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건주의와 감상주의
경건주의와 감상주의
http://cafe.naver.com/modernth/113
철학적 계몽주의와 함께 인간 내면의 소리를 강조하면서 중세 말기의 신비주의 (Eckhart, 1260-1327경) 사상을 이어받은 운동이 일어나는데 이를 경건주의라 한다. 인간이란 생각하는 존재일 뿐만 아니라, 감성을 지닌 존재이기도 하다. 경직된 교회의 권위로부터 인간 영혼의 해방을 외친 야콥 슈페너 Jacob Spener (1635-1705)에 의해서 탄생한 경건주의는 18세기 후반에 (1740-1780) 감상주의의 형태로 계승되어 클롭슈토크 Klopstock와 젊은 괴테에게 영향을 미친다.
이성의 힘을 강조하는 합리주의 철학과 인간 내면의 신비로운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경건주의가 서로 대치하는 현상임에는 틀림없으나, 18세기의 정신사적 흐름에 있어서 개인의 자유를 높이고 (시민의식의 양양) 현세지향적인 의식 (Weltfroemigkeit)을 높였다고 하는 점에서는 서로 일치하는 조류이다. 특히 계몽주의 시대의 서정시에는 이같은 두 가지 현상이 서로 구분되지 않은 채 혼합되어 나타난다. 세계에 대한 경건성은 후에 질풍노도문학에 있어서 범신론을 바탕으로 한 고유한 자연감정 (Weltgefuehl)으로 발전하게 된다.
감상주의 Empfindsamkeit
계몽주의 제2단계와 병행해서 발생 질풍노도문학으로 발전, 종교적으로는 경건주의와 연결
Empfindsamkeit: 영국의 L. Sterns의 소설 "Sentimental Journey" (1768)에 대한 독일어 역으로 레씽이 제안. 1740-1780년대에 발전
문학운동으로서의 감상주의는 억압당한 감정을 표현할 경우 문학의 형식적, 내용적 가능성을 풍부하게 한다. "Werther"가 좋은 예이다. 그러나 감수성의 강조는 천박한 주관주의로 전락해 버릴 위험성을 항시 내포한다. 독일의 감상주의는 두 가지 측면을 모두 지니고 있다.
첫째 독일의 계몽주의는 그 편협성으로 인하여 개인의 의식 속에 정서적인 공백을 남겼다는 것
둘째 감정과 주관성의 강조가 정치 사회적 해방운동으로서의 계몽주의와 연관성을 잃을 경우 천박한 통속성으로 전락해 버린다는 것: Wertheriade
질풍노도문학이 표면적으로 계몽주의의 오성문화에 대한 감성문화의 대립으로 나타나는 것은 그들이 계몽주의 운동의 목적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다. 오히려 질풍노도문학의 감정예찬은 계몽주의의 연속선상에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즉 질풍노도문학은 계몽주의의 한 단면으로서 독일적 상황을 잘 암시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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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적 계몽주의와 함께 인간 내면의 소리를 강조하면서 중세 말기의 신비주의 (Eckhart, 1260-1327경) 사상을 이어받은 운동이 일어나는데 이를 경건주의라 한다. 인간이란 생각하는 존재일 뿐만 아니라, 감성을 지닌 존재이기도 하다. 경직된 교회의 권위로부터 인간 영혼의 해방을 외친 야콥 슈페너 Jacob Spener (1635-1705)에 의해서 탄생한 경건주의는 18세기 후반에 (1740-1780) 감상주의의 형태로 계승되어 클롭슈토크 Klopstock와 젊은 괴테에게 영향을 미친다.
이성의 힘을 강조하는 합리주의 철학과 인간 내면의 신비로운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경건주의가 서로 대치하는 현상임에는 틀림없으나, 18세기의 정신사적 흐름에 있어서 개인의 자유를 높이고 (시민의식의 양양) 현세지향적인 의식 (Weltfroemigkeit)을 높였다고 하는 점에서는 서로 일치하는 조류이다. 특히 계몽주의 시대의 서정시에는 이같은 두 가지 현상이 서로 구분되지 않은 채 혼합되어 나타난다. 세계에 대한 경건성은 후에 질풍노도문학에 있어서 범신론을 바탕으로 한 고유한 자연감정 (Weltgefuehl)으로 발전하게 된다.
감상주의 Empfindsamkeit
계몽주의 제2단계와 병행해서 발생 질풍노도문학으로 발전, 종교적으로는 경건주의와 연결
Empfindsamkeit: 영국의 L. Sterns의 소설 "Sentimental Journey" (1768)에 대한 독일어 역으로 레씽이 제안. 1740-1780년대에 발전
문학운동으로서의 감상주의는 억압당한 감정을 표현할 경우 문학의 형식적, 내용적 가능성을 풍부하게 한다. "Werther"가 좋은 예이다. 그러나 감수성의 강조는 천박한 주관주의로 전락해 버릴 위험성을 항시 내포한다. 독일의 감상주의는 두 가지 측면을 모두 지니고 있다.
첫째 독일의 계몽주의는 그 편협성으로 인하여 개인의 의식 속에 정서적인 공백을 남겼다는 것
둘째 감정과 주관성의 강조가 정치 사회적 해방운동으로서의 계몽주의와 연관성을 잃을 경우 천박한 통속성으로 전락해 버린다는 것: Wertheriade
질풍노도문학이 표면적으로 계몽주의의 오성문화에 대한 감성문화의 대립으로 나타나는 것은 그들이 계몽주의 운동의 목적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다. 오히려 질풍노도문학의 감정예찬은 계몽주의의 연속선상에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즉 질풍노도문학은 계몽주의의 한 단면으로서 독일적 상황을 잘 암시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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