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존주의자 부버의 인간교육론 : 만남의 교육
실존주의자 부버의 인간교육론 : 만남의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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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버사상의 뿌리-하시디즘
부버의 사상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두 기둥은 하시디즘과 [만남]이다. 그런데 [만남]의 철학은 하시디즘을 발판으로 생성된 것이기 때문에 "하시디즘을 모르고는 부버를 이해할 수 없다."고 한 표현은 적절하다.
하시디즘은 18세기, 엘리에저에 의해 동유럽의 폴란드에서 생겨난 유대교의 경건주의적 신비운동이다. 하시디즘의 근본이념은 모든 사물 및 피조물들을 신성한 것으로 보며, 그 가르침은 '하느님의 세계를 사랑하는 것'에 있다. 따라서 하시디즘은 세계 속에서의 적극적인 봉사를 요구하며, 종교의 외면적 형식보다는 일상생활의 충실과 관심 그리고 사랑을 강조한다.
부버가 하시디즘을 통해 우리에게 보여주고자 한 바는, 인간이 일상생활을 통해 하느님의 뜻을 실현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이며 바로 이것이 삶의 목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즉 그것은 일상생활의 모든 것을 신성화하는 것이다. 이 같은 견해를 부버는 "하느님의 신성을 발견할 수 있는 존재의 사다리 계단은 언제, 어디에서라도 발견할 수 있다."라고 함축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
(2)[만남]의 철학.
하시디즘을 모태로 한 부버의 철학은 [만남]의 철학이다. 부버에 의하면 인간이 세계에 대하여 가질 수 있는 두 가지의 주요한 태도는 '나-그것'의 관계로써 표현되는 사물세계와 '나-너'의 관계로써 표현되는 인격적 만남의 세계이다. 따라서 어떤 관계를 형성하느냐에 따라 인간의 삶의 양상도 달라진다. 즉 인간이 세계에 대하여 취하는 이중적 태도의 양태에 따라 세계도 인간에게 이중적이 된다. 이러한 인간의 이중적 태도는 두 개의 근원어로 표현되는데, 이것은 '나-너'라고 하는 근원 어와 '나-그것'이라고 하는 근원어로 표현된다.
'나-그것'의 세계는 경험과 인식과 이용의 대상이 되는 세계이다. 사람이 세계를 경험한다고 말할 때, 그것은 사람이 세계를 객체로서 소요하고 이용한다는 것을 뜻한다. 이때의 세계는 경험의 대상으로서의 '어떤 것'일 뿐 경험하는 주체와 적극적이고 직접적인 관계에 있지 않다. 이처럼 방관자, 관찰자, 조정자로서 세계와 관계하는 자는 '나-그것'의 '나'이다.
그러나 '나-너'의 세계는 경험의 대상이 아니다. 여기서의 '너'는 뭇 성질로 분해할 수 없는 전존재이다. 따라서 사람은 '나-너'의 관계에서 서로 전존재를 기울여 참 인격으로 관계한다. 이러한 관계는 직접적이며 상호적이요, 근원적이다. 이러한 '나-너'의 관계에 들어가는 것이 곧 '나'와 '너'의 [만남]이다. 이처럼 세계와 상호 관계하는 자는 '나-너'의 '나'이다.
그러므로 '나-너' 관계에서의 '나'와 '나-그것' 관계에서의 '나'는 서로 다르다. '나-그것'의 '나'는 개인적 존재로서 나타나고 자기를 경험과 이용의 주체로서 의식하는 반면에, '나-너'의 '나'는 인격으로서 나타나고 자기를 종속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지 않은 주체성으로 의식한다.
이처럼 부버는 관계의 개념으로 인간의 위치 및 본질을 파악하고자 한다. 그러기에 참다운 인간 존재는 고립된 실존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관계형성을 통해서 드러난다고 보는 것이다. 결국 부버에게 있어서 인간이란 관계를 통해 그의 실존을 형성해 나가는 창조자로 파악된다. 즉 그는 그의 철학적 인간학의 기본사상을 "인간실존의 기본적인 사실은 인간이 인간과 더불어 함께 있다는 것"으로 함축성 있게 표현하였다. 이처럼 그의 인간학이 '인간의 정체성'에 관한 탐구이기 때문에 그의 교육론의 주요 내용도 '학생 전체성'에 관한 탐구, 즉 전인교육론이라고 볼 수 있다.
(3)인간교육론
부버의 교육관은 그가 행한 두 연설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1925년에 하이델베르크에서 열린 제3회 국제교육대회에서 '아동의 창의력 개발'이란 제목으로 행한 연설과, 1939년에 텔아비브에서 열린 팔레스타인 교사대회에서 '성격교육'이란 제목으로 행한 연설이 그것이다. 이것들에서 드러난 그의 교육관을 간략히 소개하기로 한다.
첫째, 아동을 무한한 가능성과 창조성을 지닌 하나의 현실로 본다. 고결하고도 무한한 가치를 지닌, 역사창조에 이바지하는 존재가 아동이다. 아무리 퍼내도 샘물처럼 솟아오르는 가능성이 바로 아동이라는 현실성이다. 이같이 아동이 현실적이기 때문에, 교육도 현실성이 되어야만 한다. 전인교육이란 아동 속에 감추어져 있는 다양한 능력들을 개발하여 주는 것이며, 이러한 것은 교육이 아동의 현실성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때 비로소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 세계 자체를 하나의 교육장으로 생각한다는 점이다. 하나의 개인에게 인격을 형성시키는 것은 세계이다. 다시 말해 세계, 즉 자연과 사회라고 하는 환경 자체가 인간을 교육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세계 자체가 우리의 교사가 되는 것이다.
셋째, 교육은 비에로스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부버에 의하면 에로스는 선택을 의미하며, 기호에 의해 취해진 선택인데 이것은 교육이 아니라는 것이다. 에로스를 사랑하는 사람은 그가 사랑하려는 사람, 즉 대상을 취사선택하게 되는데 이는 교육의 본래적 정신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넷째, 포용으로서의 교육을 강조한다. 포용은 감정이입과는 달리 자기 자신의 구체성을 확장하고, 삶의 현실적 상황을 충족시키고, 자기가 참여하고 있는 현실을 완전히 나타나도록 하는 것이다.
다섯째, 성격교육을 가치 있는 교육으로서 강조한다. 부버는 인격과 성격을 구분하고 있다. 즉 인격은 본질적으로 교사의 영향력 밖에서 성장하는 것이며, 성격은 인격의 도야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으로 파악한다. 따라서 교사의 최대의 과제는 바로 이 성격교육에 있는 것으로, 이것이 교육목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위대한 성격의 소유자는 격률 이나 관습체계로 이해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는 전존재로 행동하는 자이며, 주어진 상황의 독특성에 조화롭게 반응하는 자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러한 사람이 우리가 바라는 인간상인 것이다.
부버는 현대의 위기상황 속에서 잃어버린 인간의 본래적 모습을 인간과 인간간의 참된 관계형성, 즉 [만남]을 통해 회복하고자 했다. 그가 주장한 인격적 [만남]에 의한 인간성 회복의 문제는 사람됨의 문제이며, 이러한 사람됨의 문제는 교육의 문제이기 때문에 현대의 비인간화된 교육마당에서 [만남]이 중시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의 철학적 인간학이 오늘날 더욱더 우리 가슴에 깊숙이 와 닿는 것은 우리의 삶이 그만큼 비인간화되어 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기에 인간화 교육은 현대교육이 짊어져야 할 중대한 과제로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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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버사상의 뿌리-하시디즘
부버의 사상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두 기둥은 하시디즘과 [만남]이다. 그런데 [만남]의 철학은 하시디즘을 발판으로 생성된 것이기 때문에 "하시디즘을 모르고는 부버를 이해할 수 없다."고 한 표현은 적절하다.
하시디즘은 18세기, 엘리에저에 의해 동유럽의 폴란드에서 생겨난 유대교의 경건주의적 신비운동이다. 하시디즘의 근본이념은 모든 사물 및 피조물들을 신성한 것으로 보며, 그 가르침은 '하느님의 세계를 사랑하는 것'에 있다. 따라서 하시디즘은 세계 속에서의 적극적인 봉사를 요구하며, 종교의 외면적 형식보다는 일상생활의 충실과 관심 그리고 사랑을 강조한다.
부버가 하시디즘을 통해 우리에게 보여주고자 한 바는, 인간이 일상생활을 통해 하느님의 뜻을 실현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이며 바로 이것이 삶의 목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즉 그것은 일상생활의 모든 것을 신성화하는 것이다. 이 같은 견해를 부버는 "하느님의 신성을 발견할 수 있는 존재의 사다리 계단은 언제, 어디에서라도 발견할 수 있다."라고 함축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
(2)[만남]의 철학.
하시디즘을 모태로 한 부버의 철학은 [만남]의 철학이다. 부버에 의하면 인간이 세계에 대하여 가질 수 있는 두 가지의 주요한 태도는 '나-그것'의 관계로써 표현되는 사물세계와 '나-너'의 관계로써 표현되는 인격적 만남의 세계이다. 따라서 어떤 관계를 형성하느냐에 따라 인간의 삶의 양상도 달라진다. 즉 인간이 세계에 대하여 취하는 이중적 태도의 양태에 따라 세계도 인간에게 이중적이 된다. 이러한 인간의 이중적 태도는 두 개의 근원어로 표현되는데, 이것은 '나-너'라고 하는 근원 어와 '나-그것'이라고 하는 근원어로 표현된다.
'나-그것'의 세계는 경험과 인식과 이용의 대상이 되는 세계이다. 사람이 세계를 경험한다고 말할 때, 그것은 사람이 세계를 객체로서 소요하고 이용한다는 것을 뜻한다. 이때의 세계는 경험의 대상으로서의 '어떤 것'일 뿐 경험하는 주체와 적극적이고 직접적인 관계에 있지 않다. 이처럼 방관자, 관찰자, 조정자로서 세계와 관계하는 자는 '나-그것'의 '나'이다.
그러나 '나-너'의 세계는 경험의 대상이 아니다. 여기서의 '너'는 뭇 성질로 분해할 수 없는 전존재이다. 따라서 사람은 '나-너'의 관계에서 서로 전존재를 기울여 참 인격으로 관계한다. 이러한 관계는 직접적이며 상호적이요, 근원적이다. 이러한 '나-너'의 관계에 들어가는 것이 곧 '나'와 '너'의 [만남]이다. 이처럼 세계와 상호 관계하는 자는 '나-너'의 '나'이다.
그러므로 '나-너' 관계에서의 '나'와 '나-그것' 관계에서의 '나'는 서로 다르다. '나-그것'의 '나'는 개인적 존재로서 나타나고 자기를 경험과 이용의 주체로서 의식하는 반면에, '나-너'의 '나'는 인격으로서 나타나고 자기를 종속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지 않은 주체성으로 의식한다.
이처럼 부버는 관계의 개념으로 인간의 위치 및 본질을 파악하고자 한다. 그러기에 참다운 인간 존재는 고립된 실존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관계형성을 통해서 드러난다고 보는 것이다. 결국 부버에게 있어서 인간이란 관계를 통해 그의 실존을 형성해 나가는 창조자로 파악된다. 즉 그는 그의 철학적 인간학의 기본사상을 "인간실존의 기본적인 사실은 인간이 인간과 더불어 함께 있다는 것"으로 함축성 있게 표현하였다. 이처럼 그의 인간학이 '인간의 정체성'에 관한 탐구이기 때문에 그의 교육론의 주요 내용도 '학생 전체성'에 관한 탐구, 즉 전인교육론이라고 볼 수 있다.
(3)인간교육론
부버의 교육관은 그가 행한 두 연설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1925년에 하이델베르크에서 열린 제3회 국제교육대회에서 '아동의 창의력 개발'이란 제목으로 행한 연설과, 1939년에 텔아비브에서 열린 팔레스타인 교사대회에서 '성격교육'이란 제목으로 행한 연설이 그것이다. 이것들에서 드러난 그의 교육관을 간략히 소개하기로 한다.
첫째, 아동을 무한한 가능성과 창조성을 지닌 하나의 현실로 본다. 고결하고도 무한한 가치를 지닌, 역사창조에 이바지하는 존재가 아동이다. 아무리 퍼내도 샘물처럼 솟아오르는 가능성이 바로 아동이라는 현실성이다. 이같이 아동이 현실적이기 때문에, 교육도 현실성이 되어야만 한다. 전인교육이란 아동 속에 감추어져 있는 다양한 능력들을 개발하여 주는 것이며, 이러한 것은 교육이 아동의 현실성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때 비로소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 세계 자체를 하나의 교육장으로 생각한다는 점이다. 하나의 개인에게 인격을 형성시키는 것은 세계이다. 다시 말해 세계, 즉 자연과 사회라고 하는 환경 자체가 인간을 교육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세계 자체가 우리의 교사가 되는 것이다.
셋째, 교육은 비에로스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부버에 의하면 에로스는 선택을 의미하며, 기호에 의해 취해진 선택인데 이것은 교육이 아니라는 것이다. 에로스를 사랑하는 사람은 그가 사랑하려는 사람, 즉 대상을 취사선택하게 되는데 이는 교육의 본래적 정신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넷째, 포용으로서의 교육을 강조한다. 포용은 감정이입과는 달리 자기 자신의 구체성을 확장하고, 삶의 현실적 상황을 충족시키고, 자기가 참여하고 있는 현실을 완전히 나타나도록 하는 것이다.
다섯째, 성격교육을 가치 있는 교육으로서 강조한다. 부버는 인격과 성격을 구분하고 있다. 즉 인격은 본질적으로 교사의 영향력 밖에서 성장하는 것이며, 성격은 인격의 도야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으로 파악한다. 따라서 교사의 최대의 과제는 바로 이 성격교육에 있는 것으로, 이것이 교육목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위대한 성격의 소유자는 격률 이나 관습체계로 이해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는 전존재로 행동하는 자이며, 주어진 상황의 독특성에 조화롭게 반응하는 자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러한 사람이 우리가 바라는 인간상인 것이다.
부버는 현대의 위기상황 속에서 잃어버린 인간의 본래적 모습을 인간과 인간간의 참된 관계형성, 즉 [만남]을 통해 회복하고자 했다. 그가 주장한 인격적 [만남]에 의한 인간성 회복의 문제는 사람됨의 문제이며, 이러한 사람됨의 문제는 교육의 문제이기 때문에 현대의 비인간화된 교육마당에서 [만남]이 중시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의 철학적 인간학이 오늘날 더욱더 우리 가슴에 깊숙이 와 닿는 것은 우리의 삶이 그만큼 비인간화되어 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기에 인간화 교육은 현대교육이 짊어져야 할 중대한 과제로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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