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슬리 신론
웨슬리 신론
http://cafe.naver.com/modernth/804 김영선교수
목차
1. 들어가는 말
2. 하나님의 본질적 속성: 거룩성과 사랑
3. 하나님의 주권과 거룩한 사랑
4. 하나님의 삼위일체성
5. 성부 하나님의 속성과 사역
1) 성부 하나님의 속성
2) 성부 하나님의 사역
A. 창조의 사역
B. 섭리의 사역
6. 성자 하나님의 속성과 사역
7. 성령 하나님의 속성과 사역
8. 나오는 말
1. 들어가는 말
감리교회의 창설자 존 웨슬리는 그의 논문 '하나님의 주권에 관한 사상'(Thought about God's Sovereignty)에서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개념이 전체 신학의 기본이 된다"고 하였다. 우리의 신관은 우리의 종교적 삶의 형태를 결정한다. 즉 우리가 어떤 신관을 갖느냐에 따라 우리의 종교생활과 삶의 형태가 결정된다. 이는 우리가 어떤 인간관을 가지고 사느냐에 따라 우리 인간의 삶의 형태가 결정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웨슬리 신학이 구원론을 중심하고 있는 것처럼 그의 신론도 인간의 구원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전개된다. 일반적으로 웨슬리의 신학은 이론적, 사변적인 언어보다는 실천적, 실존적 언어를 사용하고 하고 있다고 일컬어지고 있다. 이는 웨슬리가 신학을 위한 조직적인 언어에 관심을 두기보다는 오히려 살아계신 하나님의 임재를 뜨겁게 체험함으로써 인간의 구원을 위한 복음 운동에 더 열정을 보여 하나님 앞에서의 오늘의 응답 또는 책임이라는 실존적 문제에 보다 더 많은 관심을 나타낸 것에 근거하여 나온 말이다. 이런 웨슬리의 신학적 언어의 성격은 그의 하나님 이해의 언어에도 나타나, 그의 하나님 이해의 언어는 형이상학적, 추상적, 사변적, 실체적, 이론적 언어의 형식을 취하기보다는 오히려 실제적, 실존적, 실천적, 경험적 언어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사실 웨슬리의 신론을 조직적으로 진술하는 작업은 쉬운 작업이 아니다. 우선 웨슬리 자신이 토마스 아퀴나스나 칼빈과 같이 그의 신학을 조직적으로 남긴 학술 서적이 없다는 것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고, 두 번째 이유는 웨슬리의 설교와 일기를 비롯한 그의 모든 저작들을 모두 이해함이 없이 그의 신론을 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 신학자가 그의 모든 저작들을 읽고 통달하여 그의 신학을 조직 신학적으로 구분하여 이를 논리적으로 진술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웨슬리에게 있어서 하나님에 대한 직접적인 자료는 아주 제한되어 있으며, 다만 그의 설교를 비롯한 그의 저술에 산발적으로 나타나 있을 뿐이다.
우리는 다음과 같이 질문하는 이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웨슬리 신학에도 신론이 있는가? 웨슬리의 하나님 이해는 우리가 전통적으로 수용하고 있는 하나님 이해와 별다른 것이 없지 않는가? 사실 피상적으로 나타난 웨슬리의 하나님 이해는 전통적 신이해(traditional theism)와 아무런 차이가 없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신학적 눈을 크게 뜨고 주의 깊게 살펴보면 웨슬리의 하나님 언어는 전통적인 실체론적 형이상학적 언어가 아닌 실존적, 실천적 언어를 사용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알버트 트루스데일(Albert Trusdale)은 하나님에 대한 웨슬리 전통을 다음과 같이 요약해 주고 있다. "1) 성서가 증언하는 하나님의 실재에 대한 믿음, 2) 거룩함과 사랑이 하나님의 존재를 본질적으로 구성하고 있다는 믿음, 3) 영원히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적이면서 본질에 있어서는 하나이신 한 분 하나님에 대한 믿음, 4) 사랑이신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믿음, 5) 하나님은 자유로이 자신을 창조자이면서 구원자로 나타내시며, 그의 현시나 계시는 결정적으로 나사렛 예수 안에 하나님의 수육으로 나타나셨고 이것이 구원의 독특한 역사를 구성하고 있다는 믿음, 6) 인간을 위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보편적이라는 믿음이다."
본고에서는 알버트 트루스데일이 요약해 준 지침을 참고로 하여 웨슬리가 일반적으로 하나님에 대하여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를 고찰하고, 그런 그의 신 이해가 오늘의 우리들에게 어떻게 해석될 수 있는지를 탐구하고자 한다.
2. 하나님의 본질적 속성: 거룩성과 사랑
웨슬리 신학방법론이 표방하고 있는 것처럼 웨슬리 신학의 근원적인 표준은 성서이다. 따라서 웨슬리의 신론 역시 성서를 중심으로 하는 신론일 수 밖에 없다. 성서는 하나님을 실재하시는 분, 살아 계시는 하나님으로 진술하고 있다. 알버트 트루스데일은 하나님의 실재에 대한 문제를 하나님에 대한 웨슬리 전통의 첫 번째 문제로 진술한다. 웨슬리안 신학자 오턴 와일리(H. Orton Wiley)는 "하나님은 영으로서, 본성과 속성상 거룩하고, 실재에 있어서 절대적이며, 능력이 무한하시며, 인격에 흠이 없으신 분이다. 그러므로 그 분은 궁극적인 기반이며 모든 것의 원인이 되시며, 모든 유한한 존재의 이유가 되신다"고 하였다. 트루스데일은 이와 같은 와일리의 주장은 하나님을 단지 인간의 자아나 의식이 주관적으로 투사된 것으로 보는 루드비히 포이에르바하(Ludwig Feuerbach), 칼 마르크스(Karl Marx), 그리고 지그문트 프로이드(Sigmund Freud) 같은 사람들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대하는 것임을 천명하고, 웨슬리 신학은 무한하고 영원한 영으로서 하나님은 참이시며 실제적인 현존을 가지고 계시다는 성서의 가르침을 따르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알버트 트루스데일이 두 번째로 말하고 있는 거룩함과 사랑이 하나님의 존재를 본질적으로 구성하고 있다는 믿음에 대하여 고찰해보자. 트루스데일이 바르게 본바와 같이, 웨슬리의 신관의 특징은 하나님의 본질을 성결과 사랑으로 보는데 있다. 웨슬리는 그의 설교 "하나님의 통일성"(The Unity of the Divine Being)에서 하나님을 거룩하시고 사랑이신 분으로 간주함으로서 하나님의 거룩성과 사랑을 하나님의 본질적인 속성으로 구성한다. 웨슬리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거룩성과 사랑은 단순히 하나님의 속성 중에 속하여 있는 어떤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본질에 해당된다.
웨슬리는 그의 『신약성서주해』(Explanatory Notes Upon the New Testament)에서 요한일서 4장 8절을 주해하면서 사랑은 하나님의 여러 완전성 모두를 포괄하는 속성이라고 하였다. 사랑과 거룩은 상반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거룩성은 하나님의 사랑에 근거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하나님의 속성을 말할 때 그의 거룩성과 사랑을 떠나서 논의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하나님(Holiness)이다. 그 분은 악과 무관하며, 정의와 진리의 하나님이시며, 어두움이 없고 빛으로 계신 분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거룩 거룩 거룩 전능하신 주여"(찬송가 9장)하며 거룩하신 분으로 찬양한다. 하나님의 속성 중에 가장 근원적인 속성이 아마도 거룩성일 것이다. 하나님의 거룩성이란 인간의 피조성과는 대조되는 하나님의 숭고함이다. 하나님의 거룩성은 그의 영원성은 물론 그의 전지성과 전능성 그리고 편재성을 포함하고 있다. 하나님 이외에 어떤 존재도 거룩할 수가 없다. 우리가 하나님만이 절대적으로 완전하다고 말할 때, 하나님의 거룩성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완전성을 말하는 개념이기도 하다. 그러나 웨슬리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거룩하심의 개념은 추상적이고 사변적인 사고에서 나오는 희랍적 사고의 '높고 높음의 불가항력적인(irresponsible)' 개념이 아니라 그의 백성과 관계(교제)를 나누시는 히브리적인 사고 또는 동방 전통적 사고의 '응답 가능한(responsible)' 개념이다. 이런 응답 가능한 개념으로서의 하나님의 거룩성은 하나님과 인간들의 사랑의 삶의 자리를 마련해 준다.
구원론적으로 신관을 펼치는 웨슬리는 '하나님의 거룩성' 다음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강조한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Loving God)이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요일 4:16)라는 말은 웨슬리의 신관의 중심을 표현한 말이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에 사랑하시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완전의 본질은 사랑하는 것이다. 웨슬리는 사랑의 개념을 완전의 개념으로 보았다. 웨슬리는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 가장 인상적이게 하는 것은 사랑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주적이어서 선하고 온유한 사람만이 아니라 고집센 사람, 그리고 악하고 감사하지 않는 사람까지도 포용하는 사랑이다. 웨슬리는 사랑이신 하나님은 모든 인간을 보편적으로 사랑하신다고 보았다. 그리하여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사랑을 예외없이 모두 받고 있기 때문에 그의 사랑을 거부하지 않는 한 모든 인간이 속죄 받을 수 있고(만인속죄설) 그로 인하여 구원받을 수 있다(만인구원설)고 보았다. 그러나 그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한 구속적인 사랑을 거부하는 사람들은 구원에서 제외될 수밖에 없다고 본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인간들에게 강제로 사랑을 베푸시고 구원을 받게 하시는 하나님이 아니기 때문이다. 인격을 가지신 하나님은 인간들의 인격과 자유의지를 존중한다. 따라서 인간들이 의지적으로 하나님의 보편적인 사랑을 거부한다면 그분의 사랑을 수용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구원을 거부하게 된다. 웨슬리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말할 때, 그 사랑이란 그의 사랑을 받는 인간들의 가치와 책임성을 존중하는 '거룩한 사랑'(Holy love)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본질적인 속성으로 하나님의 거룩성과 사랑을 논한 이 진술에서 나타나는 웨슬리의 하나님 이해의 언어는 사변적인 모습보다 실존적인 신관의 모습이 더 크게 나타나고 있음을 본다. 하나님의 거룩성은 이미 상술된 바와 같이 절대적인 완전을 의미하는 개념이기는 하지만 하나님의 거룩성이 추상적 개념인 아닌 응답 가능한 개념으로 이해되고 있다. 웨슬리가 이해한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며 또한 거룩하신 하나님이다. 거룩하신 하나님 그리고 사랑의 하나님은 모든 것을 초월하여 형이상학적으로 또는 관념적으로 계신 분이 아니라 실제적으로 모든 것과 관계를 맺으시며, 특히 인간들과 '거룩한 사랑'을 나누시는 분이다.
3. 하나님의 주권과 거룩한 사랑
하나님의 속성인 거룩성과 사랑의 문제는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문제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거룩하시고 사랑이신 하나님은 인간에게 은총을 베푸신다. 웨슬리에 의하면 인간의 타락으로 인간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하나님의 형상 가운데 '도덕적인 형상'은 모두 상실되었다 할지라도 '자연적 형상'과 '정치적 형상'은 부분적으로 남아있어서(대부분 부패되어 온전히 그 기능을 발휘할 수 없을지라도) 인간은 구원을 얻을 수 있는 '접촉점'(touching point)을 지니게 되었다고 보았다. 우리의 일상의 경험세계에서도 보는바 통치자의 성장 환경과 그 과정 그리고 인격과 성격에 따라 그의 주권적 행위가 무관하지 않은 것처럼 하나님의 주권도 그의 속성과 무관하게 이해될 수 없다. 웨슬리는 사랑이신 하나님은 인간에게 선행은총(prevenient grace)을 베푸셔서 인간의 타락으로 영원히 멸망할 수 밖에 없는 인간들이 구원받을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놓으셨음을 주장한다. 이 선행 은총은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거룩하신 사랑으로부터 수여된 것이다. 웨슬리는 하나님의 거룩한 사랑, 즉 은총의 하나님을 강조했다고 볼 수 있다. 웨슬리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은총은 모든 사람을 위해서 자유롭게 그리고 값없이 주시는 은혜이다. 웨슬리는 하나님은 무한하신 사랑으로 죄에 빠진 인간의 구원에 대한 관심이 지대하신 분으로 생각하고, 구원의 은총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수없이 언급한다. 따라서 인간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지고한 사랑을 강조하는 웨슬리의 신관의 기초는 하나님의 지배적인 사랑에 있으며, 폭군의 하나님은 웨슬리에게 있어서 생각할 수도 없다.
혹자는 칼빈이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했다면 웨슬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강조하였다고 한다. 이 말은 웨슬리가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보다는 구원과 직접관계가 깊은 하나님의 사랑에 관심을 더 기울인데서 나온 말일 것이다. 웨슬리는 칼빈주의자들이 말하는 예정론을 거부한다. 왜냐하면 예정론은 하나님의 본성이 의도하는 바와 일치되지 않기 때문이다. 예정론은 하나님의 거룩성과, 사랑, 그리고 정의와 자비의 속성과 배치된다. 웨슬리에게 하나님은 폭군적으로 통치하시는 하나님(주권적인 군주)이 아니라 그의 자녀 되는 인간들의 인격을 존중하고 진실한 사랑으로 돌보시는 우리의 아버지 하나님으로서 이해하기 때문에 칼빈주의자들이 말하는 예정론을 수용할 수 없는 것으로 본다. 따라서 웨슬리는 인간의 구원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에 달려있다는 차원에서 칼빈과 같은 선상에 있지만 그 주권이 행사되는 방법과 범위에서는 칼빈과는 달리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그리고 구속의 보편성을 더 강조한다.
하나님의 주권보다 인간에게 은총을 베푸시고 죄에 빠진 그들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더 관심을 가지고 그것을 강조한 웨슬리의 하나님 상(象)은 하늘에 초연히 계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인간들을 사랑을 가지고 돌보시는 아버지로서의 하나님이다. 이 하나님은 그가 창조한 모든 것과 관계하시고 계시다. 이런 그의 속성은 그가 관계를 떠나서는 존재하지 않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실제로 웨슬리에게 있어서 본질적으로 거룩하시고 사랑이신 하나님은 관계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 관계를 잘 보여주고 있는 것이 하나님의 삼위일체성이다.
http://cafe.naver.com/modernth/804 김영선교수
목차
1. 들어가는 말
2. 하나님의 본질적 속성: 거룩성과 사랑
3. 하나님의 주권과 거룩한 사랑
4. 하나님의 삼위일체성
5. 성부 하나님의 속성과 사역
1) 성부 하나님의 속성
2) 성부 하나님의 사역
A. 창조의 사역
B. 섭리의 사역
6. 성자 하나님의 속성과 사역
7. 성령 하나님의 속성과 사역
8. 나오는 말
1. 들어가는 말
감리교회의 창설자 존 웨슬리는 그의 논문 '하나님의 주권에 관한 사상'(Thought about God's Sovereignty)에서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개념이 전체 신학의 기본이 된다"고 하였다. 우리의 신관은 우리의 종교적 삶의 형태를 결정한다. 즉 우리가 어떤 신관을 갖느냐에 따라 우리의 종교생활과 삶의 형태가 결정된다. 이는 우리가 어떤 인간관을 가지고 사느냐에 따라 우리 인간의 삶의 형태가 결정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웨슬리 신학이 구원론을 중심하고 있는 것처럼 그의 신론도 인간의 구원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전개된다. 일반적으로 웨슬리의 신학은 이론적, 사변적인 언어보다는 실천적, 실존적 언어를 사용하고 하고 있다고 일컬어지고 있다. 이는 웨슬리가 신학을 위한 조직적인 언어에 관심을 두기보다는 오히려 살아계신 하나님의 임재를 뜨겁게 체험함으로써 인간의 구원을 위한 복음 운동에 더 열정을 보여 하나님 앞에서의 오늘의 응답 또는 책임이라는 실존적 문제에 보다 더 많은 관심을 나타낸 것에 근거하여 나온 말이다. 이런 웨슬리의 신학적 언어의 성격은 그의 하나님 이해의 언어에도 나타나, 그의 하나님 이해의 언어는 형이상학적, 추상적, 사변적, 실체적, 이론적 언어의 형식을 취하기보다는 오히려 실제적, 실존적, 실천적, 경험적 언어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사실 웨슬리의 신론을 조직적으로 진술하는 작업은 쉬운 작업이 아니다. 우선 웨슬리 자신이 토마스 아퀴나스나 칼빈과 같이 그의 신학을 조직적으로 남긴 학술 서적이 없다는 것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고, 두 번째 이유는 웨슬리의 설교와 일기를 비롯한 그의 모든 저작들을 모두 이해함이 없이 그의 신론을 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 신학자가 그의 모든 저작들을 읽고 통달하여 그의 신학을 조직 신학적으로 구분하여 이를 논리적으로 진술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웨슬리에게 있어서 하나님에 대한 직접적인 자료는 아주 제한되어 있으며, 다만 그의 설교를 비롯한 그의 저술에 산발적으로 나타나 있을 뿐이다.
우리는 다음과 같이 질문하는 이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웨슬리 신학에도 신론이 있는가? 웨슬리의 하나님 이해는 우리가 전통적으로 수용하고 있는 하나님 이해와 별다른 것이 없지 않는가? 사실 피상적으로 나타난 웨슬리의 하나님 이해는 전통적 신이해(traditional theism)와 아무런 차이가 없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신학적 눈을 크게 뜨고 주의 깊게 살펴보면 웨슬리의 하나님 언어는 전통적인 실체론적 형이상학적 언어가 아닌 실존적, 실천적 언어를 사용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알버트 트루스데일(Albert Trusdale)은 하나님에 대한 웨슬리 전통을 다음과 같이 요약해 주고 있다. "1) 성서가 증언하는 하나님의 실재에 대한 믿음, 2) 거룩함과 사랑이 하나님의 존재를 본질적으로 구성하고 있다는 믿음, 3) 영원히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적이면서 본질에 있어서는 하나이신 한 분 하나님에 대한 믿음, 4) 사랑이신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믿음, 5) 하나님은 자유로이 자신을 창조자이면서 구원자로 나타내시며, 그의 현시나 계시는 결정적으로 나사렛 예수 안에 하나님의 수육으로 나타나셨고 이것이 구원의 독특한 역사를 구성하고 있다는 믿음, 6) 인간을 위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보편적이라는 믿음이다."
본고에서는 알버트 트루스데일이 요약해 준 지침을 참고로 하여 웨슬리가 일반적으로 하나님에 대하여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를 고찰하고, 그런 그의 신 이해가 오늘의 우리들에게 어떻게 해석될 수 있는지를 탐구하고자 한다.
2. 하나님의 본질적 속성: 거룩성과 사랑
웨슬리 신학방법론이 표방하고 있는 것처럼 웨슬리 신학의 근원적인 표준은 성서이다. 따라서 웨슬리의 신론 역시 성서를 중심으로 하는 신론일 수 밖에 없다. 성서는 하나님을 실재하시는 분, 살아 계시는 하나님으로 진술하고 있다. 알버트 트루스데일은 하나님의 실재에 대한 문제를 하나님에 대한 웨슬리 전통의 첫 번째 문제로 진술한다. 웨슬리안 신학자 오턴 와일리(H. Orton Wiley)는 "하나님은 영으로서, 본성과 속성상 거룩하고, 실재에 있어서 절대적이며, 능력이 무한하시며, 인격에 흠이 없으신 분이다. 그러므로 그 분은 궁극적인 기반이며 모든 것의 원인이 되시며, 모든 유한한 존재의 이유가 되신다"고 하였다. 트루스데일은 이와 같은 와일리의 주장은 하나님을 단지 인간의 자아나 의식이 주관적으로 투사된 것으로 보는 루드비히 포이에르바하(Ludwig Feuerbach), 칼 마르크스(Karl Marx), 그리고 지그문트 프로이드(Sigmund Freud) 같은 사람들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대하는 것임을 천명하고, 웨슬리 신학은 무한하고 영원한 영으로서 하나님은 참이시며 실제적인 현존을 가지고 계시다는 성서의 가르침을 따르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알버트 트루스데일이 두 번째로 말하고 있는 거룩함과 사랑이 하나님의 존재를 본질적으로 구성하고 있다는 믿음에 대하여 고찰해보자. 트루스데일이 바르게 본바와 같이, 웨슬리의 신관의 특징은 하나님의 본질을 성결과 사랑으로 보는데 있다. 웨슬리는 그의 설교 "하나님의 통일성"(The Unity of the Divine Being)에서 하나님을 거룩하시고 사랑이신 분으로 간주함으로서 하나님의 거룩성과 사랑을 하나님의 본질적인 속성으로 구성한다. 웨슬리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거룩성과 사랑은 단순히 하나님의 속성 중에 속하여 있는 어떤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본질에 해당된다.
웨슬리는 그의 『신약성서주해』(Explanatory Notes Upon the New Testament)에서 요한일서 4장 8절을 주해하면서 사랑은 하나님의 여러 완전성 모두를 포괄하는 속성이라고 하였다. 사랑과 거룩은 상반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거룩성은 하나님의 사랑에 근거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하나님의 속성을 말할 때 그의 거룩성과 사랑을 떠나서 논의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하나님(Holiness)이다. 그 분은 악과 무관하며, 정의와 진리의 하나님이시며, 어두움이 없고 빛으로 계신 분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거룩 거룩 거룩 전능하신 주여"(찬송가 9장)하며 거룩하신 분으로 찬양한다. 하나님의 속성 중에 가장 근원적인 속성이 아마도 거룩성일 것이다. 하나님의 거룩성이란 인간의 피조성과는 대조되는 하나님의 숭고함이다. 하나님의 거룩성은 그의 영원성은 물론 그의 전지성과 전능성 그리고 편재성을 포함하고 있다. 하나님 이외에 어떤 존재도 거룩할 수가 없다. 우리가 하나님만이 절대적으로 완전하다고 말할 때, 하나님의 거룩성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완전성을 말하는 개념이기도 하다. 그러나 웨슬리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거룩하심의 개념은 추상적이고 사변적인 사고에서 나오는 희랍적 사고의 '높고 높음의 불가항력적인(irresponsible)' 개념이 아니라 그의 백성과 관계(교제)를 나누시는 히브리적인 사고 또는 동방 전통적 사고의 '응답 가능한(responsible)' 개념이다. 이런 응답 가능한 개념으로서의 하나님의 거룩성은 하나님과 인간들의 사랑의 삶의 자리를 마련해 준다.
구원론적으로 신관을 펼치는 웨슬리는 '하나님의 거룩성' 다음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강조한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Loving God)이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요일 4:16)라는 말은 웨슬리의 신관의 중심을 표현한 말이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에 사랑하시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완전의 본질은 사랑하는 것이다. 웨슬리는 사랑의 개념을 완전의 개념으로 보았다. 웨슬리는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 가장 인상적이게 하는 것은 사랑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주적이어서 선하고 온유한 사람만이 아니라 고집센 사람, 그리고 악하고 감사하지 않는 사람까지도 포용하는 사랑이다. 웨슬리는 사랑이신 하나님은 모든 인간을 보편적으로 사랑하신다고 보았다. 그리하여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사랑을 예외없이 모두 받고 있기 때문에 그의 사랑을 거부하지 않는 한 모든 인간이 속죄 받을 수 있고(만인속죄설) 그로 인하여 구원받을 수 있다(만인구원설)고 보았다. 그러나 그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한 구속적인 사랑을 거부하는 사람들은 구원에서 제외될 수밖에 없다고 본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인간들에게 강제로 사랑을 베푸시고 구원을 받게 하시는 하나님이 아니기 때문이다. 인격을 가지신 하나님은 인간들의 인격과 자유의지를 존중한다. 따라서 인간들이 의지적으로 하나님의 보편적인 사랑을 거부한다면 그분의 사랑을 수용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구원을 거부하게 된다. 웨슬리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말할 때, 그 사랑이란 그의 사랑을 받는 인간들의 가치와 책임성을 존중하는 '거룩한 사랑'(Holy love)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본질적인 속성으로 하나님의 거룩성과 사랑을 논한 이 진술에서 나타나는 웨슬리의 하나님 이해의 언어는 사변적인 모습보다 실존적인 신관의 모습이 더 크게 나타나고 있음을 본다. 하나님의 거룩성은 이미 상술된 바와 같이 절대적인 완전을 의미하는 개념이기는 하지만 하나님의 거룩성이 추상적 개념인 아닌 응답 가능한 개념으로 이해되고 있다. 웨슬리가 이해한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며 또한 거룩하신 하나님이다. 거룩하신 하나님 그리고 사랑의 하나님은 모든 것을 초월하여 형이상학적으로 또는 관념적으로 계신 분이 아니라 실제적으로 모든 것과 관계를 맺으시며, 특히 인간들과 '거룩한 사랑'을 나누시는 분이다.
3. 하나님의 주권과 거룩한 사랑
하나님의 속성인 거룩성과 사랑의 문제는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문제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거룩하시고 사랑이신 하나님은 인간에게 은총을 베푸신다. 웨슬리에 의하면 인간의 타락으로 인간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하나님의 형상 가운데 '도덕적인 형상'은 모두 상실되었다 할지라도 '자연적 형상'과 '정치적 형상'은 부분적으로 남아있어서(대부분 부패되어 온전히 그 기능을 발휘할 수 없을지라도) 인간은 구원을 얻을 수 있는 '접촉점'(touching point)을 지니게 되었다고 보았다. 우리의 일상의 경험세계에서도 보는바 통치자의 성장 환경과 그 과정 그리고 인격과 성격에 따라 그의 주권적 행위가 무관하지 않은 것처럼 하나님의 주권도 그의 속성과 무관하게 이해될 수 없다. 웨슬리는 사랑이신 하나님은 인간에게 선행은총(prevenient grace)을 베푸셔서 인간의 타락으로 영원히 멸망할 수 밖에 없는 인간들이 구원받을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놓으셨음을 주장한다. 이 선행 은총은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거룩하신 사랑으로부터 수여된 것이다. 웨슬리는 하나님의 거룩한 사랑, 즉 은총의 하나님을 강조했다고 볼 수 있다. 웨슬리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은총은 모든 사람을 위해서 자유롭게 그리고 값없이 주시는 은혜이다. 웨슬리는 하나님은 무한하신 사랑으로 죄에 빠진 인간의 구원에 대한 관심이 지대하신 분으로 생각하고, 구원의 은총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수없이 언급한다. 따라서 인간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지고한 사랑을 강조하는 웨슬리의 신관의 기초는 하나님의 지배적인 사랑에 있으며, 폭군의 하나님은 웨슬리에게 있어서 생각할 수도 없다.
혹자는 칼빈이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했다면 웨슬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강조하였다고 한다. 이 말은 웨슬리가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보다는 구원과 직접관계가 깊은 하나님의 사랑에 관심을 더 기울인데서 나온 말일 것이다. 웨슬리는 칼빈주의자들이 말하는 예정론을 거부한다. 왜냐하면 예정론은 하나님의 본성이 의도하는 바와 일치되지 않기 때문이다. 예정론은 하나님의 거룩성과, 사랑, 그리고 정의와 자비의 속성과 배치된다. 웨슬리에게 하나님은 폭군적으로 통치하시는 하나님(주권적인 군주)이 아니라 그의 자녀 되는 인간들의 인격을 존중하고 진실한 사랑으로 돌보시는 우리의 아버지 하나님으로서 이해하기 때문에 칼빈주의자들이 말하는 예정론을 수용할 수 없는 것으로 본다. 따라서 웨슬리는 인간의 구원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에 달려있다는 차원에서 칼빈과 같은 선상에 있지만 그 주권이 행사되는 방법과 범위에서는 칼빈과는 달리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그리고 구속의 보편성을 더 강조한다.
하나님의 주권보다 인간에게 은총을 베푸시고 죄에 빠진 그들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더 관심을 가지고 그것을 강조한 웨슬리의 하나님 상(象)은 하늘에 초연히 계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인간들을 사랑을 가지고 돌보시는 아버지로서의 하나님이다. 이 하나님은 그가 창조한 모든 것과 관계하시고 계시다. 이런 그의 속성은 그가 관계를 떠나서는 존재하지 않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실제로 웨슬리에게 있어서 본질적으로 거룩하시고 사랑이신 하나님은 관계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 관계를 잘 보여주고 있는 것이 하나님의 삼위일체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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