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트의 역사관
바르트의 역사관
자료출처:http://kr.blog.yahoo.com/visions72000/1606
1) 바르트의 계시 개념과 더불어 그의 신학을 이해함에 있어서 꼭 알아야 할 것이 바로 그의 ( 역사 ) 개념이다. 바르트가 “역사”라고 할 때는 단지 우리가 갖고 있는 역사 개념이 아닐 수 있다는 것에 유의해야 한다. 그는 ( 두 가지 )의 역사 개념을 말하기 때문이다. 즉 “일반 역사”(= Historie )와 “초-역사 혹은 원-역사”(= Geschichte )이다. 이 용어들은 똑같이 “역사”라고 번역이 된다.(= Historie는 영어 history에서 온 파생어일 뿐이다 ) 따라서 우리는 “history”(= 역사 )라고 할 때, 이것이 바르트에게는 어떤 “역사”를 의미하는지를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2) 일반 역사(= Historie )는 달력에서 발생되는 사건, 즉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역사를 말한다. 보통 역사가나 과학자들이 탐구하고 분석하는 사건들이다. 그러나 바르트에게 있어서 이런 일반 역사는 “어떤 ( 의미 )가 결여된 역사”라는 것이다. 반면에 원-역사(= Geschichte )는 “특별한 의미”의 역사이다. 즉 “( 믿음 )을 위한 의미”가 들어있는 사건으로서, 역사란 과학적 혹은 역사적 관점으로 이해될 것이 아니라, ( 믿음 )으로 이해되는 것이고, 멀리서 ( 조명 )하는 것이라고 한다.
3) 예를 들면, 자동차 사고가 나서 지금 옆에서 사람이 죽었다. 그런데 이 사실이 나에게 어떤 ( 의미 )가 있어야만(= 되어야만 ) 그것이 사실로서의 ( 역사 )가 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나에게 ( 적용 )되는 사실이라야만 그 사람이 죽었다고 ( 인정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바르트에게 있어서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 된다(= become )”라는 것이다. 이는 이미 “바르트적 큐티”의 예로서 살펴보았다.
4) 이런 초역사의 중요성은 어느 시대나 어느 장소를 망라하여 적용된다고 한다. 즉 원-역사란 하나님이 나타나시며 믿음을 불러일으키는 ( 순간 )을 의미하며, 하나님의 인격 혹은 그리스도와 동일시되는 ( 구속 )의 역사가 바로 초역사인 것이다. 즉 구속의 의미가 있어야만 된다는 것이다. 바르트에게 있어서 이러한 초역사의 사건은 과학적 관망이 아니라 삶 속에서 인간이 주체가 된 실존적 ( 결단 )을 자연스럽게 요구하게 된다.
5) 이렇게 바르트가 역사를 두 종류로 구분하는 데는 신학적으로 혹은 철학적으로 아주 중요한 이유가 있다. 즉 계시가 ( 역사 ) 속에 들어 올 때, 단지 우리가 가진 일반 역사적 범주에서만 이해할 경우, 그 계시는 초월성을 ( 상실 )함으로 인간의 ( 소유 )물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신차와 중고차 ) 즉 역사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계시가 일반 역사 속에(= 전적으로 감추어지는 것이 아니라 ) 가둬질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바르트에게는 진정한 역사적 의미 혹은 신학적 의미는 바로 이 “원-역사에 나타난 의미”인 것이다.
6) 이러한 두 역사의 구분을 ( 변증법 )적 구분이라고 할 수 있고 또한 “칸트적 ( 이원 )론”이라고 할 수 있다. 칸트는 우리가 이미 살펴 본대로 ( 두 종류 )의 세계를 추론했다. “본체론적(= noumenal ) 세계”와 “현상적(= phenomenal ) 세계”가 바로 그것이다. 바르트의 원-역사는 바로 칸트의 ( 본체론 )적 세계에 속한 것이요, 일반 역사는 칸트의
( 현상적 세계 )에 속한 것이다.(= 이는 플라톤의 이데아로 시작된 헬라철학이 그 원형이다 )
7) 다시 말하면, 초역사속에 감추어진 "( 진정 )한 의미의 계시"가 일반 역사 속에 "마치 있는 것처럼(= as if )" 나타난다는 것이다. 칸트 철학을 빌려 표현하자면 어떤 "실천적 당위성"을 따라 일반 역사 속에 주어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바르트가 주장하는 진정한 역사의 의미는 원-역사 속에서만 발견된다는 것이다. 즉 우리가 알 수 없는 ( 초월 )성 속에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르트가 강조하는 하나님의 초월성인 것이다.
두 종류의 역사 - 바르트 신학
1) 그러면 이러한 두 종류의 역사가 어떻게 바르트의 신학에 적용되는지 간단히 살펴보도록 하겠다. 바르트는 구속 역사를 철저하게 “그리스도 중심적”으로 본다. 물론 바르트가 말하는 “그리스도 중심적” 개념은 우리가 믿는 “그리스도 중심적” 개념과는 다른 것이다. 이처럼 사용하는 용어가 같다고 해서 많은 사람들이 바르트를 복음주의자로 오해하게 된 것이다.
2) 지금까지 살펴본대로 바르트 신학에 있어서 그리스도로 인한 ( 구속 ) 역사는 일반 역사가 아니라 ( 초역사 )이다. 그러므로 바르트는 “창조”조차 일반 역사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창조가 일반 역사라고 한다면 원-역사인 “그리스도 안에서의 구속”과 ( 상관 )이 없게 되기 때문이다. “인간 타락” 역시 일반 역사의 사건이 아니라고 한다. 물론 창조가 일반역사가 아닌 것과 같은 이유에서다. 일반 역사라고 하면 그 타락의 사건은 그리스도와 ( 상관 )이 없는 사건이 되기 때문이다.
3) 이렇게 바르트는 창조, 타락, 구속의 모든 것을 ( 초역사 )적 사건으로 본다. 즉 이 사건들은 우리가 아는 식의 역사 속에 발생된 사건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야만 그것이 나에게 ( 의미 )가 있고 ( 적용 )이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오늘날 신앙의 결단을 촉구하며 신앙을 감정적 표현으로만 몰아가는 분위기 속에서, 이런 생각과 주장들이 얼마나 팽배해있는지는 기독교서점가의 베스트셀러가 어떤 내용인지를 살펴보기만 하면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4) 따라서 바르트는 “동정녀 탄생”은 일반 역사적 사건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을 아무런 생각없이 그냥 들으면 바르트 역시 “( 동정녀 ) 탄생을 우리처럼 역사적 사건으로 믿고 있다고 오해하기 쉽다. 그러나 바르트는 동시에 동정녀 탄생은 “( 직접 )적 계시”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처음에 전제했던 것처럼 바르트는 정말 까다롭고 애매모호하다 ) 즉 지금까지 바르트가 주장하는 초역사처럼, 그 이유는 동정녀 탄생이 영원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 )의 성육신 사건과 동일시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동정녀 탄생은 단지 초역사적 실재(= reality )의 지표(= sign )에 불과하다고 하는 것이다.
5) 따라서 바르트가 동정녀 탄생을 일반 역사로 본다는 말은, 그것이 실재 일어났던 사건이라는 말이 아니다. 즉 동정녀 탄생을 ( 구속 )적 의미와 관련이 없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부활 역시 일반 역사적 사건으로 본다. 빈 무덤은 전설적인 것이지만, 이것이 부활의 지표(= sign )는 될 수 있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부활의 본 실재(= reality )는 원-역사라고 한다. 다시 말해서 육체적, 일반 역사적 사건으로서의 부활은 오직 지표 일 뿐이며, 참 사건(= 원-역사적 사건 )의 한 국면에 불과하다고 하는 것이다.
6) 바르트에게 있어서 참 사건은 오직 믿음으로 알게 되는 것이다. 즉 직접적이 아니라간접적으로 알게 된다는 것이다. 부활은 일어났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은 과학자, 역사가들이 살피며 증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원-역사로서의 부활은 참으로 일어났고 제자들이 참으로 그리스도를 만났다고 한다. 이것은 참 사건이기 때문에 달력적 시간을 초월하는 것이요, 그것은 하나님의 참된 임재요 오늘날 우리에게도 보여지는 것이라고 한다.
7) 이런 주장은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라는 말과 같은 것이며(= 이 말은 산의 실체는(= 원역사 ) 따로 있으므로 그 산을 보고 청산이라고(= 일반역사 ) 하지 말라는 것이다. 또한 물의 실체도 따로 있으니 옥수라고 하지 말라는 것이다 ) 더 위로 올라가서는 플라톤의 이데아 사상과 같은 것이다. 물론 칸트의 두 세계와 그 맥을 같이 하는 것이다.
자료출처:http://kr.blog.yahoo.com/visions72000/1606
1) 바르트의 계시 개념과 더불어 그의 신학을 이해함에 있어서 꼭 알아야 할 것이 바로 그의 ( 역사 ) 개념이다. 바르트가 “역사”라고 할 때는 단지 우리가 갖고 있는 역사 개념이 아닐 수 있다는 것에 유의해야 한다. 그는 ( 두 가지 )의 역사 개념을 말하기 때문이다. 즉 “일반 역사”(= Historie )와 “초-역사 혹은 원-역사”(= Geschichte )이다. 이 용어들은 똑같이 “역사”라고 번역이 된다.(= Historie는 영어 history에서 온 파생어일 뿐이다 ) 따라서 우리는 “history”(= 역사 )라고 할 때, 이것이 바르트에게는 어떤 “역사”를 의미하는지를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2) 일반 역사(= Historie )는 달력에서 발생되는 사건, 즉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역사를 말한다. 보통 역사가나 과학자들이 탐구하고 분석하는 사건들이다. 그러나 바르트에게 있어서 이런 일반 역사는 “어떤 ( 의미 )가 결여된 역사”라는 것이다. 반면에 원-역사(= Geschichte )는 “특별한 의미”의 역사이다. 즉 “( 믿음 )을 위한 의미”가 들어있는 사건으로서, 역사란 과학적 혹은 역사적 관점으로 이해될 것이 아니라, ( 믿음 )으로 이해되는 것이고, 멀리서 ( 조명 )하는 것이라고 한다.
3) 예를 들면, 자동차 사고가 나서 지금 옆에서 사람이 죽었다. 그런데 이 사실이 나에게 어떤 ( 의미 )가 있어야만(= 되어야만 ) 그것이 사실로서의 ( 역사 )가 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나에게 ( 적용 )되는 사실이라야만 그 사람이 죽었다고 ( 인정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바르트에게 있어서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 된다(= become )”라는 것이다. 이는 이미 “바르트적 큐티”의 예로서 살펴보았다.
4) 이런 초역사의 중요성은 어느 시대나 어느 장소를 망라하여 적용된다고 한다. 즉 원-역사란 하나님이 나타나시며 믿음을 불러일으키는 ( 순간 )을 의미하며, 하나님의 인격 혹은 그리스도와 동일시되는 ( 구속 )의 역사가 바로 초역사인 것이다. 즉 구속의 의미가 있어야만 된다는 것이다. 바르트에게 있어서 이러한 초역사의 사건은 과학적 관망이 아니라 삶 속에서 인간이 주체가 된 실존적 ( 결단 )을 자연스럽게 요구하게 된다.
5) 이렇게 바르트가 역사를 두 종류로 구분하는 데는 신학적으로 혹은 철학적으로 아주 중요한 이유가 있다. 즉 계시가 ( 역사 ) 속에 들어 올 때, 단지 우리가 가진 일반 역사적 범주에서만 이해할 경우, 그 계시는 초월성을 ( 상실 )함으로 인간의 ( 소유 )물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신차와 중고차 ) 즉 역사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계시가 일반 역사 속에(= 전적으로 감추어지는 것이 아니라 ) 가둬질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바르트에게는 진정한 역사적 의미 혹은 신학적 의미는 바로 이 “원-역사에 나타난 의미”인 것이다.
6) 이러한 두 역사의 구분을 ( 변증법 )적 구분이라고 할 수 있고 또한 “칸트적 ( 이원 )론”이라고 할 수 있다. 칸트는 우리가 이미 살펴 본대로 ( 두 종류 )의 세계를 추론했다. “본체론적(= noumenal ) 세계”와 “현상적(= phenomenal ) 세계”가 바로 그것이다. 바르트의 원-역사는 바로 칸트의 ( 본체론 )적 세계에 속한 것이요, 일반 역사는 칸트의
( 현상적 세계 )에 속한 것이다.(= 이는 플라톤의 이데아로 시작된 헬라철학이 그 원형이다 )
7) 다시 말하면, 초역사속에 감추어진 "( 진정 )한 의미의 계시"가 일반 역사 속에 "마치 있는 것처럼(= as if )" 나타난다는 것이다. 칸트 철학을 빌려 표현하자면 어떤 "실천적 당위성"을 따라 일반 역사 속에 주어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바르트가 주장하는 진정한 역사의 의미는 원-역사 속에서만 발견된다는 것이다. 즉 우리가 알 수 없는 ( 초월 )성 속에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르트가 강조하는 하나님의 초월성인 것이다.
두 종류의 역사 - 바르트 신학
1) 그러면 이러한 두 종류의 역사가 어떻게 바르트의 신학에 적용되는지 간단히 살펴보도록 하겠다. 바르트는 구속 역사를 철저하게 “그리스도 중심적”으로 본다. 물론 바르트가 말하는 “그리스도 중심적” 개념은 우리가 믿는 “그리스도 중심적” 개념과는 다른 것이다. 이처럼 사용하는 용어가 같다고 해서 많은 사람들이 바르트를 복음주의자로 오해하게 된 것이다.
2) 지금까지 살펴본대로 바르트 신학에 있어서 그리스도로 인한 ( 구속 ) 역사는 일반 역사가 아니라 ( 초역사 )이다. 그러므로 바르트는 “창조”조차 일반 역사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창조가 일반 역사라고 한다면 원-역사인 “그리스도 안에서의 구속”과 ( 상관 )이 없게 되기 때문이다. “인간 타락” 역시 일반 역사의 사건이 아니라고 한다. 물론 창조가 일반역사가 아닌 것과 같은 이유에서다. 일반 역사라고 하면 그 타락의 사건은 그리스도와 ( 상관 )이 없는 사건이 되기 때문이다.
3) 이렇게 바르트는 창조, 타락, 구속의 모든 것을 ( 초역사 )적 사건으로 본다. 즉 이 사건들은 우리가 아는 식의 역사 속에 발생된 사건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야만 그것이 나에게 ( 의미 )가 있고 ( 적용 )이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오늘날 신앙의 결단을 촉구하며 신앙을 감정적 표현으로만 몰아가는 분위기 속에서, 이런 생각과 주장들이 얼마나 팽배해있는지는 기독교서점가의 베스트셀러가 어떤 내용인지를 살펴보기만 하면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4) 따라서 바르트는 “동정녀 탄생”은 일반 역사적 사건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을 아무런 생각없이 그냥 들으면 바르트 역시 “( 동정녀 ) 탄생을 우리처럼 역사적 사건으로 믿고 있다고 오해하기 쉽다. 그러나 바르트는 동시에 동정녀 탄생은 “( 직접 )적 계시”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처음에 전제했던 것처럼 바르트는 정말 까다롭고 애매모호하다 ) 즉 지금까지 바르트가 주장하는 초역사처럼, 그 이유는 동정녀 탄생이 영원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 )의 성육신 사건과 동일시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동정녀 탄생은 단지 초역사적 실재(= reality )의 지표(= sign )에 불과하다고 하는 것이다.
5) 따라서 바르트가 동정녀 탄생을 일반 역사로 본다는 말은, 그것이 실재 일어났던 사건이라는 말이 아니다. 즉 동정녀 탄생을 ( 구속 )적 의미와 관련이 없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부활 역시 일반 역사적 사건으로 본다. 빈 무덤은 전설적인 것이지만, 이것이 부활의 지표(= sign )는 될 수 있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부활의 본 실재(= reality )는 원-역사라고 한다. 다시 말해서 육체적, 일반 역사적 사건으로서의 부활은 오직 지표 일 뿐이며, 참 사건(= 원-역사적 사건 )의 한 국면에 불과하다고 하는 것이다.
6) 바르트에게 있어서 참 사건은 오직 믿음으로 알게 되는 것이다. 즉 직접적이 아니라간접적으로 알게 된다는 것이다. 부활은 일어났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은 과학자, 역사가들이 살피며 증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원-역사로서의 부활은 참으로 일어났고 제자들이 참으로 그리스도를 만났다고 한다. 이것은 참 사건이기 때문에 달력적 시간을 초월하는 것이요, 그것은 하나님의 참된 임재요 오늘날 우리에게도 보여지는 것이라고 한다.
7) 이런 주장은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라는 말과 같은 것이며(= 이 말은 산의 실체는(= 원역사 ) 따로 있으므로 그 산을 보고 청산이라고(= 일반역사 ) 하지 말라는 것이다. 또한 물의 실체도 따로 있으니 옥수라고 하지 말라는 것이다 ) 더 위로 올라가서는 플라톤의 이데아 사상과 같은 것이다. 물론 칸트의 두 세계와 그 맥을 같이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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