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건주의와 엄격주의
경건주의와 엄격주의
http://cafe.naver.com/modernth/71
1) 경건주의
(1) 경건주의
경건주의6)란 교회의 형식과 제도적인 면에 불만을 품고 그리스도교의 살아있는 신앙과 개인적인 신심을 강조하면서 그리스도교를 갱신하려고 했던, 17세기 독일의 루터파에서 일어난 종교 실천 운동이다. 필립 스페너(Philipp Jakob Spener, 1635-1705)가 이러한 사상을 주창했는데, 「경건한 열망」(Pia desideria, 1675)이라는 책에서 6개의 개혁 계획을 제시하고 보다 나은 상태의 교회를 이루고자 하였다. 그리고 프랑크푸르트에 경건회(Collegia pietatis)를 조직하여 이 사상을 전파하였다.
이러한 경건주의 사상은 독일의 프로테스탄트가 지나치게 신조를 이론화하고 경직시킨 것에 반발하여 신앙적인 실천을 강조하였다. 그리고 개인적인 종교 체험과 종교 생활의 존중, 그리고 성서에의 복귀 사상을 바탕으로 이것은 곧 신비주의, 정적주의, 금욕주의로 나타났다.
경건주의 사상은 일반적으로 성서주의를 택하고 보수적이며, 엄격하고 금욕적인 생활을 통하여 종교 생활을 영위하고자 했다. 그리하여 종교를 윤리화하여 계몽 사상을 형성하는데 영향을 주었다. 이러한 점은 슐라이어마허, 칸트 등의 종교 윤리 철학자들에게도 영향을 주었다. 오늘날의 경건주의는 과거와는 달리 프로테스탄트의 정통파와 협력하여 존속하고 있다.
(2) 얀세니즘
경건주의에 선도적인 역할을 한 것은 네덜란드의 얀센(Cornelius Jansenius, 1585-1638)7)이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 1640)를 발표하여 엄격한 윤리와 개혁 정신을 고취시켜 얀센니즘(Jansénisme)8)을 주창한 데서 비롯된다. 얀세니즘은 아우구스티누스의 사상 가운데 원죄, 자유, 은총 등의 문제를 극단적으로 주장하여 비가톨릭적인 요소를 담고 있다. 그의 저서 「아우구스티누스」의 내용 가운데 5개 항은 1653년에 교황 인노첸시오 10세에 의해 이단설로 선언되었다.
얀센은 다음과 같은 그리스도교의 교리를 부정하였다.9) ① 그리스도께서 전인류를 위해 죽으셨다는 점, ② 하느님은 모든 의인들에게 계명을 주고, 그것을 수행할 충분한 은총을 주었다는 것, ③ 신을 등진 인간은 내적인 은총에 반항할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 ④ 선악에 대한 내적 요청은 필연적이라는 것 등.
그 외에도 얀센은 교회 규율을 거부하였는데, 특히 속죄 행위와 영성체에 대한 요구를 거부하였다. 또한 얀센의 주장 가운데는 초자연계를 부정하고, 은총을 운명론적으로 해석하여 은총을 받은 자는 구원되고, 받지 못한 자는 구원받지 못한다는 설을 내세워 이단으로 판결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얀세니즘은 프랑스와 네덜란드에 많이 유포되었으며, 이러한 영향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까지도 가톨릭 신자들의 윤리 생활에 크게 영향을 끼쳤다.
2) 엄격주의
엄격주의(probabiliorisme)10)는 1577년 바르톨로메오(Bartholomaeus de Medina)에 의해 주창된 것으로, 어떤 행위가 도덕적으로 정당성을 갖느냐 갖지 않느냐 하는 의문을 가질 때, 법에 반하는 행위가 법에 따르는 견해보다도 한층 더 많은 이유가 있을 때에만 그 행위를 할 수 있다는 이론이다. 자유롭게 행위 할 개연성이 없다면 법에 따라야 하며, 똑같은 개연성을 갖는다면 법을 준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이론은 18세기 이후 거의 주장되지 않았다.
참고문헌
8) 요셉 후우비/강성위 역, 「가톨릭 사상사」, 207-210쪽. "Jansénisme": Jean Comby, Pour Lire E'Histoire de L'Eglise, tome2, pp. 47-49.
9) "얀세니즘", 「한국 가톨릭 대사전」(1985), 792-793쪽.
10) "엄격 개연주의", 같은 책, 80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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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경건주의
(1) 경건주의
경건주의6)란 교회의 형식과 제도적인 면에 불만을 품고 그리스도교의 살아있는 신앙과 개인적인 신심을 강조하면서 그리스도교를 갱신하려고 했던, 17세기 독일의 루터파에서 일어난 종교 실천 운동이다. 필립 스페너(Philipp Jakob Spener, 1635-1705)가 이러한 사상을 주창했는데, 「경건한 열망」(Pia desideria, 1675)이라는 책에서 6개의 개혁 계획을 제시하고 보다 나은 상태의 교회를 이루고자 하였다. 그리고 프랑크푸르트에 경건회(Collegia pietatis)를 조직하여 이 사상을 전파하였다.
이러한 경건주의 사상은 독일의 프로테스탄트가 지나치게 신조를 이론화하고 경직시킨 것에 반발하여 신앙적인 실천을 강조하였다. 그리고 개인적인 종교 체험과 종교 생활의 존중, 그리고 성서에의 복귀 사상을 바탕으로 이것은 곧 신비주의, 정적주의, 금욕주의로 나타났다.
경건주의 사상은 일반적으로 성서주의를 택하고 보수적이며, 엄격하고 금욕적인 생활을 통하여 종교 생활을 영위하고자 했다. 그리하여 종교를 윤리화하여 계몽 사상을 형성하는데 영향을 주었다. 이러한 점은 슐라이어마허, 칸트 등의 종교 윤리 철학자들에게도 영향을 주었다. 오늘날의 경건주의는 과거와는 달리 프로테스탄트의 정통파와 협력하여 존속하고 있다.
(2) 얀세니즘
경건주의에 선도적인 역할을 한 것은 네덜란드의 얀센(Cornelius Jansenius, 1585-1638)7)이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 1640)를 발표하여 엄격한 윤리와 개혁 정신을 고취시켜 얀센니즘(Jansénisme)8)을 주창한 데서 비롯된다. 얀세니즘은 아우구스티누스의 사상 가운데 원죄, 자유, 은총 등의 문제를 극단적으로 주장하여 비가톨릭적인 요소를 담고 있다. 그의 저서 「아우구스티누스」의 내용 가운데 5개 항은 1653년에 교황 인노첸시오 10세에 의해 이단설로 선언되었다.
얀센은 다음과 같은 그리스도교의 교리를 부정하였다.9) ① 그리스도께서 전인류를 위해 죽으셨다는 점, ② 하느님은 모든 의인들에게 계명을 주고, 그것을 수행할 충분한 은총을 주었다는 것, ③ 신을 등진 인간은 내적인 은총에 반항할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 ④ 선악에 대한 내적 요청은 필연적이라는 것 등.
그 외에도 얀센은 교회 규율을 거부하였는데, 특히 속죄 행위와 영성체에 대한 요구를 거부하였다. 또한 얀센의 주장 가운데는 초자연계를 부정하고, 은총을 운명론적으로 해석하여 은총을 받은 자는 구원되고, 받지 못한 자는 구원받지 못한다는 설을 내세워 이단으로 판결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얀세니즘은 프랑스와 네덜란드에 많이 유포되었으며, 이러한 영향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까지도 가톨릭 신자들의 윤리 생활에 크게 영향을 끼쳤다.
2) 엄격주의
엄격주의(probabiliorisme)10)는 1577년 바르톨로메오(Bartholomaeus de Medina)에 의해 주창된 것으로, 어떤 행위가 도덕적으로 정당성을 갖느냐 갖지 않느냐 하는 의문을 가질 때, 법에 반하는 행위가 법에 따르는 견해보다도 한층 더 많은 이유가 있을 때에만 그 행위를 할 수 있다는 이론이다. 자유롭게 행위 할 개연성이 없다면 법에 따라야 하며, 똑같은 개연성을 갖는다면 법을 준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이론은 18세기 이후 거의 주장되지 않았다.
참고문헌
8) 요셉 후우비/강성위 역, 「가톨릭 사상사」, 207-210쪽. "Jansénisme": Jean Comby, Pour Lire E'Histoire de L'Eglise, tome2, pp. 47-49.
9) "얀세니즘", 「한국 가톨릭 대사전」(1985), 792-793쪽.
10) "엄격 개연주의", 같은 책, 80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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