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건주의의 이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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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프랑케(Franke)의 경건
독일 경건주의의 지도적 인물로서 스페너의 영적 아들이며 궁극적으로 그의 상속자인 프랑케는 본질에 있어 그의 지도자의 신학을 신봉하였다. 스페너처럼 루터-Arndt의 전통에서 자란 프랑케는 스페너적인 기질이 있는 경건주의 자였다.
프랑케의 경건주의는 세가지 강조점에 의해서 특별히 나타난다. 1) 회심의 경험에 특별히 강조점을 둔다. 그리고 오늘날 기독교 경험에 있어 심리학이라 불리는 것에 더욱 일반적인 강조점을 두었다. 2) 기독교 양육, 특히 제자라는 말에 있어서, 훈련과 생활을 위한 규칙을 강조하였다. 3)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에게 선을 행하기 위한 의무 등이다. 이러한 강조점들은 일반적으로 경건주의에서 마땅히 발견되어져야 한다.
프랑케 신학의 중심 주제는 회심과 빈번하게 그것에 수반하는 특히 참회의 투쟁이었다고 종종 말해왔다. 이점에 있어 프랑케와 스페너 사이의 비교는 스페너의 Pia Desideria와 널리 유포되었던 Nicodemus(1701)로 비교될 수 있다. Pia Desideria처럼 Nncidenus는 종교적인 사역을 위해 의도되었고 그리스도의 몸의 형상을 사용한다. 하지만 개혁을 제안하기 보다는 프랑케는 교회의 커다란 문제로서 인간의 두려움을 주장한다. 그러므로 인간의 두려움은 참기독교 신앙의 반대를 만들게 되었다고 Sdchmidt는 지적한다. 그리고 분열된 마음의 치료가 하나님의 깊은 경험에 의해 극복되어져야 한다. 그 문제에대한 이 심리학적 공식화는 사상의 전체 방향을 결정한다.
Manfred Kohl은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스페너의 신생(Wiedergeburt)이 더욱 수동적인 의미의 말인 반면에 프랑케의 개념 현인 회심(Bekehrung)은 능동적인 언어이다. 계 해서 프랑케는 "참회"(Busskampf)에 대해 언급하는데 그것은 영혼 안에서 새로운 사람이 구습의 사람과 싸우는 것이다. 즉, 그는 오직 아주 강한 출생의 고통만이 다시 말하면 Busskampf와 Rene(참회의 형태)가 새로운 사람을 그 낙원으로 가게 할 수 있다고 믿었다. 몇몇의 작가들은 프랑케의 심리학적인 경향에 대해 주의력을 끌어 내렸다. 즉 그의 회심에 따르고 수반되는 과정과 내적 경험에 대한 촛점등에 대해서이다.
프랑케는 기독교에 있어 신생의 교리보다 더 중요한 교리는 없다고 주장하면서 프랑케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삶이란 진실로 새롭게 되어진 것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개인에 있어 하나님의 형상의 진실된 갱신, 비록 그 갱신에 대한 관심이 한번도 그의 전 삶에 나타나지 않았다 해도 그러한 단계에 있어서 사람들은 서 있어야 된다고 말한다.
회심에 부여하는 뛰어나고 영적이며 심리학적인 해석에 있어 아마도 그 자신의 경험을 반영하는 것으로서 프랑케는 다소 스페너와 다르다. Brown이 언급하기를 프랑케의 극적인 회심의 경험과 그의 죄책, 불안, 근심, 그리고 기쁨에 대한 내면적인 분석은 스페너의 신학에서 보다는 그의 경험신학의 더욱 커다란 감정주의와 주관주의에 기인 되었다. 교회론적으로 이것은 스페너에게 있어 친교와 협력과 제자화에 강조를 두는 것과 동떨어져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고 개인주의적이고 보다 더 주관적임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 다음으로 프랑케는 특별히 제자훈련, 교육, 그리고 생활을 위한 규칙등을 강조점을 둔다. 경건주의가 기반을 잡았을 때 Halle는 점차로 경건주의자의 요새가 되었고 프랑케는 교회를 개혁하고 세우는 자라기보다는 조직운동과 교육 개혁자가 되었다. 이러한 점에 있어서 프랑케의 신학과 사역사이의 내적 일관성을 주목한다. 이는 프랑케가 모든 일들을 교육과 제자화(물론 신생에 의해 가능한)로 전환 시켰고, 프랑케의 개혁의 노력은 일차적으로 훈련과 교육에 관계된 것이었다. Kohl은 언급하기를 젊은이에 대한 잘못된 양육, 그것은 그가 모든 타락의 근원이 되는 것으로 여겼던 것으로 단순히 고아들의 궁핍만이 아닌 그의 유명한 고아원의 설립의 이유였다. 프랑케는 적어도 경건주의 원칙에 기초한 새로운 젊은 세대가 일어나도록 시도하였다. 왜냐하면 이것이 그가 신학, 교육이론, 실질적인 모델 제도, 그리고 매우 실질적으로 효과적인 선전 조직망(멀리 떨어진 할레그룹의 동기들에게 제시간에)을 개발한 이유이다. Kohl은 언급하기를 프랑케는 깊은 기독교적인 영향가운데 연장된 성직서임을 통하여 더 훌륭한 시대가 닥쳐올 것을 희망 하였다. 프랑케와 그의 동료들은 이와 같은 목표를 향해서 일을 하였다. 삶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엄격한 훈련을 요구 하면서 말이다.
프랑케는 교회에서 학교로, 즉 교회학에서 교육학으로의 `변환을 주목한다. 우리는 또한 프랑케가 오랜 세월동안(비록 목사이지만) 교육자였다는 것을 기억한다. 그리고 교회에 대하여 그의 초기적으로 형성된 경험이 교구화에 있어서 경건주의적인 신학교이기 보다는 성경 연구적인 종합 신학교의 형태였다. 일반적으로 프랑케가 갱신을 교육개혁을 통해서 오는 것으로 이해한 반면에 스페너는 교회개혁을 통해 이루어 지는 것으로 파악했다. 이들 두가지 접근 방식이 사실상 서로 보완적으로 있어 오는 동안에 그들은 또한 심각하게 차이가 나는 교회론을 반영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프랑케는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에게 선을 행하기 위한 의무수행을 강조하였다.
프랑케는 무한한 정력가요 조직에 천재였다. 그의 글라우카 교회는 목회 충성의 표본이었다. 그의 강의는 해석과 실험으로 교실 - 교회의 연결은 학생들에게 큰 도움이었다. 1965년 '누더기 학교'란 빈민 아동학원을 세운 것이 굉장히 인기여서 그의 유명한 "정규학교"(Paedagogium)로 발전되었다. 상급의 라틴 학교도 세우고 고아원도 세웠는데 모두 다 경건주의적으로 운영했고, 그가 죽었을 때 학생 수가 2,200명, 고아원 재적이 134명이었다. 후년 진료소와 인쇄소를 부설했다. 이상 모든 기관은 자금 없이 시작해 믿음으로 운영했는데, 귀족, 평민이 다 같이 사방에서 도왔다. 또 한 가지 그의 사업이라 할 수 있는 것은 그의 친구 칸슈타인 백작(Karl Hildebrand)이 1710년에 세운 성서 협회(Bible Institute)로 성서의 대량 인쇄, 염가 배부를 목적으로 했는데 오늘까지 고귀한 봉사를 한다.
Ⅳ. 경건주의의 갱신
A. 교회와 갱신
1. 교회 갱신의 개념
갱신이란 말의 어원은 '일신', '부활', '재생'의 뜻이었으며 일반적으로는 '다시 새로와진다'는 변화가 그 의미이다. 이 말과 유사한 언어로는 개혁이란 용어가 있는데, '다시 모양을 갖춘다', '다시 새롭게 뜯어 고친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갱신이란 말이 오해를 사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지금까지의 구조와 제도를 그리고 체제를 완전히 뒤집어 엎어 버리는 혁명과 혼돈되기도 한다는 점이다.
이런 점에서 분명히 해 둘 것은 교회 갱신은 이 모든 체제를 뒤집어 엎는 혁명을 의도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를 새롭게 하여 본래적인 교회, 성서에서 보여주고 제시하는 교회다운 교회로 돌아가자는 운동인 것이다. 갱신이란 말은 개인적으로는 중생을 생각하게 되고, 중생을 기초로 하는 영적인 힘의 회복을 상기시킨다. 즉, 한 개인이 진심으로 회개하여 새로운 존재가 되어지고 거룩한 삶을 살아 가므로 하나님과 생명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을 가르킨다. 한편으로 교회적 시각으로 보면 갱신된 사람들의 모임인 것이다. 따라서 갱신된 사람에서 부터 교회 갱신은 시작된다는 것이 전제가 되고, 사람을 갱신시킬 수 있는 체제와 구조를 도모하는 것이 갱신 운동의 구체화라고 볼 수 있겠다. 교회 갱신이 개인적 회심에만 집중이 되면 갱신 운동이 지속될 수가 없다. 반면에 갱신을 위한 구조적 개혁 체제의 변화에만 주목할 경우에는 소리만 크지 실제적으로는 갱신과는 거리가 먼 과격한 구호로만 끝날 공산이 크다. 이런 점에서 갱신은 성령과 더불어 시작되어야 하며 성서 속에서 그 모델을 발견하고 현실적인 방법으로 접근해야 한다. 신약성서가 보여 준 교회는 개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회개하여 새로운 하나님의 백성의 진정한 공동체에 속하고 계속적으로 확산되어 지는 것을 볼 수 있다. 따라서 교회 본질에 기초한 갱신이 무엇인지를 살펴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2. 교회 본질에 기초한 갱신
교회 갱신의 기본 형태는 성서의 원칙으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이것이 개혁 신앙이다. 루터는 "하나님의 말씀에 조화되지 않는 것이 라면 무엇이든지 교회로부터 물리치고 없애버려야 한다"라고 하였다. 교회 갱신 운동은 먼저 자기 시대의 교회가 성서에서 이탈되어 있음이 인정되어야 한다. 여기에서 갱신의 욕구가 분출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한 교회의 상황을 성서에서 말하는 교회의 본질이라는 거울에 비추어 갱신되어야 할 당위성을 밝혀야 한다.
첫째는 하나님의 새로운 백성, 새 이스라엘이다. 옛 이스라엘과 새로운 이스라엘의 차이점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태도에 달려 있다. 옛 이스라엘은 계약 백성으로서 계약에 충실치 못하였고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지 아니하였는데 반해 새 이스라엘은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였으며, 하나님의 구원 계획에 동참하였다. 새로운 이스라엘에 참예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 계명을 얻어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것이 교회를 구성하는 성도의 모습이어야 한다.
명목상의 신자가 교회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더 이상 구속의 희열이 두드러지게 체험되지 않는 상태라면 교회의 갱신은 필연적이다. 뿐만 아니라 세상 속의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빛과 소금으로 살지 못하면, 본질적으로 교회는 갱신되야 한다.
둘째,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다. 이 말은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지체들이 각기 성령을 통하여 받은 은사를 다양성 있게 발휘하며 한편, 전체의 교회의 몸과 일체감 속에서 조화를 이루는 것을 나타낸다. 하지만 교회가 극히 소수의 교역자나 몇몇 신자들만이 자기의 역할을 할 뿐, 대다수의 평신도가 교회의 객체가 되고 있다면, 그리스도의 지체로서 생명력이 부여되어야 할 것이다. 평신도들 모두는 머리 되신 주님으로부터 소명을 받고 있다. 이 소명을 위해 성령은 각자에게 적절한 은사를 주어 몸의 지체로 기능을 다하게 하시지만 평신도들 대부분이 교회 조직상의 기능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통상적인 봉사 활동을 하는데서 벗어나지 못하고, 또는 그들 혼자 가만히 내버려 두기를 원하다. 교회 갱신은 바로 이들을 깨워 그리스도의 참 지체로서 활동하게 하는데 있는 것이다.
교회는 또한 그 안에 성령이 임재해 계시기에 하나님의 성전이다. 여기서 성전의 개념은 건물이나 장소에 얽매인 것이 아니라 주 안에서 거룩한 공동체로서 성전인 것이다. 이런 교회의 본질을 도외시하고, 현재의 교회는 날로 건물 확장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 모임과 건물이 떨어질 수 없는 관계이긴 하지만 건물 자체에 거룩성을 부여할 수 없다. 건물 중심의 교회는 활동성이 없고 융통성이 없이 경직되어 있으며, 친교가 부족하고 또한 자만심과 계급의식에 가득차 있는 것을 나타내 준다. 따라서 이런 상황에서 교회는 굳이 거룩성을 건물에 부여하려 하기 보다는 기능적으로 이해함을 통해 생동적인 모습으로 바뀌어야 할 것이다. 건물이란 수단이란 차원에서 이해되어야지, 맹목적으로 숭배한다면 그것은 건물 우상주의에 빠지는 것이다. 우리 주위를 보라, 얼마나 많은 교회가 건물에 치중함으로 교회가 해야할 사명을 소홀히 하고 있는가 ? 이제 교회 건물도 교회의 사명을 저해하지 않는 정도에서 건축되어야 할 것이며, 그 건물 구조도 기능적으로 설계를 함으로 교회의 본질을 세우며, 그 사명을 지지해 주는 차원에서 근본적으로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신약교회에서 또 하나의 중요한 본질은 교제 공동체이다. 이 교제는 성령을 통한 하나님과의 교제이며, 성도 간의 사랑의 교제로 하늘나라에서 맛볼 교제의 모형이다. 하지만 오늘날의 교회는 이 친교가 위기를 맞고 있다. 오늘날의 교회는 단지 비인격적인 기구처럼 보일 뿐이다. 일주일에 몇번씩 모임을 갖고 예배를 드리지만, 교제를 나누고 사랑의 입맞춤을 할 수 없는 무겁고 경직된 분위기 속에서 앞을 향해 도열된 의자에 앉아 예배 참석자로서의 역할에 만족할 뿐이다. 17C, 18C 경건주의자들이 가졌던 뜨거운 교제의 모습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다. 이런 구조 속에서 어떻게 '사랑'이란 개념이 자리 잡을 수 있겠는가 ? '사랑'에 대해 아무리 주장하고 외쳐도, 그것을 듣는 성도가 어쩔 수 없는 비인격적인 구조에 얽매여 있는 한, 대 그룹 모임 속에서 방관자가 되어 있는 한, "코이노니아"( )는 불가능하다. 반드시 진정한 사랑의 교제가 이루어져야 교회는 진정한 의미에서 갱신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교회의 목표, 목적이라고 할 수 있는 증거하는 공동체로서의 교회가 될 대, 교회의 갱신은 온전한 갱신이 될 것이다. 교회는 그 자체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다. 소금이란 기능이 뿌려지고 녹아지는 것처럼 교회는 모였으면 반드시 흩어져 증인이 되야 하는 것이다. 뭉쳐진 소금, 녹기를 거부하는 소금, 맛을 내지 않는 소금기둥은 아무 쓸모없어 밟힌다. 오늘날 신자들은 혹 뿌려지기를 두려워 하거나 몇 푼의 선교금을 집어주는 정도에서 뿌려졌다고 자부하고 있진 않는가 ? 이름은 여전도회, 남전도회인데, 그들의 모임이 전도와 전혀 상관 없는 사업만을 계획한다든지, 탁상공론만 하고 있진 않는가? 그래서 다시 사명감 없이 세속의 일원으로 돌아가 전도는 고사하고, 세속의 물결에 빠져 세상에 파송되어진 교회로서의 사명을 망각해 버린다면 교회는 증거 공동체로서의 철저한 반성과 더불어 갱신을 도모해야 할 것이다.
3. 갱신의 모델
이러한 교회 본질에 비추어서 독일의 경건주의자들의 갱신 모델은 무엇인가를 살펴보자. 경건주의자들의 갱신은 첫째 복음을 재 발견한다. 먼저 한 사람 혹은 그 이상의 사람들이 그들이 느끼는 것으로 기독교 믿음 안에서 새로운 활력이 되는 것을 경험적으로 그리고 개념적으로 발견한다. 이 경험은 믿음의 특질 혹은 믿음의 본질적인 핵심에 관한 그들의 사상을 바꾼다. 따라서 복음은 교회의 새로운 모델을 이끌어 낸다. 갱신의 시작은 체험을 얻고 믿음의 확신을 얻은 사람들로 단순하게 구성된다.
둘째 갱신운동은 "교회중심주의"(ecclesiola)로서 존재한다. 즉 이것은 교회 안에 작은 교회(ecclesiola in ecclesia), 좀 더 작고 좀 더 친밀한 표현이다. 이것은 배타적인 의미에서의 진실한 교회로서가 아니라 좀더 큰 전체의 생활 속에 있는 교회의 형태를 나타낸다.
세째 갱신운동은 작은 집단 구조의 몇몇 형태를 이용한다. 이것은 단지 막연한 또는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ecclesiola"가 아니라 지방집회에서의 특별한 소집단 형태를 담당한다. 이것은 전체로서 그리스도교 교회에서의 집단으로서 뿐만 아니라 지방 집회에서의 특정한 소규모 공동체에서 그것 자체를 나타내 주는 좀 더 제한된 소그룹 운동이다. 이 소집단의 크기와 구조가 다양할지라도, 이것들은 일반적으로 일주일에 한 번 정규적으로 만나는 열 명 내외의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
네째 갱신 구조는 선교 지향적이다. 이것은 부분적으로는 교회의 갱신으로서, 그리고 부분적으로는 세계에 대한 증거로서 특별한 목적과 선교의 의미를 부여해 준다. 이것은 믿음과 사랑을 결합하는 그리고 매일의 생활에서 믿음과 연결하려고 시도하는 실제적인 윤리를 강조한 것이다. 여기에서 연구된 운동에서 선교의 의미와 정의는 다소 다양하다. 그러나 세 그룹 모두는 선교의 의미와 정의는 다소 다양하다. 그러나 세 그룹 모두는 선교에 관해서 강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다른 운동들은 선교를 복음전도, 교회연합, 혹은 사회개혁으로 이해하는 반면에 어떤 갱신운동은 그들의 설교를 갱신 자체의 장려 혹은 연장으로 단순하게 본다. 아마 이러한 갱신운동은 선교를 영적 갱신의 단순한 확장보다 더 넓은 의미로 이해한 대부분 사회적 변환이다. 그러나 만약 갱신의 중심 활동력이 타협되거나 통찰력을 잃어버린다면, 사회적 변화의 역할을 뒷받침하는 바로 그 힘은 반드시 잃게 될 것이다.
다섯째 갱신운동은 특별히 독특하고 계약에 기초한 공동체이다. 이것은 모든 교회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안다. 이것은 교회의 불완전한 일임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것은 교회가 진정한 교회의 가시적 형태로서 이해해야 한다. 계약에 기초한 공동체는 교회의 모든 기능을 수행하려는 시도는 아니다. 그러나 서로에 대해 자발적으로 맡겨진 사람의 제한된 공동체이다. 잘 이해된 계약에 기초함으로써 이것은 제자훈련, 심지어는 교회 구성원들 가운데서 배제될 수 있는 위험도 내포된다. 공동체로서의 갱신은 일대일의 관계, 성숙, 그리고 상호 의존을 존중한다. 이것은 단체내에서의 koinonia, 상호 격려, 그리고 훈계를 말하고 있는 성경 말씀을 특별히 강조하고 자신은 교회에서의 이러한 특징을 경험하기 위한 중요한 구조로서 이해한다.
여섯째 갱신운동은 목회와 지도의 새로운 형태에 있어서의 부흥, 훈련, 그리고 연단을 위한 내용을 제공한다. 공동체의 경험으로부터 성령의 선물과 성도들의 성직에 관한 실제적인 강조가 나타난다. 이런 의식은 운동 내에서의 지도를 위한 자연적 필요와 증거의 외부적인 추진을 결합하고 목회의 새로운 형태를 위한 기회와 가능한 한 내용을 제공한다. 같은 모양으로, 이것은 더 많이 제한되고 설립된 교회론적 통로(전형적으로 남자들에게 대해 제한된 교육, 안수)를 통제한 것이 아니라 실제적인 경험과 그룹을 공유한 삶을 통해 나타난 새로운 지도자를 만들어 낸다.
갱신그룹은 지도를 위한 기회와 봉사 그리고 새로운 지도자를 훈련하기 위한 자연적, 실제적 환경을 제공한다. 부분적으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만약 기존의 교회에서부터 끊어지지 않는다면 어울리지 않는 많은 수의 교회 지도자들이 종종 갱신운동의 일원으로써 나타난다(사람들은 종교적인 지위에서 나타난 갱신지도자들을 여기에서 생각한다).
일곱째 갱신운동의 구성원은 매일 밀접하게 사회와 접촉하고 특별히 가난한 자와 접촉한다. 교회갱신운동은 경건주의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이러한 점에서 사실 매우 주목할 만하다. 어떤 갱신 운동은 명백하게 가난한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며 직접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에게 호소한다.
4. 경건주의의 갱신점
제Ⅲ장에서 경건주의자들의 경건 활동과 사상을 살펴 보았지만 본장에서는 그들의 기본 사상을 바탕으로 각 개인의 독특한 사상보다는 독일 경건주의의 인물이라 볼 수 있는 세 사람의 사상을 바탕으로 그들의 무엇을 중심으로하여 갱신을 일으켰는가를 살펴보겠다.
갱신주의의 갱신운동은 무엇보다도 그 성경관에서 집중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독일 경건주의의 창시자 스페너가 저술한 Pia Desideria에서 그가 참 종교의 회복을 위하여 제시한 여섯 가지 제안들 중에서 세가지가 성경에 관한 것들이었다는 사실 하나만 보더라도 그것을 알 수 있다. 스페너의 첫째 제안은 교역자의 설교 가운데서 성경의 내용이 더 많이 그리고 풍부하게 소개되어야 한다는 것이며, 둘째 제안은 성경공부를 위한 여러 모임들을 많이 가져야 한다는 것이었고, 셋째는 말씀의 강도로서의 설교는 이론적이거나 웅병을 과시하기 보다는 일상 생활과 관련되어 영향을 끼쳐야 한다는 제안이었기 때문이다.
종교 개혁가들이 성경을 교리적인 관점에서 읽고 그것에 신앙고백적인 성격을 부여한 것과는 반대로 경건주의는 성경을 경건하게 읽고 삶의 모습을 바꾸어 놓는 결과를 가져올 것을 기대한다. 성경은 하나님의 계시 진리의 말씀으로서 우리의 바른 지식과 신학의 원천이 될 뿐만 아니라 바른 삶과 행실의 원동력이 된다는 것이다. 정통은 정행으로 이어져야 한다.
둘째로 독일 경건주의의 갱신운동은 중생의 강조에서 나타난다. 그것은 신앙과 칭의의 교리보다는 중생과 성화의 교리를 강조함이 그 특징이다. 루터가 회개는 신자의 전 생애에 걸쳐서 진행해야 한다는 발언에 영향을 받은 것도 사실이다. 스페너는 정통 신학의 선포적인 칭의관에서 벗어나서 "칭의된 상태"(condition of justification)를 강조하는 칭의관으로 전향함으로써 칭의의 개념에 성화적인 성격을 부여한 것이 되고 말았다.
중생은 스페너에게 마치 칭의가 루터에 대하여 차지했던 중요성을 차지하였다. "거듭남" 또는 "중생"(Wiedergeburt)의 경험을 절대시 하는 현금의 개신교 내에서의 사조는 그 뿌리를 독일의 경건주의에서 찾아볼 수 있다. 사람들을 중생인과 비중생인으로 분류하는 사고는 믿음의 교환을 자초하기 쉬웠고 칭의의 확실성의 기준을 성화의 삶에 둔 것도 문제였다.
프랑케는 성화의 교리를 [그리스도를 모방]의 삶으로 표현하였고 크리스챤은 그리스도의 형상과 모범을 항상 주목하면서 그리스도와 일치를 도모하는 것만이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길이라고 갈파하였다.
셋째로 독일 경건주의의 갱신 운동을 살펴 본다면 그것은 성령의 내주를 강조하는 것이 그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성령의 내주는 "신적 광명"(das gottliche Licht)이라는 추가적인 개념 때문에 정통 신학에서 말하는 성령의 내주와 사상을 달리하게 된다. "신적 광명"은 각 사람의 마음 속에 존재하는 하나님에 대한 자연적 시작으로서 그리스도와 그의 말씀을 떠나서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그 무엇으로 보았다. 이 "신적 광명"의 개념을 갖고서 신자가 환상을 보고 예언을 하는 등 신앙생활을 하면서 경험하는 바 신비로운 일들을 설명하였다. 경건주의 저술들은 "내주하는 그리스도"라든가 "내면적 기독교"라는 표현들로 가득차 있다. 스페너는 기독교는 본질적으로 "내면적 인간"을 존재하는 종교임을 서슴치 않고 말하였다. 그는 다음과 같은 말을 하였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귀로 듣는 것으로 충분치 못
하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여금 우리 가슴 속
깊숙히 들어오도록 하여 성령님이 말씀하는 것을 큰 감
동과 위안 중에 들어야 한다.
Spener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으로 끝내지 말고 가슴 속에 파고들어 오도록 함으로 마음 속에서 성령께서 역사하시도록 하는 사실을 볼 때 기독교는 "내면적", "내적", "체험적" 종교임을 말한다.
다섯째로, 독일 경건주의의 갱신을 위한 교회관을 고찰한다면 그것은 경건한 소수의 교인들로 구성된 지상 교회를 강조하는 것이 그 특징이 되고 있다. 경건하고 중생한 신자들이 누구인가를 분별하기 어려운 경우에는 독일 경건주의자들은 무형교회를 거론했지만 경건과 신앙의 열정으로서 모범적인 크리스챤의 삶을 사는 사람들의 확인 될 때에는 그들을 중심으로 하는 가시적인 유형교회의 존재를 강조하는 경향을 보였다. 따라서 독일 경건주의자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참된 교회"를 기성교회로부터 분리한 소수의 가시적인 신도의 집단들과 동일시하는 재세례파의 과오를 범한다는 비평을 듣기도 하였다.
스페너는 루터의 "평신도의 제사직"의 개념을 "정신적인 제사장직"(Spiritual Priesthood)의 사상으로 발전시켰다. 스페너를 따르면 정신적인 제사장직은 "예수 그리스도가 모든 신도들을 위하여 획득케 하신 권리요 성령의 기름 부으심으로 말미암아 가능케 하신 것인데 이는 신도들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희생제를 드리고 자신들과 타인을 위하여 간구의 기도를 하고 형제 자매와 이웃들을 위로.권고하는 직분"을 의미한다. 스페너는 강조하기를 "정신적 제사직"은 교역자들에게만 주어진 것이 아니라 모든 신도들에게 주어진 직분이며 권리라고 하였다. 프랑케도 이에 대하여 전적으로 동의하였다. 스페너는 평신도의 "영적인 제사장직"을 강조하면서도 평신도가 세례를 줄 수는 있어도 성찬식을 집례하는 것은 삼가야 한다고 하였다.
여섯째로, 독일 경건주의의 종말론 속에서 본 갱신을 살펴보면 천년기의 존재를 긍정하나 문자주의적 해석함을 기피하는 것이 그 특징인 듯 보였다. 스페너는 전천년재림론을 거절하였고 이중 부활의 교리에 대하여서도 회의하였다. 그러나 영생복락이 아니면 영원한 멸망이 뒤따르는 최종 심판이 있을 것을 믿었고 지옥의 존재를 의심하기에는 성경의 증언이 너무 확실한 것으로 생각하였다.
스페너의 종말론은 현세 부정적이기보다는 미래 지향적인 성격을 띤 것이 확실하였다. 그는 종말론을 미래의 역사의 차원으로 유도하였고 그 결과 20세기에 등장한 "구원 사회파"에 대하여 큰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그리스도의 나라는 미래에 성취되지만 그 시작은 현재의 역사 가운데서 태동한다는 생각은 교회의 갱신을 도모하며 복음전파와 선교의 열정을 북돋아주며 자선사업과 사회정의의 구현을 위하여 힘쓰도록 경건주의자들을 이끌어 주었다.
일곱째로, 독일 경건주의의 윤리를 통한 갱신은 사회 윤리보다는 개인 윤리의 영역에 치중하였고 선한 삶을 믿음의 열매로 보기 보다는 믿음의 증명으로서 절대시하는 준법주의적인 사고의 작용이 그 특정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리스도인의 삶을 행위 규범들을 지키는 것과 동일시하였으며, 기독교를 미니 윤리(Mini-ethics)로 축소하고 그리스도의 제자로서의 자격을 몇 가지 "하지 말라"(주초를 하지 말라, 사교춤을 주지 말라, 도박을 하지 말라)의 시험에 합격함으로써 획득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현금의 보편적인 경건주의적 윤리관의 씨앗이 이미 독일 경건주의자들의 윤리사상 가운데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스페너의 윤리를 통한 갱신은 자선 사업에 있었고 사회적, 경제적 현실의 구조적 개선에는 쏠리지 않았다고 하는 해석이 꽤 유력하기는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는 것을 우리가 스페너의 생애의 활동 가운데서 확인할 수 있다. 그가 프랑크프르트와 베르린에 있으면서 30년 전쟁의 결과로서 최악의 경제적 상황에서 고통을 당하고 있는 많은 독일인들을 위하여 사회복지 프로그램을 수립하기 위하여 힘을 경주한 것은 그 반증이 될만한 역사적 사례라고 할 수 있겠다.
독일 경건주의는 영미의 청교도주의(Puritanism)처럼 "거룩한 공화국"의 건설을 위한 정치 참여와 사회적 활동을 하는 일에 있어서 큰 업적을 남지기 못하였다. 그러나 당시의 기성 교회인 루터파 교회보다 훨씬 강도 높은 사회적 관심을 보였고 그들(독일 경건주의자들)의 도덕주의적인 고행적 삶의 경향이 자선 사업과 국내외 선교 활동의 열기로서 시정, 보완되었다. 그들의 보편적, 문화적 무관심은 미래의 역사에 초점을 맞추는 그들의 종말론적 신앙으로 말미암아 점차적으로 개선되어 갔다. 그리고 기독교적 문화 갱신에 대한 굳은 의지를 발휘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그러나 독일 경건주의자들은 이 세상이 제공하는 각종 쾌락에 대하여 부정적인 입장을 분명히 취하면서 엄격한 규율을 가르쳤기 때문에 그들의 저술들과 도덕적 교훈들을 읽을 때는 금욕주의자라는 인상을 강력히 받지 않을 수 없다. 예를 들건대, 프랑케는 제자들에게 가르치기를 주초와 무도회에 가는 일과 도박하는 일을 삼가야 할 것은 몰론 사람들과 이야기 할 때에 자기 자신에 관하여 이야기하는 일을 삼갈 것과 웃음을 웃을 때에도 어리석은 농담이나 부질없는 일로 웃는 것은 잘못이며, 책을 읽을 때에도 시간을 보내기 위하여 쓸모없는 책들을 읽는 일을 하지 않아야 한다고 하면서 생활 속에서 경건 생활을 통한 갱신을 도모하였던 것이다.
B. 독일 경건주의의 갱신이 대륙에 미친 영향
독일의 경건주의는 그들만이 갱신을 추구하지 않았다. 그들 내부의 갱신 뿐만이 아니라 각 분야에 갱신을 일으켰다. 그리고 이 갱신 운동은 대륙에로 확산되었다.
1. 선교에 미친 갱신
독일 경건주의 운동이 직접적이고 가장 큰 소산이라고 하다면 그것은 선교 운동을 일으켰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영적 생활에 깊이 들어간 경건주의 지도자들이 흑암에 사는 사람들을 빛으로 인도하려는 열성이 생긴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경건주의는 각국으로 퍼져 나갔는데 이것이 처음으로 뿌리 박은 곳은 스칸디나비아 반도이었다. 그리하여 노르웨이에서는 그린랜드로 초대 선교사 한스 에게데(Hans Egede)와 노르웨이의 위대한 부흥가 한스 닐슨 하우게(Hans Nielson Hauge)를 배출하였다. 특히 에게데는 그린랜드 사람들이 자기와 같은 한 민족이라는 생각이 들어 1721년에 46명을 거느리고 그린랜드로 떠났다. 그러나 거기 사는 사람들은 에스키모인들이었고 자 의 동포들은 다 죽고 없었다. 그러나 그는 불굴의 용기를 헤쳐나가 먼저 글자도 없는 에스키모어를 배워 4복음서를 번역하여 출판하였으며 1760년에는 에스키모어의 문법책을, 그리고 1776년에는 마침내 신약성경 전부를 출판하였다. 이와같이 그린랜드의 선교는 경건주의의 영향을 받은 에게데 부자(父子)에 의해서 선교되었으며 수세대 후에는 에스키모족 대부분이 기독교 신앙을 갖기에 이르렀다.
덴마크에서는 그 나라 왕이 할레 대학의 프랑케에게 인도에 있는 자기 나라 식민지로 보낼 선교사를 요청하였다. 할레 대학에서는 서슴치 않고 이를 수락하여, 할레의 두 선교사를 덴마크가 인도로 파송하게 하였는데 곧 바올로매우 치겐발크(Batholomew Ziegenbalg)와 헨리 플루차오(Henry Pluschau)가 1705년에 인도로 가게 되었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덴마크 할레 합동 선교사업의 시초이었다. 그 후에 여러 다른 선교사들이 인도로 파송되었다. 그리하여 18C 할레대학은 60명의 선교사를 인도에 공급하였던 것이다. 특히 B. Ziegenbalg의 언어 솜씨는 놀랍게 발전해 3년만에 신약성서를 인도 안에서 쓰는 언어 중 어떤 언어로도 변역할 수 있을 정도가 되어 타밀어로 첫 번역을 하였으며 1 14년에 완결된 신약성경이 나왔다.
이들의 선교 원칙을 보면 첫째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교육의 필요성을 느끼어 교회와 학교의 병행을 강조했으며 둘째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읽게 하려면, 그들이 글자로 기록된 말씀이 있어야 된다는 필요성을 느끼어 성경번역에 착수하였다. 세째로는 복음은 주민들의 정신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기초로 하여 전파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으며, 네째로는 선교의 목적은 명확히 개인적인 개심이어야 한다. 다섯째로는 가급적이면 속한 시일내에 인도인 교역자를 가진 인도교회를 출현시켜야 한다는 등의 원칙을 나름대로 세우고 일하였다.
그리고 다른 지방으로 간 선교사들도 많았다. 그래서 경건주의 운동의 가장 획기적인 공헌은 역시 이들의 해외 선교, 곧 현대선교를 이들이 착수하여 진행시킨 사실이다. 이것은 아무리 높이 칭송해도 지나치다고 할 수 없는 것이다. Moyer가 "경건주의가 성행된 기간은 비교적 길지 못하였지만 그로 인하여 생긴 전도 정신과 선교 정신은 여러 세대에 걸쳐서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말한 바와 같이 그 연대기는 나열할 수 없지만 이 선교의 여파는 언더우드나 아펜셀러를 통하여 우리 나라까지도 밀려 온 것이다.
2. N.V. Zinzendorf의 모라비안 운동에 끼친 영향
니콜라우스 루드비히 폰 진젠도르프 백작은 심오한 신앙적 확신에 가득 찬 사람으로서 할레대학에서 공부하였다. 할레대학에서 수학하는 동안에 그는 경건주의에 큰 감화를 받았으며, 항상 경건주의의 빛 아래서 기독교의 본질을 이해하였다. 1 722년 박해를 겪고 있던 보헤미아의 형제회가 그의 초청을 받고서 삭소니에 있는 그의 영지 내에 정착하게 되었다. 진젠도르프는 처음부터 이 공동체의 일원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의 진지한 신앙심과 그의 천부적인 성격이 결합하여 급기야는 이 공동체의 지도자가 되고 말았다. 이에 진젠돌프의 영토 내에 있는 헤른후트(Herrnhut) 마을에 그들의 정착촌이 성립되게 되었다.
대부분의 경건주의자와 비슷하게 진젠도르프는 루터파의 신앙 정통을 따랐으나, 때로는 루터파 정통주의의 딱딱한 기질을 반대하기도 했다. 그러므로 모라비안들도 [아우구스부르크 신앙고백]을 그들의 신앙선언으로 받아들이면서도 신학적인 이론 정립보다는 헌신적이며 도덕적인 삶을 최우선적으로 고수하였다. 이들은 하나님은 자연적이거나 혹은 철학적인 수단으로 우리에게 알려질 수 없고, 그리스도 안에서의 계시를 통해서만 알려진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리스도 안에서 신학의 최종적인 총화를 보았다.
모라비안이 갖는 의의는 숫자적 열세와 족히 비교될 수 없다. 그들의 선교에 대한 관심은 세계 각 곳에 기독교 신앙을 퍼뜨리는 큰 결과를 가져왔으며 이것이 선교하는 곳곳마다 감화를 많이 주어 영적 후손들을 성장시켰다. 이들과 나란히 선교하던 다른 개신교 교회들까지도 이들의 영적 감화를 받았다.
또 어떤 전기 작자가 말한대로 "그의 정렬 곧 예수께 향하는 뜨거운 사랑과 사랑의 단체로서의 그의 형제단을 확립하려는 정렬은 그의 형제단을 믿음의 단체라기보다도 경건주의의 단체라 할 수 있다. 이 경건주의는 주로 그리스도교의 내적이며 개인적인 성격을 가르치는 것이었다.
3. J. Wesley의 감리교 운동에 끼친 영향
경건주의가 영국에 전래된 것은 모라비안들에 의해서 된 것이지만 그것이 영국 교계에 커다란 영향을 끼치게 된데에는 웨슬레의 힘이 매우 컸었다.
웨슬레는 1703년 6월 17일에 영국교회 목사인 아버지 사무엘 웨슬레와 어머니 수산나 사이에서, 런던에서 북으로 약 400리 떨어진 엡워드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려서부터 경건의 훈련을 받으면서 자라났다. 어렸을 때부터 받은 이 경건의 훈련은 후에 그가 위대한 영국의 종교적 지도자가 되는 데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그는 옥스포드 대학에서 성결클럽(Holy Club)을 만들어 경건훈련을 하였다. 그의 동생 찰스 웨슬레(Chales Wesley)와 휫필드(White field)도 이 클럽의 회원이었다. 클럽은 내적으로는 경건연습과 영적 수양을 목적으로 하는 동시에 외적으로는 복음운동에 전력을 기울였다. 이럴 즈음에 이 단체로부터 북미 개척 선교사 선발 청원에 있어서 웨슬레 형제가 파견되게 되었다. 마침 그들이 타고가는 배에는 모라비안파 선교사 26명이 감독 데이빗 니취만(David Nitschmann)의 인도를 받아 역시 죠지아로 가고 있었다. 웨슬레는 그들에게 독일어를 배우게 되었고 또한 풍랑을 만나 위험에 처했을 때에 당황하지 않고 찬송을 부르며, 평화롭고 침착하게 행동하는 모라비안들을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 그리고 죠지아에 있는 동안에도 스팡겐버그(Spangenberg)와 모라비안교도들과 접촉하게 되어 그들의 순전한 믿음과 개인적인 경건과 기쁨에 찬 마음을 보면서 자신과 대조해 보는 계기도 가질 수 있었다. 국에 돌아오자 웨슬레는 모라비안들을 찾아가서, 때마침 영국에 와 있던 Peter Bohler를 소개받았다. Bohler는 웨슬레의 신학형성에 큰 도움을 주었다.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는 것과, 온전한 성결과 성령의 내적 증거는 선행이나 인격에 의한 것이 아니고 신앙에 있음을 강조하였고 따라서 이상의 모든 체험은 순간에 얻는다고 가르쳤다.
그러던 중 "올더스케이트"(Aldersgate)에서 열린 모라비안파의 기도회에 참석하였다가 루터의 로마인서 서문을 읽을 때 홀연히 회심하여 거듭나는 경험을 얻게 된 것이었다. 웨슬레의 일기에는 그때의 경험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이상스럽게 내 마음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구원을 위하여서는 그리스도를, 오직 그리스도만을 의
지해야 된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내
죄를 나같은 사람의 죄까지도 다 처리하셨다는 것과
죄와 사망의 법에서 내가 구원받았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그리하여 웨슬레는 두 가지를 강조하였는데 첫째는 회심의 정서적 경험으로서의 '신생'이었고, 둘재는 그리스도인의 완전 성화이었다. 또한 지금 실제로 죄를 벗고 성결한 생활에 들어가지 않으면 안될 것을 강조하였다.
한편 웨슬레는 올더스게잇 경험을 한지 3주일이 채 못되어 모라비안 교도들의 신앙을 좀 더 이해하고자 Herrnhut를 방문하여 Zinzendorf와 두 주일을 지냈다. 이 후 Herrnhut를 떠나 영국에 돌아오면서부터 웨슬레는 그의 위대한 전도사역을 시작하였다. 웨슬레의 복음운동은 인간 내심의 혁신운동이요, 둘째는 교회혁신의 복음운동이었다.
그리고 웨슬레는 죽을 때까지 국교 곧 성공회에서 떠나지 않고 계속해서 그들과 관계를 계속 보존하려 하였지만 다만 그의 후계자들이 역사적 형편의 요청에 못이겨 감리교라는 새 교파를 파생케 했던 것이다. 결국 웨슬레의 감리교 운동도 경건주의의 맥 하에서 이해되어질 수 있는 것이다.
4. 미국의 대각성 운동에 끼친 영향
서기 18C 동안에 북아메리카의 영국 식민지에서는 유럽에서 얼마 전에 일어났던 것과 유사한 개인 경건에 관한 각성이 여러 면에 일어나고 있었다. 이 두 곳의 운동에는 어느 정도 연관성이 있었다. 조지 휘트필드는 신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설교가였으며 프란시스 에스베리(Francis Asbury)와 다른 사람들이 대서양을 건너가서 웨슬레의 가르침을 들여왔었던 것이다. 그러나 또한 식민지에는 경건주의자 모라비안, 감리교 주의자들이 보였던 것과 유사한 경건을 불러일으킬 만한 많은 조건들이 잠재하고 있었다. 이 곳에서도 신앙은 교회와 정통성의 틀 안에 갇혀서 깊이 빠져 있었다. 이런 상황에 대한 응답으로서 유럽의 신앙인들이 개인의 경건과 신앙을 주장하였던 운동과 비슷한 움직임이 일어났었다. 그러나 유럽의 운동과 다른 점은 이러한 각성이 모든 교파를 초월함으로써 미합중국을 형성하기에까지 이르게 될 개신교 기독교를 형성하게 된 사실이다.
그들의 신학에서 "대각성"이라는 공통적인 주제 아래 포괄적으로 모든 의견들을 다 포섭하였다. 그렇지만 실제적인 면에서는 회심, 개인적 체험, 성경에 대한 개별적인 연구, 열광적인 에배에 대한 갈망 등을 강조하는 점에서 다같이 유사하였다.
죠나단 에드워드, 죠지 휘필드 및 그 밖의 위대한 설교자들에 의하여 뉴잉글랜드에서 일어났던 대각성 운동은 현대에 있어서 가장 유명한 종교운동이었다. 이 운동은 회의주의와 불신앙 사상과 더불어 교회가 큰 싸움을 하는 중에 일어난 것으로서, 당시에는 독일에서는 진젠돌프 백작의 지도 밑에 "헤른후트"(Herrnhut)부흥운동이 일어 났었고, 영국에서는 웨슬레 지도 밑에 운동이 일어났던 시대였다.
이 대각성은 처음에는 1730년 쯤 펜실바니아에 있던 메노나이트파, 퀘커파 및 모라비안파에서 나타났는데, 그 다음에 화란 개척 교회의 Theodore Frelingheusen의 부흥 설교와 장로교인인 Gilbert Tennant의 부흥설교에 의하여 더욱 발전되었다. 그후 1734년 메사츄세츠주 노담론에 사는 백성들이 죠나단 에드워드(Jonathan Edwards)의 지도를 받아 부흥운동이 일어났다. 그는 1717년 예일의 학생이었다. 그는 록크(Lock)의 철학에 큰 영향을 받았음을 그의 신학적 방법론에서 알 수 있다. 수년 후에 그는 웨슬레의 체험과 유사한 경험을 하게 되는데, 그의 경험을 하나님의 압도적인 영광에 집중되어 있었다. 이러한 경험과 동시에 그의 교육은 그로 하여금 확고한 칼빈주의자가 되게 했으며, 특히 선택론에서 더욱 그러했다. 동시에 대각성 운동의 가장 웅변적인 연설가로서 그는 기독교인의 삶을 가장 정당하게 이해할 수 있는 실마리는 하나님의 선택이라고 설교하였다.
그의 신학적 입장은 인간의 사고나 전통 또는 습관적인 것들을 신학의 우선순위로 두는 것을 단호히 배격하는 경향을 보였다. 이러한 그의 신학적 사고는 당시의 교인의 자격문제를 강조하는데서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 이들은 자신들의 영적인 타락과 도덕적인 무질서를 그대로 방치하면서 선조들의 신앙을 지켜주기 위한 방관적이면서도 피동적인 신앙형태가 난무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때 에드워드는 자신의 신앙생활에서 얻어지는 종교적 체험이 없는 교인은 정상적인 교인이 될 수 없다는 선언을 하면서 "신앙의 차이란 오직 체험적 신앙의 유무에 있다"는 말을 하게 되었다. 이러면서도 이러한 신앙을 소유하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교회의 출석은 허용할 수 있으나 성례전의 참여는 허락할 수 없다는 강경한 노선을 걷고 있었다. 그러면서 개인의 구원에 대하여 절대적인 관심을 기울였고 회개의 필연성과 그 운동을 일으키는데 주안점을 두었다. 이는 유명한 "분노하신 하나님의 손에 있는 죄인들"(Sinners in the hands of angry God)이라는 설교를 하여 대각성운동의 선구적 폭탄을 터뜨리게 되였다.
이와 같이 회개와 중생체험을 강조하는 에드워드를 중심한 미국의 대각성운동이나, 18C 말 19C초에 일어난 두번째의 대각성 곧 대부흥운동은 모두 그 뿌리를 경건주의에 두고 있는 것이다.
특히 두번째 대각성 운동의 특징인 성경말씀의 설교, 개인의 기도 및 단체적으로 모이는 기도회 강조, 중생의 필요 및 하나님께 대한 순종은 경건주의의 특징과 일치하며 이들이 벌린 박애사업, 교육사업, 선교에 대한 열정등은 Halle대학의 활약과 비슷한 것이다. 따라서 경건주의는 부흥운동의 저변에서 확고한 뿌리로 지금까지도 늘 남아 알게 모르게 깊은 영향을 끼치는 것이다.
Ⅴ. 결 론
A. 내용 요약
본 논문을 통하여 17 - 18C 독일 경건주의가 교회 갱신에 미친 영향에 대해서 고찰하였다. 역사적 운동으로서의 경건주의는 17C 후반부터 18C 전반 50년 동안에 있었던 독일의 Arndt에서 시작하여 스페너와 프랑케를 중심으로 한 갱신 운동이다.
경건주의가 발생하게 된 시대적 배경은 30년 전쟁에서 찾아 볼 수 있다. 30년 전쟁으로 독일은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몹시 불안하였다. 이로 인하여 사회와 도덕이 타락하였고 성직자들까지도 타락하게 되었다. 성직자들은 성경을 교리와 생활의 표준으로 삼기보다는 신조와 독단적 교리에 집착한 나머지 영적인 감정과 고결한 실제 생활을 소홀히 하였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개혁과 갱신의 필요성을 느끼고 Arndt와 Spener와 Franke가 경건주의 운동을 일으킨 것이다.
Arndt는, 설교자는 양떼를 먹이기 시작하기 전에 "먼저 자신을 조심해야 한다"고 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영적 생활을 개발하는데 부지런해야 하고 매일 기도하면서 성경 연구가 필요하다고 하였다. 그는 [진정한 기독교]라는 책을 펴내 종교의 부패성에 대해 갱신을 일으켰다. 그는 경건주의적이고 실존주의적인 구원 체험을 강조함으로 갱신을 일으킨 것이다.
스페너는 Arndt의 "진정한 기독교"라는 경건 서적으로 읽기 시작해서부터 그의 경건운동이 시작하였고 그는 평신도들의 신앙 생활을 장려한 "경건회"(Collegia-Pietatis)를 설립하여 거기에서 성경과 경건 서적을 읽음으로 경건 운동을 시작, 갱신에 앞장섰고, 그는 "경건한 소원"(PIA DESIDERIA)을 지어 대담하고 완전한 갱신 program을 제시하였다. 그는 PIA DESIDERIA에서 성경 읽기를 강조하였고 신생(New Birth)과 영적 제사장직을 강조하여 갱신을 일으켰다.
Franke는 스페너와 마찬가지로 Arndt의 경건 분위기에서 경건 활동을 하였다. Franke는 전 유럽의 경건 운동의 본산이라고 할 수 있는 할레(Halle) 대학에서 가난하고 부도덕의 생활에 빠져있던 소외된 대중들에게 교육과 자선의 손길을 뻗쳤다. 그리하여 독일 교회에 새 생명을 불어 넣어 주었고 또한 그리스도교로 하여금, 생명이 없는 하나의 전통이 아니라 생명이 있는 실제의 종교가 되게 하였다.
독일의 경건주의는 복음을 재 발견하여 "교회 안의 작은 교회"(ecclesiolae in ecclesia)을 도입 성경 공부 모임을 통하여 적은 수에게 관심을 기울여 그들에게 성경 읽기를 강조하였고 중생에 대한 체험을 강조하여 생명력 있는 삶을 하게 함으로 교회에 갱신을 일으킨 것이다. 경건주의의 갱신이 선교에 크게 영향을 미쳤고, Zinzendorf의 모라비안 운동과 Wesley의 감리교 운동과 미국의 대각성 운동에 영향을 끼침으로써 갱신을 일으킨 것이다.
B. 제 언
독일의 경건주의는 독일이 30년 전 정치, 경제, 종교, 사회적으로 어려운 상황 속에서 그들을 종교, 사회적으로 안정을 일으킨 것은 몇가지 중요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 성경 공부 모임을 통한 교회 안의 작은 교회가 갱신 되었다는 점이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딤후 3:16)과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히 4:12)에 있는 바와 같이 성경 말씀이 그들의 심령에 파고 들어 변화되고 생명력 있는 삶을 살게 되었다.
둘째, 신생의 강조이다. 신앙인들이 거듭나는 체험이 없이 살 때 무기력하고 생동감이 없다.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확신 속에서 그들이 생명을 소유했을 때 진정한 갱신이 이루어졌다.
셋째, 영적 제사장직이다. 성도들을 위하여 규칙적이며 공적인 실행이 어떤 목적을 위해 임몀된 목사들에게 맡겨졌다 할지라도 그러한 일은 평신도들에게도 수행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평신도들로 제사장으로써 직무가 수행된다고 할 때 더욱 열심히 교회를 위하여 일할 것이다.
넷째, 경건주의자들은 사회의 상황을 무시 하지 않았다. 그들은 오히려 사회에 관심을 기울였다. 그들 내부의 경건 활동 뿐만 아니라 사회의 노인 문제, 기아 문제, 청소년 문제, 기타 여러 부분에 걸쳐서 관심을 기울였다.
이상을 고려해 볼 때 교회의 갱신은 외적인 교회의 확장에 있는 것도 중요하지만 교회 내부의 사람들이 하나님 말씀 속에서 말씀에 대한 확신과 그들의 체험이 있어야 교회는 갱신 된다고 하는 것이다. 교회의 행사나 program에 대한 집착에서 이젠 성경 공부 그룹의 활성화와 성경의 깊이 있는 묵상 훈련 말씀의 경험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하며 한국 교회가 내적 갱신에 신경을 쓸 때에 비로소 진정한 교회가 되리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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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정기 간행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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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혁. "독일 경건주의 운동 소고", [신학지남] 185호 (1979 가을).
민경배. "영국의 경건주의", [복된말씀] 21권, 41호, 1974.
이천영. "웨슬레 복음운동의 사적 고찰", [신학과 선교] 1권, 1972.
5. 논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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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장흠, "교회 갱신에 있어서 목사의 역할에 관한 연구". 아세아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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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위근, "교회 갱신의 과제와 그 방법에 관한 연구". 아세아 연합신학
대학원, 1987.
6. 사 전
Encyclopaedia Britunnica, 1975ed. "Pietism"
3. 프랑케(Franke)의 경건
독일 경건주의의 지도적 인물로서 스페너의 영적 아들이며 궁극적으로 그의 상속자인 프랑케는 본질에 있어 그의 지도자의 신학을 신봉하였다. 스페너처럼 루터-Arndt의 전통에서 자란 프랑케는 스페너적인 기질이 있는 경건주의 자였다.
프랑케의 경건주의는 세가지 강조점에 의해서 특별히 나타난다. 1) 회심의 경험에 특별히 강조점을 둔다. 그리고 오늘날 기독교 경험에 있어 심리학이라 불리는 것에 더욱 일반적인 강조점을 두었다. 2) 기독교 양육, 특히 제자라는 말에 있어서, 훈련과 생활을 위한 규칙을 강조하였다. 3)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에게 선을 행하기 위한 의무 등이다. 이러한 강조점들은 일반적으로 경건주의에서 마땅히 발견되어져야 한다.
프랑케 신학의 중심 주제는 회심과 빈번하게 그것에 수반하는 특히 참회의 투쟁이었다고 종종 말해왔다. 이점에 있어 프랑케와 스페너 사이의 비교는 스페너의 Pia Desideria와 널리 유포되었던 Nicodemus(1701)로 비교될 수 있다. Pia Desideria처럼 Nncidenus는 종교적인 사역을 위해 의도되었고 그리스도의 몸의 형상을 사용한다. 하지만 개혁을 제안하기 보다는 프랑케는 교회의 커다란 문제로서 인간의 두려움을 주장한다. 그러므로 인간의 두려움은 참기독교 신앙의 반대를 만들게 되었다고 Sdchmidt는 지적한다. 그리고 분열된 마음의 치료가 하나님의 깊은 경험에 의해 극복되어져야 한다. 그 문제에대한 이 심리학적 공식화는 사상의 전체 방향을 결정한다.
Manfred Kohl은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스페너의 신생(Wiedergeburt)이 더욱 수동적인 의미의 말인 반면에 프랑케의 개념 현인 회심(Bekehrung)은 능동적인 언어이다. 계 해서 프랑케는 "참회"(Busskampf)에 대해 언급하는데 그것은 영혼 안에서 새로운 사람이 구습의 사람과 싸우는 것이다. 즉, 그는 오직 아주 강한 출생의 고통만이 다시 말하면 Busskampf와 Rene(참회의 형태)가 새로운 사람을 그 낙원으로 가게 할 수 있다고 믿었다. 몇몇의 작가들은 프랑케의 심리학적인 경향에 대해 주의력을 끌어 내렸다. 즉 그의 회심에 따르고 수반되는 과정과 내적 경험에 대한 촛점등에 대해서이다.
프랑케는 기독교에 있어 신생의 교리보다 더 중요한 교리는 없다고 주장하면서 프랑케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삶이란 진실로 새롭게 되어진 것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개인에 있어 하나님의 형상의 진실된 갱신, 비록 그 갱신에 대한 관심이 한번도 그의 전 삶에 나타나지 않았다 해도 그러한 단계에 있어서 사람들은 서 있어야 된다고 말한다.
회심에 부여하는 뛰어나고 영적이며 심리학적인 해석에 있어 아마도 그 자신의 경험을 반영하는 것으로서 프랑케는 다소 스페너와 다르다. Brown이 언급하기를 프랑케의 극적인 회심의 경험과 그의 죄책, 불안, 근심, 그리고 기쁨에 대한 내면적인 분석은 스페너의 신학에서 보다는 그의 경험신학의 더욱 커다란 감정주의와 주관주의에 기인 되었다. 교회론적으로 이것은 스페너에게 있어 친교와 협력과 제자화에 강조를 두는 것과 동떨어져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고 개인주의적이고 보다 더 주관적임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 다음으로 프랑케는 특별히 제자훈련, 교육, 그리고 생활을 위한 규칙등을 강조점을 둔다. 경건주의가 기반을 잡았을 때 Halle는 점차로 경건주의자의 요새가 되었고 프랑케는 교회를 개혁하고 세우는 자라기보다는 조직운동과 교육 개혁자가 되었다. 이러한 점에 있어서 프랑케의 신학과 사역사이의 내적 일관성을 주목한다. 이는 프랑케가 모든 일들을 교육과 제자화(물론 신생에 의해 가능한)로 전환 시켰고, 프랑케의 개혁의 노력은 일차적으로 훈련과 교육에 관계된 것이었다. Kohl은 언급하기를 젊은이에 대한 잘못된 양육, 그것은 그가 모든 타락의 근원이 되는 것으로 여겼던 것으로 단순히 고아들의 궁핍만이 아닌 그의 유명한 고아원의 설립의 이유였다. 프랑케는 적어도 경건주의 원칙에 기초한 새로운 젊은 세대가 일어나도록 시도하였다. 왜냐하면 이것이 그가 신학, 교육이론, 실질적인 모델 제도, 그리고 매우 실질적으로 효과적인 선전 조직망(멀리 떨어진 할레그룹의 동기들에게 제시간에)을 개발한 이유이다. Kohl은 언급하기를 프랑케는 깊은 기독교적인 영향가운데 연장된 성직서임을 통하여 더 훌륭한 시대가 닥쳐올 것을 희망 하였다. 프랑케와 그의 동료들은 이와 같은 목표를 향해서 일을 하였다. 삶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엄격한 훈련을 요구 하면서 말이다.
프랑케는 교회에서 학교로, 즉 교회학에서 교육학으로의 `변환을 주목한다. 우리는 또한 프랑케가 오랜 세월동안(비록 목사이지만) 교육자였다는 것을 기억한다. 그리고 교회에 대하여 그의 초기적으로 형성된 경험이 교구화에 있어서 경건주의적인 신학교이기 보다는 성경 연구적인 종합 신학교의 형태였다. 일반적으로 프랑케가 갱신을 교육개혁을 통해서 오는 것으로 이해한 반면에 스페너는 교회개혁을 통해 이루어 지는 것으로 파악했다. 이들 두가지 접근 방식이 사실상 서로 보완적으로 있어 오는 동안에 그들은 또한 심각하게 차이가 나는 교회론을 반영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프랑케는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에게 선을 행하기 위한 의무수행을 강조하였다.
프랑케는 무한한 정력가요 조직에 천재였다. 그의 글라우카 교회는 목회 충성의 표본이었다. 그의 강의는 해석과 실험으로 교실 - 교회의 연결은 학생들에게 큰 도움이었다. 1965년 '누더기 학교'란 빈민 아동학원을 세운 것이 굉장히 인기여서 그의 유명한 "정규학교"(Paedagogium)로 발전되었다. 상급의 라틴 학교도 세우고 고아원도 세웠는데 모두 다 경건주의적으로 운영했고, 그가 죽었을 때 학생 수가 2,200명, 고아원 재적이 134명이었다. 후년 진료소와 인쇄소를 부설했다. 이상 모든 기관은 자금 없이 시작해 믿음으로 운영했는데, 귀족, 평민이 다 같이 사방에서 도왔다. 또 한 가지 그의 사업이라 할 수 있는 것은 그의 친구 칸슈타인 백작(Karl Hildebrand)이 1710년에 세운 성서 협회(Bible Institute)로 성서의 대량 인쇄, 염가 배부를 목적으로 했는데 오늘까지 고귀한 봉사를 한다.
Ⅳ. 경건주의의 갱신
A. 교회와 갱신
1. 교회 갱신의 개념
갱신이란 말의 어원은 '일신', '부활', '재생'의 뜻이었으며 일반적으로는 '다시 새로와진다'는 변화가 그 의미이다. 이 말과 유사한 언어로는 개혁이란 용어가 있는데, '다시 모양을 갖춘다', '다시 새롭게 뜯어 고친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갱신이란 말이 오해를 사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지금까지의 구조와 제도를 그리고 체제를 완전히 뒤집어 엎어 버리는 혁명과 혼돈되기도 한다는 점이다.
이런 점에서 분명히 해 둘 것은 교회 갱신은 이 모든 체제를 뒤집어 엎는 혁명을 의도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를 새롭게 하여 본래적인 교회, 성서에서 보여주고 제시하는 교회다운 교회로 돌아가자는 운동인 것이다. 갱신이란 말은 개인적으로는 중생을 생각하게 되고, 중생을 기초로 하는 영적인 힘의 회복을 상기시킨다. 즉, 한 개인이 진심으로 회개하여 새로운 존재가 되어지고 거룩한 삶을 살아 가므로 하나님과 생명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을 가르킨다. 한편으로 교회적 시각으로 보면 갱신된 사람들의 모임인 것이다. 따라서 갱신된 사람에서 부터 교회 갱신은 시작된다는 것이 전제가 되고, 사람을 갱신시킬 수 있는 체제와 구조를 도모하는 것이 갱신 운동의 구체화라고 볼 수 있겠다. 교회 갱신이 개인적 회심에만 집중이 되면 갱신 운동이 지속될 수가 없다. 반면에 갱신을 위한 구조적 개혁 체제의 변화에만 주목할 경우에는 소리만 크지 실제적으로는 갱신과는 거리가 먼 과격한 구호로만 끝날 공산이 크다. 이런 점에서 갱신은 성령과 더불어 시작되어야 하며 성서 속에서 그 모델을 발견하고 현실적인 방법으로 접근해야 한다. 신약성서가 보여 준 교회는 개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회개하여 새로운 하나님의 백성의 진정한 공동체에 속하고 계속적으로 확산되어 지는 것을 볼 수 있다. 따라서 교회 본질에 기초한 갱신이 무엇인지를 살펴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2. 교회 본질에 기초한 갱신
교회 갱신의 기본 형태는 성서의 원칙으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이것이 개혁 신앙이다. 루터는 "하나님의 말씀에 조화되지 않는 것이 라면 무엇이든지 교회로부터 물리치고 없애버려야 한다"라고 하였다. 교회 갱신 운동은 먼저 자기 시대의 교회가 성서에서 이탈되어 있음이 인정되어야 한다. 여기에서 갱신의 욕구가 분출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한 교회의 상황을 성서에서 말하는 교회의 본질이라는 거울에 비추어 갱신되어야 할 당위성을 밝혀야 한다.
첫째는 하나님의 새로운 백성, 새 이스라엘이다. 옛 이스라엘과 새로운 이스라엘의 차이점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태도에 달려 있다. 옛 이스라엘은 계약 백성으로서 계약에 충실치 못하였고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지 아니하였는데 반해 새 이스라엘은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였으며, 하나님의 구원 계획에 동참하였다. 새로운 이스라엘에 참예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 계명을 얻어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것이 교회를 구성하는 성도의 모습이어야 한다.
명목상의 신자가 교회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더 이상 구속의 희열이 두드러지게 체험되지 않는 상태라면 교회의 갱신은 필연적이다. 뿐만 아니라 세상 속의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빛과 소금으로 살지 못하면, 본질적으로 교회는 갱신되야 한다.
둘째,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다. 이 말은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지체들이 각기 성령을 통하여 받은 은사를 다양성 있게 발휘하며 한편, 전체의 교회의 몸과 일체감 속에서 조화를 이루는 것을 나타낸다. 하지만 교회가 극히 소수의 교역자나 몇몇 신자들만이 자기의 역할을 할 뿐, 대다수의 평신도가 교회의 객체가 되고 있다면, 그리스도의 지체로서 생명력이 부여되어야 할 것이다. 평신도들 모두는 머리 되신 주님으로부터 소명을 받고 있다. 이 소명을 위해 성령은 각자에게 적절한 은사를 주어 몸의 지체로 기능을 다하게 하시지만 평신도들 대부분이 교회 조직상의 기능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통상적인 봉사 활동을 하는데서 벗어나지 못하고, 또는 그들 혼자 가만히 내버려 두기를 원하다. 교회 갱신은 바로 이들을 깨워 그리스도의 참 지체로서 활동하게 하는데 있는 것이다.
교회는 또한 그 안에 성령이 임재해 계시기에 하나님의 성전이다. 여기서 성전의 개념은 건물이나 장소에 얽매인 것이 아니라 주 안에서 거룩한 공동체로서 성전인 것이다. 이런 교회의 본질을 도외시하고, 현재의 교회는 날로 건물 확장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 모임과 건물이 떨어질 수 없는 관계이긴 하지만 건물 자체에 거룩성을 부여할 수 없다. 건물 중심의 교회는 활동성이 없고 융통성이 없이 경직되어 있으며, 친교가 부족하고 또한 자만심과 계급의식에 가득차 있는 것을 나타내 준다. 따라서 이런 상황에서 교회는 굳이 거룩성을 건물에 부여하려 하기 보다는 기능적으로 이해함을 통해 생동적인 모습으로 바뀌어야 할 것이다. 건물이란 수단이란 차원에서 이해되어야지, 맹목적으로 숭배한다면 그것은 건물 우상주의에 빠지는 것이다. 우리 주위를 보라, 얼마나 많은 교회가 건물에 치중함으로 교회가 해야할 사명을 소홀히 하고 있는가 ? 이제 교회 건물도 교회의 사명을 저해하지 않는 정도에서 건축되어야 할 것이며, 그 건물 구조도 기능적으로 설계를 함으로 교회의 본질을 세우며, 그 사명을 지지해 주는 차원에서 근본적으로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신약교회에서 또 하나의 중요한 본질은 교제 공동체이다. 이 교제는 성령을 통한 하나님과의 교제이며, 성도 간의 사랑의 교제로 하늘나라에서 맛볼 교제의 모형이다. 하지만 오늘날의 교회는 이 친교가 위기를 맞고 있다. 오늘날의 교회는 단지 비인격적인 기구처럼 보일 뿐이다. 일주일에 몇번씩 모임을 갖고 예배를 드리지만, 교제를 나누고 사랑의 입맞춤을 할 수 없는 무겁고 경직된 분위기 속에서 앞을 향해 도열된 의자에 앉아 예배 참석자로서의 역할에 만족할 뿐이다. 17C, 18C 경건주의자들이 가졌던 뜨거운 교제의 모습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다. 이런 구조 속에서 어떻게 '사랑'이란 개념이 자리 잡을 수 있겠는가 ? '사랑'에 대해 아무리 주장하고 외쳐도, 그것을 듣는 성도가 어쩔 수 없는 비인격적인 구조에 얽매여 있는 한, 대 그룹 모임 속에서 방관자가 되어 있는 한, "코이노니아"( )는 불가능하다. 반드시 진정한 사랑의 교제가 이루어져야 교회는 진정한 의미에서 갱신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교회의 목표, 목적이라고 할 수 있는 증거하는 공동체로서의 교회가 될 대, 교회의 갱신은 온전한 갱신이 될 것이다. 교회는 그 자체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다. 소금이란 기능이 뿌려지고 녹아지는 것처럼 교회는 모였으면 반드시 흩어져 증인이 되야 하는 것이다. 뭉쳐진 소금, 녹기를 거부하는 소금, 맛을 내지 않는 소금기둥은 아무 쓸모없어 밟힌다. 오늘날 신자들은 혹 뿌려지기를 두려워 하거나 몇 푼의 선교금을 집어주는 정도에서 뿌려졌다고 자부하고 있진 않는가 ? 이름은 여전도회, 남전도회인데, 그들의 모임이 전도와 전혀 상관 없는 사업만을 계획한다든지, 탁상공론만 하고 있진 않는가? 그래서 다시 사명감 없이 세속의 일원으로 돌아가 전도는 고사하고, 세속의 물결에 빠져 세상에 파송되어진 교회로서의 사명을 망각해 버린다면 교회는 증거 공동체로서의 철저한 반성과 더불어 갱신을 도모해야 할 것이다.
3. 갱신의 모델
이러한 교회 본질에 비추어서 독일의 경건주의자들의 갱신 모델은 무엇인가를 살펴보자. 경건주의자들의 갱신은 첫째 복음을 재 발견한다. 먼저 한 사람 혹은 그 이상의 사람들이 그들이 느끼는 것으로 기독교 믿음 안에서 새로운 활력이 되는 것을 경험적으로 그리고 개념적으로 발견한다. 이 경험은 믿음의 특질 혹은 믿음의 본질적인 핵심에 관한 그들의 사상을 바꾼다. 따라서 복음은 교회의 새로운 모델을 이끌어 낸다. 갱신의 시작은 체험을 얻고 믿음의 확신을 얻은 사람들로 단순하게 구성된다.
둘째 갱신운동은 "교회중심주의"(ecclesiola)로서 존재한다. 즉 이것은 교회 안에 작은 교회(ecclesiola in ecclesia), 좀 더 작고 좀 더 친밀한 표현이다. 이것은 배타적인 의미에서의 진실한 교회로서가 아니라 좀더 큰 전체의 생활 속에 있는 교회의 형태를 나타낸다.
세째 갱신운동은 작은 집단 구조의 몇몇 형태를 이용한다. 이것은 단지 막연한 또는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ecclesiola"가 아니라 지방집회에서의 특별한 소집단 형태를 담당한다. 이것은 전체로서 그리스도교 교회에서의 집단으로서 뿐만 아니라 지방 집회에서의 특정한 소규모 공동체에서 그것 자체를 나타내 주는 좀 더 제한된 소그룹 운동이다. 이 소집단의 크기와 구조가 다양할지라도, 이것들은 일반적으로 일주일에 한 번 정규적으로 만나는 열 명 내외의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
네째 갱신 구조는 선교 지향적이다. 이것은 부분적으로는 교회의 갱신으로서, 그리고 부분적으로는 세계에 대한 증거로서 특별한 목적과 선교의 의미를 부여해 준다. 이것은 믿음과 사랑을 결합하는 그리고 매일의 생활에서 믿음과 연결하려고 시도하는 실제적인 윤리를 강조한 것이다. 여기에서 연구된 운동에서 선교의 의미와 정의는 다소 다양하다. 그러나 세 그룹 모두는 선교의 의미와 정의는 다소 다양하다. 그러나 세 그룹 모두는 선교에 관해서 강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다른 운동들은 선교를 복음전도, 교회연합, 혹은 사회개혁으로 이해하는 반면에 어떤 갱신운동은 그들의 설교를 갱신 자체의 장려 혹은 연장으로 단순하게 본다. 아마 이러한 갱신운동은 선교를 영적 갱신의 단순한 확장보다 더 넓은 의미로 이해한 대부분 사회적 변환이다. 그러나 만약 갱신의 중심 활동력이 타협되거나 통찰력을 잃어버린다면, 사회적 변화의 역할을 뒷받침하는 바로 그 힘은 반드시 잃게 될 것이다.
다섯째 갱신운동은 특별히 독특하고 계약에 기초한 공동체이다. 이것은 모든 교회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안다. 이것은 교회의 불완전한 일임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것은 교회가 진정한 교회의 가시적 형태로서 이해해야 한다. 계약에 기초한 공동체는 교회의 모든 기능을 수행하려는 시도는 아니다. 그러나 서로에 대해 자발적으로 맡겨진 사람의 제한된 공동체이다. 잘 이해된 계약에 기초함으로써 이것은 제자훈련, 심지어는 교회 구성원들 가운데서 배제될 수 있는 위험도 내포된다. 공동체로서의 갱신은 일대일의 관계, 성숙, 그리고 상호 의존을 존중한다. 이것은 단체내에서의 koinonia, 상호 격려, 그리고 훈계를 말하고 있는 성경 말씀을 특별히 강조하고 자신은 교회에서의 이러한 특징을 경험하기 위한 중요한 구조로서 이해한다.
여섯째 갱신운동은 목회와 지도의 새로운 형태에 있어서의 부흥, 훈련, 그리고 연단을 위한 내용을 제공한다. 공동체의 경험으로부터 성령의 선물과 성도들의 성직에 관한 실제적인 강조가 나타난다. 이런 의식은 운동 내에서의 지도를 위한 자연적 필요와 증거의 외부적인 추진을 결합하고 목회의 새로운 형태를 위한 기회와 가능한 한 내용을 제공한다. 같은 모양으로, 이것은 더 많이 제한되고 설립된 교회론적 통로(전형적으로 남자들에게 대해 제한된 교육, 안수)를 통제한 것이 아니라 실제적인 경험과 그룹을 공유한 삶을 통해 나타난 새로운 지도자를 만들어 낸다.
갱신그룹은 지도를 위한 기회와 봉사 그리고 새로운 지도자를 훈련하기 위한 자연적, 실제적 환경을 제공한다. 부분적으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만약 기존의 교회에서부터 끊어지지 않는다면 어울리지 않는 많은 수의 교회 지도자들이 종종 갱신운동의 일원으로써 나타난다(사람들은 종교적인 지위에서 나타난 갱신지도자들을 여기에서 생각한다).
일곱째 갱신운동의 구성원은 매일 밀접하게 사회와 접촉하고 특별히 가난한 자와 접촉한다. 교회갱신운동은 경건주의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이러한 점에서 사실 매우 주목할 만하다. 어떤 갱신 운동은 명백하게 가난한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며 직접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에게 호소한다.
4. 경건주의의 갱신점
제Ⅲ장에서 경건주의자들의 경건 활동과 사상을 살펴 보았지만 본장에서는 그들의 기본 사상을 바탕으로 각 개인의 독특한 사상보다는 독일 경건주의의 인물이라 볼 수 있는 세 사람의 사상을 바탕으로 그들의 무엇을 중심으로하여 갱신을 일으켰는가를 살펴보겠다.
갱신주의의 갱신운동은 무엇보다도 그 성경관에서 집중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독일 경건주의의 창시자 스페너가 저술한 Pia Desideria에서 그가 참 종교의 회복을 위하여 제시한 여섯 가지 제안들 중에서 세가지가 성경에 관한 것들이었다는 사실 하나만 보더라도 그것을 알 수 있다. 스페너의 첫째 제안은 교역자의 설교 가운데서 성경의 내용이 더 많이 그리고 풍부하게 소개되어야 한다는 것이며, 둘째 제안은 성경공부를 위한 여러 모임들을 많이 가져야 한다는 것이었고, 셋째는 말씀의 강도로서의 설교는 이론적이거나 웅병을 과시하기 보다는 일상 생활과 관련되어 영향을 끼쳐야 한다는 제안이었기 때문이다.
종교 개혁가들이 성경을 교리적인 관점에서 읽고 그것에 신앙고백적인 성격을 부여한 것과는 반대로 경건주의는 성경을 경건하게 읽고 삶의 모습을 바꾸어 놓는 결과를 가져올 것을 기대한다. 성경은 하나님의 계시 진리의 말씀으로서 우리의 바른 지식과 신학의 원천이 될 뿐만 아니라 바른 삶과 행실의 원동력이 된다는 것이다. 정통은 정행으로 이어져야 한다.
둘째로 독일 경건주의의 갱신운동은 중생의 강조에서 나타난다. 그것은 신앙과 칭의의 교리보다는 중생과 성화의 교리를 강조함이 그 특징이다. 루터가 회개는 신자의 전 생애에 걸쳐서 진행해야 한다는 발언에 영향을 받은 것도 사실이다. 스페너는 정통 신학의 선포적인 칭의관에서 벗어나서 "칭의된 상태"(condition of justification)를 강조하는 칭의관으로 전향함으로써 칭의의 개념에 성화적인 성격을 부여한 것이 되고 말았다.
중생은 스페너에게 마치 칭의가 루터에 대하여 차지했던 중요성을 차지하였다. "거듭남" 또는 "중생"(Wiedergeburt)의 경험을 절대시 하는 현금의 개신교 내에서의 사조는 그 뿌리를 독일의 경건주의에서 찾아볼 수 있다. 사람들을 중생인과 비중생인으로 분류하는 사고는 믿음의 교환을 자초하기 쉬웠고 칭의의 확실성의 기준을 성화의 삶에 둔 것도 문제였다.
프랑케는 성화의 교리를 [그리스도를 모방]의 삶으로 표현하였고 크리스챤은 그리스도의 형상과 모범을 항상 주목하면서 그리스도와 일치를 도모하는 것만이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길이라고 갈파하였다.
셋째로 독일 경건주의의 갱신 운동을 살펴 본다면 그것은 성령의 내주를 강조하는 것이 그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성령의 내주는 "신적 광명"(das gottliche Licht)이라는 추가적인 개념 때문에 정통 신학에서 말하는 성령의 내주와 사상을 달리하게 된다. "신적 광명"은 각 사람의 마음 속에 존재하는 하나님에 대한 자연적 시작으로서 그리스도와 그의 말씀을 떠나서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그 무엇으로 보았다. 이 "신적 광명"의 개념을 갖고서 신자가 환상을 보고 예언을 하는 등 신앙생활을 하면서 경험하는 바 신비로운 일들을 설명하였다. 경건주의 저술들은 "내주하는 그리스도"라든가 "내면적 기독교"라는 표현들로 가득차 있다. 스페너는 기독교는 본질적으로 "내면적 인간"을 존재하는 종교임을 서슴치 않고 말하였다. 그는 다음과 같은 말을 하였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귀로 듣는 것으로 충분치 못
하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여금 우리 가슴 속
깊숙히 들어오도록 하여 성령님이 말씀하는 것을 큰 감
동과 위안 중에 들어야 한다.
Spener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으로 끝내지 말고 가슴 속에 파고들어 오도록 함으로 마음 속에서 성령께서 역사하시도록 하는 사실을 볼 때 기독교는 "내면적", "내적", "체험적" 종교임을 말한다.
다섯째로, 독일 경건주의의 갱신을 위한 교회관을 고찰한다면 그것은 경건한 소수의 교인들로 구성된 지상 교회를 강조하는 것이 그 특징이 되고 있다. 경건하고 중생한 신자들이 누구인가를 분별하기 어려운 경우에는 독일 경건주의자들은 무형교회를 거론했지만 경건과 신앙의 열정으로서 모범적인 크리스챤의 삶을 사는 사람들의 확인 될 때에는 그들을 중심으로 하는 가시적인 유형교회의 존재를 강조하는 경향을 보였다. 따라서 독일 경건주의자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참된 교회"를 기성교회로부터 분리한 소수의 가시적인 신도의 집단들과 동일시하는 재세례파의 과오를 범한다는 비평을 듣기도 하였다.
스페너는 루터의 "평신도의 제사직"의 개념을 "정신적인 제사장직"(Spiritual Priesthood)의 사상으로 발전시켰다. 스페너를 따르면 정신적인 제사장직은 "예수 그리스도가 모든 신도들을 위하여 획득케 하신 권리요 성령의 기름 부으심으로 말미암아 가능케 하신 것인데 이는 신도들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희생제를 드리고 자신들과 타인을 위하여 간구의 기도를 하고 형제 자매와 이웃들을 위로.권고하는 직분"을 의미한다. 스페너는 강조하기를 "정신적 제사직"은 교역자들에게만 주어진 것이 아니라 모든 신도들에게 주어진 직분이며 권리라고 하였다. 프랑케도 이에 대하여 전적으로 동의하였다. 스페너는 평신도의 "영적인 제사장직"을 강조하면서도 평신도가 세례를 줄 수는 있어도 성찬식을 집례하는 것은 삼가야 한다고 하였다.
여섯째로, 독일 경건주의의 종말론 속에서 본 갱신을 살펴보면 천년기의 존재를 긍정하나 문자주의적 해석함을 기피하는 것이 그 특징인 듯 보였다. 스페너는 전천년재림론을 거절하였고 이중 부활의 교리에 대하여서도 회의하였다. 그러나 영생복락이 아니면 영원한 멸망이 뒤따르는 최종 심판이 있을 것을 믿었고 지옥의 존재를 의심하기에는 성경의 증언이 너무 확실한 것으로 생각하였다.
스페너의 종말론은 현세 부정적이기보다는 미래 지향적인 성격을 띤 것이 확실하였다. 그는 종말론을 미래의 역사의 차원으로 유도하였고 그 결과 20세기에 등장한 "구원 사회파"에 대하여 큰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그리스도의 나라는 미래에 성취되지만 그 시작은 현재의 역사 가운데서 태동한다는 생각은 교회의 갱신을 도모하며 복음전파와 선교의 열정을 북돋아주며 자선사업과 사회정의의 구현을 위하여 힘쓰도록 경건주의자들을 이끌어 주었다.
일곱째로, 독일 경건주의의 윤리를 통한 갱신은 사회 윤리보다는 개인 윤리의 영역에 치중하였고 선한 삶을 믿음의 열매로 보기 보다는 믿음의 증명으로서 절대시하는 준법주의적인 사고의 작용이 그 특정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리스도인의 삶을 행위 규범들을 지키는 것과 동일시하였으며, 기독교를 미니 윤리(Mini-ethics)로 축소하고 그리스도의 제자로서의 자격을 몇 가지 "하지 말라"(주초를 하지 말라, 사교춤을 주지 말라, 도박을 하지 말라)의 시험에 합격함으로써 획득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현금의 보편적인 경건주의적 윤리관의 씨앗이 이미 독일 경건주의자들의 윤리사상 가운데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스페너의 윤리를 통한 갱신은 자선 사업에 있었고 사회적, 경제적 현실의 구조적 개선에는 쏠리지 않았다고 하는 해석이 꽤 유력하기는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는 것을 우리가 스페너의 생애의 활동 가운데서 확인할 수 있다. 그가 프랑크프르트와 베르린에 있으면서 30년 전쟁의 결과로서 최악의 경제적 상황에서 고통을 당하고 있는 많은 독일인들을 위하여 사회복지 프로그램을 수립하기 위하여 힘을 경주한 것은 그 반증이 될만한 역사적 사례라고 할 수 있겠다.
독일 경건주의는 영미의 청교도주의(Puritanism)처럼 "거룩한 공화국"의 건설을 위한 정치 참여와 사회적 활동을 하는 일에 있어서 큰 업적을 남지기 못하였다. 그러나 당시의 기성 교회인 루터파 교회보다 훨씬 강도 높은 사회적 관심을 보였고 그들(독일 경건주의자들)의 도덕주의적인 고행적 삶의 경향이 자선 사업과 국내외 선교 활동의 열기로서 시정, 보완되었다. 그들의 보편적, 문화적 무관심은 미래의 역사에 초점을 맞추는 그들의 종말론적 신앙으로 말미암아 점차적으로 개선되어 갔다. 그리고 기독교적 문화 갱신에 대한 굳은 의지를 발휘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그러나 독일 경건주의자들은 이 세상이 제공하는 각종 쾌락에 대하여 부정적인 입장을 분명히 취하면서 엄격한 규율을 가르쳤기 때문에 그들의 저술들과 도덕적 교훈들을 읽을 때는 금욕주의자라는 인상을 강력히 받지 않을 수 없다. 예를 들건대, 프랑케는 제자들에게 가르치기를 주초와 무도회에 가는 일과 도박하는 일을 삼가야 할 것은 몰론 사람들과 이야기 할 때에 자기 자신에 관하여 이야기하는 일을 삼갈 것과 웃음을 웃을 때에도 어리석은 농담이나 부질없는 일로 웃는 것은 잘못이며, 책을 읽을 때에도 시간을 보내기 위하여 쓸모없는 책들을 읽는 일을 하지 않아야 한다고 하면서 생활 속에서 경건 생활을 통한 갱신을 도모하였던 것이다.
B. 독일 경건주의의 갱신이 대륙에 미친 영향
독일의 경건주의는 그들만이 갱신을 추구하지 않았다. 그들 내부의 갱신 뿐만이 아니라 각 분야에 갱신을 일으켰다. 그리고 이 갱신 운동은 대륙에로 확산되었다.
1. 선교에 미친 갱신
독일 경건주의 운동이 직접적이고 가장 큰 소산이라고 하다면 그것은 선교 운동을 일으켰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영적 생활에 깊이 들어간 경건주의 지도자들이 흑암에 사는 사람들을 빛으로 인도하려는 열성이 생긴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경건주의는 각국으로 퍼져 나갔는데 이것이 처음으로 뿌리 박은 곳은 스칸디나비아 반도이었다. 그리하여 노르웨이에서는 그린랜드로 초대 선교사 한스 에게데(Hans Egede)와 노르웨이의 위대한 부흥가 한스 닐슨 하우게(Hans Nielson Hauge)를 배출하였다. 특히 에게데는 그린랜드 사람들이 자기와 같은 한 민족이라는 생각이 들어 1721년에 46명을 거느리고 그린랜드로 떠났다. 그러나 거기 사는 사람들은 에스키모인들이었고 자 의 동포들은 다 죽고 없었다. 그러나 그는 불굴의 용기를 헤쳐나가 먼저 글자도 없는 에스키모어를 배워 4복음서를 번역하여 출판하였으며 1760년에는 에스키모어의 문법책을, 그리고 1776년에는 마침내 신약성경 전부를 출판하였다. 이와같이 그린랜드의 선교는 경건주의의 영향을 받은 에게데 부자(父子)에 의해서 선교되었으며 수세대 후에는 에스키모족 대부분이 기독교 신앙을 갖기에 이르렀다.
덴마크에서는 그 나라 왕이 할레 대학의 프랑케에게 인도에 있는 자기 나라 식민지로 보낼 선교사를 요청하였다. 할레 대학에서는 서슴치 않고 이를 수락하여, 할레의 두 선교사를 덴마크가 인도로 파송하게 하였는데 곧 바올로매우 치겐발크(Batholomew Ziegenbalg)와 헨리 플루차오(Henry Pluschau)가 1705년에 인도로 가게 되었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덴마크 할레 합동 선교사업의 시초이었다. 그 후에 여러 다른 선교사들이 인도로 파송되었다. 그리하여 18C 할레대학은 60명의 선교사를 인도에 공급하였던 것이다. 특히 B. Ziegenbalg의 언어 솜씨는 놀랍게 발전해 3년만에 신약성서를 인도 안에서 쓰는 언어 중 어떤 언어로도 변역할 수 있을 정도가 되어 타밀어로 첫 번역을 하였으며 1 14년에 완결된 신약성경이 나왔다.
이들의 선교 원칙을 보면 첫째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교육의 필요성을 느끼어 교회와 학교의 병행을 강조했으며 둘째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읽게 하려면, 그들이 글자로 기록된 말씀이 있어야 된다는 필요성을 느끼어 성경번역에 착수하였다. 세째로는 복음은 주민들의 정신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기초로 하여 전파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으며, 네째로는 선교의 목적은 명확히 개인적인 개심이어야 한다. 다섯째로는 가급적이면 속한 시일내에 인도인 교역자를 가진 인도교회를 출현시켜야 한다는 등의 원칙을 나름대로 세우고 일하였다.
그리고 다른 지방으로 간 선교사들도 많았다. 그래서 경건주의 운동의 가장 획기적인 공헌은 역시 이들의 해외 선교, 곧 현대선교를 이들이 착수하여 진행시킨 사실이다. 이것은 아무리 높이 칭송해도 지나치다고 할 수 없는 것이다. Moyer가 "경건주의가 성행된 기간은 비교적 길지 못하였지만 그로 인하여 생긴 전도 정신과 선교 정신은 여러 세대에 걸쳐서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말한 바와 같이 그 연대기는 나열할 수 없지만 이 선교의 여파는 언더우드나 아펜셀러를 통하여 우리 나라까지도 밀려 온 것이다.
2. N.V. Zinzendorf의 모라비안 운동에 끼친 영향
니콜라우스 루드비히 폰 진젠도르프 백작은 심오한 신앙적 확신에 가득 찬 사람으로서 할레대학에서 공부하였다. 할레대학에서 수학하는 동안에 그는 경건주의에 큰 감화를 받았으며, 항상 경건주의의 빛 아래서 기독교의 본질을 이해하였다. 1 722년 박해를 겪고 있던 보헤미아의 형제회가 그의 초청을 받고서 삭소니에 있는 그의 영지 내에 정착하게 되었다. 진젠도르프는 처음부터 이 공동체의 일원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의 진지한 신앙심과 그의 천부적인 성격이 결합하여 급기야는 이 공동체의 지도자가 되고 말았다. 이에 진젠돌프의 영토 내에 있는 헤른후트(Herrnhut) 마을에 그들의 정착촌이 성립되게 되었다.
대부분의 경건주의자와 비슷하게 진젠도르프는 루터파의 신앙 정통을 따랐으나, 때로는 루터파 정통주의의 딱딱한 기질을 반대하기도 했다. 그러므로 모라비안들도 [아우구스부르크 신앙고백]을 그들의 신앙선언으로 받아들이면서도 신학적인 이론 정립보다는 헌신적이며 도덕적인 삶을 최우선적으로 고수하였다. 이들은 하나님은 자연적이거나 혹은 철학적인 수단으로 우리에게 알려질 수 없고, 그리스도 안에서의 계시를 통해서만 알려진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리스도 안에서 신학의 최종적인 총화를 보았다.
모라비안이 갖는 의의는 숫자적 열세와 족히 비교될 수 없다. 그들의 선교에 대한 관심은 세계 각 곳에 기독교 신앙을 퍼뜨리는 큰 결과를 가져왔으며 이것이 선교하는 곳곳마다 감화를 많이 주어 영적 후손들을 성장시켰다. 이들과 나란히 선교하던 다른 개신교 교회들까지도 이들의 영적 감화를 받았다.
또 어떤 전기 작자가 말한대로 "그의 정렬 곧 예수께 향하는 뜨거운 사랑과 사랑의 단체로서의 그의 형제단을 확립하려는 정렬은 그의 형제단을 믿음의 단체라기보다도 경건주의의 단체라 할 수 있다. 이 경건주의는 주로 그리스도교의 내적이며 개인적인 성격을 가르치는 것이었다.
3. J. Wesley의 감리교 운동에 끼친 영향
경건주의가 영국에 전래된 것은 모라비안들에 의해서 된 것이지만 그것이 영국 교계에 커다란 영향을 끼치게 된데에는 웨슬레의 힘이 매우 컸었다.
웨슬레는 1703년 6월 17일에 영국교회 목사인 아버지 사무엘 웨슬레와 어머니 수산나 사이에서, 런던에서 북으로 약 400리 떨어진 엡워드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려서부터 경건의 훈련을 받으면서 자라났다. 어렸을 때부터 받은 이 경건의 훈련은 후에 그가 위대한 영국의 종교적 지도자가 되는 데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그는 옥스포드 대학에서 성결클럽(Holy Club)을 만들어 경건훈련을 하였다. 그의 동생 찰스 웨슬레(Chales Wesley)와 휫필드(White field)도 이 클럽의 회원이었다. 클럽은 내적으로는 경건연습과 영적 수양을 목적으로 하는 동시에 외적으로는 복음운동에 전력을 기울였다. 이럴 즈음에 이 단체로부터 북미 개척 선교사 선발 청원에 있어서 웨슬레 형제가 파견되게 되었다. 마침 그들이 타고가는 배에는 모라비안파 선교사 26명이 감독 데이빗 니취만(David Nitschmann)의 인도를 받아 역시 죠지아로 가고 있었다. 웨슬레는 그들에게 독일어를 배우게 되었고 또한 풍랑을 만나 위험에 처했을 때에 당황하지 않고 찬송을 부르며, 평화롭고 침착하게 행동하는 모라비안들을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 그리고 죠지아에 있는 동안에도 스팡겐버그(Spangenberg)와 모라비안교도들과 접촉하게 되어 그들의 순전한 믿음과 개인적인 경건과 기쁨에 찬 마음을 보면서 자신과 대조해 보는 계기도 가질 수 있었다. 국에 돌아오자 웨슬레는 모라비안들을 찾아가서, 때마침 영국에 와 있던 Peter Bohler를 소개받았다. Bohler는 웨슬레의 신학형성에 큰 도움을 주었다.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는 것과, 온전한 성결과 성령의 내적 증거는 선행이나 인격에 의한 것이 아니고 신앙에 있음을 강조하였고 따라서 이상의 모든 체험은 순간에 얻는다고 가르쳤다.
그러던 중 "올더스케이트"(Aldersgate)에서 열린 모라비안파의 기도회에 참석하였다가 루터의 로마인서 서문을 읽을 때 홀연히 회심하여 거듭나는 경험을 얻게 된 것이었다. 웨슬레의 일기에는 그때의 경험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이상스럽게 내 마음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구원을 위하여서는 그리스도를, 오직 그리스도만을 의
지해야 된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내
죄를 나같은 사람의 죄까지도 다 처리하셨다는 것과
죄와 사망의 법에서 내가 구원받았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그리하여 웨슬레는 두 가지를 강조하였는데 첫째는 회심의 정서적 경험으로서의 '신생'이었고, 둘재는 그리스도인의 완전 성화이었다. 또한 지금 실제로 죄를 벗고 성결한 생활에 들어가지 않으면 안될 것을 강조하였다.
한편 웨슬레는 올더스게잇 경험을 한지 3주일이 채 못되어 모라비안 교도들의 신앙을 좀 더 이해하고자 Herrnhut를 방문하여 Zinzendorf와 두 주일을 지냈다. 이 후 Herrnhut를 떠나 영국에 돌아오면서부터 웨슬레는 그의 위대한 전도사역을 시작하였다. 웨슬레의 복음운동은 인간 내심의 혁신운동이요, 둘째는 교회혁신의 복음운동이었다.
그리고 웨슬레는 죽을 때까지 국교 곧 성공회에서 떠나지 않고 계속해서 그들과 관계를 계속 보존하려 하였지만 다만 그의 후계자들이 역사적 형편의 요청에 못이겨 감리교라는 새 교파를 파생케 했던 것이다. 결국 웨슬레의 감리교 운동도 경건주의의 맥 하에서 이해되어질 수 있는 것이다.
4. 미국의 대각성 운동에 끼친 영향
서기 18C 동안에 북아메리카의 영국 식민지에서는 유럽에서 얼마 전에 일어났던 것과 유사한 개인 경건에 관한 각성이 여러 면에 일어나고 있었다. 이 두 곳의 운동에는 어느 정도 연관성이 있었다. 조지 휘트필드는 신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설교가였으며 프란시스 에스베리(Francis Asbury)와 다른 사람들이 대서양을 건너가서 웨슬레의 가르침을 들여왔었던 것이다. 그러나 또한 식민지에는 경건주의자 모라비안, 감리교 주의자들이 보였던 것과 유사한 경건을 불러일으킬 만한 많은 조건들이 잠재하고 있었다. 이 곳에서도 신앙은 교회와 정통성의 틀 안에 갇혀서 깊이 빠져 있었다. 이런 상황에 대한 응답으로서 유럽의 신앙인들이 개인의 경건과 신앙을 주장하였던 운동과 비슷한 움직임이 일어났었다. 그러나 유럽의 운동과 다른 점은 이러한 각성이 모든 교파를 초월함으로써 미합중국을 형성하기에까지 이르게 될 개신교 기독교를 형성하게 된 사실이다.
그들의 신학에서 "대각성"이라는 공통적인 주제 아래 포괄적으로 모든 의견들을 다 포섭하였다. 그렇지만 실제적인 면에서는 회심, 개인적 체험, 성경에 대한 개별적인 연구, 열광적인 에배에 대한 갈망 등을 강조하는 점에서 다같이 유사하였다.
죠나단 에드워드, 죠지 휘필드 및 그 밖의 위대한 설교자들에 의하여 뉴잉글랜드에서 일어났던 대각성 운동은 현대에 있어서 가장 유명한 종교운동이었다. 이 운동은 회의주의와 불신앙 사상과 더불어 교회가 큰 싸움을 하는 중에 일어난 것으로서, 당시에는 독일에서는 진젠돌프 백작의 지도 밑에 "헤른후트"(Herrnhut)부흥운동이 일어 났었고, 영국에서는 웨슬레 지도 밑에 운동이 일어났던 시대였다.
이 대각성은 처음에는 1730년 쯤 펜실바니아에 있던 메노나이트파, 퀘커파 및 모라비안파에서 나타났는데, 그 다음에 화란 개척 교회의 Theodore Frelingheusen의 부흥 설교와 장로교인인 Gilbert Tennant의 부흥설교에 의하여 더욱 발전되었다. 그후 1734년 메사츄세츠주 노담론에 사는 백성들이 죠나단 에드워드(Jonathan Edwards)의 지도를 받아 부흥운동이 일어났다. 그는 1717년 예일의 학생이었다. 그는 록크(Lock)의 철학에 큰 영향을 받았음을 그의 신학적 방법론에서 알 수 있다. 수년 후에 그는 웨슬레의 체험과 유사한 경험을 하게 되는데, 그의 경험을 하나님의 압도적인 영광에 집중되어 있었다. 이러한 경험과 동시에 그의 교육은 그로 하여금 확고한 칼빈주의자가 되게 했으며, 특히 선택론에서 더욱 그러했다. 동시에 대각성 운동의 가장 웅변적인 연설가로서 그는 기독교인의 삶을 가장 정당하게 이해할 수 있는 실마리는 하나님의 선택이라고 설교하였다.
그의 신학적 입장은 인간의 사고나 전통 또는 습관적인 것들을 신학의 우선순위로 두는 것을 단호히 배격하는 경향을 보였다. 이러한 그의 신학적 사고는 당시의 교인의 자격문제를 강조하는데서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 이들은 자신들의 영적인 타락과 도덕적인 무질서를 그대로 방치하면서 선조들의 신앙을 지켜주기 위한 방관적이면서도 피동적인 신앙형태가 난무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때 에드워드는 자신의 신앙생활에서 얻어지는 종교적 체험이 없는 교인은 정상적인 교인이 될 수 없다는 선언을 하면서 "신앙의 차이란 오직 체험적 신앙의 유무에 있다"는 말을 하게 되었다. 이러면서도 이러한 신앙을 소유하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교회의 출석은 허용할 수 있으나 성례전의 참여는 허락할 수 없다는 강경한 노선을 걷고 있었다. 그러면서 개인의 구원에 대하여 절대적인 관심을 기울였고 회개의 필연성과 그 운동을 일으키는데 주안점을 두었다. 이는 유명한 "분노하신 하나님의 손에 있는 죄인들"(Sinners in the hands of angry God)이라는 설교를 하여 대각성운동의 선구적 폭탄을 터뜨리게 되였다.
이와 같이 회개와 중생체험을 강조하는 에드워드를 중심한 미국의 대각성운동이나, 18C 말 19C초에 일어난 두번째의 대각성 곧 대부흥운동은 모두 그 뿌리를 경건주의에 두고 있는 것이다.
특히 두번째 대각성 운동의 특징인 성경말씀의 설교, 개인의 기도 및 단체적으로 모이는 기도회 강조, 중생의 필요 및 하나님께 대한 순종은 경건주의의 특징과 일치하며 이들이 벌린 박애사업, 교육사업, 선교에 대한 열정등은 Halle대학의 활약과 비슷한 것이다. 따라서 경건주의는 부흥운동의 저변에서 확고한 뿌리로 지금까지도 늘 남아 알게 모르게 깊은 영향을 끼치는 것이다.
Ⅴ. 결 론
A. 내용 요약
본 논문을 통하여 17 - 18C 독일 경건주의가 교회 갱신에 미친 영향에 대해서 고찰하였다. 역사적 운동으로서의 경건주의는 17C 후반부터 18C 전반 50년 동안에 있었던 독일의 Arndt에서 시작하여 스페너와 프랑케를 중심으로 한 갱신 운동이다.
경건주의가 발생하게 된 시대적 배경은 30년 전쟁에서 찾아 볼 수 있다. 30년 전쟁으로 독일은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몹시 불안하였다. 이로 인하여 사회와 도덕이 타락하였고 성직자들까지도 타락하게 되었다. 성직자들은 성경을 교리와 생활의 표준으로 삼기보다는 신조와 독단적 교리에 집착한 나머지 영적인 감정과 고결한 실제 생활을 소홀히 하였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개혁과 갱신의 필요성을 느끼고 Arndt와 Spener와 Franke가 경건주의 운동을 일으킨 것이다.
Arndt는, 설교자는 양떼를 먹이기 시작하기 전에 "먼저 자신을 조심해야 한다"고 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영적 생활을 개발하는데 부지런해야 하고 매일 기도하면서 성경 연구가 필요하다고 하였다. 그는 [진정한 기독교]라는 책을 펴내 종교의 부패성에 대해 갱신을 일으켰다. 그는 경건주의적이고 실존주의적인 구원 체험을 강조함으로 갱신을 일으킨 것이다.
스페너는 Arndt의 "진정한 기독교"라는 경건 서적으로 읽기 시작해서부터 그의 경건운동이 시작하였고 그는 평신도들의 신앙 생활을 장려한 "경건회"(Collegia-Pietatis)를 설립하여 거기에서 성경과 경건 서적을 읽음으로 경건 운동을 시작, 갱신에 앞장섰고, 그는 "경건한 소원"(PIA DESIDERIA)을 지어 대담하고 완전한 갱신 program을 제시하였다. 그는 PIA DESIDERIA에서 성경 읽기를 강조하였고 신생(New Birth)과 영적 제사장직을 강조하여 갱신을 일으켰다.
Franke는 스페너와 마찬가지로 Arndt의 경건 분위기에서 경건 활동을 하였다. Franke는 전 유럽의 경건 운동의 본산이라고 할 수 있는 할레(Halle) 대학에서 가난하고 부도덕의 생활에 빠져있던 소외된 대중들에게 교육과 자선의 손길을 뻗쳤다. 그리하여 독일 교회에 새 생명을 불어 넣어 주었고 또한 그리스도교로 하여금, 생명이 없는 하나의 전통이 아니라 생명이 있는 실제의 종교가 되게 하였다.
독일의 경건주의는 복음을 재 발견하여 "교회 안의 작은 교회"(ecclesiolae in ecclesia)을 도입 성경 공부 모임을 통하여 적은 수에게 관심을 기울여 그들에게 성경 읽기를 강조하였고 중생에 대한 체험을 강조하여 생명력 있는 삶을 하게 함으로 교회에 갱신을 일으킨 것이다. 경건주의의 갱신이 선교에 크게 영향을 미쳤고, Zinzendorf의 모라비안 운동과 Wesley의 감리교 운동과 미국의 대각성 운동에 영향을 끼침으로써 갱신을 일으킨 것이다.
B. 제 언
독일의 경건주의는 독일이 30년 전 정치, 경제, 종교, 사회적으로 어려운 상황 속에서 그들을 종교, 사회적으로 안정을 일으킨 것은 몇가지 중요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 성경 공부 모임을 통한 교회 안의 작은 교회가 갱신 되었다는 점이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딤후 3:16)과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히 4:12)에 있는 바와 같이 성경 말씀이 그들의 심령에 파고 들어 변화되고 생명력 있는 삶을 살게 되었다.
둘째, 신생의 강조이다. 신앙인들이 거듭나는 체험이 없이 살 때 무기력하고 생동감이 없다.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확신 속에서 그들이 생명을 소유했을 때 진정한 갱신이 이루어졌다.
셋째, 영적 제사장직이다. 성도들을 위하여 규칙적이며 공적인 실행이 어떤 목적을 위해 임몀된 목사들에게 맡겨졌다 할지라도 그러한 일은 평신도들에게도 수행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평신도들로 제사장으로써 직무가 수행된다고 할 때 더욱 열심히 교회를 위하여 일할 것이다.
넷째, 경건주의자들은 사회의 상황을 무시 하지 않았다. 그들은 오히려 사회에 관심을 기울였다. 그들 내부의 경건 활동 뿐만 아니라 사회의 노인 문제, 기아 문제, 청소년 문제, 기타 여러 부분에 걸쳐서 관심을 기울였다.
이상을 고려해 볼 때 교회의 갱신은 외적인 교회의 확장에 있는 것도 중요하지만 교회 내부의 사람들이 하나님 말씀 속에서 말씀에 대한 확신과 그들의 체험이 있어야 교회는 갱신 된다고 하는 것이다. 교회의 행사나 program에 대한 집착에서 이젠 성경 공부 그룹의 활성화와 성경의 깊이 있는 묵상 훈련 말씀의 경험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하며 한국 교회가 내적 갱신에 신경을 쓸 때에 비로소 진정한 교회가 되리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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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혁. "독일 경건주의 운동 소고", [신학지남] 185호 (1979 가을).
민경배. "영국의 경건주의", [복된말씀] 21권, 41호, 1974.
이천영. "웨슬레 복음운동의 사적 고찰", [신학과 선교] 1권, 1972.
5. 논 문
박경림, "독일 경건주의 운동이 현대 선교에 미친 영향". 총신석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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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장흠, "교회 갱신에 있어서 목사의 역할에 관한 연구". 아세아 연합
신학대학원, 1987.
박위근, "교회 갱신의 과제와 그 방법에 관한 연구". 아세아 연합신학
대학원, 1987.
6. 사 전
Encyclopaedia Britunnica, 1975ed. "Piet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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