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홍 목사의 성경적 상담 연구소 RBD COUNSELING INSTITUTE
멘탈리티의 핵심 키워드 : 신성한 내면아이, 구상화, 의미와 통일성, 도약~
목록
믿음의 선진들

구 프린스톤과 그레샴 메이첸, 그리고 그 제자들

구 프린스톤과 그레샴 메이첸, 그리고 그 제자들
http://cafe.daum.net/homoousion/56TM/8

보수주의의 신학이 구 프린스톤 신학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데 대해서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구 프린스톤(Old Princeton)의 일백년 역사는
아취발트 알렉산더(Archibald Alexander),
찰스 핫지(Charles Hodge),
그리고 벤자민 워필드(Benjamin B. Warfield)의 보수신학과
신앙의 계승으로 수놓아졌다.

프린스톤 신학사상을 연구한 호펙커(W. Andrew Hoffecker)는
알렉산더가 구 프린스톤의 목사였다면
핫지는 그 학파의 신학자이며
워필드는 프린스톤의 변증학자임을 지적하였다.

이 세 신학자중에서
조직신학을 저술해 낸 사람은
오직 핫지뿐이다.

핫지는 그의 조직신학에서
구약과 신약의 말씀은 성령의 영감으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며
정확무오함을 분명하게 전제하였다.

또한 그는 성경이 오류를 범할 수 없는 하나님의 지성의 산물이므로
성령의 도우심으로 혹은 평범한 방편으로 사람들에게 이해되도록
충분히 투명성을 지니고 있다고 하였다.

보수신학의 바탕은
이와같이 성경의 신적권위에 도전하고 손상을 가져오는
자유주의와 한결같이 철저히 대결하여
그 입장을 견지하고 계승하여 왔다.

예를 들면, 찰스 브릭스(Charles A. Briggs,1841-1913)의 고등비평이
프린스톤의 정통성을 위협하며
또 그가 성경의 권위, 정확무오,
그리고 영감을 부인하고 나섰을 때

미국장로교단은
그의 교수직을(Union Theological Seminary)엄 금하고
1892년 총회에서 성경의 정확무오 교리를 재천명하였던 것이다.

이로써 브릭스는
아취발트 알렉산더의 미국장로교단과 단절하고
자유주의를 가속화시킨다.

핫지의 신학은 워필드에게,
워필드의 변증학은 그레샴 메이첸에 이어졌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메이첸은 프린스톤에서 워필드에게 학적인 영향을 크게 받았다.
이것은 그의 저서 「기독교와 자유주의(Christianity and Liberalism)」에서
성경의 신뢰성에 대한 정통신앙의 힘찬 변증을 통해 잘 나타나 있다.

1929년에 이르러
윌슨(Robert Dick Wilson, 1856-1930),
메이첸(John Gresham Machen,1881-1937)
그리고 앨리스(Oswald Thompson Allis,1880-1973)등의 보수신학자들은
하나님의 진리의 파수꾼 양성은 반드시 계속되어져야함을 선언하고
프린스톤에서 사퇴하여

반틸(Cornelius Van Til, 1895-1987),
카이퍼(R. B. Kuiper, 1886-1966),
울리(Paul Wooley, 1902-1984),
머레이(John Murray, 1898∼1975)
그리고 맥크래(Allen A. MacRae,1902∼현재)와 함께
필라델피아에서 웨스트민스터신학교를 설립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메이첸 박사가 죽은 1937년에 이르러
설립비전은 뜻밖의 변화로 흔들리고 말았다.
그때는 이미 윌슨은 죽고
앨리스는 사임한 뒤였다

세 가지 변화는
신자의 자유, 천년설, 그리고 변증학 분야에 관련된 것이었다.
 
주초(酒草)에 대한 신자의 양심의 자유,
무천년설 그리고 전제주의 방법론을 지지하는 학자들과
주초를 악으로 간주하여 금하고
전천년설과 증거주의 방법론을 지지하는 학자들이
첨예한 대립양상을 보이게 되었고
 
후자그룹은 웨스트민스터 출범 8년째인 1937년
구 프린스톤신학 계승을 위한
훼이스신학교를 세우기에 이르렀다.

물론 메이첸과 윌슨의 입장은
구 프린스톤신학의 특징인
증거주의 방법론이었다.

훼이스신학교의 34년간의 순항에도 불구하고
학사행정 및 학교운영의
극단적인 독재와
극분리주의의 양태로 인하여
강제은퇴 조치된 맥크래와 물러난 교수들은

그들을 따르는 학생들과
필라델피아 북서쪽에 새로운 터전을 잡고
비블리칼신학교를 시작하였다.

구 프린스톤신학의 마지막 주자
알랜 맥크래 박사와
비블리칼의 맥크래 박사는
셈어학(The Semitics)계통에서
당대의 가장 저명한 석학인
윌슨 박사의 뛰어난 제자였다.

스승의 발자취를 좇아
셈어학을 독일에서 연구하고
그의 위촉을 받아
구 프린스톤신학의 계승을 위한
웨스트민스터신학교 설립에 동참하였다.

그는 딕 윌슨 박사의 셈어학과
보수신학을 전수하고 계승하여 왔다.

기독교 세계에서 자유주의 성경관의 약점을
수많은 후진들에게 이해시키는 데 공헌해온 것이다.

스위스에서 라브리 공동체(L'Abri Fellowship)를 시작하여
우리에게 알려진 프랜시스쉐이퍼(Francis A. Schaeffer,1912-1984)는
맥크래 박사의 제자였다.

훼이스신학교 졸업반 때 조교로 채용되기도 했던 쉐이퍼는
맥크래 박사를
구 프린스톤 신학교의 위대한 학자들의
성경적 충실성으로부터
21세기의 다리를 놓아주는 인물로 불렀다.

쉐이퍼는
생존시 맥크래 박사가 역사 및 과학
그리고 종교사에 관한 모든 분야에서
정확무오한 성경관을 고수해온
위대한 학자로 평가받고 있다.

인본주의로 혼란한 세계인의 사상에
「기독교 선언(A Christian Manifesto)」으로
인류의 유일한 소망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하고
세계의 지성들에게 큰 영향을 끼치고 있는
쉐이퍼의 신학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수양과 통찰력은 성경관에서 비롯되었고
구 프린스톤의 신학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할수 있다.

「로마서 주석(The New International Commentary on the New Testament: The Epistle to the Romans)」과
「구속의 완성과 적용(Redemption Accomplished and Applied)」으로 유명한
존 머레이와
알랜 맥크래는

세계적 석학인 딕 윌슨 박사, 오스왈드 앨리스 박사,
그리고 그레샴 메이첸 박사 아래서
함께 공부한 프린스톤신학교의 동기생이었다.

그들은 웨스트민스터의 교수요원으로 7년간 함께 봉직하였다.
머레이 박사는 그와의 교제에 대해서
삶의 모든 면에서
하나님 말씀중심의 온전한 결단과
개혁신앙에 대한 헌신으로 끌렸다고 회상하였다.

이 글 공유하기

독자 의견

댓글이 없습니다.

목록