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과적인 부르심과 회심
효과적인 부르심과 회심(마틴 로이드존스)
1. 효과적인 부르심
복음의 진리가 있으며,
그리고 모든 사람들에게
그 진리를 선포하는 것이 바로 성령님의 사역의 일부분이라는 것을
우리는 이미 살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일반적 소명-복음의 우주적인 제시-이라고 불렀던 것입니다.
그리고 비록 그런 외적 혹은 일반적인 소명이 모든 이들에게 제공되지만
어떤 사람은 구원받은 자들로 남아있게 되고
또 다른 사람은 구원받지 못한 자들로 또한 남아 있다는 사실로 인해
어떤 새로운 구분이 분명하게 들어옵니다.
따라서 다음의 질문에 대하여 이제 우리가 살펴 볼 것입니다.
이런 두 집단 사이에 있는 차이점은 무엇인가?
그리고 이런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는,
제가 보기에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 복음의 소명(부르심)이
일부 사람들에게만 효과적이라고 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자들'로 언급되었던 그리스도의 추종자들은 두 집단으로 나뉘었습니다.
한 집단은 자신들이 주님을 다시는 듣지 않을 것이라고 결정했습니다.
그들은 주님을 떠나 집으로 갔습니다.
그때 주님께서는 아직 떠나지 않은 다른 이들을 향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도 가려느냐?"
베드로가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이까?"(요6:67-68)
완전히 동일한 것을 들었으면서도
한 집단은 불신하며 집으로 돌아갔고,
다른 집단은 주님과 함께 남아서 더 듣기를 원했고 그것을 즐겼습니다.
이런 차이는 무엇이 만들었을까요?
이런 방법으로 신자들의 경우에서 말씀은 효과적이었고
그 말씀을 거절한 불신자들의 경우에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효력있는 소명에 대한 성경의 진술
이것은 아주 분명한 것입니다.
외적 소명에 더하여 이런 효과적 소명이 있다는 것과
구원받아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도록 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효과적인 소명 때문이라는 것을
우리는 말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확립하는 성경 말씀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첫째, 로마서 8:28-29은 바로 이것에 대한 위대한 진술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라고 바울은 시작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모든 사람에게 그렇게 선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에게만 그렇습니다.
그들은 누구입니까?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입니다.
바울은 이어서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여기서 구원받은 자들을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라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이 성경 진술이 바로 효과적인 소명입니다.
둘째, 고린도전서 1:2에서 볼 수 있습니다.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 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저희와 우리의 주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그들은 단순히 성도들이라고 불려지는 것이 아니라,
성도들이 되기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던 자들입니다.
그리고 동일한 장에서 사도 바울은 이것을 반복합니다.
그는 말합니다.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 그리고 주목하십시오 -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고전1:23-24)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이 어떤 이들에게는 어리석음인데,
바로 이들이 구원받지 못한 자들입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자들을 사도는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라고 부릅니다.
셋째, 사도 베드로에 의해서 주어진 위대한 진술을 봅시다.
그는 그리스도인 신자들을 이렇게 말합니다.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
(벧전 2:9)
하나님께서 그들을 불러 내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그들을 효과적으로 부르셨던 것입니다.
넷째, 요한복음 6장 45절에서도 다음과 같은 진술을 봅니다.
"선지자의 글에 저희가 다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으리라."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에게 이런 정보를 주셨고
그들은 그것을 기록하였습니다.
하나님 자신에 의해서,
단지 사람만이 아니라 그것과 더하여 하나님에 의해서
즉 성령님에 의해서 가르침을 받을 자들이 있을 것입니다.
내적인 역사는 이런 이들에게만 발생합니다.
"아버지께 듣고 배운 사람마다 내게로 오느니라"(45절)
여러분들은 그리스도께 왔던 자들은 하나님께 가르침을 받았던 자들,
성령님에 의해서 아버지로부터 들었던 자들 뿐임을 알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핵심적인 진술입니다.
63-65절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주님께서는 계속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너희 중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있느니라."
이런 말씀에 더하여 요한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이는 예수께서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누구며 자기를 팔 자가 누군지
처음부터 아심이러라."
그들은 외적 소명에 대해서는 반응을 보였고
자신들을 그리스도인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참된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는 증거가 여기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에 의해서 가르침 받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껍질, 즉 외적인 말씀만 가지고 있었을 뿐 영은 소유하지 못했습니다.
(당신은 외적 소명에 반응을 보였고 외적인 말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신을 그리스도인이라고 착각하고 있지는 않습니까?-편집자)
요한은 계속 이렇게 증거 합니다.
"또 가라사대 이러하므로 전에 너희에게 말하기를
내 아버지께 오게 하여 주지 아니하시면 누구든지 내게 올 수 없다
하였노라 하시니라."
아버지께서 이런 자들에게 내적 소명을 주시지 않았기에
그들은 주님께 올 수 없었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아버지께 내적 소명을 받은 다른 이들은 남아서 그것을 즐거워했습니다.
다섯째, 에베소서 1:17절.
바울은 에베소 성도들을 위하여 다음과 같이 기도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달리 말하자면,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지혜와 계시의 성령을 주시지 않으신다면
우리는 그분의 지식을 소유할 수 없습니다.
에베소서 2:8절.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또한 빌립보서 2:12-13절에서도 바울은 동일한 말을 합니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하나님께서 내적인 사역을 행하시며
그 결과 우리는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행할 수 있습니다.
데살로니가 전서 1:5에서
바울은 이것과 관련해서 한 중요한 진술을 합니다.
“이는 우리 복음이 말로만 너희에게 이른 것이 아니라,
오직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이니,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를 위하여 어떠한 사람이 된 것은
너희의 아는 바와 같으니라”
만약 여러분들이 지금 이 서신서를 읽는다면, 특히 앞의 두장을 읽는다면,
사도는 이것을 다른 방법들로 반복하여 진술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할 것입니다.
사도는 그들이 자신들에게 온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았다”(살전 2:13)
고 말합니다.
그러면,
그가 “우리 복음이 말로만 너희에게 이른 것이 아니라”고 말한 것은
무엇을 의미했을까요?
물론 복음은 사도가 전했던 그 말들로 왔습니다.
그러나 데살로니가에 있는 이방인들로 교회로 돌아오게 한 것은
그 말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럼 무엇이었습니까?
그것은 오직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내적인 역사로 바로 죄인들을 성도로 변하게 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능력과 성령의 나타남으로 된 설교입니다.
(하나님의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을 경험한 적이 있습니까?
없다면 당신은 아직 그리스도인이 아니며 구원받지 못했읍니다.-편집자)
진실로 사도는 디모데후서 2:25에서 매우 비슷한 진술을 주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그는 젊은 디모데에게
거역하는 자들을 어떻게 훈련할 것인지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거역하는 자를 온유함으로 훈계할지니
혹 하나님이 저희에게 회개함을 주사 진리를 알게 하실까 하며”
바울은 디모데가 이런 거역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지도하는지를 알기 원했고
그래서 이렇게 하라고 그에게 자신의 생각을 전했습니다.
“너는 너 자신의 주장이나 논리로 그들을 확신시킬 수 없다는 것을
나는 제안한다.
그들 속에서 하나님이 이런 역사를 하시지 않으신다면,
그들은 결코 진리의 지식을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하나님께서 역사하신다면, 그들은 그것을 알게 될 것이다.”
우리는 진실로 복음서에서 한번 이상 이런 진술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미 인용했던 한 구절에서 다음과 같은 진술이 있습니다.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마22:14)
이것을 결혼 잔치라는 상황에서 특별하게 보십시오.
“청함을 받은 자는 많다.”-이것은 외적인 부르심입니다.
“택함을 입은 자는 적다.”-이것은 효과적인 부르심입니다.
http://blog.daum.net/kkho1105/8125
1. 효과적인 부르심
복음의 진리가 있으며,
그리고 모든 사람들에게
그 진리를 선포하는 것이 바로 성령님의 사역의 일부분이라는 것을
우리는 이미 살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일반적 소명-복음의 우주적인 제시-이라고 불렀던 것입니다.
그리고 비록 그런 외적 혹은 일반적인 소명이 모든 이들에게 제공되지만
어떤 사람은 구원받은 자들로 남아있게 되고
또 다른 사람은 구원받지 못한 자들로 또한 남아 있다는 사실로 인해
어떤 새로운 구분이 분명하게 들어옵니다.
따라서 다음의 질문에 대하여 이제 우리가 살펴 볼 것입니다.
이런 두 집단 사이에 있는 차이점은 무엇인가?
그리고 이런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는,
제가 보기에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 복음의 소명(부르심)이
일부 사람들에게만 효과적이라고 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자들'로 언급되었던 그리스도의 추종자들은 두 집단으로 나뉘었습니다.
한 집단은 자신들이 주님을 다시는 듣지 않을 것이라고 결정했습니다.
그들은 주님을 떠나 집으로 갔습니다.
그때 주님께서는 아직 떠나지 않은 다른 이들을 향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도 가려느냐?"
베드로가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이까?"(요6:67-68)
완전히 동일한 것을 들었으면서도
한 집단은 불신하며 집으로 돌아갔고,
다른 집단은 주님과 함께 남아서 더 듣기를 원했고 그것을 즐겼습니다.
이런 차이는 무엇이 만들었을까요?
이런 방법으로 신자들의 경우에서 말씀은 효과적이었고
그 말씀을 거절한 불신자들의 경우에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효력있는 소명에 대한 성경의 진술
이것은 아주 분명한 것입니다.
외적 소명에 더하여 이런 효과적 소명이 있다는 것과
구원받아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도록 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효과적인 소명 때문이라는 것을
우리는 말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확립하는 성경 말씀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첫째, 로마서 8:28-29은 바로 이것에 대한 위대한 진술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라고 바울은 시작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모든 사람에게 그렇게 선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에게만 그렇습니다.
그들은 누구입니까?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입니다.
바울은 이어서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여기서 구원받은 자들을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라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이 성경 진술이 바로 효과적인 소명입니다.
둘째, 고린도전서 1:2에서 볼 수 있습니다.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 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저희와 우리의 주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그들은 단순히 성도들이라고 불려지는 것이 아니라,
성도들이 되기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던 자들입니다.
그리고 동일한 장에서 사도 바울은 이것을 반복합니다.
그는 말합니다.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 그리고 주목하십시오 -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고전1:23-24)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이 어떤 이들에게는 어리석음인데,
바로 이들이 구원받지 못한 자들입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자들을 사도는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라고 부릅니다.
셋째, 사도 베드로에 의해서 주어진 위대한 진술을 봅시다.
그는 그리스도인 신자들을 이렇게 말합니다.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
(벧전 2:9)
하나님께서 그들을 불러 내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그들을 효과적으로 부르셨던 것입니다.
넷째, 요한복음 6장 45절에서도 다음과 같은 진술을 봅니다.
"선지자의 글에 저희가 다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으리라."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에게 이런 정보를 주셨고
그들은 그것을 기록하였습니다.
하나님 자신에 의해서,
단지 사람만이 아니라 그것과 더하여 하나님에 의해서
즉 성령님에 의해서 가르침을 받을 자들이 있을 것입니다.
내적인 역사는 이런 이들에게만 발생합니다.
"아버지께 듣고 배운 사람마다 내게로 오느니라"(45절)
여러분들은 그리스도께 왔던 자들은 하나님께 가르침을 받았던 자들,
성령님에 의해서 아버지로부터 들었던 자들 뿐임을 알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핵심적인 진술입니다.
63-65절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주님께서는 계속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너희 중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있느니라."
이런 말씀에 더하여 요한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이는 예수께서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누구며 자기를 팔 자가 누군지
처음부터 아심이러라."
그들은 외적 소명에 대해서는 반응을 보였고
자신들을 그리스도인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참된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는 증거가 여기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에 의해서 가르침 받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껍질, 즉 외적인 말씀만 가지고 있었을 뿐 영은 소유하지 못했습니다.
(당신은 외적 소명에 반응을 보였고 외적인 말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신을 그리스도인이라고 착각하고 있지는 않습니까?-편집자)
요한은 계속 이렇게 증거 합니다.
"또 가라사대 이러하므로 전에 너희에게 말하기를
내 아버지께 오게 하여 주지 아니하시면 누구든지 내게 올 수 없다
하였노라 하시니라."
아버지께서 이런 자들에게 내적 소명을 주시지 않았기에
그들은 주님께 올 수 없었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아버지께 내적 소명을 받은 다른 이들은 남아서 그것을 즐거워했습니다.
다섯째, 에베소서 1:17절.
바울은 에베소 성도들을 위하여 다음과 같이 기도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달리 말하자면,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지혜와 계시의 성령을 주시지 않으신다면
우리는 그분의 지식을 소유할 수 없습니다.
에베소서 2:8절.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또한 빌립보서 2:12-13절에서도 바울은 동일한 말을 합니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하나님께서 내적인 사역을 행하시며
그 결과 우리는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행할 수 있습니다.
데살로니가 전서 1:5에서
바울은 이것과 관련해서 한 중요한 진술을 합니다.
“이는 우리 복음이 말로만 너희에게 이른 것이 아니라,
오직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이니,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를 위하여 어떠한 사람이 된 것은
너희의 아는 바와 같으니라”
만약 여러분들이 지금 이 서신서를 읽는다면, 특히 앞의 두장을 읽는다면,
사도는 이것을 다른 방법들로 반복하여 진술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할 것입니다.
사도는 그들이 자신들에게 온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았다”(살전 2:13)
고 말합니다.
그러면,
그가 “우리 복음이 말로만 너희에게 이른 것이 아니라”고 말한 것은
무엇을 의미했을까요?
물론 복음은 사도가 전했던 그 말들로 왔습니다.
그러나 데살로니가에 있는 이방인들로 교회로 돌아오게 한 것은
그 말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럼 무엇이었습니까?
그것은 오직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내적인 역사로 바로 죄인들을 성도로 변하게 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능력과 성령의 나타남으로 된 설교입니다.
(하나님의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을 경험한 적이 있습니까?
없다면 당신은 아직 그리스도인이 아니며 구원받지 못했읍니다.-편집자)
진실로 사도는 디모데후서 2:25에서 매우 비슷한 진술을 주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그는 젊은 디모데에게
거역하는 자들을 어떻게 훈련할 것인지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거역하는 자를 온유함으로 훈계할지니
혹 하나님이 저희에게 회개함을 주사 진리를 알게 하실까 하며”
바울은 디모데가 이런 거역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지도하는지를 알기 원했고
그래서 이렇게 하라고 그에게 자신의 생각을 전했습니다.
“너는 너 자신의 주장이나 논리로 그들을 확신시킬 수 없다는 것을
나는 제안한다.
그들 속에서 하나님이 이런 역사를 하시지 않으신다면,
그들은 결코 진리의 지식을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하나님께서 역사하신다면, 그들은 그것을 알게 될 것이다.”
우리는 진실로 복음서에서 한번 이상 이런 진술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미 인용했던 한 구절에서 다음과 같은 진술이 있습니다.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마22:14)
이것을 결혼 잔치라는 상황에서 특별하게 보십시오.
“청함을 받은 자는 많다.”-이것은 외적인 부르심입니다.
“택함을 입은 자는 적다.”-이것은 효과적인 부르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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