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건주의와 종교개혁3
경건주의와 종교개혁3
http://cafe.naver.com/modernth/950
IV. 교회와 그의 신학.
기독교적 신앙이란 세상 앞에서, 세상을 위하여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앙의 언어는 필연적으로 하나님 앞에서 책임있는 진술이어야 한다. G. Ebeling, in: RGG 3. Aufl. VI, 767.
이 점에서 교회를 바로 섬겨야 하는 신학의 과제가 형성된다. 철학과 마찬가지로 신학도 학문의 중개자이므로 교회와 신학은 동일한 토대, 즉 예수 그리스도 위에 세워진다.(고전3:11) 신학은 교회를 섬김에 있어 비평적인 기능을 갖는다. 신학은 교회에 항상 진리란 무엇인가? 하는 문제를 제기하며, 세상에서 그리스도를 증거함이 바른지를 묻는다. 이 점에서 슈페너는 신학적 작업이 갖는 중요성과 의미를 크게 부각시켰다. 신학적으로 학문하는 일은 철저히 진리와 연관되어 있다. 신학이 교회를 섬기는 일은 진리의 대적자들을 쳐부수는 것이며 교회를 섬기는 자들을 양육하는 일이다. 신학적 논증은 그것이 어떤 사안에 대해 옳은가, 그른가를 밝혀주는 한에서 그 가치를 지닌다.
성서의 가르침이 왜곡되어서는 안되는 근본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슈페너의 시대는 옛 개신교 정통주의라 불리우던 때로 성서해석이 신앙고백 문서에 연결되어 있었다. 사람들은 성서를 그 자체로 하나의 증빙문서(dicta probantia)로 간주함으로써 교리적인 사안을 위한 보조자료로 전락시키고 말았다. 슈페너는 자기 시대의 바른 신앙을 위한 노력을 가치 있게 보았으나 그에 따른 결점도 날카롭게 지적하였다. “신앙의 근본”을 지키고 신앙의 진리에 대한 동의를 규정하려는 시도 가운데 지나치게 이성에 의지함으로써(convictio intellectus) PD, S. 66.
성서적 근거가 인간적인 호기심으로 가득한 건축물의 토대로 전락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철학적인 방법을 동원하여 바른 신앙을 구축하려는 신학에 그는 사랑이라는 거룩한 열심을 요청하였다. 만일 신학이 세밀한 논증과 성서에 대한 학문적인 각주로 가득한 하나의 교리체계에 불과하다면 그의 본래적인 과제는 곡해되고 말 것이다. 때문에 그는 교리에 대한 그 시대의 열심에 대해 때때로 “성령과 신앙이 없는 이들”이라고 비난하였던 것이다. PD, S. 64.
예로써 헬름슈테트의 학자였던 코르넬리우스 마르티니(1568-1621)의 말을 들어보자. “누군가 논리학과 형이상학을 제대로 배우기만 했다면 그는 단번에 성서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In: C. G. Joecher, Allgemeines Gelehrtenlexikon, Bd. III (1751), S. 227.
슈페너는 바로 이러한 사고에 가장 열정적으로 반대하였던 인물이다. 만일 학문이 “인간 고유의 자연적인 힘과 단지 인간적인 노력”으로만 성서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면 이 경우 신학이란 “육신적인 지혜”와 다를 바 없을 것이다. PD, S. 65.
우리는 슈페너가 당시의 신학적 노력 자체를 무시한 것이 아님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인간적인 敎養학으로서의 제도적 장치-신학이 갖는 의미에 대하여는 그것이 필수적이고 유용하긴 하나 신학의 본질은 아닌 셈이다. 그가 말하는 신학의 본질이란 철저히 “실제적인 태도(몸에 밴 습관과도 같이, habitus practicus)”이다. PD, S. 76.
단순한 지식이나 정보, 고백으로는 바른 신학이 아니다. 진정한 신학은 믿음, 소망, 사랑에 관한 가르침이며 교회에 대해 비평적인 기능을 가지되, 교회의 일이 문자로부터 기인하는 것인지 아니면 영으로부터인지를 묻는다. 슈페너가 이점에서 관심하는 것은 죽은 정통신앙과 삶으로 중재되어지지 않는 학문에 대한 경계인 것이다.
하나님의 영과 연구하는 인간의 정신 사이의 차이를 바르게 이해하지 못하는 단편적인 신학이란 기껏해야 그 핵심에 옛 스콜라주의의 재생에 불과하며 이는 루터가 그렇게도 투쟁해왔던 사안임에 틀림이 없다. 루터가 앞문으로 쫒아내었으나 뒷문으로 슬며시 들어온 스콜라주의 신학은 이제 하나님 자신이 성서의 말씀이 되심으로 새롭게 바뀌어지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스콜라주의가 갖는 학문적인 가치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마음의 문제와는 상관이 없는 가시투성이의 학문(theologia spinosa)일뿐이다. PD, S. 24.
때문에 슈페너는 만일 사도 바울이 오늘날 다시 온다면 많은 신학자들이 그를 이해하지 못할 것은, 그의 지혜는 인간의 작품이 아니라 성령의 조명에 의한 것이기 때문이며 그들이 교리나 윤리 같은 형이상학의 문제에 관심을 가진다 하더라도 자신들의 옛 자아를 바꾸는 일에는 무능하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그는 루터의 다음과 같은 경고도 덧붙여 밝힌다. “진리는 가르침에 의해서가 아니라 많은 논증들에 의해 손상을 입는다.” WA 40/3, 361:“Neque enim docendo, sed disputando amittitur veritas”. PD, S. 64.
학문이라는 이름의 논쟁은 입씨름에 빠지기 쉬우며 결국 주님의 발 앞에 앉아야 하는 꼭 필요한 일을 망각하게 하는 위험에 직면하고야 만다.(눅10:38-42) 우리는 다시 한번 슈페너가 살았던 시기를 염두에 두어야만 한다. 30년 전쟁(1618-1648) 후 많은 신학자들은 논증을 통하여 루터의 신학을 공식적인 기독교로 자리매김하려 하였으며 자연히 “루터처럼 됨”에 관심을 가짐으로써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는 영적인 삶에는 등한시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슈페너는 신학교수들에게 권하기를 학문에서만이 아니라 삶의 안내에 있어서도 모범이 되기를 바랐던 것이다. 신학은 신적인 일을 가르침에 있어(philosophia de rebus sacris) 철학 이상의 것이므로 신학을 공부하는 이들이 항시 명심해야 할 것은 신학 본래의 의미를 체험된 신앙과 불가분리의 것으로 받아들여야만 한다는 사실이다. 진정한 신학은 “성령의 빛에서만” 체득되어진다. PD, S. 71.
만일 이러한 사실이 제대로 인지되기만 한다면 신학과 교회에서 신앙을 파괴하는 허영심은 자리잡지 못하게 될 것이다.
슈페너의 신학수업을 위한 개혁안은 학문적인 철저성과 성령의 실재를 체험함이라는 양자의 調和에 있다. 신학자들과 목회자들은 자신들의 일을 통하여 “육신적인 지혜”와 “성령 안에서의 지식”을 포괄함으로써 복을 전달해주어야 한다. 수업과 설교의 자리에서 이 두 가지 가운데 하나가 결여되면 바른 신앙에 관한 가르침은 그 영향력을 상실하게 된다. 슈페너는 결단코 전문 신학에 반대하지 않았다. 그는 제도 장치로서의 신학과 인격적인 신앙체험이 성령의 역사 안에서 올바른 관계를 형성함으로써 교회의 상태를 회복하려는 의도를 가졌던 것이다. 진정한 기독교는 가르침의 체계나 철학적인 이해구조 속에 그리고 가설적인 연구결과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라 신앙경험 위에 세워진다. 19세기의 저명한 학자요 경건주의 연구가였던 알브레히트 리츨(1889년 사망)은 경험을 하나의 운동으로 간주하고 그 주체를 인간적인 자아로 밝힌 바 있다. A. Ritschl, Rechtfertigung und Versoehnung, 4 Aufl., Bd. 2, S. 6.
그러나 자아는 객체요, 주체인 성령의 영역 안에 있다고 슈페너는 이해하였다. 이는 태양을 피해 숨어버린 사람이 그 열기를 경험할 수 없듯이 신자들이라면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사역에 자기 자신을 내어 맡겨야 하는 것이다. 제도 장치로서의 신학과 경험신학 간의 차이와 대립을 밝히려는 것이 아니라 교회를 바로 섬기는 일에 있어 불가분리의 하나됨을 논하였던 것이다. 신학과 경건을 화해시키고 성서를 교회의 본래의 책으로 재발견한 노력을 우리는 그의 특별한 기여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신적인 말씀과 가르침의 순수성은 많은 서적들과 논쟁들 가운데 보존될 뿐만 아니라 참된 회개와 거룩한 삶 가운데 유지된다.” J. Arndt, Vier Buecher vom wahren Christentum, I, 39.
V. 오늘의 슈페너.
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타눔의 신앙고백에 의할 것 같으면 교회의 보편성(公교회성)은 4개의 본질 가운데 하나이다.(una, sancta, catholica, apostolica) 황제 트라야누스(98-117) 치하에서 사나운 짐승들에게 내어 던져져 순교한 안디옥의 이그나티우스는 서머나 교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계신 곳에 보편교회가 있다” Ignatius, Brief an die Smyrnaeer, VIII, 2. 여기에서 사용된 “카톨릭”이라는 희랍어 단어는 “일반적인/보편적인”의 의미를 가진다.
라고 기술하였다. 그러나 교회의 역사는 분열을 거듭하여 온 것이 사실이다. 교회의 보편성이 깨어진 것은 동-서 교회의 분열(867년과 결정적으로 1054년)이었으며 종교개혁은 가시적인 교회의 일치에 대한 열망에 종지부를 그었다. 연합과 재연합의 시도들이 있었으나 나아진 것은 없다. 30년 전쟁은 교파주의를 고집하는 이들의 욕망에 붙여진 불이었으며 이로써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는 깊은 상처를 입게 되었다. 슈페너 역시 그 시대의 아들로써 로마-카톨릭 교회를 “적 그리스도의 바벨” PD, S. 11.
로 묘사하곤 하였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는 교회의 깨어진 보편성으로 인해 많은 어려움을 겪었던 시대를 살았으며 따라서 이러한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영적인 수단들을 강구하였던 인물이기도 하다.
슈페너의 “경건한 소원”은 특히 옛 개신교 정통주의를 염두에 두고 있다. 루터가 진지하게 투쟁하였던 스콜라주의가 대학의 신학과 논쟁을 장식함으로써 성서는 성령에 의해 문자적으로 기술되었으나 성령의 실제적인 조명은 필요로 하지 않는 영감설에 의해 지탱되었으며 종교개혁의 근본원리인 칭의론에 결정적인 자리를 맡겨놓은 교리적 체계에 대하여는 아무도 문제시하지 않았다. 그러나 소위 “정통”이라는 교리체제 하에서 우선 순위는 이성에 두어졌으며 체험된 기독교 신앙의 문제는 뒷전으로 떠밀려졌다. 그에게 있어 참된 신학은 “경험의 신학 theologia experimentalis”이지 “교리의 신학 theologia doctrinalis” PD, S. 61ff. 비교. Luther, WA XI, 98.
이 아니다. 즉 형식의 앎이 아니라 신앙경험이 중요한 것이다. 학문적인 신학의 근거가 옛 개신교 정통주의의 굴레에서 벗어나려면 올바른 비평의 사유를 필요로 한다. 오늘의 신학 역시 현대 학문의 방법과 이론들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그것이 가져다주는 결과는 신앙의 진정성과 생생한 경험을 도와야만 한다. 우리 시대에 학문적인 신학은 많은 다양성을 갖고 있으며, 전승으로 기어 올린 제도적 장치 신학에 익숙한 많은 목회자들도 갖고 있다. 그러나 루터와 슈페너가 만들어진(가공된) 신앙으로부터 진정한 신앙을 열정적으로 구별지었던 것처럼 참된 신앙은 신학적 연구의 결과물이 아니라, 성령의 사역을 통해 일어난 사건임을 분명히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 학문적인 신학작업은 진정한 경건을 바로 세우되 다만 現세상적인 가능성으로의 신앙, 즉 가공된 신앙을 경시하는 것임을 분명히 한 것이 슈페너의 공헌으로 볼 수 있다. 성령의 도우심으로 성서 위에 세워지는 신앙이 진정한 신앙이며 때문에 그것은 이성이 아니라 마음을 요청하는 것이다.(“... affectum, non intellectum requirit fides”) WA 4, 356.
신학은 그것이 어떻게 표현되든지 간에 그리스도와의 만남을 본래적인 것으로 해야 한다.
슈페너는 성서와 성령의 신학자로 이해되어야 한다. 그는 새로운 가르침을 바라거나 가르치지 않았으며 자신은 루터교회의 충실한 일꾼으로 남았다. 그러나 그의 의미는 적지 않다. 그는 뛰어난 수사학자나 논쟁가는 아니었으나 복음적인 기독교에 대한 명료함은,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이 되심같이(요1:14)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상에서 새로운 삶을 영위해야 함을 역설하였고, 진정한 교회의 보편성은 사랑의 보편성에(벧후1:7) 기인한다고 강조하였다. 체험되지 않는 성서와 제도적 장치 신학이란 기껏해야 껍데기에 불과하다. 또한 우리는 그를 하나님의 일꾼이요 교회의 신학자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는 교회의 영적인 차원을 재발견하였으며 영적 갱신을 위한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이러한 수고에 준비된 평신도들이 등용되었으며 하나님이 교회에 주신 다양한 은사가 나누어지도록 영성을 개발하였다고 할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의 영적인 갱신을 위해 애쓰는 자들은 다음의 물음에 진지한 숙고를 기울여야 한다. “제도적인 교회, 조직화된 그룹들, 전통적인 가르침에 익숙한 구성원들이 어떻게 교회의 구조를 영적으로 변화시켜 갈 것인가? 어떻게 그들이 역동적이며 생동감 있으며 성령의 은사들을 나눔으로써 그리스도의 다스림이 可視化된 공동체를 만들어 갈 것인가?” 이 물음은 살아있는 신앙과 진정한 교회를 회복하려는 이들에게 책임있는 대답을 요청하고 있으며 그리고 우리는 그에 대한 해답을 어느 정도는 슈페너의 “경건한 소원”과 그의 다른 저작들에서 발견할 수 있으리라.
http://cafe.naver.com/modernth/950
IV. 교회와 그의 신학.
기독교적 신앙이란 세상 앞에서, 세상을 위하여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앙의 언어는 필연적으로 하나님 앞에서 책임있는 진술이어야 한다. G. Ebeling, in: RGG 3. Aufl. VI, 767.
이 점에서 교회를 바로 섬겨야 하는 신학의 과제가 형성된다. 철학과 마찬가지로 신학도 학문의 중개자이므로 교회와 신학은 동일한 토대, 즉 예수 그리스도 위에 세워진다.(고전3:11) 신학은 교회를 섬김에 있어 비평적인 기능을 갖는다. 신학은 교회에 항상 진리란 무엇인가? 하는 문제를 제기하며, 세상에서 그리스도를 증거함이 바른지를 묻는다. 이 점에서 슈페너는 신학적 작업이 갖는 중요성과 의미를 크게 부각시켰다. 신학적으로 학문하는 일은 철저히 진리와 연관되어 있다. 신학이 교회를 섬기는 일은 진리의 대적자들을 쳐부수는 것이며 교회를 섬기는 자들을 양육하는 일이다. 신학적 논증은 그것이 어떤 사안에 대해 옳은가, 그른가를 밝혀주는 한에서 그 가치를 지닌다.
성서의 가르침이 왜곡되어서는 안되는 근본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슈페너의 시대는 옛 개신교 정통주의라 불리우던 때로 성서해석이 신앙고백 문서에 연결되어 있었다. 사람들은 성서를 그 자체로 하나의 증빙문서(dicta probantia)로 간주함으로써 교리적인 사안을 위한 보조자료로 전락시키고 말았다. 슈페너는 자기 시대의 바른 신앙을 위한 노력을 가치 있게 보았으나 그에 따른 결점도 날카롭게 지적하였다. “신앙의 근본”을 지키고 신앙의 진리에 대한 동의를 규정하려는 시도 가운데 지나치게 이성에 의지함으로써(convictio intellectus) PD, S. 66.
성서적 근거가 인간적인 호기심으로 가득한 건축물의 토대로 전락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철학적인 방법을 동원하여 바른 신앙을 구축하려는 신학에 그는 사랑이라는 거룩한 열심을 요청하였다. 만일 신학이 세밀한 논증과 성서에 대한 학문적인 각주로 가득한 하나의 교리체계에 불과하다면 그의 본래적인 과제는 곡해되고 말 것이다. 때문에 그는 교리에 대한 그 시대의 열심에 대해 때때로 “성령과 신앙이 없는 이들”이라고 비난하였던 것이다. PD, S. 64.
예로써 헬름슈테트의 학자였던 코르넬리우스 마르티니(1568-1621)의 말을 들어보자. “누군가 논리학과 형이상학을 제대로 배우기만 했다면 그는 단번에 성서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In: C. G. Joecher, Allgemeines Gelehrtenlexikon, Bd. III (1751), S. 227.
슈페너는 바로 이러한 사고에 가장 열정적으로 반대하였던 인물이다. 만일 학문이 “인간 고유의 자연적인 힘과 단지 인간적인 노력”으로만 성서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면 이 경우 신학이란 “육신적인 지혜”와 다를 바 없을 것이다. PD, S. 65.
우리는 슈페너가 당시의 신학적 노력 자체를 무시한 것이 아님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인간적인 敎養학으로서의 제도적 장치-신학이 갖는 의미에 대하여는 그것이 필수적이고 유용하긴 하나 신학의 본질은 아닌 셈이다. 그가 말하는 신학의 본질이란 철저히 “실제적인 태도(몸에 밴 습관과도 같이, habitus practicus)”이다. PD, S. 76.
단순한 지식이나 정보, 고백으로는 바른 신학이 아니다. 진정한 신학은 믿음, 소망, 사랑에 관한 가르침이며 교회에 대해 비평적인 기능을 가지되, 교회의 일이 문자로부터 기인하는 것인지 아니면 영으로부터인지를 묻는다. 슈페너가 이점에서 관심하는 것은 죽은 정통신앙과 삶으로 중재되어지지 않는 학문에 대한 경계인 것이다.
하나님의 영과 연구하는 인간의 정신 사이의 차이를 바르게 이해하지 못하는 단편적인 신학이란 기껏해야 그 핵심에 옛 스콜라주의의 재생에 불과하며 이는 루터가 그렇게도 투쟁해왔던 사안임에 틀림이 없다. 루터가 앞문으로 쫒아내었으나 뒷문으로 슬며시 들어온 스콜라주의 신학은 이제 하나님 자신이 성서의 말씀이 되심으로 새롭게 바뀌어지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스콜라주의가 갖는 학문적인 가치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마음의 문제와는 상관이 없는 가시투성이의 학문(theologia spinosa)일뿐이다. PD, S. 24.
때문에 슈페너는 만일 사도 바울이 오늘날 다시 온다면 많은 신학자들이 그를 이해하지 못할 것은, 그의 지혜는 인간의 작품이 아니라 성령의 조명에 의한 것이기 때문이며 그들이 교리나 윤리 같은 형이상학의 문제에 관심을 가진다 하더라도 자신들의 옛 자아를 바꾸는 일에는 무능하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그는 루터의 다음과 같은 경고도 덧붙여 밝힌다. “진리는 가르침에 의해서가 아니라 많은 논증들에 의해 손상을 입는다.” WA 40/3, 361:“Neque enim docendo, sed disputando amittitur veritas”. PD, S. 64.
학문이라는 이름의 논쟁은 입씨름에 빠지기 쉬우며 결국 주님의 발 앞에 앉아야 하는 꼭 필요한 일을 망각하게 하는 위험에 직면하고야 만다.(눅10:38-42) 우리는 다시 한번 슈페너가 살았던 시기를 염두에 두어야만 한다. 30년 전쟁(1618-1648) 후 많은 신학자들은 논증을 통하여 루터의 신학을 공식적인 기독교로 자리매김하려 하였으며 자연히 “루터처럼 됨”에 관심을 가짐으로써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는 영적인 삶에는 등한시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슈페너는 신학교수들에게 권하기를 학문에서만이 아니라 삶의 안내에 있어서도 모범이 되기를 바랐던 것이다. 신학은 신적인 일을 가르침에 있어(philosophia de rebus sacris) 철학 이상의 것이므로 신학을 공부하는 이들이 항시 명심해야 할 것은 신학 본래의 의미를 체험된 신앙과 불가분리의 것으로 받아들여야만 한다는 사실이다. 진정한 신학은 “성령의 빛에서만” 체득되어진다. PD, S. 71.
만일 이러한 사실이 제대로 인지되기만 한다면 신학과 교회에서 신앙을 파괴하는 허영심은 자리잡지 못하게 될 것이다.
슈페너의 신학수업을 위한 개혁안은 학문적인 철저성과 성령의 실재를 체험함이라는 양자의 調和에 있다. 신학자들과 목회자들은 자신들의 일을 통하여 “육신적인 지혜”와 “성령 안에서의 지식”을 포괄함으로써 복을 전달해주어야 한다. 수업과 설교의 자리에서 이 두 가지 가운데 하나가 결여되면 바른 신앙에 관한 가르침은 그 영향력을 상실하게 된다. 슈페너는 결단코 전문 신학에 반대하지 않았다. 그는 제도 장치로서의 신학과 인격적인 신앙체험이 성령의 역사 안에서 올바른 관계를 형성함으로써 교회의 상태를 회복하려는 의도를 가졌던 것이다. 진정한 기독교는 가르침의 체계나 철학적인 이해구조 속에 그리고 가설적인 연구결과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라 신앙경험 위에 세워진다. 19세기의 저명한 학자요 경건주의 연구가였던 알브레히트 리츨(1889년 사망)은 경험을 하나의 운동으로 간주하고 그 주체를 인간적인 자아로 밝힌 바 있다. A. Ritschl, Rechtfertigung und Versoehnung, 4 Aufl., Bd. 2, S. 6.
그러나 자아는 객체요, 주체인 성령의 영역 안에 있다고 슈페너는 이해하였다. 이는 태양을 피해 숨어버린 사람이 그 열기를 경험할 수 없듯이 신자들이라면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사역에 자기 자신을 내어 맡겨야 하는 것이다. 제도 장치로서의 신학과 경험신학 간의 차이와 대립을 밝히려는 것이 아니라 교회를 바로 섬기는 일에 있어 불가분리의 하나됨을 논하였던 것이다. 신학과 경건을 화해시키고 성서를 교회의 본래의 책으로 재발견한 노력을 우리는 그의 특별한 기여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신적인 말씀과 가르침의 순수성은 많은 서적들과 논쟁들 가운데 보존될 뿐만 아니라 참된 회개와 거룩한 삶 가운데 유지된다.” J. Arndt, Vier Buecher vom wahren Christentum, I, 39.
V. 오늘의 슈페너.
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타눔의 신앙고백에 의할 것 같으면 교회의 보편성(公교회성)은 4개의 본질 가운데 하나이다.(una, sancta, catholica, apostolica) 황제 트라야누스(98-117) 치하에서 사나운 짐승들에게 내어 던져져 순교한 안디옥의 이그나티우스는 서머나 교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계신 곳에 보편교회가 있다” Ignatius, Brief an die Smyrnaeer, VIII, 2. 여기에서 사용된 “카톨릭”이라는 희랍어 단어는 “일반적인/보편적인”의 의미를 가진다.
라고 기술하였다. 그러나 교회의 역사는 분열을 거듭하여 온 것이 사실이다. 교회의 보편성이 깨어진 것은 동-서 교회의 분열(867년과 결정적으로 1054년)이었으며 종교개혁은 가시적인 교회의 일치에 대한 열망에 종지부를 그었다. 연합과 재연합의 시도들이 있었으나 나아진 것은 없다. 30년 전쟁은 교파주의를 고집하는 이들의 욕망에 붙여진 불이었으며 이로써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는 깊은 상처를 입게 되었다. 슈페너 역시 그 시대의 아들로써 로마-카톨릭 교회를 “적 그리스도의 바벨” PD, S. 11.
로 묘사하곤 하였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는 교회의 깨어진 보편성으로 인해 많은 어려움을 겪었던 시대를 살았으며 따라서 이러한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영적인 수단들을 강구하였던 인물이기도 하다.
슈페너의 “경건한 소원”은 특히 옛 개신교 정통주의를 염두에 두고 있다. 루터가 진지하게 투쟁하였던 스콜라주의가 대학의 신학과 논쟁을 장식함으로써 성서는 성령에 의해 문자적으로 기술되었으나 성령의 실제적인 조명은 필요로 하지 않는 영감설에 의해 지탱되었으며 종교개혁의 근본원리인 칭의론에 결정적인 자리를 맡겨놓은 교리적 체계에 대하여는 아무도 문제시하지 않았다. 그러나 소위 “정통”이라는 교리체제 하에서 우선 순위는 이성에 두어졌으며 체험된 기독교 신앙의 문제는 뒷전으로 떠밀려졌다. 그에게 있어 참된 신학은 “경험의 신학 theologia experimentalis”이지 “교리의 신학 theologia doctrinalis” PD, S. 61ff. 비교. Luther, WA XI, 98.
이 아니다. 즉 형식의 앎이 아니라 신앙경험이 중요한 것이다. 학문적인 신학의 근거가 옛 개신교 정통주의의 굴레에서 벗어나려면 올바른 비평의 사유를 필요로 한다. 오늘의 신학 역시 현대 학문의 방법과 이론들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그것이 가져다주는 결과는 신앙의 진정성과 생생한 경험을 도와야만 한다. 우리 시대에 학문적인 신학은 많은 다양성을 갖고 있으며, 전승으로 기어 올린 제도적 장치 신학에 익숙한 많은 목회자들도 갖고 있다. 그러나 루터와 슈페너가 만들어진(가공된) 신앙으로부터 진정한 신앙을 열정적으로 구별지었던 것처럼 참된 신앙은 신학적 연구의 결과물이 아니라, 성령의 사역을 통해 일어난 사건임을 분명히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 학문적인 신학작업은 진정한 경건을 바로 세우되 다만 現세상적인 가능성으로의 신앙, 즉 가공된 신앙을 경시하는 것임을 분명히 한 것이 슈페너의 공헌으로 볼 수 있다. 성령의 도우심으로 성서 위에 세워지는 신앙이 진정한 신앙이며 때문에 그것은 이성이 아니라 마음을 요청하는 것이다.(“... affectum, non intellectum requirit fides”) WA 4, 356.
신학은 그것이 어떻게 표현되든지 간에 그리스도와의 만남을 본래적인 것으로 해야 한다.
슈페너는 성서와 성령의 신학자로 이해되어야 한다. 그는 새로운 가르침을 바라거나 가르치지 않았으며 자신은 루터교회의 충실한 일꾼으로 남았다. 그러나 그의 의미는 적지 않다. 그는 뛰어난 수사학자나 논쟁가는 아니었으나 복음적인 기독교에 대한 명료함은,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이 되심같이(요1:14)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상에서 새로운 삶을 영위해야 함을 역설하였고, 진정한 교회의 보편성은 사랑의 보편성에(벧후1:7) 기인한다고 강조하였다. 체험되지 않는 성서와 제도적 장치 신학이란 기껏해야 껍데기에 불과하다. 또한 우리는 그를 하나님의 일꾼이요 교회의 신학자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는 교회의 영적인 차원을 재발견하였으며 영적 갱신을 위한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이러한 수고에 준비된 평신도들이 등용되었으며 하나님이 교회에 주신 다양한 은사가 나누어지도록 영성을 개발하였다고 할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의 영적인 갱신을 위해 애쓰는 자들은 다음의 물음에 진지한 숙고를 기울여야 한다. “제도적인 교회, 조직화된 그룹들, 전통적인 가르침에 익숙한 구성원들이 어떻게 교회의 구조를 영적으로 변화시켜 갈 것인가? 어떻게 그들이 역동적이며 생동감 있으며 성령의 은사들을 나눔으로써 그리스도의 다스림이 可視化된 공동체를 만들어 갈 것인가?” 이 물음은 살아있는 신앙과 진정한 교회를 회복하려는 이들에게 책임있는 대답을 요청하고 있으며 그리고 우리는 그에 대한 해답을 어느 정도는 슈페너의 “경건한 소원”과 그의 다른 저작들에서 발견할 수 있으리라.
독자 의견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