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죽음의 신학
신의 죽음의 신학
http://cafe.naver.com/modernth/1270 목창균
세속화신학은 신의 죽음의 논쟁과 더불어 더욱 급진화되었다. 우리는 신이 죽었다고 하는 한 역사적 사건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된다. 신은 우리들의 시대와 역사와 생활 속에서 죽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을 부정하고 하나님 없는 신학을 전개하려 했던것이 신의 죽음의 신학이다. 이것은 복음의 본질을 과격하게 곡해하고 그릇된 방향으로 세속화하려 했던 신학운동이다.
토마스 알타이저(Tho mas J. Altizer), 윌리암 해밀톤(William Ha milton), 반 뷰렌(Paul van Buren), 가브리엘 바하니안(Gabriel Vahanian)등. 당시 일단의 미국 젊은 급진주의 신학자들 이 이것을 다양하게 주도했다.
1966년 4월 8일자 미국의 시사 주간지 타임(Time)지가 신이 죽었다(God is Dead) 를 겉표지의 표제로 삼아 소개함으로써 전세계에서 경악과 분노와 탄식을 일으키며 뜨거운 논쟁거리가 되었으나 1960년대 말을 고비로 더 이상 지속하지 못하고 한 때의 유행신학으로 끝나버리고 말았다.
이 미국의 급진신학자들이 하나님의 죽음을 최초로 주장했던 것은 아니다. 이미 서구의 정신사에 나타난바 있었던 사상이었다.
예를 들어, 독일의 철학자 니이체(Fr ie dri ch Nie tz sc he, 1844~1900)는 그의 즐거운 지식 에 등장 하는 미치광이의 입을 통해 하나님의 죽음을 외쳤으며 불란서의 실존 철학자 사르트르(Je an Paul Sartre, 1905~1981)는 이것을 시인했다.
가장 과격한 신의 죽음의 신학자 가운데 한 사람은 당시 에모리 대학의 교수 알타이저였다. 그는 불교사상과 엘리아드(Mirce a Eliade)의 종교현상학 및 니이체의 허무주의에 깊은 영향을 받았다. 그가 1966년에 로체스터 신학교 교수 해밀톤과 함께 저술한 급진신학과 하나님의 죽음 (Radical Theology and the Death of God)은 미국 개신교에 급진신학의 출현을 알린 최초의 책이었다.
이 책에서 그는 급진신학을 개신교의 현대적인 발전으로 정의하고 무신론의 관점을 기독교에 도입하려고 시도했다. 그는 초월적이며 인격적인 존재로서의 하나님이 우리의시대. 역사 및 현존에서 죽었다고 선언함으로써 하나님의 죽음을 역사적인 사실로 간주했다. 하나님의 죽음은 재생이나 부활이 가능한 일시적인 것이 아닌, 역사 안에 다시 나타날 수 없는 최종적인 것이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몰아내고 그 자리에 예수를 모셔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독교의 전통적인 하나님을 전적으로 무가치하게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예수는 우주적 원리로서의 그리스도가 아닌, 역사적 예수였다. 성령과 신적인 요소가 제거된 그리스도, 즉 하나님 없는 그리스도였다. 한편 그는 기독교와 그 신학을 해체하고 다른 종교의 장점을 도입한 새로운 종교를 만들려고 시도했다. 따라서 예수와 디오니서스를, 그리고 기독교의 천국과 불교의 열반을 동일시했다.
이와 같이, 알타이저가 기성종교로서의 기독교를 부인한데 반해, 해밀톤, 뷰렌 및 바하니안은 하나님을 부정하면 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한 기독교, 즉 하나님 없는 기독교를 인정했다.
예를 들어, 해밀톤은 현대인은 하나님도 하나님에 대한 신앙도 없다고 보았다. 초월적인 하나님은 죽었을 뿐 아니라 그 하나님을 인정할 힘마저 말라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는 신의 죽음의 선언을 세속주의의 본질인 무신론을 원인으로 하여 역사 속에서 하나님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체험한 결과로 나타난 운명의 힘에 대한 반항으로 해석했다.
그는 예수를 세상의 주(主)로 인정하는 것이 신학이라고 정의했다. 하나님은 죽었지만 예수는 살아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의 교훈을 중심으로한 윤리적 기독교를 주장했다.
바하니안은 알타이저나 해밀톤 보다 완곡하게 하나님의 죽음을 이야기했다. 그는 신의 죽음(The Dea th of God, 1961) 과 다른 신은 없다(No Other God, 1966) 에서 현대를 기독교가 종교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사멸한 기독교 이후 시대라고 했다. 이 시대에 기독교가 물려줄 유일한 유산은 기독교의 자기 무효화밖에 없다고 하면서 그는 과학과 기술로 기독교를 대체하려 했다.
반 뷰렌은 접근 방법에서 다른 신의 죽음의 신학자들과 구별된다. 그는 복음의 세속적 의미(The Secular Meaning of the Gospel, 1963)에서 본 회퍼가 제기한 문제점을 언어 분석철학을 방법으로 해결하려고 했다.
즉 언어분석을 통해 하나님이란 말을 죽은 언어로 규정했다. 왜냐하면 그것이 의미를 상실했을 뿐 아니라, 현대인에게 존재할 수 없는 초자연적인 세계를 생각하게 함으로써 오해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는 역사적 예수를 발견하여 복음을 세속적으로 이해하게 할 수 있는 새로운 기독교 신학을 전개하려고 했다. 즉 그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 사셨던 인간 예수에 근거하여 유신론적 형태가 아닌 휴머니즘적 형태의 기독교 신학 형성을 자신의 과제로 삼았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신의 죽음의 신학은 하나님 상실의 경험과 역사적 예수에 대한 재발견을 토대로 현 대 미국의 낙관주의적인 사고에 의해 인간의 문제를 하나님이 아닌 세계를 무조건적으로 신뢰함으로써 해결하려한 급진적인 신학운동이다. 우리는 우리들의 욕구 충족자와 문제 해결자로 하나님을 믿지 않고 세계를 믿는다. 신의 죽음의 신학자들의 핵심적인 주장은 다음 두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기독교 전통적인 초월자와 창조주로서의 하나님은 죽었으며, 이것은 역사적인 사실이다. 둘째, 하나님의 죽음은 또한 전통적인 기독교의 죽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예수의 윤리적인 교훈에 근거하여 새로운 윤리종교로서 기독교를 재조직해야 한다. 이런 주장은 경험적 사실의 배후에 있는 초경험적인 실재를 인정하지 않는 반면, 인간의 이성과 경험에 신뢰성을 두려는 실증주의적인 태도로 부터 나온 것이다.
http://cafe.naver.com/modernth/1270 목창균
세속화신학은 신의 죽음의 논쟁과 더불어 더욱 급진화되었다. 우리는 신이 죽었다고 하는 한 역사적 사건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된다. 신은 우리들의 시대와 역사와 생활 속에서 죽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을 부정하고 하나님 없는 신학을 전개하려 했던것이 신의 죽음의 신학이다. 이것은 복음의 본질을 과격하게 곡해하고 그릇된 방향으로 세속화하려 했던 신학운동이다.
토마스 알타이저(Tho mas J. Altizer), 윌리암 해밀톤(William Ha milton), 반 뷰렌(Paul van Buren), 가브리엘 바하니안(Gabriel Vahanian)등. 당시 일단의 미국 젊은 급진주의 신학자들 이 이것을 다양하게 주도했다.
1966년 4월 8일자 미국의 시사 주간지 타임(Time)지가 신이 죽었다(God is Dead) 를 겉표지의 표제로 삼아 소개함으로써 전세계에서 경악과 분노와 탄식을 일으키며 뜨거운 논쟁거리가 되었으나 1960년대 말을 고비로 더 이상 지속하지 못하고 한 때의 유행신학으로 끝나버리고 말았다.
이 미국의 급진신학자들이 하나님의 죽음을 최초로 주장했던 것은 아니다. 이미 서구의 정신사에 나타난바 있었던 사상이었다.
예를 들어, 독일의 철학자 니이체(Fr ie dri ch Nie tz sc he, 1844~1900)는 그의 즐거운 지식 에 등장 하는 미치광이의 입을 통해 하나님의 죽음을 외쳤으며 불란서의 실존 철학자 사르트르(Je an Paul Sartre, 1905~1981)는 이것을 시인했다.
가장 과격한 신의 죽음의 신학자 가운데 한 사람은 당시 에모리 대학의 교수 알타이저였다. 그는 불교사상과 엘리아드(Mirce a Eliade)의 종교현상학 및 니이체의 허무주의에 깊은 영향을 받았다. 그가 1966년에 로체스터 신학교 교수 해밀톤과 함께 저술한 급진신학과 하나님의 죽음 (Radical Theology and the Death of God)은 미국 개신교에 급진신학의 출현을 알린 최초의 책이었다.
이 책에서 그는 급진신학을 개신교의 현대적인 발전으로 정의하고 무신론의 관점을 기독교에 도입하려고 시도했다. 그는 초월적이며 인격적인 존재로서의 하나님이 우리의시대. 역사 및 현존에서 죽었다고 선언함으로써 하나님의 죽음을 역사적인 사실로 간주했다. 하나님의 죽음은 재생이나 부활이 가능한 일시적인 것이 아닌, 역사 안에 다시 나타날 수 없는 최종적인 것이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몰아내고 그 자리에 예수를 모셔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독교의 전통적인 하나님을 전적으로 무가치하게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예수는 우주적 원리로서의 그리스도가 아닌, 역사적 예수였다. 성령과 신적인 요소가 제거된 그리스도, 즉 하나님 없는 그리스도였다. 한편 그는 기독교와 그 신학을 해체하고 다른 종교의 장점을 도입한 새로운 종교를 만들려고 시도했다. 따라서 예수와 디오니서스를, 그리고 기독교의 천국과 불교의 열반을 동일시했다.
이와 같이, 알타이저가 기성종교로서의 기독교를 부인한데 반해, 해밀톤, 뷰렌 및 바하니안은 하나님을 부정하면 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한 기독교, 즉 하나님 없는 기독교를 인정했다.
예를 들어, 해밀톤은 현대인은 하나님도 하나님에 대한 신앙도 없다고 보았다. 초월적인 하나님은 죽었을 뿐 아니라 그 하나님을 인정할 힘마저 말라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는 신의 죽음의 선언을 세속주의의 본질인 무신론을 원인으로 하여 역사 속에서 하나님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체험한 결과로 나타난 운명의 힘에 대한 반항으로 해석했다.
그는 예수를 세상의 주(主)로 인정하는 것이 신학이라고 정의했다. 하나님은 죽었지만 예수는 살아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의 교훈을 중심으로한 윤리적 기독교를 주장했다.
바하니안은 알타이저나 해밀톤 보다 완곡하게 하나님의 죽음을 이야기했다. 그는 신의 죽음(The Dea th of God, 1961) 과 다른 신은 없다(No Other God, 1966) 에서 현대를 기독교가 종교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사멸한 기독교 이후 시대라고 했다. 이 시대에 기독교가 물려줄 유일한 유산은 기독교의 자기 무효화밖에 없다고 하면서 그는 과학과 기술로 기독교를 대체하려 했다.
반 뷰렌은 접근 방법에서 다른 신의 죽음의 신학자들과 구별된다. 그는 복음의 세속적 의미(The Secular Meaning of the Gospel, 1963)에서 본 회퍼가 제기한 문제점을 언어 분석철학을 방법으로 해결하려고 했다.
즉 언어분석을 통해 하나님이란 말을 죽은 언어로 규정했다. 왜냐하면 그것이 의미를 상실했을 뿐 아니라, 현대인에게 존재할 수 없는 초자연적인 세계를 생각하게 함으로써 오해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는 역사적 예수를 발견하여 복음을 세속적으로 이해하게 할 수 있는 새로운 기독교 신학을 전개하려고 했다. 즉 그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 사셨던 인간 예수에 근거하여 유신론적 형태가 아닌 휴머니즘적 형태의 기독교 신학 형성을 자신의 과제로 삼았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신의 죽음의 신학은 하나님 상실의 경험과 역사적 예수에 대한 재발견을 토대로 현 대 미국의 낙관주의적인 사고에 의해 인간의 문제를 하나님이 아닌 세계를 무조건적으로 신뢰함으로써 해결하려한 급진적인 신학운동이다. 우리는 우리들의 욕구 충족자와 문제 해결자로 하나님을 믿지 않고 세계를 믿는다. 신의 죽음의 신학자들의 핵심적인 주장은 다음 두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기독교 전통적인 초월자와 창조주로서의 하나님은 죽었으며, 이것은 역사적인 사실이다. 둘째, 하나님의 죽음은 또한 전통적인 기독교의 죽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예수의 윤리적인 교훈에 근거하여 새로운 윤리종교로서 기독교를 재조직해야 한다. 이런 주장은 경험적 사실의 배후에 있는 초경험적인 실재를 인정하지 않는 반면, 인간의 이성과 경험에 신뢰성을 두려는 실증주의적인 태도로 부터 나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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