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오웬의 성령론(3)
존오웬의 성령론(3)
존오웬의 성령론(3)Ⅴ. 오웬의 성령론1. 성령론 <원서명 : THE HOLY SPIRIT HIS GIFT AND POWER, 여수룬,1999.>오웬은 종교개혁이 일어난지 150년이 지난 후에 성령론을 발표하였다. 따라서 그는 개혁신학의 발아와 진행과 찬란한 꽃 봉우리를 모두 평가하였고, 그것들을 17세기 청교도 신앙인들의 사회생활에 적용시켰다. 1,200쪽에 달하는 방대한 그의 성령론은 후학들의 감탄을 자아내게 하였다. 오웬은 종교개혁의 정수를 드러냈던 칼빈 신학에서 매우 중요한 근본 진리는 ‘성령의 신학’이라고 생각하였고, 나중에 벤자민 워필드가 이해 한 것처럼 칼빈을 ‘성령의 신학자’라고 인식하였다. 그리고 성령론은 종교 개혁 신학에서 가장 독특한 부분이라고 확신하였다.이렇게 성령론이 중요하다고 생각한 이유는 과연 무엇인가? 그것은 정당한 판단이라고 할 수 있는가? 성령의 사역에 대한 종교개혁자들의 강조는 구원을 로마 카톨릭 교회의 손에서 빼내오는 것과 같은 기능을 한다. 그가 성령론을 쓰게 된 것을 이렇게 말한다. 첫째, 그 때까지도 성령에 대해서 완벽하게 소개하는 책이 없었다. 둘째, 당대에 잘못된 성령에 관한 사상들이 난무하였기 때문에 바로 잡으려는 의도에서 나왔다. 셋째, 비성경적인 성령주의자들 곧 그들은 개인적인 성령의 계시를 강조하였는데 그들은 성경의 중요성을 약화시키고 소위 성경의 그리스도를 능가하는 ‘내 속에 계신 그리스도’를 주장하였다. 또 하나님의 말씀의 빛 위에 있는 ‘내적인 빛’을 추구하였다.“성령론”은 오웬이 신학으로 완숙기인 1677-8년에 간행된 것으로 그의 저서 가운데 기념비적인 저작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그의 성령론을 "만약 그의 저서들 중에 걸작이거나 아니면 하나의 견본이다"라고까지 말한다. 이 책은 오웬이 서문에서 밝혔듯이 ‘성령과 그의 사역’이다. 이 책에서 존 오웬은 성령에 대한 깊은 내용과 뜨거운 경건을 담고 있다. 성령에 관한 이만큼 방대하고 박식하며 귀한 책을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성령에 관한 깊은 진리를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우리가 살펴보고자 하는 것은 오웬의 “성령론”에 나타난 경험 혹은 체험에 관한 부분이다. 오웬은 방대한 분량의 작품들 속에서 매우 빈번하게 체험 혹은 경험에 관한 이야기를 언급한다. 이것은 오늘날의 많은 신학서들과는 놀라울 정도로 대조적인 것으로, 패커(J.I.Parker)가 오웬의 신학에 관하여 말한 대로 청교도들의 한 특징이었던 ‘하나님 중심의 경험적 경건’의 토대 위에 세위졌다는 것을 암시한다.오웬이 이런 성령의 은혜를 확신하고 깨닫는 체험을 하게 된 것은 성령의 사역의 패러다임을 알게 되면서 부터다. 성령은 주권적으로 사역하고, 그리스도 중심적이며, 성경적 사역을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오웬을 광범위하게 박식한 신학자나 논객으로 생각해서는 안된다. 그는 진실된 신자로 성령에 관하여 저술한 체험 신앙인이었다.그는 자신의 성령론의 서문에서 저술 방법과 의도를 이렇게 밝히고 있다: “나는 과연 성경이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가를 찾아보고 정리하여, 성령에 대해 알지 못하고 성령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의심 없이 공감할 수 있도록 하려고 한다. 그리고… 고대 교회가 지지하고 오늘날의 신자들이 경험하는 바를 정리하려고 한다.”1)그의 글들은 오히려 그리스도인으로서의 깊은 체험에서 나온 것이라는 느낌을 독자들에게 전해주기에 충분하다.2)2.목차(Contents)이 책의 전체 주제는 "성령과 그의 사역"이다.▶ 제 1부 성령에 대한 일반적인 원리와 그의 사역, 성령의 이름과 명칭, 신성과 인격, 창조 때의 성령의 특수 사역, 성령의 시여 방법 등▶ 제 2부 구약성경에서의 성령의 특수사역, 새로운 창조에 대한 성령의 일반적 시여, 그리스도의 인성과 관련 한 성령의 사역, 그리스도의 신비스러운 몸의 지체들에 대한 성령의 일반적 사역▶ 제 3부 새 창조에 있어서의 중생시키는 성령의 사역, 중생을 준비시키는 성령의 사역, 죄로 인한 마음의 부패 또는 타락, 생명과 사망, 영적인 것과 자연적인 것에 대한 비교, 중생의 성격, 원인, 방법 등▶ 제 4부 성화에 관한 것으로 성화에 관한 전반적인 내용을 다룸. 복음이 가르치는 성화와 거룩의 본질, 성화의 목적과 거룩의 실체, 죄의 오염, 결과, 씻음, 성화에 있어서 성령의 적극적 사역, 거룩한 사람의 행실과 의무, 죄의 본성, 죄의 원인, 죄를 죽이는 것 등▶ 부 록 기도할 때의 성령의 역사와 보혜사로서의 성령의 역사.오웬의 성령론의 목차에서 보듯이 그의 신학적 학문의 탐구와 지식은 다른 청교들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섬기는 삶을 위한 실제적인 지식이었다. 또한 그의 신학은 그리스도인의 깊은 영적 체험 위에 기초하여 정립된 것이다. 오웬이 그리스도인의 체험을 어떻게 이해하였으며, 또한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가 하는 것을 살펴보는 것은 기독교회사 가운데 탁월한 영성 위에 세워진 청교도 신학, 특별히 오웬의 신학의 진수를 여는 열쇠가 된다. 뿐만 아니라 현대의 신학자들과 목회자들에게 우리의 신학과 목회가 어느 토대 위에 세워져야 하고,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중요한 통찰력을 얻게 해 준다.본 논고에서 다루게 될 범위는 회심 이후의 그리스도인의 성화의 과정에 하나님의 일하심과 인간의 행위 사이의 관계이다. 특별히 성화에 있어서 하나님의 직접적인 사역으로서 은혜의 체험과 그리스도인의 의무의 위치와 관계에 초점을 맞추어보고자 한다.사실, 이 문제는 교회사상 많은 문제와 이단을 낳았던 주제로서 펠라기우스 이단이나 알미니우스 논쟁 등은 다 이 문제와 관련된 것이었다.3)3.중생(regeneration), 회심(conversion)과 성화(sanctification)의 관계우리의 전 본성은 본래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 그러나 죄가 들어옴으로 인해서 하나님의 형상은 손상을 입었고, 그리고 그것을 잃어버렸다. 이것은 우리 영혼의 어떠한 하나의 능력이(one power) 소멸된 것이 아니고, 한 부분(part)이 떨어져 나간 것이 아니며, 기능이 떨어져 나간 것이 아니라 우리의 전본성(whole nature)을 잃어버린 것이다. 따라서 성경은 우리의 본성이 전적으로 타락했다고 말한다.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사람은 먼저 중생(regeneration)하고 회심(conversion)을 한다. 중생은 성도를 성화로 인도한다.4)이와같이 거룩하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God)이시다. 하나님은 모든 거룩함의 영원한 샘이시고, 근원이 되신다. 그 누구도 거룩을 창조할 자는 없다. 다만 하나님에 의해서 거룩하게 되어질 수 있다.5)‘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살전5:23)6)에서 αujto;" de; oJ qeo;"(Even God himself)성화는 전적인 하나님의 사역이다. 성화는 하나님의 영의 직접적인 사역이다. 성화는 믿는 자의 영혼을 죄의 오염과 더러움에서 깨끗하게 하는 것이다. ‘깨끗하게 한다’는 말은 인간의 본성을 변화시킨다는 말이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형상을 사람들 속에 새롭게 갱신하는 것이다. 중생(regeneration)이란 성령에 의하여 우리의 본성이 전적으로 혁신(renovation)되는 것이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형상이 우리 속에 이루어지는 것이다.7)중생과 성화는 다른 것이다. 주된 차이는 역사하는 양식(manner)에서도 확연히 나타난다. 중생의 사역은 단번에(instantaneous) 창조적인 행위로 완성된다. 이것은 단독적으로 창조적인 행위로 되어지는 것이다(creating act). 그러나 성화는 진보적이며 발전적으로 일어난다.8)중생의 경험을 그 심령에 사모하지 않는 자는 생명이 없는(lifeless)자이며, 우리들 가운데 중생의 능력을 맛보지 못한 사역자는 무익한 사역을 하는 자인 것이다.본성이 타락된 상태로 살고 있거나 죽어가고 있는 사람들이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사실은 분명하며, 또 더 이상 확증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구원은 중생에 의해 이루어지며, 또한 마땅히 그래야만 한다. 성령 하나님은 이러한 중생의 일을 담당하시는 직접적인 원인이 되시는데, 택하신 백성을 성화시키시며, 중생은 성화의 근원과 시작이 된다. 중생에 있어 성령의 역사하는 방식은 무엇인가?9)중생이나 회심에 있어서 성령께서는 전파된 말씀이나 그 말씀으로부터 이끌어내어진 빛과 진리의 적용을 통해 그와 같은 도덕적인 권고를 사용하신다. 그러나 이것은 성령의 전체사역이 아니고, 중생된 모든 자들의 영혼 속에는 은혜로운 영적 생명의 원리를 주입하여 주는 성령의 실제적인 작업이 있다.10)중생과 관련하여 인간들의 마음에 역사하시는 성령의 이러한 내적인 효력은 인간들을 중생시키는 일과 관련하여 절대로 실수나 실패함이 없으며 항상 유효하게 작용한다. 이 주장은 인간의 자유의지와 관련하여 많은 반대를 받는다.11)그러나 중생에 있어서 성령의 사역은 우리의 본성, 곧 우리의 마음과 의지와 성정(性情)에 적합한 것이다.성령은 우리의 의지의 자유를 사용케 하시어,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회심과 중생을 효과적으로 이루어 내신다. 중생의 성격, 즉 중생이 내적이며 영적인 일이다. 성경은 믿음과 회개와 회심 자체가 하나님의 역사라고 말하고 있다.12)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몸과 마음을 단순히 수동적인 도구로 만들지 않으시며, 우리의 의지도 강제를 받을 수 없다. 성령의 권능은 내적으로 비밀스럽게 작용하여 우리의 마음속에서 하나님을 향해 돌아서려는 의지를 창조해내신다.13)하나님은 우리 안에 믿음과 회개를 주시고 움직이신다.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믿음과 회개를 이루는 방식 또한 다음과 같은 사실을 분명히 해 준다. 하나님은 절대로 틀림이 없는 효과적인 능력을 통해 그 일을 이루시며 이것은 인간의 의지에 의해 결코 거부될 수 없다.14)하나님은 회심케 하시는 일을 유효하게 하시기 위해서 모든 장애물들과 방해물들을 제거해 주신다고 약속하신다(신30:6; 골2:11; 신29:4; 겔36:26, 27; 렘24:7; 사44:3,4; 렘31:33).하나님을 위해 사는 일이나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일에 있어 돌 같은 ‘굳은 마음’(겔36:26,27) 곧 하나님의 은총이 대한 완고하고도 고집스러운 반대와 반감을 가졌던 우리의 마음, 즉 우리의 본성이 가지고 있는 무기력과 적대감을 하나님께서는 “제해버리겠다”고 말씀하신다. 우리가 마음에 할례를 받음으로써 하나님께로의 회심을 방해하는 여러 가지 편견들과 함께, 죄 가운데 포함되어 있는 무지와 완고함과 강퍅함의 모든 요소들이 전부 제거된다. 하나님은 그것들을 제거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거나 제거하도록 설득하거나 돕겠다고 하시지 않는다. 절대적이고도 적극적으로 그 일을 손수 하시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제거(除去)’와 함께 하나님은 새로운 마음과 새로운 영을 그들 속에 두신다. 이러한 새로운 마음속에 하나님께 대한 거룩한 복종의 원리가 들어있고, 이 거룩한 복종의 원리가 우리 속에서 생성되는 것은 우리의 회심을 통해서이다. 그래서 율법을 마음속에 기록하시는데 이 일은 하나님께서는 우리 속에 실제로 생성된 복종의 원리를 통해서 수행하시는 것이다.15)중생은 하나의 새롭고도 영적이며 초자연적인 역동적 은총의 원리가 성령의 권능을 통해 각 사람의 영혼 속에 주입됨으로써 사람들의 영적이고, 초자연적이며, 역동적인 믿음과 순종의 행위를 할 수 있게 한다. 성령을 통해 새로이 나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위해 살 수 있게 하는 하나의 새로운 영적 순종의 원리이다.16)중생은 물론 뒤이어 오는 거룩한 성화의 작업에 있어서도 우리가 가지고 행사하는 모든 능력은 중생할 때 성령께서 주입해 주시는 새로운 영적 생활의 원리로부터 생겨나오는 것이다.17)성화는 하나님의 영에 의해 우리 속에서 일어나는 일이다.18)성령께서는 모든 믿는 자들을 직접, 그리고 독특한 방법으로 거룩하게 하신다. 성령님은 모든 사람들을 성화시키는 분이시고, 성화의 창시자이시다.19)성화에는 중생에서와는 달리, 정도(degrees)의 차이가 있다. 즉 이 사람이 저 사람보다 더 거룩하게 될 수 있고 저 사람이 이 사람보다 성화된 성품이 뒤떨어질 수 있는 것이다. 성화는 이처럼 차등이 있는 것이다.20)성화는 우리들의 전 본성이 성령에 의하여 직접적으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사역이다. 성화는 우리를 그리스도와 계속해서 평화를 유지하게 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변화되며, 완전하게 하나님과 평화(peace)를 유지 하게 한다. 그리하여 티 없이 보호받으며 살고, 끝까지 하나님과 은혜스러운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21)Ⅵ.하나님의 은혜와 신자의 의무와의 관계성도는 하나님을 향해 사는 사람이고 의 앞에서 사는 사람이고 성화 앞에서 사는 사람이다. 성화는 은혜의 습관을 수반하는 능력(power)이 있고, 은혜의 습관을 행하려는 경향과 성질도 가지고 있다. 본질상 우리는 영적인 일을 수행할 ‘힘이 없으나’ 중생(regeneration)의 은혜와 성화(sanctification)의 은혜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향해 살아드릴 수 있는 힘과 능력을 우리는 부여받는다.1)‘성화는 하나님의 영(the Spirit of God)에 의하여 우리 속에 일어나는 일’이다. 성화에 대한 우리의 의무(duty)에 대해서는 하나님께서 명령을 하셨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서는 약속을 주셨다. 명령이란 약속을 위한 어떤 여지가 없는 것이고, 약속이란 명령의 권위가 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만일 거룩하게 되는 일이 우리의 의무라면 여기에 은혜라는 것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만일 거룩하게 되는 일이 은혜의 결과라면 거기에는 의무라는 것이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이와 같은 논쟁은 ‘육체적 지혜’의 산물이다. ‘위로부터 온 지혜’는 우리에게 다른 것을 가르친다. 실로 성화에 있어서 은혜와 행함은 상반되는 것이다. 즉, 모순이란 말이다. “만일 성화가 행함으로 된 것이라면 은혜는 없는 것이고, 만일 성화가 은혜로 되었다면 행함이 없는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의 의무와 하나님의 은혜는 성화의 문제에 있어서 상반되거나 모순되는 점이 없다. 성화를 위해서 우리의 의무와 하나님의 은혜는 상호 필요한 조건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는 '우리의 의무'를 행할 수 없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주셨다 할지라도 우리가 우리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이 주신 은혜의 목적이 이루어지지 못하는 것이다. 만일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기 위해서 의무를 이행하라고 명령하신 사실을 거부하는 자는 곧 하나님의 약속을 거부하는 자요, 결국 성경 전체를 거부하는 자이다.2)어떤 이들은 성령의 약속된 사역을 이유로 해서 스스로 나태함과 소홀함에 빠지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은 성령의 약속에 무관심한 자들이다.3)하나님의 은혜와 우리의 필수적인 의무는 일치할 뿐만 아니라 우리가 한 손을 가지고는 온전히 일을 할 수 없는 것과 같이 성령의 은혜로우신 역사에 우리의 의무(duty)가 종속되어야만 더 큰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단지 몇 사람을 제외하고는 탁월한 은혜를 받은 사람이 드물고 우리들 자신도 그렇다. 하나님은 부지런하라고 우리에게 명령하셨다. 순종이 그토록 중요한데 사람들은 태만하고 나태에 잠겨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들을 도와주려고 하시다가도 저들의 행동을 보고 오히려 미워하시게 된다.4)만일 우리 안에 모든 은혜들, 즉 모든 은혜의 정도들과 결과들이 성령과 그의 뜻에 기인한다면 우리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우리 자신의 노력과 성실한 것은 소용없다. 더 거룩해져야 함과 순종의 의무들을 수행하기 위해 수고할 필요가 없다. 그러면 우리 자신이 노력할 것을 명백히 의도한 성경의 모든 명령과 경고와 약속과 권고들은 어떤 목적으로 주어진 것인가? 오웬은 이렇게 스스로 예상하는 반론을 제기하고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 하나님의 영에 의해 주어지지 않은 영적인 선함이 우리들 안에 어느 정도라도 있다고 하는 것은 복음의 은혜를 무너뜨리는 행동이다.성령께서는 사람이 일하는 곳에서 역사하시고 사람이 아무것도 하시지 않는 곳에서는 성령께서도 아무것도 하시지 않으신다. 은혜를 주시는 정도(degrees)는 모든 신자에게 각기 독특하게 나타난다. 여기서 신자들은 그들의 의무들을 실행할 수 있는 능력과 권능을 공급받는다. 은혜와 거룩함의 향상은 대부분 신자의 의무수행에 달려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우리 자신의 의무를 나태하고 소홀하게 해도 된다는 것을 성령의 유효한 사역으로 입증하려는 것은 야만적인 무지(無知)이다. 하나님께서는 은혜의 한 방편으로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겠다고 약속하셨다. 이와 동시에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의무의 한 방편으로서 요구하시는 것이 있다. 성령께서는 우리 안에서(in) 역사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성령께서는 우리를 통하여(by) 역사하시기 때문이다. 우리들의 의무는 하나님의 명령들을 열심히 순종하는 것이다.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명령들을 순종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또한 성령의 사역인 것이다.5)그러면 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런 의무수행을 위해 힘쓰는 모습을 보여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삶이 변화되지 아니하는가? 그리고 그들의 거룩함이 향상되지 아니한다면 그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오웬의 대답은 분명하다. 그는 예수님의 중보기도 가운데 “나의 영광을 보게 하시기를”(요17:24) 주석하면서 :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을 가졌다고 말하는 자들 중에도 그분의 영광을 이해하고 그분의 형상(likeness)으로 변화하는 자는 소수뿐이다. 단지 그리스도의 행동을 본받음으로써는 아무도 그분과 같이 되지 못할 것이다. 오직 그리스도의 영광을 체험하는 것만이 믿는 자를 그리스도와 같이 만들 힘을 가지고 있다.6)한 그리스도인이 ‘얼마나 깊이 있는 영적 생활의 체험을 경험하는가?’는 그의 안에 거하시는 그리스도, 그분을 얼마나 생각하고, 얼마나 기뻐하느냐에 비례한다(갈2:20). 우리가 참신자라 한다면 하나님의 은혜는 영적으로 다시 세워진 우리의 머리와 가슴 속에서 역사하사 우리가 그 명령을 이행하도록 도우실 것이다.7)그리고 그들은 변화산상에서 제자들처럼 압도되고 만다.이처럼 성화의 과정이 우리 인간의 노력 여하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연합을 통한 은혜의 체험에 결정적으로 관련됨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성경의 단순한 지식으로는 삶이 변화되거나 거룩함의 향상이 따르지 않는다 :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의 영광에 대해 성경에서 얻는 단편적인 지식과 같은 단순한 개념으로 만족한다면 그런 개념에는 삶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전혀 없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8)이제 성화에 있어서 은혜의 체험과 우리의 의무를 나누어 살펴보고자 한다.1.은혜의 체험성도의 성화에 있어서 체험이 차지하는 비중은 결코 적다고 할 수 없다. 오웬은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신령한 욕구를 갖고 있으며,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는가?’라고 질문한다.9)우리와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너무나 실제적인 것이어서, 하나님 보시기에는 교회를 구속(救贖)하시려고 행하시고 고난 받으셨던 일이 마치 우리가 직접 행하고 고난 받았던 것처럼 여겨진다.10)사도바울은 교회를 자신에게 주신 것과 양자(兩者) 사이에 연합이 이루어진 것을 큰 비밀로 묘사한다(엡5:23). 그러나 그것이 비밀이라고 해도 우리는 각 신자가 “나의 사랑하는 자는 내게 속하였고 나는 그에게 속하였구나”(아2:16)라고 말 할 수 있는 이 관계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다.11)오웬은 은혜 체험에 관하여 이렇게 설명한다 : 성령께서는 신자들에게 믿음의 진리와 실제, 그리고 탁월함을 경험하게 하여 그들을 거룩하게 하신다. 경험(experience)이란 것은 은혜로운 양식(food)이다. 그러므로 경험은 성도를 성장시키고 강화시킨다. 믿음으로 얻어진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는 믿음의 맛(taste)이고, 이러한 믿음의 맛은 성도를 무게 있게 하고 키를 크게 한다. 이렇게 하여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약한 교회를 기르신다. 그리고 하나님은 교회가 그의 능력과 신실하심을 경험하도록 하신다. 믿음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도 그가 믿는 것들의 실제적이고 능력 있는 특별한 경험들에 의해서 그의 믿음이 성장하고 강화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성령께서는 성도들에게 영적이며 지각할 수 있는 실제적이며 능력 있는 경험을 주신다.12)이 체험은 분명하게 그리스도께서 성령을 보내주시는 사역과 더불어 교회에 주신 성령의 역사와 관련이 있다. 성령은 메마르고 열매를 맺지 못하고 타서 갈라진 땅과 같은 인간의 심령에 부어지심으로 사람의 심령이 샘이 되게 하시며 거룩하고 의로운 열매들을 맺게 하신다는 것이다(히6:7). 이와 같이 성령에 의해서 그리스도께서도 “벤 풀에 내리는 비같이 땅을 적시는 소낙비같이 임하신다”(시72:6). 선하신 주님은 우리들에게 이러한 물들과 새롭게 하시는 소낙비를 항상 주신다.13)물론 초대교회의 기초를 놓는 데 필요했던 성령의 특별한 권능의 발휘가 그쳤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분의 전체적인 은혜의 역사는 오늘도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들 가운데서 오순절 때와 조금도 다름없이 수행되고 있으며, 교회를 가르치는데 필요한 성령의 은사 역시 계속해서 부여되고 있는 것이다(엡4:10이하). 그러므로 성령의 역사를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오늘날의 모든 신자들이 해야 할 중요한 일 중 하나인 것이다.14)오웬은 ‘때때로 참된 신자들은 이생에서도 그리스도를 아는 데서 발견되는 기쁨을 조금은 경험한다.’고 말한다. 일단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게 되면, 믿는 자의 마음은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게 되기까지는 항상 들떠 있을 것이다. 이생에서 그리스도의 영광을 믿음으로 볼 수 있다.15)성경과 성령이 그리스도 안에서 빛나는, 창조되지 아니한 하나님의 영광을 느끼게 하여 그것은 그들의 영혼을 형언할 수 없는 기쁨과 평안으로 가득 채울 정도이다. 이런 경험은 흔치 않은데 그것은 우리의 나태와 신령한 빛의 결핍 때문이다. 우리가 만일 그리스도의 영광을 묵상하는 일에 열심을 내면 영광의 서광은 우리 영혼에 보다 자주 비춰올 것이다.16)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서도 신령한 참 축복에 관심도 없이 지극히 분별없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들은 주 그리스도께서 보혜사 성령으로 하여금 우리에게 가져다주게 하신 거룩한 영적 상쾌함을 알지 못한다. 그런 축복에는 영적 평화, 신선한 위로, 말로 다 할 수 없는 기쁨과 복된 확신이 포함된다. 이런 체험이 없다면 우리 기독교는 무정하고 생명이 없고 아무 쓸모가 없는 것이다. 지금 이 땅에서 이 영적 축복을 누린다는 약속을 믿지 못한다면 어떻게 하늘의 영원한 영광에 관한 약속을 믿는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이런 영적 신선함을 주는 수단들이 있음으로 해서 그분과 함께 즐기게 된다(계3:20 참조). ‘그런 축복을 어떻게 받을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그 대답은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영광을 바라봄으로써’ 이다.(벧전1:9,10 참조)17)그런데 안타깝게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자신들 안에서 복음의 능력과 은혜를 체험하려는 노력을 포기한다. 그리하여 그들은 알 수도 있었을 그리스도의 영광을 결코 발견하지 못한다.18)성도의 영적 체험에는 늘 은혜로우신 성령께서 찾아오시는 체험만 있는 것이 아니다. 어떤 때에는 성도들이 하나님이 떠나가시는 체험을 하게 된다. 오웬은 이 체험도 놓치지 않고 설명한다 : 우리의 마음이 영적 본분을 다함에 있어 점점 냉냉해지고 생기가 없게 되면, 주 그리스도께서 잠시 우리를 떠나신 것이 틀림없다.19)구약성경에 나타난 성령의 사역을 살펴보면, 성령은 어떤 사람들로부터 떠나신다(삼상16;14). 성령의 떠나심은 전체적(total)이거나 부분적(partial)이다. 어떤 사람들은 성령의 은사를 많이 받았고, 그 은사들이 계발되어졌으며 또한 확신 가운데 복음을 소유해왔고, 많은 직무들을 행해왔다. 그러나 그가 시험에 빠져들게 되고 자신의 정욕에 정복당하게 되고 자신이 시작했던 선한 일들을 포기하고 어리석음으로 다시 돌아간다면, 그와 같은 사람들로부터 성령은 완전히 떠나신다. 성령은 그들을 포기하시며 그들 자신의 마음의 정욕대로 내버려두신다. 그래서 그들의 모든 은사들은 고갈되며 시들게 된다. 그들의 빛은 사라지며 그들은 미래에 대한 꿈(vision)대신에 어두움을 가지게 된다. 이와 같은 경우는 참으로 비참할 때 일어난다. 만일 그들이 은혜의 성령에게 분노를 더하여 성령의 전체적인 일에 경멸을 더한다면 그들의 경우는 일반적으로 회복할 수 없는 것이다(히6:4,6; 10:26).20)성도로부터도 성령께서는 떠나실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부분적이며, 일시적이다. 왜냐하면 은혜의 언약 안에서 성령이 성도들에게 주어졌기 때문에 성령께서 성도들로부터 완전히 그리고 전적으로 결코 떠나시지 않으실 것이라는 그 약속들이 성경에 표시되어 있기 때문이다(사59:21; 렘31:33; 32:39,40; 겔11:19).성령께서 하나님의 은혜와 조명, 위로의 크기와 이와 같은 것을 느낄 수 있는 효과면에 있어서 얼마동안은 이러한 사역을 중지하실 수도 있다. 성령은 얼마 동안은 그의 백성을 돌보지 않으시며 내버려 두실 수도 있다. 성도는 영적 고갈과 심한 연약함에 내버려질 수 있다. 이때부터 성도들은 자신들이 철저히 내버려지고 기억되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사40:27; 54:7). 그러나 이와 같이 성도로부터 성령은 절대적으로나 완전히 결단코 떠나지 않으신다.21)(자료출처http://kidok.net/bbs/view.php?id=sinhak&page=1&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1191&PHPSESSID=656b86335cabe160aad3137f21869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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