점이 되어야 한다.70) 그러나 여기서 해석자는 본문 아래에 위치한다. 즉, 성서해석에서 가장 강조되는 사항은 성서가 소유하고 있는 성서만의 지평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만 해석자는 성서를 성서로 수용하여 그 본문이 발설하고자 하는 구원의 진리를 믿음으로 받아들이게 되기 때문이다. 밴후저는 이런 차원을 “해석자란 의미의 창조자가 아니라 의미의 수용자”라고 말함으로 겸손과 확신의 해석학을 주창한다.71) 그렇다면 칼빈과 웨슬리, 이 두 신학자가 포스트모더니즘의 시대인 지금에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인가라는 앞선 질문에 대해 본 연구자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시대, 그 혼란의 끝에서 여전히 그리고 충분히 유효하며, 오히려 그들의 정신이 확장되어야 함을 확언하면서 본 연구를 마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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