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슬리의 예배와 성례전 1
웨슬리의 예배와 성례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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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슬리의 예배와 성례전
박 은 규 (목원대학교 신학대학)
차 례
들어가는 말
Ⅰ. 웨슬리의 예배
Ⅱ. 웨슬리의 성례전
1. 웨슬리의 성만찬
가. 은혜의 수단
나. 기념
다. 그리스도의 대속적 희생의 표적과 인증
라. 그리스도의 실제적 임재의 표적과 인증
마. 현재 은혜를 나타내는 수단
바. 장차 올 영광의 보증
사. 성도의 교제의 인증
아. 성만찬 시행 방식
2. 웨슬리의 세례
가. 세례의 의미
나. 세례로 말미암아 받는 혜택
다. 세상 끝날까지 교회에 존재하는 세례
라. 유아세례에 관하여
마. 세례를 베푸는 양식
맺는 말
들어가는 말
18세기 감리교회 운동은 16세기 종교개혁의 정신을 영국에서 성취하려는 운동이었다. 특히 전도와 사회 개혁을 위한 웨슬리의 부흥 운동에 활력을 불어넣은 것은 진지하고도 영감적인 예배였다. 이 예배는 존 웨슬리(1703-91)와 찰스 웨슬리(1707-88)의 지도로 이루어 진 것으로서 존(John)은 신학, 설교, 조직, 그리고 소량의 찬송시를 통하여, 찰스(Charles)는 6500여개의 찬송시와 예배 음악을 통하여 크게 공헌하였다. 그리하여 이 두 웨슬리는 초기 감리교회의 효과적인 예배를 위해 훌륭한 팀을 이루었다.
이 두 웨슬리는 감리교회 운동을 전개하면서도 영국 교회의 예배 형식을 떠나지 않았다. 따라서 웨슬리는 그들의 추종자들에게도 영국 교회의 정규 예배에 참석하면서 감리교회의 운동을 전개하도록 하였다. 그런데 웨슬리의 부흥 운동이 활발해지면서 그들의 예배는 전보다 더 비 형식적인 형태를 지니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 예배 안에는 성령의 역사 하심에 따라 자유롭게 드리는 즉흥 기도, 성서를 자유롭게 낭독하는 일, 영적으로 찬송가를 부르는 것, 감동적인 말씀 증언이 포함되었다.
고교회 예배 전통을 일관성 있게 유지하면서 자유 교회의 예배 정신을 받아들인 웨슬리는 「행위에 의한 칭의」(Justification by works)를 지원하는 해석을 거부하였다. 동시에 웨슬리는 「행위가 따르지 않는 믿음」도 바른 믿음이라고 보지 않았다. 그리하여 아우틀러(Albert C. Outler)교수가 지적했듯이, 웨슬리는 그리스도인의 예배와 그리스도인의 실제 행동 사이의 역동적 균형을 강조했으며 또한 그것을 실현하고자 하였다.1) 여기서 우리는 신앙의 생활화 내지 예배의 생활화를 강조한 웨슬리의 모습을 찾아낼 수 있다.
웨슬리는 신학을 두 가지로 나누었다. 하나는 이론신학(speculative divinity)이요, 다른 하나는 실천신학(practical divinity)이다. 웨슬리는 진리에 대한 사색적 지식과 경험적 지식 사이의 균형을 추구하였다.2) 진리에 대한 사색적 지식을 지닌 신도들은 하나님에 대한 경험적 지식(experimental knowledge of God)을 얻는 단계로 향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웨슬리는, “하나님의 선행 은총에 대한 인간의 응답”이 예배에서 이루어져야 하며, 그리스도인은 생활 속에서 적용할 수 있는 살아 있는 믿음을 지녀야 한다고 주장하였다.3) 이런 점에서, 웨슬리가 강조하는 예배는 단순한 의식이 아니라 신앙과 생활을 일치시켜 표현하는 총체적 봉사이다.
웨슬리의 예배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은 그가 예배를 “은혜의 수단”으로 중요시했다는 사실이다. 특히 존은 다섯 가지 중요한 “은혜의 수단들”(the means of grace)을 강조하였다. 그것은 기도, 말씀(the Word), 금식, 기독자의 친교 모임(Christian Conference), 그리고 주의 만찬이다.4) 존은 위의 다섯 가지 중 주의 만찬과 말씀 증언을 특히 중요하게 여겼다. 왜냐하면, 이것은 하나님의 선행하는 은총을 효과적으로 받을 수 있는 수단과 방편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제부터 웨슬리의 예배와 성례전에 관하여 더 자세히 탐구하기로 한다.
Ⅰ. 웨슬리의 예배
「웨슬리의 예배」의 뿌리는 성서 그리고 종교개혁의 정신이요, 그 줄기는 영국 교회의 예배 전통이며, 그 가지는 청교도, 모라비아교도, 개혁 교회, 자유 교회의 예배 전통을 조화시킨 것이다. 웨슬리는 고교회(high church)의 예배 전통과 자유 교회의 예배 전통 사이의 균형을 조심스럽게 유지하면서 감리교회의 부흥 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러면, 웨슬리의 예배 정신과 그 생활을 형성한 과정과 내용은 무엇일까?
일찍이 영국의 개혁자이자 옥스포드의 학자인 위클립(John Wycliffe, c.13929-84)은 예배에 관하여 진보적인 생각을 지닌 사람으로서 성서와 교회의 예배는 자국어로 시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개혁 정신은 크랜머(Thomas Cranmer, 1489-1556)의 「공동기도서」에 의하여 계승되었다.5) 웨슬리가 영국에서 부흥 운동을 전개하는 동안뿐만 아니라 미국에 감리교회를 확장하는 동안에도 영국 교회의 공동 기도(the Common Prayer)를 애독하는 동시에 그의 추종자들에게 이것을 권했음을 볼 때, 크랜머의 공동 기도서가 웨슬리에게 얼마나 많은 영향을 끼쳤는가를 가히 짐작할 수 있다.
두 웨슬리는 무엇보다도 종교개혁의 정신에 근거한 예배를 설정하려고 하였다. 그리하여 웨슬리는 말씀 증언과 성서의 권위를 크게 강조함과 동시에 회개, 칭의, 중생, 성화를 거쳐 기독자의 완전을 향하는 전체 과정을 중요시하였다. 이 과정에서 예배는 은혜를 받는 수단이요 성결 생활을 위해 불가결한 것이었다.
웨슬리가 영국 교회의 고교회 전통으로부터 뿌리 깊게 영향을 받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주의 만찬이다. 두 웨슬리는 자신들이 친히 자주 주의 만찬을 거행하면서 그리스도의 살과 피에 동참하였다.
청교도와 모라비아교도로부터 경건성과 성결 실천의 가치를 배운 웨슬리는 예배의 영역에서도 그들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이를테면, 청교도의 영향을 받아 웨슬리는 간단하고도 비 형식적인 예배를 설정하는 한편, 모라비아교도을의 전통으로부터 온 철야 예배를 함께 드렸다.
한편, 개혁 교회가 웨슬리에게 끼친 영향은 그의 「언약 예배」에서 나타났다. 웨슬리는 개혁 교회의 예배 전통 중에서 「언약 예배」(the covenant service)를 채택하여 신도들로 하여금 하나님과 언약을 다시 이루게 하는 동시에 기독자로서 재 결단하도록 하였다.
특히 웨슬리의 부흥 운동과 병행하여 자연스럽게 출현한 것은 자유 교회의 예배 형태였다. 이 부흥 운동은 자주 옥외에서 개최되었으므로 그들은 비 형식적인 예배를 드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주일 오후 5시에 모이는 예배는 점점 성황을 이루기 시작했다. 얼마 후 감리교도의 부속 예배당(Chapel)이 생기면서 그들은 거기서 예배를 드리고 친교를 나누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은총을 전보다 더 생생하게 경험하기 시작하여 성도들 사이의 영적 결합과 복음적 각성 운동에 적합한 형의 예배가 요청되었다. 그리하여 웨슬리는 자유롭게 표현하며 가담하는 예배 순서를 설정하여 찬송, 성서봉독, 즉흥기도, 말씀증언, 간증의 내용을 지닌 청교도 형식의 간단한 예배를 드렸다.
웨슬리가 특별히 시도한 애찬(love feast)은 비록 예배 형식을 갖추지 않은 것이었을지라도 공동체의 연합과 신도의 코이노니아를 위해 큰 도움을 주었다. 이 애찬은 신약성서의 아가페(agape)와 모라비아 교도의 애찬과 비슷하였다.6) 그들은 함께 모여 빵과 물을 드는 식사를 통해 교제의 잔을 나누는 한편 영적 연합을 이루었다.
웨슬리의 영적인 부흥운동과 사회 개혁 운동이 진전되는 과정에서 신앙생활과 예배 정신을 고양시킨 모임은 속회(class meeting)와 단(團, bands)이었다. 속회에서 감리교도 들은 비 형식적인 예배를 드리면서 사귐과 돌봄과 기독자적 훈련을 이루었다. 감리교도 중 특히 영적으로 살뿐만 아니라 증거 하는 일에 헌신하고자 하는 신도들은 단(bands)에 속하여 부흥 운동에 적극적으로 가담하였다. 이 “단”의 모임에서 그들은 열심히 찬송하고 금식하면서 기도하였으며 복음 증거에 필요한 영적 힘을 얻었다.
그러면 웨슬리는 “하나님은 영이시므로 하나님께 예배하는 자는 영적으로 참되게 예배할지니라”(요 4:27)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어떻게 이해하여 시행했는가?
웨슬리는 우리 모두가 마음과 힘을 다 기우려 예배해야 한다고 전제하면서 “영적으로 참되게 예배한다”는 것은 영(spirit)만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라고 말하였다.7) 이런 예배는 무한한 지혜와 의를 지니시고 거룩하신 하나님께 굳건한 믿음을 나타내는 행위이다. 우리가 믿고 예배하는 하나님은 자비와 은혜가 풍성하시고, 오랫동안 우리를 위해 고통 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이 하나님은 우리의 부정과 범법과 죄를 용서하시는 분이시다. 그리고 이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죄를 자신의 등뒤로 감추시고, 우리를 “사랑하는 사람”으로 받아들이시는 분이시다. 그러므로 “영적으로 참되게” 예배하는 것은 우리의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즐거워하며, 하나님을 원하는 것인 동시에 생각과 말과 행실로 하나님을 믿고 사랑하는 것이다.8) 이런 예배 안에서, 하나님께서 정결하시듯 우리도 정결함을 받는다고 웨슬리는 말한다.
웨슬리가 강조하는 “영적으로 참되게” 예배하는 것은 단순히 내적인 표현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외적인 삶과도 깊이 관련한다. 그리하여 웨슬리는 하나님이 주신 계명을 지켜야 한다고 말한다. 이를테면, 외적인 면에서 “신령과 진정으로”예배하는 것은 우리의 몸과 영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 하나님께 마음을 바쳐 일하는 것,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고 팔며 먹고 마시는 것, 우리의 매일 생활을 하나님께 산 제사로 드리는 것이다.9) 이 점에서 볼 때, 웨슬리가 가장 가치롭게 여기는 예배는, 하나님의 선행하는 은총과 사랑에 대하여 인간이 진지하게 응답하는 행위,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심령과 삶과 전생을 총체적으로 바치는 행위이다. 간단히 말하면, 웨슬리에게 예배는 하나님의 선행하는 은총에 대한 인간의 총체적 응답 행위임과 동시에 은혜의 수단이요 성결을 위해 불가결한 방편이다.
Ⅱ. 웨슬리의 성례전(Sacraments)
일찍이 가톨릭교회의 성례전은 일곱 가지 성사로 구성되었다. 그것은 성세성사(Baptism), 성체 성사(Eucharist), 견진성사(Confirmation), 고백성사(Penance), 신품성사(Ordination), 혼인성사(Matrimony), 그리고 병자성사(Extreme Unction)이다. 이에 비하여 웨슬리는 세례(Baptism)와 주의 만찬(the Lord's Supper)을 성례전으로 받아들였다. 왜냐하면, 이 두 가지는 그리스도께서 친히 제정하시고 명령하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웨슬리의 성례전 이해는 어거스틴의 정의, "보이지 않는 실재의 보이는 표적"(a visible sign of an invisible reality)을 참고하여 채택한 영국 교회의 성례전 이해와 비슷하였다. 그리하여 웨슬리는 성례전을 "내적인 은혜의 외적인 표적"(an outward sign of an inward grace)이라고 정의하였다.10) 여기서 우리가 발견하는 것은 웨슬리의 성례전 이해에 있어서 두 가지 중요한 부분이 있다는 사실이다.
그 첫 부분은 "외적인 표적"(an outward sign)이다. 당시 영국 교회는 "외적인 보이는 표적"이라는 말을 썼음에 비해 웨슬리는 위의 말을 썼는데, 그것은 교회가 받아들인 어떤 종류의 사람이나 권위에 의하여 제정된 "외적 인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11) 이 표적을 제정한 목적은 하늘의 영적인 것을 이해할 능력이 부족한 인간으로 하여금 그 약점을 극복하도록 돕기 위한 것이다. 즉 성만찬의 떡과 포도주는 "그리스도의 살과 피"의 의미를 나타내는 외적인 표적이요, 세례의 물은 "성령의 내적 씻음"을 외적으로 나타내는 표적이다. 웨슬리는 표적(sign)이라는 낱말을 표상(figure), 기념(memorial), 표시(token), 대리(representation), 그리고 기념물(monument)이라는 말로 풀이하여 사용하였다.12) 그리고 웨슬리는 "표적"이라는 낱말과 병행하여 인증(seal) 또는 보증(pledge)이라는 낱말도 가끔 채택하였다. 여기서 웨슬리는, 지혜가 충만하신 하나님은 계획 없이 물직적 요소들을 계시하시지 않는다고 보면서 "외적인 표적"은 내적인 은혜를 표상한다고 주장하였다.
웨슬리의 성례전 이해에 있어서 둘째 부분은 "내적인 은혜"(an inward grace)이다. 이 은혜는 하나님의 선행하는 은총에 따른 속죄와 깊이 관련하였다. 왜냐하면, 속죄는 구원하는 은혜의 근거요 샘이라고 그는 보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속죄에 따른 칭의와 신생을 비롯하여 성화에 이르는 과정에서 "내적인 은혜"를 받는 것은 신도들에게 가장 필요한 부분이라고 웨슬리는 믿었기 때문이다.
전체적으로 볼 때, 웨슬리가 이해하는 성례전은 그리스도인의 신앙고백의 표지(badge) 혹은 표시일 뿐 아니라 은혜의 분명한 표적(sign)이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선한 의지의 표시이다. 이 성례전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은 우리 안에서 보이지 않게 역사 하시고 심판하시며, 동시에 그리스도 안에서 얻은 우리의 믿음을 더욱 강화시킨다고 웨슬리는 믿었다. 이제부터 「웨슬리의 성만찬과 세례」에 관하여 더 자세히 연구하기로 한다.
1. 웨슬리의 성만찬(the Lord's Supper)
웨슬리의 성만찬 연구를 위해 공헌한 사람들 중 대표적인 학자들은 래텐버리(J. Ernest Rattenbury), 데이비스(Horton Davis), 패리스(John R. Parris), 아우틀러(Albert C. Outler), 보우머(John C. Bowmer), 보르겐(Ole E. Borgen), 野呂芳男, 그리고 조종남이다.
20세기 중엽에 이르러 웨슬리의 신학에 대한 일정한 관심이 발생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웨슬리의 성례전에 관하여 주의를 기우린 사람은 드물었다. 그러나 1948년, 래텐버리(J. E. Rattenbury)는 그의 책 『웨슬리의 성찬 찬송가』(The Eucharistic Hymns of John and Charles Wesley, 1948)에서 웨슬리의 성례전이 희생(sacrifice)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시사해 주었다. 래텐버리는 웨슬리의 성찬 찬송가뿐만 아니라 브레빈드(Dr. Brevint)가 쓴 "그리스도인의 성례전과 희생"(The Christian Sacrament and Sacrifice)으로 부터 발췌된 웨슬리의 성찬론에 초점을 두었다. 래텐버리는 웨슬리의 성찬론이 기념을 강조하는 경향을 지니어 갈보리를 기억하게 하는 희생의 십자가를 암시하는 것과 연관한다고 보았다.13) 따라서 그의 성찬론은 고교회 전통에 근거를 두면서도 복음주의적 입장을 표방한다고 래텐버리는 생각했다. 그리하여 래텬버리는 웨슬리의 성찬론을 '복음적 예전주의’(evangelical sacramentalism)혹은‘예전적 복음주의’(sacramental evangelism
)라고 불렀다.14) 웨슬리의 성찬론에 대한 래텐버리의 이해는 우리에게 큰 도움을 주는 것이지만 제한적 가치를 지닌다.
웨슬리의 성찬론에 관한 또 다른 고전적 연구는 보우머(John C.Bowmer)에 의하여 이루어졌다. 그는 초기 감리교회가 시행한 성례전의 실제에 관하여 관심을 두면서 이에 대한 역사적 연구를 시도하여 『초기 감리 교회의 성만찬』(The Sacrament of the Lord's Supper in Early Methodism, 1951)이라는 책을 저술하였다. 그는 18세기에 있어서의 성만찬에 관하여 광범위하게 탐구하였지만, 정작 웨슬리의 성례전에 관해서는 한 장(章)만 다루었다. 거기서 보우머는 래텐버리가 웨슬리의 성찬신학의 제1차 출처를 대체로 간과했다고 비판한다. 그리고 보우머에 따르면, 웨슬리에게 주의 만찬은 은혜의 수단이요, 주님이 친히 명령하신 것이며, 믿음을 가지고 받을 경우 은혜를 받는 동시에 영생의 보증을 받게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웨슬리는 성만찬을 하나의 기념(a memorial)으로 보면서 희생제사의 뜻을 함축하고 있다고 보우머는 보았다.15) 그리고 하늘의 보증으로서의 성찬이 특정 시간에 제한 받지 않는다고 보는 웨슬리의 생각은 20세기에 다드(C. H. Dodd)가 표현한 실현된 종말론의 많은 부분과 관련한다고 보우머는 지적하였다.16) 보우머는 18세기 영국에서 시행된 성례전에 관한 역사적인 배경을 밝혀 줌으로써 웨슬리의 성찬론을 이해하도록 도와주었다.
1960년대 초기에 패리스 (John R. Parris)는 시카고 대학교에서 신학 석사 논문 『존 웨슬리의 성찬 교리』(John Wesley's Doctrine of the Sacraments, 1963)를 발표하였다.17) 그는 이 논문에서 세례와 성찬에 관하여 언급하였지만 웨슬리의 성례전에 관련한 원본보다 제2차 연구서에 더 의존하였으므로 크게 공헌하지 못하였다.
1960년대에 웨슬리의 성찬론 연구에 간접적인 영향을 준 사람은 데이비스(Horton Davies)와 아우틀러(Albert C. Outler)이다. 데이비스는 『영국에서의 예배와 신학』(Worship and Theology in England, 1961)이라는 저서를 통하여 영국의 예배에 대한 신학적 탐구뿐만 아니라 웨슬리의 성찬론 이해에도 도움을 주었다. 데이비스의 지적에 따르면, 고교회 전통을 일관성 있게 따른 웨슬리의 예전주의는 감리교회운동을 편협한 개인주의적 경건으로부터 건졌다는 것이다.18) 미국 남감리교대학교(S.M.U)의 저명한 교수 아우틀러는 존 웨슬리가 저작한 책의 원본을 중심으로 하여 웨슬리의 신학과 성찬론을 탐구하였다. 아우틀러는, 특히 웨슬리가 성례전신학에 대하여 설명할 때 자신의 고유한 생각보다 다른 사람들(브레빈트와 사무엘 웨슬리)의 이념에 많이 의존했지만, “선재적이요 협동적이며 성화시키는 것으로서의 은혜의 교리”는 영국의 신학 체계 안에서 발견할 수 없는 원초적인 것이라고 말하였다.19) 아우틀러는 웨슬리의 저작 원본을 바탕으로 하여 웨슬리의 신학을 연구했으므로 웨슬리에 대하여 더 분명히 이해하도록 우리에게 도움을 주었다.
1970년대에 이르러 웨슬리의 성찬론 연구를 위해 크게 공헌한 사람은 보르겐(Ole E. Borgen)이다. 그는 그의 책『존 웨슬리의 성례전』(John Wesley on the Scaraments, 1972)에서 웨슬리의 성례전 신학에 대한 연구사, 성례전의 본질, 성례전의 기능에 관하여 연구하였다. 여기서 보르겐은 웨슬리의 성찬과 세례에 관하여 심도 있는 학문적 접근을 시도하였다.
1974년, 일본에서는 야여방남(野呂芳男)이 『존 웨슬리의 생애와 사상』20) 을 저술하였다. 그는 여기서 웨슬리의 생애를 자세하게 소개할 뿐만 아니라 웨슬리의 신학을 폭넓고도 심도 있게 탐구해 놓았다.
한국에서는 1980년대 초기에 조종남 박사가 『요한 웨슬레의 신학』을 저작하여 출판함으로써 「웨슬리 연구」를 위한 기반을 구축하였다. 그는 웨슬리가 말하는 성찬의 의미를 “1)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의 표적과 인증, 2)현재 은혜의 표적과 인증, 3)천국의 보증과 인증, 4)성도의 교제의 인증”21) 이라고 보았다. 조종남 박사는 웨슬리의 「성례전 신학」에 관한 이해를 위해서도 큰 공헌을 이루었다.
웨슬리의 성찬 신학에 관하여 가장 귀한 정보를 제공하는 원본은 1745년에 웨슬리가 발간한 『성만찬에 관한 찬송가』(Hymns on the Lord's Supper)로서 그 책의 서문에는 브레빈트(Dr. Daniel Brevint)의 언급을 발췌한 부분22) 이 포함되어 있다. 여기서 두 웨슬리는 브레빈트의 성찬론을 기본적으로 참고하면서 성만찬을 은혜의 수단 중 주요한 것으로 보았다.
가 . 은혜의 수단
일반적으로 웨슬리가 언급한 다섯 가지 주요「은혜의 수단」(five chief means of grace)은 1)기도, 2) 말씀(the Word), 3) 금식, 4) 기독자의 친교 모임, 5) 주의 만찬이다.23) 여기에 나타난 웨슬리의 언급에 따르면, 기도는 은혜의 수단으로서 말씀(words)으로 구성되고 때에 따라 행동과 관련한다. 말씀 (the Word)은 근본적으로 읽고 탐구하며 듣는 말씀이며, 금식은 행동에 관련하고, 기독자의 친교 모임은 일(work)과 행동과 연관되지만, 성만찬은 표적(sign), 말씀(words,), 그리고 행동(action)을 모두 포함한다고 웨슬리는 보았다. 그리고 기도와 말씀은 사적으로나 공적으로 수행되지만 기독자의 친교 모임과 성만찬은 공적으로만 시행되는 은혜의 수단이라고 웨슬리는 생각했다.24) 웨슬리는 그의 설교 "은혜의 수단"에서 그 뜻을 분명히 밝혀 주었다. 하나님이 제정하시고 명하신 주의 만찬은 외적인 표적을 통하여 내적인 은혜를 나타내는 성례전으로서 믿음을 가지고 참여하는 신도들로 하여금 예방케 하며(preventing) 의롭게 하며(Justifying) 성화 시키는(Sanctifying) 은혜의 방편이라는 것이다.25) 아무리 은혜의 수단이 신도들 앞에 주어진다 해도 믿음이 수반되지 않으면 아무런 가치가 없으며, 또한 성령의 역사가 함께 하지 않으면 공허한 것이 되고 만다고 웨슬리는 주장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그의 은혜를 신도들에게 내려 주시지 않는 한, 모든 수단이나 방편은 무의미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은혜를 받으려면 무엇보다 먼저 참된 회개가 필요하며 그후에 칭의, 중생, 성화를 가능케 하는 힘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존 웨슬리에게 성만찬은 하나님의 모든 자녀들의 영혼에 하나님의 영의 은혜를 전달해 주는 위대한 방편이다.
나. 기념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인은 주의 만찬을 받을 때 갈보리의 주님을 회상하게 되며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을 다시 기억하게 된다.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눅 22:20)라는 그리스도의 말씀에서 "기념"(anamnesis)의 뜻은 가톨릭교회의 미사에서 나타나는 갈보리 희생의 반복이 아니라 단번에 (once for all) 자신을 바치신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 은혜를 다시 불러내며(re-calling) 회상케 할 뿐 아니라 지금 여기서 구원의 은총을 실제로 확증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웨슬리가 말하는 "기념"은 단순히 과거를 회상하는 것으로 한정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에 따른 혜택이 “여기에 지금”(here and now) 나타나며 현실 안에서 확증된다는 것을 내포한다. 그리고 이 "기념"은 인간이 스스로 하나님을 향해 믿음과 행위를 나타내는 기념이기 보다 하나님의 선행하는 은총에 대한 응답적 기념이며, 성령의 역사에 따라 임마누엘의 하나님과 지금 영적으로 교통하는 것을 포함하는 기념이다.
다 . 그리스도의 대속적 희생의 표적과 인증
웨슬리의 성찬론에서 가장 크게 강조되는 부분은 그리스도의 대속(atonement)과 희생(sacrifice)이다. 특히 웨슬리가 함께 집성한 『성만찬에 관한 찬송가』(Hymns on the Lord's Supper)에서 성만찬은 그리스도의 대속적 희생과 긴밀하게 관련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 예를 들면 아래와 같다.
-그리스도는 “자기 영을 희생시키다”(ⅹⅹⅲ, 2).
-주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유월절 어린 양”(ⅹⅹⅹⅴ. 1)
-그는 “인류를 위해 피해자로 죽었다.”(ⅹⅹⅹⅵ, 2).
-“흠 없는 어린 양”(cⅹⅹ?. 1)
-“우리의 영원한 제사장”(ⅹlⅵ, 1).
웨슬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희생 제사로 생각하면서 주의 만찬도 희생 제사의 의미를 함축한다고 보았다. 주께서 친히 보여주신 성만찬은 자신의 몸을 찢고 피를 흘림으로써 이루어지는 대속의 희생을 표상하는 만찬이다. 그러므로 성만찬은 주께서 당하신 대속의 죽음의 의미를 표적으로 나타내며 또한 인증하는 것이다.26) 그러므로 우리는 성만찬을 받을 때마다 하나님의 선행하는 은총과 그리스도의 대리적(representative)희생을 마음에 그리게 되며, 동시에 현재적으로 하나님의 영의 은혜를 전달받게 된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성만찬에 참여하는 신도들은 그리스도의 대속적 희생을 생각하면서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감지하며, 영적인 심오한 경지에서 하나.님과 연합하게 되고, 그리스도의 희생정신을 따르고자 하는 다짐이 일어난다.
라 . 그리스도의 실제적 임재(real presence)의 표적과 인증
웨슬리는 “성별에 의하여 떡의 본질이 그리스도의 몸의 본질로, 포도주의 본질이 그리스도의 피의 본질로 변한다.”라고 보는 화체설(化體說, transubstantiation)을 거부하였다. 그는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떡의 본질이 그리스도의 몸의 본질로 변한다고 말하는 것은 “이것은 나의 몸이라”(마 26:26)고 말씀하신 주님의 말씀으로부터 전혀 추론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이것은 나의 몸이 된다.”라고 말씀하시지 않았고 “이것은 나의 몸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27)
웨슬리의 성찬론은 루터(Martin Luther, 1483-1546)의 공재설(共在說, consubstantiation)과 대조된다. 루터는 “그리스도의 몸의 편재”의 교리에 근거하여, 성별 후 성만찬의 떡과 포도주에 그리스도의 몸이 실질적으로 공재한다고 주장하였다. 여기서 웨슬리는 떡과 포도주의 물질 안에 그리스도의 몸이 구체적으로 임재한다는 공재설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웨슬리가 말하는 그리스도의 임재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임재와 행동 전체(성육신, 십자가에 못 박히심, 부활 등)를 의미하였다.28) 그리고 웨슬리가 주장하는 “그리스도의 임재”는 이미 하늘에 계신 그리스도의 몸이 편재하여 성육신하는 것(루터의 입장)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신성이 떡과 포도주를 포함한 성만찬 전체에 실제적으로 임재하는 것을 의미하였다. 그 증거는 웨슬리의 성례전 찬송가에서 발견된다.
오 하나님 주의 말씀을 우리에게 주소서, 주께서 그 이름을 여기에 기록하셨사오니,
용서하는 은혜로 우리를 찾아오소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시니, 정하신 길로 오소서. 지금 여기에 오셔서 우리를 만나시고 복을 내려 주소서.29)
웨슬리의 성찬에 있어서 “그리스도의 실제적 임재”는 인간의 주관을 넘어서 이루어지는 하나님과의 친교, 그리고 성만찬 전체를 통하여 체험하는 그리스도 사건을 포함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영적 임재설(spiritual presence)을 주장한 칼빈의 견해와 같이 “하늘 위에 계신 그리스도의 몸을 성령이 가져온다는 것과 같은 언급은 없다.”30) 웨슬리가 말하는 “성례전적 임재”(sacramental presence)는 성부 성자 성령께서 직접 가담하여 임재한다는 것을 의미하였다. 그리하여 웨슬리는 주의 만찬을 단순히 상징으로 또는 기념으로 보려는 쯔빙글리(Ulrich Zwingli, 1484-1531)의 기념설을 거부하면서 이런 식으로 나누는 성만찬은 공허한 의식이 될 것이라고 경고하였다.31)
이런 점에서 볼 때, 웨슬리가 말하는 “실제적 임재”개념은 육체적, 물체적, 물질적 임재를 강조하는 모든 이념들을 배제한다. 그러므로 웨슬리가 주장한 “실제적 임재”는 정적인(static) 혹은 기계적인(organic) 임재가 아니라 “역동적”(dynamic)이요 생생한(living) 임재이다.32) 그리고 이 “실제적 임재”는 성만찬 예식의 전체에 이루어지는 그리스도의 임재요 신도들의 마음속에 신비하게 체험되는 그리스도의 임재이다.
마 . 현재 은혜(present grace)를 나타내는 수단
웨슬리가 주장하는 “실제적 임재”의 개념은 “현재 은혜를 나타내는 수단으로서의 성만찬”에 대한 이해를 가능케 한다. 왜냐하면, 성만찬의 전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그리스도의 실제적 임재는 하나님과의 영적 친교, 그리스도 사건(주님의 성육신, 고난, 부활)에 관련한 영적 체험, 그리고 구원에 대한 은혜의 역사를 위해 문을 열어 놓기 때문이다.
이미 위에서 언급 한대로 성만찬에 대한 웨슬리의 중요 관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 희생을 비롯한 하나님의 구원 행동과 이에 따른 현재 은혜의 역사(役事)이다. 그리하여 웨슬리는 성만찬을 유월절과 연계하여 생각한다. 즉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표적으로서의 어린양의 희생은 인류를 구원하는 표적으로서의 어린 양 예수의 희생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성만찬에 나타난 예수의 희생의 표적은 단순히 과거의 사건에 대한 것만이 아니라 “우리에게 은혜를 주며 이를 확증케 하는 인증”33) 으로 이해된다. 그러므로 웨슬리의 성찬론은 기계적으로 은혜를 받는다(ex opere operato)고 주장하는 가톨릭교회의 입장과는 달리 현재 은혜를 나타내는 수단으로서의 성만찬을 강조한다. 이런 의미에서 회개, 칭의, 중생, 성화의 과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성만찬에 참여하는 일이다. 왜냐하면 성만찬에서 주어진 떡과 잔은 하나님의 구원에 관한 현재 은혜를 표적으로 나타내 주기 때문이다.
바 . 장차 올 영광의 보증
웨슬리는 성만찬을 장차 올 영광의 보증(a pledge of glory to come)이라고 표현하였다. 웨슬리는 성만찬의 기능에 관하여 말할 때 은혜의 수단, 기념, 대속적 희생, 실제적 임재, 현재 은혜에 이어 장차 올 영광의 보증을 들었다. 위의 여러 가지 중 기념, 은혜의 수단, 그리고 장차 올 영광은 서로 밀접하게 연관하며 서로 의존해 있다. 이를테면, 십자가 위에서 주님이 죽으시고 희생하심은 “영원한 복의 자격”34) 과 그 상속 내지 권리를 마련해 준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희생의 대가로 주어진 자격이요 권리이다. 바로 이 부분은 “기념”의 기능의 초점이다. 그리고 “은혜의 수단”으로서 성만찬은 그리스도를 전해 주고 주님이 주시는 모든 혜택을 받도록 도와준다. 웨슬리는 성만찬에서 은혜를 받은 신도들이 하늘에 있을 자격을 갖추게 되며, 특히 성결케 하는 은혜를 전달받는다고 본다. 바로 이 위의 두 수준의 기능이 성만찬에서 충분히 이루어질 때 신도들은 “장차 올 영광”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주의 만찬은 하나님의 약속을 표현한다. 그것은 하늘에 계신 예수와 함께 살고자 하는 우리의 희망의 보증이다.35) 웨슬리는 성만찬에서 부활하신 주님과 함께 하늘에서 나눌 잔치를 미리 맛보는 것이라고 보았다.36) 그리고 조종남 교수에 의하면 “성만찬은 ‘마라나다’ 곧 주님의 임재를 경험함으로 하나님 나라의 임재를 간접적으로 경험하는 것이다.”37)
웨슬리에 의하면, 세례가 진정으로 회개하는 성인에게 용서의 인증(seal)이듯, 성만찬은 하나님이 주시는 영원한 구원에 대한 확증이요 인증이다. 이 영원한 구원에 대한 인증은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는 신도들이 성만찬을 받을 때 일어나는 것으로서,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댓가로 말미암아 영광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이다.38) 인간은 죽을 수밖에 없으나 그리스도의 피값으로 구원받아 그리스도의 영광에 참여하게 된 존재임을 웨슬리는 성만찬에서 재 확증한다.
사 . 성도의 교제의 인증
웨슬리의 부흥 운동에서 특색 있게 나타난 현상은 주안에서 성도의 교제와 연합(the communion of saints)을 이룬 것이다. 속회와 단(bands)의 모임에서 성도의 교제와 돌봄이 이루어졌다. 초대 교회와 모라비아교도의 전통으로부터 채택한 애찬에서 초기 감리교도들은 주안에서 이루어지는 사랑의 교제를 나누었다. 특히 성만찬에서 신도들은 영적 교제와 연합을 경험하였다. 이 성도의 교제는 단순한 인간적 교제가 아니었다. 이 교제는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과 희생에 의한 구원의 확신이 이루러진 가운데 나누는 사귐이다. 그러므로 성도의 교제 자체 이전에 그리스도와의 연합이 선행한다. 그리고 이 영적 연합을 기반으로 하여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은혜와 영광 중 성만찬을 나누게 된다.39) 이 성도의 교제는 교제 자체로 끝나지 않고 복음 전파와 사회 봉사를 위한 동력이 된다.
아 . 성만찬 시행 방식
초기 감리교도들은 성만찬을 받기 위해 성단 앞의 난간으로 나아갔다. 거기서 그들이 무릎을 꿇고 앉으면 성직자가 떡과 포도주를 신도들의 손 안에 전달해 주었다.40) 이 때 남녀는 서로 분리하여 앉았다.41) 그리고 성만찬에서 웨슬리는 헌금을 금지했지만 가난한 사람을 위한 의연금을 바치는 것은 허용하였다.42) 웨슬리는 감리교운동에 참여하는 비국교도에게까지 관용을 베풀어 모든 신도들은 성만찬에 참여하게 하였다.43) 그리고 성만찬을 효과적으로 받게 하기 위하여 웨슬리는 신도들에게 금식(fasting)을 권장하였다.44) 이런 전통은 감리교운동의 초기에 계속되어 신도들은 성찬 받기 전 여섯 시간 동안 금식하였다.
지금까지 언급한 내용을 간추려 요약한다면 아래와 같다.
웨슬리에게 성만찬은 외적인 표적을 통하여 내적인 은혜를 나타내는 성례전이다. 그리하여 그에게 성만찬은 “은혜의 수단”, 곧 믿음을 가지고 참여하는 수찬자들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전달하는 “은혜의 수단”이다. 성만찬에서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 중 웨슬리가 이해하는 “기념”의 뜻은 과거에 대한 단순한 기념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대속적 은혜에 대한 회상과 아울러 “지금 여기서”구원의 은총을 확증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웨슬리는 성만찬을 “그리스도의 대속적 희생의 표적이요 인증”으로 이해하였으며 따라서 “현재 은혜를 나타내는 수단”으로 보았다.
웨슬리는 가톨릭교회의 화체설, 루터의 공재설, 쯔빙글리의 기념설(혹은 표식설), 그리고 칼빈의 성령임재설과는 달리 “실제적 임재”, 곧 그리스도의 신성이 떡과 포도주에 임재하며 동시에 성만찬의 전체에 역동적으로 생생하게 임재한다는 입장을 취하였다. 그리고 믿음과 이에 따른 행동을 나타내면서 성찬에 참여하는 신도들의 마음속에 그리스도의 영이 임재한다고 그는 믿었다. 웨슬리에게 성만찬은 “장차 올 영광의 보증”이라고 생각하였다. 곧 성만찬은 장차 우리가 하늘에서 부활하신 주님과 함께 나눌 잔치를 미리 맛보는 것이며, 장차 하늘에서 하나님과 나누는 영광을 예표하는 것이라고 그는 보았다. 성만찬에 대한 웨슬리의 생각은 “장차 올 미래의 영광”뿐 아니라 현재 신도들이 함께 나누는 코이노니아와 관련하였다. 그리하여 웨슬리는 성만찬을 “성도의 교제의 인증”으로 보아, 성만찬에서 신도들은 주님과 영적으로 연합하며 그리스도 안에서 성도들이 서로 연합한다고 이해하였다.
웨슬리는 전도 운동과 아울러 고교회 전통의 예전 운동을 일관성 있게 지켜 나갔으므로 그의 성찬론은 예전적 복음주의(sacramental evangelism)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웨슬리의 예전 주의는 감리교회의 운동을 편협한 개인주의적 경건으로부터 구출해 주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2 . 웨슬리의 세례(Baptism)
성서적 근거- 롬 6:3.
웨슬리의 세례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그가 1756년에 출판한 『세례에 관한 논문』(A Treatise on Baptism)을 읽고 연구해야 한다. 이 논문은 그의 부친 사무엘 웨슬리가 고교회주의적 입장에서 1700년에 출판한 『세례 소론』(The Short Discourse of Baptism)을 존이 약간 표현을 달리하여 요약한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웨슬리는 지엽적인 면에서는 의견을 달리할지라도 기본적으로는 부친의 세례론을 받아들였음을 알 수 있다.
웨슬리는 『세례에 관한 논문』에서 세례의 의미, 세례로 말미암아 받는 혜택, 세상 끝날 까지 교회에 존재하는 세례, 유아 세례에 관하여 언급한다. 지금부터 이 부분에 관하여 더 자세히 탐구하기로 한다.
가 . 세례의 의미
웨슬리에 의하면 세례는 그리스도가 제정한 은혜의 수단이다.45) 비록 웨슬리가 은혜의 주요 수단에 대하여 논의할 때 세례에 관해서는 충분히 언급하지 않았을지라도 세례를 은혜의 강력한 수단으로 생각했음은 분명하다.46) 거기서 웨슬리가 세례에 관한 언급을 충분히 하지 않은 이유는, 세례가 끊임없이 사용되도록 요청 받는 것이 아니라 그 기능에 있어서 시작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세례는 단 한 번의 사건인 한편, 다시 반복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기서 웨슬리가 말하는 은혜에 대한 이해는 이중적이다. 하나는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과 희생에 의한 은혜요, 다른 하나는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믿음, 칭의, 구원, 성화를 가능케 하는 은혜이다.47) 이 은혜는 신도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믿게 하며 사랑하게 하고 봉사하게 하는 성령이 주시는 힘이다. 즉 은혜는 물질(substance)보다 힘(dunamis) 으로 이해된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세례에서 은혜를 받는다는 것은 어떤 물질적 은혜를 받는 것이 아니라 값없이 주시는 그리스도의 대속과 희생에 따라 죄악을 이길 힘을 얻으며 동시에 성령의 역사 하심에 따라 새로 거듭난 삶을 살 수 있는 힘을 얻는 것이다.
웨슬리에게 세례는 신도들과 하나님 사이에 언약을 이루는 성례전이다. 그리하여 그는 세례를 하나님의 언약의 상징이었던 할례에 대치할 만한 것이라고 본다.48) 그러므로 웨슬리에 의하면, 할례가 『하나님의 언약』의 표적이요 인증인 것처럼 세례도 마찬지라고 본다.
웨슬리는 고교회주의적 입장에서 쓴 부친의 『세례 소론』을 대체로 받아들였으므로 "세례에 의한 중생"(baptismal regeneration)의 교리를 긍정적으로 수용한 것 같다. 우리는 모두 아담의 죄의 죄책 아래 태어나 영원한 형벌을 받을 수밖에 없는 존재들이지만, 세례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복종의 은총으로 우리가 중생된다고 웨슬리는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웨슬리는 세례에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씻겨지고 성화되며, 하나님의 진노로부터 해방되어 죄의 용서를 받는 동시에 하늘의 씻기움을 받아 영원한 복을 누리는 은혜를 받는다고 본다.49) 웨슬리는 중생에 대한 영국 교회의 견해를 대체로 따르면서 세례는 입교(入敎)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에 접붙임을 받는 것 그리고 하나님의 양자녀가 됨을 인증하는 것이라고 본다.50) 이 생각의 근거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 즉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요 3:5)에서 찾는다. 이와 관련하여 웨슬리는 "은혜의 수단인 물 즉 세례의 물로 말미암아 우리는 중생되고 또한 거듭난다."라고 본다. 그러므로 이것은 사도들이 칭한 바 '중생의 씻음'(the washing of regeneration)이다."라고 말한다. 여기서 "씻음"이란 외적 씼음(the outward washing)을 의미하는 것이기 보다 "내적 은혜"(the inward grace)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씻음을 의미한다.51) 이 중생의 씻음은 인간의 공로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행하는 은총에 의한 것이며 신도들의 회개와 믿음에 따라 이루어진 칭의(justification)와 함께 일어나는 것이다. 그리하여 웨슬리는 주장하기를 중생은 언제나 칭의를 수반하며 또한 동시에 일어나는 것이라고 한다.52) 이런 의미에서 세례를 받고 입교한 신도들은 분노의 자녀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요 천국의 상속자이다.
나. 세례로 말미암아 받는 혜택
세례에 의하여 얻는 첫 혜택은 그리스도의 죽음의 공로를 적용하는 것으로 말미암아 원죄가 지니는 죄책이 씻기워 지는 것이다.53) 인류는 아담의 죄와 형벌을 면할 수 없었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과 복종으로 말미암아 하늘의 씻음을 받고 의와 구원에 이르게 되었다.
세례에 의한 둘째 혜택은 하나님과 언약에 들어가는 것이다.54) 세례는 하나님께서 영적 이스라엘인 교회에 약속한 새 언약을 맺는 것이며, 이 언약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은 신도들에게 새로운 마음과 영을 주어 그들의 죄와 허물을 다시는 기억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표상하는 것이다.
수세자가 받는 셋째 혜택은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교회의 일원으로 입교하는 것이다.55) 유대인이 할례에 의해 입교하듯 그리스도인은 세례에 의해 입교한다. 수세자는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한 몸을 이루어 주께서 분부하신 사명을 실천할 의무를 지닌다.
세례에 의해 받는 넷째 혜택은 분노의 자녀였던 우리들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다.56) 우리는 세례를 받음으로써 하나님의 양자녀가 되는 은혜를 입는다.
세례로 말미암아 우리가 받는 다섯째 혜택은 우리들이 천국의 상속자가 되는 것이다.57)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므로 천국을 상속할 특권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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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슬리의 예배와 성례전
박 은 규 (목원대학교 신학대학)
차 례
들어가는 말
Ⅰ. 웨슬리의 예배
Ⅱ. 웨슬리의 성례전
1. 웨슬리의 성만찬
가. 은혜의 수단
나. 기념
다. 그리스도의 대속적 희생의 표적과 인증
라. 그리스도의 실제적 임재의 표적과 인증
마. 현재 은혜를 나타내는 수단
바. 장차 올 영광의 보증
사. 성도의 교제의 인증
아. 성만찬 시행 방식
2. 웨슬리의 세례
가. 세례의 의미
나. 세례로 말미암아 받는 혜택
다. 세상 끝날까지 교회에 존재하는 세례
라. 유아세례에 관하여
마. 세례를 베푸는 양식
맺는 말
들어가는 말
18세기 감리교회 운동은 16세기 종교개혁의 정신을 영국에서 성취하려는 운동이었다. 특히 전도와 사회 개혁을 위한 웨슬리의 부흥 운동에 활력을 불어넣은 것은 진지하고도 영감적인 예배였다. 이 예배는 존 웨슬리(1703-91)와 찰스 웨슬리(1707-88)의 지도로 이루어 진 것으로서 존(John)은 신학, 설교, 조직, 그리고 소량의 찬송시를 통하여, 찰스(Charles)는 6500여개의 찬송시와 예배 음악을 통하여 크게 공헌하였다. 그리하여 이 두 웨슬리는 초기 감리교회의 효과적인 예배를 위해 훌륭한 팀을 이루었다.
이 두 웨슬리는 감리교회 운동을 전개하면서도 영국 교회의 예배 형식을 떠나지 않았다. 따라서 웨슬리는 그들의 추종자들에게도 영국 교회의 정규 예배에 참석하면서 감리교회의 운동을 전개하도록 하였다. 그런데 웨슬리의 부흥 운동이 활발해지면서 그들의 예배는 전보다 더 비 형식적인 형태를 지니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 예배 안에는 성령의 역사 하심에 따라 자유롭게 드리는 즉흥 기도, 성서를 자유롭게 낭독하는 일, 영적으로 찬송가를 부르는 것, 감동적인 말씀 증언이 포함되었다.
고교회 예배 전통을 일관성 있게 유지하면서 자유 교회의 예배 정신을 받아들인 웨슬리는 「행위에 의한 칭의」(Justification by works)를 지원하는 해석을 거부하였다. 동시에 웨슬리는 「행위가 따르지 않는 믿음」도 바른 믿음이라고 보지 않았다. 그리하여 아우틀러(Albert C. Outler)교수가 지적했듯이, 웨슬리는 그리스도인의 예배와 그리스도인의 실제 행동 사이의 역동적 균형을 강조했으며 또한 그것을 실현하고자 하였다.1) 여기서 우리는 신앙의 생활화 내지 예배의 생활화를 강조한 웨슬리의 모습을 찾아낼 수 있다.
웨슬리는 신학을 두 가지로 나누었다. 하나는 이론신학(speculative divinity)이요, 다른 하나는 실천신학(practical divinity)이다. 웨슬리는 진리에 대한 사색적 지식과 경험적 지식 사이의 균형을 추구하였다.2) 진리에 대한 사색적 지식을 지닌 신도들은 하나님에 대한 경험적 지식(experimental knowledge of God)을 얻는 단계로 향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웨슬리는, “하나님의 선행 은총에 대한 인간의 응답”이 예배에서 이루어져야 하며, 그리스도인은 생활 속에서 적용할 수 있는 살아 있는 믿음을 지녀야 한다고 주장하였다.3) 이런 점에서, 웨슬리가 강조하는 예배는 단순한 의식이 아니라 신앙과 생활을 일치시켜 표현하는 총체적 봉사이다.
웨슬리의 예배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은 그가 예배를 “은혜의 수단”으로 중요시했다는 사실이다. 특히 존은 다섯 가지 중요한 “은혜의 수단들”(the means of grace)을 강조하였다. 그것은 기도, 말씀(the Word), 금식, 기독자의 친교 모임(Christian Conference), 그리고 주의 만찬이다.4) 존은 위의 다섯 가지 중 주의 만찬과 말씀 증언을 특히 중요하게 여겼다. 왜냐하면, 이것은 하나님의 선행하는 은총을 효과적으로 받을 수 있는 수단과 방편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제부터 웨슬리의 예배와 성례전에 관하여 더 자세히 탐구하기로 한다.
Ⅰ. 웨슬리의 예배
「웨슬리의 예배」의 뿌리는 성서 그리고 종교개혁의 정신이요, 그 줄기는 영국 교회의 예배 전통이며, 그 가지는 청교도, 모라비아교도, 개혁 교회, 자유 교회의 예배 전통을 조화시킨 것이다. 웨슬리는 고교회(high church)의 예배 전통과 자유 교회의 예배 전통 사이의 균형을 조심스럽게 유지하면서 감리교회의 부흥 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러면, 웨슬리의 예배 정신과 그 생활을 형성한 과정과 내용은 무엇일까?
일찍이 영국의 개혁자이자 옥스포드의 학자인 위클립(John Wycliffe, c.13929-84)은 예배에 관하여 진보적인 생각을 지닌 사람으로서 성서와 교회의 예배는 자국어로 시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개혁 정신은 크랜머(Thomas Cranmer, 1489-1556)의 「공동기도서」에 의하여 계승되었다.5) 웨슬리가 영국에서 부흥 운동을 전개하는 동안뿐만 아니라 미국에 감리교회를 확장하는 동안에도 영국 교회의 공동 기도(the Common Prayer)를 애독하는 동시에 그의 추종자들에게 이것을 권했음을 볼 때, 크랜머의 공동 기도서가 웨슬리에게 얼마나 많은 영향을 끼쳤는가를 가히 짐작할 수 있다.
두 웨슬리는 무엇보다도 종교개혁의 정신에 근거한 예배를 설정하려고 하였다. 그리하여 웨슬리는 말씀 증언과 성서의 권위를 크게 강조함과 동시에 회개, 칭의, 중생, 성화를 거쳐 기독자의 완전을 향하는 전체 과정을 중요시하였다. 이 과정에서 예배는 은혜를 받는 수단이요 성결 생활을 위해 불가결한 것이었다.
웨슬리가 영국 교회의 고교회 전통으로부터 뿌리 깊게 영향을 받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주의 만찬이다. 두 웨슬리는 자신들이 친히 자주 주의 만찬을 거행하면서 그리스도의 살과 피에 동참하였다.
청교도와 모라비아교도로부터 경건성과 성결 실천의 가치를 배운 웨슬리는 예배의 영역에서도 그들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이를테면, 청교도의 영향을 받아 웨슬리는 간단하고도 비 형식적인 예배를 설정하는 한편, 모라비아교도을의 전통으로부터 온 철야 예배를 함께 드렸다.
한편, 개혁 교회가 웨슬리에게 끼친 영향은 그의 「언약 예배」에서 나타났다. 웨슬리는 개혁 교회의 예배 전통 중에서 「언약 예배」(the covenant service)를 채택하여 신도들로 하여금 하나님과 언약을 다시 이루게 하는 동시에 기독자로서 재 결단하도록 하였다.
특히 웨슬리의 부흥 운동과 병행하여 자연스럽게 출현한 것은 자유 교회의 예배 형태였다. 이 부흥 운동은 자주 옥외에서 개최되었으므로 그들은 비 형식적인 예배를 드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주일 오후 5시에 모이는 예배는 점점 성황을 이루기 시작했다. 얼마 후 감리교도의 부속 예배당(Chapel)이 생기면서 그들은 거기서 예배를 드리고 친교를 나누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은총을 전보다 더 생생하게 경험하기 시작하여 성도들 사이의 영적 결합과 복음적 각성 운동에 적합한 형의 예배가 요청되었다. 그리하여 웨슬리는 자유롭게 표현하며 가담하는 예배 순서를 설정하여 찬송, 성서봉독, 즉흥기도, 말씀증언, 간증의 내용을 지닌 청교도 형식의 간단한 예배를 드렸다.
웨슬리가 특별히 시도한 애찬(love feast)은 비록 예배 형식을 갖추지 않은 것이었을지라도 공동체의 연합과 신도의 코이노니아를 위해 큰 도움을 주었다. 이 애찬은 신약성서의 아가페(agape)와 모라비아 교도의 애찬과 비슷하였다.6) 그들은 함께 모여 빵과 물을 드는 식사를 통해 교제의 잔을 나누는 한편 영적 연합을 이루었다.
웨슬리의 영적인 부흥운동과 사회 개혁 운동이 진전되는 과정에서 신앙생활과 예배 정신을 고양시킨 모임은 속회(class meeting)와 단(團, bands)이었다. 속회에서 감리교도 들은 비 형식적인 예배를 드리면서 사귐과 돌봄과 기독자적 훈련을 이루었다. 감리교도 중 특히 영적으로 살뿐만 아니라 증거 하는 일에 헌신하고자 하는 신도들은 단(bands)에 속하여 부흥 운동에 적극적으로 가담하였다. 이 “단”의 모임에서 그들은 열심히 찬송하고 금식하면서 기도하였으며 복음 증거에 필요한 영적 힘을 얻었다.
그러면 웨슬리는 “하나님은 영이시므로 하나님께 예배하는 자는 영적으로 참되게 예배할지니라”(요 4:27)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어떻게 이해하여 시행했는가?
웨슬리는 우리 모두가 마음과 힘을 다 기우려 예배해야 한다고 전제하면서 “영적으로 참되게 예배한다”는 것은 영(spirit)만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라고 말하였다.7) 이런 예배는 무한한 지혜와 의를 지니시고 거룩하신 하나님께 굳건한 믿음을 나타내는 행위이다. 우리가 믿고 예배하는 하나님은 자비와 은혜가 풍성하시고, 오랫동안 우리를 위해 고통 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이 하나님은 우리의 부정과 범법과 죄를 용서하시는 분이시다. 그리고 이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죄를 자신의 등뒤로 감추시고, 우리를 “사랑하는 사람”으로 받아들이시는 분이시다. 그러므로 “영적으로 참되게” 예배하는 것은 우리의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즐거워하며, 하나님을 원하는 것인 동시에 생각과 말과 행실로 하나님을 믿고 사랑하는 것이다.8) 이런 예배 안에서, 하나님께서 정결하시듯 우리도 정결함을 받는다고 웨슬리는 말한다.
웨슬리가 강조하는 “영적으로 참되게” 예배하는 것은 단순히 내적인 표현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외적인 삶과도 깊이 관련한다. 그리하여 웨슬리는 하나님이 주신 계명을 지켜야 한다고 말한다. 이를테면, 외적인 면에서 “신령과 진정으로”예배하는 것은 우리의 몸과 영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 하나님께 마음을 바쳐 일하는 것,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고 팔며 먹고 마시는 것, 우리의 매일 생활을 하나님께 산 제사로 드리는 것이다.9) 이 점에서 볼 때, 웨슬리가 가장 가치롭게 여기는 예배는, 하나님의 선행하는 은총과 사랑에 대하여 인간이 진지하게 응답하는 행위,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심령과 삶과 전생을 총체적으로 바치는 행위이다. 간단히 말하면, 웨슬리에게 예배는 하나님의 선행하는 은총에 대한 인간의 총체적 응답 행위임과 동시에 은혜의 수단이요 성결을 위해 불가결한 방편이다.
Ⅱ. 웨슬리의 성례전(Sacraments)
일찍이 가톨릭교회의 성례전은 일곱 가지 성사로 구성되었다. 그것은 성세성사(Baptism), 성체 성사(Eucharist), 견진성사(Confirmation), 고백성사(Penance), 신품성사(Ordination), 혼인성사(Matrimony), 그리고 병자성사(Extreme Unction)이다. 이에 비하여 웨슬리는 세례(Baptism)와 주의 만찬(the Lord's Supper)을 성례전으로 받아들였다. 왜냐하면, 이 두 가지는 그리스도께서 친히 제정하시고 명령하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웨슬리의 성례전 이해는 어거스틴의 정의, "보이지 않는 실재의 보이는 표적"(a visible sign of an invisible reality)을 참고하여 채택한 영국 교회의 성례전 이해와 비슷하였다. 그리하여 웨슬리는 성례전을 "내적인 은혜의 외적인 표적"(an outward sign of an inward grace)이라고 정의하였다.10) 여기서 우리가 발견하는 것은 웨슬리의 성례전 이해에 있어서 두 가지 중요한 부분이 있다는 사실이다.
그 첫 부분은 "외적인 표적"(an outward sign)이다. 당시 영국 교회는 "외적인 보이는 표적"이라는 말을 썼음에 비해 웨슬리는 위의 말을 썼는데, 그것은 교회가 받아들인 어떤 종류의 사람이나 권위에 의하여 제정된 "외적 인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11) 이 표적을 제정한 목적은 하늘의 영적인 것을 이해할 능력이 부족한 인간으로 하여금 그 약점을 극복하도록 돕기 위한 것이다. 즉 성만찬의 떡과 포도주는 "그리스도의 살과 피"의 의미를 나타내는 외적인 표적이요, 세례의 물은 "성령의 내적 씻음"을 외적으로 나타내는 표적이다. 웨슬리는 표적(sign)이라는 낱말을 표상(figure), 기념(memorial), 표시(token), 대리(representation), 그리고 기념물(monument)이라는 말로 풀이하여 사용하였다.12) 그리고 웨슬리는 "표적"이라는 낱말과 병행하여 인증(seal) 또는 보증(pledge)이라는 낱말도 가끔 채택하였다. 여기서 웨슬리는, 지혜가 충만하신 하나님은 계획 없이 물직적 요소들을 계시하시지 않는다고 보면서 "외적인 표적"은 내적인 은혜를 표상한다고 주장하였다.
웨슬리의 성례전 이해에 있어서 둘째 부분은 "내적인 은혜"(an inward grace)이다. 이 은혜는 하나님의 선행하는 은총에 따른 속죄와 깊이 관련하였다. 왜냐하면, 속죄는 구원하는 은혜의 근거요 샘이라고 그는 보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속죄에 따른 칭의와 신생을 비롯하여 성화에 이르는 과정에서 "내적인 은혜"를 받는 것은 신도들에게 가장 필요한 부분이라고 웨슬리는 믿었기 때문이다.
전체적으로 볼 때, 웨슬리가 이해하는 성례전은 그리스도인의 신앙고백의 표지(badge) 혹은 표시일 뿐 아니라 은혜의 분명한 표적(sign)이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선한 의지의 표시이다. 이 성례전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은 우리 안에서 보이지 않게 역사 하시고 심판하시며, 동시에 그리스도 안에서 얻은 우리의 믿음을 더욱 강화시킨다고 웨슬리는 믿었다. 이제부터 「웨슬리의 성만찬과 세례」에 관하여 더 자세히 연구하기로 한다.
1. 웨슬리의 성만찬(the Lord's Supper)
웨슬리의 성만찬 연구를 위해 공헌한 사람들 중 대표적인 학자들은 래텐버리(J. Ernest Rattenbury), 데이비스(Horton Davis), 패리스(John R. Parris), 아우틀러(Albert C. Outler), 보우머(John C. Bowmer), 보르겐(Ole E. Borgen), 野呂芳男, 그리고 조종남이다.
20세기 중엽에 이르러 웨슬리의 신학에 대한 일정한 관심이 발생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웨슬리의 성례전에 관하여 주의를 기우린 사람은 드물었다. 그러나 1948년, 래텐버리(J. E. Rattenbury)는 그의 책 『웨슬리의 성찬 찬송가』(The Eucharistic Hymns of John and Charles Wesley, 1948)에서 웨슬리의 성례전이 희생(sacrifice)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시사해 주었다. 래텐버리는 웨슬리의 성찬 찬송가뿐만 아니라 브레빈드(Dr. Brevint)가 쓴 "그리스도인의 성례전과 희생"(The Christian Sacrament and Sacrifice)으로 부터 발췌된 웨슬리의 성찬론에 초점을 두었다. 래텐버리는 웨슬리의 성찬론이 기념을 강조하는 경향을 지니어 갈보리를 기억하게 하는 희생의 십자가를 암시하는 것과 연관한다고 보았다.13) 따라서 그의 성찬론은 고교회 전통에 근거를 두면서도 복음주의적 입장을 표방한다고 래텐버리는 생각했다. 그리하여 래텬버리는 웨슬리의 성찬론을 '복음적 예전주의’(evangelical sacramentalism)혹은‘예전적 복음주의’(sacramental evangelism
)라고 불렀다.14) 웨슬리의 성찬론에 대한 래텐버리의 이해는 우리에게 큰 도움을 주는 것이지만 제한적 가치를 지닌다.
웨슬리의 성찬론에 관한 또 다른 고전적 연구는 보우머(John C.Bowmer)에 의하여 이루어졌다. 그는 초기 감리교회가 시행한 성례전의 실제에 관하여 관심을 두면서 이에 대한 역사적 연구를 시도하여 『초기 감리 교회의 성만찬』(The Sacrament of the Lord's Supper in Early Methodism, 1951)이라는 책을 저술하였다. 그는 18세기에 있어서의 성만찬에 관하여 광범위하게 탐구하였지만, 정작 웨슬리의 성례전에 관해서는 한 장(章)만 다루었다. 거기서 보우머는 래텐버리가 웨슬리의 성찬신학의 제1차 출처를 대체로 간과했다고 비판한다. 그리고 보우머에 따르면, 웨슬리에게 주의 만찬은 은혜의 수단이요, 주님이 친히 명령하신 것이며, 믿음을 가지고 받을 경우 은혜를 받는 동시에 영생의 보증을 받게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웨슬리는 성만찬을 하나의 기념(a memorial)으로 보면서 희생제사의 뜻을 함축하고 있다고 보우머는 보았다.15) 그리고 하늘의 보증으로서의 성찬이 특정 시간에 제한 받지 않는다고 보는 웨슬리의 생각은 20세기에 다드(C. H. Dodd)가 표현한 실현된 종말론의 많은 부분과 관련한다고 보우머는 지적하였다.16) 보우머는 18세기 영국에서 시행된 성례전에 관한 역사적인 배경을 밝혀 줌으로써 웨슬리의 성찬론을 이해하도록 도와주었다.
1960년대 초기에 패리스 (John R. Parris)는 시카고 대학교에서 신학 석사 논문 『존 웨슬리의 성찬 교리』(John Wesley's Doctrine of the Sacraments, 1963)를 발표하였다.17) 그는 이 논문에서 세례와 성찬에 관하여 언급하였지만 웨슬리의 성례전에 관련한 원본보다 제2차 연구서에 더 의존하였으므로 크게 공헌하지 못하였다.
1960년대에 웨슬리의 성찬론 연구에 간접적인 영향을 준 사람은 데이비스(Horton Davies)와 아우틀러(Albert C. Outler)이다. 데이비스는 『영국에서의 예배와 신학』(Worship and Theology in England, 1961)이라는 저서를 통하여 영국의 예배에 대한 신학적 탐구뿐만 아니라 웨슬리의 성찬론 이해에도 도움을 주었다. 데이비스의 지적에 따르면, 고교회 전통을 일관성 있게 따른 웨슬리의 예전주의는 감리교회운동을 편협한 개인주의적 경건으로부터 건졌다는 것이다.18) 미국 남감리교대학교(S.M.U)의 저명한 교수 아우틀러는 존 웨슬리가 저작한 책의 원본을 중심으로 하여 웨슬리의 신학과 성찬론을 탐구하였다. 아우틀러는, 특히 웨슬리가 성례전신학에 대하여 설명할 때 자신의 고유한 생각보다 다른 사람들(브레빈트와 사무엘 웨슬리)의 이념에 많이 의존했지만, “선재적이요 협동적이며 성화시키는 것으로서의 은혜의 교리”는 영국의 신학 체계 안에서 발견할 수 없는 원초적인 것이라고 말하였다.19) 아우틀러는 웨슬리의 저작 원본을 바탕으로 하여 웨슬리의 신학을 연구했으므로 웨슬리에 대하여 더 분명히 이해하도록 우리에게 도움을 주었다.
1970년대에 이르러 웨슬리의 성찬론 연구를 위해 크게 공헌한 사람은 보르겐(Ole E. Borgen)이다. 그는 그의 책『존 웨슬리의 성례전』(John Wesley on the Scaraments, 1972)에서 웨슬리의 성례전 신학에 대한 연구사, 성례전의 본질, 성례전의 기능에 관하여 연구하였다. 여기서 보르겐은 웨슬리의 성찬과 세례에 관하여 심도 있는 학문적 접근을 시도하였다.
1974년, 일본에서는 야여방남(野呂芳男)이 『존 웨슬리의 생애와 사상』20) 을 저술하였다. 그는 여기서 웨슬리의 생애를 자세하게 소개할 뿐만 아니라 웨슬리의 신학을 폭넓고도 심도 있게 탐구해 놓았다.
한국에서는 1980년대 초기에 조종남 박사가 『요한 웨슬레의 신학』을 저작하여 출판함으로써 「웨슬리 연구」를 위한 기반을 구축하였다. 그는 웨슬리가 말하는 성찬의 의미를 “1)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의 표적과 인증, 2)현재 은혜의 표적과 인증, 3)천국의 보증과 인증, 4)성도의 교제의 인증”21) 이라고 보았다. 조종남 박사는 웨슬리의 「성례전 신학」에 관한 이해를 위해서도 큰 공헌을 이루었다.
웨슬리의 성찬 신학에 관하여 가장 귀한 정보를 제공하는 원본은 1745년에 웨슬리가 발간한 『성만찬에 관한 찬송가』(Hymns on the Lord's Supper)로서 그 책의 서문에는 브레빈트(Dr. Daniel Brevint)의 언급을 발췌한 부분22) 이 포함되어 있다. 여기서 두 웨슬리는 브레빈트의 성찬론을 기본적으로 참고하면서 성만찬을 은혜의 수단 중 주요한 것으로 보았다.
가 . 은혜의 수단
일반적으로 웨슬리가 언급한 다섯 가지 주요「은혜의 수단」(five chief means of grace)은 1)기도, 2) 말씀(the Word), 3) 금식, 4) 기독자의 친교 모임, 5) 주의 만찬이다.23) 여기에 나타난 웨슬리의 언급에 따르면, 기도는 은혜의 수단으로서 말씀(words)으로 구성되고 때에 따라 행동과 관련한다. 말씀 (the Word)은 근본적으로 읽고 탐구하며 듣는 말씀이며, 금식은 행동에 관련하고, 기독자의 친교 모임은 일(work)과 행동과 연관되지만, 성만찬은 표적(sign), 말씀(words,), 그리고 행동(action)을 모두 포함한다고 웨슬리는 보았다. 그리고 기도와 말씀은 사적으로나 공적으로 수행되지만 기독자의 친교 모임과 성만찬은 공적으로만 시행되는 은혜의 수단이라고 웨슬리는 생각했다.24) 웨슬리는 그의 설교 "은혜의 수단"에서 그 뜻을 분명히 밝혀 주었다. 하나님이 제정하시고 명하신 주의 만찬은 외적인 표적을 통하여 내적인 은혜를 나타내는 성례전으로서 믿음을 가지고 참여하는 신도들로 하여금 예방케 하며(preventing) 의롭게 하며(Justifying) 성화 시키는(Sanctifying) 은혜의 방편이라는 것이다.25) 아무리 은혜의 수단이 신도들 앞에 주어진다 해도 믿음이 수반되지 않으면 아무런 가치가 없으며, 또한 성령의 역사가 함께 하지 않으면 공허한 것이 되고 만다고 웨슬리는 주장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그의 은혜를 신도들에게 내려 주시지 않는 한, 모든 수단이나 방편은 무의미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은혜를 받으려면 무엇보다 먼저 참된 회개가 필요하며 그후에 칭의, 중생, 성화를 가능케 하는 힘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존 웨슬리에게 성만찬은 하나님의 모든 자녀들의 영혼에 하나님의 영의 은혜를 전달해 주는 위대한 방편이다.
나. 기념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인은 주의 만찬을 받을 때 갈보리의 주님을 회상하게 되며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을 다시 기억하게 된다.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눅 22:20)라는 그리스도의 말씀에서 "기념"(anamnesis)의 뜻은 가톨릭교회의 미사에서 나타나는 갈보리 희생의 반복이 아니라 단번에 (once for all) 자신을 바치신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 은혜를 다시 불러내며(re-calling) 회상케 할 뿐 아니라 지금 여기서 구원의 은총을 실제로 확증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웨슬리가 말하는 "기념"은 단순히 과거를 회상하는 것으로 한정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에 따른 혜택이 “여기에 지금”(here and now) 나타나며 현실 안에서 확증된다는 것을 내포한다. 그리고 이 "기념"은 인간이 스스로 하나님을 향해 믿음과 행위를 나타내는 기념이기 보다 하나님의 선행하는 은총에 대한 응답적 기념이며, 성령의 역사에 따라 임마누엘의 하나님과 지금 영적으로 교통하는 것을 포함하는 기념이다.
다 . 그리스도의 대속적 희생의 표적과 인증
웨슬리의 성찬론에서 가장 크게 강조되는 부분은 그리스도의 대속(atonement)과 희생(sacrifice)이다. 특히 웨슬리가 함께 집성한 『성만찬에 관한 찬송가』(Hymns on the Lord's Supper)에서 성만찬은 그리스도의 대속적 희생과 긴밀하게 관련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 예를 들면 아래와 같다.
-그리스도는 “자기 영을 희생시키다”(ⅹⅹⅲ, 2).
-주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유월절 어린 양”(ⅹⅹⅹⅴ. 1)
-그는 “인류를 위해 피해자로 죽었다.”(ⅹⅹⅹⅵ, 2).
-“흠 없는 어린 양”(cⅹⅹ?. 1)
-“우리의 영원한 제사장”(ⅹlⅵ, 1).
웨슬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희생 제사로 생각하면서 주의 만찬도 희생 제사의 의미를 함축한다고 보았다. 주께서 친히 보여주신 성만찬은 자신의 몸을 찢고 피를 흘림으로써 이루어지는 대속의 희생을 표상하는 만찬이다. 그러므로 성만찬은 주께서 당하신 대속의 죽음의 의미를 표적으로 나타내며 또한 인증하는 것이다.26) 그러므로 우리는 성만찬을 받을 때마다 하나님의 선행하는 은총과 그리스도의 대리적(representative)희생을 마음에 그리게 되며, 동시에 현재적으로 하나님의 영의 은혜를 전달받게 된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성만찬에 참여하는 신도들은 그리스도의 대속적 희생을 생각하면서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감지하며, 영적인 심오한 경지에서 하나.님과 연합하게 되고, 그리스도의 희생정신을 따르고자 하는 다짐이 일어난다.
라 . 그리스도의 실제적 임재(real presence)의 표적과 인증
웨슬리는 “성별에 의하여 떡의 본질이 그리스도의 몸의 본질로, 포도주의 본질이 그리스도의 피의 본질로 변한다.”라고 보는 화체설(化體說, transubstantiation)을 거부하였다. 그는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떡의 본질이 그리스도의 몸의 본질로 변한다고 말하는 것은 “이것은 나의 몸이라”(마 26:26)고 말씀하신 주님의 말씀으로부터 전혀 추론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이것은 나의 몸이 된다.”라고 말씀하시지 않았고 “이것은 나의 몸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27)
웨슬리의 성찬론은 루터(Martin Luther, 1483-1546)의 공재설(共在說, consubstantiation)과 대조된다. 루터는 “그리스도의 몸의 편재”의 교리에 근거하여, 성별 후 성만찬의 떡과 포도주에 그리스도의 몸이 실질적으로 공재한다고 주장하였다. 여기서 웨슬리는 떡과 포도주의 물질 안에 그리스도의 몸이 구체적으로 임재한다는 공재설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웨슬리가 말하는 그리스도의 임재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임재와 행동 전체(성육신, 십자가에 못 박히심, 부활 등)를 의미하였다.28) 그리고 웨슬리가 주장하는 “그리스도의 임재”는 이미 하늘에 계신 그리스도의 몸이 편재하여 성육신하는 것(루터의 입장)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신성이 떡과 포도주를 포함한 성만찬 전체에 실제적으로 임재하는 것을 의미하였다. 그 증거는 웨슬리의 성례전 찬송가에서 발견된다.
오 하나님 주의 말씀을 우리에게 주소서, 주께서 그 이름을 여기에 기록하셨사오니,
용서하는 은혜로 우리를 찾아오소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시니, 정하신 길로 오소서. 지금 여기에 오셔서 우리를 만나시고 복을 내려 주소서.29)
웨슬리의 성찬에 있어서 “그리스도의 실제적 임재”는 인간의 주관을 넘어서 이루어지는 하나님과의 친교, 그리고 성만찬 전체를 통하여 체험하는 그리스도 사건을 포함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영적 임재설(spiritual presence)을 주장한 칼빈의 견해와 같이 “하늘 위에 계신 그리스도의 몸을 성령이 가져온다는 것과 같은 언급은 없다.”30) 웨슬리가 말하는 “성례전적 임재”(sacramental presence)는 성부 성자 성령께서 직접 가담하여 임재한다는 것을 의미하였다. 그리하여 웨슬리는 주의 만찬을 단순히 상징으로 또는 기념으로 보려는 쯔빙글리(Ulrich Zwingli, 1484-1531)의 기념설을 거부하면서 이런 식으로 나누는 성만찬은 공허한 의식이 될 것이라고 경고하였다.31)
이런 점에서 볼 때, 웨슬리가 말하는 “실제적 임재”개념은 육체적, 물체적, 물질적 임재를 강조하는 모든 이념들을 배제한다. 그러므로 웨슬리가 주장한 “실제적 임재”는 정적인(static) 혹은 기계적인(organic) 임재가 아니라 “역동적”(dynamic)이요 생생한(living) 임재이다.32) 그리고 이 “실제적 임재”는 성만찬 예식의 전체에 이루어지는 그리스도의 임재요 신도들의 마음속에 신비하게 체험되는 그리스도의 임재이다.
마 . 현재 은혜(present grace)를 나타내는 수단
웨슬리가 주장하는 “실제적 임재”의 개념은 “현재 은혜를 나타내는 수단으로서의 성만찬”에 대한 이해를 가능케 한다. 왜냐하면, 성만찬의 전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그리스도의 실제적 임재는 하나님과의 영적 친교, 그리스도 사건(주님의 성육신, 고난, 부활)에 관련한 영적 체험, 그리고 구원에 대한 은혜의 역사를 위해 문을 열어 놓기 때문이다.
이미 위에서 언급 한대로 성만찬에 대한 웨슬리의 중요 관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 희생을 비롯한 하나님의 구원 행동과 이에 따른 현재 은혜의 역사(役事)이다. 그리하여 웨슬리는 성만찬을 유월절과 연계하여 생각한다. 즉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표적으로서의 어린양의 희생은 인류를 구원하는 표적으로서의 어린 양 예수의 희생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성만찬에 나타난 예수의 희생의 표적은 단순히 과거의 사건에 대한 것만이 아니라 “우리에게 은혜를 주며 이를 확증케 하는 인증”33) 으로 이해된다. 그러므로 웨슬리의 성찬론은 기계적으로 은혜를 받는다(ex opere operato)고 주장하는 가톨릭교회의 입장과는 달리 현재 은혜를 나타내는 수단으로서의 성만찬을 강조한다. 이런 의미에서 회개, 칭의, 중생, 성화의 과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성만찬에 참여하는 일이다. 왜냐하면 성만찬에서 주어진 떡과 잔은 하나님의 구원에 관한 현재 은혜를 표적으로 나타내 주기 때문이다.
바 . 장차 올 영광의 보증
웨슬리는 성만찬을 장차 올 영광의 보증(a pledge of glory to come)이라고 표현하였다. 웨슬리는 성만찬의 기능에 관하여 말할 때 은혜의 수단, 기념, 대속적 희생, 실제적 임재, 현재 은혜에 이어 장차 올 영광의 보증을 들었다. 위의 여러 가지 중 기념, 은혜의 수단, 그리고 장차 올 영광은 서로 밀접하게 연관하며 서로 의존해 있다. 이를테면, 십자가 위에서 주님이 죽으시고 희생하심은 “영원한 복의 자격”34) 과 그 상속 내지 권리를 마련해 준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희생의 대가로 주어진 자격이요 권리이다. 바로 이 부분은 “기념”의 기능의 초점이다. 그리고 “은혜의 수단”으로서 성만찬은 그리스도를 전해 주고 주님이 주시는 모든 혜택을 받도록 도와준다. 웨슬리는 성만찬에서 은혜를 받은 신도들이 하늘에 있을 자격을 갖추게 되며, 특히 성결케 하는 은혜를 전달받는다고 본다. 바로 이 위의 두 수준의 기능이 성만찬에서 충분히 이루어질 때 신도들은 “장차 올 영광”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주의 만찬은 하나님의 약속을 표현한다. 그것은 하늘에 계신 예수와 함께 살고자 하는 우리의 희망의 보증이다.35) 웨슬리는 성만찬에서 부활하신 주님과 함께 하늘에서 나눌 잔치를 미리 맛보는 것이라고 보았다.36) 그리고 조종남 교수에 의하면 “성만찬은 ‘마라나다’ 곧 주님의 임재를 경험함으로 하나님 나라의 임재를 간접적으로 경험하는 것이다.”37)
웨슬리에 의하면, 세례가 진정으로 회개하는 성인에게 용서의 인증(seal)이듯, 성만찬은 하나님이 주시는 영원한 구원에 대한 확증이요 인증이다. 이 영원한 구원에 대한 인증은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는 신도들이 성만찬을 받을 때 일어나는 것으로서,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댓가로 말미암아 영광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이다.38) 인간은 죽을 수밖에 없으나 그리스도의 피값으로 구원받아 그리스도의 영광에 참여하게 된 존재임을 웨슬리는 성만찬에서 재 확증한다.
사 . 성도의 교제의 인증
웨슬리의 부흥 운동에서 특색 있게 나타난 현상은 주안에서 성도의 교제와 연합(the communion of saints)을 이룬 것이다. 속회와 단(bands)의 모임에서 성도의 교제와 돌봄이 이루어졌다. 초대 교회와 모라비아교도의 전통으로부터 채택한 애찬에서 초기 감리교도들은 주안에서 이루어지는 사랑의 교제를 나누었다. 특히 성만찬에서 신도들은 영적 교제와 연합을 경험하였다. 이 성도의 교제는 단순한 인간적 교제가 아니었다. 이 교제는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과 희생에 의한 구원의 확신이 이루러진 가운데 나누는 사귐이다. 그러므로 성도의 교제 자체 이전에 그리스도와의 연합이 선행한다. 그리고 이 영적 연합을 기반으로 하여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은혜와 영광 중 성만찬을 나누게 된다.39) 이 성도의 교제는 교제 자체로 끝나지 않고 복음 전파와 사회 봉사를 위한 동력이 된다.
아 . 성만찬 시행 방식
초기 감리교도들은 성만찬을 받기 위해 성단 앞의 난간으로 나아갔다. 거기서 그들이 무릎을 꿇고 앉으면 성직자가 떡과 포도주를 신도들의 손 안에 전달해 주었다.40) 이 때 남녀는 서로 분리하여 앉았다.41) 그리고 성만찬에서 웨슬리는 헌금을 금지했지만 가난한 사람을 위한 의연금을 바치는 것은 허용하였다.42) 웨슬리는 감리교운동에 참여하는 비국교도에게까지 관용을 베풀어 모든 신도들은 성만찬에 참여하게 하였다.43) 그리고 성만찬을 효과적으로 받게 하기 위하여 웨슬리는 신도들에게 금식(fasting)을 권장하였다.44) 이런 전통은 감리교운동의 초기에 계속되어 신도들은 성찬 받기 전 여섯 시간 동안 금식하였다.
지금까지 언급한 내용을 간추려 요약한다면 아래와 같다.
웨슬리에게 성만찬은 외적인 표적을 통하여 내적인 은혜를 나타내는 성례전이다. 그리하여 그에게 성만찬은 “은혜의 수단”, 곧 믿음을 가지고 참여하는 수찬자들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전달하는 “은혜의 수단”이다. 성만찬에서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 중 웨슬리가 이해하는 “기념”의 뜻은 과거에 대한 단순한 기념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대속적 은혜에 대한 회상과 아울러 “지금 여기서”구원의 은총을 확증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웨슬리는 성만찬을 “그리스도의 대속적 희생의 표적이요 인증”으로 이해하였으며 따라서 “현재 은혜를 나타내는 수단”으로 보았다.
웨슬리는 가톨릭교회의 화체설, 루터의 공재설, 쯔빙글리의 기념설(혹은 표식설), 그리고 칼빈의 성령임재설과는 달리 “실제적 임재”, 곧 그리스도의 신성이 떡과 포도주에 임재하며 동시에 성만찬의 전체에 역동적으로 생생하게 임재한다는 입장을 취하였다. 그리고 믿음과 이에 따른 행동을 나타내면서 성찬에 참여하는 신도들의 마음속에 그리스도의 영이 임재한다고 그는 믿었다. 웨슬리에게 성만찬은 “장차 올 영광의 보증”이라고 생각하였다. 곧 성만찬은 장차 우리가 하늘에서 부활하신 주님과 함께 나눌 잔치를 미리 맛보는 것이며, 장차 하늘에서 하나님과 나누는 영광을 예표하는 것이라고 그는 보았다. 성만찬에 대한 웨슬리의 생각은 “장차 올 미래의 영광”뿐 아니라 현재 신도들이 함께 나누는 코이노니아와 관련하였다. 그리하여 웨슬리는 성만찬을 “성도의 교제의 인증”으로 보아, 성만찬에서 신도들은 주님과 영적으로 연합하며 그리스도 안에서 성도들이 서로 연합한다고 이해하였다.
웨슬리는 전도 운동과 아울러 고교회 전통의 예전 운동을 일관성 있게 지켜 나갔으므로 그의 성찬론은 예전적 복음주의(sacramental evangelism)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웨슬리의 예전 주의는 감리교회의 운동을 편협한 개인주의적 경건으로부터 구출해 주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2 . 웨슬리의 세례(Baptism)
성서적 근거- 롬 6:3.
웨슬리의 세례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그가 1756년에 출판한 『세례에 관한 논문』(A Treatise on Baptism)을 읽고 연구해야 한다. 이 논문은 그의 부친 사무엘 웨슬리가 고교회주의적 입장에서 1700년에 출판한 『세례 소론』(The Short Discourse of Baptism)을 존이 약간 표현을 달리하여 요약한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웨슬리는 지엽적인 면에서는 의견을 달리할지라도 기본적으로는 부친의 세례론을 받아들였음을 알 수 있다.
웨슬리는 『세례에 관한 논문』에서 세례의 의미, 세례로 말미암아 받는 혜택, 세상 끝날 까지 교회에 존재하는 세례, 유아 세례에 관하여 언급한다. 지금부터 이 부분에 관하여 더 자세히 탐구하기로 한다.
가 . 세례의 의미
웨슬리에 의하면 세례는 그리스도가 제정한 은혜의 수단이다.45) 비록 웨슬리가 은혜의 주요 수단에 대하여 논의할 때 세례에 관해서는 충분히 언급하지 않았을지라도 세례를 은혜의 강력한 수단으로 생각했음은 분명하다.46) 거기서 웨슬리가 세례에 관한 언급을 충분히 하지 않은 이유는, 세례가 끊임없이 사용되도록 요청 받는 것이 아니라 그 기능에 있어서 시작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세례는 단 한 번의 사건인 한편, 다시 반복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기서 웨슬리가 말하는 은혜에 대한 이해는 이중적이다. 하나는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과 희생에 의한 은혜요, 다른 하나는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믿음, 칭의, 구원, 성화를 가능케 하는 은혜이다.47) 이 은혜는 신도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믿게 하며 사랑하게 하고 봉사하게 하는 성령이 주시는 힘이다. 즉 은혜는 물질(substance)보다 힘(dunamis) 으로 이해된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세례에서 은혜를 받는다는 것은 어떤 물질적 은혜를 받는 것이 아니라 값없이 주시는 그리스도의 대속과 희생에 따라 죄악을 이길 힘을 얻으며 동시에 성령의 역사 하심에 따라 새로 거듭난 삶을 살 수 있는 힘을 얻는 것이다.
웨슬리에게 세례는 신도들과 하나님 사이에 언약을 이루는 성례전이다. 그리하여 그는 세례를 하나님의 언약의 상징이었던 할례에 대치할 만한 것이라고 본다.48) 그러므로 웨슬리에 의하면, 할례가 『하나님의 언약』의 표적이요 인증인 것처럼 세례도 마찬지라고 본다.
웨슬리는 고교회주의적 입장에서 쓴 부친의 『세례 소론』을 대체로 받아들였으므로 "세례에 의한 중생"(baptismal regeneration)의 교리를 긍정적으로 수용한 것 같다. 우리는 모두 아담의 죄의 죄책 아래 태어나 영원한 형벌을 받을 수밖에 없는 존재들이지만, 세례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복종의 은총으로 우리가 중생된다고 웨슬리는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웨슬리는 세례에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씻겨지고 성화되며, 하나님의 진노로부터 해방되어 죄의 용서를 받는 동시에 하늘의 씻기움을 받아 영원한 복을 누리는 은혜를 받는다고 본다.49) 웨슬리는 중생에 대한 영국 교회의 견해를 대체로 따르면서 세례는 입교(入敎)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에 접붙임을 받는 것 그리고 하나님의 양자녀가 됨을 인증하는 것이라고 본다.50) 이 생각의 근거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 즉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요 3:5)에서 찾는다. 이와 관련하여 웨슬리는 "은혜의 수단인 물 즉 세례의 물로 말미암아 우리는 중생되고 또한 거듭난다."라고 본다. 그러므로 이것은 사도들이 칭한 바 '중생의 씻음'(the washing of regeneration)이다."라고 말한다. 여기서 "씻음"이란 외적 씼음(the outward washing)을 의미하는 것이기 보다 "내적 은혜"(the inward grace)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씻음을 의미한다.51) 이 중생의 씻음은 인간의 공로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행하는 은총에 의한 것이며 신도들의 회개와 믿음에 따라 이루어진 칭의(justification)와 함께 일어나는 것이다. 그리하여 웨슬리는 주장하기를 중생은 언제나 칭의를 수반하며 또한 동시에 일어나는 것이라고 한다.52) 이런 의미에서 세례를 받고 입교한 신도들은 분노의 자녀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요 천국의 상속자이다.
나. 세례로 말미암아 받는 혜택
세례에 의하여 얻는 첫 혜택은 그리스도의 죽음의 공로를 적용하는 것으로 말미암아 원죄가 지니는 죄책이 씻기워 지는 것이다.53) 인류는 아담의 죄와 형벌을 면할 수 없었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과 복종으로 말미암아 하늘의 씻음을 받고 의와 구원에 이르게 되었다.
세례에 의한 둘째 혜택은 하나님과 언약에 들어가는 것이다.54) 세례는 하나님께서 영적 이스라엘인 교회에 약속한 새 언약을 맺는 것이며, 이 언약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은 신도들에게 새로운 마음과 영을 주어 그들의 죄와 허물을 다시는 기억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표상하는 것이다.
수세자가 받는 셋째 혜택은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교회의 일원으로 입교하는 것이다.55) 유대인이 할례에 의해 입교하듯 그리스도인은 세례에 의해 입교한다. 수세자는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한 몸을 이루어 주께서 분부하신 사명을 실천할 의무를 지닌다.
세례에 의해 받는 넷째 혜택은 분노의 자녀였던 우리들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다.56) 우리는 세례를 받음으로써 하나님의 양자녀가 되는 은혜를 입는다.
세례로 말미암아 우리가 받는 다섯째 혜택은 우리들이 천국의 상속자가 되는 것이다.57)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므로 천국을 상속할 특권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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