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슬레 갱신운동의 현대적 의의
웨슬레 갱신운동의 현대적 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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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슬레 갱신운동의 현대적 의의
- 웨슬레의 교회론을 중심으로 -
김 영 길
목 차
I. 서 론 ............................................... 1
A. 문제제기 및 연구목적 .................................. 1
B. 연구방법 및 범위 ...................................... 2
II. 웨슬레의 신학형성 배경 ................................. 4
A. 웨슬레의 가정과 영국교회 .............................. 4
1. 웨슬레의 가정과 부모의 신학적 입장 ................ 4
2. 18세기의 영국교회 ................................. 6
B. 메도디스트 운동 ....................................... 7
1. 동 기 ........................................... 7
2. 웨슬레의 신앙체험 ................................. 9
III. 웨슬레의 교회론 ....................................... 12
A. 교회론의 형성배경 ..................................... 12
B. 교회의 본질과 표적 .................................... 16
1. 교회의 본질 ....................................... 16
2. 교회의 표적 ....................................... 18
C. 교직제도와 성례전 ..................................... 21
1. 교직제도 .......................................... 21
2. 성례전(Sacrament) ................................. 26
IV. 웨슬레의 갱신운동과 현대적 의의 ........................ 33
A. 웨슬레의 갱신운동 ..................................... 33
1. 웨슬레의 설교 ..................................... 33
2. 웨슬레의 교회갱신의 방법론 ........................ 35
B. 웨슬레 갱신운동의 현대적 의의 ......................... 41
1. 소그룹 운동 ....................................... 42
2. 평신도 전도자 ..................................... 45
3. 가난한자에 대한 복음전도 .......................... 48
V. 결 론 ................................................ 51
A. 요 약 ............................................... 51
B. 결 어 ............................................... 53
* 참 고 문 헌 .............................................. 55
Ⅰ . 서 론
A. 문제제기 및 연구목적
웨슬레 신학자인 하워드 스나이더(Howard Snyder)는 그의 저서 [새포도주는 새부대에]에서 말하기를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가장 큰 장애물은 제도화된 교회라는 것을 부정하기 어렵다"고 한다. 많은 비기독교인들은 말하기를 예수는 좋으나 기독교는 부정한다고 말한다. 참으로 현대의 제도화된 교회는 종종 성경이 가리키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와 전혀 다른것을 본다. 그러나 교회를 통하지 않고, 그리스도를 만날 수 없고 교회자신이 그 자신을 떼어놓고 그리스도를 제시 하는것은 불가능하다. 급속히 변화하는 현대에서 사람들은 케케묵은 낡은 부대에 대한 관심을 잃어간다. 갱신(Renewal)이 없는 성장은 타락을 격화 시키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대다수의 현대 교회학자들은 현대의 개신교회가 교회의 본질과 의미를 실현시키는데 실패했다고 본다. 이관심의 대부분은 교회의 외적 표지에 집중되어 있고, 전통적인 교회론은 현대교회를 치유하는데 큰 취약점을 지니고 있다고 평가되고 있다. 그것은 하나님 나라가 임하고 하나님의 뜻이 지상에서 이루어지며 그 결과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도록 하기위해 전교회를 선교적 소명으로 부르는데 퍽 소극적인 교회론으로 파악되기 때문이다.
교회의 이와같은 자각은 단순히 교회 혁신이나 개선의 요청이 아니라 실로 교회 본질적인 개념과 사명과 존재의의를 재발견하고 그것으로 갱신할 것을 요청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 시대를 위해 성경의 본질적인 교회관을 근거로 하여 '교회가 교회되게'(Let the church be church)할것을 요청받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면에서 바른 교회론의 정립은 바른 교회를 만들고, 이끌어가는데 있어서 아주 중요한 역활을 할 것이다. 그래서 18세기에 참으로 무기력하고 부패했던 영국교회와 사회를 새롭게 갱신한 웨슬레의 교회관과 그의 갱신운동을 살펴봄으로써, 현대교회에 있어서 바른 교회론을 정립하고 교회를 새롭게 갱신해 나가는데 바른 방향을 제시하고자 하는데 이 논문의 목적이 있다.
B. 연구범위 및 방법
제 II 장에서는 웨슬레의 신학형성 배경을 웨슬레의 가정과 영국교회의 관계를 살펴보고, 메도디스트 운동의 동기와 웨슬레 자신의 신앙체험을 통해서 알아 보고자 한다.
제 III 장에서는 웨슬레의 교회관에 대해 살펴봄으로써 그의 '교회론의 형성배경과 특징', '교회의 본질' 그리고 '교직제도와 성례전'에 대해 연구하게 된다.
제 IV 장에서는 웨슬레의 갱신운동을 살펴봄으로써 웨슬레 갱신운동의 현대적 의의에 대해 살펴 보고자 한다. 특히 갱신의 모델로써 '소그룹 운동', '평신도 사역' 그리고 '가난한 자들에 대한 관심'에 대해 다루고자 한다.
제 V 장에서는 본논문을 요약하고, 웨슬레의 교회갱신 운동을 바탕으로 현대교회의 전망을 살펴보게 된다.
I. 웨슬레의 신학형성 배경
웨슬레의 교회론에 대해 살펴보기 위해서 먼저 그의 사상적 배경을 살펴보는 것이 우리에게 큰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웨슬레의 사상적 발전과정을 고찰하기 위해서, 무엇보다 먼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의 가정환경과 교회관계 그리고 웨슬레 자신의 신앙체험을 살펴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A. 웨슬레의 가정과 영국교회
웨슬레의 교회관에 대해서 살펴보기 위해서 먼저 웨슬레의 가정, 즉 그 부모들의 신학사상과 18세기 영국교회의 신학적 상황에 대해서 알아보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1. 웨슬레의 가정과 부모의 신학적 입장
웨슬레는 1703년 런던 북쪽 엡웟(Epworth)교구의 목사 사무엘 웨슬레(Samul Wesley)와 그의 안내 수산나 웨슬레(Susanna Wesley)의 열다섯번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40년 동안 엡웟교구의 목사였으며 매우 근엄하고 경건하며 양심적이었다. 그의 어머니는 현모양처로서 재능있고, 고등교육을 받았으며 자녀교육에 매우 엄격하였고 자년들에게 매우 규칙적인 생활을 시켰다. 따라서 웨슬레는 엄격한 가정교육을 규칙적으로 받았고, 그가 아는 최고의 권위는 자기 부모들의 가정교육을 통하여 배운 것이었다. 웨슬레 부모의 신학적 입장은 영국 알미니안 주의였다고 말할 수 있으며, 그들은 인간의 자유를 강조하고 칼빈주의의 무조건적 예정을 말하는 이중 예정론을 반대하였다. 그들은 예수를 통한 만인을 위한 구원을 강조했고 이 구원은 인간의 노력으로 얻어야 한다고 했다.
그들은 당시 영국교회의 교리적 입장에 입각하여 사랑은 말씀과 선행에 의하여 의로와 질 수 있다고 주장하였지만, 그 실상은 사랑의 순종 곧 인간의 선행을 더 강조했다. 그래서 그들의 목회에 있어서도 성례전을 강조하고 교인들의 훈련에 역점을 두게 되었다. 이후에 그는 말하기를 "나는 다른 사람들 처럼 불량하지도 않고 종교에 대하여 선한 마음을 가지며 성경을 읽고 교회에 출석하며 기도함으로 구원을 얻기를 바랬다"고 하였다.
웨슬레의 부모는 기독교는 자기 뜻대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종교라고 가르쳤다. 그러므로 웨슬레가 어렸을때 그의 신학 형성에 영향을 준것은 자신의 도덕적 혹은 영적인 노력과 무엇인가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행하려고 한 자세였다고 볼 수 있다.
2. 18세기의 영국교회
18세기 영국교회의 신학적 출발점은 영국 국교회와 카토릭 교회, 국가교회와 우주적 교회를 다 포함한 하나의 새로운 교회의 지적 표현에 있었으며, 이 교회를 구성하는 의인의 교리에 있었다.
당시의 영국교회의 기본 교리를 공적으로 반영하고 있는 것은 39개조의 종교신조와 기도문과 설교집이다. 여기에 나타난 신학은 종교개혁자의 입장으로 칼빈주의의 특색을 갖고 있다. 그러나 18세기 말엽에 이르면서 영국교회는 하나님의 은총과 인간의 책임과의 관계에 있어서 인간편을 주로 강조했는데, 그들은 사람이 의롭다함을 받는데 있어서 인간의 책임이 우선된다고 하였다.
그래서 영국교회에 있어서는 성례전을 강조하여 교회에 속한 모든 신도들에게 이 예식의 적극적인 준수가 강요되었다. 이는 성례전을 인간이 의롭다함을 받기 위해 필요한 중요한 선한 행위의 하나로 간주 했을뿐 아니라 초자연적인 힘을 자연계에 중개하는 수단으로서 도덕적인 선을 성취하고 그로 말미암아 따라오는 사람의 행위를 완성하는 도구로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세례를 인간을 중생케하는 은혜의 수단으로 보았으며 그리고 성찬은 신자들로 하여금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굳게 지켜 나가도록 힘을 주어 선행을 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라고 믿었다.
이와같이 18세기 초엽의 영국 국교회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던 의인의 개념은 종단에 가서는 하나님의 은혜와 인간의 책임의 문제를 한 체계속에 묶어 두게 된것을 볼 수 있다. 즉 믿음을 하나의 선행으로 보았던 것이다.
이것을 보건대 웨슬레가 받은 어렸을때의 가정교육과 영국교회의 관계는 웨슬레의 신앙과 신학적 사상의 형성에 큰 영향을 주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B. 메도디스트 운동
1. 동 기
1720년 요한 웨슬레는 차터하우스 학교를 마치고 옥스포드에 있는 크라이스트 처취 대학(Christ Church College)에 입학하였다. 당시 옥스포드 대학은 영국에서 굴지하는 학부로 그 명성이 높았지만 교내 풍기는 그리 아름답지 못하였다. 이 대학내의 가장 유력한 종파는 의식주의의 고교회파(High Church)였으며, 따라서 교내 풍기 정화에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하였던 만큼 학교내의 도덕상태는 말이 아니었다.
또한 신경험주의가 벌써 지적으로 민감한 옥스포드 대학의 학생들 사이에 움트기 시작했던 것이다. 고대 스콜라 주의적 신학문제들은 이미 배척 당하기 시작했으며 줄기찬 자연신교의 위협에 직면한 기독교는 메마른 합리주의 신학으로서 믿음의 생명적 활동을 설명하기에 급급했다. 그러나 웨슬레는 그러한 분위기 가운데서도 모친의 간곡한 기도와 또 가정에서 얻은 선량한 습관 즉, 기도와 성경 읽기를 그대로 지켜 나감으로써 유혹받기 쉬운 소년이었지만 죄악에 빠지지 않았다. 모든 범절에 절도있는 생활을 하였다.
1725년 요한 웨슬레는 그의 생애에 큰 전환기가 왔는데 이때 그는 자신의 장래의 진로에 대하여 번민하였다. 심사숙고 한끝에 그는 성직을 맡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가 성직을 맡기에는 한가지 부족한 것이 있었는데 그의 가슴에는 영적 경험을 사모하는 마음이 적었다. 아직 내적 성결에 대한 관념조차 못가졌고, 종교생활은 다만 습관에 지나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이 당시에 웨슬레는 다음과 같은 책들을 읽고 큰 영향을 받았다.
① 제레미 테일러(Jeremy Taylor)의 [거룩하게 살고 거룩하게 죽는 규율과 훈련] : 웨슬레는 이 책을 1725년에 읽었는데 여기에서 그는 의도의 순수성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이 책에서 강조하고 있는대로 웨슬레는 철저하게 순종하고, 자기의 모든 생각과 말과 행동일체를 하나님께 바치기로 결심하였다.
② 토마스 아켐피스(Thomas a'Kempis)의 [그리스도를 본받아] : 웨슬레는 이책을 1726년에 읽었는데 여기에서 그는 내적 종교의 본질과 범위가 무엇인가 알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참된 기독교인도 주 예수를 모방하려고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하여 예수님의 마음을 꼭 가지려 했고 주님처럼 살려고 다짐했다.
③ 윌리암 로(William Law)의 [그리스도인의 완전], [경건하고 거룩한 삶에의 부름] : 이 두책을 읽은 후 웨슬레는 자기의 삶을 전적으로 하나님께 바치기로 했다.
④ [성서] : 웨슬레는 1729년 부터 더욱 열심히 성서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는 성서를 진리에 대한 유일한 표준이요, 순수한 종교의 유일한 규범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청년시절의 웨슬레 신앙은 인간중심적인 신앙이었다. 후에 웨슬레는 이 시절을 가리켜서 자기는 아들로서의 신앙이 아니라 노예로서의 신앙을 가지고 있었다고 고백했다.
2. 웨슬레의 신앙체험
인본주의적인 웨슬레 신앙은 그의 1735년 5월 24일에 있었던 복음적 신앙체험을 정점으로 하나님의 신앙으로 완전히 변화되었다.
여기에 영향을 준 요소는 다음과 같다.
① 웨슬레 자신의 내적 불안과 번민이다. 특히 대서양 항해 중에 느꼈던 것과 같은 위기에서 웨슬레의 공포는 컸다.
② 웨슬레의 미국 조지아 선교의 실재를 들 수 있다. 이것은 인간 중심의 종교활동의 실재요, 인간의 능력에 대한 깊은 회의라고 할 수 있다.
③ 웨슬레는 미국 토착민인 인디언들에게는 죄도 없고 그들의 인간성도 순수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그들을 접촉하는 가운데 그들도 여전히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것은 웨슬레가 낙관적으로 보았던 인간 본성에 대한 환멸을 가져다 주었다.
④ 조지아 선교를 전후하여 접촉한 모라비안(Moravian), 특히 뵐러(Peter B hler)목사의 신앙과 그의 주장, 즉 산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주장에 큰 영향을 받았다.
⑤ 그래서 웨슬레는 1738년 초에 마침내 그 '산 믿음'(Living Faith)이 자기에게 필요한 것을 깨달았다.
1738년 5월 24일 저녁 웨슬레는 내적고민에 싸여 여전히 무거운 마음을 가지고 런던 시내 올더스케이트 가에서 성경연구와 기도를 목적으로 몇사람의 신앙동지가 모이는 작은 집회에 참석하였는데, 그날 루터의 로마서 주석의 서문을 읽는 도중 그는 마음이 이상스럽게도 뜨거워짐을 느꼈다. 그리고 오직 그리스도만을 신뢰하는 믿음이 생겼다. 죄와 사망의 법에서 나를 구원하셨다는 확신을 가졌다. 비로서 그는 "내가 지금은 믿는다"고 할 수 있었다.
이 신앙체험은 웨슬레의 전 성격과 동시에 그의 전도방법에 큰 변혁을 가져왔다. 그의 눈을 가리웠던 의식주의가 진리를 보지 못하게 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의 도덕적 교훈은 비록 고상했으나 여기에는 사람에게 대한 하나님의 사랑의 표시가 없었다. 여기에는 회개케하고, 마침내 죄의 구렁텅이에서 나오게하는 능력이 결핍되었다. 그러나 이 신앙체험 후 그는 '종의 믿음'에서 '아들의 믿음'으로 변하였고, 그 체험한 바를 원근(遠近) 각처에 전하는 위대한 전도자가 되었다. 그리하여 웨슬레적 '메도디즘'이 발생되고 '메도디스트 교회'가 탄생 되었다.
II. 웨슬레의 교회론
A. 교회론의 형성배경
웨슬레의 교회론의 중요한 원천은 영국교회에서 전수한 카톨릭적인 전통과 주로 모라비안 형제를 통해 받은 혁신적인 개신교 전통(the Radical Protestant tradition)이었다. 웨슬레가 처음으로 교회론적인 문제에 대해 본격적으로 연구한 것은 바로 그가 내적인 성결(inward holiness)의 문제를 진지하게 추구하기 시작한 1725-28년 이었다. 그는 안수받기 위해서 책을 읽는 가운데 세가지 중요한 주제에 접하게 되었다. 즉, 거룩한 삶과 성례전의 중요성 그리고 초대교회 전통의 권위이다. 그는 이런 견해를 주저없이 받아들였다.
웨슬레는 영국교회가 카톨릭과 프로테스탄디즘의 중간 입장을 취한다고 보았다. 그리고 그는 영국교회가 기독교계 전체에서 가장 좋은 교회라고 늘 생각했다. 알버트 아우틀러(Albert Outler)는 주얼이 그의 [영국교회를 위한 변증] (Apologia pro ecclesia Anglicana)에서 설명한 교회론의 중요한 요점들을 다섯 가지로 요약해 놓았다.
① 교회는 성서에 복종해야 한다.
② 그리스도와 중요한 교리 안에서 일치되어야 한다.
③ 교회론의 전형(paradigmata)은 교부시대에서 찾아야 한다.
④ 사도적 교리.
⑤ 기능으로 본 감독제도.
이는 교회의 본질이라기 보다는 교회와 번영을 위한 것이다. 이러한 입장들이 지속적으로 웨슬레의 교회관내에 들어와 얽혀 있었던 것이다.
웨슬레는 조오지아에 있는 기간동안 교회론에 관한 연구를 하였다. 이때에 비러리지(Bishop William Beveridge, 1637-1708)의 시노디컨(Synodikon)을 하게 되었다. 웨슬레는 이 책을 읽고 두가지를 확신하게 되었다. 즉, 성경보다는 의회의 결정에 더 치우쳤기 때문에 그가 성경에 비해서 교회 전통에 너무나 큰 중요성을 두었다는 점이다. 또한 결과적으로 그가 이제껏 교회관을 확립하고 있던 기초조차도 불건전 했다는 것이다. 웨슬레는 이전까지는 사도적 정경(Apostolic Canons)에 많이 의존했지만 비버리지는 이것들이 웨슬레가 가정한 만큼 그렇게 오래된 것이거나 신빙성 있는 것이 아님을 깨우쳐 주었다. 이 말은 성서와 전통이 늘 일치한 것은 아니었으며 또한 때때로 성서와 전통은 서로 상충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만일 상충할 때에는 전통을 버려야 했다. 이것은 웨슬레에게 혁신적인 새 통찰력 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교회에서 행하던 많은 형식과 의식이 오랜 전통에 의해서 생겨난 것으로서 진정한 성서적 근거에서 나오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그는 질서와 구조의 문제가 매우 중요하다고 느꼈다.
1746년경 부터 이미 웨슬레는 교회의 본질(the essence of the church)과 사역을 제도적인(institutional) 면에서보다 기능적인(functional) 면으로 이해했다. 이것에 영향을 끼친것은 두 명의 Latitudinarian학자이다. 1946년 웨슬레는 피터킹 경(Lord Perter King)의 [초대 교회사]를 읽었고 같은 시기에 에드워드 스틸링 폴리트(Edward Stillingfleet)의 [이레니콘]을 읽었다. 1750년에 이르러 웨슬레의 권위의 근거에 관한 견해는 분명했다. 곧 권위에 있어서 성서, 이성, 전통의 셋(triad)으로 보는 앵글리칸의 견해는 경건주의와 신비주의에서 나온 직관적이고 개인주의적인 접근에 의해서 강화되었다. 이성에 대한 호소는 오히려 긴박한 실용주의(pragmatism)로 발전하게 되었다. 앵글리칸의 권위의 3요소는 사실상 웨슬레에게는 성서, 이성, 전통, 경험(Scripture, reason, tradition, experience)이라는 웨슬레안 4요소(the Wesleyan quadrilateral)가 되었다. 그는 경험을 강조 하지만 성서를 존중했고 성령의 근거, 즉 신앙체험에 나타난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고 그 말씀을 확고히 하는 성령의 사역을 강조함으로써 순수한 주관주의에 빠지지 않았다.
웨슬레는 그의 생애 동안에 근본적으로 다른 두 교회관에 열정을 가지고 대응하였는데 하나는 역사적 제도(historical institution)로 보는 교회관이고, 또 다른 하나의 관점은 교회를 성도의 사귐으로 보는 것이다. 전자는 교회의 본질을 보존되어야 할 고대 제도로 보는 것이며, 후자는 교회의 본질을 세계 선교의 사명을 지닌 소수의 신앙인으로 보는 것이다. 즉 전자는 전통에서 보는 것이며, 후자는 산 관계에서 보는 것이다.
일차적으로 볼때 이 두가지 교회관은 트뢸취(Ernst Troeltsch)가 '교회'와 '분파'(sect)로 구분한 것과 상당히 흡사한 것같다. 웨슬레가 제도적인 교회관과 카리스마적인 교회관 둘다를 부정하지 않았지만 그의 마음은 후자에 있었다. 그의 일생에 걸친 사역은 제도적인 교회에 새로운 기독교인 공동체의 활력을 불어 넣으려는 노력이었다. 또한 웨슬레는 교회의 일치를 유지하기 위해 고전 분투하였다. 이것은 그가 말씀의 진정한 선포 뿐만 아니라, 교회의 일치와 지속성이 교회의 선교에 생명적인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두가지 원칙을 가지고 있었다. 첫째, 교회로 부터 감히 분리되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고, 둘째, 교회는 바르게 시정해 나가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었다. 웨슬레는 언제나 분명한 원칙하에서 행동했다. 해야할 의무가 하나님께 대한 의무와 일치할 때에는 교회의 지도자든, 다스리는 자에게든 순종해야 한다. 일치하지 않을때는 조용히 사람에게 보다는 하나님께 순종할 것이라 했다.
B. 교회의 본질과 표적
1. 교회의 본질
웨슬레는 그의 저서 [신약성서 주해] (Explanatory Notes on the New Testament)에서 그의 교회관에 대해 가장 간결하게 묘사해 주고 있는데, 교회란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이고 '기독교 신자들의 총체' 또는 '지상에서나 낙원에서나 참 신자들의 총체'이다" (갈 1:13 ; 행 9:31 ; 히 12:23)라고 하였다.
웨슬레는 "교회에 관하여"(on the church)라는 그의 설교에서 교회란 "하나님을 섬김에 있어 함께 연합된 사람들의 모임, 총체"라고 보는 것이 적합하다고 했다.
그는 교회를 정의함에 있어서 가시적 교회는 '믿는 사람들의 공동체'이며 이것이 교회의 본질이라 했다. 그리고 교회의 고유한 표적은 하나님의 순전한 말씀이 그 안에서 선포되고 있는 것과 성례전이 정당하게 집행되는데 있다고 했다. 여기에서 믿는사람들의 공동체라는 것은 성례전적인 의식이나 출생의 특권이라는 의미에서 이해되어 지는 것이 아니라 산믿음(living Faith)을 가진 회중으로 이해되었다. 웨슬레는 이 말을 형식적이기 보다는 보다 기능적으로 해석하였다. 복음을 참으로 선포하지 않거나 성례전을 정당하게 행하지 않는 회중은 영국교회나 또는 우주적 교회의 일부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웨슬레는 그 모임에 성령의 순수한 임재가 있는 한 소행이 부적당 하거나 심지어 교회에 과오가 있어도 관용하는 입장을 취하였다. 그는 할 수만 있다면 관대한 정신(Catholic Spirit)을 가지고 우주적인 교회안에 있는 여러 다른 그룹들을 인정하려 했다. 웨슬레에게 있어서 핵심이 되었던 것은 교회는 하나님 백성의 공동체(the Community of God's People)였던 것이다.
아우틀러(Outler)는 웨슬레의 성숙한 교회관을 다음과 같이 요약하고 있다. 그는 이것을 "메도디스트의 고전적 교회론"이라고 불렀다.
① 교회의 단일성은 성령안에서 기독교인의 친교(koinonia)를 기초로 한다.
② 교회의 거룩함은 은총의 훈련에 근거하고 있다. 이 훈련을 통하여 신자들의 생활을 칭의와 믿음으로부터 성화의 온전한데 이르기까지 지도하고 성숙 시킨다.
③ 교회의 보편성(Catholicity)은 구속과 모든 참 성도들의 본질적인 공동체가 우주적으로 퍼져 나간다는데서 이해된다.
④ 교회의 사도성(apostolicity)은 사도들의 증언에 충실했던 사람들 가운데에 사도적인 교리가 계승되는 것에 의해서 측정된다.
이것은 적절한 기술이다. 웨슬레에 의하면 교회는 어느 세대, 어느 민족에게나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이 부여된 그리스도의 한 몸이므로 하나라 볼 수 있으며, 교회의 거룩성은 신자들의 거룩함에 달려있다. 그리고 모든 성도는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 모르지만 그들은 부르신 자가 거룩하기 때문에 거룩하다고 했다.
만일 교회가 본질적으로 신자들의 몸이라면, 기독교 신자가 아닌 다른 사람은 그 회원이 될 수 없다. 만일 몸전체가 한 분 성령으로 생기를 얻고 그들을 부른 같은 신앙과 같은 희망이 주어졌다면, 그 성령과 신앙과 희망을 소유하지 못한자는 그 몸의 지체가 아니다.
교회는 보편적(Catholic)이다. 이는 하나님의 백성이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그리고 아메리카 전 지구에 흩어져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교회는 사도적(apostolic)이다. 그것은 역사를 통하여 믿는자들의 공동체와 그리고 성실한 사역자들을 통하여 복음에 대한 사도적 증언이 중단없이 계속되어 왔기 때문이다.
2. 교회의 표적
웨슬레는 영국교회 36개 종교 신조에 있는 교회에 관한 조항 19조를 그대로 미국 감리교회를 위하여 작성한 24개 신조안에 옮겼다. 그 내용은 그리스도의 가시적 교회는 믿는 사람들의 모임으로써, 이 교회에서는 순수한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며, 그리스도께서 제정하신 바에 따라 성례전이 정당하게 집행되어야 하고, 그리고 이 모든 일에 있어서도 그리스도의 규례를 따라야 한다고 했다.
웨슬레는 이 신조를 근거로 하여 교회의 본질적인 표적 세가지를 다음과 같이 들었다. 가시적 교회의 본질적인 요소는 다음과 같다.
① 산믿음이다. 이 믿음이 없이는 교회는 그것이 가시적 교회이든 비가시적 교회이든 있을 수 없다.
② 설교이다. 결국 순수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일이다. 그렇치 않으면 믿음은 쇠약해질 것이며 죽을 것이다.
③ 성례전의 정당한 집행이다. 하나님께서 그가 제정하신 방법(means)을 통하여 믿음을 증강시킨다.
윌리암스(Colin Williams)는 이러한 강조와 관련하여 웨슬레의 입장은 순수한 말씀에 대한 고전적 개신교의 객관적이고 수직적인 강조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했다.
웨슬레는 교회의 구성 요소로서 '믿음'을 중요하게 들었다. 교회를 믿는자들의 모임이라고 보는 웨슬레에 있어서 믿음의 요소는 중요하다. 이점에서 웨슬레는 교회의 전통적인 견해보다 더 성서적인 강조점을 따른 것이다. 그러나 웨슬레는 이 믿음은 말씀이 선포됨으로써 생기는 것이라 말한다. 이 말씀의 선포와 들음이 없이는 믿음이 쇠약해진다. 그리고 죽는다. 성례전도 역시 말씀 선포와 연결이 되지 않는 때는 그 본래의 의미를 드러낼 수 없다.
그러므로 순수한 말씀 선포는 웨슬레에게 있어서 대단히 중요하다. 이점에서 웨슬레는 로마 카톨릭의 전통에서 떠나 고전적 개신교(classical protestant)의 입장에 섰으며 또한 산 믿음을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자유교회(free church)의 입장과 구분된다고 할 수 있다.
웨슬레는 그의 일기에서 주장하기를 그는 교회의 기도와 신조 및 교훈에 밝히 수록되어 있는 근본적인 교회론을 설교하는데 성실한 반면에 많은 성직자들은 말씀에 불충실 하다고 했다. 웨슬레는 말씀의 진정한 선포로써 신앙을 야기 시키는 '사건'에 의하여 교회가 계속적으로 형성될 필요성을 강조하는 고전적 개신교를 크게 역설한 것이 분명하다.
웨슬레는 1789년 교회에 관한 주제로 행한 마지막 설교에서 목회의 예언자적 역활과 사제적 역활을 구별하면서 말하기를 그의 평신도 설교자들은 진정한 말씀을 선포하기 위하여 하나님이 세우신 예언자들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이 정규적인 사제직을 통하여 유지하시는 사제적 권위를 장악하는 일은 그들의 능력에 속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자기의 추종자들에게 정규 목사들의 목회에 계속적으로 관심을 갖도록 요청하는 반면에 평신도 설교자들을 참된 말씀을 선포하도록 조직화 함으로써 수직적인 것과 수평적인 것을 함께 견지하고자 하였다.
웨슬레에 의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충실히 선포하는 목사와 교사는 초대교회의 교사와 사도들과의 계속성(continuity)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보았다.
C. 교직제도와 성례전
웨슬레의 교회론을 다룸에 있어서 우리는 그의 교직제도, 안수, 그리고 성례전에 관한 문제를 다루지 않을 수 없다.
웨슬레는 개혁과 체험에 대해 관심을 갖게되자 자연히 교회가 어떻게, 누구를 통하여 하나님의 역사를 이끌어 나갈 것인가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그래서 웨슬레는 교회관과 그의 역사관에 있어서 교회의 제도, 조직, 안수(ordination), 그리고 성례전의 문제를 다루게 되었다.
1. 교직제도
웨슬레는 교회의 제도와 교직에 대하여 상대적이며 실용주의적인 접근을 하였는데 그에게 있어서는 교회의 조직이나 제도가 모두 복음을 가장 능률적으로 넓게 전파하는데 활용 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웨슬레 형제는 자신들이 영국교회에서 안수를 받은 것을 근거로 설교할 권위를 주장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가진 한 가지 문제점은 비 정통적인 옥외 설교를 어떻게 정당화 시키느냐 하는 것과 한 구역에서만 머물지 않고 영국을 가로질러 여러곳에서 차별없이 설교하는 것이었다. 그는 한 교구 안에서만 설교해야 한다고 비판하는 자들에게 그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나는 전 세계를 나의 교구로 여깁니다. 여기서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내가 세계의 어느 곳에 있든지 듣고자 하는 모든 사람에게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것이 정당하고도 의무입니다."
그러나 웨슬레가 전도사역을 하는데 있어 찰스와 자신을 돕는 보조자를 뽑기 시작했을때 교직제도 문제가 대두되었다. 웨슬레가 임명한 평신도 설교자들에게 있어서 문제는 달랐다. 그들이 안수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슨 권리로 그들이 설교하며, 무슨 권리로 웨슬레가 그들을 임명한 것인지에 대한 문제에 직면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여기에 대해 웨슬레는 성서와 초대 교회에서 그 예를 들어 두 종류의 교직자가 있다고 보았다. 첫째, 설교하거나 전도하는 책임이 있는 교직자이고 둘째, 교회를 다스리고 성례전과 안수를 집행하는 교직자이다. 웨슬레는 목사(pastors) - 사제(priests)를 교회의 정상적이고 기존화된 제도적 목회자로 보았고, 반면에 설교자 - 전도자(preacher - evangelists)는 특별한 전도자로서 제도적인 통로가 아닌 좀더 직접적인 하나님의 영감에 의해서 세워졌다고 보았다. 그러나 설교자 - 전도자는 특별한 교역자이기 때문에 안수를 준다거나 성례전을 집행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 두 종류의 교역자는 모두 성령에 의해서 제정되었다고 보았다. 웨슬레는 이 세상의 어떤 사람이나 또는 어떤 부류의 사람들이 감독이나 사제, 또는 다른 기독교의 성직을 제정할 수 없고 이 일은 성령만이 하시는 특별한 역사로 보았다.
웨슬레의 교직에 대한 견해는 카리스마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교직과 성령의 은사는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고 보았다. 웨슬레는 성령의 은사를 논의함에 있어서 통상적인 은사와 임시적인 은사(ordinary - extraordinary)로 구분했다. '임시적인 은사'들은 신유, 기적, 예언, 영의 분별, 방언 그리고 방언통역(통변)이다. '통상적인 은사'들은 책망하고 깨우치는 말씀을 위시하여 지식, 믿음, 평이한 변론 등이고 교직에 있어서는 목사와 교사들을 통상적인 직무자로, 사도나 예언자 그리고 전도자를 임시적인 직무로 설명했다.
웨슬레는 통상적인 은사가 교회내에서 모든 시대에 걸쳐 역사해 왔다는 것을 알았고 물론 사랑은 더 간구해야 하지만 또한 이런 것들도 기독교인들이 마땅히 사모해야 하는 것이라고 느꼈다.
그러나 임시적인 은사들은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자신을 기독교인 이라고 일컬었던 중요한 시기 이후에 거의 들어본적이 없는데 이것은 이 임시적인 은사들을 위한 기회가 더 이상 없었기 때문이 아니라 진정한 원인은 거의 모든 기독교인들의 풍성한 사랑이 냉담하게 식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렇게 말한다고해서 임시적인 은사가 영영 사라졌다는 것은 아니다. 웨슬레는 하나님께서 그의 시대에 메도디즘을 통하여 새롭게 하는 일을 하고 계신다고 믿었다.
초기의 메도디스트 조직은 사실 성령의 은사들을 폭넓게 체험하도록 충분한 여지를 제공했다. 속회 지도자, 조(band)의 지도자, 조수(assistants), 청지기, 병자를 심방하는 자, 교사 그리고 관리인(house keepers)과 같은 메도디스트의 직분들은 주로 은사(charismata)에 근거를 둔 것 같지는 않은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전체적인 메도디스트 조직은 사실 영적 성장을 고무시키는 것으로서 그 제도안에서 일어났고, 구속사역에 유용하게 사용되었다.
그리하여 메도디즘은 교권주의(clericalism)에 의해 심각하게 둘러싸여 있던 영국교회보다 은사를 체험할 기회를 더 많이 제공했던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메도디스트 교역은 영국교회의 교역의 형태보다 훨씬 더 카리스마적 이었다고 할 수 있다.
웨슬레는 전통적으로 교역자를 셋으로 구분하는 서열, 곧 감동(bishops), 장로(presbyters or priests) 그리고 집사(deacons)의 구분을 받아들였지만 그는 감독과 장로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없다고 보았다. 웨슬레는 감독, 사제, 그리고 집사라는 세 서열은 신약시대에 분명히 있었지만 모든 시대를 위해서 정해진 것은 아니라고 했으며, 오히려 여러 다른 교회정치에 있어 수없이 많은 다양성이 있어온 것이 틀림없다고 했다. 그리고 모든 교회정치에 있어 어떠한 획일성(uniformity)도 없을 것이며 교회 지도자들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을 참고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웨슬레는 교역자의 세 서열이 사도들의 가르침으로 인정되었을 뿐만 아니라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에 의하여서도 인정되고 있다고 믿었다.
이런 기독교 교직제도에 대한 견해, 즉 안수를 주고 성례전을 행할 사제직(an outward priesthood)과 설교하고 복음을 전하는 특별 교역자(extra ordinary ministers) 서열로 구분하는 견해가 웨슬레에게 있어서는 두가지 면으로 작용했는데 한편으로는 메도디스트가 평신도 설교자를 임명한 것을 비판하는 자들에 대한 정당화였다. 다른 한편으로는 메도디스트 설교자들이 성례전을 집행하면 안되고 영국교회 성직자들의 다른 권한을 취하면 안된다고 하는 점에 대해 설교자들 앞에서의 웨슬레의 변론이었다. 바로 이것이 메도디즘이 영국교회와 분리된 종파가 아니라 영국교회내의 한 운동으로 여전히 남아있게 하는 열쇠가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웨슬레는 마침내 아메리칸 메도디즘(American Methodism)을 위해 교역자들에게 안수를 주었다. 이것으로 인해서 날카로운 논쟁이 야기되고 해명을 해야할 필요가 있었다. 사실 그는 더 일찍 영국에서 메도디스트 설교자들에게 안수를 줄 수 있었지만 그러나 그 당시에는 이것이 불필요 했고 만약 안수를 주었다면 영국교회와 메도디스트는 분리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의 망설임은 끝이나고 말았다. 그는 추수할 일꾼을 임명하고 파송함으로 해서 질서를 파괴하거나 인간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한에 있어서는 충분히 자유롭게 생각하기로 결정했다. 그의 이런 노력은 대체로 성공을 거두었고, 그가 교육받은 영국교회의 기독교 전통을 버리거나 반대함 없이 그리스도의 사랑의 항상 성숙하는 표현 속에서 전통적인 기독교에 대한 자신의 이해를 발전시켰다.
이렇게 함으로써 웨슬레는 성서와 초대교회의 전통에 충실하다고 생각했고 더 나아가 영국교회의 교리에 대한 바른 이해와 다른 것이 없으며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이 가능한 한 자유롭고 넓게 전파된 것이라고 볼때, 복음에도 순종하고 있다고 보았다. 동시에 그는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다른 은사를 주시듯이 교직의 직분도 시대를 따라 다르게 주실 것이라고 생각했다. 성서에는 어떤 결정적인 교회 정치제도를 제정한 것이 없으며 따라서 일정한 형태를 주신것도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2. 성례전 (Sacrament)
영국교회 교도로써 웨슬레는 성례전을 중시했으나 올더스케이트 체험 이후에 더 중요한 의미를 가지게 했다. 올더스케이트 체험을 한 후에 웨슬레가 성례전을 집행하자 산 성령의 능력으로 불타게 되었다. 마음이 뜨거워지는 체험이 있은 후에 주의 만찬이 더 의미를 갖게 되었다는 것은 흥미있는 일이다. 그가 새로 하나님을 체험한 경험 때문에 은혜의 수단으로서의 성례전을 내버리기 보다는 그 영혼에 하나님의 새로운 생명이 자라나기 위해 성례전을 더 많이 행했다.
웨슬레에 의하면, 은혜의 수단(means of grace), 성만찬, 기도 성경읽기, 금식, 애찬(love feast), 찬송, 예배등이다. 그러나 그 중에서 중요한 것이 성만찬과 세례이다.
성례전에 대한 웨슬레의 이론과 실제는 1725년 부터 그의 생을 마칠때까지 거의 변화되지 않았다. 그러나 점차로 성례전을 통하여 역사 하시는 하나님의 영에 강조점을 두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만일 외적인 수단이 하나님의 영과 분리된다면 그것이 무엇이든지 유익할 수 없고 하나님의 지식이나 사랑으로 조금도 이끌 수 없으며, 그러므로 어떤 의미로서든지 수단 자체내에 능력(intrinsic power)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큰 잘못이라고 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은혜의 수단을 통하여서 은혜를 주신다고 웨슬레는 생각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를 더욱 받고자 하는 사람은 성만찬에 참여하면서 그 은혜를 기다릴 것을 권한다. 더 나아가 성만찬에 참여가는 것은 주님의 명령이기 때문에 주님께서 재림하실때 까지 이를 행하여 은혜를 기대할 뿐 아니라 주님의 죽으심을 전파하여야 한다고 했다.
웨슬레에 의하면 성례전은 하나님의 은혜를 전해주기 때문에 존중되어야 하고 또한 행해져야 하지만, 그러나 그것은 단지 도구일 뿐이다. 즉, 성례전은 수단(means)이지 목적(ends)이 아니다.
a. 성만찬
웨슬레의 교회론에서 성만찬을 다루어야 하는 것은 극히 자연스러운데 그것은 성만찬이 웨슬레의 견해와 실제에 있어서 전체 회중의 생활에 중심이 되기 때문이다. 그는 은총에서의 성장이 은총의 모든 수단에 정기적으로 참여할 것을 요청한다는 주장과 일관성 있게 이 성례를 크게 역설하였고, 그것은 성령의 은총이 하나님의 모든 자녀들의 영혼에 전달되는 큰 통로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를 더욱 받고자 하는 사람은 성만찬에 참여해서 그 은혜를 기다릴 것을 권한다. 더 나아가 성만찬에 참여하는 것은 주님의 명령이기 때문에 주님께서 재림하실때 까지 이를 행하여 은혜를 기대할 뿐만 아니라 주님의 죽으심을 전파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웨슬레에 의하면 성만찬은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의 표적이며, 더 나아가 성만찬은 그리스도의 구속적 죽음에 근거한 모든 은혜를 현재 여기에서 전달하는은헤의 수단이다. 그렇기 때문에 웨슬레는 성만찬이 단순한 '기념'이라는 것을 반대한다. 따라서 합당한 수찬자가 믿음으로 받을때 그는 자기의 필요한 은혜를 받을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이 성만찬은 구원받은 자들이 하늘나라를 대망하며,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임재를 통해 하나님 나라를 경험하는 잔치라고 이해했다. 이것은 성도들의 주님과의 친교이며, 참여한 모든 성도가 서로 한 주님 안에서 사귀는 것이며 즐거운 잔치이다. 그러므로 웨슬레에게 있어서 성만찬은 하나의 가시적 설교라 할 수 있다.
웨슬레는 성만찬의 중요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① 성만찬은 하나님이 제정하신 것으로서, 여러가지 필요성에 따라 예방하는 또한 의인하는 또는 성화하는 은총을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수단이다.
② 제정된 성만찬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그들이 죄를 멀리 하지만 죄의 용서를 나타내거나 또는 그들의 영혼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새롭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은총이 필요하다고 인식하고 느끼는 자들이다.
③ 우리가 그에게 무엇을 드리려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든지 그가 우리를 위해 생각하시는 최선의 것을 받기 위하여 성만찬에 참여할때 사전에 필요한 준비는 아무것도 없고 다만 그가 주고자 하시는 것을 받으려는 갈망만 있으면 된다.
④ 의사소통 하는때에 필요한 것은 타당성이 아니라, 우리 상태의 철저한 죄스러움과 무력성을 느끼는 것이다.
성만찬이 어떻게 우리를 구원의 길로 인도하는 주요한 수단이 되는가는 웨슬레가 제시하는 성만찬의 세가지 측면에서 찿아볼 수 있다. 첫째, 그것은 그리스도의 과거의 고난을 표현하므로 기념적인 것이다. 둘째, 그것은 이 고난의 첫 열매를 현재적 은총으로 전달하므로 수단이 된다. 셋째, 그것은 장차 도래할 영광을 우리에게 확신시키므로 확실한 보장이라고할 수 있다.
웨슬레에게 있어서 성만찬은 하나의 가시적 설교이다. 웨슬레에 의하면 성만찬은 모든 사람에게 개방되어 있고 이 가시적 설교는 믿음과 행동으로 받아들여져야 하는 것이다.
b. 세 례
웨슬레가 세례를 은혜의 수단이라고 보는 점에서는 성만찬에 대한 견해와 유사 했지만 유아 세례관 때문에 모호한 점이 없지않아 있다. 그는 세례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가 임한다고 보았으므로 만일 우리가 거기에 응답하여 산다면, 또한 회개하고 믿고 복음에 순종한다면, 세례는 지금 우리를 구원하며, 세례가 우리를 이 세상에 있는 교회 안으로 받아들이 듯이 장래의 영광 가운데로 맞아들일 것이라고 했다.
웨슬레는 유아세례와 성인세례를 구별하였다. 성인 세례에서는 그렇지 않지만 유아 세례에서는 세례받음으로 거듭난다(baptismal regeneration)는 교리를 긍정하는데 이르렀으며 그는 어린아이들도 원죄의 죄책 때문에 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보았다. 세례는 원죄를 씻으므로 유아도 다른 수단에 의하여 그리스도에게 올 수는 없다고 한다.
그는 유아시기에 세례를 받은 어린이들은 그 세례를 받을때 거듭난다고 느꼈다. 그러나 성인의 경우에는 물로 거듭난다고 할지는 모르나 그것은 아직 또한 필연적으로 성령으로 낳는다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여기에 대해서 베이커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웨슬레는 유아세례가 예수님이 제정하신 것이고 구약의 할례의식의 계승이기 때문에 유아세례를 지지했다. 그는 어떤 방법으로도 객관적 은혜가 하나님의 자녀에게 임했다고 믿었다. 그래서 어떤 의미에서는 거듭났으며 그렇지 않으면 최소한도 중생의 과정이 시작된다고 믿었다. 그러나 성년의 경우에는 성례전과 관계없이 거듭난다고 했다."
웨슬레의 세례관을 이해하는데 그의 회심과 기독교인의 생활에 대한 역동적이고도 체험적인 개념을 상기하면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기에 웨슬레는 우리안에 살아계시는 하나님을 강조했기 때문에 만일 우리가 세례에 응답하여 산다면, 그 세례는 지금 우리를 구원하신다고 말할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의 생활속에 나타나는 성령의 열매의 증거는 신자가 세례받기 전에 이미 거듭났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변화를 가져오는 것은 세례 그자체가 독립적으로 하는 일이 아니라 믿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들일때 이루어진 것이다.
이상에서 살펴본바와 같이 웨슬레의 교회관은 역사속에서 그 역할, 구조, 교역 그리고 성례전에 대한 이해와 더불어 근본적으로 수정된 영국교회의 입장을 표명하며 자신의 올더스케이트의 체험으로 말미암아 급속하게 영적인 운동이 확장되어 이 가운데 활기있게 되어가는 것을 볼 수 있다. 우리가 살펴본대로 웨슬레의 교회론은 점진적으로 변화되었고 이때까지 웨슬레는 건전한 종합(mediating synthesis)를 잘 이룩해 나왔는데 이것이 웨슬레 사역의 특색이면서 여러시대에 걸쳐 기독교 교회에 끼친 영향이라고 할 수 있다.
V. 웨슬레의 갱신운동과
현대적 의의
A. 웨슬레의 갱신운동
1. 웨슬레의 설교
현대 교회를 위한 웨슬레의 운동의 타당성은 어디에 있는가 ? 그의 영향이 무엇인가 ? 이러한 질문에 대하여 알아보기 위해 웨슬레의 설교와 교회 갱신의 방법론에 대해 살펴 보고자 한다.
웨슬레는 분명하고 확실한 설교를 지니고 있었다. 이 설교의 기본 원리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개인의 구원에 대한 분명한 선포 : 웨슬레의 설교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이었다. 사실 웨슬레의 갱신운동의 특징 역시 웨슬레 자신이 복음적 회심, 체험 곧 성서적 구원의 확신으로부터 시작된 것을 볼때 이러한 것들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웨슬레가 선포한 것은 기초적 복음의 핵심이었다. 옥스포드의 학자였지만 그 학문성은 대중을 섬기는 일을 위해 쓰여졌고 그의 정열은 대중에게 의사전달을 정확하게 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곧 그의 불타는 구령열과도 관련 될 것이다.
그는 말하기를 "당신은 영혼을 구원하는 일 외에는 아무일도 하지 마십시요, 그러므로 이 일로 시간을 보내고 이 일을 위해 당신이 쓰여지도록 하시오"라고 했다.
② 성령충만한 생활에 대한 끊임없는 강조 : 웨슬레는 성령충만의 위기 경험을 강조했을 뿐 아니라, 그의 전제는 바울의 그것으로써 그리스도인의 성숙된 공동체의 성장, 성도의 그리스도의 분량까지의 완숙을 본 것이다. 웨슬레는 성령의 역사를 통한 그리스도인의 성장에 끊임없는 관심이 있었다.
③ 활동적이고 적극적인 사회적 관심 : 웨슬레는 탁월한 전도자였지만, 그의 설교제목과 그의 출판물을 살펴보면 그 제목들은 부, 국가적 죄, 전쟁, 교육, 의료, 윤리, 우편법, 북아메리카의 무역, 왕에 대한 책임, 주류산업등 다양하다. 웨슬레는 가난한자와 부자, 항해자, 밀수, 노예매매 및 당시의 다른 심각한 사회문제들에 직면하고 있었다. 주일 아침에 이런 문제들을 설교한다고 전도자의 일을 버린것은 결코 아니다. 이런 웨슬레의 사회적 관심은 열매를 맺었다. 국민들 사이에 새로운 윤리의식이 일어났으며, 많은 사람들이 웨슬레를 따랐고 능력있는 전도자로서 수천의 사람들을 변화시켰다.
웨슬레는 사회개혁을 말하는 것으로 그친것이 아니라 그는 그들로 하여금 서로 긴밀한 교제를 갖게하여 서로 양을 치고 지도자를 육성시키고 그들이 살고 있는 현 조건들을 개선 시키고자 일하였다.
2. 웨슬레의 교회갱신의 방법론
웨슬레는 분명한 복음의 선포가 제도적 교회의 담벽안에 갇혀버리면 효과적으로 전해질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이점이 웨슬레가 교회 구조를 향한 의미 있는 일이다. 웨슬레는 고교회주의자였으나 하나님은 거기 머물도록 두시지 않았다. 상당한 날들을 그는 죽을 때까지 고교회주의적 인물이었으나, 그는 놀랍게도 융통성과 관습적이 아닐 수 있는 점을 배웠다.
a. 옥회집회
웨슬레는 스스로를 제도적 교회안에 한정시키지 않았다. 웨슬레의 효과적 사역은 복음을 교회의 네 벽으로부터 끌어내어 외치기 시작한데서 부터이다.
전도자이면서 또한 웨슬레 형제와 함께 전에 옥스포드에서 동료로 지냈던 조지 휫필드(George Whitefield)가 브리스톨 가까운 킹스우드 광산에서 광부들을 모아놓고 정기적으로 설교했다. 휫필드는 웨슬레에게 도움을 요청하게 되었지만 웨슬레는 이를보고 놀랐고 교회에서 행해지는 것이 아니라면 영혼을 구원하는 일이라도 죄악시 생각되었다. 웨슬레는 휫필드의 전도방법에 찬의를 표하지 않았으나 그의 전도 활동이 예상외로 큰 효과를 거둘 뿐 아니라 예수님의 산상설교를 가장 유력한 옥외설교의 표본이라고 생각하고 이에 찬성했다.
그는 휫필드의 사역을 관찰하면서 그것이 하나님의 부름처럼 깨닫게 되었다. 그는 기록하기를 "오후 네시에 나는 더욱 용기가 생겨 그 도시 근방의 약간 눈에 띄는 장소에서 약 삼천명의 사람들에게 구원의 기쁜 소식을 선포하였다. 내가 설교한 성경귀절은 이것이었다. ...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라고 했다.
군중은 점점 불어났고 이것은 다른 지역으로 점점 확산되었다. 웨슬레는 사람들이 교회에 오지않는 때는 교회가 사람들을 찾아 나갈때라는 것을 발견하였다. 많는 사람들이 단순히 전통적인 교회에 참석하기를 원치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또한 기성교회에 받아들여 지지못한 사람들도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b. 소그룹 조직
웨슬레는 새롭고 효과적인 교제를 위한 구조를 창조 하였다. 웨슬레가 그의 회심자들에게 행한 일중의 하나는 그들로 10여명씩 그룹을 짓게하고 거리의 대표자로 세운것이다. 이것이 유명한 웨슬레의 구역회 혹은 속회였다.
1) 속회 ( The Classes Metting)
속회는 전체 구조에서 모퉁이돌 역할을 했다. 속회란 사실상 사람들이 살고있는 이웃에서 모이는 가정교회라 할 수 있으며, 속회 지도자(남, 여), 목회자이며 제자훈련을 시키는 사람이었다.
그의 임무는 첫째, 자기 속회에 속한 모든 사람들을 한 주일에 적어도 한번은 방문하여 그들의 영적 상태를 살펴보고 필요할 때에는 충고하고 책망하며 위로하고 권고한다. 그리고 그들이 내는 헌금을 통하여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것이다. 둘째, 신도회의 목사와 집사들(the Stewards)을 한 주일에 한번 만나서 병든 이들이나, 무질서하게 살아가는 이들, 책망을 받아 들이려고 하지 않는 이들이 누구인지를 목사에게 알리고, 지난 주간에 여러 속회에서 거둔것을 집사들에게 납부하는 일, 그리고 모든 회원들이 헌금한 회계 장부를 제시하는 일 등이다.
속회는 많은 메도디스트들에게 주요한 은혜의 통로가 되었다. 그것은 전도하고 제자를 양육하는 기능을 하였다. 웨슬레는 지혜롭게도 사람의 가슴 속에서 싹트는 믿음은 세상의 냉혹함에서 보다도 그 단체의 온화한 기독교적 분위기에서 더 효과적으로 구원에 이르는 믿음에 까지 자랄 수 있음을 분별할 수 있었다.
그와같은 작은 그룹에서 속회 지도자가 각자를 친밀하게 알고 있으니 훈련이 얼마나 효과적 이었겠는가 짐작할 수 있다. 웨슬레는 훈련이 느슨해지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그는 규칙을 조심스럽게 설명했으며 규칙을 따르지 않는자는 누구든지 제외해 버렸다.
2) 조 (band)
속회는 조에 의해서 유지되었는데 일반적으로 나이, 성별 그리고 기혼인가 미혼인가에 따라 더 작게 세분되었다. 조회원들은 악한 일을 피하고 선한 일에 열심을 내며 가난한 자들을 구제하며 모든 은혜의 수단을 활용하여 신앙생활을 하도록 되어 있었다.
속회와는 달리 조는 주로 훈련을 위한 것이 아니라 확실하게 회심한 자들을 영적으로 성장 시키는데 도움을 주는 것이 었으며, 평균적으로 그 구성원은 5명 내지 10명 가량 되었다.
3) 특별 신도회(the Select Society)
웨슬레는 훨씬 더 친밀한 세포조직인 특별 신도회를 만들었다. 이 조직은 내적인 성결과 외적인 성장을 이루는데 현저한 발전을 보인 사람들을 위한 것이었다.
웨슬레는 특별 신도회를 위해 세가지 규칙을 다음과 같이 제정하였다.
① 이 특별 신도회에서 되어진 이야기는 다시 언급되지 않도록 한다. 그 회원에게라도 일절금지이다.
② 모든 회원은 아주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도 절대적으로 그의 목사에게 순종하기로 한다.
③ 모든 회원은 모든 물품을 공동으로 소유하게 되기 까지는 공동재산으로 쓰려고 모아둔 것(bonafide)을 일주일에 한번 바친다.
특히 모든 물건을 공동으로 소유한다는 것은 웨슬레가 가지고 있는 이상을 암시해 주는데 사도행전에 나타난 초대교회 신자들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했다" (행 2:44)는 점을 주목할때 그는 이것이 하나님 나라에 가까이 간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c. 평신도 전도자
웨슬레는 또 다른 차원에서 새로운 교회구조를 창안해 냈는데 그것은 평신도 전도자이다.
신도회 - 속회 - 조(Society - Class - Band) 제도는 평신도 전도자들이 없었다면 함께 지속되지 못했을 것이다. 이 평신도 사역자들은 특별히 교육을 많이 받은 사람도 아니고 시간이 남아 돌아가는 부자도 아니었다. 그들은 노동자들 이었고 남편이요, 아내였고, 거의 훈련을 받지 못한 젊은이들 이었다. 그러나 그들에겐 영적 은사와 함께 섬기고자 하는 열성이 있었다.
그러나 웨슬레의 평신도 사역자, 특히 전도자를 비난한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은 웨슬레가 복음 사역의 기능을 가장 천박하고 가장 무식한 직공들에게 퍼뜨림으로 남용시켰을 뿐만 아니라 특별히 저열한 군인에게도 시켰다고 비난 했으며, 웨슬레에게 충고하기를 구두 수선공으로 하여금 구멍가게에 일하게 하고, 땜장이는 양은이나 고치도록 하고, 이발사는 이발소에서 세숫대야나 만지도록 하고, 빵굽는 사람은 반죽통이나 만질것이며 대장장이는 회개시키는 일보다 석탄불을 붙이는 것이 더 적합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웨슬레는 그러한 무리들에게 진실한 성자와 사역자가 될 재목이라는 무한한 가능성을 보았다.
웨슬레는 세계를 그의 교구로 보았다. 그러나 적절한 지도자를 가진 조직된 단체(Societies)를 통해 자신이 돌보지 못할 곳에선 설교하기를 거절했다. 그는 전교회를 새롭게 할 제자를 만들기 위해 혼신전력을 다했다.
d. 가난한 자에 대한 복음전도
웨슬레의 부흥운동은 시초부터 주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 가난한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난 운동이었다. 웨슬레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선포하는 것이 예수가 메시야라는 중요한 증명이며, 모든것 중 가장 큰 기적이라고 했는데 예수님은 실제로(문자 그대로) 가난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셨다(마 11:5 ; 눅 4:18).
그래서 웨슬레는 아무도 찾아주지 않는 사람들을 찾아다닌 것이다. 그는 자주 새벽 5시나 아침에 시장에서 설교를 하였다. 이것은 아침 일찍 광산이나 공장으로 일 나가는 노동자들을 위한 것이었다. 점심시간에는 시장 주변에서 설교했다. 그의 열심은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었고, 그들 사이에 가장 큰 반응을 일으켰다.
이에대해 웨슬레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나는 가난한 사람들을 사랑한다. 그 이유는 그들에게선 거짓이나 위선이 섞이지 않은 참되고 순수한 은혜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일 누구에게 복음을 전해야 할지 선택하라면 나는 가난한 사람에게 복음을 전할 것이다"
한마디로 웨슬레는 확실한 메세지를 가졌고 그것을 숨겨두지 않고 구조화된 교회 밖으로 나가서 가난한 자들에게 전하였다.
B. 웨슬레 갱신운동의 현대적 의의
웨슬레는 새포도주는 새부대에 넣어야만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웨슬레의 생애와 사역은 피어 오르는 부흥운동을 돕기 위한 구조를 만들며, 갱신해 나가는 역사이다.
이제 필자는 이러한 웨슬레의 교회관과 갱신운동이 우리의 현재 상황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어떻게 현대교회를 갱신해 나갈 것인가라는 점을 웨슬레의 갱신운동으로 부터 몇가지 제시 하고자 한다.
1. 소그룹 운동
이것은 큰 교회에 활력을 주고 갱신을 가져오기 위해 헌신적인 소그룹 구조가 필요하다는 것을 제의하고자 하는것이다. 이것은 소그룹의 구조가 웨슬레가 만들었던 속회나 조모임을 따라 만들어 져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소그룹은 단순한 친교나 성경연구 혹은 기도그룹 이상의 무엇인가를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메도디스트 체계는 그룹내에 언약과 훈련, 그룹안에서의 책임, 그리고 큰 교회라는 몸에 대한 그룹으로서 책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훈련과 헌신(covenant commitment)은 작은 교회(ecclessiola), 즉 소그룹의 차원에서 가장 효과적이고도 유익하게 나타난다. 이러한 차원에서만 제도적이고 율법적인 방법보다 유기체적이고 영적으로 생명력 있는 방법으로 훈련이 가능할 수 있다. 여기에서 근본적인 사실은 교회란 항상 자발적인 공동체이며, 이것은 교회의 힘이지 약점이 아니다. 물론 예수님은 이 소그룹 모임에 대해 선구자적인 위치에 계신 분으로 제자들과 보내신 3년 동안의 경험과 결과가 소그룹의 성격과 기능에 대해 웅변적으로 증명하고 있다. 초대교회도 예수님의 전례를 따라 수많은 작은 모임들로 구성된 독특한 성격의 공동체를 이루고 있었다.
초대 그리스도인들의 이전 작은 모임은 계속되었으나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기독교 공인으로 이런 모임들은 공식적인 교회로 들어와 제도화가 되자 그 생명이 크게 약화되었다. 그러나 그후 교회 부흥과 갱신의 큰 역사 밑바탕에는 언제나 복음적 단순성을 동경하는 소수의 모임들의 확장이 거대한 추진력의 역할을 해왔다.
특히 웨슬레 부흥운동에서 소그룹의 영적 동력을 확인 할 수 있다. 웨슬레는 부흥초기에 소그룹의 중요성을 발견하였는데 이것은 영국을 휩쓸은 부흥의 강력한 요소가 되었다. 이 부흥은 수 많은 사람들의 개인적인 신앙심에 영향을 끼쳤을 뿐만 아니라, 막대한 사회적 변화를 일으켰다. 그리고 이것들은 교회의 영적 건강을 위해 지대하게 기여했다. 그리고 이것들은 복음전도의 발판이 되었다.
소그룹을 통해서 이제 많은 이들이 이전에는 그렇게 생각하지 못했던 여러가지 기독교인의 사귐을 경험했다. 이들은 서로 서로의 짐을 견디고 자연스럽게 서로를 돌아보며 서로에 대한 보다 많은 애정을 품게 되었다.
초기 메도디스트들은 소그룹을 인용함으로써 성령의 교제를 발견하였던 것이다. 이와같이 초대교회와 진정한 부흥운동에 있어서 공통되는 요인은 첫째,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긍정적인 자세요, 둘째, 친한 소그룹에서의 신자들의 모임이다. 실제로 소그룹의 이용이 교회사를 통하여 본 모든 중요한 성령 운동의 공통적인 요소인 것으로 나타나는데 초대교회의 신앙심은 소수의 경건자(Collegio Pietatis)와 혹은 가정모임, 성경연구와 토의를 통하여 양육되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소그룹을 통하여 그리스도인 상호간의 따뜻한 교제를 누리게 되며 초대 기독교의 기본이었던 코이노니아(성령의 교제)를 회복하게 되며 이런 작은 모임에서 회심이나 회심을 통한 신앙 성장을 크게 기대할 수 있고 신앙의 공동 목표를 향하여 나아갈 수 있는 강력한 힘을 발견하게 되는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과의 동행함의 일부로서 소규모 그룹에서의 허심탄회하고 정직한 상호관계를 유지했을때 마다 교회는 부흥과 열성, 복음전도 가운데서 번창하였다. 이미 전통과 습관에 의해 구성된 집회구조 보다 비형식적인 소그룹 모임에서 실제적으로 성령의 교제가 잘 경험 된다는 것은 밝혀진 사실이다.
세상은 교회만이 줄 수 있는 것과 같은 공동체를 갈급하게 찾고 있다. 그러나 만일 교회가 그것을 제시해 주지 못한다면 그들은 교회 이외의 다른 곳에서 그것을 찾아보려고 할 것이다. 가끔 사람들은 교회에서 겪는 경험 때문에 실망하는데 그것은 공동체의 사랑이 그리워서 찾아 나온 사람들이 규칙적으로 드리는 예배를 통해서는 원하는 것을 찾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러한 문제는 해결될 수 있다. 진정한 사랑과 우정은 교회에서 분명히 나타나는데 그것은 소그룹의 형태를 통해서 나타난다.
이제 현대 교회가 설비와 프로그램 그리고 제도 존중주의와 경직성으로부터 이완되어 초대교회의 역동성으로 돌아가려면 진지하고도 자기의식적인 기본구조로서, 개개인을 진정한 인격으로 만나주는 소그룹을 중심한 사역을 펼쳐 나가야 할 것이다.
2. 평신도 전도자
웨슬레에게 있어서 평신도 전도자, 설교자는 중요한 역활을 했음을 앞에서 살펴 보았다. 사실 웨슬레의 소그룹 운동도 평신도 사역자들이 없었다면 지속되지 못했을 것이다.
이세상 속에서 봉사하고 흩어져 있는 교회의 일에 있어서 주요한 일꾼(minister)은 평신도들이다. 그들은 집에서나 사무실에서나 또는 길거리에서나 장터에서나 학교에서나 세상일이 진행되고 있는 곳이면 그 어디서나 그 생활 속에서 교회의 역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마땅히 그리스도의 일꾼이 되어야 한다. 봉사하는데 있어서 교회의 구성원은 각각 다른 소명을 받고 있음을 묵과할 수 없다. 곧 어떤이는 전도자로, 어떤이는 교사로, 또 어떤이는 사회사업가로 또는의사로 정치가로 부르심을 받고 있는 것이다. 다른 말로하면, 복음은 그들의 각기 다른 소명인 직업(life work)을 통하여 인간생활 전면에 침투 하도록 되어있다. 평신도들은 교회에서 뿐만 아니라,소명(직업)을 가지고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관심과 역사에 참여 하도록 보냄을 받는다. 그러므로 이들을 그리스도의 제자로 만드는 것은 곧 교회에 힘을 더하고 결국 사회, 정치적인 변화까지도 초래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목회자가 여러 계층의 사람들과 친밀한 접촉을 갖지 못하는 수가 많다. 그러므로 이 시대의 직장생활, 사회생활 및 정치생활을 상대로 하는 그리스도의 선교사는 평신도 사역자들 이어야 한다. 또한 평신도는 역사상 가장 복잡한 시대에서 자기의 삶과 그리스도의 관심있는 사랑을 함께 나누기도 해야 하지만, 세상에서 하나님의 사역을 위해 하나님께서 재생산자를 재생산 하실 수 있도록 도와줄 줄 알아야 한다. 이런 면에서 평신도 훈련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다고 볼 수 없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많은 교회에서 평신도가 잠을 자고 있다. 엄청난 저력을 가진 거인이 힘을 쓰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어는 교회나 열심히 헌신하는 소수의 평신도 그룹이 있다. 그러나 대부분 교회 조직상의 기능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소위 통상적인 봉사활동을 하는데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소수의 모범적인 평신도마저 교역자의 옷자락을 받들어 주는 소극적인 시녀역에서 더 발전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교역자의 권위에 대한 강조는 뜻하지 않게 평신도의 참된 의미와 중요성을 무시하는 결과가 되었다는 비판은 만인 제사장직을 공인 하면서도 안으로는 구약시대의 제사장 개념을 고수하는 현실 교회의 흐름을 보아도 충분히 공감 할 수 있다.
그러나 웨슬레는 이러한 면에서 볼때 평신도의 참된 의미와 중요성을 알았고 만인제사장직을 몸소 실천했다고 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설교자들 중 일부를 포함해서 지도자들 가운데 여자들도 다수가 있었다. 그래서 베브(Bebb)같은 사람은 웨슬레를 18세기 가장 두각을 나타낸 여성 해방론자라고 평가하였다.
오늘날 교회에서 평신도 문제를 제기함에 있어서 우리는 동시에 새로운 교회론의 정립을 요구받는다. 왜냐하면 제사장이라는 영광스러운 명칭을 교직에 부름받은 소수에게만 돌리는 것은 신약성경에 위배되는 탈선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하기 때문이다. 모든 신자들은 인간생활의 모든 분야에 대한 교회와 그리스도의 타당성을 선포하고 이것을 실현시켜야 하는 교회의 참된 부분인 것이다. 이러기에 교회의 참된 본질과 소명을 말하기 위해서 평신도가 교회에서 교직자와 똑같은 참된 주체자라는 점을 파악하는 것이 근본적인 것이며 평신도 직무가 목회자의 직무와 더불어 교회의 참된 존재와 소명의 구성요소 인것을 인식해야 한다.
그러므로 문제는 평신도와 교직자가 다같이 교회의 본질과 소명 그리고 그들이 그 안에서 차지하고 있는 '분명한 위치'에 관한 새로운 전망(vision)을 필요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대교회는 평신도의 중요성을 다시 회복하여야 할 시기에 와 있다고 생각한다. 평신도가 자기 본연의 위치에서 그 역할을 다하는 사도적인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소수의 사람이 아닌 전 교회가 하나님께 직접 나아가며 제사드리며 복음을 증거하며, 이웃을 봉사하는 그리스도의 교회 공동체가 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3. 가난한자에 대한 복음전도
웨슬레는 "가난한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는것" 이 관습과 '관례'(propriety)보다 우선해야 한다고 결정했다.
웨슬레의 갱신운동의 시초는 주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 가난한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난 운동이다. 웨슬레는 예수님께서 실제로 물질적으로나 영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셨다는 것이 예수님이 메시야란 중요한 증명이 된다고 생각했다.
웨슬레 당시에는 도시로 인구가 이동해서 새로이 도시의 빈자계급이 생겨나게 되었고, 산업혁명은 석탄의 산출로 인해 크게 동요되었다. 웨슬레가 킹스우드 석탄 광부들에게 전도한 것은 산업화 떄문에 가장 잔인하게 희생된 사람들에게 접근한 셈이다. 광부들 사이에 웨슬레가 호응받은 것은 현저했고 사실 웨슬레는 영육간의 복지를 위해 지칠줄 모르고 일하였다. 무엇보다 그는 무료 진료소를 열었고, 일종의 협동조합(credit union)을 세우고 학교와 고아원을 설립하였다. 사회의 희생물이된 이 모든 사람들에게 웨슬레는 복음을 전하였다.
그러나 그는 그 이상의 일을 하였다. 그는 그들고 하여금 서로 긴밀히 교제를 갖게하여 서로 양을 치고 지도자를 육성시키고 그들이 살고 있는 현 조건들을 개선시키고자 일하였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함에 있어서 우리는 이 세상에서 헐벗고 가난하고 영양실조에 걸려있는 사람들의 상황을 늘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가난한 자들을 위한 희생이 없이는 세계복음화의 목적을 성취할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은 단순히 가난한 자들에 대해 책임의식을 가지고 염려해 주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구제와 복음전도에 까지 나아가야 한다.
앉아서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구조화된 교회밖으로 나아가서 가난한자들에게 사랑과 복음을 전해야 한다.
오늘날 많은 교회가 부요하고 비대해 졌다. 그리고 많은 세상사람들에게 지탄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이제 교회는 성경으로 돌아와 가난한 자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한다. 그들에게 내려가야한다.
이상과 같이 웨슬레 갱신운동의 현재적 의의를 3가지 면에서 고찰하였다. 그러나 웨슬레는 교회 갱신운동의 권위의 궁극적 근거로 성령과 하나님의 말씀을 강조한다. 또한 그는 제도적 교회의 권위와 전통을 인정함으로써 제도적 교회에 남아서 제도적 교회를 갱신하게 함으로써 분리를 쉽게하는 다른 갱신 그룹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것은 하나님께서 최고 주권자이시며 또한 성령은 교회 안에서 자기의 때와 방식에 따라서 활동하신다는 것을 근본적으로 인정할 것을 전제한다. 또한 하나님은 우리가 교회갱신 운동을 위한 사역에 그와함께 협력하도록 초청하신다. 그리고 역사속에 나타난 교회갱신 운동을위한 사역에 그와함께 동참하도록 초청하신다. 그리고 역사속에 나타난 그의 행동을 통해 우리가 그런것을 쉽게 지나쳐 버리지 않고 잘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해 주신다.
. 결 론
A. 요 약
웨슬레가 어렸을때 받은 가정교육과 영국 교회와의 관계는 웨슬레의 신앙과 신학적 사상의 형성에 큰 영향을 주었다. 그러나 웨슬레가 어렸을때 그의 신학형성에 영향을 준 것은 바로 자신의 도덕적 또는 영적인 노력과 무엇인가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행하려고 하는 인간 중심적 신앙이었다고 할 수 있다. 웨슬레의 말대로 당시의 그의 신앙은 아들로서의 신앙이 아니라 노예로서의 신앙이었다.
그러나 웨슬레의 1738년 5월 24일 올더스케이트의 신앙체험은 그의 신앙생활에 새로운 변화를 가져왔고,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을 강조하게 되었다. 엄격한 의식주의자였던 웨슬레는 복음주의의 구원과 생명을 체험했고 그 체험을 바탕으로 원근 각처에 복음을 전하는 위대한 전도자가 되었으며, 여기에서 웨슬레적인 메도디즘이 발생되고, 메도디스트 교회는 탄생하게 되었음을 보았다. 웨슬레의 교회론 형성배경에는 영국교회에서 전수한 카톨리적 전통과 주로 모라비안 형제를 통해서 받은 혁식적인 개신교 전통이었다. 그가 본격적으로 교회론 적인 문제에 대해 접근한 것은 그가 내적 성결의 문제를 진지하게 추구하기 시잘할 때 부터 였다. 또한 조오지아에 있는 동안에 비버리지의 시노디컨(synodikon)을 접하게 됨으로 성서와 전통의 상충 가운데 성서의 우위성을 견지하게 되었다.
웨슬레는 교회의 본질과 사역을 제도적인 면에서보다 기능적인 면으로 이해했다. 권위에 있어서 성서, 이성, 전통의 세가지로 보는 앵글리칸의 견해는 웨슬레에게 있어서 성서, 이성, 전통, 경험 이라는 웨슬레안 4요소(The Wesleyan Quadrilateral)가 되었다.
그는 교회를 정의함에 있어서 교회는 "믿는 사람들의 공동체" 이며 교회는 "하나님 백성의 공동체"라 했다. 그리고 교회는 어느세대 어느 민족에게나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 "산믿음"(living faith)이 부여 되는 그리스도의 한몸으로 보았다.
웨슬레는 교회의 표적으로 첫째, 산믿음 둘째, 설교 즉 순수한 하나님의 말씀 셋째, 성례전의 정당한 집행이라고 했다.
교회제도나 교직에 있어서 웨슬레는 상대적이며 실용주의적인 접근을 했는데 평신도 전도자나 설교자를 세운것이 특색이며, 그는 성서와 초대교회의 예를 들어 두 종류의 교역자, 즉 목사(사제), 설교자(전도자)가 있다고 보았다.
올더스케이트 체험이후 웨슬레이게 있어서 성례전은 더 중시되었고 은혜의 수단으로 보기보다는 그 영혼에 하나님의 새로운 생명이 자라기 위해 성례전을 더 많이 행했다.
그는 세례를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가 임한다고 보았으며, 만일 우리가 거기에 응답하여 산다면 또한 회개하교 믿고 복음에 순종한다면 세례는 지금 우리를 구원하며, 세례가 우리를 이 세상에 있는 교회 안으로 받아들이듯이 장래의 영광 가운데 맞아들일 것이라 했다.
다음으로 웨슬레의 갱신운동을 살펴 보았는데 먼저 그에게 있어서 분명하고 확실한 설교가 있었으며 활동적이고 적극적인 사회적 관심이 있었다. 그의 방법론으로 그는 효과적인 복음전도를 위해 제도적 교회안에 한정시키지 않았으며 새롭고 효과적인 훈련과 교제를 위해 속회, 조(band), 특별 신도회와 같은 소그룹 운동을 확산시켜 나갔다. 그리고 그의 갱신운동은 가난한 자들을 위해 가난한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난 운동이었다.
그래서 필자는 웨슬레의 갱신운동의 현대적 의의로서 현대교회 갱신의 방향을 3가지 제시했다.
그것은 첫째, 소그룹 운동을 통하여 그리스도인 상호간의 교제를 누리는 초대교회의 기본이 되었던 코이노니아(성령의 교제)를 회복하며, 이런 작은 모임을 통해서 신앙성장을 크게 기대할 수 있고 신앙의 공동목표를 향하여 나아갈 수 있는 강력한 힘을 발견 할 수 있음을 주장했다.
둘째, 교회의 참된 본질과 소명을 말하기 위해 평신도가 교회에서 교직자와 똑같은 참된 주체자라는 점을 강조함과 동시에 이들이 각자가 처한 위치에서 세상을 향한 역사에 참여하기 위해 그리스도의 제자로 만들것을 주장핬다.
세째로 가난한 자들에 대한 복음전도였는데 곤경에 처하여있는 가난한 자들에게 따뜻하고 다정한 실제적인 관심을 나타내 보이지 않고는 복음 전도는 무용하며 사회복음과 영적복음 이 두가지가 모든 필요함을 강조했다.
B. 결 어
전도와 선교 동기의 기초를 제공하는 웨슬레 신학의 특징은 교회갱신을 위한 신학이었다고 할 수 있다.
차일스(Chiles)박사의 말대로 웨슬레가 기독교에 크게 공헌한 점은 교회를 개혁했거나 변질 시키는데 인는 것이 아니라, 교회 자체를 새롭게 한 교회갱신(Church renewal)에 있다고 지적한 것은 교회사에서 입증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웨슬레의 갱신운동은 18세기의 무기력하고 부패했던 교회에 활기를 주었고, 교회양심에 깨우침을 주었고 교회 선교를 활발하게 해주었다. 이것은 세계선교에까지 나아갔다. 이제 선교 2세기를 향한 한국교회에서 이런 운동이 일어나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현대교회는 웨슬레가 말한 교회의 3가지 표적처럼 순수한 하나님의 말씀을 회복하고 살아있는 믿음과 정당한 성례전의 집행을 회복해야 한다. 나아가서 갱신운동은 작은교회(Ecclesiolae)로서 존재한다고말한 스나이더 (Howard A. Snyder)의 지적처럼 소그룹을 통한 성도들간의 긴밀한 사랑의 교제로 우리에게 주어진 경험과 은사들은 서로서로 충분히 나눌 수 있어야 하며, 영적 성숙을 이루어 나가야 할 것이다. 또한 성도들을 예수의 제자로 가르치고 훈련하여 그들로 하여금 교회와 세상 구석구석에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며 사랑과 성결의 누룩이 되게 해야 할 것이다. 이것은 가난한 자들에 대한 구체적인 관심과 함께 나아가야 할 것이다. 웨슬레의 이러한 교회 갱신 운동이 선교 2세기를 향한 한국교회를 새롭게 하는데 조명이 되기를 바란다.
* 참 고 문 헌
1. 1차적 자료 (Primary Source)
Wesley, John. The Letters of the Rev. John Wesley. ed. John Telford. 8Vols. London : Epworth Presss, 1931.
The Works of John Wesley. ed. Thomas Jackson, 14Vols. London : Wesleyan Conference Office, 1872. Ohio : Schmul Pub, 1977-1979.
2. 2차적 자료 (Secondary Source)
가. 영 문 서 적
Cannon, William. The Theology of John Wesley. New York : Abingdon Press, 1946.
Carter, Charles W. A Contemporary Wesleyan Theology. 2Vols. Michigan : Francis Asbury Press, 1983.
Cell, George C. The Rediscovery of John Wesley. New York : Henry Holt and Co, 1935.
Outer, Albert C. The Doctrine of the Church. New York : Abingdon press, 1964.
Snyder, Howard A. The Radical Wesley : Patterns for Chuch Renewal. Downers Grove : Inter - Varsity Press, 1980.
________________. The problem of wineskins. Illinois : Inter Varsity Press, 1975.
Wesley, John. Explanatory Notes upon the Old Testament. 4Vols. Ohio : Schmul Pub, 1975.
나. 번 역 서 적
Burter, Robert C, Chiles, Robert E. [웨슬레 신학개요] 김운기 역. 서울 : 전망사, 1988.
Cannon, William. [웨슬레 신학] 전종옥 역. 서울 : 기독교 대한 감리회 총리원교육국, 1967.
Kraemer, Handriks. [평신도
http://cafe.naver.com/modernth/393
웨슬레 갱신운동의 현대적 의의
- 웨슬레의 교회론을 중심으로 -
김 영 길
목 차
I. 서 론 ............................................... 1
A. 문제제기 및 연구목적 .................................. 1
B. 연구방법 및 범위 ...................................... 2
II. 웨슬레의 신학형성 배경 ................................. 4
A. 웨슬레의 가정과 영국교회 .............................. 4
1. 웨슬레의 가정과 부모의 신학적 입장 ................ 4
2. 18세기의 영국교회 ................................. 6
B. 메도디스트 운동 ....................................... 7
1. 동 기 ........................................... 7
2. 웨슬레의 신앙체험 ................................. 9
III. 웨슬레의 교회론 ....................................... 12
A. 교회론의 형성배경 ..................................... 12
B. 교회의 본질과 표적 .................................... 16
1. 교회의 본질 ....................................... 16
2. 교회의 표적 ....................................... 18
C. 교직제도와 성례전 ..................................... 21
1. 교직제도 .......................................... 21
2. 성례전(Sacrament) ................................. 26
IV. 웨슬레의 갱신운동과 현대적 의의 ........................ 33
A. 웨슬레의 갱신운동 ..................................... 33
1. 웨슬레의 설교 ..................................... 33
2. 웨슬레의 교회갱신의 방법론 ........................ 35
B. 웨슬레 갱신운동의 현대적 의의 ......................... 41
1. 소그룹 운동 ....................................... 42
2. 평신도 전도자 ..................................... 45
3. 가난한자에 대한 복음전도 .......................... 48
V. 결 론 ................................................ 51
A. 요 약 ............................................... 51
B. 결 어 ............................................... 53
* 참 고 문 헌 .............................................. 55
Ⅰ . 서 론
A. 문제제기 및 연구목적
웨슬레 신학자인 하워드 스나이더(Howard Snyder)는 그의 저서 [새포도주는 새부대에]에서 말하기를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가장 큰 장애물은 제도화된 교회라는 것을 부정하기 어렵다"고 한다. 많은 비기독교인들은 말하기를 예수는 좋으나 기독교는 부정한다고 말한다. 참으로 현대의 제도화된 교회는 종종 성경이 가리키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와 전혀 다른것을 본다. 그러나 교회를 통하지 않고, 그리스도를 만날 수 없고 교회자신이 그 자신을 떼어놓고 그리스도를 제시 하는것은 불가능하다. 급속히 변화하는 현대에서 사람들은 케케묵은 낡은 부대에 대한 관심을 잃어간다. 갱신(Renewal)이 없는 성장은 타락을 격화 시키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대다수의 현대 교회학자들은 현대의 개신교회가 교회의 본질과 의미를 실현시키는데 실패했다고 본다. 이관심의 대부분은 교회의 외적 표지에 집중되어 있고, 전통적인 교회론은 현대교회를 치유하는데 큰 취약점을 지니고 있다고 평가되고 있다. 그것은 하나님 나라가 임하고 하나님의 뜻이 지상에서 이루어지며 그 결과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도록 하기위해 전교회를 선교적 소명으로 부르는데 퍽 소극적인 교회론으로 파악되기 때문이다.
교회의 이와같은 자각은 단순히 교회 혁신이나 개선의 요청이 아니라 실로 교회 본질적인 개념과 사명과 존재의의를 재발견하고 그것으로 갱신할 것을 요청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 시대를 위해 성경의 본질적인 교회관을 근거로 하여 '교회가 교회되게'(Let the church be church)할것을 요청받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면에서 바른 교회론의 정립은 바른 교회를 만들고, 이끌어가는데 있어서 아주 중요한 역활을 할 것이다. 그래서 18세기에 참으로 무기력하고 부패했던 영국교회와 사회를 새롭게 갱신한 웨슬레의 교회관과 그의 갱신운동을 살펴봄으로써, 현대교회에 있어서 바른 교회론을 정립하고 교회를 새롭게 갱신해 나가는데 바른 방향을 제시하고자 하는데 이 논문의 목적이 있다.
B. 연구범위 및 방법
제 II 장에서는 웨슬레의 신학형성 배경을 웨슬레의 가정과 영국교회의 관계를 살펴보고, 메도디스트 운동의 동기와 웨슬레 자신의 신앙체험을 통해서 알아 보고자 한다.
제 III 장에서는 웨슬레의 교회관에 대해 살펴봄으로써 그의 '교회론의 형성배경과 특징', '교회의 본질' 그리고 '교직제도와 성례전'에 대해 연구하게 된다.
제 IV 장에서는 웨슬레의 갱신운동을 살펴봄으로써 웨슬레 갱신운동의 현대적 의의에 대해 살펴 보고자 한다. 특히 갱신의 모델로써 '소그룹 운동', '평신도 사역' 그리고 '가난한 자들에 대한 관심'에 대해 다루고자 한다.
제 V 장에서는 본논문을 요약하고, 웨슬레의 교회갱신 운동을 바탕으로 현대교회의 전망을 살펴보게 된다.
I. 웨슬레의 신학형성 배경
웨슬레의 교회론에 대해 살펴보기 위해서 먼저 그의 사상적 배경을 살펴보는 것이 우리에게 큰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웨슬레의 사상적 발전과정을 고찰하기 위해서, 무엇보다 먼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의 가정환경과 교회관계 그리고 웨슬레 자신의 신앙체험을 살펴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A. 웨슬레의 가정과 영국교회
웨슬레의 교회관에 대해서 살펴보기 위해서 먼저 웨슬레의 가정, 즉 그 부모들의 신학사상과 18세기 영국교회의 신학적 상황에 대해서 알아보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1. 웨슬레의 가정과 부모의 신학적 입장
웨슬레는 1703년 런던 북쪽 엡웟(Epworth)교구의 목사 사무엘 웨슬레(Samul Wesley)와 그의 안내 수산나 웨슬레(Susanna Wesley)의 열다섯번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40년 동안 엡웟교구의 목사였으며 매우 근엄하고 경건하며 양심적이었다. 그의 어머니는 현모양처로서 재능있고, 고등교육을 받았으며 자녀교육에 매우 엄격하였고 자년들에게 매우 규칙적인 생활을 시켰다. 따라서 웨슬레는 엄격한 가정교육을 규칙적으로 받았고, 그가 아는 최고의 권위는 자기 부모들의 가정교육을 통하여 배운 것이었다. 웨슬레 부모의 신학적 입장은 영국 알미니안 주의였다고 말할 수 있으며, 그들은 인간의 자유를 강조하고 칼빈주의의 무조건적 예정을 말하는 이중 예정론을 반대하였다. 그들은 예수를 통한 만인을 위한 구원을 강조했고 이 구원은 인간의 노력으로 얻어야 한다고 했다.
그들은 당시 영국교회의 교리적 입장에 입각하여 사랑은 말씀과 선행에 의하여 의로와 질 수 있다고 주장하였지만, 그 실상은 사랑의 순종 곧 인간의 선행을 더 강조했다. 그래서 그들의 목회에 있어서도 성례전을 강조하고 교인들의 훈련에 역점을 두게 되었다. 이후에 그는 말하기를 "나는 다른 사람들 처럼 불량하지도 않고 종교에 대하여 선한 마음을 가지며 성경을 읽고 교회에 출석하며 기도함으로 구원을 얻기를 바랬다"고 하였다.
웨슬레의 부모는 기독교는 자기 뜻대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종교라고 가르쳤다. 그러므로 웨슬레가 어렸을때 그의 신학 형성에 영향을 준것은 자신의 도덕적 혹은 영적인 노력과 무엇인가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행하려고 한 자세였다고 볼 수 있다.
2. 18세기의 영국교회
18세기 영국교회의 신학적 출발점은 영국 국교회와 카토릭 교회, 국가교회와 우주적 교회를 다 포함한 하나의 새로운 교회의 지적 표현에 있었으며, 이 교회를 구성하는 의인의 교리에 있었다.
당시의 영국교회의 기본 교리를 공적으로 반영하고 있는 것은 39개조의 종교신조와 기도문과 설교집이다. 여기에 나타난 신학은 종교개혁자의 입장으로 칼빈주의의 특색을 갖고 있다. 그러나 18세기 말엽에 이르면서 영국교회는 하나님의 은총과 인간의 책임과의 관계에 있어서 인간편을 주로 강조했는데, 그들은 사람이 의롭다함을 받는데 있어서 인간의 책임이 우선된다고 하였다.
그래서 영국교회에 있어서는 성례전을 강조하여 교회에 속한 모든 신도들에게 이 예식의 적극적인 준수가 강요되었다. 이는 성례전을 인간이 의롭다함을 받기 위해 필요한 중요한 선한 행위의 하나로 간주 했을뿐 아니라 초자연적인 힘을 자연계에 중개하는 수단으로서 도덕적인 선을 성취하고 그로 말미암아 따라오는 사람의 행위를 완성하는 도구로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세례를 인간을 중생케하는 은혜의 수단으로 보았으며 그리고 성찬은 신자들로 하여금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굳게 지켜 나가도록 힘을 주어 선행을 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라고 믿었다.
이와같이 18세기 초엽의 영국 국교회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던 의인의 개념은 종단에 가서는 하나님의 은혜와 인간의 책임의 문제를 한 체계속에 묶어 두게 된것을 볼 수 있다. 즉 믿음을 하나의 선행으로 보았던 것이다.
이것을 보건대 웨슬레가 받은 어렸을때의 가정교육과 영국교회의 관계는 웨슬레의 신앙과 신학적 사상의 형성에 큰 영향을 주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B. 메도디스트 운동
1. 동 기
1720년 요한 웨슬레는 차터하우스 학교를 마치고 옥스포드에 있는 크라이스트 처취 대학(Christ Church College)에 입학하였다. 당시 옥스포드 대학은 영국에서 굴지하는 학부로 그 명성이 높았지만 교내 풍기는 그리 아름답지 못하였다. 이 대학내의 가장 유력한 종파는 의식주의의 고교회파(High Church)였으며, 따라서 교내 풍기 정화에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하였던 만큼 학교내의 도덕상태는 말이 아니었다.
또한 신경험주의가 벌써 지적으로 민감한 옥스포드 대학의 학생들 사이에 움트기 시작했던 것이다. 고대 스콜라 주의적 신학문제들은 이미 배척 당하기 시작했으며 줄기찬 자연신교의 위협에 직면한 기독교는 메마른 합리주의 신학으로서 믿음의 생명적 활동을 설명하기에 급급했다. 그러나 웨슬레는 그러한 분위기 가운데서도 모친의 간곡한 기도와 또 가정에서 얻은 선량한 습관 즉, 기도와 성경 읽기를 그대로 지켜 나감으로써 유혹받기 쉬운 소년이었지만 죄악에 빠지지 않았다. 모든 범절에 절도있는 생활을 하였다.
1725년 요한 웨슬레는 그의 생애에 큰 전환기가 왔는데 이때 그는 자신의 장래의 진로에 대하여 번민하였다. 심사숙고 한끝에 그는 성직을 맡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가 성직을 맡기에는 한가지 부족한 것이 있었는데 그의 가슴에는 영적 경험을 사모하는 마음이 적었다. 아직 내적 성결에 대한 관념조차 못가졌고, 종교생활은 다만 습관에 지나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이 당시에 웨슬레는 다음과 같은 책들을 읽고 큰 영향을 받았다.
① 제레미 테일러(Jeremy Taylor)의 [거룩하게 살고 거룩하게 죽는 규율과 훈련] : 웨슬레는 이 책을 1725년에 읽었는데 여기에서 그는 의도의 순수성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이 책에서 강조하고 있는대로 웨슬레는 철저하게 순종하고, 자기의 모든 생각과 말과 행동일체를 하나님께 바치기로 결심하였다.
② 토마스 아켐피스(Thomas a'Kempis)의 [그리스도를 본받아] : 웨슬레는 이책을 1726년에 읽었는데 여기에서 그는 내적 종교의 본질과 범위가 무엇인가 알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참된 기독교인도 주 예수를 모방하려고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하여 예수님의 마음을 꼭 가지려 했고 주님처럼 살려고 다짐했다.
③ 윌리암 로(William Law)의 [그리스도인의 완전], [경건하고 거룩한 삶에의 부름] : 이 두책을 읽은 후 웨슬레는 자기의 삶을 전적으로 하나님께 바치기로 했다.
④ [성서] : 웨슬레는 1729년 부터 더욱 열심히 성서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는 성서를 진리에 대한 유일한 표준이요, 순수한 종교의 유일한 규범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청년시절의 웨슬레 신앙은 인간중심적인 신앙이었다. 후에 웨슬레는 이 시절을 가리켜서 자기는 아들로서의 신앙이 아니라 노예로서의 신앙을 가지고 있었다고 고백했다.
2. 웨슬레의 신앙체험
인본주의적인 웨슬레 신앙은 그의 1735년 5월 24일에 있었던 복음적 신앙체험을 정점으로 하나님의 신앙으로 완전히 변화되었다.
여기에 영향을 준 요소는 다음과 같다.
① 웨슬레 자신의 내적 불안과 번민이다. 특히 대서양 항해 중에 느꼈던 것과 같은 위기에서 웨슬레의 공포는 컸다.
② 웨슬레의 미국 조지아 선교의 실재를 들 수 있다. 이것은 인간 중심의 종교활동의 실재요, 인간의 능력에 대한 깊은 회의라고 할 수 있다.
③ 웨슬레는 미국 토착민인 인디언들에게는 죄도 없고 그들의 인간성도 순수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그들을 접촉하는 가운데 그들도 여전히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것은 웨슬레가 낙관적으로 보았던 인간 본성에 대한 환멸을 가져다 주었다.
④ 조지아 선교를 전후하여 접촉한 모라비안(Moravian), 특히 뵐러(Peter B hler)목사의 신앙과 그의 주장, 즉 산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주장에 큰 영향을 받았다.
⑤ 그래서 웨슬레는 1738년 초에 마침내 그 '산 믿음'(Living Faith)이 자기에게 필요한 것을 깨달았다.
1738년 5월 24일 저녁 웨슬레는 내적고민에 싸여 여전히 무거운 마음을 가지고 런던 시내 올더스케이트 가에서 성경연구와 기도를 목적으로 몇사람의 신앙동지가 모이는 작은 집회에 참석하였는데, 그날 루터의 로마서 주석의 서문을 읽는 도중 그는 마음이 이상스럽게도 뜨거워짐을 느꼈다. 그리고 오직 그리스도만을 신뢰하는 믿음이 생겼다. 죄와 사망의 법에서 나를 구원하셨다는 확신을 가졌다. 비로서 그는 "내가 지금은 믿는다"고 할 수 있었다.
이 신앙체험은 웨슬레의 전 성격과 동시에 그의 전도방법에 큰 변혁을 가져왔다. 그의 눈을 가리웠던 의식주의가 진리를 보지 못하게 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의 도덕적 교훈은 비록 고상했으나 여기에는 사람에게 대한 하나님의 사랑의 표시가 없었다. 여기에는 회개케하고, 마침내 죄의 구렁텅이에서 나오게하는 능력이 결핍되었다. 그러나 이 신앙체험 후 그는 '종의 믿음'에서 '아들의 믿음'으로 변하였고, 그 체험한 바를 원근(遠近) 각처에 전하는 위대한 전도자가 되었다. 그리하여 웨슬레적 '메도디즘'이 발생되고 '메도디스트 교회'가 탄생 되었다.
II. 웨슬레의 교회론
A. 교회론의 형성배경
웨슬레의 교회론의 중요한 원천은 영국교회에서 전수한 카톨릭적인 전통과 주로 모라비안 형제를 통해 받은 혁신적인 개신교 전통(the Radical Protestant tradition)이었다. 웨슬레가 처음으로 교회론적인 문제에 대해 본격적으로 연구한 것은 바로 그가 내적인 성결(inward holiness)의 문제를 진지하게 추구하기 시작한 1725-28년 이었다. 그는 안수받기 위해서 책을 읽는 가운데 세가지 중요한 주제에 접하게 되었다. 즉, 거룩한 삶과 성례전의 중요성 그리고 초대교회 전통의 권위이다. 그는 이런 견해를 주저없이 받아들였다.
웨슬레는 영국교회가 카톨릭과 프로테스탄디즘의 중간 입장을 취한다고 보았다. 그리고 그는 영국교회가 기독교계 전체에서 가장 좋은 교회라고 늘 생각했다. 알버트 아우틀러(Albert Outler)는 주얼이 그의 [영국교회를 위한 변증] (Apologia pro ecclesia Anglicana)에서 설명한 교회론의 중요한 요점들을 다섯 가지로 요약해 놓았다.
① 교회는 성서에 복종해야 한다.
② 그리스도와 중요한 교리 안에서 일치되어야 한다.
③ 교회론의 전형(paradigmata)은 교부시대에서 찾아야 한다.
④ 사도적 교리.
⑤ 기능으로 본 감독제도.
이는 교회의 본질이라기 보다는 교회와 번영을 위한 것이다. 이러한 입장들이 지속적으로 웨슬레의 교회관내에 들어와 얽혀 있었던 것이다.
웨슬레는 조오지아에 있는 기간동안 교회론에 관한 연구를 하였다. 이때에 비러리지(Bishop William Beveridge, 1637-1708)의 시노디컨(Synodikon)을 하게 되었다. 웨슬레는 이 책을 읽고 두가지를 확신하게 되었다. 즉, 성경보다는 의회의 결정에 더 치우쳤기 때문에 그가 성경에 비해서 교회 전통에 너무나 큰 중요성을 두었다는 점이다. 또한 결과적으로 그가 이제껏 교회관을 확립하고 있던 기초조차도 불건전 했다는 것이다. 웨슬레는 이전까지는 사도적 정경(Apostolic Canons)에 많이 의존했지만 비버리지는 이것들이 웨슬레가 가정한 만큼 그렇게 오래된 것이거나 신빙성 있는 것이 아님을 깨우쳐 주었다. 이 말은 성서와 전통이 늘 일치한 것은 아니었으며 또한 때때로 성서와 전통은 서로 상충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만일 상충할 때에는 전통을 버려야 했다. 이것은 웨슬레에게 혁신적인 새 통찰력 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교회에서 행하던 많은 형식과 의식이 오랜 전통에 의해서 생겨난 것으로서 진정한 성서적 근거에서 나오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그는 질서와 구조의 문제가 매우 중요하다고 느꼈다.
1746년경 부터 이미 웨슬레는 교회의 본질(the essence of the church)과 사역을 제도적인(institutional) 면에서보다 기능적인(functional) 면으로 이해했다. 이것에 영향을 끼친것은 두 명의 Latitudinarian학자이다. 1946년 웨슬레는 피터킹 경(Lord Perter King)의 [초대 교회사]를 읽었고 같은 시기에 에드워드 스틸링 폴리트(Edward Stillingfleet)의 [이레니콘]을 읽었다. 1750년에 이르러 웨슬레의 권위의 근거에 관한 견해는 분명했다. 곧 권위에 있어서 성서, 이성, 전통의 셋(triad)으로 보는 앵글리칸의 견해는 경건주의와 신비주의에서 나온 직관적이고 개인주의적인 접근에 의해서 강화되었다. 이성에 대한 호소는 오히려 긴박한 실용주의(pragmatism)로 발전하게 되었다. 앵글리칸의 권위의 3요소는 사실상 웨슬레에게는 성서, 이성, 전통, 경험(Scripture, reason, tradition, experience)이라는 웨슬레안 4요소(the Wesleyan quadrilateral)가 되었다. 그는 경험을 강조 하지만 성서를 존중했고 성령의 근거, 즉 신앙체험에 나타난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고 그 말씀을 확고히 하는 성령의 사역을 강조함으로써 순수한 주관주의에 빠지지 않았다.
웨슬레는 그의 생애 동안에 근본적으로 다른 두 교회관에 열정을 가지고 대응하였는데 하나는 역사적 제도(historical institution)로 보는 교회관이고, 또 다른 하나의 관점은 교회를 성도의 사귐으로 보는 것이다. 전자는 교회의 본질을 보존되어야 할 고대 제도로 보는 것이며, 후자는 교회의 본질을 세계 선교의 사명을 지닌 소수의 신앙인으로 보는 것이다. 즉 전자는 전통에서 보는 것이며, 후자는 산 관계에서 보는 것이다.
일차적으로 볼때 이 두가지 교회관은 트뢸취(Ernst Troeltsch)가 '교회'와 '분파'(sect)로 구분한 것과 상당히 흡사한 것같다. 웨슬레가 제도적인 교회관과 카리스마적인 교회관 둘다를 부정하지 않았지만 그의 마음은 후자에 있었다. 그의 일생에 걸친 사역은 제도적인 교회에 새로운 기독교인 공동체의 활력을 불어 넣으려는 노력이었다. 또한 웨슬레는 교회의 일치를 유지하기 위해 고전 분투하였다. 이것은 그가 말씀의 진정한 선포 뿐만 아니라, 교회의 일치와 지속성이 교회의 선교에 생명적인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두가지 원칙을 가지고 있었다. 첫째, 교회로 부터 감히 분리되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고, 둘째, 교회는 바르게 시정해 나가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었다. 웨슬레는 언제나 분명한 원칙하에서 행동했다. 해야할 의무가 하나님께 대한 의무와 일치할 때에는 교회의 지도자든, 다스리는 자에게든 순종해야 한다. 일치하지 않을때는 조용히 사람에게 보다는 하나님께 순종할 것이라 했다.
B. 교회의 본질과 표적
1. 교회의 본질
웨슬레는 그의 저서 [신약성서 주해] (Explanatory Notes on the New Testament)에서 그의 교회관에 대해 가장 간결하게 묘사해 주고 있는데, 교회란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이고 '기독교 신자들의 총체' 또는 '지상에서나 낙원에서나 참 신자들의 총체'이다" (갈 1:13 ; 행 9:31 ; 히 12:23)라고 하였다.
웨슬레는 "교회에 관하여"(on the church)라는 그의 설교에서 교회란 "하나님을 섬김에 있어 함께 연합된 사람들의 모임, 총체"라고 보는 것이 적합하다고 했다.
그는 교회를 정의함에 있어서 가시적 교회는 '믿는 사람들의 공동체'이며 이것이 교회의 본질이라 했다. 그리고 교회의 고유한 표적은 하나님의 순전한 말씀이 그 안에서 선포되고 있는 것과 성례전이 정당하게 집행되는데 있다고 했다. 여기에서 믿는사람들의 공동체라는 것은 성례전적인 의식이나 출생의 특권이라는 의미에서 이해되어 지는 것이 아니라 산믿음(living Faith)을 가진 회중으로 이해되었다. 웨슬레는 이 말을 형식적이기 보다는 보다 기능적으로 해석하였다. 복음을 참으로 선포하지 않거나 성례전을 정당하게 행하지 않는 회중은 영국교회나 또는 우주적 교회의 일부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웨슬레는 그 모임에 성령의 순수한 임재가 있는 한 소행이 부적당 하거나 심지어 교회에 과오가 있어도 관용하는 입장을 취하였다. 그는 할 수만 있다면 관대한 정신(Catholic Spirit)을 가지고 우주적인 교회안에 있는 여러 다른 그룹들을 인정하려 했다. 웨슬레에게 있어서 핵심이 되었던 것은 교회는 하나님 백성의 공동체(the Community of God's People)였던 것이다.
아우틀러(Outler)는 웨슬레의 성숙한 교회관을 다음과 같이 요약하고 있다. 그는 이것을 "메도디스트의 고전적 교회론"이라고 불렀다.
① 교회의 단일성은 성령안에서 기독교인의 친교(koinonia)를 기초로 한다.
② 교회의 거룩함은 은총의 훈련에 근거하고 있다. 이 훈련을 통하여 신자들의 생활을 칭의와 믿음으로부터 성화의 온전한데 이르기까지 지도하고 성숙 시킨다.
③ 교회의 보편성(Catholicity)은 구속과 모든 참 성도들의 본질적인 공동체가 우주적으로 퍼져 나간다는데서 이해된다.
④ 교회의 사도성(apostolicity)은 사도들의 증언에 충실했던 사람들 가운데에 사도적인 교리가 계승되는 것에 의해서 측정된다.
이것은 적절한 기술이다. 웨슬레에 의하면 교회는 어느 세대, 어느 민족에게나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이 부여된 그리스도의 한 몸이므로 하나라 볼 수 있으며, 교회의 거룩성은 신자들의 거룩함에 달려있다. 그리고 모든 성도는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 모르지만 그들은 부르신 자가 거룩하기 때문에 거룩하다고 했다.
만일 교회가 본질적으로 신자들의 몸이라면, 기독교 신자가 아닌 다른 사람은 그 회원이 될 수 없다. 만일 몸전체가 한 분 성령으로 생기를 얻고 그들을 부른 같은 신앙과 같은 희망이 주어졌다면, 그 성령과 신앙과 희망을 소유하지 못한자는 그 몸의 지체가 아니다.
교회는 보편적(Catholic)이다. 이는 하나님의 백성이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그리고 아메리카 전 지구에 흩어져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교회는 사도적(apostolic)이다. 그것은 역사를 통하여 믿는자들의 공동체와 그리고 성실한 사역자들을 통하여 복음에 대한 사도적 증언이 중단없이 계속되어 왔기 때문이다.
2. 교회의 표적
웨슬레는 영국교회 36개 종교 신조에 있는 교회에 관한 조항 19조를 그대로 미국 감리교회를 위하여 작성한 24개 신조안에 옮겼다. 그 내용은 그리스도의 가시적 교회는 믿는 사람들의 모임으로써, 이 교회에서는 순수한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며, 그리스도께서 제정하신 바에 따라 성례전이 정당하게 집행되어야 하고, 그리고 이 모든 일에 있어서도 그리스도의 규례를 따라야 한다고 했다.
웨슬레는 이 신조를 근거로 하여 교회의 본질적인 표적 세가지를 다음과 같이 들었다. 가시적 교회의 본질적인 요소는 다음과 같다.
① 산믿음이다. 이 믿음이 없이는 교회는 그것이 가시적 교회이든 비가시적 교회이든 있을 수 없다.
② 설교이다. 결국 순수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일이다. 그렇치 않으면 믿음은 쇠약해질 것이며 죽을 것이다.
③ 성례전의 정당한 집행이다. 하나님께서 그가 제정하신 방법(means)을 통하여 믿음을 증강시킨다.
윌리암스(Colin Williams)는 이러한 강조와 관련하여 웨슬레의 입장은 순수한 말씀에 대한 고전적 개신교의 객관적이고 수직적인 강조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했다.
웨슬레는 교회의 구성 요소로서 '믿음'을 중요하게 들었다. 교회를 믿는자들의 모임이라고 보는 웨슬레에 있어서 믿음의 요소는 중요하다. 이점에서 웨슬레는 교회의 전통적인 견해보다 더 성서적인 강조점을 따른 것이다. 그러나 웨슬레는 이 믿음은 말씀이 선포됨으로써 생기는 것이라 말한다. 이 말씀의 선포와 들음이 없이는 믿음이 쇠약해진다. 그리고 죽는다. 성례전도 역시 말씀 선포와 연결이 되지 않는 때는 그 본래의 의미를 드러낼 수 없다.
그러므로 순수한 말씀 선포는 웨슬레에게 있어서 대단히 중요하다. 이점에서 웨슬레는 로마 카톨릭의 전통에서 떠나 고전적 개신교(classical protestant)의 입장에 섰으며 또한 산 믿음을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자유교회(free church)의 입장과 구분된다고 할 수 있다.
웨슬레는 그의 일기에서 주장하기를 그는 교회의 기도와 신조 및 교훈에 밝히 수록되어 있는 근본적인 교회론을 설교하는데 성실한 반면에 많은 성직자들은 말씀에 불충실 하다고 했다. 웨슬레는 말씀의 진정한 선포로써 신앙을 야기 시키는 '사건'에 의하여 교회가 계속적으로 형성될 필요성을 강조하는 고전적 개신교를 크게 역설한 것이 분명하다.
웨슬레는 1789년 교회에 관한 주제로 행한 마지막 설교에서 목회의 예언자적 역활과 사제적 역활을 구별하면서 말하기를 그의 평신도 설교자들은 진정한 말씀을 선포하기 위하여 하나님이 세우신 예언자들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이 정규적인 사제직을 통하여 유지하시는 사제적 권위를 장악하는 일은 그들의 능력에 속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자기의 추종자들에게 정규 목사들의 목회에 계속적으로 관심을 갖도록 요청하는 반면에 평신도 설교자들을 참된 말씀을 선포하도록 조직화 함으로써 수직적인 것과 수평적인 것을 함께 견지하고자 하였다.
웨슬레에 의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충실히 선포하는 목사와 교사는 초대교회의 교사와 사도들과의 계속성(continuity)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보았다.
C. 교직제도와 성례전
웨슬레의 교회론을 다룸에 있어서 우리는 그의 교직제도, 안수, 그리고 성례전에 관한 문제를 다루지 않을 수 없다.
웨슬레는 개혁과 체험에 대해 관심을 갖게되자 자연히 교회가 어떻게, 누구를 통하여 하나님의 역사를 이끌어 나갈 것인가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그래서 웨슬레는 교회관과 그의 역사관에 있어서 교회의 제도, 조직, 안수(ordination), 그리고 성례전의 문제를 다루게 되었다.
1. 교직제도
웨슬레는 교회의 제도와 교직에 대하여 상대적이며 실용주의적인 접근을 하였는데 그에게 있어서는 교회의 조직이나 제도가 모두 복음을 가장 능률적으로 넓게 전파하는데 활용 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웨슬레 형제는 자신들이 영국교회에서 안수를 받은 것을 근거로 설교할 권위를 주장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가진 한 가지 문제점은 비 정통적인 옥외 설교를 어떻게 정당화 시키느냐 하는 것과 한 구역에서만 머물지 않고 영국을 가로질러 여러곳에서 차별없이 설교하는 것이었다. 그는 한 교구 안에서만 설교해야 한다고 비판하는 자들에게 그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나는 전 세계를 나의 교구로 여깁니다. 여기서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내가 세계의 어느 곳에 있든지 듣고자 하는 모든 사람에게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것이 정당하고도 의무입니다."
그러나 웨슬레가 전도사역을 하는데 있어 찰스와 자신을 돕는 보조자를 뽑기 시작했을때 교직제도 문제가 대두되었다. 웨슬레가 임명한 평신도 설교자들에게 있어서 문제는 달랐다. 그들이 안수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슨 권리로 그들이 설교하며, 무슨 권리로 웨슬레가 그들을 임명한 것인지에 대한 문제에 직면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여기에 대해 웨슬레는 성서와 초대 교회에서 그 예를 들어 두 종류의 교직자가 있다고 보았다. 첫째, 설교하거나 전도하는 책임이 있는 교직자이고 둘째, 교회를 다스리고 성례전과 안수를 집행하는 교직자이다. 웨슬레는 목사(pastors) - 사제(priests)를 교회의 정상적이고 기존화된 제도적 목회자로 보았고, 반면에 설교자 - 전도자(preacher - evangelists)는 특별한 전도자로서 제도적인 통로가 아닌 좀더 직접적인 하나님의 영감에 의해서 세워졌다고 보았다. 그러나 설교자 - 전도자는 특별한 교역자이기 때문에 안수를 준다거나 성례전을 집행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 두 종류의 교역자는 모두 성령에 의해서 제정되었다고 보았다. 웨슬레는 이 세상의 어떤 사람이나 또는 어떤 부류의 사람들이 감독이나 사제, 또는 다른 기독교의 성직을 제정할 수 없고 이 일은 성령만이 하시는 특별한 역사로 보았다.
웨슬레의 교직에 대한 견해는 카리스마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교직과 성령의 은사는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고 보았다. 웨슬레는 성령의 은사를 논의함에 있어서 통상적인 은사와 임시적인 은사(ordinary - extraordinary)로 구분했다. '임시적인 은사'들은 신유, 기적, 예언, 영의 분별, 방언 그리고 방언통역(통변)이다. '통상적인 은사'들은 책망하고 깨우치는 말씀을 위시하여 지식, 믿음, 평이한 변론 등이고 교직에 있어서는 목사와 교사들을 통상적인 직무자로, 사도나 예언자 그리고 전도자를 임시적인 직무로 설명했다.
웨슬레는 통상적인 은사가 교회내에서 모든 시대에 걸쳐 역사해 왔다는 것을 알았고 물론 사랑은 더 간구해야 하지만 또한 이런 것들도 기독교인들이 마땅히 사모해야 하는 것이라고 느꼈다.
그러나 임시적인 은사들은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자신을 기독교인 이라고 일컬었던 중요한 시기 이후에 거의 들어본적이 없는데 이것은 이 임시적인 은사들을 위한 기회가 더 이상 없었기 때문이 아니라 진정한 원인은 거의 모든 기독교인들의 풍성한 사랑이 냉담하게 식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렇게 말한다고해서 임시적인 은사가 영영 사라졌다는 것은 아니다. 웨슬레는 하나님께서 그의 시대에 메도디즘을 통하여 새롭게 하는 일을 하고 계신다고 믿었다.
초기의 메도디스트 조직은 사실 성령의 은사들을 폭넓게 체험하도록 충분한 여지를 제공했다. 속회 지도자, 조(band)의 지도자, 조수(assistants), 청지기, 병자를 심방하는 자, 교사 그리고 관리인(house keepers)과 같은 메도디스트의 직분들은 주로 은사(charismata)에 근거를 둔 것 같지는 않은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전체적인 메도디스트 조직은 사실 영적 성장을 고무시키는 것으로서 그 제도안에서 일어났고, 구속사역에 유용하게 사용되었다.
그리하여 메도디즘은 교권주의(clericalism)에 의해 심각하게 둘러싸여 있던 영국교회보다 은사를 체험할 기회를 더 많이 제공했던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메도디스트 교역은 영국교회의 교역의 형태보다 훨씬 더 카리스마적 이었다고 할 수 있다.
웨슬레는 전통적으로 교역자를 셋으로 구분하는 서열, 곧 감동(bishops), 장로(presbyters or priests) 그리고 집사(deacons)의 구분을 받아들였지만 그는 감독과 장로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없다고 보았다. 웨슬레는 감독, 사제, 그리고 집사라는 세 서열은 신약시대에 분명히 있었지만 모든 시대를 위해서 정해진 것은 아니라고 했으며, 오히려 여러 다른 교회정치에 있어 수없이 많은 다양성이 있어온 것이 틀림없다고 했다. 그리고 모든 교회정치에 있어 어떠한 획일성(uniformity)도 없을 것이며 교회 지도자들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을 참고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웨슬레는 교역자의 세 서열이 사도들의 가르침으로 인정되었을 뿐만 아니라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에 의하여서도 인정되고 있다고 믿었다.
이런 기독교 교직제도에 대한 견해, 즉 안수를 주고 성례전을 행할 사제직(an outward priesthood)과 설교하고 복음을 전하는 특별 교역자(extra ordinary ministers) 서열로 구분하는 견해가 웨슬레에게 있어서는 두가지 면으로 작용했는데 한편으로는 메도디스트가 평신도 설교자를 임명한 것을 비판하는 자들에 대한 정당화였다. 다른 한편으로는 메도디스트 설교자들이 성례전을 집행하면 안되고 영국교회 성직자들의 다른 권한을 취하면 안된다고 하는 점에 대해 설교자들 앞에서의 웨슬레의 변론이었다. 바로 이것이 메도디즘이 영국교회와 분리된 종파가 아니라 영국교회내의 한 운동으로 여전히 남아있게 하는 열쇠가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웨슬레는 마침내 아메리칸 메도디즘(American Methodism)을 위해 교역자들에게 안수를 주었다. 이것으로 인해서 날카로운 논쟁이 야기되고 해명을 해야할 필요가 있었다. 사실 그는 더 일찍 영국에서 메도디스트 설교자들에게 안수를 줄 수 있었지만 그러나 그 당시에는 이것이 불필요 했고 만약 안수를 주었다면 영국교회와 메도디스트는 분리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의 망설임은 끝이나고 말았다. 그는 추수할 일꾼을 임명하고 파송함으로 해서 질서를 파괴하거나 인간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한에 있어서는 충분히 자유롭게 생각하기로 결정했다. 그의 이런 노력은 대체로 성공을 거두었고, 그가 교육받은 영국교회의 기독교 전통을 버리거나 반대함 없이 그리스도의 사랑의 항상 성숙하는 표현 속에서 전통적인 기독교에 대한 자신의 이해를 발전시켰다.
이렇게 함으로써 웨슬레는 성서와 초대교회의 전통에 충실하다고 생각했고 더 나아가 영국교회의 교리에 대한 바른 이해와 다른 것이 없으며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이 가능한 한 자유롭고 넓게 전파된 것이라고 볼때, 복음에도 순종하고 있다고 보았다. 동시에 그는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다른 은사를 주시듯이 교직의 직분도 시대를 따라 다르게 주실 것이라고 생각했다. 성서에는 어떤 결정적인 교회 정치제도를 제정한 것이 없으며 따라서 일정한 형태를 주신것도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2. 성례전 (Sacrament)
영국교회 교도로써 웨슬레는 성례전을 중시했으나 올더스케이트 체험 이후에 더 중요한 의미를 가지게 했다. 올더스케이트 체험을 한 후에 웨슬레가 성례전을 집행하자 산 성령의 능력으로 불타게 되었다. 마음이 뜨거워지는 체험이 있은 후에 주의 만찬이 더 의미를 갖게 되었다는 것은 흥미있는 일이다. 그가 새로 하나님을 체험한 경험 때문에 은혜의 수단으로서의 성례전을 내버리기 보다는 그 영혼에 하나님의 새로운 생명이 자라나기 위해 성례전을 더 많이 행했다.
웨슬레에 의하면, 은혜의 수단(means of grace), 성만찬, 기도 성경읽기, 금식, 애찬(love feast), 찬송, 예배등이다. 그러나 그 중에서 중요한 것이 성만찬과 세례이다.
성례전에 대한 웨슬레의 이론과 실제는 1725년 부터 그의 생을 마칠때까지 거의 변화되지 않았다. 그러나 점차로 성례전을 통하여 역사 하시는 하나님의 영에 강조점을 두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만일 외적인 수단이 하나님의 영과 분리된다면 그것이 무엇이든지 유익할 수 없고 하나님의 지식이나 사랑으로 조금도 이끌 수 없으며, 그러므로 어떤 의미로서든지 수단 자체내에 능력(intrinsic power)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큰 잘못이라고 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은혜의 수단을 통하여서 은혜를 주신다고 웨슬레는 생각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를 더욱 받고자 하는 사람은 성만찬에 참여하면서 그 은혜를 기다릴 것을 권한다. 더 나아가 성만찬에 참여가는 것은 주님의 명령이기 때문에 주님께서 재림하실때 까지 이를 행하여 은혜를 기대할 뿐 아니라 주님의 죽으심을 전파하여야 한다고 했다.
웨슬레에 의하면 성례전은 하나님의 은혜를 전해주기 때문에 존중되어야 하고 또한 행해져야 하지만, 그러나 그것은 단지 도구일 뿐이다. 즉, 성례전은 수단(means)이지 목적(ends)이 아니다.
a. 성만찬
웨슬레의 교회론에서 성만찬을 다루어야 하는 것은 극히 자연스러운데 그것은 성만찬이 웨슬레의 견해와 실제에 있어서 전체 회중의 생활에 중심이 되기 때문이다. 그는 은총에서의 성장이 은총의 모든 수단에 정기적으로 참여할 것을 요청한다는 주장과 일관성 있게 이 성례를 크게 역설하였고, 그것은 성령의 은총이 하나님의 모든 자녀들의 영혼에 전달되는 큰 통로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를 더욱 받고자 하는 사람은 성만찬에 참여해서 그 은혜를 기다릴 것을 권한다. 더 나아가 성만찬에 참여하는 것은 주님의 명령이기 때문에 주님께서 재림하실때 까지 이를 행하여 은혜를 기대할 뿐만 아니라 주님의 죽으심을 전파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웨슬레에 의하면 성만찬은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의 표적이며, 더 나아가 성만찬은 그리스도의 구속적 죽음에 근거한 모든 은혜를 현재 여기에서 전달하는은헤의 수단이다. 그렇기 때문에 웨슬레는 성만찬이 단순한 '기념'이라는 것을 반대한다. 따라서 합당한 수찬자가 믿음으로 받을때 그는 자기의 필요한 은혜를 받을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이 성만찬은 구원받은 자들이 하늘나라를 대망하며,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임재를 통해 하나님 나라를 경험하는 잔치라고 이해했다. 이것은 성도들의 주님과의 친교이며, 참여한 모든 성도가 서로 한 주님 안에서 사귀는 것이며 즐거운 잔치이다. 그러므로 웨슬레에게 있어서 성만찬은 하나의 가시적 설교라 할 수 있다.
웨슬레는 성만찬의 중요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① 성만찬은 하나님이 제정하신 것으로서, 여러가지 필요성에 따라 예방하는 또한 의인하는 또는 성화하는 은총을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수단이다.
② 제정된 성만찬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그들이 죄를 멀리 하지만 죄의 용서를 나타내거나 또는 그들의 영혼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새롭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은총이 필요하다고 인식하고 느끼는 자들이다.
③ 우리가 그에게 무엇을 드리려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든지 그가 우리를 위해 생각하시는 최선의 것을 받기 위하여 성만찬에 참여할때 사전에 필요한 준비는 아무것도 없고 다만 그가 주고자 하시는 것을 받으려는 갈망만 있으면 된다.
④ 의사소통 하는때에 필요한 것은 타당성이 아니라, 우리 상태의 철저한 죄스러움과 무력성을 느끼는 것이다.
성만찬이 어떻게 우리를 구원의 길로 인도하는 주요한 수단이 되는가는 웨슬레가 제시하는 성만찬의 세가지 측면에서 찿아볼 수 있다. 첫째, 그것은 그리스도의 과거의 고난을 표현하므로 기념적인 것이다. 둘째, 그것은 이 고난의 첫 열매를 현재적 은총으로 전달하므로 수단이 된다. 셋째, 그것은 장차 도래할 영광을 우리에게 확신시키므로 확실한 보장이라고할 수 있다.
웨슬레에게 있어서 성만찬은 하나의 가시적 설교이다. 웨슬레에 의하면 성만찬은 모든 사람에게 개방되어 있고 이 가시적 설교는 믿음과 행동으로 받아들여져야 하는 것이다.
b. 세 례
웨슬레가 세례를 은혜의 수단이라고 보는 점에서는 성만찬에 대한 견해와 유사 했지만 유아 세례관 때문에 모호한 점이 없지않아 있다. 그는 세례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가 임한다고 보았으므로 만일 우리가 거기에 응답하여 산다면, 또한 회개하고 믿고 복음에 순종한다면, 세례는 지금 우리를 구원하며, 세례가 우리를 이 세상에 있는 교회 안으로 받아들이 듯이 장래의 영광 가운데로 맞아들일 것이라고 했다.
웨슬레는 유아세례와 성인세례를 구별하였다. 성인 세례에서는 그렇지 않지만 유아 세례에서는 세례받음으로 거듭난다(baptismal regeneration)는 교리를 긍정하는데 이르렀으며 그는 어린아이들도 원죄의 죄책 때문에 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보았다. 세례는 원죄를 씻으므로 유아도 다른 수단에 의하여 그리스도에게 올 수는 없다고 한다.
그는 유아시기에 세례를 받은 어린이들은 그 세례를 받을때 거듭난다고 느꼈다. 그러나 성인의 경우에는 물로 거듭난다고 할지는 모르나 그것은 아직 또한 필연적으로 성령으로 낳는다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여기에 대해서 베이커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웨슬레는 유아세례가 예수님이 제정하신 것이고 구약의 할례의식의 계승이기 때문에 유아세례를 지지했다. 그는 어떤 방법으로도 객관적 은혜가 하나님의 자녀에게 임했다고 믿었다. 그래서 어떤 의미에서는 거듭났으며 그렇지 않으면 최소한도 중생의 과정이 시작된다고 믿었다. 그러나 성년의 경우에는 성례전과 관계없이 거듭난다고 했다."
웨슬레의 세례관을 이해하는데 그의 회심과 기독교인의 생활에 대한 역동적이고도 체험적인 개념을 상기하면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기에 웨슬레는 우리안에 살아계시는 하나님을 강조했기 때문에 만일 우리가 세례에 응답하여 산다면, 그 세례는 지금 우리를 구원하신다고 말할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의 생활속에 나타나는 성령의 열매의 증거는 신자가 세례받기 전에 이미 거듭났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변화를 가져오는 것은 세례 그자체가 독립적으로 하는 일이 아니라 믿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들일때 이루어진 것이다.
이상에서 살펴본바와 같이 웨슬레의 교회관은 역사속에서 그 역할, 구조, 교역 그리고 성례전에 대한 이해와 더불어 근본적으로 수정된 영국교회의 입장을 표명하며 자신의 올더스케이트의 체험으로 말미암아 급속하게 영적인 운동이 확장되어 이 가운데 활기있게 되어가는 것을 볼 수 있다. 우리가 살펴본대로 웨슬레의 교회론은 점진적으로 변화되었고 이때까지 웨슬레는 건전한 종합(mediating synthesis)를 잘 이룩해 나왔는데 이것이 웨슬레 사역의 특색이면서 여러시대에 걸쳐 기독교 교회에 끼친 영향이라고 할 수 있다.
V. 웨슬레의 갱신운동과
현대적 의의
A. 웨슬레의 갱신운동
1. 웨슬레의 설교
현대 교회를 위한 웨슬레의 운동의 타당성은 어디에 있는가 ? 그의 영향이 무엇인가 ? 이러한 질문에 대하여 알아보기 위해 웨슬레의 설교와 교회 갱신의 방법론에 대해 살펴 보고자 한다.
웨슬레는 분명하고 확실한 설교를 지니고 있었다. 이 설교의 기본 원리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개인의 구원에 대한 분명한 선포 : 웨슬레의 설교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이었다. 사실 웨슬레의 갱신운동의 특징 역시 웨슬레 자신이 복음적 회심, 체험 곧 성서적 구원의 확신으로부터 시작된 것을 볼때 이러한 것들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웨슬레가 선포한 것은 기초적 복음의 핵심이었다. 옥스포드의 학자였지만 그 학문성은 대중을 섬기는 일을 위해 쓰여졌고 그의 정열은 대중에게 의사전달을 정확하게 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곧 그의 불타는 구령열과도 관련 될 것이다.
그는 말하기를 "당신은 영혼을 구원하는 일 외에는 아무일도 하지 마십시요, 그러므로 이 일로 시간을 보내고 이 일을 위해 당신이 쓰여지도록 하시오"라고 했다.
② 성령충만한 생활에 대한 끊임없는 강조 : 웨슬레는 성령충만의 위기 경험을 강조했을 뿐 아니라, 그의 전제는 바울의 그것으로써 그리스도인의 성숙된 공동체의 성장, 성도의 그리스도의 분량까지의 완숙을 본 것이다. 웨슬레는 성령의 역사를 통한 그리스도인의 성장에 끊임없는 관심이 있었다.
③ 활동적이고 적극적인 사회적 관심 : 웨슬레는 탁월한 전도자였지만, 그의 설교제목과 그의 출판물을 살펴보면 그 제목들은 부, 국가적 죄, 전쟁, 교육, 의료, 윤리, 우편법, 북아메리카의 무역, 왕에 대한 책임, 주류산업등 다양하다. 웨슬레는 가난한자와 부자, 항해자, 밀수, 노예매매 및 당시의 다른 심각한 사회문제들에 직면하고 있었다. 주일 아침에 이런 문제들을 설교한다고 전도자의 일을 버린것은 결코 아니다. 이런 웨슬레의 사회적 관심은 열매를 맺었다. 국민들 사이에 새로운 윤리의식이 일어났으며, 많은 사람들이 웨슬레를 따랐고 능력있는 전도자로서 수천의 사람들을 변화시켰다.
웨슬레는 사회개혁을 말하는 것으로 그친것이 아니라 그는 그들로 하여금 서로 긴밀한 교제를 갖게하여 서로 양을 치고 지도자를 육성시키고 그들이 살고 있는 현 조건들을 개선 시키고자 일하였다.
2. 웨슬레의 교회갱신의 방법론
웨슬레는 분명한 복음의 선포가 제도적 교회의 담벽안에 갇혀버리면 효과적으로 전해질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이점이 웨슬레가 교회 구조를 향한 의미 있는 일이다. 웨슬레는 고교회주의자였으나 하나님은 거기 머물도록 두시지 않았다. 상당한 날들을 그는 죽을 때까지 고교회주의적 인물이었으나, 그는 놀랍게도 융통성과 관습적이 아닐 수 있는 점을 배웠다.
a. 옥회집회
웨슬레는 스스로를 제도적 교회안에 한정시키지 않았다. 웨슬레의 효과적 사역은 복음을 교회의 네 벽으로부터 끌어내어 외치기 시작한데서 부터이다.
전도자이면서 또한 웨슬레 형제와 함께 전에 옥스포드에서 동료로 지냈던 조지 휫필드(George Whitefield)가 브리스톨 가까운 킹스우드 광산에서 광부들을 모아놓고 정기적으로 설교했다. 휫필드는 웨슬레에게 도움을 요청하게 되었지만 웨슬레는 이를보고 놀랐고 교회에서 행해지는 것이 아니라면 영혼을 구원하는 일이라도 죄악시 생각되었다. 웨슬레는 휫필드의 전도방법에 찬의를 표하지 않았으나 그의 전도 활동이 예상외로 큰 효과를 거둘 뿐 아니라 예수님의 산상설교를 가장 유력한 옥외설교의 표본이라고 생각하고 이에 찬성했다.
그는 휫필드의 사역을 관찰하면서 그것이 하나님의 부름처럼 깨닫게 되었다. 그는 기록하기를 "오후 네시에 나는 더욱 용기가 생겨 그 도시 근방의 약간 눈에 띄는 장소에서 약 삼천명의 사람들에게 구원의 기쁜 소식을 선포하였다. 내가 설교한 성경귀절은 이것이었다. ...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라고 했다.
군중은 점점 불어났고 이것은 다른 지역으로 점점 확산되었다. 웨슬레는 사람들이 교회에 오지않는 때는 교회가 사람들을 찾아 나갈때라는 것을 발견하였다. 많는 사람들이 단순히 전통적인 교회에 참석하기를 원치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또한 기성교회에 받아들여 지지못한 사람들도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b. 소그룹 조직
웨슬레는 새롭고 효과적인 교제를 위한 구조를 창조 하였다. 웨슬레가 그의 회심자들에게 행한 일중의 하나는 그들로 10여명씩 그룹을 짓게하고 거리의 대표자로 세운것이다. 이것이 유명한 웨슬레의 구역회 혹은 속회였다.
1) 속회 ( The Classes Metting)
속회는 전체 구조에서 모퉁이돌 역할을 했다. 속회란 사실상 사람들이 살고있는 이웃에서 모이는 가정교회라 할 수 있으며, 속회 지도자(남, 여), 목회자이며 제자훈련을 시키는 사람이었다.
그의 임무는 첫째, 자기 속회에 속한 모든 사람들을 한 주일에 적어도 한번은 방문하여 그들의 영적 상태를 살펴보고 필요할 때에는 충고하고 책망하며 위로하고 권고한다. 그리고 그들이 내는 헌금을 통하여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것이다. 둘째, 신도회의 목사와 집사들(the Stewards)을 한 주일에 한번 만나서 병든 이들이나, 무질서하게 살아가는 이들, 책망을 받아 들이려고 하지 않는 이들이 누구인지를 목사에게 알리고, 지난 주간에 여러 속회에서 거둔것을 집사들에게 납부하는 일, 그리고 모든 회원들이 헌금한 회계 장부를 제시하는 일 등이다.
속회는 많은 메도디스트들에게 주요한 은혜의 통로가 되었다. 그것은 전도하고 제자를 양육하는 기능을 하였다. 웨슬레는 지혜롭게도 사람의 가슴 속에서 싹트는 믿음은 세상의 냉혹함에서 보다도 그 단체의 온화한 기독교적 분위기에서 더 효과적으로 구원에 이르는 믿음에 까지 자랄 수 있음을 분별할 수 있었다.
그와같은 작은 그룹에서 속회 지도자가 각자를 친밀하게 알고 있으니 훈련이 얼마나 효과적 이었겠는가 짐작할 수 있다. 웨슬레는 훈련이 느슨해지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그는 규칙을 조심스럽게 설명했으며 규칙을 따르지 않는자는 누구든지 제외해 버렸다.
2) 조 (band)
속회는 조에 의해서 유지되었는데 일반적으로 나이, 성별 그리고 기혼인가 미혼인가에 따라 더 작게 세분되었다. 조회원들은 악한 일을 피하고 선한 일에 열심을 내며 가난한 자들을 구제하며 모든 은혜의 수단을 활용하여 신앙생활을 하도록 되어 있었다.
속회와는 달리 조는 주로 훈련을 위한 것이 아니라 확실하게 회심한 자들을 영적으로 성장 시키는데 도움을 주는 것이 었으며, 평균적으로 그 구성원은 5명 내지 10명 가량 되었다.
3) 특별 신도회(the Select Society)
웨슬레는 훨씬 더 친밀한 세포조직인 특별 신도회를 만들었다. 이 조직은 내적인 성결과 외적인 성장을 이루는데 현저한 발전을 보인 사람들을 위한 것이었다.
웨슬레는 특별 신도회를 위해 세가지 규칙을 다음과 같이 제정하였다.
① 이 특별 신도회에서 되어진 이야기는 다시 언급되지 않도록 한다. 그 회원에게라도 일절금지이다.
② 모든 회원은 아주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도 절대적으로 그의 목사에게 순종하기로 한다.
③ 모든 회원은 모든 물품을 공동으로 소유하게 되기 까지는 공동재산으로 쓰려고 모아둔 것(bonafide)을 일주일에 한번 바친다.
특히 모든 물건을 공동으로 소유한다는 것은 웨슬레가 가지고 있는 이상을 암시해 주는데 사도행전에 나타난 초대교회 신자들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했다" (행 2:44)는 점을 주목할때 그는 이것이 하나님 나라에 가까이 간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c. 평신도 전도자
웨슬레는 또 다른 차원에서 새로운 교회구조를 창안해 냈는데 그것은 평신도 전도자이다.
신도회 - 속회 - 조(Society - Class - Band) 제도는 평신도 전도자들이 없었다면 함께 지속되지 못했을 것이다. 이 평신도 사역자들은 특별히 교육을 많이 받은 사람도 아니고 시간이 남아 돌아가는 부자도 아니었다. 그들은 노동자들 이었고 남편이요, 아내였고, 거의 훈련을 받지 못한 젊은이들 이었다. 그러나 그들에겐 영적 은사와 함께 섬기고자 하는 열성이 있었다.
그러나 웨슬레의 평신도 사역자, 특히 전도자를 비난한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은 웨슬레가 복음 사역의 기능을 가장 천박하고 가장 무식한 직공들에게 퍼뜨림으로 남용시켰을 뿐만 아니라 특별히 저열한 군인에게도 시켰다고 비난 했으며, 웨슬레에게 충고하기를 구두 수선공으로 하여금 구멍가게에 일하게 하고, 땜장이는 양은이나 고치도록 하고, 이발사는 이발소에서 세숫대야나 만지도록 하고, 빵굽는 사람은 반죽통이나 만질것이며 대장장이는 회개시키는 일보다 석탄불을 붙이는 것이 더 적합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웨슬레는 그러한 무리들에게 진실한 성자와 사역자가 될 재목이라는 무한한 가능성을 보았다.
웨슬레는 세계를 그의 교구로 보았다. 그러나 적절한 지도자를 가진 조직된 단체(Societies)를 통해 자신이 돌보지 못할 곳에선 설교하기를 거절했다. 그는 전교회를 새롭게 할 제자를 만들기 위해 혼신전력을 다했다.
d. 가난한 자에 대한 복음전도
웨슬레의 부흥운동은 시초부터 주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 가난한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난 운동이었다. 웨슬레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선포하는 것이 예수가 메시야라는 중요한 증명이며, 모든것 중 가장 큰 기적이라고 했는데 예수님은 실제로(문자 그대로) 가난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셨다(마 11:5 ; 눅 4:18).
그래서 웨슬레는 아무도 찾아주지 않는 사람들을 찾아다닌 것이다. 그는 자주 새벽 5시나 아침에 시장에서 설교를 하였다. 이것은 아침 일찍 광산이나 공장으로 일 나가는 노동자들을 위한 것이었다. 점심시간에는 시장 주변에서 설교했다. 그의 열심은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었고, 그들 사이에 가장 큰 반응을 일으켰다.
이에대해 웨슬레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나는 가난한 사람들을 사랑한다. 그 이유는 그들에게선 거짓이나 위선이 섞이지 않은 참되고 순수한 은혜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일 누구에게 복음을 전해야 할지 선택하라면 나는 가난한 사람에게 복음을 전할 것이다"
한마디로 웨슬레는 확실한 메세지를 가졌고 그것을 숨겨두지 않고 구조화된 교회 밖으로 나가서 가난한 자들에게 전하였다.
B. 웨슬레 갱신운동의 현대적 의의
웨슬레는 새포도주는 새부대에 넣어야만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웨슬레의 생애와 사역은 피어 오르는 부흥운동을 돕기 위한 구조를 만들며, 갱신해 나가는 역사이다.
이제 필자는 이러한 웨슬레의 교회관과 갱신운동이 우리의 현재 상황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어떻게 현대교회를 갱신해 나갈 것인가라는 점을 웨슬레의 갱신운동으로 부터 몇가지 제시 하고자 한다.
1. 소그룹 운동
이것은 큰 교회에 활력을 주고 갱신을 가져오기 위해 헌신적인 소그룹 구조가 필요하다는 것을 제의하고자 하는것이다. 이것은 소그룹의 구조가 웨슬레가 만들었던 속회나 조모임을 따라 만들어 져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소그룹은 단순한 친교나 성경연구 혹은 기도그룹 이상의 무엇인가를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메도디스트 체계는 그룹내에 언약과 훈련, 그룹안에서의 책임, 그리고 큰 교회라는 몸에 대한 그룹으로서 책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훈련과 헌신(covenant commitment)은 작은 교회(ecclessiola), 즉 소그룹의 차원에서 가장 효과적이고도 유익하게 나타난다. 이러한 차원에서만 제도적이고 율법적인 방법보다 유기체적이고 영적으로 생명력 있는 방법으로 훈련이 가능할 수 있다. 여기에서 근본적인 사실은 교회란 항상 자발적인 공동체이며, 이것은 교회의 힘이지 약점이 아니다. 물론 예수님은 이 소그룹 모임에 대해 선구자적인 위치에 계신 분으로 제자들과 보내신 3년 동안의 경험과 결과가 소그룹의 성격과 기능에 대해 웅변적으로 증명하고 있다. 초대교회도 예수님의 전례를 따라 수많은 작은 모임들로 구성된 독특한 성격의 공동체를 이루고 있었다.
초대 그리스도인들의 이전 작은 모임은 계속되었으나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기독교 공인으로 이런 모임들은 공식적인 교회로 들어와 제도화가 되자 그 생명이 크게 약화되었다. 그러나 그후 교회 부흥과 갱신의 큰 역사 밑바탕에는 언제나 복음적 단순성을 동경하는 소수의 모임들의 확장이 거대한 추진력의 역할을 해왔다.
특히 웨슬레 부흥운동에서 소그룹의 영적 동력을 확인 할 수 있다. 웨슬레는 부흥초기에 소그룹의 중요성을 발견하였는데 이것은 영국을 휩쓸은 부흥의 강력한 요소가 되었다. 이 부흥은 수 많은 사람들의 개인적인 신앙심에 영향을 끼쳤을 뿐만 아니라, 막대한 사회적 변화를 일으켰다. 그리고 이것들은 교회의 영적 건강을 위해 지대하게 기여했다. 그리고 이것들은 복음전도의 발판이 되었다.
소그룹을 통해서 이제 많은 이들이 이전에는 그렇게 생각하지 못했던 여러가지 기독교인의 사귐을 경험했다. 이들은 서로 서로의 짐을 견디고 자연스럽게 서로를 돌아보며 서로에 대한 보다 많은 애정을 품게 되었다.
초기 메도디스트들은 소그룹을 인용함으로써 성령의 교제를 발견하였던 것이다. 이와같이 초대교회와 진정한 부흥운동에 있어서 공통되는 요인은 첫째,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긍정적인 자세요, 둘째, 친한 소그룹에서의 신자들의 모임이다. 실제로 소그룹의 이용이 교회사를 통하여 본 모든 중요한 성령 운동의 공통적인 요소인 것으로 나타나는데 초대교회의 신앙심은 소수의 경건자(Collegio Pietatis)와 혹은 가정모임, 성경연구와 토의를 통하여 양육되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소그룹을 통하여 그리스도인 상호간의 따뜻한 교제를 누리게 되며 초대 기독교의 기본이었던 코이노니아(성령의 교제)를 회복하게 되며 이런 작은 모임에서 회심이나 회심을 통한 신앙 성장을 크게 기대할 수 있고 신앙의 공동 목표를 향하여 나아갈 수 있는 강력한 힘을 발견하게 되는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과의 동행함의 일부로서 소규모 그룹에서의 허심탄회하고 정직한 상호관계를 유지했을때 마다 교회는 부흥과 열성, 복음전도 가운데서 번창하였다. 이미 전통과 습관에 의해 구성된 집회구조 보다 비형식적인 소그룹 모임에서 실제적으로 성령의 교제가 잘 경험 된다는 것은 밝혀진 사실이다.
세상은 교회만이 줄 수 있는 것과 같은 공동체를 갈급하게 찾고 있다. 그러나 만일 교회가 그것을 제시해 주지 못한다면 그들은 교회 이외의 다른 곳에서 그것을 찾아보려고 할 것이다. 가끔 사람들은 교회에서 겪는 경험 때문에 실망하는데 그것은 공동체의 사랑이 그리워서 찾아 나온 사람들이 규칙적으로 드리는 예배를 통해서는 원하는 것을 찾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러한 문제는 해결될 수 있다. 진정한 사랑과 우정은 교회에서 분명히 나타나는데 그것은 소그룹의 형태를 통해서 나타난다.
이제 현대 교회가 설비와 프로그램 그리고 제도 존중주의와 경직성으로부터 이완되어 초대교회의 역동성으로 돌아가려면 진지하고도 자기의식적인 기본구조로서, 개개인을 진정한 인격으로 만나주는 소그룹을 중심한 사역을 펼쳐 나가야 할 것이다.
2. 평신도 전도자
웨슬레에게 있어서 평신도 전도자, 설교자는 중요한 역활을 했음을 앞에서 살펴 보았다. 사실 웨슬레의 소그룹 운동도 평신도 사역자들이 없었다면 지속되지 못했을 것이다.
이세상 속에서 봉사하고 흩어져 있는 교회의 일에 있어서 주요한 일꾼(minister)은 평신도들이다. 그들은 집에서나 사무실에서나 또는 길거리에서나 장터에서나 학교에서나 세상일이 진행되고 있는 곳이면 그 어디서나 그 생활 속에서 교회의 역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마땅히 그리스도의 일꾼이 되어야 한다. 봉사하는데 있어서 교회의 구성원은 각각 다른 소명을 받고 있음을 묵과할 수 없다. 곧 어떤이는 전도자로, 어떤이는 교사로, 또 어떤이는 사회사업가로 또는의사로 정치가로 부르심을 받고 있는 것이다. 다른 말로하면, 복음은 그들의 각기 다른 소명인 직업(life work)을 통하여 인간생활 전면에 침투 하도록 되어있다. 평신도들은 교회에서 뿐만 아니라,소명(직업)을 가지고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관심과 역사에 참여 하도록 보냄을 받는다. 그러므로 이들을 그리스도의 제자로 만드는 것은 곧 교회에 힘을 더하고 결국 사회, 정치적인 변화까지도 초래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목회자가 여러 계층의 사람들과 친밀한 접촉을 갖지 못하는 수가 많다. 그러므로 이 시대의 직장생활, 사회생활 및 정치생활을 상대로 하는 그리스도의 선교사는 평신도 사역자들 이어야 한다. 또한 평신도는 역사상 가장 복잡한 시대에서 자기의 삶과 그리스도의 관심있는 사랑을 함께 나누기도 해야 하지만, 세상에서 하나님의 사역을 위해 하나님께서 재생산자를 재생산 하실 수 있도록 도와줄 줄 알아야 한다. 이런 면에서 평신도 훈련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다고 볼 수 없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많은 교회에서 평신도가 잠을 자고 있다. 엄청난 저력을 가진 거인이 힘을 쓰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어는 교회나 열심히 헌신하는 소수의 평신도 그룹이 있다. 그러나 대부분 교회 조직상의 기능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소위 통상적인 봉사활동을 하는데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소수의 모범적인 평신도마저 교역자의 옷자락을 받들어 주는 소극적인 시녀역에서 더 발전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교역자의 권위에 대한 강조는 뜻하지 않게 평신도의 참된 의미와 중요성을 무시하는 결과가 되었다는 비판은 만인 제사장직을 공인 하면서도 안으로는 구약시대의 제사장 개념을 고수하는 현실 교회의 흐름을 보아도 충분히 공감 할 수 있다.
그러나 웨슬레는 이러한 면에서 볼때 평신도의 참된 의미와 중요성을 알았고 만인제사장직을 몸소 실천했다고 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설교자들 중 일부를 포함해서 지도자들 가운데 여자들도 다수가 있었다. 그래서 베브(Bebb)같은 사람은 웨슬레를 18세기 가장 두각을 나타낸 여성 해방론자라고 평가하였다.
오늘날 교회에서 평신도 문제를 제기함에 있어서 우리는 동시에 새로운 교회론의 정립을 요구받는다. 왜냐하면 제사장이라는 영광스러운 명칭을 교직에 부름받은 소수에게만 돌리는 것은 신약성경에 위배되는 탈선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하기 때문이다. 모든 신자들은 인간생활의 모든 분야에 대한 교회와 그리스도의 타당성을 선포하고 이것을 실현시켜야 하는 교회의 참된 부분인 것이다. 이러기에 교회의 참된 본질과 소명을 말하기 위해서 평신도가 교회에서 교직자와 똑같은 참된 주체자라는 점을 파악하는 것이 근본적인 것이며 평신도 직무가 목회자의 직무와 더불어 교회의 참된 존재와 소명의 구성요소 인것을 인식해야 한다.
그러므로 문제는 평신도와 교직자가 다같이 교회의 본질과 소명 그리고 그들이 그 안에서 차지하고 있는 '분명한 위치'에 관한 새로운 전망(vision)을 필요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대교회는 평신도의 중요성을 다시 회복하여야 할 시기에 와 있다고 생각한다. 평신도가 자기 본연의 위치에서 그 역할을 다하는 사도적인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소수의 사람이 아닌 전 교회가 하나님께 직접 나아가며 제사드리며 복음을 증거하며, 이웃을 봉사하는 그리스도의 교회 공동체가 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3. 가난한자에 대한 복음전도
웨슬레는 "가난한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는것" 이 관습과 '관례'(propriety)보다 우선해야 한다고 결정했다.
웨슬레의 갱신운동의 시초는 주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 가난한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난 운동이다. 웨슬레는 예수님께서 실제로 물질적으로나 영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셨다는 것이 예수님이 메시야란 중요한 증명이 된다고 생각했다.
웨슬레 당시에는 도시로 인구가 이동해서 새로이 도시의 빈자계급이 생겨나게 되었고, 산업혁명은 석탄의 산출로 인해 크게 동요되었다. 웨슬레가 킹스우드 석탄 광부들에게 전도한 것은 산업화 떄문에 가장 잔인하게 희생된 사람들에게 접근한 셈이다. 광부들 사이에 웨슬레가 호응받은 것은 현저했고 사실 웨슬레는 영육간의 복지를 위해 지칠줄 모르고 일하였다. 무엇보다 그는 무료 진료소를 열었고, 일종의 협동조합(credit union)을 세우고 학교와 고아원을 설립하였다. 사회의 희생물이된 이 모든 사람들에게 웨슬레는 복음을 전하였다.
그러나 그는 그 이상의 일을 하였다. 그는 그들고 하여금 서로 긴밀히 교제를 갖게하여 서로 양을 치고 지도자를 육성시키고 그들이 살고 있는 현 조건들을 개선시키고자 일하였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함에 있어서 우리는 이 세상에서 헐벗고 가난하고 영양실조에 걸려있는 사람들의 상황을 늘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가난한 자들을 위한 희생이 없이는 세계복음화의 목적을 성취할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은 단순히 가난한 자들에 대해 책임의식을 가지고 염려해 주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구제와 복음전도에 까지 나아가야 한다.
앉아서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구조화된 교회밖으로 나아가서 가난한자들에게 사랑과 복음을 전해야 한다.
오늘날 많은 교회가 부요하고 비대해 졌다. 그리고 많은 세상사람들에게 지탄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이제 교회는 성경으로 돌아와 가난한 자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한다. 그들에게 내려가야한다.
이상과 같이 웨슬레 갱신운동의 현재적 의의를 3가지 면에서 고찰하였다. 그러나 웨슬레는 교회 갱신운동의 권위의 궁극적 근거로 성령과 하나님의 말씀을 강조한다. 또한 그는 제도적 교회의 권위와 전통을 인정함으로써 제도적 교회에 남아서 제도적 교회를 갱신하게 함으로써 분리를 쉽게하는 다른 갱신 그룹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것은 하나님께서 최고 주권자이시며 또한 성령은 교회 안에서 자기의 때와 방식에 따라서 활동하신다는 것을 근본적으로 인정할 것을 전제한다. 또한 하나님은 우리가 교회갱신 운동을 위한 사역에 그와함께 협력하도록 초청하신다. 그리고 역사속에 나타난 교회갱신 운동을위한 사역에 그와함께 동참하도록 초청하신다. 그리고 역사속에 나타난 그의 행동을 통해 우리가 그런것을 쉽게 지나쳐 버리지 않고 잘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해 주신다.
. 결 론
A. 요 약
웨슬레가 어렸을때 받은 가정교육과 영국 교회와의 관계는 웨슬레의 신앙과 신학적 사상의 형성에 큰 영향을 주었다. 그러나 웨슬레가 어렸을때 그의 신학형성에 영향을 준 것은 바로 자신의 도덕적 또는 영적인 노력과 무엇인가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행하려고 하는 인간 중심적 신앙이었다고 할 수 있다. 웨슬레의 말대로 당시의 그의 신앙은 아들로서의 신앙이 아니라 노예로서의 신앙이었다.
그러나 웨슬레의 1738년 5월 24일 올더스케이트의 신앙체험은 그의 신앙생활에 새로운 변화를 가져왔고,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을 강조하게 되었다. 엄격한 의식주의자였던 웨슬레는 복음주의의 구원과 생명을 체험했고 그 체험을 바탕으로 원근 각처에 복음을 전하는 위대한 전도자가 되었으며, 여기에서 웨슬레적인 메도디즘이 발생되고, 메도디스트 교회는 탄생하게 되었음을 보았다. 웨슬레의 교회론 형성배경에는 영국교회에서 전수한 카톨리적 전통과 주로 모라비안 형제를 통해서 받은 혁식적인 개신교 전통이었다. 그가 본격적으로 교회론 적인 문제에 대해 접근한 것은 그가 내적 성결의 문제를 진지하게 추구하기 시잘할 때 부터 였다. 또한 조오지아에 있는 동안에 비버리지의 시노디컨(synodikon)을 접하게 됨으로 성서와 전통의 상충 가운데 성서의 우위성을 견지하게 되었다.
웨슬레는 교회의 본질과 사역을 제도적인 면에서보다 기능적인 면으로 이해했다. 권위에 있어서 성서, 이성, 전통의 세가지로 보는 앵글리칸의 견해는 웨슬레에게 있어서 성서, 이성, 전통, 경험 이라는 웨슬레안 4요소(The Wesleyan Quadrilateral)가 되었다.
그는 교회를 정의함에 있어서 교회는 "믿는 사람들의 공동체" 이며 교회는 "하나님 백성의 공동체"라 했다. 그리고 교회는 어느세대 어느 민족에게나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 "산믿음"(living faith)이 부여 되는 그리스도의 한몸으로 보았다.
웨슬레는 교회의 표적으로 첫째, 산믿음 둘째, 설교 즉 순수한 하나님의 말씀 셋째, 성례전의 정당한 집행이라고 했다.
교회제도나 교직에 있어서 웨슬레는 상대적이며 실용주의적인 접근을 했는데 평신도 전도자나 설교자를 세운것이 특색이며, 그는 성서와 초대교회의 예를 들어 두 종류의 교역자, 즉 목사(사제), 설교자(전도자)가 있다고 보았다.
올더스케이트 체험이후 웨슬레이게 있어서 성례전은 더 중시되었고 은혜의 수단으로 보기보다는 그 영혼에 하나님의 새로운 생명이 자라기 위해 성례전을 더 많이 행했다.
그는 세례를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가 임한다고 보았으며, 만일 우리가 거기에 응답하여 산다면 또한 회개하교 믿고 복음에 순종한다면 세례는 지금 우리를 구원하며, 세례가 우리를 이 세상에 있는 교회 안으로 받아들이듯이 장래의 영광 가운데 맞아들일 것이라 했다.
다음으로 웨슬레의 갱신운동을 살펴 보았는데 먼저 그에게 있어서 분명하고 확실한 설교가 있었으며 활동적이고 적극적인 사회적 관심이 있었다. 그의 방법론으로 그는 효과적인 복음전도를 위해 제도적 교회안에 한정시키지 않았으며 새롭고 효과적인 훈련과 교제를 위해 속회, 조(band), 특별 신도회와 같은 소그룹 운동을 확산시켜 나갔다. 그리고 그의 갱신운동은 가난한 자들을 위해 가난한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난 운동이었다.
그래서 필자는 웨슬레의 갱신운동의 현대적 의의로서 현대교회 갱신의 방향을 3가지 제시했다.
그것은 첫째, 소그룹 운동을 통하여 그리스도인 상호간의 교제를 누리는 초대교회의 기본이 되었던 코이노니아(성령의 교제)를 회복하며, 이런 작은 모임을 통해서 신앙성장을 크게 기대할 수 있고 신앙의 공동목표를 향하여 나아갈 수 있는 강력한 힘을 발견 할 수 있음을 주장했다.
둘째, 교회의 참된 본질과 소명을 말하기 위해 평신도가 교회에서 교직자와 똑같은 참된 주체자라는 점을 강조함과 동시에 이들이 각자가 처한 위치에서 세상을 향한 역사에 참여하기 위해 그리스도의 제자로 만들것을 주장핬다.
세째로 가난한 자들에 대한 복음전도였는데 곤경에 처하여있는 가난한 자들에게 따뜻하고 다정한 실제적인 관심을 나타내 보이지 않고는 복음 전도는 무용하며 사회복음과 영적복음 이 두가지가 모든 필요함을 강조했다.
B. 결 어
전도와 선교 동기의 기초를 제공하는 웨슬레 신학의 특징은 교회갱신을 위한 신학이었다고 할 수 있다.
차일스(Chiles)박사의 말대로 웨슬레가 기독교에 크게 공헌한 점은 교회를 개혁했거나 변질 시키는데 인는 것이 아니라, 교회 자체를 새롭게 한 교회갱신(Church renewal)에 있다고 지적한 것은 교회사에서 입증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웨슬레의 갱신운동은 18세기의 무기력하고 부패했던 교회에 활기를 주었고, 교회양심에 깨우침을 주었고 교회 선교를 활발하게 해주었다. 이것은 세계선교에까지 나아갔다. 이제 선교 2세기를 향한 한국교회에서 이런 운동이 일어나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현대교회는 웨슬레가 말한 교회의 3가지 표적처럼 순수한 하나님의 말씀을 회복하고 살아있는 믿음과 정당한 성례전의 집행을 회복해야 한다. 나아가서 갱신운동은 작은교회(Ecclesiolae)로서 존재한다고말한 스나이더 (Howard A. Snyder)의 지적처럼 소그룹을 통한 성도들간의 긴밀한 사랑의 교제로 우리에게 주어진 경험과 은사들은 서로서로 충분히 나눌 수 있어야 하며, 영적 성숙을 이루어 나가야 할 것이다. 또한 성도들을 예수의 제자로 가르치고 훈련하여 그들로 하여금 교회와 세상 구석구석에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며 사랑과 성결의 누룩이 되게 해야 할 것이다. 이것은 가난한 자들에 대한 구체적인 관심과 함께 나아가야 할 것이다. 웨슬레의 이러한 교회 갱신 운동이 선교 2세기를 향한 한국교회를 새롭게 하는데 조명이 되기를 바란다.
* 참 고 문 헌
1. 1차적 자료 (Primary Sour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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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2차적 자료 (Secondary Sour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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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l, George C. The Rediscovery of John Wesley. New York : Henry Holt and Co,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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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sley, John. Explanatory Notes upon the Old Testament. 4Vols. Ohio : Schmul Pub, 1975.
나. 번 역 서 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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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nnon, William. [웨슬레 신학] 전종옥 역. 서울 : 기독교 대한 감리회 총리원교육국, 1967.
Kraemer, Handriks. [평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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