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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선진들

[요약] J. G. Machen, [기독교와 자유주의] 5 장 그리스도

[요약] J. G. Machen, [기독교와 자유주의] 5 장 그리스도
http://cafe.daum.net/homoousion/56TM/22
 

5 장  그리스도



  우리는 이상에서 자유주의와 기독교간의 3대 차이점(신관, 인간관, 성경)을 지적하였다. 그리고 예수에 대한 태도에 있어서 자유주의와 기독교는 날카롭게 대립한다.



  바울의 서신이 기독교의 기록의 제1의 사료이다. 그런데 바울의 종교는 예수를 믿음에 있었다. 바울은 예수의 모범을 단순히 그의 성육이나 구속 사업에서 뿐만 아니라 팔레스틴에서의 일상생활에까지도 발견하였다. 바울에게 일차적인 것은 예수의 모범이 아닌, 예수의 구속 사역이었다.  바울의 종교는 그 근본이 예수께서 하나님을 믿음에 대한 신앙이 아닌, 예수를 믿는 신앙이었다. 바울의 회심은 다메섹 도상에서 일어났다. 이렇게 예수를 믿는 신앙에서는 바울이 최초의 사람은 아니었다. 예루살렘과 바울의 교리는 서로 일치함에 교제의 악수를 하였다(갈 2:9). 초대 기독교는 확실히 예수를 모방(모범)으로 삼지 않았다.



  현대 자유주의자들은 무차별적 박애자로서 예수를 칭송한다. 이러한 탁월한 사랑은 신의 특성으로까지 격상된다. 이러한 탁월한 박애정신은 죄인들의 마음의 절망을 회복할 만한 복음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신약성경에 묘사하는 예수는 “단순히 의의 교사나 신 형태를 가진 종교생활의 개척자가 아니고, 인간이 신뢰할 수 있는 구주로 인정되며 또한 자신이 그렇게 인정한 한 인격이었다.” 자유주의는 예수가 신앙의 모범이지 신앙의 대상이 아니다. 따라서 예수는 기독교 창시자로서 최초의 기독교인이 된다.



  [예수의 메시야 의식] 자유주의자들은 예수의 메시아 의식에 대해서 “예수의 체험 중에서 후에야 일어난 현살에 불과하며 참으로 근본적인 것은 아니었다. 참으로 근본적인 것은 신에 대한 아들됨의 의식으로서 이 의식은 모든 미천한 제자들도 같이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고는 유일한 메시야 의식이 아니게 된다.

  [예수의 심리의 재구성] 예수의 심리에 대한 재구성은 실패로 돌아갔다. 첫째, 재구성된 예수께서 역사적이라고 하는 진정한 증거가 없다. 둘째, 현대적 재구성이 역사적이라할지라도 그것은 중대한 과제를 결코 해결하지 못한다.



  [예수의 무죄성] 예수에 대한 무죄 개념은 진화론적 세계관에서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또한 예수의 유죄를 주장하면 기독교 안에 있는 명료한 무죄성을 주장에 반격을 받게 된다. 그래서 자유주의에서 이 난관에 대해서는 속단하지 않으려 한다.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예수의 무죄성을 긍정함으로써 오는 종교적 이익과 그것을 부정함으로써 오는 가상한 과학적 이익을 동시에 획득하려 노력하고 있다.



   예수의 체험과 우리의 체험 사이에는 놀라운 차이가 있다. 예수께서는 죄를 제거하는 사역을 하셨으며, 우리는 죄사함을 받은 체험을 한다. 기독교는 시작부터 죄를 제거하는 길이었다. 오순절 복음 전도 또한 ‘회개하라’ 였다. 초대 기독교인들은 모든 일에 예수의 이름을 결부시켰다. 모범이 아닌 신앙의 대상으로 예수를 섬긴 것이다.



  첫째, 예수의 참 인간이다. 먼저 예수는 기도 생활을 보여 주었다. 아버지와 아들의 긴밀한 관계를 기도로 보여 주었다. 예수의 종교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이다. 예수는 죄가 없는 사람이다. 기독교는 죄를 사하는 종교이지만, 죄가 없는 예수는 아버지와 완전한 부자 관계를 유지한 종교이다. -> 예수의 종교와 기독교를 구별해서 기독교의 근원이 무엇인지를 설명한다.



  둘째, 예수는 우리의 형제도 모범도 아니다. 예수께서는 우리의 형제이지만 모방의 대상이 아니다. 예수와 우리는 유사한 표현(모범)도 있지만, 본질적으로 다른 면도 있다.



  예수는 가장 종교적인 인간이었다. 예수에 대한 현대 자유주의에서 재구성된 이해가 아닌, 오직 신약성경의 예수이다.



  자유주의는 예수를 모범과 교도자로 보지만, 기독교는 구주로 믿는다. 자유주의는 예수를 신앙의 모범으로 보지만, 기독교는 신앙의 대상으로 한다. 자유주의는 예수를 가장 아름다운 인간의 꽃으로 보며 기독교는 그를 초자연적 인격으로 본다.



  바울이 상용한 예수의 칭호 (주Lord)라는 말은 실제에 있어서 하나님(God)이라는 말과 동일한 신의 칭호이다. 바울 자신도 사용한 헬라역의 구약성경에 있어서는 [주]라고 하는 말이 히브리 원어의 [여호와]의 역어로 사용되었다. 바울은 이 구약성경의 [주]를 예수께 적용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바울의 이러한 이해(예수를 초자연적 인격)하는 것은 당시의 유대 율법 교사들도 인정하였다.



[초자연적 인격]이란. ‘초자연’의 개념을 ‘기적’의 개념과 밀접한 관연성이 있다. 초자연의 가능성은 두 가지 사실, 첫째 인격신의 존재와 둘째 자연계의 질서의 존재를 전제로 한다. 인격신의 존재가 없으면 세계 질서 안에 신력의 목적적 등장이 있을 수 없으며 자연 질서의 실재가 없으면 자연현상과 자연을 초월한 현상 간에 구별이 있을 수 없다. 성경에서 기적은 현 세계의 진행과정을 끊임없이 감찰하고 지배하는 한 신을 전제로 한다. 성경에서 기적에 있어서는 자연과 초자연이 혼합되어 있어 자연신론적 신관을 전혀 용납하지 않는다. 초자연의 개념은 자연신론(이신론) 뿐만 아니라 범신론과도 모순된다.



  초자연의 인격, 기적 등을 인정하는 것은 죄의 실재에 대한 확신에 기인한다. 초자연적 사건의 백미는 동정녀 탄생이다. 동정녀 탄생을 인정하는 것은 부활의 영원성과 예수의 초월성을 믿게 된다.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항상 인격적인 존재로 역사하신다.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예수는 하나님”이라고 말하기를 좋아하며, 예수의 신성에 대해서 말하기를 좋아한다. 자유주의 신학자들이 예수를 ‘신’이라고 말하는 것은 예수를 높이려는 것보다 신을 극도로 낮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유주의 신학에서 예수가 신되는 것은 완전한 신으로는 인정하지 않으며(니케야 신조), 참 하나님이시며 참 인간이 되시는 것이 성경적 제시라는 것도 인정하지 않는다(아폴리나리우스는 완전한 인간성을 부인). 이 교리가 사변적인 것으로 비판을 받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이 교리는 사변에 의해서 생긴 것이 아니라, 성경의 가르침을 간결하고 명확하게 요약하려는 시도에 의하여 산출된 것이다. 이 교리가 현대 자유주의의 배척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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