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웨슬레의 목회훈련개발에 관한 연구 3
존 웨슬레의 목회훈련개발에 관한 연구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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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 존 웨슬레의 목회훈련의
방법과 그 실천적 적용
A. 목회 훈련의 방법
하나님의 대표자이며 성령의 도구인 목사는 자격 구비의 사람이어야 한다. 구약의 모세는 장인 이드로의 충고를 받고 그와 함께 사역할 천부장, 백부장, 오십부장, 그리고 십부장을 선택하였는데 그 자격을 보면 ①재덕이 겸전한 자 ②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 ③진실무망한 자 ④불의한 이를 미워하는 자 이 다. 신약에 들어와 목회서신에서 교회의 직분자인 감독, 장로, 집사의 자격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은 자격을 제시하였다. 감독은 ①책망할 것이 없는 자 ②한 아내의 남편 ③절제하며 근신하며 아담하며 나그네를 대접하며 가르치기를 잘 하는 자 ④술을 즐기지 않는 자 ⑤관용하며 다투지 않는 자 ⑦돈을 사랑하지 않는 자 ⑧자기 집을 잘 다스리는 자 ⑨새로 입교한 자가 아닌 자 ⑩외인에게서도 선한 증거를 얻은 자라야하고, 장로는 그 자격으로 ①책망할 것이 없는 자 ②한 아내의 남편인 자 ③비방이나 불순종하는 일이 없는 믿음의 자녀를 둔 자, 그리고 집사의 자격은 ①단정한 자 ②일구이언 하지 않는 자 ③술에 인박이지 않는 자 ④더러운 이를 탐하지 않는 자 ⑤깨끗한 양심에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 이다.
백동섭목사는 그의 저서 {목회학}에서 목사의 자격에 관하여 ①자연적인 자격 ②교육적인 자격 ③영적인 자격 - 개인적 속죄 경험이 있고, 성령으로 충만한 - 것을 제시하였다. 또한 이동섭목사는 그의 논문 {한경직 목사의 목회론}에서 교직자의 자격을 4가지로 열거하였다. ①중생해야 한다. ②피소되어야 한다. ③영안이 밝아야 한다. ④성장해야 한다.
이와같은 자격을 구비하기 위해서는 훈련이 필요하다. 웨슬레는 말하기를 "만일 사람이 천사처럼 설교한다고 하여도, 적절한 훈련이 없으면 아무 유익을 주지 못할 것이다."라고하였으며, 스케빙톤우드도 감리교를 "정밀한 훈련의 종교"(A Religion of exact discipline)라 하였다. 여기서는 목회 훈련의 방법으로 헌신 훈련, 경건 훈련, 성경탐구 훈련, 그리고 설교 훈련과 조직의 핵심이 되는 지도자 훈련을 살펴보고자 한다.
1. 헌신 훈련
웨슬레는 철저한 헌신의 사람이었다. 웨슬레는 옥스포드 대학 시절 내외적으로 철저하게 헌신된 삶을 살 것을 결심하였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금식, 기도, 성경연구, 종교서적 탐구와 구휼운동에 힘썼다.
우리는 아침과 저녁 한 시간동안 개인기도의 시간을 가졌다. 9시와 12시 그리고 오후 3시에 기도문 (Collect)을 외운다. 항상 자신을 면밀히 점검하고 은혜의 표적이 있나 지켜보았다. 그리고 항상 신앙적 열의를 지니려고 노력했다. 경건한 말을 사용하고 성경을 자주 상고하였다. 나날의 일과에서 생긴 모든 특이한 일들을 암호로 일기에 적었다. 매일 한시간은 따로 시간을 정해 명상을 했다.... 일 주일에 두번 금식하고 교회의 모든 의식을 지켰다. 매 주일마다 성례전에 참여했다. 사람들 앞에 나가기 전에는 어떠한 무의미한 말을 하지 않도록 할 말을 준비했다. 그들이 아는 한에 있어서, 그들은 초대교회 (The Primitive Church)를 그들의 표본으로 취했다.
그의 미국 선교의 목적도 "궁핍을 모면하려는 것도 아니요, 오물이나 쓰레기 같은 재산이나 명예를 얻기 위함도 아니요, 다만 영혼을 구하는 것, 전적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기 위함" 이다. 그러므로 이당시 그의 삶은 "지극히 작은 일에 있어서도 자기 자신을 부정하는 것을 하나님의 축복"으로알고 생활하였던 것이다. 그로 인하여 미국 선교 시절 그는 구원의 확실한 체험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 자신을 하나님의 것으로 끊임없이 바쳤다.
나는 생각한다. 진정으로 복음이 진실하다면 나는 안전하다. 가난한 이들을 먹이기 위하여 내 소유를 이미 다 내주었을 뿐 아니라 현재도 다 내주고 내 몸을 내주어 불사르고 물에 빠져 죽게할 뿐 아니라 하나님이 나에게 명령하시는 일이면 무엇이라도 하고 있을 뿐 아니라 어떻게 해서라도 사랑을 이루기만 한다면 그것을 따르기 때문이다. 이제는 복음이 진실하다는 것이 믿어진다. 나의 모든 것을 걸고라도 '나의 행위로 믿음을 보이리라'. 그런 기회만 주어지면 수천번이라도 그렇게 하리라.
웨슬레는 올더스게이트 회심 체험 이후 하나님께 자신을 바치는 일에 장소나 시간을 가리지 않고 더욱 헌신적이었다. 그로인하여 그에게 다가온 시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하나님이 당신의 뜻을 우리가 알게 하시려고 얼마나 여러가지로 골고루 준비를 하시는가 ! 2년 전에는 벽돌장이 날라와서 내 어깨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로부터 1년 후에는 돌이 날라와 내 양미간을 때렸다. 지난 달에는 주먹으로 한 대 맞았고 오늘 저녁에는 두 대를 맞았다. 한 대는 동리에 들어오기 전에 맞았고 한 대는 나온 다음에 맞았다. 그러나 둘 다 대수롭지 않았다. 한 사람이 있는 힘을 다해서 내 가슴팍을 쳤고 또 한 사람은 금방 피가 튀어 나오게 힘껏 내 입을 쳤지만 그들이 나를 밀집으로 때린 것보다 더 심한 아픔을 느끼지 않았기 때문이다.
웨슬레는 항상 하나님을 생각하는 사람이었으니 "나는 케스위크 (Keswick)까지 정말 멋지게 말을 타고 갔는데 가는 동안 내 마음은 하나님을 생각하였다."라고하였다.
1753년 11월 26일 (당 51세) 웨슬레는 극도로 몸이 쇠약해져서 자신이 하나님께 부름받을 때가 가까운 줄로 알았다. 그리하여 자신의 묘비에 비문을 새기도록 명하였으니, 그 내용을 보면 그가 하나님께 자신을 얼마나 바치고자 하였는가를 알 수 있다.
이곳에 존 웨슬레 잠들다. 활활 타는 불 속에서 꺼낸 아직도 불붙은 나무인 그는 결핵으로 51세를 일기로 사망하다. 모든 부채를 청산하고 10파운드도 재산으로 남기지 못하고 가다.
나같은 무익한 종에게 하나님이여, 자비를 베푸소서 !
기도를 드리며...
그러나 그는 장수하였다. 80세가 넘어서도 그는 주께서 자기를 다스리는 것을 믿음으로 고백하였으니 그의 헌신의 불길은 조금도 시들지 않았다.
81세인 지금 21세 때와 다름없는 힘이 생기며 오히려 젊었을 때 앓았던 두통, 치통 등 육체적인 질병이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우리로선 오로지 '주께서 다스리신다 !'고 말할 수 밖에 없다. '살아있는 순간까지 그분을 위해 살게 하소서 !'
그는 하나님께 부름받기 1년 전에도 끝까지 헌신의 사람이었다.
돈이 한 푼도 없으니 누구에게 돈을 남겨 줄래야 줄 수도 없다. 그러나 내가 죽은 다음 책들이 팔리면서 돈이 생길 것으로 생각되어 그돈을 어떻게 썼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유언서에 덧붙였다. 그러나 살아있는 동안 조금이라도 선한 일을 하고 싶다. 일단 죽은 다음 어떻게 돌아갈지 누가 알 수 있으랴.
웨슬레는 1791년 2월 24일 하나나님의 부름을 받을 때까지 철저하게 자신을 하나님께 바쳤으니, 그의 삶은 실로 헌신의 지속이었다.
웨슬레는 자신이 이처럼 하나님께 헌신적이었듯이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의 삶이 헌신적이 되도록 훈련시켰다. 그는 헌신을 신도회 가입 조건으로, 속회, 반회, 참회자반의 규칙으로 실천해 나갔으니 만약 여기에 불응하는 사람은 즉시 그 모임에서 추방되었다.
2. 경건 훈련
웨슬레의 경건 생활은 가정 생활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우리집 아이들은 말을 시작하면서부터 주기도문을 가르쳐서 배우게 했는데 항상 잠자리에 들 때와 일어날 때 주기도문을 하도록 하였다. 점점 자라면서는 부모들을 위한 기도와 그 밖의 몇가지 기도를 덧붙여 하게 하였다. 그리고 그들이 기억할 수 있을 정도로 짤막한 교리와 성경 귀절들도 배우게 하였다.
우리 아이들은 아주 어려서부터 말을 하거나 걷는 것을 제대로 하기 전에 이미 안식일을 다른 날과 구별하도록 가르쳤다. 그리고 곧 이어서 가정예배를 드릴 때는 조용히 하도록 가르쳤고, 그 다음에는 무릎을 꿇거나 말을 하지 못해도 몸짓으로 표현해서라도 축복을 원하는 기도를 하도록 가르쳤다.
웨슬레의 어머니인 수산나여사는 자녀들을 철저하게 훈련시켰다. 그녀는 규칙들을 제정하였고, 자녀들이 질서를 따라 하나님을 경외하며 경건하게 살도록 하였다. 그 규칙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① 비겁한 마음을 먹거나 벌을 두려워하는 것 때문에 나중에 가서는 고치기 어려운 거짓말을 하는 버릇이 생길까봐 늘 살폈다. 그래서 이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누구든지 잘못하였다고 생각될 때 그것을 솔직하게 고백하고 다시는 안하기로 약속하면 때려주지 않는다는 법을 세워 놓았다.
② 거짓말이나 훔치는 일이나 교회 안에서 장난치는 일이나 주일날 장난 치는 일이나 복종을 안하는 일이나 싸우거나 하는 등 죄가 되는 일을 했을 때는 절대로 벌을 주지 않고 지나치는 법은 없다.
③ 똑같은 잘못 때문에 두번 야단을 치거나 매를 때리는 법은 없다. 그리고 일단 고치고 난 다음에 다시 그것을 책망 해서는 안된다.
④ 특히 스스로 생각해서 순종하는 모습을 보였을 때는 항상 칭찬을 해 주고 결과에 따라서 상도 준다.
. . .
⑦ 약속을 하면 엄격히 지켜라.
이같은 가정에서의 경건 훈련은 그에게 크나큰 영향을 미쳤다. 그는 미국 선교를 위하여 가는 배에서도 경건 훈련을 지속하였다. 그 당시 생활은 다음과 같았다.
우리는 이제 약간 규칙적인 생활을 하기 시작하였다. 평상시의 우리의 생활은 이랬다. 새벽 4시에서 5시까지는 우리 각자의 개인 기도 시간으로 했고, 5시에서 7시까지는 함께 성경을 읽었는데 초대 교회의 문헌들을 세심하게 비교하면서 연구하였다. 7시에는 조반 식사를 하고 8시에는 공동기도 시간을 가졌다. 9시에서 12시까지는 나는 독일어 공부를 하였고 델라모트씨는 희랍어 공부를 했고 내동생은 설교문을 썼고 잉험씨는 아이들을 가르쳤다. 12시에는 함께 모여 우리가 지난번 모임을 가진 이후에 우리 각자가 할일을 서로 이야기하고 다음 모임 전에 할 것으로 계획해 놓은 것을 함께 이야기 하였다. 그리고 1시쯤 해서 함께 점심식사를 하였다.
나아가 죠지아 선교시절 그는 스스로 네가지 결의를 하였고, 누가 보든 안보든 경건하게 살고자 하였다.
① 절대적으로 개방성을 띠우고 내가 대화해야 할 상대와는 조금도 숨김없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눈다.
② 계속해서 진지하게 노력하며 잠시라도 경박한 행동이나 웃음거리를 즐기는 일에 빠지지 않는다.
③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지 않는 말은 전대 하지 않는다. 특히 세상 일에 관하여 말하지 않는다. 아니,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할지라도 나는 안한다. 그것이 나에게 무슨 관계가 있는가 ?
④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지 않는 일은 결코 즐기지 않는다. 내가 하는 모든 일에 있어서 매 순간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그러기에 내가 하나님께 감사를 드릴 수 없는 일은 어떤 것이라도 하지 않는 다.
1738년 5월 24일 올더스게이트가에서 복음적 신앙체험을 한 이후에도 웨슬레의 규칙적인 경건생활은 변하지 않고 계속 되었다. 1739년 4월 12일 그의 일기에 기록된 공적 생활을 보면 이사실이 명확하게 입증된다.
나의 정상적인 공적 활동은 대체로 다음과 같았다. 매일 아침 나는 기도회를 갖고 뉴우게이트에 가서 설교하였다. 매일 저녁 한 두 모임에 가서 성경을 해석하고 가르쳤다. 월요일에는 오후에 브리스톨 근처에 가서 야외 설교를 하였다. 화요일에는 바스와 투 마일 힐을 번갈아 찾아가서 설교를 하였고, 수요일에는 ... 목요일에는 ... 금요일에는 ... 토요일 오후와 일요일 아침에는 보올링 그린에 가서 ... 일요일 11시에는 한남산 근처에서, 2시에는 클맆튼에서, 5시에는 로우즈 그린에서 설교하였다. 이렇게 해서 날이 갈수록 나의 힘이 더해갔다.
웨슬레는 본인이 경건하게 살 뿐 아니라 그를 돕는 평신도 보조자들에게 경건훈련을 시키고자 엄격한 규율을 제정하였다. 그것은 아침 5시 전에 일어나서 6시부터 12시까지는 기도와 독서를 하고, 정오부터 하오 5시까지는 심방을 하고, 5시부터 6시까지 하나님께 은밀한 기도를 하고, 하루에 적어도 두번이상 전도하고, 하루 24시간 중 5시간은 반드시 독서와 성경공부를 하고, 설교는 간단히 하고 예배는 한 시간 안에 끝마치 하였다.
3. 성경탐구 훈련
한책의 사람 (homo unius libri)인 웨슬레는 성경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다는 사실을 믿게 하는 네 가지의 웅대하고 강력한 논증을 하였다. 즉 기적들과 예언자들, 교리의 선함과 저자들의 도덕적 성품이 그것이다. 모든 기적들은 신적인 능력으로부터 흘러 나온다. 모든 예언자들은 신적인 이해력으로부터, 교리의 선함은 신적인 선함으로부터, 그리고 저자들의 도덕적 성품은 신적인 거룩함으로부터 흘러 나온다. 그러므로 기독교는 네가지 웅대한 기둥들, 즉 하나님의 능력과 이해력, 선함과 거룩함 위에 세워졌다. 신적인 능력은 모든 기적들의 근거이며, 신적인 이해력은 모든 예언자들의 근거이고, 신적인 선함은 교리의 선함의, 신적인 거룩함은 저자들의 도덕적 성품의 근거이다.
나아가 웨슬레는 성경은 선한 사람들이나 천사들, 악한 사람들이나 악마들의 창작이 아니며 하나님의 창작이라 하였고, 나아가 성경의 신적 영감을 주장하는 간결하고 강력한 논증을 세가지로 제시하였다.
① 그것은 선한 사람들이나 천사들의 창작일 수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기들이 그 책을 쓰면서 '이렇게 주님이 말씀하셨다'고 하는 거짓말을 계속 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할 수도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② 그것은 악한 사람들이나 악마들의 창작일 수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모든 의무를 규정하고 모든 죄악을 금하며 그들의 영혼을 영원한 지옥행으로 선고하지 않았을 것이다.
③ 그러므로 성경은 확실히 신적 영감에 의하여 주어진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웨슬레는 성경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다는 사실을 굳게 믿는 사람이었다. 나아가 그는 성경을 최고의 권위로 받아들였다. 즉 웨슬레에게 있어서 성경은 하늘 가는 길을 가르쳐 주는 안내서요, 모든 계시의 시금석으로 신앙과 실생활의 최고의 권위었다.
웨슬레는 '우리 영의 증거'(The Witness of Our Own Spirit)라는 그의 설교에서 "선악의 그리스도교적 표준은 하나님 말씀 곧 신구약 성경의 문서입니다. 성령의 감동을 받고 옛 예언자들이나 거룩한 사람들이 쓴 모든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감으로 쓰여졌고, 참으로 교리를 위하여, 혹은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을 가르치는 일에 유익하며 그것에 반대되는 것을 책망하고 잘못을 고쳐 주며,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한 것이 성경의 전부다" (딤후 3:16)라고 하였다. 즉 웨슬레에게 있어서 성경은 모든 사항에서 그의 양심이 적용되어야 할 전체적이고도 유일한 외적 기준이 되었던 것이다.
웨슬레에게 있어서 성경탐구 방법은 묵상이었다. 그는 매일 경건하게 성경을 읽으며 묵상하는 것을 통하여 평생 경건한 삶을 이끌어 나갔다. 그는 {구약성서 주석} 서문에서 성경 묵상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썼다.
이것이 하나님의 일들을 이해하는 길이다. 밤낮을 가리지 말고 그것을 묵상하라. 그러면 유일하고 참되신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까지도 알 수 있는 최고의 지식을 얻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 지식은 당신으로 하여금 그를 사랑하도록, 너의 온 마음과 온 혼과 온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도록 이끌어 줄 것이다. 왜냐하면 그가 먼저 너를 사랑하셨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던 그 모든 마음이 네 속에도 있지 않겠는가 ? 그 결과 너는 이책에 쓰여져 있는 모든 거룩한 기질을 기쁨으로 경험하는 한편 너는 너를 부르신 그분이 거룩하신 것처럼 외적인 모든 대화에서도 거룩하게 될 것이다.
웨슬레는 이와같은 목적에 어울릴 수 있는 방식으로 성경을 읽고자 한다면 다음과 같이 하라고 방법을 제시해 주었다.
① 할 수 있는 대로 매일 아침과 저녁에 그 목적을 위하여 약간의 시간을 배정하라.
② 여유가 있다면 매번 구약에서 한 장, 그리고 신약에서 한 장을 읽으라. 그렇지 못하면 단 한 장만이라도 읽든지 일부분만이라도 읽으라.
③ 성경을 읽되 단일한 눈으로, 하나님의 전체적인 뜻을 알고 그것을 행하려는 확고한 결심으로 읽으라. 그의 뜻을 알려면 이렇게 해야 한다.
④ 신앙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가지라. 그리고 저 웅장하고 근본적인 교리를, 원죄와 믿음으로 말미암은 의인, 중생, 내적인 성결과 외적인 성결 사이에 있는 연관성과 조화에 대한 신념을 가지라.
⑤ 성경은 성령에 의하여 쓰여졌기 때문에 그 동일한 성령에 의해서만 이해될 수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읽기 전에 항상 진실하고 간절한 기도가 있어야 한다. 우리가 읽은 것이 우리의 마음에 새겨지도록 하기 위해서는 역시 기도로 끝마쳐야 한다.
⑥ 읽을 때 잠깐씩 쉬면서 우리가 읽은 것에 의해 우리 자신을, 우리 자신의 마음과 삶을 반성해 보는 것도 유익할 것이다. 그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당신의 은혜로운 뜻을 준행하게 하신 일에 대하여 찬양하게 될 것이고, 그렇지 못함을 깨달을 때에는 겸손히 기도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네가 어떠한 빛을 받은 자라면 최선을 다하여 그것도 즉시로 사용하여야 한다. 조금도 지체하지 말라. 네가 무슨 결심을 하든지 할 수 있는 대로 첫 순간에 실행하기 시작하라. 그러면 이 말씀이 진실로 현재와 영원의 구원에 이르는 하나님의 능력임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4. 설교 훈련
웨슬레는 진정 일생을 설교로 산 사람이었다. 1725년 (22세) 옥스포드주 남방 라이에서 처녀 설교를 한 이후 매일 2,3회씩 설교하였으며 주당 15회씩 평균해서 42,400회의 설교를 하였다.
미국 죠지아주로 가는 배에서 아무 준비없이 즉석 설교를 하기도 하였으며 사 나에서 목회활동을 시작한 것도 설교를 함으로였다.
1738년 5월 24일 구원의 놀라운 체험이 있은 후 그의 설교는 내용과 방법에 있어서 완전히 달라졌다. "나의 모든 설교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그리스도가 주춧돌이 되었다. 그 내용은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는것이었다. 그로 말미암아 그의 설교에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으니 한 예를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세인트 토마스 교구에는 미쳐 날뛰는 젊은 여인이 있었는데 계속해서 소리를 지르고 자신을 몹시 괴롭혔다. 나는 그 여인에게 말을 해주고 싶은 강한 욕망을 느꼈다. 내가 말을 시작하자 그 여인은 잠잠하였다. '나사렛 예수께서는 당신을 구원하실 수 있는 분이고 또 당신을 구원하실 분입니다.'라고 그 여인에게 내가 말을 해주는 동안 그 여인의 빰에는 눈물이 계속 흘러내렸다.
웨슬레에 있어서 1739년은 중요한 해이다. 왜냐하면 회심 이후 본격적으로 야외설교를 통한 전도활동에 주력하기 시작한 해로써 1739년 3월 29일 화이트필드의 요청을 받고 브리스톨에 가 야외설교를 시작하여 4 2일에는 약 3,000여명에게 설교하였고 킹 우드의 한남산 정상에서 약 1,500여명되는 사람에게 설교 하면서 브 스톨을 중심으로 순회하며 설교를 하였다.
웨슬레는 복음을 전하면서 바울과 그 일행이 당했던 수 많은 환난과 핍박과 어려움을 겪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웨슬레는 죄인들을 찾아가 그들에게 복음을 전했다. 그가 하나님께 부름을 받기까지 설교에 대한 그의 열정은 전혀 식지 않았다.
스피톨필즈 (Spitolfields) 교회에서 '하나님의 전신갑주'에 관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설명을 하였다. 샤드웰 (Shadwell) 성 베드로 교회에서 오후에 집회를 가졌는데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 한가지 필요한 것으로 중요한 진리를 말하는 동안 진지하게 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제라도 더 나은 것을 선택하기를 바랬다.
웨슬레는 {발성과 몸짓에 관한 지침}(1749년, Drections Concerning Pronunciation and Gesture)에서 설교시 발성과 몸짓에 관하여 지침을 주었는데, 그 첫부분은 어렵지 않고 즐겁게 들을 수 있도록 어떻게 말할 수 있겠는가에 대한 것이었다. 그것에는 좋은 권고로 가득차 있었다. 그는 주장하기를 언사의 첫번째 과제는 잘 들리게 말하고 쉽게 이해시키는 것이라고 하였다. 맑고 큰 성대는 큰 재산이지만 타고 나지 못한 사람들도 기본적인 발성법에 주의를 집중함으로써 충분히 개발할 수 있다고 하였다. 나아가 웨슬레는 자기의 설교자들에게 고함치는 위험에 대하여 경고하였다. 존 킹 (John King)에게 "당신의 영혼이 멸망하는 것에 대하여 더 이상 절규하지 마시오 .... 나는 가끔 크고 열렬하게 말합니다. 그러나 나는 절규하지 않습니다".라고하였으며, 그리고 사라 말렛 (Sala Mallet)에게 "절규하지 마시오. 말할 때 당신의 자연적인 음량대로 하시오. 지나치면 듣는 사람에게 거슬립니다." 라고 훈련을 시켰던 것이다.
웨슬레는 몸짓은 얼굴과 손의 조용한 언어라고 하였다. 그는 능력 부족을 몸짓으로 보상하려는 풍자식 설교가들 (Windmill Preachers)의 무용론에 대하여 자세히 밝혔다. 그는 설교자의 자세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갖고 훈련시켰다.
그대들의 회중 앞에서의 처신은 진지하고 신중하고 엄숙한 것이 되게 하라 .... 그대의 제스처든지 말씨든지 혹은 발언이나 무엇이든지 모양없고 부자연스러운 것을 조심하라 말에나 옷차림에 버릇없이 함을 주의하라.
웨슬레는 연회를 통하여 설교에 대하여 훈련을 시키고자 의도하였다. 제 1회 연회에서는 "허황되거나 또는 비방하는 류의 설교를 들을 때 우리는 어떠한 태도로 임할까 ?" 하는 질문에 대하여 "만일 그 설교가 사람에 관계되는 것이라면 우리는 다만 침묵을 지키는 것으로 족하되, 만일 그것이 하나님의 사업과 성령을 모독하는 것이라면 당연히 퇴장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경우이건 기회를 보아 그런 설교자에게 직언을 하거나 서신으로 권고함이 좋을 것이다." 라고 하였다. 또한 "설교의 일반적인 최선의 방법은 무엇인가 ?" 라는 질문에 "초청하고, 신복 (설득)시키고, 그리스도를 전달하고, 그리고 북돋아 주는 것이다. 이것은 어느 설교에나 있어야 한다"라고고하였다.
제 3회 연회에서 "경험상 어떤 설교가 가장 큰 은헤를 끼치는가 ?" 하는 물음에,
① 청중의 생활에 가장 관계가 깊고, 설득력이 있고, 실제적인 설교.
② 제사장으로서의 그리스도와 그의 속죄를 강조하는 설교.
③ 그리스도를 멸시하고 알지 못하는 인간의 가증스러움을 나타내는 설교라고하였다.
제 4회 연회에서는 "전도인은 얼마나 자주 설교할 수 있는가 ?"하는 물음에 "주일이나 그 밖에 특수한 경우가 아니면 하루 두번 이상 설교하지 말 것이다. 특별한 경우에 관해서는 재량것 할 것이다"라고하므로 설교의 횟수에 대하여 지침을 주었다. 나아가 "설교에 관하여 이들에게 유익한 조언이 없겠는가 ?" 라는 물음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조언하였다.
① 일정한 시간에 설교를 시작하고 그치라.
② 자작 찬송을 부르지 말라.
③ 교중 앞에서 몸가짐을 근엄하고 무겁게 그리고 엄숙하게 하기를 힘쓰라.
④ 설교에 쓸 성구는 가장 평이한 것을 택하라.
⑤ 성경 본문에서 떠나 우왕좌왕 하지말고 본문에 집착하여 주목적을 향해 나가라.
⑥ 언제나 설교제목은 청중에게 맞게 하라.
⑦ 너무 지나치게 비유적이나 추상적으로 말하지 말라.
⑧ 몸가짐이나 발음에 거북살스럽거나 부자연한 점이 없도록 주의하라.
⑨ 서로의 결점을 발견하는대로 충고하여 주라.
이상의 내용을 요약하면, 웨슬레는 설교로 일생을 산 목회자였다. 올더스게이트가에서의 체험은 그로 하여금 둘도 없는 사도직의 진정한 출발점이 되게 하였다. 그에게 있어서 야외설교는 짐이었으나 많은 영혼을 구하는 방법이 되었다. 웨슬레는 {발성과 몸짓에 관한 지침}에서 설교시 행하는 자세 및 태도에 대하여 가르쳤고, 그를 따르는 사람들을 훈련시켰다. 연회는 그에게 있어 설교훈련을 시키는 정식 의결기관으로 활용 되어졌다. 설교훈련은 그의 목회자 훈련에 있어서 중심이 되었다.
5. 지도자 훈련
a. 평신도 보조자 (Lay - Assistant)
평신도 보조자는 1744년부터 분명하게 활동하기 시작하였고, 그 명칭도 다양하게 사용되어 처음에는 평신도 보조자로 불리웠다가, 협력자 (Helper)가 되고 또 평신도 설교자 (Lay - Preacher)로, 그리고 다시 이들 중 대부분은 지방설교자 (Local Preacher)로 남았고 소수는 순회 설교자 (Itinerant)가 되었다. 그리고 후에 이들은 감리교회의 순회구역 (Circuit)의 전도인이 되었다.
이들은 현재 전도사나 장로같은 직분으로 보인다. 이 평신도 보조자들은 웨슬레에게 직접 지도를 받았다. 스티븐스 (Stevens)는 "순회 전도자들은 그 단체내의 어려움을 다루며 부랑자들을 대면하며 어떤 기후에도 용감하며 보수를 받지 않고도 살아 나갈 수 있도록 가르침을 받았다. 그들의 여정에서 이변이 생기지 않는 한은 4시에 일어나서 5시에 설교하고 소책자를 전해 주러 다니며 규칙에 따라 살고 두려움이 없이 죽도록 가르침을 받았다."고 하였다.
웨슬레는 함부로 지도자를 선택하지 않고 신중을 기했다. 1746년 5월 12일부터 15일까지 열렸던 제 3회 연회에서 장정문제에 대하여 토의하면서 하나님께로 부터 전도의 사명을 받았다고 믿는 사람들을 선택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문답을 하였다.
문 8. 성령의 감화를 받아 하나님께로 부터 전도의 사명을 받았다고 믿는 사람들을 어떻게 그 진가(眞假)를 시험할까 ?
답. 아래와 같이 질문을 할 것이다.
1. 그들은 자기들이 믿는 분을 알고 있는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는지, 하나님외에 다른 것을 욕망하고 추구하지 않는지 그들의 담화에 있어서 모든 면으로 거룩한지 알아볼 것.
2. 그들이 그 일을 위하여 재능과 은혜가 있는지, 어느 정도의 명확하고 건전한 지성이 있는지, 하나님의 일에 관해서 올바른 판단력을 가지고 있는지, 믿음으로 의를 얻는다는 정당한 관념을 가지고 있는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어느 정도의 언변을 주셨는지, 그들이 이론 정연하게, 유창하게 명백히 발표를 할 수 있는지 등을 알아볼 것.
3. 그들이 어느 정도의 성공을 거둔 일이 있는지, 그들이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켜 설복시키도록 말로만이 아니라 실제로 그들의 전도로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의 끝없는 사랑을 인식하여 용서를 받은 사람이 있는지 등을 알아 볼 것이다. 그리하여 이 세가지 조건이 긍정적이라면 그런 사람은 하나님께로부터 전도의 사명을 받은 사람이라고 인정할 수 있다. 이 조건들은 그가 하나님의 성령의 감화를 받은 증거가 된다고 할 것이다.
웨슬레는 이런 사람들을 지도자로 선발하기 위하여 죄사함을 확실히 받은 신앙고백의 단체인 반회와 선발신도회에서 평신도 보조자들을 선발하였다. 나아가 웨슬레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증거가 있는지 없는지에 대하여도 철저한 검증을 하였다.
문 9. 그러나 어떤 특정 인물에게 이런 증거가 있는지를 어떻게 알수 있는가 ?
답 1. 우리는 그런 사람에게 우리의 보조자중 한 사람을 보내어 그의 설교도 들어보고 그로 더불어 위의 조건들에 대해 사실도 해볼 수 있다.
2. 우리 자신들이 직접 그의 설교도 듣고 그와 더불어 이야기도 해볼 수 있다.
3. 우리는 그의 설교로 죄의 용서를 받았다는 사람을 만나 철저히 알아볼 수도 있다.
4. 우리는 구두로나 글로 자기가 전도의 사명을 받았다고 믿는 이유를 진술하거나 쓰도록 해볼 수도 있다.
5. 우리는 일반 회중들과 함께 금식하고 기도하면서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판단하고 실행하도록 하여주기를 구할 것이다.
웨슬레에게 있어서 평신도 보조자의 선정은 그의 목회사역에 핵심 요소였던고로 매우 심사숙고 했음을 알 수 있다.
이제 웨슬레가 평신도 보조자들을 전문적인 사역자가 되게 하기 위하여 철저한 목회 훈련을 시켰는데 그 지침들을 보고자 한다.
(1) 평신도 보조자의 직무
교역자가 없는 경우에 양떼를 먹이고 지도하고 다스리되,
㉮ 조석으로 그들에게 성경 말씀을 해석해 준다.
㉯ 매주 연합신도회와 반회와 선발신도회 그리고 참회자반을 소집 한다.
㉰ 각 속회를 월 1회 방문한다.
㉱ 신도 사이의 이견을 듣고 조정해 준다.
㉲ 말썽을 일으키는 신도를 심사하여 시정해 주고 반회나 신도회에서의 제소를 받는다.
㉳ 집사나, 지도자들이나, 선생이나, 건물관리인들이 각자의 직무를 수행하는 가를 살핀다.
㉴ 집사나 반회와 속회의 지도자들을 만나보고 또 그들의 회계장 부를 검사한다.
(2) 평신도 보조자의 자격
㉮ 신앙적인 면에 있어서 : 마음속에 하나님의 사랑이 있고 언행이 거룩한 자라야 할 것이며 사업을 감당할 재능과 은혜를 입은 자라야 하고, 과거 이력중에 전도에 방해 요소가 없는 자라야 할 것이다.
㉯ 지식함양에 있어서 : 유익한 서적을 읽고, 아침 시간에 독서하고, 하루 5시간 정도 독서를 하라. 이같이 못하면 전도 사업을 그만두고 본연의 직장으로 돌아가라.
(3) 평신도 보조자들을 위한 설교지침
(4) 평신도 보조자의 수칙
㉮ 근면할 것. 잠시라도 일없이 지내지 말것. 그리고 불필요한 일에 시간을 소비하지 말것. 더구나 외지에 가 있을 때에는 각별히 시간 낭비를 말것.
㉯ 항상 근엄한 태도를 가질 것. 그대의 '모토'는 "주앞에서 거룩함을 지킬 것"을 삼으라. 모든 일에 신중을 기하고 경솔한 행동과 처사는 지옥불을 피하듯 하라. 파안대소하는 것은 저주와 맹세처럼 여겨 삼가라.
㉰ 여인을 가까이 말라. 그들을 사랑하되 그들과 접촉하지는 말라. 세속적 풍습은 우리에게 아무 가치가 없다.
㉱ 아무의 험담도 믿지 말라. 남의 잘못을 그저 볼 뿐이다. 그러나 동정적으로 이를 대하고 모든 일에 건설적 태도를 가지라. 판사는 언제나 피고 편에 서는 것이다.
㉲ 누구의 험담도 말라. 남의 험담을 하면 그것은 결국 암처럼 그대를 먹어 들어갈 것이다. 남의 험담을 들었을 때라도 같이 응수하지 말고 무슨 생각이나 그대로 발설말고 가지고 있다가 당사자를 만나서 확인하라.
㉳ 그대가 그 사람이 무슨 잘못을 저질렀다고 생각하면 그것을 모든 사람에게 분명히 그리고 될수록 빨리 말하라. 그렇지 않으면 이것이 그대의 마음속에서 곪아 터질지도 모른다. 될수 있는대로 빨리 서둘러서 마음의 불을 끄도록 하라.
㉴ '신사인양' 무슨 일이나 하지 말라. 그대는 이런 신사투의 모습과 무관한 것이 마치 무도 교사의 모습과 마찬가지이다. 그대는 모든 사람의 종임을 기억하라.
㉵ 그대는 죄 외에는 아무것도 부끄러워 말라. 시간이 있어서 남의 심부름으로 장작을 운반하는 것이나, 물을 길어 주는 것이나, 그대의 신을 닦는 것이나, 남의 신을 닦아 주는 것이라도 부끄러운 일은 아니다.
㉶ 아무의 금품도 받지 말라. 만일 누가 그대가 주릴 때 음식을 제공하거나 필요할 때 옷을 준다면 그것은 받아도 무방하다. 그러나 은이나 금을 주는 것은 받지 말라. 우리는 복음을 전함으로 치부하였다는 말을 들어서는 안된다.
㉷ 나의 동의없이 빚을 쓰지 말라.
㉸ 시간을 잘 지키라. 무슨 일이나 꼭 제시간에 하라. 그리고 우리의 규칙을 엄수하고 그것을 변경하지 말라. 지키되 책벌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양심을 따라서 하라.
㉹ 무슨 일이나 나 자신의 뜻대로 말고, 복음의 아들로서 하라. 그리하여 우리의 지시를 따라 그대의 시간을 선용하되 양무리의 집을 방문하며(특히 환자를 각근히 문병하며), 그리고 우리가 때때로 권고한대로 독서와 명상과 기도에 힘쓰라. 무엇보다 그대가 우리와 함께 주님의 포도원에서 일을 하는 이상 어느 때, 어느 장소에서나 그의 영광에 합당하다고 우리가 판단하는 대로 우리의 지시를 따를 각오를 가지라.
마틴 쉬미트 (Martin Schmidt)는 평신도 보조자의 규칙을 초기 기독교 뿐 아니라 수도승적 청교도주의 (Monastic Puritanism)적인 정신을 반영한 것이라고 평가하였다.
(5) 평신도 보조자의 독서
웨슬레는 평신도 보조자들의 지식 함양에 있어서 자신이 읽은 책들 중에서 유익하고 건전한 책들을 선정하여 그들로 하여금 읽게 하였다.
살루스트 (Sallust), 시이저 (Caesar), 씨세로 (Marcus Tullius Cicero), 에라스무스 (Erasmus), 캐스텔리오 (Cebastian Castelleo, 1515-1563), 테렌스 (Terence), 버어질 (Virgil), 호레이스 (Horace), 비다 (Marco Giralomo Vida, 1489-1566), 희랍어 성서 (Greek Testament), 에픽테터스 (Epictetus), 플라토 (Plato), 익나시우스 (Ignatius), 에푸라임 사이러스 (Ephraim Syrus), 호머 (Homer), 희랍 격언집 (Greek Epigrams), 뜌포트 (James Duport, 1606-1679), 어쉬감독 설교집 (Bishop Ussher's Sermons), 안트 (Johann Arndt, 1555-1621, 루터교 경건주의자), 뵘 (Anthony Willam Boehm, 1673-1722), 날슨 (Valentine Nalson, 1683-1723), 파스칼 (Pascal), 푸랑케 (August Hermann Franke, 1663-1727, 저명한 독일 경건주의자), 겔 (Robert Gell, 1595-1665, 켄터베리 대감독 보좌목사)등의 저서와 기타 우리가 준비한 소책자를 읽을 것이다.
또한 웨슬레는 평신도 보조자를 돕는 보좌인 들을 위해서도 생활일과표와 읽어야 할 서적을 제시해 줌으로 보죄인들도 철저하게 목회 훈련을 시켰다.
1. 언제나 4시에 기상할 것
2. 오전 4시부터와 5시까지와 오후 5시부터 6시까지 일부는 명상과 기도에 쓰고 일부는 성경을 2,3절 혹 1,2장 정도 읽고, 일부는 실용적인 신학서류를 읽되, 특히 헨리 스쿠갈 (Henry Scougal, 1650-1678, 스코틀랜드인)의 "인간 영혼 속의 하나님의 생명", 이라는 책이라든가, 천로역정이라든가, 로씨의 저서든가, 비버리지 (Wm, Beveridge, 1637-1708)의 수상록이라든가, 헤이린 (John Heylyn, 1685-1759, 런던 St. Mary-le-Strund 목사)의 기도서, 할리버튼 (Mr. Halyburton, 1674-1712, 스코틀랜드 St. Andrew 신학교 교수)의 자서전과 드렌티 (Monsiewr De Renty 불란서 귀족)의 전기등을 읽을 것이다.
3. 오전 6시부터 12시까지는 1시간을 조반에 쓰고, 그 나머지는 아래 열거한 책들을 기도와 함께 순서적으로 정독하라, 피어슨 감독 (Bishop John Pearson, 1613-1686, Chester 감독)의 '신조에 대하여'와 펠 감독 (John Fell 1625-1686, Oxford 감독)의 '바울서신주해'와, 뵘 (Anthony Wm Boehm 1673-1722, St James, 교회목사)과 날슨 (Valentine Nalson, 1683-1723, York주 St, Martin 교회 부목사)씨의 설교집과, 파스칼의 명상록과, 우리 회가 발간한 소책자들과 시가들과, 밀턴의 실락원과, 케이브목사 (Wm Cave 1637-1713 London, Allhallows 교회목사)와 풀류리 (Claude Fleury, 1640-1723, 불란서, 궁중목사, 교회 역사가)의 원시 기독교와 엑하드 (Mr. Laurence Echard, 1670-1730)의 교회사 (예수 탄생시부터 콘스탄틴 대제까지의)등을 읽을 것.
이상으로 웨슬레가 평신도 보조자를 어떻게 선발하였으며, 목회 훈련을 어떻게 시켰는가를 살펴 보았다. 이들은 수 많은 영혼을 구원시켰고, 훗날 온전히 헌신하여 목회자가 되기도 하였다.
b. 속 장 (Class Leader)
웨슬레는 신도회 마다 그 안에 12명씩의 속회를 구성하고 그 중에서 가장 신임할 수 있는 사람을 속장으로 임명하여 속회를 돌보게 하였다. 이 속장의 임명 및 면직은 웨슬레 자신이나 담임 목사들이 하도록 하였다. 속장의 직분은 부목회자(Sub-Pastor), 위임받지 않은 교역자 (Non-Commissioned Officer), 그리고 영적 경찰관 (Spiritual Police)등으로 다양하게 서술되었으며, 이러한 직분을 감당할 수 있도록 속장은 영적인 지도력과 목회적, 행정적 지도력이 요청되었는 고로 웨슬레는 철저한 목회 훈련을 실시하였다.
웨슬레는 연합신도회 총칙 (General Rules of the United Societies) 제 3조에서 속장의 임무 두가지를 명시하였다.
① 자신의 속회의 회원을 적어도 일주일에 한번씩 찾아본다. 이는 그들이 가난한 자의 구제를 위하여 기꺼이 드리는 것을 받고, 그들의 영혼이 얼마나 번성하는가를 묻고, 또한 그럴만한 사태가 생길 때 조언하고 책망하고 권면하기 위해서이다.
② 목사와 신도회의 집사를 일주일에 한번은 만난다. 이는 집사에게 지난 속회의 헌금을 전해주고, 각 회원의 헌금 대장을 보여주며, 또한 목사에게 병든 사람, 문란하게 생활하는 사람, 돌이키지 않는 사람등을 알려 주기 위해서이다.
이 두가지 임무를 중심으로 하여 속장의 임무를 좀 더 세밀히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① 속장은 매주간에 속회원을 찾아보고 목요일에 모이는 속회에 참석 시킬 것
② 속장은 속회에 모일 때 마다 속회원이 헌금을 내도록 촉구할 것.
③ 속장은 매주간 유고 속회원을 찾아 심방할 것.
④ 속장은 매주 속회 일지를 기록하여 속회 인도자가 보도록 할 것.
⑤ 속장은 매주 화요일 저녁마다 모이는 속장들의 모임에 빠짐없이 참석할 것.
그리고 속장들 가운데 유능한 속장은 속회 인도자로 선발되기도 하였다. 웨슬레는 속장을 철저하게 훈련시켰을 뿐 아니라 적절하게 목회 사역에 동참시킴으로 신도회의 영적성장을 이루고자 목회하였다.
c. 집 사 (Stewards)
집사는 속회의 속장과 같이 감리교의 기둥이라고 할 수 있는 평신도 지도자이다. 이 명칭에 대하여 노종해 목사는 유 로 번역하였고, 김영운 목사는 사로 번역하였다. 여기서는 집사로 통일하고자 한다.
1744년 6월 25일부터 29일까지 열렸던 제 1차 연회 마지막 날인 29일 (금) 집사의 직무와 수칙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문답을 하였다.
문 6. 집사의 직무는 무엇인가 ?
답 1. 신도회의 일반 사무를 처리한다.
2. 각 속장들에게 헌금을 수합한다.
3. 때때로 필요한 지출을 한다.
4. 빈자에게 구호금을 전달한다.
5. 공유건물의 청소와 수리를 관리한다.
6. 재정 수지 상황을 장부에 게재 보관한다.
7. 보조자 (부목)에게 집과, 학교와, 반회와, 신도회의 규칙이 엄수되고 있는지를 보고하여야 한다.
8. 필요한 경우에는 목사에게 보고하라.
9. 보조자가 혹시 신앙도리나 생활에 오류가 있다면 사랑으로 이를 충고할 것이다.
10. 만일 그 잘못을 시정하지 않을 때에는 이 사실을 목사에게 알릴 것이다.
11. 매주 동료집사와 만나 위의 모든 조항에 대하여 상의를 하라.
문 7. 집사의 수칙은 무엇인가 ?
1. 검소할 것, 정직히 저축할 것은 무엇이나 저축해 두라.
2. 수입 이상의 지출을 말고 빚을 지지 말라.
3. 무슨 일이나 성급히 또 경솔히 하지 말라. 무슨 일이나 착수하기 전에 신중히 생각해서 하라.
4. 외상을 오래 끌지 말고 그 주간에 갚으라.
5. 남을 도와줄 때 찌푸린 안색이나 불평을 하지 말라. 도울 수가 없을지라도 남을 섭섭하게 말라.
6. 사람에게서 사의를 기대말라.
7. 그대는 부목사 (부목)의 하수인임을 기억하고 항상 겸비한 태도로 말하라.
이 집사들은 매주 목요일 아침 6시에 모여 밀린 사무를 처리하고 환자와 빈자에게 필요한 구제금을 전달 지급하였다. 집사들은 신도회에서 4-7명으로 조직되었고 이들의 주요 임무는 신도회를 유지 관리하는 일이었음을 알 수 있다.
e. 병자심방인 (Visitor of the Sick)
웨슬레는 병자에 대하여 특별한 관심을 가졌다. 처음에는 속장과 집사들이 심방하고 구제 하였으나 이들이 환자들이 요구하는 만큼 심방할 수 없으므로 병자심방인을 따로 두었다. 웨슬레는 신도회 회원 중에서 자원자를 택하여 2명씩 짝지어 다니게 하고 한 주일에 적어도 3번은 심방하도록 하였다. 웨슬레는 병자심방인을 위하여 수칙을 정하였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① 솔직하고 겸손할 것.
② 온유하고 오래 참고 진실할 것.
③ 청결할 것.
④ 환자를 너무 가까이 말것.
웨슬레는 말하기를 "이 일을 통해 하나님께서 더욱 놀라운 축복을 내리시는 것을 보고 기뻤습니다. 많은 생명이 구원을 받았고 많은 환자가 나음을 얻었으며 고통과 빈곤으로 시달리던 많은 사람들이 그것으로부터 해방되었습니다. 마음이 무겁던 자들이 기쁨을 얻게 되었고 슬피 울던 자들이 위로 받게 되었으며 이 방문자들도 그들이 섬기는 주님으로부터 그들의 노력에 대한 귀한 선물을 받았습니다." 라고 하였다.
웨슬레는 목회현장의 필요에 따라 직분자를 선정 임명하였고, 철저한 확인 및 감독을 통하여 목회 훈련을 실시하였다.
. 성결교회와 목회 훈련의 적용
1. 목회훈련의 조직과 내용
a. 조 직
(1) 복음전도관
성결교회가 시작된 1907년에는 이미 한국에 다른 주요 교단 교회들이 선교활동을 시작한지 약 22년이 지난 후였다. 성결교회는 외국인 선교사가 오기전 1907년 5월 2일 정빈과 김상준의 양인이 일본에 동양 선교회가 설립한 '동경 성서 학원'을 졸업하고 귀국함으로 시작된 '자생적 교단'인 것이다. 동년 5월 30일 서울 무교동 12번지 자리에서 기와집 한 채를 사서 복음 전도관 간판을 걸고 복음을 전하였으니 이것이 한국 성결교회가 탄생한 순간이었다. 성결교회가 교파나 교단 형성에 전혀 뜻이 없이 어디까지나 순수하게 복음을 전하고자 내걸었던 간판이 복음전도관이었다.
처음에는 "교파 형성의 의도 없이 출발하여 ... 성결의 복음을 만민에게 선포할" 목적으로 전도에만 열중하던 정빈, 김상준과 양인이 복음전도과 이라는 교단을 조직하게 된 것은 신도 수가 너무 많이 증가되어 불가피한 일이었다. 나아가 복음 전도관이 한국 선교에 착수한지 15년이 지났을때 설립된 전도관이 33개소에 이르렀고 수천명의 신자가 형성되므로 신자들을 돌아보기 위하여 목회치리 정책을 사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웨슬레에게 있어서 신도회에는 엄격한 규칙이 있었고, 신도회가 훗날 감리교라는 교단으로 발전하였다. 성결교회의 기원이 되는 복음전도관 은성결의 복음을 만민에게 선포할 목적으로 어느 교파의 설립이나, 간접 전도가 아닌 '직접 복음 전도'를 전도방법으로 활동하였다. 이것이 신도수의 증가로 교단을 형성하게 되었다. 이같은 점을 볼때 성결교회의 창립 경위는 웨슬레의 메소디스트가 조직될 때와 유사하며, 외국에 있는 기성교회 (장로교회나 감리교회, 침례교회) 들처럼 기성교회의 정책에 따라 교회를 시작하는 경위와는 달랐다. 교회의 조직과 제도는 선교를 하기 위하여 불가피하게 점차로 제정되어 마침내 하나의 교단이 된 것이다.
(2) 치리의회
김상준. 정빈 두 사람에 의하여 1907년 5월에 설립된 '복음전도관'은 14년 동안 아무 조직도 없이 전도에만 주력했다. 그러다가 1921년도에 길보른 총리가 한국에 주재하게 되면서부터 교회가 조직이 되고, 그 해에 '교역자 간담회'를 발족하여 1923년까지 지내왔다. 1924년부터 1928년까지는 '교역자회'라는 이름으로 내려왔으나, 정치적인 활동은 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1929년에 이르러서 '연회'를 창립하게 되면서 폭넓은 활동을 하게 되었다.
이로써 1907년 5월 무교동에 '복음전도관'을 창설한 뒤, 만 22년 만에 '연회'가 창립되었고, 이 연회로써 성결교회의 교역자들이 비로소 참의(參議)의 특권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이 창립연회에서 다음의 사항을 결의 하였다.
① 음력 정월과 7월에 사경회와 대전도회를 개최한다.
② 금년 1년 동안에 한 교회에서 한개의 지교회를 신설한다.
③ 재단법인 이사 가운데 한국사람 이사를 세운다.
④ 중앙 사무국을 설치한다.
⑤ 재판법을 제정 공포한다.
⑥ 진남포.웅기.청주.상주.이리에 교회를 새로 개척한다.
1929년에 조직된 연회가 제 4회에 이르렀을 때, 연회 대의원 전체 의견에 따라서 '성결교회 총회'를 창립할 것을 만장일치로 결의하였다. 이로써 1933년 4월 11일 오후 7시에 '경성 성서학원' 대강당에서 이명직목사의 사회로 '한국 성결교회 창립 총회'가 개최되었다. 1940년 일제의 강요로 주한 선교사들이 자기나라로 들어감을 계기로 성결교회는 자립하는 교회가 되었다. 해방후 교회의 명칭을 기독교 대한 성결교회로 하였고, 교회의 정체(政體)는 신앙양심을 기초로 한 대의제도(代議制度)로 하기에 이르렀다.
우리나라 장로교회에서는 당회, 노회, 총회 3단계의 치리 기관을 두어 교회를 치리하고, 감리교회에서는 당회, 구역회, 지방회, 연회, 총회 등 5단계의 치리 기관을 두어 교회를 치리하고 있다. 성결교회에서는 당회, 지방회, 총회등 3단계의 치리 기관을 두어 교회의 조직을 치리하고 있다.
웨슬레에게 있어서 연회는 그의 목회 사역 전체를 움직이고 목회훈련을 시키는 최고의 의결기관이었다. 그의 목회훈련의 의도는 교회 및 교단형성이 아니고, 교회안의 작은 교회로서 그가 이끄는 메소디스트가 사명을 감당하기 위함이었다. 나아가 오늘의 성결교회는 옛날의 복음전도관이 아니다. 한국의 장. 감. 성 3대 교단의 하나로 1989년 12월 31일 현재 1,623교회, 601,081명 신자를 소유한 대교단이다. 단지 아쉬운 것은 신학은 웨슬레신학이면서 치리의회는 장로교와 흡사한 점이다. 대의제도에 입각한 직원의 선출이나 치리회의의 단계적 구성들이 매우 비슷하다. 이점은 성결교회가 장로회의 치리의회를 받아들였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교회조직에 대한 웨슬레 입장에 대하여 재조명이 필요하고, 오늘의 성결교회에 그 실천이 혁신적으로 요망된다 하겠다.
b. 내 용
(1) 하나님 말씀
성결교회는 헌법에서 성경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우리 교회의 경전은 성경전서, 곧 구약과 신약이니 이 경전은 하나님의 계시를 받은자들이 영감에 의하여 기록한 것인즉 이는 하나님의 말씀됨을 믿나니 성경은 모든 사람을 구원하기에 넉넉하므로 무릇 성경에 근거하지 않은 신학설(神學說)이나, 여하한 신비설이나, 체험담은 신빙할 수 없으며 이런것을 신앙의 조건으로 하거나 구원의 필요로함을 배격한다.
이와같이 성결교회는 성경의 권위를 강조하고, 목회에 중요한 텍스트로 보는 것이다. 또한 성경은 신앙생활과 교회생활의 규범이 된다. 성경해석에 있어서도 "성경을 성경으로 해석" 하나, 하나님의 말씀으로써 실제생활에 관심을 가지고 해석되어진다. 따라서 하나님 말씀인 성경에 대한 비판 연구는 기피되어 왔다.
성결교회 헌법에서는 성경을 해석하는 것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성경전서는 우리 신앙의 표준이며 교회 정치제도와 신도생활의 규범이다. 성경을 해석할 때는 성경전체에 일관된 복음으로 할 것이요, 어느 일부분의 구절로 자기의 학설이나 체험을 해석하는 것은 불가하며, 또는 성경의 묵시됨을 부인하거나 비평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용인하지 않는다.
이와같은 성경에 대한 입장은 성결교회 창설 당시부터 강조되었다. 이것은 성결교회의 산파 역할을 한 동양선교회의 신조이자강조점이기도 했다. 어떤 면에서 초대 성결교회에서는 성결만을 강조한 나머지 다른 신학서적이나 세속의 글들을 읽고 공부하는 것을 권장하지 않은 경향이 많았
다. 그리하여 당시의 교역자 양성기관이었던 경성 성서학원 에서의 교과 과정이 거의 성경 과목이요, 타학문 분야의 학과목은 거의 없었다. 오로지 성경만을 읽고 공부하라고 권장하였던 것이다. 이것은 웨슬레가 말한 '한책의 사람'을 잘못 이해한데서 기인하였다고 본다.
웨슬레가 성서를 사랑하기를 "오 주여 ! 그 책을 나에게 주십시요. 어떤 댓가를 치르더라도 하나님의 책을 가져 가야겠습니다." 라고 하였듯이 성결교회는 그의 역사에서 "성경"을 간직하려고 노력하였다. 예를 들면 1940년대의 일제 말엽에 조선총독부가 당시의 한국 기독교회의 경전에서 구약을 폐기케 하려고 종용내지 강요한 적이 있었다. 그때 교단 존폐의 위험을 무릎쓰고 강력하게 반대한 것이 바로 성결교회였다.
성경을 사랑하며, 성경의 순수성을 그대로 지켜보려고 한것이 성결교회 초창기 지도자들의 한결같은 특징이었다. 오늘날 성경 중심의 신학, 설교, 목회를 강조하는 그 전통은 귀하게 계승되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교회가 성서의 권위에 대하여 흔들릴 때에는 교회의 기반이 흔들리며 '복음의 능력'도 희미하게 되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유산을 꽃피우기 위하여 성서를 사랑하고 아끼는 열정과 함께 목회현장에서 충분한 규칙과 유일한 규칙으로 받아들여 목회에 하나님의 뜻이 성취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2) 성 례 전
웨슬레는 예수께서 친히 실례로 보여주셨듯이, 세례란 모든 신자들에게 필수적으로 임하는 하나의 은혜의 수단으로 생각했다. 그는 성례전으로서의 세례는 일반적인 의미에서 "교회 또는 천국에 들어가는 유일한 수단" 이 고 믿었다. 성결교회는 헌법에서 세례에 대하여 정의하길 "세례는 주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요, 우리의 구주로 믿음과 죄사함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됨을 증거하는 표가 되는 성례",라고하였을 뿐만아니라 "세례란 신자가 회개하여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아 중생하므로 교회에 속함을 받는 예식" 이라고 하였다. 즉 성결교회는 세례를 '교회의 속함을 받는 예식과 하나님의 자녀됨을 표하는' 예식으로 보는 것이다.
웨슬레는 세례가 주는 혜택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우리는 세례를 통하여 말씀하신 그리스도 곧 하나님의 새로운 언약안에 접붙임을 받는다. 곧 그리스도의 몸안에 받아 들여진다.
성결교회는 학습.세례 문답집에서 세례가 주는 혜택을 다음과 같이 보았다.
① 세례를 받으면 교회의 정회원이 되며, 정회원은 교회 헌법에 따라 교인으로서의 의무와 권리를 행사하게 된다.
② 신자는 세례를 받으므로써 구원의 확신과 거듭난 체험을 증거하게 된다.
③ 세례를 받음으로 가장 귀한 예식인 성찬예식에 참여하게 된다.
그러므로 성결교회는 세례에 참여할 수 있는 사람의 자격에 대하여 "이미 학습을 받은 후 세례문답에 합격한 자로 한다 (가급적 세례문답 준비반의 교육을 수료한 자로 한다)", "학습교인이 6개월 이상 교회의 지도를 받아, 신앙생활을 계속한 분에게 한다" 라고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웨슬레는 성만찬을 신앙을 견고케하는 예전이며 회심을 재촉하는 예전으로 보고 그는 성만찬을 회심케 하는 의식 (Converting Ordinance)이라고 하였다. 그는 성만찬을 중요한 은혜의 수단으로 보았다. 성결교회는 헌법에서 성만찬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성찬은 우리의 속죄 제물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기념하기 위하여 떡과 포도즙을 받는 예식이다.
성찬은 주 예수께서 친히 세우신 예식이니 곧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하여 십자가 위에서 몸을 찢으시고 피흘리심을 기념하여 우리의 신앙을 깊게 하는 예식이다.
성결교회는 성만찬을 예수 그리스도의 피흘리심을 기념하여 우리의 신앙을 깊게 하는 예식으로 보는 것이다. 나아가 웨슬레가 성만찬을 단순한 '기념'이라는 해설에 반대하였듯이, 성결교회도 성만찬을 단순한 기념으로 보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합당한 수찬자가 믿음으로 받을때 그는 자기의 필요한 은혜를 받는 것이다. 여기서 수찬자의 자격이 문제가 된다. 성결교회는 수찬자의 자격에 대하여 "세례교인으로, 신앙양심에 거리낌이 없는자" 라고 말하고 있다. 성만찬은 목회훈련의 내용으로 성도에게 가시적 설교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이 가시적 설교는 믿음과 행동으로 받아들여져야 하고, 하나님의 공동체인 교회에서 올바로 집례되어야 할 과제를 갖는 것이다.
이상의 내용을 요약하면, 세례는 교회가 어떤 사람을 구별하여 세례받도록 함으로써 그리스도의 몸인 은혜의 왕국 안으로 편입시켜, 객관적으로 이미 주어진 바 구속의 복음에 대하여 하나님을 대신하여 증거하는 행동인 것이다. 성결교회는 세례를 교회에 속함을 표하는 예식과 하나님의 자녀됨을 표하는 예식으로 보았고, 성만찬을 '예수 그리스도의 피흘리심을 기념하여 우리의 신앙을 깊게하는 예식'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이 성례전은 성결교회의 목회훈련의 중요한 장으로, 보여지는 말씀으로 구현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세례, 성만찬에 대한 좀더 깊은 신학적 입장 표명과 합당한 집례를 위하여 '규칙'의 제정이 요구되어진다 하겠다.
http://cafe.naver.com/modernth/388
V. 존 웨슬레의 목회훈련의
방법과 그 실천적 적용
A. 목회 훈련의 방법
하나님의 대표자이며 성령의 도구인 목사는 자격 구비의 사람이어야 한다. 구약의 모세는 장인 이드로의 충고를 받고 그와 함께 사역할 천부장, 백부장, 오십부장, 그리고 십부장을 선택하였는데 그 자격을 보면 ①재덕이 겸전한 자 ②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 ③진실무망한 자 ④불의한 이를 미워하는 자 이 다. 신약에 들어와 목회서신에서 교회의 직분자인 감독, 장로, 집사의 자격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은 자격을 제시하였다. 감독은 ①책망할 것이 없는 자 ②한 아내의 남편 ③절제하며 근신하며 아담하며 나그네를 대접하며 가르치기를 잘 하는 자 ④술을 즐기지 않는 자 ⑤관용하며 다투지 않는 자 ⑦돈을 사랑하지 않는 자 ⑧자기 집을 잘 다스리는 자 ⑨새로 입교한 자가 아닌 자 ⑩외인에게서도 선한 증거를 얻은 자라야하고, 장로는 그 자격으로 ①책망할 것이 없는 자 ②한 아내의 남편인 자 ③비방이나 불순종하는 일이 없는 믿음의 자녀를 둔 자, 그리고 집사의 자격은 ①단정한 자 ②일구이언 하지 않는 자 ③술에 인박이지 않는 자 ④더러운 이를 탐하지 않는 자 ⑤깨끗한 양심에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 이다.
백동섭목사는 그의 저서 {목회학}에서 목사의 자격에 관하여 ①자연적인 자격 ②교육적인 자격 ③영적인 자격 - 개인적 속죄 경험이 있고, 성령으로 충만한 - 것을 제시하였다. 또한 이동섭목사는 그의 논문 {한경직 목사의 목회론}에서 교직자의 자격을 4가지로 열거하였다. ①중생해야 한다. ②피소되어야 한다. ③영안이 밝아야 한다. ④성장해야 한다.
이와같은 자격을 구비하기 위해서는 훈련이 필요하다. 웨슬레는 말하기를 "만일 사람이 천사처럼 설교한다고 하여도, 적절한 훈련이 없으면 아무 유익을 주지 못할 것이다."라고하였으며, 스케빙톤우드도 감리교를 "정밀한 훈련의 종교"(A Religion of exact discipline)라 하였다. 여기서는 목회 훈련의 방법으로 헌신 훈련, 경건 훈련, 성경탐구 훈련, 그리고 설교 훈련과 조직의 핵심이 되는 지도자 훈련을 살펴보고자 한다.
1. 헌신 훈련
웨슬레는 철저한 헌신의 사람이었다. 웨슬레는 옥스포드 대학 시절 내외적으로 철저하게 헌신된 삶을 살 것을 결심하였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금식, 기도, 성경연구, 종교서적 탐구와 구휼운동에 힘썼다.
우리는 아침과 저녁 한 시간동안 개인기도의 시간을 가졌다. 9시와 12시 그리고 오후 3시에 기도문 (Collect)을 외운다. 항상 자신을 면밀히 점검하고 은혜의 표적이 있나 지켜보았다. 그리고 항상 신앙적 열의를 지니려고 노력했다. 경건한 말을 사용하고 성경을 자주 상고하였다. 나날의 일과에서 생긴 모든 특이한 일들을 암호로 일기에 적었다. 매일 한시간은 따로 시간을 정해 명상을 했다.... 일 주일에 두번 금식하고 교회의 모든 의식을 지켰다. 매 주일마다 성례전에 참여했다. 사람들 앞에 나가기 전에는 어떠한 무의미한 말을 하지 않도록 할 말을 준비했다. 그들이 아는 한에 있어서, 그들은 초대교회 (The Primitive Church)를 그들의 표본으로 취했다.
그의 미국 선교의 목적도 "궁핍을 모면하려는 것도 아니요, 오물이나 쓰레기 같은 재산이나 명예를 얻기 위함도 아니요, 다만 영혼을 구하는 것, 전적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기 위함" 이다. 그러므로 이당시 그의 삶은 "지극히 작은 일에 있어서도 자기 자신을 부정하는 것을 하나님의 축복"으로알고 생활하였던 것이다. 그로 인하여 미국 선교 시절 그는 구원의 확실한 체험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 자신을 하나님의 것으로 끊임없이 바쳤다.
나는 생각한다. 진정으로 복음이 진실하다면 나는 안전하다. 가난한 이들을 먹이기 위하여 내 소유를 이미 다 내주었을 뿐 아니라 현재도 다 내주고 내 몸을 내주어 불사르고 물에 빠져 죽게할 뿐 아니라 하나님이 나에게 명령하시는 일이면 무엇이라도 하고 있을 뿐 아니라 어떻게 해서라도 사랑을 이루기만 한다면 그것을 따르기 때문이다. 이제는 복음이 진실하다는 것이 믿어진다. 나의 모든 것을 걸고라도 '나의 행위로 믿음을 보이리라'. 그런 기회만 주어지면 수천번이라도 그렇게 하리라.
웨슬레는 올더스게이트 회심 체험 이후 하나님께 자신을 바치는 일에 장소나 시간을 가리지 않고 더욱 헌신적이었다. 그로인하여 그에게 다가온 시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하나님이 당신의 뜻을 우리가 알게 하시려고 얼마나 여러가지로 골고루 준비를 하시는가 ! 2년 전에는 벽돌장이 날라와서 내 어깨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로부터 1년 후에는 돌이 날라와 내 양미간을 때렸다. 지난 달에는 주먹으로 한 대 맞았고 오늘 저녁에는 두 대를 맞았다. 한 대는 동리에 들어오기 전에 맞았고 한 대는 나온 다음에 맞았다. 그러나 둘 다 대수롭지 않았다. 한 사람이 있는 힘을 다해서 내 가슴팍을 쳤고 또 한 사람은 금방 피가 튀어 나오게 힘껏 내 입을 쳤지만 그들이 나를 밀집으로 때린 것보다 더 심한 아픔을 느끼지 않았기 때문이다.
웨슬레는 항상 하나님을 생각하는 사람이었으니 "나는 케스위크 (Keswick)까지 정말 멋지게 말을 타고 갔는데 가는 동안 내 마음은 하나님을 생각하였다."라고하였다.
1753년 11월 26일 (당 51세) 웨슬레는 극도로 몸이 쇠약해져서 자신이 하나님께 부름받을 때가 가까운 줄로 알았다. 그리하여 자신의 묘비에 비문을 새기도록 명하였으니, 그 내용을 보면 그가 하나님께 자신을 얼마나 바치고자 하였는가를 알 수 있다.
이곳에 존 웨슬레 잠들다. 활활 타는 불 속에서 꺼낸 아직도 불붙은 나무인 그는 결핵으로 51세를 일기로 사망하다. 모든 부채를 청산하고 10파운드도 재산으로 남기지 못하고 가다.
나같은 무익한 종에게 하나님이여, 자비를 베푸소서 !
기도를 드리며...
그러나 그는 장수하였다. 80세가 넘어서도 그는 주께서 자기를 다스리는 것을 믿음으로 고백하였으니 그의 헌신의 불길은 조금도 시들지 않았다.
81세인 지금 21세 때와 다름없는 힘이 생기며 오히려 젊었을 때 앓았던 두통, 치통 등 육체적인 질병이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우리로선 오로지 '주께서 다스리신다 !'고 말할 수 밖에 없다. '살아있는 순간까지 그분을 위해 살게 하소서 !'
그는 하나님께 부름받기 1년 전에도 끝까지 헌신의 사람이었다.
돈이 한 푼도 없으니 누구에게 돈을 남겨 줄래야 줄 수도 없다. 그러나 내가 죽은 다음 책들이 팔리면서 돈이 생길 것으로 생각되어 그돈을 어떻게 썼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유언서에 덧붙였다. 그러나 살아있는 동안 조금이라도 선한 일을 하고 싶다. 일단 죽은 다음 어떻게 돌아갈지 누가 알 수 있으랴.
웨슬레는 1791년 2월 24일 하나나님의 부름을 받을 때까지 철저하게 자신을 하나님께 바쳤으니, 그의 삶은 실로 헌신의 지속이었다.
웨슬레는 자신이 이처럼 하나님께 헌신적이었듯이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의 삶이 헌신적이 되도록 훈련시켰다. 그는 헌신을 신도회 가입 조건으로, 속회, 반회, 참회자반의 규칙으로 실천해 나갔으니 만약 여기에 불응하는 사람은 즉시 그 모임에서 추방되었다.
2. 경건 훈련
웨슬레의 경건 생활은 가정 생활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우리집 아이들은 말을 시작하면서부터 주기도문을 가르쳐서 배우게 했는데 항상 잠자리에 들 때와 일어날 때 주기도문을 하도록 하였다. 점점 자라면서는 부모들을 위한 기도와 그 밖의 몇가지 기도를 덧붙여 하게 하였다. 그리고 그들이 기억할 수 있을 정도로 짤막한 교리와 성경 귀절들도 배우게 하였다.
우리 아이들은 아주 어려서부터 말을 하거나 걷는 것을 제대로 하기 전에 이미 안식일을 다른 날과 구별하도록 가르쳤다. 그리고 곧 이어서 가정예배를 드릴 때는 조용히 하도록 가르쳤고, 그 다음에는 무릎을 꿇거나 말을 하지 못해도 몸짓으로 표현해서라도 축복을 원하는 기도를 하도록 가르쳤다.
웨슬레의 어머니인 수산나여사는 자녀들을 철저하게 훈련시켰다. 그녀는 규칙들을 제정하였고, 자녀들이 질서를 따라 하나님을 경외하며 경건하게 살도록 하였다. 그 규칙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① 비겁한 마음을 먹거나 벌을 두려워하는 것 때문에 나중에 가서는 고치기 어려운 거짓말을 하는 버릇이 생길까봐 늘 살폈다. 그래서 이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누구든지 잘못하였다고 생각될 때 그것을 솔직하게 고백하고 다시는 안하기로 약속하면 때려주지 않는다는 법을 세워 놓았다.
② 거짓말이나 훔치는 일이나 교회 안에서 장난치는 일이나 주일날 장난 치는 일이나 복종을 안하는 일이나 싸우거나 하는 등 죄가 되는 일을 했을 때는 절대로 벌을 주지 않고 지나치는 법은 없다.
③ 똑같은 잘못 때문에 두번 야단을 치거나 매를 때리는 법은 없다. 그리고 일단 고치고 난 다음에 다시 그것을 책망 해서는 안된다.
④ 특히 스스로 생각해서 순종하는 모습을 보였을 때는 항상 칭찬을 해 주고 결과에 따라서 상도 준다.
. . .
⑦ 약속을 하면 엄격히 지켜라.
이같은 가정에서의 경건 훈련은 그에게 크나큰 영향을 미쳤다. 그는 미국 선교를 위하여 가는 배에서도 경건 훈련을 지속하였다. 그 당시 생활은 다음과 같았다.
우리는 이제 약간 규칙적인 생활을 하기 시작하였다. 평상시의 우리의 생활은 이랬다. 새벽 4시에서 5시까지는 우리 각자의 개인 기도 시간으로 했고, 5시에서 7시까지는 함께 성경을 읽었는데 초대 교회의 문헌들을 세심하게 비교하면서 연구하였다. 7시에는 조반 식사를 하고 8시에는 공동기도 시간을 가졌다. 9시에서 12시까지는 나는 독일어 공부를 하였고 델라모트씨는 희랍어 공부를 했고 내동생은 설교문을 썼고 잉험씨는 아이들을 가르쳤다. 12시에는 함께 모여 우리가 지난번 모임을 가진 이후에 우리 각자가 할일을 서로 이야기하고 다음 모임 전에 할 것으로 계획해 놓은 것을 함께 이야기 하였다. 그리고 1시쯤 해서 함께 점심식사를 하였다.
나아가 죠지아 선교시절 그는 스스로 네가지 결의를 하였고, 누가 보든 안보든 경건하게 살고자 하였다.
① 절대적으로 개방성을 띠우고 내가 대화해야 할 상대와는 조금도 숨김없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눈다.
② 계속해서 진지하게 노력하며 잠시라도 경박한 행동이나 웃음거리를 즐기는 일에 빠지지 않는다.
③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지 않는 말은 전대 하지 않는다. 특히 세상 일에 관하여 말하지 않는다. 아니,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할지라도 나는 안한다. 그것이 나에게 무슨 관계가 있는가 ?
④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지 않는 일은 결코 즐기지 않는다. 내가 하는 모든 일에 있어서 매 순간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그러기에 내가 하나님께 감사를 드릴 수 없는 일은 어떤 것이라도 하지 않는 다.
1738년 5월 24일 올더스게이트가에서 복음적 신앙체험을 한 이후에도 웨슬레의 규칙적인 경건생활은 변하지 않고 계속 되었다. 1739년 4월 12일 그의 일기에 기록된 공적 생활을 보면 이사실이 명확하게 입증된다.
나의 정상적인 공적 활동은 대체로 다음과 같았다. 매일 아침 나는 기도회를 갖고 뉴우게이트에 가서 설교하였다. 매일 저녁 한 두 모임에 가서 성경을 해석하고 가르쳤다. 월요일에는 오후에 브리스톨 근처에 가서 야외 설교를 하였다. 화요일에는 바스와 투 마일 힐을 번갈아 찾아가서 설교를 하였고, 수요일에는 ... 목요일에는 ... 금요일에는 ... 토요일 오후와 일요일 아침에는 보올링 그린에 가서 ... 일요일 11시에는 한남산 근처에서, 2시에는 클맆튼에서, 5시에는 로우즈 그린에서 설교하였다. 이렇게 해서 날이 갈수록 나의 힘이 더해갔다.
웨슬레는 본인이 경건하게 살 뿐 아니라 그를 돕는 평신도 보조자들에게 경건훈련을 시키고자 엄격한 규율을 제정하였다. 그것은 아침 5시 전에 일어나서 6시부터 12시까지는 기도와 독서를 하고, 정오부터 하오 5시까지는 심방을 하고, 5시부터 6시까지 하나님께 은밀한 기도를 하고, 하루에 적어도 두번이상 전도하고, 하루 24시간 중 5시간은 반드시 독서와 성경공부를 하고, 설교는 간단히 하고 예배는 한 시간 안에 끝마치 하였다.
3. 성경탐구 훈련
한책의 사람 (homo unius libri)인 웨슬레는 성경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다는 사실을 믿게 하는 네 가지의 웅대하고 강력한 논증을 하였다. 즉 기적들과 예언자들, 교리의 선함과 저자들의 도덕적 성품이 그것이다. 모든 기적들은 신적인 능력으로부터 흘러 나온다. 모든 예언자들은 신적인 이해력으로부터, 교리의 선함은 신적인 선함으로부터, 그리고 저자들의 도덕적 성품은 신적인 거룩함으로부터 흘러 나온다. 그러므로 기독교는 네가지 웅대한 기둥들, 즉 하나님의 능력과 이해력, 선함과 거룩함 위에 세워졌다. 신적인 능력은 모든 기적들의 근거이며, 신적인 이해력은 모든 예언자들의 근거이고, 신적인 선함은 교리의 선함의, 신적인 거룩함은 저자들의 도덕적 성품의 근거이다.
나아가 웨슬레는 성경은 선한 사람들이나 천사들, 악한 사람들이나 악마들의 창작이 아니며 하나님의 창작이라 하였고, 나아가 성경의 신적 영감을 주장하는 간결하고 강력한 논증을 세가지로 제시하였다.
① 그것은 선한 사람들이나 천사들의 창작일 수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기들이 그 책을 쓰면서 '이렇게 주님이 말씀하셨다'고 하는 거짓말을 계속 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할 수도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② 그것은 악한 사람들이나 악마들의 창작일 수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모든 의무를 규정하고 모든 죄악을 금하며 그들의 영혼을 영원한 지옥행으로 선고하지 않았을 것이다.
③ 그러므로 성경은 확실히 신적 영감에 의하여 주어진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웨슬레는 성경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다는 사실을 굳게 믿는 사람이었다. 나아가 그는 성경을 최고의 권위로 받아들였다. 즉 웨슬레에게 있어서 성경은 하늘 가는 길을 가르쳐 주는 안내서요, 모든 계시의 시금석으로 신앙과 실생활의 최고의 권위었다.
웨슬레는 '우리 영의 증거'(The Witness of Our Own Spirit)라는 그의 설교에서 "선악의 그리스도교적 표준은 하나님 말씀 곧 신구약 성경의 문서입니다. 성령의 감동을 받고 옛 예언자들이나 거룩한 사람들이 쓴 모든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감으로 쓰여졌고, 참으로 교리를 위하여, 혹은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을 가르치는 일에 유익하며 그것에 반대되는 것을 책망하고 잘못을 고쳐 주며,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한 것이 성경의 전부다" (딤후 3:16)라고 하였다. 즉 웨슬레에게 있어서 성경은 모든 사항에서 그의 양심이 적용되어야 할 전체적이고도 유일한 외적 기준이 되었던 것이다.
웨슬레에게 있어서 성경탐구 방법은 묵상이었다. 그는 매일 경건하게 성경을 읽으며 묵상하는 것을 통하여 평생 경건한 삶을 이끌어 나갔다. 그는 {구약성서 주석} 서문에서 성경 묵상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썼다.
이것이 하나님의 일들을 이해하는 길이다. 밤낮을 가리지 말고 그것을 묵상하라. 그러면 유일하고 참되신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까지도 알 수 있는 최고의 지식을 얻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 지식은 당신으로 하여금 그를 사랑하도록, 너의 온 마음과 온 혼과 온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도록 이끌어 줄 것이다. 왜냐하면 그가 먼저 너를 사랑하셨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던 그 모든 마음이 네 속에도 있지 않겠는가 ? 그 결과 너는 이책에 쓰여져 있는 모든 거룩한 기질을 기쁨으로 경험하는 한편 너는 너를 부르신 그분이 거룩하신 것처럼 외적인 모든 대화에서도 거룩하게 될 것이다.
웨슬레는 이와같은 목적에 어울릴 수 있는 방식으로 성경을 읽고자 한다면 다음과 같이 하라고 방법을 제시해 주었다.
① 할 수 있는 대로 매일 아침과 저녁에 그 목적을 위하여 약간의 시간을 배정하라.
② 여유가 있다면 매번 구약에서 한 장, 그리고 신약에서 한 장을 읽으라. 그렇지 못하면 단 한 장만이라도 읽든지 일부분만이라도 읽으라.
③ 성경을 읽되 단일한 눈으로, 하나님의 전체적인 뜻을 알고 그것을 행하려는 확고한 결심으로 읽으라. 그의 뜻을 알려면 이렇게 해야 한다.
④ 신앙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가지라. 그리고 저 웅장하고 근본적인 교리를, 원죄와 믿음으로 말미암은 의인, 중생, 내적인 성결과 외적인 성결 사이에 있는 연관성과 조화에 대한 신념을 가지라.
⑤ 성경은 성령에 의하여 쓰여졌기 때문에 그 동일한 성령에 의해서만 이해될 수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읽기 전에 항상 진실하고 간절한 기도가 있어야 한다. 우리가 읽은 것이 우리의 마음에 새겨지도록 하기 위해서는 역시 기도로 끝마쳐야 한다.
⑥ 읽을 때 잠깐씩 쉬면서 우리가 읽은 것에 의해 우리 자신을, 우리 자신의 마음과 삶을 반성해 보는 것도 유익할 것이다. 그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당신의 은혜로운 뜻을 준행하게 하신 일에 대하여 찬양하게 될 것이고, 그렇지 못함을 깨달을 때에는 겸손히 기도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네가 어떠한 빛을 받은 자라면 최선을 다하여 그것도 즉시로 사용하여야 한다. 조금도 지체하지 말라. 네가 무슨 결심을 하든지 할 수 있는 대로 첫 순간에 실행하기 시작하라. 그러면 이 말씀이 진실로 현재와 영원의 구원에 이르는 하나님의 능력임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4. 설교 훈련
웨슬레는 진정 일생을 설교로 산 사람이었다. 1725년 (22세) 옥스포드주 남방 라이에서 처녀 설교를 한 이후 매일 2,3회씩 설교하였으며 주당 15회씩 평균해서 42,400회의 설교를 하였다.
미국 죠지아주로 가는 배에서 아무 준비없이 즉석 설교를 하기도 하였으며 사 나에서 목회활동을 시작한 것도 설교를 함으로였다.
1738년 5월 24일 구원의 놀라운 체험이 있은 후 그의 설교는 내용과 방법에 있어서 완전히 달라졌다. "나의 모든 설교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그리스도가 주춧돌이 되었다. 그 내용은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는것이었다. 그로 말미암아 그의 설교에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으니 한 예를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세인트 토마스 교구에는 미쳐 날뛰는 젊은 여인이 있었는데 계속해서 소리를 지르고 자신을 몹시 괴롭혔다. 나는 그 여인에게 말을 해주고 싶은 강한 욕망을 느꼈다. 내가 말을 시작하자 그 여인은 잠잠하였다. '나사렛 예수께서는 당신을 구원하실 수 있는 분이고 또 당신을 구원하실 분입니다.'라고 그 여인에게 내가 말을 해주는 동안 그 여인의 빰에는 눈물이 계속 흘러내렸다.
웨슬레에 있어서 1739년은 중요한 해이다. 왜냐하면 회심 이후 본격적으로 야외설교를 통한 전도활동에 주력하기 시작한 해로써 1739년 3월 29일 화이트필드의 요청을 받고 브리스톨에 가 야외설교를 시작하여 4 2일에는 약 3,000여명에게 설교하였고 킹 우드의 한남산 정상에서 약 1,500여명되는 사람에게 설교 하면서 브 스톨을 중심으로 순회하며 설교를 하였다.
웨슬레는 복음을 전하면서 바울과 그 일행이 당했던 수 많은 환난과 핍박과 어려움을 겪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웨슬레는 죄인들을 찾아가 그들에게 복음을 전했다. 그가 하나님께 부름을 받기까지 설교에 대한 그의 열정은 전혀 식지 않았다.
스피톨필즈 (Spitolfields) 교회에서 '하나님의 전신갑주'에 관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설명을 하였다. 샤드웰 (Shadwell) 성 베드로 교회에서 오후에 집회를 가졌는데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 한가지 필요한 것으로 중요한 진리를 말하는 동안 진지하게 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제라도 더 나은 것을 선택하기를 바랬다.
웨슬레는 {발성과 몸짓에 관한 지침}(1749년, Drections Concerning Pronunciation and Gesture)에서 설교시 발성과 몸짓에 관하여 지침을 주었는데, 그 첫부분은 어렵지 않고 즐겁게 들을 수 있도록 어떻게 말할 수 있겠는가에 대한 것이었다. 그것에는 좋은 권고로 가득차 있었다. 그는 주장하기를 언사의 첫번째 과제는 잘 들리게 말하고 쉽게 이해시키는 것이라고 하였다. 맑고 큰 성대는 큰 재산이지만 타고 나지 못한 사람들도 기본적인 발성법에 주의를 집중함으로써 충분히 개발할 수 있다고 하였다. 나아가 웨슬레는 자기의 설교자들에게 고함치는 위험에 대하여 경고하였다. 존 킹 (John King)에게 "당신의 영혼이 멸망하는 것에 대하여 더 이상 절규하지 마시오 .... 나는 가끔 크고 열렬하게 말합니다. 그러나 나는 절규하지 않습니다".라고하였으며, 그리고 사라 말렛 (Sala Mallet)에게 "절규하지 마시오. 말할 때 당신의 자연적인 음량대로 하시오. 지나치면 듣는 사람에게 거슬립니다." 라고 훈련을 시켰던 것이다.
웨슬레는 몸짓은 얼굴과 손의 조용한 언어라고 하였다. 그는 능력 부족을 몸짓으로 보상하려는 풍자식 설교가들 (Windmill Preachers)의 무용론에 대하여 자세히 밝혔다. 그는 설교자의 자세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갖고 훈련시켰다.
그대들의 회중 앞에서의 처신은 진지하고 신중하고 엄숙한 것이 되게 하라 .... 그대의 제스처든지 말씨든지 혹은 발언이나 무엇이든지 모양없고 부자연스러운 것을 조심하라 말에나 옷차림에 버릇없이 함을 주의하라.
웨슬레는 연회를 통하여 설교에 대하여 훈련을 시키고자 의도하였다. 제 1회 연회에서는 "허황되거나 또는 비방하는 류의 설교를 들을 때 우리는 어떠한 태도로 임할까 ?" 하는 질문에 대하여 "만일 그 설교가 사람에 관계되는 것이라면 우리는 다만 침묵을 지키는 것으로 족하되, 만일 그것이 하나님의 사업과 성령을 모독하는 것이라면 당연히 퇴장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경우이건 기회를 보아 그런 설교자에게 직언을 하거나 서신으로 권고함이 좋을 것이다." 라고 하였다. 또한 "설교의 일반적인 최선의 방법은 무엇인가 ?" 라는 질문에 "초청하고, 신복 (설득)시키고, 그리스도를 전달하고, 그리고 북돋아 주는 것이다. 이것은 어느 설교에나 있어야 한다"라고고하였다.
제 3회 연회에서 "경험상 어떤 설교가 가장 큰 은헤를 끼치는가 ?" 하는 물음에,
① 청중의 생활에 가장 관계가 깊고, 설득력이 있고, 실제적인 설교.
② 제사장으로서의 그리스도와 그의 속죄를 강조하는 설교.
③ 그리스도를 멸시하고 알지 못하는 인간의 가증스러움을 나타내는 설교라고하였다.
제 4회 연회에서는 "전도인은 얼마나 자주 설교할 수 있는가 ?"하는 물음에 "주일이나 그 밖에 특수한 경우가 아니면 하루 두번 이상 설교하지 말 것이다. 특별한 경우에 관해서는 재량것 할 것이다"라고하므로 설교의 횟수에 대하여 지침을 주었다. 나아가 "설교에 관하여 이들에게 유익한 조언이 없겠는가 ?" 라는 물음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조언하였다.
① 일정한 시간에 설교를 시작하고 그치라.
② 자작 찬송을 부르지 말라.
③ 교중 앞에서 몸가짐을 근엄하고 무겁게 그리고 엄숙하게 하기를 힘쓰라.
④ 설교에 쓸 성구는 가장 평이한 것을 택하라.
⑤ 성경 본문에서 떠나 우왕좌왕 하지말고 본문에 집착하여 주목적을 향해 나가라.
⑥ 언제나 설교제목은 청중에게 맞게 하라.
⑦ 너무 지나치게 비유적이나 추상적으로 말하지 말라.
⑧ 몸가짐이나 발음에 거북살스럽거나 부자연한 점이 없도록 주의하라.
⑨ 서로의 결점을 발견하는대로 충고하여 주라.
이상의 내용을 요약하면, 웨슬레는 설교로 일생을 산 목회자였다. 올더스게이트가에서의 체험은 그로 하여금 둘도 없는 사도직의 진정한 출발점이 되게 하였다. 그에게 있어서 야외설교는 짐이었으나 많은 영혼을 구하는 방법이 되었다. 웨슬레는 {발성과 몸짓에 관한 지침}에서 설교시 행하는 자세 및 태도에 대하여 가르쳤고, 그를 따르는 사람들을 훈련시켰다. 연회는 그에게 있어 설교훈련을 시키는 정식 의결기관으로 활용 되어졌다. 설교훈련은 그의 목회자 훈련에 있어서 중심이 되었다.
5. 지도자 훈련
a. 평신도 보조자 (Lay - Assistant)
평신도 보조자는 1744년부터 분명하게 활동하기 시작하였고, 그 명칭도 다양하게 사용되어 처음에는 평신도 보조자로 불리웠다가, 협력자 (Helper)가 되고 또 평신도 설교자 (Lay - Preacher)로, 그리고 다시 이들 중 대부분은 지방설교자 (Local Preacher)로 남았고 소수는 순회 설교자 (Itinerant)가 되었다. 그리고 후에 이들은 감리교회의 순회구역 (Circuit)의 전도인이 되었다.
이들은 현재 전도사나 장로같은 직분으로 보인다. 이 평신도 보조자들은 웨슬레에게 직접 지도를 받았다. 스티븐스 (Stevens)는 "순회 전도자들은 그 단체내의 어려움을 다루며 부랑자들을 대면하며 어떤 기후에도 용감하며 보수를 받지 않고도 살아 나갈 수 있도록 가르침을 받았다. 그들의 여정에서 이변이 생기지 않는 한은 4시에 일어나서 5시에 설교하고 소책자를 전해 주러 다니며 규칙에 따라 살고 두려움이 없이 죽도록 가르침을 받았다."고 하였다.
웨슬레는 함부로 지도자를 선택하지 않고 신중을 기했다. 1746년 5월 12일부터 15일까지 열렸던 제 3회 연회에서 장정문제에 대하여 토의하면서 하나님께로 부터 전도의 사명을 받았다고 믿는 사람들을 선택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문답을 하였다.
문 8. 성령의 감화를 받아 하나님께로 부터 전도의 사명을 받았다고 믿는 사람들을 어떻게 그 진가(眞假)를 시험할까 ?
답. 아래와 같이 질문을 할 것이다.
1. 그들은 자기들이 믿는 분을 알고 있는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는지, 하나님외에 다른 것을 욕망하고 추구하지 않는지 그들의 담화에 있어서 모든 면으로 거룩한지 알아볼 것.
2. 그들이 그 일을 위하여 재능과 은혜가 있는지, 어느 정도의 명확하고 건전한 지성이 있는지, 하나님의 일에 관해서 올바른 판단력을 가지고 있는지, 믿음으로 의를 얻는다는 정당한 관념을 가지고 있는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어느 정도의 언변을 주셨는지, 그들이 이론 정연하게, 유창하게 명백히 발표를 할 수 있는지 등을 알아볼 것.
3. 그들이 어느 정도의 성공을 거둔 일이 있는지, 그들이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켜 설복시키도록 말로만이 아니라 실제로 그들의 전도로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의 끝없는 사랑을 인식하여 용서를 받은 사람이 있는지 등을 알아 볼 것이다. 그리하여 이 세가지 조건이 긍정적이라면 그런 사람은 하나님께로부터 전도의 사명을 받은 사람이라고 인정할 수 있다. 이 조건들은 그가 하나님의 성령의 감화를 받은 증거가 된다고 할 것이다.
웨슬레는 이런 사람들을 지도자로 선발하기 위하여 죄사함을 확실히 받은 신앙고백의 단체인 반회와 선발신도회에서 평신도 보조자들을 선발하였다. 나아가 웨슬레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증거가 있는지 없는지에 대하여도 철저한 검증을 하였다.
문 9. 그러나 어떤 특정 인물에게 이런 증거가 있는지를 어떻게 알수 있는가 ?
답 1. 우리는 그런 사람에게 우리의 보조자중 한 사람을 보내어 그의 설교도 들어보고 그로 더불어 위의 조건들에 대해 사실도 해볼 수 있다.
2. 우리 자신들이 직접 그의 설교도 듣고 그와 더불어 이야기도 해볼 수 있다.
3. 우리는 그의 설교로 죄의 용서를 받았다는 사람을 만나 철저히 알아볼 수도 있다.
4. 우리는 구두로나 글로 자기가 전도의 사명을 받았다고 믿는 이유를 진술하거나 쓰도록 해볼 수도 있다.
5. 우리는 일반 회중들과 함께 금식하고 기도하면서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판단하고 실행하도록 하여주기를 구할 것이다.
웨슬레에게 있어서 평신도 보조자의 선정은 그의 목회사역에 핵심 요소였던고로 매우 심사숙고 했음을 알 수 있다.
이제 웨슬레가 평신도 보조자들을 전문적인 사역자가 되게 하기 위하여 철저한 목회 훈련을 시켰는데 그 지침들을 보고자 한다.
(1) 평신도 보조자의 직무
교역자가 없는 경우에 양떼를 먹이고 지도하고 다스리되,
㉮ 조석으로 그들에게 성경 말씀을 해석해 준다.
㉯ 매주 연합신도회와 반회와 선발신도회 그리고 참회자반을 소집 한다.
㉰ 각 속회를 월 1회 방문한다.
㉱ 신도 사이의 이견을 듣고 조정해 준다.
㉲ 말썽을 일으키는 신도를 심사하여 시정해 주고 반회나 신도회에서의 제소를 받는다.
㉳ 집사나, 지도자들이나, 선생이나, 건물관리인들이 각자의 직무를 수행하는 가를 살핀다.
㉴ 집사나 반회와 속회의 지도자들을 만나보고 또 그들의 회계장 부를 검사한다.
(2) 평신도 보조자의 자격
㉮ 신앙적인 면에 있어서 : 마음속에 하나님의 사랑이 있고 언행이 거룩한 자라야 할 것이며 사업을 감당할 재능과 은혜를 입은 자라야 하고, 과거 이력중에 전도에 방해 요소가 없는 자라야 할 것이다.
㉯ 지식함양에 있어서 : 유익한 서적을 읽고, 아침 시간에 독서하고, 하루 5시간 정도 독서를 하라. 이같이 못하면 전도 사업을 그만두고 본연의 직장으로 돌아가라.
(3) 평신도 보조자들을 위한 설교지침
(4) 평신도 보조자의 수칙
㉮ 근면할 것. 잠시라도 일없이 지내지 말것. 그리고 불필요한 일에 시간을 소비하지 말것. 더구나 외지에 가 있을 때에는 각별히 시간 낭비를 말것.
㉯ 항상 근엄한 태도를 가질 것. 그대의 '모토'는 "주앞에서 거룩함을 지킬 것"을 삼으라. 모든 일에 신중을 기하고 경솔한 행동과 처사는 지옥불을 피하듯 하라. 파안대소하는 것은 저주와 맹세처럼 여겨 삼가라.
㉰ 여인을 가까이 말라. 그들을 사랑하되 그들과 접촉하지는 말라. 세속적 풍습은 우리에게 아무 가치가 없다.
㉱ 아무의 험담도 믿지 말라. 남의 잘못을 그저 볼 뿐이다. 그러나 동정적으로 이를 대하고 모든 일에 건설적 태도를 가지라. 판사는 언제나 피고 편에 서는 것이다.
㉲ 누구의 험담도 말라. 남의 험담을 하면 그것은 결국 암처럼 그대를 먹어 들어갈 것이다. 남의 험담을 들었을 때라도 같이 응수하지 말고 무슨 생각이나 그대로 발설말고 가지고 있다가 당사자를 만나서 확인하라.
㉳ 그대가 그 사람이 무슨 잘못을 저질렀다고 생각하면 그것을 모든 사람에게 분명히 그리고 될수록 빨리 말하라. 그렇지 않으면 이것이 그대의 마음속에서 곪아 터질지도 모른다. 될수 있는대로 빨리 서둘러서 마음의 불을 끄도록 하라.
㉴ '신사인양' 무슨 일이나 하지 말라. 그대는 이런 신사투의 모습과 무관한 것이 마치 무도 교사의 모습과 마찬가지이다. 그대는 모든 사람의 종임을 기억하라.
㉵ 그대는 죄 외에는 아무것도 부끄러워 말라. 시간이 있어서 남의 심부름으로 장작을 운반하는 것이나, 물을 길어 주는 것이나, 그대의 신을 닦는 것이나, 남의 신을 닦아 주는 것이라도 부끄러운 일은 아니다.
㉶ 아무의 금품도 받지 말라. 만일 누가 그대가 주릴 때 음식을 제공하거나 필요할 때 옷을 준다면 그것은 받아도 무방하다. 그러나 은이나 금을 주는 것은 받지 말라. 우리는 복음을 전함으로 치부하였다는 말을 들어서는 안된다.
㉷ 나의 동의없이 빚을 쓰지 말라.
㉸ 시간을 잘 지키라. 무슨 일이나 꼭 제시간에 하라. 그리고 우리의 규칙을 엄수하고 그것을 변경하지 말라. 지키되 책벌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양심을 따라서 하라.
㉹ 무슨 일이나 나 자신의 뜻대로 말고, 복음의 아들로서 하라. 그리하여 우리의 지시를 따라 그대의 시간을 선용하되 양무리의 집을 방문하며(특히 환자를 각근히 문병하며), 그리고 우리가 때때로 권고한대로 독서와 명상과 기도에 힘쓰라. 무엇보다 그대가 우리와 함께 주님의 포도원에서 일을 하는 이상 어느 때, 어느 장소에서나 그의 영광에 합당하다고 우리가 판단하는 대로 우리의 지시를 따를 각오를 가지라.
마틴 쉬미트 (Martin Schmidt)는 평신도 보조자의 규칙을 초기 기독교 뿐 아니라 수도승적 청교도주의 (Monastic Puritanism)적인 정신을 반영한 것이라고 평가하였다.
(5) 평신도 보조자의 독서
웨슬레는 평신도 보조자들의 지식 함양에 있어서 자신이 읽은 책들 중에서 유익하고 건전한 책들을 선정하여 그들로 하여금 읽게 하였다.
살루스트 (Sallust), 시이저 (Caesar), 씨세로 (Marcus Tullius Cicero), 에라스무스 (Erasmus), 캐스텔리오 (Cebastian Castelleo, 1515-1563), 테렌스 (Terence), 버어질 (Virgil), 호레이스 (Horace), 비다 (Marco Giralomo Vida, 1489-1566), 희랍어 성서 (Greek Testament), 에픽테터스 (Epictetus), 플라토 (Plato), 익나시우스 (Ignatius), 에푸라임 사이러스 (Ephraim Syrus), 호머 (Homer), 희랍 격언집 (Greek Epigrams), 뜌포트 (James Duport, 1606-1679), 어쉬감독 설교집 (Bishop Ussher's Sermons), 안트 (Johann Arndt, 1555-1621, 루터교 경건주의자), 뵘 (Anthony Willam Boehm, 1673-1722), 날슨 (Valentine Nalson, 1683-1723), 파스칼 (Pascal), 푸랑케 (August Hermann Franke, 1663-1727, 저명한 독일 경건주의자), 겔 (Robert Gell, 1595-1665, 켄터베리 대감독 보좌목사)등의 저서와 기타 우리가 준비한 소책자를 읽을 것이다.
또한 웨슬레는 평신도 보조자를 돕는 보좌인 들을 위해서도 생활일과표와 읽어야 할 서적을 제시해 줌으로 보죄인들도 철저하게 목회 훈련을 시켰다.
1. 언제나 4시에 기상할 것
2. 오전 4시부터와 5시까지와 오후 5시부터 6시까지 일부는 명상과 기도에 쓰고 일부는 성경을 2,3절 혹 1,2장 정도 읽고, 일부는 실용적인 신학서류를 읽되, 특히 헨리 스쿠갈 (Henry Scougal, 1650-1678, 스코틀랜드인)의 "인간 영혼 속의 하나님의 생명", 이라는 책이라든가, 천로역정이라든가, 로씨의 저서든가, 비버리지 (Wm, Beveridge, 1637-1708)의 수상록이라든가, 헤이린 (John Heylyn, 1685-1759, 런던 St. Mary-le-Strund 목사)의 기도서, 할리버튼 (Mr. Halyburton, 1674-1712, 스코틀랜드 St. Andrew 신학교 교수)의 자서전과 드렌티 (Monsiewr De Renty 불란서 귀족)의 전기등을 읽을 것이다.
3. 오전 6시부터 12시까지는 1시간을 조반에 쓰고, 그 나머지는 아래 열거한 책들을 기도와 함께 순서적으로 정독하라, 피어슨 감독 (Bishop John Pearson, 1613-1686, Chester 감독)의 '신조에 대하여'와 펠 감독 (John Fell 1625-1686, Oxford 감독)의 '바울서신주해'와, 뵘 (Anthony Wm Boehm 1673-1722, St James, 교회목사)과 날슨 (Valentine Nalson, 1683-1723, York주 St, Martin 교회 부목사)씨의 설교집과, 파스칼의 명상록과, 우리 회가 발간한 소책자들과 시가들과, 밀턴의 실락원과, 케이브목사 (Wm Cave 1637-1713 London, Allhallows 교회목사)와 풀류리 (Claude Fleury, 1640-1723, 불란서, 궁중목사, 교회 역사가)의 원시 기독교와 엑하드 (Mr. Laurence Echard, 1670-1730)의 교회사 (예수 탄생시부터 콘스탄틴 대제까지의)등을 읽을 것.
이상으로 웨슬레가 평신도 보조자를 어떻게 선발하였으며, 목회 훈련을 어떻게 시켰는가를 살펴 보았다. 이들은 수 많은 영혼을 구원시켰고, 훗날 온전히 헌신하여 목회자가 되기도 하였다.
b. 속 장 (Class Leader)
웨슬레는 신도회 마다 그 안에 12명씩의 속회를 구성하고 그 중에서 가장 신임할 수 있는 사람을 속장으로 임명하여 속회를 돌보게 하였다. 이 속장의 임명 및 면직은 웨슬레 자신이나 담임 목사들이 하도록 하였다. 속장의 직분은 부목회자(Sub-Pastor), 위임받지 않은 교역자 (Non-Commissioned Officer), 그리고 영적 경찰관 (Spiritual Police)등으로 다양하게 서술되었으며, 이러한 직분을 감당할 수 있도록 속장은 영적인 지도력과 목회적, 행정적 지도력이 요청되었는 고로 웨슬레는 철저한 목회 훈련을 실시하였다.
웨슬레는 연합신도회 총칙 (General Rules of the United Societies) 제 3조에서 속장의 임무 두가지를 명시하였다.
① 자신의 속회의 회원을 적어도 일주일에 한번씩 찾아본다. 이는 그들이 가난한 자의 구제를 위하여 기꺼이 드리는 것을 받고, 그들의 영혼이 얼마나 번성하는가를 묻고, 또한 그럴만한 사태가 생길 때 조언하고 책망하고 권면하기 위해서이다.
② 목사와 신도회의 집사를 일주일에 한번은 만난다. 이는 집사에게 지난 속회의 헌금을 전해주고, 각 회원의 헌금 대장을 보여주며, 또한 목사에게 병든 사람, 문란하게 생활하는 사람, 돌이키지 않는 사람등을 알려 주기 위해서이다.
이 두가지 임무를 중심으로 하여 속장의 임무를 좀 더 세밀히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① 속장은 매주간에 속회원을 찾아보고 목요일에 모이는 속회에 참석 시킬 것
② 속장은 속회에 모일 때 마다 속회원이 헌금을 내도록 촉구할 것.
③ 속장은 매주간 유고 속회원을 찾아 심방할 것.
④ 속장은 매주 속회 일지를 기록하여 속회 인도자가 보도록 할 것.
⑤ 속장은 매주 화요일 저녁마다 모이는 속장들의 모임에 빠짐없이 참석할 것.
그리고 속장들 가운데 유능한 속장은 속회 인도자로 선발되기도 하였다. 웨슬레는 속장을 철저하게 훈련시켰을 뿐 아니라 적절하게 목회 사역에 동참시킴으로 신도회의 영적성장을 이루고자 목회하였다.
c. 집 사 (Stewards)
집사는 속회의 속장과 같이 감리교의 기둥이라고 할 수 있는 평신도 지도자이다. 이 명칭에 대하여 노종해 목사는 유 로 번역하였고, 김영운 목사는 사로 번역하였다. 여기서는 집사로 통일하고자 한다.
1744년 6월 25일부터 29일까지 열렸던 제 1차 연회 마지막 날인 29일 (금) 집사의 직무와 수칙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문답을 하였다.
문 6. 집사의 직무는 무엇인가 ?
답 1. 신도회의 일반 사무를 처리한다.
2. 각 속장들에게 헌금을 수합한다.
3. 때때로 필요한 지출을 한다.
4. 빈자에게 구호금을 전달한다.
5. 공유건물의 청소와 수리를 관리한다.
6. 재정 수지 상황을 장부에 게재 보관한다.
7. 보조자 (부목)에게 집과, 학교와, 반회와, 신도회의 규칙이 엄수되고 있는지를 보고하여야 한다.
8. 필요한 경우에는 목사에게 보고하라.
9. 보조자가 혹시 신앙도리나 생활에 오류가 있다면 사랑으로 이를 충고할 것이다.
10. 만일 그 잘못을 시정하지 않을 때에는 이 사실을 목사에게 알릴 것이다.
11. 매주 동료집사와 만나 위의 모든 조항에 대하여 상의를 하라.
문 7. 집사의 수칙은 무엇인가 ?
1. 검소할 것, 정직히 저축할 것은 무엇이나 저축해 두라.
2. 수입 이상의 지출을 말고 빚을 지지 말라.
3. 무슨 일이나 성급히 또 경솔히 하지 말라. 무슨 일이나 착수하기 전에 신중히 생각해서 하라.
4. 외상을 오래 끌지 말고 그 주간에 갚으라.
5. 남을 도와줄 때 찌푸린 안색이나 불평을 하지 말라. 도울 수가 없을지라도 남을 섭섭하게 말라.
6. 사람에게서 사의를 기대말라.
7. 그대는 부목사 (부목)의 하수인임을 기억하고 항상 겸비한 태도로 말하라.
이 집사들은 매주 목요일 아침 6시에 모여 밀린 사무를 처리하고 환자와 빈자에게 필요한 구제금을 전달 지급하였다. 집사들은 신도회에서 4-7명으로 조직되었고 이들의 주요 임무는 신도회를 유지 관리하는 일이었음을 알 수 있다.
e. 병자심방인 (Visitor of the Sick)
웨슬레는 병자에 대하여 특별한 관심을 가졌다. 처음에는 속장과 집사들이 심방하고 구제 하였으나 이들이 환자들이 요구하는 만큼 심방할 수 없으므로 병자심방인을 따로 두었다. 웨슬레는 신도회 회원 중에서 자원자를 택하여 2명씩 짝지어 다니게 하고 한 주일에 적어도 3번은 심방하도록 하였다. 웨슬레는 병자심방인을 위하여 수칙을 정하였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① 솔직하고 겸손할 것.
② 온유하고 오래 참고 진실할 것.
③ 청결할 것.
④ 환자를 너무 가까이 말것.
웨슬레는 말하기를 "이 일을 통해 하나님께서 더욱 놀라운 축복을 내리시는 것을 보고 기뻤습니다. 많은 생명이 구원을 받았고 많은 환자가 나음을 얻었으며 고통과 빈곤으로 시달리던 많은 사람들이 그것으로부터 해방되었습니다. 마음이 무겁던 자들이 기쁨을 얻게 되었고 슬피 울던 자들이 위로 받게 되었으며 이 방문자들도 그들이 섬기는 주님으로부터 그들의 노력에 대한 귀한 선물을 받았습니다." 라고 하였다.
웨슬레는 목회현장의 필요에 따라 직분자를 선정 임명하였고, 철저한 확인 및 감독을 통하여 목회 훈련을 실시하였다.
. 성결교회와 목회 훈련의 적용
1. 목회훈련의 조직과 내용
a. 조 직
(1) 복음전도관
성결교회가 시작된 1907년에는 이미 한국에 다른 주요 교단 교회들이 선교활동을 시작한지 약 22년이 지난 후였다. 성결교회는 외국인 선교사가 오기전 1907년 5월 2일 정빈과 김상준의 양인이 일본에 동양 선교회가 설립한 '동경 성서 학원'을 졸업하고 귀국함으로 시작된 '자생적 교단'인 것이다. 동년 5월 30일 서울 무교동 12번지 자리에서 기와집 한 채를 사서 복음 전도관 간판을 걸고 복음을 전하였으니 이것이 한국 성결교회가 탄생한 순간이었다. 성결교회가 교파나 교단 형성에 전혀 뜻이 없이 어디까지나 순수하게 복음을 전하고자 내걸었던 간판이 복음전도관이었다.
처음에는 "교파 형성의 의도 없이 출발하여 ... 성결의 복음을 만민에게 선포할" 목적으로 전도에만 열중하던 정빈, 김상준과 양인이 복음전도과 이라는 교단을 조직하게 된 것은 신도 수가 너무 많이 증가되어 불가피한 일이었다. 나아가 복음 전도관이 한국 선교에 착수한지 15년이 지났을때 설립된 전도관이 33개소에 이르렀고 수천명의 신자가 형성되므로 신자들을 돌아보기 위하여 목회치리 정책을 사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웨슬레에게 있어서 신도회에는 엄격한 규칙이 있었고, 신도회가 훗날 감리교라는 교단으로 발전하였다. 성결교회의 기원이 되는 복음전도관 은성결의 복음을 만민에게 선포할 목적으로 어느 교파의 설립이나, 간접 전도가 아닌 '직접 복음 전도'를 전도방법으로 활동하였다. 이것이 신도수의 증가로 교단을 형성하게 되었다. 이같은 점을 볼때 성결교회의 창립 경위는 웨슬레의 메소디스트가 조직될 때와 유사하며, 외국에 있는 기성교회 (장로교회나 감리교회, 침례교회) 들처럼 기성교회의 정책에 따라 교회를 시작하는 경위와는 달랐다. 교회의 조직과 제도는 선교를 하기 위하여 불가피하게 점차로 제정되어 마침내 하나의 교단이 된 것이다.
(2) 치리의회
김상준. 정빈 두 사람에 의하여 1907년 5월에 설립된 '복음전도관'은 14년 동안 아무 조직도 없이 전도에만 주력했다. 그러다가 1921년도에 길보른 총리가 한국에 주재하게 되면서부터 교회가 조직이 되고, 그 해에 '교역자 간담회'를 발족하여 1923년까지 지내왔다. 1924년부터 1928년까지는 '교역자회'라는 이름으로 내려왔으나, 정치적인 활동은 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1929년에 이르러서 '연회'를 창립하게 되면서 폭넓은 활동을 하게 되었다.
이로써 1907년 5월 무교동에 '복음전도관'을 창설한 뒤, 만 22년 만에 '연회'가 창립되었고, 이 연회로써 성결교회의 교역자들이 비로소 참의(參議)의 특권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이 창립연회에서 다음의 사항을 결의 하였다.
① 음력 정월과 7월에 사경회와 대전도회를 개최한다.
② 금년 1년 동안에 한 교회에서 한개의 지교회를 신설한다.
③ 재단법인 이사 가운데 한국사람 이사를 세운다.
④ 중앙 사무국을 설치한다.
⑤ 재판법을 제정 공포한다.
⑥ 진남포.웅기.청주.상주.이리에 교회를 새로 개척한다.
1929년에 조직된 연회가 제 4회에 이르렀을 때, 연회 대의원 전체 의견에 따라서 '성결교회 총회'를 창립할 것을 만장일치로 결의하였다. 이로써 1933년 4월 11일 오후 7시에 '경성 성서학원' 대강당에서 이명직목사의 사회로 '한국 성결교회 창립 총회'가 개최되었다. 1940년 일제의 강요로 주한 선교사들이 자기나라로 들어감을 계기로 성결교회는 자립하는 교회가 되었다. 해방후 교회의 명칭을 기독교 대한 성결교회로 하였고, 교회의 정체(政體)는 신앙양심을 기초로 한 대의제도(代議制度)로 하기에 이르렀다.
우리나라 장로교회에서는 당회, 노회, 총회 3단계의 치리 기관을 두어 교회를 치리하고, 감리교회에서는 당회, 구역회, 지방회, 연회, 총회 등 5단계의 치리 기관을 두어 교회를 치리하고 있다. 성결교회에서는 당회, 지방회, 총회등 3단계의 치리 기관을 두어 교회의 조직을 치리하고 있다.
웨슬레에게 있어서 연회는 그의 목회 사역 전체를 움직이고 목회훈련을 시키는 최고의 의결기관이었다. 그의 목회훈련의 의도는 교회 및 교단형성이 아니고, 교회안의 작은 교회로서 그가 이끄는 메소디스트가 사명을 감당하기 위함이었다. 나아가 오늘의 성결교회는 옛날의 복음전도관이 아니다. 한국의 장. 감. 성 3대 교단의 하나로 1989년 12월 31일 현재 1,623교회, 601,081명 신자를 소유한 대교단이다. 단지 아쉬운 것은 신학은 웨슬레신학이면서 치리의회는 장로교와 흡사한 점이다. 대의제도에 입각한 직원의 선출이나 치리회의의 단계적 구성들이 매우 비슷하다. 이점은 성결교회가 장로회의 치리의회를 받아들였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교회조직에 대한 웨슬레 입장에 대하여 재조명이 필요하고, 오늘의 성결교회에 그 실천이 혁신적으로 요망된다 하겠다.
b. 내 용
(1) 하나님 말씀
성결교회는 헌법에서 성경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우리 교회의 경전은 성경전서, 곧 구약과 신약이니 이 경전은 하나님의 계시를 받은자들이 영감에 의하여 기록한 것인즉 이는 하나님의 말씀됨을 믿나니 성경은 모든 사람을 구원하기에 넉넉하므로 무릇 성경에 근거하지 않은 신학설(神學說)이나, 여하한 신비설이나, 체험담은 신빙할 수 없으며 이런것을 신앙의 조건으로 하거나 구원의 필요로함을 배격한다.
이와같이 성결교회는 성경의 권위를 강조하고, 목회에 중요한 텍스트로 보는 것이다. 또한 성경은 신앙생활과 교회생활의 규범이 된다. 성경해석에 있어서도 "성경을 성경으로 해석" 하나, 하나님의 말씀으로써 실제생활에 관심을 가지고 해석되어진다. 따라서 하나님 말씀인 성경에 대한 비판 연구는 기피되어 왔다.
성결교회 헌법에서는 성경을 해석하는 것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성경전서는 우리 신앙의 표준이며 교회 정치제도와 신도생활의 규범이다. 성경을 해석할 때는 성경전체에 일관된 복음으로 할 것이요, 어느 일부분의 구절로 자기의 학설이나 체험을 해석하는 것은 불가하며, 또는 성경의 묵시됨을 부인하거나 비평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용인하지 않는다.
이와같은 성경에 대한 입장은 성결교회 창설 당시부터 강조되었다. 이것은 성결교회의 산파 역할을 한 동양선교회의 신조이자강조점이기도 했다. 어떤 면에서 초대 성결교회에서는 성결만을 강조한 나머지 다른 신학서적이나 세속의 글들을 읽고 공부하는 것을 권장하지 않은 경향이 많았
다. 그리하여 당시의 교역자 양성기관이었던 경성 성서학원 에서의 교과 과정이 거의 성경 과목이요, 타학문 분야의 학과목은 거의 없었다. 오로지 성경만을 읽고 공부하라고 권장하였던 것이다. 이것은 웨슬레가 말한 '한책의 사람'을 잘못 이해한데서 기인하였다고 본다.
웨슬레가 성서를 사랑하기를 "오 주여 ! 그 책을 나에게 주십시요. 어떤 댓가를 치르더라도 하나님의 책을 가져 가야겠습니다." 라고 하였듯이 성결교회는 그의 역사에서 "성경"을 간직하려고 노력하였다. 예를 들면 1940년대의 일제 말엽에 조선총독부가 당시의 한국 기독교회의 경전에서 구약을 폐기케 하려고 종용내지 강요한 적이 있었다. 그때 교단 존폐의 위험을 무릎쓰고 강력하게 반대한 것이 바로 성결교회였다.
성경을 사랑하며, 성경의 순수성을 그대로 지켜보려고 한것이 성결교회 초창기 지도자들의 한결같은 특징이었다. 오늘날 성경 중심의 신학, 설교, 목회를 강조하는 그 전통은 귀하게 계승되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교회가 성서의 권위에 대하여 흔들릴 때에는 교회의 기반이 흔들리며 '복음의 능력'도 희미하게 되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유산을 꽃피우기 위하여 성서를 사랑하고 아끼는 열정과 함께 목회현장에서 충분한 규칙과 유일한 규칙으로 받아들여 목회에 하나님의 뜻이 성취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2) 성 례 전
웨슬레는 예수께서 친히 실례로 보여주셨듯이, 세례란 모든 신자들에게 필수적으로 임하는 하나의 은혜의 수단으로 생각했다. 그는 성례전으로서의 세례는 일반적인 의미에서 "교회 또는 천국에 들어가는 유일한 수단" 이 고 믿었다. 성결교회는 헌법에서 세례에 대하여 정의하길 "세례는 주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요, 우리의 구주로 믿음과 죄사함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됨을 증거하는 표가 되는 성례",라고하였을 뿐만아니라 "세례란 신자가 회개하여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아 중생하므로 교회에 속함을 받는 예식" 이라고 하였다. 즉 성결교회는 세례를 '교회의 속함을 받는 예식과 하나님의 자녀됨을 표하는' 예식으로 보는 것이다.
웨슬레는 세례가 주는 혜택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우리는 세례를 통하여 말씀하신 그리스도 곧 하나님의 새로운 언약안에 접붙임을 받는다. 곧 그리스도의 몸안에 받아 들여진다.
성결교회는 학습.세례 문답집에서 세례가 주는 혜택을 다음과 같이 보았다.
① 세례를 받으면 교회의 정회원이 되며, 정회원은 교회 헌법에 따라 교인으로서의 의무와 권리를 행사하게 된다.
② 신자는 세례를 받으므로써 구원의 확신과 거듭난 체험을 증거하게 된다.
③ 세례를 받음으로 가장 귀한 예식인 성찬예식에 참여하게 된다.
그러므로 성결교회는 세례에 참여할 수 있는 사람의 자격에 대하여 "이미 학습을 받은 후 세례문답에 합격한 자로 한다 (가급적 세례문답 준비반의 교육을 수료한 자로 한다)", "학습교인이 6개월 이상 교회의 지도를 받아, 신앙생활을 계속한 분에게 한다" 라고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웨슬레는 성만찬을 신앙을 견고케하는 예전이며 회심을 재촉하는 예전으로 보고 그는 성만찬을 회심케 하는 의식 (Converting Ordinance)이라고 하였다. 그는 성만찬을 중요한 은혜의 수단으로 보았다. 성결교회는 헌법에서 성만찬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성찬은 우리의 속죄 제물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기념하기 위하여 떡과 포도즙을 받는 예식이다.
성찬은 주 예수께서 친히 세우신 예식이니 곧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하여 십자가 위에서 몸을 찢으시고 피흘리심을 기념하여 우리의 신앙을 깊게 하는 예식이다.
성결교회는 성만찬을 예수 그리스도의 피흘리심을 기념하여 우리의 신앙을 깊게 하는 예식으로 보는 것이다. 나아가 웨슬레가 성만찬을 단순한 '기념'이라는 해설에 반대하였듯이, 성결교회도 성만찬을 단순한 기념으로 보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합당한 수찬자가 믿음으로 받을때 그는 자기의 필요한 은혜를 받는 것이다. 여기서 수찬자의 자격이 문제가 된다. 성결교회는 수찬자의 자격에 대하여 "세례교인으로, 신앙양심에 거리낌이 없는자" 라고 말하고 있다. 성만찬은 목회훈련의 내용으로 성도에게 가시적 설교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이 가시적 설교는 믿음과 행동으로 받아들여져야 하고, 하나님의 공동체인 교회에서 올바로 집례되어야 할 과제를 갖는 것이다.
이상의 내용을 요약하면, 세례는 교회가 어떤 사람을 구별하여 세례받도록 함으로써 그리스도의 몸인 은혜의 왕국 안으로 편입시켜, 객관적으로 이미 주어진 바 구속의 복음에 대하여 하나님을 대신하여 증거하는 행동인 것이다. 성결교회는 세례를 교회에 속함을 표하는 예식과 하나님의 자녀됨을 표하는 예식으로 보았고, 성만찬을 '예수 그리스도의 피흘리심을 기념하여 우리의 신앙을 깊게하는 예식'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이 성례전은 성결교회의 목회훈련의 중요한 장으로, 보여지는 말씀으로 구현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세례, 성만찬에 대한 좀더 깊은 신학적 입장 표명과 합당한 집례를 위하여 '규칙'의 제정이 요구되어진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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