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홍 목사의 성경적 상담 연구소 RBD COUNSELING INSTITU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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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선진들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 가져야 할 자세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 가져야 할 자세-마틴 로이드존스-

(출 3:3-5) “이에 모세가 이르되 ‘내가 돌이켜 가서 이 큰 광경을 보리라 떨기나무가 어찌하여 타지 아니하는고?’ 하니 그 때에 여호와께서 그가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보신지라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이르시되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
자료출처 http://blog.daum.net/kkho1105/7418
 
제가 이 사건에 그토록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 이유는, 이 사건이 우리 주요 구세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이라는 전체 문제와 관련해서 아주 위대한 교훈이요 모형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본문은 아주 특별한 교훈 한 가지를 특이하고 놀라운 방식으로 우리에게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이 본문은 우리가 복음에 접근할 때 어떤 자세로 접근해야 하느냐 하는 문제와 관련이 있습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안고 있는 문제점은 복음 자체보다도 그 복음에 접근하는 자세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잘못된 것은 복음에 접근하는 방법, 즉 그 자세입니다. 자세가 잘못되어 있으니 그 외의 모든 것이 잘못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여기 나오는 모세와 같습니다. 이 세상에서 해야 할 매일 매일의 일과와 과업들을 수행하려고 하는, 평범한 인간으로 아주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어떤 일만 발생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진로를 방해하는 일만 발생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이런 식으로 살아 왔을 것이요 또 계속 살아갈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사람들로 하여금 모세가 이 타는 가시떨기 나무에 사로잡혔던 것처럼 -아주 평범한 오후였지만 가장 평범한 그 일과 속에서 어떤 일이 발생한 것입니다- 이런 것들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은 이 세상에 무궁무진하게 많습니다.
그 뜻하지 않았던 일은 갑자기 찾아올 수도 있고 서서히 찾아올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애석한 일은 이런 일이 많은 사람들에게 일어났지만 그로 인해 회심까지 체험하게 된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그럼 대체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요?
바로 이 점이 우리가 지금 알아보려고 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런 사람들 대다수의 문제는 바로 그들에게 일어난 일을 대하는 그들의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만일 여러분이 제 삼자 적인 자세로 성경을 조사하는 단순한 조사원이나 검사관이라면, 여러분은 절대 성경 메시지를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여러분의 호기심이나 불러일으키는 분 정도로 생각한다면, 여러분이 사색하고 추측해 볼 수 있는 분 정도로 생각한다면, 계속해서 그분을 연구 조사해 보십시오. 그러나 진노 안에서밖에는 하나님을 절대 알지 못하게 될 거라는 사실을 명심하십시오.

여러분은 그의 생명 밖에 있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접근하면 안 됩니다! 여러분은 처음부터 이런 자세를 취해야 합니다.
"너의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그것은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준비 단계입니다. 예, 그렇습니다. 반드시 필요한 단계입니다.
왜 나 자신을 순복시킴으로써 접근해야 한단 말입니까? 여기서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몇 가지 드리겠습니다.
 
첫째는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제가 지금 여러분에게 설교할 특권을 누리고 있는 이 복음은 주로 계시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성경 처음부터 끝가지 나오는 전체 이야기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찾아오시는 하나님, 갑자기 침입해 들어오시는 하나님입니다.
 
두 번째 이유는 이렇습니다. 그 주어진 계시가 기이하고 놀랍다는 것입니다. 자, 이제 보다 더 중요한 다음 요점으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우리 발에서 신을 벗어야 할 세 번째 이유는 기독교 복음의 전체 요점과 목적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만나게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타는 가시떨기나무, 어쩌면 초자연적인 현상일거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그는 그것이 불꽃이 아닌 한 인격과의 만남이라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그가 발에서 신을 벗어야 했던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만나고 있었던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의 전체 목적은 우리를 하나님과 개인적으로 대면시키는 것, 하나님과 인격적으로 만나게 해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아는 지식-그것이 기독교 신앙과 그 놀라운 구원의 제공에서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이 하는 일은 우리에게 신학적인 지식을 제공해 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신학적으로 위대한 지식을 갖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하나님을 모를 수 있습니다.
이 기독교 복음은 어떤 관념이나 도덕 및 윤리에 관한 행동 원리와 관련이 잇는 것도 아닙니다. 기독교 신앙과 그 메시지에 접근하는 사람들은 체험 같은 현상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면 안 됩니다.
 
성경은 여러분과 제가 하나님을 알아야만 한다는 사실에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그것이 체험입니다. 감사하게도 그것은 영적 체험입니다.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영적 체험에 관심을 가지면 안 되고, 하나님을 알게 되는 것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가 신을 벗고 순복하는 자세로 접근해야 할 마지막 이유는 우리가 이런 식으로 만나게 되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신 말씀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계시는 무엇입니까?
첫째, 그것은 하나님 자신의 거룩함을 계시한 것이라는 점입니다.
여러분과 저는 그리스도인들이 기도할 때 "사랑하는 아버지"라고 부르는 소리를 듣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아버지"라고 부르지 않았습니다.
주님은 그분을 "거룩하신 아버지"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이것 말고 도 첨언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분의 메시지를 듣기 원하십니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정녕히 보고 그들이 그 간역자로 인하여 부르짖음을 듣고 그 우고를 알고"(출 3:7)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이 대면하고 있는 그 문제는 지적인 문제가 아닙니다. 여러분 자신이 문제입니다- 여러분의 인생, 여러분이 죄와 사탄의 노예가 되어 잇다는 것, 이것이 문제입니다.
그런 다음 하나님은 8절에서 마지막 메시지를 말씀하십니다.
"내가 내려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이르려 하노라."
"내가 내려와서 건져낸다"-얼마나 완전한 말씀입니까? 제가 처음부터 우리는 구약에서 복음을 발견할 수 있다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바로 이것이 신약 전체의 줄거리입니다. 나사렛 예수는 성삼위 하나님의 복되신 두 번째 위격이십니다. 그 성자 하나님께서 천국에서 내려오셨습니다. 왠지 아십니까? 여러분과 저의 고통을 보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소위 조사와 검사라는 제삼자적인 객관적 자세를 취함으로써 단순히 종교에 관심을 갖고 있는 동안에는 이것을 절대 알지 못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대로 죄의 노예로 남아 있을 것이요, 어둠 가운데 있을 것이요, 마침내 지옥에 가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멈춰 서서 듣기만 하십시오. 여러분 발에서 신을 벗고, 자신의 지적인 교만을 버리고 이와 비슷한 다른 모든 것을 포기한 채, 자신을 어린아이처럼 낮추고, 하늘에서 땅으로 오신 하나님의 아들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메시지를 들으십시오.
그렇게만 하면 하나님이 여러분을 새사람을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죄와 사탄과 악의 속박으로부터 구원해 주실 것입니다.
그 손으로 여러분을 잡아 마침내 흠 없이 완전한 모습으로 하나님 앞에 서게 해주실 것이요 영원한 천국으로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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