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이드 죤즈와 강해설교강의
로이드 죤즈와 강해설교강의: 서문강목사
(중심교회 시무)
우리는 교회사 속에서 하나님께 쓰임을 받아 하나님의 이름의 영광과 그 복음의 능력을 광포하는데 큰 영향력을 나타낸 걸출한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들의 사역을 통하여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을 구원하시고 세우시고, 당신의 나라와 그 영광을 위하여 일하셨다. 지금도 그러한 일을 계속하고 계신다. 그러므로 그들의 사역을 통하여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을 알아보기 위하여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하나님의 복음 사역자들에게 있어서 정말 중요하기 그지 없는 일이고, 우리 소명과 사역을 검증하고 평가하는데 있어서 아주 필요한 도움을 준다.
그런 관점에서 하나님의 사람이요 하나님의 복음 사역자로서의 로이드 죤즈(D.Martyn Lloyd- Jones)의 영성과 사역을 주밀하게 탐사하여 보는 일은 합당한 일이다. 그의 사역의 본질과 열매와 영향력은 가히 우리의 관심을 촉발할 만한 것이다. 그의 사역 당시 그의 사역지에서 끼친 영향력 뿐만 아니라, 그의 사역가운데서 증거된 것들이 책으로 출간되어 나왔을 때 나타난 영적 감화력은 대단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영어를 말하거나 읽을 수 있는 지역 뿐만 아니라, 그렇지 못한 지역에서도 여러 방언으로 번역되어 반포된 그의 책들은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큰 영적 파장을일으켰다. 몇 년 전에 필라델피아의 제10장로교회 목사 제임스 보이스(James M. Boice)가 한국복음주의 주최 케직 사경회의 주강사로 온 적이 있었는데, 거기서 본인과 개인적으로 만나는 기회가 있었다(제임스 보이스의 「요한복음 강해」를 번역한 자로서 개인적인 면담을 가졌음). 그는 역시 유명한 강해설교가로서 자신의 강해설교 사역에 있어서 로이드 죤즈가 끼친 영향에 대하여 증거하였다. 그리고 미국의 죤 맥아더도 자기가 가장 추천하고 싶은 책은 역시 로이드 죤즈의 책들이라고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1988년 5월로 기억되는 두란노서원 주최 목회자를 위한 세미나에서). 우리 한국교회 강단에서 섬기는 주의 많은 종들과 많은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그의 책들은 가장 지속적인 반포율을 보이고 있다고 기독교 출판 및 서점 관계자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하고 있다. 7년여 전에 본인이 부목사로 시무하고 있을 때에 수요예배를 마치고 강단에서 내려오니 어느 젊은 분이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 분은 침례교회 소속의 목사로서 다음날 개척교회 설립예배를 드리려 하는데, 로이드 죤즈의 책을 읽고 큰 도전을 받아 그 원리를 따라서 목회를 하려고 하노라고 하면서 번역하여 좋은 책을 읽게 해준데 대하여 감사하다는 말을 하였다.
이처럼 그의 책들은 진정 시대를 초월하여 영향력을 끼치는 능력을 지니고 있음에 틀림없다. 한국교회사에 있어서 강해설교의 필요성과 강해설교의 능력을 일깨워주어 많은 사역자들에게 강해설교에 눈을 뜨게 해준데 대한 그의 책들의 영향력은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가질 것이다. 그의 책들을 읽고 나서 강해설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강해설교의 정형이 무엇인지를 인식하게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우리는 그런 의미에서 그의 영성과 그의 사역의 원리와 사역의 실제 등을 생각하여 보는 것은 유익한 일이다.
1. 로이드 죤즈의 약전(略傳)
* 이얀 머레이의 「마틴 로이드 죤즈의 초기 40년」(David Martyn Lloid-Jones: The First Forty Years. 우리 말로는 청교도신앙사에서 번역 출간되어 있음)에서 얻은 자료로 작성한 것으로 일일히 각주는 달지 않겠음.
그는 1899년 웨일즈에서 태어났고, 그의 부모들은 신앙심있고 견실한 보통사람들이었다. 부모들의 따뜻한 사랑과 보살핌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그의 학교 성적은 우수하였다. 그의 어린 시절 만난 선생님들은 그에게 또한 좋은 감화력을 깨쳤다.
그는 의과대학에 진학하여 의학도가 된다. 1921년부터 왕실주치의였던 토마스 호더 경 밑에서 조수로 일하기 시작한다. 그는 거기서 일을 접근하여 처리해 나가는 방식을 아주 잘 연마한다. 호더 경은 신자는 아니었으나 그에게 사물을 파악하고 분석하고 종합하는 대단한 접근방식을 알게 해 준 영향력있는 인사였다. 나중 그가 복음 사역자로 설 때에 그 접근방식은 그의 전 말씀강해에서 아주 명백하게 드러난다.
1925년, 그러니까 그의 나이 만 26세에 왕립내과의대 학회가 주는영국 최고의 의학박사 학위(M.R.C.S와 L.R.C.P)를 받았다. 그러니까 의사 또는 의학자로서의 전도가 정말 촉망되는 길에 들어선 것이다. 그는 그가 공부하며 근무하던 성 바돌로매 병원에서 뿐만 아니라 의학계에서 아주 촉망받는 젊은 인사가 되어 있었고, 그의 흉부내과의적인 식견과 통찰력은 그의 선배들이나 지도 교수들이나 동료들에게서 다 알려진 때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향하여 다른 계획을 가지고 계셨다. 그는 의학을 연구하고 내과의로서의 실력을 쌓아 가면서도 그는 교회출석을 하였고, 대학내의 연설회 및 토론회에서 그의 영적 관심을 나타내기 시작하였다. 당시의 영적인 상황에 대하여 대단한 불만을 가지고 있었으며, 거기서 영적인 각성에 대한 강렬한 소원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영적인 면에서의 변화가 있어야 인간 삶에 대한 전반적인 변화가 가능하다는 복음적인 확신을 점점 가지게 되었다. 그것이 바로 그 속에서 역사하고 계시던 하나님의 거룩하신 일하심의 조짐이었던 것이다. 곧 그는 복음 사역자로서 소명을 받고 있었다. 곧 그는 복음 사역자로서 소명을 받고 있었다. 급기야 그를 지도하던 호더 경을 포함한 많은 동료들과 의학계와 저널리스트들의 놀라움과 충고와 비평을 한 몸에 받으면서 하나님의 거룩한 소명에 순응하기 위하여 샌드필즈란 해안을 낀 탄광촌의 작은 교회로 떠나게 되었다. 그 때가 1927년이다. 저널리스트들은 그가 받는 한 달 봉급이 450파운드 임을 상기시키면서 복음이 아무리 중요하다 해도 교회를 위해서 의학계를 떠나는 것은 너무 큰 손실이요, 희생이 아니냐는 투로 비양거렸다. 그러나 그는 그런 비평을 들을 때마다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하여 한 희생을 생각하면 우리의 희생이란 아무리 해도 지나친 것이라고 할 수 없다고 일축해 버렸다.
그가 처음 부임한 그 교회는 당시의 사회적인 배경을 반영하듯이 영적으로 죽어 있었고, 사회주의적인 사상쪽으로 기울어지는 사람이 교회의 당회서기를 맡고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그는 거기있는 11년의 기간 동안 참으로 살아있고, 복음적인 교회가 되었다. 모이는 회집도 140여 명으로 시작하여 3년여 만에 310여 명으로 증가되었다. 수많은 술주정뱅이, 부두 근로자들 까지도 회심을 하고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놀라운 일이 거기서 일어나고 있었다. 나중에 그가 캠벌 모간(Cambell Morgan)의 웨스트민스터 채플로 부임하기 위하여 거기를 떠날 때에는 목회자 사택에서 나온 술병이 트럭으로 하나 가득했다고 한다. 회심한 술꾼들이 회심한 후 술 버릇에 또 빠져들까 보아 목사에게 가져와 보관을 요청하였기 때문이다.
그는 1938년 유명한 캠벌 모간에 의하여 지목받아 그의 후임자로 웨스트민스터 채플의 청빙을 받는다. 그의 영향력은 그 시로부터 런던으로, 영국 전역으로, 나아가서 미국과 캐나다에까지 확산된다. 그리고 거기 그 교회에서 1968년 은퇴하기까지 30년 간을 하나님의 말씀의 사역자로서 하나님을 섬긴다.
2. 그의 영성과 확신
로이드 죤즈가 소명을 받고 사역을 시작하던 때는 신학적으로 좌경화되고 있었고, 복음의 능력과 영적 각성의 영광에 대하여 망각하고 있던 때였다. 그 당시 교회 사람들은 성경과 성경적인 복음의 가치와 능력에 대하여 회의적이었다. 과연 성경적인 복음이 다원화되고 복잡해진 사회구조와 그 이전에는 경험되지 않은 인생의 난제들을 대처할 능력을 지금도 가졌는가? 현대라는 거대한 골리앗을 복음이라는 고대의 산물이 이겨낼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의문이 기독교회와 신학계에 파급되어 있었고, 강단의 설교자들이나 회중들 모두 그런 의문을 아주 지당한 것으로 수납하고 있었던 때였다. 아울러 사회의 정치적 경제적인 개편이 정신차릴 수 없이 일어나던 때였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연이어 2차 세계대전의 발발을 위하여 전운이 두껍게 유럽 전역과 전 세계를 뒤덮고 있을 때였다.
그런 와중 속에서 교회의 강단에서는 성경을 강해하거나, 성경적이고 개혁주의적인 전통에 입각한 설교사역과 목회사역이 시대를 따라 잡지 못하는 구시대적인 것으로 치부되어 버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설교자들이 사람들에게 매력을 끌고 사람들을 교회로 이끌어 들이기 위하여는 새로운 형태의 목회를 도입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한 간절한 바램 속에서 설교자들마다 현대적이라는 말을 듣기 위하여 성경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성격밖으로 나가기에 급급하였고, 일반 학문이나 정신의학적인 연구성과나 심리학적 처방이나 문학적인 관점이나 사회과학의 이론들을 도입하여 인간난제를 치유하려고 하였다.
그런 판국에서 로이드 죤즈는 인간의 근본 난제가 창조주 하나님과의 관계의 어그러짐에서 온 사실을 성경에서 확인하고, 모든 인간의 난제들을 접근하는 것은 그런 성경의 종교적 기바 ㄴ위에서야 한다고 확신하였다. 그리고 사도적인 복음은 초대교회 시대 뿐만 아니라, 소위 다변화되고 복잡한 난제들로 가득한 현대에 사는 인간을 구원하고 치유하는 오직 유일한 길이요, 그것이 인간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유일한 방식임을 역설하였다. 하나님은 예나 지금이나 불변하시며, 인간들도 근본은 여전히 사도시대나 아니 그 이전 시대의 인간들과 결코 다르지 않으니, 사람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방식도 현대라고 해서 바뀐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그런 확신을 그의 설교사역과 목회사역에 과감히 적용하였다. 그래서 그는 성경을 뒷전으로 버려둔 강단에 성경을 회중들 앞으로 들고 그것을 외치고 강론하고 그 성경에서 모든 신앙과 행위의 원리와 본을 찾을 것을 촉구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사도적인 복음은 인간의 어느 시대고 뒤떨어진 구시대적인 것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언제나 그 복음은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불러내어 구원하는 “언제나 최신(最新)”의 복음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언제나 성경에 관하여만 아는 것이나, 신학을 위한 신학적인 류의 논쟁에만 머무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말한다. 성경을 읽고 성경을 배우고 성경을 삶의 원리로 적용하는 실제를 강하게 강조한다. 그가 제도적인 신학교에 입학할 것을 포기한 것은 바로 그 이유에서이다. 당시 신학교들이 너무 사변화되어 있었고, 복음의 영광과 능력을 위한 사역자들을 길러내기에 부족하다는 생각을 하였던 것이다(그는 신학교를 나오지 않았지만 1929년에 그의 영성과 목회자로서의 소양이 인정되어 장로교 목사로 안수받음).
그의 그런 확신은 종교개혁자들과 퓨리탄(Puritan)들과 영적 각성자들의 사역과 거기에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을 확인하고서 더욱 강화되고 깊어진다. 그는 언제나 그런 말하기를 좋아하였다. “200여년 전으로 돌아가라! 거기서 하나님의 사람들을 만나 그들이 한 사역을 보라!”고 늘 강조하였다. 그 이후의 설교들은 설교가 아니라 에세이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였다(「목사와 설교」에서 그 점을 자주 지적한다).
그러므로 퓨리탄들, 오웬이나 리챠드 백스터나 그밖에 유명한 퓨리탄들의 저작, 죤 칼빈의 저작, 루터의 저작 등은 언제나 그에게 영적인 도전을 주고 그의 확신을 더욱 깊고 넓게하여 주는 것들이었다. 그리고 웨슬레 형제나 휫필드와 죠나단 에드워즈는 그의 훌륭한 선생들이었다. 그는 또한 워필드나 그레샴 메이쳔이나 핫지 부자의 책들 등 개혁주읮거인 고전들을 빼놓지 않고 섭렵한다. 거기서 그는 칼빈주의적인 신학적 체계를 확립한다. 그것은 그런 책들을 통해서 자기의 어떤 말거리를 찾으려고 하기 보다는 하나님의 일하시는 방식과,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진리를 더욱 깊이 알기 위한 것이었다. 그의 신학적인 지식은 참으로 방대하고 깊었다. 그것은 성경의 권위에 입각한 바른 영성에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3. 그의 소망
그의 소망이 무엇인가? 그는 성경이 제시하는 대로의 소망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사도들을 통하여 나타난 복음의 능력과 그로 인한 진정한 회개와 믿음과 구원이 현대에도 일어나기를 간절하게 바랐던 것이다. 그는 진정한 영적 부흥에 대하여 남다른 열정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을 통하여 하나님의 이름과 그 영광이 나타나는 은혜가 부어지기를 간덜히 바랐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를 가히 부흥신학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박국 선지의 간덜한 소망을 그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그의 소망과, 성경적인 사도적 복음의 능력과 영광에 대한 그의 확신은 별개의 것이 아니고, 한 영성(靈性)의 양 측면이다.
4. 강해설교
위에서 본 바와 같이 그의 강해설교는 단순한 한 설교자로서의 기법이나 한 설교방식으로 나타난 것이 아니라, 확실한 영적 기반 위에서 필연적으로 나온 열매이다. 많은 이들이 그의 강해설교를 본받으려 하고 모방하려고 한다. 그러나 그의 강해설교는 하나의 단순한 설교형태나 기법으로서만 따내려고 할 때 그런 사람에게는 아주 따분하고 답답하고 지루하게만 보일 것이다. 그것의 진 면목을 감추어 버리고 만다. 다만 하나님의 은혜와 진리를 알고 하나님 앞에서 진실로 서기를 바라는 자들 앞에서만 그 강해설교의 능력이 본 모습을 드러낸다. 어떤 이들은 본인(필자)에게 그의 분량많은 강해설교를 다 읽기가 거북하니 요약하여 책으로 내라는 요청을 하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본인은 아주 매몰차게 거부해 버린다. 그것이 이 사람 로이드 죤즈가 가장 싫어하던 직업적 목회관이다.
그의 강해설교의 목적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말하는 바를 가감없이 잘 밝혀 하나님의 사람들을 구원하고 거룩하게 하고 교회를 정결케 하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것이다. 그는 그가 바라는 진정한 영적 각성과 부흥과 하나님의 영광은 바른 설교, 바른 성경적인 설교를 통해서 나타난다는 것을 누누히 강조한다. 그래서 그는 그의 명저 「목사와 설교」에서 “모든 설교는 강해적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의 강해는 먼저 강해하려는 대목에서 하나님게서 말씀하시려는 의도를 보편적으로 밝히는 일로부터 시작한다. 물론 거기에는 그 말씀이 기록된 역사적인 배경과 영적인 상황과 문맥적인 의도를 면밀하게 검토하는 일을 수반한다. 그런 일을 하기에 충분한 준비가 되지 않으면 그 대목을 강해하지 않는다. 그의 <로마서 강해>(13년에 걸쳐 행한 강해)를 시작하기 전에 그가 그 강해를 위하여 얼마나 철저하게 준비하였는가를 보여주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어떤 성도가 어느날 예배를 마친 뒤에 그의 방을 찾아와서, 목사님은 언제나 로마서를 강해하려느냐고 물었다. 그 때 로마서 6장의 위치와 문맥적인 의도를 완전히 이해하고 파악하여 모든 의문이 사라진 후에 하겠다고 대답하였다고 한다(그의 로마서 6장 강해서 서론에서 그가 한 말임). 그는 그러한 그의 자세를 나무만 보느라고 숲을 보지 못하면 헤맨다는 말로 표현한다.
그러나 그는 그런 일을 한 뒤에는 말씀을 따라서 나가되, 현미경적을 아주 세밀하게 나아간다. 접속사나 조사, 문장구조나 낱말 등 모든 필요한 것을 다 파악하여 그 구절을 통하여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풀어내는 일에 아주 섬세하다. 그런 그의 접근방식을 의사로 있을 때에 호더 경에게서 배웠다고 후년에 술회한다.
그런 다음에 그는 그 구절에 대한 모든 유수한 주석가들이나 선진들의 관점을 참고하고 비교하고 분석한다. 그는 아무리 유명한 개혁주의적인 사람이 한 말이라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성경적인 근거를 가지고 있는 주장인가를 묻는다. 그리고 나서 적용한다. 그러나 이미 그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강해하는 것을 들은 사람들은 자기들이 그 진리를 확신에 넘쳐서 자기들에게 적용하고 있음을 발견한다. 우리가 그의 강해서들을 읽어 나가면서 항상 느기는 것이다. 바른 강해는 적용이라는 대목을 따로 정하지 않고도 그런 목적에 바르게 도달할 수 있음을 우리에게 가르쳐 준다. 그리고 그 대목과 관계되는 모든 영적인 난제와 문제들을 전부 예상하고 그 진리에 비추어서 지적한다. 그래서 그의 설교를 들은 사람들이나 책을 통하여 그 말ㅆ므 사역을 대한 사람들은 하등의 의문도 없이 확신에 차서 그 자리를 뜰 수 있다.
물론 로이드 죤즈가 반복이 많고 지루해 보인다는 말을 많이 하고, 그 설교를 하던 당시에도 너무 논리적이라서 이해하기가 어렵다는 말을 들었다. 그때마다 그는 자기의 방식이 성경적임을 아주 강력히 논증하고 변호하였다. 그리고 논증적이라 이해하기 어렵다는 동역자들이나 성도들에게 어느 어린 남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리고 반복에 대하여 지적하는 자는 그것이 성경적이라고 말한다. 성경은 부단히 반복적인 교육방식을 견지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그는 자기의 사역의 세밀한 부분에까지 성경에서 그 원리를 찾는다.
4. 결 론
짧은 시간 안에 그의 영성과 소명과 사역 원리를 알아본다는 것은 무리이다. 다만 그를 윤곽적으로 이해하는 것으로 족할 뿐이다. 이 자리를 빌어서 자신있게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그를 알려면 그의 책들을 겸손한 성도의 자세로 돌아가서 하나님 앞에 서려고 읽을 때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의 책을 읽는 수고를 두려워하는 자는 하나님께서 그를 통하여 일하신 것이 무엇인지 모를 것이고, 따분하고 지루한 무수한 말들 앞에 진력이 나버리고 말 것이다.
*** 우리 한국에 번역 소개된 그의 저서들과 그에 관한 책 ***
목사와설교 (기독교문서선교회)
로마서강해전8권 (기독교문서선교회)
에베소서강해전8권 (기독교문서선교회)
매일의묵상 (엠마오)
요한복음17장강해전4권 (여수룬)
인간의곤경과하나님의능력(엠마오)
십자가와구속 (기독교문서선교회)
인간조건 (기독교문서선교회)
두려움에서신앙으로 (성서유니온)
권위 (생명의 말씀사)
전도설교 (기독교문서선교회)
부흥 (생명의 말씀사)
청교도신앙 (생명의 말씀사)
산상설교 (정경사)
마틴로이드-죤즈초기40년 (청교도신앙사)
자료출처 http://blog.daum.net/kkho1105/3123
(중심교회 시무)
우리는 교회사 속에서 하나님께 쓰임을 받아 하나님의 이름의 영광과 그 복음의 능력을 광포하는데 큰 영향력을 나타낸 걸출한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들의 사역을 통하여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을 구원하시고 세우시고, 당신의 나라와 그 영광을 위하여 일하셨다. 지금도 그러한 일을 계속하고 계신다. 그러므로 그들의 사역을 통하여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을 알아보기 위하여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하나님의 복음 사역자들에게 있어서 정말 중요하기 그지 없는 일이고, 우리 소명과 사역을 검증하고 평가하는데 있어서 아주 필요한 도움을 준다.
그런 관점에서 하나님의 사람이요 하나님의 복음 사역자로서의 로이드 죤즈(D.Martyn Lloyd- Jones)의 영성과 사역을 주밀하게 탐사하여 보는 일은 합당한 일이다. 그의 사역의 본질과 열매와 영향력은 가히 우리의 관심을 촉발할 만한 것이다. 그의 사역 당시 그의 사역지에서 끼친 영향력 뿐만 아니라, 그의 사역가운데서 증거된 것들이 책으로 출간되어 나왔을 때 나타난 영적 감화력은 대단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영어를 말하거나 읽을 수 있는 지역 뿐만 아니라, 그렇지 못한 지역에서도 여러 방언으로 번역되어 반포된 그의 책들은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큰 영적 파장을일으켰다. 몇 년 전에 필라델피아의 제10장로교회 목사 제임스 보이스(James M. Boice)가 한국복음주의 주최 케직 사경회의 주강사로 온 적이 있었는데, 거기서 본인과 개인적으로 만나는 기회가 있었다(제임스 보이스의 「요한복음 강해」를 번역한 자로서 개인적인 면담을 가졌음). 그는 역시 유명한 강해설교가로서 자신의 강해설교 사역에 있어서 로이드 죤즈가 끼친 영향에 대하여 증거하였다. 그리고 미국의 죤 맥아더도 자기가 가장 추천하고 싶은 책은 역시 로이드 죤즈의 책들이라고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1988년 5월로 기억되는 두란노서원 주최 목회자를 위한 세미나에서). 우리 한국교회 강단에서 섬기는 주의 많은 종들과 많은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그의 책들은 가장 지속적인 반포율을 보이고 있다고 기독교 출판 및 서점 관계자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하고 있다. 7년여 전에 본인이 부목사로 시무하고 있을 때에 수요예배를 마치고 강단에서 내려오니 어느 젊은 분이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 분은 침례교회 소속의 목사로서 다음날 개척교회 설립예배를 드리려 하는데, 로이드 죤즈의 책을 읽고 큰 도전을 받아 그 원리를 따라서 목회를 하려고 하노라고 하면서 번역하여 좋은 책을 읽게 해준데 대하여 감사하다는 말을 하였다.
이처럼 그의 책들은 진정 시대를 초월하여 영향력을 끼치는 능력을 지니고 있음에 틀림없다. 한국교회사에 있어서 강해설교의 필요성과 강해설교의 능력을 일깨워주어 많은 사역자들에게 강해설교에 눈을 뜨게 해준데 대한 그의 책들의 영향력은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가질 것이다. 그의 책들을 읽고 나서 강해설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강해설교의 정형이 무엇인지를 인식하게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우리는 그런 의미에서 그의 영성과 그의 사역의 원리와 사역의 실제 등을 생각하여 보는 것은 유익한 일이다.
1. 로이드 죤즈의 약전(略傳)
* 이얀 머레이의 「마틴 로이드 죤즈의 초기 40년」(David Martyn Lloid-Jones: The First Forty Years. 우리 말로는 청교도신앙사에서 번역 출간되어 있음)에서 얻은 자료로 작성한 것으로 일일히 각주는 달지 않겠음.
그는 1899년 웨일즈에서 태어났고, 그의 부모들은 신앙심있고 견실한 보통사람들이었다. 부모들의 따뜻한 사랑과 보살핌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그의 학교 성적은 우수하였다. 그의 어린 시절 만난 선생님들은 그에게 또한 좋은 감화력을 깨쳤다.
그는 의과대학에 진학하여 의학도가 된다. 1921년부터 왕실주치의였던 토마스 호더 경 밑에서 조수로 일하기 시작한다. 그는 거기서 일을 접근하여 처리해 나가는 방식을 아주 잘 연마한다. 호더 경은 신자는 아니었으나 그에게 사물을 파악하고 분석하고 종합하는 대단한 접근방식을 알게 해 준 영향력있는 인사였다. 나중 그가 복음 사역자로 설 때에 그 접근방식은 그의 전 말씀강해에서 아주 명백하게 드러난다.
1925년, 그러니까 그의 나이 만 26세에 왕립내과의대 학회가 주는영국 최고의 의학박사 학위(M.R.C.S와 L.R.C.P)를 받았다. 그러니까 의사 또는 의학자로서의 전도가 정말 촉망되는 길에 들어선 것이다. 그는 그가 공부하며 근무하던 성 바돌로매 병원에서 뿐만 아니라 의학계에서 아주 촉망받는 젊은 인사가 되어 있었고, 그의 흉부내과의적인 식견과 통찰력은 그의 선배들이나 지도 교수들이나 동료들에게서 다 알려진 때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향하여 다른 계획을 가지고 계셨다. 그는 의학을 연구하고 내과의로서의 실력을 쌓아 가면서도 그는 교회출석을 하였고, 대학내의 연설회 및 토론회에서 그의 영적 관심을 나타내기 시작하였다. 당시의 영적인 상황에 대하여 대단한 불만을 가지고 있었으며, 거기서 영적인 각성에 대한 강렬한 소원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영적인 면에서의 변화가 있어야 인간 삶에 대한 전반적인 변화가 가능하다는 복음적인 확신을 점점 가지게 되었다. 그것이 바로 그 속에서 역사하고 계시던 하나님의 거룩하신 일하심의 조짐이었던 것이다. 곧 그는 복음 사역자로서 소명을 받고 있었다. 곧 그는 복음 사역자로서 소명을 받고 있었다. 급기야 그를 지도하던 호더 경을 포함한 많은 동료들과 의학계와 저널리스트들의 놀라움과 충고와 비평을 한 몸에 받으면서 하나님의 거룩한 소명에 순응하기 위하여 샌드필즈란 해안을 낀 탄광촌의 작은 교회로 떠나게 되었다. 그 때가 1927년이다. 저널리스트들은 그가 받는 한 달 봉급이 450파운드 임을 상기시키면서 복음이 아무리 중요하다 해도 교회를 위해서 의학계를 떠나는 것은 너무 큰 손실이요, 희생이 아니냐는 투로 비양거렸다. 그러나 그는 그런 비평을 들을 때마다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하여 한 희생을 생각하면 우리의 희생이란 아무리 해도 지나친 것이라고 할 수 없다고 일축해 버렸다.
그가 처음 부임한 그 교회는 당시의 사회적인 배경을 반영하듯이 영적으로 죽어 있었고, 사회주의적인 사상쪽으로 기울어지는 사람이 교회의 당회서기를 맡고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그는 거기있는 11년의 기간 동안 참으로 살아있고, 복음적인 교회가 되었다. 모이는 회집도 140여 명으로 시작하여 3년여 만에 310여 명으로 증가되었다. 수많은 술주정뱅이, 부두 근로자들 까지도 회심을 하고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놀라운 일이 거기서 일어나고 있었다. 나중에 그가 캠벌 모간(Cambell Morgan)의 웨스트민스터 채플로 부임하기 위하여 거기를 떠날 때에는 목회자 사택에서 나온 술병이 트럭으로 하나 가득했다고 한다. 회심한 술꾼들이 회심한 후 술 버릇에 또 빠져들까 보아 목사에게 가져와 보관을 요청하였기 때문이다.
그는 1938년 유명한 캠벌 모간에 의하여 지목받아 그의 후임자로 웨스트민스터 채플의 청빙을 받는다. 그의 영향력은 그 시로부터 런던으로, 영국 전역으로, 나아가서 미국과 캐나다에까지 확산된다. 그리고 거기 그 교회에서 1968년 은퇴하기까지 30년 간을 하나님의 말씀의 사역자로서 하나님을 섬긴다.
2. 그의 영성과 확신
로이드 죤즈가 소명을 받고 사역을 시작하던 때는 신학적으로 좌경화되고 있었고, 복음의 능력과 영적 각성의 영광에 대하여 망각하고 있던 때였다. 그 당시 교회 사람들은 성경과 성경적인 복음의 가치와 능력에 대하여 회의적이었다. 과연 성경적인 복음이 다원화되고 복잡해진 사회구조와 그 이전에는 경험되지 않은 인생의 난제들을 대처할 능력을 지금도 가졌는가? 현대라는 거대한 골리앗을 복음이라는 고대의 산물이 이겨낼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의문이 기독교회와 신학계에 파급되어 있었고, 강단의 설교자들이나 회중들 모두 그런 의문을 아주 지당한 것으로 수납하고 있었던 때였다. 아울러 사회의 정치적 경제적인 개편이 정신차릴 수 없이 일어나던 때였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연이어 2차 세계대전의 발발을 위하여 전운이 두껍게 유럽 전역과 전 세계를 뒤덮고 있을 때였다.
그런 와중 속에서 교회의 강단에서는 성경을 강해하거나, 성경적이고 개혁주의적인 전통에 입각한 설교사역과 목회사역이 시대를 따라 잡지 못하는 구시대적인 것으로 치부되어 버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설교자들이 사람들에게 매력을 끌고 사람들을 교회로 이끌어 들이기 위하여는 새로운 형태의 목회를 도입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한 간절한 바램 속에서 설교자들마다 현대적이라는 말을 듣기 위하여 성경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성격밖으로 나가기에 급급하였고, 일반 학문이나 정신의학적인 연구성과나 심리학적 처방이나 문학적인 관점이나 사회과학의 이론들을 도입하여 인간난제를 치유하려고 하였다.
그런 판국에서 로이드 죤즈는 인간의 근본 난제가 창조주 하나님과의 관계의 어그러짐에서 온 사실을 성경에서 확인하고, 모든 인간의 난제들을 접근하는 것은 그런 성경의 종교적 기바 ㄴ위에서야 한다고 확신하였다. 그리고 사도적인 복음은 초대교회 시대 뿐만 아니라, 소위 다변화되고 복잡한 난제들로 가득한 현대에 사는 인간을 구원하고 치유하는 오직 유일한 길이요, 그것이 인간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유일한 방식임을 역설하였다. 하나님은 예나 지금이나 불변하시며, 인간들도 근본은 여전히 사도시대나 아니 그 이전 시대의 인간들과 결코 다르지 않으니, 사람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방식도 현대라고 해서 바뀐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그런 확신을 그의 설교사역과 목회사역에 과감히 적용하였다. 그래서 그는 성경을 뒷전으로 버려둔 강단에 성경을 회중들 앞으로 들고 그것을 외치고 강론하고 그 성경에서 모든 신앙과 행위의 원리와 본을 찾을 것을 촉구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사도적인 복음은 인간의 어느 시대고 뒤떨어진 구시대적인 것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언제나 그 복음은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불러내어 구원하는 “언제나 최신(最新)”의 복음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언제나 성경에 관하여만 아는 것이나, 신학을 위한 신학적인 류의 논쟁에만 머무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말한다. 성경을 읽고 성경을 배우고 성경을 삶의 원리로 적용하는 실제를 강하게 강조한다. 그가 제도적인 신학교에 입학할 것을 포기한 것은 바로 그 이유에서이다. 당시 신학교들이 너무 사변화되어 있었고, 복음의 영광과 능력을 위한 사역자들을 길러내기에 부족하다는 생각을 하였던 것이다(그는 신학교를 나오지 않았지만 1929년에 그의 영성과 목회자로서의 소양이 인정되어 장로교 목사로 안수받음).
그의 그런 확신은 종교개혁자들과 퓨리탄(Puritan)들과 영적 각성자들의 사역과 거기에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을 확인하고서 더욱 강화되고 깊어진다. 그는 언제나 그런 말하기를 좋아하였다. “200여년 전으로 돌아가라! 거기서 하나님의 사람들을 만나 그들이 한 사역을 보라!”고 늘 강조하였다. 그 이후의 설교들은 설교가 아니라 에세이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였다(「목사와 설교」에서 그 점을 자주 지적한다).
그러므로 퓨리탄들, 오웬이나 리챠드 백스터나 그밖에 유명한 퓨리탄들의 저작, 죤 칼빈의 저작, 루터의 저작 등은 언제나 그에게 영적인 도전을 주고 그의 확신을 더욱 깊고 넓게하여 주는 것들이었다. 그리고 웨슬레 형제나 휫필드와 죠나단 에드워즈는 그의 훌륭한 선생들이었다. 그는 또한 워필드나 그레샴 메이쳔이나 핫지 부자의 책들 등 개혁주읮거인 고전들을 빼놓지 않고 섭렵한다. 거기서 그는 칼빈주의적인 신학적 체계를 확립한다. 그것은 그런 책들을 통해서 자기의 어떤 말거리를 찾으려고 하기 보다는 하나님의 일하시는 방식과,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진리를 더욱 깊이 알기 위한 것이었다. 그의 신학적인 지식은 참으로 방대하고 깊었다. 그것은 성경의 권위에 입각한 바른 영성에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3. 그의 소망
그의 소망이 무엇인가? 그는 성경이 제시하는 대로의 소망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사도들을 통하여 나타난 복음의 능력과 그로 인한 진정한 회개와 믿음과 구원이 현대에도 일어나기를 간절하게 바랐던 것이다. 그는 진정한 영적 부흥에 대하여 남다른 열정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을 통하여 하나님의 이름과 그 영광이 나타나는 은혜가 부어지기를 간덜히 바랐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를 가히 부흥신학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박국 선지의 간덜한 소망을 그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그의 소망과, 성경적인 사도적 복음의 능력과 영광에 대한 그의 확신은 별개의 것이 아니고, 한 영성(靈性)의 양 측면이다.
4. 강해설교
위에서 본 바와 같이 그의 강해설교는 단순한 한 설교자로서의 기법이나 한 설교방식으로 나타난 것이 아니라, 확실한 영적 기반 위에서 필연적으로 나온 열매이다. 많은 이들이 그의 강해설교를 본받으려 하고 모방하려고 한다. 그러나 그의 강해설교는 하나의 단순한 설교형태나 기법으로서만 따내려고 할 때 그런 사람에게는 아주 따분하고 답답하고 지루하게만 보일 것이다. 그것의 진 면목을 감추어 버리고 만다. 다만 하나님의 은혜와 진리를 알고 하나님 앞에서 진실로 서기를 바라는 자들 앞에서만 그 강해설교의 능력이 본 모습을 드러낸다. 어떤 이들은 본인(필자)에게 그의 분량많은 강해설교를 다 읽기가 거북하니 요약하여 책으로 내라는 요청을 하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본인은 아주 매몰차게 거부해 버린다. 그것이 이 사람 로이드 죤즈가 가장 싫어하던 직업적 목회관이다.
그의 강해설교의 목적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말하는 바를 가감없이 잘 밝혀 하나님의 사람들을 구원하고 거룩하게 하고 교회를 정결케 하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것이다. 그는 그가 바라는 진정한 영적 각성과 부흥과 하나님의 영광은 바른 설교, 바른 성경적인 설교를 통해서 나타난다는 것을 누누히 강조한다. 그래서 그는 그의 명저 「목사와 설교」에서 “모든 설교는 강해적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의 강해는 먼저 강해하려는 대목에서 하나님게서 말씀하시려는 의도를 보편적으로 밝히는 일로부터 시작한다. 물론 거기에는 그 말씀이 기록된 역사적인 배경과 영적인 상황과 문맥적인 의도를 면밀하게 검토하는 일을 수반한다. 그런 일을 하기에 충분한 준비가 되지 않으면 그 대목을 강해하지 않는다. 그의 <로마서 강해>(13년에 걸쳐 행한 강해)를 시작하기 전에 그가 그 강해를 위하여 얼마나 철저하게 준비하였는가를 보여주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어떤 성도가 어느날 예배를 마친 뒤에 그의 방을 찾아와서, 목사님은 언제나 로마서를 강해하려느냐고 물었다. 그 때 로마서 6장의 위치와 문맥적인 의도를 완전히 이해하고 파악하여 모든 의문이 사라진 후에 하겠다고 대답하였다고 한다(그의 로마서 6장 강해서 서론에서 그가 한 말임). 그는 그러한 그의 자세를 나무만 보느라고 숲을 보지 못하면 헤맨다는 말로 표현한다.
그러나 그는 그런 일을 한 뒤에는 말씀을 따라서 나가되, 현미경적을 아주 세밀하게 나아간다. 접속사나 조사, 문장구조나 낱말 등 모든 필요한 것을 다 파악하여 그 구절을 통하여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풀어내는 일에 아주 섬세하다. 그런 그의 접근방식을 의사로 있을 때에 호더 경에게서 배웠다고 후년에 술회한다.
그런 다음에 그는 그 구절에 대한 모든 유수한 주석가들이나 선진들의 관점을 참고하고 비교하고 분석한다. 그는 아무리 유명한 개혁주의적인 사람이 한 말이라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성경적인 근거를 가지고 있는 주장인가를 묻는다. 그리고 나서 적용한다. 그러나 이미 그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강해하는 것을 들은 사람들은 자기들이 그 진리를 확신에 넘쳐서 자기들에게 적용하고 있음을 발견한다. 우리가 그의 강해서들을 읽어 나가면서 항상 느기는 것이다. 바른 강해는 적용이라는 대목을 따로 정하지 않고도 그런 목적에 바르게 도달할 수 있음을 우리에게 가르쳐 준다. 그리고 그 대목과 관계되는 모든 영적인 난제와 문제들을 전부 예상하고 그 진리에 비추어서 지적한다. 그래서 그의 설교를 들은 사람들이나 책을 통하여 그 말ㅆ므 사역을 대한 사람들은 하등의 의문도 없이 확신에 차서 그 자리를 뜰 수 있다.
물론 로이드 죤즈가 반복이 많고 지루해 보인다는 말을 많이 하고, 그 설교를 하던 당시에도 너무 논리적이라서 이해하기가 어렵다는 말을 들었다. 그때마다 그는 자기의 방식이 성경적임을 아주 강력히 논증하고 변호하였다. 그리고 논증적이라 이해하기 어렵다는 동역자들이나 성도들에게 어느 어린 남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리고 반복에 대하여 지적하는 자는 그것이 성경적이라고 말한다. 성경은 부단히 반복적인 교육방식을 견지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그는 자기의 사역의 세밀한 부분에까지 성경에서 그 원리를 찾는다.
4. 결 론
짧은 시간 안에 그의 영성과 소명과 사역 원리를 알아본다는 것은 무리이다. 다만 그를 윤곽적으로 이해하는 것으로 족할 뿐이다. 이 자리를 빌어서 자신있게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그를 알려면 그의 책들을 겸손한 성도의 자세로 돌아가서 하나님 앞에 서려고 읽을 때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의 책을 읽는 수고를 두려워하는 자는 하나님께서 그를 통하여 일하신 것이 무엇인지 모를 것이고, 따분하고 지루한 무수한 말들 앞에 진력이 나버리고 말 것이다.
*** 우리 한국에 번역 소개된 그의 저서들과 그에 관한 책 ***
목사와설교 (기독교문서선교회)
로마서강해전8권 (기독교문서선교회)
에베소서강해전8권 (기독교문서선교회)
매일의묵상 (엠마오)
요한복음17장강해전4권 (여수룬)
인간의곤경과하나님의능력(엠마오)
십자가와구속 (기독교문서선교회)
인간조건 (기독교문서선교회)
두려움에서신앙으로 (성서유니온)
권위 (생명의 말씀사)
전도설교 (기독교문서선교회)
부흥 (생명의 말씀사)
청교도신앙 (생명의 말씀사)
산상설교 (정경사)
마틴로이드-죤즈초기40년 (청교도신앙사)
자료출처 http://blog.daum.net/kkho1105/3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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