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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존주의의 개요

실존주의의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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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실존주의의 역사적 개요
실존주의는 20세기 전반(前半)에 합리주의와 실증주의 사상에 대한 반동으로서 독일과 프랑스를 중심으로 일어난 철학 사상으로 실존이라는 것이 현대적인 의미로서 다루어지기 시작한 것은 덴마크의 철학자 키에르케고르(1813∼1855,42세)에서부터 이다. 키에르케고르는 힘겨운 기독교와의 논쟁으로 자신의 삶을 마감했으며 자신은 신보다는 인간의 양심을 믿는다라고 했지만 그는 유신론적인 실존주의자로 말하여 진다. 실존철학의 무신론적인 것은 니체(1844∼1900,56세)에 의해서부터 이다. 그 이후 금세기의 실존주의 철학은 유신론적 실존주의와 무신론적 실존주의로 나뉘어졌는데 사르트르(1905∼1980), 카뮈(1913∼1960,47세)는 20세기의 대표적인 무신론적 실존주의자이다. 사르트르는 그의 이상으로 인해 정치적으로 되었으며 막스적인 영향을 받게 되었다. 그것은 그의 참여적인 행동에 의한 그 당시의 발로였다고 생각되어지지만 결국 그는 카뮈와 퐁트와도 결별하게 되었다.
사르트르와 카뮈는 모두 프랑스 실존주의자들로 20세기 중반에 커다란 존재들이었으며 소설가이며 비평가로도 유명하다.
야스퍼스(1883∼1969.86세)는 유신론으로, 하이데거(1889∼1976)는 무신론적인 실존주의라고 구분되며 사르트르는 자신을 포함한 프랑스 실존주의자들은 하이데거를 지지한다고 했다. 그러나 실은 야스퍼스도 평생을 거쳐 신이라는 것을 말한 적이 거의 없으며 가장 기독교적인 실존주의자였던 키에르케고르 자신도 자신을 기독교주의라고 말할 수 없다고 했다. 실존주의는 유신론적인 것이 한 면으로 구분되어지긴 하지만 그 본질에 있어서 무신론적인 것일 수밖에 없다.
야스퍼스와 하이데거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데 그 시기도 비슷했으며 둘 다 아카데믹한 논문과 강의로 일관했다는 점. 그리고 그 둘은 50대에 들어 서부터 니체에 대해서 생의 마지막까지 자주 이야기했으며 또한 위에 언급한 다른 실존주의 철학자들 만큼의 강렬한 철학과 인상을 주지는 못했다.
실존이라 함은 삶 그 자체를 말하는 것으로 진실 그 자체에 접근하는 철학이다. 추운 것을 춥다고 말하는(인간의 실존에 대해서, 혹은 그것을 바탕으로 해서 이야기하는) 것. 그것이 실존주의이다. 이러한 실존주의의 시적 특성은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의 유명한 말에서 비롯된 비 신학적 논거에서 출발한 근대 철학의 연장선상이라 할 수 있다. 낭만주의 철학의 과도한 반항에서 그것을 넘겨 니체에 이르러 세련되고 심오해졌다.
니체는 막스와 함께 20세기를 뒤흔든 두 명의 철학자이다. 니체의 실존주의 철학은 현대 정신문명의 거대한 기반이며 굳이 실존주의라고 말하여 지지 않는 문학작품 속에서도 실존주의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은 20세기에 미친 실존주의의 영향, 그 근본을 관철하는 삶에 대한 깊이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인류는 이미 많은 것을 니체 위에서 살고 있으며, 실존주의는 20세기 사유의 세계에서는 유일한 안식처이자 보편적인 것이 되었다. 21세기의 철학 역시 니체의 20세기 혁명 아래로, 혹은 위로 가지 않을 것이다.

 
 
2. 실존주의란 무엇인가

주체적 존재로서의 실존의 본질과 구조를 밝히려는 실존주의(Existentialism)는, 19세시의 합리주의적 관념론 혹은 실증주의에 대한 비판과 도전으로 시작하여 분석철학과 함께 현대철학의 주류를 형성하였다.
양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이전에 후설(Edund Husserl)은 현상학적 입장을 통해 철학의 관심을 인식론으로부터 존재론으로 전환시켜야 한다고 제창하였다. 실존주의의 생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던 후설의 그 같은 제창은 양차대전의 비극적 체험을 통해 더욱 더 촉진되었다. 게다가 과학·기술문명의 발달은 빈곤의 문제를 해결하였지만 반면에 인간의 주체성을 말살하는 역현상도 초래하였다. 이것 또한 실존주의의 생성을 촉진시킨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이처럼 실존주의는 19세기와 20세기의 특수한 역사적 상황을 반영하면서 출발한 철학사상이다. 요컨대 그것은 현대문명의 비인간화에 대한 반항으로 등장하였다. 그것은 기술문명과 관료기구 그리고 객관주의에 대한 항변이며, 산업사회에서의 조직화로 인한 인간소외에 대한 거부이다.
현대사회는 불특정 다수인으로 형성된 대중사회 즉 익명성의 사회이며, 인간의 개체성과 주체성을 말살하고 획일화된 일반법칙을 강요한다. 바로 이러한 현대사회 속에서 인간은 진정한 '나'를 상실한 비본래적 삶을 영위하고 있다. 그래서 진정한 '나'의 새로운 탄생을 갈망하고, '나 자신'의 주체성과 개체성을 찾고자 하는 것이 실존주의가 주구하는 기본적 주조음이라고 할 수 있다.
실존주의는 정의하기가 쉽지 않다. 우선 실존의 의미를 알아보면 실존이라 함은 말 그대로 실제로 존재하는 인간의 모습을 의미하는 것이고 실존 철학이라 함은 그러한 실존의 모습을 규명하고자 하는 철학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단어 적인 의미에서만 보았을 때는 실존주의는 방법론 적인 것으로 보일 수 있다. 키에르케고르는 인간의 실존의 모습을 신 앞에 존재하는 고독자로 이야기했다. 그러나 니체의 실존주의를 비롯한 무신론적 실존주의는 낭만주의와 쇼펜하우어의 허무적인 철학에서 그 흐름을 이어받은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무신론적 실존주의에서의 실존이라 함은 유신론적 실존주의와는 달리 인간의 모습을 아무 것도 아닌 무로 이야기하고 있으며 이러한 인간의 모습에서 인간의 길을 찾고자 하는 철학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실존주의는 그 이전의 철학이 진리와는 동떨어진 모색만을 하는 것에 대한 반발이랄 수 있으며 무신론적 실존주의는 데카르트 이후의 신을 잃어버린 시대에 당연한 귀결이라 할 수 있다.
실존한다는 것은 그 외의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 다는 의미라고 할 수 있다. 이 우주밖에 무엇이 있든 그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데카르트의 명제처럼 "우리는 생각한다"는 것이고, 또한 실존주의에서 우리는 삶을 느낀다는 것이다. 모든 낡은 관념과 우매함을 떨치고 진정한 이 삶에서 인간을 이야기하는 것, 이러한 삶에 대한 주체적이고 적극적인 방식, 이것이 실존주의이며, 이러한 이유로 실존주의 철학의 선구자인 니체의 철학을 생의 철학이라고 한다.
실존주의는 다양한 발상에 의해 생겨났다. 그 역사도 파스칼, 아우구스티누스, 그리고 멀리는 소크라테스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으나 현대적 의미로의 실존주의는 위에서도 말한 키에르케고르에서부터 시작하여 니체, 하이데거, 카뮈, 부버 등에 이어진다고 보아야 한다. 이들 현대의 실존주의자들마저 각각 그 관심사가 다르기에 실존철학의 연구주제가 무엇이라고 일반적으로 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그 중 가장 많은 것은 체제성의 대비 개념인 개체성, 지식뿐만 아니라 감정, 의지까지도 포함한 체험의 세계를 중시하는 지향성, 엄연한 사실로 인정할 수밖에 없는 존재의 불합리성, 자기 삶을 스스로 개척해 가는 데 행사해야 할 선택의 자유와 결단, 인간이 도저히 피할 수 없는 불안·죽음·우울, 그리고 두 자유로운 개체사이에서 이루어져야 할 공감적 관여의 문제 등이다.
플라톤으로부터 헤겔에 이르는 전통철학은 그 관심이 주로 본질에 관한 문제에 있었으며, 따라서 철학자들은 철학의 주요 임무가 "실재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답하는 것으로 여겨왔다. 그러나 실존주의는 본질의 문제를 종속적인 지위로 좌천시키면서 철학의 관심을 전환시켰다. 그들은 실존을 본질에 선행하는 것으로 보았다. 이것이 실존주의가 제기하는 근본적인 새로운 유형의 문제가 되는 바, 그 물음은 " '나는 존재한다'라고 말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라는 것이다.
사르트르는 기능공의 예를 든다. 즉 제화공이 신발을 만들 때 그가 만들려고 하는 신발의 이데아(본질)가 신발을 만들기 이전에 그에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다. 마찬가지로 신도 인간을 만들기 이전에 이데아를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본다. 따라서 항성 본질이 실존에 선행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르트르는 인간의 창조주는 없다고 본다. 인간은 스스로를 발견한다는 것이다. 인간은 스스로를 발견한다는 것이다. 즉 인간의 실존이 먼저 있고 나서 그 다음에 그 자신의 본질을 결정해 나간다는 것이다. 인간이 먼저 존재하고, 그리고 나서 그 자신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실존주의자들은 이렇게도 이야기한다. 즉 인간의 창조자를 가정한다면, 그 신을 설명해야만 한다. 또 신의 창조자를 가정한다면, 그 신을 창조한 창조자의 창조자를 설명해야만 한다. 이러한 식으로 논리를 전개하면 한이 없으며, 결국 창조자가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그러므로 우리는 단순히 실존하는 인간으로서 파악되며, 그가 어떤 특별한 무엇이 되기 전에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유사한 양식으로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I think, therefore I am.)를 반박할 수 있다. 즉 내가 존재하지 않으면 분명히 나는 생각을 할 수 없다. 따라서 나는 생각하기 이전에 존재해야만 한다. 그러므로 데카르트의 말은 "나는 존재한다. 고로 나는 생각을 하기 위한 필수 조건들 중의 하나를 가지고 있다."(I think, therefore I have one of the prerequisites for thought.)라고 고쳐야 더욱 정확한 것이 될 것이다. 요컨대 실존주의는 "나는 선택한다. 고로 존재한다."(I choose, therefore I am.)라는 명제를 사용한다.
실존주의에서 인간은 그 자신의 본질을 결정하는 데 있어서 완전히 자유롭다. 이러한 자유는 절대적이다. 즉 인간은 그가 되고자 하는 대로 선택할 수 있다. 이처럼 실존주의에서는 각 개인 스스로가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준거까지도 결정한다. 그러나 이때 윤리적 선택에 대한 인격적 책임은 필수적이다. 즉 도덕적 결정에 있어서 개인의 책임을 크게 강조하는 것이 실존주의의 중심원리이다.
인간은 결정되지 않은 존재이며 선택할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항상 그 자신을 실현하고자 노력한다. 사실상 이러한 과정은 되어 감(혹은 생성)의 과정이다. 요컨대 존재한다는 것은 되어 감의 과정에 종사한다는 것이며 그것은 인간이 지구상에 있는 한 계속되도록 운명지어져 있다. 그가 어떠한 인간이 될 것인가에 대한 제약은 전혀 없다.
인간의 존재는 스스로를 초월함으로써 특징 지워지며 끊임없이 인간의 본질을 재조정한다. 인간의 실존은 그에게 열려 있는 가능성들의 선택에 달려 있다. 그리고 이러한 선택은 결코 한번만으로는 실존주의에서는 인간을 "그 자신의 본질을 결정하는 자, 그리고 그 자신의 가치를 규정하는 자"로서 파악한다.

 
 
3. 대표적인 실존주의 학자들

3-1. 키에르케고르(S ren. A. Kierkegaard:1813∼1855)

1940년대 유럽 사람들은 인류를 전쟁의 재앙으로 몰아넣은 정의와 진보 같은 장미 빛 이념에 환멸을 느낀다. 이념이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 아니며 진정 중요한 것은 개개인의 삶과 자유임을 깨달은 것이다. 따라서, 이 시기에는 이념에 대한 그릇된 확신을 거부하고 개인의 체험과 자유를 강조하는 새로운 철학이 유행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실존주의(實存主義)이다. 그리고 한 세기 전에 이미 개인의 의지와 선택의 중요성을 외치던 유럽 변두리의 한 철학자가 비로소 실존주의의 선구자로 주목받게 된다. 이 사람이 바로 '신 앞에선 단독자' 키에르케고르이다.
그는 공식적 종교 이데올로기와 교회에 반대했고, 인간과 신을 직접적으로 연결시켜 줄 수 있는 개인적인 신앙을 정당화하였다. 그것은 키에르케고르가 윤리적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가 된다. 그는 헤겔의 절대적 관념론과 합리주의는 본래적 인간 존재, 즉 실재하는 인간 그것이라 할 수 있는 열정과 감정들을 무시했다는 견해를 가졌다. 키에르케고르는, 그가 이상형의 인간, 행위, 행동, 삶의 원형으로 여긴 그 사상가의 제일의 사명은 현실 세계에 대한 인식이 아니라, 실존 세계내의 자아에 대한 인식이라고 믿었다.
키에르케고르에 따르면, 현실 세계는 절망으로 나타나는, 죽음에 이르는 병에 걸린 상태이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역설적으로 나타난다. 즉, 가장 불행한 사람은 가장 행복한 사람이며, 가장 행복한 사람은 가장 불행한 사람이고, 진실은 거짓이고, 거짓은 진실이고, 실재는 허상이며 허상은 곧 실재라는 것이다. 이것이 키에르케고르가 역설적 변증법이라고 말하는 그것이다. 개인은 그 자신과 자신의 내적 세계를 돌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진리는 주체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키에르케고르는 인간이 자신의 목표에 이르기 위해 통과해야 하는 인생의 3가지 단계를 도출한다. 첫째, 인간이 결코 물질화 될 수 없는 가능성만을 다루게 되는 심미적 단계, 즉 인간은 단지 상상의 삶을 살아가게 되는 단계이다. 둘째, 인간이 실재적 삶을 살고 그 자신의 존재에 대한 책임감을 발전시키는 윤리적 단계(이 단계는 끊임없는 정열과 감정, 그리고 자기 자신의 '에고[ego]'에 대한 심오한 분석으로 특징 지워진다)이다. 마지막으로, 인간이 당면한 [이것이냐 저것이냐]의 딜레마를 해결해야 만하고 궁극적으로 유한성 대신에 영원성을 선택해야만 하는 종교적 단계이다. 키에르케고르의 철학적 저술뿐만 아니라 윤리학 저술도, 유물론자와 변증법적-합리주의자들의 견해에 대한 기독교 낭만주의의 반향이다.
그는 기성 그리스도교와 교회까지도 비판하였으며 <순간> 등의 팜플렛을 통한 공격은 매우 격렬하였다. 그런 와중인 1855년 10월 갑자기 노상에서 졸도한 후 다음달 병원에서 죽었다. G.W.F.헤겔의 범논리주의를 배제하여 불안과 절망 속에 개인의 주체적 진리를 탐구한 그의 사상은 20세기에 들어설 때까지 국외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으나, 1909년부터 독일에서 C.슈램프가 키에르케고르의 번역집을 내어 당시 신진이었던 P.바르트, J.H.하이데거, K.야스퍼스 등의 변증법 신학자와 실존주의자에게 커다란 영향을 주었고, 그로부터 그의 명성은 현대 그리스도교 사상과 실존사상의 선구자로서 세계에 알려졌다. 키에르케고르의 주된 윤리학 관련 저서는 <이것이냐 저것이냐 ― 삶의 단편>, <공포와 전율>(1843), <불안의 개념>(1844)등이 있다.

 
3-2. 니체 (Friedrich Wilhelm Nietzsche:1844.10.15∼1900.8.25)
쇼펜하우어의 의지철학을 계승하는 '생의 철학'의 기수이며, S.A.키에르케고르와 함께 실존주의의 선구자로 지칭된다. 목사인 아버지를 5세 때 사별하고 어머니·누이동생과 함께 할머니 집에서 자라났다. 14세 때 프포르타 공립학교에서 엄격한 고전교육을 받고 1864년 20세 때 본대학에 입학하여 F.리츨 밑에서 고전문헌학에 몰두하였다. 다음 해, 전임하는 스승 리츨을 따라 라이프치히대학으로 옮겼다. 이 대학에 있을 때,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라는 책에서 깊은 감명과 영향을 받았고, 또 바그너를 알게 되어 그의 음악에 심취하였다.
1869년 리츨의 추천으로 스위스의 바젤대학 고전문헌학의 교수가 되었다. 1870년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에 지원, 위생병으로 종군했다가 건강을 해치고 바젤로 돌아왔다. 그 이후 그는 평생 편두통과 눈병으로 고생하였다. 28세 때 처녀작 <비극의 탄생>(1872)을 간행하였다. 쇼펜하우어의 형이상학을 빌려 그리스 비극의 탄생과 완성을 아폴론적, 디오니소스적 이라는 두 가지 원리로 해명하고, 이어 소크라테스적 주지주의에 의거하는 에우리피데스에서 이미 그 몰락을 보았으며, 다시 그 재흥을 바그너의 음악에서 기대 ·확인하는 이 저서는 생의 환희와 염세, 긍정과 부정을 예술적 형이상학에 쌓아 올린 것이다.
니체의 철학은 생의 철학과 함께 권력(힘)에의 의지, 영겁회귀, 초인 등의 유명한 몇 가지 말로 표현되곤 한다. 영겁회귀, 초인은 짜라투스트라에 담겨진 단어들이고 권력에의 의지는 짜라투스트라에 담긴 사상을 체계적으로 말해볼 생각으로 씌어진 책의 제목이다. 권력이란 것은 창조적인 힘을 말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창조란 새로운 가치기준을 말한다. 이 창조적인 새로운 가치란 또한 실존의 유희를 가로막은 것에 대한 초극이라 할 수 있다.
니체는 결국 하나의 시인으로서 철학을 이야기했으며 그 시에 담긴 그의 실존 철학은 다른 실존주의자들처럼 논리적인, 그러니까 실존이 무엇이고 그래서 어쩐다는 식의 이야기는 아니다. 그의 실존주의는 규명적이고 한정적일 수밖에 없는 논리적 실존주의가 아니라 모든 한심스러운 것에 대한 질타라고 하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 니체의 철학은 하나의 실존주의라기에는 너무 커다랗다. 니체는 인간의 삶을 가로막는 모든 것에 대해서 이야기하며 인간을 극복되어야 할 존재로 이야기한다. 그의 끝없는 긍정과 창조적인 인간 정신에 대한 예찬은 그의 사상을 도저히 단순하게 실존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는 철학자라 이야기 할 수는 없는 것이며 인간 정신의 그 본질에 파고드는 인류에 주어진 위대한 정신의 유산이라 해야 할 것이다.
니체 이후의 모든 실존주의 철학자들은 그의 사상을 설명하고 옹호하며 또한 많은 시간을 반대론자들의 공격을 해소시키기 위해서 시간을 바쳤다. 사르트르와 까뮈는 특히 막시즘의 철학자들에 대한 공격에 맞섰으며 실존주의는 허망한 철학이라는 일반적인 관념과 싸워야 했다.
그의 대표적인 저서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하였다 (Also sprach Zarathustra)>는 4부로 된 철학적 산문시로 산 속에 숨어살던 짜라투스트라(고대 페르시아의 拜火敎祖 조로아스터의 독일 이름으로, 책 내용은 이 종교와 관계가 없다)가 ‘신은 죽었다’고 하는 깨달음을 얻고 산을 내려와 여행하면서 가르침을 전하는 모습을 그린 철학적 서사시이다.
이 가운데서 니체는 초인(超人) ·권력에의 의지 ·영겁회귀 등 그의 중심적인 사상을 전개하고, 창조적인 삶의 긍정과 충실을 설명하였다. 비유와 상징을 사용하고 아름다운 어구(語句), 시적 표현을 아로새겨서 이러한 사상을 구상화하여 후에 사상가뿐만 아니라, 많은 시인과 문학가들에게도 영향을 끼쳤다. 이 사상 중에서 초인(超人)은 일반적으로 인간의 불완전성이나 제한을 극복한 이상적 인간을 일컫는 말로 니체의 초인사상은 그 후 나치스에 의하여 곡해된 적도 있었지만, 현대에는 실존철학의 입장 등에서 새로운 조명을 받고 있다.
니체 이후의 실존주의라 함은 짜라투스트라에서 시작하여 그것의 개성화 되는 여러 현상적 개념들에 지나지 않는다 할 수 있으며, 많은 부분 니체에 대한 설명 다름의 것이 아니라 할 수 있을 것이다.

 
3-3. 야스퍼스 (Karl Theodor Jaspers:1883.2.23∼1969.2.26)
야스퍼스는 원래 하이델베르크와 뮌헨대학에서 의학을 공부하였다. 제1차 세계대전 직후에 그는 생에 대한 많은 상이한 태도들에 관한 기술들로 구성되어 있는 <세계관의 심리학>을 출판하였는데 그것은 야스퍼스가 심리학에서 철학에로 전환하는 특징을 나타낸다.
철학 교수로 전임한 뒤에 야스퍼스는 I.칸트, S.A.키르케고르, F.W.니체의 철학에 큰 영향을 받았으며, E.후설의 영향까지 곁들였다. 그는 더욱 철학에 진력하여 마침내 그의 최대의 저서인 <철학 (Philosophie)>(3권)을 펴내 ‘실존철학’을 체계적으로 전개하였다. 이 체계적 전개의 배경에는 <현대의 정신적 상황 (Der geistige Situation der Zeit)>(1931)에서와 같이 20세기 서구사회가 제기하는 기계문명, 대중사회적 사회, 정치상황, 특히 제1차 세계대전 후의 가치전환적인 사상적 위기에 대한 깊은 성찰이 기조를 이루었다. 또한, 그는 실증주의적(實證主義的)인 과학에 대한 과신(過信)을 경고하고, 근원적인 불안에 노출된 인간의 비합리성을 포착하여 본래적인 인간존재의 양태를 전개하는 ‘실존철학’을 시대구원의 한 방법으로서 제시하였다. 인간존재를 규명하는 철학적 사색은 그 전과 같이 세계의 조감도를 얻는 그런 단순한 추상적 사유가 아니라, 인간존재의 근원에 파고드는 활동이며, 철학은 ‘철학한다(Philosophieren)’는 일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야스퍼스에 따르면 자아의 본성은 실존해명(Existenzerhellung)을 통하여 발견된다. 실존해명은 인간의 가능성들, 즉 자아와 존재의 이해를 추구하는 실재의 가능성들을 드러내 준다. 실존해명은 질문자 자신에로의 접근을 허용한다. 인간에 있어서 실재적이며 가치 있는 것, 즉 진정한 것은 실존(Existenz)이라 불리어 진다. 실존은 새로운 가능성들에 무한히 열려 있으며, 전통적인 탐구로는 접근할 수 없다. 비록 실존이 개념적으로 한계 지워질 수 없는 인간존재의 결정적인 영역이라 할지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분명히 경험된다. 실존은 인간에 있어서 영원한 것이며, 반면에 현존(Dasein)은 인간의 현세적인 차원이다. 현존은 기술될 수 있는 특성을 가지고 있는 인간의 영역이며, 이론적 반성으로 접근될 수 있다. 단순한 현존을 나의 존재인 실존의 진정한 근거와 혼동하는 것은 우둔한 유물론이며, 난파를 초래한다. 반면에 현존을 전적으로 무시하는 것은 허무주의를 초래한다. 이 둘 사이의 긴장이 중용인 것이다.
인간은 그의 세계로부터 소외되어 있다. 생존은 의존과 공존하는 자유, 고독과 공존하는 사귐, 악과 공존하는 선, 불행과 공존하는 행복, 죽음과 공존하는 삶 같은 역설과 이율배반들로 가득차 있다. 야스퍼스에 의하면 실존은 한계상황(Grenzsituation)에 의하여 제한된다. 이러한 한계상황을 경험하는 것과 실존하는 것은 같은 것이다.
인간을 정의하는 특성은 그의 유한성이다. 인간은 유한성을 자신의 실존에 대한 한계로서 경험한다. 진정한 실존은 가능한 이러한 한계들을 밀어 되돌려 보내고 그리고 나서 그것들을 수용하고 견디어 나가려고 한다. 죽음은 이러한 한계들 가운데 가장 극적인 것이다. 그것은 뒤로 연기하지 않고 확실하게 삶의 절박성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상황성의 한계는 우리가 한편으로 우리 자신을 선택한다는 사실이다. 자유는 인간에게 중심적인 것이다. 자유는 도덕적 책임의 문제가 되는 선택의 압도적인 중요성을 초래한다.
실존은 한계상황을 통해 감지되고 실현되며, 또한 초월자를 감지함으로써 실존이 나에게 증여되는 나의 현실적 실존이다. 실존이 한계상황에서 자기 자신을 깨닫는 비약은 첫째 모든 것에 대한 불확실성에 직면하여 세계현존으로부터 보편적인 지식을 추구하는 고독한 자아에로 나아가는 것이며, 둘째 좌절의 세계 속에 내가 필연적으로 참여하여 한계상황에 있는 자신을 알고, 이 한계상황을 사유함을 통하여 사물들을 관찰함에서부터 가능적 실존의 해명에로 나아가는 것이고, 셋째 가능적 실존으로의 현존으로부터 한계상황 속에 있는 현실적인 실존에로 나아가는 것이다. 이것은 한계상황의 해명을 통하여 실존해명이이 이루어지고, 한계상황의 주체적 체험을 통하여 현실적 실존에로의 비약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3-4. 사르트르 (Jean-Paul Sartre:1905.6.21∼1980.4.15)

사르트르는 파리 해군 기술장교였던 쟝 바티스트 사르트르의 장남으로 출생하였다. 2세 때 아버지와 사별하여 외조부 C. 슈바이처의 슬하에서 자랐다. 어머니 안느 마리 슈바이처는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슈바이처의 사촌이다.
그의 저서 <자아의 극복 (Transcendance de l’Ego)>(1934), <상상력 (L’Imagination)>(1936)은 당시 사르트르의 현상학에 대한 심취가 낳은 철학논문이다. 1938년에는 소설 <구토>가 간행되었는데, 존재론적인 우연성의 체험을 그대로 기술한 듯한 이 작품의 특수성은 세상의 주목을 끌어 신진작가로서의 기반을 확보하게 되었다.
장편소설 <자유의 길 (Les Chemins de la libert)>(1945∼1949)의 대부분과 <시튀아시옹 (Situations)>(1947∼1965)에 들어 있는 수많은 독창적인 문예평론도 전시하의 산물이었으나, 특히 1943년에 발표한 대작 철학논문 <존재와 무>(1943)는 무신론적 실존주의의 입장에서 전개한 존재론으로서 결정적인 작업이었고, 세계적으로 보아도 제2차 세계대전의 전중부터 전후에 걸친 그 시대의 사조를 대표하는 웅대한 금자탑이라고 할 수 있는 노작이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메를로 퐁티 등의 협력을 얻어 <레탕모데른 (Les Temps Modernes)>지(誌)를 창간하여 전후의 문학적 지도자로서 다채로운 활동을 시작하였다.
사르트르의 문학적 주장은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1946)에서 밝혀 두었는데, 그가 말하는‘문학자의 사회 참여’란 그 이전의 <구토>나 <존재와 무>에서 볼 수 있었던 니힐리즘의 그림자가 짙은 세계관과의 사이에 비약을 느끼게 하는 것이어서, 그 사이에는 역시 전쟁의 체험에 따른 사르트르 자신의 주체적 변화가 있었다고 하여야 할 것이다. 전후부터 오늘날에 이르는 사르트르의 발자취는 이른바 ‘사회참여’ 사상으로 일관해온 것이라 하겠으나, 특히 1940년대부터 1950년대에 걸쳐 그는 그 때까지의 개인주의적인 실존주의에 의한 사회참여의 한계를 인정함과 동시에 더욱 경향적인 입장을 취하게 되었다.
<생 즈네 (Saint Genet)>(1952)는 <도둑 일기> 작가 즈네의 평전으로 쓰면서도 개인적인 실존의 한계를 밝힘으로써 그러한 세계로부터의 탈피를 지향한 듯한 의미를 내포한 작품이었다. <변증법적 이성비판 (Critique de la raison dialectique)>(1960)은 그의 사상적 발전을 보여 주는 노작인데, 현대의 마르크스주의자가 동맥경화증에 빠져 있는 양상에 반성을 촉구하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자기모순적인 경향성으로 말미암아 오래 전부터 친교를 맺어 왔던 친구들이 계속하여 떠나게 되었고 마지막에는 카뮈와도 절교하기에 이르렀다.
한편 사르트르는 전쟁 중에도 많은 극작을 발표하여 호평을 받았는데, 그로 인해 1964년 노벨문학상을 수여하려 했으나 수상을 거부하였다.
사르트르 철학은 무신론적, 행동주의적 실존이라 할 수 있다. 그는 행동이야말로 인간을 살리는 유일한 것이라고 했다. 또한 실존주의를 하나의 휴머니즘으로 보는 것이 그의 실존철학이다.
사르트르는 실존주의의 근본 원칙으로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는 것과 실존은 주체성이다 는 것을 들었다. 이 실존의 근본원칙의 하나인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는 것의 의미는 사물의 본질, 즉 목적이 선행한 후의 창조물이 아니라 인간은 그 자체로 존재하는 무의 실존이라는 것이다. 즉, 무이기 때문에 인간은 행동에 의해서 자기 자신을 만들어 나아가는 것이다. 이러함으로 서 인간은 행동의 주체요, 선택의 주체다. 인간은 자기가 자기를 선택하는 주체이다.
자기가 자기를 선택하는 이상 그 책임 역시 자기에게 있다. 그리고 내가 내게 대해서 책임을 진다는 것은 전 인류에 책임의 의식을 가지는 것이며 연대의 문제로 나아간다.
사르트르의 실존주의적 휴머니즘은 인간의 운명은 인간수중에 장악되어 있고 이것을 주장하고 이것을 인간에게 자각시켜야 한다는 것이며 그러한 의미에서 휴머니즘이다. 즉, 실존의 자유 위에서 주체적 행동적 휴머니즘이다. 이러한 입장에서 사르트르는 유물론은 실증주의를 가장한 하나의 형이상학이요, 변증법은 인간의 자유를 부정하는 윤리이며 유물 변증법은 혁명적 신화에 불과하다고 하며 마르크스주의를 비판하고 반대했다.
자유의 존재요, 실천의 주체인 인간은 이 사회 속에 내어 던져진 우연적인 존재이면서 자기의 자유로운 행동과 노력으로서 이 사회를 초극하고 변혁할 수 있는 것이다.

 
3-5. 카뮈 (Albert Camus:1913.11.7∼1960.1.4)
1960년 알베르 카뮈가 불행하게도 1957년 노벨 문학상을 받고 나서, 최초의 본격적 장편소설 <최초의 인간>을 집필하기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교통 사고로 사망했을 때, 세상은 이구동성으로 그의 죽음에 대해 다음과 같이 애도하였다. "이 시대의 문화적 프랑스는 가장 혜안이 깊고 가장 균형 있는 대변자 중의 한 사람을, 아마도 프랑스 정신계의 전형적이고 철두철미 프랑스적인 그리고 가장 인문주의적인 대변자를" 잃어 버렸다.
카뮈의 특징은 그가 프랑스 정신계의 현실을 대변하듯이, 그의 작품도 그 현실에 의해 규정되고 있다는 점이다. 데카르트주의와 윤리론자들 외에도 카뮈는, 특히 파스칼에 힘입은 바 크고, 그에게 서 중심적인 개념들을 받아들였다. 물론 이때 키에르케고르, 우나무노, 도스토예프스키, 니체의 영향도 잊어서는 안 된다. 이러한 관련들을 염두에 둘 때, 카뮈가-키에르케고르와 마찬가지로-철학자로서 간주되기를 원치 않았다는 사실은 놀랍다. 그러나 그가 "실존주의"와 거리를 두었던 점은 이해할 만하다. 그 때문에 카뮈 사상의 핵심은 전개된 개념이나 체계의 차원에서 찾아져서는 안 되고, 오히려 예술가적 구성 능력과 그의 사유가 갖고 있는 정열, 그리고 정확히 꿰뚫어 보는 능력에서 찾아져야 한다. 사르트르에게는 예술이 부분적으로 철학적 사유의 표현수단이었고 따라서 그 사유의 경직성이 희곡의 등장 인물들에까지 깔려 있는 반면 카뮈는 자신을 일차적으로 예술가로서 이해하며 자신의 작품을 예술 작품으로 이해한다. 그의 작품 안에는 부조리와 풍토와 "예와 아니오" 사이를 오가는 반항의 긴장이 "인간을 선동하려는" 목적을 띠고 생생하게 현재화되고 있다.
여기서 카뮈의 철학은 부조리의 철학, 반항의 철학이라고 한다. 부조리라는 말의 원래의 의미는 조리에 맞지 않다는 말이다. 즉 이성이나 양식의 법칙에 어긋나는 것은 비논리적이고 모순적인 것을 말한다. 배리 또는 불합리와 같은 말이다. <시지프의 신화>에 의하면, 인생이 부조리하다고 하는 것은 인생에 의미를 발견할 수 없고 희망이 없다는 뜻이다. 부조리는 세계의 속성도 아니고 인간의 속성도 아니다. 세계와 인간과의 관계 그 자체다.
카뮈는 이렇게 말한다. '살려면 인생의 무의미를 아는 것이 필요하다. 산다는 것, 그것은 부조리를 살리는 것이다. 부조리를 살린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부조리를 응시하는 것이다.' 진정한 실존주의는 인간의 부조리를 직시하면서 절망하지 않고 순간 순간을 살아가는 희랍신화의 시지프의 모습에 가장 잘 나타나 있다고 하였다. 그는 신에의 모든 비약을 부정하고 인간의 근원적 무의미에 직면하면서 동시에 거기에 대한 반항을 주장한다.
 

3-6. 하이데거 (Martin Heidegger:1889.9.26∼1976.5.26)

20세기 독일의 실존철학의 대표자로서 바덴뷔르템베르크주 메르키르히에서 출생하였다. 하이데거는 수공업자 집안에서 태어나 카톨릭 신앙에 의거한 가르침을 받고 자랐다. 1909년 프라이부르크대학에 들어가 신학을 공부하다가 철학으로 전환, 수학·자연과학·역사 등의 강의를 통해 상대성이론에 정통하게 되었다.
그의 사상 형성에 처음부터 영향을 끼쳤던 것은 중세 아리스토텔레스 해석과 관련된 카톨릭의 신스콜라철학과 바덴의 신칸트주의였다. 이어 E.후설의 《논리학연구》를 읽고 결정적으로 계발되었으며 15년 프라이부르크대학 강사로 임명됨과 동시에 후설의 조교가 되어 아리스토텔레스의 현상학적 해석에 몰두하였다. 이 철학사를 깊이 연구해가는 동안 후설의 초월적 관념론과 결별하고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 속에 있는 초기 그리스사상의 존재경험의 경향을 심화시켰으며 이로써 R.데카르트에서 비롯된 근대적 사유의 한계를 돌파하는 데 힘썼다. 23년 마르부르크대학에 초빙되었으며 29년 프라이부르크로 돌아와 후설의 후계자로서 정교수가 되었다. 1927년 <존재와 시간>을 발표하면서 그의 고유한 철학적 입장을 표명하였는데 이것은 K.야스퍼스의 실존철학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동시에 후설의 현상학과 F.E.D.슐라이어마허와 W.딜타이의 해석학을 기초로 삼고 있었다. 이 밖에도 F.W.니체·S.A.키에르케고르·F.W.셸링·G.W.F.헤겔·F.횔덜린·R.M.릴케·F.M.도스토예프스키·G.트라클과 고대·중세 철학사의 영향을 받았다. 그 뒤 나치스당원이 되었고 33년 모교 총장에 취임하였으나 곧 사임하였다. 제 2 차세계대전 후 강단에서 추방되어 슈바르츠발트의 산장에서 은퇴생활을 하면서 <존재와 시간>(1927)의 문제를 재고하는 데 몰두하였으며, 특히 횔덜린의 시와 니체의 형이상학과 비판적 체득이라는 작업 속에서 전향을 준비하였다. 50년 프라이부르크대학에 복귀, 후기사상으로 평가될 만한 논구(論究)의 출판이 이루어졌다.
하이데거가 일약 유명해진 것은 주요저서 <존재와 시간> 때문이며 이것은 전체 구상의 전반부(前半部)에 해당하며, 처음에 후설이 편집하는 현상학에 관한 연구연보(硏究年報)에 발표되었다. 여기에서는, 존재를 이해하는 유일한 존재자인 인간(현존재)의 존재(실존)가 현상학적·실존론적 분석의 주제가 되고, 현존재의 근본적인 존재규정인 '관심'의 의미가 '시간성'으로서 확정되는 데서 끝맺고 있다.
그는 거기에서 <존재와 시간>의 본래의 주제인 '존재'와 '시간'의 관계로 되돌아가 현존재의 시간성을 실마리로 해서 존재의 의미를 시간에 의하여 밝히는 동시에 역사적·전통적인 존재개념을 역시 시간적인 지평에서 구명(究明)할 예정이었으나, 이 후반부는 미발표로 그쳤다. 즉, 그가 실존사상의 대표자로 간주된 것은, 이 현존재의 실존론적 분석 부분 때문이며, 여기에서는 불안·무(無)·죽음·양심·결의·퇴락 등 실존에 관계되는 여러 양태가 매우 조직적·포괄적으로 논술되었다. 현존재의 존재의미가 과거·현재·미래의 삼상(三相)의 통일인 시간성으로서 제시된 것도, 인간이 시간적·역사적 존재라고 하는 '삶의 철학' 이래의 사상을 실존의 시점에서 다시 포착한 것이었다. 덧붙여 말하자면, 그의 현존재 분석의 수법은 정신분석에서 문예론, 더 나아가 신학에까지 영향을 주었다.
1935년 전후를 경계로 해서 하이데거의 사색은 존재 그 자체를 직접 묻는 방향으로 향한다. 존재는 개개의 존재자와 동렬(同列)에 있는 존재자가 아니라, 존재자들을 저마다의 존재자로 존재하게 하는 특이한 시간·공간이며, 인간은 거기에 나타나는 것으로 '개존(開存:Eksistenz)'이다. 서양의 철학은 예로부터 존재를 존재자로서 파악하는 '형이상학'인 것이며, 거기서부터 하이데거의 역시 특이한 사관(史觀)이라 할 수 있는 존재사관이 탄생한다. 존재자를 인간의 객체로서 기술적으로 처리하는 인간중심적인 '폐존(閉存:In-sistenz)'의 입장은 이 형이상학에, 즉 존재의 망각에 유래한다. 현대에 필요한 한 가지 일은, 형이상학의 역사적 유래를 앎으로써 그것을 극복하고 역사를 지배하는 존재 그 자체에 청종하면서 그것을 지키고 간직하는 일이다.
그는 존재를 존재자(存在者)의 존재, 즉 현존재(現存在)로 규정하고 존재를 이해하는 통로를 자각적 존재인 자신에게 찾았다. 인간은 현존재요, 현존재는 세계내존재(世界內存在)이므로 세계와의 관련성과 시간성에서 인간존재를 분석하고 인간존재의 근본적 구조가 관심이요 불안이며 인간은 죽음에의 존재, 즉 무(無)에의 존재임을 밝혔다. 특히 언어는 인간의 현존재를 대표하며, 존재이해의 원천이 된다고 하였다.
말년에는 시연구에 관심을 기울였으며 그의 사상은 O.베커, T.발라우프, W.슐츠 등의 철학자와 특히 새로운 수정주의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또한 70년대 중반 이후 일본·미국·라틴아메리카 등에서 하이데거철학에 큰 관심이 일어났다. 저서로 <칸트와 형이상학의 문제(1929)> <휴머니즘에 관한 서간(1947)> <횔덜린의 시의 해명(1950)> <니체(1961)> 등이 있다.

 
 
4. 실존주의와 교육

4-1. 부버의 인간교육론 : 만남의 교육

(1)부버사상의 뿌리-하시디즘
부버의 사상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두 기둥은 하시디즘과 [만남]이다. 그런데 [만남]의 철학은 하시디즘을 발판으로 생성된 것이기 때문에 "하시디즘을 모르고는 부버를 이해할 수 없다."고 한 표현은 적절하다.
하시디즘은 18세기, 엘리에저에 의해 동유럽의 폴란드에서 생겨난 유대교의 경건주의적 신비운동이다. 하시디즘의 근본이념은 모든 사물 및 피조물들을 신성한 것으로 보며, 그 가르침은 '하느님의 세계를 사랑하는 것'에 있다. 따라서 하시디즘은 세계 속에서의 적극적인 봉사를 요구하며, 종교의 외면적 형식보다는 일상생활의 충실과 관심 그리고 사랑을 강조한다.
부버가 하시디즘을 통해 우리에게 보여주고자 한 바는, 인간이 일상생활을 통해 하느님의 뜻을 실현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이며 바로 이것이 삶의 목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즉 그것은 일상생활의 모든 것을 신성화하는 것이다. 이 같은 견해를 부버는 "하느님의 신성을 발견할 수 있는 존재의 사다리 계단은 언제, 어디에서라도 발견할 수 있다."라고 함축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

(2)[만남]의 철학.
하시디즘을 모태로 한 부버의 철학은 [만남]의 철학이다. 부버에 의하면 인간이 세계에 대하여 가질 수 있는 두 가지의 주요한 태도는 '나-그것'의 관계로써 표현되는 사물세계와 '나-너'의 관계로써 표현되는 인격적 만남의 세계이다. 따라서 어떤 관계를 형성하느냐에 따라 인간의 삶의 양상도 달라진다. 즉 인간이 세계에 대하여 취하는 이중적 태도의 양태에 따라 세계도 인간에게 이중적이 된다. 이러한 인간의 이중적 태도는 두 개의 근원어로 표현되는데, 이것은 '나-너'라고 하는 근원 어와 '나-그것'이라고 하는 근원어로 표현된다.
'나-그것'의 세계는 경험과 인식과 이용의 대상이 되는 세계이다. 사람이 세계를 경험한다고 말할 때, 그것은 사람이 세계를 객체로서 소요하고 이용한다는 것을 뜻한다. 이때의 세계는 경험의 대상으로서의 '어떤 것'일 뿐 경험하는 주체와 적극적이고 직접적인 관계에 있지 않다. 이처럼 방관자, 관찰자, 조정자로서 세계와 관계하는 자는 '나-그것'의 '나'이다.
그러나 '나-너'의 세계는 경험의 대상이 아니다. 여기서의 '너'는 뭇 성질로 분해할 수 없는 전존재이다. 따라서 사람은 '나-너'의 관계에서 서로 전존재를 기울여 참 인격으로 관계한다. 이러한 관계는 직접적이며 상호적이요, 근원적이다. 이러한 '나-너'의 관계에 들어가는 것이 곧 '나'와 '너'의 [만남]이다. 이처럼 세계와 상호 관계하는 자는 '나-너'의 '나'이다.
그러므로 '나-너' 관계에서의 '나'와 '나-그것' 관계에서의 '나'는 서로 다르다. '나-그것'의 '나'는 개인적 존재로서 나타나고 자기를 경험과 이용의 주체로서 의식하는 반면에, '나-너'의 '나'는 인격으로서 나타나고 자기를 종속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지 않은 주체성으로 의식한다.
이처럼 부버는 관계의 개념으로 인간의 위치 및 본질을 파악하고자 한다. 그러기에 참다운 인간 존재는 고립된 실존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관계형성을 통해서 드러난다고 보는 것이다. 결국 부버에게 있어서 인간이란 관계를 통해 그의 실존을 형성해 나가는 창조자로 파악된다. 즉 그는 그의 철학적 인간학의 기본사상을 "인간실존의 기본적인 사실은 인간이 인간과 더불어 함께 있다는 것"으로 함축성 있게 표현하였다. 이처럼 그의 인간학이 '인간의 정체성'에 관한 탐구이기 때문에 그의 교육론의 주요 내용도 '학생 전체성'에 관한 탐구, 즉 전인교육론이라고 볼 수 있다.

(3)인간교육론
부버의 교육관은 그가 행한 두 연설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1925년에 하이델베르크에서 열린 제3회 국제교육대회에서 '아동의 창의력 개발'이란 제목으로 행한 연설과, 1939년에 텔아비브에서 열린 팔레스타인 교사대회에서 '성격교육'이란 제목으로 행한 연설이 그것이다. 이것들에서 드러난 그의 교육관을 간략히 소개하기로 한다.
첫째, 아동을 무한한 가능성과 창조성을 지닌 하나의 현실로 본다. 고결하고도 무한한 가치를 지닌, 역사창조에 이바지하는 존재가 아동이다. 아무리 퍼내도 샘물처럼 솟아오르는 가능성이 바로 아동이라는 현실성이다. 이같이 아동이 현실적이기 때문에, 교육도 현실성이 되어야만 한다. 전인교육이란 아동 속에 감추어져 있는 다양한 능력들을 개발하여 주는 것이며, 이러한 것은 교육이 아동의 현실성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때 비로소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 세계 자체를 하나의 교육장으로 생각한다는 점이다. 하나의 개인에게 인격을 형성시키는 것은 세계이다. 다시 말해 세계, 즉 자연과 사회라고 하는 환경 자체가 인간을 교육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세계 자체가 우리의 교사가 되는 것이다.
셋째, 교육은 비에로스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부버에 의하면 에로스는 선택을 의미하며, 기호에 의해 취해진 선택인데 이것은 교육이 아니라는 것이다. 에로스를 사랑하는 사람은 그가 사랑하려는 사람, 즉 대상을 취사선택하게 되는데 이는 교육의 본래적 정신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넷째, 포용으로서의 교육을 강조한다. 포용은 감정이입과는 달리 자기 자신의 구체성을 확장하고, 삶의 현실적 상황을 충족시키고, 자기가 참여하고 있는 현실을 완전히 나타나도록 하는 것이다.
다섯째, 성격교육을 가치 있는 교육으로서 강조한다. 부버는 인격과 성격을 구분하고 있다. 즉 인격은 본질적으로 교사의 영향력 밖에서 성장하는 것이며, 성격은 인격의 도야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으로 파악한다. 따라서 교사의 최대의 과제는 바로 이 성격교육에 있는 것으로, 이것이 교육목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위대한 성격의 소유자는 격률 이나 관습체계로 이해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는 전존재로 행동하는 자이며, 주어진 상황의 독특성에 조화롭게 반응하는 자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러한 사람이 우리가 바라는 인간상인 것이다.
부버는 현대의 위기상황 속에서 잃어버린 인간의 본래적 모습을 인간과 인간간의 참된 관계형성, 즉 [만남]을 통해 회복하고자 했다. 그가 주장한 인격적 [만남]에 의한 인간성 회복의 문제는 사람됨의 문제이며, 이러한 사람됨의 문제는 교육의 문제이기 때문에 현대의 비인간화된 교육마당에서 [만남]이 중시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의 철학적 인간학이 오늘날 더욱더 우리 가슴에 깊숙이 와 닿는 것은 우리의 삶이 그만큼 비인간화되어 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기에 인간화 교육은 현대교육이 짊어져야 할 중대한 과제로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4-2. 실존주의의 교육이론
실존주의자들은 다른 철학 파에 비해 체계적으로 교육을 논하지 않는 것이 특색이다. 그러기에 그들에게서 교육이론체계를 구하기는 매우 어렵다. 그러나 볼노오는 「실존철학과 교육학」에서 비교적 체계적으로 교육을 논하고 있다. 그의 '비연속성 형식의 교육'의 개념을 중점적으로 살펴보자.
1920년대까지 교육은 인간 안에 부여되어 있다고 여겨진 창조적 능력에 대한 확신 위에 서 있었다. 이런 확신은 루소에서 보듯이 대략 다음 세 가지의 전제 위에 서 있었다.
①그릇된 사회를 우리는 인간교육을 통해서 개혁할 수 있다.
②교육은 내재적이며 본원적인 인간의 선을 계발하는 일이며, 또 그것은 조화롭게 계발될 수 있 다.
③이 내재적인 인간의 능력은 일정한 법칙에 의해 자율적으로 발전하는 것이므로, 우리는 이 같 은 발전을 저해하는 뭇 체계적, 부정적 요인을 제거해야 하며, 또 그것은 가능하다.
그러나 이 같은 낙천적인 교육관은 그 사이 다음과 같은 문화적 상황과 인간관의 변화로 큰 벽에 부딪치게 되었다. 첫째는, 현대의 기술문명과 노동조건이 인간의 능력을 조화적으로 발전시키기에는 너무 부정적인 요인으로 대두되었고 둘째는, 이동의 유전적 조건은 의도적인 교육적 정열로도 극복할 수 없는 한계성을 지니고 있으며 셋째, 1954년 전후의 뭇 전란과 전쟁 등이 인간의 취약성과 속악 성을 두드러지게 보임으로써 인간의 심연과 운명을 우리에게 보여 불안과 공포를 자아내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 같은 현대의 상황과 모순되는 과거의 낙천적 교육관에 입각한 대전제를 점검하고 실존에 알맞은 새 교육관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실존적 교육관이 전통적 교육관 중에서 특히 회의를 느낀 볼노오가 차원을 달리하여 모색하고 있는 것은 '비연속적 형성의 교육의 가능성'이다. 이 형식들은, 볼노오에 의하면 위기, 각성, 충고, 상담, 해후, 모험과 좌절 등이다. 이것들이 왜 비연속적 형식의 교육인지 해후로 예를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해후, 즉 만남이란 오늘날 아주 넓은 개념으로 쓰이고 있다. 새 것을 대했을 때도, 결정적인 것에 마주쳤을 때도, 늘 마음속에 도사리고 있을 때도 우리는 만났다고 한다. 그러나 실존적 개념의 만남은 예측도 못했고 예견도 못했던 일이 운명적으로 일어나, 그 사람을 사로잡아 삶에 새로운 방향을 취할 수밖에 없게 하는 사건의 돌발을 의미한다. 이런 뜻으로서의 만남은 전통적인 교육의 개념과는 퍽 대립되는 측면이 많다.
첫째는 도야재설과의 대립이다. 종래의 교육은 인간에 내재적인 가능성을 도야하기 위해 도야 재로 그것을 자극, 계발시키려고 했다. 따라서 도야 재는 수단적으로 머물며 도야된 힘 속에 소멸되어 버린다. 그러나 만남은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 영혼을 흔들며 그 한 번의 결과는 영원히 지속되며, 만남을 당한 사람을 자신으로 존립시킨다.
둘째는 계획, 조정 설과의 대립이다. 종래의 교육은 학생의 개성과 특성에 알맞은 자료를 학생에게 계획적으로 짜주면서 그들의 성장을 일정한 방향으로 조정하려고 한 것이다. 그러나 만남은 학생에게 아주 낯선 방법으로 그를 심하게 강요하는 충동적인 힘을 발로하고, 따라서 개성과 차이 성을 고려하지 않는다. 만남은 이렇게 학생이 이질적인 것을 우발적으로 수용하여 자기를 형성하는 일이고 점진적. 계획적 변화가 아닌 급격하고 우발적인 윤리적 비약을 결과적으로 가져온다.
셋째는 다변적 교육 설과의 대립이다. 종래의 교육은 인간을 전면적으로 발전시키고자 교육내용을 가능한 한 다방면에 걸치게 했다. 그러나 만남은 운명적, 순차적으로 사람을 사로잡는 일이기에 이 같은 다방면적 접촉방식과 모순된다. 왜냐하면 하나의 만남은 언제나 다른 만남을 배제하며, 사실 만남은 하나의 만남, 한 순간의 만남으로 '끝내주기' 때문이다. 예를 든다면 진정한 이성적 사랑은 다른 이성과의 만남을 거부하며 또 그것은 한 이성과의 만남으로 족하다는 이치와 같다.
위와 같은 특성 때문에 만남은 통념적인 교육의 개념과 대립된다. 그러기에 만남은 교육에로의 방법 화를 거부한다. 왜냐하면 진정한 교사는 만남을 꾸며 낼 수 없기 때문이다. 교사는 다만 이 같은 만남이 일어날 수 있게 예비할 따름이다. 마치 신부가 등에 불을 켜고 신랑이 오기를 기다리듯이 말이다.
실존주의 교육에서의 개인을 "선택하는 행위자, 자유로운 행위자, 그리고 책임을 지는 행위자"로 규정하면서 개인으로 하여금 이러한 의식을 갖도록 일깨운다. 즉, 실존주의는 완전한 자유 속에서 홀로 결단에 의한 개인적 선택을 하되, 자신의 선택에 대해 철저한 책임을 지도록 한다. 이런 의미에서 실존적 사고를 따르는 교육은 선택과 책임에 대한 깊은 개인적 반성을 강조한다. 따라서 실존주의 교육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지식이란 인간의 조건들과 각 개인이 행해야만 하는 선택에 관한 것이라고 보며, 교육이란 선택의 자유 그리고 선택의 의미와 그 선택에 대한 책임에 관해 의식을 일깨워주는 과정이라고 본다. 이처럼 실존주의 교육에서는 학생으로 하여금 그에게 유용한 수많은 선택으로부터 그 자신의 길을 선택하도록 하게 한다. 따라서 학교는 선택적 분위기를 조성하여야 하되, 학생이 하지 않으면 안 될 선택의 종류를 일방적 내지는 획일적으로 규정하여서는 안 된다.
결국 실존주의자들이 추구하는 교육의 목적은 인간 자체의 탐구이며, 이에 따라 삶에 대한 모든 형태의 광범위하고도 종합적인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다. 이처럼 실존주의자가 교육을 통해 달성하고자 하는 인간은 단편적 인간이 아니라 전인적 인간이다.
실존주의자들은 교과목 그 자체보다는 교과목을 다루는 방법을 더욱더 중시한다. 이는 커리큘럼 내에서의 실존적 자유의 행사가 커리큘럼 내용보다도 더 중요시됨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학교는 학생들의 자유를 신장하고 창조적인 자유를 갖도록 격려하여야지, 적응 또는 관습에 순응하도록 압력을 가해서는 안 된다. 또한 학생들은 그의 환경에 의해 형성되는 존재로부터 그 자신을 형성해 나가는 존재로서의 역할이 강조된다.
실존주의자들은 학교교육이라는 형태를 어떤 면에서는 부정적으로 보는 입장에 있다. 그들은 학교라는 것이 오히려 인간의 개성을 말살시킨다고 주장하면서도 보편화된 교육, 집단적인 획일화 교육을 비난한다. 즉, 학교 자체가 이미 개인이 사회화되는 장소로 변해버렸기 때문에 집단의 훌륭한 일원, 훌륭한 시민은 형성시킬 수 있으나 훌륭한 개인은 형성시키기 어렵다고 본다. 니체가 공교육을 비난한 것도 공립학교가 개인의 자유와 책임을 파괴하고, 오히려 그것들을 정부주도의 획일화로 대치시키려는 경향이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닐러도 이 같은 입장에 서서 공장에서의 상품의 대량생산과 학교에서의 학생들의 대량교육간의 유사성을 꼬집어 지적하면서 개인의 선택자유를 제한하는 획일화 교육이 지양되어야 함을 역설하였다.
실존주의자들이 특히 강조하는 교육은 인문학과 예술이다. 왜냐하면 실존적 선택은 매우 개인적이고 주관적이기 때문에 정서적이고 심미적이며 시적인 과목들이 실존적 교육과정에 적합하다고 본다. 다시 말하자면 인간의 정서 및 심미적 성향과 도덕적 성향이 이러한 과목들을 통해 잘 계발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실존주의 교육에서 중요시하는 또 다른 측면은 삶의 부조리나 실존적 긴장, 즉 불안이다. 따라서 이들은 진정한 인간교육은 삶의 좋은 측면뿐만이 아니라 삶의 불합리한 측면, 즉 삶의 추한 측면까지도 포함한 전체로서의 인간교육으로 파악되어야 한다고 본다.
현대교육은 인간 혹은 인간 세상의 어두운 측면을 감추고자 한다. 그러나 실존주의자들은 진정한 교육이란 감추지 않는 교육이라고 믿는다. 따라서 훌륭한 교육이란 적나라한 인간의 모습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라고 보기 때문에 학생들로 하여금 좋은 것이나 나쁜 것, 합리적인 것이나 비합리적인 것 등 삶의 모든 측면들을 배울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학생들이 알게 된 후 불안이나 두려움을 자아내게 하므로 해가 된다고 본 종교, 죽음, 출생, 성 등에 관한 문제에 있어 학교는 계획적으로 거짓말을 하기도 하는데 실존주의자들은 오히려 진짜 상황을 알지 못하게 되면 더 큰 불안을 유발하게 된다고 주장한다. 그러기에 실존주의자들은 죽음, 좌절, 갈등, 고통, 공포, 성 등과 같은 어두운 측면들을 감추거나 거짓교육을 시키지 말고 떳떳이 교육내용으로 채택하여야 한다는 입장을 취한다.
교사는 학생들이 삶과 죽음 그리고 인간실존의 부조리에 등에 관한 궁극적 의문들을 가지고 인간실존을 탐구하도록 조성하여야 하며, 또한 그러한 문제들을 다양한 관점으로 탐구할 수 있도록 도와야만 하며, 이러한 경우에 있어서 교육방법은 촉진적이어야 한다. 교육학에 있어서 비연속성을 가능케 하는 것으로 교사와 학생과의 만남, 학생과 작품 속의 인물 또는 역사적 위인과의 만남, 훈계나 조언 등을 들 수 있지만 전환이나 비약을 가능케 하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는 만남이다. 또한 교사와 학생간의 관계도 일방적이고 권위적인 전통적 관계를 벗어나 인격을 지닌 상호주체적 관계로 파악된다.
실존주의 교육이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들은 첫째, 교육마당에서 비연속적 형성 가능성의 일면을 주목하게 하며 둘째, 보편화, 집단화, 획일화하는 현대교육의 경향을 인간의 개성과 주체성을 최대한 존중하는 교육으로 전향시키도록 촉구하며 셋째, 학생 개개인의 개성을 존중하여 다양한 커리큘럼을 제공함으로써 전인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며 넷째, 학생의 자율성이 강조됨과 함께 이러한 실존적 아이디어들이 교육마당에 적용되기 위해서는 인간의 실존 내지는 인간교육에 대한 교사의 관심과 역할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새로운 차원의 교사론 및 교사교육이 요청되며 다섯째, 삶의 밝은 측면뿐만 아니라 어두운 측면까지 교육의 영역으로 끌어들임으로써 보다 진솔한 교육이 이루어질 것을 촉구한 점, 등을 들 수 있다.
물론 실존주의자의 본질상 교육방법 면에서는 취약성을 보이는 것이 사실이지만, 우리가 지향하는 것이 진정한 인간교육이라고 한다면 삶과 인간을 전체적으로 조명하는 실존적 교육방법론의 의미 있음이 쉽게 가슴에 와 닿을 것이다. 하지만 방법화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실존적 아이디어들을 교육이론이나 교육활동의 전개에 도입, 적용하려는 노력이 계속 있어 왔다. 예컨대 닐러, 모리스, 볼노오 등은 교육철학에 로저스, 매슬로우, 울포트, 프랭클, 메이 등은 교육심리 및 상담심리에 쉐릴 및 존슨 등은 종교교육에 그리고 고든 및 데마레스트 등은 평화교육에 원용하였다.

4-3. 의의와 한계

실존주의적 교육관의 의의는 인간의 주체성의 존중과 교육학에 있어서의 인간의 복권이라 할 것이다. 우리가 기리는 민주주의는 개성과 주체성을 지닌 사람들에 의해서만 이룩될 수 있다. 만일 그렇지 못한다면 민주주의는 중우정치로 타락할 것이다. 대중 인을 기르지 말고 주체 인을 기르자고 이렇게 외친 것이 실존주의교육관의 첫째 공헌한 점이다. 교육학은 원래 인간학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런데 과학화를 표방하여 자연과학을 모델로 발전하면서 교육학은 인간의 자유, 결단성 등 인간의 특성을 경시한 채 인간부재의 학으로 변질되어 갔다. 이에 실존주의는 제동을 걸어 교육학을 인간의 학으로 다시 돌아가도록, 즉 교육학을 인간성 지향의 학으로 발전하도록 촉구했다. 이것이 실존철학의 가장 큰 공헌이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존철학적 교육관에는 몇 가지 한계가 있다. 그것을 크게 둘로 간추릴 수 있다. 그 첫째는, 인간의 현존대의 기저를 사회과학적 시각에서 파악하고자 하는 노력이 미흡하다는 점이다. 인간의 자유만 강조했지, 그 자유를 어떻게 쟁취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 제시가 미흡했다는 말이다. 그 둘째는, 비연속적 형식의 교육이 갖는 한계다. 방법화의 어려움, 이것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가의 문제해결에 소극적이라는 점이다. [만남]이 교육에서 중요하다면 이것을 어떻게 예비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방법의 논의도 있어야 할 텐데, 그들은 이것을 무의도적으로, 혹은 우연한 은총으로 나타나는 것이라고 여기며 이 이상의 논의를 피한다. 물론 만남은 인격에서 우러나오는 것임을, 그러기에 교사라는 인격의 삶의 자세에서 오는 것임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만남은 어떤 계기를 특히 많이 나타나는가를 과학적으로 안다면 훨씬 많은 학생들이 만남의 혜택을 누릴 수 있지 않겠는가. 만남은 방법 화할 수 없다고 자랑할 것이 아니라 도리어 이것을 취약점으로 알고 그 방법 화에도 힘써야 하겠다는 말이다.
 
<참고문헌>
단행본  
강성률. 철학의 세계. 한울, 1995.
이인걸. 현대철학의 이해. 부산외국어대학교출판부,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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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짐머만. 실존철학. 서광사, 1988.
스털링 P.램프레히트. 서양철학사. 을유문화사, 2001.
김정환.강선보 공저. 교육철학. 박영사, 1999.
 
사이트  
야후 백과사전 http://kr.encycl.yahoo.com/
사르트르와 실존주의 http://myhome.zaigen.co.kr/~captain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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