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피조물
새로운 피조물
(갈 6:14)"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자료출처 http://blog.daum.net/kkho1105/7420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는 말씀은 십자가 상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믿으시는 그 순간 얻어진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과 화목케 하는 하나님의 방도를 발견하게 되는 순간, 믿음으로 즉각 여러분의 모든 죄악들이 용서함받게 된 것을 가르쳐 주는 말씀입니다. 모든 죄악이 깨끗이 씻음받아 이제는 그리스도의 의로움으로 옷 입게 된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벌어지는 우리의 모든 문제들이 어떠한 것인지를 살펴본 결과, 그 모든 원인들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잘못되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반역죄의 결과로 즉시 이 세상에 고통이 오게 된 것입니다. 이런 일을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께 복종하지 않고 그의 영광과 존귀하심을 찬양하는 삶을 살지 않고는 평화가 무엇인지도 결코 알 수 없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지 않고는 그 누구도 소망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과 화평케 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이 세상을 이처럼 비참한 세상이 되게 한 장본인은 저와 여러분들 개개인입니다. 세상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합니다. 태초에 그는 오직 말씀으로 모든 것을 창조하셨습니다. 완전한 태초였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이룩하신 세상을 보고 흡족해 하셨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우리의 세계는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것들뿐입니다. 따라서 그의 진노가 머리맡에 놓여 있습니다. 이 세상을 마침내는 심판하실 것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것을 알지 못한다 하더라도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존재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도록 창조된 인간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에게는 하나님께서만 채워주실 수 있는 가장 귀중한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 외에는 누구도 그것을 만족시킬 수가 없습니다.
참된 평화가 무엇인지를 바로 깨닫기 전, 특별히 하나님과 화목케 되는 것이 무엇인지를 바로 이해하기 전에 인간이 생각해야 할 것이 두 가지 있습니다. 먼저는 인간이 하나님과는 불화한 입장에 처해 있다는 것과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진노가 인간에게 임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 쪽에서 뭔가가 먼저 발생해야만 하는데 그것이 바로 십자가의 복음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 상에서 죽으셨을 때, 거룩하신 하나님의 법이 요구한 모든 것을 다 이루었습니다. 하나님의 의로우심과 공의하심 및 거룩하심이 전적으로 충족된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죄를 그리스도에게 짊어지우신 분이 하나님입니다. 우리 인간이 마땅히 받아야 할 형벌과 곤욕을 주님께서 당하시게 하신 분이 하나님입니다.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는 사랑과 은혜 및 자비가 풍성하신 하나님임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은 그 영원하신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십니다.....인간이 화평을 누리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과 화목케 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향했던 하나님의 불같은 진노와 형벌을 십자가 상에서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면케 된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아담 안에 있었습니다(롬 5:12). 그러므로 그가 타락하게 되었을 때에 우리도 그와 더불어 타락하게 된 것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그는 죽었고 그 이후로 우리 모두도 죽게 된 것입니다. 모든 인간이 다 죽었습니다. 세상에 사망이 임하였고 아담의 범죄한 것 때문에 모든 사람이 죽음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그가 범한 죄악의 주요 요지는 모든 인류족속에게 타락을 도래시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날 때부터 타락한 심령으 소유자로 비뚤어진 심령을 지닌 죄인으로 태어난 것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잠시나마 행복해 보려고 여러가지 헛된 망상을 합니다.
그리스도는 어떤 분입니까? 그는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그런데 왜 세상에 오셨습니까? 그가 세상에 오심은 새로운 인류 족속을 낳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분은 두번째 아담입니다. 두번째 사람입니다. 첫 사람은 아담이었지만 둘째 사람은 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고전 15:47)
여기서 우리가 깨닫게 되는 놀라운 진리는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주님이 우리의 대표자가 되신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하신 모든 것은 우리를 위해서 하신 것이므로 주님 안에서 우리가 행한 것과 같은 것입니다. 비록 아담 안에서 우리가 타락했으나 타락한 죄인들의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소생함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주님을 믿는다는 것은 그와 함께 죽었음을 의미하며, 여러분이 당해야 할 형벌이 치루어졌음을 의미합니다. 또한 옛 사람으로 지낸 이전의 모든 것이 깨끗이 제거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제는 더 이상 아담에게 속한 자가 아닙니다.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입니다. 새로운 인간으로 출발합니다.
여러분이 주님의 죽으심과 그리스도이심을 믿는다면, 그리고 그의 죽으심이 성취한 것이 무엇인지를 믿는다면 여러분이 지닌 아담의 옛 성품은 진실로 죽은 것입니다. 여러분의 옛 사람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고 이제 그 모습은 영원히 사라져 버렸음을 깨닫는 것입니다. 그 결과로 우리의 모든 현 위치와 상태가 전혀 다른 것이 된 것입니다.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니라”(롬6:14).
기독교의 본질적인 가르침은 나의 모든 위치와 하나님께 대한 모든 관계가 완전히 변화된 것, 우리가 그분과 함께 화평을 누릴 뿐 아니라 전적으로 새로운 관계 속에 거하는 것입니다.
은혜란 값없이 베푸는 사랑입니다. 은혜란 죽어야 마땅한 자들에게 베푸는 하나님의 사랑이요 자비입니다. 하나님은 은혜의 하나님입니다. 은혜가 바로 하나님 자체입니다. 우리가 이 은혜를 받기에 합당치 못한 자리에 처했을 때에도 한없으신 사랑의 눈으로 우리를 응시하신 하나님입니다.
우리가 아담 안에 더 이상 있지 않고 그리스도 안에 있음을 발견하는 순간과 우리가 더 이상 율법 아래에 있지 않고 은혜 안래에 있음을 깨닫는 순간, 십자가가 우리를 위해서 이룩한 것이 무엇인지를 아십니까?
이것을 아시면 무엇이 귀한 축복인지를 인정하실 것입니다. 십자가가 이룩한 것을 보면 우리를 위하여 하늘문을 열고 우리로 기도하게 해줍니다.
기도란 하나님의 존전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에 살면서 거들떠보지도 않은 그 하나님, 경멸하고 거절한 그 하나님, 하늘에 계시고 거룩하시며 전능하신 그 하나님께 아뢰는 것이 기도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이런 하나님의 존전에 우리가 어떻게 들어갈 수 있느냐란 것입니다.
우리의 추악한 모습으로는 하나님의 존전으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죄인인 인간이 안심하고 담대하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그 방법은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을 믿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아뢸 수 있는 오직 한 가지 권리는, 그리스도께서 우리가 받을 형벌을 대신 져 주셨다는 것입니다. 이로 인하여 우리는 하나님과 화목케 되었고 하나님과 함께 평강을 누리게 된 것입니다.
(갈 6:14)"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자료출처 http://blog.daum.net/kkho1105/7420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는 말씀은 십자가 상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믿으시는 그 순간 얻어진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과 화목케 하는 하나님의 방도를 발견하게 되는 순간, 믿음으로 즉각 여러분의 모든 죄악들이 용서함받게 된 것을 가르쳐 주는 말씀입니다. 모든 죄악이 깨끗이 씻음받아 이제는 그리스도의 의로움으로 옷 입게 된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벌어지는 우리의 모든 문제들이 어떠한 것인지를 살펴본 결과, 그 모든 원인들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잘못되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반역죄의 결과로 즉시 이 세상에 고통이 오게 된 것입니다. 이런 일을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께 복종하지 않고 그의 영광과 존귀하심을 찬양하는 삶을 살지 않고는 평화가 무엇인지도 결코 알 수 없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지 않고는 그 누구도 소망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과 화평케 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이 세상을 이처럼 비참한 세상이 되게 한 장본인은 저와 여러분들 개개인입니다. 세상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합니다. 태초에 그는 오직 말씀으로 모든 것을 창조하셨습니다. 완전한 태초였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이룩하신 세상을 보고 흡족해 하셨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우리의 세계는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것들뿐입니다. 따라서 그의 진노가 머리맡에 놓여 있습니다. 이 세상을 마침내는 심판하실 것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것을 알지 못한다 하더라도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존재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도록 창조된 인간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에게는 하나님께서만 채워주실 수 있는 가장 귀중한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 외에는 누구도 그것을 만족시킬 수가 없습니다.
참된 평화가 무엇인지를 바로 깨닫기 전, 특별히 하나님과 화목케 되는 것이 무엇인지를 바로 이해하기 전에 인간이 생각해야 할 것이 두 가지 있습니다. 먼저는 인간이 하나님과는 불화한 입장에 처해 있다는 것과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진노가 인간에게 임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 쪽에서 뭔가가 먼저 발생해야만 하는데 그것이 바로 십자가의 복음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 상에서 죽으셨을 때, 거룩하신 하나님의 법이 요구한 모든 것을 다 이루었습니다. 하나님의 의로우심과 공의하심 및 거룩하심이 전적으로 충족된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죄를 그리스도에게 짊어지우신 분이 하나님입니다. 우리 인간이 마땅히 받아야 할 형벌과 곤욕을 주님께서 당하시게 하신 분이 하나님입니다.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는 사랑과 은혜 및 자비가 풍성하신 하나님임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은 그 영원하신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십니다.....인간이 화평을 누리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과 화목케 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향했던 하나님의 불같은 진노와 형벌을 십자가 상에서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면케 된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아담 안에 있었습니다(롬 5:12). 그러므로 그가 타락하게 되었을 때에 우리도 그와 더불어 타락하게 된 것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그는 죽었고 그 이후로 우리 모두도 죽게 된 것입니다. 모든 인간이 다 죽었습니다. 세상에 사망이 임하였고 아담의 범죄한 것 때문에 모든 사람이 죽음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그가 범한 죄악의 주요 요지는 모든 인류족속에게 타락을 도래시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날 때부터 타락한 심령으 소유자로 비뚤어진 심령을 지닌 죄인으로 태어난 것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잠시나마 행복해 보려고 여러가지 헛된 망상을 합니다.
그리스도는 어떤 분입니까? 그는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그런데 왜 세상에 오셨습니까? 그가 세상에 오심은 새로운 인류 족속을 낳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분은 두번째 아담입니다. 두번째 사람입니다. 첫 사람은 아담이었지만 둘째 사람은 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고전 15:47)
여기서 우리가 깨닫게 되는 놀라운 진리는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주님이 우리의 대표자가 되신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하신 모든 것은 우리를 위해서 하신 것이므로 주님 안에서 우리가 행한 것과 같은 것입니다. 비록 아담 안에서 우리가 타락했으나 타락한 죄인들의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소생함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주님을 믿는다는 것은 그와 함께 죽었음을 의미하며, 여러분이 당해야 할 형벌이 치루어졌음을 의미합니다. 또한 옛 사람으로 지낸 이전의 모든 것이 깨끗이 제거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제는 더 이상 아담에게 속한 자가 아닙니다.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입니다. 새로운 인간으로 출발합니다.
여러분이 주님의 죽으심과 그리스도이심을 믿는다면, 그리고 그의 죽으심이 성취한 것이 무엇인지를 믿는다면 여러분이 지닌 아담의 옛 성품은 진실로 죽은 것입니다. 여러분의 옛 사람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고 이제 그 모습은 영원히 사라져 버렸음을 깨닫는 것입니다. 그 결과로 우리의 모든 현 위치와 상태가 전혀 다른 것이 된 것입니다.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니라”(롬6:14).
기독교의 본질적인 가르침은 나의 모든 위치와 하나님께 대한 모든 관계가 완전히 변화된 것, 우리가 그분과 함께 화평을 누릴 뿐 아니라 전적으로 새로운 관계 속에 거하는 것입니다.
은혜란 값없이 베푸는 사랑입니다. 은혜란 죽어야 마땅한 자들에게 베푸는 하나님의 사랑이요 자비입니다. 하나님은 은혜의 하나님입니다. 은혜가 바로 하나님 자체입니다. 우리가 이 은혜를 받기에 합당치 못한 자리에 처했을 때에도 한없으신 사랑의 눈으로 우리를 응시하신 하나님입니다.
우리가 아담 안에 더 이상 있지 않고 그리스도 안에 있음을 발견하는 순간과 우리가 더 이상 율법 아래에 있지 않고 은혜 안래에 있음을 깨닫는 순간, 십자가가 우리를 위해서 이룩한 것이 무엇인지를 아십니까?
이것을 아시면 무엇이 귀한 축복인지를 인정하실 것입니다. 십자가가 이룩한 것을 보면 우리를 위하여 하늘문을 열고 우리로 기도하게 해줍니다.
기도란 하나님의 존전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에 살면서 거들떠보지도 않은 그 하나님, 경멸하고 거절한 그 하나님, 하늘에 계시고 거룩하시며 전능하신 그 하나님께 아뢰는 것이 기도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이런 하나님의 존전에 우리가 어떻게 들어갈 수 있느냐란 것입니다.
우리의 추악한 모습으로는 하나님의 존전으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죄인인 인간이 안심하고 담대하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그 방법은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을 믿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아뢸 수 있는 오직 한 가지 권리는, 그리스도께서 우리가 받을 형벌을 대신 져 주셨다는 것입니다. 이로 인하여 우리는 하나님과 화목케 되었고 하나님과 함께 평강을 누리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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