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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슬레의 구원관이 현대선교에 끼친 영향 2

웨슬레의 구원관이 현대선교에 끼친 영향  2
http://cafe.naver.com/modernth/391   
 
V. 웨슬레(John Wesley)의
           구원론의 선교적 의의

웨슬레는 "세계는 나의 교구"라는 비젼이 있었고, 헌신된 삶을 통해 평생을 전도인의 일을 행하였다.   또한 그의 동료들에게 "여러분의 할 일은 한가지 뿐입니다.   곧 영혼을 구원하는 일입니다."라고 권면하며 설교했다.  따라서 그는 자연신교들처럼 사변적인 논쟁을 경계하였고, 생활속에서 성경의 원리를 실천하는데 관심을 두었다.
여기에 내가 각별히 바라는 것이있다.   첫째로는 얼굴만을 하늘로 향하고 있는자, 곧 형식주의에 빠져 마음의 종교에서 이탈된 단순한 의식적 종교를 경계하기 위한 것이요, 둘째로는 마음의 종교와 사람으로 역사하는 믿음을 아는 사람들이 믿음으로 율법을 무효하게 만들어 마귀의 속임수에 빠지지 않도록 경고하는데 있다.
그러므로 웨슬레는 '신앙과 실천'을 하나로 보았다.   또한 신앙과 실천의 근본적인 토대를 성경에 둔 '한책의 사람'(Homo Unius Libri)이 있다.  그의 삶 자체가 선교적이었으며, 그가 속한 교회가 기관화되어 선교적 열정을 상실하게 될까봐 고민하였던 전도자이었다.   더욱이 단순한 마음의 종교나 사변적인교리로 전락하는 것을 염려하였고, 주어진 세계를 변화시키고자한 '자의적 개혁자'였다.  그는 그의 생애를 통해 사회의 개혁과교회의 갱신, 성서적 성결을 몸소 실천했고, 가르쳤다.
이러한 웨슬레의 신학은 현대 선교학의 잘못된 극단적 사고를 극복한다.  하나님의 주권을 상실하지 않으면서도 인간의 책임을 정당하게 강조한다.  신과 인간의 연속성과 불연숙성이 균형있게 강조된다.   특히 현대 선교의 '대화. 복음전도. 사회참여'등의 대립된 개념들과 그 관계성들이 그의 신학속에서는 질서있게 종합된다.   본 장에서는 웨슬레의 구원신학속에 나타난 여러 신학적 개념을 현대 선교의 제반 갈등과 연결시켜 그 해결점을 찾고자 한다.
A. 웨슬레의 은총관의 현대 선교적 의의
웨슬레의 은총관은 그의 구원론의 축이다.   하나님의 은총은 인간의 전체적 삶속에 언제나 그 주도권을 지니고 역사한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은 범죄함을 인하여 모든 분별력을 상실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들 예수를 통해 인간의 원죄의 죄책을 해결하시고, 완전히 상실했던 하나님의 형상과 자유의지를 부분적으로나마 회복시키셨다.   이것이 모든 실존적 인간에게 부어진 하나님의 선행적 은총(Prevenient Grace)이며, 이 선행은총에 의해 인간은 하나님께 응답할 수 있고, 또 응답해야하는 책임적 존재가 되었다.  즉 구원의 질서에 있어서 인간의 오성과 의지, 선택의 자유의 힘이 새로와졌고, 도적인 인간이 될 수 있게 된 것이다.   결국 인간은 회복된 양심을 통해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구원의 길로 돌아설 수 있는 가능성을 소유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 선행은총만으로는 구원에 이르지 못한다.   단지 불완전한 상태로의 가능성만을 제시할 뿐이다.   인간이 완전한 구원에 이르기위해서는 하나님의 또다른 은총이 필요한데, 그것이 바로 '깨닫게하는 은총'(Convincing Grace)과 '성화케하는 은총'(Sanctifying Grace)이다.   전자는 실존적 인간을 '의인'(Justification)케하며, 후자는 '완전한 성화'에 이르게한다.   종국적으로 인간의 모든 제약성과 한계성은 하나님의 '영화케하는 은총'에 의해(Glorifying Grace)제거된다.  이러한 웨슬레의 구원의 구조속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은총의 현대선교적의의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기독교회로 하여금 세계를 긍정하게하고, 세계속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할것을 가르친다.   세계내의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 자신의 완전함을 나타내는 거울이다.   또한 전적으로 선한것이다.   비록 인간의 범죄를 인해 결함을 갖게 되었으나 여전히 아름답다.   죄는 하나님의 창조세계내에 잠재해 있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교회는 세계를 긍정해야한다.  세계내의 모든 불의에 대해 과감히 도전하고 개혁해야 한다.   그러므로 구속사를 세계사로부터 불리하여 절대화해서는 안된다.   그러나 여전히 이 세게는 구속의 때를 탄식함으로서 기다리는 결핍된 세계이기 때문에 세계사가 신성시 되어서도 않된다.  세계사와 구속사는 하나님의 경륜속에서 종합되어야 한다.   기독교 선교는 그렇기때문에 세계내의 죄와 전쟁, 기근과 압제, 환경오염과 폭력등에 대항하여야 한다.   도피하거나 무관심해서는 않된다.   도리어 책망하고 바르게해야 한다.
둘째, 하나님의 은총은 기독교회로 하여금 '인간화'(Humanization)를 긍정하게 한다.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는 사실은, 인간 본연의 존엄성이 존재함을 말해준다.   비록 타락으로 인해 그 본래의 존귀함을 상실했었으나, 하나님의 선행은총에 의해 그 가치가 부분적으로라도 회복되었다.   따라서 은총아래에 있는 인간은 어느정도는 선하며, 도덕적이고, 윤리적이다.   따라서 기독교회는 인간사회의 어디서나 정의와 화해를 구현하고, 인간을 모든 종류의 압박으로부터 해방시키고자 하는 하나님의 권념에 참여해야한다.   사라은 하나님의 형상을 지녔기 때문에 인종.종교.피부.문화.계습.성.연령의 구분없이 존중되어야 한다.
셋째, 웨슬레의 은총관은 그리스도의 보편성과 유일성을 기독교회가 동시에 강조해야 할 것을 가르친다.  하나님의 선행은총이란 그리스도의 대속의 결과이다.   이 선행은총은 모든 실존적 인간에게 동등하게 역사한다.   이런 의미에서 그리스도는 보편성을 갖고있다.   그러나 선행은총하의 실존인간은 아직은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다.   이는 여전히 자신의 불의로써 진리를 억압하고 있기때문이다.   오직 그가 '회개'와 '믿음'을 통하여 그리스도를 주와 구주로 영접할때만이 그는 의롭게 되어 하나님께 열납되는 것이다.  인간은 여전히 자력으로 구원에 이를 수 없고 하나님의 '확신케하는 은총'(Convincing Grace)에 의해 구속된다.   따라서 그리스도는 구원에 이르는 유일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요 14:6).
기독교회가 아무리 예수를 '세계의 구주'로 전한다 할지라도, 반드시 모든 사람이 자동적으로, 궁극적으로 구원 받게 되는 것이 아니다.   또한 모든 종교가 그리스도안에 있는 구원을 제공하는 것도 아니다.  기독교회는 예수는 구원에 이르도록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유일한 이름임을 용기와 확신을 가지고 전해야 한다 (행 4:12).   이렇게 볼때 현대의 '만인 구원론' ( Universalism )과 '혼합주의' ( Syncretism )  그리고 '상대주의' (Relavatism)는 웨슬레의 은총관에 의해 배격된다.
네째, 웨슬레의 은총론은 기독교회로 하여금 '타종교와의 대화'를 긍정하게 한다.   하나님의 선행은총은 인간의 '양심.도덕.지각능력.자유의지'등을 어느정도 회복시켰다.   따라서 인간은 어느정도는 선하며, 그 판단력도 어느정도는 정확하다.   따라서 기독교와 타종교사이에 '신의식.문화.도덕.인간의 기본 욕구. 인간의 공통적 흥미'등의 유사성이 존재함을 인정해야하며, 이러한 것들을 내용으로하여 대회에 참여함으로서 기독교 선교를 보다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는 사실을 긍정해야 한다.
우리는 자연에 나타난 일반계시를 통해 모든 사람이 하나님에 관한 어느정도의 지식이 있음을 인정한다... 사람은 하나님의 피조물인고로 인간문화의 어떤것은 대단히 아름답고 선하다... 그리스도의 전도자는 겸손하게 자기를 전체로서 비어버리기를 힘써야한다.
다섯째, 웨슬레의 은총관은 인간의 책임을 강조함으로서 구원에 있어서 신과 인간의 연속성을 현대 기독교회에게 가르친다.   비록 하나님이 일하시고, 또 인간으로하여금 일하게 하셨기 때문이기는 하나 인간은 하나님에게 응답할 수 있는 통찰력과 응답해야하는 책임을 갖게 되었다.   동시에 인간의 전체적인 삶이 하나님의 은총아래서 세계를 향해 책임있는 존재가 되어야 할 것을 말한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이러한 신과 인간사이의 연속성의 존재는 인간자체의 능력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총에 대한 낙관이기때문에 기독교선교에 있어서 성령에 의해 통제받지 않은 모든 세속적인 방법은  거부되어야  한다.  또한 복음을 제거한 사회행동은 배척되어야 한다.   이로보건데 사람과의 화해는 하나님과의 화해에 종속되며, 정치적 해방은 영적해방을 전제해야 한다.   새로운 인간성의 창출은 하나님의 은총에 의한것이기 때문에 모든 사회학적, 심리학적 치유는 성령의 통제를 받아야 한다.   웨슬레의 은총관은 인간의 책임성과 가능성을 긍정하면서도 철저하게 '무신론적 인본주의' 신학과 선교를 반대한다.  또한 이러한 사회혁명이나 인간해방운동이 그리스도를 떠나서 이루어지는 것을 반대한다.
여섯째, 웨슬레의 은총관은 선교의 가능성과 역동성을 제공한다.   선행은총에 의해 회복된 양심과 도덕 및 오성과 자유의지는 인간으로 하여금 복음에 응답하도록 작용한다.   이러한 확신은 복음의 본래적 능력과 더불어 기독교 선교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하나님에게 응답할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기독교인은 복음을 전할 용기를 갖게되는 것이다.  설득될 수 있기때문에 기독교인은 복음을 설명하며, 깨달을 수 있고, 돌아설 수 있는 존재이기때문에 기독교회는 복음을 선포한다.
이상과 같이 웨슬레의 은총관은 현대선교의 여러문제를 해결한다.   그러므로 오늘날 웨슬레는 중요하다.
B. 웨슬레의 의인(Justification)의 선교적 의의
의인(Justification)이란 죄인을 생명으로 옮겨놓는 하나님의 선언이다.  종교의 현관인 '회개'와 종교의 문인 '믿음'을 통해 사람은 의롭다 인정받는다.   웨슬레자신도 올더스게잍 회심체험이후 '누가 나를 구원할 것인가 ?'라는 인간 실존의 본질적 소외로부터 구원받았다.   사실 회심이전 웨슬레 자신은 구원받기위해 선행과 봉사의 일을 하였으나 이 본질적인 소외는 해결되지 못했다고 고백했다.   결국 자신의 죄와 죄인됨을 깨닫고 그 모든 것으로부터 돌아섰을때, 그리고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을 확신하고 예수를 신뢰하였을때 모든 소외에서 해방되었던 것이다.
이 의인과 동시사건을 웨슬레는 신생이라하였다.   이 신생은 인간의 죄된 부패성을 극복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믿음. 사랑. 소망'은 신생의 표적으로서 의인의 범위가 사회성까지 포함하는 것임을 나타낸다.   그거은 세상에 대한 침묵이나 도피가아닌 자의식적인 개혁에로의 참여를 뜻한다.
웨슬레의 의인관의 현대선교적 의의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웨슬레의 의인의 교리는 복음의 유일성을 확증한다.  '의인'되지 못하면 종교인이 될 수 없기때문에 모든 실존적 인간은 의인을 받아야만 한다.   즉 실존적 인간은 아직은 자신의 죄인임을 깨닫고 그 죄를 회개하여야 하는 존재라는 사실과, 자기의 능력으로 스스로 구원할 수 있다는 교만을 버리고 그리스도의 구속의 십자가를 통해서만 구원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겸손히 인정해야 한다.   따라서 기독교를 '윤리적 종교'로 전락시킨 모든 상대주의 신학과 세계주의를 지향하는 만인 구원론은 배척되어야 한다.   현대에서도 기독교회는 '회개'와 '믿음'을 통한 구원의 복음을 타협해서는 않된다.
둘째 의인의 교리는 현대선교에 있어서 '하나의 메시지'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가르친다.   죄의 실재. 죄의 형벌.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죽음. 부활. 승천. 재림 그리고 심판이라는 일련의 기독교 복음은 시대를 따라 변할 수 없는 절대진리임을 깨달아야 한다.   기독교회는 성서적, 역사적 그리스도만이 구주요 주되심을 선포하여야만 사람들이 그리스도께 개인적으로 나아와 하나님과 화목해 질 수 있다는 복음의 능력을 확신하여야 하낟.
세째 의인의 교리는 기독교 선교의 목적을 분명히 한다.  기독교 선교의 목적은 한 개인과 집단을 그리스도께 순종케하며, 그로 하여금 변화된 삶을 통해 교회를 형성하며, 세계속에서 책임있는 존재가 되게하는데 있다.   신앙의 대상이 변한 개인과 집단의 모든 사고와 행동은 변화를 격게되며 모든 환경을 변화시키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 기독교 선교의 목적은 개종(Proselytism)이다.
기독교 현대선교에 있어서 '타종교인을 더욱 성실한 종교인이 되게'하는 것이 선교의 목적이라는 주장과 타종교 안에도 그리스도와 같은 구원에 이르는 길이 있다고하는 모든 혼합주의는 복음을 타협한 절충주의이다.   그러므로 세계내에 "익명의 그리스도인"이나 "익명의 교회"등의 개념은 성서적인 정당성을 갖지 못한다.
네째 의인의 교리는 동시에 신생의 사건을 수반하는 것이므로 참된 구원의 범위를 보다 총체적으로 이해하게 한다.   의인의 사건이 비록 법적인 변화를 의미한다 하여도 그 사건은 인간의 윤리적, 정신적, 심리적, 육체적 변화를 동시에 수반하는 사건이기때문에 의인은 복음의 총체성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즉 인간의 구원은 그의 전인격(Whole Person)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독교 선교는 이러한 총체적인 구원을 가져다 줄 수 있도록 수행되어야 한다.
한편 의인의 사건이 없이 행하는 모든 사회행동이 결코 복음적인 것이 아니며, 또한 인간 본질적 소외가 해결되지 아니한 어떠한 봉사도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   기독교 선교에 있어서 복음전도와 사회행동의 관계는 전자가 후자보다 논리적으로 우선한다는 사실을 의인이 신생보다 논리적으로 우선하는 웨슬레의 교리에서 배울 수 있다.
C. 웨슬레의 성화(Santification)의 현대 선교적 의의
성화는 웨슬레의 현재적 구원에 있어서 최종적인 목적이다.   그러나 이 성화의 교리는 의인의 교리와 결합되어 있기때문에 양자를 분리하면 '신앙과 실천', '교리와 윤리', '복음과 사회행동'의 분리가 나타난다.   의인은 하나님의 은총에로의 회복이며, 성화는 하나님의 형상의 회복을 뜻하기때문에 양자는 인간 실존의 구원의 총체성을 나타내는 두가지이다.   그러므로 양자는 하나의 두 부분이다.   언제나 동시성을 지닌다.
한편 웨슬레는 종교 자체로본다.  따라서 구원에 있어서 현재적 최종목적이다.   기독교인의 완전이 개개인의 목표가 근본적인 희망이 생기며, 동시에 현재속에서 개인적인 변혁의 과정을 지속시켜주는 비판의 날카로움을 갖게한다.   더 나아가 자기의 영역에서 사회적인 영역에까지 개혁을 위한 끊임없는 동기를 유발하며, 보다 완전한 세계를 위한 부단한 변혁을 일으키도록, 참여하도록 자극한다.   결국 이 성화의 교리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비젼가운데 뚜렷이 나타나는 피조물의 갱신을 가능케하며, 확신케한다.
특히 웨슬레의 성화의 교리는 '초기로부터 완전'에로의 점진적인 과정을 지니고 있다.   한 인격의 변화와 성장은 순간적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사회변화와 환경의 변화도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성화의 교리가 주는 개혁에 대한 동기부여는 "하나님의 조용한 사랑과, 상호간의 사랑, 정의, 자비 그리고 진리의 한결같은 실천"을 통해 그 변화에 참여할 것을 가르친다.
웨슬레 성화론의 진수는 '완전한 성화' 혹은 '기독자의 완전'에 있다.  이 기독자의 완전은 개인적인 차원에서 종말론적인 목표이며, 사회적 차원에서는 하나님의 나라의 기능에 병행하는 것이다.   이러한 목표의 실현이 인간 노력의 산물이 아니고, 하나님의 끝없는 은총의 선물임에도 불구하고 전적인 성화는 이세상과 그 삶가운데 하나의 가능성으로 존재한다.   또한 현시대에 인간화를 긍정케하는 하나님 나라의 권능이다.   그리스도인은 아무도 부족함이 없도록 끊임없이 주는 사회를 건설해야 한다.
지금 때가 찿다고 생각해보라... 이 땅에서 전쟁이 끝나고... 억압도 없다... 착취도 없으며, 강도질이나 학대, 약탈이나 불의도 없다... 그들 중에는 부족한 사람이 아무도 없다.   모든 자기 이웃을 제 몸처럼 사랑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완전한 성화'에 도달한 사람은 '사랑'이 가득한 사람이며 이 사랑을 현재의 삶속에 실천하는 사람이다.
이상과 같은 웨슬레의 성화론은 현대선교에 놀라운 통찰을 제공한다.
첫째 성화의 교리는 기독교 선교의 범위를 확정한다.   그 논리적 순서에 있어서는 의인이 성화에 우선한다.   그러나 목적에 있어서 성화는 의인보다 우선한다.   이런 의미에서 기독교회 선교의 목적은 성화를 지향해야 한다.   개인적 성결과 법적인 변화에서 끝이 나는 구원은 반쪽이다.  따라서 설교자는 자신의 설교가 듣는이들에게 '거룩한 삶을 가져다  주는가 ?'를 물어야 한다.   또한 실제로 그들이 얼만큼 변했으며 세계를 변화시키고 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그러나 의인과 성화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어느것이든 동시에(Both / And) 강조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의인은 정화를 지향하지만 성화는 의인을 전제로 하기때문이다.   따라서 기독교 선교에 있어서 복음전도는 사회참여를 지향해야하며, 사회참여는 복음전도위에서 수행되어야 한다.  결국 복음화는 인간화를 포함하며, 인간화는 복음화를 전제로 해야한다는 결론이다.   이러한 관게성이 인정될때 기독교회는 복음의 총체성과 구원의 총체성을 인정하는 것이며, 참된 의미의 선교를 수행하는 것이다.
둘째 성화의 교리는 기독교 복음의 신뢰성을 한층 강화한다.   믿음이 행함과 함께 일하며,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되듯, 그리스도인의 전하는 복음은 그의 거룩한 삶에 의해 그 의미를 강화하게 된다.   만일 복음이 말로만 전해지고 실천적인 사랑이 없다면, 가난한자에게 가진 부를 나누어주지 않거나, 배고푼 이웃에게 먹을 것을 주지않는다면, 혹은 사회의 모든 불의와 악에 대하여 언제나 침묵만 지킨다면, 복음은 더이상 신뢰성을 갖지 못할 것이다.   기독자의 현존은 그의 선포를 듣는 이들에게 의미있게하며, 마침내 그들을 설득하여 그리스도께 나아오게 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과 교회는 자기를 세계를 향하여 개방하고, 그 세계속에서 자신을 희생함으로서 빛으로 소금으로 나타나야 한다.   아무리 사람과의 화해가 하나님과의 화해가 아니며, 사회행동이 곧 전도는 아니며, 정치적 해방이 곧 구원은 아니라 할지라도, 그모든 영역에 있어서 방향을 제시하며, 적극적인 참여를 통한 변화를 일으켜야 한다.
셋째 성화의 교리는 실현된 하나님의 나라를 더욱 확장하며, 실현될 하나님의 나라를 이 세상속에서 맛보게 한다.   기독교 선교가 종말을 향하고 있으며, 기독교회가 현재와 종말의 경계선에 살면서 종말을 구현한다는 사실은 성서적 성결의 삶을 구현해야하는 교회의 의무를 강조하는 것이다.  결국 성화의 교리는 세계내에서 교회의 존재의미와 그 목적을 성실히 수행하도록 교회를 자극한다.
네째 성화의 교리에 나타난 '점진성'은 세계변화의 방법에 대해 그 성격을 규명케한다.  아무리 세계내의 변화에 그리스도인이 자의식(自意識)을 가지고 참여한다 하여도 '혁명과 폭력'을 통한 급진적 변화 방법은 사용할 수 없다.   빛과 소금이 되어 자기를 먼저 희생하는 겸손함과, 누룩처럼 사회내의 모든 불의와 약속에 침투하여 종국에는 성서적 성결을 구현하고자하는 인내심을 지닌 '사랑'의 힘으로 그 모든 변화에 참여해야한다.  사랑은 언제나 오래참고, 이기적이지 않으며, 어떤 형태의 불의도 기뻐하지 않고, 상대를 향하여 무례히 행치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세계내에 존재해야하며, 세계를 변화시키는 일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되, 언제나 사랑과 겸손을 가지고 빛으로 소금으로 누룩처럼 나타나야 한다.
다섯째 완전한 성화에 이르는 길은 점진적은 발전은 물론 하나님의 은총에 의해 순간적으로 완성되는 것이며, 이러한 완전의 상태에서도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께 순간적으로 언제나 의존해야 한다는 사실은 기독교 선교의 완성은 성령님의 사역에 의한 것이라는 성서의 증언을 재 확인케한다.  웨슬레의 구원론의 축은 '은총'이다.   즉 그 주도권이 하나님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깨닫게 하시고, 믿게하시니 우리는 믿을 수 있고 의롭게 되는 것이며, 거룩케 하시니 우리는 성화를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구원에 이르도록 복음을 전하는 기독교 선교는 사람이 아닌 성령의 사역이다.  성령께서 오늘날 복음을 듣는이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향하여 나아오게하며, 변화된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세계내에 참여하여 세계의 모든 압제, 착취, 불의, 폭력등을 제거하도록 권념하신다.  선교는 성령의 사역이기 때문에 현대의 모든 무신론적 사회혁명이나 유토피아 건설, 그리고 모든 과학주의가 기독교 선교에 참여할 수 없다.
우리는 전도에 있어서 그리스도에 대한 성령의 증거가 절대 필요하며, 따라서 성령의 초자연적인 역사가 없이는 중심이나, 새로운 삶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믿는다.
  . 결   론

2000년대의 세계인구는 60역에 달하게 될 것이다.   전세계인구의 3분의 1이 명목상 그리스도인이다.   나머지 40억 그 절반은 그리스도에 관하여 들었으며 그 나머지 반은 듣지도 못하고 있다.   이와같이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등한시 되고 있다.
오늘의 세게는 또한 과학기술과 함께 산업화되어가며 경제질서의 변화가 일어났고, 도시화되어가는 새로운 세계문화의 출현이라는 "현대성"(Modernity)의 영향을 받고있다.  이로인해 현대인은 새로운 사고방식을 갖게되었고, 이로인해 현대교회는 새로운 선교상황을 맞이하게 되었다.  첫째는 세속주의(Secularism)이다.   이로인해 교회의 거룩성과 신자의 도덕성 및 신앙이 황폐하게 되었고, 하나님과 초자연적인 사실들을 무의미하게 만들었다.   따라서 현대는 '혼합주의', '종교적 상대주의'등의 위협이 존재한다.   둘째는 도시화이다.   1900년도에는 세계 인구의 9%만이 도시에 살았다.   그런데 2000년에는 50%이상이 도시에 살게 될 것이라고 한다.  이로인해 현대는 비인간화의 위기를 맞게 되었다.   또한 농촌문제, 환경문제, 교통난 및 주택난등의 새로운 사회. 문화적 위기를 당하게 되었다.   셋째 대중매체의 발달이다.   전파와 영상은 말을 대신하게 하였고, 이로인해 진리와 권위의 가치가 하락하게 되었다.   또한 인간 대중의 사고가 확실화되었고, 국경이 매체를 통해 무너지게 되었다.   네째 새로운 민족주의 운동이 발흥하였고, 고대 민족종교가 부활되고 있다.   이들은 선교사와 복음에 대해 더욱 냉랭해지며, 거부하고 있다.   다섯째 타종교들은 그 어느때보다 성장하고 있으며 최선을 다하여 포교에 힘을 쓰고 있다.  여섯째 세게의 모든 가치가 다원화되고, 지식의 전문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또한 인간과 세계는 진보하고 있다는 생각은 인간과 세계의 능력을 낙관하게 하였고, 이로인해 절대가치의 존재가 부정되며, 새로운 인본주의가 유행하게 되었다.
교회는 전래없는 부담과 문제를 갖게 되었다.   동시에 선교적 위기를 다하게 되었다.   전통적인 선교신학은 도전을 받게 되었고 심지어 기독교의 정체성(Identity)까지 의문시 되었다.   현대 기독교 선교는 전통적 선교관에 좀더 가까운 복음주의 진영과 모든 과거의 신학적 전제에서 벗어나 새롭게 개념화하고자 하는 에큐메니칼 진영으로 대분된다.
그러나 양 진영의 극단적인 무리를 제외하고는 서로가 서로를 보완하며 하나님의 선교를 공동으로 수행하고 있다.   과거의 교회가 인간과 세계, 그리고 역사와 종말의 현대성을 등한히 하였고, 성과 속, 영혼과 육체, 은혜와 율법등을 날카롭게 구분하려는 이분법적 사고방식을 지녔기 때문에 복음과 구원의 수평성과 포괄성을 상실하였다면, 현대의 극단적인 에쿠메니칼 주의자들은 하나님과 게시, 그리고 종말의 미래성을 인간. 이성. 현재속으로 통합하였고, 세계와 교회의 경계선과 성과 속의 경계선을 제거함으로서 역시 복음과 구원의 수직성과 전체성을 상실하였다.
어느 경우이든 복음의 변형을 본다.   인간은 본래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존재이기 때문에 본질상 존엄성과 가치를 지닌다.  그러나 죄로 말미암아 창조주와 또다른 피조물로부터 소외되었다.   이 소외가 인간이 격는 모든 한계상황의 근본적인 원인이다.   죄는 또한 반사회적인 행동을 감행한다.   따라서 죄는 개인성과 사회성을 갖고있다고 말할 수 있다.
한편 구원이란 인간을 이러한 소외로부터 구출해 내는 것이다.   그것은 창조주와의 화목은 물론 또다른 피조물과 화목을 가져다 주는 것이다.  또한 인간이 당하는 모든 고통. 방황. 착취. 압제. 가난. 고독으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이다.   결국 죄를 제거함으로서 이 구원은 이루어지는데 그 범위는 개인적인 죄뿐 아니라 사회적인 죄도 포함한다.
물론 인간은 아직도 이웃을 사랑하고 품위있는 행동을 하며 아름다운 예술을 창조할 만한 능력이 있다.   그러나 인간은 여전히 불완전하다.   또한 하나님의 심판을 견디지 못하는 죄와 죄책을 갖고 있다.   그러므로 어떤 종류의 자력구원도 불가능하다.   오직 인간은 그리스도를 통한 회개와 믿음에 의해서만 새창조를 입게된다.   그러므로 어떠한 인본주의(Humanism)나 유토피아적 환상도 거부된다.   또한 세속주의나 만인 구원론과 같은 혼합주의(Syncretism)도 거부된다.
그러나 하나님의 구원은 '현재성과 미래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기때문에 미래적  종말은 현재적으로 맛볼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예수의 성육신에서 실현된 것이다.  그러므로 참된 선교는 세계내에서 사회적 현실. 비애와 고통 그리고 압제세력에 항거하며 정의를 위하여 투쟁하는 모든 노력에 동참할 것을 요구한다.   그것은 곧 제도화된 폭력, 정치적 부패, 사람과 땅에 대한 온갖 착취, 가정파괴, 낙태, 마약유통, 인권의 유린과 같은 파괴적인 폭력에 대한 예언자적 지적과 참여를 의미한다.  따라서 언제나 세계사와 구속사는 동시에 하나님의 경륜속에 나타난다.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보다 열등하거나 우등하지 않다.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은 동시에 구원자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창조주와 구속주가 분리될 수 없듯이 구속주와 심판주는 분리될 수 없다.
현대 선교의 혼란의 원인은 성서의 권위의 상실에 있다.   성서적 복음은 언제나 개인과 사회, 영혼과 육체등의 전체를 위한 총체적인 복음이며, 성서적 구원은 '현재와 미래', '세게사와 구속사' 전체를 포함하는 포괄적인 구원이다.   예수의 성육신 사건속에 '실현된 하나님의 나라'와 '장차 실현될 하나님의 나라'가 공존하듯 기독교인의 삶과 교회의 존재역시 그러하여야 한다.   예수의 삶속에 '현재의 윤리'와 '미래의 윤리'가 하나로 나타났듯이 기독교 선교는 두가지 모두를 현세속에서 구현해야 한다.
이러한 통합이 웨슬레(John Wesley)에게서 나타난다.   그의 은총관은 인간과 세계에 대한 철저한 부정을 긍정으로 바꾸었고, 현재와 미래의 연속성과 하나님과 인간, 계시와 이성의 연속성(Continuity)을 회복시켰다.  따라서 웨슬레에게는 인간화(Humanization)에 대한 강한 충동이 있다.
또한 웨슬레의 의인(Justification)의 교리는 그리스도의 보편성 속에서 유일성을 찾게한다.   또한 복음의 보편성속에서 유일성을 갖게한다.   여전히 기독교회는 세계속에 존재하지만 세계속에 흡수되거나 동화될 수는 없다.   세계로부터 부름을 입은 교회는 이미 세상과는 분리되며, 세상으로 보냄을 받음 교회는 그 본질을 잃지않고 세계에 참여해야 하는 책임적 존재이다.   의인의 교리를 현대 선교에 있어서 교회와 복음의 정체성을 갖게한다.
웨슬레 신학의 진수인 '성화'(Sanctification)의 교리는 의인의 교리보다 그 목적(Telos)에서 앞선다.   즉 성화는 종교자체로서 구원의 목적이다.   의인은 성화를 지향하게 된다.   따라서 웨슬레의 성화의 교리는 기독교 선교의 목적과 방향을 분명하게 한다.   또한 구원의 범위를 더욱 포괄적으로 만든다.   그런데 이 성화의 교리는 단순히 내적, 개인적 차원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그 성화의 상태는 곧 외적인 열매와 사회적 성결을 의미한다.   따라서 성화의 삶은 사는 자는 자신을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않게 할 뿐아니라 사회의 변혁과 갱신의 일에 자의식적으로 참여하게 된다.
그러나 웨슬레에게 있어서 의인과 성화는 분리되지 않는다.   의인은 그 이후의 모든 삶속에 흡수되어 모든 행위의 전제가 된다.   의인의 순간 인간은 신생이라는 초기단계의 성화를 시작하게 된다.   성화가 의인을 더욱 풍성하게하듯 의인은 성화를 의미있게 한다.   의인과 성화는 선택의 문제가 될 수 없다.
이러한 의인과 성화의 관계성은 현대의 '복음화인가? 인간화인가?'의 논쟁이 무의미함을 나타내준다.   또한 복음전도와 사회참여의 '우선순위'(Priority)의 논쟁을 의미없게 한다.   즉 구원의 순서에 있어서는 의인이 논리적으로 성화에 우선하기 때문에 의인이 우선이나, 그 목적에 있어서는 성화가 의인보다 우선하기 때문에 성화가 우선이다.   그것은 '한 본질의 두 특성'(One Substance Tow Character)이다.   따라서 '복음화와 인간화' 역시도 구원이라는 한 본질의 두 속성이며, 이 구원을 이루기 위한 복음전도와 사회참여도 선교라는 한 본질의 두 속성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현대세계는 복음을 필요로 한다.   이 복음을 전해야 할 책임을 지닌 모든 그리스도인과 교회는 때를 얻든지 못얻든지 말과 행동으로 복음을 전해야 한다(딤후 4:2).   이는 듣지못한 이름을 부를 수 없고, 믿을 수도 없기 때문이다(롬 10:14).   예수의 초림과 재림사이를 채워야 하는 선교의 임무를 위임 받음 모든 그리스도인들과 기독교회는 기도와 성경연구, 그리고 성령의 무기로 무장하여야 한다.  또한 겸손과 섬김의 종의 모습으로 이 세계내에 존재해야 한다.   동시에 언제나 다른 사람들에게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그리스도를 좇아야 한다.  그리할때 복음은 말로만이 아니라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전해져 듣는이와 그의 삶을 변화시키며, 그가 속한 세계를 변화시킬 것이다(살전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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