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슬레의 성결사상2
웨슬레의 성결사상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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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I. 성령과 성결
하나님의 성결의 도구로서 성령은 웨슬레 신학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왜냐하면 성령의 증거가 없이는 성결의 구별이 불가능한 경우가 있기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결은 성령의 사역에 의해서 이루어지며 성결의 증거도 성령의 사역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웨슬레의 성결은 그리스도인의 삶에 있어서 중요하다. 그리고 이 성결은 구원과 연결되는데, 구원은 죄인이 의롭다 함을 받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로 변화를 받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믿음을 가진 신자들의 종합적으로 성숙된 과정을 성화' 로볼때, 그 성화를 이루시는 분은 성령이다. 즉 구원과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속죄를 통하여 죄인에게 구원의 은혜를 베푸시지만, 인간 심령 속에서의 성결의 성취는 성령을 통하여 이루신다는 것이다.
웨슬레도 구원의 역사는 성령의 역사이며, 따라서 마음 속에 일어나는 어떠한 변화도 성령의 역사라는 점을 믿었다. 그에 의하면 성령을 받기 전까지는 아무도 크리스챤이 아니다. 웨슬레는 성결이나 기독자 완전이 '우리 안에서 행하시는 성령의 역사'라는 것을 확신하였다.
따라서 그 어떤 사람도 성령없이 성결될 수 없다. 성결은 성령에 기인한다. 그리고 성결은 성령의 사역에 기인한다. 즉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롬15:16)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살후2:13)이라는 말씀이 성령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것을 보여준다.
이런 의미에서 필자는 본 장의 제목을 "성령과 성결"이라 정하였다. 따라서 본 장에서 먼저 웨슬레가 바라본 성령의 역사에 대해서 살펴본 후 성결과정에서 성령의 사역을 연구한 후 성결의 확신을 갖게하는 성령의 증거를 살펴보고자 한다.
A.성령의 역사
웨슬레는 사람 속에서 성령께서 은혜로 놀라운 변화를 일으키는 방법은 시간적 관점에서 볼 때 점진적인 방법과 즉각적인 방법이 있다고 보았다.
즉 하나님의 선행은총을 통하여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라는 사실을 인식하지만 그 깨달음의 순간이 있기까지 하나님의 계속적이고 점진적인 역사가 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구원받기까지 성령의 점진적인 역사가 계속된다고 볼 수 있다.
1.성령의 즉각적 역사
웨슬레는 성령의 순간적인 역사 이후 온전한 성화에 이르는 것은 성령의 계속적이고 점진적인 은혜의 역사에 의해서 가능하다고 강조한다. 웨슬레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구원은 칭의와 성화의 두 가지 요소로 구성 된다고 보았다.
그리하여 칭의에 의해서 우리는 죄책으로부터 구원받고 하나님
의 은총을 회복하고, 성화에 의해서 우리는 죄의 세력과 그 뿌
리로부터 구원을 받으며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게 된다. 모든
경험과 성경은 이 구원의 방법이 즉각적임과 동시에 점진적임
을 보여준다. 이 구원은 우리가 칭의되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그리하여 거룩해지고 겸손하고 온유하고 인내하며 하나님과 사
람을 사랑하게 된다. 이 구원의 은혜는 그 순간부터 점점 증가
하기 시작한다......따라서 하나님과 그리고 사람에 대한 순수
한 사랑으로 채워지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계속하여 우리
의 머리가 되시는 그리스도를 목표로 모든 면에서 성장해 가야
할 것이며,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러야 할 것이다.
이와같이 점진적인 성화의 발전을 통하여 기독교인의 생활은 결국 성화의 성숙한 단계 즉,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온전에 도달할 것이다.
린드스트롬(Lindstrom)은 구원의 질서에 관한 웨슬레의 이론 즉 신앙의 성장과정에서 점진적인 것과 즉각적인 관계를 다음과 같이 말했다.
신생과 온전한 성화는 그의 구원론에 있어서 전반적으로 유기적
관련이 없이 두 개의 독립된 현상으로 관찰되어진다. 웨슬레는
두 가지가 모두 사람에게 순간적으로 주어진다고 주장하므로 웨슬
레의 구원론에서 순간적인 요소만의 주목을 받고 있다. 그리하여
웨슬레가 또한, 구원은 하나의 점진적인 발전 과정으로 파악한 사
실은 경시되고 있다. 실제적으로 점진적 발전의 사상은 그의 구원
관에서 가장 특출한 요소이며 실제 그의 사상의 일반적인 특징인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이 두 가지 요소 즉, 즉각적인 것과
점진적인 것은 서로 결합되어 있다는 것이며, 웨슬레에게 특유한
구원의 질서는 이러한 두 요소의 결합에서 나오는 것이라는 점이
다. 구원은 사람이 여러 단계의 신앙 과정을 통과하는 과정으로
이해되며 각 단계는 여러 가지의 신앙 수준을 나타내는 것이다.
웨슬레는 사실상 즉각적인 면과 점진적인 면을 똑같은 비중으로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크고 위대한 변화가 순간적으로 일어날 수 있음을 믿었다. 웨슬레에게 있어서 구원은 언제나 연속적 과정으로 이해하였다. 다시 말하면 현재 성결한 생활을 하고 있는가, 그리고 점점 더 거룩해지고 있는가 하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웨슬레는 순간적으로 큰 은혜를 부어 주시는 성령의 역사를 강조하고 그러한 은혜를 사모하도록 권면하였고 동시에 은혜의 지속과 보다 더 큰 은혜의 세계를 향하여 끊임없는 전진과 노력을 강조하였다. 따라서 웨슬레는 점진적 역사와 즉각적인 역사를 모두 수용하면서 계속 점진적으로 성장해 나가는 것을 강조했다.
2.성령의 지속적 역사
웨슬레는 사람의 영적 상태를 크게 셋으로 나눈다. 첫째는 자연상태(the natural state), 다음에는 율법적 상태(the legal state), 끝으로 복음적 상태(the evangelical state) 혹은 사랑의 상태(the state of love)로 보았다. 그러나 사람은 세 가지 영적 상태 중 어느 한 곳에만 전적으로 속해있는 것은 아니다. 한 사람 속에 여러 가지의 영적 상태가 섞여서 존재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불신자들은 대개 자연상태와 율법적 상태가 섞여진 상태에 있고, 제자들은 대개 일반적으로 율법적 상태와 복음적 상태가 섞여진 상태를 가지고 살아간다. 한편 웨슬레는 그의 사상의 초기에는 진실한 기독교인은 오직 복음적 상태에만 머물러야 하며 율법적 상태와 섞여서는 안된다고 믿었다.
웨슬레는 1738년에 행한 {믿음에 의한 구원}(Salvation by Faith)이라는 설교에서, 예수님의 제자들이 오순절에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의 세례를 받기 전에 가졌던 믿음에 대하여, 그것은 우리를 구원시키는 진정한 믿음이 아니라고 하였다. 그들이 비록 기적을 행하고 병자를 일으키고 천국의 복음을 증거했지만, 그런 믿음 만으로는 구원을 받을 수가 없다고 하였다.
그러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웨슬레는 신앙의 세계에 대한 이해를 더 깊이 하게 되었고 온전에 대한 그의 사상도 조금씩 변화를 갖게 되었다. 즉 후기에는 사랑의 충만을 통한 온전 혹은, 자신의 무력을 깊이 인식하고 철저히 의지하는 가운데서 온전을 강조했다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율법적 상태에 있는 사람의 연약한 믿음도 하나님께서는 물리치지 아니하고 받으실 것이라는 견해를 취하게 된다. 웨슬레는 1788년에 행한 {믿음의 발견에 대하여}(On the Discoveries of Faith)한 설교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성령께서는 우리 속에 천국을 이루어 주시기 위하여 우리를
준비시켜 주신다. 그 방법은 우리 심령의 베일을 벗기시고 우리
로 하여금 우리가 하나님께 알려진 바 되었다는 것을 알게 하시
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의 죄 즉, 우리의 악한 성품과 악
한 기질과 악한 말과 행동 등을 분명히 알게 해 주시는 것이다.
이런한 모든 죄들을 우리의 심령 속에서 나오는 것들로서 우리
의 심령을 부패시키는 것들이다. 성령께서는 다음에 우리 죄의
보응이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심으로 우리는 입을 다물고 하나님
께 사죄의 탄원을 하게 해 주신다.
웨슬레의 원숙한 사상의 특징으로서 지속적 성장은 끊임없이 성장하고 발전해야만 하며 신앙의 현상유지란 일종의 퇴보라고 웨슬레는 강조했다.
따라서 영원한 성장의 필요성에 대한 언급은 웨슬레의 구원관의 점진적 성격과 함께 그의 온전한 성화론을 이해하는데 반드시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이러한 점진적인 성장이 성령에 의해서 이루어진다고 보았다. 웨슬레는 이러한 문제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질문:사랑으로 온전해진 사람들도 은혜 안에서 성장할 수 있는가.
대답:의심없이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이 육체 속에 머물 때 뿐만 아니라 아마 영원토록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B. 성결을 가져오는 성령의 사역
거듭난 후에 인간이 할 수 있는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순종과 성결, 또한 사랑의 행위는 성령께서 동시에 역사하시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이것은 의인의 근거가 그리스도에게 있는 것과 같이 성화의 동인(agent)은 성령임을 말 해 준다. 믿음에 의한 의인은 구원의 뿌리(root of salvation)이고 성령에 의한 성화는 구원의 본질(substance of salvation)이다. 성결의 은혜는 성령의 역사를 통해서 받게 되는 것을 성경은 증거하고 있다.
성경에 기록을 보면 "나는 너희로 회개케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요"(마3:11)라고 말했다. 이것은 성결의 은혜를 받는데 있어서 성령의 사역과 또한 성령의 강력한 협력이 반드시 필요함을 강조한 것이다.
이 명직 목사는 성결의 은혜를 받는데 있어서 성령의 사역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성신께서 불로 임하사 사람의 마음에 유전죄와 거기 속한 악한
정욕과 죄의 정욕을 정결케 하시나니 제자들이 오순절날 강림하신
성신을 받음으로 그 정과 욕까지 정결하여졌느니라.
이것은 성령의 사역으로 인간의 유전 죄까지 정결하게 하심으로 성결의 은혜를 받게 됨을 말한다. 그러므로 성결의 은혜는 반드시 성령의 강력한 사역을 통해서 이루어 진다. 따라서 성결은 성령을 통하여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우리의 마음속에서 영적인 생활을 할 수 있게끔 성령이 협력해 주는 것이다. 한편 중생된 인간의 영혼은 성령의 능력을 통해서 새로나게 되며 성결된 인간의 영혼은 육적인 모든 것을 양보하고 온전히 그리스도의 소유가 되어서 그리스도가 내안에 계시므로 산다고 말하게 되는 것이다.
성결의 은혜는 성령의 사역으로 이루어진다. "오순절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 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불의 혀 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위에 임하여 있더니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히2:1-4)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것은 성령의 역사로 인하여 성결의 은혜를 가져오는 성서적인 근거라고 하겠다.
웨슬레 자신도 성령께서 한 순간에 죄인을 의인으로 만들어 주시거나, 혹은 온전히 성화되게 하실 수 있다는 점을 올더스게잇 이전에는 이해하지 못했으나 올더스게잇의 체험을 통하여 하나님의 섭리에 대해서 그리고 성령의 사역 방법에 대해서 분명히 깨닫게 되었던 것이다.
C. 성결과정에서 성령의 사역
중생한 사람은 성결을 향하여 성장하여야 하며, 성결한 사람은 더 완전한 성숙단계에 이르도록 노력하여야 된다. 성결이 완성되었다고 해서 태만하거나 교만하다면 후퇴하는 생활이라고 할 수 있다.
요한 웨슬레는 완전 성화에 이르기 까지는 점진적인 성장의 과정이 있음을 그의 설교 "그리스도의 완전"(Christian Perfection)에서 '어린이', '청년' 그리고 '어른'의 단계로 나누어 설명하였다. 한일서에는 "자녀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 죄가 그의 이름으로 사함을 얻음이요,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앎이요,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니라"(요일2:12-15)라고 하였다. 즉 자녀들(baby)은 중생한 자 곧 초기의 성화의 단계이며, 청년들(young man)은 점진적 성화의 과정에 있는 신자이며, 어른들(father)은 온전한 성화에 이른 자, 즉 성결한 성도들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안에서 성결한 성도는 계속하여 구원을 향하여 계속 성장하는 것이다.
1. 관계적 성화 (Positional Sanctification)
누구나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기 전에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었다가 믿음으로 인하여 전에 원수되었던 사이가 부자관계로 회복된다. 이때에 죄인이 하나님의 백성 즉 거룩한 백성이 된다. 관계적 성결이란 이와같은 관계의 변화에서 본 것이다. 이는 주관적 변화라기 보다는 객관적인 변화이며, 내적 변화가 아닌 외적 관계의 변화이다. 그러므로 관계적 성화는 의식적 성결과 같다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을 위하여 따로 구분된 물건이나 사람은 모두 거룩하다. 실제로 이들이 거룩해서가 아니라 거룩하신 하나님과 관계를 맺었기 때문이다.
칭의는 하나님이 성자를 통해 우리를 위하여 하시는 것이요, 성화는 하나님이 성령에 의해서 우리 안에서 행하시는 것이다. 그러면 성령은 칭의에서 사역하지 않는다는 뜻인가? 그렇지 않다. 칭의의 조건인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이며 성령에 의해 주어지는 선물이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보면 "사도들이 주께 여짜오되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 하니"(눅17:5), "다른 이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고전12:9)이라 하였다. 그러므로 웨슬레는 '우리가 칭의되는 것과 동시에, 바로 그 순간에 성화가 시작되는데, 우리가 다시 나며, 위로부터 나며, 성령으로 나는 것이다. 그 순간에 관계적 변화 뿐만 아니라 진정한 변화가 생기는 것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서 내적으로 새로와지는 것이다.
여기에서 성령에 의한 관계적 성결 만으로는 온전한 성화라고 볼 수 없기에 더욱 나아가야 한다. 믿고 용서받은 신자는 이제 실제적인 영적 도덕적 변화를 받아야 한다. 이 실질적 변화를 웨슬레는 초기의 성화, 온전한 성화 그리고 그 전후에 있는 점진적 성화의 단계로 구분하여 설명하였다.
2. 초기의 성화(Initial Sanctification)
사람이 거듭날 때 성화가 시작된다는 것이 웨슬레의 견해인데 이는 흔히 초기적 성화, 거듭나서 성화의 단계에 들어섰으나 완전성화(entire sanctification)에 이르기 전의 신자의 상태를 말한다.
웨슬레는 초기의 성화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전적인 성화가 그의 영혼에서 발생하기까지, 그의 성결은다른 것 과 혼합되어 있다(all his holiness was mixed). 즉
그는 겸손하지만 온전히 겸손하지 못하며, 그의 겸손은 자만
과 섞여 있다. 그는 온유하긴 하지만 그의 온유는 분노나 어
떤 사나운 성정(turbulent passion)때문에 자주자주 깨지고
만다.
그러므로 비록 중생은 했지만 여전히 세상의 힘에 눌려있는 사람이 온전한 성결을 체험하기 전의 상태는 퍽 불안정한 것이다.
웨슬레는 중생은 성화의 시작이요 문이라고 했다. 중생은 성화의 첫 단계이다. 이것을 초기의 성화라고 했다. 우리가 진정한 믿음을 가질 때 의로워지고, 거듭나게 되며, 초기의 성화를 경험하게 된다. 즉 죄에서 용서받으며, 죄의 세력이 깨어지며, 성결이 시작되는 것이다.
한영태 박사는 학위 논문에서 중생에 관한 설명을 하고 있다:
중생은 하나님께서 인간 심령 속에서 일으키는 큰 변화이다.
이것이 죄로 죽은 영혼이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 지음을 받아 의
와 참된 거룩함으로 하나님의 형상으로 새로나는 것이다.....우
리의 마음이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변화됨을 이름이다.
따라서 우리가 중생할 때 즉 내적, 외적 성결은 시작한다고 하였다. 또한 중생과 성화는 모두 성령의 역사에 의해 이루어진다고 밝히고 있다.
3. 점진적 성화(Gradual or Progresive Sanctification)
많은 사람들은 즉각적 성화만을 강조하면서 점진적인 성화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웨슬레는 우리가 의롭다함을 얻는 순간부터 거기에는 은혜 안에서 성장하는 점 적인 성화가 있다고 보았다. 따라서 믿음을 지속하고 있는한 성장을 거듭하여 결국 하나님의 형상을 온전히 회복 하 순간적 체험 인 완전한 성화에 나아가는 것이라 했다.
한영태 박사는 점진적 성화에 대하여 성서적으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 신자들을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하여지고,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
(고전1:2)이라고 불렀으나, 3장에서는 저들이 아직도 젖먹이요
육신에 속한 그리스도인이라고 꾸중한다(3:1-3). 육신에 속한
그리스도인 중에서 성장하여 온전한 성결을 이룬 자들이 있음
을 "너희 중에 이와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
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
을 얻었느니라"(고존6:11)라고 쓰고 있다. 어린 아이가 태어
나면 성장해야 하는 것처럼 신자도 은혜 안에서 성장해야 한
다. 성장하지 않으면 무언가 병들었거나 문제가 있고 결국은
죽게 되는 것과 같이 신앙도 마찬가지다.
점진적 성화의 과정은 신자의 성화의 과정이다. 이 기간에 신자는 영적인 싸움을 무수히 겪게 되며 승리와 패배를 교대로 겪게 될 때가 많다. 유혹에 이기고 승리하기 위해서는 의지가 중요하며, "무릇 지킬만한 것 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라"(잠3:23)는 말씀은 특히 중요하다.
4. 온전한 성화(Entire Sanctification)
온전한 성화는 신자가 다시 자신의 무능과 자신안에 남아 있는 죄를 자각하고 믿음으로 받는 것을 말한다. 웨슬레는 이 체험을 순간적으로 받는 것이라 하면서 이 체험을 통하여 신자는 마음속에 남아 있는 죄성으로부터 씻김을 받는 다고 하였다. 중생의 순간부터 성화의 역사는 시작되어 우리가 죄에 대하여 죽는 만큼 하나님께 대하여 살게 되며, 이런 과정에서 순간적으로 모든 죄로부터의 정결함을 받으며(소극적 의미의 성결), 성령의 역사로 순수한 사랑의 충만을 (적극적 의미의 성결)얻게 된다.
웨슬레는 온전한 성화를 두번째 경험이라 했다. 두번째 은총의 체험이란 뜻에서 "제2의 축복", "제2의 은혜", "두번째 변화", "온전한 구원", "기독자의 완전"이라고 불렀다. 온전한 성화는 바로 "온전한 사랑" 또는 "순수한 사랑"이며 이 사랑 때문에 죄를 짓지 않게 되며, 하나님과 이0웃을 사랑하며 사랑과 봉사에 더욱 큰 힘을 얻어 승리하는 생활의 계기가 된다고 했다.
성령으로 말미암는 온전한 성화는 하나님의 사랑의 충만을 말한다. 즉 "소망이 부끄럽지 아니 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롬5:5)라고 하였다. 성령으로 마음이 정결해 진다. 성령께서 정결케 하시고, 하나님이 사랑으로 충만케 하신다.
5.그리스도인의 완전
웨슬레는 완전의 교리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다. 이것은 기독교인의 목표이기 때문에 그의 설교의 관심이 신자로 하여금 성결의 은혜를 받도록 하려는 데 있다. 그는 [그리스도인의 완전]이란 그의 저서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문) 그리스도인의 완전은 무엇인가?
답) 하나님을 사랑하되 우리의 마음과 뜻과 목숨과 힘을 다해서 하는 그것이다. 이것은 사랑에 위배되는 그릇된 기질이 조금도 그 영혼에 남아 있지 않고 그의 온갖 생각과 말과 행동이 순수한 사랑으로 지배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현재 성결해도 연약성을 지니며, 무지나 실수로부터 해방될 수는 없다. 비록 육체가 죄는 아니더라도 육체 안에 있는 동안은 죄의 가능성은 언제나 상존한다. 이 타락하고 부패한 연약한 인간성이 영화의 단계에서야 진정한 의미에서 완전함을 얻을 수 있다. 현세에서의 완전은 이 최종적 완전을 얻는 조건이 된다. 그러나 현세에서의 완전은 끝이 아니다. 완전한 자라도 계속 은혜 안에서 성장하여야 하며 하나님 앞에 서는 순간 최종적인 칭의를 얻어야 한다. 이를 최종적인 완전(final stage of perfection) 또는 영화(glorification)라고 한다. 그리고 웨슬레의 완전은 절대적, 천사적, 아담적인(타락 이전의 아담의 상태) 완전이 아니다. 이런 관점에서 웨슬레는 그리스도인의 완전은 무지나, 과오나, 결점이나, 유혹받을 가능성 등에서의 완전을 말하지 않는다. 즉 완전은 '제한된 완전'이라 할 수 있으며, 하나님이나 천사처럼 되는 것이 아니고, 인간의 연약성을 인정하는 '인간적 완전'이라고 할 것이다.
조종남 박사는 웨슬레의 인간적 완전에 대하여 그의 저서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러한 이해와 강조의 차이는 우리의 눈과 안경에 적절히
비유될 것 같다. 안경을 쓴 사람들이 잘 알고 있듯이 안경
을 아무리 잘 닦아서 써도 깨끗한 상태의 유지는 그 순간일
뿐 곧 먼지가 쌓이게 된다. 그래서 혹자는 이렇게 말한다.
안경이 정결을 유지할 수 없듯이 세상에서는 무지와 실수
로 신자(信者)는 정죄 아래 있음을 면할 길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눈을 보자. 안경에 먼지가 잠시도 쉬지 않고 쌓이듯
이 눈에도 그러할 것은 명백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은
항상 정결한 상태를 유지한다. 그것은 눈물이 언제나 흘러
먼지를 씻어내기 때문이다. 성결한 자가 그 자신의 연약성
으로 인하여 무의식적인 죄를 범하지만 동시에 그리스도의
보혈의 효험으로 그 성결을 지속할 수 있다는 웨슬레의 주 장은 바로 이렇게 설명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웨슬레는 보혈을 항상 의지하는 신자는 계속하여 그 죄를 씻음받고 있으며(요일1:7), 신앙으로 그리스도와의 완전한 인격적 관계 안에서 그의 사랑으로 충만한 그리스도인의 완전에 이를 수 있다고 확신하였다.
D. 성결의 확신:성령의 증거
웨슬레 신학의 공헌중에 중요한 점은 무엇보다도 확신의 교리라 할 수 있다. 이 확신의 교리는 성서에 근거한 것으로 초대교회에서 특히 교회가 핍박속에 있을 때 활력소의 역활을 하였다. 웨슬레는 이 성령의 증거의 교리야말로 메소디즘의 공헌 가운데 중요한 것이며, 하나님이 위탁한 교리라고 확신했다.
따라서 성령의 증거는 하나님의 하나님의 자녀의 독특한 특권을 표시한다. 성경의 기록에 보면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롬8:16)라고 하였다. 즉 성령의 증거는 죄로부터 해방되어 자유를 얻어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을 증거하고 있다. 그리고 이 교리는 성서에서 출발한다.
웨슬레는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 사람은 진리의 중요성을 의심할 수 없으며 계시된 이 진리는 단 한 번 만이 아니요, 또 불명료하거나 우연하게 나타난 것이 아니라, 분명하고 엄숙하게 확실한 목적을 가지고 계시되어 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의 특권을 가지고 계시되어 있다" 라고 하였다. 특히 확신의 교리는 웨슬레 자신의 신앙 체험에 의해서 분명해졌다. 웨슬레는 1738년 5월 24일 저녁 올더스게이트에서의 신앙 체험을 기술하면서 자기의 마음이 뜨거워진 경험을 통하여 나 같은 죄인의 죄 까지도 없이 하시고, 죄와 사망의 법에서 나를 구원하셨다는 확신을 얻게 되었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올더스게잇 사건은 그에게 확신의 교리를 얻는 성령의 증거라고 하겠다.
1.성서적 근거
'성령의 증거'는 성령께서 신자의 의식을 향해서 직접적으로 계시해 주는 - 하나님에게 열납되었다는 일에 대한 - 내적인 증거를 말한다. 성서는 성령의 증거를 향수한 수많은 사람들의 실례를 제공해 주고 있다. 구약성서 중에는 아벨(히11:4), 에녹(히11:5), 욥(욥19:25), 다윗(시32:5,시103:1,3,12) 이사야(6:7) 및 다니엘(9:23)의 기록이 있다. 신약성서에도 이 교리에 대한 인용이 많이 나타난다(행2:46,8:3916:34). 특히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 하시나니(롬8:16)"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롬8:15)"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갈4:6)" "증거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요1서 5:7)." 이 성구들은 성령께서 신자가 하나님을 향한 관계에 대해서 증거해 주시는 사실을 명백히 가르치고 있다.
2.증거의 내용
성령의 증거에는 성령의 직접적인 증거(the direct witness of the Spirit)와 성령의 간접적인 증거(the indirect witness of the Spirit)의 두 종류가 있다. 웨슬레는 "성령의 증거"라는 두 편의 설교에서 성령의 증거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성령의 증거는 영혼 위에 나타나는 하나의 내적 인상(inwa impression on the soul)인데, 즉 하나님의 영이 이것을 통하여
나의 영에게 직접 증거하는 바는 내가 하나님의 자녀이고, 예수그리스도는 나를 사랑하셨으며, 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셨다는
것과 또한 나의 모든 죄는 도말 되었고, 나 아니, 나 같은 사람
과 하나님과 화목되었다고 증거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증거에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하나님의 영이 우리 영에게 강하게 주는 내적 느낌이다. 또한 웨슬레는 말하기를 "성령의 증거는 영혼에 주어지는 내적인 납득인데 그것에 의해서 하나님의 성령은 직접적으로 내 영에 대해서 내가 하나님의 자녀된 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신을 주셨다고 하는 일, 나의 모든 죄는 도말되었으며 나 같은것까지도 하나님과 화해되어졌다고 하는 것을 증거해 주신다"고 주장했다.
성령의 간접 증거에 대해서 웨슬레는 우리 영의 증거(the witness of own Spirit) 그리고 선한 양심의 증거(the witness of a good conscience)라고 하였다. 웨슬레는 그의 설교에서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영혼이 땅 위에서 어떤 것을 사랑하고 좋아하면 그것을 정확하고
분명하게 아는 것과 같이 영혼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즐거워하고 기
뻐할 때 그것을 친히 또는 분명히 아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이
것은 영혼이 존재하느냐 안하느냐에 대하여 의심할 여지가 없는 것
과 같이 영혼이 사랑하고 즐거워하고 기뻐하는가 안하는가도 의심
할 여지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공정히 추리한다면 지
금 하나님을 사랑하고 겸손한 사랑과 거룩한 기쁨과 순종하는 사랑
을 가지고 그 안에서 기뻐하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인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 영의 증거는 가장 온전한 확신과 더불어 우리 마음에 나타나서 우리의 아들 됨을 증명하며 내적 증거를 만든다. 그러므로 성령의 증거는 '내가 하나님의 자녀다'라는 것과 이 증거는 칭의와 성화를 포함한 우리 구원의 전 과정에 존재한다.
한편 한영태 박사는 성령의 증거에 대한 확신의 범위를 3단계로 말한다.
1)신앙의 분명한 확신(clear assurance of faith):의심과 두려움이 섞여있는 신앙, 그리고 모든 그리스도인의 일반적 특권으로 설교되는 것.
2)신앙의 충만한 확신(full assurance of faith):의심과 두려움없이 용서에 대한 완전하고 내재적인 신앙.
3)희망의 충만한 확신(full assurance of hope):영광 중에 하나님과 함께 있을 것에 대한 완전한 확신.
따라서 성령의 증거는 구원의 확신 뿐 아니라 신자의 삶에 소망을 줄 수 있다. 더 나아가 승리로운 삶의 경험을 위한 길을 열어 주게 된다. 성령께서 친히 그의 영과 더불어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자녀이며 또 하나님의 가족중에 입양되어졌다고 증거해 주실 때는 언제든지 그리스도인은 자기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는 사실을 알 수 있는 것이다.
IV.성결된 삶의 표적
A.기독교적인 사랑
성결된 삶은 어떤 것인가? 그것은 사랑이다. 그리고 기독교적인 사랑은 구속과 의인이란 객관적인 사건과, 성화라는 주관적인 변화에 있어서 없어서는 아니될 주요한 요소가 된다. 특히 웨슬레의 성결의 교리를 연구하기 위하여서는 성결의 본질이며 표적이되는 사랑을 분석하지 않으면 아니된다.
웨슬레 신학에 있어서 사랑의 중요성은 그가 그리스도인의 완전 개념을 정의한 것에서 볼 수 있다.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요한일서 4:18). 이것이 사랑의 본질이다.
여기에서 웨슬레는 실수까지도 없어야 한다는 절대적 완전을 요구한다면 이것은 완전을 성경의 표준보다 지나치게 높히려는 것이라고 보았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질문 : 어떻게 하면 완전을 너무 높게나 너무 낮게 설정하는 일을 피할
수 있는가.
대답 : 성경에 따라야 한다. 그리고 완전을 성경의 표준에 맞추어야
한다. 그것은 하나님과 사람에 대한 순수한 사랑 이상의 것도
이하의 것도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우리의 온 심령과 영혼
을 다하여 사랑하는 것이며 우리의 이웃을 우리 자신과 같이 사
랑하는 것이다. 그것은 심령과 생활을 다스리는 사랑이며 우리
모든 성품과 말과 행동에 고루 퍼져있는 사랑이다.
이와같이 웨슬레는 사랑의 충만을 완전의 완성으로 보았다. 웨슬레는 완전의 완성은 곧, 온전한 사랑이며 이것이 바로 성서적 완전의 개념이라고 생각했다. 이처럼 성서에서 완전을 목표로 제시하고 완전해지도록 촉구하므로 웨슬레는 사랑이 가장 큰 계명이며(마22:38), 율법의 완성(롬13:10)임을 알고 웨슬레는 사랑의 완성을 통한 율법의 온전한 준수를 주장했던 것이다.
한편 기독교적 사랑에 대하여 윌리암 로오(William Law)는 '우주적인 사랑'의 중요성을 역설하였다. 즉 모든 피조물이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의 대상인 것과 똑같이 이웃에 대한 우리의 사랑도 우주적인 것이 아니면 안된다. 사랑이 만물에게 미치게 될때 그 사랑은 기독교적인 사랑이 될 수가 있다.
따라서 웨슬레의 성결한 삶이야말로 기독교적인 사랑의 윤리에 근본적인기초를 제공하고 있다.
B.웨슬레의 사랑 관념
1.사랑과 믿음
웨슬레는 믿음의 중요성을 절실히 인식하고 있다. 그는 중생과 성결이 믿음에 의해서 가능하다는 것을 올더스게잇의 체험을 통하여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이 믿음도 사랑에는 비교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는 설교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믿음이란 그것이 비록 기독교인의 믿음이든지,택함을 받은
사람의 믿음이든지 혹은, 하나님의 역사에 대한 믿음이든지
간에 그 믿음 자체는 사랑의 시녀에 불과한 것이다. 믿음은
명예로운 것이지만 이것이 율법의 목적은 아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이 영광을 오직 사랑만이 갖도록 했으며 사랑은 하
나님의 모든 율법의 목적이 된다. 사랑은 이 세상이 시될
때부터 모든 일이 다 이루어지는 날까지 하나님의 모든 섭
리의 유일한 목적이 될 것이다. 하늘과 땅이 사라질 때 사랑
은 홀로 남아 영원히 있을 것이지만 믿음은 하나님의 영원하
신 모습을 마주 대하게 됨으로 사라져 버리게 될 것이다.
웨슬레는 사랑은 영원한 것이지만 믿음은 일시적인 것임을 밝히고 믿음은 사랑의 완성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올더스게잇은 웨슬레에게 믿음의 위대성을 일깨워 준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그 믿음을 통하여 웨슬레는 그가 바라던 그리스도인의 완전의 길을 갈 수가 있었다. 그리하여 이전보다 더욱 순수하고 능력있는 사랑을 하게 되었으며, 진실로 그리스도인의 완전을 설교하기에 합당한 사도가 되었다. 즉 웨슬레는 믿음을 통하여 그의 사랑을 온전히 이룬 것이다.
2.성결의 표적인 사랑
웨슬레는 기독교인의 가장 분명한 증거는 사랑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완전을 온전히 이룬 사람은 완전한 사랑의 증거가 당연히 나타나야 한다. 사랑은 성령의 열매 중에서 가장 귀중한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사랑의 극치는 십가가 위에서 표현되었으며, 이 십자가의 사랑을 믿고 의지할 때에 사람은 그 믿음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되고 하나님에 대한 감사와 사랑을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사랑은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며 모
든사람을 위하여 사용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 사랑은 그리
스도의 수치, 조롱, 멸시 그리고 모든 사람들로부터 미움받는 것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지혜가 허용 하는 범위내에서 사람과 마
귀가 범 하는 어떠한 악한 일도 기쁨으로 인내하게 해 주는 것이
다. 그리하여 사랑으로 역사하는 이러한 믿음을 가진 사람은 누
구나 거의기독교인(Almost Christian)이 아니고 온전한 기독교인
(Altogether Christian)것이다.
하나님에게서 난 자의 가장 위대한 표적은 사랑이다. 따라서
그들에게 주어진 성령에 의해서 하나님의 사랑이 그들의 심령 속
에흘러 들어 온 것이다(롬5:5).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아들의 영
을 그들에게 보내심으로 그들은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여' 라고
부를 수 있게된 아들이기 때문인 것이다(갈4:6).
C.사랑과 그 대상
웨슬레의 사랑을 일반적으로 분석할 때에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사랑에만 언제나 주의를 집중시켜 왔다. 그러나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은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사랑에 선행한다. 하나님이 먼저 인간을 사랑하였기 때문에 인간은 하나님을 사랑한다. 인간의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에서 오는 당연한 결과이다.
인간이 그의 사랑을 하나님에게만 집중하여야 함은 하나님이 최고선이라는 이유에서만이 아니요 이웃을 사랑하여야 된다는 것이 하나님에 대한 사랑에 함축되어 있거나 혹은 당연히 그 사랑 밑에 종속되어 있다는 이유에서만이 아니라 그것은 절대적으로 지배하는 하나님의 욕구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랑을 언급하면서 웨슬레는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이웃 사랑 그리고 자기사랑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진다. 즉 하나님이 먼저 인간을 사랑하였기 때문에 인간은 하나님을 사랑한다. 더 나아가서 인간은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의 이웃을 사랑하게 된다. 따라서 이웃사랑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의 필연적인 열매로 간주된다.
인간이 왜 이웃을 사랑해야 되느냐 하는 이유로서 그리스도와 하나님을 모방하게 될 때에도 하나님은 사랑의 주요대상이 된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다 같이 사랑하시므로 인간도 역시 그것을 본받지 않으면 아니된다.
웨슬레는 이웃사랑에 관하여 말할 때 가끔 자기사랑에 관하여 언급하곤하였다. 그러나 이웃을 자기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마태복음 22장 39절에 나타난 계명을 해석하는데 있어서 그는 이웃사랑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자기 사랑을 이웃사랑의 한계를 결정하는데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동시에 이웃사랑을 자기 사랑의 필요조건으로 생각했다. 그 계명은 자기사랑과 이웃 사랑간에 균형이 잡혀야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이 자기 사랑은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과 일치되는 것이 아니면 안된다. 따라서 성결의 본질을 이루는 것은 바로 이 사랑이다.
V. 결 론
A. 요 약
종교개혁자들은 "비참한 죄인으로서의 기독교"(miserable sinner christianity)에 관심을 가지고 현생에서 기독교인의 계속적인 불완전(the continued imperfection of Christian)을 강조하여 성화에 대한 구체적인 관심이 적었다. 그러나 웨슬레는 계시된 하나님, 지금 여기에 성령으로 우리와 함께 계셔 우리안에 거하시면서 성령의 능력으로 정결케 하시며 온전히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 완전성화를 성취하는 일에 관심을 가졌다.
그러한 의미에서 성결은 그리스도인의 삶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 그 이유는 성결은 사람이 출생 후 성장하는 것과 같이 거듭난 후에도 성장하는 것이라고 웨슬레는 말하고 있다.
한영태 박사는 웨슬레의 성결의 과정과 완성을 5단계로 보고 있다. 첫째 관계적 성화 둘째 초기의 성화 세째 점진적 성화 네째 온전한 성화 다섯째 그리스도인의 완전으로 보았다. 웨슬레는 성화의 점진적인 성장에 하나님의 직접적인 역사로 성결이 완성된다고 하였다.
한편 성결의 과정은 반드시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일이라고 하였다. 웨슬레의 성결의 출발점인 중생은 칭의와 동시에 시작되며 이는 인간 안에서 인간을 통하여 일하시는 성령의 역사에 의한 것이라 했다. 그러므로 성결의 전 과정은 성령의 역사와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웨슬레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만일 성령을 받지 못했다면 그는 아직 그리스도인이 아니며, 그리스도인이란 성령의 능력으로 기름 부음을 받은 자"라고 하였다. 웨슬레는 성결에 있어서 성령의 사역을 강조했다. 특히 성령의 증거를 통하여 성결의 확신을 강조하였다.
한편 그는 성결된 삶의 표증으로 기독교적인 사랑을 말하고 있다. 그는 여기에서 자연인은 전적으로 타락한 것으로 보아서 자연인은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할 수가 없다고 한다. 그래서 먼저 신앙을 가지고 하나님의 용서하시는 사랑에 대한 확신을 하는 것이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사랑의 직접적 원인이 된다. 그리고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은 원인이며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인간의 사랑은 그것의 필연적 결과이다. 그리스도인에게 있는 하나님의 사랑은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인간의 사랑의 근원이다.
B.비평과 제언
18 세기 웨슬레의 부흥운동으로 인한 성결운동은 19세기 초 중반의 Finney의 부흥운동과 19세기 후반의 성결운동, 더 나아가서 오늘날에 이르기 까지 성령의 직접적, 즉각적 역사로서의 성령세례의 체험으로 전승됨으 로 인하여 그 열매를 맺게 되었다. 그로인하여 웨슬레는 성결에 바탕을 둔 그의 구원신학은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였다.
그러나 열광주의,신비주의 배척운동에 입각한 철저한 합리주의 사조의 팽배로 인하여 광신주의자라들이라는 오해를 받기도 하였으나, 성서와 이성과 경험에 입각한 웨슬레의 성결사상은 초대교회 성령의 사역으로 인한 성결의 전통을 원형 그대로 전승할 수 있었고, 성령의 직접계시를 주장함으로 타락한 사회에 혁신적인 생명 복음을 제시하였다. 그리하여 웨슬레의 성결운동은 미국 성결운동을 주도할 수 있었고, 오늘날의 오순절운동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한편 한국성결교회도 초기 웨슬레 신학을 발견하고 돌아가려는 성결의 복음에서 출발하였다. 따라서 한국성결교회는 성결한 신앙과 생활, 즉 마음과 생활의 성결을 체험하고, 전하고, 생활할 것을 다짐하는 교단이다. 일찌기 교단 헌법에 [본 단체에서 주장하는 교리는 새로 만든 교리가 아니요,옛날 요한 웨슬레가 주장하던 교리와 조금도 다름이 없느니라]고 명시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웨슬레의 성결복음에 입각한 한국성결교회의 비젼(Vison)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자 한다. 생명의 복음인 성결복음을 만방에 전하여 세계를 구원하여야 할 막중한 사명이 있으며, 성결의 복음으로 한국교회와 사회에 뜨거운 성결운동의 열기를 일으켜야 할 책임이 있다. 그리고 개인주의적, 이기적인 위험성에서 벗어나 개인과 교회와 사회를 성결시키고 세계를 향하여 성결의 복음을 선포하는 세계지향적이고 선교지향적인 성결 운동으로 반드시 연결되어야 하겠다.
http://cafe.naver.com/modernth/386
III. 성령과 성결
하나님의 성결의 도구로서 성령은 웨슬레 신학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왜냐하면 성령의 증거가 없이는 성결의 구별이 불가능한 경우가 있기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결은 성령의 사역에 의해서 이루어지며 성결의 증거도 성령의 사역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웨슬레의 성결은 그리스도인의 삶에 있어서 중요하다. 그리고 이 성결은 구원과 연결되는데, 구원은 죄인이 의롭다 함을 받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로 변화를 받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믿음을 가진 신자들의 종합적으로 성숙된 과정을 성화' 로볼때, 그 성화를 이루시는 분은 성령이다. 즉 구원과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속죄를 통하여 죄인에게 구원의 은혜를 베푸시지만, 인간 심령 속에서의 성결의 성취는 성령을 통하여 이루신다는 것이다.
웨슬레도 구원의 역사는 성령의 역사이며, 따라서 마음 속에 일어나는 어떠한 변화도 성령의 역사라는 점을 믿었다. 그에 의하면 성령을 받기 전까지는 아무도 크리스챤이 아니다. 웨슬레는 성결이나 기독자 완전이 '우리 안에서 행하시는 성령의 역사'라는 것을 확신하였다.
따라서 그 어떤 사람도 성령없이 성결될 수 없다. 성결은 성령에 기인한다. 그리고 성결은 성령의 사역에 기인한다. 즉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롬15:16)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살후2:13)이라는 말씀이 성령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것을 보여준다.
이런 의미에서 필자는 본 장의 제목을 "성령과 성결"이라 정하였다. 따라서 본 장에서 먼저 웨슬레가 바라본 성령의 역사에 대해서 살펴본 후 성결과정에서 성령의 사역을 연구한 후 성결의 확신을 갖게하는 성령의 증거를 살펴보고자 한다.
A.성령의 역사
웨슬레는 사람 속에서 성령께서 은혜로 놀라운 변화를 일으키는 방법은 시간적 관점에서 볼 때 점진적인 방법과 즉각적인 방법이 있다고 보았다.
즉 하나님의 선행은총을 통하여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라는 사실을 인식하지만 그 깨달음의 순간이 있기까지 하나님의 계속적이고 점진적인 역사가 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구원받기까지 성령의 점진적인 역사가 계속된다고 볼 수 있다.
1.성령의 즉각적 역사
웨슬레는 성령의 순간적인 역사 이후 온전한 성화에 이르는 것은 성령의 계속적이고 점진적인 은혜의 역사에 의해서 가능하다고 강조한다. 웨슬레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구원은 칭의와 성화의 두 가지 요소로 구성 된다고 보았다.
그리하여 칭의에 의해서 우리는 죄책으로부터 구원받고 하나님
의 은총을 회복하고, 성화에 의해서 우리는 죄의 세력과 그 뿌
리로부터 구원을 받으며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게 된다. 모든
경험과 성경은 이 구원의 방법이 즉각적임과 동시에 점진적임
을 보여준다. 이 구원은 우리가 칭의되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그리하여 거룩해지고 겸손하고 온유하고 인내하며 하나님과 사
람을 사랑하게 된다. 이 구원의 은혜는 그 순간부터 점점 증가
하기 시작한다......따라서 하나님과 그리고 사람에 대한 순수
한 사랑으로 채워지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계속하여 우리
의 머리가 되시는 그리스도를 목표로 모든 면에서 성장해 가야
할 것이며,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러야 할 것이다.
이와같이 점진적인 성화의 발전을 통하여 기독교인의 생활은 결국 성화의 성숙한 단계 즉,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온전에 도달할 것이다.
린드스트롬(Lindstrom)은 구원의 질서에 관한 웨슬레의 이론 즉 신앙의 성장과정에서 점진적인 것과 즉각적인 관계를 다음과 같이 말했다.
신생과 온전한 성화는 그의 구원론에 있어서 전반적으로 유기적
관련이 없이 두 개의 독립된 현상으로 관찰되어진다. 웨슬레는
두 가지가 모두 사람에게 순간적으로 주어진다고 주장하므로 웨슬
레의 구원론에서 순간적인 요소만의 주목을 받고 있다. 그리하여
웨슬레가 또한, 구원은 하나의 점진적인 발전 과정으로 파악한 사
실은 경시되고 있다. 실제적으로 점진적 발전의 사상은 그의 구원
관에서 가장 특출한 요소이며 실제 그의 사상의 일반적인 특징인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이 두 가지 요소 즉, 즉각적인 것과
점진적인 것은 서로 결합되어 있다는 것이며, 웨슬레에게 특유한
구원의 질서는 이러한 두 요소의 결합에서 나오는 것이라는 점이
다. 구원은 사람이 여러 단계의 신앙 과정을 통과하는 과정으로
이해되며 각 단계는 여러 가지의 신앙 수준을 나타내는 것이다.
웨슬레는 사실상 즉각적인 면과 점진적인 면을 똑같은 비중으로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크고 위대한 변화가 순간적으로 일어날 수 있음을 믿었다. 웨슬레에게 있어서 구원은 언제나 연속적 과정으로 이해하였다. 다시 말하면 현재 성결한 생활을 하고 있는가, 그리고 점점 더 거룩해지고 있는가 하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웨슬레는 순간적으로 큰 은혜를 부어 주시는 성령의 역사를 강조하고 그러한 은혜를 사모하도록 권면하였고 동시에 은혜의 지속과 보다 더 큰 은혜의 세계를 향하여 끊임없는 전진과 노력을 강조하였다. 따라서 웨슬레는 점진적 역사와 즉각적인 역사를 모두 수용하면서 계속 점진적으로 성장해 나가는 것을 강조했다.
2.성령의 지속적 역사
웨슬레는 사람의 영적 상태를 크게 셋으로 나눈다. 첫째는 자연상태(the natural state), 다음에는 율법적 상태(the legal state), 끝으로 복음적 상태(the evangelical state) 혹은 사랑의 상태(the state of love)로 보았다. 그러나 사람은 세 가지 영적 상태 중 어느 한 곳에만 전적으로 속해있는 것은 아니다. 한 사람 속에 여러 가지의 영적 상태가 섞여서 존재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불신자들은 대개 자연상태와 율법적 상태가 섞여진 상태에 있고, 제자들은 대개 일반적으로 율법적 상태와 복음적 상태가 섞여진 상태를 가지고 살아간다. 한편 웨슬레는 그의 사상의 초기에는 진실한 기독교인은 오직 복음적 상태에만 머물러야 하며 율법적 상태와 섞여서는 안된다고 믿었다.
웨슬레는 1738년에 행한 {믿음에 의한 구원}(Salvation by Faith)이라는 설교에서, 예수님의 제자들이 오순절에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의 세례를 받기 전에 가졌던 믿음에 대하여, 그것은 우리를 구원시키는 진정한 믿음이 아니라고 하였다. 그들이 비록 기적을 행하고 병자를 일으키고 천국의 복음을 증거했지만, 그런 믿음 만으로는 구원을 받을 수가 없다고 하였다.
그러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웨슬레는 신앙의 세계에 대한 이해를 더 깊이 하게 되었고 온전에 대한 그의 사상도 조금씩 변화를 갖게 되었다. 즉 후기에는 사랑의 충만을 통한 온전 혹은, 자신의 무력을 깊이 인식하고 철저히 의지하는 가운데서 온전을 강조했다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율법적 상태에 있는 사람의 연약한 믿음도 하나님께서는 물리치지 아니하고 받으실 것이라는 견해를 취하게 된다. 웨슬레는 1788년에 행한 {믿음의 발견에 대하여}(On the Discoveries of Faith)한 설교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성령께서는 우리 속에 천국을 이루어 주시기 위하여 우리를
준비시켜 주신다. 그 방법은 우리 심령의 베일을 벗기시고 우리
로 하여금 우리가 하나님께 알려진 바 되었다는 것을 알게 하시
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의 죄 즉, 우리의 악한 성품과 악
한 기질과 악한 말과 행동 등을 분명히 알게 해 주시는 것이다.
이런한 모든 죄들을 우리의 심령 속에서 나오는 것들로서 우리
의 심령을 부패시키는 것들이다. 성령께서는 다음에 우리 죄의
보응이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심으로 우리는 입을 다물고 하나님
께 사죄의 탄원을 하게 해 주신다.
웨슬레의 원숙한 사상의 특징으로서 지속적 성장은 끊임없이 성장하고 발전해야만 하며 신앙의 현상유지란 일종의 퇴보라고 웨슬레는 강조했다.
따라서 영원한 성장의 필요성에 대한 언급은 웨슬레의 구원관의 점진적 성격과 함께 그의 온전한 성화론을 이해하는데 반드시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이러한 점진적인 성장이 성령에 의해서 이루어진다고 보았다. 웨슬레는 이러한 문제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질문:사랑으로 온전해진 사람들도 은혜 안에서 성장할 수 있는가.
대답:의심없이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이 육체 속에 머물 때 뿐만 아니라 아마 영원토록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B. 성결을 가져오는 성령의 사역
거듭난 후에 인간이 할 수 있는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순종과 성결, 또한 사랑의 행위는 성령께서 동시에 역사하시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이것은 의인의 근거가 그리스도에게 있는 것과 같이 성화의 동인(agent)은 성령임을 말 해 준다. 믿음에 의한 의인은 구원의 뿌리(root of salvation)이고 성령에 의한 성화는 구원의 본질(substance of salvation)이다. 성결의 은혜는 성령의 역사를 통해서 받게 되는 것을 성경은 증거하고 있다.
성경에 기록을 보면 "나는 너희로 회개케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요"(마3:11)라고 말했다. 이것은 성결의 은혜를 받는데 있어서 성령의 사역과 또한 성령의 강력한 협력이 반드시 필요함을 강조한 것이다.
이 명직 목사는 성결의 은혜를 받는데 있어서 성령의 사역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성신께서 불로 임하사 사람의 마음에 유전죄와 거기 속한 악한
정욕과 죄의 정욕을 정결케 하시나니 제자들이 오순절날 강림하신
성신을 받음으로 그 정과 욕까지 정결하여졌느니라.
이것은 성령의 사역으로 인간의 유전 죄까지 정결하게 하심으로 성결의 은혜를 받게 됨을 말한다. 그러므로 성결의 은혜는 반드시 성령의 강력한 사역을 통해서 이루어 진다. 따라서 성결은 성령을 통하여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우리의 마음속에서 영적인 생활을 할 수 있게끔 성령이 협력해 주는 것이다. 한편 중생된 인간의 영혼은 성령의 능력을 통해서 새로나게 되며 성결된 인간의 영혼은 육적인 모든 것을 양보하고 온전히 그리스도의 소유가 되어서 그리스도가 내안에 계시므로 산다고 말하게 되는 것이다.
성결의 은혜는 성령의 사역으로 이루어진다. "오순절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 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불의 혀 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위에 임하여 있더니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히2:1-4)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것은 성령의 역사로 인하여 성결의 은혜를 가져오는 성서적인 근거라고 하겠다.
웨슬레 자신도 성령께서 한 순간에 죄인을 의인으로 만들어 주시거나, 혹은 온전히 성화되게 하실 수 있다는 점을 올더스게잇 이전에는 이해하지 못했으나 올더스게잇의 체험을 통하여 하나님의 섭리에 대해서 그리고 성령의 사역 방법에 대해서 분명히 깨닫게 되었던 것이다.
C. 성결과정에서 성령의 사역
중생한 사람은 성결을 향하여 성장하여야 하며, 성결한 사람은 더 완전한 성숙단계에 이르도록 노력하여야 된다. 성결이 완성되었다고 해서 태만하거나 교만하다면 후퇴하는 생활이라고 할 수 있다.
요한 웨슬레는 완전 성화에 이르기 까지는 점진적인 성장의 과정이 있음을 그의 설교 "그리스도의 완전"(Christian Perfection)에서 '어린이', '청년' 그리고 '어른'의 단계로 나누어 설명하였다. 한일서에는 "자녀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 죄가 그의 이름으로 사함을 얻음이요,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앎이요,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니라"(요일2:12-15)라고 하였다. 즉 자녀들(baby)은 중생한 자 곧 초기의 성화의 단계이며, 청년들(young man)은 점진적 성화의 과정에 있는 신자이며, 어른들(father)은 온전한 성화에 이른 자, 즉 성결한 성도들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안에서 성결한 성도는 계속하여 구원을 향하여 계속 성장하는 것이다.
1. 관계적 성화 (Positional Sanctification)
누구나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기 전에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었다가 믿음으로 인하여 전에 원수되었던 사이가 부자관계로 회복된다. 이때에 죄인이 하나님의 백성 즉 거룩한 백성이 된다. 관계적 성결이란 이와같은 관계의 변화에서 본 것이다. 이는 주관적 변화라기 보다는 객관적인 변화이며, 내적 변화가 아닌 외적 관계의 변화이다. 그러므로 관계적 성화는 의식적 성결과 같다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을 위하여 따로 구분된 물건이나 사람은 모두 거룩하다. 실제로 이들이 거룩해서가 아니라 거룩하신 하나님과 관계를 맺었기 때문이다.
칭의는 하나님이 성자를 통해 우리를 위하여 하시는 것이요, 성화는 하나님이 성령에 의해서 우리 안에서 행하시는 것이다. 그러면 성령은 칭의에서 사역하지 않는다는 뜻인가? 그렇지 않다. 칭의의 조건인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이며 성령에 의해 주어지는 선물이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보면 "사도들이 주께 여짜오되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 하니"(눅17:5), "다른 이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고전12:9)이라 하였다. 그러므로 웨슬레는 '우리가 칭의되는 것과 동시에, 바로 그 순간에 성화가 시작되는데, 우리가 다시 나며, 위로부터 나며, 성령으로 나는 것이다. 그 순간에 관계적 변화 뿐만 아니라 진정한 변화가 생기는 것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서 내적으로 새로와지는 것이다.
여기에서 성령에 의한 관계적 성결 만으로는 온전한 성화라고 볼 수 없기에 더욱 나아가야 한다. 믿고 용서받은 신자는 이제 실제적인 영적 도덕적 변화를 받아야 한다. 이 실질적 변화를 웨슬레는 초기의 성화, 온전한 성화 그리고 그 전후에 있는 점진적 성화의 단계로 구분하여 설명하였다.
2. 초기의 성화(Initial Sanctification)
사람이 거듭날 때 성화가 시작된다는 것이 웨슬레의 견해인데 이는 흔히 초기적 성화, 거듭나서 성화의 단계에 들어섰으나 완전성화(entire sanctification)에 이르기 전의 신자의 상태를 말한다.
웨슬레는 초기의 성화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전적인 성화가 그의 영혼에서 발생하기까지, 그의 성결은다른 것 과 혼합되어 있다(all his holiness was mixed). 즉
그는 겸손하지만 온전히 겸손하지 못하며, 그의 겸손은 자만
과 섞여 있다. 그는 온유하긴 하지만 그의 온유는 분노나 어
떤 사나운 성정(turbulent passion)때문에 자주자주 깨지고
만다.
그러므로 비록 중생은 했지만 여전히 세상의 힘에 눌려있는 사람이 온전한 성결을 체험하기 전의 상태는 퍽 불안정한 것이다.
웨슬레는 중생은 성화의 시작이요 문이라고 했다. 중생은 성화의 첫 단계이다. 이것을 초기의 성화라고 했다. 우리가 진정한 믿음을 가질 때 의로워지고, 거듭나게 되며, 초기의 성화를 경험하게 된다. 즉 죄에서 용서받으며, 죄의 세력이 깨어지며, 성결이 시작되는 것이다.
한영태 박사는 학위 논문에서 중생에 관한 설명을 하고 있다:
중생은 하나님께서 인간 심령 속에서 일으키는 큰 변화이다.
이것이 죄로 죽은 영혼이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 지음을 받아 의
와 참된 거룩함으로 하나님의 형상으로 새로나는 것이다.....우
리의 마음이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변화됨을 이름이다.
따라서 우리가 중생할 때 즉 내적, 외적 성결은 시작한다고 하였다. 또한 중생과 성화는 모두 성령의 역사에 의해 이루어진다고 밝히고 있다.
3. 점진적 성화(Gradual or Progresive Sanctification)
많은 사람들은 즉각적 성화만을 강조하면서 점진적인 성화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웨슬레는 우리가 의롭다함을 얻는 순간부터 거기에는 은혜 안에서 성장하는 점 적인 성화가 있다고 보았다. 따라서 믿음을 지속하고 있는한 성장을 거듭하여 결국 하나님의 형상을 온전히 회복 하 순간적 체험 인 완전한 성화에 나아가는 것이라 했다.
한영태 박사는 점진적 성화에 대하여 성서적으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 신자들을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하여지고,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
(고전1:2)이라고 불렀으나, 3장에서는 저들이 아직도 젖먹이요
육신에 속한 그리스도인이라고 꾸중한다(3:1-3). 육신에 속한
그리스도인 중에서 성장하여 온전한 성결을 이룬 자들이 있음
을 "너희 중에 이와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
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
을 얻었느니라"(고존6:11)라고 쓰고 있다. 어린 아이가 태어
나면 성장해야 하는 것처럼 신자도 은혜 안에서 성장해야 한
다. 성장하지 않으면 무언가 병들었거나 문제가 있고 결국은
죽게 되는 것과 같이 신앙도 마찬가지다.
점진적 성화의 과정은 신자의 성화의 과정이다. 이 기간에 신자는 영적인 싸움을 무수히 겪게 되며 승리와 패배를 교대로 겪게 될 때가 많다. 유혹에 이기고 승리하기 위해서는 의지가 중요하며, "무릇 지킬만한 것 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라"(잠3:23)는 말씀은 특히 중요하다.
4. 온전한 성화(Entire Sanctification)
온전한 성화는 신자가 다시 자신의 무능과 자신안에 남아 있는 죄를 자각하고 믿음으로 받는 것을 말한다. 웨슬레는 이 체험을 순간적으로 받는 것이라 하면서 이 체험을 통하여 신자는 마음속에 남아 있는 죄성으로부터 씻김을 받는 다고 하였다. 중생의 순간부터 성화의 역사는 시작되어 우리가 죄에 대하여 죽는 만큼 하나님께 대하여 살게 되며, 이런 과정에서 순간적으로 모든 죄로부터의 정결함을 받으며(소극적 의미의 성결), 성령의 역사로 순수한 사랑의 충만을 (적극적 의미의 성결)얻게 된다.
웨슬레는 온전한 성화를 두번째 경험이라 했다. 두번째 은총의 체험이란 뜻에서 "제2의 축복", "제2의 은혜", "두번째 변화", "온전한 구원", "기독자의 완전"이라고 불렀다. 온전한 성화는 바로 "온전한 사랑" 또는 "순수한 사랑"이며 이 사랑 때문에 죄를 짓지 않게 되며, 하나님과 이0웃을 사랑하며 사랑과 봉사에 더욱 큰 힘을 얻어 승리하는 생활의 계기가 된다고 했다.
성령으로 말미암는 온전한 성화는 하나님의 사랑의 충만을 말한다. 즉 "소망이 부끄럽지 아니 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롬5:5)라고 하였다. 성령으로 마음이 정결해 진다. 성령께서 정결케 하시고, 하나님이 사랑으로 충만케 하신다.
5.그리스도인의 완전
웨슬레는 완전의 교리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다. 이것은 기독교인의 목표이기 때문에 그의 설교의 관심이 신자로 하여금 성결의 은혜를 받도록 하려는 데 있다. 그는 [그리스도인의 완전]이란 그의 저서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문) 그리스도인의 완전은 무엇인가?
답) 하나님을 사랑하되 우리의 마음과 뜻과 목숨과 힘을 다해서 하는 그것이다. 이것은 사랑에 위배되는 그릇된 기질이 조금도 그 영혼에 남아 있지 않고 그의 온갖 생각과 말과 행동이 순수한 사랑으로 지배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현재 성결해도 연약성을 지니며, 무지나 실수로부터 해방될 수는 없다. 비록 육체가 죄는 아니더라도 육체 안에 있는 동안은 죄의 가능성은 언제나 상존한다. 이 타락하고 부패한 연약한 인간성이 영화의 단계에서야 진정한 의미에서 완전함을 얻을 수 있다. 현세에서의 완전은 이 최종적 완전을 얻는 조건이 된다. 그러나 현세에서의 완전은 끝이 아니다. 완전한 자라도 계속 은혜 안에서 성장하여야 하며 하나님 앞에 서는 순간 최종적인 칭의를 얻어야 한다. 이를 최종적인 완전(final stage of perfection) 또는 영화(glorification)라고 한다. 그리고 웨슬레의 완전은 절대적, 천사적, 아담적인(타락 이전의 아담의 상태) 완전이 아니다. 이런 관점에서 웨슬레는 그리스도인의 완전은 무지나, 과오나, 결점이나, 유혹받을 가능성 등에서의 완전을 말하지 않는다. 즉 완전은 '제한된 완전'이라 할 수 있으며, 하나님이나 천사처럼 되는 것이 아니고, 인간의 연약성을 인정하는 '인간적 완전'이라고 할 것이다.
조종남 박사는 웨슬레의 인간적 완전에 대하여 그의 저서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러한 이해와 강조의 차이는 우리의 눈과 안경에 적절히
비유될 것 같다. 안경을 쓴 사람들이 잘 알고 있듯이 안경
을 아무리 잘 닦아서 써도 깨끗한 상태의 유지는 그 순간일
뿐 곧 먼지가 쌓이게 된다. 그래서 혹자는 이렇게 말한다.
안경이 정결을 유지할 수 없듯이 세상에서는 무지와 실수
로 신자(信者)는 정죄 아래 있음을 면할 길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눈을 보자. 안경에 먼지가 잠시도 쉬지 않고 쌓이듯
이 눈에도 그러할 것은 명백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은
항상 정결한 상태를 유지한다. 그것은 눈물이 언제나 흘러
먼지를 씻어내기 때문이다. 성결한 자가 그 자신의 연약성
으로 인하여 무의식적인 죄를 범하지만 동시에 그리스도의
보혈의 효험으로 그 성결을 지속할 수 있다는 웨슬레의 주 장은 바로 이렇게 설명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웨슬레는 보혈을 항상 의지하는 신자는 계속하여 그 죄를 씻음받고 있으며(요일1:7), 신앙으로 그리스도와의 완전한 인격적 관계 안에서 그의 사랑으로 충만한 그리스도인의 완전에 이를 수 있다고 확신하였다.
D. 성결의 확신:성령의 증거
웨슬레 신학의 공헌중에 중요한 점은 무엇보다도 확신의 교리라 할 수 있다. 이 확신의 교리는 성서에 근거한 것으로 초대교회에서 특히 교회가 핍박속에 있을 때 활력소의 역활을 하였다. 웨슬레는 이 성령의 증거의 교리야말로 메소디즘의 공헌 가운데 중요한 것이며, 하나님이 위탁한 교리라고 확신했다.
따라서 성령의 증거는 하나님의 하나님의 자녀의 독특한 특권을 표시한다. 성경의 기록에 보면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롬8:16)라고 하였다. 즉 성령의 증거는 죄로부터 해방되어 자유를 얻어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을 증거하고 있다. 그리고 이 교리는 성서에서 출발한다.
웨슬레는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 사람은 진리의 중요성을 의심할 수 없으며 계시된 이 진리는 단 한 번 만이 아니요, 또 불명료하거나 우연하게 나타난 것이 아니라, 분명하고 엄숙하게 확실한 목적을 가지고 계시되어 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의 특권을 가지고 계시되어 있다" 라고 하였다. 특히 확신의 교리는 웨슬레 자신의 신앙 체험에 의해서 분명해졌다. 웨슬레는 1738년 5월 24일 저녁 올더스게이트에서의 신앙 체험을 기술하면서 자기의 마음이 뜨거워진 경험을 통하여 나 같은 죄인의 죄 까지도 없이 하시고, 죄와 사망의 법에서 나를 구원하셨다는 확신을 얻게 되었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올더스게잇 사건은 그에게 확신의 교리를 얻는 성령의 증거라고 하겠다.
1.성서적 근거
'성령의 증거'는 성령께서 신자의 의식을 향해서 직접적으로 계시해 주는 - 하나님에게 열납되었다는 일에 대한 - 내적인 증거를 말한다. 성서는 성령의 증거를 향수한 수많은 사람들의 실례를 제공해 주고 있다. 구약성서 중에는 아벨(히11:4), 에녹(히11:5), 욥(욥19:25), 다윗(시32:5,시103:1,3,12) 이사야(6:7) 및 다니엘(9:23)의 기록이 있다. 신약성서에도 이 교리에 대한 인용이 많이 나타난다(행2:46,8:3916:34). 특히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 하시나니(롬8:16)"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롬8:15)"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갈4:6)" "증거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요1서 5:7)." 이 성구들은 성령께서 신자가 하나님을 향한 관계에 대해서 증거해 주시는 사실을 명백히 가르치고 있다.
2.증거의 내용
성령의 증거에는 성령의 직접적인 증거(the direct witness of the Spirit)와 성령의 간접적인 증거(the indirect witness of the Spirit)의 두 종류가 있다. 웨슬레는 "성령의 증거"라는 두 편의 설교에서 성령의 증거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성령의 증거는 영혼 위에 나타나는 하나의 내적 인상(inwa impression on the soul)인데, 즉 하나님의 영이 이것을 통하여
나의 영에게 직접 증거하는 바는 내가 하나님의 자녀이고, 예수그리스도는 나를 사랑하셨으며, 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셨다는
것과 또한 나의 모든 죄는 도말 되었고, 나 아니, 나 같은 사람
과 하나님과 화목되었다고 증거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증거에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하나님의 영이 우리 영에게 강하게 주는 내적 느낌이다. 또한 웨슬레는 말하기를 "성령의 증거는 영혼에 주어지는 내적인 납득인데 그것에 의해서 하나님의 성령은 직접적으로 내 영에 대해서 내가 하나님의 자녀된 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신을 주셨다고 하는 일, 나의 모든 죄는 도말되었으며 나 같은것까지도 하나님과 화해되어졌다고 하는 것을 증거해 주신다"고 주장했다.
성령의 간접 증거에 대해서 웨슬레는 우리 영의 증거(the witness of own Spirit) 그리고 선한 양심의 증거(the witness of a good conscience)라고 하였다. 웨슬레는 그의 설교에서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영혼이 땅 위에서 어떤 것을 사랑하고 좋아하면 그것을 정확하고
분명하게 아는 것과 같이 영혼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즐거워하고 기
뻐할 때 그것을 친히 또는 분명히 아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이
것은 영혼이 존재하느냐 안하느냐에 대하여 의심할 여지가 없는 것
과 같이 영혼이 사랑하고 즐거워하고 기뻐하는가 안하는가도 의심
할 여지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공정히 추리한다면 지
금 하나님을 사랑하고 겸손한 사랑과 거룩한 기쁨과 순종하는 사랑
을 가지고 그 안에서 기뻐하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인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 영의 증거는 가장 온전한 확신과 더불어 우리 마음에 나타나서 우리의 아들 됨을 증명하며 내적 증거를 만든다. 그러므로 성령의 증거는 '내가 하나님의 자녀다'라는 것과 이 증거는 칭의와 성화를 포함한 우리 구원의 전 과정에 존재한다.
한편 한영태 박사는 성령의 증거에 대한 확신의 범위를 3단계로 말한다.
1)신앙의 분명한 확신(clear assurance of faith):의심과 두려움이 섞여있는 신앙, 그리고 모든 그리스도인의 일반적 특권으로 설교되는 것.
2)신앙의 충만한 확신(full assurance of faith):의심과 두려움없이 용서에 대한 완전하고 내재적인 신앙.
3)희망의 충만한 확신(full assurance of hope):영광 중에 하나님과 함께 있을 것에 대한 완전한 확신.
따라서 성령의 증거는 구원의 확신 뿐 아니라 신자의 삶에 소망을 줄 수 있다. 더 나아가 승리로운 삶의 경험을 위한 길을 열어 주게 된다. 성령께서 친히 그의 영과 더불어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자녀이며 또 하나님의 가족중에 입양되어졌다고 증거해 주실 때는 언제든지 그리스도인은 자기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는 사실을 알 수 있는 것이다.
IV.성결된 삶의 표적
A.기독교적인 사랑
성결된 삶은 어떤 것인가? 그것은 사랑이다. 그리고 기독교적인 사랑은 구속과 의인이란 객관적인 사건과, 성화라는 주관적인 변화에 있어서 없어서는 아니될 주요한 요소가 된다. 특히 웨슬레의 성결의 교리를 연구하기 위하여서는 성결의 본질이며 표적이되는 사랑을 분석하지 않으면 아니된다.
웨슬레 신학에 있어서 사랑의 중요성은 그가 그리스도인의 완전 개념을 정의한 것에서 볼 수 있다.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요한일서 4:18). 이것이 사랑의 본질이다.
여기에서 웨슬레는 실수까지도 없어야 한다는 절대적 완전을 요구한다면 이것은 완전을 성경의 표준보다 지나치게 높히려는 것이라고 보았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질문 : 어떻게 하면 완전을 너무 높게나 너무 낮게 설정하는 일을 피할
수 있는가.
대답 : 성경에 따라야 한다. 그리고 완전을 성경의 표준에 맞추어야
한다. 그것은 하나님과 사람에 대한 순수한 사랑 이상의 것도
이하의 것도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우리의 온 심령과 영혼
을 다하여 사랑하는 것이며 우리의 이웃을 우리 자신과 같이 사
랑하는 것이다. 그것은 심령과 생활을 다스리는 사랑이며 우리
모든 성품과 말과 행동에 고루 퍼져있는 사랑이다.
이와같이 웨슬레는 사랑의 충만을 완전의 완성으로 보았다. 웨슬레는 완전의 완성은 곧, 온전한 사랑이며 이것이 바로 성서적 완전의 개념이라고 생각했다. 이처럼 성서에서 완전을 목표로 제시하고 완전해지도록 촉구하므로 웨슬레는 사랑이 가장 큰 계명이며(마22:38), 율법의 완성(롬13:10)임을 알고 웨슬레는 사랑의 완성을 통한 율법의 온전한 준수를 주장했던 것이다.
한편 기독교적 사랑에 대하여 윌리암 로오(William Law)는 '우주적인 사랑'의 중요성을 역설하였다. 즉 모든 피조물이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의 대상인 것과 똑같이 이웃에 대한 우리의 사랑도 우주적인 것이 아니면 안된다. 사랑이 만물에게 미치게 될때 그 사랑은 기독교적인 사랑이 될 수가 있다.
따라서 웨슬레의 성결한 삶이야말로 기독교적인 사랑의 윤리에 근본적인기초를 제공하고 있다.
B.웨슬레의 사랑 관념
1.사랑과 믿음
웨슬레는 믿음의 중요성을 절실히 인식하고 있다. 그는 중생과 성결이 믿음에 의해서 가능하다는 것을 올더스게잇의 체험을 통하여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이 믿음도 사랑에는 비교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는 설교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믿음이란 그것이 비록 기독교인의 믿음이든지,택함을 받은
사람의 믿음이든지 혹은, 하나님의 역사에 대한 믿음이든지
간에 그 믿음 자체는 사랑의 시녀에 불과한 것이다. 믿음은
명예로운 것이지만 이것이 율법의 목적은 아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이 영광을 오직 사랑만이 갖도록 했으며 사랑은 하
나님의 모든 율법의 목적이 된다. 사랑은 이 세상이 시될
때부터 모든 일이 다 이루어지는 날까지 하나님의 모든 섭
리의 유일한 목적이 될 것이다. 하늘과 땅이 사라질 때 사랑
은 홀로 남아 영원히 있을 것이지만 믿음은 하나님의 영원하
신 모습을 마주 대하게 됨으로 사라져 버리게 될 것이다.
웨슬레는 사랑은 영원한 것이지만 믿음은 일시적인 것임을 밝히고 믿음은 사랑의 완성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올더스게잇은 웨슬레에게 믿음의 위대성을 일깨워 준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그 믿음을 통하여 웨슬레는 그가 바라던 그리스도인의 완전의 길을 갈 수가 있었다. 그리하여 이전보다 더욱 순수하고 능력있는 사랑을 하게 되었으며, 진실로 그리스도인의 완전을 설교하기에 합당한 사도가 되었다. 즉 웨슬레는 믿음을 통하여 그의 사랑을 온전히 이룬 것이다.
2.성결의 표적인 사랑
웨슬레는 기독교인의 가장 분명한 증거는 사랑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완전을 온전히 이룬 사람은 완전한 사랑의 증거가 당연히 나타나야 한다. 사랑은 성령의 열매 중에서 가장 귀중한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사랑의 극치는 십가가 위에서 표현되었으며, 이 십자가의 사랑을 믿고 의지할 때에 사람은 그 믿음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되고 하나님에 대한 감사와 사랑을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사랑은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며 모
든사람을 위하여 사용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 사랑은 그리
스도의 수치, 조롱, 멸시 그리고 모든 사람들로부터 미움받는 것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지혜가 허용 하는 범위내에서 사람과 마
귀가 범 하는 어떠한 악한 일도 기쁨으로 인내하게 해 주는 것이
다. 그리하여 사랑으로 역사하는 이러한 믿음을 가진 사람은 누
구나 거의기독교인(Almost Christian)이 아니고 온전한 기독교인
(Altogether Christian)것이다.
하나님에게서 난 자의 가장 위대한 표적은 사랑이다. 따라서
그들에게 주어진 성령에 의해서 하나님의 사랑이 그들의 심령 속
에흘러 들어 온 것이다(롬5:5).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아들의 영
을 그들에게 보내심으로 그들은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여' 라고
부를 수 있게된 아들이기 때문인 것이다(갈4:6).
C.사랑과 그 대상
웨슬레의 사랑을 일반적으로 분석할 때에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사랑에만 언제나 주의를 집중시켜 왔다. 그러나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은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사랑에 선행한다. 하나님이 먼저 인간을 사랑하였기 때문에 인간은 하나님을 사랑한다. 인간의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에서 오는 당연한 결과이다.
인간이 그의 사랑을 하나님에게만 집중하여야 함은 하나님이 최고선이라는 이유에서만이 아니요 이웃을 사랑하여야 된다는 것이 하나님에 대한 사랑에 함축되어 있거나 혹은 당연히 그 사랑 밑에 종속되어 있다는 이유에서만이 아니라 그것은 절대적으로 지배하는 하나님의 욕구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랑을 언급하면서 웨슬레는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이웃 사랑 그리고 자기사랑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진다. 즉 하나님이 먼저 인간을 사랑하였기 때문에 인간은 하나님을 사랑한다. 더 나아가서 인간은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의 이웃을 사랑하게 된다. 따라서 이웃사랑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의 필연적인 열매로 간주된다.
인간이 왜 이웃을 사랑해야 되느냐 하는 이유로서 그리스도와 하나님을 모방하게 될 때에도 하나님은 사랑의 주요대상이 된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다 같이 사랑하시므로 인간도 역시 그것을 본받지 않으면 아니된다.
웨슬레는 이웃사랑에 관하여 말할 때 가끔 자기사랑에 관하여 언급하곤하였다. 그러나 이웃을 자기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마태복음 22장 39절에 나타난 계명을 해석하는데 있어서 그는 이웃사랑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자기 사랑을 이웃사랑의 한계를 결정하는데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동시에 이웃사랑을 자기 사랑의 필요조건으로 생각했다. 그 계명은 자기사랑과 이웃 사랑간에 균형이 잡혀야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이 자기 사랑은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과 일치되는 것이 아니면 안된다. 따라서 성결의 본질을 이루는 것은 바로 이 사랑이다.
V. 결 론
A. 요 약
종교개혁자들은 "비참한 죄인으로서의 기독교"(miserable sinner christianity)에 관심을 가지고 현생에서 기독교인의 계속적인 불완전(the continued imperfection of Christian)을 강조하여 성화에 대한 구체적인 관심이 적었다. 그러나 웨슬레는 계시된 하나님, 지금 여기에 성령으로 우리와 함께 계셔 우리안에 거하시면서 성령의 능력으로 정결케 하시며 온전히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 완전성화를 성취하는 일에 관심을 가졌다.
그러한 의미에서 성결은 그리스도인의 삶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 그 이유는 성결은 사람이 출생 후 성장하는 것과 같이 거듭난 후에도 성장하는 것이라고 웨슬레는 말하고 있다.
한영태 박사는 웨슬레의 성결의 과정과 완성을 5단계로 보고 있다. 첫째 관계적 성화 둘째 초기의 성화 세째 점진적 성화 네째 온전한 성화 다섯째 그리스도인의 완전으로 보았다. 웨슬레는 성화의 점진적인 성장에 하나님의 직접적인 역사로 성결이 완성된다고 하였다.
한편 성결의 과정은 반드시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일이라고 하였다. 웨슬레의 성결의 출발점인 중생은 칭의와 동시에 시작되며 이는 인간 안에서 인간을 통하여 일하시는 성령의 역사에 의한 것이라 했다. 그러므로 성결의 전 과정은 성령의 역사와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웨슬레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만일 성령을 받지 못했다면 그는 아직 그리스도인이 아니며, 그리스도인이란 성령의 능력으로 기름 부음을 받은 자"라고 하였다. 웨슬레는 성결에 있어서 성령의 사역을 강조했다. 특히 성령의 증거를 통하여 성결의 확신을 강조하였다.
한편 그는 성결된 삶의 표증으로 기독교적인 사랑을 말하고 있다. 그는 여기에서 자연인은 전적으로 타락한 것으로 보아서 자연인은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할 수가 없다고 한다. 그래서 먼저 신앙을 가지고 하나님의 용서하시는 사랑에 대한 확신을 하는 것이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사랑의 직접적 원인이 된다. 그리고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은 원인이며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인간의 사랑은 그것의 필연적 결과이다. 그리스도인에게 있는 하나님의 사랑은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인간의 사랑의 근원이다.
B.비평과 제언
18 세기 웨슬레의 부흥운동으로 인한 성결운동은 19세기 초 중반의 Finney의 부흥운동과 19세기 후반의 성결운동, 더 나아가서 오늘날에 이르기 까지 성령의 직접적, 즉각적 역사로서의 성령세례의 체험으로 전승됨으 로 인하여 그 열매를 맺게 되었다. 그로인하여 웨슬레는 성결에 바탕을 둔 그의 구원신학은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였다.
그러나 열광주의,신비주의 배척운동에 입각한 철저한 합리주의 사조의 팽배로 인하여 광신주의자라들이라는 오해를 받기도 하였으나, 성서와 이성과 경험에 입각한 웨슬레의 성결사상은 초대교회 성령의 사역으로 인한 성결의 전통을 원형 그대로 전승할 수 있었고, 성령의 직접계시를 주장함으로 타락한 사회에 혁신적인 생명 복음을 제시하였다. 그리하여 웨슬레의 성결운동은 미국 성결운동을 주도할 수 있었고, 오늘날의 오순절운동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한편 한국성결교회도 초기 웨슬레 신학을 발견하고 돌아가려는 성결의 복음에서 출발하였다. 따라서 한국성결교회는 성결한 신앙과 생활, 즉 마음과 생활의 성결을 체험하고, 전하고, 생활할 것을 다짐하는 교단이다. 일찌기 교단 헌법에 [본 단체에서 주장하는 교리는 새로 만든 교리가 아니요,옛날 요한 웨슬레가 주장하던 교리와 조금도 다름이 없느니라]고 명시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웨슬레의 성결복음에 입각한 한국성결교회의 비젼(Vison)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자 한다. 생명의 복음인 성결복음을 만방에 전하여 세계를 구원하여야 할 막중한 사명이 있으며, 성결의 복음으로 한국교회와 사회에 뜨거운 성결운동의 열기를 일으켜야 할 책임이 있다. 그리고 개인주의적, 이기적인 위험성에서 벗어나 개인과 교회와 사회를 성결시키고 세계를 향하여 성결의 복음을 선포하는 세계지향적이고 선교지향적인 성결 운동으로 반드시 연결되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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