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웨슬레의 목회훈련개발에 관한 연구 2
존 웨슬레의 목회훈련개발에 관한 연구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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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반 회 (The Bands)
Band에 대한 번역은 대단히 다양하다. 송흥국씨는 소회라고 했고, 민경배교수는 단이라고 번역하였으며, 노 해씨는 신도반이라고 번역하였으나, 여기서는 반회라는 용어로 통일하고자 한다.
웨슬레는 속회 조직 이전에 1738년 페터레인회 (Fetter Lane Society) 조직시부터 반회를 조직하였다. 이 조직은 모라비안 교도들의 조직에서 유래한 것이다. 그러나 웨슬레는 모라비안 교도 조직에 있는 급장제를 채택하지 않았다. 웨슬레가 급장제를 채용하지 않은 이유는 모라비안 교도들에게 급장 (Moniters)이란 영적인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나 잘못을 범한 것 같은 사람들에 대해서 보고하고 그것을 권면하는 것이었다. 웨슬레가 이제도를 폐지한 것은 이 일이 반회안에 있는 회원 상호간에 책임을 떨어뜨린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이 반회는 남녀별, 기혼, 미혼별로 4개 반별로 6명 단위로 조직되었다. 반회 회원에게는 평균 3개월에 한번씩 반회 티켓이 발급되었다. 이 티켓 표면에는 'Band'나 'b'자가 표기되어 있고 속회 티켓과 같은 기능을 가지며 애찬식과 성찬예배 (Covenant Services)와 신도회 모임에도 참가할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반회와 속회의 티켓이 발행된 수에 의하면 감리교 전체 회원이 속회 회원인데 반하여 반회의 회원은 속회 회원 전체에 20%정도였다. 그리고 매주 일회씩 남자반은 수요일 저녁에, 여자반은 일요일저녁에 모였다.
웨슬레는 반회 회원들의 영적 성장을 위하여 다음과 같이 목회 훈련을 시켰다.
1. 최소한 일주일에 한번 모임을 갖는다.
2.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지정된 시간에 정확히 모인다.
3. 참석자들은 정시에 찬송이나 기도로 시작한다.
4. 각자가 지난 번 모임 이후에 생각으로, 말로, 행동으로 범해온 죄와 심령의 상태를 숨김없이 순서대로 말한다.
5. 참석한 개인의 상태에 적합한 기도를 드림으로 모임을 끝낸다.
6. 참석한 사람들 중 누군가가 먼저 자신의 영적 상태에 대해서 말하고 싶어한다면 그렇게 하고 다음에는 나머지 사람들에게 할 수 있는 한 그들의 죄와 심령의 상태와 및 유혹받은 것들에 대해서 자세히 물어본다.
7. 매주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한다.
가. 지난 모임 이후에 어떤 죄를 범했는가 ?
나. 어떤 시험을 만났는가 ?
다. 어떻게 구원을 받았는가 ?
라. 무엇을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했는가 ? 그중에 죄인지 아닌지 의심나는 것은 어떤 것인가 ?
또한 웨슬레는 신도회의 가입 조건으로 내세웠던 것을 세분화하여 반회 회원들에게 당신은 '세상을 이길 만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당신에게 아래의 사항은 무거운 짐이 되지 않을 것이다 하면서 다음과 같은 규칙을 주었다.
1. 조심스럽게 악을 행하는 일을 피하라. 특히,
가. 주님의 날에는 무엇이든지 사거나 팔지 말라.
나. 의사의 처방이 아니라면 어떤 술이든 먹지도 말고 맛보지도 말라.
다. 물건을 사고 파는 데 있어서 여러 말을 하지 말라
라. 아무것으로도 맹세하지 말라. 그런것들 중 아무것도 생명을 구할 수는 없다.
마. 본인이 없는 자리에서 그의 흠을 말하지 말고, 그런 사람을 보면 즉시 중지하도록 하라.
바. 반지, 귀걸이, 목걸리, 레이스, 옷깃의 주름장식 등 불필요한 방종한 생활을 하지 말라.
2. 열심히 선한 일을 도모하라. 특히,
가. 당신이 가진 소유로 자선을 베풀라. 그리고 당신의 힘이 닿는 데까지 최선을 다하라.
나. 당신의 면전에서 죄를 짓는 사람은 누구나 책망하라. 그러나 사랑과 지혜의 온유함으로 하라.
3. 끊임없이 하나님의 모든 계명을 지키라. 특히,
가. 매주 교회에 출석하고 성만찬에 참여하라. 그리고 모든 공적인 반회에 참여하라.
나. 원거리, 사업, 또는 질병의 이유가 아니라면, 매일 아침 성서 공부반에 참여하라.
다. 당신이 한 가정의 호주라면, 매일 개인 기도를 드리고 가족 기도회를 가져라.
라. 틈나는 시간마다 성서를 읽고 그 안에서 묵상하라.
마. 연중 매 금요일은 금식 또는 절제의 날로 지키라.
이상으로 살펴본 것처럼 웨슬레는 반회 회원들을 아주 철저하게 목회훈련 시켰음을 알 수 있다. 1747년 6월 15일 부터 18일까지 열렸던 제 4회 연회에서 반회 회원들의 숙정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문답을 하였다.
문 6. 반회 회원을 숙정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
답 1. 각 속회를 방문할 때 먼저 반회 회원들을 아침에 나오게 해서 그들의 생활과 신정을 엄밀히 심사할 것.
2. 기혼남녀를 따로 매월 첫 수요일과 일요일에 만나보고, 독신 남녀는 제 2 수요일과 일요일에 만나보아 심사할 것.
이렇게 철두철미 했던 반회도 가변적 은혜의 수단으로서 한 를 보이게 되어 계속해서 존속되지 못하고 사라지고 말았으니, 스나이더는 이 반회가
1880년 경까지 존속했다고 보았다.
지금까지 살펴 보았듯이 속회는 신도회에 새신자를 받아 훈련시키고 여러 선교적 활동에 참여하는 신앙훈련적 모임 (Disciplinay Cell)이고, 반회는 회원 자신의 신앙을 심화시키고 체험시키며 진실한 신앙을 추구하여 그에 합당한 신앙의 결실을 맺는 신앙고백적 모임 (Confessional Group)이다. 즉 속회는 신도회의 핵심 조직으로써 윤리적 (Moral), 영적 (Spiritual) 생활을 지키도록 훈련하고, 가르치며, 구제하는 것이고, 반면 반회는 기독자의 완전을 추구하는 모임으로 죄의 용서와 구원의 확신과 시험을 이기기 위하여 모이는 속회의 핵심이다. 오늘날 기구화되고 대형화 되어가는 한국교회에 웨슬레의 반회와 같은 교회안에 작은 교회가 목회훈련을 위하여 대단히 중요하다 하겠다.
4. 선발신도회 (The Selected Society)
선발신도회는 반회 회원중에서도 특히 하나님의 빛가운데서 산다고 믿는 사람들과 독실한 믿음 아래 순종의 생활을 하는 사람들로 구성되었다. 반회 안에 보다 친밀하고 철저한 선별된 집단이다. 이 모임은 '그리스도인의 완전'이라는 주제에 특히 관심이 있는 사람들을 위한 모임이었다. 이 모임의 의도는 다음과 같다.
완전의 지속적인 추구, 받은 바 은총을 실행하고 부여받은 모든 재능을 증진시키며, 서로 더욱 사랑하도록 북돋으며, 서로를 더욱 주의 깊게 돌볼 수 있는 방법을 지시하며, 모든 경우에 자신을 남김없이 열어 보일 수 있는 선별된 모임에 참여할 것.
이 모임의 구성원은 칭의를 받고 내적으로나 외적으로나 성경의 뚜렷한 진전을 보인 자들로 이루어진 모임이다. 이들은 속회나 반회에서 얻은 것으로 만족하지 못하여 보다 깊고 완전한 친교를 요구하는 자들이었다.
웨슬레는 이들을 매주 월요일 저녁에 모이게 하였다. 그리고 이 선발신도회 규칙에 대하여 말하기를 그들은 모두 마음 속에 가장 값진 규칙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다른 잡다한 규칙은 필요없다고 하였다. 그래서 웨슬레는 연합신도회의 규칙과 같으나 이밖에 다음의 세개의 조항만을 첨가하였다.
1. 신도회에서 거론된 것은 다시 발설하지 말것이며 비록 회원에게라도 말아야 한다.
2. 각 회원은 모든 정당한 일에는 담임 목사에게 절대 복종해야 한다.
3. 각 회원은 주 1회씩 성심성의껏 우리의 공동금고에 헌금을 하여 앞으로 공공유익을 위한 일에 쓰도록 한다.
이 모임의 특징은 누구나 자유로이 말할 수 있으며 회원은 모두 평등한 것이었다. 웨슬레는 이러한 모임을 통하여 전통적인 입장에 굳게서서 좌우로 탈선되지 않도록 하였다. 웨슬레는 이 모임의 회원들을 적어도 세달에 한번씩은 면담하여 그들이 믿음 안에서 성장함을 알고자 하였다. 선발신도회는 웨슬레 자신의 체험에 의해서 만들어진 질문에 근거하여 신앙고백적 모임이 되어 신도회의 중요한 기둥이 되었다. 이러한 모임에서 물은 질문은, 당신의 죄를 용서함 받았는가 ? 당신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과 평화를 누리는가 ? 당신은 당신의 영혼에 하나님의 영의 증거를 가졌는가 ? 즉, 하나님의 자녀인가 ? 하나님의 사랑이 당신의 마음에 채워졌는가 ? 당신의 죄를 공개적으로 말할 수 있는가 ? 를 묻고 이에 대하여 진실하고도 신중한 고백과 대화를 하였고 서로 기도하였던 것이다.
이상으로 선발신도회는 내적 신앙을 기준하여 조직하였음을 알 수 있다. 사실 웨슬레는 이 모임을 통하여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제것이라고 주장하는 이가 없었던 초대교회의 이상을 실현하고자 하였다. 오늘날 교회조직이 다분히 외적 조건을 기준으로 구분한 것에 대하여 깊은 반성과 새로운 측면의 목회훈련 조직을 개발함이 시급하다 하겠다.
5. 참회자반 (Penitents)
웨슬레는 이 모임을 정의하기를 "믿다가 무슨 일로나 낙심했던 사람들이 따로 모이는데 그 모임을 참회자반" 이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참회자반은 한마디로 신앙의 파산자들의 모임이다. 처음에 구원을 갈망하여 신도회에 참여하였으나 그 중에는 더러 낙심하고 낙오자가 되기도 하였다. 이처럼 웨슬레는 신도회 안에서 고의로 죄 지은 자, 자기도 모르게 경박해지고, 게을러지고, 나태해진 자들이 생기자 이들의 영적 성장을 위하여 참회자반을 조직하여 목회훈련을 시켰다. 이들은 매주 일요일 저녁마다
모여서 다시 신앙 생활을 하도록 독려 받았다.
6. 연 회
신도회가 조직된지 5년 후인 1744년에 웨슬레는 런던 파운드리에서 그의 보좌 목사 4명, 평신도 사역자 4명, 웨슬레와 찰스 웨슬레 도합 10명이 모여서 제 1회 연회를 조직하였다. 이것은 웨슬레의 목회 사역 전체를 움직이고, 목회훈련을 시키는 최고의 의결기관이 되었다. 이 연회의 의제는 다음과 같다.
1. 신도들에게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
2.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
3. 교리와 장정을 제정하고 실행하는 문제, 어떻게 훈련하며, 또 실행할까 하는 문제였다.
웨슬레는 연회에서 목회훈련의 제반사역과 신도들과 기타 지도자들의 실행 문제들을 논의하였다. 특별히 평신도 지도자들이 그들에게 맡겨진 일들을 위하여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게 하기 위하여 소속된 단체의 임무와 그 단체의 지도자들의 생활등에 대해서 자세한 지침들을 주었다. 그리고 1763년 고시문 (Model Deed)을 발표하여 "연회에서 임명받은 교역자들은 자신이 발행한 4권의 표준 설교문과 신약성서 주해에 포함된 도리 외에 다른 것은 설교하지 않는다는 조건 속에서만 감리교의 예배서를 쓸 수 있다"라고규정함으로써 교회의 지도자들로 하여금 그가 생각하고 지켜온 교리와 목회훈련에서 탈선하지 못하도록 하였다. 웨슬레의 이러한 조직적 사역은 목회훈련 사역을 효과적으로 만들었다.
. 목회 훈련의 내용
웨슬레의 목회훈련의 내용으로 하나님 말씀(성경, 설교)과 성례전(세례, 성만찬)을 들 수 있겠다.
웨슬레는 철저하게 성경의 사람이었다. 캐스토(Robert Michael Casto)가 그의 박사 논문에서 지적하였듯이 성경은 웨슬레의 생애에서 중심을 차지하고 있는 책이다. 웨슬레는 성경을 근면하게 읽었다. 그는 매일같이 성경을 원어로 몇 시간씩 읽으면서 진지하게 연구했으며, 진실로 성경에 능통하였다.
또한 그는 설교로 일생을 살았으니 매일 2,3회씩 설교하였으며, 주당 15회씩 평균해서 42,400회의 설교를 하였고, 하나님께 부름받기 1주전까지 설교를 하였다. 웨슬레의 설교는 성경 말씀에 그대로 근거를 두고 있었다. 그는 1746년에 출판한 설교집 서문에서 말하기를 "나는 구원받는 방법에 관하여 성경에서 발견한 것을 이 설교들에서 설명하였다."라고하였으니 그에게 성경은 설교의 기초요, 설교의 내용이었다.
나아가 그는 성례전을 대단히 중요하게 여겼으니 은혜의 수단 8가지 중 성례전을 제일 중요시 하였다. 그러나 웨슬레는 세례가 구원의 필수적이라고 보지는 않았다. 웨슬레는 세례가 구원에 필수적이 아님을 다음과 같이 1750년 길버트 보이스 (Gilbert Boyce)에게 편지를 하였다.
그대는 세례의 형식이 '구원에 필수적'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세례 자체가 그렇다는 것을 부정한다. 만일 그렇다면, 퀘이커 교도는 저주의 대상이 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나는 이것을 믿을 수 없다. 나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 이외에 구원에 필수적인 것 (엄격히 말하면)은 없다고 주장한다.
나아가 웨슬레는 성만찬을 가장 중요한 은혜의 방법으로 여겼다. 그 이유는 그가 이끄는 페터 레인회 (Fetter Lane Society)에 이른바 정적주의자들의 '은혜의 방법 무용론' 때문이었다. 그들은 다만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를 얻기 때문에 무슨 인간적인 방법을 쓸 필요가 없고, 다만 고요히 그의 은혜를 믿음으로 기다리는 것으로 족하다고 주장하였다. 여기에 대하여 웨슬레는 하나님께서는 교회내에 설정된 은혜의 방법을 통하여 그 은혜를 베품으로 구원을 얻게 하신다고 역설하였다.
1. 하나님 말씀
a. 성 경
웨슬레는 성경을 최고의 권위로 인정하였다. 1739년 6월 11일 한 절친한 친구에게 다음과 같이 편지를 썼다.
나는 신앙에 있어서나 실생활에 있어서 성경 이외의 다른 법칙은 하나도 용납하지를 않습니다. 그러나 성경적인 원칙에서 내가 무엇을 하든지 그것을 정당화 하는 것이 어렵다고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은 나에게 명령을 하시어 나의 능력에 따라 무지한 사람들을 가르치고 악한 사람들을 변화시키고 착한 사람들을 더욱 더 착하게 만들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성경이 웨슬레에게 신앙과 실생활의 기준임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메소디스트의 특징이라는 글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이 그리스도인의 신앙과 실천에 유일하고도 충분한 법칙임을 믿는다. 우리는 여기서 카톨릭 교회의 신자들과 구별된다."라고하였다. 또한 1766년 6월 5일 일기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나의 기반은 성경이다. 나는 성경 고집장이다. 나는 크거나 작거나간에 모든 일에 있어서 성경을 따른다. (My ground is the Bible. Yes, I am a Bible - bigot, I follow it in all things, both great and small)... 성경의 가르침에 반대되는 것은 그 어떠한 것도 하나님의 목적에 배반된다. 그러므로 반드시 반대한다.
이와같은 것을 통하여 그가 철두철미하게 성경 중심의 사람임을 알 수 있다. 웨슬레에게 있어서 성경이 그리스도인의 신앙과 실천에 유일한 법칙이요, 원리인고로 그것은 은혜의 수단이 되며, 따라서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는 자는 누구나 성경을 탐구해야 그 은혜에 이를 수 있다고 하였다.
웨슬레는 성경을 근면하게 읽었다. 그는 매일같이 성경을 원어로 몇 시간씩 진지하게 읽었다. 그에게 성경을 읽는 것은 분명한 목적이 있었다. 그는 그의 설교집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성경읽는 목적을 썼다.
여기에 나는 일들로 부터 떠나 홀로 앉아 있다. 오직 하나님만 여기 계실 뿐이다. 그 분 옆에서 나는 성경을 펼친다. 나는 그분의 책을 읽는다. 천국에 가는 길을 발견하려는 목적으로 읽는다.
또한 그는 구약성서 주석의 서문에서도 독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성경읽는 목적에 대하여 권고하였다.
그들이 성경을 읽되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고 말씀 하신 것같이 외적으로 그렇게 되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읽기를 원한다면, 매일 일정
한 시간을 아침 저녁으로 성경을 읽는 목적으로 내어 놓으라.
이와같이 웨슬레에게 있어서 성경 읽는 것은 하나님의 모든 뜻을 알기 위함이었다.
그렇다고 웨슬레가 오로지 성경만을 읽는 것은 아니었다. 웨슬레는 성경 이외에도 많은 책을 읽었다. 그는 1725년 부터 1734년 사이의 옥스포드 시절에 400여권의 책을 읽었다. 그린 (V. H. H. Gveen)은 웨슬레가 그 시절의 자기 일기에다가 그가 읽었다고 언급한 책들을 종류별로 열거하였는데, 희랍과 로마의 고전을 비롯하여 종교, 문학, 철학, 연극 등 그 책의 종류와 범위는 매우 다양하였다. 웨슬레는 옥스포드 대학 생활 이후에도 계속해서 많은 책을 읽었다. 이에 대하여 웨슬레는 1778년 9월 1일 일기에다 다음과 같이 썼다.
아마도 나는 전보다 5,6백권의 책을 더 읽었을지 모른다. 또한 옛날보다 역사나 자연 철학에 대해 좀 더 알고 있다고 할 수 있으나 이런 것으로 신성을 아는 지식에 보탬이 되었다고 할 수 없다. 40년 전에도 나는 지금 설교하고 있는 기독교의 교리를알았고 설교하였다.
이와같이 웨슬레 자신의 일기를 통하여 볼 때 그가 결코 편협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실 그는 고전으로부터 당대의 저서까지 두루 섭렵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웨슬레는 '한책의 사람'(Homo Unius Libri)이 되길 원했다. 그는 기독자의 완전에서 (1777년) "이것은 1730년 6월부터 자신이 줄곧 추구해온 목표" 라고 하였다. 한책의 사람이라는 용어는 웨슬레에게 친숙한 것이었다. 그는 그의 설교집에서 자신이 얼마나 한책의 사람이 되길 원했는 가를 다음과 같이 피력하였다.
나는 한가지 사실 곧 하늘로 가는 길을 알고 싶다.... 나를 한책의 사람이 되게 하라.... 마음의 문을 연 후에 나는 성경의 근사한 구절을 찾아 비교 연구 한다. 그리고 그 구절에 대하여 온갖 정신과 열정을 집중하여 명상한다. 그래도 여전히 의심이 가시지 않으면 나는 하나님의 사업에 경험이 있는 자들과 상의하고 또한 독서를 한다. 나는 이런 과정에서 배운 것을 가르친다.
진실로 웨슬레는 한책의 사람이었다. 이것은 웨슬레의 목회훈련의 기본 텍스트가 되었다. 후에 평신도 보조자에게 목회 훈련을 시킬 때 그는 "신도도서" (Christian Library) 라고 목록을 제시하였다. 이처럼 웨슬레는 "하늘 가는 길을 가르쳐주는 천국의 안내서요", "모든 계시의 시금석"인 성경을 철저히 탐구 하였고, 성경을 신앙과 실천 생활의 유일한 규칙 (The only rule)과 충분한 규칙 (The sufficient rule)으로삼아 목회 훈련의 기본 텍스트로 삼았던 것이다.
b. 설 교
웨슬레는 설교를 통하여 목회를 시작하였다. 그의 목회 중에서 설교가 제일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그의 일기를 보면 자신은 설교로 산다고 하였다. "점심때 우드씨츠 (Woodseats)에서 설교하였다. 저녁에는 셰피일드에서 나는 진정 설교로 살아간다 !" 무엇보다도 웨슬레의 설교는 성령의 감화에 힘입어 있었고 , 1738년 5월 24일 올더스케이트 집회에서 강한 체험을 했고, 1739년 1월 1일 페터레인 (Fetter Lane) 집회에서 능력을 받은 후부터 그의 설교에 능력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러면 그의 설교의 목적은 무엇이며 그 성격은 어떤 것인가 ? 그는 그의 설교집 서문에서 설교의 목적을 피력하였다.
나는 하늘로 가는 길에 관하여 성경에서 발견된 사실을 다음의 설교들 속에 기술하면서 하나님의 길과 인간이 발명한 것들을 구별하였다. 나는 진실하고 성서적이고 경험적인 종교를 서술하되, 그것의 본질적인 것을 빠뜨리지 않는 동시에 비본질적인 것을 첨가하지 않으려고 노력하였다.
즉 그에게 있어서 설교의 목적은 하늘 가는 길을 전달하기 위함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웨슬레의 설교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였고, 그들이 계속하여 성장하고 믿음을 유지함으로 하늘나라에 넉넉히 들어가게 함이었다.
웨슬레는 전도열에 불타는 설교자였다. '만일 내가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다 (고전 9:16)' 라는 바울과 같은 심정으로 복음을 전하였다. 그는 이러한 사명감과 구령의 열정 때문에 그는 임종할 때까지 전심 전력을 다해서 영국을 순회하며 복음을 설교하였던 것이다. 웨슬레는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겠습니까 ?"라고 몰려드는 군중에게 지혜와 의와 구원이 되시는 그리스도 를증거해 주었다. 웨슬레는 복음을 전파하면서 바울과 그 전도 일행이 당했던 수 많은 환란과 핍박과 어려움들을 겪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구령사업의 고삐를 늦추지 아니하고 전도마차를 몰아 산을 넘고 강을 건너 목마르고 굶주린 영혼들에게 달려갔다. 그가 수 많은 환난과 고초 속에서도 얼마나 뜨거운 구령의 열정을 가지고 복음을 전파했는지는 그의 삶 전체가 증거가 될 것이다.
영국 국교회 내에서 웨슬레에게 설교 행위를 금지 시켰을 때 그는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는 특정지역이 있을 수 없다는 세계 선교를 향한 비젼을 가지고 야외설교를 감행하였다. 이때 그는 '전 세계는 나의 교구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만약 내가 어떤 원칙에서 행동을 하느냐고 물으신다면, 원칙은 이것입니다. '크리스챤이 되고자 하는 욕망과 그렇게 되는데 도움이 되는 것이라고 판단되어지는 것은 무엇이라도 해야 한다는 확신이 있으며 이 목적을 달성하는데 필요하다면 어디라도 가야 한다고 판단될 때 그곳에 가야 한다는 확신입니다.' 이 원칙에서 나는 미국에도 갔었고, 이 원칙에서 모라비아 교회를 방문하기도 하였고, 이제도 같은 원칙에서 아바시니아 (이디오피아)나 중국 같은 곳 어디라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면 어디든지 부르시는 대로 갈 준비가 되어 있으며 이것이 바로 나의 확신입니다.... 사람은 내가 다른 사람의 교구에서 이와같은 일을 하지 못하게 금하고 있습니다. 다시말하면 결과적으로 내가 현재 교구를 가지고 있지 않을 뿐더러 앞으로도 계속해서 교구를 갖지 않을 것으로 알고 내가 그런 일을 전혀 하지 못하도록 금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누구의 말을 들어야 하겠습니까 ? 사람입니까 ? 나는 온 세계를 나의 교구로 생각합니다. 이말의 의미는, 내가 세계 어느 곳에 가서 있을 지라도 구원의 기쁜 소식을 기꺼이 들으려는 모든 사람들에게 선포하는 일이 온당하고 정당하며 나에게 허락된 의무라고 생각한다는 말입니다. 이 일이야말로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셔서 내게 맡기신 일이라는 것을 나는 압니다. 그러므로 나는 하나님께서 나에게 맡기신 일을 이루는 일에 충성을 할 수 있는 커다란 용기를 계속 얻게 됩니다. 나는 하나님의 종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하나님의 말씀이 명백히 지시하시는대로 종으로서 일할 따름입니다. '기회를 얻는대로 모든 사람에게 선을 행할 뿐' 입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명백하게 하나님의 말씀과 일치합니다. 나로 하여금 다른 모든 일에서 손을 떼게 하시고 이 한가지 일 곧 '두루 다니며 선을 행하는 일'에만 전념하도록 만드셨습니다.
사실 웨슬레는 야외설교에 대하여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었다. 그는 좋은 시설과 분위기 속에서 설교하기를 원했다. 그러나 교회에서 강단을 내어주지 않기 때문에 부득이 야외설교를 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에게 야외설교의 동기를 부여한 사람은 화이트필드 (Whitefield)였다.
웨슬레는 처음에 이렇게 야외에서 설교를 하는 것이 이상해서 도대체 적응하기가 어려웠다. 나아가 그는 교회밖에서 하는 것은 거의 죄가 되는
것으로 생각하였었다. 이와같이 생각했던 웨슬레가 처음으로 야외설교를 실시하였다. 물론 그는 기쁜 마음으로 야외설교를 했던 것은 아니었다.
오후 4시에 나는 어쩔 수 없이 기분은 더욱 언짢았으나 노상에서 구원의 기쁜 소식을 선포하였다. 이때 나는 그 도시에 인접한 작은 언덕 위에 서서 약 삼천명이나 되는 사람들에게 설교를 하였다.
그런데 이렇게 시작한 야외설교였지만, 산상수훈을 가르치실 때 주님께서 야외설교를 하셨고 많은 복음의 증인들이 야외설교를 실시한 증거를 성경에서 발견하고 난 후 부터는 설교를 요청하는 곳이면 어디든지 사양하지 않고 찾아가서 복음을 전하였다. 그후 1772년 9월 6일 일기에는 야외설교에 대하여 "오늘에 와서 야외설교가 내 십자가가 되었다. 그러나 나는 내 임무를 알고 있으며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전하는 다른 방법은 발견하지 못하였다."라고하였다. 비록 웨슬레에게 야외설교가 십자가요, 짐이었으나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일이요 구원을 갈망하는 소리라고 생각할 때 그 일을 계속할 수 있는 신앙적인 열정이 생겼다. 후에 1782년 6월 26일 일기에서 그는 야외설교를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하였다.
웨슬레는 1747년 6월 15일에서 18일까지 열렸던 제 4회 연회 마지막 날 "우리는 야외설교에 너무 중점을 두지 않는가 ?"라는 질문에 대하여 네가지로 의견을 피력하였다.
① 왜냐하면 우리의 사명은 잃은 자를 찾아 구원함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떠난 방황자들이 우리를 찾아오기를 기대할 수 없다. 그 대신 우리가 그들을 찾아가야 한다.
② 우리는 특별히 큰 길이나 울타리 밖에 나가 억지로라도 그들을 들어오도록 해야 한다. (눅 14:23) 우리가 아니하면 다른 사람은 그렇게 할 사람이 없다.
③ 이 방법의 반대 의견은 온당치 않다. 즉 그 집(교회당)은 오는 사람 모두를 다 수용할 수 있다고 한다. 그것은 사실이다. 그 집은 그 집에 오는 사람을 다 수용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집이 야외에 모이는 사람을 다 수용할 수는 없을 것이다.
④ 그뿐 아니라, 다른 방법보다 이 야외설교로 더 큰 은혜가 임하였다.
웨슬레는 교회에 와 보지도 못한 사람들을 찾아가 설교를 하였고, 광산, 부두, 탄광, 창녀촌 등 교회의 장벽이 높아 교회를 찾아 오지 못하는 자들을 찾아가 설교했다. 이것은 '찾아가는 자세'로서의 적극적인 목회의 자세로 웨슬레는 순회 야외설교에서 보여 주었던 것이다.
웨슬레는 오전 4시에 기상하고 다섯시에 첫 설교를 하는 등 시간을 지켰으며 또한 그의 순회 설교자들을 위하여 엄격한 규율을 세웠는데, 이에 의하면 아침 5시 전에 일어나서 6시부터 12시까지의 독서와 기도를 하고, 정오부터 하오 5시까지는 심방을 하고, 5시부터 6시까지는 하나님께 은밀히 기도를 하게 했으며, 하루에 적어도 두번 전도하게 하였다. 하루 24시간중 5시간은 반드시 독서와 성경공부를 하여야 했으며, 설교는 간단하게 하고, 예배는 한시간 안에 마치도록 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웨슬레에게 있어서 설교가 얼마나 중요했으면 그는 사역을 설교와 관련지어 구분하였다. 그것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① 제 1 기 : 1725년부터 1729년까지
나는 설교를 많이 하였다. 그러나 수고에 대한 열매를 거의 못 얻었다. 노력에 비하여 그럴 수가 없는 실패였다. 그 이유인즉, 나는 내 설교를 듣는 사람들이 이미 신자인 줄 알고 그들은 회개가 필요하지 않은 줄로 생각하여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는 말씀에 중심을 둔 설교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② 제 2 기 : 1729년부터 1734년까지
나는 회개에 깊은 기초를 두고 설교를 하였다. 그랬더니 그역사에 조금씩 결과가 나타났다. 그러나 극히 작은 열매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상할 것이 없는 일이다. 왜냐하면 나는 그리스도의 보혈과 믿음에 대한 설교를 하지 않은 까닭이다.
③ 제 3 기 : 1734년부터 1738년까지
나는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좀 더 많이 언급하면서 보다 열심히 설교하고 심방을 하곤 하였다. 그랬더니 그만큼 더 많은 열매를 거두게 되었다.
④ 제 4 기 : 1738년 이후
나는 계속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설교하였다. 결국 모든 설교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그리스도가 주춧돌이 되었다. 그 내용은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는 것이었다. 그랬더니 하나님의 말씀은 덤불속의 불처럼 역사하였다. 군중들은 "내가 구원받기 위하여 어떻게 하여야 합니까 ?"라고 외치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서는 나중에 모두가 은혜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는다고 증거하는 것이었다.
웨슬레의 설교를 향한 열정은 그의 생애 마지막까지 계속되었다. 그는 1791년 3월 2일 런던 시크로드 교회당 자택에서 88세로 서거하기 바로 일주일 전까지 1791년 2월 23일 레더헤드 시장 저택에서 설교하였다. 슬레는 일생동안 매년 5천여 마일 이상을 순회 여행을 하였으며, 매년 평균 800여회, 매일 2,3회씩 설교를 하였다. 영혼 구원을 위한 그의 열정은 그로 하여금 아침과 낮, 그리고 저녁 훨씬 늦은 밤중까지 쉬임없이 충성을 다하도록 하였다. 웨슬레에게 있어서 설교는 목회훈련의 중요한 내용인 것이다.
2. 성 례 전
웨슬레는 당시 모라비안파의 정숙주의 (Quietism)를 경계하면서 은혜의 수단을 강조하였다. 웨슬레에 의하면 은혜의 수단은 8가지인데 그중에서도 세례와 성만찬은 은혜의 수단에서 제일 중요한 수단이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은혜의 수단에 제약된 분이 아니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은혜의 수단을 통하여 은혜 주시기를 즐겨하신다고 웨슬레는 생각하였다. 웨슬레게에 있어서 세례와 성만찬은 목회훈련의 중요한 내용이었다.
a. 세 례
웨슬레는 '세례에 대하여'(A treatise on Baptism)라는 그의 논문에서 기독교의 세례에는 세가지 가중요하다고 보았다. 나아가 그는 세례를 다음과 같이 정의하였다.
세례란 무엇인가 ?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과의 계약속으로 들어가게 하는 입회 성례전이다.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설치하셨다. 그리스도께서만이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영구적으로 의무를 지워주는 본래의 성례전 즉 은혜의 표시와 인장과 담보와 수단을 설치하실 권세가 있다. 우리는 그것이 설치된 정확한 시기를 알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는 주께서 승천하시기 오래전에 그것이 있었음을 알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할례 대신에 설치된 것이다. 즉 할례가 하나님의 계약의 표시와 인장이었듯이 세례도 그러하다.
웨슬레에 있어서 세례란 입회 성례전으로 하나님의 계약속으로 들어가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목회훈련의 중요한 내용인 것이다.
웨슬레는 세례의 유익에 대해서도 그의 논문에서 5가지로 말하였다.
① 그리스도의 죽음의 공로를 적용하여 본래의 죄 (Original Sins)의 죄책을 씻어 버림
② 세례를 받음으로 우리는 하나님과의 계약 관계에 들어가고 그분이 영원히 명하신 영원한 계약속으로 들어간다. 이 계약은 새로운 계약이며 영적 이스라엘에게 약속하신 것이다.
③ 우리는 교회에 입교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교회의 머리되시는 그리스도의 지체가 된다.
④ 본질상 진노의 자녀였던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⑤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결과로 우리는 하늘 나라의 시민이 된다.
웨슬레는 세례에 대하여 말하기를 "세례안에서 우리는 믿음을 통하여 그리스도와 접붙임을 받으며 (Imgrafted in to), 성령을 통하여 이 새로운 뿌리에서부터 새로운 영적인 삶을 살게 된다. 성령은 우리를 그분과 같은 모습으로, 특히 그분의 죽음과 부활을 닮아가게 하신다."라고 하였다. 웨슬레에게 있어서 세례는 우리가 그리스도와 연합함(롬 6:23)을 나타내며, 죄사함 (행 2:38)과 양심의 정결 (히 10:22)을 가져다 주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그는 세례의 지속에 대해서도 그의 논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세례가 그의 교회에 항상 남아 있기를 원하셨다. 세례는 교회가 있는 만큼 오래 지속되도록 의도되어 있다. 세례는 유대교에서 할례가 하나님의 영원한 계약의 백성이라는 인증이듯이 분명한 유추에 의해 세례도 바로 복음의 계약이 인정되는 한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계속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교회가 지속되는 한 영구적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부여하신 지상 과제이기 때문이다.
웨슬레는 세례가 영구적이어야 하는 것으로 보았다. 나아가 그는 세례의 방식에 대하여 침례 (Immersion)와 물뿌림 (Sprinkle), 그리고 물부음 (Pouring)의 형태가 있으나 이와같은 세가지 방법은 교회마다 다르게 사용되고 있으며 그 어느 방식도 이것만이 성서적이라고 하는 절대적인 주장을 할 수 없다 하였다. 왜냐하면 어느 특정한 방식으로 성경에 분명하게 나타나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상의 내용을 요약하면 웨슬레는 세례를 입회 성례전이요, 하나님의 계약속으로 들어가는 것으로 정의하였고, 그 세례에는 성경적인 유익이 내재해 있는 것으로 보았으니, 세례가 영구적으로 존재해야 하고, 그 방법에 대하여는 성경에 어느 특정한 방법이 제시되어 있지 않은 것으로 보았다. 이 세례가 목회훈련의 내용이 됨은 실로 당연한 일이다.
b. 성 만 찬
웨슬레는 성만찬을 은혜의 수단으로 이해하였다. 그는 성만찬은 수찬자에게 선행적 은총, 의롭게 하는 은총, 그리고 성결케 하는 은총을 전달한다고 보았다. 성만찬은 신앙을 견고케 하는 예전이며 회심을 재촉하는 예전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는 성만찬을 회심케하는 의식 (Converting ordinance)이라고 하였다.
성만찬은 하나님의 사랑의 행동 표시이며, 가장 중요한 은혜의 방법으로서 성령의 은사는 성만찬을 통하여 신자의 마음속에 내려온다. 웨슬레는 성만찬을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의 표적 (Sign)과 인증 (Seal), 현재 은혜의 표적과 인증, 천의 보증과 인증, 그리고 성도의 교제의 인증으로 보았다.
웨슬레의 성찬 교리는 실질 존중설 (Vitualism)로써 쯔빙글리의 견해에도 반대하며 화체설이나 공재설도 아니다. 그는 빵과 포도주는 변하지 않고 그대로 있으나 그것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은혜가 전달된다고 보았던 것이다.
웨슬레는 우리가 할 수 있는대로 자주 성만찬을 받는 것이 모든 그리스도인의 의무라고 하였는데 그 이유로 다음의 세가지를 들었다.
① 그리스도의 평이한 명령이기 때문이다.
② 그것을 행하는 유익이 그분에게 순종하여 그것을 하는 모든 사람에게 아주 크기 때문이다.
③ 우리로 하여금 그 죄를 떠날 수 있게 만든다. 나아가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해 줄 것을 확약한다.
웨슬레는 성만찬에 참여하는 자는 그의 믿음의 유무에 관계없이 의식을 통하여 자동적으로 (ex opere operato) 은혜를 받는다고 보았는가 ? 웨슬레는 카톨릭에서 말하는 자동적으로 은혜가 임한다는 데에 반대하면서 성만찬에서 받을 수 있는 은혜는 합당한 수찬자에게만 전달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러므로 웨슬레에게 있어서의 수찬자의 자격 문제는 중요한 문제로 대두된다.
웨슬레의 목회생활을 보면 그가 죠지아주 시절에는 영국 교회의 고교회주의를 가져서 교회의 권위와 의식을 극히 존중하여 영국교회에서 세례를 받지 않은 사람에게는 성찬과 장례식을 거절했으며, 비국교도 자녀에게는 다시 세례를 주었고, 세례는 반드시 침례로 받아야 할 것을 고집하였다. 웨슬레의 이러한 목회 초기의 태도는 그가 합당한 수찬자의 자격을 외적인 조건에 의하여 규정했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웨슬레가 후년에는 이러한 태도에 변화를 가져온 것을 볼 수 있는데 볼즈스에게 성경을 거부한 사실에 대해 깊이 반성하였던 사실은 이런 변화를 잘 나타내 주고 있다고 하겠다. 특히 복음적 회심후인 1738년에서 1740년 동안에 있었던 모라비안과의 논쟁에서 수찬자의 자격에 대하여 많이 언급하였다.
그 당시 모라비안들은 주장하길 성찬을 받을 수 있는 자는 확실한 믿음이 있는 자라고 하였다. 만약 확실한 믿음이 없는 자가 은혜의 수단인 성찬에 참여함은 하나님 앞에서 혐오의 대상이 된다고 하였다. 이에 대하여 웨슬레는 성찬에 참여할 수 있는 자격은 확실한 믿음을 가진 자만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종류 또는 한등급(a kind or degree of faith)을 가진 자도 참여 할 수 있다고 하였다.
믿음에는 정도의 차이가 있다. 그리하여 사람의 속에 있는 모든 것이 새로워지기 전에, 또 확실한 믿음을 소유하고 성령의 영속적인 증거 즉 그리스도가 내 속에 계시다는 확신을 갖기 전에도 어느 정도의 믿음을 가질 수 있다. 따라서 나는 사람이 온전히 의롭다함을 얻기 전에는 어느 정도의 칭의의 신앙을 가질 수 있다고 믿는다.
웨슬레에게 있어서 성만찬에 참여할 수 있는 최소한도의 믿음의 정도는 마귀와 이방인의 예수에 대한 지식과 구분되는, 즉 예수가 죄 많은 인간을 위해 죽으셨다는 사실을 믿는 최소한의 것으로도 된다고 보았다. 이러한 믿음이 있는 사람은 성만찬에 참여하는데 특별한 준비가 없어도 "신에게 성만찬을 요구할 정도의 정당함이 없고 자신의 죄악성과 무기력을 깨닫고 지옥에 갈 수 밖에 없다고 느끼는 자, 주님이 기쁘게 주시는 것을 받으려는 갈망과 죄를 억제하고 죄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형상안에서 그의 영혼을 새롭게 하려고 은혜를 갈망하는 자"면 다고 하였다.
이러한 웨슬레의 개방적인 태도는 비국교도 (Dissenter)에게도 성찬을 허용했으며 합한 준비를 한 어린이에게도 허용했다. 이는 그가 수찬자의 자격으로 외적인 조건보다도 내적인 조건을 더욱 중시하는 변화를 가졌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웨슬레는 성만찬의 신성을 보존하기 위하여 최소한의 외적인 의무를 만들었다. 왜냐하면 성찬이 개방되면 무질서하게 될 염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가 1747년 존 베네트 (John Bennet)의 의사록에서 심각하게 다루어졌으니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문 5 우리는 어떻게 자격없는 수찬자를 다스릴 것인가 ?
답 1 신도회에 가입할 때 아주 주의깊게 살펴서 허락함으로써
2 매 계절마다 지정한 달에 우리에게 나오는 자에게만 성
찬표 (Notes)를 발급함으로써
이와같이 웨슬레는 성만찬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하여 최선의 노력을 다하였다. 이상으로 살펴 보았지만 웨슬레는 성만찬을 은혜의 수단 중에서 특별한(In particallar) 것으로 이해하였고, 그 교리는 실질존중설 (Vitualism) 이었다. 나아가 성도는 계속해서 성찬을 받아야 하는 것이 의무라고 여겼으며, 참여하기 위해서는 믿음의 종류 또는 한등급 (a kind or drgree of Faith)을 가진 자도 참여할 수 있다고 하였다. 그가 이러한 개방적 태도를 견지하면서도 성만찬의 신성을 보존하기 위하여 최선의 노력을 경주 하였다. 그가 목회 사역을 수행함에 성만찬은 중요한 목회 훈련 내용이었다.
지금까지의 내용을 요약하면, 웨슬레의 목회활동으로 인하여 연합신도회, 속회, 반회, 선발신도회, 참회자반, 그리고 연회가 조직되었다. 웨슬레는 신도회를 조직함이 교회나 교단을 만들 목적이 아니었다. 그 목적은 단순히 영혼을 돌보고 격려하며 함께 기도하기 위한 것이었다. 또한 성령의 증거를 통해서 진실한 믿음이 있음을 나타내어 사랑을 실천하며 선교를 돕고 참여하도록 하기 위해 모인 것이었다.
그는 이 조직이 방대해지자 신앙 훈련 모임인 속회와 개개인의 신앙생활을 독려하는 신앙 고백반인 반회로 나누었다. 또한 반회 회원중에서도 특히 하나님의 빛가운데서 산다고 믿는 사람들과 독실한 믿음 아래 순종의 생활을 하는 사람들로 선발신도회를 조직하였고, 믿다가 무슨일로나 낙심했던 사람들을 참회자반으로 따로 조직하였다.
하워드 스나이더는 이러한 교회조직을 알기 쉽게 보여 주었고 (도표2), 이 춘 교수는 이것을 좀 더 상세하게 보여 주었다 (도표3), 신 회를 조직하고 5년후에는 목회사역 전체를 움직이고, 목회훈련을 시키는 최고의 의결기관으로 연회를 조직하였다. 웨슬레는 이러한 조직을 통하여 철저한 목회 훈련을 실시하였고, 이것이 그의 사역을 성공적으로 이끈 원인이 되었다. 웨슬레보다 먼저 중생의 체험을 하고, 야외 전도를 하여 큰 부흥 운동을 일으켰던 화이트필드 (Whitefield)는 "나의 형제 웨슬레는 지혜롭게 일하였다. 그는 전도하여 얻은 사람들을 신도회 (Society)에 가입시켜 그 활동의 결과를 보전하였다. 그러나 나는 그 방법을 경시하였기 때문에 내가 얻은 신도들은 모래알 같이 흩어졌다."고 하였다.
또한 웨슬레의 목회훈련 내용으로 성경, 설교, 세례, 그리고 성만찬을 살펴보았다. 그에게 있어서 성경은 최고의 권위이며 신앙과 실생활의 기준이었다. 그는 성경을 하늘 가는 길을 가르쳐주는 천국의 안내서일 뿐아니라 모든 계시의 시금석으로 인정하였고, 신앙과 실천 생활의 유일한 규칙과 충분한 규칙으로 목회훈련의 기본 텍스트로 삼았던 것이다. 웨슬레의 일생은 설교로 산 인생이었다.
영국교회에서 교구를 허락하지 않았을 때, 그는 '전 세계는 나의 교구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웨슬레는 야외설교를 통하여 '찾아가는 자세'를 보여 주었으니, 광산, 부두, 탄광, 창녀촌 등 교회의 장벽이 높아 교회를 찾아오지 못하는 자들을 찾아가 설교 하였다.
웨슬레는 세례를 입회 성례전으로 보았고, 그 세례에는 성경적인 유익이 내재해 있는 것으로 보았으니, 세례는 영구적으로 존재해야 하고, 그 방법은 성경에 어느 특정한 방법이 제시 되어있지 않은 것으로 보았다. 중요한 것은 세례가 구원에 필수적인 요소가 아닌 것으로 보았다는 점이다. 성만찬에 있어서 그는 성만찬을 은혜의 수단에서 특별한 것으로 이해하였고, 성찬 참여 조건에 대하여 개방적인 태도를 소유하면서도 성찬의 신성을 보존하기 위하여 최선의 노력을 경주하였다. 그가 목회훈련을 수행함에 있어 하나님의 말씀과 성례전은 내용이 되었던 것이다.
지금까지 웨슬레의 목회훈련의 조직과 내용을 살펴보았다. 제 IV 장에서는 웨슬레의 목회훈련의 방법과 그 실천적 적용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도표 2) 웨슬레의 감리교인 조직
CHURCH OF ENGLAND (영 국 교 회 )
+-----------------------------------------------------------+
+-+-------------+ |
| Class ++---------+ |
| 속 회 | Band | +-------------------+
| | 반회+----+------+ | Class |
+-++---------+-+-----| Select | | 속 회 |
|| Band | | Society +--------+-+ |
|| 반회 | |선발 신도회| Band +-----------------+
++---------+----+ +---------+-+ 반회 | |
| Class | +------------+ |
| 속 회 | |
| | |
+---------------+ +-----------+---------++
| | Band | Class |
| | 반회 | 속 회 |
| +-----------+ +-----+-----+ |
+-+------------+ Band | +---------------++
| | 반회 +-----------------+ |
| Class +-+-------+-+ Class | |
| 속 회 | | 속 회 | |
+----------------+-------| +----------------+
+-------------------+
(도표 3) 웨슬레의 교회구조 도표
+-----------------------------+
| 우주적 교회 |
| (Church Universal) |
+--------------+--------------+
+--------------+--------------+
| 영 국 교 회 |
| (Church of England) |
| 예배, 설교, 성례전 |
+--------------+--------------+
+--------------+--------------+
+--------------+| 연합 쏘사이어티 (감리회) |
| 참회자의 모임|| (United Societies) |
| 토요일 ++ 주일모임 |
|기도,찬양,약속|| [찬양, 권면, 성례전(정규목사|
+--------------+| 참여할때만), 교육, 기도(교리| +----------------+
| 문답이 있을때), 금식 등] | | 지도자의 모임 |
+--------------+--------------+ | 화요일 |
+--------------+--------------+-+ 환자,질병,헌금 |
| 클라스 모임 | +----------------+
| (Class Meeting) | +----------------+
| 12인 - 선물수집, 책망, 격려,+-+ 철야 기도회 |
| 논쟁해결, 영혼의 성장관찰 | | 월별, 년별 |
| | +----------------+
+--------------+--------------+-+----------------+
+--------------+--------------+ | 년 4 회 |
| 밴드(Band) 모임 (남여구별) | | 티켓검사 |
| 일치와 고백, 지도자 아래에 | +----------------+
| 서의 작은 모입, 죄와 유혹의| +----------------+
| 고백 및 치유 +-+ 아가페 예배 |
+--------------+--------------+ |년4회(성별구별) |
+--------------+--------------+ +----------------+
| 선발된 쏘사이어티 - 월요일 |
| (Select Societies) |
| 밴드안의 작은 모임, 웨슬레 |
| 와 지도자들이 참석 |
+--------------+--------------+
+--------------+--------------+
| 개 인 기 도 |
+-----------------------------+
http://cafe.naver.com/modernth/388
3. 반 회 (The Bands)
Band에 대한 번역은 대단히 다양하다. 송흥국씨는 소회라고 했고, 민경배교수는 단이라고 번역하였으며, 노 해씨는 신도반이라고 번역하였으나, 여기서는 반회라는 용어로 통일하고자 한다.
웨슬레는 속회 조직 이전에 1738년 페터레인회 (Fetter Lane Society) 조직시부터 반회를 조직하였다. 이 조직은 모라비안 교도들의 조직에서 유래한 것이다. 그러나 웨슬레는 모라비안 교도 조직에 있는 급장제를 채택하지 않았다. 웨슬레가 급장제를 채용하지 않은 이유는 모라비안 교도들에게 급장 (Moniters)이란 영적인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나 잘못을 범한 것 같은 사람들에 대해서 보고하고 그것을 권면하는 것이었다. 웨슬레가 이제도를 폐지한 것은 이 일이 반회안에 있는 회원 상호간에 책임을 떨어뜨린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이 반회는 남녀별, 기혼, 미혼별로 4개 반별로 6명 단위로 조직되었다. 반회 회원에게는 평균 3개월에 한번씩 반회 티켓이 발급되었다. 이 티켓 표면에는 'Band'나 'b'자가 표기되어 있고 속회 티켓과 같은 기능을 가지며 애찬식과 성찬예배 (Covenant Services)와 신도회 모임에도 참가할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반회와 속회의 티켓이 발행된 수에 의하면 감리교 전체 회원이 속회 회원인데 반하여 반회의 회원은 속회 회원 전체에 20%정도였다. 그리고 매주 일회씩 남자반은 수요일 저녁에, 여자반은 일요일저녁에 모였다.
웨슬레는 반회 회원들의 영적 성장을 위하여 다음과 같이 목회 훈련을 시켰다.
1. 최소한 일주일에 한번 모임을 갖는다.
2.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지정된 시간에 정확히 모인다.
3. 참석자들은 정시에 찬송이나 기도로 시작한다.
4. 각자가 지난 번 모임 이후에 생각으로, 말로, 행동으로 범해온 죄와 심령의 상태를 숨김없이 순서대로 말한다.
5. 참석한 개인의 상태에 적합한 기도를 드림으로 모임을 끝낸다.
6. 참석한 사람들 중 누군가가 먼저 자신의 영적 상태에 대해서 말하고 싶어한다면 그렇게 하고 다음에는 나머지 사람들에게 할 수 있는 한 그들의 죄와 심령의 상태와 및 유혹받은 것들에 대해서 자세히 물어본다.
7. 매주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한다.
가. 지난 모임 이후에 어떤 죄를 범했는가 ?
나. 어떤 시험을 만났는가 ?
다. 어떻게 구원을 받았는가 ?
라. 무엇을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했는가 ? 그중에 죄인지 아닌지 의심나는 것은 어떤 것인가 ?
또한 웨슬레는 신도회의 가입 조건으로 내세웠던 것을 세분화하여 반회 회원들에게 당신은 '세상을 이길 만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당신에게 아래의 사항은 무거운 짐이 되지 않을 것이다 하면서 다음과 같은 규칙을 주었다.
1. 조심스럽게 악을 행하는 일을 피하라. 특히,
가. 주님의 날에는 무엇이든지 사거나 팔지 말라.
나. 의사의 처방이 아니라면 어떤 술이든 먹지도 말고 맛보지도 말라.
다. 물건을 사고 파는 데 있어서 여러 말을 하지 말라
라. 아무것으로도 맹세하지 말라. 그런것들 중 아무것도 생명을 구할 수는 없다.
마. 본인이 없는 자리에서 그의 흠을 말하지 말고, 그런 사람을 보면 즉시 중지하도록 하라.
바. 반지, 귀걸이, 목걸리, 레이스, 옷깃의 주름장식 등 불필요한 방종한 생활을 하지 말라.
2. 열심히 선한 일을 도모하라. 특히,
가. 당신이 가진 소유로 자선을 베풀라. 그리고 당신의 힘이 닿는 데까지 최선을 다하라.
나. 당신의 면전에서 죄를 짓는 사람은 누구나 책망하라. 그러나 사랑과 지혜의 온유함으로 하라.
3. 끊임없이 하나님의 모든 계명을 지키라. 특히,
가. 매주 교회에 출석하고 성만찬에 참여하라. 그리고 모든 공적인 반회에 참여하라.
나. 원거리, 사업, 또는 질병의 이유가 아니라면, 매일 아침 성서 공부반에 참여하라.
다. 당신이 한 가정의 호주라면, 매일 개인 기도를 드리고 가족 기도회를 가져라.
라. 틈나는 시간마다 성서를 읽고 그 안에서 묵상하라.
마. 연중 매 금요일은 금식 또는 절제의 날로 지키라.
이상으로 살펴본 것처럼 웨슬레는 반회 회원들을 아주 철저하게 목회훈련 시켰음을 알 수 있다. 1747년 6월 15일 부터 18일까지 열렸던 제 4회 연회에서 반회 회원들의 숙정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문답을 하였다.
문 6. 반회 회원을 숙정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
답 1. 각 속회를 방문할 때 먼저 반회 회원들을 아침에 나오게 해서 그들의 생활과 신정을 엄밀히 심사할 것.
2. 기혼남녀를 따로 매월 첫 수요일과 일요일에 만나보고, 독신 남녀는 제 2 수요일과 일요일에 만나보아 심사할 것.
이렇게 철두철미 했던 반회도 가변적 은혜의 수단으로서 한 를 보이게 되어 계속해서 존속되지 못하고 사라지고 말았으니, 스나이더는 이 반회가
1880년 경까지 존속했다고 보았다.
지금까지 살펴 보았듯이 속회는 신도회에 새신자를 받아 훈련시키고 여러 선교적 활동에 참여하는 신앙훈련적 모임 (Disciplinay Cell)이고, 반회는 회원 자신의 신앙을 심화시키고 체험시키며 진실한 신앙을 추구하여 그에 합당한 신앙의 결실을 맺는 신앙고백적 모임 (Confessional Group)이다. 즉 속회는 신도회의 핵심 조직으로써 윤리적 (Moral), 영적 (Spiritual) 생활을 지키도록 훈련하고, 가르치며, 구제하는 것이고, 반면 반회는 기독자의 완전을 추구하는 모임으로 죄의 용서와 구원의 확신과 시험을 이기기 위하여 모이는 속회의 핵심이다. 오늘날 기구화되고 대형화 되어가는 한국교회에 웨슬레의 반회와 같은 교회안에 작은 교회가 목회훈련을 위하여 대단히 중요하다 하겠다.
4. 선발신도회 (The Selected Society)
선발신도회는 반회 회원중에서도 특히 하나님의 빛가운데서 산다고 믿는 사람들과 독실한 믿음 아래 순종의 생활을 하는 사람들로 구성되었다. 반회 안에 보다 친밀하고 철저한 선별된 집단이다. 이 모임은 '그리스도인의 완전'이라는 주제에 특히 관심이 있는 사람들을 위한 모임이었다. 이 모임의 의도는 다음과 같다.
완전의 지속적인 추구, 받은 바 은총을 실행하고 부여받은 모든 재능을 증진시키며, 서로 더욱 사랑하도록 북돋으며, 서로를 더욱 주의 깊게 돌볼 수 있는 방법을 지시하며, 모든 경우에 자신을 남김없이 열어 보일 수 있는 선별된 모임에 참여할 것.
이 모임의 구성원은 칭의를 받고 내적으로나 외적으로나 성경의 뚜렷한 진전을 보인 자들로 이루어진 모임이다. 이들은 속회나 반회에서 얻은 것으로 만족하지 못하여 보다 깊고 완전한 친교를 요구하는 자들이었다.
웨슬레는 이들을 매주 월요일 저녁에 모이게 하였다. 그리고 이 선발신도회 규칙에 대하여 말하기를 그들은 모두 마음 속에 가장 값진 규칙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다른 잡다한 규칙은 필요없다고 하였다. 그래서 웨슬레는 연합신도회의 규칙과 같으나 이밖에 다음의 세개의 조항만을 첨가하였다.
1. 신도회에서 거론된 것은 다시 발설하지 말것이며 비록 회원에게라도 말아야 한다.
2. 각 회원은 모든 정당한 일에는 담임 목사에게 절대 복종해야 한다.
3. 각 회원은 주 1회씩 성심성의껏 우리의 공동금고에 헌금을 하여 앞으로 공공유익을 위한 일에 쓰도록 한다.
이 모임의 특징은 누구나 자유로이 말할 수 있으며 회원은 모두 평등한 것이었다. 웨슬레는 이러한 모임을 통하여 전통적인 입장에 굳게서서 좌우로 탈선되지 않도록 하였다. 웨슬레는 이 모임의 회원들을 적어도 세달에 한번씩은 면담하여 그들이 믿음 안에서 성장함을 알고자 하였다. 선발신도회는 웨슬레 자신의 체험에 의해서 만들어진 질문에 근거하여 신앙고백적 모임이 되어 신도회의 중요한 기둥이 되었다. 이러한 모임에서 물은 질문은, 당신의 죄를 용서함 받았는가 ? 당신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과 평화를 누리는가 ? 당신은 당신의 영혼에 하나님의 영의 증거를 가졌는가 ? 즉, 하나님의 자녀인가 ? 하나님의 사랑이 당신의 마음에 채워졌는가 ? 당신의 죄를 공개적으로 말할 수 있는가 ? 를 묻고 이에 대하여 진실하고도 신중한 고백과 대화를 하였고 서로 기도하였던 것이다.
이상으로 선발신도회는 내적 신앙을 기준하여 조직하였음을 알 수 있다. 사실 웨슬레는 이 모임을 통하여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제것이라고 주장하는 이가 없었던 초대교회의 이상을 실현하고자 하였다. 오늘날 교회조직이 다분히 외적 조건을 기준으로 구분한 것에 대하여 깊은 반성과 새로운 측면의 목회훈련 조직을 개발함이 시급하다 하겠다.
5. 참회자반 (Penitents)
웨슬레는 이 모임을 정의하기를 "믿다가 무슨 일로나 낙심했던 사람들이 따로 모이는데 그 모임을 참회자반" 이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참회자반은 한마디로 신앙의 파산자들의 모임이다. 처음에 구원을 갈망하여 신도회에 참여하였으나 그 중에는 더러 낙심하고 낙오자가 되기도 하였다. 이처럼 웨슬레는 신도회 안에서 고의로 죄 지은 자, 자기도 모르게 경박해지고, 게을러지고, 나태해진 자들이 생기자 이들의 영적 성장을 위하여 참회자반을 조직하여 목회훈련을 시켰다. 이들은 매주 일요일 저녁마다
모여서 다시 신앙 생활을 하도록 독려 받았다.
6. 연 회
신도회가 조직된지 5년 후인 1744년에 웨슬레는 런던 파운드리에서 그의 보좌 목사 4명, 평신도 사역자 4명, 웨슬레와 찰스 웨슬레 도합 10명이 모여서 제 1회 연회를 조직하였다. 이것은 웨슬레의 목회 사역 전체를 움직이고, 목회훈련을 시키는 최고의 의결기관이 되었다. 이 연회의 의제는 다음과 같다.
1. 신도들에게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
2.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
3. 교리와 장정을 제정하고 실행하는 문제, 어떻게 훈련하며, 또 실행할까 하는 문제였다.
웨슬레는 연회에서 목회훈련의 제반사역과 신도들과 기타 지도자들의 실행 문제들을 논의하였다. 특별히 평신도 지도자들이 그들에게 맡겨진 일들을 위하여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게 하기 위하여 소속된 단체의 임무와 그 단체의 지도자들의 생활등에 대해서 자세한 지침들을 주었다. 그리고 1763년 고시문 (Model Deed)을 발표하여 "연회에서 임명받은 교역자들은 자신이 발행한 4권의 표준 설교문과 신약성서 주해에 포함된 도리 외에 다른 것은 설교하지 않는다는 조건 속에서만 감리교의 예배서를 쓸 수 있다"라고규정함으로써 교회의 지도자들로 하여금 그가 생각하고 지켜온 교리와 목회훈련에서 탈선하지 못하도록 하였다. 웨슬레의 이러한 조직적 사역은 목회훈련 사역을 효과적으로 만들었다.
. 목회 훈련의 내용
웨슬레의 목회훈련의 내용으로 하나님 말씀(성경, 설교)과 성례전(세례, 성만찬)을 들 수 있겠다.
웨슬레는 철저하게 성경의 사람이었다. 캐스토(Robert Michael Casto)가 그의 박사 논문에서 지적하였듯이 성경은 웨슬레의 생애에서 중심을 차지하고 있는 책이다. 웨슬레는 성경을 근면하게 읽었다. 그는 매일같이 성경을 원어로 몇 시간씩 읽으면서 진지하게 연구했으며, 진실로 성경에 능통하였다.
또한 그는 설교로 일생을 살았으니 매일 2,3회씩 설교하였으며, 주당 15회씩 평균해서 42,400회의 설교를 하였고, 하나님께 부름받기 1주전까지 설교를 하였다. 웨슬레의 설교는 성경 말씀에 그대로 근거를 두고 있었다. 그는 1746년에 출판한 설교집 서문에서 말하기를 "나는 구원받는 방법에 관하여 성경에서 발견한 것을 이 설교들에서 설명하였다."라고하였으니 그에게 성경은 설교의 기초요, 설교의 내용이었다.
나아가 그는 성례전을 대단히 중요하게 여겼으니 은혜의 수단 8가지 중 성례전을 제일 중요시 하였다. 그러나 웨슬레는 세례가 구원의 필수적이라고 보지는 않았다. 웨슬레는 세례가 구원에 필수적이 아님을 다음과 같이 1750년 길버트 보이스 (Gilbert Boyce)에게 편지를 하였다.
그대는 세례의 형식이 '구원에 필수적'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세례 자체가 그렇다는 것을 부정한다. 만일 그렇다면, 퀘이커 교도는 저주의 대상이 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나는 이것을 믿을 수 없다. 나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 이외에 구원에 필수적인 것 (엄격히 말하면)은 없다고 주장한다.
나아가 웨슬레는 성만찬을 가장 중요한 은혜의 방법으로 여겼다. 그 이유는 그가 이끄는 페터 레인회 (Fetter Lane Society)에 이른바 정적주의자들의 '은혜의 방법 무용론' 때문이었다. 그들은 다만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를 얻기 때문에 무슨 인간적인 방법을 쓸 필요가 없고, 다만 고요히 그의 은혜를 믿음으로 기다리는 것으로 족하다고 주장하였다. 여기에 대하여 웨슬레는 하나님께서는 교회내에 설정된 은혜의 방법을 통하여 그 은혜를 베품으로 구원을 얻게 하신다고 역설하였다.
1. 하나님 말씀
a. 성 경
웨슬레는 성경을 최고의 권위로 인정하였다. 1739년 6월 11일 한 절친한 친구에게 다음과 같이 편지를 썼다.
나는 신앙에 있어서나 실생활에 있어서 성경 이외의 다른 법칙은 하나도 용납하지를 않습니다. 그러나 성경적인 원칙에서 내가 무엇을 하든지 그것을 정당화 하는 것이 어렵다고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은 나에게 명령을 하시어 나의 능력에 따라 무지한 사람들을 가르치고 악한 사람들을 변화시키고 착한 사람들을 더욱 더 착하게 만들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성경이 웨슬레에게 신앙과 실생활의 기준임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메소디스트의 특징이라는 글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이 그리스도인의 신앙과 실천에 유일하고도 충분한 법칙임을 믿는다. 우리는 여기서 카톨릭 교회의 신자들과 구별된다."라고하였다. 또한 1766년 6월 5일 일기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나의 기반은 성경이다. 나는 성경 고집장이다. 나는 크거나 작거나간에 모든 일에 있어서 성경을 따른다. (My ground is the Bible. Yes, I am a Bible - bigot, I follow it in all things, both great and small)... 성경의 가르침에 반대되는 것은 그 어떠한 것도 하나님의 목적에 배반된다. 그러므로 반드시 반대한다.
이와같은 것을 통하여 그가 철두철미하게 성경 중심의 사람임을 알 수 있다. 웨슬레에게 있어서 성경이 그리스도인의 신앙과 실천에 유일한 법칙이요, 원리인고로 그것은 은혜의 수단이 되며, 따라서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는 자는 누구나 성경을 탐구해야 그 은혜에 이를 수 있다고 하였다.
웨슬레는 성경을 근면하게 읽었다. 그는 매일같이 성경을 원어로 몇 시간씩 진지하게 읽었다. 그에게 성경을 읽는 것은 분명한 목적이 있었다. 그는 그의 설교집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성경읽는 목적을 썼다.
여기에 나는 일들로 부터 떠나 홀로 앉아 있다. 오직 하나님만 여기 계실 뿐이다. 그 분 옆에서 나는 성경을 펼친다. 나는 그분의 책을 읽는다. 천국에 가는 길을 발견하려는 목적으로 읽는다.
또한 그는 구약성서 주석의 서문에서도 독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성경읽는 목적에 대하여 권고하였다.
그들이 성경을 읽되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고 말씀 하신 것같이 외적으로 그렇게 되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읽기를 원한다면, 매일 일정
한 시간을 아침 저녁으로 성경을 읽는 목적으로 내어 놓으라.
이와같이 웨슬레에게 있어서 성경 읽는 것은 하나님의 모든 뜻을 알기 위함이었다.
그렇다고 웨슬레가 오로지 성경만을 읽는 것은 아니었다. 웨슬레는 성경 이외에도 많은 책을 읽었다. 그는 1725년 부터 1734년 사이의 옥스포드 시절에 400여권의 책을 읽었다. 그린 (V. H. H. Gveen)은 웨슬레가 그 시절의 자기 일기에다가 그가 읽었다고 언급한 책들을 종류별로 열거하였는데, 희랍과 로마의 고전을 비롯하여 종교, 문학, 철학, 연극 등 그 책의 종류와 범위는 매우 다양하였다. 웨슬레는 옥스포드 대학 생활 이후에도 계속해서 많은 책을 읽었다. 이에 대하여 웨슬레는 1778년 9월 1일 일기에다 다음과 같이 썼다.
아마도 나는 전보다 5,6백권의 책을 더 읽었을지 모른다. 또한 옛날보다 역사나 자연 철학에 대해 좀 더 알고 있다고 할 수 있으나 이런 것으로 신성을 아는 지식에 보탬이 되었다고 할 수 없다. 40년 전에도 나는 지금 설교하고 있는 기독교의 교리를알았고 설교하였다.
이와같이 웨슬레 자신의 일기를 통하여 볼 때 그가 결코 편협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실 그는 고전으로부터 당대의 저서까지 두루 섭렵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웨슬레는 '한책의 사람'(Homo Unius Libri)이 되길 원했다. 그는 기독자의 완전에서 (1777년) "이것은 1730년 6월부터 자신이 줄곧 추구해온 목표" 라고 하였다. 한책의 사람이라는 용어는 웨슬레에게 친숙한 것이었다. 그는 그의 설교집에서 자신이 얼마나 한책의 사람이 되길 원했는 가를 다음과 같이 피력하였다.
나는 한가지 사실 곧 하늘로 가는 길을 알고 싶다.... 나를 한책의 사람이 되게 하라.... 마음의 문을 연 후에 나는 성경의 근사한 구절을 찾아 비교 연구 한다. 그리고 그 구절에 대하여 온갖 정신과 열정을 집중하여 명상한다. 그래도 여전히 의심이 가시지 않으면 나는 하나님의 사업에 경험이 있는 자들과 상의하고 또한 독서를 한다. 나는 이런 과정에서 배운 것을 가르친다.
진실로 웨슬레는 한책의 사람이었다. 이것은 웨슬레의 목회훈련의 기본 텍스트가 되었다. 후에 평신도 보조자에게 목회 훈련을 시킬 때 그는 "신도도서" (Christian Library) 라고 목록을 제시하였다. 이처럼 웨슬레는 "하늘 가는 길을 가르쳐주는 천국의 안내서요", "모든 계시의 시금석"인 성경을 철저히 탐구 하였고, 성경을 신앙과 실천 생활의 유일한 규칙 (The only rule)과 충분한 규칙 (The sufficient rule)으로삼아 목회 훈련의 기본 텍스트로 삼았던 것이다.
b. 설 교
웨슬레는 설교를 통하여 목회를 시작하였다. 그의 목회 중에서 설교가 제일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그의 일기를 보면 자신은 설교로 산다고 하였다. "점심때 우드씨츠 (Woodseats)에서 설교하였다. 저녁에는 셰피일드에서 나는 진정 설교로 살아간다 !" 무엇보다도 웨슬레의 설교는 성령의 감화에 힘입어 있었고 , 1738년 5월 24일 올더스케이트 집회에서 강한 체험을 했고, 1739년 1월 1일 페터레인 (Fetter Lane) 집회에서 능력을 받은 후부터 그의 설교에 능력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러면 그의 설교의 목적은 무엇이며 그 성격은 어떤 것인가 ? 그는 그의 설교집 서문에서 설교의 목적을 피력하였다.
나는 하늘로 가는 길에 관하여 성경에서 발견된 사실을 다음의 설교들 속에 기술하면서 하나님의 길과 인간이 발명한 것들을 구별하였다. 나는 진실하고 성서적이고 경험적인 종교를 서술하되, 그것의 본질적인 것을 빠뜨리지 않는 동시에 비본질적인 것을 첨가하지 않으려고 노력하였다.
즉 그에게 있어서 설교의 목적은 하늘 가는 길을 전달하기 위함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웨슬레의 설교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였고, 그들이 계속하여 성장하고 믿음을 유지함으로 하늘나라에 넉넉히 들어가게 함이었다.
웨슬레는 전도열에 불타는 설교자였다. '만일 내가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다 (고전 9:16)' 라는 바울과 같은 심정으로 복음을 전하였다. 그는 이러한 사명감과 구령의 열정 때문에 그는 임종할 때까지 전심 전력을 다해서 영국을 순회하며 복음을 설교하였던 것이다. 웨슬레는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겠습니까 ?"라고 몰려드는 군중에게 지혜와 의와 구원이 되시는 그리스도 를증거해 주었다. 웨슬레는 복음을 전파하면서 바울과 그 전도 일행이 당했던 수 많은 환란과 핍박과 어려움들을 겪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구령사업의 고삐를 늦추지 아니하고 전도마차를 몰아 산을 넘고 강을 건너 목마르고 굶주린 영혼들에게 달려갔다. 그가 수 많은 환난과 고초 속에서도 얼마나 뜨거운 구령의 열정을 가지고 복음을 전파했는지는 그의 삶 전체가 증거가 될 것이다.
영국 국교회 내에서 웨슬레에게 설교 행위를 금지 시켰을 때 그는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는 특정지역이 있을 수 없다는 세계 선교를 향한 비젼을 가지고 야외설교를 감행하였다. 이때 그는 '전 세계는 나의 교구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만약 내가 어떤 원칙에서 행동을 하느냐고 물으신다면, 원칙은 이것입니다. '크리스챤이 되고자 하는 욕망과 그렇게 되는데 도움이 되는 것이라고 판단되어지는 것은 무엇이라도 해야 한다는 확신이 있으며 이 목적을 달성하는데 필요하다면 어디라도 가야 한다고 판단될 때 그곳에 가야 한다는 확신입니다.' 이 원칙에서 나는 미국에도 갔었고, 이 원칙에서 모라비아 교회를 방문하기도 하였고, 이제도 같은 원칙에서 아바시니아 (이디오피아)나 중국 같은 곳 어디라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면 어디든지 부르시는 대로 갈 준비가 되어 있으며 이것이 바로 나의 확신입니다.... 사람은 내가 다른 사람의 교구에서 이와같은 일을 하지 못하게 금하고 있습니다. 다시말하면 결과적으로 내가 현재 교구를 가지고 있지 않을 뿐더러 앞으로도 계속해서 교구를 갖지 않을 것으로 알고 내가 그런 일을 전혀 하지 못하도록 금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누구의 말을 들어야 하겠습니까 ? 사람입니까 ? 나는 온 세계를 나의 교구로 생각합니다. 이말의 의미는, 내가 세계 어느 곳에 가서 있을 지라도 구원의 기쁜 소식을 기꺼이 들으려는 모든 사람들에게 선포하는 일이 온당하고 정당하며 나에게 허락된 의무라고 생각한다는 말입니다. 이 일이야말로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셔서 내게 맡기신 일이라는 것을 나는 압니다. 그러므로 나는 하나님께서 나에게 맡기신 일을 이루는 일에 충성을 할 수 있는 커다란 용기를 계속 얻게 됩니다. 나는 하나님의 종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하나님의 말씀이 명백히 지시하시는대로 종으로서 일할 따름입니다. '기회를 얻는대로 모든 사람에게 선을 행할 뿐' 입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명백하게 하나님의 말씀과 일치합니다. 나로 하여금 다른 모든 일에서 손을 떼게 하시고 이 한가지 일 곧 '두루 다니며 선을 행하는 일'에만 전념하도록 만드셨습니다.
사실 웨슬레는 야외설교에 대하여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었다. 그는 좋은 시설과 분위기 속에서 설교하기를 원했다. 그러나 교회에서 강단을 내어주지 않기 때문에 부득이 야외설교를 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에게 야외설교의 동기를 부여한 사람은 화이트필드 (Whitefield)였다.
웨슬레는 처음에 이렇게 야외에서 설교를 하는 것이 이상해서 도대체 적응하기가 어려웠다. 나아가 그는 교회밖에서 하는 것은 거의 죄가 되는
것으로 생각하였었다. 이와같이 생각했던 웨슬레가 처음으로 야외설교를 실시하였다. 물론 그는 기쁜 마음으로 야외설교를 했던 것은 아니었다.
오후 4시에 나는 어쩔 수 없이 기분은 더욱 언짢았으나 노상에서 구원의 기쁜 소식을 선포하였다. 이때 나는 그 도시에 인접한 작은 언덕 위에 서서 약 삼천명이나 되는 사람들에게 설교를 하였다.
그런데 이렇게 시작한 야외설교였지만, 산상수훈을 가르치실 때 주님께서 야외설교를 하셨고 많은 복음의 증인들이 야외설교를 실시한 증거를 성경에서 발견하고 난 후 부터는 설교를 요청하는 곳이면 어디든지 사양하지 않고 찾아가서 복음을 전하였다. 그후 1772년 9월 6일 일기에는 야외설교에 대하여 "오늘에 와서 야외설교가 내 십자가가 되었다. 그러나 나는 내 임무를 알고 있으며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전하는 다른 방법은 발견하지 못하였다."라고하였다. 비록 웨슬레에게 야외설교가 십자가요, 짐이었으나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일이요 구원을 갈망하는 소리라고 생각할 때 그 일을 계속할 수 있는 신앙적인 열정이 생겼다. 후에 1782년 6월 26일 일기에서 그는 야외설교를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하였다.
웨슬레는 1747년 6월 15일에서 18일까지 열렸던 제 4회 연회 마지막 날 "우리는 야외설교에 너무 중점을 두지 않는가 ?"라는 질문에 대하여 네가지로 의견을 피력하였다.
① 왜냐하면 우리의 사명은 잃은 자를 찾아 구원함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떠난 방황자들이 우리를 찾아오기를 기대할 수 없다. 그 대신 우리가 그들을 찾아가야 한다.
② 우리는 특별히 큰 길이나 울타리 밖에 나가 억지로라도 그들을 들어오도록 해야 한다. (눅 14:23) 우리가 아니하면 다른 사람은 그렇게 할 사람이 없다.
③ 이 방법의 반대 의견은 온당치 않다. 즉 그 집(교회당)은 오는 사람 모두를 다 수용할 수 있다고 한다. 그것은 사실이다. 그 집은 그 집에 오는 사람을 다 수용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집이 야외에 모이는 사람을 다 수용할 수는 없을 것이다.
④ 그뿐 아니라, 다른 방법보다 이 야외설교로 더 큰 은혜가 임하였다.
웨슬레는 교회에 와 보지도 못한 사람들을 찾아가 설교를 하였고, 광산, 부두, 탄광, 창녀촌 등 교회의 장벽이 높아 교회를 찾아 오지 못하는 자들을 찾아가 설교했다. 이것은 '찾아가는 자세'로서의 적극적인 목회의 자세로 웨슬레는 순회 야외설교에서 보여 주었던 것이다.
웨슬레는 오전 4시에 기상하고 다섯시에 첫 설교를 하는 등 시간을 지켰으며 또한 그의 순회 설교자들을 위하여 엄격한 규율을 세웠는데, 이에 의하면 아침 5시 전에 일어나서 6시부터 12시까지의 독서와 기도를 하고, 정오부터 하오 5시까지는 심방을 하고, 5시부터 6시까지는 하나님께 은밀히 기도를 하게 했으며, 하루에 적어도 두번 전도하게 하였다. 하루 24시간중 5시간은 반드시 독서와 성경공부를 하여야 했으며, 설교는 간단하게 하고, 예배는 한시간 안에 마치도록 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웨슬레에게 있어서 설교가 얼마나 중요했으면 그는 사역을 설교와 관련지어 구분하였다. 그것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① 제 1 기 : 1725년부터 1729년까지
나는 설교를 많이 하였다. 그러나 수고에 대한 열매를 거의 못 얻었다. 노력에 비하여 그럴 수가 없는 실패였다. 그 이유인즉, 나는 내 설교를 듣는 사람들이 이미 신자인 줄 알고 그들은 회개가 필요하지 않은 줄로 생각하여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는 말씀에 중심을 둔 설교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② 제 2 기 : 1729년부터 1734년까지
나는 회개에 깊은 기초를 두고 설교를 하였다. 그랬더니 그역사에 조금씩 결과가 나타났다. 그러나 극히 작은 열매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상할 것이 없는 일이다. 왜냐하면 나는 그리스도의 보혈과 믿음에 대한 설교를 하지 않은 까닭이다.
③ 제 3 기 : 1734년부터 1738년까지
나는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좀 더 많이 언급하면서 보다 열심히 설교하고 심방을 하곤 하였다. 그랬더니 그만큼 더 많은 열매를 거두게 되었다.
④ 제 4 기 : 1738년 이후
나는 계속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설교하였다. 결국 모든 설교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그리스도가 주춧돌이 되었다. 그 내용은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는 것이었다. 그랬더니 하나님의 말씀은 덤불속의 불처럼 역사하였다. 군중들은 "내가 구원받기 위하여 어떻게 하여야 합니까 ?"라고 외치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서는 나중에 모두가 은혜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는다고 증거하는 것이었다.
웨슬레의 설교를 향한 열정은 그의 생애 마지막까지 계속되었다. 그는 1791년 3월 2일 런던 시크로드 교회당 자택에서 88세로 서거하기 바로 일주일 전까지 1791년 2월 23일 레더헤드 시장 저택에서 설교하였다. 슬레는 일생동안 매년 5천여 마일 이상을 순회 여행을 하였으며, 매년 평균 800여회, 매일 2,3회씩 설교를 하였다. 영혼 구원을 위한 그의 열정은 그로 하여금 아침과 낮, 그리고 저녁 훨씬 늦은 밤중까지 쉬임없이 충성을 다하도록 하였다. 웨슬레에게 있어서 설교는 목회훈련의 중요한 내용인 것이다.
2. 성 례 전
웨슬레는 당시 모라비안파의 정숙주의 (Quietism)를 경계하면서 은혜의 수단을 강조하였다. 웨슬레에 의하면 은혜의 수단은 8가지인데 그중에서도 세례와 성만찬은 은혜의 수단에서 제일 중요한 수단이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은혜의 수단에 제약된 분이 아니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은혜의 수단을 통하여 은혜 주시기를 즐겨하신다고 웨슬레는 생각하였다. 웨슬레게에 있어서 세례와 성만찬은 목회훈련의 중요한 내용이었다.
a. 세 례
웨슬레는 '세례에 대하여'(A treatise on Baptism)라는 그의 논문에서 기독교의 세례에는 세가지 가중요하다고 보았다. 나아가 그는 세례를 다음과 같이 정의하였다.
세례란 무엇인가 ?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과의 계약속으로 들어가게 하는 입회 성례전이다.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설치하셨다. 그리스도께서만이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영구적으로 의무를 지워주는 본래의 성례전 즉 은혜의 표시와 인장과 담보와 수단을 설치하실 권세가 있다. 우리는 그것이 설치된 정확한 시기를 알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는 주께서 승천하시기 오래전에 그것이 있었음을 알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할례 대신에 설치된 것이다. 즉 할례가 하나님의 계약의 표시와 인장이었듯이 세례도 그러하다.
웨슬레에 있어서 세례란 입회 성례전으로 하나님의 계약속으로 들어가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목회훈련의 중요한 내용인 것이다.
웨슬레는 세례의 유익에 대해서도 그의 논문에서 5가지로 말하였다.
① 그리스도의 죽음의 공로를 적용하여 본래의 죄 (Original Sins)의 죄책을 씻어 버림
② 세례를 받음으로 우리는 하나님과의 계약 관계에 들어가고 그분이 영원히 명하신 영원한 계약속으로 들어간다. 이 계약은 새로운 계약이며 영적 이스라엘에게 약속하신 것이다.
③ 우리는 교회에 입교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교회의 머리되시는 그리스도의 지체가 된다.
④ 본질상 진노의 자녀였던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⑤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결과로 우리는 하늘 나라의 시민이 된다.
웨슬레는 세례에 대하여 말하기를 "세례안에서 우리는 믿음을 통하여 그리스도와 접붙임을 받으며 (Imgrafted in to), 성령을 통하여 이 새로운 뿌리에서부터 새로운 영적인 삶을 살게 된다. 성령은 우리를 그분과 같은 모습으로, 특히 그분의 죽음과 부활을 닮아가게 하신다."라고 하였다. 웨슬레에게 있어서 세례는 우리가 그리스도와 연합함(롬 6:23)을 나타내며, 죄사함 (행 2:38)과 양심의 정결 (히 10:22)을 가져다 주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그는 세례의 지속에 대해서도 그의 논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세례가 그의 교회에 항상 남아 있기를 원하셨다. 세례는 교회가 있는 만큼 오래 지속되도록 의도되어 있다. 세례는 유대교에서 할례가 하나님의 영원한 계약의 백성이라는 인증이듯이 분명한 유추에 의해 세례도 바로 복음의 계약이 인정되는 한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계속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교회가 지속되는 한 영구적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부여하신 지상 과제이기 때문이다.
웨슬레는 세례가 영구적이어야 하는 것으로 보았다. 나아가 그는 세례의 방식에 대하여 침례 (Immersion)와 물뿌림 (Sprinkle), 그리고 물부음 (Pouring)의 형태가 있으나 이와같은 세가지 방법은 교회마다 다르게 사용되고 있으며 그 어느 방식도 이것만이 성서적이라고 하는 절대적인 주장을 할 수 없다 하였다. 왜냐하면 어느 특정한 방식으로 성경에 분명하게 나타나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상의 내용을 요약하면 웨슬레는 세례를 입회 성례전이요, 하나님의 계약속으로 들어가는 것으로 정의하였고, 그 세례에는 성경적인 유익이 내재해 있는 것으로 보았으니, 세례가 영구적으로 존재해야 하고, 그 방법에 대하여는 성경에 어느 특정한 방법이 제시되어 있지 않은 것으로 보았다. 이 세례가 목회훈련의 내용이 됨은 실로 당연한 일이다.
b. 성 만 찬
웨슬레는 성만찬을 은혜의 수단으로 이해하였다. 그는 성만찬은 수찬자에게 선행적 은총, 의롭게 하는 은총, 그리고 성결케 하는 은총을 전달한다고 보았다. 성만찬은 신앙을 견고케 하는 예전이며 회심을 재촉하는 예전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는 성만찬을 회심케하는 의식 (Converting ordinance)이라고 하였다.
성만찬은 하나님의 사랑의 행동 표시이며, 가장 중요한 은혜의 방법으로서 성령의 은사는 성만찬을 통하여 신자의 마음속에 내려온다. 웨슬레는 성만찬을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의 표적 (Sign)과 인증 (Seal), 현재 은혜의 표적과 인증, 천의 보증과 인증, 그리고 성도의 교제의 인증으로 보았다.
웨슬레의 성찬 교리는 실질 존중설 (Vitualism)로써 쯔빙글리의 견해에도 반대하며 화체설이나 공재설도 아니다. 그는 빵과 포도주는 변하지 않고 그대로 있으나 그것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은혜가 전달된다고 보았던 것이다.
웨슬레는 우리가 할 수 있는대로 자주 성만찬을 받는 것이 모든 그리스도인의 의무라고 하였는데 그 이유로 다음의 세가지를 들었다.
① 그리스도의 평이한 명령이기 때문이다.
② 그것을 행하는 유익이 그분에게 순종하여 그것을 하는 모든 사람에게 아주 크기 때문이다.
③ 우리로 하여금 그 죄를 떠날 수 있게 만든다. 나아가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해 줄 것을 확약한다.
웨슬레는 성만찬에 참여하는 자는 그의 믿음의 유무에 관계없이 의식을 통하여 자동적으로 (ex opere operato) 은혜를 받는다고 보았는가 ? 웨슬레는 카톨릭에서 말하는 자동적으로 은혜가 임한다는 데에 반대하면서 성만찬에서 받을 수 있는 은혜는 합당한 수찬자에게만 전달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러므로 웨슬레에게 있어서의 수찬자의 자격 문제는 중요한 문제로 대두된다.
웨슬레의 목회생활을 보면 그가 죠지아주 시절에는 영국 교회의 고교회주의를 가져서 교회의 권위와 의식을 극히 존중하여 영국교회에서 세례를 받지 않은 사람에게는 성찬과 장례식을 거절했으며, 비국교도 자녀에게는 다시 세례를 주었고, 세례는 반드시 침례로 받아야 할 것을 고집하였다. 웨슬레의 이러한 목회 초기의 태도는 그가 합당한 수찬자의 자격을 외적인 조건에 의하여 규정했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웨슬레가 후년에는 이러한 태도에 변화를 가져온 것을 볼 수 있는데 볼즈스에게 성경을 거부한 사실에 대해 깊이 반성하였던 사실은 이런 변화를 잘 나타내 주고 있다고 하겠다. 특히 복음적 회심후인 1738년에서 1740년 동안에 있었던 모라비안과의 논쟁에서 수찬자의 자격에 대하여 많이 언급하였다.
그 당시 모라비안들은 주장하길 성찬을 받을 수 있는 자는 확실한 믿음이 있는 자라고 하였다. 만약 확실한 믿음이 없는 자가 은혜의 수단인 성찬에 참여함은 하나님 앞에서 혐오의 대상이 된다고 하였다. 이에 대하여 웨슬레는 성찬에 참여할 수 있는 자격은 확실한 믿음을 가진 자만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종류 또는 한등급(a kind or degree of faith)을 가진 자도 참여 할 수 있다고 하였다.
믿음에는 정도의 차이가 있다. 그리하여 사람의 속에 있는 모든 것이 새로워지기 전에, 또 확실한 믿음을 소유하고 성령의 영속적인 증거 즉 그리스도가 내 속에 계시다는 확신을 갖기 전에도 어느 정도의 믿음을 가질 수 있다. 따라서 나는 사람이 온전히 의롭다함을 얻기 전에는 어느 정도의 칭의의 신앙을 가질 수 있다고 믿는다.
웨슬레에게 있어서 성만찬에 참여할 수 있는 최소한도의 믿음의 정도는 마귀와 이방인의 예수에 대한 지식과 구분되는, 즉 예수가 죄 많은 인간을 위해 죽으셨다는 사실을 믿는 최소한의 것으로도 된다고 보았다. 이러한 믿음이 있는 사람은 성만찬에 참여하는데 특별한 준비가 없어도 "신에게 성만찬을 요구할 정도의 정당함이 없고 자신의 죄악성과 무기력을 깨닫고 지옥에 갈 수 밖에 없다고 느끼는 자, 주님이 기쁘게 주시는 것을 받으려는 갈망과 죄를 억제하고 죄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형상안에서 그의 영혼을 새롭게 하려고 은혜를 갈망하는 자"면 다고 하였다.
이러한 웨슬레의 개방적인 태도는 비국교도 (Dissenter)에게도 성찬을 허용했으며 합한 준비를 한 어린이에게도 허용했다. 이는 그가 수찬자의 자격으로 외적인 조건보다도 내적인 조건을 더욱 중시하는 변화를 가졌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웨슬레는 성만찬의 신성을 보존하기 위하여 최소한의 외적인 의무를 만들었다. 왜냐하면 성찬이 개방되면 무질서하게 될 염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가 1747년 존 베네트 (John Bennet)의 의사록에서 심각하게 다루어졌으니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문 5 우리는 어떻게 자격없는 수찬자를 다스릴 것인가 ?
답 1 신도회에 가입할 때 아주 주의깊게 살펴서 허락함으로써
2 매 계절마다 지정한 달에 우리에게 나오는 자에게만 성
찬표 (Notes)를 발급함으로써
이와같이 웨슬레는 성만찬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하여 최선의 노력을 다하였다. 이상으로 살펴 보았지만 웨슬레는 성만찬을 은혜의 수단 중에서 특별한(In particallar) 것으로 이해하였고, 그 교리는 실질존중설 (Vitualism) 이었다. 나아가 성도는 계속해서 성찬을 받아야 하는 것이 의무라고 여겼으며, 참여하기 위해서는 믿음의 종류 또는 한등급 (a kind or drgree of Faith)을 가진 자도 참여할 수 있다고 하였다. 그가 이러한 개방적 태도를 견지하면서도 성만찬의 신성을 보존하기 위하여 최선의 노력을 경주 하였다. 그가 목회 사역을 수행함에 성만찬은 중요한 목회 훈련 내용이었다.
지금까지의 내용을 요약하면, 웨슬레의 목회활동으로 인하여 연합신도회, 속회, 반회, 선발신도회, 참회자반, 그리고 연회가 조직되었다. 웨슬레는 신도회를 조직함이 교회나 교단을 만들 목적이 아니었다. 그 목적은 단순히 영혼을 돌보고 격려하며 함께 기도하기 위한 것이었다. 또한 성령의 증거를 통해서 진실한 믿음이 있음을 나타내어 사랑을 실천하며 선교를 돕고 참여하도록 하기 위해 모인 것이었다.
그는 이 조직이 방대해지자 신앙 훈련 모임인 속회와 개개인의 신앙생활을 독려하는 신앙 고백반인 반회로 나누었다. 또한 반회 회원중에서도 특히 하나님의 빛가운데서 산다고 믿는 사람들과 독실한 믿음 아래 순종의 생활을 하는 사람들로 선발신도회를 조직하였고, 믿다가 무슨일로나 낙심했던 사람들을 참회자반으로 따로 조직하였다.
하워드 스나이더는 이러한 교회조직을 알기 쉽게 보여 주었고 (도표2), 이 춘 교수는 이것을 좀 더 상세하게 보여 주었다 (도표3), 신 회를 조직하고 5년후에는 목회사역 전체를 움직이고, 목회훈련을 시키는 최고의 의결기관으로 연회를 조직하였다. 웨슬레는 이러한 조직을 통하여 철저한 목회 훈련을 실시하였고, 이것이 그의 사역을 성공적으로 이끈 원인이 되었다. 웨슬레보다 먼저 중생의 체험을 하고, 야외 전도를 하여 큰 부흥 운동을 일으켰던 화이트필드 (Whitefield)는 "나의 형제 웨슬레는 지혜롭게 일하였다. 그는 전도하여 얻은 사람들을 신도회 (Society)에 가입시켜 그 활동의 결과를 보전하였다. 그러나 나는 그 방법을 경시하였기 때문에 내가 얻은 신도들은 모래알 같이 흩어졌다."고 하였다.
또한 웨슬레의 목회훈련 내용으로 성경, 설교, 세례, 그리고 성만찬을 살펴보았다. 그에게 있어서 성경은 최고의 권위이며 신앙과 실생활의 기준이었다. 그는 성경을 하늘 가는 길을 가르쳐주는 천국의 안내서일 뿐아니라 모든 계시의 시금석으로 인정하였고, 신앙과 실천 생활의 유일한 규칙과 충분한 규칙으로 목회훈련의 기본 텍스트로 삼았던 것이다. 웨슬레의 일생은 설교로 산 인생이었다.
영국교회에서 교구를 허락하지 않았을 때, 그는 '전 세계는 나의 교구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웨슬레는 야외설교를 통하여 '찾아가는 자세'를 보여 주었으니, 광산, 부두, 탄광, 창녀촌 등 교회의 장벽이 높아 교회를 찾아오지 못하는 자들을 찾아가 설교 하였다.
웨슬레는 세례를 입회 성례전으로 보았고, 그 세례에는 성경적인 유익이 내재해 있는 것으로 보았으니, 세례는 영구적으로 존재해야 하고, 그 방법은 성경에 어느 특정한 방법이 제시 되어있지 않은 것으로 보았다. 중요한 것은 세례가 구원에 필수적인 요소가 아닌 것으로 보았다는 점이다. 성만찬에 있어서 그는 성만찬을 은혜의 수단에서 특별한 것으로 이해하였고, 성찬 참여 조건에 대하여 개방적인 태도를 소유하면서도 성찬의 신성을 보존하기 위하여 최선의 노력을 경주하였다. 그가 목회훈련을 수행함에 있어 하나님의 말씀과 성례전은 내용이 되었던 것이다.
지금까지 웨슬레의 목회훈련의 조직과 내용을 살펴보았다. 제 IV 장에서는 웨슬레의 목회훈련의 방법과 그 실천적 적용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도표 2) 웨슬레의 감리교인 조직
CHURCH OF ENGLAND (영 국 교 회 )
+-----------------------------------------------------------+
+-+-------------+ |
| Class ++---------+ |
| 속 회 | Band | +-------------------+
| | 반회+----+------+ | Class |
+-++---------+-+-----| Select | | 속 회 |
|| Band | | Society +--------+-+ |
|| 반회 | |선발 신도회| Band +-----------------+
++---------+----+ +---------+-+ 반회 | |
| Class | +------------+ |
| 속 회 | |
| | |
+---------------+ +-----------+---------++
| | Band | Class |
| | 반회 | 속 회 |
| +-----------+ +-----+-----+ |
+-+------------+ Band | +---------------++
| | 반회 +-----------------+ |
| Class +-+-------+-+ Class | |
| 속 회 | | 속 회 | |
+----------------+-------| +----------------+
+-------------------+
(도표 3) 웨슬레의 교회구조 도표
+-----------------------------+
| 우주적 교회 |
| (Church Universal) |
+--------------+--------------+
+--------------+--------------+
| 영 국 교 회 |
| (Church of England) |
| 예배, 설교, 성례전 |
+--------------+--------------+
+--------------+--------------+
+--------------+| 연합 쏘사이어티 (감리회) |
| 참회자의 모임|| (United Societies) |
| 토요일 ++ 주일모임 |
|기도,찬양,약속|| [찬양, 권면, 성례전(정규목사|
+--------------+| 참여할때만), 교육, 기도(교리| +----------------+
| 문답이 있을때), 금식 등] | | 지도자의 모임 |
+--------------+--------------+ | 화요일 |
+--------------+--------------+-+ 환자,질병,헌금 |
| 클라스 모임 | +----------------+
| (Class Meeting) | +----------------+
| 12인 - 선물수집, 책망, 격려,+-+ 철야 기도회 |
| 논쟁해결, 영혼의 성장관찰 | | 월별, 년별 |
| | +----------------+
+--------------+--------------+-+----------------+
+--------------+--------------+ | 년 4 회 |
| 밴드(Band) 모임 (남여구별) | | 티켓검사 |
| 일치와 고백, 지도자 아래에 | +----------------+
| 서의 작은 모입, 죄와 유혹의| +----------------+
| 고백 및 치유 +-+ 아가페 예배 |
+--------------+--------------+ |년4회(성별구별) |
+--------------+--------------+ +----------------+
| 선발된 쏘사이어티 - 월요일 |
| (Select Societies) |
| 밴드안의 작은 모임, 웨슬레 |
| 와 지도자들이 참석 |
+--------------+--------------+
+--------------+--------------+
| 개 인 기 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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