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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과 경건주의

여성과 경건주의  
http://cafe.naver.com/modernth/1182   
 정미현
 
1. 들어가는 말
올해는 낭만주의 음악의 거장 슈베르트(1797-1828)가 탄생한지 200주년이 되는 해이다. 그가 활동하던 시기의 유럽은 끊임없는 크고 작은 전쟁과 혁명에서 정치적인 불안정시대를 맞고 있었는데, 이러한 상황 속에서 그의 음악은 등장하게 된다. 그의 음악의 특성은 고전의 형식을 무시하지 않으면서 순수 서정성이 짙게 배어나오는 낭만주의를 발달시킨 데 있다. 그의 음악은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인간의 주관적 낭만세계를 표현한다. 무엇보다도 혼탁하고 격동적인 정치, 사회현실세계에서 맛보고 경험하지 못하는 밝고 경쾌한 생동감이 낭만적으로 용해되어 있는 것이 그의 음악세계의 역설적 묘미이다. 그는 역사적 현실을 직시하면서도, 그것을 음악적으로 승화시킨 것이기 때문에 그의 음악세계는 값싼 주관주의적 황홀과 신비의 낭만성과는 다른 품위를 지닌다.  
바로 그의 음악이 무르익어 가던 낭만주의 시기에 유럽대륙 독일어권 지역에서 신학사, 교회사의 측면에서도 주목받을만한 경향이 성숙되어 갔는데 그것이 경건주의이다. 이 글에서는 종교개혁의 내용을 교리화 하며, 교리 자체를 믿는 것을 신앙하는 것으로 보고 "종이교황"을 섬기는 우를 범해가는 정통주의와, 신앙을 경멸하는 지식인과 계몽주의 이후의 근대적 인간의 합리주의에 대한 반작용으로 등장한 유럽 대륙에서의 경건주의와 여성의 문제에 초점을 맞추어 보려한다. 종교집단이 형성되는 초기에 여성들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그러한 집단이 제도화되어 체계를 갖추고 나면 여성들은 뒤로 물러나게 되어야만 했다는 것은 교회사에서 끊임없이 반복되는 현상이었다.
여성들 스스로 신 체험을 하고자하며, 주체적으로 종교활동에서 남성들과 함께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려던 의지는 경건주의 운동에서도 마찬가지로 성취되지는 못하였다. 그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행함을 되짚어 보는 것은 오늘을 살아가는 기독교인의 모습을 되돌아 보게 하며, 내일을 위한 준비의 토대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16세기가 종교개혁의 시기라고 한다면, 17세기는 정통주의의 시기라고 구분해 볼 수 있다. 이것은 카톨릭과 개신교 모두에 적용되는 것으로서 루터파와 칼빈파 모두 나름대로 신자들이 지켜야 할 정통신조들을 발전시킨 시기이다. 개신교의 입장에서 보면, 종교개혁자들이 지닌 역동적 변혁의 힘이 화석화 되고, 엄격한 문자주의에 얽매임으로써 새로운 "종이교황"을 숭배하는 시대로 접어들게 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렇게 굳어진 교리에 얽매이고 이에 순종하는 것을 참 신앙이라고 여기던 것이 정통주의가 지배하던 17세기의 한 모습이었다. 이와같은 메마르고 빛바랜 정체된 신앙의 모습에 촉촉히 생기를 불어주던 운동이 경건주의였고, 이러한 신앙운동의 실질적 주역은 바로 여성 그리스도인들이었다는 것이다.

2. 경건주의운동이 등장하기 까지

경건주의는 17, 18세기 경제, 정치, 사회 전 영역에 걸쳐 급격한 변화의 시기에 일어나서 독일어권 유럽을 중심으로 영국, 네덜란드, 미국 등으로 퍼져나간 다양한 측면의 종교적 갱신운동이다.
경건주의는 무엇보다도 필립 야콥 스페너(Philip Jakob Spener)와 아우구스트 헤르만 프랑케(August Herrmann Francke)를 주축으로 17, 18세기 독일을 중심으로 발달하여, 영미권의 각성운동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되고 또한 이러한 영향으로 개신교의 선교활동이 활발히 전개되기에 이른다. 한편 이 경건주의는 스페너를 대부로 모신 니콜라스 루드비히 진젠도르프 백작(Nikolaus Ludwig von Zinzendorf)에게도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올 봄 연극 무대에 올려졌던 모노드라마 "그 여자 억척어멈"은 주인공 박정자의 열정적인 연기로 전쟁판에서 모진 운명을 헤쳐가며 억척스럽게 살아가는 한 어머니의 모습을 그려 낸 성공적인 작품이었다. 이 드라마는 독일의 극작가 베르톨드 브레히트의 "억척어멈과 그 아이들"이라는 원작을 각색한 것으로서 한국판 억척어멈의 모습을 그려내었다. 30년 종교전쟁을 배경으로 한 원작이 한국전쟁과 동학혁명을 배경으로 오늘날 우리 땅에 맞게 시간적, 공간적 입체성을 살려 재창조 되었다. 바로 이 30년 종교전쟁은 경건주의 초기의 시대적 배경 가운데 중요한 한 요소이다. 그리고 진젠도르프 백작과 보헤미아 동포단은 경건주의 운동을 확산시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게 된다.
체코의 종교개혁자 얀 후스(Jan Hus)의 화형사건 이후 보헤미아의 독립과 개신교 신앙을 추구하던 보헤미아 동포단은 1526년부터 이들을 지배하던 합스부르크 왕가에서 이탈하려는 보헤미아 귀족을 포함하여 당시 개신교 연합운동의 지도자격인 칼빈파의 프리드리히 제후를 중심으로 범민족적으로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1618년 "프라하 창문사건"이 불씨가 되어 신구교간에는 30년 전쟁이 일어나게 되었는데, 이 전쟁은 이후 전 유럽으로 확산되어 1648년 베스트팔렌에서 조약(Peace of Westphalia)이 맺어지게 될 때까지 지속되었다. 본격적인 반합스부르크운동을 일으켰던 보헤미아 동포단은 1620년 백산(am wei en Berg)전투에서 당시 합스부르크가의 황제 페르디난드 2세의 군대와 결정적으로 맞붙게 되었으나 참패당하였다. 이후 보헤미아의 개신교도들은 심한 박해를 받았고 지도자들은 처형되었다. 이들의 정신적 지주였던 보헤미아 동포단은 해산당했고, 보헤미아 귀족은 전 재산을 몰수당한 채 국외로 쫓겨가거나, 죽임을 당하였다. 1626년 보헤미아에서는 카톨릭 신자가 되기를 거부하는 자들은 그 지역을 떠나라는 칙령이 반포되었고, 그 결과 개혁주의 신앙을 지키려는 보헤미아인들은 정든 고향산천을 떠나게 된다.
한편, 여러 곳에서 수학을 한 후 드레스덴 궁정에서 일하게 된 진젠도르프는 여기에서 신앙의 자유를 찾아 온 보헤미안 동포단(모라비안)을 만나게 된다. 복음 때문에 뵈멘과 메렌에서 쫓겨난 이 사람들에게서 진젠도르프는 깊은 감명을 받는다. 그래서 그는 이들에게 헤른후트(Herrnhut)의 자기 사유지를 제공하여 공동체를 형성하고 정착하게 돕는다. 진젠도르프는 코메니우스의 책을 통해 보헤미아 동포단의 역사를 더 구체적으로 배우게 된다. 헤른후트는 이후 경건주의 운동의 배양지와 같은 역할을 한다. 이 모라비안들은 무엇보다도 신앙생활에 모범을 보인 사람들이었고, 삶과 신앙의 불가분리적 통일성을 이루어나간 공동체였다. 신앙의 자유를 찾아 피난온 이들은 헤른후트에서의 정착 후, 활발한 선교활동을 펼쳐나가게 되는데 아프리카, 인디아, 남북 아메리카 등의 광범위한 지역을 그 대상으로 하였다. 이들의 경건한 삶의 태도와 열정적 선교의 자세는 이후 19세기 개신교 선교에 모범이 되었고, 특히 존 웨슬리를 통하여 감리교에 중요한 영향을 주게 된다. 

3. 경건주의운동 초기에 중요한 역할을 감당한 여성들
"그런 다음에, 내가 모든 사람에게 나의 영을 부어 주겠다. 너희의 아들딸은 예언을 하고, 노인들은 꿈을 꾸고, 젊은이들은 환상을 볼 것이다. 그 때가 되면, 종들에게까지도 남녀를 가리지 않고 나의 영을 부어 주겠다."(욜 2, 28)
최근들어 개신교 교회와 신학에서도 성령과 영성운동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면서 기독교 역사에 있어서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와 관련된 운동이나 조류들이 주목받고 있다. 특히 고대교회의 몬타니즘이나, 중세 신비주의, 종교개혁 좌파운동등이 성령론과 영성운동의 차원에서 새롭게 주목받는 주제들이다. 기독교의 역사를 되돌아볼 때 여성들은 주류운동에서보다 비주류운동에서 더 자유스럽고 활발한 활동을 할 수 있었다. 분파적인 집단, 기성교회와 타협하지 않는 무리들은 여성들을 동등한 영적 존재로 받아들였고, 여성의 종교성을 소홀히 하지 않는 영성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흐름에 참여한 많은 사람들은 대개 그 사회에 속하지 못하고 축출되게 되었다.
기독교역사에 등장했던 여러 시대적 조류와 운동들에서와 마찬가지로 경건주의 운동전반에 걸쳐서도 많은 여성들의 활약이 뒷받침되었다. 그 가운데에서도 다음의 이름들은 더욱 돋보인다. 경건주의 운동에 대한 관심으로 종교적 이유 때문에 귀족이면서 평민과 결혼한 요안나 엘레노라 페터슨(Johanna Eleonora Petersen), 진젠도르프의 부인으로서 활약한 에르트무드 도로테아 본 로이제 에버스도르프(Erdmuthe Dorothea von Loise Ebersdorf), 진젠도르프가 헤른후트에 공동체를 세우는 데 결정적 영향을 끼친 그의 외할머니 엔리에테 카타리나 폰 게르스도르프(Henriette Katharina von Gersdorf)와 진젠도르프의 어머니 샤롯테 유스티네 폰 게르스도르프(Charlotte Justine von Gersdorf) 외에 아델하이드 아말리에 본 골리친(Adelheid Amalie von Golitzin), 바바라 율리아네 본 크루데너(Barbara Juliane von Krudener) 등의 여성들이 있었다.
이처럼 이름있는 여성들뿐 아니라, 평범한 여성들에 이르기까지 경건주의 운동에서 여성의 역할은 상당히 중요하였다. 1670년경 경건주의 초기시기로부터 18세기 중엽 진젠도르프의 헤른후트(Herrnhut)에서의 동포단(Br dergemeinde)의 번성기에 이르기까지 여성들은 경건주의 운동에서 예언가로, 후원자로, 지도자로, 선동가로, 행정가로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였다.
 
개인적 신앙의 경건성을 쌓아나가기 위하여 여성들은 1670년 이래 야콥 스페너(Jakob Spener)가 프랑크프루트에 세운 경건의 모임(Collegia Pietatis)을 방문하였다. 여성들은 남성에 대한 조력자로만 그 역할을 감당하였던 것이 아니었다. 지도적인 경건주의자들조차 여성이 경건주의가 지향하는 종교와 삶의 모습에 더욱 적합한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였다. 심지어는 경건주의가 강조하는 종교적 거듭남이 무엇보다도 여성들에 의하여 수행되어지는 것으로 확신하였다.
1700년을 전후한 시기에 프랑스의 정적주의(Quietism)를 대표했던 앙트와네트 부리그뇽(Antoinette Bourignon 1616-1678)과 마담 기욘(Madame Guyon 1648-1717)의 저서들이 독일에 알려지게 되었는데 이후 이 여성들은 종교적 모범이며 이상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이들의 저서는 경건주의 운동을 이끌어가던 인물들뿐 아니라, 일반적인 사람들에게도 널리 애독되고 칭송되었다.
이러한 경향은 계속 발전하게 되었는데 특히 진젠도르프에게서 그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그는 헤른후트에서 여성들이 가장 종교적으로 이상적인 공동체를 형성했을 뿐 아니라,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으로 말미암아 기독교적 구원론에서 남성을 능가하는 역할이 여성들에게 부여되어 있다고 생각하였다.
경건주의 운동을 성숙시켜 나간 프랑케(August Hermann Francke)나 페터슨Chiliasten Wilhelm Petersen)같은 인물에 의하여 예언자로 여겨졌던 여성들 가운데 대표적인 이가 아델하이드 시빌라 슈바르쯔(Adelheid Sybilla Schwarz 1703 사망), 로자문데 율리아네 폰 아세부르크(Rosamunde Juliane von Asseburg 1672-1712)이다. 또한 예를 들어 안나 마리아 슈크하르틴(Anna Maria Schuckhardtin)이라는 여성은 스페너와 프랑크 모두에게서 주목을 받았는데 이들은 하나님이 그녀에게 특별한 방법으로 환상을 주신다는 것을 인정하였다. 그러나 여성들의 이러한 환상을 보는 행위나 예언의 행위는 경건주의를 비판하는 정통주의자들에게서 인정되지는 않았다.
때문에 이러한 여성들은 경건주의가 의도하는 바를 옹호하고 권장하고 지원하기 위하여 열심히 노력하였다.  
여기에서 예언자란 무엇을 뜻하는가 반문할 수 있겠다. 이들의 1차 자료에 대한 분석을 못한 한계 때문에 단언하기 힘든 점은 있으나, 예언이란 것이 일반적인 의미에서 앞일을 내다보고 점치는 것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그것은 구약성서적 의미로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이를 전한다는 뜻으로 해석하여 보아야 좋을 것이다. 예언을 중시했던 현상은 경건주의 초기에 특히 종교적 영감(religi se Inspiration)을 귀중하게 여겼던 것과 연관되어 있다. 이 때부터 본격적으로 종교의 감정(das Gef hl)을 강조하게 되는 것이 두드러진다. 이것이 결국은 헤른후트에서 신앙적, 신학적 훈련을 쌓은 슐라이에르마허(F.D.E. schleiermacher)에게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고, 그의 신학에 그대로 반영된다.
이것은 정통의 시대라고 분류해 볼 수 있는 17세기의 교리 중심주의에 대한 하
나의 반대적 조류로서 이해될 수 있다.
여성들의 예언은 신적인 계시의 내용을 담고 있었고, 그것은 정통주의에 대한 경고와 비판의 메시지였다. 따라서 경건주의자들은 여성들의 이러한 행위와 용기를 부추기고 장려하게 되었다. 이 여성들은 경건주의자들에게 그들의 의도를 전하고 활성화시키는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도구이며 예언자일 뿐 아니라, 구체적인 행동가로 보여졌다. 그러나 경건주의자들에게 거룩한 예언자로 여겨졌던 이 여성들은 제도권 교회와 권력가들의 입장에서 볼 때는 장애요인이었고, 정치적으로도 위협적 요소였다.
다음에는 경건주의 운동에서 가장 두드러진 역할을 한 두 여성을 간략하게 소개하고자 한다.
(1) 엘레오노라 페터슨(Eleonora Petersen)
18세 이후로 환상을 경험한 엘레오노라 페터슨(1644-1724)은 낭트의 칙령이 철폐되고 많은 위그노들이 희생된 1685년의 학살사건과 연관된 환상도 경험하게 되었다. 그리고 1685년은 엘레오노라에게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천년왕국사상을 깨달아 형제, 자매애가 중심적 역할을 하는 교회 공동체를 구성하는 데 중심적 요소로 삼게 된 때이기도 하다. 그녀의 남편은 경건주의자들에게 사랑 받았던 신학자이며, 작가인 요한 빌헬름 페터슨(Johann Wilhelm Petersen)이다. 그녀는 독일에서 동포적 단체(philadelphische Soziet ten)를 준비하여 실행에 옮긴 선구자이기도 하다. 동포애(Philadelphia)를 강조한 그녀는 루터파와 개혁파 사이에 이러한 이상을 실현시키고자 하였다. "그러나 내가 말하려는 것은 진정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로서 서로가 서로를 도와야만 한다는 것이다. 나는 하나님께 양쪽으로 분열된 이 두 파에 사랑의 조화를 심어주시기를 기원한다. 왜냐하면 양편 모두 바벨로부터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계시에 대한 기본적 이해를 위한 안내"(1696), "소명받고, 선택되고, 신앙하는 자의 영적 투쟁"(1698)이라는 글에서 그녀는 동포애 가득한 교회에 대한 이상을 피력한다. 그녀의 영향을 받은 많은 남성들, 영적 지도자들이 있었는데 그 가운데 요한 빌헬름 켈르너(Johann Wilhelm Kellner)에 의하여 1690년 초기 사도 공동체의 이상을 따르는 교회가 세워지게 되었다. 그녀의 사상을 담은 이러한 형태의 교회들이 진젠도르프의 헤른후트 형제단 설립 이전에 등장하였다. 영국에서의 동포단 교회를 세운 제인 리드(Jane Leade 1623-1704)외에 게프하르트(Gebhard), 붸쩰(Wetzel), 에바 폰 브틀라(Eva von Buttlar)등이 이러한 유형의 교회를 세우고 이끌어 갔던 이들이었다.
(2) 엔리에테 카타리나 폰 게르스도르프(Henriette Katharina von Gersdorf)
진젠도르프 백작은 헤른후트 공동체를 세운 인물로서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가 이러한 일을 성취시켜 가는 데에 여성들의 역할이 더욱 중요하였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지 못하다. 그의 부인 도로테아 진젠도르프(Dorothea 1700-1756), 그녀의 어머니인 솔름스 라우바하의 백작부인 베니그나(Benigna) 모두 경건주의가 확산되도록 하는 데 결정적 기여를 한 인물들이었다. 스페너 역시
베니그나 백작부인에게서 영향을 입을 정도였고, 그녀를 "교회의 자랑거리"로 여겼다. 진젠도르프에게 영향을 끼친 주변의 여성들 가운데, 특히 그의 할머니 카타리니 폰 게르스도르프(1648-1726)의 역할은 더욱 중요한 것이었다. 이렇게 여성들의 열성적 노력으로 경건주의가 성숙하는 분위기에서 활동하였던 진젠도르프는 헤른후트 공동체운동 후기로 갈수록 점점 더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권리를 갖는 것이 아니라, 그 이상이라고 보았다. 그래서 여성이 남성보다 더욱 강하고 더욱 인내할 수 있다고 주장하게도 된다. 그는 헤른후트 공동체 가운데 여성들이 가장 종교성이 강한 집단을 이룬다고 보았다. "내가 구세주 주님과 친밀히 교통할 수 있는 것은 내가 10년 동안 헤너스도르프(Hennersdorf)에서 나의 할머니이신 게르스도르프(Gersdorf) 제후부인의 집에서 성장하고 교육받았기 때문이다."라고 말하고, 헤른후트 공동체의 설립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언급한
다. "나는 할머니로부터 나의 원칙을 물려받았다. 그녀가 없었더라면, 우리의 이 공동체를 위한 모든 것이 실행되지 못하였을 것이다." 이와같이 할머니에게서 신앙생활에 대한 강한 영향을 받고 헤른후트 공동체를 설립하기까지 한 진젠도르프는 그리스도 앞에서 남자와 여자가 근원적 평등의 권리를 지닌다고 본다. 필라델피아 공동체에서 여성이 주도적 역할을 한 것처럼, 진젠도르프가 죽기 이전에 헤른후트에서도 여성들이 이들 공동체를 이끌어가는 주역을 담당했다. 진젠도르프의 두 번째부인 안나 니취만과 딸 베니그나 진젠도르프는 실제로 헤른후트공동체에서 굉장히 많은 영향력을 끼친 인물들이었다. 여성들이 이 공동체를 이끌어 나가는 이러한 것들이 남성구성원들에게 그리 달갑지는 않은 것이었으나, 여성들이 말씀을 전하는 것이 당시 회중들에게 굉장히 설득력있게 받아들여진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4. 참여적 주체로 남아있지 못하게 된 여성들
18세기 전반기에는 경건주의 내에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새로운 이해가 등장하였다. 많은 급진적인 경건주의자들에게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는 남녀양성적 존재(eine androgyne Natur), 즉 남성적 동정녀(m nnliche Jungfrau)로 여겨졌다.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에 대하여 이렇게 남녀양성적으로 생각하는 방법은 여성에 대한 기독론적 인간학의 가능성을 열어 놓게도 되었다. 여성은 더 이상 죄의 근원으로 여겨질 수 없었다. 이러한 생각을 지닌 경건주의자들은 여성에 대한 종교적인 부정적 견해를 제거하여 나아가는 데 힘썼다. 이러한 이해와 더불어 19세기에 접어 들면서 사회에서의 여성에 대한 지위와 인식이 점차로 개선되어 나갔다. 그 한 예로 1819년에 경건주의 교회 공동체 가운데 하나인 조아르(Zoar)에서 여성은 완전히 남성과 동등한 권리를 행사할 수 있었고, 교회 내에서도 공적인 지위를 얻을 수 있게 되었다.
경건주의자들은 그들의 각성과 부흥, 갱신의 운동을 제 2의 종교개혁으로 이해하였다. 그들도 종교개혁자들의 근본의도와 마찬가지로 성서에 대한 가장 우선적인 관심을 표명하였다. 그래서 경건주의 운동 전반에 걸쳐서 성서와의 지속적이고 끈기있는 만남을 강조하게 된다. 30년 전쟁으로 말미암은 경제, 정치, 사회 전반의 암울한 분위기는 사람들로 하여금 말세사상에 관심을 기울이게 하였고, 이러한 맥락에서 여성들이 새로운 왕국의 예언자로, 말씀 선포자로 등장할 수 있다는 것은 더욱 중요하게 여겨졌다.    
그러나 경건주의 운동도 정착되고 제도화되면서부터 여성들의 활약을 저지하기 시작하였다. 환상을 보는 예언자로, 열렬하게 말씀을 전하는 모습으로 활동하는 이 여성들은 경건주의 자체를 거부하는 정통주의자들로부터만 거부당한 것이 아니라, 경건주의 내부를 차지하고 있는 남성들에 의하여 차츰 격렬하게 비판당하고 거부당하게 되었다. 하나의 순수한 종교적 현상으로 등장하여 거대한 회오리바람을 몰고 온 운동으로 성장하게 되기까지 여성들의 활약은 점점 더 두드러지게 되었다. 그것은 하나님이 여성들의 심령에 우선적으로 말씀하신다고 보고 이들 여성들의 활동을 지지했던 경건주의 초기 지도자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 여성들은 아내와 자녀 출산과 양육이라는 전통적 여성상에서 탈피하여 사회와 교회 공동체를 움직여가는 역할을 감당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여성들은 경건주의 운동에서도 끝까지 참여적 주체로 남아있지 못하게 된다.
이들이 관조와 명상의 삶에 최고의 가치를 두었던 중세기 영성운동과는 달리, 성령의 역사와 사회참여적 영성운동에 가치를 두면서 정의를 향한 목마름으로 평등주의를 주장하며, 행동을 수반하는 믿음을 바탕으로 사회개혁의지를 관철해 나가고자 한 점은 오늘날의 개신교에서 수용될 수 있는 긍정적인 점이라 생각한다.
5. 나오는 말
교회가 스스로를 절대적 진리라고 주장하던 중세 교회의 경직된 지배이데올로기는 종교개혁의 저항의 원칙에 의해 무너졌다. 그러나 그러한 종교개혁의 출현은 탄력적인 대응으로 남아있지 못하고, 정통주의라는 또 하나의 경직된 교리주의를 탄생시켰다. 이와 같은 교리 우선주의와 신앙의 경직화에 대한 반동으로써 경건주의는 등장하게 된다. 이러한 경건주의의 특성은 개인의 거듭남을 통한 사회의 거듭남이었다. 즉 경건주의는 살아있는 실천적 믿음의 모습을 지향했던 것이었고, 그것은 곧 개인의 신앙과 경건으로부터 시작되었으나, 가족, 가정의 울타리를 넘어 사회에로까지 파급효과를 가져왔다. 경건주의 운동을 개인의 차원뿐 아니라, 사회제도적 차원으로 이끌었던 크리스토프 불룸하르트의 표현대로 그리스도인은 두 번 거듭나야한다. 한 번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두 번째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세상속으로 나아감을 통해서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경건주의는 바른 이론(Orthodoxie)만을 강조한 정통주의를 너머서서, 바른 실천(Orthopraxis)을 추구한 신앙운동이라 할 수 있겠다.
20세기 말의 시대 사조는 무엇보다도 포스트모더니즘이라고 볼 수 있다. 그것은 뚜렷한 정의를 찾아보기 힘들면서도 오히려 사회, 문화, 종교등 전반에 영향을 끼치는 현상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을 현대의 이성과 물질, 개별화된 개인주의와 세속화 경향에 대한 비판적 대응이라고 본다면, 종교적 측면에서 이러한 사조는 영성과 공동체성에 대한 강조의 경향으로 풀이될 수 있다. 즉 세속적 가치에 함몰되어가는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을 내면깊이로부터 받아들이, 실천적 믿음의 삶을 살도록 하자는 것이다. 사이버 스페이스 시대의 도래와 컴퓨터 사용으로 인한 개인주의화의 경향이 더욱 짙어져가는 오늘날의 시대상황은 어떠한 형태의 모임이든지 꾸려나아가기 힘든 구조를 지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동체의 연대의식과 공동체의 움직임의 필요성은 그 어느때 보다도 요청되고 있다. 모임자체가 힘들고, 드물게 만날 수 밖에 없는 현대인의 삶의 양태는 인정하면서 "보살핌의 윤리"에 기초한 효율적인 공동체성 추구가 필요한 이 시점에서, 경건주의운동은 우리의 모습을 비추어 볼 수 있게 하는 거울과 같은 역할을 한다. 신앙을 규격화, 도식화 시키려는 정통주의의 오류를 극복했으면서도, 경건주의, 경건이란 말이 부정적 성격을 지니는 것은 도덕주의적 위선, 신앙과 삶의 불일치, 개인적 이기주의등으로 나타나는 경건주의에 대한 선입견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선입견과 몰이해를 극복하고 오늘날 관심갖는 영성운동에서 경건주의의 본래적 의미를 되살려야 한다. 그것은 하나님에 관한 일차원적 명상속에 잠김으로 말미암아 나와 하나님 이외의 자연, 이웃, 사회, 세계의 그 어느 것도 생각하지 못하는 정적주의(Quietism)와는 전적으로 다른 것이다. 그것은 또한 세상과의 단절과 거부를 추구하는 기도원운동과도 전적으로 다르다. 신앙과 기도는 일차적으로 나 자신을 위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나만을 위한 것일 수가 없고 우리의 신앙과 기도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공동체의 운명을 위한 기도, 우리의 죄악으로 신음하는 자연세계를 보호하기 위한 기도이어야 한다. 그 기도는 바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과 해야될 일들을 행동으로 실천하기 위한 기반이며 첫걸음이 된다.
흔히들 21세기는 3F가 주도하는 시대라고 한다. 기독교 운동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기독교 역사 2000년 동안 여성들은 실질적이고 주도적 역할을 감당했음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이유로 인하여 강요된 수동적 침묵가운데 살아왔다. 두 번째 천년의 끝자락에 가서야, 그것도 부분적으로만 여성은 공식적으로 교회내에서 그들의 소리를 낼 수 있었다. 이제 제 3의 천년시대에는 사정이 많이 달라질 것이다. 여성에게 다각적인 차원에서 기회가 열려져있다. 여성들이 움직일 때 무슨 일이든지 발빠르게 성취되었던 것은 지난날의 경험에서 확인되어진 바이다. 여성신학, 기독교 여성운동이 지향하는 바가 그동안 남성들이 가진 기득권을 이제 여성들이 한 번 잡아보고 누리자는 것일 수 없다. 다양한 사회적 문제와 욕구앞에서 상처를 치유하고 돌보며, 지금까지 간과되거나 오해된 복음의 내용을 끊임없이 새로이 선포하는 작업을 통하여 피조물의 온전한 질서를 회복하는 것이 여성들에게 주어진 기회를 통하여 이루어 갈 작업이다.
슈베르트 음악의 선율이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계절이다. 그의 음악이 개인의 차원에만 머무르지 않고, 사회와 시대적 고뇌를 감미로운 서정적 낭만성으로 승화시킨 멋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그 매력은 더욱 깊이가 있는 것이리라. 우리의 신앙의 모습도 이러한 낭만성을 뿜어 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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