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메이첸, 바울 종교의 기원, 제 2 장 개종이전|Gresham Machen
[독서] 메이첸, 바울 종교의 기원, 제 2 장 개종이전|Gresham Machen
http://cafe.daum.net/homoousion/56TM/29
제 2 장 개종이전
고경태의 신학 독서 노트
본 서에서는 바울의 유대적 이교적 환경, 세계와 바울과의 접촉, 예수와 예수의 최초 제자들과 바울과의 접촉 성질을 일정한 바울 생애의 모든 사건만을 문제로 삼는 것이다.
[바울의 일생] p.57. 바울을 길리기아의 다소의 출생은 사도행전에서 입증됨. 1890년 Krenkel은 바울의 헬라 개념이 없는 것을 비판하면서 다소 출생을 부인했다. 그러나 바울서신의 유창한 헬라어는 친숙한 것을 증명하여 크랭켈의 의견과는 반대된다. 제롬에 의하면 바울이 갈릴리의 기스카라 태생이라 본다. “제롬이 선천적인 특기인 사물을 혼란시키는 버릇을 여기서도 발휘하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 p. 58” 그러나 바울의 부친이 카스카라에서 나온 것이라는 의견은 신빙성이 있다.
다소는 중요한 도시였다. 바울의 시민권에 대한 것은 시민으로 면제된 로마의 태형을 받은 것(고후 11:25)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전체적인 맥락에서 바울은 시민권을 갖고 있던 것은 설명이 가능하다. 또한 사도행전에 의하면 바울은 엄격한 유대인의 인물로 나타난다. 또한 바울서신에서 자신을 히브리인, 또는 빌립보에서 히브리인 중 히브리인이라고 소개한다. 유대 사회에서는 유대인은 히브리인과 헬라인으로 구별되면, 히브리인은 아랍어를 말하는 팔레스타인 유대인이다. 바울은 다소 출생이면서 전통을 따라 아랍어를 할 수 있는 팔레스타인 유대인이었다. 빌립보서에서 바울은 율법에 있어서 바리새인으로 발견되었다.
이러한 결론에서 바울은 [자유주의적 유대교]의 분위기에 있었다고 견해가 있지만 자유주의적 유대인이 다소에 있었는지는 증명하기 어렵다. 바울은 디아스포라 유대인보다 팔레스타인 유대인이며 율법에 관해서는 바리새인이었다는 것이 성경의 제시이다. 사도행전에서 바울은 예루살렘의 유명한 랍비 가말리엘에게 교육을 받았고, 기독교인을 박해하였다. 초대 기독교사의 재구성을 함.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인간의 속죄를 위해서 지상에 오신 초자연적 인물로 보고 이 신적 그리스도에 대해서 명백하게 신앙의 태도를 취했다. 어떻게 몇 년 전에 죽은 인간에 관해서 그러한 개념을 만들 수 있었는가?
바울은 예수와 동시대 인물이었다. 바울은 동시대의 갈릴리의 사람을 신적 속죄주로 이해했다.
바울의 회심 이전 예루살렘 거주론은 신빙성이 있다. 뷰세는 초기에는 예루살렘 거주론을 반대했지만, 자기 견해에서 후퇴하여 회심 전에 예루살렘에 있었고, 예루살렘 교회를 박해했다고 인정하였다. 바울의 탁월한 헬라어의 실력이 예루살렘 거주론을 부인할 수 있는 근거는 되지 못한다.
바울은 십자가 이전의 예수를 본 일이 있었는가? 성경의 근거로는 고린도후서에서 육체로 알았으나에서 그리스도에 대한 감각적인 지식의 의미로 받아드릴 수 있다. 바울이 예수와 어떤 접촉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증거는 없다. 그러나 바울이 예수에 관해서 듣고 있었던 것은 확실하다.
바울은 회심 전에 점진적으로 신앙이 발전하였는가? 메이첸은 반대하는데, 그것은 바울이 회심 전의 심리 상태는 더욱 강력하게 예수를 반대했다. 자연주의적 견해에서는 바울이 병리적 상태에서 환각 상태를 경험했다고 볼 수 있다. 병환에서 고후 12:1-8에서 환각과 계시에 관계를 갖고 말을 하게 된다. 환각은 간질에 의한 병적 증상이라는 것이다. 바울의 다메섹 체험에 대해서 바울의 약함과 사막의 태양열에서 근거한 환각이라는 정신적으로 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바울의 회심 이전에는 어떤 인간적인 중개자도 존재하지 않았는데, 그가 적극적 박해자였기 때문이다. 바울은 교회를 잔해할 때에 하나님을 섬기고 있었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바울의 회심을 심리적 과정의 결과로 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사도행전 26:14에 근거해서도 심리적 과정으로 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홀스텐Holsten, 1868.이 심리적 과정에 대해서 가장 정교하게 해설하였다. 홀스텐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대한 바울의 견해가 점진적으로 변했다는 것이다. 또 다른 견해는 로마서 7장이 율법 아래서 경험한 불만족에서 출반한다. 메이첸은 중생하지 않은 생활에 대한 견해에 대해서 의구심을 제시한다. 회심 전에도 바울의 양심은 눈을 떴고, 당당하게 교회를 핍박했었다.
바울의 회심을 전부 다메섹 도상의 체험. 바울이 부활의 사실의 확인으로 혁명적인 변화를 했는가? 환각이였다면 불가능할 것이다. 그것은 혁명적인 변화보다 인격과 인격의 접촉이라는 신비적인 사건이다. 바울이 다메섹에서 만난 것은 환각이나 단순한 표징이 아닌 진실한 인물이었다. 바울의 다메섹 도상의 변화는 예수를 만난 것이며, 바울의 마음을 하나님의 성령의 능력으로 중생되었고, 교회에 대한 미움이 사랑으로 전환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바울은 사람에게 가르침을 받아서 회심하지 않아, 그리스도의 계시의 의해서 회심한 것이 아니다. 바울은 예수의 가시적 현현을 통해서 회심하였고, 전생애에 헌신을 다하였다. 이 직접성이 바울의 사도적 권위의 기초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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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경태의 신학 독서 노트
본 서에서는 바울의 유대적 이교적 환경, 세계와 바울과의 접촉, 예수와 예수의 최초 제자들과 바울과의 접촉 성질을 일정한 바울 생애의 모든 사건만을 문제로 삼는 것이다.
[바울의 일생] p.57. 바울을 길리기아의 다소의 출생은 사도행전에서 입증됨. 1890년 Krenkel은 바울의 헬라 개념이 없는 것을 비판하면서 다소 출생을 부인했다. 그러나 바울서신의 유창한 헬라어는 친숙한 것을 증명하여 크랭켈의 의견과는 반대된다. 제롬에 의하면 바울이 갈릴리의 기스카라 태생이라 본다. “제롬이 선천적인 특기인 사물을 혼란시키는 버릇을 여기서도 발휘하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 p. 58” 그러나 바울의 부친이 카스카라에서 나온 것이라는 의견은 신빙성이 있다.
다소는 중요한 도시였다. 바울의 시민권에 대한 것은 시민으로 면제된 로마의 태형을 받은 것(고후 11:25)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전체적인 맥락에서 바울은 시민권을 갖고 있던 것은 설명이 가능하다. 또한 사도행전에 의하면 바울은 엄격한 유대인의 인물로 나타난다. 또한 바울서신에서 자신을 히브리인, 또는 빌립보에서 히브리인 중 히브리인이라고 소개한다. 유대 사회에서는 유대인은 히브리인과 헬라인으로 구별되면, 히브리인은 아랍어를 말하는 팔레스타인 유대인이다. 바울은 다소 출생이면서 전통을 따라 아랍어를 할 수 있는 팔레스타인 유대인이었다. 빌립보서에서 바울은 율법에 있어서 바리새인으로 발견되었다.
이러한 결론에서 바울은 [자유주의적 유대교]의 분위기에 있었다고 견해가 있지만 자유주의적 유대인이 다소에 있었는지는 증명하기 어렵다. 바울은 디아스포라 유대인보다 팔레스타인 유대인이며 율법에 관해서는 바리새인이었다는 것이 성경의 제시이다. 사도행전에서 바울은 예루살렘의 유명한 랍비 가말리엘에게 교육을 받았고, 기독교인을 박해하였다. 초대 기독교사의 재구성을 함.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인간의 속죄를 위해서 지상에 오신 초자연적 인물로 보고 이 신적 그리스도에 대해서 명백하게 신앙의 태도를 취했다. 어떻게 몇 년 전에 죽은 인간에 관해서 그러한 개념을 만들 수 있었는가?
바울은 예수와 동시대 인물이었다. 바울은 동시대의 갈릴리의 사람을 신적 속죄주로 이해했다.
바울의 회심 이전 예루살렘 거주론은 신빙성이 있다. 뷰세는 초기에는 예루살렘 거주론을 반대했지만, 자기 견해에서 후퇴하여 회심 전에 예루살렘에 있었고, 예루살렘 교회를 박해했다고 인정하였다. 바울의 탁월한 헬라어의 실력이 예루살렘 거주론을 부인할 수 있는 근거는 되지 못한다.
바울은 십자가 이전의 예수를 본 일이 있었는가? 성경의 근거로는 고린도후서에서 육체로 알았으나에서 그리스도에 대한 감각적인 지식의 의미로 받아드릴 수 있다. 바울이 예수와 어떤 접촉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증거는 없다. 그러나 바울이 예수에 관해서 듣고 있었던 것은 확실하다.
바울은 회심 전에 점진적으로 신앙이 발전하였는가? 메이첸은 반대하는데, 그것은 바울이 회심 전의 심리 상태는 더욱 강력하게 예수를 반대했다. 자연주의적 견해에서는 바울이 병리적 상태에서 환각 상태를 경험했다고 볼 수 있다. 병환에서 고후 12:1-8에서 환각과 계시에 관계를 갖고 말을 하게 된다. 환각은 간질에 의한 병적 증상이라는 것이다. 바울의 다메섹 체험에 대해서 바울의 약함과 사막의 태양열에서 근거한 환각이라는 정신적으로 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바울의 회심 이전에는 어떤 인간적인 중개자도 존재하지 않았는데, 그가 적극적 박해자였기 때문이다. 바울은 교회를 잔해할 때에 하나님을 섬기고 있었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바울의 회심을 심리적 과정의 결과로 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사도행전 26:14에 근거해서도 심리적 과정으로 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홀스텐Holsten, 1868.이 심리적 과정에 대해서 가장 정교하게 해설하였다. 홀스텐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대한 바울의 견해가 점진적으로 변했다는 것이다. 또 다른 견해는 로마서 7장이 율법 아래서 경험한 불만족에서 출반한다. 메이첸은 중생하지 않은 생활에 대한 견해에 대해서 의구심을 제시한다. 회심 전에도 바울의 양심은 눈을 떴고, 당당하게 교회를 핍박했었다.
바울의 회심을 전부 다메섹 도상의 체험. 바울이 부활의 사실의 확인으로 혁명적인 변화를 했는가? 환각이였다면 불가능할 것이다. 그것은 혁명적인 변화보다 인격과 인격의 접촉이라는 신비적인 사건이다. 바울이 다메섹에서 만난 것은 환각이나 단순한 표징이 아닌 진실한 인물이었다. 바울의 다메섹 도상의 변화는 예수를 만난 것이며, 바울의 마음을 하나님의 성령의 능력으로 중생되었고, 교회에 대한 미움이 사랑으로 전환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바울은 사람에게 가르침을 받아서 회심하지 않아, 그리스도의 계시의 의해서 회심한 것이 아니다. 바울은 예수의 가시적 현현을 통해서 회심하였고, 전생애에 헌신을 다하였다. 이 직접성이 바울의 사도적 권위의 기초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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