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빈의 유산, 목회와 실천"
"칼빈의 유산, 목회와 실천"
KIMCHI, 정성구 박사 초청 목회자 신학세미나
기사입력 :2009-05-12 08:19
자료출처http://www.apologia.co.kr/article.htm?_method=view&module_srl=54&no=11490
한국교회갱신연구원(한국기독교문화진흥원, 원장 이종윤 목사, KIMCHI)이 지난 3월 30일(월)부터 시작한 ‘한국교회의 갱신과 성장을 위한 제35학기 목회자 신학세미나’가 일곱 번째 시간을 맞았다. 일곱 번째 시간은 정성구 교수(전 총신대 및 대신대 총장, 현 칼빈대 석좌 교수)를 초청, '칼빈의 유산, 목회와 실천'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들었다.
목사 칼빈
정성구 박사는 “종교 개혁자 요한 칼빈은 개혁 교회의 교리적 기초를 만들었다”고 말하고, “그러나 그의 사상과 삶은 모든 프로테스탄트 교회의 신학 골격을 세웠을 뿐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등 삶의 전 영역에 미치지 않은 곳이 없다”며 “특히 한 목회자로의 그의 설교와 실천적인 삶은 오늘 한국교회의 모델과 귀감이 된다”고 전했다.
정 박사는 “칼빈은 언제 정식으로 목사가 됐는지 기록에 없지만, 그는 독학으로 그 자신의 위대한 개혁 신학의 기초를 놓았으니 오늘의 잣대로 어느 신학교 출신인가라는 말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고, “오늘 현대인도 그렇고 역사가들의 평도 그러하지만 칼빈에게는 목사로서의 사랑과 자애가 넘치는 따뜻한 면모는 찾을 수 없고 엄숙하고 차디차고 냉혹하리만큼 반대편을 짓밟는 독재자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며 “그러나 실상 칼빈은 전형적인 목사요, 설교자로 심방을 귀히 여기고 사랑과 자애가 넘치는 목사였다”고 전했다.
사랑과 화해의 목사, 칼빈
정성구 박사는 “칼빈은 가슴이 따뜻한 목회자였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최우선으로 삼되 한 없이 동정심이 많고 사랑과 자애가 넘치는 목사였다”고 설명하고, “칼빈은 이단과 자유주의자들에 대해서는 단호하고 냉철한 토론의 달인이었으나, 교회의 어려운 문제를 수습하는 일에는 겸양과 양보와 화해의 사람이었다”고 전했다. 그는 “칼빈은 가장 욕을 많이 먹은 인물이지만 그것은 일생 동안 적들과 전투에서 비롯됐을 것”이라며 “그러나 실상 칼빈은 사랑과 화해의 목사였다”고 전했다.
또 정성구 박사는 “칼빈은 비평가들의 일방적인 생각과는 달리 사랑과 화해의 목회자였다”고 말하고, “진실한 목회자요 설교자일 뿐만 아니라 그는 심방과 상담을 잘했다”며 칼빈은 헌신과 겸손한 봉사의 사람이라고 증거했다.
정 박사는 “칼빈의 편지를 통해서 나타난 것은 목사로서 얼마나 섬세하고 아름다운 상담자였나를 깨닫게 한다”고 말하고, “오늘날 한국교회 목사들은 늘 설교와 상담과 심방을 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그 당시는 심방이니 상담이란 말조차 없던 시대에 칼빈은 마틴 부처(Martin Butzer)의 권면으로 심방의 귀중성을 알고 실행했다”고 전했다. 실지로 칼빈은 자기 교회 노인들의 기호품까지 일일히 꿰고 있었고, 이 면에 대해 정 박사는 “칼빈의 목사로서의 섬세함을 볼 수 있다”고 했다.
정 박사는 “비평가들은 칼빈의 편지와 설교를 읽어 보지도 않고, 도리어 오직 칼빈을 극렬히 비방하고 조소하고 악랄하게 저주하던 자들의 문헌을 기초로 해서 칼빈을 평하고 있다”며 “그러나 실상은 말씀의 종으로서 목사의 사명을 감당했던 신앙과 겸손의 종이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칼빈은 일생 동안 자기를 드러내거나 자기변호를 하지 않았다”고 말했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영광이 침해 당할 때는 누구든지 용서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정성구 박사는 “칼빈이 참 목자로서 살려고 애쓴 것은 말씀과 성령으로 살려고 노력한 때문이다”고 말하고, “칼빈은 목사의 자격을 논하면서 목사는 성령의 은사가 있는 사람이어야 하고 그리고 날마다 배우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사람, 그리고 말씀을 끊임없이 연구하는 사람, 경건의 훈련, 불굴의 용기를 들었다”고 설명했다. 또 특히 칼빈은 목사의 덕목으로 ‘경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고 덧붙였다.
정 박사는 “칼빈은 목회를 ‘영적 전쟁’으로 생각했다”고 말하고, “목사가 부족하고 연약해도 주님께서 감당할 수 있는 은혜와 복을 주신다고 칼빈은 설명했다”고 전했다.
설교자 칼빈
정성구 박사는 “교회사에서 가장 걸출한 강해 설교자는 요한 칼빈”이라며, “칼빈의 설교가 오늘 우리 한국식의 은혜 충만, 성령 충만의 부흥 설교는 아니었지만, 성경의 본뜻을 정확히 주해하고 그것을 적용시키는 설교였다”고 전했다. 또 “루터의 설교가 남성적이고 부흥적이라면 칼빈의 설교는 해석적이고 의지적이었다”며 “이는 당시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도전으로, 당시 성도들은 천년 만에 성경적인 설교를 듣게 된 셈”이라고 했다.
그래서 정 박사는 “칼빈의 종교 개혁은 설교를 통해서였다”고 말하고, “그의 설교는 사람들의 귀를 즐겁게 하거나 사람들의 욕구 충족을 위한 것이 아니라 늘 하나님 중심의 설교, 하나님의 영광과 주권을 최우선으로 하는 성경적 설교였다”고 설명했다. 그는 “칼빈이 교회의 어려움과 그리고 주변의 세력들을 의식하고 그들과 영합하고 대중들의 인기에 영합하는 설교를 했다면, 오늘의 개혁 교회는 어려웠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정성구 박사는 “칼빈은 어거스틴과 크리소스톰 이후 천년 만에 나타난 가장 유능하고, 가장 건전하고, 가장 분명한 강해 설교자였다”고 전했다. 그는 “어떤 의미에서 종교개혁은 곧 강해설교의 부활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칼빈은 뛰어난 암기력으로 성경 연구와 신학 연구를 한 뒤 성경만 가지고 강단에 올라가서도 강해 설교를 체계적으로 논리적으로 할 수 있는 천재성을 지녔던 것으로 알려진다. 실지로 칼빈은 1년에 286회의 설교에 186회의 신학강좌를 담당했다. 정 박사는 “칼빈은 조직적이고 냉철한 의지에다 천재적인 암기력, 거기다 하나님의 말씀에 철저하고자 한 그의 열정을 그를 강해 설교자로 세웠다”고 설명했다.
정 박사는 “칼빈이 강해설교의 왕이라고 하는 말은 루터는 성경번역의 왕이라고 지칭한다면 그는 성경주석의 왕이요, 또한 강해설교의 왕이라고 해도 좋다”고 말하고, “참된 복음의 증거가 없어진지 천 년 만에 갸냘프고 연약한 칼빈이 제네바 교회에서 진지하게 성경을 강해하면서 설교하는 것이 그 자체가 바로 개혁이다”고 했다.
또 정 박사는 “칼빈에게서는 물론 성경 주해와 설교가 항상 병행되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하고, “그것이 칼빈의 강해설교의 특징인데, 그는 성경을 해석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항상 실제적으로 적용해 신앙에 유익이 되고 결단하도록 했다”고 전했다.
이상적인 목사상을 세우고 목회의 원리를 제시한 칼빈
정성구 박사는 “칼빈이 참 목자상을 세우려고 평생 노력한 것은 당시 로마 가톨릭 조직이 얼마나 비성경적이고 잘못됐는지를 지적 하는데서 출발했다”고 말하고, “칼빈의 참된 교회관은 엡4:11~13에 있는 그대로였다”고 전했다. 또 그는 “칼빈은 목사의 의무와 사명이 철저히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고 섬김의 직분을 강조했다”고 말하고, “칼빈은 생각하기를 목회자의 결함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이 신실함과 능력과 효용이 파괴되지 않는다고 봤다”고 전했다.
뿐만 아니라 정 박사는 “말씀의 사역자들의 가장 큰 임무는 곤고한 심령을 위로하고 참된 안식과 마음의 평온이 무엇인지를 지적하는 것”이라며 “가르치는 직무는 오직 하나님만 전파하도록 할 목적으로 목사들에게 위임됐다고 했다”며 칼빈의 목사상을 설명했다. 또 칼빈은 목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소명(召命)인데, 목사가 영웅주의나 허영으로 한다면 그리스도의 못된 교회에 장애물이 될 수 밖에 없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정 박사는 “특히 칼빈은 목사를 부패하게 하고 타락하는 것은 바로 ‘야망’이라고 지적했다”고 전했다.
정성구 박사는 “칼빈이 말한 이상적인 목사상으로는 개혁주의 목사는 하나님의 말씀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과 기도의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 그리고 다른 사역자들과 화합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고 설명하며 “이는 초대교회적인 목사상이요 이것이 종교 개혁이었다”고 전했다.
또 정 박사는 “칼반의 일생 동안 가장 힘써 일한 것 중에 하나는 목회였다”고 설명하고, “신학자와 성경 주석가, 종교 개혁가, 교회 조직가로서의 칼빈의 모든 사상은 실제로 그의 목회에 바탕을 둔 것”이라며 “칼빈에게 있어서 목회(牧會)란 하나님께서 맡기신 영혼들을 돌보는 것”이라고 전했다. 정 박사는 “칼빈의 목회 원리는 말씀의 순수한 전파였으며, 성례를 강조하고, 권징과 훈련이 있었다”고 말했다. 또 “칼빈은 교육에 힘썼으며, 예배가 교회의 중심이 되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김규진 기자 kjkim@apologia.co.kr
RPTministries 정태홍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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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CHI, 정성구 박사 초청 목회자 신학세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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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출처http://www.apologia.co.kr/article.htm?_method=view&module_srl=54&no=11490
한국교회갱신연구원(한국기독교문화진흥원, 원장 이종윤 목사, KIMCHI)이 지난 3월 30일(월)부터 시작한 ‘한국교회의 갱신과 성장을 위한 제35학기 목회자 신학세미나’가 일곱 번째 시간을 맞았다. 일곱 번째 시간은 정성구 교수(전 총신대 및 대신대 총장, 현 칼빈대 석좌 교수)를 초청, '칼빈의 유산, 목회와 실천'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들었다.
목사 칼빈
정성구 박사는 “종교 개혁자 요한 칼빈은 개혁 교회의 교리적 기초를 만들었다”고 말하고, “그러나 그의 사상과 삶은 모든 프로테스탄트 교회의 신학 골격을 세웠을 뿐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등 삶의 전 영역에 미치지 않은 곳이 없다”며 “특히 한 목회자로의 그의 설교와 실천적인 삶은 오늘 한국교회의 모델과 귀감이 된다”고 전했다.
정 박사는 “칼빈은 언제 정식으로 목사가 됐는지 기록에 없지만, 그는 독학으로 그 자신의 위대한 개혁 신학의 기초를 놓았으니 오늘의 잣대로 어느 신학교 출신인가라는 말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고, “오늘 현대인도 그렇고 역사가들의 평도 그러하지만 칼빈에게는 목사로서의 사랑과 자애가 넘치는 따뜻한 면모는 찾을 수 없고 엄숙하고 차디차고 냉혹하리만큼 반대편을 짓밟는 독재자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며 “그러나 실상 칼빈은 전형적인 목사요, 설교자로 심방을 귀히 여기고 사랑과 자애가 넘치는 목사였다”고 전했다.
사랑과 화해의 목사, 칼빈
정성구 박사는 “칼빈은 가슴이 따뜻한 목회자였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최우선으로 삼되 한 없이 동정심이 많고 사랑과 자애가 넘치는 목사였다”고 설명하고, “칼빈은 이단과 자유주의자들에 대해서는 단호하고 냉철한 토론의 달인이었으나, 교회의 어려운 문제를 수습하는 일에는 겸양과 양보와 화해의 사람이었다”고 전했다. 그는 “칼빈은 가장 욕을 많이 먹은 인물이지만 그것은 일생 동안 적들과 전투에서 비롯됐을 것”이라며 “그러나 실상 칼빈은 사랑과 화해의 목사였다”고 전했다.
또 정성구 박사는 “칼빈은 비평가들의 일방적인 생각과는 달리 사랑과 화해의 목회자였다”고 말하고, “진실한 목회자요 설교자일 뿐만 아니라 그는 심방과 상담을 잘했다”며 칼빈은 헌신과 겸손한 봉사의 사람이라고 증거했다.
정 박사는 “칼빈의 편지를 통해서 나타난 것은 목사로서 얼마나 섬세하고 아름다운 상담자였나를 깨닫게 한다”고 말하고, “오늘날 한국교회 목사들은 늘 설교와 상담과 심방을 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그 당시는 심방이니 상담이란 말조차 없던 시대에 칼빈은 마틴 부처(Martin Butzer)의 권면으로 심방의 귀중성을 알고 실행했다”고 전했다. 실지로 칼빈은 자기 교회 노인들의 기호품까지 일일히 꿰고 있었고, 이 면에 대해 정 박사는 “칼빈의 목사로서의 섬세함을 볼 수 있다”고 했다.
정 박사는 “비평가들은 칼빈의 편지와 설교를 읽어 보지도 않고, 도리어 오직 칼빈을 극렬히 비방하고 조소하고 악랄하게 저주하던 자들의 문헌을 기초로 해서 칼빈을 평하고 있다”며 “그러나 실상은 말씀의 종으로서 목사의 사명을 감당했던 신앙과 겸손의 종이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칼빈은 일생 동안 자기를 드러내거나 자기변호를 하지 않았다”고 말했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영광이 침해 당할 때는 누구든지 용서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정성구 박사는 “칼빈이 참 목자로서 살려고 애쓴 것은 말씀과 성령으로 살려고 노력한 때문이다”고 말하고, “칼빈은 목사의 자격을 논하면서 목사는 성령의 은사가 있는 사람이어야 하고 그리고 날마다 배우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사람, 그리고 말씀을 끊임없이 연구하는 사람, 경건의 훈련, 불굴의 용기를 들었다”고 설명했다. 또 특히 칼빈은 목사의 덕목으로 ‘경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고 덧붙였다.
정 박사는 “칼빈은 목회를 ‘영적 전쟁’으로 생각했다”고 말하고, “목사가 부족하고 연약해도 주님께서 감당할 수 있는 은혜와 복을 주신다고 칼빈은 설명했다”고 전했다.
설교자 칼빈
정성구 박사는 “교회사에서 가장 걸출한 강해 설교자는 요한 칼빈”이라며, “칼빈의 설교가 오늘 우리 한국식의 은혜 충만, 성령 충만의 부흥 설교는 아니었지만, 성경의 본뜻을 정확히 주해하고 그것을 적용시키는 설교였다”고 전했다. 또 “루터의 설교가 남성적이고 부흥적이라면 칼빈의 설교는 해석적이고 의지적이었다”며 “이는 당시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도전으로, 당시 성도들은 천년 만에 성경적인 설교를 듣게 된 셈”이라고 했다.
그래서 정 박사는 “칼빈의 종교 개혁은 설교를 통해서였다”고 말하고, “그의 설교는 사람들의 귀를 즐겁게 하거나 사람들의 욕구 충족을 위한 것이 아니라 늘 하나님 중심의 설교, 하나님의 영광과 주권을 최우선으로 하는 성경적 설교였다”고 설명했다. 그는 “칼빈이 교회의 어려움과 그리고 주변의 세력들을 의식하고 그들과 영합하고 대중들의 인기에 영합하는 설교를 했다면, 오늘의 개혁 교회는 어려웠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정성구 박사는 “칼빈은 어거스틴과 크리소스톰 이후 천년 만에 나타난 가장 유능하고, 가장 건전하고, 가장 분명한 강해 설교자였다”고 전했다. 그는 “어떤 의미에서 종교개혁은 곧 강해설교의 부활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칼빈은 뛰어난 암기력으로 성경 연구와 신학 연구를 한 뒤 성경만 가지고 강단에 올라가서도 강해 설교를 체계적으로 논리적으로 할 수 있는 천재성을 지녔던 것으로 알려진다. 실지로 칼빈은 1년에 286회의 설교에 186회의 신학강좌를 담당했다. 정 박사는 “칼빈은 조직적이고 냉철한 의지에다 천재적인 암기력, 거기다 하나님의 말씀에 철저하고자 한 그의 열정을 그를 강해 설교자로 세웠다”고 설명했다.
정 박사는 “칼빈이 강해설교의 왕이라고 하는 말은 루터는 성경번역의 왕이라고 지칭한다면 그는 성경주석의 왕이요, 또한 강해설교의 왕이라고 해도 좋다”고 말하고, “참된 복음의 증거가 없어진지 천 년 만에 갸냘프고 연약한 칼빈이 제네바 교회에서 진지하게 성경을 강해하면서 설교하는 것이 그 자체가 바로 개혁이다”고 했다.
또 정 박사는 “칼빈에게서는 물론 성경 주해와 설교가 항상 병행되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하고, “그것이 칼빈의 강해설교의 특징인데, 그는 성경을 해석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항상 실제적으로 적용해 신앙에 유익이 되고 결단하도록 했다”고 전했다.
이상적인 목사상을 세우고 목회의 원리를 제시한 칼빈
정성구 박사는 “칼빈이 참 목자상을 세우려고 평생 노력한 것은 당시 로마 가톨릭 조직이 얼마나 비성경적이고 잘못됐는지를 지적 하는데서 출발했다”고 말하고, “칼빈의 참된 교회관은 엡4:11~13에 있는 그대로였다”고 전했다. 또 그는 “칼빈은 목사의 의무와 사명이 철저히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고 섬김의 직분을 강조했다”고 말하고, “칼빈은 생각하기를 목회자의 결함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이 신실함과 능력과 효용이 파괴되지 않는다고 봤다”고 전했다.
뿐만 아니라 정 박사는 “말씀의 사역자들의 가장 큰 임무는 곤고한 심령을 위로하고 참된 안식과 마음의 평온이 무엇인지를 지적하는 것”이라며 “가르치는 직무는 오직 하나님만 전파하도록 할 목적으로 목사들에게 위임됐다고 했다”며 칼빈의 목사상을 설명했다. 또 칼빈은 목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소명(召命)인데, 목사가 영웅주의나 허영으로 한다면 그리스도의 못된 교회에 장애물이 될 수 밖에 없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정 박사는 “특히 칼빈은 목사를 부패하게 하고 타락하는 것은 바로 ‘야망’이라고 지적했다”고 전했다.
정성구 박사는 “칼빈이 말한 이상적인 목사상으로는 개혁주의 목사는 하나님의 말씀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과 기도의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 그리고 다른 사역자들과 화합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고 설명하며 “이는 초대교회적인 목사상이요 이것이 종교 개혁이었다”고 전했다.
또 정 박사는 “칼반의 일생 동안 가장 힘써 일한 것 중에 하나는 목회였다”고 설명하고, “신학자와 성경 주석가, 종교 개혁가, 교회 조직가로서의 칼빈의 모든 사상은 실제로 그의 목회에 바탕을 둔 것”이라며 “칼빈에게 있어서 목회(牧會)란 하나님께서 맡기신 영혼들을 돌보는 것”이라고 전했다. 정 박사는 “칼빈의 목회 원리는 말씀의 순수한 전파였으며, 성례를 강조하고, 권징과 훈련이 있었다”고 말했다. 또 “칼빈은 교육에 힘썼으며, 예배가 교회의 중심이 되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김규진 기자 kjkim@apolog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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