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메이첸, 바울 종교의 기원, 서론|Gresham Machen
[독서] 메이첸, 바울 종교의 기원, 서론|Gresham Machen
http://cafe.daum.net/homoousion/56TM/28
Machen(서론, 11-54) 바울 종교의 기원, 김남식 역, 성운출판사
본 서는 기독교의 기원 문제를 논하려는 것이다. 기독교의 창설자와 기독교 운동의 창설자에 관한 편지 위에 세워진 양식에 대한 것이 서로 다르다는 것이다.
[바울서신의 순정성과 사도행전의 역사성에 대한 회의]가 있지만, 그래도 일부의 가치에 대해서는 역사가 사이에 합의가 있다는 것이다(참고, 신사훈, 바울의 구속론).
바울의 증언은 기독교의 기원 문제에 중요한 관계가 있다.
바울은 예수와 동시대의 사람이었다. 즉 바울은 회심 전에 예수의 생애와 죽음에 관해서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한 지식이 바울을 변화시키지 못했고, 체험에서 시작된다. 이러한 점에서 “바울 종교의 기원을 설명하라, 그러면 당신은 기독교의 기원의 문제를 해결한 것이 된다.” 즉 바울 서신이 역사적 사실임이 인정된다면 바울의 역사성이 인정되며 또한 예수의 존재에 대해서 인정될 수 있다. 그런데 복음서에서 제시된 예수는 초자연적 인물이기에 문제가 발생되며, 예수의 자의식에 대한 논의가 발생하게 된다.
[기독교의 기원에 관한 증거는 이중적이다.] 복음서의 예수와 바울의 종교이다. 이 두 길은 동일한 결론에 이른다. 그러나 본서는 바울의 종교의 기원을 취급한다.
[두번째, 감화] 바울의 감화에 대해서는 약간의 부정적 견해가 있지만, 교회에서는 합당한 권위를 갖고 있다. 바울을 잘 이해한 리츌이나 하르낙은 구원론에 대해서 집중되었다. 하르낙은 바울 종교가 기독교의 초석이 될 수 없다고 단정하였다. 그러나 개혁파 교회에서 바울 종교는 정당한 초석이 된다. 그리고 바울의 감화력은 아직도 잃지 않고 있다. 교회사 전체에서 아직도 바울의 역량은 측량할 수 없다(로마서 8장).
바울은 기독교가 세계 종교로 확립될 수 있는 중요한 전도자이다. 바울의 이방인 전도(헬라-로마의 토착 종교가 쇄망한 뒤에 남은 공백을 채운 것은 오직 기독교) 헬라-애굽의 이시스(Isis)교와 미드라(Mithras)교는 헬라-로마에 공유되는 운명이었다. 바울이 전도하지 않았다면 세계는 이시스와 미드라가 되었을 것이다. 바울의 전도활동이 갖는 세계사적 공헌이다.
[바울 종교는 이스라엘의 고대 종교와 절대적인 단절을 요구함] 그러나 이시스와 미드라는 과거의 신앙을 포기할 필요가 없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다른 구주는 포기되어야 한다. 즉 신적 존재와 교제하기 위해서 한 신앙과 종교를 유지해야 하고, 한 구주에게 온전한 신뢰를 바쳐야 하며, 다른 모든 종교적 실천을 포기해야 한다.
[1세기 유대교는 적극적인 선교 종교였다] 디아스포라나 팔레스타인 유대교는 적극적인 선교 정책을 갖았다. 예수께서도 바리새인들이 한 사람의 개종자를 얻기 위해서 노력한다고 말씀하셨다. 유대인의 회당에는 유대인 뿐만 아니라 이방인이 가득차 있었다. 할례를 받아 완전한 유대인이 있었지만, “하나님을 공경하는 사람,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등의 계급을 갖고 있었다. 이들은 유대인처럼 구약성경과 일신교를 고수하였다. 이 유대인의 회당은 바울 전도에 회중을 얻는 중요한 공헌이 되었다. 바울은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서 설교의 특권을 갖았다. 즉 바울의 전도는 유대교로 개종한 이방인들에게로 영향을 주었다. 즉 유대인에게 설교를 하지만, 이방인이 듣고서 기독교로 개종하였다.
유대인 종교의 특징은 배타성이고, 구약 성경에 근거된 계약 관계는 중요한 개념이다. 그들은 할례와 모세 율법을 지키는 것을 서약함으로 혹은 완화된 조건으로 계약을 유지하였다.
기독교은 유대교의 조건보다 훨씬 완화된 조건이 제공되었다. 르낭(Ernest Renan, 1823-1892)은 기독교가 아니면 미드라가 세계 종교가 되었을 것이라고 상상했다. 바울은 자유주의적 유대인이 아니라, 엄격한 바리새파였다. 바울은 개종된 이방인에게 엄격한 유대교를 이식시키려 했을 것이다. 그러나 바울이 전한 복음은 이방인에게 자유에 대한 것은 예수의 가르침에 근거한 것이다.
예수는 비유로 유대인과 인간에게 가르쳤고, 바울은 이방인 교회를 수립한 공헌을 하였다. 예수께서는 복음서에서 이미 이방인에게 전도할 것을 명령하셨다. 그러나 제자들은 노력하지 않았다. 유대인들은 개종자를 얻기 위해서 노력하는데 반해 예수의 제자들은 수고를 아낀 것이다. 예수가 떠난 뒤에서 제자들은 이스라엘 집의 잃은 양만을 봉사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바울의 이방인 전도는 획기적인 사건이 된다.
사도행전에서 이방인 고넬료와 그 가족은 베드로 자신의 손으로 할례의 요구없이 세례를 받았다. 바울은 3 대 도시에 교회(알렉산드리아, 로마, 안디옥)를 설립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그의 업적은 과소평가되지 않는다. 바울은 로마에 편지를 쓸 때에 권위있는 어조로 썼다. 바울은 자유주의 유대인이 아니었듯이, 기독교에서 회심 전의 원리가 극복된 원리(신학적 작업을 한 신학자)를 갖고서 실천한 이방인의 사도였다.
바울은 시온의 오류(구약 성경을 악이라고 주장한), 바나바 서신의 오류(문자대로 희생과 할례를 요구함)를 피하면서, 착한 양심을 갖고 전도의 힘으로 구약 성경으로 이방인을 개종시켰다.
[이방인 전도를 위한 바울의 기초]는 율법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의해서 완전히 해소되어 새시대가 도래되었음을 보여준다. 즉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말미암아 구약성경을 조명하였다. 베드로는 할례 없이 세례를 주어 유대적 특권을 파기시켰다(최초의 일이지만 국부적인 일로 전체 이론으로 체계화하지 못함). 바울은 이러한 기초 원리를 확립한 최초의 위대한 기독교 신학자이다(이방인 전도의 원리를 확립함).
[바울의 종교]는 철저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사실 위에 기초하고 있다. 예수는 바울에게 있어서는 실제적으로 계시자가 아니라 구주였다.
[속죄 종교로서의 바울 종교의 성격] 구원자에 관한 일정한 개념을 가지고 있고 있음이 서신서에 명백하게 나타나있다. 바울이 이해한 예수는 천상적 존재이지만, 천상의 구속주께서 이 땅에 오셔서 참된 인간 생활을 하셨다. 율법의 저주를 십자가에서 받으셨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부활하셔 성령으로 교회와 함께 하신다. 이 제시는 경건한 기독교인에게는 당연한 사실이지만, 근대 역사가들에게는 기이한 것이다. 이들은 바울이 2-3년에 굴육적으로 죽임당한 예수를 신격화한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예수는 바울에게 언제나 종교적 신앙의 대상이었다. 바울은 구약적 사람으로 오직 한 하나님만을 섬기게 되어 있다. 그 바울이 예수를 종교 대상으로 삼은 것은 놀라움의 정점에 이르게 한다. 이 현상은 네 가지로 나눈다. 첫째, 예수께서 초자연적 존재로 천상적 존재이시다. 신격화가 아니라 참 하나님이시다. 둘째, 자연주의적 견해는 아주 불충분한 견해이다. 둘째 리츌파로 자유주의의 논리이다. 자유주의란 초자연적인 사상을 제거한 것이다. 이들은 실제적 인물 나사렛 예수의 영향으로 바울 종교가 형성되었거나, 다메섹의 심각한 체험을 근거로 제시한다. 나사렛 예수는 인류 가운데 최대의 인물로서 하나님의 아들이다. 또한 하나님에 대한 하나님의 아들의 의식에 중점을 두엇다.
본 하르낙의 [기독교란 무엇인가?]는 급진주의에 의해서 공격을 받는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의 역사성과 바울의 중요 서신에 대한 역사성을 거부하기 때문에 문제삼지 않는다.
W. 브레데,는 바울은 예수의 제자가 아니라 기독교의 제2의 창립자라고 선언했다. 바울은 예수의 모범이 아니라, 그의 죽음과 부활을 포함되어 있는 구원사업이라는 것이다. 즉 바울의 종교는 나사렛 예수를 기초로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 주장을 M. 브레크넬이 지지한다. 즉 바울은 회심전부터 가지고 있던 기독교 이전의 메시야 사상에서 이끌어내었다는 것이다. 바울이 유대교에서 변화를 준 메시야 개념은 천상적 메시야가 지상에 와서 구원사역을 했다는 것이다. 브레데는 이것은 예수의 높은 도덕적 성품의 어떤 인상에서 나온 것이 아니고, 예수는 단지 지상에 와서 죽고 부활했다는 소식만을 전했다는 것이다. 즉 메시야의 강림은 인간에 대한 사랑으로 하신 속죄 행위였다고 해설함으로써 바울과 그리스도를 단절시켰다. 이 이론은 W. 뷰세에 의해서 연속되었다. 뷰세는 예수의 역사성은 인정했지만, 제자들에게 메시야로서 보여준 일이 없다고 주장했다.
[바울에 관한 보도 자료는 바울 서신(갈리디아, 고린도전, 후서, 로마서)과 사도행전이다]
바울은 7서신(데살로니가 전, 후서, 빌립보서, 빌레몬서)이 진작으로 인정된다. 저자는 모든 바울 서신의 저작을 인정하지만, 정당한 평가를 위해서 공통의 지반을 구성한다.
[사도행전의 문제, 46-51] 사도행전의 저자는 바울의 일행임은 본문에서 증거한다(우리, 행 17:28). 일인칭 복수를 사용함에서 100년 뒤의 작품이라는 주장을 일축한다. 사도행전의 저작을 누가로 보는 것은 하르낙도 인정했다. 사도행전의 위작이 주장되면 바울서신을 해석할 수 있는 근거가 상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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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chen(서론, 11-54) 바울 종교의 기원, 김남식 역, 성운출판사
본 서는 기독교의 기원 문제를 논하려는 것이다. 기독교의 창설자와 기독교 운동의 창설자에 관한 편지 위에 세워진 양식에 대한 것이 서로 다르다는 것이다.
[바울서신의 순정성과 사도행전의 역사성에 대한 회의]가 있지만, 그래도 일부의 가치에 대해서는 역사가 사이에 합의가 있다는 것이다(참고, 신사훈, 바울의 구속론).
바울의 증언은 기독교의 기원 문제에 중요한 관계가 있다.
바울은 예수와 동시대의 사람이었다. 즉 바울은 회심 전에 예수의 생애와 죽음에 관해서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한 지식이 바울을 변화시키지 못했고, 체험에서 시작된다. 이러한 점에서 “바울 종교의 기원을 설명하라, 그러면 당신은 기독교의 기원의 문제를 해결한 것이 된다.” 즉 바울 서신이 역사적 사실임이 인정된다면 바울의 역사성이 인정되며 또한 예수의 존재에 대해서 인정될 수 있다. 그런데 복음서에서 제시된 예수는 초자연적 인물이기에 문제가 발생되며, 예수의 자의식에 대한 논의가 발생하게 된다.
[기독교의 기원에 관한 증거는 이중적이다.] 복음서의 예수와 바울의 종교이다. 이 두 길은 동일한 결론에 이른다. 그러나 본서는 바울의 종교의 기원을 취급한다.
[두번째, 감화] 바울의 감화에 대해서는 약간의 부정적 견해가 있지만, 교회에서는 합당한 권위를 갖고 있다. 바울을 잘 이해한 리츌이나 하르낙은 구원론에 대해서 집중되었다. 하르낙은 바울 종교가 기독교의 초석이 될 수 없다고 단정하였다. 그러나 개혁파 교회에서 바울 종교는 정당한 초석이 된다. 그리고 바울의 감화력은 아직도 잃지 않고 있다. 교회사 전체에서 아직도 바울의 역량은 측량할 수 없다(로마서 8장).
바울은 기독교가 세계 종교로 확립될 수 있는 중요한 전도자이다. 바울의 이방인 전도(헬라-로마의 토착 종교가 쇄망한 뒤에 남은 공백을 채운 것은 오직 기독교) 헬라-애굽의 이시스(Isis)교와 미드라(Mithras)교는 헬라-로마에 공유되는 운명이었다. 바울이 전도하지 않았다면 세계는 이시스와 미드라가 되었을 것이다. 바울의 전도활동이 갖는 세계사적 공헌이다.
[바울 종교는 이스라엘의 고대 종교와 절대적인 단절을 요구함] 그러나 이시스와 미드라는 과거의 신앙을 포기할 필요가 없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다른 구주는 포기되어야 한다. 즉 신적 존재와 교제하기 위해서 한 신앙과 종교를 유지해야 하고, 한 구주에게 온전한 신뢰를 바쳐야 하며, 다른 모든 종교적 실천을 포기해야 한다.
[1세기 유대교는 적극적인 선교 종교였다] 디아스포라나 팔레스타인 유대교는 적극적인 선교 정책을 갖았다. 예수께서도 바리새인들이 한 사람의 개종자를 얻기 위해서 노력한다고 말씀하셨다. 유대인의 회당에는 유대인 뿐만 아니라 이방인이 가득차 있었다. 할례를 받아 완전한 유대인이 있었지만, “하나님을 공경하는 사람,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등의 계급을 갖고 있었다. 이들은 유대인처럼 구약성경과 일신교를 고수하였다. 이 유대인의 회당은 바울 전도에 회중을 얻는 중요한 공헌이 되었다. 바울은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서 설교의 특권을 갖았다. 즉 바울의 전도는 유대교로 개종한 이방인들에게로 영향을 주었다. 즉 유대인에게 설교를 하지만, 이방인이 듣고서 기독교로 개종하였다.
유대인 종교의 특징은 배타성이고, 구약 성경에 근거된 계약 관계는 중요한 개념이다. 그들은 할례와 모세 율법을 지키는 것을 서약함으로 혹은 완화된 조건으로 계약을 유지하였다.
기독교은 유대교의 조건보다 훨씬 완화된 조건이 제공되었다. 르낭(Ernest Renan, 1823-1892)은 기독교가 아니면 미드라가 세계 종교가 되었을 것이라고 상상했다. 바울은 자유주의적 유대인이 아니라, 엄격한 바리새파였다. 바울은 개종된 이방인에게 엄격한 유대교를 이식시키려 했을 것이다. 그러나 바울이 전한 복음은 이방인에게 자유에 대한 것은 예수의 가르침에 근거한 것이다.
예수는 비유로 유대인과 인간에게 가르쳤고, 바울은 이방인 교회를 수립한 공헌을 하였다. 예수께서는 복음서에서 이미 이방인에게 전도할 것을 명령하셨다. 그러나 제자들은 노력하지 않았다. 유대인들은 개종자를 얻기 위해서 노력하는데 반해 예수의 제자들은 수고를 아낀 것이다. 예수가 떠난 뒤에서 제자들은 이스라엘 집의 잃은 양만을 봉사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바울의 이방인 전도는 획기적인 사건이 된다.
사도행전에서 이방인 고넬료와 그 가족은 베드로 자신의 손으로 할례의 요구없이 세례를 받았다. 바울은 3 대 도시에 교회(알렉산드리아, 로마, 안디옥)를 설립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그의 업적은 과소평가되지 않는다. 바울은 로마에 편지를 쓸 때에 권위있는 어조로 썼다. 바울은 자유주의 유대인이 아니었듯이, 기독교에서 회심 전의 원리가 극복된 원리(신학적 작업을 한 신학자)를 갖고서 실천한 이방인의 사도였다.
바울은 시온의 오류(구약 성경을 악이라고 주장한), 바나바 서신의 오류(문자대로 희생과 할례를 요구함)를 피하면서, 착한 양심을 갖고 전도의 힘으로 구약 성경으로 이방인을 개종시켰다.
[이방인 전도를 위한 바울의 기초]는 율법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의해서 완전히 해소되어 새시대가 도래되었음을 보여준다. 즉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말미암아 구약성경을 조명하였다. 베드로는 할례 없이 세례를 주어 유대적 특권을 파기시켰다(최초의 일이지만 국부적인 일로 전체 이론으로 체계화하지 못함). 바울은 이러한 기초 원리를 확립한 최초의 위대한 기독교 신학자이다(이방인 전도의 원리를 확립함).
[바울의 종교]는 철저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사실 위에 기초하고 있다. 예수는 바울에게 있어서는 실제적으로 계시자가 아니라 구주였다.
[속죄 종교로서의 바울 종교의 성격] 구원자에 관한 일정한 개념을 가지고 있고 있음이 서신서에 명백하게 나타나있다. 바울이 이해한 예수는 천상적 존재이지만, 천상의 구속주께서 이 땅에 오셔서 참된 인간 생활을 하셨다. 율법의 저주를 십자가에서 받으셨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부활하셔 성령으로 교회와 함께 하신다. 이 제시는 경건한 기독교인에게는 당연한 사실이지만, 근대 역사가들에게는 기이한 것이다. 이들은 바울이 2-3년에 굴육적으로 죽임당한 예수를 신격화한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예수는 바울에게 언제나 종교적 신앙의 대상이었다. 바울은 구약적 사람으로 오직 한 하나님만을 섬기게 되어 있다. 그 바울이 예수를 종교 대상으로 삼은 것은 놀라움의 정점에 이르게 한다. 이 현상은 네 가지로 나눈다. 첫째, 예수께서 초자연적 존재로 천상적 존재이시다. 신격화가 아니라 참 하나님이시다. 둘째, 자연주의적 견해는 아주 불충분한 견해이다. 둘째 리츌파로 자유주의의 논리이다. 자유주의란 초자연적인 사상을 제거한 것이다. 이들은 실제적 인물 나사렛 예수의 영향으로 바울 종교가 형성되었거나, 다메섹의 심각한 체험을 근거로 제시한다. 나사렛 예수는 인류 가운데 최대의 인물로서 하나님의 아들이다. 또한 하나님에 대한 하나님의 아들의 의식에 중점을 두엇다.
본 하르낙의 [기독교란 무엇인가?]는 급진주의에 의해서 공격을 받는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의 역사성과 바울의 중요 서신에 대한 역사성을 거부하기 때문에 문제삼지 않는다.
W. 브레데,는 바울은 예수의 제자가 아니라 기독교의 제2의 창립자라고 선언했다. 바울은 예수의 모범이 아니라, 그의 죽음과 부활을 포함되어 있는 구원사업이라는 것이다. 즉 바울의 종교는 나사렛 예수를 기초로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 주장을 M. 브레크넬이 지지한다. 즉 바울은 회심전부터 가지고 있던 기독교 이전의 메시야 사상에서 이끌어내었다는 것이다. 바울이 유대교에서 변화를 준 메시야 개념은 천상적 메시야가 지상에 와서 구원사역을 했다는 것이다. 브레데는 이것은 예수의 높은 도덕적 성품의 어떤 인상에서 나온 것이 아니고, 예수는 단지 지상에 와서 죽고 부활했다는 소식만을 전했다는 것이다. 즉 메시야의 강림은 인간에 대한 사랑으로 하신 속죄 행위였다고 해설함으로써 바울과 그리스도를 단절시켰다. 이 이론은 W. 뷰세에 의해서 연속되었다. 뷰세는 예수의 역사성은 인정했지만, 제자들에게 메시야로서 보여준 일이 없다고 주장했다.
[바울에 관한 보도 자료는 바울 서신(갈리디아, 고린도전, 후서, 로마서)과 사도행전이다]
바울은 7서신(데살로니가 전, 후서, 빌립보서, 빌레몬서)이 진작으로 인정된다. 저자는 모든 바울 서신의 저작을 인정하지만, 정당한 평가를 위해서 공통의 지반을 구성한다.
[사도행전의 문제, 46-51] 사도행전의 저자는 바울의 일행임은 본문에서 증거한다(우리, 행 17:28). 일인칭 복수를 사용함에서 100년 뒤의 작품이라는 주장을 일축한다. 사도행전의 저작을 누가로 보는 것은 하르낙도 인정했다. 사도행전의 위작이 주장되면 바울서신을 해석할 수 있는 근거가 상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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