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홍 목사의 성경적 상담 연구소 RBD COUNSELING INSTITU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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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신학자료1

키에르케고르 (Sren Aabye Kierkegaard 1813∼1855)

키에르케고르 (Sren Aabye Kierkegaard 1813∼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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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덴마크 철학자. 코펜하겐 출생. 어려서 아버지로부터 그리스도교의 엄한 수련을 받았고, 17살에 코펜하겐대학에 입학해 신학과 철학을 공부하여 1841년 《아이러니 개념에 대하여》라는 논문으로 학위를 받았다. 그 사이 1837년, 14살된 레기네 올센과의 사랑·파혼 등의 정신적 갈등은 뒷날 미적(美的) 저작의 주제가 되었다. 그 뒤 베를린으로 가서 당시 이름을 떨치던 철학자 F.W.J. 셸링의 강의를 들었으며, 이듬해 귀국하여 저작생활로 들어갔다. 43∼46년의 짧은 기간에 《이것이냐 저것이냐:삶의 단상(1843)》 《반복(1843)》 《두려움과 떨림(1843)》 《불안의 개념(1844)》 《인생행로의 여러 단계(1845)》 등 미적 저작과 《철학적 단편(1844)》 《단편후서(斷片後書, 1846)》 등 철학 저작을 모두 익명으로 출판하고, 그 밖에 그리스도교에 관한 많은 교화적 강화(講話)를 발표하였다. 그 뒤 저작활동에 허무감을 느껴 시골 목사로서 조용한 생활을 원하였으나 풍자신문 《해적》에 그의 작품과 인물에 대한 오해와 중상이 가득찬 비평이 실려, 그에 맞서 싸우는 동안 다시 그리스도교도로서의 새로운 정신활동과 저작에 대한 의욕을 가지게 되었다. 그는 신문의 희평(戱評)이나 세간의 조소에 굴하지 않고 대중의 비자주성과 위선성을 혹독하게 비판하였으며, 절망 속에서도 단독자(單獨者)로서 신을 찾는 종교적 실존의 이상적인 자세를 《죽음에 이르는 병(1849)》이나 《그리스도교의 수련(1850)》에서 추구하였다. 이와 관련하여 그의 비판은 다시 기성 그리스도교와 교회 본연의 자세에까지 미쳐 《순간(1855)》 등으로 극렬하게 공격하였다. G.W.F. 헤겔식의 범논리주의에 맞서 불안과 절망 속에서 개인의 주체적 진리를 찾은 그의 사상은 20세기 초까지 덴마크 밖에서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으나, 1909년부터 독일에서 번역 전집이 발간되어 K. 바르트·M. 하이데거·K. 야스퍼스 등 변증법 신학자와 실존철학자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그때부터 키에르케고르의 이름은 현대 그리스도교 사상 및 실존사상의 선구자로서 유럽뿐 아니라 세계에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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