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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웨슬리의 교육신학

존 웨슬리의 교육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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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웨슬리의 교육신학
제 1 장 존 웨슬리의 교육신학
제 1부에서는 존 웨슬리의 사상을 신학과 교육의 관계성이란 관점에서, 문헌고찰의 방법으로 접근하려는 하나의 시도이다.
신학적으로 존 웨슬레는 문화의 신학자이다. 극는 복음을 그 시대의 일반 민중들에게 어려운 사상의 내용일지라도 평이한 표현 방법으로 소개했으며, 복음 전도자의 메시지를 통하여 대중들에게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한 민중신학 였다.
그는 18세기에 살았던 영국의 교육실천가였다. 18세기 영국 역사상 교육의 근거와 발전에 순조롭지 못한 시가였으나 우연한 행운으로 웨슬리는 그의 종교적 사명을 완수 하는데 교육이 기초가 됨을 알았다. 그리하여 그는 교육의 이론적 체게를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사도시대에도 부끄럽지 않을 이상적인 학교를 건설하는 작업을 시작한 것이다. 존 웨슬리의 신학 사상을 오늘 우리 시대의 상황과 어떻게 연관시켜서 해석하느냐 하는 과제는 앞으로 존 웨슬리 신학의 새로운 작업이 아닐 수 없다.
제 2 장 기독교 교육자 존 웨슬리
존 웨슬리는 민중신학자이며 민중교육의 실천적인 창시자였다. 존 웨슬리는 통상적인 교육보다 더 나은 교육을 실천 하고자 결심하였다. 먼저 그는 그 시대에 있어서 교육적으로 잘못된 점들을 지적하였다.
첫째는 그시대의 교육제도가 야만적이고 가혹하다는 점에 대해 지적하였고, 둘째는 ㅡ 시대의 특징이었던 `이교도 교장들'의 불 신앙적인 가르침에 대항하여 진정한 종교적 정신에 입각한 새로운 교육제도를 만들고자 하였다.
존 웨슬리의 교육이론을 정립하는 데 크게 영향을 준 인문주의자 몇 사람이 있다. 특히 존 록크의 사상이었는데, 록크는 "교육이란 규율이다"라고 주장했는데 그의 사상은 그 시대의 성공적인 교육의 근거를 이루는데 기여하였다. 존 웨슬리가 록크에게서 영향받았다고 보여지는 내용은 존 웨슬리의 `가정교육'에 관한 설교에 나타나 있다. 즉 그것은 `하나님 자신이 피조물을 가장 잘 알고 계시며 회초리를 아끼는 사람은 그 아들을 미워한다'란 표현이다.
18세기 영국의 귀족께급은 빈민층에 대한 교육에 관심을 두고 있지 않았다. 주일학교는 주중의 일과 겹치지 않는 날을 택해서 빈민층의 자녀에게 교육을 실시하였다. 존 웨슬리는 당시 가장 이상적인 학교를 세우려고 결심한 후 영국 네덜란드 독일에서 이름난 몇개의 학교들을 탐방하고 조사 하였다. 존 웨슬리는 교육의 문제점들을 다섯 가지로 비판하고 있다.
첫째는 학교가 나쁜 환경에 위치해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둘째는 좋은 학교에 난잡한 아이들이 입학하는 것을 반대하고 있다.
셋째는 종교교육의 극단적인 결함을 지적하고 있다.
넷째는 종교의 선택을 지적하고 있다. 아이들이 선한 종교를 바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중요함을 역설하였다.
다섯째는 종교교육의 방법과 범위에 대한 결함을 지적했다. 무엇보다도 존 웨슬리는 당시의 학교들이 종교와 종교적 동기에 대한 태도에서 전적으로 잘못되었음을 지적했다. 존 웬슬리는 조지아에서 독일인 목사 스팡겐버그로 부터 모라비안 교회의 교육과 신앙의영향을 받았다. 헤른허트에서 코메니우스가 가르친 `교수의 방법론'의 내용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코메니우스에게서
존 웨슬리는 교수방법론의 아홉 가지 원리를 배웠다. 첫째, 무엇이나 배우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가르쳐야만 한다. 어떤 대상이나 사상을 가르칠때는 형식이나 상징을 쓰지 말고 직접 아이들에게 실물 교육을 시켜야 한다. 존 웨슬리는 이 사상을 그의 교수방법에 적용시켜서 "어린이에게 태양을 보여라. 나무와 꽃을 보여라"고 말한다. 이것은 코메니우스의 실물교육 교수방법으롯거, 존 웨슬리는 이 방법을 자연을 큰 교과서로 삼아서 하늘과 땅, 나무들 그리고 바람에게서 배우게 한 것이다. 또한 모라비안 교도의 교육철학이 존 웨슬리에게 준 가장 큰 공헌은 아마 어린이의 의지를 교사의 의지에 전적으로 항복시키도록 하는 것이다.헤른허트의 모라비안 교도에게서 배운 교육은 "학생들의 의지를 고쳐 주는 것"이었다.이것은 이미 존 웨슬리가 어머니 수산나 존 웨슬리에게서 전수 받은 것이다.
그의 교육과정에서 앵글리칸이즘, 즉 성공회주의란 공동생활의 형태를 띤 기독교인의 생활로서 모든 사람을 전통 속에 묶는 신앙 형태를 의미한다. 또한 퓨리탄이즘, 즉 청교도주의란 개인이 구원받기 위한 노력으로서 하나님과 연합하는 신앙의 형태를 의미한다. 존 웨슬리의 교육적 관심은 계몽주의 시대의 교육과 문화 위에 세원진 기독교 신학의 틀을 벗어나 진정한 기독교의 신앙 위에 다시 교육을 세우려는 것이었다. 즉 그는 계몽주의 시대의 이성과 상식에 근거한 이신론의 신앙 위에 종교의 기초를 놓으려던 `기독교 지식 진흥협회'를 배격 하였다.
킹스우드 학교의 이상과 실천을 살펴볼면 가난한 자를 위한 교육이었다. 미국 조지아 주로 선교여행을 떠났을때 가난한 아이들은 양말과 신발을 신을수가 없어서 맨발로 그냥 학교에 다녔다. 그러나 잘 사는 집 아이들은 신발과 양말은 물론 옷차림도 잘 하고 학교에 다녔다. 그래서 학생들이 두 갈래로 나뉘어졌다. 가난한 집 아이들과 부유한 집 아이들이 서로 갈등하고 대립하는 일이 심해졌다.
웨슬레의 조지아 선교초기 교육사상의 특징은 하층계급을 교육시키는 문제에 초점을 두었다는 것과 종교와 교육은 분리될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임을 실천하였다는 것 그리고 어린학생들에게도 참된 회심이 일어날 수 있다는 확신을 보여주었다는 것이었다. 조지아 선교후 일년이 지났을 무렵 존웨슬리와 휫필드는 킹스우드학교를 세웠다. 존 웨슬리와 횟필드의 교육 목적은 첫째, 교육의 목적은 어린이들의 영혼을 구원하는 일이었다. 둘째, 교육의 목은 부자에게나 가난한 사람에게나 필수적으로 실천되어야 한다는 의견이 일치했다. 학생들에게는 엄격한 6가지 규율을 적용시켰는데 이 규율은 건전한 종교적 훈련을 이루고 완전한 통제를 위한 것이었다.
웨슬레의 기독교 교육을 평가함에 있어서 이제는 사회과학적 이론의 접근 방법에 따라 해석하려는 시도들이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다. 또한 존 웨슬리의 기독교 교육을 미래의 교육적 과제로 접근해 간다고 하면, 그것은 또 하나의 새로운 시도가 될 것이다. 최근의 체계적 종교교육의 특징은 기독교 교육의 이론적 근거를 신학적 접근이라든지 사회과학적 접근이라든지 하는 편파성을 벗어나서 양자를 모두 포함하면서 다학문적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존 웨슬리의 기독교 교육에 대한 평가도 이러한 기초 위에서 새롭게 접근되어야 할 것으로 본다. 첫째 존 웨슬리 신학에 대한 해석은 어떤 하나의 신학적 조류에 따라서 접근해 갈 것이 아니라 기독교 2천년의 사상사의 조명에서 재해석되어야 한다고 본다. 그 의 이론적 근거도 에큐메니칼 신학의 맥락에서 접목되어야 한다고 본다.
둘째. 존 웨슬리의 신학에 대한 최근 해석은 해방신학적 관점에서 조명하려는 작업인데, 따라서 이러한 해석학적 접근에 일치해야 할 것이다.존 웨슬리의 신학을 해방신학의 조명으로 해석할 때 그리스도-실천을 축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셋째, 존 웨슬리의 사상은 한 교단의 신학이나 한 교단의 교육으로 독점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어놀도 곤경에 처한 사람들을 위한 교육에 이상을 제시하여 주고 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되고 있는 것이다. 다라서 그의 사상은 계속 실천되어 가야 할 교육으 ㅣ실천과제로 이해되고 있다.
제 3장 웨슬리의 회심과 교육
기독교 교육이 회심의 문제를 접근할 때 우선 두 가지 역사적 흐름의 배경이 도식화 된다. 하나는 미국의 부흥운동의 핵심을 이루었던 대각성운동으로써 죄, 전적 타락, 회개 일변도의 경험, 즉 회심의 순간적 돌변이 강조되었으며 여기서 교육은 시간과 존재의 비연속성이란 근거 위에서 인간을 해석하려고 하기때문에 교육의 한계성이 노출된다. 다른 하나는 종교교육학파 운동의 아버지가 된 호레이스 부슈넬로써 그는 크리스챤 가정에서 부모의 자녀에 대한 종교교육을 강조하고 특히 신앙교육에 대한 어머니의 책임을 부각시켰다. 이 운동은 알버트 죠지코오등에 의해 주도되었으며 회개하는 돌변보다는 인간은 나면서부터 언약공동체인 가정이라는 유기체를 통해서만 영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믿었다.
"회심"이란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방향을 전환하는 운동의 행위를 의미하며 회심한다는 것은 U-turn하는 것과 같다.
구약성서의 배경에서 볼 때 회심은 때때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들의 거짓된 예배에서 돌아서서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거룩하신 하나님의 참된 신앙으로 전향하여 돌아 오라는 신적 도전과 관련된다.
신약에서 회심과 관계된 낱말들, 즉 회개, 신생과 같은 모든 낱말들은 그리스도의 인격과 메시지와 직접 관계되고 있다. 이것은 어둠에서 벗어나 빛으로의 전환을 뜻하며 정신적으로 거듭남, 혹은 거듭남으로, 또는 불안정한 생활에서부터의 희생, 죽음으로부터 생명으로 옮겨짐, 사탄으로부터 떠나 하나님께로의 전환, 피조물이 전적으로 새롭게됨이며 옛것을 버리고 새로운 인간성을 입는 일 "자신이 죽고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살아나는 것"을 의미한다. 신약에서의 회심받은 그리스도인의 모습은 그 결과를 보아서 알 수 있는 것인데 그것은 하나의 새로운 선교의식으로 나타난다. 다시말해서 바람직한 기독교의 회심의 의미는 남에게 전도하는 사명을 지는 일인 것이다.
회심의 목적은 성서적 관점에서 볼 때 회심에는 중립적이란 것이 있을 수 없다. 성서에서 우리는 내적자아, 종교의식, 인격적 도덕성, 지적인 신념, 정치적 소신 같은 것으로 규정하는 일을 하지 않는다. 성서의 회심은 또한 자아성취의 과정이란 표현을 쓰지 않는다. 성서에서 말하는 회심이란 인간이 전적으로 하나님에게 나아가 내 자신의 존재를 내맡기는 일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은 역사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기위해 개인에게 회심의 사건이 일어나도록 하는데 회심의 목적이 있고 예수 그리스도와 올바른 관계를 맺고 그의 뜻에 따라 하나님의 나라를 성취시켜 나아가려는데 그 뜻이 있다.
기독교 교육은 역사적으로 볼때 회심과 양육을 그 대상으로 하면서 서로 각각 다르게 강조해 왔다. 회심이란 주체적으로 신앙을 자기의 것으로 삼는 것이다. 이 삶의 변화는 변력적이며, 근원적이다. 그리고 우리의 사고, 감정, 의지 및 인간 영혼을 새로운 방향으로 설정한다. 크리스챤 교회는 회심된 사람을 양육해야 한다.
회심과 양육의 관계란 밀접하게 성립되며 양육과 회심은 급격한 것이거나 일상적인 것이거나 간에 상방은 모두 필요로 한다.
최근 프린스턴 신학대학의 실천신학 교수인 제임스 E 로더는 회심체험을 학문적으로 규명해 보려는 노력을 시도한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는 진리의 접근 방법에서 객관성과 주관성만을 바탕으로 하는 진리이해의 태도와 전제에서 오는 모순과 오류를 지적하고, 이 양자의 극단적인 논리의 모순을 배격한다. 로더는 `신념의 체험'을 인식하는 사건, 즉 변형의 논리 접근 과정을 다섯 단계로 설명한다. 즉 1. 갈등, 2.사건에 대한 검증, 3.환상에 대한 건설적 행위, 4.해방과 개방, 5.해석등의 다섯 과정의 논리적 관계를 원리로 삼고 있다. 여기서 로더가 `신념의 체험'을 해석하는 변형의 논리 배경에는 그의 해박한 심리학적 이해와 신학적 사고의 통합적 이해의 깊이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심리학적인 물음에서 회심이란 청년의 정체위기나 혹은 도덕적인 개인의 실패, 그리고 그것을 수용하기 위한 치유적 욕구와 관련된다. 또한 사회학적으로 볼 때 회심은 문화와 역사적 상황을 다리하고 일어난다.
중세의 배경에서, 회심에 나타난 신학, 심리학, 역사적, 혹은 사회학적 요인을 분석해 볼 때, 인간의 질문과 하나님의 주권 사이의 관계가 신비스럽지 않고 분명하였으므로 회심에 관한 내적 관념이나 감정의 변화에 있어서 무엇이 일어났는지, 고백하는 것이 곤란하였기 때문이었다.
회심의 이해의 차이는 외적으로는 교회와 교단의 횡적인 경계선을 무너뜨리기도 하고 신조와 공동체를 포기하기도 한다.또 내적으로는 고도의 황홀경을 경험하고 안정과 휴식에 이르며 지적인 변화를 일으키기도 한다.그러므로 회심에 대한 이해는 우리의 사고와 행동들과 체험이 하나님의 사랑의 신비와 연관된 변화의 모습으로 보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 계시된 사랑과 용서를 증거하는 생활 방식이어야 한다.
회심체험에 대한 해석이 신학, 심리학, 사회학적으로 다양하고 그 내용이 여러가지 형태인 것과 같이 또한 회심의 이해에 대한 비판과 평가도 다양하다.
로더는 회심체험의 이해에 있어서 합리주의자들은 회심과 같은 사건을 객관성에 근거한 합리주의적인 논리로 해석하려고 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종교적인 메시지에 대하여 필요한 진리의 인식에 있어서 분명한 오류를 저지른 결과를 가져왔다. 이들은 항상 객관적인 검증에만 관심을 두었기 때문에 신념의 체험에 대해서 그릇된 해석을 가져왔다고 지적한다.
존 웨슬리의 회심은 올더스게잇가의 집회를 방문했을 때였다. 어떤 사람이 루터의 로마서 주석 서문을 읽는 것을 듣고 존 웨슬리의 가슴은 "이상스럽게 뜨거워 짐을 느꼈다"고 한다. 존 웨슬리에게 준 루터의 영향은 다음과 같다. 존 웨슬리의 회심은 선행으로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라. 믿음을 통해 은혜로 말미암아 주어지는 구원의 확신으로 변화된다는 사상이다. 청년 웨슬리는 신앙 서적들을 탐독하며 인간 중심적인 신앙에서 벗어나려고 고민하고 심리적 갈등을 느끼면서 변화되고 있었다.
존 웨슬리의 사상과 신학의 형성 과정에 있어서 가정의 경건훈련은 중요한 영향을 주었고 그어머니 수사나의 역할이 지배적이었다.
존 웨슬리에게 구원은 3단계의 과정으로 이루어 진다. 의인이 되기 위한 조건이다. 즉, 자기를 아는 것인 회계가 첫 단계이고 구원하는 믿음, 혹은 믿음으로써의 의를 말하는 의인이 두번째 단계이며 온전한 사랑의 성취요 기독자의 완전을 향해가는 과
정인 성결이 그 마지막 단계이다. 그러나 의인의 단계는 구원이 완성되는단계는 아니다. 의인은 우리들의 모든 죄를 용서받는 단계이지 성취되는 단계는 아니다. 죄의 용서를 넘어 신생된다. 웨슬리의 구원관의 핵심은 구원의 과정이며 그 핵심은 의인과 성결의 단계이다.
영적 성숙을 위한 기독교 교육은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고 성숙한 삶을 살수 있도록 인간행위의 변형을 위한 의도적인 과정을 의미한다. 기독교 교육의 출발은 하나님의 본성과 그 목적을 바탕으로 삼고 그 핵심도 신학의 중심으로 삼아야 한다.
제 4 장 역사적 웨슬리에 대한 이해
19세기초 대서양의 웨슬레안들은 로마 카돌릭 교회와 여국교회의 탄압과 갈등으로 올더스게잇에서 있었던 회심만을 강조하였고 그것을 "프로테스탄트적 회심"이라는 말로 대체시키면서 축하하려는 경향으로 치우쳤다. 또한 웨슬레의 성례전에 대한 관심, 영국교회에 대한 비판의식, 미국의 개체교회가 상위교회에 대하여 자의식을 가지고 투쟁하였던 점들은 무시되었다. 오직 회심의 신학에 대한 신학적 문제만을 관심있게 다루었다. 19세기 말 자유주의적인 트로테스탄티즘이 일어나므로 존 웨슬리의 사상적 검토도 없이 무조건 복음주의적인 존 웨슬리로 부터 경험신학자 존 웨슬리가 될 수 있도록 단순화 시켜 버리고 말았다. 경건주의 이후 웨슬리에 대한 연구는 다양화되었는데 즉, 모라비안과의 연구, 신비주의와의 연구, 로마 카돌릭과의 연구, 영국 청교도와의 연구, 바르트 신학의 입장에서의 연구, 동방정교회와의 연구, 성결의 전통에서의 연구들이 그러한 연구들이다.
특히 영국교회와의 맥락에서 관련시켜 연구한 학자들도 있었고 기독교 윤리의 차원에서 관련시켜 연구한 학자들도 나타났다.
근대에 들어서며 오늘날의 에큐메니칼운동과 로마 카돌릭의 제2 바틴칸 회의 운동과 관련시켜 연구하려는 새로운 조명이 일어났고 오순절운동의 맥락에서 연구하려는 학자들도 나타났으며 사회운동의 차원에서 존 웨슬리의 역사적인 모습을 원인에서 보다 결과에 치중하여 보려는 견해들도 나타났는데 그들은 웨슬리를 사회 혁명가로 보았다. 이들 연구가들의 연구에서 나타난 특징을 살펴보면 학문적으로 완성시키려는 시도가 없었으며 그들 나름대로의 입장에 따라서 연구해 왔다는 것이다. 한편 감리교 세계협의회가 후원한 제 6차 옥스포드 갑리교 신학연구원은 오늘날의 해방신학에 대한 웨슬리의 유산을 관련시켜서 그 관계성을 연구하였다.
제 5장 웨슬리 연구의 해석학적 접근
알버트 C.아우틀러 박사는 웨슬리의 연구동향을 3시기로 구분하였는데, 제 1기는 감리교인들의 연구로 국한되었으며 폐쇄적인 연구 형태를 띠우고 있다. 여기서 강조하고 있는 점은 웨슬리와 감리교의 밀접한 관련성이다. 존 웨슬리 연구의 제1기는 존 웨슬리의 저술에 대한 논쟁으로 부터 시작되었다. 감리교파와 그 창시자에만 몰두했던 한 교파주의의 학문적 작업의 모습이었으나 영웅주의나 승리주의는 에큐메니칼정신의 등장과 후기 현대주의의 시작으로 쇠퇴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웨슬리연구의 제 2기로 접어들게 된 것이다. 웨슬리연구의 제2기는 신학자로서의 웨슬리에 대한 연구에 관심을 갖는 시기가 되었다. 웨슬리연구의 제2기의 특징은 존 웨슬리 저작의 원문에 대한 관심의 충실도가 약하다는 사실이다. 제3기에는 에큐메니칼 운동에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웨슬리의 연구를 보다 폭넓은 역사적 배경과 콘택스트속에서 다시 이해하려고 했다. 제 3기 에서는 웨슬리신학을 대중신학으로 보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제 3기의 웨슬리 연구에 있어서 잇슈는 존 웨슬리 연구에 있어서의 방법론적인 과제이고 자료의 문제이며 현재 당면한 문제들에 대해 웨슬리 연구를 통하여 해결하려고 할 때 그 근거의 타당성은 복음주의, 갱신, 사회변혁에 두고 현대 기독교인 모두가 연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존 웨슬리 연구의 제 3기를 미래적인 과제로 삼으려고 할 때 깊이 관심있게 다루어야 할 개념은 감리교회는 사회복음에 대한 새로운 평가로 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시대가 당면하고 있는 오늘의 여러가지 큰 위기에 대처될 수 있는 신학이 존 웨슬레 신학이 되고, 이 힘으로 우리 감리교회와 타교파들, 그리고 도 다시 에큐메니칼의 차원으로 승화 되어 갈 때, 우리 시대의 문제들은 희망차게 해결 되어 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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