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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에르케고르의 아브라함

키에르케고르의 아브라함  
http://cafe.naver.com/modernth/355   
허영엽 마티아 신부님 (성서못자리 전담)     
 
아브라함. 본래 그의 이름은 아브람이었다. 그의 고향, 갈대아 우르는 당시에 문화가 발달하고 물질이 풍요로운 곳이었다. 마치 오늘날 파리나 뉴욕에 견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아브람은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하느님은 아브람에게 모든 것을 버리고 하느님이 지시하신 새로운 땅으로 떠나라고 했다. 지금까지 살아온 땅과 부모와 친구를 떠나라는 것, 그것은 당시 사람들에겐 마치 죽음과 같은 것이었다. 부르심을 받은 아브람의 마음은 어땠을까? 그는 솔직히 두렵고 떠나고 싶은 마음이 없었을 것이다. 어쩌면 아브라함은 다른 사람처럼 평범하게 살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데 하느님의 부르심은 도저히 거역할 수 없는 강한 힘이 있다.
  아브라함은 수없이 “왜? 하필 저입니까?”라고 말하고 싶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결국 하느님의 말씀 하나만을 굳게 믿고 하느님이 시키는 대로 고향을 떠났다. 그러나 고향을 막상 떠나고 나니 모든 게 힘들고 고통스러웠다. 그런데 얼마 후 네겝지방에서 살 때 기근이 들어 식구들과 함께 에집트로 내려갔다. 이때 아브라함은 첫 번째 시련을 맞이하게 된다. 자칫하면 아브라함은 목숨을 잃을 처지여서 아내 사라를 동생이라고 거짓말을 해서 결국 사라는 파라오의 소실이 되었고 가족 모두 목숨을 건졌다. 그러나 다른 남자 품에 안겨있는 아내를 생각할 때마다 어떤 심정이었을까? 그런데 우여곡절 끝에 하느님은 아브라함의 가족을 기묘한 방법으로 구출해 주셨다. 아브라함은 새 출발하는 마음으로 제단을 쌓고 하느님 앞에서 제사를 드리고 회개를 했다.
  아브라함은 일생에 또 한번 씻지 못한 큰 잘못을 저질렀다. 하느님이 약속하신 아들이 생기지 않는다고 초조한 나머지 사라의 여종인 하갈을 소실로 들였다. 결국 하갈에게서 아들을 얻었지만, 아브라함과 아내 사라, 하갈 모두에게 끔찍한 고통과 아픔의 삶이 되고 말았다. 인간 중심의 생각, 욕심대로 살려고 하면 점점 더 고통의 늪으로 빠진다는 것을 뼈저리게 체험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인생의 최고 시련을 맞이하게 된다. 아브라함이 백살이 다 되어서 얻은 아들 이사악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그런 자식이었다. 그런데 하느님이 그 어린 이사악을 어느 날 제물로 바치라는 것이었다. 아브라함의 마음은 아마도 그랬을 것이다. “하느님, 너무 잔인하십니다. 이사악을 주실 때는 언제고 왜 다시 그를 잡아서 바치라는 것입니까? 그럴 수는 없습니다. 차라리 아버지인 저를 죽여주십시오….”
  이사악의 사건은 아브라함 일생의 가장 큰 시련이었다. 그는 사랑하는 이사악을 데리고 3일 동안 걸었다. 그 3일은 아브라함의 생애 가장 먼 길이었고 긴 시간이었다. 그는 무척 혼란스러웠다. 드디어 갈등과 고민 끝에 아브라함은 결정을 내렸다. 자신의 전부인 이사악을 바치기로…(창세기 22장 2-12절). 
  가장 귀한 것을 요구하는 하느님에게 즉각적으로 순종하는 아브라함의 태도는 수세기가 지난 지금에도 잊혀지지 않고 있다. 유명한 철학자 키에르케고르는 바로 이 점을 출발점으로 삼아 아브라함이 신앙의 아버지가 될 수 있었 다고 주장한다. 키에르케고르의 아브라함과 이사악의 이야기에 대한 해석은 여러 면에서 묵상할 가치가 있다.
  키에르케고르는 아브라함이 한 일의 위대함을 표면적으로 받아들인다면 하느님을 위하여 ‘귀한 것’을 희생할 준비가 되어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아브라함의 결단은 윤리적인 의무와 모순 되는 것이었고 그곳에는 ‘두려움’이 있었다. 이러한 어려운 결단을 아브라함은 한 가지 신념을 가지고 행했는데 그것은 ‘하느님은 이사악을 요구하지 않으실 것이다’라는 것이었다.
  이 신념은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모리아 땅에 일찍 도착하지도, 늦게 도착하지도 않게 했다. 키에르케고르는 자신이라면 모리아 땅에 서둘러 도착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절대복종에서 더 나아간 신앙(faith)으로 행동했다. 신앙은 합리적으로 생각될 수 없으며 오직 비합리적인 열정(passion)으로만 이해될 수 있는 것이다. 키에르케고르는 이러한 신앙의 소유자를 신앙의 기사(knight of faith)라고 칭했다. 그런데 진정한 의미의 신앙의 기사는 절대적인 의무의 이행을 위해서 윤리가 허락하지 않는 것을 행하지만 사랑하는 것을 부정하거나 그만두는 것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또한 키에르케고르는 개별자는 보편에 우선한다고 말하며 이를 신앙의 역설(paradox of faith)라고 부른다. 보편이 되어 본 개별자는 보편을 하위의 것으로 규정한다. 아브라함의 이야기는 바로 개별의 목적을 위해 보편 윤리의 선을 넘은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이야기는 목적을 위해 도덕의 선을 넘은 다른 이야기들과는 구별되며 아브라함과 같은 경우는 물론, 비슷한 경우도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다.
  아브라함은 오직 신과 자신을 위해서 행동을 한 것이다. 아브라함이 아들을 제물로 바치는 것을 아브라함의 아들에 대한 증오로도 해석하는 윤리적인 관점도 있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아브라함은 진정 아들을 희생(sacrifice) 시키는 것이 아니다. 아브라함이 아들을 신께 제물로 바치기 위해서는 그를 지극히 사랑해야 하는 것이다. ‘사랑하기 때문에 헤어진다’라는 역설적 주장을 논리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하느님 앞에 선 단독자로서의 아브라함이 보여준 종교적 비약의 실존은 키에르케고르가 말하는 주체자가 되는 유일하고 진실한 길이다. 이 실존은 심미적, 윤리적 단계를 거치면서 보편이 되었다가 돌아오는 과정을 통해 보편을 넘어서는 그 무엇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비약의 과정은 자기 자신을 떠맡음이며 신과의 독대(獨對)이다. 이 때 실존이 느끼는 감정은 다름 아닌 두려움과 떨림이다. 종교적 실존은 역설적인 신앙의 비약으로 성취되는 것이기 때문에 개별자로서 그의 문제는 보편자의 언어로는 전달될 수가 없다. 다시 말해 비합리적인 신앙의 비약은 말로는 설명될 수 없는 것이다. 역설은 역설로밖에 이해될 수 없다는 키에르케고르의 주장은 흥미롭다. 
  그러나 어떠한 설명에도 불구하고 이사악을 바치는 아브라함의 행동은 쉽게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보통 사람의 눈에는 보면 아브라함을 분명 미친 사람이었다.
  아브라함은 일생을 살아오면서 한 가지 분명한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하느님은 당신의 자녀가 행복하시길 원하신다는 것이었다. 지금 인간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지만 하느님은 더 깊은 뜻을 가지고 계신다는 것을 믿게 되었다. 하느님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는 것이다. 아브라함이 이사악을 바칠 것을 결심한 순간 오히려 갈등과 번민이 걷히고 담담해졌을지 모른다. 그를 여태까지 감싸고 있는 부자유스런 껍데기를 벗어버리고 자유로움을 느끼게 했을 것이다. 세상에 어디에도 매이지 않고 세상을 넘어서는 그런 느낌이다. 사실 아들 이사악도 아브라함은 자신의 소유가 아니라 하느님의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분이 필요하시다니 다시 돌려드릴 뿐이라 생각하니 마음이 평화로워졌다.
  아브라함은 사실 자신 모든 것을 바친 셈이었다. 후대 사람들은 아브라함을 신앙의 성조(聖祖)라고 부르지만 그도 그저 약한 한 인간이며 신앙인이다. 
  신앙이란 끊임없이 완성을 향해 나가는 길이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죄인인 채 하느님께 나가는 길이다. 중요한 건 언제 어느 때라도 하느님께 대한 신뢰이다. 하느님께 대한 믿음, 그것이 바로 나의 인생의 가장 큰 위로이고 힘이다. 아브라함의 이야기는 하느님을 떠나서는 어디서도 행복할 수 없다는 사실을 다른 이들에게 알려주고 있다. 성서에서 보면 아브라함은 시련 받는 자의 대명사처럼 여겨지고 있다. 아브라함의 일생은 시련과 시험의 연속이었으며,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신 하느님은 시험하시는 하느님이시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느님의 시련과 시험을 잘 감당하여 하느님 앞에 인정받은 사람이 되었다.
  나의 신앙은 언제 시련을 당했는가? 그 시련이 나의 신앙의 성숙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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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의견 1

  • 관리자 · 2010-11-06 07:55
    키에르케고르 하고 하고는 코드가 잘 맞나 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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