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슬리의 예배와 성례전 2
웨슬리의 예배와 성례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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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세상 끝날까지 교회에 존재하는 세례
세례는 교회가 존재하는 한 입교의 수단으로 남는다. 통상적 방식에 있어서 교회나 천국으로 들어가는 것의 수단으로서는 세례 이외에 다른 것은 없다.58) 그리고 모든 세대를 통하여 외적인 세례는 내적인 것의 수단이다. 마치 할례가 유대인과 하나님 사이의 언약을 인증하듯, 세례는 그리스도인과 하나님 사이의 복음적 언약을 인증하는 것이다. 특히 예수 그리스도께서 분부하신 대 선교명령(the Great Commission, 마 28:16-19)과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함께하시겠다는 주님의 약속은 지금 우리에게도 해당되는 것이라고 웨슬리는 생각하였다.
라 . 유아세례에 관하여
웨슬리는 성인세례와 마찬가지로 유아세례의 중요성을 인식하여 그 타당성을 다음 몇 가지로 언급하고 있다.
첫째로 어린이도 원죄의 죄책을 지니고 있으므로 세례에 의하여 그것을 씻어 버리지 않으면 구원을 얻을 수 없다.59) 만일 어린이가 원죄를 그대로 지니고 있으면 분노의 자녀로 영원한 형벌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원죄를 씻어 버려야 할 필요성을 지니고 있는 어린이들은 세례를 받아야 할 대상이다.
둘째로, 어린이도 하나님과 복음적 언약관계에 들어갈 수 있으며 그 언약의 인증인 세례를 받을 권리가 있다.60) 신명기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이 언급은 유아들도 하나님과의 언약에 들어갈 수 있음을 밝혀주고 있다.
셋째로, 주님은 어린이가 가까이 오는 것을 방해하지 말라고 하셨으므로 어린이도 세례의 정당한 대상이 된다(마 19:13,14). 그러므로 어린이는 그리스도 앞에 나아와 세례를 받고 교회에 들어 오도록 허락되어야 하며 하나님께 봉헌되어야 한다.61)
넷째로, 웨슬리는 사도들이 어린이에게 세례를 베풀었을 것이라고 전제하면서, 유대인이 가끔 유대교로 개종하는 어린이들에게 할례를 베풀었듯이 주님의 제자들도 어린이에게 세례를 베풀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62) 그리고 제자들이 하루에 삼천명 혹은 오천명에게 세례를 베풀었는데 그 때 온 가족이 세례를 받았다고 인정하게 되며 따라서 어린이들도 그 때 세례를 받았음에 틀림 없다.
마지막으로, 유아세례는 모든 장소와 시대를 거쳐 그리스도인의 교회에서 보편적으로 실천되어 왔으므로 이것은 일찍기 사도들의 실천이었음이 분명하며, 결과적으로 그것이 그리스도의 생각이었음에 틀림 없다.63)
웨슬리는 유아세례를 반대하는 입장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해명한다. 유아세례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주께서 제자들에게 큰 사명을 맡기실 때(마28:19-20) 먼저 가르친 후 세례를 베풀도록 했다고 본다. 그러므로 가르침을 받을 수 없는 유아들은 세례를 받을 수 없다고 그들은 주장한다.
이 문제에 대하여 웨슬리는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성서에서 말의 순서는 사물의 순서에 대한 법칙이 아니다. 마가복음 1장 4절과 5절에는 “세례요한이 이르러 광야에서 죄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다 나아가 자기 죄를 자복하고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더라.”라고 기록되어 있다. 여기서 세례요한은 추종자들이 회개하기 전에 세례를 베풀었음을 우리는 발견할 수 있다. 웨슬리는 마태복음(28:19)의 부분 “Go and teach all nations, teaching them and baptizing them”에서 불필요한 반복을 없애고, 이것을 “Go and make disciples of all nations, by baptizing them”으로 번역해야 한다고 본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 문장을 바로 번역한다면 유아세례를 반대할 근거는 없는 것이다.
성서에서 우리는 "회개하라. 그리고 세례를 받으라. 믿고 세례를 받으라" 라는 말을 읽는다. 그러므로 유아세례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회개와 신앙이 세례보다 먼저 와야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어린이는 이렇게 할 수 없으므로 세례를 받을 수 없다고 그들은 주장한다.
이런 문제에 대하여 웨슬리는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만일 회개와 신앙이 할례 전에 있어야 한다면 어린이는 할례를 받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께서 난지 8일만에 할례를 베풀도록 명령하셨으므로 이것을 수행했음을 알고 있다. 그러므로 세례 전에 회개와 신앙이 선행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유아는 세례를 받을 수 있다.64)
유아세례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내가 명하지도 않았고 내 마음에 생각지도 아니한 일이니라”(렘 7:31)라는 말에서 그 반대의 근거를 주장한다.
웨슬리는 이 반대 의견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논박한다.
위의 성서 구절은 이 문제를 해결할만한 분명한 범례라고 볼 수 없다. 만일 성서가 명령한 것만 따라야 한다면, 여인들이 세례를 받아야 한다는 말은 성서에 없지 않은가? “모든 족속에게 세례를 주라”고 할 때 “모든 족속”안에는 여인들도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모든 족속”안에는 어린이도 포함된다고 보아 유아들도 세례를 받을 대상이다.65)
마 . 세례를 베푸는 양식
세례에 있어서 성례의 물질은 물이다. 물이 더러운 것을 씻어주는 자연적 힘을 가진 것처럼 물을 정결케 하는 상징으로 사용함은 적합하다. 세례는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그 사람을 씻고, 침례를 베풀거나 물을 뿌려 시행된다. 그리하여 그 수세자는 영원한 복을 주시는 삼위일체 하나님께 봉헌된다. 웨슬리는 “물로 씻고(washing) 침례를 베풀고(dipping) 혹은 물을 뿌림으로써(sprinkling)”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성서 안에는 그 세례를 어떤 방식으로 시행해야 하는지에 대한 분명한 가르침이나 명확히 증거할만한 실례들이 확정되어 있지 않으며 또한“세례를 베풀다”(baptize)라는 말의 의미도 확정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웨슬리는 성서 안에서 침례를 시행했다는 증거를 찾을 수 없다고 보면서 사도들은 침례가 아니라 물로 씻는 것, 물을 뿌리는 것 혹은 물을 붓는 것으로 세례를 베풀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66)
맺는 말
웨슬리는 성서에 근거하면서도 종교개혁의 정신에 입각하여 부흥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리하여 웨슬리는 성서의 권위와 말씀 증언을 강조할 뿐 아니라 회개, 칭의, 중생, 성화를 거쳐 기독자의 완전에 이르는 전체 과정을 중요하게 여겼다. 이 과정에서 예배는 은혜를 받는 수단이요 또한 성결생활을 위해 불가결한 것이었다.
웨슬리는 고교회 예배전통을 지속시키면서 자유교회의 예배정신을 받아 들였으므로 웨슬리의 예배는 예전적이요 또한 복음적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웨슬리가 강조하는 예배는 하나님의 선행은총에 대한 인간의 총체적 응답이다. 따라서 웨슬리에게 예배는 단순한 의식이 아니라 신앙과 생활을 일치시켜 표현하는 총체적 봉사이다.
웨슬리의 예배에 있어서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는 말씀의 예배와 성찬의 예배 사이의 균형잡힌 생활을 실제로 실천했다는 사실이다. 특히 웨슬리는 「주의 만찬」의 중요성을 강조하여 “될 수 있는대로 자주 성만찬을 받는 일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의무이다”라고 설교했다. 왜냐하면, 성만찬 시행은 그리스도의 분명한 명령이기 때문이요, 그것을 받음으로써 신도들이 하나님의 큰 은혜에 접하고 성화의 길을 걸을 수 있는 영적 힘을 얻기 때문이다.
웨슬리에게 성만찬은 “내적인 은혜의 외적인 표적”이다. 그러므로 성만찬에서 은혜를 받으려면 신도들의 믿음이 수반되는 동시에 성령의 역사가 함께 해야 한다고 웨슬리는 주장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에 접하기 위해서는 먼저 참된 회개가 필요하며, 따라서 칭의, 중생, 성화를 가능케 하는 힘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아야 한다고 웨슬리는 역설한다. 웨슬리의 성찬론에서 “기념”은 단순히 과거에 대한 기억이 아니라 단번에 자신을 바치신 그리스도의 대속적 은혜를 다시 불러내는 동시에 지금 여기서 구원의 은총을 실제로 확증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웨슬리는 성만찬을 "그리스도의 대속적 희생의 표적과 인증", "그리스도의 실제적 임재의 표적과 인증", 그리고 "현재은혜를 나타내는 수단"으로 이해한다. 한편, 이에 부가하여 웨슬리는 "장차 올 영광의 보증으로서의 성만찬" 그리고 "성도의 교제의 인증으로서의 성만찬"을 강조한다. 위의 언급을 종합해 볼 때 웨슬리의 성찬론은 "예전적 복음주의"(sacramental evangelism)에 서 있다고 이해할 수 있다.
웨슬리에게 세례는 그리스도가 제정한 은헤의 수단이다. 여기서 은혜란,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과 희생에 의한 은혜요, 또한 성령으로 말미암아 믿음, 칭의, 구원, 성화를 가능케 하는 은혜이다. 웨슬리에 의하면, 세례는 신도들을 하나님과의 언약에 들어가게 하는 성례전이요, "중생의 씻음"의 성례전이며, 교회에 들어오게 하는 성례전인 동시에 신도들을 하나님의 자녀요 천국의 상속자로 인증하는 성례전이다. 웨슬리는 세례로 말미암아 받는 혜택 다섯 가지를 제시 한다. 그것은 1)그리스도의 죽음의 공로로 원죄가 지니는 죄책이 씻기워지는 것, 2)하나님과의 언약관계로 들어가는 것, 3)교회에 입교하는 것, 4)분노의 자녀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되는 것, 5)천국의 상속자가 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세례는 세상 끝날까지 교회에 존재하는 것이며, 구원을 위해 필요한 것이라고 웨슬리는 본다.67)
우리는 웨슬리의 예배를 재발견하면서 적어도 현재 「감리교회의 예배」의 회복 내지 갱신의 가능성을 전망할 수 있다.
오늘날 성만찬의 시행을 소홀히하고 있는 우리들은 말씀과 성만찬 사이의 균형잡힌 예배생활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우리는 개인 심령을 구원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은혜의 수단을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한편, 사회적 변혁을 위해서도 다양한 예배를 통해 선재하는 은혜, 칭의케 하는 은혜, 성결케 하는 은혜에 접하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의 선행하는 은총에 대하여 총체적으로 응답하는 예배, 그리고 신앙과 생활을 일치시켜 드리는 총체적 봉사로서의 예배를 드려야 할 것이다.
Notes
1 Albert C. Outler, ed., John Wesley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1964), p. 122.
2. John Wesley, The Journal of the Rev. John Wesley, vol, V, Nehemiah Curnock, ed. (New York: Eaton & Mains, 1909), p. 452.
3. John Wesley, The Letters of the Rev. John Wesley, vol. VI, John Telford, ed. (London: The Epworth Press, 1931), p. 213.
4. John Wesley, The Works of John Wesley, vol. VII, John Emorg, ed. (New York: Published by B. Waugh and T. Mason, 1831-1833), p. 30.
5. 박은규, 『예배의 재발견』(서울 : 대한기독교출판사, 1988), 139쪽.
6. Ibid., p. 140.
7. John Wesley, The Works of John Wesley, vol.V, (Grand Rapids, Michigan: Zondervan Publishing House, 1872), p. 305.
8. Ibid., pp. 305-306.
9. Ibid., p. 306.
10. John Wesley, The Sundy Service of the Methodists in North America, vol.1 (London: Strahan, 1784), p. 242.
11. Ibid., pp. 259, 528; Works VII, p. 184.
12. Ole E. Borgen, John Wesley on the Sacraments (Zurich, Switzerland: the Publishing House of the United Methodist Church, 1972), pp. 52-53.
13. J. E. Rattenbury, The Eucharistic Hymns of John and Charles Wesley (London: The Epworth Press, 1948), p. 20.
14. J. E. Rattenbury, Wesley's Legecy to the the World (London: The Epworth Press, 928), p. 133.
15. John C. Bowmer, The Sacrament of the Lord's Sipper in Early Methodism (London: Dacre Press, 1951), pp. 168-180.
16. Ibid., p. 184
17. John R. Parris, John Wesley's Doctrine of the Sacraments (London: The Epworth Press, 1961), p. 202.
18. Horton Davies, Worship and Theology in England (Princeton: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61), p. 209.
19. Albert C. Outler, ed., John Wesley (New York: Oxfprd University Press, 1964), p. 33.
20. 野呂芳男, 『존 웨슬리의 生涯와 思想』 김덕순역 (서울: 기독교 대한 감리교 교육국, 1993.), 전부.
21. 조종남, 『요한 웨슬레의 신학』 (서울: 대한 기독교 출판사, 1984), 182-184쪽.
22. 두 웨슬리는 브레빈트가 쓴 여덟 장(章)의 언급을 여섯 장으로 간추려 놓았다. 그 내용을 열거하면 아래와 같다.
● 브레빈트의 언급
Ⅰ. 성례전의 본질에 대한 바른 이해의 중요성
Ⅱ.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에 대한 기념으로서의 성례전에 관한 관심
Ⅲ. 성만찬 : 현재 은혜의 표적
Ⅳ. 성만찬 : 은혜의 수단
Ⅴ. 성만찬 : 올 영광의 보증
Ⅵ. 성만찬 : 희생 제사(특히 기념하는 희생 제사)
Ⅶ. 우리 자신의 희생적 헌신에 관하여
Ⅷ. 우리의 소유를 희생적으로 바치는 것에 관하여
● 웨슬리의 언급
Ⅰ.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에 대한 기념으로서의 성만찬. 찬송가 1-27장(27편)
Ⅱ. 은혜의 표적과 수단으로서의 성만찬. 찬송가 28-92장(65편).
Ⅲ. 하늘의 보증으로서의 성만찬. 찬송가 93-115장(23편).
Ⅳ. 희생 제사의 뜻을 함축하는 성찬. 찬송가 116-127장(12편).
Ⅴ. 우리 자신을 희생적으로 바치는 것에 관하여. 찬송가 128-157장(30편)
Ⅵ. 성례전 이후. 찬송가 158-166장(9편).
John C. Bowmer, op. cit., p. 167.
23. Nehemiah Curnock, ed., The Journal of the Rev. John Wesley, vol. I (New York: Eaton & Mains, 1909), p. 330.
E. H. Sugden, ed., Wesley's Standard Sermon, vol. II, (London: the Epworth Press, 1961), p. 144.
Thomas Jackson, ed., The Works of John Wesley, vol. VI (Grand Rapids: Zondervan, 1958-1959), pp. 510-511. VII, pp. 493-494. VIII, p. 271.
24. Works, VII, p. 30.
St. S., II, pp. 243, 455.
25. John Wesley, Sermons on Several Occasions, vol. I, p. 229.
26. 조종남, 『요한 웨슬레의 신학』, 182쪽.
27. Works, vol. 10, p. 151.
웨슬리는 화체설이 경건에 해로울 뿐 아니라 성서에도 위배되며 이성에도 위배된다고 말했다(Work ; Ⅸ, p. 278 ; Ⅹ, p. 151).
28. O. E. Borgen, op. cit., p. 67.
29. Hymns on the Lord's Supper, 63장, 1절.
30. 野呂芳男, op. cit., p. 611.
31. Hymns on the Lord's Supper, 89장 1-4절.
32. O. E. Borgen, op. cit., pp. 68-69.
33. 조종남, op. cit., p. 183.
34. Hymns on the Lord's Supper, 38장 3절, 103장 2절.
35. Ibid., 95장 3절.
36. Ibid., 28장 4절, 13장 6절.
37. 조종남, op. cit., p. 183.
38. O. T. Notes, p. 50:5.
N. T. Notes, Mark 14:24; Luke 22:20.
Hymns on the Lord's Supper, 1장 4절, 13장 2절, 71장 2절, 90장 2절
Wesley's Standard Sermon, vol. 1, p. 251
웨슬리는 "하늘의 보증(a pledge of heaven)으로서의 성만찬"을 강조했는데 이 때 "하늘"은 특정한 시간과 공간에 재한받지 않는 것으로서 현재(present)인 동시에 미래이다. 웨슬리는 현재 구원하는 신앙과 사랑 그리고 성결을 지닌 상태를 "하늘"이라고 표현하기도 하였다. 그리하여 웨슬리의 성찬 신학은 더드(C. H. Dodd)의 실현된 종말론(realized eschatology)의 부분과 관련한 것처럼 보인다.
39. John Wesley, Explanatory Notes upon the New Testament (London: The Epworth
Press, 1954), Phil. 3:10.
40. J. C. Bowmer, op. cit., p. 83.
41. Ibid., p. 97.
42. Letters, ii, p. 308.
J. C. Bowmer, op. cit., p. 98.
43. Journal of Charles Wesley, ii, p. 83.
J. C. Bowmer, op. cit., p. 105.
44. Letters., Viii, p. 243.
45. Works, Ⅹ, p. 192.
46. O. E. Borgen, op. cit., p. 121.
47. Works., Ⅵ, p. 506.
48. Works, Ⅹ, p. 188.
49. Works, Ⅹ, pp. 191-192.
50. Works, Ⅹ, pp. 191-192.
51. Works, Ⅹ, p. 192.
52. Sermon, ⅩⅨ, 서론 제2부.
Sermon, ⅩⅣ, 서론 제1부.
웨슬리의 「세례에 의한 중생」또는 「신생과 세례」에 관하여 더 자세하게 이해하려면 아래의 책을 참고하기 바람.
William R. Cannon, The Theology of John Wesley (New York and Nashville: Abingdon-Cokesbury Press, 1946), pp. 125-130.
Bernard Holland, Baptism in Early Methodism (London: Epworth Press, 1970), pp. 1-148.
O. E. Borgen, op cit., pp. 177f.
John R. Parris, op. cit., pp. 40f.
T. G Williams, Methodist and Anglicanism in the Light of Scripture and History (Toronto, 1888), pp. 42f.
53. Works, p. 190.
54. Works, p. 191.
55. Works, p. 191.
56. Works, pp. 191-192.
57. Works, p. 192.
Gallier에 의하면 위의 다섯 가지 혜택외에 네 가지를 더 첨부하였다.
1) 그리스도의 죽음을 분담하는 것, 2) 주의 만찬에 참여케 하는 것, 3) 성령의 은사를 받는 것, 4) 육체적 치유를 받는 것(Wesley Historical Society Preceding, London, ⅩⅩ?, p. 123.)
58. Works, Ⅹ, p. 192.
59. Works, Ⅹ, p. 193.
60. Works, Ⅹ, p. 193.
61. Works, Ⅹ, p. 195.
62. Works, Ⅹ, p. 196.
63. Works, Ⅹ, pp. 198-199.
64. Works, Ⅹ, p. 199.
65. Works, Ⅹ, pp. 199-200.
66. Works, Ⅹ, pp. 188-190.
67. 웨슬리에 의하면 세례는 은혜의 수단이므로 일반적인 의미에서는 구원을 위해 필요한 것이지만, 절대적인 의미에서는 구원에 필요한 것이 아니라고 본다.
O. E. Borgen, op. cit., pp. 127-128.
"웨슬리의 구원론적 구조에서 본 세례관"과 관련해서는 조종남 박사의 저서를 참고하시기 바람.
조종남, 『요한 웨슬레의 신학』, 196-19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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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세상 끝날까지 교회에 존재하는 세례
세례는 교회가 존재하는 한 입교의 수단으로 남는다. 통상적 방식에 있어서 교회나 천국으로 들어가는 것의 수단으로서는 세례 이외에 다른 것은 없다.58) 그리고 모든 세대를 통하여 외적인 세례는 내적인 것의 수단이다. 마치 할례가 유대인과 하나님 사이의 언약을 인증하듯, 세례는 그리스도인과 하나님 사이의 복음적 언약을 인증하는 것이다. 특히 예수 그리스도께서 분부하신 대 선교명령(the Great Commission, 마 28:16-19)과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함께하시겠다는 주님의 약속은 지금 우리에게도 해당되는 것이라고 웨슬리는 생각하였다.
라 . 유아세례에 관하여
웨슬리는 성인세례와 마찬가지로 유아세례의 중요성을 인식하여 그 타당성을 다음 몇 가지로 언급하고 있다.
첫째로 어린이도 원죄의 죄책을 지니고 있으므로 세례에 의하여 그것을 씻어 버리지 않으면 구원을 얻을 수 없다.59) 만일 어린이가 원죄를 그대로 지니고 있으면 분노의 자녀로 영원한 형벌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원죄를 씻어 버려야 할 필요성을 지니고 있는 어린이들은 세례를 받아야 할 대상이다.
둘째로, 어린이도 하나님과 복음적 언약관계에 들어갈 수 있으며 그 언약의 인증인 세례를 받을 권리가 있다.60) 신명기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이 언급은 유아들도 하나님과의 언약에 들어갈 수 있음을 밝혀주고 있다.
셋째로, 주님은 어린이가 가까이 오는 것을 방해하지 말라고 하셨으므로 어린이도 세례의 정당한 대상이 된다(마 19:13,14). 그러므로 어린이는 그리스도 앞에 나아와 세례를 받고 교회에 들어 오도록 허락되어야 하며 하나님께 봉헌되어야 한다.61)
넷째로, 웨슬리는 사도들이 어린이에게 세례를 베풀었을 것이라고 전제하면서, 유대인이 가끔 유대교로 개종하는 어린이들에게 할례를 베풀었듯이 주님의 제자들도 어린이에게 세례를 베풀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62) 그리고 제자들이 하루에 삼천명 혹은 오천명에게 세례를 베풀었는데 그 때 온 가족이 세례를 받았다고 인정하게 되며 따라서 어린이들도 그 때 세례를 받았음에 틀림 없다.
마지막으로, 유아세례는 모든 장소와 시대를 거쳐 그리스도인의 교회에서 보편적으로 실천되어 왔으므로 이것은 일찍기 사도들의 실천이었음이 분명하며, 결과적으로 그것이 그리스도의 생각이었음에 틀림 없다.63)
웨슬리는 유아세례를 반대하는 입장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해명한다. 유아세례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주께서 제자들에게 큰 사명을 맡기실 때(마28:19-20) 먼저 가르친 후 세례를 베풀도록 했다고 본다. 그러므로 가르침을 받을 수 없는 유아들은 세례를 받을 수 없다고 그들은 주장한다.
이 문제에 대하여 웨슬리는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성서에서 말의 순서는 사물의 순서에 대한 법칙이 아니다. 마가복음 1장 4절과 5절에는 “세례요한이 이르러 광야에서 죄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다 나아가 자기 죄를 자복하고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더라.”라고 기록되어 있다. 여기서 세례요한은 추종자들이 회개하기 전에 세례를 베풀었음을 우리는 발견할 수 있다. 웨슬리는 마태복음(28:19)의 부분 “Go and teach all nations, teaching them and baptizing them”에서 불필요한 반복을 없애고, 이것을 “Go and make disciples of all nations, by baptizing them”으로 번역해야 한다고 본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 문장을 바로 번역한다면 유아세례를 반대할 근거는 없는 것이다.
성서에서 우리는 "회개하라. 그리고 세례를 받으라. 믿고 세례를 받으라" 라는 말을 읽는다. 그러므로 유아세례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회개와 신앙이 세례보다 먼저 와야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어린이는 이렇게 할 수 없으므로 세례를 받을 수 없다고 그들은 주장한다.
이런 문제에 대하여 웨슬리는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만일 회개와 신앙이 할례 전에 있어야 한다면 어린이는 할례를 받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께서 난지 8일만에 할례를 베풀도록 명령하셨으므로 이것을 수행했음을 알고 있다. 그러므로 세례 전에 회개와 신앙이 선행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유아는 세례를 받을 수 있다.64)
유아세례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내가 명하지도 않았고 내 마음에 생각지도 아니한 일이니라”(렘 7:31)라는 말에서 그 반대의 근거를 주장한다.
웨슬리는 이 반대 의견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논박한다.
위의 성서 구절은 이 문제를 해결할만한 분명한 범례라고 볼 수 없다. 만일 성서가 명령한 것만 따라야 한다면, 여인들이 세례를 받아야 한다는 말은 성서에 없지 않은가? “모든 족속에게 세례를 주라”고 할 때 “모든 족속”안에는 여인들도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모든 족속”안에는 어린이도 포함된다고 보아 유아들도 세례를 받을 대상이다.65)
마 . 세례를 베푸는 양식
세례에 있어서 성례의 물질은 물이다. 물이 더러운 것을 씻어주는 자연적 힘을 가진 것처럼 물을 정결케 하는 상징으로 사용함은 적합하다. 세례는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그 사람을 씻고, 침례를 베풀거나 물을 뿌려 시행된다. 그리하여 그 수세자는 영원한 복을 주시는 삼위일체 하나님께 봉헌된다. 웨슬리는 “물로 씻고(washing) 침례를 베풀고(dipping) 혹은 물을 뿌림으로써(sprinkling)”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성서 안에는 그 세례를 어떤 방식으로 시행해야 하는지에 대한 분명한 가르침이나 명확히 증거할만한 실례들이 확정되어 있지 않으며 또한“세례를 베풀다”(baptize)라는 말의 의미도 확정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웨슬리는 성서 안에서 침례를 시행했다는 증거를 찾을 수 없다고 보면서 사도들은 침례가 아니라 물로 씻는 것, 물을 뿌리는 것 혹은 물을 붓는 것으로 세례를 베풀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66)
맺는 말
웨슬리는 성서에 근거하면서도 종교개혁의 정신에 입각하여 부흥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리하여 웨슬리는 성서의 권위와 말씀 증언을 강조할 뿐 아니라 회개, 칭의, 중생, 성화를 거쳐 기독자의 완전에 이르는 전체 과정을 중요하게 여겼다. 이 과정에서 예배는 은혜를 받는 수단이요 또한 성결생활을 위해 불가결한 것이었다.
웨슬리는 고교회 예배전통을 지속시키면서 자유교회의 예배정신을 받아 들였으므로 웨슬리의 예배는 예전적이요 또한 복음적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웨슬리가 강조하는 예배는 하나님의 선행은총에 대한 인간의 총체적 응답이다. 따라서 웨슬리에게 예배는 단순한 의식이 아니라 신앙과 생활을 일치시켜 표현하는 총체적 봉사이다.
웨슬리의 예배에 있어서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는 말씀의 예배와 성찬의 예배 사이의 균형잡힌 생활을 실제로 실천했다는 사실이다. 특히 웨슬리는 「주의 만찬」의 중요성을 강조하여 “될 수 있는대로 자주 성만찬을 받는 일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의무이다”라고 설교했다. 왜냐하면, 성만찬 시행은 그리스도의 분명한 명령이기 때문이요, 그것을 받음으로써 신도들이 하나님의 큰 은혜에 접하고 성화의 길을 걸을 수 있는 영적 힘을 얻기 때문이다.
웨슬리에게 성만찬은 “내적인 은혜의 외적인 표적”이다. 그러므로 성만찬에서 은혜를 받으려면 신도들의 믿음이 수반되는 동시에 성령의 역사가 함께 해야 한다고 웨슬리는 주장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에 접하기 위해서는 먼저 참된 회개가 필요하며, 따라서 칭의, 중생, 성화를 가능케 하는 힘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아야 한다고 웨슬리는 역설한다. 웨슬리의 성찬론에서 “기념”은 단순히 과거에 대한 기억이 아니라 단번에 자신을 바치신 그리스도의 대속적 은혜를 다시 불러내는 동시에 지금 여기서 구원의 은총을 실제로 확증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웨슬리는 성만찬을 "그리스도의 대속적 희생의 표적과 인증", "그리스도의 실제적 임재의 표적과 인증", 그리고 "현재은혜를 나타내는 수단"으로 이해한다. 한편, 이에 부가하여 웨슬리는 "장차 올 영광의 보증으로서의 성만찬" 그리고 "성도의 교제의 인증으로서의 성만찬"을 강조한다. 위의 언급을 종합해 볼 때 웨슬리의 성찬론은 "예전적 복음주의"(sacramental evangelism)에 서 있다고 이해할 수 있다.
웨슬리에게 세례는 그리스도가 제정한 은헤의 수단이다. 여기서 은혜란,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과 희생에 의한 은혜요, 또한 성령으로 말미암아 믿음, 칭의, 구원, 성화를 가능케 하는 은혜이다. 웨슬리에 의하면, 세례는 신도들을 하나님과의 언약에 들어가게 하는 성례전이요, "중생의 씻음"의 성례전이며, 교회에 들어오게 하는 성례전인 동시에 신도들을 하나님의 자녀요 천국의 상속자로 인증하는 성례전이다. 웨슬리는 세례로 말미암아 받는 혜택 다섯 가지를 제시 한다. 그것은 1)그리스도의 죽음의 공로로 원죄가 지니는 죄책이 씻기워지는 것, 2)하나님과의 언약관계로 들어가는 것, 3)교회에 입교하는 것, 4)분노의 자녀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되는 것, 5)천국의 상속자가 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세례는 세상 끝날까지 교회에 존재하는 것이며, 구원을 위해 필요한 것이라고 웨슬리는 본다.67)
우리는 웨슬리의 예배를 재발견하면서 적어도 현재 「감리교회의 예배」의 회복 내지 갱신의 가능성을 전망할 수 있다.
오늘날 성만찬의 시행을 소홀히하고 있는 우리들은 말씀과 성만찬 사이의 균형잡힌 예배생활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우리는 개인 심령을 구원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은혜의 수단을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한편, 사회적 변혁을 위해서도 다양한 예배를 통해 선재하는 은혜, 칭의케 하는 은혜, 성결케 하는 은혜에 접하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의 선행하는 은총에 대하여 총체적으로 응답하는 예배, 그리고 신앙과 생활을 일치시켜 드리는 총체적 봉사로서의 예배를 드려야 할 것이다.
Notes
1 Albert C. Outler, ed., John Wesley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1964), p. 122.
2. John Wesley, The Journal of the Rev. John Wesley, vol, V, Nehemiah Curnock, ed. (New York: Eaton & Mains, 1909), p. 452.
3. John Wesley, The Letters of the Rev. John Wesley, vol. VI, John Telford, ed. (London: The Epworth Press, 1931), p. 213.
4. John Wesley, The Works of John Wesley, vol. VII, John Emorg, ed. (New York: Published by B. Waugh and T. Mason, 1831-1833), p. 30.
5. 박은규, 『예배의 재발견』(서울 : 대한기독교출판사, 1988), 139쪽.
6. Ibid., p. 140.
7. John Wesley, The Works of John Wesley, vol.V, (Grand Rapids, Michigan: Zondervan Publishing House, 1872), p. 305.
8. Ibid., pp. 305-306.
9. Ibid., p. 306.
10. John Wesley, The Sundy Service of the Methodists in North America, vol.1 (London: Strahan, 1784), p. 242.
11. Ibid., pp. 259, 528; Works VII, p. 184.
12. Ole E. Borgen, John Wesley on the Sacraments (Zurich, Switzerland: the Publishing House of the United Methodist Church, 1972), pp. 52-53.
13. J. E. Rattenbury, The Eucharistic Hymns of John and Charles Wesley (London: The Epworth Press, 1948), p. 20.
14. J. E. Rattenbury, Wesley's Legecy to the the World (London: The Epworth Press, 928), p. 133.
15. John C. Bowmer, The Sacrament of the Lord's Sipper in Early Methodism (London: Dacre Press, 1951), pp. 168-180.
16. Ibid., p. 184
17. John R. Parris, John Wesley's Doctrine of the Sacraments (London: The Epworth Press, 1961), p. 202.
18. Horton Davies, Worship and Theology in England (Princeton: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61), p. 209.
19. Albert C. Outler, ed., John Wesley (New York: Oxfprd University Press, 1964), p. 33.
20. 野呂芳男, 『존 웨슬리의 生涯와 思想』 김덕순역 (서울: 기독교 대한 감리교 교육국, 1993.), 전부.
21. 조종남, 『요한 웨슬레의 신학』 (서울: 대한 기독교 출판사, 1984), 182-184쪽.
22. 두 웨슬리는 브레빈트가 쓴 여덟 장(章)의 언급을 여섯 장으로 간추려 놓았다. 그 내용을 열거하면 아래와 같다.
● 브레빈트의 언급
Ⅰ. 성례전의 본질에 대한 바른 이해의 중요성
Ⅱ.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에 대한 기념으로서의 성례전에 관한 관심
Ⅲ. 성만찬 : 현재 은혜의 표적
Ⅳ. 성만찬 : 은혜의 수단
Ⅴ. 성만찬 : 올 영광의 보증
Ⅵ. 성만찬 : 희생 제사(특히 기념하는 희생 제사)
Ⅶ. 우리 자신의 희생적 헌신에 관하여
Ⅷ. 우리의 소유를 희생적으로 바치는 것에 관하여
● 웨슬리의 언급
Ⅰ.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에 대한 기념으로서의 성만찬. 찬송가 1-27장(27편)
Ⅱ. 은혜의 표적과 수단으로서의 성만찬. 찬송가 28-92장(65편).
Ⅲ. 하늘의 보증으로서의 성만찬. 찬송가 93-115장(23편).
Ⅳ. 희생 제사의 뜻을 함축하는 성찬. 찬송가 116-127장(12편).
Ⅴ. 우리 자신을 희생적으로 바치는 것에 관하여. 찬송가 128-157장(30편)
Ⅵ. 성례전 이후. 찬송가 158-166장(9편).
John C. Bowmer, op. cit., p. 167.
23. Nehemiah Curnock, ed., The Journal of the Rev. John Wesley, vol. I (New York: Eaton & Mains, 1909), p. 330.
E. H. Sugden, ed., Wesley's Standard Sermon, vol. II, (London: the Epworth Press, 1961), p. 144.
Thomas Jackson, ed., The Works of John Wesley, vol. VI (Grand Rapids: Zondervan, 1958-1959), pp. 510-511. VII, pp. 493-494. VIII, p. 271.
24. Works, VII, p. 30.
St. S., II, pp. 243, 455.
25. John Wesley, Sermons on Several Occasions, vol. I, p. 229.
26. 조종남, 『요한 웨슬레의 신학』, 182쪽.
27. Works, vol. 10, p. 151.
웨슬리는 화체설이 경건에 해로울 뿐 아니라 성서에도 위배되며 이성에도 위배된다고 말했다(Work ; Ⅸ, p. 278 ; Ⅹ, p. 151).
28. O. E. Borgen, op. cit., p. 67.
29. Hymns on the Lord's Supper, 63장, 1절.
30. 野呂芳男, op. cit., p. 611.
31. Hymns on the Lord's Supper, 89장 1-4절.
32. O. E. Borgen, op. cit., pp. 68-69.
33. 조종남, op. cit., p. 183.
34. Hymns on the Lord's Supper, 38장 3절, 103장 2절.
35. Ibid., 95장 3절.
36. Ibid., 28장 4절, 13장 6절.
37. 조종남, op. cit., p. 183.
38. O. T. Notes, p. 50:5.
N. T. Notes, Mark 14:24; Luke 22:20.
Hymns on the Lord's Supper, 1장 4절, 13장 2절, 71장 2절, 90장 2절
Wesley's Standard Sermon, vol. 1, p. 251
웨슬리는 "하늘의 보증(a pledge of heaven)으로서의 성만찬"을 강조했는데 이 때 "하늘"은 특정한 시간과 공간에 재한받지 않는 것으로서 현재(present)인 동시에 미래이다. 웨슬리는 현재 구원하는 신앙과 사랑 그리고 성결을 지닌 상태를 "하늘"이라고 표현하기도 하였다. 그리하여 웨슬리의 성찬 신학은 더드(C. H. Dodd)의 실현된 종말론(realized eschatology)의 부분과 관련한 것처럼 보인다.
39. John Wesley, Explanatory Notes upon the New Testament (London: The Epworth
Press, 1954), Phil. 3:10.
40. J. C. Bowmer, op. cit., p. 83.
41. Ibid., p. 97.
42. Letters, ii, p. 308.
J. C. Bowmer, op. cit., p. 98.
43. Journal of Charles Wesley, ii, p. 83.
J. C. Bowmer, op. cit., p. 105.
44. Letters., Viii, p. 243.
45. Works, Ⅹ, p. 192.
46. O. E. Borgen, op. cit., p. 121.
47. Works., Ⅵ, p. 506.
48. Works, Ⅹ, p. 188.
49. Works, Ⅹ, pp. 191-192.
50. Works, Ⅹ, pp. 191-192.
51. Works, Ⅹ, p. 192.
52. Sermon, ⅩⅨ, 서론 제2부.
Sermon, ⅩⅣ, 서론 제1부.
웨슬리의 「세례에 의한 중생」또는 「신생과 세례」에 관하여 더 자세하게 이해하려면 아래의 책을 참고하기 바람.
William R. Cannon, The Theology of John Wesley (New York and Nashville: Abingdon-Cokesbury Press, 1946), pp. 125-130.
Bernard Holland, Baptism in Early Methodism (London: Epworth Press, 1970), pp. 1-148.
O. E. Borgen, op cit., pp. 177f.
John R. Parris, op. cit., pp. 40f.
T. G Williams, Methodist and Anglicanism in the Light of Scripture and History (Toronto, 1888), pp. 42f.
53. Works, p. 190.
54. Works, p. 191.
55. Works, p. 191.
56. Works, pp. 191-192.
57. Works, p. 192.
Gallier에 의하면 위의 다섯 가지 혜택외에 네 가지를 더 첨부하였다.
1) 그리스도의 죽음을 분담하는 것, 2) 주의 만찬에 참여케 하는 것, 3) 성령의 은사를 받는 것, 4) 육체적 치유를 받는 것(Wesley Historical Society Preceding, London, ⅩⅩ?, p. 123.)
58. Works, Ⅹ, p. 192.
59. Works, Ⅹ, p. 193.
60. Works, Ⅹ, p. 193.
61. Works, Ⅹ, p. 195.
62. Works, Ⅹ, p. 196.
63. Works, Ⅹ, pp. 198-199.
64. Works, Ⅹ, p. 199.
65. Works, Ⅹ, pp. 199-200.
66. Works, Ⅹ, pp. 188-190.
67. 웨슬리에 의하면 세례는 은혜의 수단이므로 일반적인 의미에서는 구원을 위해 필요한 것이지만, 절대적인 의미에서는 구원에 필요한 것이 아니라고 본다.
O. E. Borgen, op. cit., pp. 127-128.
"웨슬리의 구원론적 구조에서 본 세례관"과 관련해서는 조종남 박사의 저서를 참고하시기 바람.
조종남, 『요한 웨슬레의 신학』, 196-19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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